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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 공익신고] 역모보다 무서운 불고지죄

    [역사 속 공익신고] 역모보다 무서운 불고지죄

    상전 부인 통정 묵인했다 교수형연산군 6년(1500년) 충청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도(大盜) 홍길동이 체포됐다. 그는 평소 정3품 당상관이 입는 옷을 입고 수하들에게 자신을 ‘첨지’라고 부르게 했다. 대낮에도 관아를 자유롭게 출입해 아무도 그가 도적질을 한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고을 수령과 아전들은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도 위세에 눌려 이를 문제 삼지 못했다. 의금부 조사 결과 지역 관리들은 홍길동의 도적 행위를 알고도 뒷감당이 두려워 묵인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홍길동을 고발하지 않은 죄로 변방에 유배됐다. 조정 내에도 당상관 엄귀손이 그와 연루됐던 사실이 확인됐다. 엄귀손은 평소 홍길동이 관리로 행세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눈감아줬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가 한양에 거처할 집까지 마련해줬다. 엄귀손은 ‘실정을 알고도 죄인을 숨겨준 죄’에 처해져 곤장 100대에 3000리 유배형을 받고 옥사했다. ‘불고지죄’(不告知罪)란 불법 행위를 한 자를 알면서도 관청에 고발하지 않는 범죄를 말한다. 조선 시대 왕들은 이를 중대 범죄로 여겨 엄하게 처벌했다. 특히 역모 범죄의 경우 불고지죄가 큰 위력을 발휘했다. 세조 3년(1457년) 성삼문과 박팽년 등이 주도한 단종 복위가 실패했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났다. 이때 그를 배웅 나온 환관 안노가 울먹이자 “나도 성삼문의 역모를 알고 있었으나 (세조에게) 아뢰지 못했다. 이것이 나의 죄”라며 환관을 달랬다. 단종도 불고지죄가 얼마나 강력하게 처벌받는지 알고 있었다. 연산 4년(1498년) 실록 편찬과정에서 김일손의 사초가 발단이 돼 무오사화(戊午士禍)가 발생했다. 김일손은 실록에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이 왜곡돼 기술되자 이를 후세에 알리고자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중국 고사에 비유한 단종 애도사)을 사초(실록의 초고)에 적었다. 이 일로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유배됐다. 특히 강경서와 이수공, 정희량은 불고지죄로 곤장 100대를 맞고 3000리 밖으로 쫓겨났다. 역모죄의 경우 사전에 어느 정도까지 역모 행위를 알고 있었는지가 모호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당시 관리들은 정쟁에 희생되지 않고자 조금이라도 역모와 관련이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왕에게 신고해 면책받으려 했다. 불고지죄는 일반 범죄행위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인조 10년(1632년) 관리 김이가 상전의 부인과 통정해 온 사실을 동료 김동이 알고 있었지만 이를 관아에 고발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사실이 발각되자 사헌부는 김동에게 불고지죄를 물어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왕에게 보고했다. 조선시대 각종 고발 방문을 보면 신고 시 보상 내역과 함께 불고지죄 적발 시 처벌 규정도 명시돼 있다. 영조 4년(1728) 조정을 비방하는 익명의 벽서가 잇따라 붙어 사회가 불안해졌다. 그러자 왕은 벽서를 쓴 사람을 제보한 자에게 은 1000냥을 주겠다고 밝히는 동시에 작성자를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은 자를 엄벌에 처한다고 압박했다.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쓴 것이다.인간이라면 누구나 친한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이를 덮어주려는 측은지심이 생겨난다. 하지만 역대 왕들은 이를 불고지죄로 엄히 다스렸다. 백성에게 ‘불법 행위를 할 경우 언제 어디서나 고발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노력했다. ■출처:세조 3년(1457년) 6월 22일, 연산군 4년(1498년) 7월, 인조 10년(1632년) 2월 25일 곽형석 명예기자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 경복궁에서 골든벨을…

    경복궁에서 골든벨을…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열린 ‘2017 궁중 골든벨’ 행사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이 조선시대 유생들이 쓰던 유건과 도포를 착용하고 역사·문화유산 퀴즈를 풀고 있다. 앞쪽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가 강풍에 넘어지면서 행사가 15분가량 중단되기도 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발표 음식 이야기] 시큼해? 시크해! 식탁 재주꾼

    [발표 음식 이야기] 시큼해? 시크해! 식탁 재주꾼

    때로 우리의 생활을 바꾼 발명은 의외의 실패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인류 최초의 조미료’라고 알려진 식초는 사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에 먹다 남은 술이 변질돼 시고 달달한 액체로 발효된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주류로서의 본래 기능을 잃었지만 대신 독특한 맛과 각종 효능을 겸비한 식탁의 재주꾼으로 수천년 동안 사랑받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건강관리와 체중 감량 효과도 강조되면서 그 활동 영역을 더욱 넓히고 있다.역사적으로 식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5000년쯤 고대 바빌로니아의 고문서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대추야자 열매나 건포도를 발효시켜 식초, 와인, 맥주 등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황하 문명에서도 기원전 1500년쯤 과실식초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철학자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도 식초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초를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중세 유럽에서는 식초가 흑사병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흑사병이 창궐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절도를 일삼았던 도둑들이 흑사병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 식초로 목욕을 했다는 비법을 털어놓은 덕에 형벌을 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클레오파트라도 건강·미용 비결은 식초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 위나라의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에 식초 제조법 23가지가 소개됐으며, 남북조 시대 진강 유역에서 흑초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이 단군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해동역사’에 고려시대 식초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또 조선시대에는 이미 술을 빚을 때 쓰는 ‘누룩’과 비슷한 ‘고리’라는 발효제를 첨가해 식초를 안정적으로 제조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1610년 조선시대 광해군 당시 허준이 지은 의서 ‘동의보감’에는 “초는 성이 온하며 맛이 시고 독이 없어 옹종을 없애고 혈운을 부수며, 모든 실혈의 과다와 심통과 인통을 다스린다. 또한 일체의 어육과 채소독을 소멸시킨다”고 식초의 효능을 서술한 부분이 있다. 식초는 크게 ‘합성식초’와 ‘발효식초’로 구분한다. 합성식초는 석유에서부터 인위적으로 분해·합성해 만든 산도 99%의 강산이다. ‘빙초산’이라고도 한다. 흔히 우리가 먹는 식초는 과일이나 곡류 등을 발효해서 만든 발효식초다. 발효식초는 다시 순수발효식초와 주정식초로 나뉜다. 순수발효식초는 주정이나 다른 성분의 첨가 없이 과일이나 곡류 등 원물 자체로만 온전히 발효한 식초다. 이때 사용된 원료에 따라 다시 과실식초와 곡류식초로 구분한다.곡류식초는 쌀, 현미, 보리와 같은 곡식으로 발효하기 때문에 각종 유기산과 아미노산 등이 풍부하다. 현미를 발효해 만든 흑초가 대표적이다. 과실식초는 좀 더 상큼한 맛이 특징이다. 사과식초, 감식초, 포도로 발효한 발사믹 식초 등이 있다. 주정식초는 발효시간을 단축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옥수수, 타피오카, 고구마 등을 이용해 이미 만들어진 에탄올을 이용해 만든다. 희석 비율을 조정해 일반 식초보다 2배, 3배 정도 초산 함량을 높이기도 한다. 주정식초는 일반적으로 요리의 감미료로 사용되는데, 신맛을 내는 초산만 함유해 순수발효식초에 비해 유기산이나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의 함량이 낮다. ●피로회복 효능 60종 유기산 함유 식초에는 초산, 구연산, 아미노산 등 약 60종의 유기산이 함유돼 있다. 유기산은 피로의 원인이 되는 젖산을 분해하는 효능이 있어 피로 회복과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적이다. 또 타액과 위액의 분비를 촉진해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를 돕고, 혈관을 넓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혈액의 생성을 돕기도 한다. 식초의 초산은 칼슘의 체내 흡수율을 높여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산소와 헤모글로빈의 친화력을 높여 뇌에 산소를 공급해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역할도 한다. 식초는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유리나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청소할 때 물 1ℓ에 작은 술잔으로 1잔 정도의 암모니아와 소량의 식초를 넣어 혼합한 뒤 스펀지나 헝겊을 이용해 닦으면 얼룩이 깨끗이 닦인다. 또 빨래를 할 때 식초를 약간 넣으면 천연 섬유유연제 역할을 해 의류를 부드럽게 해주고 정전기를 방지한다. 식초를 탄 물로 손을 씻으면 요리를 하면서 손에 밴 마늘 냄새나 생선 비린내 등 강한 냄새가 깨끗이 사라지며, 주방 도마에 밴 음식 냄새도 식초로 헹구면 손쉽게 없앨 수 있다. ●식초물로 씻으면 생선 비린내 쉽게 없어져 국내 식용 식초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692억 2600만원으로 추산된다. 2014년 564억 1500만원, 2015년 587억 4000만원 등 매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올 1~8월 430억 2100만원대를 기록하면서 연말에는 700억원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게 업계 추산이다. 식초는 다양한 음식에 폭넓게 활용이 가능한 데다 최근에는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열풍’에 이어 다이어트에 식초가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 시장점유율 부동의 1위는 오뚜기다. 1977년 처음 식초시장에 뛰어든 이래 사과식초, 현미식초, 화이트식초, 매실식초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을 견인해왔다. 그 뒤를 추격하는 CJ제일제당과 대상은 순수발효식초를 내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자사의 식품 브랜드 백설을 통해 올해 ‘자연발효식초’의 매출을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백설 100% 자연발효 파인애플 식초’를 추가로 출시해 레몬, 백포도, 사과, 현미에 이어 5종의 프리미엄 발효식초 제품군을 갖게 됐다. 자연발효 파인애플식초는 800㎖ 한 병에 1㎏짜리 파인애플 1개의 영양 성분이 그대로 담겨 있고, 과일 자체의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효숙 CJ제일제당 조미소스 마케팅담당 부장은 “자연발효식초는 속성 발효하 는 일반 식초와 달리 과일, 곡물 등의 원재료로 오랜 시간 발효시켜 최근의 웰빙 트렌드에 부합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대상 청정원도 원재료의 풍미와 영양을 보존할 수 있는 장시간 발효를 강조한 제품을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순수발효식초는 두 번의 발효 과정을 거치는데, 청정원은 여기에 한 번의 발효과정을 더한 ‘순발효공정’ 기법으로 원재료의 영양성분을 담아냈다는 설명이다. 대상 관계자는 “특허받은 ‘3단 발효방식’을 통해 모두 57일 동안 발효 및 숙성 과정을 거쳐 미네랄, 아미노산 등 영양성분의 함유량을 높였다”고 말했다. 기존 사과, 현미, 흑미, 파인애플에 이어 최근 ‘정통레몬라임식초’를 출시하며 제품군을 넓혔다. ●웰빙 열풍에 다이어트 효능으로 각광 대상 청정원은 음료수 형태로 마시는 음용식초 시장에서도 ‘홍초’를 앞세워 지난해 말 기준 점유율 약 55%를 차지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음용식초는 주로 물이나 탄산수, 술 등과 섞어 마실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청정원 홍초는 2005년 출시 이후 빠르게 성장해 2011년 매출 500억원,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올 초에는 어린이 음료시장으로도 확대해 어린이용 음용식초 ‘홍초먹은 기운 센 어린이’ 3종(딸기, 청포도, 애플&소다)을 출시했다. 그런가 하면 샘표는 건강식품 브랜드 ‘백년동안’을 통해 흑초를 활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2009년 7월 처음 선보인 백년동안 흑초는 통알곡 현미만을 100% 발효해 만들었다. 현재 과일맛 흑초 4종(산머루·복분자, 산수유·석류, 블랙베리·블루베리, 제주 한라봉)과 ‘純(순) 발효흑초-원액 100%’, 클렌즈 부스트 2종(그린파워, 옐로파워), 에너지 부스트 2종(레드파워, 블랙파워)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판매 중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포토 다큐] 커지는 펫케어… 침도 맞아요

