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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역사기록의 활용

    [홍태경의 지구 이야기] 역사기록의 활용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은 정치, 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과 재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는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모두 경험할 수 없다. 이런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기간의 관측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가능한 최대 지진과 지진 발생 예상 지역과 피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수백년 이상의 지진 기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지진계가 도입된 시기가 1978년임을 감안해 보면 지진계에 기록된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방대한 역사기록물이 있다. 특히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는 1900여회가 넘는 지진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는 진도 8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진 피해 기록도 여럿 있다. 서울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도 꽤 있다. 중종 13년(1518년) 음력 5월 15일에는 “유시(오후 5~7시)에 세 차례 크게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사람과 말이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노인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라고 한양에서 발생한 지진을 기록하고 있다. 세 차례 큰 지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을 뿐 아니라 지진동이 전국적으로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성첩의 무너짐은 지진동의 크기가 지금껏 우리가 겪은 수준 이상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성난 우레 소리는 단층 운동에 암반이 부서지는 소리로 이곳이 진앙지 인근임을 의미한다. 명종 1년(1546년) 음력 5월 23일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 신시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이 기록은 서울에 지진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단층 파열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했음을 의미한다. 또 큰 단층을 따라 연쇄적으로 여진이 발생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단층 파열과 연쇄 지진은 미국 서부지역과 같이 활성 단층이 잘 발달한 지역에서 목격되는 현상으로 수도권과 같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래된 암반을 가진 지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또 강력한 지진동에 의한 피해 정도를 통해 지진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지진에서도 담과 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없었음을 감안해 볼 때 당시 지진동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에 남은 지진 피해 기록은 최근 지진 발생 특징과는 차이를 보인다. 최근 지진 기록에 의하면 수도권에서는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78년 이후 지금까지의 짧은 지진 관측 기록이 특정 지역의 지진 특성을 잘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저평가돼 온 수도권 지역의 지진 재해 가능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안정되고 매우 단단한 암반으로 평가되는 경기육괴 위에 위치한다. 지진은 오랜 기간 응력 누적이 있어야 발생한다. 최근 수도권 지역에서의 지진이 관측되지 않음은 지각 내 응력이 누적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수도권에 지진을 유발한 단층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주 지진의 예에서 보듯이 지표에 단층면을 드러내지 않은 지표 하부 단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돼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록자의 주관에 따른 취사선택이나 자료 왜곡이 되지 않고 모든 사실이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록될 때 의미가 있다. 기록이 나중에 어떻게 활용될지는 기록자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사초 기록자들의 노고가 새삼스레 크게 느껴진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 “놀라운 정치적 분출… 퇴진→체포 목소리 늘어”

    美외교지 FP “韓시위 굴곡 많아 경찰버스 꽃 스티커 등 방식 기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돼 한국인의 분노와 퇴진 요구의 강도를 높였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AP는 지난 3일 열린 6번째 대규모 집회에서 시민들이 청와대와 100m 떨어진 좁은 골목길까지 진격해 박 대통령의 퇴진을 필사적으로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 NBC방송은 “수만명의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며 ‘박 대통령에 맞서는 수백만 시위대의 바다’라는 제목의 시위 영상을 공개했다. AFP는 오는 9일 국회 탄핵 표결을 앞두고 시위에서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형사 고발과 체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었다며 포승줄에 묶인 실물 크기의 박 대통령 모형이 등장한 사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탄핵 가결 여부와 상관없이 박 대통령이 5년의 임기를 마치지 못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중국 신화통신은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 170만명이 모인 것은 물론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62만명이 시위에 나서는 등 모두 232만명이 참석했다며 이는 지난주 190만명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일본 NHK는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에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며 “사임 의사를 표명한 대통령에 대한 (사퇴) 압박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6주 연속 열렸다”며 “서울 시위는 청와대 앞 100m 지점까지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러시(FP)는 지난 2일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 “김치만큼이나 한국적”이란 분석을 내놔 관심을 끌었다. FP는 한국의 촛불집회가 “놀라운 정치적 활동의 분출”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본다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식민지에서 군사정권으로, 또 불완전 민주주의 체제로” 사회를 바꿔왔다며 1400년대 조선시대의 ‘신문고’부터 1919년 일제 강점기의 3·1운동, 1960년대 4·19혁명, 19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까지 한국 시위 역사엔 굴곡점이 많았다고 전했다. FP는 이번 시위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과거와 달리 시민들의 자유 발언과 유명 음악인들의 공연, 경찰 버스 차벽에 붙이는 ‘꽃 스티커’, 청와대 외곽에 등장한 푸드트럭 등 평화로우면서도 기발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한국인들은 박 대통령의 단순 하야가 아니라 그가 보여준 불투명하고 권위주의적이며 뿌리 깊게 부패한 통치 방식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新국토기행] 살아있는 갯벌 스며드는 풍광 모여드는 사람

    [新국토기행] 살아있는 갯벌 스며드는 풍광 모여드는 사람

    전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무안군은 동쪽은 영암군과 나주시, 서쪽은 신안군의 많은 도서와 접하고, 남쪽은 목포시, 북쪽은 함평군과 연결된다. 400m가 넘는 산지는 없고, 낮은 구릉과 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다와 접해 있어 무안반도와 해제반도, 망운반도를 형성하고 있다. 무안 땅 절반은 게르마늄과 칼륨이 많은 붉은 황토밭이다. 여기서 나는 양파와 마늘은 최고의 보약으로 쳐준다. 서쪽에 있는 220㎞에 달하는 긴 굽이굽이 리아스식 해안은 가는 곳마다 유원지이자 해돋이와 해맞이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경면과 해제면 사이 갯벌에서 나는 세발낙지는 천하명물로 소문나 있다. 무안은 2005년 광주시에 있던 전남도청이 이전해 오고, 전남경찰청과 전남교육청, 농협 전남본부 등이 옮겨와 전남의 중심이 되고 있다. 도청이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로 이전하면서 목포시의 옥암지구를 편입해 추진 중인 남악신도시는 15만명(4만 5000가구) 목표로 개발이 한창이다. 공무원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8만 20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광주~무안 고속도로, 무안국제공항까지 문을 열어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서남권의 신관광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인 회산백련지와 대한민국 최초 갯벌습지보호지역인 무안생태갯벌센터로 유명한 고장이다. [볼거리]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 회산백련지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소재한 ‘회산백련지’는 33만㎡(약 10만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이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연꽃이 가득한 저수지로 인근 농경지를 기름지게 했다. 당시 인근 주민이 백련 12주를 구해 심은 뒤 그날 밤 꿈에 하늘에서 학 12마리가 내려와 앉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곳 백련지에서 자라는 백련은 홍련처럼 일시에 피지 않고 7월부터 9월까지 수줍어 잎사귀 아래 보일 듯 말 듯 숨어서 핀다. 3개월 동안 연못을 가득 메운다. 꽃송이가 주먹만 하고 연잎 지름은 1m나 된다. 최근 멸종 식물로 알려진 가시연꽃 집단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수련, 노랑어리연, 개연꽃 등 30여종의 연꽃과 50여종의 수중식물·수변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백련지 내에 오토캐러밴과 오토캠핑장이 설치돼 있고 매년 7~8월에는 연꽃축제가 열린다. ●전국최대 갯벌 체험의 장, 무안생태갯벌센터 자연 침식된 황토와 사구의 영향으로 형성된 무안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2001년 전국 최초 습지보호지역지정, 2006년 람사르습지 등록, 2008년 6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생물인 흰발농게, 대추귀고둥을 비롯한 245종 저서생물, 칠면초 갯잔디 등 45종 염생식물, 혹부리오리, 알락꼬리마도요 등 52종의 철새 등 많은 생명체가 무안갯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109.2㎞의 해안선이 원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 있는 무안생태갯벌센터는 이러한 무안갯벌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11년 전국 최대 규모 갯벌센터로 개장했다. 람사르습지 1732호인 무안갯벌의 가치를 소개하는 홍보, 교육, 전시 기능과 생태체험학습을 통한 해양환경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무안생태갯벌 유원지 조성사업에 따라 국민여가캠핑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매년 9~10월에 황토갯벌축제가 열린다. ●다도순례 성지, 초의선사탄생지 초의 대선사는 조선 후기 침체된 당시의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선승으로,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이다.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 있는 초의선사 탄생지는 초의선사의 생가와 추모각을 복원하고 기념전시관, 차 문화관, 차 역사관, 다정 등을 건립해 명실상부한 다인들의 다도순례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의선사 탄생일인 음력 4월 5일을 전후로 매년 초의선사탄생 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호담항공우주전시장’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에 있는 호담항공우주전시장은 몽탄면 출신 호담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이 고향사랑 실천과 우리 공군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고 후세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2003년 건립해 무안군에 기부채납했다. 이후 무안군이 꾸준하게 관리하고 투자해 현재는 실물항공기와 북한 전투기 등이 전시돼 있다. 실내 전시관에는 우주항공분야의 발전상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가 있어 전국 학교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물의 기운 가득한 식영정 몽탄면 이산리에 있는 식영정은 한호 임연 선생이 1630년 무안에 입향한 후 당대 많은 시묵객들이 즐겨 찾은 시의 경연장이었고, 석학들의 토론장이었다. 담양의 식영정이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라면, 무안의 식영정은 ‘강학교류의 장소’다. 식영정이 위치한 이산리는 조선시대까지 영산강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와 물의 기운이 가득한 수태극 자리라고 한다. ● 일출·일몰 한번에 볼 수 있는 도리포 도리포는 서해안의 자그마한 포구로 해변에는 횟집이 늘어서 있고, 인근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바다와 연접해 도미, 농어 등을 낚을 수 있는 바다 낚시터로 유명하다. 겨울철에는 함평의 바다 쪽에서 해가 뜨고, 여름철에는 영광의 산 쪽에서 해가 뜬다. 또한 도리포 포구 반대편 칠산바다 쪽의 일몰 또한 장관을 이뤄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서해·영산강 절경이 한눈에 ‘승달산 등산로’ 승달산(해발 333m)은 서해와 영산강을 끼고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승달산 산행은 목포대 정문을 기점으로 매봉, 깃봉, 하루재, 천지골을 거쳐 정문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산행코스가 가장 인기가 많다. 등산보다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목포대 뒤편으로 난 길을 올랐다가 목우암에 들러 약수로 목을 축인 후 잠시 숨을 돌렸다가 올랐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도 좋다. ●윈드서핑의 최적지 홀통해수욕장 홀통해수욕장은 천혜의 자연발생적 유원지로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이 장관을 이룬다. 해수욕, 야영, 바다낚시, 해수찜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청정해역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섬들 사이로 부는 바람이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해양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윈드서핑의 최적지로 불린다. 매년 4~5월이면 전국단위 윈드서핑 대회가 열린다. [먹거리] ●기절할 만한 갯벌의 맛 세발낙지 살아 있는 갯벌에서 잡혀 전국에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발이 세 개가 아니고, 발이 가늘어 세발낙지라 불린다. 무안지역의 갯벌은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돼 있어 각종 생선회의 맛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다. 세발낙지는 발이 가늘어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 향미가 있어 입안에 착 감기는 낙지 특유의 맛이 있고, 일을 하다 쓰러진 소에게 먹일 경우 소가 바로 일어난다는 스태미나 식품이다. 무안읍 공용터미널 뒷골목은 낙지골목으로 유명하며 낙지를 깨끗하게 씻어 식초에 찍어 먹는 일명 ‘기절낙지’의 맛은 무안 지역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고단백 건강식품 명산장어구이 호남의 젖줄 영산강변에 위치한 몽탄면 명산리는 명산 하면 장어구이를 연상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영산강 하류 갯벌에서 나는 장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일제강점기에는 명산에 장어 통조림 공장이 설치돼 200여척의 장어잡이가 성황을 이뤘으나 영산강 하굿둑 축조 이후 장어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어린이 입맛도 사로잡은 양파한우고기 양파한우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해 어린이, 노약자도 선호한다. 인체 생장 발육의 필요 요소인 필수지방산이 풍부하고 간 지방축적과 피부조직 각질화 예방 등 성인병 예방과 여성미에 좋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파김치·게장과 함께 먹는 돼지짚불구이 돼지짚불구이는 암퇘지의 삼겹살을 석쇠에 가지런히 깔고 볏짚을 지펴 그 불씨로 고기를 구운 것이다. 볏짚 특유의 향이 고기에 스며들어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함께 나오는 양파김치와 칠게를 갈아 만든 게장과 함께 싸 먹으면 고소한 맛이 더하고 개운한 ‘짚불삼합’이 된다. ●감성돔 안 부러운 도리포 숭어회 도리포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도리포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온 생선회의 맛은 천하일품이다. 이곳 겨울 생선회는 자연산으로 유명해 주말이면 광주 등 인근 지역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눈이 내려야 숭어 맛이 제대로 드는데 겨울 숭어의 쫄깃함은 천하의 감성돔과도 비교할 바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푸른 바다의 전설’ PD노트, ‘입맞춤 숨 불어넣기’ 복습노트 내용은?

