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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W포토] ‘탐나는도다’ 선남선녀 5인방

    [NOW포토] ‘탐나는도다’ 선남선녀 5인방

    MBC 여름특선드라마 ‘탐나는도다’(연출 윤상호, 홍종찬ㆍ작가 이재윤, 신재원, 이지향, 최이랑) 제작발표회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 임패리얼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임주환, 서우, 황찬빈, 이승민, 이선호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탐나는 도다’는 ‘조선시대 탐라도에 푸른 이양인이 나타났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트렌디 사극 미니시리즈다. 8월 8일 첫방송.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서우·황찬빈 ‘은밀한 속삭임’

    [NOW포토] 서우·황찬빈 ‘은밀한 속삭임’

    MBC 여름특선드라마 ‘탐나는도다’(연출 윤상호, 홍종찬ㆍ작가 이재윤, 신재원, 이지향, 최이랑) 제작발표회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 임패리얼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서우, 황찬빈이 은밀한 속삭임을 하고 있다. ’탐나는 도다’는 ‘조선시대 탐라도에 푸른 이양인이 나타났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트렌디 사극 미니시리즈다. 8월 8일 첫방송.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서우 ‘단아한 모습’

    [NOW포토] 서우 ‘단아한 모습’

    MBC 여름특선드라마 ‘탐나는도다’(연출 윤상호, 홍종찬ㆍ작가 이재윤, 신재원, 이지향, 최이랑) 제작발표회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 임패리얼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서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탐나는 도다’는 ‘조선시대 탐라도에 푸른 이양인이 나타났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트렌디 사극 미니시리즈다. 8월 8일 첫방송.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누가 ‘대머리집’서 외상술 먹었나?

    누가 ‘대머리집’서 외상술 먹었나?

    메뉴라고 해 봐야 값싼 막걸리와 소주, 투박하게 자른 두부부침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이곳은 퇴근길을 그냥 보내지 않으려는 직장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손님들의 부탁 한 번이면 인심좋은 주인은 이름과 금액을 외상 장부에 적어놓기만 했다. 끝까지 돈을 갚지 않아 돈을 떼이는 경우도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주인장은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외상 인심을 베풀었다. 이곳은 자연스레 광화문 일대 공무원, 문인, 기자, 방송인, 교수 등의 사랑방이자 정보교환소 역할을 했다. 1960, 70년대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메뉴로 광화문의 명소 식당으로 손꼽히던 ‘사직골 대머리집’이 30년 만에 재현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화문광장 준공을 기념해 오는 30일부터 9월20일까지 ‘광화문 年歌(연가): 시계를 되돌리다’ 전시회를 연다고 28일 밝혔다. 이 전시회는 조선시대 이후 600여년간 수도 역할을 한 서울의 중심지인 광화문 일대에서 일어난 여러 역사적 사건들과 민초들의 삶을 다양한 고지도와 그림, 모형, 사진 등 150여점을 통해 조명한다. 특히 1980년대 도심 재개발 이전까지 이 일대 명소 식당 중 하나였던 ‘사직골 대머리집’의 외상장부 3권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장부에는 공무원 등 단골손님 300여명의 이름이 수록돼 있어 당시 광화문 뒷골목의 풍속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역사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외상장부는 당시 단골이던 극작가 조성현씨가 식당 주인에게 전해받아 보관하던 것들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외상장부를 토대로 당시 광화문 뒷골목의 풍경과 사직골 대머리집을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사직골 대머리집으로 더욱 잘 알려진 ‘명월옥(明月屋)’은 1910년 이전부터 영업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되며, 70년 넘게 대를 이어오며 광화문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오다 1978년 인수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았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NOW포토] 서우 “예쁘게 찍어주세요”

    [NOW포토] 서우 “예쁘게 찍어주세요”

    MBC 여름특선드라마 ‘탐나는도다’(연출 윤상호, 홍종찬ㆍ작가 이재윤, 신재원, 이지향, 최이랑) 제작발표회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 임패리얼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서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탐나는 도다’는 ‘조선시대 탐라도에 푸른 이양인이 나타났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트렌디 사극 미니시리즈다. 8월 8일 첫방송.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여름드라마 ‘탐나는도다’ 출연배우

    [NOW포토] 여름드라마 ‘탐나는도다’ 출연배우

    MBC 여름특선드라마 ‘탐나는도다’(연출 윤상호, 홍종찬ㆍ작가 이재윤, 신재원, 이지향, 최이랑) 제작발표회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 임패리얼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출연진들이 화아팅을 외치고 있다. ’탐나는 도다’는 ‘조선시대 탐라도에 푸른 이양인이 나타났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트렌디 사극 미니시리즈다. 8월 8일 첫방송.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황찬빈, 서우에게 기습 키스?

    [NOW포토] 황찬빈, 서우에게 기습 키스?