    [포토 다큐] 커지는 펫케어… 침도 맞아요

    조선시대 침으로 말을 치료하던 마의(馬醫)로 이름을 떨치다 임금의 병을 고치는 어의(御醫)의 자리까지 오른 ‘백광현’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마의’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현대수의학의 발달로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웠던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졌지만, 반려동물의 노령화로 생기는 특정 질환에는 백광현이 말을 치료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전통 한방을 접목시킨 동물 치료법이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한방수의학과 같은 대체수의학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동물 치료법이다.●홍역·디스크 등 치료 불가능했던 질병, 침·뜸으로 효과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물제중원 금손이. 여느 동물병원처럼 치료를 받으러 온 애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다른 동물병원과 다른 게 하나 있다. 바로 은은하게 풍기는 쑥뜸 냄새다. 이 병원 이름은 동물 애호가였던 조선시대 숙종 임금의 고양이 ‘금손이’에서 따왔다. 침과 뜸 같은 전통 한방수의학으로 동물을 치료하는 것이 색다르다. 동물제중원 금손이의 강무숙 원장은 13년 전 전통한방학회에서 한방수의학을 수료했다. “수의사 초기 시절인 20년 전에는 홍역과 파보바이러스 등 전염성 질환과 디스크는 치료가 불가능했는데,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더 해 주고 싶었어요.” 강 원장이 밝히는 한방수의학을 배우게 된 동기다. 한방수의학 수료 후 첫 진료 대상은 디스크 때문에 걷지 못했던 세 살배기 페키니즈였다. 치료가 끝난 뒤 건강하게 걷는 모습을 본 강 원장은 동물 한방 진료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녹용·홍삼으로 만든 반려동물용 한약… “노령견에 좋아” 충북 제천의 충북테크노파크 천연물연구센터에 입주해 있는 한방발효동물영양제 제조업체인 ‘내몸애’에서는 반려동물을 위한 한약을 만든다. 한의사인 김영수 연구원은 유기견이었던 자신의 애견 ‘해피’가 사료를 잘 먹지 않아 몸이 약해지자 동물 한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 제품은 사람의 한약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지만 강아지들이 잘 먹지 않자 과립 형태로 바꿔 사료와 섞어 먹이거나 바로 먹일 수 있도록 했다. 한약의 주재료로는 녹용, 홍삼, 당귀, 산수유 등을 사용한다. 김 연구원은 “특히 설사가 잦은 노령견들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약의 효능을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동물 한약이 많지 않아 반려동물에게 책을 참고해 쌍화탕과 십전대보탕 같은 한약을 직접 만들어 주는 동물 애호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1000만 반려동물 시대에 반려동물은 이제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동물을 기르는 수준을 넘어 몸과 마음 등 반려동물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관리를 해 주는 ‘홀리스틱 펫 케어’(Holistic pet care)가 유행이다. 한방수의학이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수의학계 일각에서는 맹신적으로 한방수의학을 따르기보다는 사람처럼 양방과 병행하기를 권한다. 한방 진료는 부작용이 적은 대신 양방 진료에 비해 치료 기간이 비교적 길고 비용적인 면에서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알쓸신잡2’ 첫 방송, 유현준-장동선 새 합류 “첫 여행지는 안동”

    ‘알쓸신잡2’ 첫 방송, 유현준-장동선 새 합류 “첫 여행지는 안동”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2(이하 알쓸신잡2)’가 첫 방송을 앞두고 프로그램을 즐길 관전 포인트를 공개했다.‘알쓸신잡2’는 정치·경제·미식·건축 뇌과학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잡학 박사’들과 연예계 대표 지식인 유희열이 진행을 맡아 분야를 막론한 무한 지식 대방출의 향연을 펼친다. 작가 유시민을 필두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건축가 유현준, 뇌인지 과학자 장동선이 출연,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알아두면 유익한 신비한 ‘수다 여행’을 콘셉트로 시청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전망이다. 27일 밤 9시 50분에 첫 방송되는 ‘알쓸신잡’은 기존 여행 예능의 공식을 허물고 지난 시즌에 이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출연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알쓸신잡2’의 관전포인트를 다음과 같이 짚어본다. #건축 & 뇌과학 새로운 전문가의 합류, 같은 장소도 새롭게 보인다 ‘알쓸신잡’의 두 번째 시즌에서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전문가들의 합류다. 건축가 유현준, 뇌과학 박사 장동선이 출연해 전혀 새로운 ‘수다 여행’을 시작하는 것. 유현준은 ‘알쓸신잡2’의 건축박사로, 국내의 다양한 명소와 유적을 방문하는 ‘알쓸신잡2’의 여정동안 장소에 얽힌 숨겨진 건축 이야기를 전한다. 또한 세계 최고의 대학을 ‘건축’ 하나로 섭렵한 진정한 건축 전문가이지만 여행길에 보이는 ‘예쁜 것들’에 발걸음을 멈추는 순수한 매력으로 지식인들을 사로잡는다. 이번 시즌 첫 여행지인 안동에서도 책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고택에 얽힌 뒷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내 건축 분야에 목마른 시청자들에게 사이다같은 시원함과 재미를 전할 예정이다. 장동선은 ‘알쓸신잡2’의 과학박사로 함께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 연구소’ 박사로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전문가지만, 다섯 전문가가 모인 여행길의 막내로서 매 순간 긍정 에너지를 발산해 ‘수다 여정’에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 안동 여행에서도 첫 만남이 무색할 만큼 어색함을 깨고, 쉴틈없는 틈새공략 토크로 출연진들을 감탄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후문. 이미 공개된 예고편에서부터 강력한 입담에 ‘투머치토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동선이 보여줄 활약에 기대가 커진다. 지난 26일 ‘알쓸신잡2’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양정우 PD는 “지난 시즌과 장르가 바뀐 느낌이다. 지난 시즌이 역사나 문학 이야기로 차분하고 진지했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오버를 담당하는 장동선과 미학이 밝은 유현준이 합류하면서 좀 더 젊고 밝은 분위기가 될 것 같다. 현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시즌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전하기도 했다. #장르불문 전문가들의 ‘뇌섹 예능’, 진지함에서 오는 색다른 재미 기존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이 눈이 즐거운 예능이 많았다면, ‘알쓸신잡2’는 눈과 뇌가 함께 즐거워지는 프로그램이다. 음식, 장소, 사회 이슈 등 단 하나의 주제로 정치, 경제, 미식, 건축 뇌 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지만 어렵지 않은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는 것. 다 시청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융합’한 여행길에 출연진들도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시즌 1부터 ‘알쓸신잡’의 MC로 활약한 유희열은 사전에 공개된 예고편에서 잡학 박사들의 쉴 큼없는 토크를 지켜본 후 “만남을 가진 첫 날이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밖이다. 앞으로 피곤할 것 같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낸 바 있다. 실제로 다섯 멤버들은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뻐했다는 후문. 26일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도 유희열은 ‘알쓸신잡2’를 최고의 가이드북이라고 설명하며 “기존의 장소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만든다. 우리가 여행지를 스쳐 지나가며 수다를 나누면 새로운 색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역시 현장에서 나영석PD는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저희 팀이 옛날부터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해왔는데 ‘알쓸신잡’은 유독 여행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식프로그램이라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다. 사실 편하게 보면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여행프로그램이다. 이번에는 각 분야 전문가가 여행을 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눌까가 전부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보지 마시고 즐겁게 여행한다는 느낌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첫 여행지는 ‘안동’! 향토음식 대잔치부터 담백한 역사 토크까지 새로운 조합으로 이들이 선택한 첫 여행지는 ‘안동’이다. 오늘(27일, 금) 밤 9시 50분 방송되는 ‘알쓸신잡2’ 첫 방송에서는 유희열, 유시민, 황교익으로 이루어진 일명 ‘복학생’들과 유현준, 장동선의 ‘새내기’가 함께 안동으로 떠난다. 안동은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 만큼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명소.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들과 함께 떠나는 안동 여행에는 익숙했던 것을 이외에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전망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예상밖의 여행 메이트가 첫 선을 보인다. 새롭게 합류한 유현준이 유시민과 함께 안동의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장소를 갔음에도 건축가과 작가가 전혀 다른 부분을 첫 번째로 지목하며 상상 밖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또한 ‘알쓸신잡’ 대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에 의해 찜닭, 간고등어, 식혜, 문어 등 연이어 소개되는 향토음식이 금요일 밤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한 유희열과 ‘잡학 박사’들은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펼칠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내 다섯명의 지식인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예정이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2’는 오늘(27일) 금요일 밤 9시 50분 tvN에서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위안부 기록물 ‘마지막 기회’… 유네스코, 진실을 등재하라