    ‘푸른 바다의 전설’ PD노트, ‘입맞춤 숨 불어넣기’ 복습노트 내용은?

    ‘푸른 바다의 전설’ 요약자료가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1월 16일 첫 방송된 SBS 수목 드라마스페셜 ‘푸른 바다의 전설’은 4회만에 20%(닐슨 전국기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방송 5회를 앞둔 현재 드라마를 한눈에 이해하게 만드는 자료가 공개되어 더욱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 드라마 홈페이지 내 ‘PD노트’에서는 ‘복습노트: 전생·현생 데칼코마니 인연과 인어전설 떡밥 총정리!(연결고리#꿈)’라는 제목으로 첫 회부터 4회까지 등장했던 주인공 인어(전지현 분)와 조선시대 담령(이민호 분), 현세 준재(이민호 분)를 둘러싼 스토리를 단숨에 풀어낸 것이다. PD노트의 첫 번째 장 ‘인어의 시크릿 떡밥 총정리’를 통해서는 조선시대 인어가 양씨(성동일 분)에게 붙잡힌 뒤 마을 현령으로 부임한 담령과 인연을 맺게 됨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이어 ‘인어는 자신이 지우고자 하는 기억만을 지운다’라는 내용, 그리고 조선시대 세화와 현세의 심청의 비늘이 각각 금빛과 은빛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서로 다른 인어라는 점도 알렸다. 특히, 여기서는 조선시대 인어는 물에 빠진 담령을 살리기 위해 입맞춤으로 숨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자신과의 기억을 지웠다는 점과 인어는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공개하면서 둘의 사랑이 운명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진 두 번째 장 ‘전생과 현생의 데칼코미니 인연’을 통해서는 담령의 기묘한 꿈 이야기가 전개된다. 담령의 꿈에서 그는 현세의 천재 사기꾼 준재가 되었고, 준재는 사기를 치던 와중에 인어와 만난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전생과 현생의 인연이 담령과 세화, 그리고 준재 심청뿐만 아니라 전생의 양씨(성동일 분), 기생 홍랑(오연아 분), 담령 모(심이영 분), 사월(문소리 분), 삼돌이(이재원 분)의 현생장면도 눈길을 끌었음을 소개했다. 세 번째 장 ‘인어에게 이름을 준 담령과 준재’를 통해서는 전생과 현생에서 인어의 이름을 지어준 이가 각각 담령과 준재라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전생에서 양씨로부터 위협을 받은 세화를 구한 사람이 담령이었고, 현생에서는 마대영으로부터 위기에 처한 심청이를 구할 사람은 바로 준재라는 사실도 다뤄졌다. 현재 이 콘텐츠는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커뮤니티로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제작한 ‘푸른 바다의 전설’ 홈페이지관계자는 “드라마 5회분을 앞둔 현재 시청자분들께서 4회 방영분까지 내용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이 같은 콘텐츠를 제작했다”라며 “앞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재미있어질 드라마를 꼭 지켜봐달라”라고 부탁했다. 한편, ‘푸른 바다의 전설’은 멸종직전인 지구상의 마지막 인어가 도시의 천재 사기꾼을 만나 육지생활에 적응하며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을 통해 웃음과 재미를 안기고 있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5회와 6회는 각각 11월 30일과 12월 1일 수, 목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씨줄날줄] 킹메이커/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킹메이커/강동형 논설위원

    ‘왕을 만든 사람’이라는 의미의 ‘킹메이커’(kingmaker)라는 단어는 리처드 네빌이라는 영국의 귀족에게서 유래했다. 1455년부터 30년 동안 영국의 왕권을 놓고 치른 장미전쟁에서 네빌이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에드워드 6세를 왕위에 올리자 사람들이 그를 킹메이커라 부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호칭이 달랐을 뿐 킹메이커는 존재했다. 나라를 세우거나 반정에 성공한 1등 공신들이다. 1392년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 데 앞장선 정도전을 비롯한 개국공신, 이방원과 1·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참여한 하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참여한 정난공신 한명회 등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킹메이커들이다. 이들 가운데 삼봉 정도전은 한 고조의 장자방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이성계의 책사로 조선 왕조 500년의 기틀을 마련했다. 6공화국 30년 정치사에서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정치인은 누가 뭐래도 허주(虛舟) 김윤환이다. 그는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정권 창출에 공을 세워 ‘킹메이커’란 호칭을 얻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실패했다. 허주는 특히 1992년 대선을 앞두고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대선 후보로 ‘김영삼 대세론’을 펴며 킹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허주와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킹메이커들이다. 허주가 정치지형의 변화를 추구한 킹메이커라면 이들은 책사형이다. 김 의원은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다. 윤 전 장관은 이회창 후보의 킹메이커로 나섰다가 ‘킹메이커 허주’를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현재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킹메이커의 이미지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킹메이커의 역할과 의미도 변하고 있다. 특정 개인이 아닌 언론사나 홍보 대행사가 킹메이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홍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정책보다는 이미지 선거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섰다고 한다. 그는 친문과 친박이 아니라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킹메이커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느낌이다. 하지만 친문과 친박에 대항하는 정계개편의 불쏘시개로서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킹메이커가 대통령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국민과 함께하지 않는 킹메이커는 성공할 수 없다.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킹메이커인 시대다. 정치인이 킹메이커의 역할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국민의 뜻은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가면 쓴 여성혐오, 분노보다 공감 이끌어야