    MBC 여름특선드라마 ‘탐나는도다’(연출 윤상호, 홍종찬ㆍ작가 이재윤, 신재원, 이지향, 최이랑) 제작발표회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 임페리얼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서우, 황찬빈이 귓속말을 하고 있다. ’탐나는도다’는 조선시대 탐라도에 푸른 이양인이 나타났다는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트렌디 사극 미니시리즈다. 8월 8일 방송 예정.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청산(淸算)과 극복(克服)의 차이/허증수 경북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열린세상] 청산(淸算)과 극복(克服)의 차이/허증수 경북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사색당쟁으로 얼룩졌던 500년 조선 역사를 한 편의 동영상으로 보는 것 같다. 사사건건 맞붙어 사생결단을 내려고 한다. 상대의 주장은 청산돼야 할 반시대적 테제이고 따라서 타도돼야 한다는 식이다. 서로 다른 주장을 용융시켜 공감을 만들어 내는 사회적 시스템은 멈춰 섰다. 온 나라가 미디어법 하나에 매달려 있다. 굴지의 자동차공장에서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맞서고 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략적·계층적 이기심을 잠시 접고, 한 치 앞을 내다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럴듯한 가면으로 본색을 가리고 사회 분란을 조장하는 파렴치를 중단해야 한다. 갈등은 청산(淸算)되는 게 아니라 극복(克服)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를 처음 건설할 때도 요즘처럼 사회적 갈등과 다툼이 극에 달했었다. 1970년대 유신정국을 전후해 건설된 고리1호기에 이어 고리2호기가 세워지던 시절이었다. 공교롭게 한국과 필리핀은 똑같은 원자력 발전소를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공정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정쟁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1983년 고리2호기를 완성했으나 필리핀은 달랐다. 실각한 대통령이 착수했다는 이유로 다 완성돼 가던 원자력 발전소를 내팽개쳤다. 사회적 갈등에 함몰돼 원자력 발전소를 희생시켰고 결국 원자력 발전소를 단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20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전체 수력발전량의 두 배나 되는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고리2호기를 보면 사회적 갈등은 왜 극복해야 하는지 곱씹어진다. 파괴의 역사는 갈등을 유발하지만 건설의 역사는 희망과 화합을 낳는다. 파괴는 흩어져 망치를 휘두르면 되지만, 건설의 역사(役事)는 손을 맞잡아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보다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국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꿈조차 꾸지 못한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외부적으로 남북대립과 내부적으로 좌·우 이념적 갈등, 게다가 1인당 GNP 1000달러라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새로운 꿈을 꾸어 왔고 그 비전을 실현시켜 왔다. 인류의 역사는 집단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극복해 온 마디마디였다. 그때그때 불거지는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대들었던 공동체는 하나같이 쇠락의 내리막길을 달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조선시대 당파 싸움의 쓰라린 결과를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사생결단식 사회적 갈등이 산술적으로는 국내 총생산액의 27%를 갉아먹는다고 한다. 1970년대 유신정국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제철소를 만들어 산업건설의 초석을 다진 우리다. 세계 13대 경제강국을 이룩하고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발전 역할모델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혼돈의 와중에서 국가 사회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꿈과 비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차원의 변화를 추슬러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는 동인(動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잠시 주먹질을 멈추고 조금 기다려야 한다. 목소리의 옥타브를 올리기 전에 잠시 침묵하는 미덕을 실천해야 한다. 미디어법이 약인지 독인지 조금만 기다려 보면 될 것이다. 위기를 맞고 있는 자동차 공장을 되살리는 길이 정녕 없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하루에 3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는 비정규직 이웃들을 보호하는 슬기를 찾아야 한다. GNP 1000달러 시대에 2만달러 시대를 맞이할 징검다리를 놓던 우리가 아닌가. 생각을 섞어야 한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생각을 모아 밝은 빛을 만들어 내야 한다. 녹색과 청색 그리고 빨간색을 모아 환한 백색 빛을 만들어 내는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역사는 갈등 극복의 기록이고, 당대의 갈등을 극복해낸 역사는 발전했다. 허증수 경북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 올여름 한옥마을서 “1박2일”

    올여름 한옥마을서 “1박2일”