    위안부 기록물 ‘마지막 기회’… 유네스코, 진실을 등재하라

    피해자 증언 등 기록 2774건 ‘분담금 2위’ 日, 저지 총력전 2019년부터 의견 갈리면 보류이번에 실패땐 원천 좌절 우려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놓고 동아시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부터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회의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가 끝나고 결과 발표만 남아 ‘한·중·일 역사전쟁’이 다시 가열될지 주목된다. 세계기록유산은 한 국가를 넘어 세계사와 세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자료,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 4건에 대해 심사를 받는다. 이 중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위안부 기록물이다. 한국·중국·일본 등 8개국 14개 시민단체가 연대해 지난해 5월 신청한 위안부 기록물은 피해자 증언 기록, 일본의 위안부 운영을 증명하는 사료, 피해자 조사 자료 등 2774건으로 이뤄져 있다. 일본은 위안부 기록물 등재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5년 10월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 관련 자료에 이어 위안부 기록물까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국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최근 탈퇴한 미국(22%) 다음으로 많은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는 일본(10%)은 유네스코를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2015년 당시에도 “난징대학살은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진실성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며 2016년 말까지 39억엔(약 390억원)에 달하는 분담금 지원을 연기했다. 또 당시 중국이 제출한 서류는 공개되지 않고 일본에 의견 표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이에 유네스코는 지난 18일 집행위원회를 열어 제도 변경을 결정했다. 사실관계나 역사 인식에서 의견이 갈리는 안건은 의견을 조율해 공동신청을 하거나 정리될 때까지 심사를 보류하도록 했다. 유네스코는 또 난징대학살 등록을 결정한 이리나 보코바 사무국장 대신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의 오드레 아줄레 총장을 새롭게 뽑았다. 유네스코 관계자는 “차기 사무국장이 어떤 형태로든 관여를 하고 새로운 심사제도가 영향을 준다면 정치적 안건의 등록은 보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지난 24일 보도했다. 유네스코의 새로운 심사제도는 2019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일본이 이번에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막는 데 성공한다면 다음 심사에서는 아예 원천봉쇄될 가능성도 있다. 산케이신문은 위안군 기록물이 등재될 경우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탈퇴를 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을 책봉하거나 존호, 시호, 휘호 등을 수여할 때 만든 의례용 인장과 책이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차관을 국민 모금을 통해 갚고자 한 국채보상운동 관련 수기, 언론, 정부 기록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우리나라는 2015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유교책판’이 등재되면서 지금까지 13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마천루 즐비한 ‘부촌 강남’… 60년 초고속 성장의 자화상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마천루 즐비한 ‘부촌 강남’… 60년 초고속 성장의 자화상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0차 ‘서울의 가을 단풍 빨강-강남 세계가 즐기다’ 편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청담동, 삼성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미래투어 참가자들은 압구정역 2번 출구에서 집결, 도산공원과 압구정 패션거리, K스타거리, 청담동 명품거리를 따라 걸으며 ‘강남 중의 강남’을 느꼈다. 삼성동 청담배수지공원에 올라 남산부터 잠실까지 한강 강폭에 담긴 서울의 가을을 감상한 뒤 3시간에 가까운 일정을 마무리했다. 답사에 동참한 금융전문가 엄길청 경기대 교수는 강남 자본의 흐름을 짚는 즉석 10분 특강을 보너스로 제공해 박수를 받았다. 해설을 맡은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청담동에서 나고 자라며 겪은 실감나는 경험담에 버무린 진짜 강남 이야기를 들려줬다.서울은 전통적으로 남과 북으로 분화하는 이중 도시의 경향성을 보인다. 조선 500년 내내 청계천을 경계로 북촌과 남촌으로 갈라졌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종로통 조선인 거주지와 본정통(충무로) 일본인 거주지로 심화됐다. 서울의 확장과 한강 개발을 계기로 급기야 강북과 강남 2개의 도시로 양분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의 전통적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남하한 셈이다. 강북은 구도심, 강남은 신도심이 오래된 도시의 서구식 개념이다. 구도심은 궁궐과 한옥 위주 옛 모습으로 유지되고, 신도심에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야 했다. 그러나 서울로 몰리는 일극주의는 구도심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도심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강북 역사 도심은 길을 잃었고 강남이 현대 서울이 됐다. 강남 속에 또 다른 강남이 존재한다. 강남은 탄천과 양재천을 따라 동서로 나뉘는 자연지형을 갖고 있지만 인간이 그린 강남 개발 계획선은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를 따라 십자(十)형으로 강남을 분리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동서로 이어지는 강남대로와 달리 테헤란로는 한강 쪽 평지와 대모산(290m), 구룡산(308m) 쪽 구릉지를 남북으로 가른다. 강남역사거리에서 송파구 잠실동 삼성교까지 4000m 이어지는 테헤란로가 강남을 다시 한번 남북으로 절단하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테북’(테헤란로 북쪽 지역)과 ‘테남’(테헤란로 남쪽 지역)이라는 부동산 업계발 신조어는 문화사회학과 경제지리학 용어로 진화했다. 테북은 압구정동과 청담동, 삼성동, 신사동, 논현동, 학동 등을 말한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터줏대감 격 부촌이다. 반면 테남은 역삼동, 대치동, 개포동, 도곡동 등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주한 자수성가형 전문직 종사자들의 거주 공간이다. 같은 강남이지만 주민 구성과 생활환경, 교육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선시대 노론 권력자의 거주지 청계천 위쪽 북촌과 청계천 아래쪽 남인·무반 거주지 남촌을 상기하게 한다. 무엇이 테북을 강남 중의 강남으로 만들었나. 본래 강남은 오늘의 서초구인 영동1지구 개발에서 시작돼 지금의 강남구인 영동2지구로 확장됐다. 영동1지구는 반포, 잠원 등 고층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다. 영동2지구인 압구정동, 논현동, 학동, 청담동에는 공무원아파트와 시영주택 등 저층이 들어섰다. 손쉽게 고급주택, 빌라, 백화점, 플래그십 스토어로 변신할 수 있었다.강남 개발사에서 가장 유명한 어록은 “강남 땅에서 장래성이 있고, 투자가치가 있는 땅은 어디인가”라는 박정희 정권의 초실세 경호실장 박종규의 1970년 1월 질문이다. 도시계획을 짠 실무자 윤진우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의 화답은 “탄천을 경계로 그 서부 지역 일대”였다. 박종규는 탄천 서쪽을 집중 매입한 뒤 되팔아 5000억원이 넘는 대선 자금을 마련했다. 탄천 서쪽은 1988년 서초구가 분구했을 때 오늘의 강남구로 남았다. 조선시대 서울 밖 지세를 살피려면 고산자 김정호의 경조오부도를 펼치면 된다. 지도에서 한강 남쪽 강남 땅에 적힌 지명은 봉은사, 압구정, 사평리(신사동), 상림(잠원) 등 4개뿐이다. ‘영등포의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영동이라고 불린 것처럼 1963년 강남이 서울로 편입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한강 이남은 영등포가 유일했다. 한적한 농촌, 강남의 옛 지명은 논고개(논현), 학마을(학동), 청숫골(청담), 말죽거리(역삼), 독부리(도곡), 한티(대치), 개펄(개포)처럼 소박했다.한강을 바라보면서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가 있던 옛 한강을 상상하는 일은 부질없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동 앞이 옛 압구정 터다. 표석과 돌비석이 남아 있다. 72동은 단지 상가와 구정초등학교의 중간쯤에 있다. 단지 안에 들어가 보면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한강을 얼마나 많이 메웠는지 실감할 수 있다. 경조오부도에 기록된 봉은사는 절 이름이 아니다. 오늘의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무역센터, 아셈타워, 공항터미널, 옛 한국전력 부지 33만㎡(약 10만평)를 포함한 지명이다. 삼성동이라는 지명은 봉은사와 저자도, 무동도 세 마을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이 됐다는 뜻에서 붙였다. 강남은 불과 60년 만에 이룩한 초고속 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1(구보씨의 경성기행) ■일시 : 28일(토) 오전 10시 시청역 5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현대미술을 품은 천년 고찰 전등사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현대미술을 품은 천년 고찰 전등사

