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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일 TV 하이라이트]

    ●행복한 교실(KBS1 오전 11시) 충북 충주상고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발 앞서 창업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창업 동아리 활동을 통해 경영이나 경제 등 관련 학문에 관심을 가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과연 취업과 진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던 충주상고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또 스스로 꿈을 선택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함께한다. ●파워퀀텀맨(KBS2 오후 3시 5분) 어느 날 남궁시현은 자신의 침대 밑에 있는 신발상자에서 9차원 세계에서 온 파워 퀀텀맨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한편 남궁시현의 도움으로 나오게 된 파워 퀀텀맨은 이미 은퇴한 우주의 영웅 퀀텀맨의 아들이다. 하지만 퀀텀맨에 비해 파워 퀀텀맨은 아직 우주를 지키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기만 하다. ●수목 미니시리즈 최고의 사랑(MBC 밤 9시 55분) 독고(차승원)는 그 동안 수치스러웠던 주변 상황을 수습하며, 세리와의 CF계약을 지속하기로 한다. 필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연애서적 등을 학습하며 애정에 대한 마음을 키워간다. 한편 6090 안전지대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게된 독고.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허하기만 하다.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탐구대장 지진희와 탐구 대원들이 아직도 조선시대 방식으로 모내기를 하는 마을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전통 모내기 체험을 통해 우리 농경문화 속 숨겨진 조상들의 지혜를 함께 배워 본다. 또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 그런데 물고기에도 나이테가 있다고 한다. 알쏭달쏭 동물과 식물의 나이를 찾아 출발해 본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0분) 산불감시카메라는 산불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자연 경관을 해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한다. 때문에 주로 등산객의 접근이 불가능한 산 속 깊은 곳에 설치되기 마련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혹한의 4월. 눈 덮인 설산 등 극한의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산불감시카메라 설치반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1970년대의 핫플레이스였던 음악다방은 ‘세시봉’이 아니었다. 그 시대 최고의 음악다방은 바로 이종환이 이끌었던 ‘쉘부르’와 이백천의 ‘르시랑스’ 등이었다. 이제 음악다방들은 7080세대에게 추억으로만 남았는데…. OBS ‘나는 전설이다’에서는 이곳에 단골로 출연했던 가수들이 총 출동해 음악다방에 관한 모든 것을 밝힌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지자체 세계유산 등재 열풍 藥? 毒?

    지자체 세계유산 등재 열풍 藥? 毒?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 세계유산 등재 열풍이 불고 있다. ‘세계유산’이란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를 통해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인류가 함께 보전해야 할 목록에 이름을 올린 유산을 말한다. 문화유산,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함께 담고 있는 복합유산, 기록유산 등 4종으로 나뉜다. 얼마 전에 5·18기록물 등이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문화재청 인력 부족 호소 30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현재 지자체 10여곳이 지역의 문화재와 자연경관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신청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단 등재에 성공하면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면서 국제기구나 단체들의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받아 유산 보호에 대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또 지역홍보 및 관광객 유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축조한 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파손된 ‘서울성곽’을 총 110억원을 들여 복원하고 있다. 2014년까지 성곽 복원을 마치면 이를 2015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로 했다. 전남도는 ‘서남해안 갯벌’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지난 1월 기본계획 용역을 전남발전연구원에 의뢰했다. 서남해안 갯벌은 연간 100만 마리의 철새에게 먹이를 제공해 주는 곳으로, 다른 나라 갯벌에서 볼 수 없는 자연미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도는 해녀들의 노래, 작업도구, 공동체 습속 등 ‘해녀문화’를 등재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 5개년 기본계획’을 짜고 있다. 이를 위해 특별팀까지 구성했다. 충남도 역시 ‘공주·부여 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전담기구를 만들었다.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세계를 상대로 한 작업을 추진하다 보니 국가 차원에서 신청서 작성 등 관련 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문화재청은 관련 인력 부족을 호소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문화재청은 최근 회의를 열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13곳 가운데 서남해안 갯벌, 공주·부여 역사지구, 남한산성 등 3곳을 우선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충북, 사전 작업에만 7억 써 지자체들이 이처럼 총력전을 펼치는 주된 이유는 그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200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제주도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용암동굴 등 3곳의 경우 국내외 관광객이 2006년 225만명에서 2010년 385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고, 실패하는 사례도 있어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내 7개 산성을 ‘중부내륙 산성군’으로 묶어 2013년에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예정인 충북도의 경우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와 학술대회를 하느라 벌써 7억원이나 썼다. 전남도는 2009년 남해안 공룡화석지의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외국 공룡화석지와 달리 남해안 지역에서는 공룡 알과 발자국 화석만 발견됐을 뿐 뼈화석이 없던 게 탈락의 이유였다. 조효상 문화재청 세계유산 담당은 “세계유산 등재는 처음에 정부가 주도했는데, 요즘은 지자체들이 앞다퉈 주도하고 있다.”면서 “지자체들이 사전 준비 단계부터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문화재청과 협의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왜장 인형’ 안고 투신한 논개 체험 논란

    ‘왜장 인형’ 안고 투신한 논개 체험 논란

     경남 진주시가 논개제를 개최하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재현, 찬반 논란 중이다. 이 행사는 진주시가 제10회 ‘논개 순국 체험행사’의 하나로, 28~29일 오전 10시~오후 6시 촉석루 앞 순국 체험 행사때 열었다.  어린이들은 2m 높이의 인공 의암(義岩)에서 인형으로 된 왜장을 끌어안고 푸른색 에어매트에 뛰어내렸다. 논개제 집행위원회는 이 체험행사에 600여명의 어린이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1593년 6월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때 기생 논개가 촉석루 아래 의암에서 일본 왜장을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 왜장과 함께 순국한 것을 재현한 것이다.  사진을 본 일부 네티즌이 논개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좋지만 어린이들의 자살 체험은 좋지 않다며 문제 제기를 했다. 최태문(54) 논개제 집행위원장은 “논개의 순국 정신을 가르치고 진주가 충절의 도시임을 알리기 위해 6년 전부터 해온 행사”라면서 “투신 체험이 아닌 순국 체험”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체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 논개제에서는 조선시대 진주목 관아 체험, 논개 순국 체험, 논개 상상화 그리기, 임진대첩도 탁본 체험, 인력거 체험 등의 행사가 열렸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기고] ‘세종마을’을 아세요/김영종 종로구청장

