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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기완씨 방북 수락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27일 북한의 단군릉 준공식 초청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초청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백소장은 이날 회견에서 『일제 어용학자들이 역사적 실재인 단군을 신화로 조작,민족사적 주체성을 흐리게한데 비해 최근 북한이 이를 복원한 것은 단순히 왕릉을 세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의 단군릉 준공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정부당국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최근 조선사회민주당 명의의 편지를 통해 오는 10월초 평양에서 진행될 단군릉 준공식에 이기택 민주당대표와 김대중 아·태평화재단이사장,김수환추기경 등 각 정당·사회·종교단체대표들을 초청했었다.
  • 현중 반장협의회 장헌중회장(인터뷰)

    ◎“집행부 독선적 운영에 노조 탈퇴”/조합원위한 진정한 민주노조 탄생했으면… 60여일간 파업을 계속해온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의 강경노선과 비민주적 운영에 반발,집단 노조탈퇴를 선언한 반장협의회 장헌중회장(50·조선사업본부 소조립부·4급)은 『많은 조합원들은 조합원을 위한 진정한 노조집행부의 탄생을 갈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를 탈퇴하게 된 동기는. ▲우선 노조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행부의 독선적인 노조 운영에 대한 불만으로 탈퇴하게 됐다.집행부는 조합원의 실익보다 자신들의 위상정립에만 힘을 써 일반조합원의 권리와 복지를 기대할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파업기간중 직책자(반장)와 조합원(반원)간에 마찰이 생기면 직책자만 심하게 나무라는등 일방적으로 반원만을 옹호,반장과 반원사이를 이간질시켰다.지난달 25일 노사간에 간신히 얻어낸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때도 파업불참이란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했다.민주노조를 표방하면서도 탈퇴자의 명단을 부서별로 공개해 탈퇴자를 고립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탈퇴의견을 모을때 어려움은 없었는가. ▲반원들간에 갈등이 생길까 염려했으나 별다른 잡음없이 일부 강성조합원들까지도 설득할수 있었다.모든 것은 조합원 본인의사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반장협의회란 어떤 조직체인가. ▲지난 87년 노사분규가 시작될 무렵 당시 청우회(청우회)로 발족돼 지난해까지 지내오다가 올해 내가 7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직급별 서클과 분리하기 위해 반장협의회로 개명,회원간에 상부상조하며 체계적인 업무추진에 많은 보탬을 주고 있다. ­노조탈퇴자가 늘어남에 따라 노·노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노·노갈등이란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우리가 노조를 탈퇴한 것은 노조집행부에 대한 불신이지 노조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조규약에 자퇴자는 2년후에만 회복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현집행부가 바뀌고 새로운 집행부가 탄생되면 다시 조합원으로 복귀할 생각이다. 집행부가 지난 일들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고 그것에 대한 공개사과를 한다면 노조탈퇴를 철회하고 조합원으로 돌아가겠다. ­회사와 노조측에 하고 싶은 말은. ▲회사측은 노조원 탈퇴에 따른 직책자들의 판단을 악용하지 말고 직책자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인정하고 이들의 현장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노조측도 하루빨리 조합원들을 위한 진정한 민주노조의 집행부로 새로 태어나 모두 함께 회사발전에 노력하기를 바란다.