    강화도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펴내 봉안하도록 하면서 옥등을 시주한 것을 기념해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사찰’이라는 뜻을 지닌 전등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전등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꼽힌다.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전해지는 성이다. 산의 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의 길이는 2300m나 된다. 고려시대에 전등사는 대몽항쟁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판각했으며 조선시대엔 가람 뒤편의 정족산 사고에서 250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문서를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엔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국가사적 삼랑성과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각종 탱화 등 소중한 문화유적과 문화재가 가득한 전등사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사찰로 새롭게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1600년을 이어온 유서깊은 사찰에서 현대미술을 만난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다. 전등사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10월 삼랑성역사문화축제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정족산 사고에서 매년 현대 미술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현대 중견작가전’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현대미술 작가들이 지금까지 수십 명에 이른다. 그동안 수집한 현대미술 작품은 300여점에 이른다. 2012년 “21세기 시대정신이 담긴 불사(佛事)”를 자랑하며 241㎡ 규모로 신축한 무설전(無說殿)에서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사찰’ 전등사의 파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말없이 설파한다는 뜻을 지닌 불국사 ‘무설전’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은 이곳은 조성 당시부터 국내 대가들의 작품으로 법당을 꾸며 화제가 됐다.무설전의 석가모니불과 보현·문수보살 등 불상은 광화문 세종대왕상으로 유명한 조각가 김영원 홍익대 교수가 제작했다. 불상은 청동으로 불상을 만든 후 금박을 입히는 대신 자동차 도색에 쓰이는 흰색 우레탄 도료를 입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풍긴다. 본존불의 얼굴은 석굴암 본존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지만 보살상의 얼굴은 요즘 세대에게 친숙한 인상을 찾아 이미지를 부여했다. 본존불 뒤편의 후불화는 오원배 작가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오 작가는 석굴암처럼 둥근 공간에 부처님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존자 등 십대제자를 배치한 후불화를 프랑스 유학시절 배운 정통 프레스코 기법으로 완성했다. 서양의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부드러운 색감과 불제자들의 친근한 표정은 보는 이를 다가서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법당 내부의 전체 공간구성은 이정교 홍익대 공간디자인과 교수가 맡았다. 천장에 단청을 칠하지 않고 일반적인 법당에서 흔히 보는 연등 대신에 분홍색의 꼬마 연등 999개를 설치작품처럼 배치해 불교의 정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서운스님을 기리며 ‘서운 갤러리’라고 이름 붙인 무설전 내의 상설전시공간에서는 종교와 무관하게 전등사가 소장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번갈아 소개하고 있다. 민정기, 서용선, 곽훈, 노상균, 김태호, 문범, 한만영, 강애란, 조덕현, 문경원 등 쟁쟁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가람의 뒤편 산길을 따라 5분 남짓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켠에 서있는 정족산사고가 있다.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곳이다. 1181책에 이르는 정족산사고본은 실록 중에서 유일하게 전책으로 남아 현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중견 작가전’이 올해로 10회째를 맞아 성황리에 열렸다. 꺾어지는 해인 만큼 많은 공을 들인 올해 전시의 주제는 ‘성찰(省察)’이다.첫회 째부터 전시기획을 맡아온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역사발전의 견인역할을 한다”면서 “역사적 장소인 전등사 경내에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보관한 사고에서 현대미술 특별전시를 연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교수는 “첫 회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열 번째를 맞게 됐다”면서 “전등사와 인연이 깊은 중견작가들을 초대해 전등사 대웅보전과 성찰이라는 두가지 주제로 신작을 발표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10년간 빠짐없이 참여한 오원배 동국대교수를 비롯해 강경구, 공성훈, 권여현, 김기라, 김용철, 김진관, 이종구, 이주원, 정복수 등 10명의 중견 작가들이 동참했다. 전등사의 대웅전은 아담하지만 내용은 그 어느 사찰의 대웅전 보다 충실하다. 조선시대 중기 건축으로 보물 제 178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기둥은 배흘림 기법을 보이고 있고 목조석가여래삼존불(보물 제 1785호)의 수미단과 닻집의 조형성이 탁월하다. 도편수와 마을 주모의 사랑과 배신이야기를 담은 처마밑의 특이한 조각상도 유명하다. 작가들은 대웅전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작품을 제작했다. 오 교수는 대웅전 불상의 뒷모습과 인간의 시선, 강화도의 옛 지도를 바탕으로 한 자연의 모습이 이어진 3편의 연작을 선보였다. ‘관자재’와 ‘운석’을 출품한 강경구 작가는 “수백년 간 건물의 일부로 안과 밖의 세상을 연결해 준 대웅전의 문과 우주 속의 운석처럼 막막한 세계를 떠도는 인간의 삶을 생각해 봤다”고 설명했다. 공성훈 작가는 불상 앞의 촛불 그림과 함께 무심하게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과 시간을 품은 아침바다, 권여현 작가는 일상 속의 성찰을 표현한 ‘병목생화’와 ‘인타라망’을 출품했다. 김기라 작가는 두 개의 원형 LED로 만든 ‘광배-두개의 둥근 원’과 설치작품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을 선보였다.강화에서 태어나 전등사와 인연이 깊은 김용철 작가는 대웅보전 내부에 있는 이미지를 이용해 큰 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완성했다. 김진관 작가는 대웅보전 지붕의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유명한 나부상을 한지에 채색으로 그렸고 이주원 작가는 여의주를 한지에 그리고 LED조명을 비추는 작품을 선보였다. 푸른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전등사 대웅보전을 그린 이종구 작가의 ‘대웅보전-전등사’는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정복수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기법으로 불상을 재해석한 ‘불성의 초상’을 선보였다. 전통 고찰에 현대미술을 끌어들인 주인공은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이다. 장윤 스님은 “전통적으로 불교 사찰을 조성할 때 당대 최고 장인들을 모셔다 조각과 회화 작업을 하게 했다”면서 “문화재 사찰이라고 해서 고려시대 조선시대 양식의 불상과 불화를 찍어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으로 무설전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교가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라와 고려의 승려들이 멀리 유학을 가서 앞선 문화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전통을 지니고 있다”면서 “전등사도 전통사찰이지만 현대미술을 비롯해 음악회, 연극, 마당놀이 등 현대인이 좋아하는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화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정세균 국회의장실 그림 ‘일월오봉도’로 바뀐 의미는

    정세균 국회의장실 그림 ‘일월오봉도’로 바뀐 의미는

    23일 정세균 국회의장 접견실의 배경 그림이 바뀐 것이 포착됐다. 예전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글씨 작품이 걸려 있었으나 22일 교체한 그림은 김소선 화백의 그림이다.의장실은 22일 급하게 배경 그림을 교체했으나 작가로부터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해 그림 제목도 붙이지 못했다며 설명자료를 받는 대로 보도자료를 내겠다고 밝혔다. 새로 바뀐 그림은 해와 달이 있고 산악이 그려진 모습으로 볼 때 김소선 화백이 ‘일월오봉도’를 현대적 해석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돌로 된 여러 개의 봉우리들 밑에는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국회의장 접견실에 걸린 일월오봉도에는 바위산 사이로 강물이 흘르고 소나무도 보인다. 조선시대의 일월 오봉도는 다섯개의 산봉우리와 해·달, 그림 양쪽 끝에 소나무를 그려넣었다. 천지를 다스린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조선 시대 왕의 권위와 존엄성을 상징한다.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왕좌 뒤 병풍에 그려져 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파란 눈 신부의 꿈… 저 곡식창고 위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파란 눈 신부의 꿈… 저 곡식창고 위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리

