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시대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전쟁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선거관리위원회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도서(책)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폭력조직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24
  •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최근 잠시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조랑말은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춤을 췄다. 가수 싸이의 말춤이다. 전 세계가 삽시간에 ‘코리아표’ 조랑말에 흥분했다. 역사상 말로 세계를 지배한 칭기즈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반도에서 시작된 말춤에 세계인들이 열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마민족의 유전자가 확 폭발하며 빛을 낸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마전술과 사냥술을 갖고 있다. 그 원류는 고구려의 기마술이다. 특히 호랑이를 잡는 기마 사냥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상상할 수 없는 문화였다. 고분벽화 속의 수렵도에 고스란히 그 흔적이 그려져 있다. ●기마민족 아니었으면 싸이 말춤 성공했겠나 고성규(54)씨는 고구려 기마무예를 20년째 홀로 외롭게 연구하고 있다. 수렵도에 그려진 기마술에 반해 몰두했다. 본인이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창을 던지는 무예까지 스스로 터득했다. 그냥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중심을 잡기 힘든데 그는 전사, 측사, 후사 등 각 방면으로 고난도의 활쏘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마무예는 물론 말에 대한 이론도 척척박사다. 아시아·유럽 등 세계 각국의 말을 직접 사 들여와 키우며 연구한 결과다. 지난달 27일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집 입구에는 ‘마구간’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잘생긴 하얀 말이 낯선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히힝” 인사를 한다. 고씨가 마구간을 안내하면서 말을 일일이 소개한다. 말들이 저마다 표정을 지었기에 마치 말과 인터뷰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안, 미국의 아메리칸 포니 등은 연구용으로 수입해 왔다. 그 뒤를 이어 몽골 말, 내몽골 말, 러시아 아무르강 출신 말, 한라말. 일송정 해란강의 만주 말, 호주 말, 네덜란드 말 등 출신 성분도 다양하다. 모두 23마리를 소개받았다. “칭기즈칸이 유럽까지 원정 가서 싹쓸이하다시피 이긴 까닭을 아시나요. 그건 바로 몽골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덩치는 유럽 말에 비해 작지만 거친 땅에서 자라 공격성이 강하고 아주 민첩하지요. 회전력이 유럽 말에 비해 2~3배 더 빠릅니다. 일제 때 일본 경찰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호주 말을 타고 왔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조랑말보다 몸집이 더 큰 말을 사용하면서 심리적 공포를 주기 위해 칼까지 차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날쌘 조랑말을 길들여 풀어놨더라면 호주 말들을 모두 쓰러뜨려 역사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20년째 수렵도 속 활쏘기 등 무예 독학 조랑말은 우리의 전통 말인 과하마(果下馬)와 몽골 말의 교배로 태어난 말로 발 뒤차기가 정교하고 민첩한 특징을 지녔다고 고씨는 설명한다. 과하마는 키가 작아 말을 타고서도 능히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구려와 동예의 특산물이었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朱蒙)이 타고 다니면서 전승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는 이 같은 사실에 흥미를 느껴 고구려 벽화 속 수렵도를 연구하는 한편 직접 말을 키워 여러 실험을 통해 활쏘기와 창던지기 등의 무예를 익혔다. “수천년 전 고구려의 마사희(馬射戱)라고 하는 살벌한 마상궁술도 ‘희롱할 희(戱)’를 쓸 만큼 ‘놀이’로 즐겼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 말을 타고 격구(擊毬) 놀이로 이어졌지요. 또한 윷놀이의 말판도 말을 타고 다니는 형태로 볼 때 우리 민족은 달리고 싶은 욕구를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던 ‘말뚝박기’, 학창 시절 운동회 때의 ‘기마전’도 그런 것이고요. 아이들이 태어나면 걸음마를 할 때까지 목말을 태우고 다니듯 알게 모르게 우린 끝없이 말을 타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고씨는 “왜 우리 민족에게 ‘빨리빨리’의 습성이 생겼는지 아느냐”고 반문한다. 설명이 그럴듯하다. 말은 속도를 대변하는 동물이며 말을 타고 광활한 북방 대륙을 누비던 우리 민족이 말에서 내려 좁은 한반도에 유배를 당해 살다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빨리빨리’ 서두르게 됐으며 끝장을 빨리 봐야 하는 민족이 됐다는 것이다. 또 반문한다. 싸이의 말춤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나라가 어디인 줄 아느냐고 했다. 그것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호주, 몽골, 브라질 등 말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들이라고 했다. 싸이의 말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유치한 안무 트렌드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신성한 동물인 말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싸이가 각 나라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 우리나라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홍보했더라면 효과가 아주 좋았을 것이란 거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기마문화 콘텐츠를 살려 전통 가치를 계속 유지, 상승시키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기운을 말에게 불어넣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여기에 있는 말 중 절반 이상은 제 손으로 직접 받고 키워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다 낙마 사고도 많이 당했습니다. 말과 함께 넘어지거나 밟혀 골절상 등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요. 어느 말이 마상무예에 적합한지 일일이 교육을 시켜 봐야 하거든요. 서양 말은 긴 창을 이용하기 편하고 동양 말은 활과 창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런 훈련과 함께 2002년 7월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을 시작으로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제주~임진각),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 충무공 탄신제 마상무예 격구 시연, 서울 하이 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런 활동들을 통해 기마문화의 우수성을 꾸준히 선보였다. 또한 2011년 주한외교사절단(대사 부부) 50여명을 초청해 고구려 기마무예의 세계화를 위한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구려 기마 사냥에 쓰였던 활의 크기는 80㎝ 정도였고, 말의 키는 130~150㎝로 작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투마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쌨습니다. 고구려 말처럼 작은 말은 이미 13세기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고구려는 4~6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마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 기마문화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최고의 마필 조교술과 사냥술을 가지고 있었지요.” ●초등 4학년 때부터 승마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 말에 대한 역사, 장점, 고구려의 마상무예 등의 얘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말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짐수레를 끌고 다니는 말을 처음 접했다. ‘언젠가는 저 말을 꼭 타봐야지’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해 대관령 목장에서 말을 타고 실습을 했다. 축산고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라고 만든 학교였다. 어쨌거나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 보니 말의 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에 대한 자랑을 다시 늘어놓는다. “비너스 같은 몸매와 역동적인 근육, 탄력적인 엉덩이 곡선 등 말은 어느 동물과도 비교되지 않는 신이 내린 몸매를 자랑하지요. 남녀노소, 낙마의 공포감만 없다면 누구나 타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뿐인가요. 인류를 위해 가장 희생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전장에서 죽은 주인과 함께 순장하기도 했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이 고주몽의 58대손이라고 한다. 다시 그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시절이었다. 신문에서 승마를 대중화한다는 기사를 보고 주말마다 파주, 원당, 일산, 포천 등 승마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말 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10번 정도 타면 되는 줄 알았더니 100번 이상은 타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무렵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당시 부인은 서울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승마를 함께 배우자는 말에 부인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말 타는 법을 익혔다. 부인은 경희대에서 승마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고씨도 그동안 여러 개의 타이틀을 땄다. 대한청년기마대장을 비롯해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경기도승마연합회 부회장,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고구려기마보존협회 회장 등이 그것들이다. ●고궁에서 마상무예 하는 그날을 꿈꿔요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버킹엄궁전 앞에서 기마대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우리도 광화문 앞에서 고구려 기마문화를 재현하면 외국인들이 많이 오게 돼 있어요. 문화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계속 유지하면 돼요. 창경궁에서 마상무예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일본은 원래 말이 없었는데도 말을 동원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TV 사극을 보세요. 전부 서양 말을 타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고구려 기마무예로 인간문화재로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동안 이렇게 솔직한 얘기를 자주 해 왔으리라. 마구간의 말에게 간다. 무슨 말을 하는지 상상하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마상무예 앞장서는 고성규씨는 >>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축산고 재학 시절 대관령 목장에서 실습을 하면서 말에 매력을 느꼈다. 고교 졸업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신문에 난 ‘승마 대중화’ 기사를 보고 본격적으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무용총 수렵도를 보고 고구려 기마무예를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20년째다.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2002년),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2002년),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2002년), 서울하이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2005년),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2005년), 월드컵 4강 진출 및 토고전 승리 기원(2006년), 미8군 제2사단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공연(2007년), 서울 중구 충무공 이순신 탄신제 마상 퍼레이드(2008년), 일본 대사관 앞 독도영유권 주장 규탄대회 기마무예소년단 총감독(2008년), 주한 외교사절 대사 부부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세계화추진 공연(2011년) 등의 활동을 펼쳤다. 2012년에는 국무총리표창을 받았고 대한민국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 제주유채꽃 보러 옵서예~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오는 12, 13일 조랑말체험공원 일대에서 제주유채꽃큰잔치를 벌인다고 8일 밝혔다. 가시리는 유채꽃밭, 오름능선, 대평원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한라산 중산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마을로, 10㎞에 이어지는 녹산로 유채꽃길은 최고의 봄 드라이브 명소로 손꼽힌다. 축제 첫날인 12일에는 자치경찰 기마대, 가시리 타악팀,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등이 참여하는 개막 초청 공연과 가시리밴드, 제주필하모닉 색소폰오케스트라 등이 출연하는 유채꽃 음악회가 열린다. 13일에는 조선시대 최대의 말 생산 목장이었던 갑마장길 걷기 대회가 열린다. 유채꽃 사진전, 유채 상품과 유채 관련 시화전 등의 상설 전시 행사와 승마 체험, 유채꽃 마차 타기, 유채기름 짜기, 유채쿠키 만들기, 유채꽃 판화 찍기, 유채 염색 체험, 유채꽃 타일 그림 그리기 등의 관광객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지역 농특산물 및 생활예술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유채꽃 장터와 먹을거리 장터도 운영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청춘학당 배슬기, 49살 나이차이 신성일과 베드신 찍고 하는 말이..’대반전’