    “올여름엔 전주 한옥마을에서 ‘슬로시티’의 진수를 만끽하세요.” 한옥마을은 ‘맛과 멋의 전통도시’ 전북 전주시의 상징이다. 전주는 700여채의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전국 최대 한옥 주거공간을 자랑한다. 전주 한옥마을은 관광기능 위주의 다른 지역 ‘민속촌’과 달리 주민들이 실제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공간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압축돼 있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주 700여채 기와집 즐비해 전주 한옥마을은 1920, 30년대 형성됐다. 전주 중심가를 일본인들이 차지하자 우리 터를 지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풍남동·교동 일대에 집중적으로 한옥이 들어섰다. 이 덕분에 전주 한옥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대궐형 집부터 서민형까지 다양한 한옥이 섞여 있다. 솟을대문에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으로 구성돼 전통 한옥의 운치를 간직한 고택이 적지 않다. 오랜 세월 삶의 향기가 배고 손때 묻은 한옥들이 최근 들어선 체험시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동락원, 승광재, 설예원, 아세헌 등 9개 체험시설에는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주말과 휴일은 다음 달 말까지 예약이 끝난 상태다. 툇마루에 앉아 한가로이 매미소리를 듣고 밤이면 마당에서 보름달을 즐길 수 있는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다소 불편하지만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전통예절, 다례, 비빔밥만들기, 판소리, 한복 등 다양한 체험활동도 할 수 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국인, 학생들뿐 아니라 연인과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크게 늘었다. 연간 130만명이 다녀가는 새로운 명소가 됐다. ●풍성한 볼거리·먹거리로 관광객 유혹 한옥마을은 천천히 걸으면서 느림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은행나무길과 태조로를 걷다 보면 세월이 비켜간 듯한 옛 한옥에 절로 빠지게 된다. 공예품전시관, 술박물관, 공예공방촌, 명품관, 강암서예관, 최명희문학관, 경기전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발길을 잡는다. 전통문화센터에서는 주말마다 판소리 무료 공연과 투호, 널뛰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골목골목 돌며 온갖 사연이 담긴 고택들을 살펴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내로라했던 명문가와 부자들이 살았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둘러보면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학인당은 한옥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전주 대부호 백낙중이 경복궁 중건에 거금을 내고 고종으로부터 대저택 건축을 허가받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은행나무길 동락원은 주인이 아들의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지었다. 가정집이었으나 한국은행, 기전대학 등으로 주인이 바뀌어 체험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오교장 댁’은 조선 말기 궁녀가 전주로 내려와 지었다고 해서 ‘궁녀의 집’으로 불린다. 먹거리도 다양해 관광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한정식, 비빔밥, 칼국수 등이 유명하다. 전통찻집은 한옥의 정취를 느끼면서 다례를 즐길 수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공짜 안주가 많기로 유명한 전주 막걸리집도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을 국제적인 명소로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우선 한옥마을을 사대문 안으로 확대해 ‘한스타일 특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또 느림의 가치를 지향하는 공동체인 국제 슬로시티(Slow City)에 가입해 지구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했다. 한옥마을에 대규모 회의와 숙박체험이 가능한 전통 한옥형 컨벤션도 오는 9월 완공된다. 한옥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가문에 얽힌 얘기들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갈 곳 잃은 노 前대통령 추모 표지석 은행 연차쓰면 보너스 휴가 이현세 “생애 첫 온라인 만화 연재” 英 동성애 군인이 표지모델로 인터넷 시세 300만원짜리 팔러가니… 박물관·미술관으로 ‘문화 피서’ 떠나요
  • 새달 1일 시민품에 안기는 광화문광장 미리 가보니

    새달 1일 시민품에 안기는 광화문광장 미리 가보니

    서울 광화문광장이 1년 2개월여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다음달 1일 마침내 시민의 품에 안긴다. 총 길이 550m, 폭 34m 안팎의 광화문 광장(조감도)은 그 규모만으로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광장 곳곳에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온갖 상징물들이 숨겨져 있다. ●해치·육조거리 토층원형 복원 먼저 지하철 5호선에서 나와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지하통로에 조성된 ‘해치마당’에 들어서면 서울의 상징인 해치 조형물이 시민들을 맞는다. 해치마당에서는 지난해 9월 발굴돼 벽면에 복원·전시된 가로 5m, 세로 6m 크기의 육조거리 토층 원형을 볼 수 있다. 육조거리는 조선 태조 때 한양 도성을 조성하면서 만든 거리로, 조선시대 도로 공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해치마당에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동안 세종로의 상징 역할을 해온 이순신 장군 동상이 위엄을 드러내며 우뚝 서 있다. 동상 주위에는 최고 18m 높이까지 치솟는 분수 200여개와 물 높이 2m의 바닥분수 100여개가 설치돼 장군이 왜적을 물리쳤던 해전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묘사하며, 364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화려하고 다양한 분수를 연출한다. 동상에서 광장 좌우를 바라보면 양옆 가장자리로 폭 1m, 길이 365m, 수심 2㎝의 ‘역사 물길’이 흐른다. 동쪽 역사 물길에는 바닥돌에 1392년 조선 건국부터 2008년 현재까지의 역사를 음각으로 새겨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서쪽 물길 바닥은 앞으로 다가올 역사를 담기 위해 빈 칸으로 남겨뒀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는 새롭게 탄생한 광화문광장이 북악산을 향해 탁 트여 있다. 동상을 지나 경복궁 쪽으로 약 250m만 올라가면 빈 공간이 하나 나온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자리한 이곳이 바로 광화문광장의 중심이다. 이곳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잡게 된다. 홍익대 김영원 교수가 작업 중인 동상은 한글날인 오는 10월9일 제막식과 함께 시민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세종대왕 동상 앞 소형 인공 연못 속에는 해시계·물시계·측우기·혼천의 등이 놓이고, 동상 뒤엔 ‘육진개척’을 보여주는 6개의 열주(줄기둥)가 세워진다. 또 동상 하부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는 지하보도에는 세종대왕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세종이야기’라는 전시공간이 들어선다. ●10월9일 세종대왕 동상 모습 드러내 세종문화회관과 KT사옥을 연결하는 옛 지하차도에 들어서는 ‘세종이야기’는 한글 창제와 예술, 과학, 기술 등 세종의 위업과 숨겨진 이야기가 담기며 동상 제막과 함께 개관한다. 시는 다음 달 15일까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세종이야기’의 공간 구성 배치, 전시 기법, 콘텐츠 등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를 실시한다. 이렇듯 광화문광장 중심부에는 재위 기간 동안 문무에 걸쳐 위대한 역사를 남긴 세종대왕의 업적들이 ‘정도 600년’을 훌쩍 뛰어넘어 고스란히 살아 숨쉬게 되는 셈이다. 광화문에 가까워지면 고증을 통해 원래 위치에 복원된 해치상이 나타나고 광화문 바로 앞에는 월대(궁전이나 누각 따위의 앞에 세워 놓은 섬돌)도 볼 수 있다. 광화문광장 준공식은 다음 달 1일 오후 8시에 열린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광화문광장 물길 ‘역사 물길’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들어서는 물길과 지하공간 이름을 ‘역사물길’과 ‘해치마당’으로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역사물길은 광장 좌우측에 폭 1m, 길이 365m로 조성된 수심 2㎝의 얕은 물길로 동편 바닥돌에는 조선시대부터 지난해까지의 역사가 새겨진다. 시는 세종문화회관 편 서쪽 물길의 바닥은 미래 역사를 위해 빈 칸으로 남겨뒀다. 해치마당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상광장으로 가는 연결통로 1197㎡에 조성된다. 서울의 상징인 해치 조형물이 들어서고 가족화장실, 수유실 등이 마련된다. 벽면에는 지난해 9월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육조거리 토층원형이 복원돼 전시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부천에 ‘옹기 박물관’ 세운다

