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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항의 역사 품은 서소문 ‘부활’

    저항의 역사 품은 서소문 ‘부활’

    서울 중구 내일 역사공원 기공식…2018년 기념타워와 함께 개장 서울 중구 의주로 2가에 있던 서소문은 한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 도성을 오가는 작은 문 4개 가운데 하나로, 용산과 마포 등으로 향하는 관문이었다. 서소문 밖에 있는 형장에서는 조선의 실학자와 혁신사상가들이 희생됐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사육신, 개혁을 외쳤던 허균, 홍경래의 난 가담자, 동학혁명 지도자 김개남 장군 등이 이곳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때는 수많은 천주교인들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중 44명은 성인으로 시성됐다. 서소문공원에 있는 순교자 현양탑에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배하기도 했다. 500여년 저항의 역사를 품은 서소문공원이 역사문화공원(조감도)으로 탈바꿈한다. 중구는 17일 의주로2가 서소문공원 광장에서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 추기경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최창식 중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소문역사공원 기념공간 건립 공사’ 기공식을 연다고 15일 밝혔다. 최 구청장은 “서소문공원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명소로서 천주교 순교사와 함께 우리 역사를 담는 주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면서 “쇼핑 중심의 한국 관광 문화를 이야기가 있는 관광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소문공원 주변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있는 점을 들어 “이곳을 시작으로 당고개성지, 절두산성지 등으로 이어지는 천주교 성지순례길을 조성하는 장기 계획도 세웠다”고 덧붙였다. 공사는 내년 말까지 국비 230억원, 시비 137억원, 구비 93억원 등 총 460억원을 투입해 진행한다. 2만 1363㎡ 부지의 지상에는 기념타워, 하늘광장 등이 들어선다. 지하는 순교성지와 순교자 추모 등 기념 공간으로 꾸민다. 최 구청장은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조선 후기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사료가 있으면 전시관을 만들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역사문화공원은 2018년 상반기에 개장할 예정이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요즘 뜨는 이태원, 역사 알고 가 볼까

    서울 용산구가 지역 주민에게 고장 역사와 고유 문화 등을 알려는 새로운 인문 강좌를 마련해 인기다. 용산구는 다음달 14~30일 6회에 걸쳐 용산아트홀 강의실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해석한 ‘용산이 내게 오기까지’ 용산학(學) 강좌를 운영한다고 15일 밝혔다. 강사로는 ‘서울은 깊다’ ‘우리 역사는 깊다’ 등의 저술로 유명한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김천수 용산구 향토사연구가 등이 참여한다. 용산은 각종 도심 개발과 이태원, 경리단길 등 이국적인 이미지 탓에 ‘미래 도시’ ‘글로벌 도시’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유물을 가진 국립중앙박물관과 20세기 유산인 주한 미군 용산기지가 있는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또 서울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성격상 ‘용산학’이라고 부를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며 그래서 학계와 시민들에 의한 ‘지역사’ 연구도 활발히 이뤄진다. 이번 강의에서는 ‘서울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한양의 도시 구조와 한양 외곽의 서울, 특히 행정구역상 용산의 기원인 한성부 용산방을 알아본다. 개항과 해방 이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에서 용산의 변화를 뒤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용산 지역사를 20년째 연구해 온 향토사학자 김천수씨가 주한 미군 용산기지와 그 주변 근현대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유적지 도보 탐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20세 이상 용산주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수강 신청은 다음달 7일까지 용산구교육종합포털(yedu.yongsan.go.kr)에서 할 수 있다. 모집 인원은 선착순 30명이며 수강료는 1만원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은 사대문 안으로 진출하는 한양 도성의 관문으로 조선시대부터 군사적인 측면에서 주목받았다”면서 “용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주민들의 문화 정체성과 애향심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서소문역사공원 기념 공간 조성 첫 삽

    서소문역사공원 기념 공간 조성 첫 삽

    서울 중구 의주로 2가에 있던 서소문은 한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 도성을 오가는 작은 문 4개 가운데 하나로, 용산과 마포 등으로 향하는 관문이었다. 서소문 밖에 있는 형장에서는 조선의 실학자와 혁신사상가들이 희생됐다.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과 개혁을 외쳤던 허균과 홍경래 난 가담자, 동학혁명 지도자 김개남 장군 등이 이곳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유박해(1801년)·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년) 때는 수많은 천주교인들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중 44명은 성인으로 시성됐다. 서소문공원에 있는 순교자 현양탑에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배하기도 했다. 500여년 저항의 역사를 품은 서소문공원이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중구는 오는 17일 의주로2가 서소문공원 광장에서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 추기경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최창식 중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소문역사공원 기념공간 건립 공사’ 기공식을 연다고 15일 밝혔다. 최 구청장은 “서소문공원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명소로서, 천주교 순교사와 함께 우리 역사를 담는 주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쇼핑 중심의 한국 관광 문화를 이야기가 있는 관광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소문공원 주변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있는 점을 들어 “이곳을 시작으로 당고개성지, 절두산성지 등으로 이어지는 천주교 성지순례길을 조성하는 장기 계획도 세웠다”고 덧붙였다. 공사는 내년 말까지 국비 230억원, 시비 137억원, 구비 93억원 등 총 460억원을 투입해 진행한다. 2만 1363㎡ 부지의 지상에는 기념타워, 하늘광장 등이 들어선다. 지하는 순교성지와 순교자 추모 등 기념공간으로 꾸민다. 최 구청장은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조선 후기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사료가 있으면 전시관을 만들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역사문화공원은 2018년 상반기에 개장할 예정이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너희가 용산을 알아

    너희가 용산을 알아

    서울 용산구가 지역 주민에게 고장 역사와 고유문화 등을 알려는 새로운 인문강좌를 마련해 인기다. 용산구는 다음 달 14~30일 6회에 걸쳐 용산아트홀 강의실에 지역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해석한 ‘용산이 내게 오기까지’ 용산학(學) 강좌를 운영한다고 15일 밝혔다. 강사로는 ‘서울은 깊다’, ‘우리 역사는 깊다’ 등의 저술로 유명한 전우용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김천수 용산구 향토사연구가 등이 참여한다. 용산은 각종 도심 개발과 이태원, 경리단길 등 이국적인 이미지 탓에 ‘미래도시’, ‘글로벌도시’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유물을 가진 국립중앙박물관과 20세기 유산인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있는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또 서울의 중심이란 지리적 성격상 ‘용산학’이라고 부를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며, 그래서 학계와 시민들에 의한 ‘지역사’ 연구도 활발히 이뤄진다. 이번 강의에서는 ‘서울의 탄생’이란 주제로 한양의 도시구조와 한양 외곽의 서울, 특히 행정구역상 용산의 기원인 한성부 용산방를 알아본다. 개항과 해방 이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에서 용산의 변화를 뒤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용산 지역사를 20년째 연구해 온 향토사학자 김천수씨가 주한미군 용산기지와 그 주변 근현대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유적지 도보 탐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20세 이상 용산주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수강은 다음 달 7일까지 용산구교육종합포털(yedu.yongsan.go.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모집인원은 선착순 30명이며, 수강료는 1만원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은 사대문 안으로 진출하는 한양도성의 관문으로 조선시대부터 군사적인 측면에서 주목받았다”면서 “용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주민들의 문화 정체성과 애향심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4·13 총선 핫클릭] 주유소 알바·LED 선거띠’… 온·오프라인서 튀어야 산다