    [기고] ‘세종마을’을 아세요/김영종 종로구청장

    경복궁 주변의 마을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북촌이 서울 관광의 1번지가 되면서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내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경복궁 서쪽은 북촌에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북촌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인 반면, 서쪽은 중인인 역관과 의관·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의 삶의 터전이었고 근대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윤동주·이상 등도 이곳에서 꿈의 날개를 펼쳤다. 다시 말해 이곳은 양반층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와 문화예술인 마을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 골목 하나만 지나면 동네 이름이 바뀌는 곳이다. 골목 어귀마다 숱한 이야기와 전설을 안고 있기도 하다. 지난 15일 통인시장 입구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세종마을’ 선포식이었다. 사단법인 세종마을 가꾸기회가 이끈 행사는 경복궁 서쪽의 15개 동네를 세종마을로 명명하는 한편 세종대왕 탄신일에 걸맞게 세종마을 문화축제로 펼쳐졌다. 북촌이 서울관광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경복궁 서쪽의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북촌에 빗대어 일부 인사들이 ‘서촌’이라고 부르는 결례를 저지르고 있어서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동서남북과 중촌의 5촌으로 관리됐다. 북악산 밑을 북촌이라 했고 남산자락 아래는 남촌, 낙산 근처를 동촌, 서소문 안팎을 서촌, 그리고 수표교 주변을 중촌이라 했다. 서촌은 분명 정동·서소문 일대인데 경복궁 서쪽이라고 서촌이라 불렀으니 마음이 상할 만도 했다. 일찍이 공자는 사회 혼란의 원인을 정명(正名)의 부재, 즉 이름이 바르게 되지 않음에서 찾았다. 이름이 바르지 않다는 것은 명목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명목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면 각자 맡은 이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 이름을 잘못 부르면 큰 실례가 된다. 하물며 땅의 이름, 특히 역사성이 깃든 지명을 잘못 부르는 것은 역사에 대한 결례이자 자신의 무식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위이다. 효율과 편리를 중시하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명이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면 됐지 이름 붙여진 이유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내일을 사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과거를 이야기해 줄 의무가 있다. 특히 길 하나하나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는 600년 수도 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더욱 그러하다. 이곳 주민들이 ‘지명 바로잡기 운동’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가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 이름이 논의되었다. 주민들은 세종대왕이 탄생하신 이곳이 전문직 종사자와 문화예술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점에서 세종마을이란 명칭을 대안으로 마련했다. 행정동이나 법정동 이름은 아니지만 경복궁 서쪽 인왕산 일대의 넓은 역사적 마을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이다. 세종대왕 탄신 614주년을 맞이하여 세종마을이 탄생했다는 것은 지역민의 자랑이자 한국사의 새로운 한 장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세종마을이 서울 관광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점은 그래서 반갑다.
  • 광희문 일대 관광명소로

    광희문 일대 관광명소로

    조선시대 장례행렬 전용이었던 서울 광희문(光熙門) 일대가 관광명소로 거듭난다. 서울 중구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서울의 중심 중구 관광진흥 활성화 방안’으로 연말까지 광희문 일대 환경개선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구는 ‘시구문(屍軀門·도성 내 시신을 빼내던 곳)’으로 불렸던 특성을 살려 전통 장례를 재현하는 등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곳으로 만들 방침이다. 이를 위해 광희문에 역사적 의미와 관련 사진 등 자료 전시시설을 마련하고, 광희문을 상징하는 BI(브랜드 이미지 통일화 작업)와 캐릭터를 개발한다. 광희문을 개방해 이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포토존과 포토아일랜드도 설치한다. 또 관광객들이 편하게 이동하도록 주변 보도 폭을 넓히고,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을 옮기는 한편 화장실과 판매점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기로 했다. 광희문교회까지 청구로 100m 구간의 건물 간판 및 외관도 정비한다. 최창식 구청장은 “(광희문 인근) 명동과 동대문 일대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적 관광지”라면서 “역사적 유적지를 명소화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관광 특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씨줄날줄] 사이버 장의사/이춘규 논설위원