  • 김정일이 외화관람계층 분류(북한 이모저모)

    ○당간부용·안전부용·평양시민용으로 ○…북한 김정일은 자신이 본 모든 외국영화의 관람대상과 범위를 직접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평양에서 발행된 「조선문화예술론」에 의하면 김정일은 입수된 모든 외국영화를 감상한 후 ▲당간부용 ▲국가보위부 및 사회안전부용 ▲평양시민용 ▲일반주민용등으로 나눠 관람을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영화 수집광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세계각국의 영화필름 수천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해외공관 및 대외무역 종사자 등을 통해 연간 약 6백여편의 외국영화를 사들이고 있다고. ○기원전 12C 쇠거울 발견/평양송석리 돌곽무덤서 ○…북한은 최근 평양에서 기원전 12세기에 만들어진 쇠거울을 발굴했다고 주장. 이 쇠거울은 평양시 강동군 송석리 1호 돌곽무덤에서 사람뼈와 함께 발굴됐는데,크기는 직경 15㎝,두께 0.5㎝의 둥근 모양에 앞면은 매끈하고 뒷면에는 1개의 꼭지가 붙어있다고 노동신문 최근호는 보도. 이 신문은 사람뼈의 절대연대 측정치가 3천1백4년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고 이로미루어 한반도에선 기원전 12세기부터 철기를 만들어 썼다는 것을 실증해주는 것이라고 주장. ○“뒷굽 높아야 건강·미용에 좋다”/잡지 천리마/여중생때부터 적극 권장 ○…북한은 최근 여성들의 몸매를 아름답게 하고 건강에도 좋다는 이유로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을 것을 적극 권장.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대중잡지 「천리마」 최근호는 북한의 신발공장에서 굽 높이가 30㎜에서 80㎜에 이르는 여러가지 신발들이 생산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을 때의 좋은 점을 소개.이 잡지는 신는 시기는 중학교때부터가 적절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는 발뼈와 발근육이 완전히 자라지 않아 뼈마디와 힘살이 그에 맞게 발달되므로 몸매가 고와지고,성인이 된 다음 굽이 높은 신발을 신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제시. ○“청바지는 미국깡패들 옷”/김정일 한마디에 단속나서 ○…북한 당국은 최근 청바지 착용을 더욱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북한에서는 지난 89년 여름에 열린 평양축전때 청바지가 소개된 이후 청소년들이 가장 입어보고 싶어하는 옷으로 꼽히고 있을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청바지 착용이 비사회적인 현상으로 비쳐지면서 지난해 8월부터 착용에 제동이 걸렸던 것.청바지착용이 금지된 것은 지난해 여름 김정일이 평양시찰도중 몸에 꽉끼는 청바지를 입고가는 여성을 보고 『조선사람의 풍모가 없다.청바지는 미국의 깡패옷인데 조선사람들이 입어서야 되느냐』고 한마디한 때부터인데 요즈음은 단속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 ○강성산·김용순 수업차관/각급학교 새학년 개학식 ○…북한은 1일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일제히 개학모임을 갖고 새학년도 첫 수업을 시작. 북한은 우리와 달리 9월부터 새학년이 시작되는데 이날 개학식에는 총리 강성산을 비롯,당비서인 계응태·황장엽·김기남·서관희,김용순과 부총리 장철 등 당정고위 간부들이 각각 참석했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특히 김정일이 40여년전 재학한 바 있는 평양 제4인민학교에는 강성산·장철·박남기(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 등이 찾아가 첫 수업을 참관하고 교직원들과 함께 학교시설들을 둘러보는 등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 현중/「무노무임」 지켜질까/파업기간중 격려금명목 50만원 제시

