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시대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금융감독원장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투신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아프리카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외부세력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23
  • 한류 콘텐츠 잡기 손안의 세계대전

    한류 콘텐츠 잡기 손안의 세계대전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기업과 토종 기업들이 ‘한류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은 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국내 기업들은 좁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K팝 아이돌과 웹툰, 드라마 등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유튜브는 지난달 27일 그룹 빅뱅이 출연하는 웹예능 ‘달려라, 빅뱅단!’을 공개했다. 유튜브와 YG엔터테인먼트가 제휴하고 빅뱅이 직접 기획한 예능으로, 멤버들이 캠핑을 떠나 추억을 만드는 내용을 편당 15분, 총 6편에 담았다. 최근 ‘유튜브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려 가고 있는 유튜브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콘텐츠다. ‘달려라, 빅뱅단!’을 보기 위해서는 월정액 7900원을 내고 유튜브의 프리미엄 유료 서비스인 ‘유튜브 레드’에 가입해야 한다. 유튜브 레드는 광고 없이 동영상을 재생하고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가 독점 제공되는 서비스다. ‘달려라, 빅뱅단!’ 1회가 무료로 공개되고 누적 재생수가 480만회에 달하면서 국내외 빅뱅 팬들을 유튜브 레드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우스 오브 카드’ 등으로 전 세계 드라마 시장을 뒤흔든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과 손잡으며 영화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5000만 달러·약 600억원)을 투자해 제작한 봉 감독의 영화 ‘옥자’는 넷플릭스 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입성했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공개되는 영화가 경쟁부문에 진출하자 칸영화제 조직위원회가 내년부터 프랑스 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만 경쟁부문에 초청하도록 규정을 변경할 정도로 세계 영화계에 적잖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월 국내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드라마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3월에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스릴러 드라마 ‘킹덤’의 제작 소식을 알렸다. tvN 드라마 ‘미생’, ‘시그널’ 등을 기획, 제작한 이재문 프로듀서와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합류하면서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확대되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에 콘텐츠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토종 플랫폼들도 ‘맞불’을 놓고 있다. 기존 방송사가 시도하기 어려운 웹예능과 드라마, 1인 방송 등을 선보이며 콘텐츠 시장에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국내 통신사의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중에서는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공개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이 조회수 600만회를 넘으며 인기를 끈 데 이어 지난달에는 드라마 ‘애타는 로맨스’와 그룹 레인보우 출신 지숙이 진행하는 예능 ‘지숙이의 혼밥연구소’를 공개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업계도 독점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네이버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대신 ‘네이버TV’와 ‘브이 라이브’ 등 플랫폼을 통해 한류 스타와 1인 창작자 등의 콘텐츠를 늘려 가고 있다. K팝 아이돌 등 한류 스타들이 인터넷 생방송을 진행하는 ‘브이 라이브’는 애플리케이션(앱) 누적 다운로드 수 3400만건, 월간 사용자 수 1800만명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유료 서비스인 ‘브이 라이브 플러스’와 ‘채널 플러스’를 내놓아 유료 비즈니스 모델도 자리잡아 가고 있다. 카카오는 웹툰과 웹소설 등 자사의 지적재산권(IP)을 드라마와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유료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인기를 끈 웹툰 ‘눈을 감다’는 웹무비로 제작돼 지난달 카카오페이지에 공개됐다. 자회사 로엔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드라마 제작에도 나선다. 로엔엔터테인먼트는 11일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과 공동으로 제작사를 설립하고 카카오의 IP에 기반한 드라마와 예능 등을 제작해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TV에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오리지널 콘텐츠는 ‘한류’를 활용한 국내 플랫폼의 글로벌 진출을 이끌 수 있는 경쟁력이기도 하다. 유튜브가 대표 한류 아이돌인 빅뱅과 손을 잡은 것도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의 K팝 팬들로 유튜브 레드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네이버 ‘브이 라이브’의 경우 전체 앱 다운로드 중 80% 이상, ‘브이 라이브 플러스’의 판매 건수 중 70% 정도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옥수수의 글로벌 진출을 추진해 한류 대표 플랫폼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정선 아우라지서 벌집 모양 적석 유구 첫 발견

    정선 아우라지서 벌집 모양 적석 유구 첫 발견

    “中 랴오둥반도 청동기시대 무덤 닮아” 신라·한성백제시대 유물도 함께 출토 지난해 남한 최고(最古)의 청동 유물이 나온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 국내 처음으로 벌집 모양으로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문화재청은 정선군과 강원문화재연구소가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191번지 일원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던 중 크고 작은 방 51개로 이뤄진 적석(積石·돌무지) 유구를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국내에서 이렇게 벌집 모양으로 방이 여러 개 붙어 있는 형태의 유구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유구는 강돌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축조했으며, 총길이는 40m, 폭은 20m로 측정됐다. 방 하나의 길이는 최소 1.6m에서 최대 4m, 너비는 최소 1.5m에서 최대 3m에 이른다. 가장 높은 돌벽은 1.5m로, 가장 아랫단에선 강돌을 길게 세워 단단히 보강한 흔적도 발견됐다. 석렬 안에서는 신라시대 굽다리접시인 대부배(臺附杯) 3점과 한성백제시대 토기인 단경호(短頸壺)와 토기 조각이 출토됐다. 이와 함께 청·백자, 상평통보, 돼지와 말의 뼈 등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형태의 유구라 조성 시기와 용도를 단정할 순 없지만 중국 랴오둥반도의 청동기시대 무덤과 비슷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유구의 구조는 중국 랴오둥반도의 청동기시대 무덤과 비슷한데 청동기시대 유물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이런 형태의 유구가 발견된 것은 올해 발굴 가운데 최대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종모 강원문화재연구소 실장은 “경주 신라 고분이나 서울 백제 무덤 등을 봐도 국내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유구를 찾을 수 없고 현재 출토된 유물도 삼국시대 것이라 아직 정확한 쓰임을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선 아우라지 유적은 지난해 3월부터 진행된 2차 발굴 조사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층의 유물이 출토돼 왔다. 집터와 고분 유구 160여기가 나온 상태로, 이 가운데 1기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62기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오랜 기간 사람들이 거주한 지역으로 판단된다. 아우라지 유적은 정선군이 당초 관광단지를 건설하려 했던 곳으로, 2006년 1차 조사에서 남한강 수계에서는 최초로 신석기 주거 유적이 확인되면서 발굴이 이뤄져 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군주’ 김소현, 조선시대에 이런 처자가? ‘첫 방송 기대 폭발’

    ‘군주’ 김소현, 조선시대에 이런 처자가? ‘첫 방송 기대 폭발’

    배우 김소현이 MBC 새 수·목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 첫 방송을 앞두고 사진을 공개했다. 김소현은 10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군주 오늘 밤 10시 첫 방송합니다. 가은이 기대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 두 장을 게재했다. 사진 속 김소현은 분홍색 쓰개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김소현은 이번 드라마에서 한가은 역을 맡아 독립적이고 생활력 강한 조선시대 여인을 연기할 예정이며 배우 유승호와 연기 호흡을 맞춘다. 사진 = 김소현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차를 마시면 흥하리