    [4·13 총선 핫클릭] 주유소 알바·LED 선거띠’… 온·오프라인서 튀어야 산다

    김문수, 택시 운전하며 민심 청취… 김회구, 서민생활 체험 ‘표심잡기’권혁세, 팟캐스트·유튜브 총동원… 임한필, 조선 장군 복장 퍼포먼스 4·13 총선에 도전하는 원외후보들이 ‘현역 프리미엄’을 넘어서기 위해 톡톡 튀는 선거운동과 특이한 공약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4년 동안 지역구를 탄탄하게 관리해 온 현역의원에 비해 불리한 선거운동 시간과 방법상의 제약을 딛고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몸부림이다. 우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는 케이스다. 경기 분당갑에 출마한 새누리당 권혁세 예비후보는 팟캐스트 방송, 유튜브, 웹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총동원해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경제전문가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고양 덕양을에 출사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문용식 예비후보도 정보기술(IT) 기업인 출신답게 팟캐스트·웹진 등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튀는 선거운동이 치열하다. 서울 성동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누리과정 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장관 시절 만 5세 누리과정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지사 시절 ‘택시정치’를 펼쳤던 새누리당 김문수 예비후보는 지난 설 연휴 대구 수성갑 지역에서 운전대를 잡고 민심을 청취했다. 충북 제천·단양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김회구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유권자와 악수만 하기보다는 실제로 민생이 어떤지 체감해보고 싶다”며 주유소 아르바이트, 택배 배달부, 폐지·폐철 수집상, 청소부 등을 체험하는 ‘민생 탐방 시리즈’로 이색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 광산갑에 도전한 임한필 더민주 예비후보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개혁의지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조선시대 장군 복장을 하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청주 청원구 더민주 이종윤 예비후보는 ‘형광LED 어깨띠’로 거리에 나설 때마다 시선을 모으고 있다. ‘셀프 개혁성’ 공약도 눈길을 끈다. 서울 서초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옥임 예비후보는 “의정 효율성에 기초해서 국회의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의원정수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서울 관악을에 출사표를 던진 국민의당 박왕규 예비후보는 국회의원 3선 연임금지, 국회의원 등 정무직 고위 공직자의 급여 또는 세비 30% 삭감 등을 내세워 표심을 파고 들고 있다. 서울 도봉갑에 출마한 장일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노인 전용 면세점을 도입해 70세 이상 노인이 주류와 담배를 싸게 구매할 수 있게 하고, ‘도봉 전용 화폐’도 발행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이색공약을 내놨다. 더민주의 부산 부산진갑 김영춘 예비후보는 틀니 건강보험 대상 연령을 만 60세 이상으로 낮추겠다는 노심(心) 겨냥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예비후보자들의 이런 노력들은 역설적으로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반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재정치연구소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천이 너무 늦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매우 짧고 예비후보 홍보 기간도 120일이지만 선거법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면서 “짧은 시간에 자신을 알리려다 보니 실효성 있는 정책보다 이색 퍼포먼스를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씨줄날줄] 역대 왕조 기념 공간/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역대 왕조 기념 공간/서동철 논설위원

    조선 태조 이성계는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린 고려의 국호와 의장, 법제를 잇는다고 즉위 교서에서 천명한다. 태조는 의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를 새로운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삼은 탓인지 즉위 원년(1392) 벌써 고려 태조 왕건의 제사를 국가 차원에서 지내라고 명한다. 태조 6년(1397)에는 사당을 새로 짓고 태조를 비롯해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충경왕, 충렬왕, 공민왕 등 고려왕 8위를 모셨다. 문종은 즉위 원년(1451) 지금의 경기 연천에 있는 사당을 숭의전(崇義殿)이라 이름 짓고, 충청도 산골에서 숨어 살던 고려 왕실의 자손 왕우지(王牛知)를 찾아내 왕순례(王循禮)로 이름을 고치고 제사를 받드는 책임을 부여한다. 문종은 이곳에 복지겸, 신숭겸,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정몽주의 위패도 모신다. 단순히 고려를 건국한 왕건 한 사람을 위한 제사 공간이 아니라 한 왕조의 역사를 기념하는 성격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역대 왕조에 제사 지내는 기능을 중시했다.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삼성사(三聖祠)가 그렇고, 기자를 배향한 숭인전(崇仁殿)이 그렇다. 이후 역대 왕조의 사당에도 숭(崇)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고 왕이 직접 지은 축문과 제물을 보내기도 했다. 제례와 전각을 관리하는 전감(殿監)에는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삼성사가 황해도 구월산에 있다는 기록은 ‘고려사’에도 나온다. 그런데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이 “단군은 동방의 시조이니 기자와 더불어 한 사당에서 제사 지내야 한다”고 주청하자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삼성사의 단군 위패는 이때 평양의 기자전으로 옮겨졌고, 세종 11년(1429)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합사한 사당을 주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영조는 숭령전(崇靈殿)이라 사액한다. 기자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조선은 신라 박혁거세, 백제 온조왕, 가락국 수로왕을 각각 배향한 경주, 남한산성, 김해의 사당에도 숭덕전(崇德殿), 숭렬전(崇烈殿), 숭선전(崇善殿)이라는 이름을 내린다. 이 6곳의 숭자 돌림 사당에 경주의 숭혜전(崇惠殿)과 숭신전(崇信殿)을 더해 8전(八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숭혜전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숭신전은 탈해왕을 모신다. 신라의 3대성(姓) 경주 박씨, 경주 김씨, 경주 석씨가 별도의 제사 공간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의 역사 인식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역대 왕조를 기념하는 행사에 지금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오늘날 역대 왕조 기념행사는 해당 왕의 후손인 특정 성씨가 주도하고 있으니 조선시대보다 후퇴했다는 느낌도 있다.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니, 특히 고구려나 동명왕을 기념하는 국가적 공간은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보신각 상설타종행사 10년간 1만 8920명 참여

    서울시는 2006년부터 10년째 운영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보신각 상설타종행사’에 1만 9000여명이 참여했다고 12일 밝혔다. 상설타종행사는 보신각터에서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낮 12시 20분까지 진행된다. 시 관계자는 “지난달까지 내·외국인 총 1만 8920명이 타종에 참여해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체험 행사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타종은 사전 신청을 받아 참가자들이 조별로 6번 또는 8번의 종을 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는 보신각종 타종을 신호로 남산봉수대에서는 5개 중 1개의 봉수대에 연기를 피워 조선시대 통신수단으로 사용됐던 것까지 재현하고 있다. 참여 신청은 온라인(sculture.seoul.go.kr)에서 할 수 있고, 참여 후 증서도 제공한다. 온라인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오전 11시부터 보신각 2층에 오면 참여할 수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동·네·빵·네… 서울 골목 베이커리에 줄 서는 이유