    가면 쓴 여성혐오, 분노보다 공감 이끌어야

    거리에 선 페미니즘/고등어 외 41인 지음/한국여성민우회 엮음/궁리/212쪽/1만 2000원 지난 5월 서울 강남역에서 한 남성이 자신과 아무 연관이 없는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며칠 뒤 신촌의 거리 한복판에서 추모와 담론의 장이 펼쳐졌다. 발언자 40여명은 차례로 성폭력 경험, 가족 내 차별 이야기 등을 힘겹게 고백했다. 새 책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당시 8시간 동안 이어졌던 여러 발언들을 담고 있다. 여성을 옥죄고 억압하는 것엔 동서와 고금이 따로 없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은 들로 산으로 놀러다닌 부녀자들을 곤장 100대로 다스리라고 규정하고 있고, 2008년 나온 소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보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에서조차 여성의 18%가 한 번 이상 남성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인류가 여러 가치들에서 큰 성과를 내고 발전도 거듭했지만, 성차별이나 여성혐오 등에 대해서는 창, 칼로 사냥하던 시대나 우주의 기운과 소통하는 현재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그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책은 내용으로만 보자면 새로울 게 없다. 워낙 언론 등에 많이 오르내렸던 사회문제들의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다소 답답한 느낌도 갖게 된다. 한 발표자의 말을 요약해 보자. 자신은 지금 신촌의 유흥가에 있다. 그것도 짧은 치마를 입고. 그렇다고 자신이 여기서 강간당할 책임이 있는 건 아니잖나라고 그는 외친다. 어디 하나 틀린 데가 없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당위론의 영역에 속한다. 발표자의 절규처럼 이 사회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안다. 중요한 건 원시의 패러다임을 깨야 한다는 거다. 그러자면 분노의 담론보다 방법론을 찾는 게 더 중요하지 싶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 혐오, 페미니즘 등은 말하기 힘든 주제다. 보다 정확히는 말해서 득 볼 게 없다. 한 개그맨의 표현처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해도 어느 대목에선가 살짝 삐딱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그러니 옳은 말, 부합하는 말만 하게 된다. 그건 민낯이 아니다. 견고한 가면 위로 페미니즘의 창을 찌른다 한들 달라지는 건 많지 않다. 이럴 때 유효한 건 논리보다 공감이다. 책은 그래서 늘 절반의 인류를 향해 담론을 펼치고 외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들, 약자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기득권자들이, 사회 시스템이 알아서 바꾼 예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해서 작은 목소리나마 끊임없이 떠들고 소리 지르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참석자의 말이 책이 나온 이유이자 가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푸른바다 전지현, 이민호 향한 직진 사랑 “기억 못해도 약속 지킬게”

    푸른바다 전지현, 이민호 향한 직진 사랑 “기억 못해도 약속 지킬게”

    ‘푸른바다’ 전지현 이민호가 서울에서 재회했다. 이들의 재회 장면은 무려 시청률 20%를 기록하며 최고의 1분을 기록했다.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박지은 극본, 진혁 연출, 문화창고, 스튜디오 드래곤 제작)의 전지현과 이민호의 재회가 순간최고시청률 20%를 돌파했다. 23일 방송된 ‘푸른바다’ 3회 방송분은 조선시대에서 풍등이 날리는 가운데 만남을 가진 인어(전지현 분)와 담령(이민호 분)의 모습에서 시작됐다. 알고보니 둘은 어릴 적부터 인연이 있었고, 소년 담령은 혼인식날 밤 몰래 빠져나온 뒤 인어와 만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인어와 입맞춤하면서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현세로 이어지고, 인어는 수중에서 준재(이민호 분)와 입맞춤 했다. 이로 인해 준재는 그녀와 스페인에서 보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고 여자와 있었다는 조남두(이희준 분)의 이야기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인어가 자신에게 이야기했던 “사랑해”라는 말을 떠올리다가 잠을 깨기도 했지만, 끝내 인어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한편 인어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를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입성했다. 이후 일진학생들과 어린아이, 그리고 노숙자(홍진경 분)를 차례로 만나면서 고군분투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인어는 준재가 언급했던 63빌딩을 찾았고 수족관을 발견해 헤엄을 즐겼다. 그녀가 수족관 안에서 우연히 준재를 발견할 당시에는 순간최고 시청률이 20.0%까지 올라갔다. 이후 두 사람이 대면할 때까지 최고의 1분을 기록했다. 이날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서울수도권 기준으로 17.2%(전국기준15.7%)를 기록, 시청률 상승과 함께 수목드라마 최정상 자리를 굳혔다. 또한 광고관계자들의 주요지표인 2049시청률 또한 9.7%로 1위를 차지했다. 점유율의 경우 남성시청자중 30대가 무려 58%, 그리고 10대와 40대가 30%를 훌쩍 넘겼고, 여성시청자들의 경우는 30대가 50%, 그리고 10대와 40대가 40%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시청자층도 모두 30%를 상회했다. SBS 드라마 관계자는 “푸른바다 3회에서는 인어가 본격적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고, 시청률 상승을 이끌었다”며 “특히 마지막에서 둘의 재회가 최고의 1분을 기록했는데 과연 4회 방송분에서 이 둘이 또 어떤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쏟아내면서 재미를 선사할지 기대하셔도 좋다”고 전했다. 한편 ‘푸른 바다의 전설’은 멸종직전인 지구상의 마지막 인어가 도시의 천재 사기꾼을 만나 육지생활에 적응하며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을 통해 웃음과 재미를 안길 판타지 로맨스드라마다. 4회 방송은 24일 목요일 밤 10시 4회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일제·독재정권 시퍼런 서슬…남산골 곳곳 인권 옥죈 사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일제·독재정권 시퍼런 서슬…남산골 곳곳 인권 옥죈 사슬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26일 19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세종대로 일대를 전상봉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설명으로 오전 10시부터 2시간가량 살펴본다. 이 지역은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에 분노한 100만 시민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민주주의 새 성지로 떠오른 곳이다. 6개월 전 기획한 코스가 우연치 않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이다 보니 답사가 숙연히 기다려진다.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세종대로 일대에 역대 최대 규모의 시민들이 모인다고 하니, 이번 답사는 사상 최대 규모(?)가 예상된다. 광화문광장은 이런 국민들의 공통의 기억 속에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한 곳으로 향후 서울미래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을 지정하는 이유는 급속한 사회 변화로 인해 근현대 서울 시민의 생활상이 담긴 문화유산이 사라지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미래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을 시민 스스로 보전하는 사업이 서울미래유산 지정·보존 사업이다. 이 사업은 문화유산의 획일적 보전을 위한 규제가 아니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유연한 보전 방식을 강조한다. 서울에는 현재 372개의 미래유산이 지정돼 있다. 11월 초입 남산골 한옥마을은 가을 한가운데 푹 빠져 있었다. 오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울긋불긋한 단풍과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푸름이 어울려 도심 한가운데서 가을 정취를 물씬 느끼게 했다. 지난 5일 16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남산 둘레길을 걸으며 ‘인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한양공원비까지 이필용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역사 공부와 남산 일대 단풍 구경까지 일거양득이었다. 그러나 이날 우리가 맞닥뜨린 역사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이 해설사는 “남산 둘레길은 두 개의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하나는 일제가 할퀸 역사의 생채기이고, 또 하나는 분단의 비극이 가져온 ‘반공’이 국시(國是)이던 시절 유린된 인권”이라고 말했다. ‘딸깍발이’ 서생 모여 살던 남산골 조선통감부 관저·일본인 집단 거주촌 생겨나 남산은 국권을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의 현장이자 일제강점기 무단통치의 전초기지였고 ‘인권의 블랙홀’ 중앙정보부와 부속 건물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다. 한옥마을 언저리는 필동으로, 원래는 부동(部洞)이었던 곳이 붓동으로 불리다 와전돼 정착된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수비하는 금위영의 별영인 남별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집단 거주촌인 왜성대(倭城臺)와 조선통감부(후일 조선총독부), 통감(총독) 관저가 자리잡고,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민족 정기를 짓눌렀다. 조선에 대한 무단통치와 독립운동 탄압에 혈안이 됐던 일본군의 조선헌병사령부도 남산에 있었다. 이같이 짙게 드리운 ‘억압의 그림자’가 후일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자리잡는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해방 후에는 국군 수도경비사령부, 헌병사령부 등이 있다가 각각 남태령(1991년)과 용산(1972년)으로 이전했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이 동네에 있었고 1965년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이곳에서 창설됐다. 옛날엔 가난한 ‘딸깍발이’ 서생들이 모여 살았던 남산이 총포가 난무하는 무력 기지로 변한 것이다. 딸깍발이는 청렴과 결백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를 상징하는 우리말이다. 한옥마을 한쪽에는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의 추모비가 있다. 일석이 생전에 남산골 선비를 ‘딸깍발이’라고 했다. 한옥마을 안에는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와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오위장 김춘영, 도편수 이승업 가옥을 옮겨다 놨다. 순종비인 순정효황후는 1910년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한일합병 날인을 강요하는 것을 엿듣게 되고 옥새를 치마에 숨겨 내주지 않았다. 끝내 백부인 친일파 윤덕영(벽수산장 주인)에게 빼앗겼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옥마을 전통정원 남쪽에는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이 있다. 이 해설사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11월 29일 지하 15m 지점에 타임캡슐을 묻었는데, 보신각종 모형의 캡슐 안에는 서울의 도시 모습, 시민생활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넣었다”며 “400년 뒤인 2394년 11월 29일에 후손들에게 공개된다”고 말했다. 교통방송,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소방방재본부 등이 있는 곳은 예장동으로 불린다. 조선시대 5군영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이 있던 곳을 줄여서 예장이라고 한 것이 지명으로 이어졌다. 경복궁이 내려다보인다고 해서 백성들이 살지 않고 공터로 남아 있던 것을 일제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쓰나미처럼 밀려들면서 이곳을 장악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장 마스타 나카모리가 진을 쳐서 왜장대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긴또강’(김두한)과 세력을 다퉜던 일본 건달들이 살았던 곳도 이곳이다. 정부는 1946년 일본식 동명 정리 작업을 하면서 왜색을 지우기 위해 이곳 도로 이름을 충무로로 했다. 남산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애니메이션센터 앞 통감부 표지석총독부에 폭탄 던진 김익상 의사 표지석도 남산을 본거지로 삼았던 일제는 예장동에 경성신사(대성궁)를 세우고 근처에는 일본군 헌병사령부를 지었다. 또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신궁도 지었다. 조선통감부는 현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에 표지석으로 남아 있다. 일제는 처음에는 광화문 육조거리의 대한제국 외부(外部) 청사를 통감부 건물로 사용하다가 1907년 2월 28일 예장동 8번지 일대 남산 왜성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2층 목조 건물로 신청사를 건립했다. 신청사는 1910년 8월 29일 을사늑약 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됐다. 1920년 조선 총독과 총독부를 암살·파괴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고, 1921년에는 의열단 김익상이 전기수리공으로 위장해 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김익상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표지석이 통감부 표지석 옆에 나란히 서 있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가 이전하자 광복 전후 과학관으로 사용되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통감부 관저는 현재 서울종합방재센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다목적 광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유스호스텔 오른쪽 동산에 있는 통감관저 표지석에는 ‘일제침략기 통감 관저가 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 현장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는 고 신영복 선생이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던 2010년에 쓴 것이다. 이곳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기억의 터’ 조형물이 있고, 고종을 겁박해 을사늑약을 강요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해를 거꾸로 처박아 놓은 ‘거꾸로 세운 동상’도 놓여 있다. 이날 답사에 나온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동기 오남희(69)·황정례(65)·장종영(59)씨는 “서울 시내 한복판이지만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며 “이곳에 남겨진 가슴 아픈 조선의 역사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심우용(47) 서울대병원 복지팀장은 “구한말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인터넷 검색 중 이번 답사를 알게 됐다”며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답사를 하는 게 재밌고 유익해서 주위에도 많이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인권의 블랙홀’ 중앙정보부지금은 유스호스텔·종합방재센터 등 활용 명동에서 바라본 남산 북쪽 기슭은 대공 수사의 본실인 옛 중앙정보부 본관과 부속 건물이 두루 포진한 곳이다. 음습한 북쪽 기슭, 설계자인 건축가 김수근식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다람쥐 꼬리만 한 햇볕 한줌에 끌려온 이들이 목숨을 부지했던 엄혹한 시절이 있었다. 1961년부터 1995년까지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란 이름으로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 유린의 시대가 얼마 전이다. 한옥마을을 벗어나자 소릿길이 나왔다. 길이 84m의 터널로 시내에서 옛 중정 제5별관(대공수사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영문도 모르고 두 눈을 가리운 채 이곳을 지났던 이들은 얼마나 큰 두려움에 떨었을까. 환청처럼 들렸던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걸음 소리, 노랫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이는 ‘네 개의 문’이란 서울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작품으로 버튼을 누르면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여 나온다. 터널을 지나면 지금은 서울시청 남산별관으로 쓰이던 중정 제5별관이 나온다. 멀쩡한 사람도 간첩단에 엮여서 산 송장이 돼 나왔던 곳이 이곳이다. 서울종합방재센터는 옛 중정 제6별관이다. 지상 구조물이 없고 지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고문실’이다. 이 해설사는 “1973년 서울대 최종길 교수는 이곳에서 고문을 받던 중 사망했으나 투신 자살한 것으로 조작됐고,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도 이곳에서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하는 등 1970~1980년대 수많은 간첩 사건들이 이곳에서 조작됐다”며 “특히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끌려와 모진 고초를 당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제6별관은 옛 중정 본관(서울유스호스텔)과 지하로 연결돼 있다. 중정 본관은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가 유스호스텔로 변신했다. 유스호스텔 오른편 문학의 집은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의 공관이었다. 1961년부터 1981년까지 이곳을 관저로 사용했던 중앙정보부장은 모두 11명이다. 그 옆 산림문학관은 경호원 숙소였다. 문학의 집에서 명동 쪽으로 내려오면 ‘주자파출서 터’가 있다. 이 파출서는 안기부에 끌려온 이들의 가족들이 소재 파악을 위해 몸부림치던 곳으로 극소수 시민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숭의여대 한편엔 경성신사 참배 터1938년 신사 참배 거부·자진 폐교 역사 서울시청 남산별관, 서울유스호스텔, 교통방송, 문학의 집 등이 모두 서울미래유산이다. 2009년 서울시가 이 일대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남산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추진하려 했으나 통감부 터가 발견되면서 무산됐다. 지난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교통방송청사·남산2청사 등 건물 4개 동 철거를 시작으로 남산 예장 자락 2만 2833㎡를 도심공원으로 종합 재생하는 ‘남산 예장 자락 재생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코스 후반부인 리라초등학교를 지나 숭의여대에 다다랐다. 운동장 한쪽에는 1898년 경성신사 참배 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성신사는 서울의 일본 거류민단이 주도해 남산 왜성대에 세운 신사다. 1903년 평양에 세워진 전신 숭의여학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1938년 자진 폐교를 했다. 해방 후 정부로부터 경성신사 부지를 불하받아 재개교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을 따라 나왔다는 민병홍(54)씨는 “오늘 걸었던 길은 생전 처음 걸어 본 길이어서 첫사랑으로 기억될 어느 가을날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해설사는 “남산 둘레길은 일제와 국가 폭력이 민중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상징적 공간”이라며 “남산을 오르내릴 때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 보시라”고 마무리했다. 한양공원비 앞에서 답사 마무리를 하는 도중에도 관광객을 태운 삭도(케이블카)는 쉼 없이 오가고 있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길섶에서] 미쉐린 칼국수/서동철 논설위원

