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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왕 ‘초정 행궁’ 축구장 5배로 복원 추진

    세종대왕 ‘초정 행궁’ 축구장 5배로 복원 추진

    충북 청주시가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초정문화공원 일원에 세종대왕 행궁(조감도)을 조성하고 있다.15일 청주시에 따르면 이 사업에는 국비와 도비, 시비 등 총 155억원이 투입된다. 초정 행궁은 현재 남아 있는 충남 온양 행궁 등 조선시대의 다른 행궁이나 행궁도 등을 참고해 건립된다. 똑같이 복원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초정 행궁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 터에 남은 흔적조차 없다. 세종대왕이 초정을 떠난 뒤 수년 후 방화범이 불을 질러 사라졌다는 내용만 전해질 뿐이다. 건립 예정지는 초정문화공원 일대의 10여 필지가 왕실 소유로 기록돼 있는 일제 강점기의 토지대장을 근거로 결정됐다. 초정 행궁의 부지 전체 면적은 축구장 5배 정도 크기(3만 8006㎡)다. 중심부에는 세종대왕이 평소 업무를 보는 공간인 ‘편전’과 잠을 잤던 ‘침전’, 세자가 사용했던 ‘왕자방’이 자리잡는다. 주변에는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과 세종대왕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던 ‘수라간’이 위치한다. 집현전 옆에는 ‘독서당’이 꾸며진다. 세종대왕은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사가독서제를 시행했는데, 독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전용공간이 독서당이다.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의 연결고리였던 목욕시설 ‘탕실’과 행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초수문’도 재현된다. 행궁 어가가 전시될 ‘사복청’, 행궁 호위병들이 머물렀던 ‘사장청’도 배치될 예정이다.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마련된다.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 한옥 6동 12실, 산책로, 연못, 야외 족욕 체험이 가능한 원탕 행각, 전통찻집도 꾸며진다. 서흥원 관광과장은 “행궁이 조성되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초정 일대를 세종대왕 테마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라며 “관광객들이 몰리면 초정약수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이명희, 대한항공 지점 통해 세계 곳곳 농산물 무단반입

    이명희, 대한항공 지점 통해 세계 곳곳 농산물 무단반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가 해외 지점의 직원들을 동원해 사시사철 해외 농산물을 들여온 것으로 드러났다.14일 MBC는 대한항공 중국 베이징지점에서 이명희씨를 위해 보고용으로 찍어 본사에 보낸 사진들을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가로 약 20~30㎝, 세로 10㎝ 상자 12개에 작은 사과만큼 씨알이 굵은 대추가 빼곡히 들어 있다. 이명희씨가 회장 비서실을 통해 지점으로 하달한 명령은 마치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품을 올리던 광경을 연상케 했다. “사모님께서 아래와 같이 대추 관련 지침 주셨습니다. ‘보낸 것 먹어 봤는데, 작년 것보다 질기니, 시장에 가서 먹어보고 좋은 것으로 골라 보내라’.”(비서실) “지금까지 대추 살 때마다 일일이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것을 골라 사고 있습니다. 10여개 상점을 돌아다니며 맛을 본 후 좋은 것을 일일이 선별해 담았습니다.”(베이징) “사모님께서 대추 15상자를 3일 뒤 전량 도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비서실) “아침부터 난리 쳐서 가까스로 15상자 만들어서 포장해 보냈습니다. 빨리 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베이징) “사모님께서 잘 받아보셨고,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 있으셨습니다. ‘대추 상자가 너무 조악하니 내년엔 좀 더 크고 깨끗한 상자를 찾도록 하라. 알이 너무 작으니 다시 보낼 것. 청도 지점장에게 3시간 떨어진 산지에 가서 샘플 사서 보내라고 할 것’.”(비서실)보도에 따르면 전세계 대한항공 지점에서 이명희씨에게 봄부터 가을까지 세계 곳곳의 특산품이 전달됐다. 4월에는 중국 비파, 7월에는 터키 살구, 9월에는 중국 대추 등이 이명희씨 식탁에 올랐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직책도 없는 이명희씨가 수족 부리듯 한 데 그치지 않았다. 이 모든 식품들이 검역 신고 대상이지만, 이명희씨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신고가 이뤄진 것은 전혀 없었다. 취재진이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문의한 결과 이스탄불산 살구, 광저우산 비파, 베이징산 대추 등 검역 신고가 된 품목은 하나도 없었다. 농수산물을 검역 없이 들여오면 최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역사 속 행정] 소장파 청요직의 기득권 견제책

    [역사 속 행정] 소장파 청요직의 기득권 견제책

    정당성 강변 위해 일시 사직 ‘피혐’ 5품 이하 신원·도덕성 검증 ‘서경’ 비리 소문만으로 처벌 ‘풍문 탄핵’조선시대 청요직이란 홍문관과 사간원, 사헌부, 예문관 등 주요 부처의 당하관(중하위직) 관직이었다. 당상관(임금이 회의를 열 때 당상에 오를 수 있는 고위직)에 오르기 전 실무를 책임지는 소장파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국왕과 공신 등 기득권 세력이 국정 운영에서 독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강한 연대를 구축하고 공정성을 명분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특히 청요직들은 다양한 형태로 언론(국왕에게 직언하는 것)개혁을 추진했다. 언론관행은 법전에 규정된 고유 권한은 아니지만 대간 활동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돼 사실상 대간의 권한으로 자리잡았다. 대간이란 언론기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감찰관 계열의 대관과 간쟁관 계열의 간관(국왕의 과오를 지적하는 일을 하는 관리)을 합친 용어다. 성종 때 정착된 대표적 언론관행으로는 피혐과 서경, 풍문 탄핵을 들 수 있다. 피혐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피하고자 일시적으로 사직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대간만이 피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간에서 피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왕권 견제에 나섰다. 실제로 대간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적으로 피혐을 요청해 정당성을 강변했다. 동료가 어떤 사안을 주장하다가 국왕의 노여움을 사 처벌받으면 대간 전체가 피혐을 청해 연대 책임을 졌다. 대간 내부 회의 모임인 ‘원의’ 석상에서 동료들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할 경우 소수 의견을 가진 이가 피혐을 통해 자진 사퇴했다. 이를 통해 형식적이나마 대간의 주장이 만장일치 공론으로서 위상을 갖게 됐다. ‘처치’는 대간의 피혐에 대해 그 적절성을 따져 사직(벼슬에서 물러남)이나 체직(벼슬을 바꿈)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처음에는 국왕이 처치의 주체였지만 16세기를 넘어서면 홍문관(왕실 문헌 관리기구)이 맡게 된다. 처치의 주체가 왕에서 언관으로 바뀌면서 피혐에 따른 대간의 교체가 그만큼 잦아져 조선 후기에는 폐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서경’은 대간에서 5품 이하 관직에 임명된 관료들의 신원을 조사해 그 적절성을 가리는 일을 뜻한다. 성종대에 이르러 청요직들은 서경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간쟁에 소극적이거나 국왕과 대신에 아부를 일삼는 이들의 관직 임명 시 대간에서는 그에 대한 서경을 거부해 결국 임명이 취소되게 했다. 또 일상생활에서의 청렴도와 도덕적 흠결 여부도 서경의 통과 요건에 포함시켜 도덕적 권위가 갖는 위상을 높였다. 청요직 당하관들은 서경에 통과하고자 언론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수준의 도덕성도 갖춰야 했다. 풍문 탄핵은 말 그대로 실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소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만 해도 왕의 입장에서는 대신에게 일부 비리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려면 이를 눈감아 줘야 해 풍문 탄핵이 어려웠다. 하지만 성종 때부터 언론이 활성화되면서 풍문에 입각한 탄핵활동이 크게 늘었다.결국 대간의 대표적인 언론관행인 피혐과 서경, 풍문 탄핵 등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언로를 넓혔고 언론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이들의 노력이 왕권을 도덕적 권위와 대비시켜 상대화함으로써 공적 정치 운영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청요직들은 공론으로 표방되는 언론을 매개로 ‘도덕적 권위’를 강조하며 국정 현안에 대해 시비 분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 때문에 왕권은 도덕적 권위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될 때 그 정당성이 용인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송웅섭 연구원(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 등대가 밝혀 온 길