    동·네·빵·네… 서울 골목 베이커리에 줄 서는 이유

    서울에 살면서 빵 좋아하는 ‘동네 빵순이’들은 대기업 가맹점이 아닌 동네빵집을 선호한다. 빵이 나오는 예약 시간에 한 시간씩 기다리는 긴 줄도 마다하지 않는다. 동네빵집의 매력은 다양한 맛과 건강한 맛이다. 특히 인기 있는 동네빵집은 천연 효모를 사용한 저온 숙성 방식으로 빵을 만들어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서울의 골목마다 숨어 있는 명물 동네빵집을 소개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오월의 종’ 빵에선 ‘빵맛’이 난다. 처음 먹는 사람은 무슨 맛으로 먹지 싶을 수도 있다. 달콤하지도, 버터와 우유 향이 짙지도 않다. 모양새마저 투박하다. 그러나 한번 먹어 본 이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다. 기본에 충실한 담백함의 힘이다. 정웅(48) 셰프가 만든 빵이다. 시멘트 회사 영업사원이었던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제빵 공부를 시작해 12년 전 경기 고양시 일산에 첫 가게를 냈다. 선생은 대형 서점에 나와 있는 제빵 책이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호밀빵을 주력 제품으로 만들었다. 설탕이나 버터, 계란은 물론 우유도 넣지 않았다. 달콤한 빵맛에 사로잡혔던 대중적 입맛과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9년 전 본점을 일산에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전한 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빵을 밥처럼 먹는 외국인들이 정씨가 만든 빵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다. 오월의 종 관계자는 “초기에는 외국인 손님과 국내 손님 비율이 7대3일 정도로 외국인이 많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내국인 고객이 70% 정도다. 이 빵집의 대표 메뉴는 프랑스 빵인 바게트와 독일 빵인 호밀빵이다. 붉은 크랜베리의 달콤함과 빵의 담백함이 어우러진 크랜베리 바게트는 3000원, 무화과가 듬뿍 들어간 무화과 호밀빵도 3000원이다. 8년간 같은 가격을 유지하다가 최근 재료비 인상으로 값을 조금 높였다. 그래도 ‘착한 가격’이다. 현재 한남동에 1·2호점이 있고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3호점이 있다. 한남동 일대 양식 레스토랑에 식전 빵을 납품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는 ‘피터팬1978’과 ‘독일빵집’ 등 전통적으로 강세지만 파리지앵 느낌을 물씬 풍기는 멋쟁이 빵집부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 빵집까지 다양한 베이커리가 있다. 먼저 파리 뒷골목에서 만날 법한 멋쟁이 빵집으로는 크루아상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는 ‘루엘드파리’가 있다. 크루아상 1개 가격이 3200원이니 절대 싸지 않다. 하지만 크루아상의 맛을 좌우하는 버터를 듬뿍 넣고 저온에서 숙성시켜 겹겹이 쌓인 층이 많아 제대로 된 맛을 낸다. 통밀캄파뉴와 치아바타 등 밥으로 먹는 빵도 튼실하다. 호두단팥빵과 파운드 케이크 등 달콤한 빵도 빼어난 맛이다. 프랑스산 밀가루와 유기농 밀가루를 섞어 쓰기 때문에 빵값은 비싼 편이다. ‘쿠헨브로트’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 빵집이다. 케이크와 과자류 등 제품 구성도 풍성하다. 위치는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쇼핑에서 대각선으로 맞은편이다. 시금치나 치즈를 넣은 빵이 연희동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다. 영등포구 문래동 ‘쉐프조’는 착한 가격에 품질은 강남의 빵집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빵류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이지만 케이크가 강점이다. 특히 당근 케이크와 단호박 케이크는 젊은층은 물론 어른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7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서울의 핫 플레이스인 성동구 성수동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 당당히 맞서는 작은 빵집이 있다. 오로지 맛으로만 동네를 평정한 ‘보난자 베이커리’다. 2014년 3월 처음 문을 열었다. ‘수지맞을 일이 많이 생긴다’는 뜻에서 ‘보난자’(Bonanza)라고 이름 붙였다. 보난자 베이커리는 ‘4무’(無)가 원칙이다. 버터, 우유, 계란, 설탕을 안 넣는다. 천연 발효를 시키는 프랑스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유기농 밀가루와 소금, 물만을 사용해 천연 발효종을 넣고 장시간 저온 숙성시킨다. 덕분에 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다. 건강한 빵이지만 맛은 전혀 밋밋하지 않다. 그래서 ‘마법의 빵’으로도 불린다. 하루에 만드는 빵은 100~120개. 당일 판매만을 원칙으로 정오와 오후 3시, 오후 6시에 각각 빵을 구워 낸다. 인기 메뉴는 치즈볼과 나초코, 크랜베리 호두 등이다. 이정세(39) 사장은 빵을 구워 낸 직후 즉석에서 먹어 보길 권유한다. 맛도 맛이지만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든든하다. 점심때면 젊은 주부들이 아기를 안고 줄을 서는 풍경이 펼쳐진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면서 20대 아가씨부터 중년 주부까지 찾는 손님이 더 다양해졌다. 보난자 베이커리에선 남는 빵을 인근의 성수종합사회복지관에 기부한다.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유명세에 힘입어 최근에는 경기 성남시에 2호점을 열었다. 성북구 성북동에서는 선잠단지 부근에서 가족들이 직접 배양한 천연 효모종으로 빵을 만드는 유기농 수제 베이커리 카페 ‘오보록’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성북구에는 45개의 대사관저가 있고 1만여명의 외국인이 사는데 이들이 오보록의 입소문을 내는 주인공이다. 오보록은 ‘자그마한 것들이 한데 많이 모여 다복하다’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오보록의 특색 있는 빵으로 선잠단지의 특징을 살려 뽕잎을 첨가해 만든 선잠빵이 있다. 오보록 바로 근처에 있는 선잠단지는 조선시대 왕비들이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고자 잠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왕명주(42) 사장은 “대기업 빵집은 한 달이 지나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데 냉장 유통된 호주산 밀가루로 만든 우리 빵은 3일만 지나도 초록색 곰팡이로 뒤덮인다”며 “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먼저 건강한 빵맛을 알아봤고 지금은 한국인 손님이 70% 정도”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지고, 이고…옛 보부상 정취 느껴 보자

    조선시대 보부상(부보상)의 문화와 테마를 담은 문화거리가 경북 울진에 조성된다. 울진군은 오는 5월까지 16억원을 들여 울진읍 울진 5일장 인근에 보부상 문화거리와 광장을 만들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군은 이곳에 소공연장(100㎡)과 벽화, 조형물 등을 만들어 옛 보부상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일대의 전선을 지중화하고 주차장를 새로 만든다. 옛 보부상들은 울진의 울진장, 흥부장, 죽변장이 설 때 수십명씩 몰려들어 간고등어와 소금, 고포미역 등 해산물을 구입한 뒤 봉화와 안동, 영주, 예천 등 내륙지역에서 팔았다. 또 울진장으로 갈 때는 콩, 참깨 등 곡식과 담배와 같은 내륙산 생필품을 날랐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무거운 물건을 운반했다. 이때 보부상들의 옛길인 십이령(바릿재~샛재~너삼발재~저진터재~새넓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재~노루재)을 주로 넘나들었다. 임광원 군수는 “보부상과 관련된 많은 문화가 전해지는 울진에 테마 거리를 조성해 이를 관광자원화하고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면서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울진장날마다 문화거리에서 다양한 공연과 문화행사를 열어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新국토기행] 충남 태안군