    청춘학당 배슬기, 49살 나이차이 신성일과 베드신 찍고 하는 말이..’대반전’

    ‘청춘학당 배슬기’ 배우 배슬기가 신성일과 호흡을 맞춘 영화 ‘야관문 : 욕망의 꽃’에 대해 언급했다. 배슬기는 지난 달 방송된 SBS 파워FM ‘공형진의 씨네타운’에 배우 이민호와 함께 출연했다. 이날 배슬기는 ‘청춘학당’ 출연 계기를 묻자 “’청춘학당’ 이전에 했던 영화 ‘야관문’ 속 캐릭터와 상반된 부분에 매력을 느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홍보적인 부분에 있어서 영화와 다른 쪽으로 홍보가 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았다. 영화 자체는 웰메이드라고 생각을 한다”라며 ‘야관문’의 선정성 논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배슬기는 “야관문’ 출연은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나에게도 고마운 작품”이라며고 전했다. 청춘학당 배슬기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청춘학당 배슬기..역시 배슬기”, “청춘학당 배슬기..프로답네”, “청춘학당 배슬기. 앞으로도 파이팅”, “청춘학당 배슬기..이렇게 19금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청춘학당 배슬기..후회 안하니 다행”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배슬기 이민호 안용준 주연의 ‘청춘학당’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자에게 보쌈을 당한 꽃도령 3인방이 범인을 잡기위해 좌충우돌 수사에 나서는 코믹 사극 로맨스다. 사진 = 영화 ‘야관문’ 예고편 (청춘학당 배슬기)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화재 보호단체 대표, 알고보니 도굴범

    문화재 보호단체 대표, 알고보니 도굴범

    국고보조금을 받고 활동하던 문화재 보호단체 대표가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매장문화재 수백점을 도굴해 판매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일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북의 비영리단체인 모 문화지킴이 대표 장모(5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다른 도굴범 박모(61)씨, 장모(54)씨와 이들에게 매장문화재를 사들인 경북 구미의 개인 사찰 주지 권모(50)씨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3명의 도굴범이 유통시킨 문화재는 236점으로 전부 회수됐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도기·토기류 233점을 도굴해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훔친 문화재에는 중앙정부 관서명이 기재된 조선시대 초기 ‘분청 인화 국화문 접시’ 등이 포함돼 있다. 조사 결과 2008년부터 문화재 단체 대표로 활동한 장씨는 훔친 골동품을 개인 소장 박물관에 보관하다가 처분하고, 정상 거래인 것처럼 가짜 서류를 준비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함께 입건된 박씨는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던 중 문화재 2점을 도굴했다. 이 중 1점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40억원 상당의 석조약사여래좌상으로 단돈 200만원에 권씨에게 판매했다. 박씨는 도굴 과정에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일부 파손한 뒤 무자격자에게 수리를 맡겨 2차 훼손이 발생했고 가치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굴범들이 훔친 문화재 전부는 권씨가 소장 목적으로 사들였다. 권씨는 불법으로 도굴한 문화재인 것을 알고도 사찰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3억 3000만원 상당을 주고 이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길섶에서] 아침 밥/문소영 논설위원