    장의사의 일상을 다룬 일본 영화 ‘오쿠리비토’는 2009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영화에서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인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악단 해체로 고향에 돌아간다. 일자리를 찾다가 ‘나이 제한 없고 고수익 보장’이라는 여행안내인 구인광고를 본다. 면접과 동시에 합격한다. 그런데 여행안내인은 인생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장의사였다. 모진 고생 끝에 직업의식이 투철한 장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장의사는 회사 소속이냐,개인 영업이냐를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 장의사가 세분화되고 있다. 장의사, 염사, 장례지도사로도 분류한다. 장의사는 조선시대 한양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지방과 도시에서는 마을공동체 단위의 상조회가 장례를 주도했다. 초상이 나면 장례 물품을 조달하고 상여를 멨다. 묘 다지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농·어촌 마을에는 상조회가 남아 있으나 거의 사라졌다. 상조회의 역할을 장의사가 대신한다. 한국장례업협회 산하에는 1만 1000여명의 장례지도사가 있다. 비회원도 많다. 전문직업인 장례지도사는 장례 업무를 총괄하는 일을 담당한다. 장례지도사는 발인에 앞서 시신을 닦고 화장까지 시킨 다음 준비된 수의를 입히고 입관한다. 침착함과 담력,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장의사와 장례지도사들은 죽은 사람의 이승에서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주려고 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면 이승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다. 인터넷 시대엔 고인의 흔적이 사이버상에 남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죽은 사람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지워주는 ‘사이버 장의사’가 등장했다.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해 300달러를 내고 죽은 뒤 자신의 인터넷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유언을 남긴다. 장의사는 사망신고가 접수되면 회원의 생전 요청대로 사이버상 흔적을 지워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진 사진, 친구들 계정에 남겨진 댓글도 없애줘 인기라고 한다. 국내에도 사이버 장의사가 도입될지 주목된다. 한 여자 아나운서가 자살한 뒤에도 정보가 넘쳐 시끄럽다.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퍼나르는 행위가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산 사람들이 온라인상 정보 때문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너무 높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면 온라인상 모든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유럽연합(EU)에서 적극 추진되고 있다. 산 사람도, 죽은 이도 편치 않은 정보과잉시대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걸음아 나 살려라”…‘겁나게’ 빠른 거북 포착

    “걸음아 나 살려라”…‘겁나게’ 빠른 거북 포착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간다고 느릴 거라는 편견은 이제부터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거북이가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25일(현지시간) 미국 인기 인터넷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게재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북’(World‘s Fastest Turtle)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소개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길가를 유유히 기어가던 거북이는 영상을 촬영하며 한 남성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몸을 조금씩 호숫가로 돌리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거북이 달리기 시작해 물에 들어가기까지 불과 5초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당시 촬영하며 지켜보던 남성도 무척 놀란 듯 “오 이거 엄청 빨라!”라는 감탄사를 내뱄고 있어 영상에 실제 상황의 느낌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상이 교묘하게 조작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영상에 나온 거북이는 거북목에 속하는 민물 거북(Soft shell turtle)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자라로 잘 알려졌다. 한편 자라는 한국 토종 동물로, 조선시대 고대 소설 ‘별주부전’에서도 등장하는 등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동물이다. 하지만 자라가 공개된 영상 속의 ‘별난’ 동물만큼 발이 빠르다는 말은 전해진 바 없다. 사진=유튜브 캡처(http://youtu.be/q_xp5Bq_i7U)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5·18기록물·일성록 세계기록유산 된다

    5·18기록물·일성록 세계기록유산 된다

    200년 전 조선시대 왕이 직접 써나간 기록도, 30년 전 아픈 현대사의 기록도 모두 세계의 중요한 유산이 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8, 9번째가 된다. ●5·18기록물 조건부 등재 권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24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제10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과 함께 정조가 국정 운영 및 조정의 일들을 직접 쓴 일성록(日省錄)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하기로 했다. 단 5·18 기록물은 조건부로 등재를 권고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IAC 회의 결과를 25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유네스코 관행상 등재 권고 결정은 확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5·18 관련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2007년 최근 현대사의 한 대목인 넬슨 만델라의 1963년 법원 판결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적은 있다. 하지만 아시아 민주화 운동,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1980년 광주의 상황을 기록했다는 점은 향후 국내 현대사 정립의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관련 자료는 5·18기념재단,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국회도서관, 미 국무부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5·18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는 정부기관 자료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자료, 시민 성명서, 필름, 피해자 병원 치료기록, 국가 보상 자료 등 5·18 전개 과정과 흐름을 보여 주는 방대한 자료를 유네스코에 제출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홍세현 5·18등재추진위 연구위원은 “관련 기록들은 광주시청에 상당 부분이 있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다.”면서 “공공기록물 관련 법률에 따라 각자 관리할 것으로 보지만 5·18 아카이브를 구성하면서 한 곳으로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성록 - 한 질만 편찬된 유일본 이와 함께 유네스코 IAC가 등재 권고 결정을 내린 일성록(국보 153호)의 의미 또한 크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 이어 일기체로 쓰인 조선왕조와 관련된 기록이 모두 세계기록유산이 된 셈이다. 일성록은 조선 후기 정조를 비롯한 국왕의 동정과 국정의 제반 운영사항을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 자료로서 1760년(영조 36) 이후 1910년(융희 4)까지 151년치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질만 편찬된 유일본이자 필사본으로, 총 2329책 전체가 온전하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보관 중이다. 정조가 세손 시절에 쓰기 시작한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에 뿌리를 둔 일성록은 정조 즉위 이후에는 국가의 공식기록으로 편입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론] 서울의 역사는 왜 2000년 인가/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시론] 서울의 역사는 왜 2000년 인가/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많은 시민들이 서울을 한성백제 500년과 조선왕조 500년을 합친 1000년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있다. 앞의 두 시기 외에 서울은 분명히 수도가 아니었는데 왜 2000년 역사라고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서울역사 2000년의 제1단계는 백제의 한성시대(BC18~475)였다. 백제는 21명의 왕이 존재하면서 한강유역의 유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 3국 중 가장 먼저 고대 국가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조건을 기반으로 근초고왕(346~375)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패사시켰으며, 요서지방에 진출하여 역사상 첫번째 해외진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백제는 475년 서울을 웅진(공주)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한성 정벌은 고국원왕의 보복을 앞세웠지만, 한강유역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백제는 수도를 남으로 옮겼지만, 한강유역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고 신라와 협조하여 한강유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신라의 법흥왕과 진흥왕은 백제와의 군사협력을 파기하고 단독으로 한강 북부를 장악한다. 여기서 서울 2000년 역사의 제2단계가 시작된다. 한강유역은 한반도의 허리로서 지리적 환경이나 서해로 향한 관문이 되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어서 “오래 지닌 자는 번성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지만, 이를 잃는 쪽은 쇠약 혹은 패멸한다.”는 이병도 박사의 지적을 떠올릴 수 있다. 한강유역의 확보로 신라는 3국 중 최강국임을 과시할 수 있었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신라가 이 일대에 설치한 한주(한산주)는 통일신라의 정치 안정과 문화 개발에 바탕이 되었다. 더구나 826년(경덕왕 18) 황해도 남부일대(금천~재령 남부)에 장성까지 쌓았다. 북방진출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하나로 묶어 경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서울역사 2000년의 제3단계는 고려시대의 500년간(918~1392)이다. 신라 말부터 한반도에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호족들이 난립하였고, 변경변혁설의 시각에서 서울 북방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었다. 성종 2년(982)의 12목에는 황해도 지역의 황주와 해주, 한강 북부의 양주와 광주가 포함되었으며, 현종 9년(1018)의 5도 양계에는 독자적으로 한강유역에 양광도가 설치되면서 점차 비중이 커졌다. 현종 2년(1011)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 함락을 경험한 고려는 예성강과 임진강을 넘어선 서울지역(양주)을 제2의 수도로 생각했다. 서울지역 남경론은 숙종 1년(1096)에 김위제(金謂磾)의 ‘남경천도론’으로 나타났다. 그는 왕에게 “건국 후 160여년에 목멱벌(남경)에 도읍한다.”는 도선의 비기를 설명하였다. 특히 개경·서경·남경의 3경을 저울로 비교하여 개경은 저울대(衡), 서경은 저울의 접시(極器)이지만, 남경은 저울추(錘:머리)가 된다고 했다. 서울지역은 탁월한 자연환경 외에 북으로 예성강과 임진강의 보호를 받는 군사적 위치, 육상 및 해상의 호조건, 그리고 경제적 여건이 컸기 때문에 숙종의 남경 궁궐 조성(1104) 이후 충렬왕의 한양부 개칭(1304)이나 공민왕의 한양천도론(1356)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서울지역은 단순히 수도 개경에 보완적인 명칭상의 제2수도가 아니었다. 정치·경제·군사·통상으로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남경 없는 개경은 있을 수 없었다.  제4단계는 조선시대 500년과 그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을 말한다. 한양은 조선왕조 시절 완비된 체제와 시설로 수도로서의 위상을 마련하였으며, 일제시대에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4·19와 5·16은 물론 한강의 기적과 88올림픽, 그리고 오늘날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기까지 서울은 한국의 상징으로 역사적 전통을 이어왔다.
  • 종교유적 관광상품 개발 바람