    [新국토기행] 충남 태안군

    충남 태안군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해수욕장이 있다. 안면도 두여해수욕장 등 운영을 하지 않는 두 곳을 빼고도 30곳에 이른다. 만리포, 꽃지 등 유명 해수욕장이 포진해 있다.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1978년 지정)이 있는 태안은 559.3㎞의 리아스식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수려한 바다와 기암절벽, 은빛 백사장을 볼 수 있는 해변길만 170㎞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최근 ‘세계의 국립공원’으로 인정해 2007년 12월 7일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름 범벅이 됐던 바다의 생태 가치와 보전 상태가 사고 전처럼 깨끗해졌음을 공식 인정했다. 바다에는 119개의 이름 모를 섬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다. 항·포구가 곳곳에 널려 있고, 안흥항을 중심으로 전국의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낚시 천국’이기도 하다. 철마다 꽃게, 우럭, 대하 등 바다 먹거리가 넘쳐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풍족한 바다 먹거리는 우럭젓국 등 이곳만의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게다가 2018년 이후에는 국내 최장의 해저터널과 교량으로 보령 대천항~안면도 영목이 이어져 주민들은 벌써 국내 최고의 해양관광지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볼거리 ●123만 봉사자의 자취 배어 있는 ‘솔향기길’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123만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닦아 내기 위해 드나들던 길을 둘레길로 만들었다. 그들의 숭고한 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해변을 따라 모두 66.9㎞에 걸쳐 뻗어 있고, 여섯 코스로 나뉜다. 10.2㎞ 길이인 1코스는 가로림만 끝자락 만대항에서 출발한다. 가로림만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갖가지 수산물이 풍부하다. 1코스는 꾸지나무골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원북면 대기리 갈두천까지 네 개 코스였으나 2013년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까지 두 개 코스가 더 만들어졌다. 길 이름대로 소나무가 즐비하게 도열한 길을 걸으면서 아름답고 탁 트인 서해를 감상할 수 있다. 길 아래 해변으로 내려가면 갯바위 또는 갯벌이 맞이한다. 기름 사고를 기억하게 하는 희망변화방조제가 있고 용난굴, 구멍바위, 소코뚜레바위 등 신비한 풍경을 전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트레킹 마니아와 가족단위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자원봉사자도 다시 찾아 되살아난 바다에 환호한다. 정다운 농어촌 풍경과 가까운 항·포구에서 굴과 우럭 등 싱싱한 회를 즐기는 것은 덤이다. 서해안의 대표적 힐링 탐방로다. ●국내 최대 해안 모래언덕 ‘신두리 사구’ 국내 최대 해안 모래언덕이다. 가도 가도 모랫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해안선을 따라 길이 3.4㎞, 폭 0.2~1.5㎞ 규모로 있다. 태안반도 북서부 해안인 원북면에 자리잡고 있다. 신두리 사구는 빙하기 이후 1만 5000여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바닷바람을 막고 파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파도를 내쳐 모래를 유실시키는 인공 방파제와 다른 부분이다. 사구가 발달한 해수욕장에서는 해마다 모래를 사다 뿌리는 풍경을 볼 수 없다. 모래 안에 물을 머금어 갖가지 사구 식물이 잘 자라기 때문에 독특한 생태계를 자랑한다. 신두리 사구는 국내 최대 해당화 군락지로 유명하다. 갯완두, 갯방풍 등 희귀한 해안식물들도 자생한다. 이미 다른 데서 보기 힘든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금개구리 등 희귀 동물도 서식 중이다. 특히 두웅습지는 희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신두리는 사구로는 드물게 천연기념물(제431호)로 지정됐다. ●1만 3200여종 식물 천국 ‘천리포수목원’ 국내 첫 민간 수목원이다. 소원면 의항리 62만㎡에 조성된 수목원은 ‘나무와 꽃의 보고(寶庫)’다. 1만 3200여종의 식물이 심어져 있다. ‘귀신 쫓는 나무’로 알려진 호랑가시나무 370여종에 목련 400여종, 동백나무 380여종 등이 있다. 목련 종류는 세계적이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가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했다. 아시아에서 최초였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때에는 국내 수목원 중 유일하게 관광명소로 선정됐다. ‘서해안의 푸른 보석’으로 불리는 수목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잘 가꿔져 있다. 이 수목원을 만든 사람은 ‘푸른 눈의 한국인’ 고 민병갈(미국명 칼 페리스 밀러·1921~2002)씨다. 미 군정 때인 1945년 통역관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이곳을 골라 50년간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그의 묘도 이 수목원에 있다. 2009년 4월부터 일반에 개방돼 누구나 아름다운 비경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국보 1호 숭례문 복원 일등공신 ‘안면송’ 안면도를 가로지르면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른바 ‘안면송(松)’이다. 줄기가 붉은 적송이지만 안면도 것임을 명명해 특별 대접한다. 몸통이 곧게 치솟은 자태가 흡사 빼어난 미인을 연상시킨다. 안면송은 단일 수종으로 500년 넘게 보호를 받으면서 귀하게 쓰였다. 우수한 품질과 장대한 크기로 고려시대부터 궁궐이나 선박용으로 사용됐고, 조선시대 경복궁을 지을 때도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 불에 탄 국보 1호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도 안면송이 쓰여 그 우수성이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요즘은 솔숲이 피톤치드를 뿜어내 심신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인기다. 안면송이 빼곡한 안면읍 승언리의 자연휴양림은 방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산책로가 있어 그윽한 솔향과 솔바람을 즐기며 걷기에 제격이다. 휴양림과 가까운 꽃지해수욕장 앞에 있는 할미할아비바위도 안면도를 상징하는 것이나 안면송이야말로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펼쳐진 안면도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대표 주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구불구불한 서해안 풍경을 한눈에 ‘백화산’ 정상에 오르면 리아스식 서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태안의 제1경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지만 유적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것이 백제 최초의 마애불이라 할 수 있는 국보 307호 태안 마애삼존불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달리 소박한 미소를 지어 친근한 느낌이다. 게다가 중앙에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일반적인 삼존불의 형식과는 달리 보살상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삼존불 옆에 태을암이 있다. 호젓한 작은 절이다. 백화산에는 또 흥주사도 있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 앞에 충청도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음기로 가득한 흥주사에 양기를 채워주는 존재로 여겨져 자식 없는 사람이 나무 앞에서 기도하면 아이를 얻는다는 설이 있다. 수령이 900년이 넘는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먹거리 ●시원한 맛과 담백한 맛의 조화 ‘게국지’ 김장을 할 때 만들어 온 토속음식이다. 김장한 뒤 남은 배추 겉껍질이나 무, 무청 등에 삭힌 게장 국물을 넣어 숙성시키는 게 핵심이다. 게장은 충남 서해안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어서 흔했다. 꽃게에 박하지(돌게), 능쟁이, 황발이(농게) 등 각종 게가 갯벌에 널려 있다. 여기에 황석어젓과 밴댕이젓 등 젓갈을 넣어 버무리기도 한다. 호박, 고춧가루도 넣는다. 그런 다음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키면서 끓여 먹으면 겨울철 별미로 입맛을 크게 북돋운다.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고, 구수하면서 칼칼한 맛도 난다. 갈수록 맛이 진해진다. 짭짜름하면서 개운하다. 자칫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 등을 보충하는 데도 제격인 음식이다. 게국지는 겟국지, 갯국지, 깨꾹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 먹고 남은 게장 국물과 시래기조차 아까워 반찬으로 활용했던 게 독특한 음식을 창조했다. 서민 음식이지만 요즘은 안면도 등 태안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 열광한다. ●사골처럼 진한국물의 유혹 ‘우럭젓국’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겨울철로 접어들면 태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우럭젓국이다. 사골처럼 뿌옇게 우러나 담백하면서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우럭은 주로 회가 인기지만 말리면 쫀득쫀득하고 구수하다. 갓 잡은 우럭을 대가리부터 몸통을 모두 갈라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2~3일간 햇볕에 말린다. 이를 태안 육쪽마늘을 넣은 쌀뜨물에 4~5시간 끓인다. 여기에 무, 대파, 청양고추, 두부 등을 넣고 다시 끓이면 완성된다. 맛이 은근하고 구수하다. 끓일수록 짜지지만 깊은 맛에 먹고 나면 속이 개운해져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 최근에는 관광객이 태안에 오면 많이 찾아, 갈수록 전국적인 음식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못 생겨도 속 푸는데는 최고 ‘물메기탕’ 옛날에는 잡자마자 바다에 다시 버려 ‘물텀벙’이라고 불린 물고기로 만든 탕이다. 버릴 때 물메기가 물에 빠지면서 내는 ‘텀벙’ 소리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물메기는 생김새가 흉해 어민들한테 생선으로 취급을 받지 못했다. 요즘은 스타 물고기다. 특히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철로 접어들면 술안주는 물론 해장용으로 인기가 대단하다. 각종 양념을 넣고 끓이지만 송송 썬 김치를 넣고 김칫국처럼 끓이기도 한다. 시원한 맛에 속이 확 풀린다. 비린내와 기름기가 없어 담백한 맛이 난다. 회와 찜으로도 판매한다. 물메기는 쏨뱅이목 꼼치과에 속한다. 물메기는 날씨가 추워지는 입동부터 동지까지가 가장 맛있다. 이때쯤 태안반도 항포구 선창가에 물메기를 풀어내는 배들이 북적인다. 겨울철 항포구와 시장 등에는 물메기탕으로 속을 풀려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겨울 되면 더 달콤해지는 ‘호박고구마’ 육질이 호박처럼 노란색을 띤다. ‘꿀 고구마’로 불릴 만큼 당도가 높다. 섬유질과 수분이 많아 소화도 잘된다. 안면도와 남면을 중심으로 태안군 전역에서 재배하고 있다. 서늘한 기후 속에 황토에서 무농약으로 길러 웰빙식품으로 인기다. 가을에 수확하지만 숙성과정을 거쳐 겨울이 되면 맛이 더 좋아지는 특징이 있다. 태안 곳곳에 호박고구마 전용 저온저장 창고가 있어 겨울철 별미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울진에 ‘보부상’ 문화거리·광장 조성

    조선시대 보부상(부보상)의 문화와 테마를 담은 문화거리가 경북 울진에 조성된다. 울진군은 오는 5월까지 16억원을 들여 울진읍 울진 5일장 인근에 보부상 문화거리와 광장을 만들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군은 이곳에 소공연장(100㎡)과 벽화, 조형물 등을 만들어 옛 보부상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또 이 일대의 전선을 지중화하고 주차장를 새로 만든다. 옛 보부상들은 울진의 울진장, 흥부장, 죽변장이 설 때 수십여명씩 몰려들어 간고등어와 소금, 고포미역 등을 해산물 등을 구입한 뒤 봉화와 안동, 영주, 예천 등 내륙지역으로 행상했다. 또 울진장으로 갈 때는 콩· 참깨 등 곡식과 담배와 같은 내륙산 생필품을 날랐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무거운 물건을 운반했다. 이때 보부상들의 옛길인 십이령(바릿재-샛재-너삼발재-저진터재-새넓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재-노루재)을 주로 넘나들었다. 임광원 울진군수는 “보부상과 관련된 많은 문화가 전해지는 울진에 테마 거리를 조성해 이를 관광자원화하고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면서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울진장날마다 문화거리에서 다양한 공연과 문화행사를 열어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울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刀는 道’ 丙申年 포용과 인내, 기다림으로 탄생한 홍석현 도검장의 ‘칼의 노래’

    ‘刀는 道’ 丙申年 포용과 인내, 기다림으로 탄생한 홍석현 도검장의 ‘칼의 노래’