    등대가 밝혀 온 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는 1903년 6월 인천 팔미도 꼭대기(해발 71m)에 세워진 팔미도 등대이다. 1901년 일본과 맺은 일명 강화도조약인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에 따라 설치됐다. 일제 침탈의 방편으로 건설된 이 등대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수백 척의 함정이 이 등대를 길잡이 삼아 팔미도 해역에 집결했고, 다음날 새벽 함포사격과 동시에 상륙작전에 돌입했다. 이후 팔미도 등대는 군사작전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2009년 ‘인천 방문의 해’를 계기로 일반에 공개되어 현재까지 매년 수만 명이 찾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근대식 등대가 도입되기 전 제주 지역에는 아녀자들이 뱃일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며 밝힌 ‘도대불’(등명대·燈明臺)이 존재했다. 도대불은 포구에 세웠던 민간 등대이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피워 뱃길을 인도했다. 나무로 된 표지를 세워 두는 경우도 있었다. 불을 밝히는 등명기(燈明機)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진화를 거듭했다. 등명기는 렌즈로 빛을 증폭시켜 방사하는 등대의 핵심 장비이다. 등대가 만들어진 초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석유등이나 아세틸렌가스등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후에는 전기등으로 대부분 교체됐다. 지금은 등명기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양규 국립등대박물관장은 “LED 조명의 경우 먼거리에서도 식별이 쉬운 시인성이 뛰어나고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충남 공예공방 ‘연 칠보’ 전통공예-현대미 더해 품격 높여

    충남 공예공방 ‘연 칠보’ 전통공예-현대미 더해 품격 높여

    조선시대부터 귀한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돼 온 공예기법인 칠보공예는 마치 일곱 가지 보물과 같은 색상이 난다하여 ‘칠보(七寶)’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에는 저가의 칠보제품이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실상 장인이 정성을 다해 만든 칠보공예품은 뛰어난 품격과 고고한 자태로 저가 제품과는 비교가 불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충남공예 전문 공방인 충남 논산의 ‘연 칠보’는 이처럼 뛰어난 전통 공예인 칠보공예의 가치를 되살려 주얼리 상품으로 대중화하는 한편, 공예 체험 등을 통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특히 연 칠보는 중소기벤처기업부에서 지원하고 건양대학교 산학합력단이 주관하는 ‘풀뿌리기업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백제문화 기반 공예상품의 글로컬 산업화 및 명품화 지원 사업’ 대상 기업으로 성정돼 신제품 개발 및 체험 프로그램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 칠보 정정희 대표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칠보제품은 공장형 제품으로, 품질면에서 조잡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 공방에서는 품격을 높인 칠보 제품으로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한편 정은 9.25%, 순은 98%의 고급 칠보 공예품 제작으로 칠보공예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칠보 공예품의 대중화를 위해 연 칠보는 일상에서 여성들이 선호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시장경쟁력을 갖춘 제품 다양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다양한 주얼리 제품에 칠보공예를 접목해 전통미를 강조한 실용적인 목걸이, 반지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전통공예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미의 조화는 물론 은과 칠보 이중의 결합을 통해 독창적인 퀄리티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백제 문화 홍보 및 활성화를 기반으로 체험관광과 칠보공예를 접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에 위치한 연 칠보 공방을 방문하면 아름다운 칠보 공예품을 직접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원하는 경우 칠보 공예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전통공예 체험 프로그램 참가도 가능하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번민을 덜어내니, 차오르는 고요