    경기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 여월택지지구에 항아리 모양의 ‘옹기 박물관’이 세워진다. 23일 부천시에 따르면 사업비 72억원을 들여 2011년 8월까지 여월택지지구 내 3000여㎡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100㎡ 규모의 옹기 박물관을 건립키로 하고 올 연말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옹기박물관 건립 취지는 조선시대 말 서울지역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 탄압을 피해 여월동으로 이주해와 옹기를 구워 생계를 꾸렸다는 역사를 되새기고, 최근 웰빙 붐에 따라 각광을 받고 있는 전통 토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옹기 형태에 갈색의 옹기 색깔을 띠게 될 박물관은 각종 옹기 600여점을 전시하고 움집과 가마 등을 갖춰 옹기 체험장으로 활용된다. 부천은 현재 만화박물관·유럽자기박물관·교육박물관·활박물관 등 9개 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박물관 도시’로 불리고 있다.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길섶에서] 반차도(班次圖)/노주석 논설위원

    서울 청계천 종로2가 어름에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자기타일 벽화로 그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그림을 본다. 외국인들도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다들 사실적 묘사라며 감탄한다. 어느날 “이 그림에 등장하는 말이 몇 필이나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어 “분명히 뻥튀기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이 그림, 정확하게 ‘반차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반차도는 그림으로 그린 행사 계획도이고, 책으로 묶은 것이 의궤(儀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의궤는 세계에서 유일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이다. 의식의 규범이기 때문에 한치의 오차나 과장이 있을 수 없다. 이 그림은 실재하는 1300쪽 중 극히 일부다.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한 8일간의 ‘모든 기록’이 그려져 있다. 정조는 물론 병사가 먹은 반찬의 종류와 재료, 양까지 죄다 포함돼 있다. 참고로 반차도에 등장하는 사람은 1799명이고 말은 779필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정선 ‘별천지 박물관’ 개관