    ◎깎인 임금 1인 백만원꼴… 배려 관심 두달동안 계속됐던 현대중공업노사분규가 마무리되면서 협상의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던 「무노동무임금」원칙이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현대중공업분규가 타결된 마당에서 무엇보다도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과연 파업기간동안 발생했던 무노동에 대한 무임금원칙이 글자 그대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각 사업장마다 어떤 식으로든 파업기간동안 파업참여 조합원들의 임금손실부분이 보전되는 것이 관례로 돼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정부가 악성노사분규의 근절을 위한 노동정책의 하나로 파업기간중 무노동무임금 원칙만큼은 강력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원칙에 대한 노조의 수용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60일이 넘도록 파업이 계속됐던 이번 현대중공업분규에서도 이 부분은 노사양쪽 모두 풀기 힘든 매듭이었다. 이 때문에 막판협상까지 노사가 이를 놓고 공방을 거듭했으나 결국은 노조측이 표면적으로 이 원칙을 수용하는 선에서 타결을 보았다. 그러나 협상타결 내용을 놓고 볼때 과연 앞으로 무노동무임금원칙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겠냐 하는데는 얼마든지 의구심을 가질 수있다. 회사측은 그동안 조합원들이 입은 1인당 평균 임금손실은 1백여만원이 넘는다고 밝혔다.또 파업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대의원·풍물패등 1천여명은 파업기간동안 한푼의 임금도 받지 못해 1인당 2백여만원이상의 임금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파업기간중이던 지난 7월14일 회사측은 경영목표달성 격려금 명목으로 50만원의 일시금지급을 내놓았었다.비록 타결 훨씬 전에 제시된 것이었지만 임금보전 성격이 짙다. 지난해의 경우 현대중공업 회사측은 경영성과에 따른 특별포상금 명목으로 통상임금 50%와 3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금했던 전례도 있다. 또 92년에도 노사화합격려금 30만원과 통상임금의 50%를 특별 격려금명목으로 지급했으며 90년에는 23만원의 일시금을 지급했었다. 물론 이때는 모두 파업기간중 임금 손실에 대한 보전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강조했던 올해 이회사가 일시금으로 제시한 50만원도 파업기간에 발생한 임금손실의 완전한 보전에는 못미치지만 이는 과거에 임금손실 보전을 위해 지급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다. 해마다의 관례를 보면 회사측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임금손실을 본 조합원들을 위한 특별배려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또 당국은 당국대로 그것이 설사 무노동무임금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눈감아 줄것이다. 결국 이번 협상에서 노사양측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라는 자구의 적용에만 수긍했다고 볼 수있다. 올해 이같은 일시금 지금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미포조선이 55만원,현대정공과 대우조선,한라중공업등에서도 각각 50만원의 일시금이 지급됐다.한마디로 파업임금손실에 대비한 보전을 위한 성격이 짙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현대중공업 노사분규타결과정에서 정부당국이나 회사측의 「무노동무임금원칙」이 관철됐다고 해서 노동없는 임금지급은 있을 수 없다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판단이 될지도 모른다. ◎분규타결 첫날 현대중 표정/출근 근로자,기계점검등 조업 준비 부산/일부강경파 골리앗·LNG선 농성 계속 분규 61일만에 노사가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던 현대중공업은 24일 전체종업원의 89.4%인 1만4천4백82명이 정상출근해 작업장 정리와 각종 기계장비를 점검하는등 정상조업을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또 관리직 사원들과 노조간부들은 노사협상을 통해 어렵게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투표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이를 세세하게 설명하는등 오랜만에 노사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 ○…분규가 마무리돼 파업때보다 일찍 밝은 표정으로 출근한 종업원들은 모두 자신의 소속 부서로 가 작업장 정리 정돈등을 마친뒤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해 노조대의원과 관리직 사원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특히 노조는 부서별 집회등을 통해 장기파업과 농성에 따라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회사측은 이날 관리직 사원들을 총 동원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찬반투표 가결을 위한 설득작업에 나서는 모습.