    번민을 덜어내니, 차오르는 고요

    부처님오신날이 멀지 않았다. 불자든 아니든 절집을 찾을 때다. 수많은 절집 가운데 어디를 찾아야 할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도전하고 있는 절집을 고려하는 건 어떨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 사찰은 경북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경남 양산 통도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충남 공주 마곡사 등이다. 이름만 들어도 자부심이 충만해지는 절집들이다.일곱 산사 가운데 부석사, 법주사, 통도사, 대흥사 등 4개 사찰은 등재가 확실시된다. 반면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 등은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결과는 올 7월 초 바레인에서 나올 터. 아무렴 어떠랴. 세계유산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우리에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보물 사찰’이다.역사가 오래되고 명성이 자자한 만큼 일곱 산사가 품은 문화재도 다양하다. 국보가 가장 많은 절집은 부석사다. 한국 목조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무량수전(18호)을 비롯해 무량수전 앞 석등(17호), 조사당(19호), 소조여래좌상(45호), 조사당 벽화(46호) 등 모두 5개의 국보가 있다.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처음 지어졌다.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고려 우왕 2년(1376)에 재건됐다. 이어 1916년 대대적인 해체·수리 공사가 이뤄졌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다. 빼어난 비례미가 일품이다. 소조여래좌상은 무량수전 안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이다. 조사당은 우왕 3년(1377)에 세워졌다. 개창 조사인 의상 대사의 초상화가 있다. 조사당 벽화는 불법의 수호신인 법천과 제석천, 사천왕을 그린 그림이다.법주사도 ‘보물 사찰’로 불린다. 부석사 다음으로 많은 3개의 국보가 있다. 목탑 형태의 팔상전(55호)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건물은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덧대 짜맞췄다. 그 기술이 워낙 뛰어나 한 부분이 소실돼도 나머지는 끄떡없다고 한다. 팔상전 뒤엔 쌍사자석등(5호)이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석등을 받치고 선 모양새다. 연꽃 모양의 석연지(64호), 옛날 3000여명의 승려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는 철확, 독특한 모양의 희견보살상, 바위에 새긴 마애여래의상 등 경내에 독특한 볼거리가 많다. 마당에는 높이 33m의 거대한 미륵대불이 세워져 있다. 한때 개금불사(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행하는 의식)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관람객을 굽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고요하다. 봉정사는 국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15호)을 품은 절집이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어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확인됐다.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과 배흘림기둥, 고려시대의 대표적 석탑이라는 극락전 앞마당의 삼층석탑 등 익히 알려진 볼거리들이 많다. 조선시대 전기에 지어진 대웅전(311호)은 내부에 단청이 잘 남아 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저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봉정사 극락전의 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더 잘 보여 준다.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는데 낱낱 부재와 연등천장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 뻗고 걸치고 얽힌 결구들이 이 집의 견고성을 과시하듯 단단히 엮여 있다”고 적었다. 그러니 겉만 대충 훑을 게 아니라 목을 빼고 극락전 내부를 살필 일이다.대흥사는 고려시대 마애불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308호)이 국보다. 다만 대웅전 뒤 급한 산길을 1㎞ 가까이 걸어 올라야 한다.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장춘(長春)숲길이다. ‘명품’이라 부를 만한 숲이 4㎞ 정도 이어진다. 요즘엔 문재인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했던 요사채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 안에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으나 방문 요청이 쇄도하면서 안거 기간을 제외하고 개방하고 있다. 주말이면 ‘대통령 특별한 기운’을 받으려는 발걸음으로 북적댄다고 한다. 서산대사 등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도 인상적이다. 통일신라 시대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탑의 양식을 볼 수 있다. 절집 초입에 있다.통도사는 대웅전과 대웅전 뒤편의 금강계단(290호)이 국보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보사찰로도 불린다. 은입사동제향로(보물 334호), 봉발탑(보물 471호) 등도 볼 만하다.선암사와 마곡사에는 국보가 없다. 그렇다고 볼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선암사 진입로에 있는 승선교(보물 제400호)는 무지개 모양의 아름다운 돌다리다. 건축 기법이 매우 정미하다. 각황전, 무우전 등 오래된 전각과 돌담 등의 운치도 빼어나다. 선암사엔 모두 14개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다. 마곡사의 신록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이다. 마곡사는 주차장 입구에서 경내까지 1㎞ 정도 이어진 진입로가 아름답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찬찬히 엿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오층석탑, 백범 김구 선생이 기거했던 백범당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특히 대웅보전과 대광보전 등 절집의 중심 건물이 두 곳인 점이 이채롭다. 절집 주변으로 백범명상길이 조성돼 있다. 마곡사엔 모두 5개의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문채원, ‘계룡선녀전’ 여주인공 확정..날개옷 잃어버려 바리스타로 정착

    문채원, ‘계룡선녀전’ 여주인공 확정..날개옷 잃어버려 바리스타로 정착

    배우 문채원이 ‘계룡선녀전’을 통해 아름답고 신비한 설화 속 선녀로 돌아온다.네이버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사전 제작 드라마 ‘계룡선녀전’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바리스타가 된 699세 계룡산 선녀 선옥남이 현실을 살고 있는 두 명의 남편 후보 정이현과 김금을 만나면서 비밀을 밝혀내는 코믹판타지 드라마다. 극 중 문채원은 선녀폭포에서 날개옷을 잃어버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채 699년 동안 남편이 환생할 날만을 기다리는 계룡산 ‘선녀다방’의 바리스타 선녀 선옥남 역으로 분한다. 그녀가 맡은 선옥남은 느긋하고 따스한 성품과 엉뚱한 성격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사랑 받는 인물. 또한 수 백 년의 시간동안 오매불망 남편만을 기다리며 계룡산 산자락에서 커피를 내리던 그녀 앞에 남편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처음으로 산을 떠나게 된다.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문명사회에 진입한 선옥남의 좌충우돌 서울살이 적응기가 파란만장하게 전개되며 시청자들의 웃음 코드를 저격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선옥남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푸근한 외모의 할머니이지만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선녀 선옥남의 비밀은 극에 신선한 재미를 배가하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에 문채원이 그려낼 선녀 선옥남에 대한 궁금증이 고조되고 있다. 그간 드라마 ‘바람의 화원’, ‘공주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굿 닥터’ 영화 ‘최종병기 활’, ‘오늘의 연애’, ‘그날의 분위기’ 등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여줬던 그녀이기에 선옥남에게 어떤 색깔을 덧입혀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특히 정통 사극에서부터 현대극 등 장르를 불문, 탁월한 작품 소화력을 보여줬던 문채원은 이번 작품에서도 선옥남과 쏙 빼닮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안방극장에 ‘선옥남’ 홀릭을 예고하고 있다. 더불어 선옥남이 환생한 남편이라고 믿고 있는 남편 후보 정이현 역을 맡은 윤현민과 빚어낼 알콩달콩한 케미 역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처럼 아리따운 선녀의 모습 뒤 남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물론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춘 캐릭터 선옥남은 벌써부터 문채원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작품의 기대치를 한층 더 상승 시키고 있다. 한편 ‘계룡선녀전’은 제작에 박차를 가하며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군포시평생학습원, 포럼 ‘한국 그림책의 뿌리를 찾아서’ 4회 개최