    강원 정선 시골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별천지 박물관’이 개관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주민들은 21일 폐교를 활용해 추억의 옛 교실 등을 갖춘 별천지박물관을 만들어 전날 개관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별천지박물관은 지난해 3월 폐교된 숙암분교의 옛 교실을 활용해 고문서와 생활사 자료 중심의 제1전시실과 교육자료 중심의 제2전시실, 복도전시실, 창고를 개조한 사진전시실, 옛 교실을 재현한 추억의 교실 등으로 꾸려졌다. 야외 공간에는 편의시설과 무대 등을 설치해 음식과 차를 즐기고, 농특산물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600여점의 전시자료는 정선아리랑학교(교장 진용선) 추억의 박물관에서 대여한 것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쳐 1980년대까지의 교과서, 북한교과서, 공책, 방학책, 학용품, 만화와 잡지, 장난감 등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자료들이 선보인다. 개관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김기용(47·이장) 위원장은 “마을 체험 활동을 겸한 재미있는 박물관으로 운영해 관광객 등에게 추억의 향수 및 교육의 장으로서, 지역문화 공간으로서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주민들이 최선을 다해 운영해 나가겠다.” 말했다.  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한달 전인가요,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이 방계 족보에 잘못 올라간 자신들의 족보를 변경해 달라고 소송해 승소했어요.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1456년에 일어났으니 이미 550여년 지난 일이죠. 이번 소송의 결과는 왕위를 둘러싸고 삼촌이 조카를 죽인 세조와 단종의 비극은 21세기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작가’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용선(58) 작가는 ‘왜 단종과 사육신의 비극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기억을 통해서, 또는 구체적인 오늘날의 현상을 통해 연장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박팽년의 아내는 세조에게 출산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세조는 딸을 낳을 경우에만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고, 박의 아내는 아들을 낳자 종의 자식과 바꿔치기를 해 그 아들을 살렸다. 이름을 숨기고 살던 박팽년의 자손은 조선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자 함께 복권되면서 박씨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는데,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뿌리를 잘못 찾아 갔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오태석의 연극 ‘태(胎)’는 이런 역사의 비극을 그렸다. ●단종과 사육신 연작, 6·25연작 등 그려 서 작가는 국내 서양화단에서는 드물게 ‘역사화’에 관심을 가지고 1986년부터 단종과 사육신 연작을 그리고 있다. 6· 25전쟁과 관련한 연작이나, 단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한국인의 조상에 대해 그린 신화 시리즈 ‘마고성 사람들’ 그림 등도 역사화의 한 연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서 작가는 “서양 명화라는 것이 수천년 동안 사회와 인간 사이의 갈등과 투쟁, 역사· 신화· 문학 속 인간들에 대한 끈끈한 관심 등을 시각화했는데, 우리를 포함해 동양은 수천년 동안 관념 속의 맑고 아름다운 풍경만을 그렸다.”면서 “이런 자각이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도록 했고, 특히 신화의 경우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키기에 자꾸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는 배경으로 그는 뒤늦은 자아의식의 발견을 든다. 그는 가세가 기울자 방황하며 수 차례의 대입에 실패해 군대를 다녀온 후 남들보다 5년 정도 늦은 1975년에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을 했다. 서 작가는 “내 나이 25~26살 때인데, 창조적 상상력 하나 없이 그 얼굴이 어떤 역사와 배경이 있는지도 모른 석고 데생으로 입시를 치른 것을 생각하면 창피하다.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 모를 정도다.”고 이야기한다. 반백이 된 지금이야 슬그머니 웃음을 머금고 과거를 토로하지만, 30~40대에는 치열하게 고뇌했을 것만 같다. 서 작가는 색채 사용도 그 나이 또래의 서양화가들과 다르다. ‘한국의 마티스’란 별명을 얻은 박생광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는 “원색에 대한 본능을 의식적으로 꺼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고 말한다. 탱화나 불화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 냈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미술과 문화는 색채를 억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먹의 농담을 활용한 수묵화가 크게 발달했다는 것. 그는 500년 이상 억제된 색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잠재의식 속에서 색채감각을 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원색을 사용한다. 때론 그림에서 색들이 조화롭지 않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촌스러움을 즐긴단다. 그림의 크기도 개인들이 소장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는 ‘도시인’ 연작 시리즈를 위해 서울이나 베이징을 왔다갔다 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실평수 100평(330㎡)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작업하는 걸 보고, 의식적으로 크게 그려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을 보면서 서 작가는 어린 시절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을 읽으며, 잃어 버린 영토에 대해 분함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자꾸만 축소지향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9월20일까지 전시… 작품의 크기·색채 등 끊임없는 도전 주제의식, 색채와 크기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정신 등이 그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이유로 보인다. 작품 감상의 포인트겠다. 지난해 서울대 미대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있는 그는 틈이 나면 강원도 영월을 방문한다. 단종릉인 장릉, 유배됐던 청령포, 나중에 시신이 버려졌던 서강 등을 돌아본다. 또 투기된 단종의 시신을 차가운 물속에서 수습한 영월호장 엄흥도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1986년 서강에서 단종의 이야기와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꼈다는 그는, 파란 강물에서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비극과 인생의 비애를 함께 보았으리라. 그가 청년의 심정으로 느낀 감정들이 2009년 초대형 회화 50여점과 조각 10여점, 드로잉 120여점으로 시각화됐다. 전시는 9월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선정· 전시하는 ‘올해의 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크게 기여했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는 작가들로, 전수천(1995), 김호석(1999), 노상균· 이영배(2000), 전광영· 권옥연(2001), 이종구· 서세옥(2005), 정현(2006), 정연두(2007)씨 등이 선정됐다. 관람료 3000원. (02)2188-60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실 개편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실 개편

    국립중앙박물관의 아시아관 중국실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워진다. 21일 새롭게 문을 여는 중국실의 전시품 100여점 중 70점 이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것들로 채워진다. 목재로 만든 사천대왕, 신석기시대 토기, 명대의 화려한 도자기와 회화 등등. 이번 전시는 ‘권력의 상징-중국 예기’, ‘고대 중국인의 생활-명기와 도용’, ‘중국인의 고대종교-불교’, ‘흙의 신비-중국도자’ 및 ‘선의 예술-중국회화’ 등 모두 5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특히 우리나라 비슷한 시기의 문화 예술과 비교 설명하면서 관람의 재미를 한층 더했다. 예컨대 농사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을 표현한 작자미상의 청나라 시대에 제작된 ‘빈(주나라의 옛이름)풍칠월도’는 모두 24폭의 두루마리 그림으로서, 한 해 농사를 짓는 동안 겪는 즐거움과 수고로움을 표현한 조선시대 농가월령가의 모체가 된다. 또한 실제 성인 남성의 키에 가까운 165㎝ 높이의 ‘증장천왕’(사천왕상 중 남쪽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은 국내 사천왕상에서 보기 드물게 목재로 만든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화재와 전쟁 등으로 대부분 토기로 만들어져 있는 것들만 남았다. 이밖에 네 번째 마당 ‘흙의 신비’에서는 중국의 대표적 문화재인 도자기를 생산지역 가마터 별로 분류해서 시대적, 지역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를테면 월주요, 요주요, 정요 등이다. 아울러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기원이 될 수 있는 도자기도 함께 전시해 한국과 중국의 도자기 문화관계에 있어 통시적, 공시적 이해를 높였다. 박물관 아시아부 관계자는 “2005년 처음 문을 연 뒤 두 번째로 개편한 중국실 전시를 통해 중국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및 한국 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섬이 된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섬이 된다