    [정찬주의 산중일기] 차를 마시면 흥하리

    차는 행복한 치유의 물방울이다 허백련 화백은 ‘차를 많이 마시면 나라가 흥한다’고 했다 다도 전통을 방방곡곡에서 되살려야…어제 차나들이를 다녀왔다. 차나들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지만 내가 지어서 써 온 말이다. 봄나들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해마다 곡우 무렵에 차나들이를 했는데 올해는 부처님오신날을 택일했으니 많이 늦은 셈이다. 신록과 녹음이 어우러진 산길은 벌써 초여름이 짱짱하게 서성거리는 느낌이었다. 순천 다보원에 이르자 제다는 이미 끝났고 찻방은 조용했다. 주인인 다목(茶目) 유수용 선생과 부인이 나를 맞이했다. 하루 전만 해도 제자들이 작설차를 만드느라고 붐볐다는데 파장이었다.나는 적적한 찻방에 든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햇살이 창을 투과해 들어와 한 자리 차지하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유 선생이 찻물을 붓고 백운산 야생차를 우렸다. 야생차는 300도와 350도 사이에서 짧게 여러 번 덖어야 풋내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찻잎을 속까지 익히는데 탄내가 붙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차꾼들은 이 과정을 풋내와 탄내를 잡는다고 하는데, 유 선생은 ‘은근하게 고소하면서도 미세하게 풋내가 나는 맛’이 최고의 차 맛이란다. 32년 경력의 명인이 경험으로 체득한 감각이니 새겨듣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찻물이 좋아야 그윽한 차 맛을 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제 경험입니다만 지리산이나 백운산 계곡물, 또는 오대산 우통수 샘물이 찻물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유 선생이 사용하고 있는 찻물은 백운산 계곡물. 과연 차를 한 잔 마셔 보니 그가 이야기한 대로였다. 입안에 향기롭고 맑은 기운이 은은한 무게로 감돌았다. 잠시 후에는 심신이 개운하게 정화되는 듯했다. 차야말로 행복한 치유의 물방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여름이 잰걸음하는 날의 차나들이였지만 그래도 잘 나섰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래서 나는 쑥스럽기도 하여 지나가는 봄날에 마시는 차이므로 ‘과춘차’(過春茶)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때마침 내 산방에서 가까운 보성에서는 ‘다향대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왕 차나들이가 늦어졌으니 이삼일 후쯤 축제 현장에 가서 보성차를 음미할 계획이다. 보성차의 역사는 깊다. 조선시대에는 갈평과 웅점에 차를 만들어 진상하는 다소(茶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때는 육조의 관원들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차 마시는 시간인 다시(茶時)와 관청마다 차방인 다시청(茶時廳)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맑은 정신으로 일하자는 취지에서 다시를 두었다고 한다. 이 같은 다시를 복원한다면 추락을 멈추지 않는 나라의 격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허백련 화백은 ‘차를 많이 마시면 나라가 흥한다’고 했고, 초의선사는 구도의 길을 묻는 젊은 승려들에게 ‘차를 마시면서 어찌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 하는가’라고 꾸짖기도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도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지혜’다. 그러니 차를 마신다는 것은 음다흥국(飮茶興國)의 길이고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녹차 관광 수도라고 자랑하는 보성군만이라도 먼저 다도 전통을 되살리는 차원에서 다시회복(茶時回復) 운동을 펼쳐 방방곡곡에 메아리쳤으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에는 복산(福山) 윤형관 선생이 내 산방을 찾아온 일이 있다. 윤 선생은 보성 봇재에 있는 자신의 차밭을 차 생산은 물론 힐링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선생의 차밭 이름은 명량다원.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재건하면서 보성 봇재를 넘어갔다고 하여 그렇게 작명한 듯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보성 봇재를 넘어가 회령진에서 배설에게 배 12척을 받아 명량대첩에서 대승했던 것이다. 나는 윤 선생에게 두 가지, 즉 차밭에 역사와 예술의 옷을 입히라고 조언했다. 역사는 차밭에 혼을 불어넣을 것이고, 품격을 높여 주는 촉매는 예술일 터. 차밭에 이순신 동상을 세워 애민의 혼을 살려 내고, 다시공원(茶詩公園)을 조성해 옛 선비들의 멋들어진 낭만과 정신을 닮아 보자는 바람에서였다. 윤 선생은 나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 주었고, 그래서 나는 그의 호처럼 복이 산처럼 쌓이기를 바랐다. 물론 복이란 것도 총량이 있어 베푼 만큼 돌아오는 인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 [런웨이 조선] 패딩솜은 속에, 홑겹옷은 겉에…한복 맵시 살리는 누비 스타일

    [런웨이 조선] 패딩솜은 속에, 홑겹옷은 겉에…한복 맵시 살리는 누비 스타일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볼 때가 종종 있다. 같은 옷이라도 누가 입었는지, 어떻게 입었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얘기다. 체형과 피부색, 머리색, 분위기에 따라 같은 옷이라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전통시대 사람들도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각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때도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한복과 다양한 치장으로 멋을 냈다 하지만 조선시대 남성들은 심플한 한복으로 어떻게 스타일을 표현했을까? 비슷한 옷이지만 착장의 기술에 멋내기 포인트가 있다.조선시대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여기에 포를 덧입으면 예의를 차린 옷이 된다. 우리나라 옷은 기본적으로 계절에 민감하다. 팔다리를 감싸 추위를 막고 앞섶을 열어 더위를 이겼다. 이러한 형태를 전개합임형(前開合栣型) 또는 카프탄(caftan)형이라고 한다. 추울 때는 깊이 여며 허리에 띠를 매고 더울 때는 앞을 열어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한다. 계절의 변화에 최적화된 형태이다. 그렇지만 여밈만으로 추위를 이겨 내긴 어려웠다. 이때는 우리가 패딩을 입듯이 솜옷을 입었다. 하지만 솜옷은 따뜻한 대신 투박하다. 솜의 두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솜옷으로 맵시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추위는 막으면서 세련된 느낌을 주는 방법이 필요했다. 바느질 솜씨 좋은 조선 사람들이 찾아낸 방법은 바로 누비이다. 누비는 두 겹의 옷감을 겹쳐 2~3땀씩 직선으로 바느질을 해 옷감이 따로 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침선기법이다. 이때 솜을 넣기도 하고 옷감만 덧대어 바느질하기도 한다.중요한 것은 솜의 두께와 누빔의 간격이다. 조끼나 배자를 만들 것인지, 긴 포(겉옷)를 만들 것인지, 도포 안에 받쳐 입을 것인지, 상체를 커 보이게 할 것인지 등을 고려하고 누비의 간격이나 두께를 정하고 다양한 종류의 스트라이프를 만들어 디자인에 반영했다. 누비는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옷이다. 그러니 일반 옷보다 훨씬 비쌌다. 누비의 스트라이프 무늬는 세련미까지 주어 겉옷으로 입어 자랑할 만했다. 하지만 전통시대 남성들은 아무리 비싼 누비옷이라 할지라도 솜옷을 겉옷으로 입지 않았다. 솜옷을 겉에 입는 것은 스타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솜옷을 속에 입고, 겉에는 홑겹의 옷을 입어 오히려 맵시를 살렸다. 또 다른 방법은 옷감의 재질에 따라 옷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사람들 중에 별감이 있다. 이들은 옷 색깔부터 눈에 확 띈다. 모두 검은색 갓을 쓸 때 이들은 노란색의 초립(草笠)을 쓴다. 그리고 흰색의 바지와 저고리 대신 보라색의 누비저고리에 외올뜨기 누비바지를 입고 그 위에 양색 비단을 누벼 만들거나 털로 만든 배자를 입는다. 다양한 색깔과 소재를 이용하는 안목이 돋보인다. 배자뿐만이 아니다. 배자 위에는 도포와 창의를 입는데 숙초(熟綃)로 만든 홍의를 겉에 입고 생초(生綃)로 만든 창의를 안에 받쳐 입는다. 생초는 섬유를 가공해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올이 꼿꼿하여 실 자체에 힘이 있다. 옷을 만들면 선이 빳빳하게 살아 있어 기상을 드러내기 좋다. 그에 반해 숙초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장점이 있다. 올이 살아 있는 생초를 안에 입고 흐르는 듯 부드러운 숙초를 겉에 입으면 생생하고 부드러운 맵시를 둘 다 살릴 수 있다. 별감의 복색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옷 입는 방식은 일반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대부들은 별감처럼 누비 배자를 입고 그 위에 흰색의 포를 입었다. 여기까지는 스타일을 표현하기에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허리를 중심으로 매고 있는 주머니, 허리띠, 선추 등의 끈목을 활용해 스타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남성들의 주머니는 양쪽으로 귀가 나온 것처럼 생겼다고 해 귀주머니라고 한다. 여기에 나비매듭, 도래매듭, 파리매듭, 별매듭을 색색으로 꿰어 차니 주머니와 함께 매듭 끈이 바지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허리띠도 마찬가지이다. 천으로 만든 포백대는 실제 바지를 묶거나 모자를 고정시킬 때 사용한다. 그러나 커다란 도포 위에 묶는 허리띠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장식이라고 볼 수 있다. 가늘고 둥근 세조대를 비롯해 굵고 둥근 동다회, 넓고 납작한 광다회, 오색사로 짠 교대가 있다. 길이가 무려 4m에 달한다. 누구라도 한 번 묶어서는 땅에 끌릴 수밖에 없다. 이 허리끈으로 두 번 이상 감은 다음 매듭이 풀리지 않게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되 허리끈이 포의 밑단보다 길게 늘어지지 않게 맨다. 그래야 허리끈의 양쪽 끝에 달린 딸기술이 흔들리며 생동감을 준다.바지저고리, 도포 등은 대체로 크고 단순한 의복이다. 그러나 착장의 기술로 스타일을 만들고 선을 살렸다. 아무리 비싼 솜옷, 누비옷이라도 품위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속으로 감추고 주머니와 허리띠만으로도 단순한 옷에 포인트를 살려 스타일을 만들었다. 결코 과하지 않으면서 멋을 아는 진정한 멋쟁이의 차림새가 바로 이것이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하회마을 무단 변경 지붕 원상복구 명령 앞두고… 초가냐, 시멘트 기와냐…안동시 ‘딜레마’