    ‘아침엔 밥과 국’을 준수하던 근엄한 아버지 세대의 퇴장이 진행되는 탓에 집안에서 아침에 밥을 구경하기 점차 어려워진 것 아닌가 싶다. 요즘에는 준비가 간단한 빵과 계란요리, 또는 곡물을 우유에 말아먹기, 전날 먹다 남은 피자를 데우기도 한다. 얼마 전 외국계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한 아침거리를 제공한다는 광고에 이른 아침에 가봤다. 책가방을 든 중·고등학생도 몇몇 보였다. 아침에 밥이나 빵 등 탄수화물 등을 먹어야 뇌가 움직이고 잠자는 사이에 느려진 신체활동도 정상화된다. 조선시대에 왕세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책읽기를 했는데 이때 물엿인 조청 두세 숟가락을 먹고 시작했다. 아침 밥상을 받기 전까지 두뇌에 줄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이다. 아침을 거르는 것보다 즉석 음식점에서라도 해결하는 것이 더 낫겠지만, 저녁에는 학원에 다니느라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니 이러다가 ‘집밥’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됐다. 사실 나 같은 ‘불량한 엄마’가 낯선 학생들의 집밥 사정을 걱정하는 차원이 우습기는 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폭력성 키우는 모멸감 원인은

    폭력성 키우는 모멸감 원인은

    모멸감/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324쪽/1만 3500원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이나 범죄의 원인으로 모멸감이 지적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업신여기고 얕잡아 본다’는 뜻의 모멸. 안타깝게도 모멸감이 부르는 개인적 일탈과 공동체적 해악은 이제 심각한 수준으로 번진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인 모멸감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해소할 수 있을까. ‘모멸감’은 지금 한국의 일상에 만연한 모멸감을 키워드 삼아 우리 사회를 해부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모멸과 모멸감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국내서’라는 출판사 측의 소개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모멸이란 개념에 대한 천착이 신선하다. 인문학·심리학 문헌과 문학작품은 물론 뉴스 기사며 TV 드라마·영화 대사까지 훑어 건져 올린 모멸의 사례와 일상 속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멸감의 수준이 세대·계층 구분 없이 폭력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모멸감이 맹위를 떨치는 원인을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낸다. 무엇보다 조선시대의 귀천 의식과 신분적 우열 관념이 자의적으로 청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급격하게 추진된 산업화와 급변한 사회 환경이 모멸감 만연의 큰 요인임을 들춰 낸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위신을 확인하려는 문화 또한 모멸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 현실에서 크고 작은 모멸감이 가중되고 훼손된 자아를 보상받으려는 집단 콤플렉스가 공격적 민주주의와 편협한 인종주의로까지 번진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이 모멸과 모멸감을 ‘정서적인 원자폭탄’에 비유하곤 한다. 자신을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시키는가 하면 타인과 세상에 대한 폭력으로 폭발한다는 까닭에서다. 책은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란 부제 그대로 단순한 모멸의 사례 소개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 제시로 이어 간다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초점은 낮은 자존감 극복에 맞춰진다. 책대로라면 학력, 외모, 경제력, 피부색의 외형적 차이를 절대화하면서 멸시하는 문화와 사회 풍토의 개혁이야말로 모멸과 모멸감을 줄이는 우선적 해법인 셈이다. 저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넘어 ‘느끼는 단계’로까지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다소 생소하지만 ‘모욕 감수성’의 소개로 비쳐진다. 모멸감에 취약한 심성에 대해 개개인이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존중과 자존의 문화는 분명 여럿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그 출발과 귀결의 지점은 결국 각자의 내면에 있다.’ 작곡가 유주환이 이 책을 읽고 작곡한 10개의 곡이 수록된 CD는 덤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대장금 시즌2 줄거리 구체화? MBC “이영애 긍정적…올 10월 방송 목표”

    대장금 시즌2 줄거리 구체화? MBC “이영애 긍정적…올 10월 방송 목표”

    ‘대장금 시즌2’ ‘대장금2 줄거리’ 최근 ‘상속자들’과 ‘별에서 온 그대’로 한국 드라마의 중국내 인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한류를 촉발한 드라마 ‘대장금2’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다. ’한쥐’(韓劇·한국 드라마의 중국어 표현)의 인기를 가장 앞에서 이끈 대장금이 최근 재점화한 ‘드라마 한류’의 불길을 더욱 강하게 일으킬지 주목된다. 20일 MBC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장금 시즌2’는 올해 10월 방송을 목표로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예정대로 제작이 진행되면 현재 방송 중인 월화극 ‘기황후’와 후속작인 ‘트라이앵글’, ‘야경꾼일지’ 등에 이어 전파를 탈 전망이다. 특히 드라마 제작 성사 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주인공 이영애가 최근 ‘대장금 시즌2’의 출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애 측 관계자는 “이영애 씨가 ‘대장금 시즌2’의 시놉시스를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만약 이영애의 합류가 최종 결정된다면 그동안 출연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지진희 등 앞선 시즌의 다른 주요 배우들의 합류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원조’ 대장금 성공의 또다른 공신이었던 김영현 작가가 ‘대장금 시즌2’를 공동 집필하는 것으로 정해지면서 제작진과 드라마 이야기의 틀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김영현 작가는 당초 MBC의 다른 드라마인 ‘파천황’ 작가로 거론됐지만 ‘대장금’ 제작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파천황의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김 작가의 대장금 합류가 예상돼왔다. MBC 관계자는 “새 시즌의 줄거리로 어머니가 된 대장금이 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 요리·의술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앞선 작품과 같이 한 여성이 불굴의 의지로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선시대 최초 의녀로 왕의 주치의가 된 ‘대장금’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대장금’은 2003년 9월 15일 첫 방송돼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았다. 마지막 회인 54회가 55.5%(2004년 3월 23일 방송/TNmS 수도권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평균 시청률은 42.3%(TNmS 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방송 후에는 전 세계 90여개국에 수출돼 한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하며 한류를 일으켰다. 수출 및 광고만으로도 약 38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2차 콘텐츠로 발전한 ‘대장금’의 생산유발효과도 무려 119억 원에 달한다. 이와 같은 파급력 때문인지 중국 내 여러 기업이 대장금 제작에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MBC 관계자는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보다 일단 우리의 역량으로 잘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서 방송된 대장금의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우수하다. 특히 이야기 구조가 앞선 측면이 있어서 원작에 충실하게 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다만 시대가 흐른 만큼 연출 등에 더욱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면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대장금에 글로벌한 요소를 넣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부분이 너무 중심이 되기보다는 우리의 것이 강조돼야 한다”며 “외국 시장을 너무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들면 본래의 색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장금2’ 현실화? 이영애 측 “긍정 검토 중”…‘대장금 시즌2’ 내용 보니