    군포시평생학습원, 포럼 ‘한국 그림책의 뿌리를 찾아서’ 4회 개최

    한국 그림책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기위한 행사가 경기 군포시에서 2달간에 걸쳐 열린다. (재)군포문화재단 평생학습원은 오는 12일부터 그림책 콘텐츠 개발을 위한 네트워크 포럼 ‘한국 그림책의 뿌리를 찾아서’를 4회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조만간 조성될 ‘그림책박물관공원’에서 깊이 있는 사업이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림책박물관공원은 시가 폐쇄된 배수지를 재활용해 그림책을 주제로 전시·체험·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열 수 있는 창작과 생산의 종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내년 공사를 시작해 2020년 9월 개장할 예정이다.포럼에는 경기도미술관 김종길 미술평론가, 계명대 사카베 히토미 교수, 권윤덕 그림책작가, 박종진 아동문학연구자, 홍선웅 판화가 등 각계의 전문가가 참여해 그림책 뿌리 찾기에 나선다. 오는 12일에 열리는 첫 포럼은 이미지 미술사와 그림책을 통해 미학적·매체적 측면에서 그림책과의 연관성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그림책 원류를 찾기 위한 열린 시야를 갖고 연구 방향을 조망한다. 오는 29일에는 그림책 대량 생산의 한 방법인 판각과 그림책의 관련성을 탐구한다. 3회차인 다음 달 9일에는 기행화첩, 풍속화첩 등을 통해 그림으로 서사를 연결, 전달하는 방식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마지막 4회차 포럼은 다음달 23일에 열리며, 조선시대 의궤, 무예도보통지, 능행차도 등의 기록화를 통해 서사와 이미지의 관계를 살펴볼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최근 그림책은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예술매체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라며 “이번 포럼의 결과물은 그림책박물관공원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군포시평생학습원, 포럼 ‘한국 그림책의 뿌리를 찾아서’ 4회 개최

    군포시평생학습원, 포럼 ‘한국 그림책의 뿌리를 찾아서’ 4회 개최

    한국 그림책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기위한 행사가 경기 군포시에서 2달간에 걸쳐 열린다. (재)군포문화재단 평생학습원은 오는 12일부터 그림책 콘텐츠 개발을 위한 네트워크 포럼 ‘한국 그림책의 뿌리를 찾아서’를 4회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조만간 조성될 ‘그림책박물관공원’에서 깊이 있는 사업이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림책박물관공원은 시가 폐쇄된 배수지를 재활용해 그림책을 주제로 전시·체험·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열 수 있는 창작과 생산의 종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내년 공사를 시작해 2020년 9월 개장할 예정이다.포럼에는 경기도미술관 김종길 미술평론가, 계명대 사카베 히토미 교수, 권윤덕 그림책작가, 박종진 아동문학연구자, 홍선웅 판화가 등 각계의 전문가가 참여해 그림책 뿌리 찾기에 나선다. 오는 12일에 열리는 첫 포럼은 이미지 미술사와 그림책을 통해 미학적·매체적 측면에서 그림책과의 연관성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그림책 원류를 찾기 위한 열린 시야를 갖고 연구 방향을 조망한다. 오는 29일에는 그림책 대량 생산의 한 방법인 판각과 그림책의 관련성을 탐구한다. 3회차인 다음 달 9일에는 기행화첩, 풍속화첩 등을 통해 그림으로 서사를 연결, 전달하는 방식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마지막 4회차 포럼은 다음달 23일에 열리며, 조선시대 의궤, 무예도보통지, 능행차도 등의 기록화를 통해 서사와 이미지의 관계를 살펴볼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최근 그림책은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예술매체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라며 “이번 포럼의 결과물은 그림책박물관공원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이 걷기 좋은 봄날, 당진으로 성지 순례 가볼까

    이 걷기 좋은 봄날, 당진으로 성지 순례 가볼까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에서 신리성지까지 이어지는 ‘버그내 순례길’이 봄날 걷기 좋은 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장승률 당진시 주무관은 8일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방문한 뒤 5만여명에 그치던 이 길을 찾는 천주교 신자와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 연간 20만명에 이른다”며 “한국관광공사도 최근 5월의 추천 길로 선정했다”고 했다.합덕 장터의 옛 지명인 ‘버그내’에서 유래한 이 길은 우강면 송산리 솔뫼성지에서 출발해 합덕제~합덕성당~원시장·원시보 우물터~무명 순교자의 묘를 거쳐 합덕읍 신리성지까지 가는 13.3㎞ 코스다. 2013년 말 당초 비포장 길을 일부 포장하고 안내판과 쉼터 등을 설치하는 등 정비를 했다. 합덕제는 신라 말 견훤이 만들었다는 저수지로 지난해 국제관개배수위원회의 ‘세계 관개(灌漑)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됐다. 여름철 연꽃이 장관이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신부의 탄생지이고, 합덕성당은 1929년 건립돼 고풍스럽다. 이 일대는 한국 초기 천주교에서 가장 많은 신자와 순교자를 배출한 신앙과 힐링의 명소다. 조선시대 ‘충청도의 사도’로 불린 순교자 이존창이 살았던 예산군 여사울과 인접해 이 주변에 천주교가 번창했다. 천주교 순교와 박해의 역사가 서린 순례길이지만 좌우로 논밭과 사과 농장 등 전통 농촌 풍경이 펼쳐져 마음의 여유를 제공한다. 장 주무관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년이 되는 2021년에는 버그내 순례길 주변의 공소(신자들이 예배 보던 작은 성당)를 복원하고 스탬프 투어 등 새 프로그램을 많이 도입할 계획”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방문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건봉사, ‘642칸 당우’와 영화·쇠락 함께… 만해, 소실된 ‘正史’ 재발간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건봉사, ‘642칸 당우’와 영화·쇠락 함께… 만해, 소실된 ‘正史’ 재발간