    2000℃에서 70시간 쇳물 끓여 얻은 70㎏ 쇳덩이 찍어내고 깎은 것이 아니라 이 땅이 내어 준 것 수천 번 담금질과 수만번 두드림을 참고 견뎌내면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으리라, 칼도 삶도 ‘칼’이란 잡는 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지지만 만드는 사람에게 칼은 ‘포용, 인내, 기다림’이다. 장석주 시인이 ‘대추 한 알’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라고 노래한 것처럼 칼 한 자루는 길게는 1년 2개월의 혹독한 과정을 제 안에 품고서야 태양빛에 제 몸을 비추일 수 있다. 지난 3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전통도검연구제작소. 전통 환도(環刀)의 대가인 도검장(刀劍匠) 홍석현(62)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설을 앞두고 명검 제작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영하의 추위 속에 사람과 쇠와 불이 만나 신비로운 탄생을 빚어낸다. 홍씨는 “병신년 새해 우리 국민 모두가 명검의 영묘한 기운을 받아 평안한 삶을 누리고 바라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후 1시 화덕이 뿜어내는 열기에 15평 남짓한 작업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홍씨가 망치로 쇠를 수도 없이 내리쳤다. 34년째 반복되는 일이지만 이 작업은 여전히 고되다. 28년간 손을 맞춘 제자 김왕섭(50)씨가 달궈진 쇳덩이를 집게로 단단히 잡고 스승의 망치질에 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칼을 만들려면 우선 이 쇳덩이를 평평하게 펴야 됩니다.” 홍씨가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도검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전문으로 하는 환도는 조선시대에 사용됐던 대표적인 군도(軍刀)다. 2003년 조선시대의 ‘사인검’(四寅劍·조선시대 왕의 호신 및 장식용 칼)을 복원해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가 만든 칼은 최고가가 2000만원을 호가한다. “전남 여수 만성리의 해변에서 퍼 나른 사철로 직접 이 쇳덩이를 만듭니다. 불을 지피고 예열을 해 쇳덩이를 만드는 데는 최소 5일이 걸립니다.” 홍씨가 망치질을 멈추고 쇳덩이를 다시 화덕에 넣은 뒤 이마의 굵은 땀방울을 훔쳐 냈다. 사철은 철 성분이 들어 있는 모래다. 이 모래를 황토로 만든 대형 노(·항아리)에 넣어 70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가열한다. 지름 110㎝의 대형 노는 어른 키만 한 높이다. “먼저 소나무 장작으로 24시간 노를 예열합니다. 예열이 끝나면 질 좋은 숯을 잘게 쪼개 한가득 넣는데 그 양이 260㎏ 정도 됩니다. 숯의 질이 안 좋으면 풀무질을 아무리 해도 노 안의 온도가 섭씨 2000도까지 오르질 않지요. 숯 더미 위에 사철 120㎏을 넣으면 숯과 숯 사이의 틈으로 사철이 스며들어 갑니다.” 70시간이 지나면 사철의 불순물은 모두 타서 사라지고 쇳물만 노의 윗부분까지 끓어 차오른다. 이때 노를 부수면 쇠가 나온다.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면서 조심스럽게 노를 깨뜨린다. “이런 식의 제련은 1년에 한 번 합니다. 이렇게 해서 70㎏의 쇠를 얻죠. 이렇게 칼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제철소에서 찍어 낸 쇳덩이를 깎아서 만든 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련 한 번 하는 데 1000만원 정도 비용이 듭니다.” 그는 본디 칼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철소의 쇠로 만든 칼은 너무 강해요. 강한 칼은 잘 부러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련한 칼은 질깁니다. 휘어지면 휘어졌지 부러지지 않아요. 그렇게 질긴 특성이 꼭 우리 민족을 닮았죠.” 질긴 게 강한 것보다 더 단단한 것일까. 그는 일화로 답했다.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제가 만든 칼을 향해 총을 쏘는 실험을 했어요. 총이 이기는지 칼이 이기는지 실제 확인해 보자는 거였죠. 사수가 내 칼날을 향해 총을 쐈는데, 총알이 내 칼에 닿자 반으로 쪼개졌어요. 실은 저도 놀랐어요.” 홍씨는 1시간은 족히 망치로 쇳덩이를 두드렸다. 쇳덩이가 납작한 철판으로 변하면 잘게 자른 뒤 한데 모아 다른 화덕에 넣었다. 이것이 녹아 다시 쇳덩이가 되면 망치질 작업이 반복된다. “이제 담금질과 망치질을 해야 합니다. 작업을 보는 것은 여기까지 하고 차를 나누며 얘기를 나눕시다.” 작업장 한쪽에 앉은 그의 얼굴이 익은 사과처럼 벌게져 있었다. 그는 매일 8~9시간씩 칼을 만든다. “납작하게 만든 쇳덩이를 ‘사철괴’라고 부르는데 섭씨 1200도로 달군 다음 차가운 물에 담급니다. 이게 담금질이에요. 식은 사철괴를 다시 화덕에 넣고 쇠에서 붉은빛이 나면 꺼내서 망치로 두드립니다. 납작해지면 늘어난 사철괴를 반으로 접어 다시 때리죠. 이걸 반복할수록 쇠가 질겨지는 겁니다.” 이후 나온 손잡이 없는 칼, 즉 칼의 몸체를 도신(刀身)이라고 부른다. 줄을 이용해 도신의 날과 칼등의 모양을 다듬는다. 그리고 도신에 다시 열처리와 담금질을 한다. 칼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진짜 칼은 도신에 물결과 같은 유려한 무늬가 생기는데 이것을 ‘인문’이라고 합니다. 제련하지 않은 칼에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죠. 도신이 완성되면 거친 숫돌부터 고운 숫돌까지 차례대로 연마해 날을 세웁니다. 날 세우는 데 딱 일주일이 걸리지요. 칼 특유의 광이 나도록 소가죽으로 문지르면 그제야 비로소 칼이 나오는 것입니다.” 칼집부터 손잡이까지도 칼의 중요한 부분이다. 장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칼의 가치가 달라진다. 도신을 만드는 데 통상 한 달 반이 걸리는데 오히려 시간은 장식에 더 많이 걸린다. 홍씨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인 ‘단용환두대도’의 경우 길이 83.5㎝의 칼을 만드는 데 1년 2개월이 걸렸다. 단용환두대도는 백제 무령왕릉의 출토품을 재현한 작품이다. 그는 1999년 이 칼을 만들기 위해 1년 내내 공주 무령왕릉을 다녀왔다고 했다. 칼 손잡이에 있는 용을 품은 고리가 특징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칼은 태생부터 다릅니다. 일본의 것은 사납죠. 싸우기 위해 만든 거예요. 우리 칼은 우아합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징표였고, 장군의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었고, 조상의 뜻을 기리는 집안의 가보였습니다.” 그는 칼을 만들수록 칼이 태어나는 과정이 우리들 인생과 같게 느껴졌다고 했다. “뜨거운 화덕에 들어갔다가, 차가운 물에 빠졌다가, 망치로 두들겨 맞고…. 쇠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고달픕니까. 그런데 그런 시련을 참고 견뎌서 명검이 되는 거죠. 다들 힘들고 어렵다고 하잖아요. 모두들 부디 이겨 내시기를 빕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전통 환도(環刀)의 도신(칼 몸체) 제작 과정 ▶사철을 제련해 쇠 추출 ▶쇠에 함유된 불순물 제거 ▶쇠를 두드려 납작하게 만들고 쪼개기 ▶쪼개진 쇠를 차곡차곡 쌓고 가열 ▶‘괴’(덩어리)의 형태로 제작 ▶괴를 두드려 펴고 접어서 다시 두드리고 찬물에 담그는 과정 반복 ▶괴를 도신의 모양으로 늘이기 ▶도신의 날 형태 잡기 ▶열처리 ▶날 세우기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내포평야와 합덕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내포평야와 합덕제

    우리는 옛사람의 지혜와 기술을 종종 과소평가하곤 한다. 농업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메워 간척을 하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노력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됐다. 김제 벽골제가 백제시대 저수지라는 것은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있다.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오랫동안 항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간척사업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포평야서 농사짓기 위해 당진 합덕제 축조 지금의 충청남도 서북부, 이른바 내포(內浦)에서도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이 활발했고 방죽을 만들어 농업 용수를 공급했다. 이 지역의 농업 용지와 용수를 인위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은 빠르면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아직 문헌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민간 사업이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당평야로 불리는 당진과 예산 일대의 평야는 상당 부분이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으로 새로 만들어진 농토다. 당진 합덕제(堤)는 내포평야로 불리던 이곳에서 물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쌓은 인공 저수지다. 저수 면적만 103정보에 이르렀다. ●수리민속박물관·비석 통해 지역 농업 역사 파악 합덕제의 축조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의 고려와 싸우고자 우물을 판 것이 시초라는 설이 그 하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면천 산천’에 나오는 벽골지가 곧 합덕제로 삼한시대나 삼국시대 축조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다른 하나다. 어쨌든 합덕제의 축조 시기는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다. 합덕제는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일대에 있다. 주변은 광활한 평야지대다. 합덕제는 1964년 예당저수지가 완공됨에 따라 역할을 잃으면서 논으로 바뀌었다. 바로 옆에는 이 지역 농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2005년 세워진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있다. 합덕제의 서쪽 끝으로는 당진과 예산을 잇는 4차로 큰길 예당평야로(路)가 지난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예당평야와 합덕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예당평야로가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곳에 합덕제와 관련된 비석이 줄지어 있다. 지금도 8개의 비석이 남아 있다. 동네 노인들의 이야기로는 과거에는 훨씬 더 많은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선정비는 곧 합덕제를 보수한 기록이니 역사만큼이나 수리도 잦았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43년(1767) 세워진 ‘연제중수비’다. 합덕제가 조선시대에는 연제(蓮堤)로도 불려졌음도 알 수 있다. 지금도 내부에는 상당한 넓이의 연밭이 남아 있다. ●1771m 석축제방 되살려 연못 다시 조성하기로 당진시는 합덕제를 단계적으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1771m의 석축제방을 되살려 옛 담수 면적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6만 769㎡의 연못을 다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와 다블뤼 주교의 유적인 신리성지가 지척이다. 1929년 지은 합덕성당은 수리민속박물관에서 불과 200m 떨어져 있을 뿐이다. 김대건 신부와 다블뤼 주교도 자주 오갔을 합덕제가 복원되면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나아가 복원된 합덕제는 관광용 연못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충남 지역의 가뭄으로 예당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금강 백제보의 물을 관로로 수송하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환경 변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예당저수지의 기능이 다시 한계에 부딪친다면 합덕제도 수리시설로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학생 디자인부터 창업까지 지원하는 ‘계원창작상단’