김정국사장은 이날 「임·단협 잠정합의와 조합원 찬반투표에 즈음하여」라는 유인물을 통해 노사안정이 회사가 영원히 번창하는 길이라며 어렵게 의견일치를 본 잠정합의안을 전폭적으로 지지 가결해 줄것을 호소. ○…이날 상당수 조합원들은 찬반투표에서 가결될 때까지는 파업을 계속하기로 한 노조집행부의 방침에 따라 족구등 체육놀이로 시간을 보내기도.이에따라 출근 근로자의 56.1%인 1만4천4백82명만이 조업에 참여해 부분적으로 조업이 이루어졌다.사업부별로는 비조합원이 많은 건설사업부가 96.5%의 조업률을 보였고 엔진 51.2%,프랜트 52.4%,중장비 48.3%,중전기 47.9%,해양 43.1%등의 순이었다.강성 조합원이 많은 조선사업부는 26·4%로 조업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회사안 노조사무실 주변 텐트 농성장과 골리앗 크레인,LNG선 등에는 여전히 상당수 조합원들이 농성을 계속했고 사내 곳곳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등도 철거되지 않았다. ○…해양사업부 이일석씨(53)는 『파업기간중 4일밖에 일을 하지 못한데다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돼 생계가 어려웠지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상을 타결해참으로 다행』이라며 『총회에서도 합의안이 가결돼 빨리 생산현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사는 이날 상오 10시30분부터 본관 중역실에서 전날 잠정합의한 안에 대한 최종 마무리를 했고 회사측은 합의에 따라 노조간부등 고소고발자 49명에 대한 소취하를 울산동부서에 접수. ○…노조는 이날 하오 1시부터 중앙쟁위대책위원회와 대의원 간담회등을 잇따라 열고 잠정합의안 총회 회부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이날 회의에서 일부 강성 대의원들은 회사측이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건은 취하했지만 조업방해 과정등에서 빚어졌던 근로자 개개인의 고소고발 문제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 현중 노·노충돌 40명 부상/강경파 노조원,작업근로자 또 폭행

    ◎“파업철회” 서명 1만3천명으로/오늘 협상속개… 타결 불투명 【울산=이용호·강원식기자】 두달째 분규를 계속하고 있는 울산 현대중공업 노사양측은 22일 조업참여여부를 놓고 노조원들간에 폭력사태가 난무하는 가운데 협상을 재개했으나 쟁점사안에 대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23일 협상을 속개키로 했다. 이날도 회사측은 정상조업을 시도,조합원 1만명과 비조합원 근로자등 1만5천여명이 출석점검에 응했으나 노조의 방해로 조업률은 낮았다. 이 과정에서 5백여명으로 편성된 노조의 작업방해조가 오토바이를 타고 각 작업장을 돌며 조업근로자들을 폭행,8개 작업장에서 40여명이 부상했다. 이날 상오8시40분쯤 조선사업부 대조립1부공장에 노조대의원등 2백여명이 난입해 작업을 방해하고 이를 말리는 이상찬차장(39)등 간부사원 2명을 폭행했다.또 해양사업부 철구공장에도 대의원등 50여명이 작업을 방해하다 이를 말리는 차동아부장(46)과 장상범씨(44)등 8명이 집단구타당해 인근 해성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이밖에 엔진·중장비·특수선·플랜크사업부등에서도 작업방해에 따르는 기물파손과 폭력사태가 잇따라 부상자가 속출했다. 한편 노조의 파업철회요구 서명조합원은 모두 1만3천80명을 넘어섰다. 노사는 이날 14개 쟁점사안과 「무노동무임금」등 현안사항,그리고 전날 노조측이 추가협상안건으로 제시한 LNG선 건조기념 포상금등 5개항등을 대상으로 협의를 가졌으나 양측 모두 조정안을 내지 않아 협상이 무위로 끝났다.더구나 조합원들간의 폭력사태와 관련,회사측이 『노조측의 조업방해가 계속되는 한 23일의 협상은 진전될 수없다』고 노조측에 통보해 현대중공업사태는 자율해결에서 크게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낳았다.반면 노조측은 23일 협상에서마저 타결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강경투쟁방안을 결정해놓고 있어 사태는 더욱 꼬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 현대중 분규 오늘이 고비/노·사 양측/“타결 못하면 초강경 대응”