    공세리성당은 아산호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잇는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 있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각 대표하는 곡창인 안성평야와 내포평야가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일대는 공세곶으로 불렀는데, 곶(串)이란 바다로 내민 땅을 말한다. 이런 특성으로 조선시대 조창(漕倉)이 있었다.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뱃길을 이용해 도성(都城)으로 나르기 위한 창고이자 전진기지였다. 공세리(貢稅里)라는 땅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1894년 당시 조선의 천주교 신자는 2만명 남짓했고, 이 가운데 3755명이 충청도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파리외방전교회의 피에르 파스키에 신부와 장 퀴를리에 신부는 당시 신창과 덕산을 본당(本堂)으로 충청도의 동북쪽과 서남쪽을 맡고 있었다. 신창과 덕산은 오늘날에는 각각 아산과 예산 땅의 일부다. 같은 해 동학 농민봉기 과정에서 조조 신부가 피살됐는데, 파스키에 신부는 조선을 떠났고, 후임으로 에밀 드비즈 신부가 임명된다. 당시 충청도는 53곳의 공소가 있었는데, 공세리 골뫼마을도 그 하나였다. 이 마을에는 박해 이전부터 교인이 몰려 살았는데, 파스키에 신부는 이곳을 일찍부터 새로운 신앙의 거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가 조선을 잠시 떠나기 전 조선교구장 구스타브 뮤텔 주교에게 보낸 사목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보인다.‘해변에 위치하고, 또 두 개의 큰 강이 삼각주를 이루는 지류 사이에 있는 이 마을은 땅이 매우 비옥하여 논농사가 잘됩니다. 마을 앞에는 아름다운 언덕이 있는데, 그것은 10리 떨어진 곳의 아산읍을 굽어보는 높은 산맥의 끝부분입니다. 언덕의 정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일찍이 그 안에 정부의 곡식창고가 있었으나 지금은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높은 곳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면 멋질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파스키에 신부의 꿈을 현실로 만든 이가 공세리에서 34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한 드비즈 신부다. 성일론(成一論) 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가졌던 드비즈 신부는 1871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에서 태어났다. 1894년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이듬해 공세리본당의 초대 주임신부가 됐다. 그런데 1년 만에 주교관의 경리인 당가(當家)신부로 임명됐다. 2대 본당신부는 기낭이었는데, 드비즈는 이듬해 3대 본당신부로 공세리에 돌아온다.공세리는 조선시대 공세지(貢稅地)로 불렸다. 1523년(중종 18) 80칸 규모의 창고가 들어섰지만 1762년(영조 18) 해운창이 폐지됨에 따라 무용지물이 됐다. 하지만 조창이 폐지됐다고는 해도 그 터는 국유지였다. 당연히 매매가 금지됐지만,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창립 주역인 최석우 몬시뇰에 따르면 당시 편법이 통하는 탐관오리가 없지 않아 사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문제가 됐음에도 드비즈 신부는 “정부가 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교회가 질 수는 없다”는 논리로 버텼고, 결국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20대의 젊은 사제는 1897년 한옥식으로 성당, 사제관, 부속건물을 세웠고 1921년 지금의 성당을 지었다.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사제관 건물도 이때 함께 세운 것이다. 드비즈 신부의 아버지는 건축가였다고 한다. 드비즈 신부도 어린 시절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고, 그 결과 아름다운 공세리성당을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공세리성당 말고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성당과 수원성당, 그리고 서울 혜화동성당도 설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 충청도 서해안 지역의 세곡(稅穀)은 경양포, 공세곶, 범근내에서 수집해 세곡선에 실었다. 고려시대 하양창이라 불린 경양포는 안성천 하류의 평택 팽성의 조창이었다. 범근내는 삽교천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세곡 창고는 당진 면천에 있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각 조창이 세곡을 걷은 지역적 범위가 적혀 있는데, 경양포는 직산과 평택뿐으로 조창으로서의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공세곶은 청주, 목천, 전의, 은진, 연산, 회덕, 공주, 천안, 문의 등 충청도 지역 15개 고을을 관할했다. 범근내에는 서천, 한산, 남포, 보령, 홍주, 청양, 태안, 서산, 예산 등 16개 고을 세곡이 한데 모였다.공세리 조창 폐지 이후 주변 해안에서는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도 공세리성당을 찾으면 이곳이 과거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바닷가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드비즈 신부가 ‘이 마을은 땅이 매우 비옥하여 논농사가 잘된다’고 했던 것도 간척 사업의 결과였을 것이다. 천주교 탄압 이후 산골로 흩어졌던 신자들이 다시 모여든 것도 농사지을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세리성당은 어느 때나 아름답지만 늙은 느티나무 이파리 사이에 감춰졌던 성당 건물이 낙엽과 함께 조금씩 드러나는 이맘때가 가장 정감 있다. 절을 찾는 사람이 모두 불교 신자가 아니듯 공세리성당을 찾는 사람들도 모두 천주교 신자는 아니다. 종교는 달라도 성소(聖所)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려는 탐방객도 많다. 공세리성당은 그저 한 번 거닐어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더불어 차근차근 주변을 돌아보면 적지 않은 역사 공부가 된다. 성당은 서양의 고딕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지었지만, 입구에서부터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에 이질감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성당 건축으로는 드물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했다. 지금의 공세리성당이 드비즈 신부가 설계한 당초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1971년 3000명 남짓으로 늘어난 신자를 수용하기 어려워지면서 13대 주임 김동욱 신부가 북쪽의 제대(祭臺) 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 증축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공세리성당을 찾으면 옛 사제관을 개조한 박물관을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순교의 역사를 포함한 이 지역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조창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은 공세리성당 탐방의 덤이다. 성당으로 오르는 길 옆에는 이곳이 조창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석이 있다. 작은 글씨로 길게 적혀 있지만 한 번쯤 읽어 보는 것이 좋다. 성당의 주출입구인 주차장 서쪽에서 조금만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언덕 주변에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그 아래 밭에는 조창 시절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썼음직한 조선시대 막사발 조각이 굴러다닌다. 공세리성당에서 아산 쪽으로 나가는 길가에는 치성(雉城)처럼 보이는 본격적인 성벽의 흔적이 있다. 그 아래는 조선시대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해운판관(海運判官)의 선정비다. 해운판관이란 충청도·전라도의 조창을 순회하며 세곡의 선적을 감독하고 경창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독려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다. 공세곶이 조창이었다는 직접적 증거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평화의 문 ‘열주탈’ 표정에 미소 짓고 공원내 사유지 ‘김구 묘역’에 놀라고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평화의 문 ‘열주탈’ 표정에 미소 짓고 공원내 사유지 ‘김구 묘역’에 놀라고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강남의 가을은 어떤 느낌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잠실 석촌호수로 갔다. 조선시대 송파나루터였고,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또 한강의 본류였지만, 강남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서울 유일의 인공호수가 된 곳이라고 한다. 북적거렸을 시장터가 이제는 휴식과 여유로움을 선물하고 있었다.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 평화의 문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고 평화의 문 양옆으로 익살스러운 표정의 열주탈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곰말다리를 건너 토성의 길에 올랐다. 짧지만 가파른 경사에 숨이 차올랐다. 고지에 오르자 길 왼편으로 ‘나 홀로 나무’가 보였다. 너른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주위로 많은 사람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몽촌토성 안에 있던 30여채의 민가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키가 크고 멋진 나무만 남기고 모두 베어 버렸기 때문에 나 홀로 나무가 된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자연과 역사를 가두고 해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변하면서 사람들에 의해 또다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지류의 자연 지형을 이용해 진흙으로 쌓은 몽촌토성과 외곽을 둘러싼 해자인 몽촌호를 지나 공원 내 유일한 사유지라는 충헌공 김구 묘역으로 향했다. 도포를 갖춰 입고 제사를 지내는 문중 자손들이 보였다. 보기 힘든 광경에 모두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나무숲 사이로 난 흙길을 걸으며 야외 조각들을 감상하다 보니 한성백제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옥상에 오르니 탁 트인 시야로 공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상강국이었던 백제의 정신을 담아 배 모양으로 제작됐으며, 백제 시조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의 고향 중국 이연(졸본 부여)에서 공수했다는 철평석으로 박물관을 지었다고 했다. 문화가치를 소중히 보존하려는 의지가 보여 자랑스러웠다. 쾌청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보랏빛의 풍접초가 그득한 들꽃마루는 가을의 설렘을 닮은 듯했다. 자연과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도심 속 가을 여행은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난 백제의 첫 왕도를 거닐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난 백제의 첫 왕도를 거닐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9차 ‘서울의 가을 은행 노랑-호수와 공원으로 가을여행’ 편이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석촌호수와 몽촌토성의 단풍은 도착 전이었지만 2000년 전 한성백제 시대를 사색하기에 딱 좋았다. 추석 연휴로 2주를 쉰 때문인지 정규 예약인원 30명에, 대기자 10명까지 40명이 만원사례를 이뤘다. 참가자들은 잠실역 11번 출구에서 집결, 석촌호수와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을 거쳐 몽촌호 음악분수와 몽촌토성 길을 따라 걸었다. 한성백제박물관과 야외조형전시장을 지나 장미정원에서 2시간여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7월 가리봉동 편에 이어 두 번째 기가폰을 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조선시대 이야기꾼 전기수(傳奇叟)처럼 노련한 솜씨로 2000년의 세월을 요리했다.서울에 사는 상당수가 한성백제를 모른다. 부여와 공주에 가야 백제 문화가 있다고 여긴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의 관계를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위례성이 뭔지, 위례가 어딘지는 모른다. 몽촌토성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석촌호수에 간혹 가지만 그곳에 호수가 있는 이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위의 나열은 대다수 사람이 앓고 있는 증상이다. 왜 그럴까. 혹시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글로벌 도시 서울에 살고 있을 뿐 서울이라는 오래된 도시가 가진 본연의 역사와 고유의 문화를 등한시하고 도외시한 때문은 아닐까. 송파는 한성백제의 옛 땅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18년 백제의 시조 온조가 위례성에 세운 건국 수도다. 위례성이 곧 풍납토성이고, 백제의 첫 왕도이자 서울 최초의 수도다. 서울이 1394년 강북 사대문에서 조선 건국과 함께 기원한 것이 아니라 2000여년 전 백제를 기점으로 한강 남쪽에 터를 잡은 점이 흥미롭다. 백제는 공주로 옮겨가 부여에서 망하기 전까지 무려 493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서울 강남시대는 일종의 백제 부흥이다. 1997년 풍납동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처음 발견된 유물과 그 후 14년간 진행된 발굴을 통해 한성백제는 역사의 망각에서 벗어났다. 토성 안 ‘세 줄의 둥근 해자’ 삼중환호(三重環濠)는 토성 축조 이전에 이곳에 강성한 세력이 거주했음을 알려 주는 증거다. 해자 주변은 높이 13m, 너비 43m, 둘레 3500m의 거대한 토성이 둘러싸고 있었다. 연인원 138만명이 동원돼 흙을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아 올린 풍납토성은 당대 동아시아 최대의 방어 및 경계시설로 평가된다.몽촌토성은 또 어떤가. 한강변 풍납토성과 내륙 석촌동 고분 사이에 위치한 언덕 위 몽촌토성은 한성백제사에 비친 한 줄기 빛이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1983년 잠실벌에 경기장과 선수촌, 올림픽공원을 만들기로 하면서 문을 연 것이다. 당시 곰말(꿈마을), 일리내, 잣나무골, 큰말이라는 4개의 자연부락이 토성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발굴을 통해 3~5세기 목책과 해자, 건물터가 확인됐고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다행히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아래 숨은 덕분에 개발의 광풍을 비껴갔다. 그러나 백제왕국의 유적지가 아니라 올림픽공원이라는 문화체육시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72년까지 허허벌판이었던 풍납토성에는 공장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인구 4만명이 사는 아파트와 빌라의 숲으로 변했다. 일제강점기 290여기가 남아 있던 석촌동 적석총 고분군은 다 파괴되고 달랑 6기만 남았다. 돌무덤은 마을 담벼락으로 쓰이다가 석재로 반출됐고, 한때 폭 40m의 도로가 지나가면서 쑥대밭이 됐다. 우리의 부끄러운 문화재 수난사 현장이다. ‘근초고왕이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는 371년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서울의 옛 지명 한산이 곧 한성이다. 북한산은 한산의 북쪽이요, 남한산은 한산의 남쪽을 일컫는 지역명이다. 북한산이나 남한산은 산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북한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산의 참이름은 삼각산이다. 4세기 들어 백제의 위상에 걸맞게 ‘울타리’를 의미하는 위례라는 도시명을 중국식으로 바꾼 것이 한성이다. ‘큰 강’ 한강과 마찬가지로 ‘큰 성’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이 조선시대 서울의 정식 명칭 한성부로 이어졌다. 한성백제 시대 한성의 도시구조는 왕성이자 북쪽 성 풍납토성과 남쪽 성 몽촌토성 그리고 왕릉인 석촌동 고분 등 3개 구조물로 뼈대를 이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학자에 따라 풍납토성을 대성, 몽촌토성을 왕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두 성의 거리는 불과 700m이고, 성내천이라는 하천이 예나 지금이나 흐르며, 위풍당당한 돌마리 왕릉이 자리했다. 몽촌토성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백제를 점령한 이후 아차산 보루와 함께 고구려군의 주둔지였다. 그러나 551년 한강 일대가 신라 수중에 들어가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땅이 뒤집히면서 기적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 한성백제의 고토는 1970~1980년 강남과 한강 개발의 물결을 타고 1400년 만에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서울의 가을 단풍 빨강 - 강남 세계가 즐기다 ■일시 : 21일 오전 10시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2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설민석, 국립고궁박물관 ‘해외문화재 디지털 귀향전’서 재능기부 강연

    설민석, 국립고궁박물관 ‘해외문화재 디지털 귀향전’서 재능기부 강연

    역사 강사 설민석이 ‘해외문화재 디지털 귀향전’에서 재능기부강연을 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 병풍에 담기다’라는 제목으로, ‘디지털 귀향전’의 전시 작품 중 ‘사계풍속도병’과 ‘십장생병풍’ 등 조선시대 그림을 통해 당시 양반들의 생활상과 이를 중심으로 한 다른 계층들의 시각을 소개했다. 지난 13일 경복궁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된 설민석의 특별 무료 강연에는 강연 참석을 위해 일부러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은 초, 중학생과 어머니 관객이 유독 많았다. 여기에 평일 오후 경복궁을 방문했던 일반 관객까지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설민석은 전시 작품 중 하나인 김홍도의 ‘사계풍속도병’ 설명에 이어, 김홍도의 다른 작품들과 동시대 또 한 명의 대가(大家) 신윤복의 풍속화를 비교 소개했다. 시대의 생활상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민간 화가였던 신윤복은 대상에 대한 시각과 화풍에서 차이를 보였다. ‘디지털 귀향전’의 또다른 작품인 ‘십장생병풍’은 당시 세자였던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천연두에 걸렸다 쾌차함을 기념하며 그린 그림으로, 세자의 무병장수에 대한 왕실의 간절한 바람이 드러난다. 이와 함께, 출세와 건강, 가정의 화목 등 민간의 바람이 드러난 ‘어변성룡도’, ‘수성노인도’, ‘책가도’, ‘원앙도’ 등의 민화도 소개되었고, 관객들은 이에 대한 설 강사의 흥미진진한 설명에 깊이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설 강사는 강연 말미에, “100년, 200년 후 우리 후손들은 오늘날 우리의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 그는 아마도 ‘디지털 작품과, K-pop 등 조선시대 민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작품들이 남을 것이고, 이 역시 지금의 우리 시대를 나타나는 소중한 유물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로 답을 하면서 “역사는 미래입니다”라는 마지막 말로 강연을 맺었다. ‘해외우리문화재 디지털 귀향전(展)’은 사랑의종신기부운동본부가 주최하는 행사로,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다. 해외로 반출된 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디지털로 복원해 소개하며, 작품에 대한 감동뿐 아니라 작품을 더욱 아름답고 실감나게 소개하는 디지털 영상 기획이 관람객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어느새 10년째… 마포 사또 납시오