    고성 건봉사는 민통선을 지나지 않고 남쪽에서 접근하면 편안하다. 지난해 완전 개통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해 바다에 닿을 때쯤 삼척에서 속초를 잇는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다. 그렇게 북쪽으로 달리다 고속도로 끝에서 동해안을 따라가는 7번 국도에 진입해 조금만 올라가면 고성 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전하면서 딴생각을 하다 간성읍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46번 국도로 접어들어야 하는 것을 잊고 화진포해수욕장까지 내쳐 달렸다. 차를 돌려 조금 내려오니 반갑게도 건봉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거진읍에서 절에 접근하는 길이다.산길로 접어든다 싶더니 바리케이드 너머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 주고 나서 통과할 수 있었는데 검문소는 하나가 더 있었고 절차도 반복됐다. 건봉사가 민간인 출입 통제에서 풀린 것은 1988년이다. 일대는 6·25전쟁의 격전지였고, 절 주변에서 특히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DMZ)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건봉사 가는 길’도 그 혜택을 누렸으면 좋겠다.건봉사는 전쟁 이전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사성전, 보제루, 어실각, 수침실 등 642칸의 당우가 있는 강원 최대 절집이었다고 한다. 1920년대 사진을 보면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시절 위세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수침실(水砧室)은 물레방앗간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모두 불탔다. 건봉사는 앞서 1878년(고종 15)에도 산불로 3183칸의 전각이 타 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사라진 전각은 1879년 개운사·중흥사·봉은사·봉선사·용주사 등이 힘을 합쳐 중건했다고 한다. 지금 건봉사의 전각은 대부분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강당인 봉서루에는 ‘금강산 건봉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에 자리잡기는 했지만 금강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금강산 유람에 나선 옛 사람들은 간성을 지나 건봉사에 이르면 누구나 금강산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생각했다.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1569~1618)은 1603년(선조 36) 궁궐의 마구간을 관리하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이라는 벼슬에서 파직되자 금강산 유람길에 오른다. 이때 건봉사 스님 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긴 한시를 남겼는데 여기에도 ‘건봉사가 어드메냐 / 금강산 속에 있어 높고도 아스라하다’는 대목이 보인다.건봉사의 정사(正史)는 ‘건봉사와 그 말사의 사적(事蹟)’이라고 할 수 있다. 고종 시대 대화재로 각종 자료가 대거 사라짐에 따라 새로 수집한 역사를 바탕으로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대표 집필해 1928년 발간한 것이다. 편년체로 절의 연혁을 정리하고 부속 암자, 재산, 유물, 진영, 명소 등의 순으로 기술했다. 만해는 당시 건봉사의 승려였다. 건봉사 사적은 절의 역사가 신라 법흥왕 7년(52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었다. 아도(阿道)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는 것이다. 법흥왕 7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8년 전이고, 아도는 그 훨씬 이전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다는 인물이니 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역사 끌어올리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많은 절들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을 창건주로 내세워 역사를 윤색하는 것이 사실이다. 건봉사의 경우도 지리적 위치를 보면 삼국시대 당시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 중심 루트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도는 특정시대 특정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아미타(阿彌陀)신앙, 곧 정토신앙을 전파하는 승려라면 누구나 아도이고 아도화상이다. 역사책에서 아도나 아도화상이라는 이름이 각각 다른 시대에 등장하는 이유다. 신라가 함경도 일부까지 점령하고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를 세운 것은 진흥왕 시대다. 법흥왕 시대 건봉사 일대는 신라보다 고구려의 영향력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신라 중심으로 보면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 법흥왕 시대 건봉사의 창건은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창건을 ‘신라 법흥왕 7년’이 아니라 같은 해인 ‘고구려 안장왕 2년’이라고 보면 논리적 모순은 없다. 건봉사는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가 시작된 절이다. 염불계(念佛契)라고도 하는 염불만일회는 1만일 동안 극락왕생을 위해 아미타 부처의 이름을 마음을 다해 부르는 모임이다. 758년(신라 경덕왕 17) 발징이 절을 중건하면서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신도 1820명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건봉사에서는 19~20세기에도 세 차례 염불만일회가 열렸다. 조선시대 건봉사는 1464년 세조가 행차해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삼으면서 척불(斥佛)시대에도 왕실의 보호를 받는 사찰이 되었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문인과 관료들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건봉사에서 하룻밤을 묵어 갔던 것도 감당할 만한 경제력이 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의 명을 받은 사명대사가 이끄는 6000명 남짓한 의승군이 건봉사를 훈련의 근거지로 삼기도 했다. 건봉사는 만해의 존재에서 보듯 일제강점기 교육운동과 항일운동에 매우 활발했다. 깊은 산골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절을 찾는 당대 문인·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시대 변화에 눈뜰 수 있었고, 더불어 종교의 역할도 깊이 있게 고민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1909년 당시 건봉사의 말사였던 백담사에서 탈고해 1913년 간행한 ‘조선불교유신론’은 물론 만해 개인의 저서지만, 진취적인 건봉사의 분위기가 응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불교가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 본연의 자세로 복귀해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무엇보다 염불당을 폐지하고 염불을 개혁해야 한다는 ‘유신론’의 한 대목은 건봉사에 몸담고 있는 승려의 주장으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1908년 회향한 염불만일회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만해는 “대낮이나 맑은 밤에 모여 앉아 찢어진 북을 치고 굳은 쇳조각을 두들겨 가며 의미 없는 소리도 대답도 없는 이름을 졸음 오는 속에서 부르고 있으니, 이는 과연 무슨 짓일까”라면서 ‘아미타불’을 부르며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만인회를 정조준했다.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중생들의 거짓 염불을 폐지하고 참다운 염불을 닦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적었다. 이런 설명을 듣고 절을 둘러보면 삼국시대 고찰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아도 최근의 석물(石物)도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절 마당에 들어서 왼쪽에 보이는 ‘만해당 대선사시비’도 그렇다. 그 옆 ‘사명대사기적비’도 지난해 복원한 것인데, 파손된 옛 비석 조각의 일부가 남아 있다. 사명대사가 왜적에게서 되찾아온 양산 통도사의 진신사리 일부를 건봉사에 안치했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건봉사의 성속(聖俗)을 가르는 경계는 불이문(不二門)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결국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한다. 불이문은 6·25 와중에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편액의 글씨는 근대 명필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썼다. 불이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시냇물을 건너면 대웅전이고, 곧바로 올라가면 적멸보궁이다. 대웅전 가는 길에 놓인 다리가 능파교다. 조선 숙종 시대 지은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로 2002년 보물로 지정됐다. 절 진입로의 홍예다리도 차를 타고 가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과거의 흔적이다.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일종의 무덤과 그 무덤에 배례할 수 있도록 지은 전각이다. 사명대사기적비에 언급된 진신사리를 모시고자 조성했을 것이다. 지금 불이문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왼쪽의 넓은 터전에는 아직 복구하지 못한 옛 전각의 주춧돌만 가득하다. 이 또한 건봉사의 역사를 보여 준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경찰, 드루킹이 총영사로 추천한 변호사 조사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49·본명 김동원)이 정권 실세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에게 인사를 청탁한 대상인 변호사 2명이 3일 경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4일 김 의원을 소환 조사하기에 앞서 드루킹의 인사 청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날 도모(61)·윤모(46) 변호사를 동시에 소환해 조사했다. 앞서 드루킹은 지난해 대선 이후 윤 변호사를 청와대 행정관에, 도 변호사를 일본 대사에 이어 오사카 총영사에 앉혀 달라고 김 의원에게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드루킹이 운영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법률 스태프’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드루킹이 평소 친분이 깊은 사람을 인사청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두 사람을 상대로 드루킹의 청탁 배경과 사전 인지 여부, 청와대 측과의 접촉 배경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아울러 경공모 회원의 아이디가 댓글 조작에 가담한 정황이 포착된 만큼 경공모 운영 방식과 댓글 조작 가담 여부 등을 파악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앞서 드루킹은 오사카 총영사직에 도 변호사를 추천한 것이 무산되자 김 의원에게 2차례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윤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드루킹의 변호를 맡았다가 그가 기소된 이후인 지난달 19일 사임했다. 경찰 관계자는 “윤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회원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면서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진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도 변호사는 “드루킹 블로그를 우연히 알게 됐고, ‘자미두수’(중국 점성술), ‘송화비결’(조선시대 예언서)을 다룬 글에 관심이 생겨 경공모 카페에 가입했고 드루킹 강의도 들었다”면서 “경공모에서 법률 자문 등을 담당하는 스태프였고 ‘우주등급 이상 회원이 사는 마을 조성’ 등과 같은 드루킹의 목표와 이상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 서산 해미읍성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 서산 해미읍성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혹자(或者)는 천 명이라 하고, 또 다른 혹자(或者)는 삼천 명을 말한다. 천주교를 믿는 그들은 해미읍성 옥사(獄舍) 앞 호야나무에 목을 매어 달려 죽었고, 작두에 목이 잘려 죽었으며, 어린 군관이 휘두른 홍두깨 방망이에 맞아 죽었고, 물 묻은 창호지를 얼굴에 붙어 죽었고, 볏단을 두 손으로 잡고 바닥으로 내리치듯 머리가 자리개 돌에 터져 죽었으며, 아녀자들은 결박당한 채로 개울 둠벙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돌무더기에 산 채로 묻혀 죽었다. 죽어가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는 그들의 소리가 읍성 밖 여염집 사람들 귀에는 흡사 ‘여수 머리’라고 들리어 지금도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밖에는 여숫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조선 유일의 생매장 순교가 행해진 시간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으로 가 보자. 해미읍성(海美邑城)은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도심 읍성으로, 1963년 1월 21일에 일찌감치 대한민국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성곽이다. 원래 이곳은 1417년(태종 17년)에 성을 짓기 시작하여 1421년(세종 3년)에 축성이 완료된 곳으로 왜구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의 성채였다. 그러다 1651년(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옮겨가면서 이때부터 해미읍성은 호서 지방 및 내포 지방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읍성이 폐지되었다가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조선 시대 도심 내에 축조된 읍성으로는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히는 해미읍성은 총 길이가 1,800m이며 성벽의 높이는 5m에 이른다. 또한 성 바깥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깊이 2m의 해자도 축조한 타원형의 안정된 성곽으로 지금도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에 관한 핏빛 가득한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 1801년에 행해진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이전부터 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시기까지 이 곳 해미읍성을 거쳐 간 천주교 순교자는 무려 3000여명에 이른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내포 지방에서 잡혀온 여염집 신자들의 경우 제대로 된 판결도 없이 생매장을 하였는데 그 숫자가 어림잡아도 1000명을 훌쩍 넘는다고 전해진다. 당시 군관들은 그들로부터 뺏은 십자가와 묵주를 읍성 서문 난간 문턱에 올려놓고 이를 밟으면 살려 준다는 조롱 섞인 배교(背敎)를 강요했지만, 끝끝내 수천 명에 이르는 신자들은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이곳에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체스코가 해미 순교터를 방문한 이후 해미읍성 주변지역은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 종교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뜻깊은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해미읍성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한국 로마 카톨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교터 중의 하나다.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의미를 전해주는 공간.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들이, 천주교 신자라면 더더욱 3. 가는 방법은? - 충남 서산시 부춘공원2로 11(읍내동) 4. 감탄하는 점은? -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성곽의 돌무더기,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시절의 회화나무.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순교의 흔적이 남은 회화나무, 옥사, 진남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산수파김치장어’, ‘원조장어마을’, 백반집 ‘진국집’,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haemifest.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추사고택, 한용운 생가터, 장영실 과학관, 수덕사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한국 유일의 생매장 순교터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1800년대 조선 후기 선조들의 고뇌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곳이다. 갈 곳 잃은 조선의 운명에서 살고자 몸부림쳤던 조상들의 피울음이 울려 퍼지는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평창 오대산 적멸보궁 보물 지정 예고