    ◎노/상경투쟁 등 강도 높이기로/사/조업 강행… 직장 재폐쇄 불사/휴일 특근 10여명 또 구타당해 【울산=이용호·강원식기자】 울산 현대중공업 분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22일 노사협상 결과가 사태해결의 커다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양측은 일요일인 21일 협상을 무위로 끝낸뒤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22일 갖기로한 협상에서 타결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독자적인 초강경방안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노사양측은 이날 협상에서 초반부터 협의안건을 놓고 의견차를 보여 미타결쟁점에 대해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채 협상이 결렬,22일 하오2시 재협상을 갖기로했다. 노조측은 이날 협상에서 파업기간중 임금보전문제(무노동 무임금)와 고소·고발취하등 현안이외에 ▲LNG선 건조기념 포상금지급 ▲상여금 6만원 정액인상등을 협상의제로 추가 제시,사측의 수용을 요구했다.이에대해 회사측은 약속대로 「고소고발」문제와 「복지기금출연」안건만 논의하자고 맞섰다. 김정국사장은 이날 협상직후 『내일 협상에서도 의견차를 좁히지못할 경우 다시 직장폐쇄도 불사하겠다』고 회사측의 향후 입장을 밝혔다. 이에맞서 노조의 박철모상황실장(32)도 이날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22일 협상에서 타결방안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상경투쟁」을 시도하는등 파업투쟁 강도를 높여나가겠다고 공식 표명했다. 한편 이날 상오 11시40분쯤 4백여명의 근로자들이 휴일특근 조업을 하고 있던 플랜트사업부에 50여명의 노조측 기동대가 각목을 들고 난입,송정남씨(51·중기생산부)등 조업근로자 10여명을 집단구타해 송씨등이 크게 다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같이 조업참여근로자에 대한 폭력사태가 이어지자 회사측은 이날협상에서 조업을 강행하겠다고 전제한후 조업근로자에 대한 폭력이 22일에도 계속될 경우 협상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노조측에 전달했다. ◎중상 현중근로자에 온정 밀물/날품팔다 다친 최기찬씨/노사대표 병원찾아 직원성금 전달/울산 동구청장도 쌀보내 쾌유 빌어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생계가 어려워 공사장에 날품을 팔러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근로자 최기찬씨(41·울산시 동구 화정동)에게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이석철이사(47)와 신현식 노조대의원(42)등 노사대표는 21일 하오 2시쯤 지난 12일 사고를 당했던 조선사업본부 기술관리부 근로자 최씨가 입원해 있는 울산동강병원을 방문,최씨와 부인 이원희씨(38)등 가족들을 위로했다.이들은 조선사업본부 직원들이 모금한 성금 1백33만원과 박운서상공자원부 차관이 보내온 금일봉을 최씨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또 지난 20일에는 회사 임원들과 직장동료 10여명이 역시 동강병원을 찾아가 성금을 전달하고 최씨와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에앞서 19일에는 박영수울산동구청장이 쌀 1백25㎏과 금일봉을 최씨가족들에게 보내왔고 동료직원 40여명은 그동안 최씨의 쾌유를 빌며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뜨거운 동료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씨는 이같은 주위의 따뜻한 손길로 건강상태가 크게 호전돼 21일에는 산소호흡기를 제거했고 아직 말은 할수 없지만 찾아온 동료들을 알아 볼 수있게 됐다. 최씨는 노사분규의 장기화로7월분 급여를 20만원밖에 받지 못하자 최근 당첨된 24평짜리 아파트당첨금과 자녀(1남2녀)들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지난 6일부터 공사장에서 일당 5만원을 받고 일을 하던중 지난 12일 하오 3시30분쯤 울산시 남구 여천동 한국석유개발공사의 원유탱크의 맨홀이 폭발하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었다.
  • 서툰 모국어 때문에…/이연숙(일요일 아침에)