    학생 디자인부터 창업까지 지원하는 ‘계원창작상단’

    계원예술대학교가 현대판 디자인 보부상단 ‘계원창작상단’으로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보다 실질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해 눈길을 끈다. 계원창작상단은 지난 2015년에 출범한 계원예술대학교(총장 이남식)의 학교기업이다. 학생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산학협력 회사와 함께 신제품 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인 사업이다. 보부상단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그만큼 창작상품의 유통비즈니스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학교기업 부대표인 리빙디자인과 안수연 교수는 “조선시대 보부상단이 경제 활성화를 주도했듯 계원창작상단은 창작상품의 유통 비즈니스 모델로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제작, 홍보, 판매, 수익창출까지 해볼 수 있는 창업 프로세스를 경험해 청년 사업가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계원창작상단은 매학기 마다 쏟아지는 학생들의 좋은 디자인 아이디어가 학기말 평가 후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시작됐으며, 아이디어의 생산, 홍보, 글로벌 마케팅, 수익창출까지 지원한다. 대외적으로도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학교기업 사업 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음으로써 정부 지원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계원창작상단은 리빙디자인과, 산업디자인과, 화훼디자인과 등 라이프스타일 계열의 3개 학과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단순 과제 제출용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제품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어느 때보다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학교기업에 참여 중인 산업디자인과 김 모양(여/22)은 “계원창작상단을 통해 제품의 기획, 생산, 마케팅까지 창업을 미리 엿볼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누구의 아이디어가 채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두들 전보다 더 재밌고 힘차게 작업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계원창작상단은 ‘창작가게’, ‘창작비즈니스’와 ‘창작카페 계수나무’로 구성되어 있다. 창작가게는 학생들의 아이디어 중 실용성과 경제성을 겸비한 디자인 상품을 선별해 유통/판매하는 큐레이션 커머스로서 현재 교내의 ‘갤러리27’에 오픈돼 있다. 창작비즈니스는 가족회사나 관련 산업체, 정부 기관 등과 연대해 산학협력 제품을 개발/유통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우수한 학생작품을 양산 제품화해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창작카페 계수나무는 커피 판매뿐 아니라 신제품 론칭쇼, 창작 워크숍, 세미나 등을 열 수 있고 제품을 홍보하는 공간으로서, 현재 교내에 마련돼 있으며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한편, 계원창작상단은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리빙디자인과 학생들이 (주)루미앤의 주문식 수업을 진행한 결과 20여개의 조명 제품으로 디자인 특허를 출원했고, 홍콩국제조명박람회에 2년 연속 출품했다. 2015년에는 ㈜인앤코리아의 도움을 받아 MBC 드라마에 조명제품을 협찬하고, CJmall에 납품하기도 했다. 또, 2016년 1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용품 박람회인 HOMI에 창작상단 단독 부스를 설치하고, 창업한 학생들의 제품과 창작상단 PB제품을 전시해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첫발을 내딛기도 했다. 계원예대 관계자는 “2016년에는 이미 가족회사로 산학협력 MOU를 맺은 (주)SM엔터테인먼트, (주)이도핸즈, (주)하델시스 등과도 협력해 학생들이 직접 제품개발에 참여함으로써 취창업의 기회를 확대할 방침”이라며 “현재 100억원 규모의 창업 및 산학협력관 CREATIVE EPICENTER를 건립 중이다. 학생들이 이곳에서 청년 사업가가 되기 위한 재능을 마음껏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제주의 新유배인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제주의 新유배인

    지난해 12월 31일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비판했던 사람이 법원으로부터 5년의 시베리아 유배형을 정식으로 선고받았다. 시베리아 유배형은 원래 동방을 침략한 러시아제국이 시베리아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자국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면서 탄생한 것이다. 이후 건국된 소련은 이 형벌을 더욱 강화했지만 소련이 붕괴됐음에도 유배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가 하면 독일은 문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배 캠프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기센시는 문제 청소년들을 9개월간 시베리아로 보내 갱생교육을 받게 하는데 섭씨 영하 55도의 극한지에 TV도 인터넷도 없고 가이드와 함께 외딴집에 살면서 빨래와 취사를 직접 한다. 이 프로그램은 과도한 소비문화 유혹에서 청소년들을 격리시킨다는 취지로 진행 중이다. 독일 청소년 선도 단체는 한 해 600여명의 문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갱생교육을 하고 있지만 유배 캠프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유배로 악명 높은 10개의 섬’이라는 주제로 유배 관광을 안내하고 있다. 영화 ‘빠삐용’으로 유명한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을 비롯해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섬’ 등 이색 관광지로 유배지를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유배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령 노퍽섬을 중심으로 매년 ‘유배의 섬’ 콘퍼런스가 개최되고 있다. 태즈메이니아, 뉴칼레도니아, 괌, 사할린 등 여러 섬들이 참여해 유배지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방문 장소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덕분에 주요 ‘유배의 섬’들이 현재 세계유산 등재 신청 리스트에 올라갔다. 보다시피 유배라는 주제는 이렇게 전 세계에 걸쳐서 형벌이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또는 이색 관광지, 세계문화유산 등으로 활발하게 애용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최고의 유배지였던 제주도에서는 이와는 좀 다르게 전개돼서 흥미를 끈다. 최근 미국의 경제전문 미디어 블룸버그는 제주도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했다. 제주 경제가 국가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하고 있는데 그 배경이 순유입 인구 증가와 이전기업 효과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주요 도시 인구가 감소세인 반면 제주도에는 매달 평균 1000여명이 넘게 유입되고 있는 점을 중요한 성장 배경으로 봤다. 이렇게 유입되는 사람들을 필자는 ‘자발적 유배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한 조선시대 300여명의 유배인들과는 전혀 다른 헬조선 시대의 유배인들이다. 그들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육지부의 도시를 자발적으로 버리고 제주도로 들어가 삶의 시계를 좀 늦추고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추사는 불행했지만 제주는 행복했다”면 이제 그들은 “그들도 행복하고 제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최근의 현실은 땅값이 뛰고 살 집이 없어지는 등 제주마저 급격히 ‘헬조선’이 되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그들도 불행하고 제주도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간 조만간 그들은 돌아설 곳이 없는 유배인이 될지도 모른다.
  • ‘건강미 여신 등극’ 안다, 사임당 드라마 촬영현장서 탄탄 복근 공개

    ‘건강미 여신 등극’ 안다, 사임당 드라마 촬영현장서 탄탄 복근 공개

    SBS드라마 사임당에 캐스팅된 패셔니스타 디바 ‘안다’의 드라마 촬영 본이 공개됐다. 공개된 사진에서 안다는 타이트한 블랙진과 스트라이프 티셔츠 만으로도 완벽한 명품라인을 더욱도드라지게 만들었으며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자태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사임당 일기와 의문의 미인도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사임당’에서 안다는 1인 2역으로 등장하며 현대에서는 ‘안나’역으로, 조선시대에서는 중국통역사인 ‘리쉬’역으로 등장한다. 가수 안다는 173cm의 빼어난 키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몸매와 패션센스를 뽐내 두터운 팬층으로 최근 방송과 광고시장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가운데, SBS드라마 ‘사임당’까지 캐스팅되어 연기자로서의 변신이 기대되고 있어 앞으로의 활동에 귀추가 주목되는 라이징 스타이다. 한편, SBS드라마 사임당은 2016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이영애, 송승헌, 오윤아, 박혜수, 윤석화, 윤다훈, 최철호, 최종환, 박정학, 윤예주, 김영준, 이주연, 홍석천 등이 출연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기 성남