    어느새 10년째… 마포 사또 납시오

    마포대교 북단 마포동, 용강동 일대 마포나루는 17세기 조선의 경강 상인들이 활동하던 주 무대였다. 한강변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의 물자가 모여든 덕분이다. 20세기 철도가 생기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조선시대 금보다 귀했던 소금과 새우젓 등 어물은 마포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으로 남았다.서울 마포구는 오는 20~22일 서울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당시 마포나루의 풍경을 재현하는 제10회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조선시대 각종 젓갈·소금 배가 모여든 마포나루는 이맘때쯤 김장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이번 축제에서는 광천, 강경, 신안, 강화 등 유명 산지의 품질 좋은 새우젓이 시중에 비해 최대 20%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가을에 담가 염도가 낮은 새우젓인 추젓은 kg당 1만 5000원에 거래될 예정이다. 김장용으로 주로 쓰인다. 음력 6월에 잡힌 새우로 만든 육젓은 살이 통통하며 고소해 으뜸으로 친다. 지난해 kg당 6만 5000원이던 육젓은 기후변화 등에 따른 어획량 감소로 가격이 조금 올랐다. 시중에서는 8만원대인 육젓을 축제 기간에 7만원대에 판다. 600년 전 흥성했던 포구의 활기찬 분위기를 되살린 행사도 다채롭다. 10주년인 올해는 특히 주민의 참여도를 더 높였다. 축제 전날인 19일 용강초등학교, 상암중학교 등의 마포청소년 오케스트라 교류 연주회가 열린다. 축제 첫날인 금요일 오전에는 주민 500여명이 참여하는 포구문화 거리퍼레이드와 함께 황포돛배 11척이 입항해 고을 사또가 새우젓을 검수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100m 길이의 초대형 새우김밥 만들기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새우를 직접 잡아 올려 새우젓을 담가 보는 체험은 주말인 21~22일 이틀 동안 진행된다. 21일은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행사들로 꾸며진다. 걷기 대회를 시작으로 홍대 버스킹 공연, 마포나루 가요제, 수변무대 음악회가 열려 가을 정취를 더한다. 마지막 날인 22일은 불꽃놀이 등으로 축제를 마무리한다. 박홍섭 구청장은 “축제를 통해 마포뿐 아니라 신안·소래 등 새우젓 산지인 어촌에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마포의 새우젓 축제가 매해 10월이 되면 가고 싶은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에 따르면 지난해 이 축제에 65만여명이 다녀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사물 품은 회화, 경계는 없다

    사물 품은 회화, 경계는 없다

    그림인지, 조각인지, 설치인지…. 작가 한만영(71)은 익숙한 동·서양 거장들의 작품에서 차용한 이미지와 다양한 일상의 오브제를 결합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그런가 하면 작가 김덕용(56)은 나무 위에 전통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영롱한 색채를 지닌 자개를 결합시키는 독창적인 기법을 구사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회화의 경계를 허물어온 두 작가의 실험성 넘치는 신작들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가을 화단을 풍성하게 수놓고 있다.한만영 작가는 오브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작품에 반영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어 왔다. 1980년대부터 ‘시간의 복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작품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유물부터 르네상스의 걸작, 18~19세기 대가들의 작품,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시대 토우와 불상,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인물화 등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이미지가 등장하고 철사, 거울, 악기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배합된다.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이매진 어크로스’라는 주제로 선보인 신작 16점도 흐름은 같지만 소재적인 측면에서 색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시간의 복제-K뷰티’는 신고전주의 작가 앵그르의 작품 ‘마드무아젤 리비에르’(1806)에서 초상의 주인공 리비에르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재현하고 휴대전화 부속품들을 화면 위에 부착했다. 작가는 “신고전주의 시대의 시간과 감성을 상징하는 작품과 오늘날 IT 산업의 선두주자인 한국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환기시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의 복제-익스플로러’, ‘시간의 복제-3:27’은 과거에 부분적으로만 사용했던 거울을 좀더 과감하게 전면에 등장시킨 작품이다. 작가는 “거울을 부착함으로써 작품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현재의 이미지가 화면에 병치되는 효과를 준다”면서 “과거의 이미지에서 소멸과 허무를 느끼지만 거울 속에 새로운 이미지가 생성되는 것을 보면서 생성과 소멸이 결국은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합성목재인 MDF로 청화백자의 이미지를 저부조로 만들고 이미지를 그린 후 캔버스에 부착한 작품도 새롭게 선보였다. 청명한 하늘빛 바탕에 놓인 청화백자가 한점의 구름처럼 보인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김덕용 작가는 화선지가 아닌 나무에 그림 그리는 작업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우리 미술의 근원이 무엇인지 탐색하던 중 재료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나무에 눈길이 갔다”고 나무와의 첫 인연을 소개한 작가는 “고택이나 고궁을 보면 모두 나무로 돼 있는데 나뭇결 속에 시간이 담긴 점도 그렇게 좋더라”고 덧붙였다. 나무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소나무 조각을 깎고 다듬어 화면 위에 창이나 문, 누마루 등을 짜맞추는 것이다. 그 위에 다양한 염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창문 너머로, 혹은 문 뒤로 순하고 착해 보이는 아이들이나 쪽진 머리의 단아한 여인, 매화나무, 정돈된 이부자리 등이 보이는 풍경이 그의 단골 소재들이다. 작가는 2000년대부터 나무에 자개 작업을 결합시켜 한국 전통예술의 다양한 형식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회화에 재현시키고 있다. 여인의 저고리와 치마, 배경에 놓인 장롱과 책을 자개로 처리해 입체감과 질감을 풍부하게 살렸다. 김 작가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에서 11년 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오래된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신작회화 25점을 선보였다. 인물보다는 우리 전통 주거 형태를 기반으로 한 ‘공간’의 표현에 집중한 점이 두드러진다. 그는 “방안과 바깥 풍경을 구분하는 창의 역할에 주목했다”면서 “창은 우리 전통건축의 차경(借景)을 위한 프레임일 뿐 아니라 시간을 넘나드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소쇄원의 정자를 떠올리며 그린 ‘결-제월당’은 나무에 단청 기법으로 그린 작품으로 실제로 나무의 결이 살아 있는 정자에 앉아 밖을 보는 것 같다. ‘관해낙조’는 정자에 앉아 책을 읽다 해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았을 다산 정약용의 심정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다. 물결 위에 햇살이 부서져 반짝이는 바다, 펼쳐진 여인의 치맛자락이 자개로 표현되니 황홀하게 아름답다. 전시는 31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350년 넘은 ‘허목’의 흔적… 그의 서체 닮은 ‘관동팔경’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350년 넘은 ‘허목’의 흔적… 그의 서체 닮은 ‘관동팔경’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라면 조선 후기의 사상과 문화를 이끌어 간 인물의 하나다. 정치적으로는 우암 송시열과 예학(禮學)을 놓고 논쟁했던 남인의 핵심이었다. 산림(山林)에 머물던 시절 중국 상고시대 문자를 바탕으로 특유의 전서체(篆書體) 글씨를 완성했다. 세상은 이를 미전(眉篆)이라 부른다.미수의 집안은 광해군 시절 정권을 잡았다가 인조반정으로 풍비박산이 나다시피한 북인이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뜻을 접은 그는 경기도 광주 자봉산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전념했다. 노장(老莊) 사상에 심취했던 미수가 퇴계와 율곡에서 비롯된 조선성리학으로 무장한 서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우리 고유의 세계관과 정신세계의 가치를 인식한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역사서 ‘동사’(東事)를 편찬하면서 단군설화를 그대로 담아 서인들로부터 황탄비속(荒誕鄙俗)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수가 처음 벼슬길에 나선 것은 56세가 된 1650년(효종 1)이었다. ‘박학능문(博學能文)하며 그 뜻이 고상하다’는 추천에 따라 정릉참봉에 제수됐다. 어머니가 “선인께서 아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고 하자 관직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헌부 장령으로 제수된 1659년에는 송시열이 주도한 북벌론을 두고 ‘실현불가능한 정책으로 백성의 고통만 가중시킨다며 군사를 일으키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옥궤명(玉几銘)을 지어 올렸다. 같은 해 효종이 승하하자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복상 기간을 놓고 이견이 대두됐는데 허목을 비롯한 남인은 1년으로 해야 한다는 서인의 기년설(朞年說)에 맞서 3년설을 주장하다가 패배했다. 이른바 기해예송(己亥禮訟)이다. 미수는 이 일로 이듬해 10월 강원도 삼척부사로 좌천됐다. 중앙정치에서는 쓴잔을 들이켰지만 목민관(牧民官)으로 이상을 펴 볼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인 듯 하다. 미수는 삼척부사로 1662년 8월까지 재임했다. 당대 문인 동명 정두경은 ‘허목을 삼척에 보내며’(送許三陟)라는 시로 그를 위로했다. ‘대관령 동북에 이름난 고을 있으니 /삼척에 흐르는 물이 오십천이네 / 부사께서 세속을 벗어난 흥취가 많으신 것을 잘 아니 /밤이 되면 밝은 달이 죽서루 위에 뜨리라’ 경치 좋은 고을에서 풍광을 즐기며 때는 기다리라’는 덕담이었지만, 미수의 삼척 시절은 치열했다. 350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지만 삼척 곳곳에는 미수의 흔적이 남아있다. 미수는 경기도 연천이 고향으로 무덤도 그곳에 있다. 그럼에도 허목은 지금도 명실상부하게 ‘삼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삼척시립박물관에도 미수의 역사는 제1전시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미수를 따라가는 삼척 기행은 죽서루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있다. 동명의 시에서 보듯 오십천과 죽서루는 삼척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죽서루는 삼척부의 객사(客舍)였던 진주관(眞珠館)의 부속건물이었다. 진주는 삼척의 옛 이름이다. 객사란 지방에 파견된 중앙 관리들의 숙소다. 객사의 부속 누각은 이들을 접대하는 연회장이었다. 주변에서는 발굴조사로 진주관과 수령의 업무공간인 동헌(東軒), 수령과 가족의 거처인 내아(內衙)를 비롯한 삼척도호부의 실체가 드러났다. 행정구역으로는 삼척시 성내동이다. 성(城) 내부라는 땅이름처럼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쌓은 판축토성과 조선시대 축조한 석성의 흔적도 확인됐다. 삼척시는 일대를 정비·복원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죽서루는 오십천의 물길 방향에 맞게 지은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 집이다. 일찌감치 유적공원으로 조성된 입구로 들어서면 죽서루 동북면에 ‘竹西樓’(죽서루)와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고 새긴 현판이 보인다. 삼척부사를 지낸 정묵재 이성조가 1711년(숙종 37) 쓴 글씨다.내부를 들여다보면 ‘第一溪亭’(제일계정)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미수의 글씨다. 과하지 않게 흘려 쓰는 묘미가 있는 행초체다. 가만히 보면 정묵재의 현판 역시 허목의 필적을 닮아 있다. 선인(先人)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분위기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아니었을까. 두 사람 모두 삼척부사 시절 죽서루를 중수했기에 현판 글씨도 남길 수 있었다. 미수의 체취는 삼척항이 내려다보이는 육향산(六香山)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높이가 25m에 불과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삼척군지인 ‘진주지’(眞珠誌)는 “예전에는 죽관도(竹串島)라 했다”고 적었다. 과거에는 정라진 앞바다의 작은 섬으로 동해안 일대와 울릉도·독도를 관할하던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산 위에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와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贊碑), 육향정(六香亭)이 있다. 척주동해비는 미수가 조수(潮水)의 피해를 막고자 세웠다. 육향산 동쪽 만리도에 있었으나 풍랑으로 파손되자 1709년(숙종 35)에 삼척부사 홍만기가 다시 새겼고 이듬해 후임 박내정이 죽관도 기슭으로 옮겼다. 높이 170.5㎝의 척주동해비는 당당하다. 검은색 비신에 새겨진 전서체 글씨는 문외한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미수 글씨의 대표작이다. 바다가 심술을 부리지 않도록 동해를 예찬하는 노래를 지어 새겼다. 실제로 바다가 잠잠해졌는지는 알 수 없어도 바닷가 고을 백성을 위로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192자에 이르는 척주동해비의 동해송(東海頌)은 제문(祭文)을 닮았는데 동해신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고하는 일종의 축문이라고 한다. 한글로 해석한 것도 이해는 쉽지 않지만 신화의 한 장면인 양 신이(神異)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평수토찬비는 황하의 홍수를 다스려 대우치수(大禹治水)라는 전설을 남긴 중국 우제(禹帝)의 비석 글씨에서 미수가 48자를 골라 나무판에 새겼던 것을 1904년(고종 41) 다시 돌에 조각한 것이다. 치산치수(治山治水)의 의미라니 역할은 척주동해비와 다르지 않다. 보호각 현판이 ‘禹篆閣’(우전각)인 것은 우제의 전서 글씨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겠다.육향산의 동남쪽에는 미수사(眉叟祠)가 있다. 허목을 기리는 사당으로 근년에 지은 것이다 사당 앞 육향산을 감싸고 도는 도로 이름은 허목길이다. 육향산으로 오르는 동북쪽의 돌계단 한쪽에는 7개의 돌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척주동해비가 처음 죽관도로 옮겨졌을 당시 세워졌던 장소라고 한다. 동해비는 1969년 지금의 장소에 자리잡았다. 목민관을 기리는 수많은 선정비가 남아있지만, 그들이 모두 선정을 베푼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수의 2년 남짓한 삼척부사 시절도 그야말로 애민(愛民)으로 점철됐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고장에는 허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설화가 전하고 있다. 민속학자들은 ‘허목 설화’의 주제를 ‘세금 없는 고을을 만들다’, ‘민심을 안정시킨 척주동해비’, ‘원한을 풀어준 명판관’, ‘상속 문제를 바르게 처결하다’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적어도 삼척 사람들에게 허목이 ‘남다른 지방관’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열여덟 빛깔의 열정… 서울 자치구 축제에 초대합니다