    일본에 있는 한 온천호텔앞,낮12시가 넘으면서 다 다른 지방번호판을 단 대형버스가 중년이 넘어선 한국여성들을 내려놓는다.가방을 챙겨든 3백여명의 여인들이 정해진 방에 짐을 풀기 바쁘게 우리나라에서도 최첨단 유행에 뒤지지 않는 화사한 한복차림으로 현관앞에 모여선다.「재일본 대한민국 부인회 대연수회」라고 쓴 현수막 앞에서 지역별 기념촬영의 자리는 즐거움과 반가움이 가득하다.호텔에 드나드는 사람,지나가는 일본사람들이 신기한 얼굴로 또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바라본다.촬영이 끝나면 전원이 회의장에 모여서 서툰 한국말도 섞인 개회식을 거행하는데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애국가를 제창한다.개회식과 주제강연이 끝나면 즐거운 만찬시간인데 놀라운 것은 전원이 한복을 평상복으로 갈아 입는다.그런데 그 옷들이 모두 한국의 백화점이나 동대문·남대문시장에서 볼수있는 것들이다.타향에 살면서 고향의 삶을 재현하는 그들에게서 동족의 끈끈함과 연결을 실감했다. 일본에는 약70만명의 한국인 교포들이 살고 있다.그중 45만명 정도가 대한민국 거류민단에 소속해 있고 그중의 반인 여성이 똘똘 뭉쳐 재일본 대한민국 부인회의 회원이 된다.올해 회장에 선출된 최금분회장은 60대의 대학교육을 마친 엘리트로서 교포2세다.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는 우리보다 훌륭한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대부분의 임원들은 평균 연령이 60전후인데 거의다 이민 1세가 아닌 2세였다.그래서 우리말이 서툴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배우고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한국사람의 교양수준을 높이고 회원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달하며 교민상호간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 부인회는 연례행사로 전국 부인회 대연수회를 갖고 있다.일본을 6개지역으로 나누어 4월과 5월에 거쳐 일곱번의 2박3일 행사를 치르는데 그 횟수가 이미 109회를 기록했다.연수회 내용은 「재일한국인의 권익옹호」「한국과 일본에 관한 역사와 문화」「한국의 법률」「국제화시대의 대비」에서부터 한국의 가요에 이르기까지 참석자가 지루해질 틈도 없이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펼쳐진다. 주제강의를 맡아 올해 처음 참석했던 내게는 몇가지 벅찬 감회와 함께 무엇인가 내 나름의 할일을 찾는 값진 기회가 되었다. 얼마전까지도 일본정부는 재일외국인 등록에 지문날인이 필수라고 우겼었다.그런데 그것이 없어진 배경에는 바로 이 재일 한국부인회의 끈질긴 항위시위와 요청이 주효했다고 한다.올해 시작하는 재일동포들의 권익옹호운동의 목표는 「정주외국인의 지방 참정권」으로 정해졌다.어떤 도시의 재정은 한국거류민이 납세액의 70%까지도 부담하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수 없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연수회에서 참가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계획을 구체화하는 모습에서 나는 한국의 여성들이 이들을 후원해서 보다 격상된 교포지위를 확보토록 할 길을 찾을 결심을 했다.재일동포1세는 대부분이 강제로 일본땅에 옮겨온 사람들이었다.모진 고생 끝에 스스로의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오늘의 터전을 마련했다.그들의 후손인 오늘의 60대 이하의 교포는 모습은 우리와 같지만 우리 표준말을 못 알아 듣는이가 많다.대부분 억센 사투리를 쓰는 조부모와 부모에게 구전으로배운 말에다 「조센징」(조선사람)이라는 괄시를 받기 싫어 아예 모국어는 접어두고 지낸 사람들이다. 말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국에 대해서 섭섭한 일이 있다.고국이라고 마음 설레면서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한국말도 못하느냐』고 여기 저기서 핀잔을 준다.『뭣하러 이렇게 자주 드나드느냐』는 질문도 받는다.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일구월심 돈벌어서 일가친척 만나려고 오가는데 이게 웬 푸대접인가? 택시나 버스를탈 때,물건살때 서투를 우리말을 하다가 봉변당하는 재일교포도 수두룩하다.특히 어린자녀들이 한국 다녀와서 고국의 푸대접 때문에 정떨어져 돌아오면 그렇게 슬프단다. 그들은 내나라를 마다하고 떠났던 사람들이 아니다.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아니다.그들은 이제 열심히 한국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들의 서툰 한국말을 반기고 다정하게 맞아주는 일을 우리 모두가 맡아야 한다.우리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맞아주고 우리가 더더욱 발전할 때 그들의 한국말은 유창해 질 것이다.