    ‘대장금2’ 현실화? 이영애 측 “긍정 검토 중”…‘대장금 시즌2’ 내용 보니

    ‘대장금2 줄거리’ ‘대장금2 이영애’ ‘대장금2 내용’ ‘대장금’ 주인공 이영애가 ‘대장금2’ 출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매체 뉴스엔에 따르면 이영애 측 관계자는 “’대장금2’ 시놉시스를 받았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MBC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장금 시즌2’는 올해 10월 방송을 목표로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예정대로 제작이 진행되면 현재 방송 중인 월화극 ‘기황후’와 후속작인 ‘트라이앵글’, ‘야경꾼일지’ 등에 이어 전파를 탈 전망이다. ‘대장금2’ 역시 원조 ‘대장금’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가 공동 작가로 나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대장금2’ 제작은 MBC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지난해 초 김재철 MBC 전 사장이 ‘대장금2’ 제작을 언급한데 이어 김종국 사장이 올해 초 ‘대장금2’ 제작을 공식화 했다. 이처럼 ‘대장금’의 성공을 주도했던 김영현 작가와 주인공 이영애가 ‘대장금2’에 합류할 경우 그동안 출연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지진희 등 앞선 시즌의 다른 주요 배우들의 합류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대장금2’ 줄거리의 틀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MBC 관계자는 “새 시즌의 줄거리로 어머니가 된 대장금이 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 요리·의술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앞선 작품과 같이 한 여성이 불굴의 의지로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선시대 최초 의녀로 왕의 주치의가 된 ‘대장금’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대장금’은 2003년 9월 15일 첫 방송돼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았다. 마지막 회인 54회가 55.5%(2004년 3월 23일 방송/TNmS 수도권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평균 시청률은 42.3%(TNmS 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방송 후에는 전 세계 90여개국에 수출돼 한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하며 한류를 일으켰다. 수출 및 광고만으로도 약 38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2차 콘텐츠로 발전한 ‘대장금’의 생산유발효과도 무려 119억 원에 달한다. 이와 같은 파급력 때문인지 중국 내 여러 기업이 대장금 제작에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MBC 관계자는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보다 일단 우리의 역량으로 잘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서 방송된 대장금의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우수하다. 특히 이야기 구조가 앞선 측면이 있어서 원작에 충실하게 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다만 시대가 흐른 만큼 연출 등에 더욱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면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대장금에 글로벌한 요소를 넣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부분이 너무 중심이 되기보다는 우리의 것이 강조돼야 한다”며 “외국 시장을 너무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들면 본래의 색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청춘학당’ 배슬기, 49살차 신성일과 베드신 “후회하지 않아” 이유는?

    ‘청춘학당’ 배슬기, 49살차 신성일과 베드신 “후회하지 않아” 이유는?

    배우 배슬기가 신성일과 호흡을 맞춘 영화 ‘야관문 : 욕망의 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배슬기는 20일 오전 방송된 SBS 파워FM ‘공형진의 씨네타운’에 배우 이민호와 함께 출연했다. 이날 배슬기는 ‘청춘학당’ 출연 계기를 묻자 “’청춘학당’ 이전에 했던 영화 ‘야관문’ 속 캐릭터와 상반된 부분에 매력을 느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홍보적인 부분에 있어서 영화와 다른 쪽으로 홍보가 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았다. 영화 자체는 웰메이드라고 생각을 한다”라며 ‘야관문’의 선정성 논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배슬기는 “야관문’ 출연은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나에게도 고마운 작품”이라며고 전했다. 한편 배슬기 이민호 안용준 주연의 ‘청춘학당’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자에게 보쌈을 당한 꽃도령 3인방이 범인을 잡기위해 좌충우돌 수사에 나서는 코믹 사극 로맨스로, 오는 27일 개봉한다. 사진 = 영화 ‘야관문’ 예고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등축제에서 봄밤을 누려~

    등축제에서 봄밤을 누려~

    도봉구 방학천에서 봄맞이 등(燈)축제가 열린다. 도봉구는 오는 21일부터 열흘 동안 정병원 사거리에서 옛 제일종합시장 앞까지 방학천 산책로를 따라 등축제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등축제는 지난해 봄, 가을 두 차례 개최되며 연인원 20만명 이상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우리은행 지원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엔 서울시가 후원한다. 시가 해마다 청계천에서 열고 있는 등축제를 통해 선보였다가 보관 중인 등을 활용해 개최한다. 그래서 개최 비용이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전통혼례, 청마, 연꽃, 민속동화, 풍물놀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추억의 놀이를 묘사한 한지 등 46점이 전시된다. 내년 개관을 앞둔 쌍문동 둘리뮤지엄의 상징인 아기공룡 둘리와 구민이 직접 제작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등은 일몰시간대인 오후 6시 30분부터 11시까지 켜진다. 각자 소망을 엽서에 적어 소망 나무에 부착하는 행사도 마련된다. 이동진 구청장은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2년 연속 등축제를 개최하게 됐다”며 “아름다운 전통 등과 함께 행복한 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길섶에서] 배낭 민폐/문소영 논설위원

    3월 대학이 개강하니 겨울방학에 비교적 한산했던 출근 버스가 배낭족으로 더 붐빈다. 대학생의 책가방이었던 배낭은 최근 10년 사이에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남녀 직장인뿐만 아니라 어깨가 시원찮아진 50~60대 중장년의 애용품이 됐다. 배낭을 메면 스마트폰이 일상화한 ‘엄지족’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할 때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더 좋단다. 다만 배낭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문제다. 배낭에 노트북과 관련 부품, 마우스, 두서너 권의 책, 소지품을 넣으면 뒤로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따라서 통로가 좁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배낭족을 지나쳐 이동하려면 상당히 불편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입석 승객이 멘 조선시대 괴나리봇짐처럼 축 처진 배낭이 무의식 중에 착석 승객의 얼굴이나 어깨 등을 누르거나 긁는 수도 있다. 불편해서 계속 뿌리쳐도 배낭족은 버스가 요동치는 걸로 착각한다. 그러니 붐비는 버스·지하철에서는 등 뒤에 눈이 달린 듯 배낭 간수에 신경 써야 한다. 작은 배려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인사동 고층호텔 허용 추진… 주민들 반발