    칼국수를 좋아하지만 괜찮다는 집은 어디든 길게 줄을 서야 하니 자주 먹질 못한다. 엊그제는 “북창동 칼국수 어때? 지금쯤은 나가야 줄을 안 설 것 같은데…” 하고 일찌감치 동료를 ‘유혹’했더니 세 사람이 따라나섰다. 두툼하고 쫄깃한 면발이나 얇고 부드러운 면발 모두 좋다. 두툼한 국수는 너무 정교하게 썰면 오히려 재미가 덜한 게 묘미다. 기계로 뽑은 국수를 봉지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 ‘식감 조작’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웃은 적이 있다. 나처럼 마구잡이로 썰어 낸 면발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은가 보다. 양지머리로 끓인 품위 있는 국물에 섬세하다고나 해야 할 면발을 푹 익혀 낸 혜화동의 안동식 칼국수도 훌륭하다. 칼국수란 손쉽게 뚝딱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조선시대 제사상에도 올랐던 칼국수다. 음식점 평가로 유명한 ‘미쉐린 가이드’가 ‘가성비’ 높다는 ‘빕 구르망’ 부문에 서울의 칼국숫집을 다섯 곳이나 올려놓아 놀랐다. 다만 두툼한 면발을 내는 집만 선정한 것은 의문이다. 한두 군데는 얇은 면발의 고기 국물 칼국수를 골랐어야 이 음식의 역사성을 제대로 살리는 길이 되지 않았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이외수 “김진태 정신 차려라, 요즘은 건전지 촛불”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이외수 “김진태 정신 차려라, 요즘은 건전지 촛불”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7일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꺼지게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가운데 소설가 이외수가 “100만 국민의 함성을 애써 무시하려는 막말”이라고 비난했다. 이외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김진태 의원,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말했군요. 아직도 조선시대인 줄 아십니까. 정신 차리세요”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파라핀 촛불 들고 시위하는 사람 없습니다. 모두들 건전지 촛불 씁니다. 푸헐”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저는 건전지 촛불이에요. 비바람에도 끄떡없죠.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을 보여드릴게요’라는 사진을 올렸다. 앞서 ‘진박(진짜 친박근혜계)’으로 꼽히는 김진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 “민심은 변한다”면서 “특검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면 촛불에 밀려서 원칙에 어긋나는 법사위 오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른바다 이민호♥전지현, 눈 호강 ‘비주얼 케미’ 전지현 대사 없는 59분에도 ‘1위’

    푸른바다 이민호♥전지현, 눈 호강 ‘비주얼 케미’ 전지현 대사 없는 59분에도 ‘1위’