    평창 오대산 적멸보궁 보물 지정 예고

    신라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평창 오대산 적멸보궁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월정사 적멸보궁’을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이란 명칭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적멸보궁이 오대산의 다섯 암자(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 중 중대에 위치한 점을 반영한 보물 명칭이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내부와 외부가 이중 구조로 이뤄진 겹집 형태가 특징이다. 국내 건축물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형태로 처음부터 이 형태로 건축된 게 아니라 조선시대 중창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 건물이 내부 건물을 감싸는 동시에 공간 확장의 측면에서 이같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 건물은 조선후기 건축 양식인 ‘익공식’(翼工式·지붕 하중을 받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인 공포의 일종으로 새의 날개 모양)으로, 내부 건물은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인 ‘다포식’(多包式·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열한 형식)으로 세워졌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금천 “호압사에 마당놀이 보러 오세요”

    금천 “호압사에 마당놀이 보러 오세요”

    서울 금천구는 호암산에 있는 전통사찰 호압사에서 전통 마당놀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30일 밝혔다.호압사는 조선시대 한양을 위협하는 호암산의 불호랑이 기운을 누르고자 태조 이성계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석불좌상 등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호압사 석불약사여래좌상은 서울시 문화재 제8호로 지정돼 있다. 호압사 창건의 역사와 전설을 담은 전통 마당놀이인 ‘약사부처님 호랑이몰이’는 오는 5일 어린이날, 10월 9일 한글날에 약 1시간씩 펼쳐진다. 호압사 대표 문화재인 석불약사여래좌상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다음달 3차례 진행된다. 호압사에서 석양을 즐기는 ‘호암공감’ 프로그램은 5일 시작해 10월까지 4차례 운영된다. 참여 신청은 코리아헤리티지센터 운영카페(cafe.naver.com/koreasharer)에서 할 수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公슐랭 가이드] 계곡 벗삼아 봄을 맛보다