  • 이승만과 김일성 비교론/김학준교수,남북한단정 두주역을 말한다

    ◎끝까지 항일깃발… 사상적 뿌리 민주주의에/이승만/기독교신자서 마지막 스탈린주의자로 종말/김일성 대한민국 건국 4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새삼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 가운데 한 분으로 대한민국의 초대 국회의장과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박사를 생각하게 된다.동시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는데 앞장서 북한 공산정권의 초대 내각수상으로 북한 권력구조의 정상에 오른 뒤 무려 46년동안 1인장기집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죽은 김일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똑같은 이북 사람으로 이승만은 황해도에서,김일성은 평안남도에서 각각 태어났다.두 사람은 37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는데 그러나 차이는 연령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부분들에 걸쳐 있다. 이승만은 조선왕조의 황혼기에 태어나 고전적인 한문교육을 받다가 서울에서 배재학당을 다니며 미국 교육을 받았다.이렇게 볼때 그는 미국 교육 또는 서양 교육을 일찍받은 당대의 선진적 소수 지식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그가 받은 교육의 내용은 서양 민주주의와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그는 상당히 자극됐으며 그리하여 독립협회 운동과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해 싸우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된 뒤 그는 기독교 청년운동에 종사하다가 도미하여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학사를,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및 역사학 분야의 석사를,그리고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및 국제법 분야에서의 박사를 각각 받았다.그의 학문적 배경만을 놓고 볼때 당시의 조선사람으로는 단연 정상급의 학자였다고 할 것이다. 이승만은 곧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에서 벌어진 심각한 노선투쟁은,특히 무장투쟁노선을 옹호하는 세력은 외교선전노선을 앞세우는 이승만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수도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만들고 이 기구를 중심으로 미국 정부와 국제연맹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운동에 매달리게 했다. 그의 독립운동 방식이 무장투쟁 방식의 시각에서 보면 의미가 줄어들 것이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단 한차례도 일제와 타협한 일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항일독립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은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 망국민의 신분으로 태어났다.이승만이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듯 김일성 역시 기독교 집안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그러나 이승만이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켰음에 반해 김일성은 곧 기독교를 버리고 반기독교적 입장에 섰다는 점이 대조된다. 이승만의 교육적 배경과 활동의 무대가 미국이었음에 비해 김일성의 그것들은 만주였다.이승만이 영어를 모국어나 다름없이 썼음에 비해 김일성이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썼다는 대조도 흥미롭다. 김일성의 교육은 그러나 중학교 퇴학으로 끝났다.그는 곧 중국공산당 당원이 됐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고 그 종착역은 소련극동군의 정보특무 대위였다.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승만은 만70세의 노인으로 미국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한편 김일성은 만33세의 청년으로 소련으로부터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승만의 사상적 뿌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였다.그래서 그는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국가 이데올로기,곧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소련의 영토적 팽창주의를 경계하면서 소련이 북한을 발판으로 남한까지 공산화시켜 한반도 전체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일찍부터 단정론을 들고 나왔다.되지도 않을 남북통일에 연연하다가는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위험성이 크므로.게다가 북한에서는 「소련 점령군의 앞잡이」김일성을 중심으로 소비에트 정권이 창출되고 있으므로 남한에서도 서둘러 정부를 수립해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소련점령군의 북한 소비에트화 전략을 떠받들고 북한에 공산주의 단독정권을 세워나갔다.그는 이 단독적 공산정권이 서고나면 그것을 발판삼아 남한까지 공산화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48년8월15일에는 남한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졌고,같은해 9월9일에는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두 국가는 각각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했다.부인할 뿐만아니라 상대방을자신에게 흡수통합시키기위해 무력의 사용도 주저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면적인 선제공격을 가해 온 쪽은 김일성이었다.그는 소련및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50년6월25일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동족상잔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승만은 다행히 미국의,그리고 국제연합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압록강까지 진격해 북진통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이 시점에서 김일성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북한 공산정권의 궤멸을 막을 수 있었다.여기서 전전 원상의 회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휴전이 성립됐고 이 휴전체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이승만은 권위주의 체제의 길을 걸었다.