    ‘푸른바다’ 이민호 전지현이 ‘현대판 인어 전설’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렸다. 16일 첫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과거 조선시대 신임 현령으로 부임한 담령(이민호)이 인어(전지현)를 풀어주고 인연을 맺는 모습과 함께 현재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갖게 된 인어가 운명적으로 도시 천재 사기꾼 허준재를 만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영상미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그려졌다. 인어 전지현과 도시의 천재 사기꾼 이민호는 시청자들의 눈을 홀리는 비주얼과 연기를 선보였다. 푸른바다 이민호 전지현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연 이야기는 웃음과 설렘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7일 오전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푸른 바다의 전설’은 전국 기준 16.4%, 수도권 기준 18.0%를 기록하며 수목드라마 1위에 올랐다. 이날 ‘푸른 바다의 전설’은 400여년 전 1598년 조선시대 성난 바다에 해일이 몰아친 뒤 해안가를 뒤덮은 물고기떼와 함께 파도에 휩쓸려 육지에 표류한 인어가 마을 대감(성동일)에게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감은 인어를 도륙해 값비싼 기름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인어를 붙잡아 둔 한편, 신임 현령으로 부임한 담령에게 인어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밧줄에 묶인 인어를 보게 된 담령은 대감의 비리를 넌지시 얘기하며 인어를 풀어줄 것을 명했고 그렇게 바다로 풀려 난 인어는 담령에게 ‘인연의 손길’을 뻗었다. 그후 시간이 흐른 현재,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여자들을 홀리는 천재 사기꾼 준재의 모습을 필두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졌다. 사람을 한 번 보면 그가 누구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천재 사기꾼 준재는 라이터 불빛으로 사람들을 최면에 걸리게 하는 스킬까지 갖췄다. 이 스킬로 일당과 함께 검찰로 둔갑, 부잣집 사모님을 속이고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는 글로벌 사기행각을 보이며 해외로 떠났다. 호텔에 숙박하게 된 준재는 그곳에서 현재의 인어와 처음 만났다. 바다 속에서 팔찌를 하나 주운 인어는 폭풍우 속에서 뭍으로 나오게 됐고 다리가 생겨 신기방기해 하며 시선을 강탈했는데 준재의 호텔 방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쳐 먹다 준재에게 발각됐다. 준재는 그런 인어를 미친 여자라 생각하고 호텔에서 내보내려 했지만 발로 차이며 멀리 나가떨어지는 가운데 인어를 결박하는 데 성공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육지 신생아인 인어는 경찰에 붙잡혀 가 웃음을 유발하는 행동을 보였다. 인어는 육지 세상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총을 손에 쥐는 등 엽기 행각을 일삼아 웃음을 자아냈고 그 사이 증거를 남기려 찍어 둔 휴대폰 속 사진에서 팔찌를 발견한 준재는 직감으로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팔찌 값어치가 60억은 호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준재는 인어를 찾아 나섰고 경찰에게 그녀가 와이프라고 속여 경찰서에서 빼냈다. 준재는 신발도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어를 위해 신발과 옷을 사줬지만 그는 신발을 손에 끼고 원피스를 머리에 쓰는 등 엉뚱한 행동으로 극 후반 웃음을 유발했다. 준재는 60억 팔찌를 손에 거머쥐고 인어를 떠나려는 듯 보였지만 이들의 인연은 다시 시작됐다. 첫 시작은 60억 팔찌였지만 육지 신생아 인어에게 어느새 준재 마음은 조금씩 움직였고 자신을 기다릴 인어를 결국 찾아갔다. 준재는 비 내리는 거리에 홀로 앉아있는 인어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그런 그에게 인어는 손을 뻗었고 준재가 그 손을 잡으며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알렸다. 반전도 있었다. 말 한 마디 없던 인어의 반전 행동이 마지막에 공개된 것. 미아보호소에 있던 인어는 아이의 사탕을 보며 “예뻐”라고 눈을 떼지 못했고 결국 사탕을 맛보게 됐는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기다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간 세상을 배워가는 인어의 순수한 행동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한 ‘푸른바다의 전설’은 인어 전지현이 59분간 대사 없이 표정과 행동만으로 캐릭터를 소화해내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그런 인어에게 낚인 천재 사기꾼 준재를 연기한 이민호의 능청스러움과 다정함이 여심을 훔치며 볼거리를 선사했다. 특히 푸른바다 이민호 전지현의 비주얼뿐 아니라 찰떡 케미와 연기는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아름다운 영상미 또한 60분을 채웠다.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로 순조로운 출발을 알린 ‘푸른 바다의 전설’은 17일 목요일 밤 10시 2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눈 뗄 수 없는 인어 자태 ‘신비+청순’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눈 뗄 수 없는 인어 자태 ‘신비+청순’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의 인어가 베일을 벗었다. 16일 방송된 SBS 새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극본 박지은, 연출 진혁)에서는 인어의 모습으로 첫 등장한 전지현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인어와 인간의 첫 만남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강력한 폭풍우가 휘몰아친 뒤 한 마을에 인어가 등장했다. 이는 멸종 직전인 지구상의 마지막 인어인 심청(전지현 분). 흡곡현에 새로 부임한 현령인 담령(이민호 분)은 양씨(성동일 분)에게 잡힌 인어를 보게 됐다. 그는 인어를 놓아주도록 지시했고, 그렇게 인어와 담령은 첫 만남 직후 헤어졌다. 현대로 건너와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는 한탕을 올린 뒤 지중해의 한 섬으로 갔다. 인어는 갑작스런 해저폭발에 휘말려 바닷가에 있는 리조트 수영장으로 밀려왔다가 허준재의 객실에 숨어들었다. 그렇게 허준재와 인어의 인연이 시작됐다. 사진=SBS ‘푸른 바다의 전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지하철 노선 첫 키재기 기억… 영화골목 달군 추억을 찾아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지하철 노선 첫 키재기 기억… 영화골목 달군 추억을 찾아서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18일 18회차 답사는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안내로 종각에서 안국동 사거리로 이어지는 우정국로를 좌우로 훑어 보는 ‘종로 종축(남북) 탐방’이다. ‘서울미래유산’이란 서울 시민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 들어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말한다. 특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가치를 미래세대가 수용할 수 있어야 미래유산으로 인정된다. 기존 문화재에는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예비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과 시·도 조례에 의해 지정된 유물·유적이다. 지정문화재는 50년 이상 지난 문화재 중 역사·문화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정한다. 예비문화재는 50년이 지나지 않은 문화재 중 미래가치가 있는 것들이 지정 대상이다. 이들 문화재는 미래유산의 ‘선배’인 셈이다. 종로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3·1운동 중심지에서 찾은 숨은 보물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인 지난달 29일, 열다섯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시작되는 보신각 앞에는 시국을 반영하듯 형광색 파카를 걸친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미래유산 플래카드를 펼쳐 달자 아니나 다를까, 잔뜩 긴장하고 다가온다. 한 경찰이 답사 취지를 묻는 새 다른 이는 사진을 찍고 무전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1주일 전 웃대 답사 때 검문검색보다 긴장감이 더 팽팽했다. 종로 보신각 앞에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가벽이 서 있었다. 고인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쓴 수많은 메모지도 붙어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화꽃 20송이를 바칩니다’란 서촌 꽃집 ‘MOMO BLOOM’의 메모가 눈에 띈다. 마음으로, 꽃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시민들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추모벽 앞에서 답사가 시작됐다. 맑은 가을 날씨 덕에 최근 답사 참가인원이 30명을 훌쩍 넘기기가 예사다.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에 대한 설명으로 해설을 시작했다. 보신각 앞 잔디밭에 마치 야간조명쯤으로 여겨지는 작은 사각형 돌덩이가 있다. 카메라 망원렌즈로 당겨 보면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이라고 새겨져 있다.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답사에 참여한 시민 윤치영씨는 “그동안 서울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오늘 탐방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발견하니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하다”며 “많은 사람의 만남의 장소인 이곳에 이런 유산이 있다니 그저 놀랍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날의 답사 기록을 서울 미래유산블로그 포스팅 공모전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았다. 지하철 수준점을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다. 보신각이 문화재인 탓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마침 문화재 관리인이 안에 있기에 사진을 대신 찍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셨다. 그래서 귀한 사진을 두 장 얻었다. 또 보신각 앞에는 1919년 3·1운동 중심지였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첫 종교방송 ‘옛 기독교 방송국’ 건물세계 명곡과 서양고전음악 보급에 기여 박 해설사가 설계한 코스는 ‘다이내믹’하기로 유명하다. 이날도 종각에서 출발해 을지로와 충무로를 종횡무진 걸어가며 길 위에 남은 기존 문화재와 미래유산을 콕콕 집어냈다. 보신각에서 큰길 동쪽으로 조금 걸으면 옛 기독교방송이 있던 누런색의 서양식 빌딩이 나온다. 지금은 기독교서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1954년 기독교방송이 있던 자리다. 전파는 연희동 송신소에서 내보냈고, 이곳에는 연구소와 사무실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종교 방송국이 있던 장소이자 민간방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박 해설사는 “당시 기독교방송은 다른 방송에서는 듣기 어려운 서양고전음악, 세계명곡, 명가극, 성사극 등을 내보내 우리나라 서양고전음악의 보급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바로 옆에 있었던 종로서적도 지금 있었다면 미래유산 감인데, 시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2002년 6월 최종 부도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종로 ‘젊음의 거리’를 따라 답사단은 뒷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관철동은 종로 뒷골목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종로를 대표하는 법정동이다. 관철동 골목길을 포함해 도시 조직 자체가 서울미래유산이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 자체의 기술력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한 곳이다. 내무부는 1952년 전쟁 복구를 위해 19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를 고시하고, 이 중 시급히 시행할 5개 지구를 정했다. 그중 한 곳이 관철동 지구로 조선시대 구불구불한 실개천변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던 도시조직이 격자형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쳤다. 관철동 삼일빌딩과 베를린 광장3.1운동 오마주와 통일 염원 담은 유산 요즘 관철동 골목은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해 있다. 고공행진하는 임대료 탓에 기존 상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건물주와 상인들의 공생 노력이 활발하다. 젊음의 거리 골목 사거리에는 ‘건물주와 세입자는 가족입니다. 임대료 인하하여 골목상권 활성화합시다. 갑이 도와야 을이 삽니다. 을이 죽으면 갑도 죽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관철동문화발전위원회 명의로 걸린 플래카드는 현명한 ‘갑’의 자세를 보여준다. 골목 몇 개를 좌우로 돌자 어느새 삼일빌딩 아래 서 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의 입에서 70·80년대 삼일빌딩의 위용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이 빌딩을 보려고 일부러 시골에서 올라온 관광객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삼일빌딩은 삼미그룹의 모태인 대일목재공업이 1968년 사옥으로 쓰려고 30억원을 들여 짓기 시작해 1971년 완공했다. 머릿돌은 1970년 3월 1일로 새겨져 있다. 삼일로에 31층 빌딩을 3월 1일 세운 것은 아마도 3·1운동 정신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는지. 그러나 정작 건축가 김중업은 설계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1층에 KDB산업은행이 들어섰고, 건물 외벽에는 대우정보시스템이란 돌출글자로 된 간판이 붙어 있다. 삼일빌딩 건너편 한화빌딩에는 ‘베를린광장’이란 공간이 있다. 베를린시로부터 베를린 장벽 일부, 베를린 베어(Berlin Bear), 조명등과 의자를 기증받아 2005년 조성된 광장이다. 서울시와 베를린시 두 도시 간 우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통일을 염원하는 장소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관수동 명패·영화관·노가리 골목영화보고 안동장 짜장면 먹고 노가리 안주까지 이제 관수동 명패골목으로 탐사팀이 이동했다. 빽빽한 골목길 안에 상패, 명패, 트로피, 기념물을 만드는 명패사가 즐비하다. 대로변부터 골목 안까지 명패 상권이 실핏줄처럼 발달해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90년대에 명패골목으로 완전히 형성됐다. 직업군인으로 정년퇴직을 한 이용성(78)씨는 “군 생활 할 때 이곳에 명패를 맞추러 자주 들렀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명패골목은 30~40년 된 굴보쌈 골목, 생선구이집 골목과 연결돼 있었다. 필자 역시 “50년 서울살이 동안 종로 대로변만 다녀봤지 남쪽 뒷골목에 이렇게 맛집이 모여 있을 줄 몰랐다”고 거들었다. 곧이어 이번 답사의 한 축인 영화관 골목이 시작됐다. 답사팀은 종로 3가역 서울극장을 거쳐 충무로길을 따라 명보아트홀까지 걸으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32전 전승이라는 전대미문의 해전사를 들었다. 중구청은 충무로 보도 위에 충무공 해전사를 기록해 놓았다. 서울미래유산인 서울극장은 합동영화사가 세기극장(1958년 개관)을 인수해 1979년 ‘서울극장’으로 개관했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이었다. 영화의 길을 가던 중간에 노가리 골목에 들렀다. 이 골목은 1980년대에 형성됐다. IMF 경제 위기가 닥치자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값싼 노가리 골목을 찾으면서 상권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2년엔 을지로 노가리호프번영회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상인 번영회 중심으로 매년 5월이면 을지로 노가리 축제를 연다. 이때만큼은 생맥주 한잔이 1000원이다. 노가리는 한 마리 1000원으로 오래전부터 가격이 요지부동이다. 노가리골목 터줏대감 격인 만선호프에서 22년째 일하는 조이로(82)씨는 이날도 노가리를 다듬고 있었다. 조씨는 “금요일같이 잘 팔리는 날은 하루에 노가리 1000마리, 평소 때는 500~600마리 정도 팔린다”고 말했다. 만선호프는 조씨 조카가 운영하고 있다. 호프집 골목을 나서자 길 건너 빨간색 간판이 트레이드마크인 서울미래유산 ‘안동장’이 보인다. 1948년 피카디리 극장 근처에서 화교인 왕충요씨가 개업한 중화요리집이다. 1950년 현 위치로 이전해 2대 왕용성씨, 지금은 3대 왕홍덕씨 등 3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다. 영화와 인쇄의 대명사 충무로 을지로 개발로 1984년 대거 이전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드디어 충무로에 들어섰다. 충무로 인쇄골목 입구에는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충무로는 ‘영화와 인쇄의 대명사’이다. 영화판 경력에 대한 질문은 으레 “충무로에서 몇 년 일했냐”로 치환된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인쇄골목 인쇄기는 쉼 없이 돌아간다. 내년도 달력, 다이어리, 수첩을 한창 찍어내기 때문이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1980년대 시작됐다. 원조 인쇄골목은 을지로다.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을 시작으로, 경성극장, 낭화관, 중앙관 등이 을지로에 생기면서 영화 전단을 찍으려고 을지로에 인쇄소들이 생겼다. 그러다 1984년 을지로 개발로 을지로에 있던 인쇄업체 500여곳이 충무로로 이전하면서 충무로가 성황을 이뤘다. 충무로에서 영화와 인쇄산업을 서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구청에 따르면 현재도 인가업체 1000여개, 미인가업체 3000여개에서 2만여명의 종사자가 일하고 있다. 시민에게 내어준 대한극장 옥상강북 전경 한눈에… 도시락 들고 소풍도 이번 답사는 대한극장에서 마무리했다. 대한극장 8층 옥상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개공지’다. 대한극장이 서울시민을 위해 제공한 도심 쉼터로 화장실, 벤치가 갖춰져 있고 강북지역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볕 좋은 날엔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가서 까먹어도 좋은 곳이다. 답사에 참석한 홍정자(76)씨는 세운상가에 대한 해설사의 짧은 설명을 듣자 “1966년(실제 준공은 1967년) 세운상가 아파트 7층에 입주해 살았다”며 “전자상가에 점포도 하나 운영했었다”고 회상했다. 남편 이용성씨는 “차를 타고 지나쳤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걸어가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니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대한극장 옥상에서 세운상가를 바라보며 이 부부는 5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감회에 젖어 있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오늘 밤은 드라마로 위로 받으세요