    여행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을까. 각박한 일상을 떠나 느릿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에 좀더 의미를 둘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잊고 있었던 것, 혹은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떠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섬을 찾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길은 어느새 설렌다. 많은 방향표들을 거치며 미지의 장소를 찾아가듯 다다른 곳은 나와 섬 사이의 간격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은 길들이 어느새 연육교를 건너 소백산 끝자락에 위치한 무섬마을의 시간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연육교를 건너 처음 마주한 무섬마을의 첫 느낌은 마음속으로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게 했다. 100년 이상된 가옥들이 즐비한 이곳은 무성필름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혹은 오래된 소설 속에 묘사된 것 같은 풍경이 물씬 풍기는 마을이었다. 마을에 점점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는 고요에 놀라고 마을이 펼쳐놓은 시간들에 놀랐다. 그렇듯 나에게 허락된 여유는 과거로의 여행에 몸을 싣고 천천히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라고 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섬 전체 3면을 감싸고 있고 넓게 펼쳐진 모래 해변 위에 한옥들이 어우러진 채 떠 있는 형상이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666년 무렵부터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세대를 거쳐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살아오면서 이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한때는 1200여 명이 살았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20여 가구 40여 명만이 남아 있다. 마을 입구 어귀에 위치한 정자를 비롯해 전통가옥, 그리고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 골목과 담장을 나눠가지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영주판 ‘하회마을’이라고도 불리어지듯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해 천혜의 환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을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으며 때 묻지 않은 시간 여기저기에는 바람, 새소리, 물소리가 소란스럽게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또한 무섬마을은 시인 조지훈의 처가가 있던 곳이다. 이곳의 아름다운 정취를 바라보며 이별과 아픔을 읊조린 그의 시, <별리(別離)>가 쓰여진 곳이기도 한데, 이곳의 풍경을 배경으로 떠올리며 한 행 한 행 구절을 읊조리니 어느새 시인의 심성에 가 닿아 있는 듯하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넘어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저고리 다홍치마 자락에/ 말없이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듯 끊질듯 고운 미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을 바라보다/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고름에 소리없이 맺히는 이슬방울/ 이제 님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 빈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꺽어서 채찍삼고 가옵신 님아 - 조지훈, 「별리(別離)」 전문 자연의 소리 가득한 이곳의 분위기와 조우한다면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 한 소절 멋들어지게 읊조리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곳은 《이어도》 《금당벽화》로 유명한 소설가 정한숙의 단편소설 <고가>의 배경이 되기도 한 마을이다. 솟구쳐 흐르는 물줄기모양 뻗어 내린 소백산 준령이 어쩌다 여기서 맥이 끊기며 마치 범이 꼬리를 사리듯 돌려 맺혔다. 그 맺어진 데서 다시 잔잔한 구릉이 좌우로 퍼진 한복판에 큰 마을이 있으니 세칭 이 골을 김씨 마을이라 한다./ 필재의 집은 이 마을의 종가(宗家)요. 그는 종손이다./ 필재의 집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나서면 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중략>…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은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도입부를 읽고 있으면 강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바라보며 묘사해 나가는 작가의 행간 속에서 마을을 돌아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이곳은 희미한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간 속에 뚜렷이 각인시켜 놓는다. 시와 소설의 배경으로 쓰여질 만큼 마음의 여유와 영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 마을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으로는 매화꽃이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 형국이라 하여 길지로 꼽힌다고 한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받았던 마을의 기를, 나도 같은 자리에서 한껏 받아 보고 싶은 소망이었는지 노트를 꺼내서 뭐라도 적어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날이 어둑해지도록 좁은 골목과 낮은 지붕들이 길을 불러들인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박천립 가옥과 만죽재 고택 등을 거쳐 마을 한바퀴를 돌다보면, 담장 옆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와 처마, 그리고 누군가 세워둔 자전거의 휴식과 마주하기도 한다. 또한 흙길을 걷다보면 앞마당 빨랫줄에 널어진 옷가지들이 소박하고 정겨운 오후의 풍경이 되어 자연스럽게 스치기도 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밭일을 나가시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 아, 고요와 적막이 나의 시선을 이렇게 붙잡을 수 있었구나. 그러고 보면 그동안 너무 많은 소음에 무감각하게 살아온 것 같다. 이곳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문득 두려워지기도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걸어간 곳은 솟대가 내려다보는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길이 150 미터 길이의 외나무다리다.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다듬어 만든 외나무다리는 장마 때면 휩쓸려 떠내려가기 일쑤라고 한다. 하지만 직접 복원하기를 반복하며 해마다 ‘외나무다리’ 축제도 열고 있다. 아련한 시간여행을 하는 나와 저 건너 육지 사이의 마음의 통로라고 해야 할까. 한 사람 정도 겨우 올라설 수 있는 좁은 외나무다리는 내성천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는데, 반짝이는 물이랑을 내려다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이것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느릿느릿 건너가는 구름도, 모래해변 위 물새의 발자국도, 이 마을에서의 시간은 너무도 평화롭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어느덧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좀더 많은 관광객들을 가까이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 입구 왼편,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한옥전통마을 공사가 1년 후인 올 11월에 맞춰 완공되기 위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마땅한 민박이나 음식점 하나 없어서 불편해 했던 여행객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시간을 좀더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좋은 변화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모습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들기도 한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오래도록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이곳을 찾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IC 주변에서 인삼순대와 막걸리 한 잔, 그리고 계절마다 각각 다른 정취를 펼쳐놓는 영주 소백산의 산행과 더덕즙을 곁들인다면 경북 영주에서의 여행은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시설 좋고 편리한 곳에서 누리는 여행은 이곳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조금 불편하고 무료할 수도 있는 시간이 온통 우리를 초대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여행의 선물이다. 녹음이 더욱 짙어지는 계절, 일상의 무거움을 비워버리고 천천히 첫 발걸음을 떼어보는 것이 어떨지. 섬 안시아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섬이 된다. 탯줄이 연육교처럼 놓인 어머니 자궁은 내겐 육지였다. 허공을 달려온 빗방울조차도 너라는 육지 사이에는 간격이 필요하다. 오랜 잠수처럼 숨막히던 내 사랑도 그 때문이었으리. 그 간격이 때론 우리를 무모하게 만든다. 잠시 모래 위에 내려앉은 새들도 너와의 거리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섬과 육지 사이 일곱 색색의 탯줄이 놓인다. 네게로, 시간 속으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글 · 사진 안시아 시인
  •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에도 펴질줄 모르는 인생…서글픈 밥줄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에도 펴질줄 모르는 인생…서글픈 밥줄