    하회마을 무단 변경 지붕 원상복구 명령 앞두고… 초가냐, 시멘트 기와냐…안동시 ‘딜레마’

    ‘초가지붕이냐, 시멘트 기와지붕이냐.’경북 안동시가 불법으로 지붕을 교체한 하회마을 주민에 대한 행정처분을 앞두고 딜레마에 빠졌다.<서울신문 5월 5일자 12면> 안동시는 조만간 하회마을 주민 A(78)씨에게 지붕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A씨가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제122호)로 지정된 하회마을 자신의 집 지붕의 낡은 시멘트 기와를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 허가를 받지 않고 함석 기와로 무단 변경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시는 지붕 형태를 어떻게 원상복구하도록 조치할지 고심하고 있다. 시의 ‘하회마을종합정비계획’에는 이 집 지붕의 원형인 초가로 정비하는 방안이 담겨 있어서다. 그렇다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초가를 시멘트 기와로 개량한 것을 놓고 뒤늦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경우 A씨가 거세게 반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시는 2012년에 A씨 집 지붕을 초가로 정비하려 했으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당시 A씨는 관리상의 어려움 등을 주장하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0년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시멘트 기와지붕이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는 것이다. 하회마을에는 조선시대 기와집 100여채와 초가집 120여채가 보존돼 있지만 지금도 6~7채의 시멘트 기와지붕이 있다고 류한철(53) 안동 하회마을보존회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통마을 본래의 고풍스러운 멋과 품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회마을 일부 주민과 관광객들은 세계적인 전통마을로 보존, 육성하려면 초가 또는 전통 기와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A씨 집 형태를 놓고 전문가와 협의 중이나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면서 “경북도, 문화재청과도 협의해 바람직한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광주왕실도자기축제 16일간 일정 마쳐

    광주왕실도자기축제 16일간 일정 마쳐

     경기 광주 곤지암도자공원에서 개최된 20회 광주왕실도자기축제와 10회 중소기업제품박람회가가 16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이번 행사는 19만 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가고 도자기 판매 3억3000만원, 중소기업제품 판매 7억7000만원 등 11억여원의 판매 실적을 거두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도자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조선시대 500년간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였던 ‘사옹원 분원 관요’를 설치하고 분원에서 제작됐던 어기를 재현·전시했으며, 초가집을 형상화한 체험부스 운영하는 등 지난 축제와는 차별화 된 격조 높은 행사를 선보였다. 특히 달항아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달항아리 만들기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은 흙 밟기, 흙 반죽, 물레체험, 가마터홍보관, 세계유산 남한산성 성곽쌓기 등을 체험 할 수 있어 어린이를 비롯한 많은 관람객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시관계자는 “광주왕실도자기축제에 찾아 주신 관람객 여러분들과 원활한 축제 진행에 힘을 모아준 자원봉사자 등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부족했던 부분들은 철저히 분석 내년에는 더욱 발전적인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역사속 공무원] 세종마저… ‘큰 불’ 뒤 신하 탓만

    [역사속 공무원] 세종마저… ‘큰 불’ 뒤 신하 탓만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소방기관인 금화도감이 설치된 배경에는 조선시대 최악의 화재 사고인 1426년 한성부 대화재가 있다. ‘세종실록’ 31권 2월 15일 세 번째 기사는 이날 화재에 대한 보고다. 점심때쯤 서북풍이 강하게 부는 가운데 한성부의 남쪽에 사는 인순부의 종 장룡의 집에서 불이나 경시서(京市署·시전 관리기관) 북쪽의 행랑 106간, 중부의 인가 1630호, 남부의 350호, 동부의 190호가 연소됐으며 남자 9명, 여자 2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음날에도 잔불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인가 200여호가 연소됐다. 이틀간의 화재로 총 2400여호가 불탔는데, 이는 한성부 전체 가구의 17%에 해당하는 것이었다.화재가 있던 날 임금은 강무(講武·임금이 참관하는 군사훈련 겸 수렵대회)를 떠나 강원도 횡성에 머물고 있었다. 궁궐에 남아 있던 사람 중 최고 웃전이던 중전은 “돈과 식량이 들어 있는 창고는 포기하더라도 종묘와 창덕궁은 온 힘을 다하여 지키라”고 명했다. 중전은 이날 저녁 화재 진압을 보고받고 “오늘의 재변은 말로 다할 수 없으나, 종묘를 보전한 건 다행한 일”이라며 녹사 고상충에게 밤을 달려 임금에게 보고토록 했다. 보고를 받은 임금은 몹시 짜증을 냈다. “이번 강무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경들이 굳이 가자 했고, 어제도 바람이 심하고 몸이 불편하여 돌아가자고 했으나 경들이 반대해… 이런 재변이 있는 줄도 모르고 깊이 후회한다. 내일 궁으로 돌아갈 터이니 준비하라.” 세종답지 않은 책임 전가와 부실한 조치였다. 화재 발생 4일 만인 19일 오후 3시쯤 환궁한 임금의 첫 번째 조치는 피해 상황 파악과 구제책이었다. “의정부는 화재를 당한 집 수와 인구를 조사하고 어린이와 장년을 나누어 구제하여 굶주리거나 곤란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 병조는 화재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죽은 소나무를 베어 주어라.” 세종은 왜 병조에게 하필이면 죽은 소나무를 베어 주라고 했을까. 세종이 과학적 업적이 가장 큰 임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학적 사고의 결과물로 짐작된다. 소나무는 가장 좋은 국산 목재 중에 하나지만, 건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생나무를 사용하면 얼마 못 가 뒤틀리고 갈라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이미 잘 건조된 죽은 소나무를 하사해 복구 기간을 단축하고, 소나무도 보호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추정해 볼 만한 근거나 기록은 없지만,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보살폈던 세종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인다. 요즘도 한식날은 성묘객들이 버린 담뱃불로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실록’ 51권 1431년 3월 27일자는 상정소(詳定所·법규 제정이나 정책 수립을 위해 설치한 임시기구) 보고다. “한식날부터 3일간은 아침 일찍 밥을 짓고 그 외의 시간에는 불을 사용하지 말도록 전교하였으나, 이는 선량한 백성들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 실화(失火)는 따로 때가 있는 것이 아니고, 화기 사용 금지를 법으로 정한다고 백성들이 이를 지킬 수 있겠는가. 이 법은 전과자를 양산할 뿐이니, 법으로 정하기보다 금화도감이 순찰을 강화하여 화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다.조선시대 소방제도와 기구는 요즘 기준으로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화재가 빈번하지 않을 때는 성곽 보수공사나 하천정비 같은 막일에 동원되고, 번번이 정원과 예산이 깎이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진화했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씨줄날줄] 영부인 관상(觀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부인 관상(觀相)/최광숙 논설위원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대세론’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자 부인 권양숙 여사 관상 얘기가 나왔다. 복이 들어오면 절대 밖으로 새지 않는 상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당선은 권 여사 덕이라는 것이다. 5년 뒤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좋은 관상이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했다.대통령은 선출된 권력이지만 영부인은 그렇지 않다. 남편을 잘 만나 청와대 안주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상 보는 이들은 본인의 관상도 좋아야 하지만 부인을 잘 만나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의 농담이 같은 맥락이다. 빌과 힐러리가 주유소에 들렀다. 놀랍게도 주유소 사장이 힐러리의 옛 애인이었다. 빌이 “당신 결혼 잘해 영부인이 됐잖아”라고 말했다. 이에 힐러리는 “내가 저 사람(주유소 사장)과 결혼했다면 저이가 대통령 됐을걸”이라고 대꾸했다. 결혼 전부터 빌을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 소개했던 힐러리만큼이나 정치적 야망이 컸던 미국 퍼스트레이디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부인 메리다. 그녀는 처녀 때부터 백악관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링컨은 거기에 부합했기에 남편으로 선택됐다. 메리는 링컨과 결혼하자마자 국회의원에 출마하라고 다그칠 정도로 권력 지향적이었다. 만약 링컨이 첫 사랑 앤 러틀리지와 결혼했더라면 행복했겠지만 대통령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링컨 이야기’) 최근 공개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기 ‘떠오르는 별’에 따르면 오바마는 20대에 백인 애인이 있었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야망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해 결별했다. 만약 오바마가 백인 여성과 결혼했더라면 그 백인 여성은 영부인이 될 수 있었을까? 대선을 코앞에 두고 후보 부인들의 내조 경쟁도 치열하다. 문재인 후보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활달한 성격과 적극적인 소통 행보로 “문 후보보다 인기가 좋다”는 얘기를 듣는다. 홍준표 후보의 부인 이순삼 여사는 유세 때 큰절을 올리는 등 정치인 뺨치는 감각을 자랑한다.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여사는 화려한 스펙으로 한국의 미셸 오바마로 불린다. 유승민 후보 부인 오선혜 여사는 조용하지만 내실 있는 행보가 돋보인다. 유명 관상인이 한 언론에서 이들 중 김정숙 여사가 영부인 관상으로는 가장 좋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혼인하는 조선시대라면 이미 왕비로 간택됐을 관상이라고 했다. 내일이면 대통령과 함께 영부인이 될 주인공도 밝혀질 것이다.
  • [서울포토] 도심에서 마주친 조선시대 ‘종묘대제 어가행렬’