    오늘 밤은 드라마로 위로 받으세요

    최순실 사태 큰 상처 드라마 볼 여유 없어 그래도 ‘희망’ 꿈꾸다 지상파 방송 3사가 16일 밤 10시 동시에 수목 드라마 선수를 교체하고 경쟁에 돌입한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 상대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주목도는 떨어진 상황. 드라마 관계자들은 “확실히 국민들에게 드라마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화제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드라마를 보며 우울한 현실을 위로받고 싶은 시청자들도 있지 않겠느냐”고 밝히는 등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이다. 꺼져 가는 한류에 불을 지폈던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와 전지현이 또다시 의기투합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바다에서 도시로 올라온 인어와 임기응변에 강한 천재 사기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제작사 측은 “조선시대 설화집 ‘어우야담’에는 실존 인물인 협곡현령이 어부로부터 어린 인어들을 구해 바다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서 “그중 한 인어가 어느 날 화려한 도시 속으로 하이힐을 신고 들어온다는 상상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별그대’에서 망가지는 톱스타 천송이 역으로 인기를 모았던 전지현이 이번에는 인어 역을 맡아 손으로 음식을 먹는 등 좌충우돌 육지 적응기로 초반에 주목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인어는 준재(이민호)를 통해 인간의 언어를 점차 배우게 된다. 전지현은 “천송이 역은 넘어야 할 벽이고 고민도 많았지만 박 작가와 호흡이 잘 맞는 만큼 연기에 자신감이 더 붙었다”며 “수중촬영 장면이 많은데 인어라는 신선하고 신비로운 캐릭터를 풀어 나가는 데 좋은 매개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없는 사람 돈은 안 먹는 나름의 사기 철학을 지닌 사기꾼 역의 한류 스타 이민호가 자신으로부터 세상을 배워 나가는 인어와 펼치는 로맨스 연기도 관심을 끄는 대목 중 하나다. 진혁 감독은 “천송이가 능청스러웠다면 인어는 순수한 면이 더 강조됐다”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을 새롭게 보는 인어를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따뜻하면서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KBS ‘오 마이 금비’는 10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착한 드라마다. 삼류 사기꾼 휘철(오지호)은 어느 날 자신 앞에 나타난 아동 치매에 걸린 10살 딸 금비(허정은)를 돌보면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제작진은 감상에 매몰되기보다는 유쾌하게 부성애와 가족애를 그린다는 계획이다. 연출을 맡은 김영조 PD는 “현대인들은 현실의 욕망이 넘쳐나고 남과의 비교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며 “기억이 몇 개 없지만 그마저도 없어지는 10살 금비를 통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무엇인지 함께 나눠 보고 싶다”고 말했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는 10~20대 시청자들을 겨냥한 청춘 로맨스물이다. tvN ‘고교 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으로 인기를 모았던 양희승 작가의 신작으로 운동밖에 모르는 21살 역도 선수 김복주(이성경)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그린다. 한얼체대 2학년 여자 역도부 선수인 복주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다혈질이지만 정도 많고 눈물도 많다. 하지만 역도 선수인 탓에 소개팅 한 번 못 해 본 그의 앞에 초등학교 동창인 같은 학교 수영부 선수 정준형(남주혁)이 나타나면서 로맨스가 펼쳐진다.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을 자극하는 드라마로 독특한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공감을 살 것인지가 관건이다. 제작진은 “치열한 청춘들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삼포 세대로 불리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푸른 바다의 전설’ PD, “현 시국과 겹치는 내용, 깜짝 놀라” 어떤 내용?

    ‘푸른 바다의 전설’ PD, “현 시국과 겹치는 내용, 깜짝 놀라” 어떤 내용?

