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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려 범렴 다녀감”… 울진 성류굴서 1200년 전 글씨 발견

    “승려 범렴 다녀감”… 울진 성류굴서 1200년 전 글씨 발견

    신라시대 화랑·승려가 작성한 것 추정천연기념물 제155호 경북 울진 성류굴에서 1200여년 전인 신라 원성왕 14년(798)에 화랑과 승려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21일 울진군이 성류굴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동굴을 조사하던 중 입구에서 2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각석(刻石) 명문 30여개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동굴 내부에서 명문이 발견된 것은 국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 발견 지역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장소로, 명문 중 하나는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이었다. 정원 14년 8월 25일에 승려 범렴이 다녀갔다는 의미로, 정원(貞元)은 중국 당나라 황제 덕종(재위 779∼805)이 785년부터 사용한 연호다. 이 명문 근처에서는 ‘임랑’(林郞), ‘우’(牛) 등 화랑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자도 발견됐다. 명문은 석주, 석순, 암벽에 오목새김돼 있고, 글자 크기는 다양했다. 대부분 자형이 똑바른 해서체로 쓰였지만, 약간 흘려 쓴 행서체도 일부 발견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류굴이 신라시대 화랑이나 승려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였으며, 수련 장소로도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면서 “동물 이름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화랑들이 동굴에서 의례를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류굴에서는 이외에도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 같은 간지, 통일신라시대 관직 명칭인 ‘병부사’(兵府史), 조선시대 율진현령을 지낸 인물인 ‘이복연’(李復淵)이라는 글자도 확인됐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천연기념물인 울진 성류굴에 낙서한 이들의 정체...1200년전 화랑

    천연기념물인 울진 성류굴에 낙서한 이들의 정체...1200년전 화랑

    520년대 간지에 공랑·임랑도 등장…명문 30여개 발견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 안에서 낙서가 발견됐다. 1200년 전인 신라 원성왕 14년(798)에 화랑과 승려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명문 30여개가 확인됐다. 성류굴은 지난 2015년 입구 위 바위에 신라시대 금석문 수십 자가 새겨졌다는 사실이 소개됐으나, 동굴 내부에서 명문이 발견되기는 국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울진군 관계자들이 지난 3월 21일 성류굴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동굴을 조사하던 도중 입구에서 230여m 떨어진 지점 주변에서 각석(刻石) 명문 30여 개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불영사 계곡 부근에 있는 성류굴은 전체 길이가 약 800m인 석회암 동굴로, 글씨는 일반인 접근이 제한된 지역의 석주·석순·암벽에 음각 형태로 새겼다. 글자 크기는 다양하며, 대부분 정자체인 해서(楷書)이고 일부가 약간 흘려서 쓴 행서(行書)로 조사됐다. 명문 중 하나는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으로, 정원 14년 8월 25일에 승려 범렴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원(貞元)은 중국 당나라 황제 덕종(재위 779∼805)이 785년부터 사용한 연호다. 이 명문 근처에는 화랑 이름으로 생각되는 ‘공랑’(共郞), ‘임랑’(林郞)과 소를 뜻하는 ‘우’(牛)라는 글자도 존재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류굴이 신라시대 화랑이나 승려들이 찾아오는 명승지였으며, 수련 장소로도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며 “동물 이름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화랑들이 동굴에서 의례를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 같은 간지, 통일신라시대 관직 명칭인 ‘병부사’(兵府史), 조선시대 율진현령을 지낸 인물인 ‘이복연’(李復淵)이라는 글자도 확인됐다. 이 가운데 ‘신유년’과 ‘경진년’은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에 있는 글자인 ‘을사년’(乙巳年, 525년 추정)과 비슷한 시기에 새긴 것으로 보이며, 524년에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 해서와 동일한 서체도 있다. 또 모래시계 모양으로 표현한 다섯 오(五)자도 3개가 발견됐고,장천(長川)이라는 글자도 나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고려 후기 문인인 이곡이 1349년에 쓴 동유기(東遊記)에 처음 등장하는 ‘장천’이라는 말은 그동안 ‘긴 하천’으로 해석했는데, 성류굴에서 ‘장천’ 글자가 확인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류굴 명문은 신라시대 이후 정치·사회사와 화랑 제도 연구에 도움이 되는 사료로 보인다”며 “각석 명문을 실측하고 기록화 작업을 벌이는 한편, 연차별 정밀 학술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씨줄날줄] 화폐 인물/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화폐 인물/이종락 논설위원

    화폐는 경제활동의 교환수단이지만,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상을 보여 준다. 화폐는 그 나라의 얼굴로서 각자의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넣어 상징성을 높인다. 세계 지폐 80% 이상의 주인공은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거나 국가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이들로 발탁된다. 화폐 도안에 인물이 많은 이유는 개개인의 인상과 개성이 뚜렷해 위변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구한말 한반도 경제 침탈의 선봉에 섰던 인물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1만엔권 새 지폐에 그려 넣어 2024년부터 발행하겠다고 그제 발표했다. 시부사와는 제1국립은행과 도쿄가스 등 500여개 회사 경영에 관여한 사업가로 일본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시부사와는 우리나라에서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아 한반도에 대한 경제 침탈에 앞장섰다. 특히 일제의 이권 침탈을 위해 1902년부터 1904년까지 한반도에서 지폐 발행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초상을 1원, 5원, 10원권 지폐에 그려 넣게 했다. 앞서 대한제국은 1901년 외국 돈의 유통 금지와 금본위 제도의 채택을 내용으로 하는 자주적 화폐 조례를 발표했지만, 일제에 의해 무산됐다. 우리나라는 1000원권에 퇴계 이황, 5000원권에 율곡 이이, 1만원권에 세종대왕, 5만원권에 신사임당의 초상을 새겨 넣었다. 모두 조선시대 인물이다. 미국, 중국, 스코틀랜드, 베트남,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독립과 건국 위업을 세운 현대 지도자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한국은행은 2007년 11월 국민 여론 수렴을 거쳐 2009년에 발행될 10만원권에 백범 김구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수 우익 단체들이 ‘10만원권은 이승만, 5만원권은 박정희’라는 주장을 펼치는 등 정치 이슈화가 되자 이듬해 10만원권 발행 자체를 취소해 김구 선생 초상을 넣기로 한 계획을 백지화했다. 당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뒷면에 들어가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표기돼 있지 않아 10만원권 발행 작업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경제사정이 어려운 데다 사실상 5만원권을 발행하면 거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데, 10만원권까지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도안 인물로 김구를 올리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해 10만원권 발행이 무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본은 식민 피해를 당했던 한국민들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탈자를 화폐 인물로 보란 듯이 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론이 좌우로 갈려 독립과 건국의 지도자들을 화폐에 쓰지 못하고 있으니 순국선열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 jrlee@seoul.co.kr
  • 경상감영 도심 속 풍속재연행사, 400년전 대구를 보다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정� ㅀ姸─ㅁ본簾ㅁ냑育� 중심지인 대구 경상감영에서 전통문화의식 재연 및 다채로운 체험을 통해 옛 경상감영의 풍속을 느낄 수 있는 풍속재연행사가 이번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대구 경상감영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본 행사는 오후 2시 타종군 행차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종 또는 북을 이용하여 시간을 알려주던 경점시보의식(타종행사), 수문장 교대의식, 취타대 공연, 전통무예시범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오후 4시까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다. 또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행사로 약식 경정시보(타종행사), 전통복식 착용 및 기념사진 촬영, 민속놀이 및 형벌도구 체험장 등 각종 체험행사가 경상감영공원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에는 시민의 관심을 유도하고 청년들의 참여를 위해 경상감영공원을 벗어나 전통병영의식을 하는 군사들이 대구 도심 속의 관광지이자 젊은이들의 거리인 동성로로 행차하여 옛 풍속에 대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6일 오후 2시부터 경상감영공원 선화당에서 지금의 성년식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첫번째 의식행사인 성년례(남자의 관례와 여자의 계례)가 약식으로 개최된다. 특히 올해는 2020 대구?경북 관광의 해를 맞이하여 전통문화를 알리는 대구 관광 상설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1천만 관광객유치 목표에 발돋움하고, 관광 트렌드에 맞게 전 연령대의 다채로운 전통체험을 늘려 진행한다. 대구시관광협회 홈페이지(www.daegutravel.or.kr)를 통해 경상감영 풍속재연행사의 안내와 타종체험(경점시보의식) 신청자를 접수하고 있으며, 타종체험은 현장접수도 가능하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경상도를 관할하던 감영으로 지금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으며, 선조 34년(1601년) 대구로 이전되어 1910년까지 영남권 중심 감영기능을 담당하였고, 현재 경상감영공원 일대(중구 포정동·1만4678㎡)는 2017. 2.26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538호로 지정 된 바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日 학원 강사가 20년간 추적한 진해 벚꽃 탄생의 재구성