    종교유적 관광상품 개발 바람

    지방자치단체들이 종교문화 체험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농촌체험 등 생태와 녹색을 테마로 관광상품을 개발하던 지자체들이 종교로까지 눈을 돌린 것이다. ●충북, 종교체험관광지 충북도는 천주교와 손을 잡고 국비 등을 지원받아 진천군 백곡면 ‘배티 성지’와 음성군 감곡면 ‘매괴성당’을 종교체험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배티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터와 천주교 순교자 무덤이 있는 도지정 문화재로, 한국 가톨릭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도는 내년부터 5년간 총 250억원을 투입해 이곳에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할 수 있는 피정센터, 순교박해박물관, 둘레길, 각종 편의시설 등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충북도 문화예술과 조경순씨는 “천주교가 자체적으로 배티 성지 활성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배티 성지는 종교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며 “순례성지의 국제적인 명소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충북도는 또 2014년까지 30억원을 투입해 매괴성당 일원에 체류형 주거시설 12곳, 팔각정 등 휴게시설, 교육관 등을 건립하기로 했다. 매괴성당을 잠깐 보고 가는 곳에서 하루 이상을 묵었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매괴성당은 1896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해마다 20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 ●충남, 템플스테이 플러스 원 충남도는 지난해 시작된 ‘템플스테이 플러스 원’을 대표 관광상품으로 키우기로 했다. 이 상품은 사찰 체험을 하면서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7300여명이 참여했다. 아울러 늘고 있는 전통사찰 체험객들을 잡기 위해 차별화된 템플스테이를 만들고 있다. 충남도는 올해 1억원을 투입, 도내 8개 사찰과 함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보강하고 관광명소와 연계된 상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도는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와 조선시대 말 천주교신자 3000여명이 처형된 서산 해미읍성, 1866년 병인박해 때 안토니오 주교 등이 순교한 보령 갈매못성지 등 주요 천주교유적지를 인근 관광지와 묶어 관광 코스로 개발 중이다. 논산시는 강경읍 소재 개신교 유적지 5곳과 천주교 유적지 1곳을 인근 문화유적지와 연계된 1박 2일 코스의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만들고 있다. ●관광자원 활용가치 커 지자체들이 종교자원에 관심을 갖는 것은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가 있어서다. 외지인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 종교 유적지에 시설을 확충하고 차별화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조금만 투자하면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부 종무2담당관실 안승섭 사무관은 “정부가 특정 종교 유적지의 관광상품화를 지시할 수는 없지만 지자체가 해당 종교와 협의해 수립한 계획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열린세상] 되살아난 풍류의 길/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열린세상] 되살아난 풍류의 길/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지난달 전통문화계에 참신한 ‘풍류의 물결’이 일었다. 진원지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에서 진행된 춤강좌 ‘풍류와 화류 사이의 인문학’과 문화답사 ‘풍류로드’였다. 이 둘은 ‘따로 또 같이’ 이뤄졌다. ‘풍류와 화류 사이의 인문학’은 4월 ‘공연 같은 강좌, 강좌 같은 공연’이란 부제를 달고 한국문화의집 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풍류와 화류 사이의 인문학’이란 이름에 끌려서인지, 자칭 ‘난장 최고의 입담’이라는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이 직접 쓴 ‘전날의 전설을 접고 깊이 숨은 초야의 명인들, 그 혁혁한 무공(舞功)을 찾아 나선 최고의 무용담’ ‘춤의 뼈 새겨내는 가공할 언어의 액션’이란 카피에 혹해서인지 수강생이 몰렸다. 전주와 강릉 등 각 지역 춤꾼들이 찾아들었다. 출판인도, 고음반 수집가도 발품을 팔았다. 교수도, 시인도, 금융인도 경청하며 ‘눈춤’을 췄다.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도 몇 좌석을 메웠다. 