    서울시가 전통문화 업종 외 입점이 제한된 종로구 인사동 ‘주가로변’ 일부 구역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은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의 정체성이 실추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16일 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28일 열린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에 인사동 업종제한 구간을 축소하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민간위원인 윤용철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이 “호텔 등 대형 상업 건물 허가에 대해서는 주민의견을 수렴한 뒤 재논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해 주가로변 구역 범위 조정 안건은 보류됐다. 이 안건은 인사동길 20-3, 20-5, 22-6 등 인사동 문화지구 내 24개 필지를 인사동 문화지구의 주가로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사동 사거리 북쪽 안국역 일대(인사·관훈·낙원동)는 2002년부터 인사동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높이가 최대 4층으로 제한돼 있다. 인사동 사거리 남쪽 종로 방면은 공평도시환경구역으로 지정돼 높이 60m 이내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 특히 인사동길과 태화관길의 주가로변은 높이 24m로 묶여 있으며 고미술품점, 골동품점, 표구사, 필방 등 전통문화 업종만 입점할 수 있다. 변경안대로 일부 지역이 주가로변에서 제외되면 업종제한이 풀려 그동안 금지된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호텔 예상부지로 알려진 곳은 인사동 커피빈 매장 건너편 인사동길 12, 20, 22 일대다. 최대 높이 60m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어 약 19층 높이가 가능하다. 이미 강남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일부 건물주와 가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윤 회장은 “부동산 개발업체가 주가로변 일부 부지에 호텔을 짓기 위한 건물주의 동의서를 받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면서 “시와 구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 등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인사동 거리는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70~80%가 들르는 곳”이라며 “문화지구의 범위를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대형 상업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는 최근 문화지구변경안을 재논의하자는 내용을 구에 통보했다. 시 관계자는 “호텔 건설이 아직 승인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보류된 안건에 대해서는 향후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씨줄날줄] 광화문 시복 미사/서동철 논설위원

    교황청이 시복(諡福)을 확정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두 극적이다. 그럼에도 역사책에서 낯이 익은 몇몇 순교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관심을 조금 더 갖게 마련이다. 정약종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천주학에 일찍이 눈을 뜬 북한강변 마재(馬峴) 정씨 집안의 약현, 약전, 약종, 약용 형제의 일원이다. 약종 아우구스티노는 형제 가운데 가장 늦게 천주학에 입문했지만, 믿음은 가장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초의 우리말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를 펴냈고, 교리를 집대성한 ‘성교전서’(聖敎全書)를 편찬하다 신유박해(1801)를 만나 배교를 거부하고 참수됐다. 약종과 함께 복자(福者)에 오르는 큰아들 철상 가롤로는 아버지가 순교한 날 붙잡혔고, 역시 한 달 뒤 같은 길을 갔다. 정약종 집안이 보여준 신앙의 깊이는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도 다른 유례를 찾기 어렵다. 부인 유 체칠리아와 작은 아들 하상 바오로, 딸 정혜 엘리사벳은 기해박해(1839) 때 가장의 뒤를 따랐다. 온 가족이 순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유씨 부인과 하상, 정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을 찾은 1984년 ‘한국 순교자 성인 103위’의 일원으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시성(諡聖)은 조선에 선교사 파견이 본격화된 이후 파리외방전교회의 기록에 의존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윤지충과 123위’는 국내 자료를 발굴해 개개인의 순교 과정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노력의 결과로 평가된다. 따라서 정약종 같은 초기 순교자가 대거 포함될 수 있었다. 한국 교회가 시복 결정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약종은 체포 과정도 ‘확신범’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신유년 음력 2월 마재에서 서울로 말을 타고 가는 길에 급하게 달려가는 금부도사와 엇갈렸다. 곧바로 사람을 보내 누구를 잡으러 가는지 알아보게 했고, 대상이 자신임을 확인하고는 곧장 의금부로 갔다. 그에게는 극형이 불가피한 ‘대역부도’죄가 씌워진 만큼 마지막에는 형조에서 국왕의 처결을 기다렸을 것이다. 형조는 관청이 한데 모인 광화문 육조거리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다. 그는 2월 26일 서소문 형장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조용히 칼을 받았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8월 시복 미사 장소로 서울 광화문 일대가 적극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권력이 집중된 경복궁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거리가 거대한 성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국가가 용인하지 않는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혼령의 해원(解寃)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듯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손성진 칼럼] 희망이 보이는 사회로

    [손성진 칼럼] 희망이 보이는 사회로

    한 끼 밥, 인간의 기본 욕구마저 채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가난했기에 가난한 줄도 모르고 살았을까. 험난한 세월을 용케도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 가난의 고통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 같은 21세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 4000달러 시대, 주체할 수 없는 풍요의 뒤편에서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한 절대 빈곤이 공존하는 현실은 비극이다. 세상은 풍족해졌는데 주린 배를 잡은 이웃들은 줄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몇 명 이상의 극빈층이 자살이라는 우울한 선택을 한다. 서울 송파 세 모녀의 자살이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새삼스럽지도 않다. 비극은 계속되고 있었고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사실 무관심하다. 자살을 죄악시하기만 했지 애틋한 이면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담한 결과만으로 따져 볼 때 한국의 위정자들은 복지에 관한 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가난한 백성을 진휼(賑恤)하는 일은 수령의 중요한 업무였다. 진휼을 게을리하다간 목이 달아났다. 왕도 변복(變服)을 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살폈다. 이 시각에도 무관심 속에 많은 이들이 죽음의 낭떠러지 위에 선다. 사업에 실패하고 직장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웃들은 수없이 많다. 송파 사건 이후 지자체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전수조사한다며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런 호들갑도 결국 호들갑으로 끝나버릴 것이라는 게 서글프고도 비관적인 현실이다. 한 번이라도 거리의 구석을 유심히 살핀다면 위태하게 생명을 부지하는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터이다. 종이 줍기로 하루 몇 천원 벌이를 하는 노인들, 오래도록 일거리가 없어 술에 의존해 사는 노동자들…, 우리는 얼마나 관심 있게 바라다보았는가. 지방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정치꾼들은 “서민을 위해서!”라며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기력도 없는 이들의 표를 노리고 입바른 말을 해댈 것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외면당한다. 반짝 관심에 그치는 한 죽음으로의 행진은 또 이어지고 말리라. 자살이 죄악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다. 죽은 자의 고통은 끝나겠지만 남은 자에게는 몇 배의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배곯음의 설움, 극한의 고통을 아는 부모 세대들이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려심 덕이었다. 손등이 쩍쩍 갈라지도록 악착같이 일하면서 견뎌 왔다. 모진 삶을 견뎌 냈던 또 하나의 동력은 희망이었다. 언젠가 잘살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기대였다. 힘든 세월을 보상받을 만큼 희망은 실현됐다. 지금 우리에겐 가난을 버티게 해 줄 희망이 있는가. 계층 간의 간격은 너무 벌어져 있고 장벽은 높다. 부는 대물림되고 고착화됐다. 부를 바탕으로 한 교육의 질도 양극화됐다. 낮은 교육의 질로는 높은 스펙을 갖추기 어려우며 이는 질 낮은 일자리로 이어진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재화들이 점점 더 줄어든다. 기회 균등한 국가고시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제도의 변화는 ‘개천에서 용 나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적은 봉급으로는 수십 년치를 모아도 집을 장만하기 어렵다. 젊은 시절의 열등한 사회생활보다 그에 이어진 노년기의 삶은 더욱 피폐하다. 더 큰 문제다. 이는 결국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번 경쟁에서 밀려나면 재진입이 어렵고 자신감은 상실된다. 희망이 없는 사회구조가 지속하는 한 자살은 줄지 않는다. 우리나라 빈곤인구는 800만명이나 된다. 전 국민의 16%다. 최저생계비의 120%만으로 사는 이들이 410만명에 육박한다. 상당수는 잠재적 자살위험군이다. 소외 계층에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의 증액이 우선이다. 신분 상승의 기회도 만들어 줘야 한다. 절망스러운 광경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수석논설위원
  • [김문이 만난사람] ‘생황’ 대중화 앞장서는 연주가 김효영