    日 학원 강사가 20년간 추적한 진해 벚꽃 탄생의 재구성

    진해의 벚꽃 한일역사여행/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이애옥 옮김/논형/312쪽/1만 8000원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다. ‘벚꽃’ 하면 자연스레 진해 군항제를 떠올릴 법하다. 도심 곳곳은 벚꽃으로 가득하고, 아치를 그린 벚꽃 터널을 지나는 이들의 웃음도 벚꽃만큼이나 화사하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벚꽃은 무려 36만그루에 이른다. 군항제에 맞춰 진해를 방문하는 이는 300만명이 넘는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이 많은 벚꽃,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심은 것일까. ●진해 군항제 방문한 日 학원 강사의 집요한 추적 일본의 한 대입학원 강사인 다케쿠니 도모야스는 1992년 진해를 방문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군항제 안내 소책자에서 ‘벚나무 유래’를 읽었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해 군항을 건설하고, 도시 미화를 위해 벚나무를 심었다. 해방 직후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생각한 시민이 이를 일제 잔재로 여겨 많이 베어냈다. 1976년 4월 진해를 세계 제일의 벚꽃 도시로 육성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이후 민·관·군이 일체가 돼 벚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내용이다.그러나 이 설명은 사실일까. 당일치기 여행에서 생긴 궁금증은 그를 7년간의 치열한 연구로 이끈다. 그는 그동안 연구를 묶은 책을 일본에서 낸다. 신간 ‘진해의 벚꽃’은 20년 만에 나온 한국어판이다. 저자는 진해 역사를 연구하고자 한국 책을 구해 읽고, 한국 향토연구가의 안내를 받아 곳곳을 다닌다. 일본교과서인 ‘상설일본사’에서 1510년 일어난 ‘삼포왜란’을 찾고, 일본의 침략 현장이 남긴 진해구 성내동 웅천현성을 찾아본다. 이어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과 이순신의 전투까지 흔적을 쫓아간다. ●日 ‘해군의 휘장’ 상징으로 심은 벚꽃 진해는 러일전쟁 때 다시 주목 받는다. 러시아 남하를 우려한 일본이 1904년 2월 진해만을 점령하고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진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도 이즈음이라는 사실도 찾아낸다. 조선시대에는 ‘웅천현’이었지만 1912년 조선총독부 행정 개편에 따라 ‘마산부 진해면’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일본은 요코스카, 구레와 같은 군항 형태로 진해의 도시화를 추진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1911년 자료에서 일본이 ‘해군의 휘장’을 상징하고자 진해에 벚꽃을 심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벚꽃이 왜 일본을 상징하게 됐는지도 함께 밝힌다. 세계 2차대전 말기 일본이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미화하고자 ‘꽃처럼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붙이면서다. 이런 이유로 해방 이후 진해의 벚꽃은 거의 다 잘렸지만, 1960년대 당시 진해시가 ‘우리나라 자생종인 제주산 왕벚나무를 다시 한 번 심어 진해를 벚꽃의 명소로 만들자’는 계획을 발표하며 다시 진해에 벚꽃이 심어진다. 저자는 편개수 씨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1966년 11월 1만그루를 보내는 등 모두 5만 9300그루의 묘목이 심어진 사실을 발견한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진행됐다는 내용에 관한 반박이다. ●“제주산 왕벚나무, 제주 자생 아냐” 주장 진해를 가득 채운 ‘제주산 왕벚나무’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일본 학명으로 ‘소메이요시노’로 불리는 이 나무 원산지가 제주라는 주장을 한 이는 일본 식물학자인 고이즈미 겐이치다. 한국 임업연구원이 당시 이 내용을 단지 일본 학자가 주장한다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통용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열매를 잘 맺지 않는 품종인 점, 그리고 일본 ‘에도히간’과 ‘오시마자쿠라’의 교배종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후 추가 연구해 제주 토종이 아닌 ‘야마자쿠라’와 ‘미야마자쿠라’의 교배종임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진해 군항제의 벚꽃에 관한 진실은 이렇게 모두 뒤틀린다. 저자는 당일치기 여행에서 호기심을 해결하려 직접 발로 뛰고, 사람들을 만나고, 상당한 자료를 찾아 우리도 잘 몰랐던 사실을 추론해낸다. 예컨대 과거 진해 중심부인 중원로터리에는 둘레가 9m에 이르는 거대한 팽나무가 있었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수호신처럼 여겼다. 저자는 1911년 일본 임시건축부가 남긴 문서를 토대로 “임시건축부가 팽나무를 ‘정신적인 중심´(토포스·그리스어로 ‘장소’라는 뜻)으로 파악한 것 같다. 도시 건설은 조선 토지 고유의 토포스를 계승하고 일본적인 이름을 붙여가며 군항도시 진해를 만들었다”고 도시계획을 설명한다. 저자의 이런 역사 연구는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20년 전 이처럼 철저한 고증으로 진해의 역사를 재구성했지만, 20년 후의 우리는 별반 진척이 없는 듯해 아쉬울 따름이다. 그가 20년 전에 찾은 내용을 우리는 과연 반박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안양천변 1.5km 구간에서 충훈벚꽃축제’ 오는 5일 개막…SNS로 생방송