    [서울포토] 도심에서 마주친 조선시대 ‘종묘대제 어가행렬’

    7일 종묘대제 어가행렬이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을 출발해 종묘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종묘에서 봉행되는 종묘대제는 조선왕실의 가장 큰 제사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사찰 -남사당패,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의 상생 모델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사찰 -남사당패,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의 상생 모델

    감로탱(甘露幀) 혹은 감로도(甘露圖)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불교 그림이다. 불교 경전인 ‘우란분경’에는 부처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하나인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목련이 부모의 은혜를 갚고자 지혜의 눈으로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목련이 곧 바리때에 밥을 가득 담아 어머니에게 갔지만 밥은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덩이로 변하는 것이었다.●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재주넘는 장면 묘사 부처는 목련에게 “너의 어머니는 죄의 뿌리가 너무나 깊어 너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마땅히 스님네들(十方衆僧)의 위신력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칠월 보름 날에 과거 일곱 세상의 부모와 현재 부모로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들을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우란분에 가득 담아 수행하고 교화하는 스님들께 공양하라”고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목련경’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살아생전 악행을 많이 저지른 목련의 어머니는 지옥에 떨어져 고생하고 있었다. 목련이 대승경전을 외우고 우란분재를 베풀어 지옥, 아귀, 축생으로부터 차례대로 구제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떠난 부모가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을 누리도록 기원하는 의식에 감로탱만한 것이 없었다. 감로탱은 대체로 상단-중단-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단의 전생, 중단의 현재, 상단의 미래가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있음을 상징한다. 하단에는 지옥 장면과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중단에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는 장면, 상단에는 지옥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해 가는 인로왕보살과 아미타삼존을 포함한 칠여래(七如來)가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감로탱이 창안된 것은 조상에 정성을 다하는 성리학 국가의 유교적 정서와 효도를 주제로 하는 ‘우란분경’의 불교적 가르침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의 중심 이념과는 관계없이 왕실이나 양반집안에서도 여성을 중심으로 여전히 불교에 의존하고 있던 사회 분위기도 감로탱이 새로운 의식화(儀式畵)로 태어나는 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경기 안성시 청룡사의 감로탱 역시 이런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하단에는 입에서 불을 뿜는 한 쌍의 아귀 오른쪽으로 바둑을 두거나 점을 치는 장면,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장면이 보인다. 왼쪽에는 전쟁, 걸식, 싸움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왼쪽 맨 아래에서는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재주를 넘는 모습도 보인다.●1265년 창건… 대웅전엔 고려말 중창 때 모습 연희패의 모습은 감로탱의 출발에 해당하는 16세기부터 꾸준히 담겼다. 그럼에도 숙종 8년(1682) 그려진 청룡사 감로탱의 연희패는 아직은 다섯 사람의 소박한 구성이다. 하지만 시대가 내려가면 줄타기 장면이 더해지는 등 연희 규모가 커지고, 구경꾼도 등장한다. 물론 청룡사가 감로탱의 발상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청룡사 감로탱의 연희 장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절의 남다른 역사 때문이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대장암이라 했으나 공민왕 12년(1364) 나옹화상이 중창하면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새로운 이름은 나옹화상이 서운산 기슭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숙종 46년(1720) 지어졌지만, 고려시대 중창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룡사는 오늘날 안성시의 남단에 해당한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충북 진천군 백곡면으로 차령산맥을 넘어가다 보면 절을 알리는 푯말이 나타난다. 들머리에는 청룡저수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데, 절을 감싸고 있는 해발 547.6m의 서운산은 모난 데 하나 없이 넉넉하고 포근하기만 하다. 안성은 과거나 지금이나 경기 남부의 상업 요지다. 조선 후기 안성장은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전국 3대장의 하나로 꼽힐 만큼 규모가 컸다. 입장장 또한 무시하지 못할 장이었다. 입장면은 조선시대 직산군 이동면이었지만, 입장장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바뀌었을 정도다. 진천장은 생거진천(生居鎭川)을 대표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였다. 청룡사의 입지는 안성장, 입장장, 진천장의 중심에 해당한다. 청룡저수지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옹기종기 음식점이 모여있는 사하촌(寺下村)이 나타나는데 좁은 길 한복판에 청룡사사적비가 보인다. ‘조선국 경기도 안성 서운산 청룡사 중수사적비’(朝鮮國 京畿道 安城 瑞雲山 靑龍寺 重修事蹟碑)라는 이름처럼 숙종 연간에 대웅전과 관음전, 문수전, 영전을 중건하고 세운 것이다. 당시의 대대적인 중수 역시 안성, 입장, 진천에 걸친 청룡사의 폭넓은 영향력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시주 명단 보면 남사당이 절에 종속된 건 아닌 듯 청룡사는 안성 남사당 문화의 발상지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사당패는 여성이 중심이 되어 초보적 수준의 연희를 익힌 뒤 매춘을 포함한 유흥으로 삶을 영위하던 집단으로 알려진다. 이것이 남성을 중심으로 전문적 수준의 기능을 갖추고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전문 연희 집단의 성격으로 발전한 것이 남사당패다. 청룡사를 비롯한 사찰이 남사당패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상호보완적 관계 때문이었다. 근본이 분명치 않은 남사당패 구성원들은 절에서 발급한 신표(信標)를 일종의 신분증명서로 각지를 떠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오늘날식 표현으로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절에 보태지 않았을까 싶다. 절은 각종 법회에서도 남사당패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고 남사당패가 꼭 사찰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현종 15년(1674) 청룡사 동종, 숙종 8년 청룡사 감로탱의 시주자 명단에는 정어질산(鄭於叱山)과 박동질이(朴同叱伊)라는 재인의 이름이 들어있다. 사적비에 새겨진 ‘불량답시주질’(佛粮畓施主秩)에도 사당의 이름이 보인다. ‘불량답시주질’이라면 공양미를 거둘 논을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사하촌에서 청룡사로 올라가는 왼쪽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부도밭이 나타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언덕 위에 2005년 지었다는 바우덕이 사당이 보인다. 남사당패가 기량을 닦던 동네라고 한다. 담장이 둘러쳐진 마당으로 들어서면 바우덕이 동상이 있다. ●바우덕이는 남성 예인집단서 인정받은 여성 스타 안성 남사당패의 상징인 바우덕이의 본명은 김암덕(岩德)이다. 뛰어난 기량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남성 예인 집단에서도 특별히 각광받은 여성 스타였다고 한다. 청룡저수지에서 입장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바우덕이의 무덤을 알리는 푯말이 나타난다. 안성시는 무덤 역시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일종의 ‘스타 마케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덤이라는 기념 공간이 있으나 사당만큼은 남사당패의 역사를 기리는 공간이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룡사와 남사당패의 흔적을 둘러봤다면, 안성 시내의 남사당 공연장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바우덕이 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아니라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남사당놀이 상설공연을 즐길 수 있다. 토요일에는 오후 4시, 일요일에는 오후 2시 시작한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하회마을에 웬 함석기와… 관리 부실 ‘도마’

    하회마을에 웬 함석기와… 관리 부실 ‘도마’