    소설가 황순원은 그의 장편소설 ‘일월’에서 봉건시대였던 조선시대의 천민계층인 백정들이 일제시대 전후로 벌였던 ‘형평운동’ 등 신분해방운동 문제를 다뤘다. 훌륭한 집안이었으나 주인공이 백정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쌓아올렸던 부와 명성, 평판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소설가 홍명희는 백정 ‘임꺽정’을 풍운아로 그렸지만 실제 백정은 조선시대에 온갖 천대와 멸시의 대상으로,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해방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지만, 도축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피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역사학자 이영화가 쓴 ‘조선시대 조선사람들’(1998년, 가람기획 펴냄)에 따르면 조선초 백정은 원래 양인신분으로, 자영농민을 일컬었다. 이들은 고려시대 양수척이나 화척이라 불렸는데, 근본은 혼란기 한반도에 유입된 말갈인·거란인 등 북방 유목민족들이었다. 한반도에 살면서도 유목민족의 습속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수렵과 목축에 종사하고 유랑생활을 했다. 그러다 조선 세종때 세수확대의 일환으로 양인 확대정책을 진행했는데, 이들 양수척과 화척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이들을 백정이라 칭했다. 그 결과 백정들은 농경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일정 지역에 정착해 특수분야에 종사하는 직업인이 됐다. 그러던 것이 조선중기 이후 백정에 대한 차별정책들이 펼쳐지면서 백정=도축자=최하위층 천민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한다. 조선 초기 도축업자는 거골장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백정의 계층추락은 그 시대 백정 자체의 문제였다기보다는 국가 정책의 변화가 한 계층을 편견과 외면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꺼려하거나 외면하는 직업군들이 있다. 과거 백정으로 부르던 도축업자뿐 아니라 때밀이, 누드모델, 바텐더, 밴드마스터, 무당, 로프공(고층빌딩 외관청소부), 모텔 종사자, 캐디 등등. ‘밥줄 이야기’(이동권 지음, 알다 펴냄)는 우리 사회에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미술과 북한학을 전공한 뒤 상업미술시장과 대기업을 거치고, 시사월간 잡지에서 기자로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3년 동안 알음알음, 또는 소개로, 또는 완전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편견에 가득찬 특정 직종의 특징과 애환, 시대적인 질곡 등에 접근했다. 이 책에 나오는 직종은 모두 26개. 어느 직종도 딱히 자녀들에게 권해주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부여한 편견의 무게는 그만큼 깊고 단단하다. 이 책에서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자신의 몸을 놀려 먹고 살아간다. ‘부지런하게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1960~70년대식 사회인식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벌써 부자가 되고도 남았어야 한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힘겨운 노동에도 구겨진 종이 같은 그들의 인생은 펴질 줄 모른다. 이들의 탄식 소리를 들어보자. 맛있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밥상에 올려주기 위해 궂은 일을 하는 숙련된 도부의 평균월급은 180만원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지출이 가장 많을 시기인 50대라는 점, 2009년 도시가구의 평균임금이 320만원(세전)인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생활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귤 바나나를 싣고 트럭 노점을 시작한 지 6년이 된 이승복씨. “처음 트럭 노점을 시작했을 땐 하루에 바나나 25상자를, 3년전에는 귤 20~30상자를 팔았는데, 요즘은 3일에 10상자를 판다.”고 말한다. 외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대형빌딩의 외관을 세척하는 로프공들의 초봉은 일당 5만~7만원, 기술자가 되면 13만~15만원을 받는다. 장마철과 한겨울에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연간 3000만원의 수입을 만들려면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한달 27일을 일해야 한다. 변두리 남탕 때밀이의 월 수입은 150만~250만원. 목욕탕에 보증금으로 1억~2억원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돈이 아니다. 때밀이 경력 20년의 김현승씨는 자신의 수입만으로는 아들 대학 등록금을 대기도 힘들어 아내를 돈벌이에 내보내기도 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하얗게 밤을 새우며 남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손님들을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빼앗긴 재래시장과 운명을 같이하며 한산한 시장에 하염없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누드모델이나 모텔 종업원, 바텐더, 성인주점의 밴드마스터들은 성적으로 만만하거나 문란하다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땀흘리며 돈을 벌고 있다. 일부 모텔이나 술집에서 문란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직업상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닌가. 밥줄이야기는 서글프고, 속상하다. 세상살이 어느 구석에 만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루 세끼 음식을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목구멍으로 넘기게 하려면 뼈와 살을 훑어내리는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가. 책의 내용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감성적으로 또는 감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기피하는 일을 해내야 하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꼭대기 없는 바닥은 있을 수 있어도, 바닥 없는 꼭대기는 존재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낮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잠시나마 감사한 생각이 든다. 1만 3000원. 나라는 부자지만 그 나라에 소속된 국민들은 가난해지는 일본의 이야기를 다룬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가마타 사토니 지음, 김승일 옮김, 산지니 펴냄)는 아주 똑같은 소재는 아니지만 ‘밥줄이야기’의 일본판 버전으로 읽힌다. 분석적으로 기업프렌들리 정책, 민영화의 폐해, 파견직이나 비정규직의 문제 등에 일본 사회의 하위층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1만 4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살아있는 전설의 춤사위 다시 본다