    안양천변 1.5km 구간에서 충훈벚꽃축제’ 오는 5일 개막…SNS로 생방송

    4월 초 남녘에서 시작한 벚꽃의 향연은 북으로 이어지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순간 절정을 이룬다. 경기도 안양시는 오는 5일부터 사흘 동안 석수동 안양천변에서 충훈벚꽃축제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던 충훈부가 있던 지역이라 이 같은 명칭이 붙었다. 벚꽃길이 예뻐서 2003년 동네 축제로 시작한 충훈벚꽃축제는 올해 13번째를 맞이한다. 이번 봄축제는 석수2동 꽃메산과 와룡산을 휘감아 도는 안양천변 1.5km 구간을 따라 핀 벚꽃 아래에서 펼쳐진다. 만개할 준비를 마친 수많은 벚나무 꽃봉오리가 주말 축제를 앞두고 쌀쌀한 날씨에 잔뜩 움츠려 있다. 시는 날씨가 좋으면 이번 주말 벚꽃이 만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다음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벚꽃이 핀 산책로 곳곳에서는 시민노래자랑, 걷기대회, 벼룩시장 등 다채로운 문화체험행사가 개최된다. 안양꽃길을 그리는 사생대회도 열린다. 시민 버스킹과 거리공연이 열려 봄의 흥취를 돋울 예정이다. 야간에는 조명을 설치해 밤 벚꽃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축제 마지막 날 축하공연에 이어 펼쳐지는 불꽃놀이는 화사한 밤 벚꽃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봄의 절정을 선사할 예정이다. 시는 축하공연 등 이번 축제를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라이브 방송한다.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해당 사이트에 접속, 안양을 검색해 생생한 현장화면을 즐길 수 있다. 시에서 주최하고 안양문화예술회관이 주관하는 안양충훈벚꽃축제는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하는 4월 가볼 만한 경기도 여행지로 선정됐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주민센터·독서당·북카페 한곳에… 성동 ‘옥수동 공공복합청사’ 착공

    주민센터·독서당·북카페 한곳에… 성동 ‘옥수동 공공복합청사’ 착공

    서울 성동구가 지난달 28일 옛 옥수동주민센터 터에서 ‘옥수동 공공복합청사’ 착공식을 가졌다고 2일 밝혔다. 착공식엔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비롯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옥수동 공공복합청사는 지하 2층·지상 5층, 연면적 2683㎡ 규모로 내년 6월 준공 예정이다. 5층엔 독서당, 북카페, 주민사랑방 같은 주민 문화 휴식 공간이, 4층엔 자치회관과 동대본부, 3층엔 동주민센터, 1~2층엔 주차장이 들어선다. 지하 1~2층엔 근린생활시설, 방재실, 전기실 등이 조성된다. 구 관계자는 “옥수동은 조선시대 인재를 길러내는 ‘동호독서당’이 있던 곳”이라며 “이런 역사적 의미를 살려 독서당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청사 건립은 2015년 1월 추진됐다. 그해 3월 서울시 투자 심사를 통과했고, 7월 캠코와 공유 개발 및 관리 위탁 계약을 맺었다. 2016년 3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세 차례 주민설명회를 통해 주민 의견도 수렴했다. 정 구청장은 “청사가 완공되면 한 건물에서 행정·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돼 주민 삶의 질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조선시대 왕의 연회장소 경회루… 10월까지 개방

    조선시대 왕의 연회장소 경회루… 10월까지 개방

    1일 서울 경복궁 경회루에 오른 관람객들이 ‘낙양각’(바깥 풍경을 액자 속 그림처럼 보이도록 만든 장식물) 너머 풍경을 둘러보고 있다. 조선시대 연회장인 경회루와 고종이 서재 겸 사신 접견소로 사용한 집옥재는 오는 10월 31일까지 7개월간 개방된다. 경회루를 관람하려면 경복궁 누리집(www.royalpalace.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연합뉴스
  • 장관 후보님들, 장성 청렴교육 받고 ‘청백리의 길’ 걸어요

    장관 후보님들, 장성 청렴교육 받고 ‘청백리의 길’ 걸어요

    올해만 대구·부산 등 20여곳서 예약완료 총 1270개 기관·단체 7만 8000여명 수료 청백리·문화재·장성호 수변길 연계 추진 프로그램 성공에 주민 직접 소득 37억원전남 장성군이 운영하는 ‘청렴문화 체험교육’이 한 해 1만명 이상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몰이하고 있다. 중앙부처와 산하 기관, 자치단체, 교육기관, 공사·단체 등 참여 기관도 다양하다. 2011년 9월부터 1일 현재 1270개 기관·단체에서 7만 8000여명이 다녀갔다. 9년째인 청렴 교육은 이미 우수 교육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이날 현재 지방인재개발원, 대구시, 부산시 중구, 기술보증기금 등 기관·단체 20여곳에서 1041명이 예약했다. 올해 이미 10개 기관 903명이 교육을 받았다. 장성 출신 청백리를 유서 깊은 문화재와 한데 엮어 활용한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 관광지 홍보와 지역 경제 활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군은 최근 개장한 장성호 수변길과 장성황룡강 노란꽃축제 등 신규 코스와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 배우고, 감흥을 느껴 다시 찾아오는 최고 교육 장소로 성장해 나간다는 포부다.옐로시티 장성은 조선시대 대표 청백리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 선생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청렴한 조상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군이 청렴을 특성화한 이유도 이들 선비의 생애를 재조명해 후손들의 올바른 가치관 확립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매년 새해가 되면 군 간부 공무원들은 황룡면에 있는 박수량 선생 묘와 그의 청렴한 생을 기린 백비를 찾는다. 이 앞에서 청렴을 다짐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박수량 선생은 1546년(명종 원년) 청백리에 올랐던 조선시대 문신이다. 39년간 관리생활을 하며 호조판서까지 올랐지만, 임종할 때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 나라에서 대신 치러줬다. 명종은 박수량 선생의 행적을 글로 찬양하는 것도 누가 될까 염려해 아무런 글도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를 세우게 했다. 송흠 선생은 청백리 포상을 다섯 번 받은 중종 시대 인물이다. 51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처자와 하인이 굶주림을 면할 정도로만 생활했다고 한다. 당시 지방관이 부임지로 갈 때 전임 고을에서 가장 좋은 말 일곱 마리를 받은 게 관례였지만 자신과 부인, 어머니가 타고 가는 말 세 마리로 간소하게 행차해 백성들은 ‘삼마태수’라고 칭송했다.장성의 청렴 교육은 이러한 박수량과 송흠 선생 유적지, 전국 최대 규모의 축령산 편백림 등 유무형 자원을 엮어 청렴을 체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두 청백리 생애를 시대적 흐름에 맞춰 해석한 특강과 관련 유적지를 돌아보는 체험으로 구성됐다. 청렴 정신의 상징인 박수량의 백비, 송흠의 관수정(전남도 문화재 자료 100호), 호남 유일의 사액서원인 필암서원 등 많은 문화 자원과 편백나무 인공조림지인 축령산을 한데 묶었다. 이같이 교육 내용을 다양하게 편성한 게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장성의 청렴 교육은 꾸준히 변화 발전해왔다. 초반에는 청백리 관련 유적지와 축령산을 묶은 교육을 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조선시대 청백리 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는 ‘신청백리 체험’, ‘사가독서 체험’, 축령산 편백나무 숲에서 진행되는 ‘편백 힐링 체험’ 등 여러 과정이 만들어졌다. ‘청렴’을 테마로 풍부한 정보와 시각 자료를 한데 모은 ‘청백리 전시실’도 발길을 잡는다. 박수량 선생 묘 입구에 교육 참여기관 이름이 적힌 마크를 부착하는 ‘백비 전시실’을 만들어 교육생에게 자긍심을 주고 있다. 조지연 군 평생교육센터 소장은 “장성은 박수량 선생의 백비와 송흠 선생을 기리는 정자 관수정을 비롯해 호남 유일의 사액서원인 필암서원 등 청렴과 관련한 역사 자원이 풍부하다”며 “기관 요구에 맞게 내용과 일정을 조정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운영해 많은 단체가 꾸준히 오고 있다”고 했다.최근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걷고 싶은 길로 선정한 ‘장성호 수변길’과 100만여명이 다녀간 ‘장성황룡강 노란꽃잔치’를 안내하는 등 신구 관광자원을 연계 활용해 청렴 교육과 힐링 관광이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참여 기관·단체의 요청이 있을 경우 천연염색이나 농촌 체험, 쿠킹클래스 등 지역 내 농업법인이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해 교육을 보다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탄탄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덕분에 한번 참여한 기관은 다시 장성을 찾는다. 청렴 교육의 성공은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된다. 교육이 당일, 1박 2일, 2박 3일 등 3가지 일정으로 짜여 있어 음식점과 숙박시설, 지역특산품 판매 등으로 상가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군은 주민들의 직접 소득만 현재까지 37억여원에 이른 것으로 파악한다. 군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장성아카데미 책자와 청렴 교육 교재도 현장에서 판매해 새로운 소득을 올리고 있다. 책자와 교재 판매로 얻은 수익은 ‘장성장학회’ 기금으로 내 교육에 재투자한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보물 지정 조사 때 누락된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물 됐다