    [新국토기행] 경기 성남

    성남시는 경기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시민이 행복한 성남’이란 슬로건 아래 급격하게 성장한 성남시는 이젠 복지도시로 질적 발전을 꾀하고 있다. 현재 인구는 97만명에 이르며 곧 100만명을 넘어 제2의 도약을 꿈꾼다. 서울 중심부에서 한강을 접한 동남방 26㎞ 거리에 있다. 성남은 서럽고 아픈 기억을 갖고 태어났지만 지금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동쪽으로 광주시 중부면과 하남시에, 서쪽은 과천시와 의왕시, 남쪽은 용인시 수지와 광주 오포, 북쪽은 서울 강남·송파구와 접한다. 1968년 시작된 서울시의 무허가 건물 철거 정책에 따라 서민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도시가 형성됐다. 1973년 광주시에서 독립돼 새로운 도시가 됐다. 분당신도시가 들어서고 판교 개발이 이뤄지면서 ‘제2의 강남’이라 불린다. 재정자립도가 지난해 전국 5위 안에 들 만큼 ‘가난’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시가 됐다. 볼만한 옛것은 적지만, 도시 성장과 함께 생겨난 현대적 볼거리와 자랑거리가 넘쳐 나는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가 됐다. >>볼거리 ‘성남 9경’ 성남지역 한쪽에선 정겨운 마을장이 열리고, 반대쪽에는 현대예술의 향연이 펼쳐지며, 다른 쪽에서는 세계 첨단산업이 한데 모여 대한민국을 견인한다. 우리나라의 미래와 과거를 한눈에 볼 수도 있다. 그중 빠뜨리지 말아야 할 ‘성남 9경’은 꼭 한 번 둘러봐야 할 필수코스다. 1경 - 시민이 행복한 사랑방 ‘성남 시청’ 성남시청사는 늘 시민들로 북적인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시민들을 반기고, 여름엔 물놀이장이 아이들을 손짓한다. 시청사 맨 뒤에는 북카페와 장난감도서관이 있어 아이들과 학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민이 주인인 성남’이란 이재명 시장의 시정철학을 녹여 부드럽고 친숙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연중무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중원구 성남대로 997에 있다. 2경 - 도심서 맛보는 미속 5일장 ‘모란장’ 전국 최대 규모 민속 5일장으로 알려졌다. 신도심과 구도심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잡았다. 매월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 열리는 도심 속 장터다. 도심에서 열리다 보니 접근성이 좋다. 1958년 32세에 대령으로 예편한 김창숙 전 광주군수는 당시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인 지금의 자리에서 제대군인을 모아 황무지 개간사업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늘어 마을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 평양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모란봉을 연상해 ‘모란’이라 정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자녀들의 교육 문제와 대원들의 생필품 조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1962년쯤부터 모란장을 열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하철 8호선 모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3경 - 못 잊을 치욕의 현장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잘 정돈된 산길을 따라 20여분 올라가면 해발 490m의 산세와 아름다운 굴곡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야트막한 성곽을 만난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서울 시내와 성남시가 훤히 눈에 들어온다. 광주시에서도 오를 수 있다. 인조 때 ‘삼배구두’(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것)로 잘 알려진 치욕의 현장이다. 하지만 효자우물에 얽힌 ‘하늘도 감동한 정남이 이야기’ 등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전설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홈페이지는 www.namhansansung.or.kr. 4경 - 도시 속의 사찰 ‘봉국사 대광명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다. 현종 15년(1674) 임금은 어려서 일찍 숨진 명혜, 명선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주의 능 근처에 있던 이 절을 다시 짓고 이름을 ‘봉국사’라 지었다. 원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나 이 절에서는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대광명전은 조선 후기 불전 형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수정구 태평로 79에 있으며 홈페이지는 www.bongguksa.or.kr. 5경 - 생활이 곧 예술이다 ‘성남 아트센터’ 국내 최고 수준의 공연장인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앙상블시어터 등 3개의 극장을 갖추고 있다. 공연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본관, 큐브미술관으로 나뉘어 있는 전시장과 다양한 문화강좌를 소개하는 아카데미, 최고의 기술을 갖춘 음악분수와 야외광장, 편의시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문화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미디어센터에서는 다양한 방송예술활동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분당구 성남대로 808에 있고, 분당선 이매역(성남아트센터) 1번 출구를 이용하면 된다. 6경 - 가족과 즐기는 푸르름 ‘중앙공원’ 분당 정중앙에 자리한 중앙공원은 숲과 호수가 어우러지는 대표적인 녹지공간이다. 옆으로 탄천의 곁줄인 분당천이 주변을 둘러 흐르고, 고인돌 정원과 수내동 가옥 등 지방문화재를 복원해 볼거리를 더했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향토적 정취와 옛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야외공연장은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이 열리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연스러운 경관은 영화 또는 TV 촬영, CF 제작 장소로 인기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견학을 오는 등 국내 최고수준의 조경시설을 자랑한다. 분당구 성남대로 550에 있고 지하철 분당선 서현역 2번 출구에 있다. 7경 - 생태학습부터 레저까지 ‘탄천’ 30여㎞ 길이의 탄천을 걸어보자.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자연과 살아 있는 수변이 환상적이다. 물놀이장, 파크골프장, 습지생태원이 있고 자전거 라이딩 장소로도 인기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류다. 전체 길이는 36㎞로 성남시를 관통하는 구간은 16㎞에 이른다. 성남시에 있는 지류로는 용인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동막천, 율동공원과 중앙공원을 관류하는 분당천, 판교지구를 흐르는 운중천, 금토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등이 있다. ‘탄천’이란 지명은 ‘숯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조선시대 학자로 본관이 경기도 광주인 이지직(1354~1419)의 호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8경 - 힐링이 필요하다면 ‘율동공원’ 율동공원은 커다란 호수를 중심으로 잔디밭과 야산 등 원래의 자연을 최대한 살려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한다. 공원 내 책 테마파크는 도서관, 책과 관련된 조형물들과 함께 바람·시간·하늘·물·음악 등 7가지 테마에 맞춰 조성된 문화공간이다.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가와 휴식,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분당구 문정로 145에 있다. 9경 - 유럽에 온 듯한 ‘정자동 카페거리’ ‘테라스 거리’라고도 불린다. 커피 향과 은은한 음악이 흐르며, 각각의 상가마다 독특한 건물 모양과 화려한 조명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름답고 멋진 테라스를 보면 마치 외국의 명물거리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주상복합건물인 파라곤과 상떼뷰리젠시 두 건물 사이에 있는 4차선 도로 500여m 길가에 50여개의 카페,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다. 2005년 정자동에 파라곤, 아이파크, 상떼뷰리젠시와 같은 초고층 주상복합 오피스텔, 빌딩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상가 1층에 하나둘씩 카페와 일식, 중식, 이탈리안 음식 등 다양한 레스토랑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됐다. 유럽 노천카페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낮에는 테라스에서 책 한 권 들고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저녁에는 산책을 즐기기에 좋아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분당구 정자일로 234 일대에 있다. 분당선 정자역 4번 출구와 신분당선 정자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먹거리 50여년 노하우가 진국일세, 닭죽 끓이는 마을 ‘남한산성 닭죽촌’ 남한산성 닭죽은 성남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다. 수정구 단대동 일대에 자리한 논골민속마을 닭죽촌은 1970년대부터 남한산성 등산로 어귀인 은행동에 있던 것이 1998년 인근 단대동으로 집단으로 옮겨와 현재 30여곳이 전통을 잇고 있다. 초기에는 일부 허름한 식당들이 은행동 산 밑에 천막을 치고 닭죽 장사를 했다. 생활이 어려워 닭을 팔았고, 남한산성에 놀러 온 사람들은 계곡에 발 담그고 닭을 먹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가마솥에 닭을 삶아서 죽하고 같이 먹었다. 밑반찬도 달랑 김치 한 가지였다. 요즘은 닭죽을 끓이는데 가마솥 대신 뚝배기(도가니)를 사용한다. 퓨전 닭죽에는 찹쌀·인삼·대추·마늘·밤 등 7~8가지 재료가 골고루 들어간다. 미리 고아낸 육수에 닭을 함께 넣고 20분 정도 펄펄 끓이면 구수한 닭죽이 완성된다. 육수 맛은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랜 세월만큼 각자 고유의 육수 비법을 간직하고 있다. 단대동으로 이전한 후 닭볶음탕·유황오리·더덕구이·아귀찜 등 메뉴가 늘었다. 닭죽은 피부미용과 골다공증에 효과가 있고 단백질이 풍부해 두뇌 활동을 촉진한다. 각종 질병예방과 산후 회복에도 좋아 예부터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지하철 8호선을 이용할 경우 산성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버스는 33-1, 88, 462, 4419, 88-1번 등을 이용하면 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경남 양산 신흥사에서 보물급 복장유물 발견