    [公슐랭 가이드] 계곡 벗삼아 봄을 맛보다

    관악산 자하청류 절경 보고 있노라면 순두부찌개·비빔밥도 최고의 진수성찬직장인은 대부분 날이 덥거나 추울 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청하거나 인터넷 바다를 서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는 건강을 위해서 걷기동아리에 가입하기도 하지만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나 갖은 봄꽃이 울긋불긋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요즘, 밖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봄 풍경이 아름다운 곳, 입맛을 돋우는 맛집을 찾아 떠나곤 합니다.# 점심시간 등산로 10여분 걷다 보면 ‘향교집’ 관악·청계산이 감싸 안은 경기 과천은 빼어난 자연환경만큼이나 유명한 맛집이 많은 전원도시입니다. 과천시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나름 점심 때를 멋지게 보내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한 방법으로 직장 동료와 여유롭게 걸으며 대화도 나누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점심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관악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밤나무와 은행나무, 대나무는 멋진 경관을 연출합니다. 10여분 정도 걷다 보면 과천의 명소이자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인 향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옆에 자리잡은 향교집 등 네 곳의 식당은 제각각의 특색 있는 맛으로 등산객과 직장인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이 가운데 향교집 점심 메뉴는 순두부찌개, 돌솥비빔밥, 김치·된장찌개로 아주 소박합니다. 별미로 빈대떡과 파전, 오리백숙, 닭백숙을 즐길 수도 있는 아늑한 곳입니다. 값비싸고 기름진 음식은 아니지만 문밖에 펼쳐진 자하청류계곡의 절경은 음식의 맛을 한껏 더합니다. 과천 8경 중 하나인 이곳은 관악산 자하동 중 절경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자하 신위, 추사 김정희 등 많은 묵객이 시를 짓고 암각문을 남긴 명소입니다. 봄에는 벚꽃을 감상할 수 있고, 여름에는 졸졸졸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에 더위를 식히며, 가을엔 만산홍엽의 정취에 취하고, 겨울에는 하얗게 쌓인 눈이 만든 선경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이런 곳에서 정겨운 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는 정갈한 음식과 후식으로 나오는 계절 과일은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죠. 맛있는 음식과 신선한 자연으로 찾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곳으로 과천시민과 직원들뿐만 아니라 등산객에게도 유명한 곳입니다.# 제철 조갯살 넣은 순두부… 해산물 듬뿍 파전 뚝배기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제철 조갯살과 오동통한 버섯이 감칠맛을 더하는 펄펄 끓는 순두부찌개에 계란 탁~! 담백한 맛이 정말 일품입니다. 또 뜨겁게 달궈진 돌솥에 기름진 밥과 예쁜 색의 각종 나물 넣어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뿌리고 계란 프라이 하나를 정성껏 얹으면 준비 끝. 각자 취향에 맞게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으면 맛이 그만입니다. 이와 함께 나오는 우렁된장찌개를 곁들여 먹으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여기에 오징어 등 각종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빈대떡이나 파전 하나 추가하면 정말 기가 막히죠.착한 가격에 신선한 반찬, 여기에 주인의 정성이 가득 담긴 관악산에서의 점심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 맛입니다. 점심시간 가벼운 산책이나 등산을 하다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이곳을 힐링의 장소로 추천합니다. 꼭 한번 와 보세요. 김윤석 주무관(과천시 기획감사담당관실 홍보팀)
  • 北 974·호위사령부 ‘밀착 경호’… 12명 金 벤츠 에워싸고 뛰기도

    北 974·호위사령부 ‘밀착 경호’… 12명 金 벤츠 에워싸고 뛰기도

    남측 지역 靑경호원과 협력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철통 경호가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의 동선과 의전을 책임진 김창선 서기실장(국무위원회 부장)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김 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 30분쯤 판문점 북측 지역 판문각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정장 상의에 경호요원 표식을 붙인 북측 경호인력 10여명은 삼각 대형으로 앞장서 인접 경호에 나섰다. 김 위원장의 경호는 북한 최정예 경호부대인 974부대와 호위사령부(963부대) 소속 인원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계단을 내려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사이 군사분계선(MDL)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동안 중립국감독위 회의실(T1)과 T2 샛길로 MDL을 넘었다.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의 북측 경호원은 흰색 와이셔츠에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를 매고 검은색 양복을 입었다. 이들 중 일부는 김 제1부부장의 지난 2월 방남 당시에도 경호를 맡았던 인원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의 경호는 북측 경호 요원과 함께 청와대 경호처 요원이 자리를 지켰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전통의장대를 사열하며 판문점 자유의집 외곽 길로 130여m를 걸어오는 동안 인접 경호를 하지 않았다. 남북 의전을 담당한 조한기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김창선 실장, 김 제1부부장이 먼발치서 함께 걸으며 지켜봤다. 전통 의복과 악기를 갖춘 전통의장대는 남북 정상에 앞장서 민족 전통 가락을 활용한 ‘여명’ 환영곡을 연주했다. 판문점 광장에서 이뤄진 전통의장대 및 국군의장대 사열에서는 ‘대취타’라 불리는 ‘무령지곡’이 울려 퍼졌다. 태평소와 나발·나각(소라) 등의 관악기, 북·장구·징 등의 타악기가 어우러진 이 곡은 조선시대 임금이나 군대의 공식 행차에 활용되던 행진용 음악으로 장엄하고 기운찬 분위기가 특징이다. 의장대 사열 본행사 때는 ‘아리랑’과 ‘신아리랑 행진곡’이 각각 연주됐다. 평화의집에서 사전 대기 중이던 북측 경호 요원은 김 위원장이 사용할 방명록대와 볼펜 등의 물건을 소독하고 탐지 장비로 폭발물이나 도청장치가 있는지 확인하는 등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김 위원장이 오전 회담을 마치고 오전 11시 57분쯤 평화의집을 나오자 정문 앞에는 국무위원장 로고가 박힌 벤츠 방탄 리무진이 대기했다. 밀착 수행에 나선 북측 경호원 12명은 차량을 에워쌌다. 차량이 북측 지역 통일각으로 이동해 가는 동안 이들은 판문점 T3 건물 바깥쪽 잔디밭 길로 뛰어서 이동했다. 판문점공동취재단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손성진 칼럼] 재벌 환부, 썩기 전에 도려내야