    ‘푸른 바다의 전설’ 연출 진혁 PD가 드라마의 내용과 현재의 대한민국 시국 상황과 닮았다고 밝혔다. 14일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에서 SBS 새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박지은 극본, 진혁 박선호 연출)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푸른 바다의 전설’ 연출을 맡은 진혁 PD는 드라마에 대해 소개하던 중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부조리하지 않나 체크하는 부분들이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진혁 PD는 “요즘 시국이 벌어지기 전에 기획된 인물들과 상황들이다. 그래도 대본이나 촬영 본을 돌려보면 지금 시국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고 덧붙였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는 사기 트리오 허준재(이민호) 조남두(이희준) 태오(신원호)가 등장한다. 이들은 ‘등 쳐먹어도 될 만한’ 이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인물. 사실상 ‘의적’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질 예정이다. 한편 ‘푸른바다의 전설’은 조선시대 설화집 ‘어우야담’의 실제 기록에서 모티브를 딴 드라마다. 도시에 온 인어(과거 세화, 전지현)와 지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기꾼 허준재(과거 담령, 이민호)의 공존할 수 없어 팽팽하고 치열한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오는 16일 밤 10시 첫 방송 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씨줄날줄] ‘촛불혁명’/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촛불혁명’/박건승 논설위원

    시위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그 주역은 최고 국립교육기관 성균관의 유생이었다. 조정의 부당한 처사나 이단을 비판하는 것이 주된 소재였다. 유생들은 현안이 생기면 요즘의 학생회와 비슷한 ‘재회’라는 것을 열어 논의했고, 과반수가 안건에 동의하면 행동으로 옮겼다. 대표자가 글을 짓고 모든 유생들이 서명했다. 그런 뒤 지금의 서울 명륜동 성균관에서 궁궐까지 길을 청소하게 하고 상가를 철수시킨 뒤 글을 들고 조정으로 향했다. 대궐 앞에 열 지어 앉아 임금의 답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임금이 청을 거절하면 수업 거부와 단식투쟁에 나섰다. 집단 휴학인 셈이다. 세종이 궐 안에 절을 세우자 유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는 96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시위의 관통어는 돌과 방패, 최루탄, 페퍼포그, ‘닭장차’ 등이었다. 시위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급기야 닭장차 앞에는 ‘무석무탄(無石無彈), 인즉인(忍卽仁)’-돌 안 던지면 최루탄 안 쏜다. 참는 자는 어지니리-이 적힌 입간판까지 등장했다. ‘귀학귀군’(歸學歸軍)-학교로 돌아가면 경찰이 철수하겠다-이 나온 것도 80년대 중반 호헌공방의 격랑 속에서였다. 학생들은 즉각 ‘무탄무석’(최루탄 안 쏘면 돌 안 던진다), ‘귀군귀학’(경찰이 철수하면 학교로 돌아간다)으로 맞섰다. 우리 집회문화의 물줄기를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것은 촛불시위다. 촛불은 희생과 결집, 희망, 기원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래서 촛불시위에서는 비폭력성과 질서, 평화를 표방한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미선·효순 사건이 도화선이 된 촛불시위는 엊그제 100만 민심을 결집해 내며 집회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법원이 광화문 전 차로와 청와대 인근 행진을 허용한 것도 촛불 평화시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게다. 촛불시위가 풍자와 해학이 가득 찬,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형식을 만들어 가는 시민축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광화문 대로에 노래·춤·공연 축제가 펼쳐지고, 권력에 항거하는 내용의 플래시몹이 선보이고…. 100만 민심이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그곳에 단두대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부적, 그리고 오방낭에 승마복까지…. 촛불 민초들의 얼굴엔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쳤다. 오늘날 시위의 문법은 공감과 평화다. 무력과 폭력이 아니다. 투쟁만의 공간이 아닌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펼 수 있는 자리다. 100만 촛불 속의 가족 모습과 교복 차림의 중고생, 젊은 연인, 휠체어 탄 장애인, ‘혼참러’(나홀로 시위 참여자)들이 그걸 보여 주지 않았는가. 똑똑한 시민들의 당당하면서도 질서 있는 분노의 외침, 그런 우리 ‘촛불’들이 자랑스럽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청계천 밝힐 ‘빛초롱 축제’

    서울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빛초롱 축제에 많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서울의 대표축제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또 마카오관광청 등 해외 도시들이 참가해 자국을 알리는 계기도 되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20일까지 서울 청계광장에서 수표교까지 1.2㎞ 물길 위에 수천 개의 오색등이 불 밝히는 ‘서울빛초롱축제’가 열린다고 9일 밝혔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역사가 흐르는 한강, 빛으로 밝히다’이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한강 줄기를 따라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문화·생활 속 다양한 순간들을 다채로운 등불로 담았다. 대표적으로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시 검룡소부터 암사동 선사유적지, 조선시대 마포나루와 6·25 한강철교 등을 정교한 형태의 등으로 표현했다. 또 이번 축제에는 12월부터 마카오에서 열리는 ‘라이트 페스티벌’을 알리기 위해 마카오관광청에서 대표 유적인 성바울 성당을 등으로 꾸며 전시한다. 장병학 서울빛초롱축제조직위원장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청계천 물길을 따라 불을 밝힌 작품을 보면서 서울의 젖줄인 한강과 아름다운 도시 서울의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첫 한글 활자본 ‘월인천강지곡 권상’ 등 2건 국보 승격