    경남 양산 신흥사에서 보물급 복장유물 발견

    조선시대(1582년) 중창된 전통사찰로 경남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신흥사 대광전 석조여래삼존상에서 보물급 가치가 있는 복장유물(腹藏遺物) 10건이 발견됐다. 양산시립박물관은 28일 신흥사 대광전(보물 제1120호)에 봉안된 석조여래삼존상(경남유형문화제 제577호)의 복장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제(銅製) 후령통(候鈴筒·복장을 넣는 통)과 불상 발원문, 각종 경전류 등 복장유물 10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복장유물은 불상이나 불화를 조성하면서 안에 함께 넣은 불교경전 등 각종 유물이다. 신흥사는 대광전 석조여래삼존상의 복장유물이 일제시대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복장품을 다시 봉안하기 위해 양산시립박물관에 의뢰해 조사하다 오른쪽 협시보살상인 보현보살상에서 복장유물을 발견했다. 발견된 발원문에는 삼존상은 강희 22년(1682년)에 제작했으며 조선 후기 대표적인 불상 조각승려인 승호(勝浩)가 조성 총책임을 맡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따라 삼존상 제작 연대와 조각 승려가 처음 밝혀졌고 이 삼존상은 승호가 제작한 불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작품이란 사실도 확인됐다. 양산시립박물관은 발견된 전적류 가운데 ‘천노금강경’(川老金剛經)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말기 대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홍무20년(1387)에 간행한 천노금강경(川老金剛經·보물 제1127호)과 동일본 이어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발견된 유물은 양산시립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양산박물관은 경남도 문화재위원 권고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신청을 추진할 계획이며 보존처리 작업 등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달 말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발견된 복장유물은 조선시대 불교조각을 비롯해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톡!톡! talk 공무원] ‘5대 국새 제작 총괄’ 이수길 인사처 사무관

    [톡!톡! talk 공무원] ‘5대 국새 제작 총괄’ 이수길 인사처 사무관

    “그날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납니다.” 국가상징 중 하나인 5대 국새(國璽) 제작을 도맡았던 이수길(44) 인사혁신처 대변인실 사무관은 4대 국새가 허위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던 날을 잊지 못한다. 6년 전인 2010년에 있었던 일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국새는 국가의 역사성과 국력, 문화를 반영하고 국가권위를 상징했는데, 당시 사용 중이던 4대 국새가 가짜 기술로 제작됐다는 언론 보도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처럼 느껴졌어요.” 국새는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나라문장 등과 함께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때 이 사무관은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 의정담당관실 국가상징계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의정담당관실은 국새 관리를 전담한다. 당시 학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4대 국새 제작 사기 논란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의정담당관실은 경찰에 공식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권위가 실추된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사무관은 “과거 문헌 어디에도 국새를 제작한 방식이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 혼란을 부추겼다”고 돌아봤다. 실제로 국새는 그 중요성에 비해 허술하게 관리된 측면이 있었다. “정부 수립 후 처음 만들어진 1대 국새는 분실됐고 최초로 봉황 모양과 훈민정음체가 사용된 3대 국새는 손잡이 부분을 지칭하는 ‘인뉴’와 국새 밑바닥에 새겨진 글자를 뜻하는 ‘인문’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바람에 폐기됐습니다.” 2대 국새는 인뉴 모양을 봉황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교체됐다. 이 사무관은 “과거 중국만 봉황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사대외교 정책을 펼친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 우리는 중국에서 거북이 국새를 받아와 사용했다”며 “대한제국에 와서야 자체적으로 국새를 만들 수 있게 됐는데도 2대 국새는 조선시대 국새를 본떴기에 거북이 모양이었다”고 설명했다. 더이상은 제작 사기나 분실, 훼손 등이 없어야 한다는 데 여론이 모였다. 국새만큼 교체가 잦았던 국가상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정담당관실은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최우선으로 방점을 둔 것은 투명성이었다. 전문가 간담회는 물론 국민 여론조사, 공청회 등 가능한 한 폭넓게 의견을 수렴한 뒤 11개월 동안 제작에 들어갔다. 제작 전 과정은 문서, 사진, 영상 등 기록물로 남겼다. 국새에 생기는 균열을 막고자 인뉴와 인문이 분리되지 않는 일체형을 택했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논쟁도 벌어졌다. “국새를 들어 올려 찍으려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티타늄이 제격이라는 주장도 많았어요. 논쟁 끝에 국가상징으로서 품격을 가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여 금 합금으로 정했습니다.” 국새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 사무관은 “합금 과정에서 자꾸 금 찌꺼기가 섞이는 바람에 애를 먹었는데 완성작을 만든 후 제작을 맡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직원들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공직자로서 국새를 만든 경험은 이 사무관에게 큰 자랑이자 보람이다. “통일이 되는 날 KIST 직원들과 다시 만나 함께 꼭 역사에 길이 남을 국새를 만들어 보자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만큼 모두들 5대 국새 제작에 사활을 걸었던 거죠.”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공희정 컬처 살롱] 무한함에 도전하는 무모함을 감내하라

    [공희정 컬처 살롱] 무한함에 도전하는 무모함을 감내하라

    대하사극 ‘장영실’(KBS)은 운명의 벽을 넘어선 사람의 이야기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나 정3품의 지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장영실은 조선을 과학 입국으로 만든 천재 과학자다.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천문 관측기구들이 그의 발명품이다. 농사가 삶의 근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만 올려다보던 시절 그 모든 변화를 예측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도전은 무모할지언정 위대했다. 극 중 장영실은 전(前) 서운관 판사 장성휘와 동래현 관기 은월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이다. 천자수모(賤者隨母)의 법칙에 따라 그는 노비가 됐다. 손재주가 뛰어나 못 고치는 물건이 없었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냈다. 그렇게 출중하고 귀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노비 신분의 그가 조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노비, 그러나 그는 글을 배우고, 천문 현상을 궁금해했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사람들은 주제 파악도 못 하는 놈이라 구박하기 일쑤였지만, 자신을 귀한 존재라 인정해 준 아버지가 있었기에 기죽지 않았다. 누구보다 당당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볼 때 가장 행복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늘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자연의 변화 하나에도 왜 그럴까 의문을 품었고, 그 변화의 원리를 알고자 여러 밤을 새웠다. 하늘의 섭리에 접근하는 그가 양반 입장에선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국과 왕권 강화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피의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세종의 생각은 달랐다. 반상(班常)의 법도보다 백성들의 풍요롭고 안락한 삶이 우선이었던 세종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자 했다. 하늘을 향한 장영실의 열정은 그렇게 세종을 만나 꽃피었다. 깰 수 없는 신분의 벽은 깨어지고 과학은 조선의 새로운 동력이 됐다. 드라마 ‘장영실’은 정통 사극이면서 최초의 ‘과학 사극’이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정통 사극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극을 구성하기 때문에 대부분 궁중 사극이다. 그런데 ‘장영실’은 ‘과학 사극’이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정통 사극에 상상력을 살짝 덧붙임으로써 역사의 구석에 있던 과학을 생각의 중심으로 옮겨왔다. 과학적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을 드라마 곳곳에 배치했다. 이는 다큐멘터리적 설명 기법이다. 제작진은 문서상 남아 있는 천체기구들을 실체화하기도 했다. 최초의 ‘과학 사극’은 그렇게 기존 드라마 화법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월급 모아 집을 살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갔다고 말한다. 흙수저 금수저 논란이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다고도 한다. 혹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아닐까. 그러나 ‘장영실’은 말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평생 과학자로 살아온 인간 장영실은 바람 부는 벌판에 쓰러져 생을 마감하며 “영원히 진리를 알 수 없을지라도 저 무한함에 도전하는 무모함을 감내하는 것”이 숙명이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장영실’은 그 숙명이 어떻게 운명을 바꿔 놓았는지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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