    [김문이 만난사람] ‘생황’ 대중화 앞장서는 연주가 김효영

    봄은 생(生)이요, 동(動)이다. 지천에서 잔뜩 웅크리고 지내던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두꺼운 옷을 입었던 꽃망울들이 ‘까꿍’하며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그것을 시늉하며 코끝을 간질인다. 저절로 눈을 감으니 잠시 취해버린다. 몽환 속에서 김홍도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가 나타난다. 큰 소나무 아래에 한 사내가 ‘생황’(笙簧)을 처연하게 불고 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균관삼차배봉시 월당처절승룡음’筠管參差排鳳翅 月堂凄切勝龍吟)이라는 글자가 날렵하게 적혀 있다. 무슨 뜻일까. ‘길고 짧은 대나무통은 봉황의 날개인가, 월당의 생황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처절하네’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림 속의 생황 연주자는 주나라의 태자 진(晉)이란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산수에만 뜻이 있어 계곡에서 노닐다가 15세 때 한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우고 나더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버렸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김홍도의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에도 한 서생이 맨다리로 양 무릎을 세우고 파초를 깔고 앉아 ‘생황’을 불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신윤복의 ‘연당(蓮塘)의 여인’에서는 생황을 든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선유도’에서는 뱃머리에 걸터앉은 여인이 생황으로 풍월을 연주하며 뱃놀이의 흥을 돋우고 있다. 에구 어찌할거나, 염양춘(艶陽春)이다. 벌써 봄이 무르익어가는구나! 여기에 나오는 ‘생황’은 어떤 악기일까. 우선 그 역사를 잠시 되짚어본다. 아악(雅樂)에 쓰이는 관악기 중 하나로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천년 세월을 간직한 천상의 악기로 전해져 온다. 고구려, 백제 시대 때부터 널리 연주됐다는 기록이 ‘수서’와 ‘당서’ 등에 나타나 있으며 통일신라 때 제작된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 비천상에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세종 때 제조된 생황은 회례연에서, 성종 때에는 종묘제례악에서 향비파, 해금, 대금 등과 함께 연주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황엽장(簧葉匠)의 사망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생황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중국에서 구입해 연주했다는 내용이 ‘악장등록’과 ‘영조실록’에 전한다. 조선후기에 들어 생황이 널리 연주됐다는 사실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최근에 와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기생 매향이 생황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며 세종문화회관 정면 벽의 부조 ‘비천상’에서도 두 선녀가 생황과 피리를 불고 있다. 생황은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 중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화음악기로 음 빛깔이 밝고 아름다우며 합주에 자주 쓰인다. 특히 단소와 만드는 2중주는 ‘생소병주’(생황과 단소 합주)라고 할 정도로 조화를 잘 이룬다. 바가지 형태의 토대에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죽관(17, 24, 36관 등)을 꽂아 음정을 만들고 취구(吹口)를 통해 들숨 날숨으로 여러 화음을 내는 악기가 바로 ‘생황’이다. 전통적으로는 17죽관, 오늘날에는 24관의 생황이 주로 쓰이고 있으며 개량형태로 36관과 37관으로도 연주되고 있다. 생황은 생김새가 봉황이 날개를 접은 모양이라고 해서 봉생(鳳笙)이라고 하며 ‘하늘의 소리’ ‘천상의 소리’로 불리는 아름답고 신비한 악기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황이 다른 전통악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 때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그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고, 조선후기에 다시 살아났으나 주로 기생과 상류층의 취향이라는 점에서 자생력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생황이 요즘 들어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봄이 생동하듯 다시 연주되면서 예술인과 일반인들에게도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효영(40)씨가 1년에 100회 이상 무대에 설 만큼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생황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독주무대만 한 달에 5~6회 정도 갖는다. 그러기를 13년째. 생황을 들고 전국은 물론 해외무대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해금, 생황, 피아노 앙상블 사이의 사계이야기’ ‘김효영 생황음반 환생’ ‘김효영 생황음반 두 번째 환생, 향가’ 등의 음반을 내고 생황의 소리를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삼청각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일반인들을 위한 연주회를 갖는다. 어째서 생황이 봄을 부르는 악기라고 할까. “우선 생긴 모양을 보십시요. 여러 죽관들이 생명의 솟아오름을 나타내고 있지요. 두 번째는 수룡음(水龍吟)을 들 수 있습니다. 수룡음은 한국의 전통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생황의 깊고 부드러운 음색에다 그 위로 하늘거리듯 맑고 고운 가락이 잘 어우러지는 곡입니다. 소리 자체가 봄꽃이 피어오르듯 반짝반짝거립니다. 특히 ‘신수룡음’은 겨울이 지나 다시 환생하듯 샘솟는 봄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생황을 ‘마치 봄볕에 모든 생물이 돋아나는 형상을 상징하고 물건을 생(生)하게 한다’는 뜻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대표적인 생황곡으로 알려진 ‘염양춘’(무르익어가는 봄)은 전통가곡 중 계면조 ‘두거(頭擧)의 선율을 기악곡으로 만들어 차분하면서도 유려해 봄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황은 과거에 단소와 이중주를 많이 했으나 지금에는 해금, 피아노 등 전통과 서양악기 사이에서 다양한 협주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생황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빼어난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음색 또한 참으로 신비합니다. 현대음악과도 잘 어울려 국악의 대중화는 물론 우리 국악창작의 앞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2009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환생’을 통해 전통의 수룡음을 오늘날 분위기에 맞게 재해석한 ‘신수룡음’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또한 2011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향가와 생황의 만남’이라는 독주회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새로운 접목을 시도했다. ‘서동요’ ‘혜성가’ ‘제망매가’ ‘처용’ ‘찬기파랑가’ ‘헌화가’ 등 신라시대 향가 6곡을 생황의 선율과 화음에 맞게 창작곡으로 연주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그는 “천년 전, 향가와 생황은 함께 존재했으며 생황에 담긴 신비로움은 여러 변화를 겪으며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면서 “향가의 낯선 어투에 담긴 내용은 지금도 충분히 음악적으로 공감되며 당시를 상상하게 된다”고 말한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인간사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두려움, 슬픔, 관용, 용서, 고백 등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생황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뿐만 아니다. 그는 생황으로 동요, 클래식, 속주, 아르페지오 같은 새로운 주법을 선보이기도 하고, ‘방자전’ ‘왕자호동’ 등 영화와 발레음악, 그리고 컴퓨터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넬라판타지아’, 피아졸라의 ‘탱고’, 비발디의 ‘사계’ 등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생황으로 거침없이 연주하면서 생황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중국과 스페인, 오스트리아, 페루 등 외국 연주회를 통해 우리나라 전통 생황의 소리를 알리기도 했다. 오는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다양한 창작활동과 현지 연주자들과 교류를 가질 예정이다. 이때에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생황 연주회를 통해 한국 전통생황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이다. 어떻게 해서 생황과 인연을 맺었을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피아노를 곧잘 쳤다. 국악고등학교에서는 피리를 배웠다. 추계예술대를 나온 그는 여자 피리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국립국악원에 들어갔다. 1년 정도 지날 무렵 스승인 손범주 선생의 권유로 추계예술대학원에서 생황연주와 작곡 등을 공부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피리를 배울 때 음색에 반해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생황을 처음 본 순간 더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생황의 계보는 조선시대 마지막 장악원의 연주자 박덕인을 비롯 근대에 이르러 김계선, 김태섭, 정재국, 손범주 등으로 이어지며 최근에는 김씨를 필두로 여러 생황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는 “그동안 악기연주의 명맥을 어렵게 어이온 명인들의 노력과 최근 젊은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생겨나면서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국내외로 열심히 뛰면서 한국형 생황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김효영은 스승 권유로 대학원때 생황 전공… 속주·아르페지오 새 연주법 개발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국악고등학교에서 피리를 배웠다.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국악원에 들어갔다. 이때 스승 송범주의 권유로 생황을 배웠고 추계예술대 교육대학원에서 생황을 전공했다. 생황연주는 28세 때부터 시작해 13년째 생황의 레퍼토리를 넓혀오고 있다. 동요, 클래식, 탱고도 연주하고 속주, 아르페지오 같은 새로운 연주법도 개발했다. 발레, 영화음악, 컴퓨터 음악을 넘나들며 생황 연주를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양 국악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아트 프론티어’로 선정됐다. 2013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신진여성 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주요 독주회로는 ‘춤추는 생황’(2009, 서울 남산국악당), ‘천년의 사랑’(2010, 아람누리새라새극장), ‘환생’(2010, 국립부산국악원, 국립제주박물관), ‘전주세계소리축제초청 생황콘서트’(2011, 전주소리 문화의전당 연지홀), ‘국악열전 천년의 숨길, 마음에 귀 기울이다’(2012, 경기도 국악당), ‘컨플루언스앙상블 콘서트(2013,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김효영생황 단편영화 herstory’(2013, 대학로예술극장) 등이다. 음반으로는 ‘김효영 생황음반 환생’(2009)과 ‘해금, 생황, 피아노 앙상블 사이의 사계이야기’(2010), ‘김효영 생황음반 두 번째 환생, 향가’(2012) 등이 있다.
  • [씨줄날줄] 중국 대륙의 ‘별그대’ 열풍/문소영 논설위원