    열여덟 빛깔의 열정… 서울 자치구 축제에 초대합니다

    추석 황금연휴는 끝났지만 10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서울시 곳곳에서는 다채로운 축제가 열린다. 특히 14~15일 주말에 서울시 자치구 12곳에서 행사가 열리면서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이번 주말은 가까운 우리 동네로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서울 강서구 가양동 허준근린공원 일원에서는 15일까지 ‘제18회 허준 축제’가 열린다. 13일 ‘건강한 삶, 동의보감에서 찾다’라는 주제로 개막한 이번 축제는 동의보감을 통해 한의학 우수성을 알리고 허준 선생의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마련됐다. 강서구는 “우리 구는 의성(醫聖) 허준이 태어나 주요 저서를 집필했던 한의학적 성지”라며 “허준 축제는 허준과 동의보감에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한방축제”라고 소개했다. 올해는 허준이라는 인물 중심에서 벗어나 건강과 문화를 아우르는 축제로 기획, 허준과 동의보감관, 강서미라클메디특구관(건강체험관), 약초저잣거리마당 등 3가지로 꾸려졌다. 허준박물관의 ‘허준과 동의보감관’에선 허준 선생의 일대기와 가치관 등을 집중 조명한다. 약초저잣거리마당에선 다양한 약초 종류와 효능을 알아보고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다. 강서미라클메디특구관에선 전문한의사의 사상체질 진단, 한방차 시음 등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14일엔 달샤벳, 최성수, 박남정, 성진우 등 인기가수가 출연하는 ‘허준콘서트’가, 15일엔 구민들이 노래 실력을 뽐내는 ‘허준가요제’도 열린다.서울 도봉구에서는 13~22일 10일간 ‘제6회 도봉구 등(燈)축제’가 열려 가을밤 방학천 인근을 물들인다. 등축제는 서울시 예비 브랜드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축제에서는 방학천 인근에서 로봇을 주제로 한 등 46점을 전시한다. 2020년 완공 예정인 창동 로봇테마박물관 건립을 축하하고, 만화마을 이미지를 높이려는 취지다. 전시는 매일 오후 6~11시까지 진행된다. 축제의 첫날을 알리는 개막 점등식은 13일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됐다. 도봉구립어린이합창단이 점등식의 시작을 알리고 테너 하만택 교수와 현악 5중주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둘째 날인 14일부터는 매일 오후 5시 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방학천 수변 무대에서 도봉구 거리예술단, 오감만족 버스킹 출연진들이 흥겨운 공연을 펼친다. 7시 30분부터는 지역 연고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해 국악, 클래식, 악기 연주, 케이팝 댄스, 재즈, 뮤지컬 등 공연을 연다. 구내 예술작가 15팀이 축제 동안 한지공예, 석고방향제,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구민의 추억과 소원을 담는 ‘소원지 쓰기’ 행사도 마련된다. 체험부스에는 지난 9월에 구민들이 직접 만든 30개 등이 전시된다.●동대문구에선 내일까지 춤꾼들의 거리 향연 서울 동대문구 장한로 거리 일대에서는 14~15일 이틀간 세계의 춤사위를 즐길 수 있는 ‘세계거리춤축제’가 열린다. 장한평역에서 장안동사거리까지 장한로 1.2㎞ 구간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탱고, 살사, 스윙, 라인댄스를 뽐내는 전문 춤꾼들의 향연부터 관내 주민들이 준비한 아마추어 공연까지 춤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직접 춤을 배워보거나 춤과 관련한 인문학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14일 0시부터 16일 새벽 4시까지 장한로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주민들이 일대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어 축제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축제는 유덕열 동대문 구청장이 민선 5기 재임 기간인 2012년부터 시작했다. 10여년 전 구의 장안동 일대 불법 안마시설 단속정책으로 붕괴된 장안동 상권을 살리고자 동대문구와 지역 상인이 함께 기획하면서 나왔다. 첫 시작은 단 하루였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내용을 강화하면서 동대문구의 대표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올해는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주최하면서 서울 대표 축제로 브랜드화하는 등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다.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장르별 수상 공연팀의 춤사위를 모은 폐막 무대와 함께 볼꽃놀이 쇼가 이어지면서 축제 열기가 최고조를 이룰 전망이다.서울 용산구는 14일부터 이틀간 국제 문화축제인 ‘2017 이태원 지구촌축제’를 개최한다. 이태원 지구촌축제는 올해 16회를 맞았다. 세계 각국의 음식과 풍물을 두루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다. 이날 행사는 이태원 대로변과 앤틱가구거리, 베트남 퀴논길 일대에서 진행된다. 14일 오전 11시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시작으로 개막콘서트에서는 윤도현밴드(YB), 정흠밴드 등이 출연한다.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지구촌 퍼레이드’는 이태원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31개팀 970명으로 구성된 퍼레이드단이 한강진역부터 메인 무대까지 1.3㎞ 구간을 행진한다. 국방부 취타대·의장대 공연과 세계 각국의 이색 공연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다. 15일 열리는 ‘요리 이태원’에서는 불가리아 셰프 미카엘 등 이태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셰프들이 요리 경연을 펼친다. 세계 1위 비보이팀 진조크루가 출연하는 ‘비보이 배틀’도 볼거리다. 더불어 용산구는 이번 축제 기간 지난 9월 멕시코시티 인근해서 발생한 지진 피해를 알리고, 멕시코 지진 구호기금 마련에 동참하기로 했다.●내일 강북구민의 날 5000명 한마음 체육대회·가요제 서울 강북구가 15일 강북구민운동장에서 ‘2017 강북구민 한마음 체육대회 및 구민가요제’를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구는 이날을 강북구민의 날로 지정해 보다 뜻 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음 체육대회는 1995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21회를 맞았다. 2013년까지는 매년 개최했고, 이후부터는 격년제로 진행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강북구체육회가 주관하고 강북구는 후원에 나선다. 구민 화합과 건강 증진의 장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강북구 13개동의 주민 1079명이 선수단으로 참석해 열띤 경쟁을 펼친다. 이외에 응원단 2000여명, 운영요원 200여명, 내외빈 2000여명 등 약 50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종목은 800m 계주, 족구, 큰 공 굴리기, 단체 줄넘기, 줄다리기, 후크볼(점수판에 야구공을 던지는 게임), 훌라후프 통과하기 등으로 다양하다. 오후 2시부터는 구민가요제가 개최된다. 동별로 선발된 가수 13팀의 노래경연이 펼쳐지고 경연 중간에 초대가수 공연도 열려 주민들에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마포구는 20일부터 10주년 새우젓 축제 돌입 조선시대 새우젓을 비롯한 어물의 집산지였던 마포나루의 풍경이 오는 20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 일대에서 재현된다. 옛 마포나루에서 유통되어온 새우젓을 내세워 전통과 현대를 잇는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는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마포나루는 예부터 삼남지방 세곡과 각종 어물 등 물자를 한양을 포함해 수원, 안양, 양주 등 경기권역에까지 공급하는 ‘젓줄’ 역할을 했다. 전통적인 지역의 특색을 살려 서울의 대표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한 사례로 손꼽힌다. 올해는 10주년을 맞아 거리 퍼레이드가 축제 전 기간 준비돼 있다. 마포의 역사를 담은 영상, 국악, 마당극이 어우러진 미디어 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새우잡이, 외국인 김치담그기, 우마차 등 각종 체험 행사가 마련돼 흥미를 더한다.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합심해 100m 길이의 새우김밥 만들기에도 도전한다. 그 밖에 지역의 전통시장, 맛집, 관광식당, 푸드트럭 등이 참여해 특색 있는 먹을거리를 선보인다. 가을밤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줄 음악 공연도 준비됐다. 첫날 가수 태진아, 현숙 등이 출연하는 개막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둘째 날엔 마포나루 가요제, 셋째 날엔 마포나루 열린음악회 등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리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낯설고 어려운 전통음악 흥미롭게 풀다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낯설고 어려운 전통음악 흥미롭게 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종묘관리소가 주관하는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공연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재청의 후원으로 매주 토요일 종묘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종묘 제례악’은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재미있게 경험하고 싶은 관객들을 위한 자리이다. 공연을 주관하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종묘제례악은 세종대왕이 당시 제향에서 쓰이던 중국식 아악과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던 우리의 음악인 향악, 그리고 중국 송나라 때부터 전해오던 당악을 합쳐서 만든 ‘조선시대의 퓨전음악’”이라고 설명한다. 공연은 고궁에서 우리음악을 듣고,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역사의 현장에서 과거로의 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세종대왕이 왜 종묘제례악을 만들고자 했는지에 대한 당시 정치적 상황, 심리적 기조,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를 풀어나가며, 종묘의 주요 전각을 다니며 배우 이민우와 연극배우들의 열연 속에서 세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궁에서 우리음악을 듣고,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역사의 현장에서 과거로의 여행 기회를 제공하는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 공연은 종묘제례악을 해체하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면서 관객들이 종묘제례악을 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다양한 관악기와 타악기가 연주하는 합주곡이지만 종묘에서는 노래(악장)와 피리의 연주로, 종묘 전사청에서는 노래(악장)와 피리, 방향의 연주를 듣게 된다. 마지막으로 영녕전 앞에서는 합주곡으로 된 종묘제례악을 감상할 수 있다. 관객들은 종묘제례악의 선율을 주도하는 노래(악장)와 피리만으로 연주되는 ‘영신 희문’을 통해 종묘제례악의 큰 줄기를 이해할 수 있고, 노래, 피리에 방향이 곁들여진 ‘보태평 희문’에서는 좀 더 다채로운 종묘제례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귀로 익은 종묘제례악을 마지막으로 합주로 연주되는 완성된 곡을 감상하게 된다.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이야기가 있는 종묘 제례악’은 올 상반기에는 4월 1일부터 29일까지 공연을 진행했으며 하반기에는 추석연휴를 제외하고 9월 16일부터 10월 21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공연을 이어간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씨줄날줄] 당진 합덕제/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당진 합덕제/서동철 논설위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냇물과 연못은 농업 진흥의 근본이니 수리 행정은 성왕(聖王)도 중히 여겼다’고 했다. 더불어 ‘바닷가에 조수를 방지하는 제방을 쌓고 안에 기름진 농지를 만들면 이것을 해언(海堰)이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당시에도 간척과 수리 시설의 중요성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실제로 우리 간척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강화도가 넓은 농토를 가진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도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왕조가 임시수도로 삼은 이후 지속적으로 간척사업을 벌인 결과다. 농업용 수리 시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 방죽(저수지)의 역사는 더 깊다. 흔히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를 우리나라 3대 방죽이라고 하는데, 모두 삼국시대 지어졌다. 별도로 김제 벽골제, 연안 남대지, 당진 합덕제는 조선시대 3대 방죽으로 부르기도 한다. 충남 당진의 합덕제는 특히 간척 사업으로 만들어진 광범위한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한 대형 수리 시설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개(灌漑)의 역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합덕제는 흔히 소들강문들이라 부르는 삽교천 하구의 우강평야(牛江坪野)에 자리 잡고 있다. 소들(牛坪)을 거쳐 바다로 흐르던 강을 막아 새로 생겨난 넓은 농토를 가리킨다. 공주 유학자 이병연(1894~1977)은 지리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350여년 전 토정 이지함이 아산현감 시절 한진 앞바다가 크게 터졌는데 이후 100년 남짓 토착민이 둑을 쌓아 논을 만들어서 큰 들이 되었다’고 적었다. 합덕제는 후백제 견훤이 후고구려와의 결전을 앞두고 군마에게 물을 먹이고자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 1473년 ‘성종실록’에는 ‘합덕제는 고려 때 쌓기 시작한 것을 조선조에서 다시 축조했는데 길이 2700척에 일곱 고을이 혜택을 입는다’는 내용이 보인다. 간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제방 규모를 키웠을 것이다.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장녹수가 합덕제와 황해 연안 남대지를 하사받아 경작했다는 ‘중종실록’의 기록은 흥미롭다. 주변 농토가 가뭄 피해를 입건 말건 저수지 물을 빼고 벼를 심었다는 뜻이니 백성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합덕제는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준공됨에 따라 수리 시설로 기능을 하지 않게 됐다. 상당 부분 농토로 바뀌었지만, 방죽으로 기능을 되돌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때마침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총회에서 합덕제가 수원 만석거와 함께 ‘세계관개시설물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반갑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낡은 옷 벗고 ‘문화’ 입은 길… 핫플레이스로 뜬다