    경북도·안동시, 뒤늦게 수습 나서 한옥호텔 표류·잇따른 화재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취소 우려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등재 취소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경북도 문화유산과 공무원은 4일 “하회마을 주민 A모(78)씨가 최근 현상 변경 허가도 받지 않고 집 지붕을 시멘트 기와에서 함석 기와로 임의 교체한 사실을 확인, 담당 기관인 안동시에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이 같은 불법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최근 서울신문 취재로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A씨는 지난달 자신의 집 안채(56.1㎡) 지붕의 낡은 시멘트 기와를 새 함석 기와로 무단 변경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설치했던 기와가 낡아 비가 새는 등으로 교체가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회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제122호)로도 지정됐다. 즉, 문화재청의 국가지정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회마을에 건립하던 한옥호텔도 흉물이 되고 있다. 한옥호텔 체인 운영업체인 ㈜락고재가 애초 2017년 초 준공 목표로 2012년 4월부터 짓던 건물이다. 현재 공정률 50%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벌써 1년째다. 설계를 변경했으나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 허가를 받지 못했다. 완공 시기는 불투명하다. 문화재청의 까다로운 심의도 넘어야 할 산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안동시의 무리한 사업 허가 탓이라는 지적이다. 관광객들은 한옥마을의 고풍스러운 멋과 품격이 크게 훼손된다고 비판한다. 하회마을에서는 화재도 잇따랐다.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4차례의 화재가 발생했다. 하회마을에는 화재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목조건물인 조선시대 기와집 100여 채와 초가집 120여 채 등이 있다. 화재 안전시설이 대폭 보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하회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세계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2곳이 이미 등재 취소된 사례가 있다. 오만의 아라비아오릭스 보호지역과 독일 남동부 엘베강 일대의 드레스덴 엘베계곡 등이다. 하회마을은 전통가옥 220여 채가 잘 보존된 곳으로, 보물로 지정된 양진당과 충효당을 비롯해 하동고택, 염행당, 양오당, 화경당(북촌댁), 작천고택 등이 있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간 이후 아버지 조지 H W 부시, 아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2005, 2009년),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2007년) 등 세계 정상급 귀빈들이 잇따라 방문했다. 글 사진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7000년前 선사인과 조선의 선비가 함께 거닐다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7000년前 선사인과 조선의 선비가 함께 거닐다

    울산 울주엔 대곡천이 흐릅니다. 저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등을 품은 계곡입니다. 대곡천을 찾는 이들은 대개 몇몇 유적지에만 시선을 주고 돌아가기 일쑤지요. 하지만 묻혀 있을 뿐이지 대곡천은 ‘자체발광’의 경승지였습니다. 세월이 빚은 꽃 같은 풍경들이 가득한 곳이라 할까요. 이리 굽고 저리 휘는 동안 계곡 여기저기에 절경과 역사, 문화를 켜켜이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이름하여 ‘반구대 암각화’다. 누구에게든 반구대에 그려진 암각화 정도로 읽힐 법하다. 하지만 실상 반구대와 암각화는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반구대 암각화라 불린다. 이유가 뭘까. 1971년 암각화가 발견되자 이를 홍보하고 위치를 설명해 줄 랜드마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에 적합한 곳이 반구대였을 것이고. 그러다 점차 암각화에만 무게가 쏠렸고 반구대는 묻혀 버리고 말았을 터다. 바로 이 탓에 현지에선 대곡리 암각화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반구대를 품은 대곡천은 울주를 관통해 흐르다 울산 태화강에 합류되는 지천이다. 약 27㎞ 정도 길이에 지질시대 공룡의 발자국 화석과 7000년 전 선사시대 암각화, 불교, 유교 등의 유적들이 빼곡하다. 그야말로 ‘역사의 적층지대’다. 다만 대부분의 유적들이 댐 조성 등으로 수몰됐고, 현재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대곡천 물길을 따라 가장 위에 천전리 각석, 1㎞ 정도 아래에 암각화 박물관, 다시 1.2㎞ 정도 아래에 반구대 암각화가 늘어서 있다. 집청정, 반구서원, 반구대 등 선사시대 유적과 시기를 달리하는 볼거리들은 암각화 박물관과 반구대 암각화 사이에 산재해 있다. 천전리 각석을 먼저 찾는다. 1970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발견돼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란 애칭을 가진 곳이다. 기하학적 문양과 사슴, 사람 등 모두 280여점의 표현물이 그려져 있다. 20여명의 화랑 이름과 신라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명문 등도 새겨져 있다. 한때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2012년의 고교생 낙서까지 포함하면 ‘현대’의 표현물까지 담긴 셈이다. 각석 너머 계곡엔 131개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 크기가 성인 남자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반구대는 조선시대 지역 최고의 명소였다. 특히 현 대곡박물관부터 반구대에 이르는 대곡천 길은 선비들의 유람 코스였다. 조선 영조 때 울산부사를 지낸 권상일(1679∼1759) 등의 기록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장천사에서 반구대, 집청정, 반구서원까지 둘러보는 길이 선비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반구대가 암각화를 돋보이게 하는 수식어 정도로 치부될 곳이 아니란 얘기다. 대곡천에도 이른바 ‘구곡’(九曲) 문화가 남아 있다. 최남복(1759~1814)의 백련구곡, 송찬규(1838~1910)의 반계구곡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백련구곡이 있던 대곡천 상류 지역은 대곡댐에 수몰됐고, 반계구곡 역시 일부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구곡 가운데 핵심이 되는 곳은 오곡이다. 구곡 문화의 ‘원조’인 주자 역시 오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생활과 학문의 터전으로 삼았다. 대곡천에서 오곡으로 꼽히는 곳은 반구대 일대다. 고려 우왕 때 언양에 유배된 정몽주가 즐겨 찾아와 시름을 달래며 시를 지었다고 알려진 곳이다. 정몽주의 호를 따 포은대라고도 불린다. 반구대가 유명해지면서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현 반구서원이 들어서게 된다. 이듬해엔 최신기(1673∼1737)가 반구대 건너편에 집청정(集淸亭)을 지었다. 푸름을 모은 정자라니, 이름만으로도 청량하다.집청정 앞의 풍경들은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반구대 뒤 산봉우리는 비래봉, 반구대 바위 절벽 아래 계곡은 옥천동, 계류가 휘돌아 가는 야트막한 언덕은 반구대다. 반구대 앞의 바위는 거북 머리, 양옆에 비죽 튀어나온 바위는 거북의 다리다.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 ‘반구’의 실제 배경이 된 곳도 바로 여기다. 정선이 탄복했을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반구대에서 좀더 길을 줄이면 반구대 암각화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감동이다. 관람대와 암각화 사이엔 대곡천이 흐른다. 대곡천 아래로는 바위 절벽의 뿌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등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 발굴조사 당시 절벽 하부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81점이 확인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 곧바로 복토됐고, 대곡천 물길로 바뀌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암각화에 그려진 표현물의 숫자는 연구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은 200여점이라 적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 237점 정도, 흐릿한 표현물까지 포함하면 300점 정도가 그려져 있다고 본다. 사슴, 호랑이 등 육지동물과 고래 등 해양동물이 각각 절반을 차지하고, 사람 형상의 그림도 17점 정도나 된다. 전체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은 개체는 고래로, 무려 60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고래관광특구인 장생포와 울산 앞바다가 선사시대부터 수많은 고래들이 회유하는 곳이었다는 방증인 셈이다.암각화 앞에 서면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일이다. 그래야 7000년의 시간을 넘어 좀더 친근하게 선사인과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각화의 그림들은 단순하면서도 재밌다. 왼쪽 가장 위엔 생식기를 곧추 세운 남성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손을 미간 위에 얹은 모양새가 뭔가 사냥감을 찾는 듯하다. 남자 아래는 고래 그림이다. 저 유명한 ‘새끼 업은 고래’다. 어미 고래가 새끼를 등에 올려 물밖 호흡을 돕는 모습이다. 갓 태어난 새끼는 힘이 달려 자가 호흡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미가 물밖으로 들어올려 주곤 하는데, 암각화는 바로 이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나 나올 법한 모습을 선사인들이 목격하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새끼 업은 고래’는 이미지화돼 슬도 등 유명 관광지에 상징물로 장식돼 있다. 암각화는 볕이 사선으로 드는 오후 3~4시쯤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울주까지 와서 간월재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나라 안에서 억새 군락지로 손꼽히는 명소다. 아직은 지난 겨울의 흔적을 벗지 못해 누런 빛의 평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 모습도 생경하고 빼어나다. 간월재에서 간월산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도 풍경은 더욱 깊어진다. 산벚꽃, 철쭉 등이 신록과 어우러진 모습이 그야말로 보석처럼 아름답다. 울주는 옹기로 이름 난 곳이다. 우리 전통 옹기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울산옹기축제’가 4~7일 온양읍 인근의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옹기축제추진위원회(052-227-4961) 주최로 열린다. 2년 내리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유망 축제에 오른 내공 깊은 축제다. 가장 큰 볼거리는 장인들이 펼치는 옹기 제작 시연이다. 옹기 제작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축제는 옹기장난촌, 옹기산적촌, 옹기무형유산관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옹기장난촌과 옹기난장촌은 흙과 물속에서 마음껏 놀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축제 기간 동안 옹기 값이 20~50% 정도 할인된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2) →맛집 : 울주에서 이름 난 먹거리는 언양 불고기와 짚불 곰장어다. 한데 호불호는 둘 다 퍽 엇갈리는 편이다. 짚불에 통째 구워 내는 곰장어구이가 특히 그렇다. 고소하고 아삭대는 식감이 좋다는 이가 대다수이지만 통째 구운 데다 모양까지 거무튀튀한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미국 알래스카에서 들여온 싱싱한 곰장어를 실제 짚불 위에서 토속적인 방식으로 구워 내는 것만은 분명하다. 통구이가 거북하다면 양념구이로 먹으면 된다. 김양집(239-5539)은 한자리에서 50년 가까이 짚불 곰장어를 팔았다는 집이다. 서생면 신암리 바닷가에 있다. 언양불고기는 갈비구락부(264-4747)가 알려졌다. 언양읍내에 있다. 떡바우횟집(238-3136)은 현지인이 ‘강추’하는 맛집이다. 특히 성게비빔밥이 맛있다. 참돔 뱃살 등 제철 생선회도 맛깔스럽게 낸다. 간절곶 인근 대송리에 있다. 대구왕뽈떼기집(254-9511)은 우연히 발견한 맛집이다. 대구 뽈데기(얼굴, 볼 등을 일컫는 사투리)와 몸통을 섞어 내는데, 양도 푸짐하지만 무엇보다 시원한 국물이 압권이다. 게다가 가격도 5000원으로 착하다. 시쳇말로 ‘가성비’가 좋다. 곤이를 곁들이려면 2000원을 추가하면 된다. 매운탕과 맑은탕 두 종류다. 읍내에 있다. 남창리는 ‘남창국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옹기종기 시장 주변에 국밥집이 몰려 있다. 사일국밥(239-0706)의 소내장국밥이 독특하다. →잘 곳 : 등억리 온천단지에 깔끔한 숙소가 많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최근 울산역 인근에도 숙박업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은 간월재 입구의 펜션을 찾는 게 좋겠다.
  • [자치단체장 25시] ‘흥인철학’ 꽉 채운 동대문, 교육·경제·현대화 모두 잡는다