    SBS TV 수목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가 종영됐음에도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여자주인공 ‘천송이’로 변신한 전지현이 “눈 오는 날엔 치맥(치킨과 맥주) 이라는데…”라고 한 극 중 대사 덕분에 조류독감으로 한산했던 중국의 코리아타운의 치킨집마다 2시간 넘게 장사진을 이뤘다. 또 ‘천송이노믹스’라고 해서 천송이가 입었던 해외 브랜드의 의상들과 신발, 가방, 모자는 물론 핑크 립스틱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됐다. 천송이는 ‘완판녀’가 된 것이다. 남자주인공 김수현은 중국 예능프로 출연료로 300만 위안(5억 2170만원)을 받았고, 업체에서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날아갔다고 했다. 현장 보안요원이 600명이었다. ‘별그대’는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서 조회 수 25억 건을 돌파했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8일 1면에서 중국의 ‘별그대’ 열풍을 소개해 더 화제가 됐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권력서열 6위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지난 5일 통렬히 탄식한 것이 기사의 배경이다. 왕치산은 그날 베이징인민예술극원이 예술분야 발전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중간에 말을 끊고, “인터넷에서 인기인 드라마 봤나? 한국 드라마가 왜 중국을 점령했나? (중략) 몇 년 전에 ‘강남스타일’도 내놨다. 시간 나면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본다. 반나절쯤 보고 깨달았다. 한국 드라마는 우리를 앞섰다”고 말했다. 왕치산의 발언으로 중국에서는 “중국의 문화적 자존심에 상처” 운운하며 한국처럼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 원인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매년 150여개 팀의 아이돌이 나오는 한국 연예계의 치열한 경쟁과 방송시스템 등 생산 시스템도 낱낱이 분석했다고 한다. 정치나 범죄수사, 의료, 언론, 탐정 등 특정 직업의 에피소드를 샅샅이 소개하며 전개하는 미국·영국 드라마와 비교하면 한국의 드라마는 청춘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집중해 시청자의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곤 한다. 자못 진지한 전개로 코믹한 일본 드라마와도 차별성이 있다. 한국은 퓨전 사극인 ‘대장금’으로 2003년부터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들의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여전히 ‘전설’처럼 사랑받는다.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 ‘초한지’, ‘수호지’, ‘홍루몽’을 읽고 논어·맹자·시경 등과 자치통감 등을 탐독했던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중국 내 한국 드라마 열풍은 격세지감이다. 사족(蛇足)으로 ‘완판녀’로 기록을 세운 전지현이 해외 유명 브랜드 대신 국내 브랜드를 더 많이 입고 선보였더라면 수출과 내수 모두에서 큰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드라마 스페셜 곡비(KBS2 일요일 밤 11시 55분) 조선시대 당시, 장례가 시작되면 곡성이 끊이지 않도록 양반을 대신해 울어주던 여자 종 곡비(哭婢)가 있었다. 곡비 단금의 딸 연심은 어미처럼 평생 곡을 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억지로 끌려간 양반집 장례에서 단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간 연심은 평생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낫다며 기생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천한 곡비의 딸인지라 수기생 도화에게 문전박대를 당한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저자와 기방 근처를 기웃거리던 연심은 도화의 아들이자 최씨 집안의 서자인 윤수와 서로 처지를 위로하고 티격태격하다가 가까워진다. ■400회 특집 쇼 음악중심(MBC 토요일 오후 3시 50분) 400회를 맞아 대한민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총출동한다. MC 민호(샤이니)와 소현이 1990년대 초반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철이와 미애로 깜짝 변신해 ‘너는 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MC였던 ‘소녀시대’의 유리와 티파니도 스페셜 MC로 함께 한다. 또한 효린과 에일리가 특별한 ‘렛잇고’ 무대를 꾸민다. ■생활의 달인(SBS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최고의 음식 쫄면. 간단해 보이지만 나름의 노하우로 쫄면계를 들끓게 하는 전국 쫄면계 강자들이 모두 모였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물에 말아 먹는 쫄면도 등장한다. 쫄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육수에 탱탱한 면발을 자랑하는 37년 전통 ‘물쫄면’을 만드는 육경홍 달인을 만난다.
  • 부산 장안사 ‘석조삼불좌상’ 국가문화재 보물 지정 예고