    보물 지정 조사 때 누락된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물 됐다

    보물 지정 조사에서 누락된 ‘보령 성주사지 동(東) 삼층석탑’이 드디어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사적 제307호 ‘보령 성주사지’에 있는 충남유형문화재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이하 동 삼층석탑)을 보물 제2021호로 승격했다고 28일 밝혔다. 낭혜화상(신라 후기 승려 무염)이 847년에 지은 성주사 터에는 동 삼층석탑 외에도 이미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제19호), 중앙 삼층석탑(제20호), 서(西) 삼층석탑(제47호)과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탑비가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이듬해 서쪽과 중앙에 있는 석탑을 보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동쪽 석탑만 홀로 제외된 걸로 추정된다. 성주사지에는 금당을 기준으로 앞쪽에 오층석탑이 있고, 뒤쪽에 탑 세 개가 일렬로 늘어섰다. 이같은 건물 배치는 국내에 유사한 사례가 거의 없다. 학계에서는 금당 앞쪽에 오층석탑을 세워 ‘1탑 1금당’ 형식을 조성한 뒤 이후 석탑 3기를 다른 곳에서 옮겨와 뒤쪽에 추가로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동 삼층석탑은 조성 양식으로 보아 다른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 같은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4.1m 높이로 2층 기단 위에 3개의 층을 올렸으며 기단 상부에 돌로 만든 받침석이 있고 1층 탑신에는 문고리와 자물쇠를 표현한 문짝 모양을 새겼다. 다른 2기의 석탑에 뒤지지 않는 균형미와 우수한 조형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조선시대에 중창한 전남유형문화재 제50호 ‘천은사 극락보전’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지리산 남서쪽 구례 천은사(泉隱寺)는 828년 덕운선사가 창건해 감로사(甘露寺)라고 부르다 1679년 조유선사가 재건하면서 사찰 명칭이 현재와 같이 바뀌었다. 주불전인 극락보전은 섬세하고 화려한 우물천장과 내부 닫집 등 조각 기법이 우수한 편이다. 18세기 말 다포식 불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건물은 이미 보물로 지정된 해남 미황사 대웅전, 영광 불갑사 대웅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과 비슷한 특색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30일 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고려청자음각모란문장 2억… 피아노 3500만원

    ‘고려청자음각모란문장(2억원), 신라 3층석탑(1억원), 갑주 및 환두태도(삼국시대·1억원) 등….’ 28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유천호 강화군수의 재산 목록 가운데 일부다. 13억 4804만원을 신고한 유 군수의 재산 80%(10억 5000만원)가 도자기를 비롯한 예술품이었다. 그는 도자기 27점과 회화 2점, 석탑·석좌불·석검 등 모두 35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작품당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재산신고 대상자인 고위공직자 1873명의 이색 재산이 눈길을 끈다. 유 군수만큼은 아니지만 도자기 애호가가 의외로 많았다. 장재성 광주시의원은 조선시대 상감용문호로병(1400만원)과 청화운용문호(1400만원) 등 도자기 7점(7000만원)을 고지했다. 김이재 전북도의원도 도예가인 이광진 원광대 교수의 2017년작 ‘기’(1200만원)를 비롯해 도자기 3점, 회화·공예 7점 등 10점(8000만원)을 신고했다. 예술작품을 사랑하는 공직자도 종종 눈에 띄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김춘수의 추상화 ‘울트라-마린(80호)’(4000만원)과 김순향의 조각작품 ‘해돋이’(3000만원), 이철주의 동양화 ‘호산언덕’(3000만원) 등 1억원어치를 신고했다. ‘동양화 마니아’로 알려진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작품(2500만원)를 비롯해 동양화만 6점(6400만원)을 갖고 있었다. 고가의 클래식 악기를 재산으로 밝힌 공직자도 있었다. 김혜경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장은 일본 야마하 피아노를 3500만원에, 정상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도 배우자 소유의 세바스티안 클로츠 바이올린을 3500만원에 신고했다. 고흥 서울고검 차장검사는 비올라(2500만원)와 활(1500만원)을 합쳐 4000만원에 고지했다.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도 프랑스산 비올라(3000만원)를 갖고 있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의주로 또는 통일로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의주로 또는 통일로