    살아있는 전설의 춤사위 다시 본다

    전북 남원 살풀이춤의 살아 있는 전설, 조갑녀(86) 명인의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춤사위를 만나는 무대가 열린다. 공연기획사 축제의땅은 오는 26일 오후 5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우리시대 최고의 명인을 소개하는 ‘노름마치뎐’ 세번째 공연으로 ‘춤! 조갑녀’를 올린다. 192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짧지만 인상적인 예인(藝人)의 전설을 만들어낸 조갑녀 명인을 위한 헌정공연이다. ●2007년 세계무용축제 무대에 올라 조 명인은 6살에 장단을 가르치던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남원 권번(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하던 곳)에 들어가며 춤을 배웠다. 이때 가르친 이가 이장선(1866~1939년) 명인. 이 명인은 궁궐에서 춤을 가르쳤고, 임금 앞에서 직접 춤을 췄던 명무였다. 이 명인에게 개인교습을 받은 조 명인은 승무, 살풀이춤 등을 배우며 ‘소녀 명무’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1931년 처음 열린 춘향제에 8살의 나이로 참가했고, 11회 대회까지 승무, 검무, 살풀이춤을 추면서 소녀 명무는 ‘남원 명무’, ‘춤은 조갑녀’라는 찬사를 받았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갑잔치, 화전놀음, 단풍놀이 등에서 춤을 도맡은 당대 최고의 예인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조 명인은 1941년 가족을 돌보기 위해 결혼을 하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1971년, 1976년 춘향제에서 잠시 모습을 비췄을 뿐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랜 숨바꼭질 끝에 조 명인은 84세인 2007년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마자 ‘조갑녀류 민살풀이춤’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명인은 건재했다. ●“조선말의 춤사위 고스란히 간직” 공연기획자 진옥섭은 “이 무대에서 존재조차 희미했던 거대한 춤의 존재가 다시 드러났다.”면서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에 몸짓은 마치 타임캡슐에 묻혀 있듯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 초기의 춤사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연에서 조 명인은 단 5분간 ‘민살풀이춤’을 선보인다. 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이라 ‘민살풀이춤’이다. 조 명인이 선보이는 즉흥춤의 진수는 김청만(장구), 박종선(아쟁), 원장현(대금), 김무길(거문고), 한세현(피리), 김성아(해금) 등이 연주하는 ‘시나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공연을 위해 후배 춤꾼들이 나서 판을 만든다. 강성민이 이매방류의 ‘승무’로 첫 판을 열고, 진주의 예기(藝妓) 김수악의 춤을 이어받은 박경랑이 ‘교방춤’을 춘다. 권명화의 박지홍류 ‘살풀이춤’, 이현자의 강선영류 ‘태평무’, 백경우의 ‘사풍정감’, 이정희의 ‘도살풀이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이 이어진다. 놀음을 마무리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일컫는 ‘노름마치’는 당연히 조 명인이다. (02)3216-118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고은 ‘만인보’ 23년만에 탈고

    한국 시단의 거목 고은(76) 시인이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시집 ‘만인보’를 최근 탈고했다. 2007년 26권까지 출간된 ‘만인보’에는 총 3285편이 실렸고, 27∼30권에 실릴 500여편의 마지막 원고를 지난 2일 탈고했다. 23년 만에 전체 3800편 30권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각권 120여편씩 구성될 27∼30권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살아간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30권의 마지막 부분에는 조선시대 비운의 왕 연산군을 통해 권력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있다. 만인보는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생각해 냈으며 우리 민족의 여러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려고 했다. 그러던 1986년 봄, 모두 3500편으로 완결하겠다는 공언과 함께 1∼3권을 펴냈다. 이후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한국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등 7개 언어로도 번역되기도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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