    부산 장안사 ‘석조삼불좌상’ 국가문화재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은 부산 기장군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石造釋迦如來三佛坐像)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삼불좌상은 17세기 중엽 조선시대에 활약한 녹원(鹿元)이라는 조각승이 1659년 경주 일원에서 나오는 연한 돌인 불석(沸石)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중앙에 위치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자리 잡았다. 본존 석가여래상은 턱이 짧은 방형 얼굴에 콧날이 우뚝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띤다. 문화재청은 이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와 작가가 밝혀져 17세기 중·후반 불교조각사 연구의 기준 작품이 될 수 있고, 불석제 불상의 본격적인 유행 시점에 제작돼 불상 재료 연구에도 중요한 사실을 밝혀 주는 상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봄을 기다리는 농부

    [문소영의 시시콜콜] 봄을 기다리는 농부

    올봄이면 농사지은 지 5년째가 된다. 경기도 근교에 20여 평 텃밭을 일궈왔다. 시작할 때 한두 달 반짝 재미를 붙였다가 6~7월 잡초가 기승을 부리면 얼른 도망가 묵정밭으로 만들 것으로 다들 짐작했다. 도시에서만 43년을 살았으니 지렁이나 굼벵이에도 화들짝 놀라면서 무슨 농사냐는 빈정거림도 받았다.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좋았던 일은 머리만 쓰던 사람이 몸을 쓰면서 팥죽처럼 들끓는 잡념을 털어낼 수 있었던 점이다. 근육통이 일어나고 몸은 고단해도 머릿속은 개운해지곤 했다. 씨 뿌릴 때는 씨 뿌리는 일에만, 잡초를 제거할 때는 잡초 제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첫해엔 모종을 사서 심었지만, 두 번째 해부터는 씨앗을 수확해 뿌리려고 애썼다. 도시농부 안내책자에서 ‘파종하지 않으면 진정한 농부가 아니다’는 구절 덕분이다. 이때 ‘파종’은 그저 땅에 씨를 뿌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을에 튼실한 씨앗을 따로 모아 이듬해 봄까지 관리하며 굶어 죽을 지경에 내몰리더라도 종자를 지켜 미래를 기약한, 신석기 시대 이래 수천 년 씨앗의 보호자로서의 아우라가 반영된 것이다.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의 뜻을 새기게 된다. 학생 시절 책상머리에서 이 단어를 배울 때와 달리 땡볕에 흙냄새를 맡으며 잡초를 뽑고, 비를 맞으며 김을 매고, 퇴비와 북주기를 하면서 농부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농부는 자신과 가족의 입에 들어갈 먹을거리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웃과 나라를 다스리는 왕과 관료와 양반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던 사람들이었다. 농번기 여름이면 새벽에 닭이 울 때 논밭에 나가 사위가 깜깜해질 때까지 일하는 고된 작업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고된 농사와 세금 등을 피해 도망가는 양민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를 달래려고 ‘농자천하지대본야’를 강조해야만 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는 농사를 권한다(권농·勸農)는 어록 1573번과 함께,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뜻의 ‘국이민위본, 민이식위천’(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이라는 말이 세종 때부터 7차례나 나온다. 조선시대의 ‘밥’을 21세기 단어로 바꾸면 ‘민생’(民生)이 된다. 오는 3월 말이면 하지 감자 씨를 심으며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국민이 꼬리를 무는 상황에서 정부는 과연 국민을 근본으로 삼은 것인지, 복지가 확대돼 민생이 개선되는 봄은 천천히 라도 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볼수록 정감 가는 우리 도자기와 항아리가 창고에만 갇혀 있어서야…

    볼수록 정감 가는 우리 도자기와 항아리가 창고에만 갇혀 있어서야…

    “소박하면서도 볼수록 정감이 가는 생김새가 옛 우리 도자기의 매력이죠. 일부 외국인 소장자들은 이런 고미술품을 창고 한편에 쌓아 놓아 사장시키곤 합니다. 이런 작품들을 경매에 내놓도록 설득해 세상에 존재를 알리는 게 제 몫이죠.” 1996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크리스티 경매장. 다섯 발가락을 지닌 용이 그려진 조선시대 철화백자운룡문항아리는 한국 고미술품 사상 최고가인 841만 7500달러(약 90억 4400만원)에 낙찰됐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황제나 왕을 상징한다. 조선 숙종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용문청화백자가 2012년 321만 8500달러(약 34억 5800만원)에 팔렸으나 이 기록을 뛰어넘진 못했다. 작품들은 모두 일본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더비와 함께 세계 양대 경매사로 불리는 크리스티에는 한국인 고미술 전문가가 몸담고 있다. 1991년 입사한 김혜겸 부사장이다. 한 우물을 파 온 그는 이런 굵직한 경매를 수없이 성사시켰다. 교과서나 해외 박물관 도록에서나 볼 수 있던 화려한 미술품들이다. 오는 18일 뉴욕에서 열리는 봄철 한국 고미술 경매에 앞서 한국에 머물던 김 부사장을 프리뷰 전시가 마련된 서울 중구 소공동 신세계갤러리에서 만났다. 크리스티는 봄가을에 걸쳐 1년에 두 차례 한국 고미술 경매를 연다. 그는 “한국인들이 전통 미술품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대여 전시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보고 미국인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이런 전시가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귀국 후 가장 먼저 삼성 리움미술관으로 달려가 ‘달항아리’부터 봤다고 했다. “어려서 (외교관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집에 한·중·일 미술품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미술에 눈을 떴죠.” 미국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현재 한국 고미술에 가장 조예가 깊은 해외 전문가로 통한다. 교수, 큐레이터 등 100여명의 두터운 인맥도 갖고 있다. 크리스티의 이번 경매에는 청화백자십장생항아리와 화각함, 10폭 병풍 등 135점의 ‘로버트 무어 컬렉션’을 비롯해 한국 고미술품 170여점이 출품된다. 그는 고미술품 경매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해외에선 개인 소장자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품을 대여 전시하는 게 관행”이라며 “경매를 통해 잊힌 작품을 발굴하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