    조선시대에 압록강 남쪽 의주에서 동남쪽 한양으로 이어지는 서북방의 길을 의주로라 불렀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그 길은 통일로라 불리게 되었지만, 필자는 여전히 이 길을 의주로라 부르고는 한다. 남북 통일은 먼 미래의 일일 것이므로 통일로라는 명칭은 공허하다. 또 통일이 되더라도 통일로라 부르는 것은 좀 뜬금없게 느껴질 터이다. 의주로는 조선시대 이래로 명·청과 오가는 주요한 길이었다. 남북으로 단절된 뒤로는 그 경제적 중요성이 많이 줄었다. 반면 남한의 수도인 서울이 북한의 국경선과 너무 가깝다 보니 의주로의 군사적·정치적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경기 고양시와 서울시 은평구의 경계인 창릉천 남쪽부터 서대문역 교차로에 이르는 옛 의주로 구간에는 여러 개의 군사시설이 있다. 그 사이사이의 빈틈에 식민지 시대 이래 조성된 단독주택·빌라·고층아파트단지가 있다. 그리고 이들 공간의 외곽에는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존재했거나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이 사는 공간인 주택과 사람의 삶을 지키는 군사시설, 그리고 삶이 끝난 뒤 사후에 이용하는 화장터·공동묘지가 모두 존재하는 공간이 이 의주로이다. 사람이 사는 구역들 사이에 군사시설과 죽음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시설과 죽음의 공간 틈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 내부에서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들 시설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군사 시설은 각종 지도에서 안보를 이유로 지워져 있고, 서울시민들이 죽은 뒤에 이용하는 공간들은 경기 고양·남양주·파주시에 자리한 탓이다. 서울시설공단에서 관리하는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대서울 외곽 경기도에 존재하고,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자리한 이말산에서 전근대의 무덤과 군사시설, 은평신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서울시 외곽과 서울시 바깥의 대서울 곳곳으로 이들 시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혐오시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청결’하고, 가난한 자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계급적으로 ‘균질’해진 서울‘특별’시가 만들어졌다. 서울‘특별’시를 ‘청결’하고 ‘균질’한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은 계속된다. 은평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어지는 옛 의주로 양옆에서는 오늘도 현저동·옥바라지골목과 같은 공간이 철거돼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현저동 입구의 옛 재개발 추진 사무소에는 “돌팔매질 잘 해! 또 해 봐!”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재개발 추진파와 반대파 사이에 투석전이 있었던 흔적이다. 아직 ‘빈민촌’ 시기의 도시 공간이 남아 있고 몇몇 주민들이 남아 있었다. 홍은동 문짝거리 근처의 부동산 정면에는 고층아파트 단지 분양 광고와 개량한옥촌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혐오시설’과 가난한 자들의 주거를 모두 밀어낸 뒤 올린 고층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면서 개량한옥으로 상상되는, ‘만들어진 조선의 전통’을 향유하는 중산층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이런 공간은 서울시민에게 건전하지 못한 결과를 낳으리라고 필자는 예측하고 있다.
  • 열한달 걸려 매일 오름 오르고 싶게 만드는 ‘김종철 오름나그네’

    열한달 걸려 매일 오름 오르고 싶게 만드는 ‘김종철 오름나그네’

    책 기사를 쓸 때는 다 읽어보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절반 이상은 읽고 난 뒤 쓰자고 되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지 못한다. 이 책의 깊이와 넓이는 속독도 정독도 거부한다. 이 책을 배낭에 넣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주의 오름을 올라 11개월 동안 읽고 또 읽어야 할테니 말이다. 기자는 아예 작정하고 보도자료를 잘 갈무리하기로 했다. 1995년 김종철 선생이 제민일보 183회 연재를 마친 뒤 늑골암 말기 판정을 받고 연명 치료를 거부한 채 원고를 다듬어 출간하고, 정확히 스무날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박성식 다빈치 대표가 몇년 전부터 제주를 드나들더니 김순이 여사에게 허락을 받아 24년 만에 재출간했다. 1464쪽에 컬러 도판 250컷, 흑백 도판 370컷을 담았다. 세 권을 세울 수 있게 거치대까지 함께 보내줬다. 1000 세트 한정판이다. 오름을 사랑하는 이라면 빨리 펀딩에 참여하겠다고 박 대표에게 전화 넣을 일이다. 운명처럼 지도에도 올라있지 않고 진입로도 없던 시절 330여 오름을 찾아 다녔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와 조선총독부, 미군이 제작한 지도를 살폈고, 지명 관련 문헌, 마을에 관한 보고서, 신화나 전설, 여러 성씨의 족보까지 뒤졌다. 비문에 새겨진 글을 기록하고 식물을 채취하고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한자 이름 뒤에 가려진 우리말 이름을 살려냈다. 유홍준 선생은 이 책을 “제주의 신이 그에게 내린 숙명적 과제”라고 표현했고 역사공부 하는 농민 김종민은 “‘오름나그네’를 표절하지 않으면 결코 오름을 묘사할 수 없다”고 갈파했다. 지금 우리가 찾고, 배우고, 새로이 발견하는 오름은 모두 그의 발자취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제주신화’를 집필한 김순이 여사는 이 책의 재출간에 부친 글을 통해 ‘그가 저 외진 들녘 멀찍이 있던 오름의 손을 잡아 우리 앞에 이끌어 온 까닭은 오름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이토록 소중하니 진정으로 사랑해 주고 아껴 달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오름나그네’의 행간에는 간곡한 그의 육성이 올올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그런 오름사랑에 부디 동참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자는 마지막 생의 순간, 오자가 눈에 띄면 몹시도 힘들어했고 김 여사가 바로잡을테니 걱정 말라고 했는데 24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저자가 정밀한 제주 지도를 생일선물로 받고 뛸듯이 좋아했다는 일화, 선생이 사랑했고 영원히 잠든 선작지왓 탑궤를 찾아 재출간 양장본을 보여주겠다는 대목에 이르면 오름을 사랑하는 누구라도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세 권 말미마다 김종철 선생에 대한 글들을 읽는 재미도 적지 않다. 24년 전 책의 사진은 서재철 작가 것이었는데 재출간본에는 연재되기 전부터 함께 오름을 올랐고 지금도 오르고 있는 고길홍 (76) 작가의 작품들이 실렸다. 박성식 대표의 뚝심이 없었다면 완전개정판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1권만 펼쳐도 박 대표의 뚝심이 대단함을 느낄 것이다. “옛날 얼굴도 보지 못한 저자도 상상하기 힘든 고생을 하며 원고를 완성했지만, 저도 필사적으로 이 책을 냈어요. 어제 완성된 책을 보며 ‘이런 게 출판이지’하는 소회를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마치 울트라(마라톤)를 마친 기분입니다.ㅎ” 잔자누룩한, 인후한, 소슬히, 너븐드르 같은 우리말, 제주의 입말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젊은날 한라산에 꽂혔던 기자는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오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은퇴하면 제주살이를 하며 가보지 않은 오름부터 몇 번 가본 오름까지 이 책 배낭에 넣고 올라볼 생각이다. 거슨세미오름과 절오름, 돔박이오름, 마복이 등등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오름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 설렌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의주로 또는 통일로