    [자치단체장 25시] ‘흥인철학’ 꽉 채운 동대문, 교육·경제·현대화 모두 잡는다

    동대문의 원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인(仁)은 사람이 어질고, 인자하며 선량하다는 뜻이고, 흥(興)은 일으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의 어짊을 일으키는 문이 있는 곳이란 얘기다. 유덕열(63) 동대문구청장은 ‘흥인’이란 동대문의 철학에 걸맞게 지역의 속을 꽉 채워 발전시킨다는 일념으로 6년 넘게 뛰고 있다. 지역의 교육과 복지를 발전시키면서도 역사와 문화 요소를 바탕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청량리 역세권 개발 등 지역 현대화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유 구청장은 사람의 어짊을 일으키기 위한 첫 번째 덕목으로 첫손에 교육을 꼽는다. 교육은 지역발전의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우리 시대의 허리인 장년층이 머물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 교육하기 좋은 환경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선 5기 취임 이후 가장 먼저 교육 투자를 늘렸다. 관련 조례를 개정해 교육경비보조 기준액을 8%에서 10%로 올리고 이렇게 확보한 돈으로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지원하고 있다. 동대문구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기준 25개 자치구 가운데 14위로 중위권이지만 올해 편성한 교육경비보조금(혁신 및 무상급식비 제외)은 자치구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대문에는 49개 초·중·고등학교가 있다. “단순히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향상된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충분한 예산을 바탕으로 학생·교사·학부모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해 나간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지역 교육의 초석을 다질 수 있습니다.”교육은 백년지계라고 하지만 성과도 벌써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동대문구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10년간 서울대 합격자 수 증감률을 분석한 결과 동대문구 일반고등학교 1곳당 서울대 합격자는 2007학년도 1.4명에서 2016학년도 2.0명으로 42.9% 많아졌다. 증가폭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크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지역 내 동대부고는 서울시 소재 202개 일반고교 가운데 4년제 대학 진학률 1위, 휘경여고는 진학률 9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유 구청장은 교육 복지에도 힘쓰고 있다. 유 구청장은 지난 2012년 5월 지역 대학 자원과 연계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수한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무료로 과외해 주는 학습멘토링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말까지 4179명의 초·중·고등학생이 참여했다. 가정환경으로 인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앞으로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그는 “결승선을 넘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출발선에는 같이 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소득의 격차가 기회의 차이로 연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는 유서 깊은 명소들을 대거 보유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입니다. 옛것을 통해 현재의 것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동력 삼아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입니다.”제사를 지내는 터라는 뜻을 가진 제기동(祭基洞)에는 조선시대 임금이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농사의 신인 신농씨 등에게 제를 올리던 선농단(先農壇)이 있다. 유 구청장은 2015년 4월 선농단을 정비하고 선농단역사문화관을 개관했다. 봄이면 풍년을 기원하고, 가뭄에는 비를 바라며, 가을이 되면 왕이 벼 베기를 참관하는 등의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왕실은 풍년을 기원하며 지역 노인들에게 제사 때 올린 소를 잡아 끓인 탕국을 내렸는데 당시 선농탕으로 불리던 이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로도 전해진다. 동대문구는 매해 4월 선농대제 행사를 하면서 선농단역사문화관 앞에서는 설렁탕을 활용한 요리대회도 함께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선농단역사문화관에서는 농사와 관련된 이론 교육 프로그램인 도시농부학교와 직접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10월이면 용두초등학교에서 청룡문화제도 개최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던 동방청룡제를 계승한 것이다. 어가행렬, 동방청룡제례, 전통 민속놀이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유 구청장은 올해 삼국시대 유적인 배봉산 보루성의 역사적 의미를 살린 테마공원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보루(堡壘)란 사방을 조망하기 좋은 낮은 봉우리에 쌓은 소형 석축산성으로, 일반 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군사시설을 말한다. 동대문구는 지난해 9월 사도세자의 처음 무덤터였던 배봉산 정상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다가 고구려 유적인 배봉산 보루성을 발굴했다. 지난 2월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받은 뒤 시와 함께 이곳을 서울의 명소로 만들기 위한 조성 작업을 벌이고 있다. 유 구청장은 이 밖에도 동대문 내 역사와 전통을 되새길 수 있는 명소와 행사를 개발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골동품점, 도자기점 등이 즐비해 거리 자체가 살아 있는 문화재이며 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시인이 머물렀던 청량사가 있는 청량리, 조선시대 대표 청백리인 유관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하정공 길도 조성하는 등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입힌 명소를 속속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청량리4구역 개발이 완료되면 동대문구의 위상이 크게 변할 겁니다. 오랫동안 서울의 부도심 역할을 해오다가 집창촌이 형성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던 전농동 588번지 일대가 서울 동부의 대표 랜드마크가 됩니다.” 유 구청장은 교육을 살리고,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서는 동시에 외형적 현대화 사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당장 급물살을 타고 있는 청량리 역세권 재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청량리4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청량리역 인근에 65층 규모 주상복합건물 4개 동과 호텔 백화점 등을 갖춘 42층 랜드마크 타워를 짓는다. 공사는 오는 10월에 시작된다. 2021년 완공 예정이다. 인근 동부청과시장 부지에는 50여층 규모 주상복합 4개 동이 들어선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 제기동 서울약령시에 한의약박물관과 한방체험시설 보제원 등을 갖춘 한방산업진흥센터도 문을 연다. 청량리역과 가까운 전농11구역과 답십리18구역을 포함해 4월 현재 지역 내 50여 곳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재개발·재거축은 동대문에서 가장 많은 민원을 낳는 분야이기도 하다. 동대문 지역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개발 프리미엄이 많이 남는 강남과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 구청장은 “우리 마을은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오히려 추가 부담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재개발·재건축 관련법이 정비되어야 동대문의 현대화 추진이 보다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 나주 출신인 유 구청장은 부산 동아대 재학 중 부마항쟁 주동자로 투옥된 뒤 오랫동안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 1985년 당시 민주당 최훈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인연을 맺은 동대문을 제2의 고향 삼아 1998년 민선 2기로 일한 데 이어 2010년 7월부터 5~6기 구청장을 연임하고 있다. 2004년 동대문구 국회의원에 도전하려다 낙천한 경험이 있지만 재도전할 뜻은 전혀 없다. 구청장 3회 연임이 가능한 만큼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다. 유 구청장은 “3연임 여부는 어디까지나 주민들의 뜻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면서 “구청장 퇴임 뒤 좋은 평가를 받아 지역의 좋은 이웃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자세로 지역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한복 입으면 서울 문화공연 ‘반값’