강좌는 지난달 매주 월요일 4회에 걸쳐 이어졌다. 춤의 노름마치를 찾아서-춤판·탈판·굿판·소리판을 전전하며 기생·광대·한량을 만나 고수 중의 고수를 찾는 자전적 춤 이야기. 풍류 사내들의 춤 이력과 이면사 등 우리 춤꾼에 대한 이야기가 좌중을 휘어잡았다. 추임새가 여기저기에서 피어났다. 어깨가 들썩거렸고 무릎장단이 즉흥으로 나왔다. 흥이 절로 났고 흥은 결이 되어 풍류가 일었다. 이 분위기는 제2탄 ‘풍류로드’로 이어졌다. 강연장(공연장)에서 보고 들었던 예인들의 자취와 흔적을 만나러 가는 나들이 길이었다. 4월 16~17일 1박2일 일정에 60명이 나섰다. 우리 문화계에서 처음 시도된, 전통예인의 자취를 찾아가는 무형문화유산 답사였다. 답사 길의 징검돌은 예인의 자취와 흔적만이 아니었다. 예인들이 풀어 놓은 즉석의 소리, 춤사위, 장구 장단이 징검돌로 얹어지며 감동을 더했다. 행선지는 ‘바람 같고 구름 같은 풍류객의 모임 터’였던 충남 내포 땅과 전북 군산 소화권번(예기 관리사무소), 조선시대부터 시인 묵객과 소리꾼들이 넘나들었던 전남 담양 지실초당이었다. 내포 땅 서산에선 풍류음악과 가야금 병창의 명인 심정순(1873~1937) 일가의 예술혼에 젖어 심화영의 중고제 판소리 ‘쑥대머리’를 축음기로 듣고 그의 승무를 외손녀 이애리의 춤사위로 현장에서 맛봤다. 심정순 일가는 가야금 명인 명창인 아들 심재덕(1899~1967), 충남도 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이자 명창인 딸 심화영(1923~2009)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가수 심수봉은 심재덕의 딸이다. 한국 춤의 전설 한성준의 생가 터가 있는 홍성에선 이 지역 결성농요 보유자(충남무형문화재 보유자 20호)들이 농요를 직접 부르며 답사객 60명을 ‘풍류객’으로 맞아 잔치를 벌였다. 답사 길은 일제 강점기 소화권번이 있던 군산으로 이어져 예기들의 무대였던 요릿집 명월관·은정 터, 일본인 히로스가 살았던 가옥으로 옮겼다. 그 사이 젊은 소리꾼이 고수도 없이 부채 하나로 장단을 잡으며 즉석 무대를 꾸몄다. ‘풍류와 화류’ 사이를 오갔던 소화권번에서 소리와 춤을 익힌 민살풀이춤 명인 장금도(83) 선생도 젊은 풍류객들의 장구와 가야금·해금·대금 장단에 맞춰 민살풀이춤과 육자배기 한 자락을 풀어냈다. 조선 후기 호남지방 시인 묵객 송강 정철, 하서 김인후, 소쇄공 양산보와 근·현대 소리꾼 명창 박동실·김소희·임춘앵·한승호 등이 머물던 한국 최고의 정원 담양 소쇄원과 지실초당, 호남우도농악의 산실 담양 봉산에서 4월의 ‘풍류의 물결’은 갈무리되었다. 한 시대 예술의 양식을 열고 전승했던 풍류객과 후손은 세월의 무게에 시나브로 휩쓸려 간데없고 그 삶의 길목엔 외로운 혼만 떠돌지만 그날 답사 길은 지친 일상의 생채기를 치유하는 ‘꿈길’이었다. 각색된 공연이 아니라 즉흥의 난장 예술이 펼쳐진 길, 출연자의 겉모습이 아니라 평생 숨어 살던 예인의 가슴이 아련해지는 길, 예인의 숨결을 껍데기만 둘러보는 게 아니라 속살을 만져 본 풍류의 길이었다. 이처럼 우리 전통예술(인)의 속살을 살려내고 드러내 보이며 바쁜 일상을 어루만지는 예술의 방식이 우리의 구체적 삶 속으로 찾아든다면 그게 바로 이 시대의 풍류 아닐까.
  • ‘심청전’ 300년 역사가 한눈에

    ‘심청전’ 300년 역사가 한눈에

    효녀 심청 이야기를 레퍼토리 공연화한 국립창극단의 ‘청’(淸) 공연장에 들어서면 특이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17~20세기에 이르는 ‘심청전’ 책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 공연도 보고 300년에 걸친 ‘심청전’에서 ‘청’에 이르는 과정까지 함께 감상해 보라는 취지다. 전시는 박순호(69) 원광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민속학자인 박 교수는 1만권의 도서를 소장한 고전소설 수집가. 심청전의 경우 시대별 판본 형식으로 150여종의 도서를 수집해뒀다. 특히 2009년에는 박 명예교수가 보유하고 있는 심청전 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인쇄할 때 쓰던 목판을 복원해 내기도 했다. 때문에 손으로 일일이 베껴써야 했던 필사본, 목판인쇄를 통해 대량으로 찍어냈던 방각본(坊刻本), 근대에 접어들면서 수입된 활판인쇄술로 찍어낸 딱지본 등 다양한 판본으로 심청전을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여염집에서도 널리 읽혔던 대표적인 소설”이라면서 “그런 소설을 시대별로 한데 모아둔 것이어서 한글 서체의 시대적 변화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각본의 경우 당대 목판까지 갖춰 놓았다. 덕분에 2000원을 내면 옛 표지를 한장 찍어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다. 극단 미추의 마당극 ‘심청’을 비롯해 국립창극단의 ‘심청’,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 영상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1965년 국립국극단의 ‘심청’에서부터 시작되는 공연 포스터도 갖춰 뒀다. 공연은 28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전시는 공연 기간 동안 이뤄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선백자 7대째 굽는 장인을 만나다