    의주로 또는 통일로

    조선시대에 압록강 남쪽 의주에서 동남쪽 한양으로 이어지는 서북방의 길을 의주로라 불렀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그 길은 통일로라 불리게 되었지만, 필자는 여전히 이 길을 의주로라 부르고는 한다.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일한다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일 것이므로 통일로라는 명칭은 공허하고,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 후에도 이 길을 통일로라 부르는 것은 좀 뜬금없게 느껴질 터여서이다.의주로는 조선시대 이래로 명?청나라와 오고 가는 주요한 길이었지만,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국가가 들어서서 교류를 단절한 뒤로는 그 경제적 중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반면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 북한과의 국경선에서 너무 가깝다보니, 조선시대나 식민지 시대에 비해 의주로의 군사적?정치적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졌다. 고양시와 서울시 은평구의 경계인 창릉천 남쪽부터 서대문역 교차로에 이르는 옛 의주로 구간에는 여러 개의 군사시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의 빈틈에 식민지 시대 이래 조성된 단독주택?빌라?고층아파트단지가 지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공간의 외곽에는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존재했거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인 주택과 사람의 삶을 지키는 군사시설, 그리고 사람의 삶이 끝난 뒤에 이용하게 되는 화장터?공동묘지가 모두 존재하는 공간이 이 의주로이다. 서울, 아니 한국의 어디가 그렇지 않겠는가만, 한국은 여전히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나라여서 곳곳에는 군사 시설이 존재한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화장터와 무덤도 당연히 존재한다. 사람이 사는 구역들 사이에 군사시설과 죽음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시설과 죽음의 공간 틈에 사람이 살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 내부에서 거주하고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들 시설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 시설은 각종 지도에서 안보를 이유로 지워져서 표시되고, 서울시의 시민들이 죽은 뒤에 이용하는 공간들은 경기도 고양시?남양주시?파주시에 자리한다. 서울시설공단에서 관리하는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대서울 외곽 경기도에 존재하고,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자리한 이말산에서 전근대의 무덤과 군사시설과 은평신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서울시 외곽과 서울시 바깥의 대서울 곳곳으로 이들 시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의 다른 지역과는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이른바 ‘혐오시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청결’하고, 가난한 자들을 외곽으로 밀어내어 계급적으로 ‘균질’해진 서울‘특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이와 같이 서울‘특별’시를 ‘청결’하고 ‘균질’한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은평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어지는 옛 의주로 양 옆에서는 오늘도 현저동?옥바라지골목과 같은 공간이 철거되어 고층 아파트단지가 지어지고 있다. 현저동 입구의 옛 재개발 추진 사무소에는 “돌 팔매질 잘해! 또 해봐!” 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재개발 추진파와 반대파 사이에 투석전까지 전개되었을 시기를 지나 이제 현저동은 본격적인 철거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곳에는 ‘빈민촌’ 시기의 도시 공간이 남아 있고 몇몇 주민들이 남아 있었다. 홍은동 문짝거리 근처의 부동산 정면에는 고층아파트단지 분양 광고와 함께 개량한옥촌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이른바 “혐오시설”과 가난한 자들의 주거를 모두 밀어낸 뒤 만들어진 고층아파트단지에 거주하면서 개량한옥으로 상상되는,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전통을 향유하는 중산층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청결’하고 ‘균질’한 환경이 사람에게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처럼, 군사시설과 화장터와 무덤과 서민의 공간을 모두 고층 아파트단지로 바꾸어버리는 것이 결국은 서울이라는 공간과 서울시민에게 건전하지 못한 결과를 낳으리라고 필자는 예측하고 있다.글 사진: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
  • 궁중회화 매·난·죽, 봄 단장한 박물관에서 피어나다

    궁중회화 매·난·죽, 봄 단장한 박물관에서 피어나다

    새봄을 맞아 전시실을 단장한 박물관들이 다채로운 전시들을 선보인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궁중서화실 새 단장을 마치고 26일부터 매화·난초·대나무를 그린 조선시대 궁중회화 12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머문 창덕궁 인정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한 ‘죽석도 병풍’과 ‘난석도 병풍’이다. ‘죽석도 병풍’은 고종의 아들 영친왕의 서법(書法) 교사를 지냈던 김규진이 그렸고, ‘난석도 병풍’은 흥선대원군에게 난 치는 법을 배운 김응원이 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조선 말기와 근대 화단을 잇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다.흥선대원군이 남긴 묵란화(墨蘭畵)도 눈길을 끈다. 흥선대원군은 왕실 인물로서는 드물게 묵란화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러 그의 호인 석파(石坡)와 난(蘭)을 결합한 ‘석파란’(石坡蘭)이라는 말로도 유명했다. 지방 출신의 화가로는 드물게 궁중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작품을 바친 화가 양기훈의 그림 ‘매화 대나무 그림 병풍’도 전시된다.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실 아시아관 인도·동남아시아실에서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소장품전을 27일 개막한다. 200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학술·전시 교류를 해 온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소장품 51점이 전시된다. 기존의 베트남 상설 전시를 베트남의 고대문화 및 청동·도자를 중심으로 확대 개편해 선보인다. 27일 오후 3시에는 전시 개막을 기념하는 ‘2019 새봄맞이 음악회’도 열린다. 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으뜸홀에서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연주와 국립중앙박물관 연주동아리팀의 우쿨렐레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정선 아리랑 뮤지컬 ‘아리아라리’ 흥행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세계인들에게 알려지며 인기를 얻는 강원 정선아리랑이 뮤지컬 ‘아리아라리’를 통해 또다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하게 될 ‘아리아라리’ 4회 공연 예매표가 모두 매진됐다고 21일 밝혔다. 아리아라리는 700석을 갖춘 국립국악원 공연장에서 22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을 시작으로 24일 오후 3시 공연까지 4회 진행된다. 다음달 2일부터는 정선 아리랑센터에서 매월 2, 7일 5일장에 맞춰 상설 공연한다. 아리아라리는 조선시대 경복궁 중수를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정선 떼꾼의 여정과 산골가족의 사랑 얘기를 정선아리랑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서건희 정선군 문화관광과장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국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며 “동계올림픽 문화유산인 아리아라리를 통해 정선아리랑을 국내외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오빠들 뮤비 속 그 장소로… 방탄 순례단