    서울시는 오는 7월 1일까지 한복 차림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문화공연시설을 찾으면 관람료를 50% 할인해 준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일상 속에서 한복 입기’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할인 대상은 세종문화회관, 국악당(남산·돈화문), 삼청각 등 4곳에서 진행되는 19개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과 조선시대 세종 때 궁중예약을 재해석한 ‘세종음악기행 하늘·땅·사람’ 등이 무대에 오른다. 남산국악당에선 판소리 흥부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박흥보씨 개탁이라’와 소설가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편제’ 등이, 돈화문국악당에선 대한민국 대표 명인·명창들이 국악의 진수를 보여 주는 ‘국악의 맛’ 등이, 삼청각에선 퓨전 국악 상설 공연인 ‘런치콘서트 자미’가 관객들을 찾아간다. 문화시설별 홈페이지에서 예매 때 ‘한복 착용 관람료 할인’ 메뉴를 선택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사전 예매를 할 수 있다. 사전 예매를 하지 않더라도 한복 착용 후 현장을 찾으면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을 볼 수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장군 지휘소’ 김포 문수산성 장대 복원됐다

    ‘장군 지휘소’ 김포 문수산성 장대 복원됐다

    경기 김포시는 오는 15일 문수산성 정상에서 장대 복원공사 준공식을 갖는다고 1일 밝혔다. 문화재청 설계승인 후 복원공사에 착수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문수산성은 사적 제139호로, 월곶면 성동리에 있다. 장대는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이나 지휘를 하던 곳이다. 성이나 보 따위의 동서 양쪽에 돌로 쌓아 만들었다. 전체 장대면적은 25.74㎡ 규모로 문화재 위원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정면 3칸과 측면 1칸이 복원됐다. 유적 하부에 남아있던 석축을 정비, 복원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1866년 병인양요 후 상당 부분 유실된 문수산성은 6·25 등을 거치며 참호·헬기장 등 군사시설로 성곽이 훼손됐다. 장대는 문수산 동측 최정상(376.1m)에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서해와 강화도·파주·서울(도성)·김포·인천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특히 한양 도성으로 향하는 해로의 전초적 방어기지로서 중요한 곳이다. 2009년 발굴조사에서 기존 군용헬기장을 해체한 후 석축과 문지 1개소를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기와편과 자기편, 제의와 관련된 유물로 보이는 철제마와 도제마 등이 출토됐다. 특히 기와편과 자기편 가운데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것들도 포함돼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중요한 장소였다는 증거물이다. 시 담당자는 “장대가 복원된 문수산성은 김포시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으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방문해주길 바란다”전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역사속 공무원] 600년 전에도 구조 골든타임 전쟁

    [역사속 공무원] 600년 전에도 구조 골든타임 전쟁

    조선 건국때 119인 무비사 운영 소방로에 집·울타리 만들어 골치 실화로 자기 집 불내면 곤장 40대최근 전통시장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또 화재에 취약한 오래된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는 주차된 차 때문에 소방도로가 제 기능을 못해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되풀이된다. 그런데 소방도로 무단 점거는 조선시대부터 있던 일이었다. 세종 8년인 1426년 설치된 금화도감(禁火都監)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서로 알려졌으나 실은 금화도감보다 34년 앞선 태조 원년인 1392년 무비사(武備司)가 최초다. 병조에 무비사를 둬 개화(改火), 금화(禁火), 부신(符信·중요 문서의 전달), 순작(巡綽·순찰) 등의 업무를 맡게 했으며 전서 2인, 의랑 2인, 정랑 2인, 좌랑 2인으로 구성해 화재를 예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무비사의 임무에 대한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 9권 1405년 3월 1일자는 예조가 육조의 직무 분담을 보고한 내용이다. 병조에는 무선사, 승여사, 무비사를 두는데, 무비사는 무예의 훈련, 지도의 고열(考閱), 성보(城堡), 봉화, 출정, 고첩(告捷·승전을 알림) 등을 맡으며 정랑 1명, 좌랑 1명으로 구성한다. 주요 임무가 화재 진압과 예방에서 훈련과 보급·통신 등으로 전환됐으며, 책임자도 정3품에서 정5품으로 격하된 것이다. 화재의 예방과 진압을 소방(消防)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고종 32년인 1895년이다. 신설된 경무청 총무국이 수재, 화재, 소방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도록 하면서 소방이란 말이 사용됐다. 이전에는 ‘금화’나 ‘멸화’로 표기했다. 최초의 소방서인 무비사는 유명무실해졌지만, 화재 예방의 중요성과 불을 낸 사람에 대한 처벌규정은 오히려 강화됐다. ‘태종실록’ 13권 1407년 4월 20일자는 소방도로에 관한 보고다. 큰길 이외의 여리(閭里·여염집)의 길도 본래는 평평하고 곧아서 차량의 출입이 편리했는데, 무식한 사람들이 자기 주거를 넓히려고 도로까지 침범해 울타리를 치거나 집을 지었고 심지어는 길을 막아 화재가 두려우니 도로를 다시 넓혀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로 보아 600여년 전에도 요즘처럼 소방도로 무단 점용이나 불법 주차로 골머리를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록에는 없지만 조정이 한성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소방도로 개설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20여년이 지난 세종실록 40권 1428년 4월 24일자에는 소방도로 개설에 관한 내용이 있다. 찬성(贊成·종1품) 권진이 “금화도감이 도로 개통을 위해 인가를 많이 헐고 있다”고 보고하자 임금이 “헐지 못하게 하라. 태종 때도 도로를 내는 것이 좋겠다 하여 개설하려 했으나 관리들이 이숙번을 두려워하여 그의 집 앞을 피해 다른 방향으로 도로를 낸 적이 있다. 이번 도로 개설도 반드시 민원인이 있을 것이니,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명했다. 한성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소방도로를 개설하긴 했지만, 당시 실세 중의 한 사람이던 이숙번의 집이 편입되는 것을 피하고자 다른 방향으로 도로를 내는 바람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처벌규정도 명문화됐다. ‘태종실록’ 34권 1417년 11월 10일 첫 번째 기사는 실화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보고한 것이다. 이날 호조가 실화와 방화 구분 없이 자기 집을 태운 자는 볼기 40대, 남의 집을 태운 자는 볼기 50대, 종묘나 궁궐을 연소시킨 자는 사형, 능 경내에서 실화한 자는 장 80대와 도(徒·노동형) 2년, 임목을 태운 자는 장 100대와 1000리 밖 유배에 처해야 한다고 보고하자 임금이 그대로 정했다. 이 밖에도 화재 대상이나 피해 규모에 따라 처벌 내용을 세분화하고 있는데, 실수로 자기 집을 태운 것도 억울한데 볼기까지 40대를 맞아야 했으니 중형인 셈이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씨줄날줄] 용산 수복