    조선백자 7대째 굽는 장인을 만나다

    16~17일 이틀에 걸쳐 오후 10시 40분에 방영되는 EBS ‘직업의 세계’는 조선백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김정옥(70)씨 얘기를 다룬다. 김씨는 전통을 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독일 동아시아국립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에도 작품이 소장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장인 중의 장인이다. 김씨의 이런 활동은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집안 자체가 전통 도예가라서 230년 전통을 7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18살에 도예의 길로 접어든 김씨는 전통작업 방식을 고스란히 지킨다. 흙을 구할 때 직접 다니고 물에 걸러낸 흙을 발로 밟아 반죽하는 데도 당연히 직접 나선다. 전기물레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발 물레를 고수한다. 유약 역시 제조에서 배합까지 모두 전통방식을 따른다. 도자기를 구울 때도 전통가마인 ‘망댕이 가마’를 사용한다. 땔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직접 고른 소나무를 5년간 정성껏 말린 뒤에 땔감으로 쓴다. 그래야만 제 맛이 난다고 철썩같이 믿기 때문이다. 이런 김씨의 작업은 이웃 일본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 일본 다도인들은 김정옥의 작품을 얻지 못해 안달이다. 이유는 정호다완(井戶茶碗) 때문이다. 정호다완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쓰던 생활도구인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국보로 지정된 찻잔이다. 일본인들은 왜 정호다완에 미쳐 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투박하면서도 새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살구색이어서 눈에 피로를 주지 않고, 입에 닿으면 찻잔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등 차 그 자체에 안성맞춤인 찻잔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정호다완을 전통기법 그대로 재현해 내는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김씨는 전통이라 해서 감춰두고 그러지 않는다. 1년에 한번씩 작업장을 공개한다. 도예에 관심있는 전공자나 전문가들뿐 아니라 국내외 일반인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작업 과정 전체를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옛 도청 수문병 교대식 구경오세요”

    ‘경상감영’의 풍속이 재연된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 현재의 도청 격이다. 경북 상주에서 선조 34년인 1601년 대구로 이전했고, 이후 1910년까지 310년간 모두 253명의 관찰사가 근무했다. 대구시는 14일부터 10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중구 경상감영공원에서 경상감영 풍속 재연행사를 선보인다고 13일 밝혔다. 감영 정문 군사를 교대하는 수문병 교대의식을 비롯해 시각을 알리는 경점시보 의식, 감영 안팎을 순찰하는 순라군 활동, 군사들의 무예를 사열하던 교열의식 등이 펼쳐진다. 특히 수문병 교대의식에선 감영 군사와 취타대가 경상감영공원을 출발, 도심 동성로 일대를 한 바퀴 돈 뒤 정문으로 돌아와 의식을 마무리한다. 지역 명창의 판소리와 고전무용이 어우러진 민속 공연과 전통의상 입기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코너도 준비됐다. 또 월별로 성년식과 전통혼례, 과거제 재연 등 특색 있는 행사도 마련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관광객과 시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밀양서 조선시대 영남대로 흔적 ‘처자교’ 발굴

    밀양서 조선시대 영남대로 흔적 ‘처자교’ 발굴

    13일 4대강 살리기 사업 현장인 낙동강 12공구 지역인 경남 밀양시 삼랑진 검세리에서 조선시대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의 중요한 흔적인 일명 ‘처자교’(處子橋)가 발굴됐다. 이 다리는 지난해 7월 삼랑진청년회가 “이 지역에 다리가 존재한다.”며 시공 회사와 시청에 민원을 제기해 현장 조사를 벌인 끝에 발견됐다. 지난해 10월 한국문물연구원의 입회조사에서 처자교 유구를 확인한 데 이어 3월 28일부터 정밀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발굴된 처자교는 낙동강으로 흐르는 지천 위에 쌍무지개 형태로 세워진 석조 다리로 규모는 폭 4.5m, 길이 26m다. 1530년 조선 성종 때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 여러 역사문헌에 기록돼 있으며 1690년 9월 중수한 기록이 있다.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왕의 명령이 지방으로 하달되고 행정문서가 오가던 영남대로는 이른바 ‘왕의 길’로 지방에서 이런 수준의 다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는 정밀 발굴작업을 마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 및 지방문화재 지정을 검토하고, 발굴된 교량의 복원 및 이전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밀양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웃어라 동해야‘ 최윤소 팜므파탈 자객 변신