    낡은 옷 벗고 ‘문화’ 입은 길… 핫플레이스로 뜬다

    요즘엔 길도 진화한다. 경북 경주의 ‘황리단길’, 광주의 ‘동리단길’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의 경리단길에서 모티브를 얻어 형성됐다. 경남 창원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름값을 올리는 중이다. 이 역시 서울 압구정동의 가로수길이 모티브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전엔 낡은 길이었다는 것, 그리고 문화의 옷으로 완벽히 갈아입었다는 것이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옛것새것 아우르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다-경주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최근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며 경주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낡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은 침체 지역이었던 것을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의 머리글자와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합쳐진 별칭이다. 황리단길이 형성된 곳은 황남동 일대의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이다. 거리는 1㎞ 남짓. 정확히는 대릉원 후문에서 황남초등학교 네거리까지 약 700m의 도로와 대릉원 서편 돌담길 약 450m를 합친 구간이다. 황리단길 일대는 원래 허름한 점집이 많은 골목이었다. 지금처럼 젊은이 ‘취향 저격’의 업소들이 들어선 것은 불과 1년여 전부터다.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주말의 경우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과 불법 주차 차량이 뒤섞여 매우 혼잡한 편이다.황리단길 산책은 보통 내남사거리를 들머리 삼는다. 수십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다방, 점집 등이 트렌디한 업소들과 어우러져 있다. 대부분 가게는 본래의 외관을 최대한 살리고 내부만 리모델링한 형태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제법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길 초입의 브런치 카페 ‘노르딕’과 대표 맛집으로 꼽히는 ‘기와양과점’, 매주 다른 가정식 메뉴를 선보이는 ‘홍앤리식탁’, 창 너머로 대릉원이 보이는 ‘페트커피’ 등의 줄이 긴 편이다. 문학 서적만 파는 서점,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기념품 가게, 생활한복 대여점 등 이색 업소도 많다. 흑백사진만 찍는 사진관 역시 매력적이다. 대릉원 돌담길 쪽에도 ‘피맥’(피자와 맥주)으로 이름을 알린 ‘987’ 등 젊은 취향의 가게가 제법 많다. 첫째, 셋째 토요일에는 수공예품 등을 파는 장터도 열린다.■ 추억까지 여전하길 시간이 빚은 보물 상자를 열다-광주 동리단길 광주 동구 쪽엔 예술과 문화를 자양분 삼아 시대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 낸 흔적들이 여태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동명동이다. 마을을 감싼 숲길과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책방, 근현대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추억의 골목 등이 시간의 보물 상자처럼 모여 있다. 역시 서울의 경리단길에 빗대 ‘동리단길’이라 불린다. 동명동은 옛 광주읍성의 동문 밖에 있던 마을이다. 무등산 자락에서 내려온 동계천을 사이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었는데, 유력 인사들의 관사가 있던 윗마을이 지금의 동명동 카페거리다. 동명동 일대는 한때 학원가로 명성이 높았다. 학부모들이 머물던 카페도 많았다. 최근에는 문화 공간과 이색 카페가 생기며 젊은층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동리단길 가을 산책의 들머리는 ‘푸른길’이다. 동명동 재생의 기틀이 된 길이다. 시민들이 앞장서 경전선 폐철도를 산책로로 바꿨다. 광주역에서 광주천까지 8㎞ 가까이 이어져 있다. 푸른길 곳곳에는 일상과 연계된 길거리 건축물 ‘광주폴리’가 조성돼 있다. 잠시 구경해도 좋고, 다리쉼을 해도 좋을 곳들이다. 동구도시재생지원센터 뒤편의 ‘꿈집’, 한옥을 식당으로 개조한 ‘쿡폴리’ 등이 대표적이다. 푸른길에서 산수동으로 내려서는 길목은 호젓하다. 소규모 책방과 작은 카페가 좁은 골목을 채우고 있다. 윗마을의 부촌과 달리 비좁은 골목에선 투박한 라디오 소리와 도란도란 주고받는 담소가 담장 너머로 흘러나온다. 담장 벽화로 장식된 ‘동밖에 마실골목’도 인상적이다. 동리단길 옆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전남도청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옛 광주 예술을 되짚고 싶다면 궁동 예술의 거리를 찾을 일이다. ‘광주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곳으로, 오래된 찻집과 개미장터 등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나무 품고 푸르르길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수직 세상-창원 가로수길 서울 압구정동의 가로수길과 비슷한 곳이다. 은행나무 일색인 서울과 달리 창원의 가로수길은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수직 세상을 따라 펼쳐져 있다. 가로수길은 한창 확장 중이다. 황리단길이나 동리단길의 업소들이 거의 포화 상태인 것과 다소 다르다. 가로수길 중심부엔 용지못이 있다. 둘레 1.2㎞ 정도의 작은 저수지다. 조선시대 축조된 저수지로 1970년대에 창원이 계획도시로 건설되면서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밈모 팔라디노의 ‘말’ 등이 전시된 잔디광장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밤엔 더 멋들어진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보름달이다. 지름 3.8m짜리 등(燈)으로 달을 형상화했다. 보름달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많다. 음악과 조명이 결합된 음악분수쇼도 펼쳐진다. 용지못 주변은 가로수길이다. 도로 양쪽으로 전남 담양‘급’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높지거니 솟았다. 모두 630여 그루 정도다. 가로수길은 장방형이다. 총 3.3㎞ 구간에 걸쳐 조성돼 있다. 수직 세상 아래로는 카페촌이 형성돼 있다. 모두 50여개 업소에 달한다. 건물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저마다 개성이 있고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한식당과 레스토랑 등 먹자골목도 형성되고 있다. 카페 겸 빵집인 1997영국집, 커피가 맛있는 경성코페, 흑염소 숯불구이를 내는 송림정 등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 작은 갤러리와 옷 가게 등도 군데군데 들어섰다. 경남도민의 집(옛 경남도지사 관사)과 경남여성능력개발센터, 창원남산교회 주변의 가로수 풍경이 빼어나다.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엔 길마켓이 열린다. 일종의 벼룩시장으로, 2013년 처음 시작된 이후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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