    오빠들 뮤비 속 그 장소로… 방탄 순례단

    방탄소년단(BTS)은 단순한 인기 아이돌 그룹을 넘어서 어느덧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전 세계에 산재한 팬들에게 위안을 주고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아이돌’을 통해 한복과 탈춤 등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기도 했던 방탄소년단은 그간 뮤직비디오 등 촬영지로 국내의 숨겨진 장소를 발굴해 오기도 했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촬영지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지만 사진 한 장, 영상 한 컷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국내외 팬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진 것은 당연하다. 방탄소년단의 흔적이 스민 대표적인 촬영지를 돌아봤다. 지도에서 양주, 강릉, 제천, 청주, 부안 등 다섯 곳을 선으로 이어 보니 숫자 7 모양이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크게 틀고 이 ‘BTS 로드’를 따라 여행길에 올랐다.●‘봄날’ 뮤비 첫 장면 그대로… 양주 일영역 ‘봄날’ 뮤직비디오 첫 장면의 눈이 내리는 간이역. 뷔가 플랫폼 아래로 내려오더니 몸을 웅크려 철길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멀리서 봄을 싣고 달려올 기차를 기다리는 듯하다. ‘BTS 로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근교의 일영역이었다. ‘아미’라면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가장 먼저 떠올릴 곳이다. 경기 양주 장흥면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교외선상에 놓인 기차역으로 벽제역과 장흥역 사이에 있다. 1961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가 2004년 여객열차의 운행이 중지됐다. 이름 없는 수많은 간이역 중 하나였지만 2017년 방탄소년단 ‘봄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사시사철 팬들의 발길이 이어진다.일영역에 도착하자 안쪽에서 휴대전화로 재생한 듯한 ‘봄날’ 음악과 함께 밝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친구 세 명이 다양한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타타’(뷔가 만든 캐릭터) 인형과 ‘아미밤’ 덕분에 한눈에도 팬임을 알 수 있었다. 3년 전부터 방탄소년단 팬이 된 서은지(34)씨는 “뮤직비디오를 감명 깊게 봐서 오게 됐다. 팬들에게는 뜻깊은 장소”라며 웃었다. 팬이 아니라도 작은 간이역의 소박한 분위기를 느끼며 예쁜 사진 한 장 남기기에 손색없는 곳이다.일영역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장흥조각공원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 형형색색 개성을 뽐내는 40여점의 조각들 사이로 쉬엄쉬엄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공원 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제4회 뉴드로잉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다. 화가 장욱진의 예술정신을 재해석한 신진작가 80명의 작품 155점을 1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2층 상설전에서는 독창적인 조형세계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유 네버 워크 얼론’ 커버 속 버스정류장 재현… 주문진해변 ‘봄날’의 여운을 마저 느끼기 위해 다음 목적지 강원 강릉으로 이동한다. 서울양양고속도로로 한참을 달리다 양양에서 남쪽으로 꺾어진다.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조금 더 달리다 도착한 곳은 주문진해변이다. 1.5㎞ 해변이 길게 이어진 이곳은 강릉 최북단 해변이다. 주문리와 향호리에 걸쳐 있어 북쪽 일부를 향호해변으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은 타이틀곡 ‘봄날’이 들어 있는 ‘유 네버 워크 얼론’ 앨범 재킷 촬영을 이곳에서 진행했다. 해변 주차장 근처에 ‘BTS 앨범재킷 촬영장소’라는 안내만이 큼직하게 서 있다. 강릉시는 지난해 해수욕장 개장에 앞서 방탄소년단 앨범 사진 속 버스정류장을 설치했다. 국내외에서 찾아온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애써 찾아온 해변에 파도치는 바다와 백사장만 있었다면 괜스레 허무했겠지만, 똑같이 재현된 포토존 앞에 서자 사진 속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맑은 바다에 높게 일렁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거닐다 주문진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산시장 입구에 이르자 여유로운 해변과 대비되는 활기가 끼쳐온다. 대로변 양옆으로 늘어선 건어물 가게에서는 상인들이 쥐포, 황태채 등을 권하며 손님들을 부른다. 멸치, 홍합, 조갯살부터 큼직한 가오리까지 다양한 생선과 해산물이 바싹 말라 있다. 안쪽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자 현대화되지 않은 진짜 전통시장이다. 복어, 오징어, 대게, 전복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수산물이 싱싱하다.●강릉까지 왔는데… 오죽헌·공방마을·카페거리는 들러야 강릉 시내 쪽으로 이동해 강릉의 역사를 대표하는 오죽헌에 들렀다. 5000원권 지폐의 인물 율곡 이이와 5만원권을 장식하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됐다.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기 새겨져 있다. 몽룡실이라고 이름 붙은 별당 건물의 방 한 칸은 신사임당이 이이를 낳은 곳이다. 신사임당 영정이 모셔져 있다. 너른 마당에는 율곡송, 율곡매, 사임당 배롱나무 등이 수호목 역할을 하며 수백년간 자리를 지키는 등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오죽헌 옆 율곡기념관에서는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다. 오죽헌에서 나와 바로 앞 예술창작인촌(공방마을)을 둘러본다.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파는 가게와 예쁜 카페들이 모인 곳인다. 가게 수는 많지 않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지만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으로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는다. 언제부턴가 ‘커피의 도시’로 불리게 된 강릉에는 곳곳에 커피향 가득한 멋진 카페가 많다. 골목골목에서 나만의 ‘인생 카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영 포에버’ 속 질주 장면 배경 모산비행장 아쉬운 발걸음으로 강릉을 뒤로하고 충북 제천으로 떠난다. 방탄소년단이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려 한다. 방탄소년단이 최근까지 이어온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직전 ‘윙스’ 이야기가 양주 일영역과 강릉 주문진해변 등에 걸쳐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보다 앞선 ‘화양연화’ 시리즈의 무대들을 둘러볼 차례다.제천 모산비행장은 제천 시가지 북쪽 끝에 자리 잡은 면적 18만여㎡의 시설로 육군 5019부대가 관리한다. 동서 정방향으로 뻗은 활주로는 약 1.1㎞ 길이로 곧게 뻗어 있다. 군사시설로 건설됐고 전투기가 뜨고 내렸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관제탑 없이 활주로 부지만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쉬어갈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쓰이고 있다. 비행장 한 편에 인공구조물 설치 금지, 폐기물·쓰레기통 무단 방치를 금지하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 안내판이 서 있을 뿐이다. 다만 군사시설이라 내비게이션에서 ‘모산비행장’으로는 검색되지 않고 위성지도에는 논밭으로만 표시된다. ‘의림지동주민센터’로 검색해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활주로에 들어서자 ‘에필로그 : 영 포에버’ 뮤직비디오를 통해 익숙한 풍광이 펼쳐진다. 꿈을 가두는 철조망 미로를 헤치고 빠져나온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이곳에서 ‘넘어져 다치고 아파도/ 끝없이 달리네 꿈을 향해’라고 노래하며 힘차게 질주했다. 넓은 비행장 하늘 한복판에는 마침 뮤직비디오에서처럼 수백 마리의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서쪽으로 저무는 저녁 해는 키의 세 배가 넘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청춘의 상처를 보듬는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이 머리에 스치며 어딘가 애달픈 정취를 자아낸다. 시민들은 한가로운 오후 한때를 보낸다. 동네 어르신들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활주로 주변을 돌며 운동하고, 개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활주로를 내달린다. 아빠는 어린 아들의 손에 드론 조종기를 쥐어 준다.●3분 거리 의림지·의림지파크랜드 들러 보기 모산비행장에서 차로 3분이면 닿을 거리에 제천 대표 관광명소인 의림지가 있다. 걸어서도 2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의림지는 둘레 18㎞, 수심 8~13m의 저수지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통한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오리들이 잔물결을 내며 조용히 떠다니는 의림지 맞은편에서 방탄소년단의 ‘아이 니드 유’ 등 신나는 노래들이 시끌벅적하게 들려온다. 의림지파크랜드 바이킹에서 나오는 소리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어 만세를 부르고 즐거운 비명을 연신 내지른다. 1998년 개장한 놀이공원은 허름한 외관으로 마치 시곗바늘이 그 시절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범퍼카, 회전목마, 디스코팡팡 등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행복한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낫 투데이’ 청주연초제조창 복합단지로 탈바꿈 청주로 발걸음을 옮긴다. 평택제천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차례로 갈아타고 2시간쯤 달려 옛 청주연초제조창에 다다른다. ‘유 네버 워크 얼론’ 수록곡 ‘낫 투데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주차장과 건물 옥상이 이곳 연초제조창이다. 다만 낡은 옛 건물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비즈니스 복합단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방탄소년단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바로 옆에 지난해 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헛걸음은 아니다.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1946년 경성 전매국 청주연초공장으로 개설된 뒤 58년간 담배를 생산했다. 이후 14년간 방치되다 공장 일부가 국내 최초 수장형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연면적 1만 9855㎡, 지상 5층 규모로 건립된 미술관은 수장공간 10개, 보존과학공간 15개를 구비하고 있다. 이곳의 독특한 점은 기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관하는 역할만 했던 수장고를 일부 개방해 관람객들이 수장된 상태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미술관들이 대개 백화점에 가지런히 전시된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 이곳은 대형 창고형 매장에서 쇼핑하듯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5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특별전 ‘별 헤는 날: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국내 유명작가 15명의 작품 23점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15분짜리 싱글채널 비디오 ‘정상에 선 사나이’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산악인 고상돈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당시엔 전문 산악인이라는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고상돈은 이곳 연초제조창에서 일하며 등산활동을 이어 갔다. 영상은 일제의 담배 전매제도 도입, 국내 첫 양담배 생산, 직지심경 등 여러 이야기를 거미줄처럼 엮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인 청주관은 현재 기획전시실을 포함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도보로 20분가량 떨어진 수암골에서는 보다 소박한 미술 이야기가 이어진다. 청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동네 골목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었다.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제인’ 등 여러 드라마의 주요 무대로 각광받았고 특색 있는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섰다.●‘세이브 미’ 뮤비 배경 포토존 마련된 새만금홍보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전북 부안 새만금홍보관이다. 방탄소년단의 현란한 칼군무가 원테이크 기법으로 그려져 강한 인상을 남기는 ‘세이브 미’ 뮤직비디오가 새만금에서 촬영됐다. 홍보관 마당에는 이곳을 찾아오는 팬들을 위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포토존 뒤편 울타리에는 멤버들의 이름과 ‘방탄 보라해’ 등 메시지가 빼곡히 적힌 리본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 이미 많은 팬들이 다녀갔음을 알려 준다.부안에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부안영상테마파크에 들러 봐도 좋겠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가 촬영됐는데 최근작으로는 ‘물괴’, ‘왕이 된 남자’, ‘백일의 낭군님’ 등이 있다. 4만 6000여㎡ 넓은 부지에는 경복궁·창덕궁 등 왕궁부터 기와촌, 평민촌, 공예촌, 저잣거리, 방목장 등 다양한 장소가 조성돼 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며 조선시대 한양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글 사진 양주·강릉·제천·청주·부안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덕수궁 즉조당·준명당 내부 첫 개방… 덕수궁 전각 특별관람 27일 시작