    ‘웃어라 동해야‘ 최윤소 팜므파탈 자객 변신

    13일 막을 내린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의 부주방장 최윤소가 화려하고 섹시한 기생자객으로 변신한다. 최윤소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 후속으로 방영될 SBS 월화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 기생을 가장한 팜므파탈 자객 ‘구향’ 역에 캐스팅됐다. ‘무사 백동수‘는 조선시대 협객 백동수의 이야기를 다룬 퓨전 무협 사극으로 최윤소가 맡은 ‘구향’은 아홉가지 신비로운 향기를 가졌다하여 붙여진 별명. 기생으로 활동하지만 실은 흑사초롱의 자객으로 시와 가무에 능통한 미색이다. 최윤소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사극에 처음 도전, 화려한 액션과 함께 기생으로서의 매력도 한껏 선보일 예정이다. ‘무사 백동수‘의 한 관계자는 “최윤소는 화려한 이목구비, 우월한 신체조건과 함께 정의감이 깃들여진 깊은 눈매를 가졌다. 기생으로서의 화려함과 아홉가지의 매력을 고루 갖춘 신비로운 자객 ‘구향’역에 더없이 알맞은 캐스팅이었다” 며 발탁 배경을 밝혔다. 한편 최윤소는 패션 프로그램 엘르 엣티비(ELLE atTV)의 MC로도 활약하는 등 데뷔 이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세상살이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는 만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세월 따라 빠르게 변하는 사람살이가 있는가 하면, 예나 제나 제 모습을 잃지 않는 자연이 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사람이 있다. 대개 10년쯤이면 사람이 살던 집의 풍경이 바뀌거나 그 안에 살던 사람이 달라진다. 그러나 수백 년을 꼼짝 않고 살아온 나무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 무상한 변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은 제 살림을 꾸려간다. 혹시 사람살이를 풍요롭게 도와주는 나무라면 그의 깊은 나뭇결에 동화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살가운 감동이 담기기도 한다. “이 나무 앞에서 태어나고 자랐지요. 시집 가서 잠깐 동안 재 너머 마을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오십 년 넘게 저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거나 다름없어요. 그동안 나무는 많이 컸겠지만, 내가 보기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큰 나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의 아름다운 산골마을 운교리. 지방도로변 한적한 식당 ‘들림집’의 주인 최정자(54)씨는 밤나무 쪽으로 창문이 난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때 ‘밤나무집’으로 더 잘 알려졌던 이 집은 마방(馬房)이었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운교역창(雲橋驛倉)이 있었다. 당시 최씨의 집은 말을 이끌고 지나던 상인이나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 가는 주막이자 말들이 쉬는 곳이었다. 집의 뒷동산에 우뚝 서 있는 밤나무는 생김새만으로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크고 우아한 자태로 자란 나무여서, 한눈에도 오래 보존해야 할 자연문화재로 여겨지는 나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밤나무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식당 집 뒷동산 밤나무’로만 이야기했다. 십년 전 처음 이 나무를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나무 곁에는 최씨 내외가 버섯을 키우기 위해 쌓아둔 원목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고, 나무 뿌리 부분은 비좁은 돌 축대로 갑갑하게 막혀 있었다. 나름대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오히려 나무의 생육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이 밤나무가 차츰 세상에 알려지면서 마침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2008년 겨울이다. 우리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라는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최근 나무 뿌리를 답답하게 하던 돌축대를 허물고, 땅을 고른 뒤,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천연기념물로서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최씨는 가문의 자랑인 나무를 나라에서 잘 지켜 주게 돼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영명자’라고 알려진 나무 운교리 밤나무의 키는 14m가 넘고, 뿌리 부분에서 잰 밑동의 둘레는 6m가 넘는다. 키나 줄기보다 굉장한 것은 사방으로 넓게 펼친 가지들이다. 동서로는 25m를 훌쩍 넘었고, 동산의 경사면을 타고 있는 남북 방향으로는 20m를 넘었다. 이 정도면 나라 안의 밤나무 가운데 운교리 밤나무의 규모와 견줄 나무가 없다. 밤나무는 감나무만큼 우리네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나무 자체를 보기 위해 키우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와는 다르다. 대개의 경우 밤나무는 오로지 열매를 얻기 위해 키운다. “그네를 세 개씩이나 맸어요. 어린 아이들 타기 좋게 낮은 가지에 하나를 매고, 다른 두 개는 좀 커서 어른들이 뛸 수 있는 그네를 맸지요. 사철 내내 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밤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지에 그네를 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밤송이의 가시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들기 어려워서다.최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같은 크기와 나이의 밤나무가 네 그루나 더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큰 나무였는데, 밤 송이가 바닥에 깔리면 옆의 밭에서 일하기가 어려워 다른 나무들은 모두 베어내고 그 중 가장 잘 생긴 지금의 나무 한 그루만 남겨 놓았다고 한다. “밤송이가 무성하게 달리는 가을에도 사람들이 모였지요. 밤이 많이 열려서 식구들이 필요한 만큼 먹어도 넉넉하게 남아서, 집안 어른들은 아무나 주워 가도록 했어요.” 세종실록지리지에 평창을 밤의 특산지로 기록했을 만큼 인근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질 좋은 밤을 생산하기로 유명했다. 밤골, 밤고개라는 땅이름이 남아 있는 것도 이를 증거한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운교리 밤나무는 맛 좋은 밤을 맺는 나무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영명자’(榮鳴玆)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이 나무를 부른 것은 조선시대 때 마방이 있던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이름 난 밤나무인 만큼 찾아오는 손님은 사람뿐이 아니다. 그 중에 가장 부지런한 건 청설모다. 밤이 맺힐 즈음이면, 이른 아침부터 나무를 찾아와 찍찍거리는 청설모 소리에 잠이 깰 지경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변치 말아야 할 자연 문화재 사람들의 뜻에 맞춰 열매를 많이 맺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밤나무는 생장 에너지를 일찍 소진해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대개의 다른 유실수와 마찬가지 이치다. 하지만 운교리 밤나무는 3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밤나무다. “우리 나무가 오래도록 잘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돌보기에는 너무 크고 좋은 나무잖아요. 또 내 집이 앞을 가려서 나무 풍경을 해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무를 더 잘 보이게 하고, 잘 보존할 수만 있다면 평생 살아온 집이지만 내놓을 수 있어요. 나는 이 마을을 못 떠나요.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밤나무가 바라다보이는 이 근처로 옮겨 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살 겁니다.” 최정자씨의 이야기에는 태어나서 50년 동안 스스로의 삶을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가 변함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담겼다. 오래도록 변하지 말아야 할 나무를 위해 필경 또 다른 변화를 거치게 마련인 사람이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앞에 살아온 ‘아낌없이 주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지혜다. 글 사진 평창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36-2. 영동고속국도의 새말나들목으로 나가서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6㎞를 조금 더 가면 안흥 면사무소와 찐빵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1㎞ 남짓 가면 안흥초등학교 앞의 삼거리에 닿는다. 평창 방면으로 가는 오른쪽의 산길을 타고 16㎞쯤 가야 평창 운교리에 이른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한적한 산길 도로 왼편으로 ‘들림집’이라는 식당이 나온다. 나무는 식당 뒷동산에 있다.
  • 사찰 음식에서 만나보는 자연의 맛