    첫 한글 활자본 ‘월인천강지곡 권상’ 등 2건 국보 승격

    돌려받은 국새 등 6건 보물 지정예고 세종대왕이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를 기록한 책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 보물 제398호)과 고려 시대에 제작된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최초의 한글 활자본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국어학과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인 ‘월인천강지곡 권상’과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월인천강지곡 권상’은 한글은 큰 활자, 한자는 작은 활자를 사용해 찍었다. 한글 자체는 ‘용비어천가’와 동일하다. 15세기 중반 부안 실상사 불상의 복장물(腹藏物·불상 안에 넣는 물품)로 납입됐고, 1914년 실상사 인근에 있는 내소사 주지가 훼손된 불상을 소각하기 직전 복장을 열면서 발견됐다. 2013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돼 보관하고 있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국보 제48호인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왼쪽 다리를 세워 공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탑 앞에 세워진 공양보살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조각상이다. 전체적으로 비례미가 있고, 보관·귀고리·팔찌·목걸이 등 세부 장식이 화려하고 섬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조선과 대한제국의 국새 등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신하들과 함께 발원한 것으로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서 나왔다. ‘국새 황제지보’, ‘국새 유서지보’, ‘국새 준명지보’는 한국전쟁 중에 미국으로 유출됐다가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돌려받은 유물이다. 한국과 중국 시인 30명의 시를 모은 책인 ‘협주명현십초시’와 18세기에 제작된 ‘박동형 초상 및 함’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가을볕 속 항일·친일 굴곡진 역사의 발자취 더듬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가을볕 속 항일·친일 굴곡진 역사의 발자취 더듬다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12일 답사는 ‘연극과 문화의 산실 대학로’를 주제로 한선영·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진행한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중 윤극영 가옥처럼 역사·문화적 보존가치가 있는 공간을 활용해 살아 있는 교육·관광자원을 만들고 있다.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윤극영 가옥은 1970년에 지어져 윤 선생이 1977년부터 1988년 11월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고 이후 유족들이 살았다. 서울시는 건축물 원형 보존 상태와 내외부 안전도가 양호하다고 판단하고, 약 6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3년 유족들로부터 집을 사들인 뒤 역사 교육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윤 선생은 일제강점기 창작동요 선구자다. 서울시는 강북구근현대사기념관과 연계해 어린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는 또 윤극영 가옥 이외에 구의 취수장을 이용한 거리예술창작센터, 함석헌 기념관, 강북구근현대사기념관 등을 활용하는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열네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있었던 지난달 22일, 청와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폭발력을 예견했던 것 같다. 청와대 인근 김상헌 시비가 있는 ‘무궁화동산’으로 가려니, 효자동주민센터 앞부터 엄청난 경찰 병력이 진을 치고 청와대 쪽으로 들어오는 시민들을 검문검색했다. 답사 때면 늘 카메라, 플래카드, 손수건 30장씩을 챙기고 다니다 보니 가방이 무게가 제법 나가고 불룩하다. 경호요원의 상징인 검은 선글라스에 검정 양복을 입은 남자가 소속도 밝히지 않은 채 가방을 열어보란다. 불법 불심검문이다. 새빨간 손수건 뭉치가 나오자 선글라스 안경알 넘어 동공이 확대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게다가 플래카드까지 나오니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아무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이러려고 서울미래유산 답사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번 답사는 배건욱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준비한 웃대 마실이다. 웃대는 현재 서촌으로 더 잘 알려진 인왕산 동쪽 아랫마을을 일컫는다. 주제를 편하게 웃대 마실로 잡았지만, 사실 이번 답사는 항일과 친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배 해설사는 웃대 일대에 자리한 서울미래유산들까지 함께 들춰봄으로써 근현대사와 미래유산을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냈다. 웃대에서는 항일운동가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집터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을 기리는 우당기념관 등 항일 인사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또 윤덕영(1873~1940), 이완용(1858~1926)과 같은 친일파의 집터와 별장 흔적을 통해 그들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부를 축적한 그리 오래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무궁화동산에 시비병자호란 척화파 청음 김상헌 집터 웃대는 항일 이전에 항몽(抗蒙) 역사가 먼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경복고등학교 정문 앞에는 병자호란 당시 대표적 척화파였던 청음 김상헌(1570~1652)의 집터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다. 그가 청나라로 압송돼 가면서 남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로 시작되는 시조는 아직도 널리 회자된다. 배 해설사는 “김상헌은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출병을 요구했을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미운털이 박힌 채 소현세자와 함께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경복고에서 조금 더 내려오니 무궁화동산에 후손들이 세운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시비가 서 있다. 이곳은 김상헌 생가터가 있던 곳으로 이후 안동 김씨의 세거지(일종의 집성촌)가 됐다. 무궁화동산은 옛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전가옥 터에 지어진 공원이다. 과거에는 청와대 경내로,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앞길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됐다. 공원 중앙에는 궁정동을 상징하는 우물 정(井)자 분수대가 놓여 있다. 이회영 선생 형제들 우국충정 기려민족 지사 우당 기념관 국립서울농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27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수화 모양 석조물이 서 있다. 학교 안에는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를 위한 사당인 선희궁(서울시유형문화재 제32호)이 잘 보존돼 있다. 학교를 빠져나와서 인왕산 방향으로 조금만 오르면 우당기념관이 나온다. 종로구 신교동 6-22 빌라촌 하단부에 둥지를 튼 우당기념관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과 그 형제들의 우국충정을 소박하게 기리고 있었다. 입구 정면에는 이회영의 흉상과 사진, 연보를 비롯해 여섯 형제가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 직전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소장돼 있다. 이회영은 여섯 형제 중 넷째이고 대한민국 초대 부총리를 지낸 이시영이 막내다. 배 해설사는 “이회영 선생의 업적은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것이고, 거액의 자금은 모두 그의 집안에서 조달했다”며 “이곳에 오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서글픈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회영은 1924년 베이징에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는 등 아나키스트로 변신하면서 독립운동 노선에 변화를 준다. 1932년 일본에 의해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윤동주가 머물렀던 하숙집도 서울미래유산이 돼 항일의 길에 당당하게 서 있다. 매국으로 부 축적… ‘돌문 안 뾰족한 집’으로 불려친일파 윤덕영 별장 벽수산장 기둥 흔적 웃대 항일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친일의 길이 시작됐다. 웃대에서는 아직도 항일과 친일의 정신이 소리 없이 싸우고 있는 듯했다. 윤덕영의 별장인 벽수산장 터에는 호화롭던 건물은 자취가 없고 기둥 몇 개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최근에 지어진 집 앞에 오래되고 거대한 기둥이 뻘쭘하게 서 있는가 하면, 근처에는 비슷한 기둥 상단부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사전 지식 없이 지나가면 도무지 뭔지 모를 돌덩어리들이다. 초호화판 벽수산장의 흔적치고는 초라했다. 배 해설사가 옛 벽수산장의 사진을 보여주자 답사객들이 규모와 화려함에 놀랐다. 59년째 이 동네에 거주하고 있다는 주민 이병문(78)씨는 “벽수산장이 1966년 큰불이 나서 방치돼 있다가 1973년 철거한 후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주민 대부분이 3~4대 정도 살아왔기 때문에 옛일을 소상히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벽수산장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송석원으로 불렸다. 당시에는 인왕산 계곡 깊은 곳이었기 때문에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이었다. 조선 중기에는 중인들의 여항문학이 싹튼 곳이기도 하다. 윤덕영은 순종 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큰아버지다. 친일과 매국으로 부를 축적해 ‘돌문 안 뾰족집’으로 불렸던 벽수산장을 3년에 걸쳐 지었다. 공사 대금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은사금으로 충당했다. 설계도는 프랑스 공사로 갔던 민영찬이 사뒀던 것을 이용했다. 윤덕영은 벽수산장 가까이 그의 딸을 위한 집도 지었다. 지금은 박노수 미술관(서울시문화재자료 제1호)으로 단장해 종로구청이 관리하고 있다. 옥인파출소와 종로구 보건소 일대는 이완용의 집터로 알려졌다. 웃대에는 아직 친일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다. 웃대 일대는 서울미래유산도 상당히 많이 분포돼 있다. 경복궁역 3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만날 수 있는 김봉수작명소는 1958년에 즈음하여 길 건너 금천교시장에서 문을 열었다. 1977년 현재 위치로 이사해 2대 김성윤씨가 운영하고 있다. 정·재계 인사들이 단골로 많이 온다고 한다. 1950년대 조성된 통인시장은 도시락 카페 등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다른 재래시장과의 차별화를 통해 하루 평균 1500명이 넘는 이용객이 방문한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시장 안에는 원조 할머니 기름떡볶이집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956년 맹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고, 1986년 김임옥 할머니에게 전수했다. 지금은 김 할머니의 두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나와서 일을 할 정도로 주말 북새통을 이룬다. 근처에 원조 떡볶이집이 또 있는 데 대해 큰아들 오정환씨는 “잘 아시겠지만 원조는 우리다”며 원조 논란을 한마디로 잠재웠다. 배 해설사가 공사장 가림막 앞에서 멈춰 서더니 망연자실해했다. 노천명 가옥이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한 뼘도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배 해설사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이렇게 사라지다니 허탈하다”고 아쉬워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본부 문화정책과의 이지나 미래유산팀 주무관은 “노천명 가옥은 철거된 게 아니고 전면 수리에 들어간다고 한옥조성과에 접수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 20년간 살았던 집…시인의 자취 찾을 수 없어시인 이상의 집 웃대 초입에 있는 이상의 집은 시인 이상이 큰아버지집 양자로 들어가 1912년부터 20년간 살았던 곳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부지를 매입해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운영·관리를 맡고 있다. 부인과 딸 등 가족과 함께 나온 오승건씨는 “밖에선 이상의 흔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관리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며 “서울미래유산 현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촌 한옥 지역 일대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이곳 외에 한옥 밀집 지역인 돈화문로 주변, 북촌, 동소문 2가동, 제기동, 인사동, 명륜동, 보문동 일대가 모두 서울미래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아빠와 함께 나온 김경민(7)양은 “언덕이 있어서 힘들었지만 선생님 설명을 들으면서 가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앞으로 계속 나오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종영’ 옥중화, 시청률 23.2% 유종의 미 거뒀다...드라마가 남긴 것은?

    ‘종영’ 옥중화, 시청률 23.2% 유종의 미 거뒀다...드라마가 남긴 것은?

    무려 8개월간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가 종영했다. 지난 6일 방송된 ‘옥중화’ 마지막회에서는 옥녀(진세연 분)를 필두로 한 대윤세력이 윤원형(정준호 분)-정난정(박주미 분) 등 그간 국정을 농단해온 소윤 세력을 응징하며 정의의 힘을 확인시켰다. 동시에 옹주로 복권된 옥녀는 궐에서 사는 것을 거부하고 외지부 활동을 지속하며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선택,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안겼다. 내용과 함께 시청률 또한 전회 대비 1.8%오른 23.2%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에 51부 대장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옥중화’가 남긴 특별한 여운들을 되짚어 본다. ▶ ‘이병훈 매직’ 51회 연속 동시간 시청률 1위(닐슨 코리아 기준) ‘옥중화’는 ‘대장금’, ‘허준’, ‘동이’ 등을 연출한 사극 거장 이병훈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해 ‘옥중화’는 첫 방송 이래, 단 한 차례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이병훈 감독의 건재함을 재확인시켰다. ▶ 드라마 속 역사의 한 조각 : ‘전옥서’ 그리고 ‘외지부’ 이병훈 감독은 평소 사극에 우리나라 역사에서 묻힌 인물을 다뤄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별한 인물이 아닌 기관과 제도를 소개했다. 그것이 바로 조선시대 감옥인 ‘전옥서’와 조선시대 변호사인 ‘외지부’다. 특히 외지부를 소재로 다뤄 드라마의 재미에 유익함을 더했으며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던 선진적인 인권 제도를 시청자들에게 소개해 시청자들이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했다. ▶ 막장 없이도 재미 가득했던 51부 ‘옥중화’는 주말드라마 시장에서 흥했던 ‘막장 코드’ 없이 2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비결은 ‘거장 콤비’ 이병훈-최완규의 노련한 완급 조절에 있었다. 처음부터 드라마에는 주인공 옥녀의 출생 배경이라는 미스터리 코드가 스토리에 심어져 있었다. 이 같은 옥녀의 성공사라는 큰 줄기에 삼각 로맨스, 대윤세력과 소윤세력의 첨예한 대립, 감초 캐릭터들의 코믹 에피소드 등을 적절하게 배합해 알찬 전개를 선보였다. ▶ 따뜻한 주제의식 ‘선의’(善意) 드라마의 근본적인 주제 의식에는 선으로 똘똘 뭉친 ‘애민’이 깔려 있다. 극 전반부에는 옥녀와 정난정의 대립구도에서 쌀, 소금, 역병 등 백성들의 기초적인 삶과 관련된 소재들을 갈등의 중심소재로 삼으며 권력자들의 횡포 속에 고통 받는 백성들에 연민들 드러냈다. 극 후반부 옥녀와 태원이 ‘외지부’로서 억울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대변자로 나섰다. 마지막 회 엔딩에서도 ‘옹주’ 옥녀가 아닌 ‘외지부’ 옥녀가 차지한 것은 이 같은 주제의식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옥중화’는 민초들에게 희망을 안기는 결말을 선택함으로써, 작금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가슴에 먹먹한 위로를 안겼다. 사진제공=김종학프로덕션, MBC ‘옥중화’ 방송화면 캡처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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