    대한제국 시기 정전과 고종 침전으로 사용한 덕수궁 즉조당과 준명당이 처음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전문해설사와 함께 석어당, 함녕전, 중화전, 즉조당, 준명당 등 덕수궁의 주요 전각 내부를 돌아보는 특별관람을 오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진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즉조당은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과 인조(재위 1623∼1649)가 즉위했다고 알려진 곳으로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쓰이다 후에는 집무실인 편전으로 쓰였다.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돼 있는 준명당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와 황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궐에서 보기 드문 중층 목조 건물인 석어당은 2층에 오르면 화사하게 핀 살구꽃을 감상하기 좋은 전각이다. 고종이 1919년 승하한 장소인 함녕전은 내부에 조선시대 커튼인 무렴자(솜을 두어 누빈 커튼)와 왕의 의자인 용교의, 왕권을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병이 전시돼 있어 궁궐의 옛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별관람은 하루에 2회(오전 10시와 오후 4시) 진행되며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참가 신청은 26일 오전 10시부터 덕수궁관리소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에서 하면 된다. 참가비는 없다. 회당 정원은 15명.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전란에 소실된 왕들의 초상화는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전란에 소실된 왕들의 초상화는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조선 16대 왕인 인조의 생부 ‘원종’을 그린 국립고궁박물관의 ‘원종어진’은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하다. 보존을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사실 이 그림은 1872년 작품과 1935년 작품을 디지털로 합성해 완성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시대에 그린 왕의 초상화 ‘어진’의 복원 과정을 담은 ‘어진, 왕의 초상화’를 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책은 2012~2017년 어진 보존처리 과정에 참여한 ‘국내 1호 미술사학자’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어진 연구 집대성이다.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함경도 영흥 준원전과 전라도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비롯해 창덕궁 신선원전에 12명의 임금 어진 48점이 봉안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에 옮겨졌다가 1954년 화재로 거의 다 타버려 겨우 몇 점만 남았다. 정부는 2012~2017년 홍룡포본 태조어진을 시작으로 원종, 숙종, 순조, 익종, 철종, 고종, 순종어진을 보존처리했다. 태조와 원종, 순종 어진 등 원형 모사가 가능한 어진은 새롭게 모사작업을 병행했다. 작업 모든 과정에 참여한 조 명예교수는 남은 어진은 물론 복원 후 모습과 모사를 위한 디지털 합성 과정, 얼굴·손·귀 등 각 부분 복원에 참고될 관련 비교 이미지 등을 책에 수록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조 명예교수는 “어진 제작은 당대 최고의 화사가 모여 만든 협업의 산물이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한국학 및 미술학적 의미가 크다”면서 “책을 통해 새롭게 복원된 어진이 (관련) 연구에 이바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목포문화연대, 목포 임성지구 고인돌 보존 대책 촉구

    목포문화연대, 목포 임성지구 고인돌 보존 대책 촉구

    목포시가 택지개발 지역에서 고인돌 유적지를 무더기로 발견했는데도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년 동안 대책 마련에 부실하다는 판단에 급기야 시민단체가 보존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19일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따르면 목포 석현동과 옥암동 일대에 개발중인 ‘임성지구’에 대해 2014년 지표조사한 결과 문화재 10개소가 분포돼 있다. 이중 4개소가 도시개발 사업 지구안에 있다. 청동기시대 석현지석묘Ⅱ, 구석기·삼국시대 옥암동 장재유물산포지, 삼국시대 옥암유물산포지, 삼국시대 초당산고분 등 4개소이다. 도시개발 사업부지 바깥 부분에도 청동기시대 지석묘 2개소, 시대 미상 거석기념물 1개소, 조선시대 노거수1개소,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1개소, 삼국시대 갱골고분 1개소가 산재해있다. 이같은 사실에 문화재청은 2015년 목포시에 ‘목포 임성지구 도시개발사업지구 내 문화재 보존대책’ 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 3월에도 보존대책과 전수조사 등을 실시하도록 목포시에 다시 통보했다.목포시문화유산위원회에서도 2012년 ‘석현지석묘군 Ⅱ’과 옥암동 초당산 고분 2개소를 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지난 2월에는 고고학자가 석현동 일대를 재조사하면서 고인돌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고고학자는 ‘석현동은 4m 규모의 대형급 큰 고인돌이 존재하며 주변에는 보다 작은 규모가 분포해 상징적인 기념물과 함께 무덤 고인돌이 공존한 고인돌군이다’, ‘석현동 아파트앞 고인돌은 부서지거나 방치돼 있고, 덮개돌이 깨진 상태이거나 이동된 것들이다. 최근 발굴에서 받침돌(지석)만 있거나 덮개돌이 없어져 무덤방(석실)만 있는 형태로 확인돼 훼손상태가 매우 심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목포문화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임성지구 고인돌군은 종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보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보존대책을 강조하고 있다”며 “석현동 일대는 곳곳에 고인돌이 산재돼 있는 장소로 목포의 대표적인 고인돌군이다”고 밝혔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대표는 “훼손 방지 대책을 강구하고 종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즉시 모색하기 바란다”며 “고인돌 공원화 등의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방향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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