    [손성진 칼럼] 재벌 환부, 썩기 전에 도려내야

    창업 세대 이야기지만 재벌이라고 다 같은 재벌은 아니다. SK그룹 고 최종현 회장은 집이 없이 그렇게 크지 않은 빌라를 빌려 살았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너무 호화롭게 살면 버릇이 되어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손목시계도 1만~2만원짜리 싸구려를 좋아했고 외국 출장을 가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러면서 부하 직원의 인격을 존중하며 인재 양성에 큰 관심을 가졌고 경영은 손길승 회장 등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검소한 면에서는 최 회장과 비슷해서 헌 바지를 버리지 않고 기워 입고 다닐 정도였다.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갑질이 드러나고 있는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가계도 말로는 그랬다. 10여년 전 인터뷰에서 조 회장은 자녀 교육 방식을 묻는 질문에 “절약과 겸손을 특히 강조해서 가르쳤다”면서 “일부 부모는 돈을 여유롭게 주기도 한 모양인데 절대 그러지 않았다. 용돈을 조금만 줬고, 늘 절약하고 남들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교육했다”고 답했다. 이런 교육을 실제로 했는지, 허위였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아버지는 그랬다 하더라도 요즘 드러난 사실을 보면 어머니 이명희씨는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아랫사람에 대한 패악질이 분노조절장애 같은 병이 아니라면 오랜 습관이었을 것이고 자녀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됐을 것이다. 갖은 고생을 하며 기업을 일으켜 세운 창업 세대는 사람의 소중함, 금전의 고귀한 가치도 체득해서 안다. 최종현이나 정주영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 달라진다. 특히 가정교육이 부족한 재벌 가문 2·3·4세대의 안하무인격 행동은 천민 사고가 몸에 밴 탓이다. 이들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알 턱이 없으며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 신분의 논리로 해석될 뿐이다. 조선시대 양반조차도 예절과 도덕을 알았기에 최소한의 행동 한계를 지켰다.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대한항공의 사례가 일깨워 준다. 몇%도 안 되는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마치 자신의 왕국으로 여기는 모습이 대한항공 일가의 행위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그 천한 왕국에서 이명희는 여왕으로, 조현아·조현민 자매는 공주로 행세하며 직원들을 종보다 못하게 대하고 부린 것이다. 독재 왕국이라면 벌써 혁명이라도 일어났겠지만 서 푼도 안 되는 월급에 얽매었던 직원들은 그러지도 못 했다. 이제야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너 경영, 가족 경영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장기적 안목으로 과감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최대 장점이다. 외국에서도 가족 경영의 예는 많다. 가족 경영을 연구한 김선화 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상장기업의 70%가, 미국은 92%가 가족기업이다. 월마트, BMW, 폭스바겐, 피아트 등의 글로벌 기업도 그렇다. 성공한 기업도 있지만 미국 자동차 재벌 포드 가문처럼 100년이 넘는 가족 경영이 실패로 끝난 기업도 있다. 대주주의 독단 경영, 즉 ‘오너 리스크’는 갑질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갑질 오너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 결국은 기업과 국가 경제에 해악이 될 뿐이다. 재벌 체제를 무조건 매도해서도 곤란하다. 그러나 내부거래 엄단 등의 공정거래 차원의 재벌개혁과 더불어 문제가 있는 재벌 경영인들은 경영에서 손을 떼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경영 감시 강화와 소액주주권 확대 등을 우선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두산그룹을 필두로 한 한국 재벌의 역사는 100년이 넘은 지 오래다. 재벌이 국가경제 발전에 미친 공은 이미 인정받았다. 이제는 왕국 같은 족벌 경영의 폐단을 외부의 힘으로 고쳐 줄 때가 됐다.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는 늦은 듯하다. 진정한 사과 회견 한 번 없는 대한항공 일가의 속내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위기만 넘기자는 형식적 반성에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썩은 나무에서 쭉쭉 뻗어 나갈 새싹을 바랄 수는 없다. 완전히 썩어 넘어지기 전에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sonsj@seoul.co.kr
  • 이성계가 내린 조선 첫 교서 ‘개국공신교서’ 국보 승격

    이성계가 내린 조선 첫 교서 ‘개국공신교서’ 국보 승격

    조선 최초로 발급된 공신교서이자 현재 유일하게 실물이 존재하는 조선 개국공신교서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문화재청은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294호 ‘이제 개국공신교서’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교서는 1392년(태조 1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 일등 공신 이제(?∼1398)에게 내린 문서다. 이제는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셋째 딸인 경순군주와 혼인한 뒤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을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교서는 국왕이 당사자에게 직접 내린 문서로, 공신도감(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이 국왕의 명에 의해 신하들에게 발급한 녹권(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에 비해 위상이 높다. 개국공신녹권 중에는 ‘이화 개국공신녹권’이 국보 제232호로, 개국원종공신녹권 7건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은 이와 더불어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비롯해 ‘이숙기 좌리공신교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지장시왕도’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조양호 회장도 ‘갑질 폭력’ 논란…“그릇 집어던져”

    조양호 회장도 ‘갑질 폭력’ 논란…“그릇 집어던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직원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그릇을 집어던졌다는 폭로가 나왔다.조양호 회장이 2011년 제주 칼호텔 19층 중식당을 찾았을 때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JTBC가 24일 보도했다. 당시 제주 칼호텔에서 근무했다는 전직 직원 A씨는 JTBC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조양호 회장 부부가 예고 없이 호텔을 찾아와 별실이 모두 차 있는 바람에 일반실석으로 안내하면서 고성이 시작됐다. A씨는 “대한항공 제주지역 본부장 부르고, 온갖 임직원들이 불려와 깨지고, 총지배인까지 깨지고 식음료 팀장 모두 깨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특히 A씨는 고성을 지르던 조양호 회장이 테이블 위에 있던 작은 유리 그릇을 식당 간부를 향해 집어던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맞아도 어떻게 해요. 가만히 있어야지”라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이 던진 그릇에 직원의 팔이 맞았는데 피하거나 아픈 티를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부인 이명희씨가 직원들을 폭행했다는 주장도 또 나왔다. A씨는 2011년 제주 제동목장 영빈관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유치 축하연 자리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미리 도착한 이명희씨가 장식과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면서 지배인의 다리를 차기도 했다고 전했다. A씨는 “조양호 회장 일가가 조선시대 노비처럼 직원들을 대한다”면서 “고위 임원들이 이러한 행태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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