    사찰 음식에서 만나보는 자연의 맛

    웰빙이란 옷을 입고 세상의 이목을 끈 대표적인 건강식이 사찰 음식이다.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찰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생기거나 직접 조리법을 배워 가정식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왜 우리는 사찰 음식에 주목하게 된 걸까. 12일 오후 7시 30분에 방영되는 KBS 1TV의 ‘한국인의 밥상’에선 절집 공양간이 전하는 ‘제대로 먹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자연에서 얻은 담백한 재료에 정성을 얹어 진정한 ‘맛’을 만드는 과정을 전한다. 스님들의 식사법인 ‘발우공양’은 묵언(默言)으로 진행된다. 가사 장삼을 걸친 비구니 스님 200여 명의 경건함 속에 진행되는 발우공양은 음식 재료를 길러낸 자연과 그것이 입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거쳤을 수많은 사람의 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하지 않게 먹는 식사법을 일컫는다. 이제야 싹이 오르기 시작한 채마밭에서 먹을거리를 얻지 못할 때 스님들은 산으로 간다. 5월, 지천으로 널린 쑥은 스님들에게 좋은 음식 재료가 된다. 쑥 채취부터 이를 씻고 삶아 내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는 최고의 음식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자연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는 운문사의 별식 밥상을 만나본다. 귀족 불교였던 고려를 벗어나 조선시대로 오면서 서민과 밀착하게 된 불교는 절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들을 민가에 자연스레 알리게 된다. 그중 하나가 ‘장아찌’다. 수도사 적문 스님을 통해 만나보는 사찰 장아찌. 사시사철 담가 먹었던 사찰 장아찌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사찰 음식을 판다고 해서 기본 정신을 버리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입니다.”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과 간편한 식사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이끄는 곳은 다름 아닌 사찰 음식 전문점이다. 맛과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식사를 하면서 잠깐의 휴식도 즐길 수 있다. 사찰 음식에 기본을 두고 차려 내는 소박한 밥상을 만나본다. 행자는 6개월에서 1년을 지내야 스님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기간에 행자들은 밥 짓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인다. 음식 재료를 가꾸고 채취하는 것 또한 일인 만큼 공양간이 수행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찰 음식은 이처럼 스님에서 행자로 대물림하며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행자들이 차려 내는 밥상에는 어떤 맛이 담겨 있을까?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조선통신사 축제 부산서 개막

    조선통신사 축제 부산서 개막

    조선시대 한·일 문화 교류의 역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2011 조선 통신사 축제’가 5일 부산 용두산공원 일대와 영가대 등에서 막을 올린다. 오는 8일까지 나흘간. 올해는 마지막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온 지 200년이 되는 해라 행사를 하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1607부터 1811년까지 조선의 통신사 행렬은 열두 차례에 걸쳐 한양(현 서울)에서 에도(현 도쿄)까지 가는 기나긴 여정을 왕복했다. 부산은 조선통신사 행렬이 일본으로 향하기 전, 일본의 마중을 받고 해신제 등 출항 준비를 마무리하는 대일 외교의 ‘최전선’이었다.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올해 축제는 5일 조선통신사 광장 행사를 시작으로 한·일 뮤직 페스티벌, 국제 학술 심포지엄, 해신제, 2011 조선 통신사 퍼레이드 등으로 구성됐다. 광장 특설무대에서는 부산 문화 예술계 명사와 일본 조선 통신사 관계자의 애장품을 모아 진행되는 ‘조선 통신사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기부’ 경매 행사도 열린다. 수익금은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사용된다. 오후 7시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한 한·일 음악가 7개 팀이 출연하는 한·일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조선 통신사 퍼레이드는 7일 오후 3시부터 용두산공원에서 출발해 광복로 입구까지 펼쳐질 계획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성북 아리랑 축제’ 개막

    ‘성북 아리랑 축제’ 개막

    성북구가 2일 조선시대 때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며 왕비가 집전했던 선잠제향(先蠶祭享)을 재현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2011 성북 아리랑 축제’에 들어갔다. 선잠은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신(神)이고, 제향은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날 선잠제향에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선잠단지에 이르는 약 800m 구간에서 취타대가 함께하는 왕비와 공주의 웅장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2011 성북아리랑축제는 이날 선잠제향 외에 ▲3일 성북구민의 날 기념식과 책 읽는 도시 선포식, 구민 체육대회 및 장기자랑(월곡 인조잔디축구장) ▲4일부터 28일까지 북페스티벌(지역 도서관) ▲11일부터 6월 3일까지 찾아가는 예술무대 행복공감(구청 잔디마당, 성북천 바람마당 등) ▲22일 제4회 성북다문화음식축제(성북동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한 달여간 계속된다. 920-304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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