    [씨줄날줄] 용산 수복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 ‘용산’을 치면 순종(재위 1907~1910) 시대에 특히 많은 항목이 검색된다. 순종이 직접 조선총독 관저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거나, 일본군사령부와 헌병사령부, 그리고 연병장 행사에 금일봉을 보낸 내용이다. 일본 거류민을 위한 소방조(消防條)에 술안주값을 보낸 기록도 남아 있다.총독 관저라면 한강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용산 언덕 위에 있던 저택을 말한다. 일본군사령관 관저로 1909년 지었으나, 이듬해 조선총독의 제2 관저로 용도가 변경됐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화려한 서양식 건물이었지만,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연회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서해안 지역의 물산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서강에 집결했다면, 경상도와 강원도, 충청도 동부, 경기도 동북부의 물산은 남한강을 타고 내려와 용산에 모였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조운선이 실어온 세곡(稅穀)과 군량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군자감(軍資監)의 분관인 강감(江監)을 오늘날의 원효로 3가에 설치했다. 군자감고(庫)는 임진왜란 당시 일대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이 물러간 이후에도 4만~5만섬의 곡식이 남아 있었을 만큼 규모가 컸다고 한다. 용산은 도성이 지척인 데다 한강을 건너는 전략적 요지였다. 평지거나 완만한 구릉지대로 대규모 부대가 주둔하기에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다시 용산 효창원 일대를 숙영지로 삼았고 일본 상인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1900년 경인선 철도 개통과 용산역 설치는 본격적인 변화의 계기가 됐다. 철도 개통 두 달 전에는 남대문에서 서계동, 청파동, 원효로를 잇는 노면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는 철로의 서쪽이 개발의 중심이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군용 철도를 만주까지 서둘러 잇고자 ‘육군임시철도감부’를 만들고 용산역 동쪽에 1만 3000㎡ 규모의 임시 청사를 한 달 만에 지었다. 이어 일대 390만㎡ 토지를 수용해 영구 군사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한국주차군사령부’가 용산기지 낙성식을 가진 것은 1908년 12월 19일이었다. 광복 이후 용산기지는 다시 미군 주둔지가 됐다. 용산 미 8군 사령부의 평택 이전이 시작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감회가 깊다. 우리 땅이지만 우리 땅이 아닌 세월은 100년을 훌쩍 넘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이 주둔하는 비극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미군부대 이전이 마무리되면 한 세기 넘게 낯선 외국어에 고통받았을 지신(地神)을 위로할 겸 시민축제라도 열면 어떨까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 1.2㎞ 국장 행렬… 영월 단종문화제 개막

    1.2㎞ 국장 행렬… 영월 단종문화제 개막

    어가 행렬·제향 의식 등 화려…정순왕후 선발·체험행사 풍성“웅장하게 펼쳐지는 국장 재현, 왕릉 어가 행렬, 정순왕후 선발대회에 초대합니다.” 강원 영월군은 단종의 넋을 달래기 위한 강원 영월 단종문화제가 ‘단종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동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릉과 관풍헌, 동강 둔치 일원에서 열린다고 26일 밝혔다. 올해로 51회째를 맞는 단종문화제는 국내 최대 조선시대 국장을 재현, 단종 국장의 웅장함과 다양한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축제로 자리잡았다. 국장 재현은 27일 동강 둔치에서 출발해 장릉까지 펼쳐진다. 2007년 단종 승하 550주년을 맞아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실제 단종 국장을 치른 뒤 10년째 이어 온다. 재현 행사는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조상례보편에 의한 대도구 16종 202식과 소품 49종 275식으로 구성됐다. 발인 행렬에만 1391명이 참여하고 행렬 길이만 1.2㎞에 달한다. 이틀째인 28일에는 동강 둔치에서 정순왕후 선발대회가 열린다. 올해가 19회째로 전국 123개 시·군에서 추천한 1차 기혼여성들 가운데 뽑힌 16명이 무대에 올라 단종의 비 정순왕후로 최종 선발된다. 29일 동강 둔치에서 시작해 장릉까지 이어지는 왕릉 어가 행렬은 왕과 신하들이 장릉을 찾는 화려한 행차로 선보인다. 조선시대 군사행진과 의장행렬이 이어지고 조선시대 왕과 종친, 문무백관은 물론 전날 선발된 정순왕후까지 모두 영월읍내 거리를 지나는 장관이 연출된다. 이후 단종 제향 의식까지 이어진다. 특히 올해는 단종과 충신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기며 역사·교육 체험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 ‘역사교육 체험관’을 처음 운영한다. 이 밖에 부대행사로 칡줄다리기 등 전통행사와 체험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단종국장 행렬 대도구 전시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물 전시, 사육신·생육신 등 충신을 소개하고 윷놀이, 투호, 그네뛰기 등 민속놀이도 펼쳐진다. 장릉 재실에서 진행되던 전통의상 체험행사를 동강 둔치 행사장으로 옮겨 진행하고 여중고생들이 참여한 ‘전통의상 포토경연대회’도 진행한다. 단종에게 소원을 빌고 복을 기원하는 ‘소원 테마존’도 선보인다. 관광객과 함께 체험하는 화합의 축제로 만들기 위한 ‘칡줄다리기’는 전국대회로 마련됐다. 9개 읍·면 대항과 군부대 경연대회, 영월대표팀과 서울·경기·충북팀 270여명이 참여하는 경연대회 등으로 펼친다. 먹거리, 체험장, 전시장 등을 용도에 따라 구분 배치해 관람객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박선규 영월군수는 “어린 세대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의 장으로, 기성세대에게는 역사의 교육과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추억의 여행지로 단종문화제가 새롭게 선보인다”고 말했다. 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사임당’ 이영애X송승헌 ‘미인도’에서 ‘금강산도’까지 “눈 호강”

    ‘사임당’ 이영애X송승헌 ‘미인도’에서 ‘금강산도’까지 “눈 호강”

    사임당이 그린 그림들이 브라운관을 수놓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스페셜 ‘사임당, 빛의 일기’(극본 박은령, 연출 윤상호, 제작 (주)그룹에이트, (주)엠퍼러엔터테인먼트코리아)에서 이영애가 ‘금강산도’를 그리면서 그동안 극중에서 그려진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의 4월 19일 24회 방송분에서는 사임당(이영애 분)은 금강산도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어 이겸(송승헌 분)까지 합심해 그림을 완성하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극중 예술혼을 지닌 사임당과 이겸, 그리고 휘음당 그려낸 작품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진 것이다. 우선 사임당의 경우 지난 13회에서 휘음당(오윤아 분)이 이끄는 중부학당 자모회 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묵포도도’를 시작으로, 18회에서는 실제 ‘월매도’를 모사한 ‘묵매화’를 그렸다. 이후 그녀는 ‘수묵산수도’와 ‘초충도’, ‘수박과 쥐’, 그리고 ‘노련도’를 연상케하는 ‘연과 백로’를 차례로 그렸는가 하면, 지난 23회와 24회에서는 극중 이겸과 함께 ‘함박꽃과 나비’, 그리고 ‘중종의 어진’과 ‘금강산도’를 차례로 그리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여기에다 어린 사임당(박혜수 분)이 그린 것으로 설정된 메뚜기와 나비그림, 양반풍자그림까지 포함하면 무려 스무작품의 이상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겸의 경우 첫회에 강렬하게 등장한 ‘미인도’를 시작으로, 아역(양세종 분)시절 ‘사임당아역의 초상화’, 기생의 몸에 그린 ‘매화그림’, ‘파초도, ’가응도‘, ’탁족도‘, 그리고 이암의 ’모견도‘를 모사한 ’모견도‘뿐만 아니라 해와 산, 새가 담긴 그림에다 동냥밥 퍼먹는 소년, 내관, 함박꽃, 소나무 그림에 등 형식을 갖추지 않은 그림도 다수 그렸다. 또 휘음당은 ’초충도‘와 ’장미 호접도‘에다 ’꽃과 나비‘ 등을 포함한 여러 그림을 그린 것으로 설정되었고, 특히, 조선시대와 현대에서 중요한 스토리를 이끌어온 안견의 ’금강산도‘ 또한 진품 못지않은 작품이 드라마에 선보여지면서 극적 재미를 더했다.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음영을 잘 살린 고운 채색과 여성스럽고 섬세한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역사속 신사임당의 실제 작품처럼 드라마 속 채색화와 묵화는 오순경화백, 그리고 장병언화백, 박순철화백이 참여하면서 덕분에 더욱 빛을 발했다. 이들은 극중 등장한 수십 여 작품을 위해 촬영 설정에 따라 한 그림에만 최소 다섯에서 여섯장을 그렸고, 이에 따라 총 백 여장이 훌쩍 넘는 작품을 그리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사임당과 이겸이 그린 중종의 ’어진‘과 ’금강산도‘, 그리고 사임당의 ’미인도‘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인 뒤에야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임당‘ 관계자는 “이번 ’사임당‘을 통해 실제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 뿐만 아니라 가상의 인물인 이겸과 휘음당이 그린 수 십여 작품을 드라마에서도 선보이면서 브라운관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라며 “앞으로 남은 방송분동안 또 어떤 작품이 등장하게 될지와 더불어 사임당과 이겸의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어떻게 그려지고, 금강산도를 둘러싼 진실이 어떻게 전개될지 마지막까지 꼭 지켜봐달라”라고 소개했다. ’사임당‘은 매주 수,목요일 오후 10시에 SBS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