부산 정치파동과 3선개헌을 거치면서 민심의 이반을 낳았던 그의 통치는 결국 60년의 3·15부정선거로 귀결됐으며 4·19학생의거에 따른 4월혁명을 만나게 됐다. 대한민국의 조지워싱턴이 될 수 있었던 그는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고,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다.5년 뒤 그는 유명을 달리한 채 귀국했다. 김일성은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스탈린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자 했다.그것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그리고 피치자에 대한 억압과 세뇌였다. 이승만이 하야한 뒤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었다.헌정사에는 굴곡이 적지 않았으며 어두웠던 시절들이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쌓아올린 건국의 울타리 안에서 대한민국은 결국 민주주의와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일성의 북한은 한때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앞선 때가 있었다.그러나 1인 장기집권의 억압체제가 반세기 가깝게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활력을 잃게 됐으며 자연히 경제적 침체라는 늪속에 깊숙하게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북한 공산체제의 붕괴론마저 나오는 시점에서 김일성은 마침내 죽었다.이승만의 별세 이후 29년만의 일이다. 48년 이후 남쪽에서는 공화정이 여섯차례나 바뀌었고 최고권력자도 일곱사람이나 나왔다.그래서 대한민국은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교체를 통한 국민적 활력이 살아도 나고 지탱도 되어 선진국을 바라볼 수 있는 민주적 신흥공업국가로 커졌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최고집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은채 지내오다보니 세포가 죽어버려 결과적으로 빈곤의 땅이 됐다.이것은 김일성이 역사적으로 너무 오래 살았음을 의미한다.역사와 민족을 위해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권력에서 떠났어야 했다. 이제 미래가 대한민국의 편임이 확실해졌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라는 시대적 흐름을 탄 대한민국으로서 자신감을 갖되 신중하게 남북의 평화통일을 향해 착실하게 전진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김정일체제의 성격과 방향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우선은 기본적인 교류와 협력의 부문에 돌파구가 열리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년의 8·15는 해방 50주년이면서 분단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역사적 시점이다.남과 북을 통틀어 우리 겨레의 형편이 훨씬 더 개선되기를 바란다.
  • 북 대남사업 한총련 장악 초점/귀순 강명도씨가 밝힌 북의 대남공작

    ◎통일전선 사업부 6과,「조선학생위」 지도/박홍총장의 「주사파발언」은 오히려 약과 북한은 남한사회에 주체사상을 퍼뜨리는데는 대학생들이 가장 적합한 포섭대상일고 판단,조국전선중앙위원회의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조선학생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한총련 관련 사업등 기본적인 대남사업방향을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귀순한 강명도씨(36)는 27일 가진 귀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은 노동자나 농민 계급에는 주체사상이 침투되기 어렵다고 보고 흥분을 잘하고 혈기있는 청년 대학생들의 심리를 유도해 이들을 장악하는데 대남사업의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조선학생위원회는 대외적으로는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관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가 이 위원회를 장악하면서 기본적인 대남사업방향을 지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강씨는 이날 회견에서 『최근 서강대총장이 주사파에 대한 발언을 하여 큰 파문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북한내부 지식인들이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북한사회를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서강대총장의 발언은 오히려 약과이며 일부 남한 대학생들의 주체사상 추종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남한의 일부 대학생들이 북한에서 직접 살면서 그 현실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체사상 추종현상을 보이는 것 같다』면서 『남한내 학생운동권 일부가 북한의 대남전략에 의해 직·간접으로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이와함께 『대남사업부의 대남정책방향은 간첩을 파견해 남한 인사들을 포섭·흡수하는 것보다는 대학가에 교묘하게 침투해 학생들을 유혹·장악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이들은 다른 어떤 대남전술보다 대학가 침투를 가장 적합한 전술로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이어 『주체사상이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이를 토대로 한 「지상이 인민의 낙원」이라는 선전문구가 북한의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누구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서 『남한의 대학생들은 북한의 지식인과 유학생들이 가족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북한사회를 탈출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귀순 강명도·조명철씨 기자회견 일문일답

    ◎북군부 오진우·오극렬파 암투 치열/김정일,85년부터 외교 제외 모든 권한 행사/전쟁 대비,마카오·스위스·일등에 외자 예치 27일 귀순 기자회견을 가진 강명도씨와 조명철씨는 『북한 김정일의 정치 체제에 회의를 느껴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귀순동기와 강성산총리에게 알렸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 ▲(강씨)89년 인민무력부 실장으로 있을때 군부고위계층의 권력다툼과정에서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된 적이 있었다.이때 죄없는 3만여명의 죄수들이 구타당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김정일의 정치체제에 불만을 품게 됐다. 부모친척중에 김정일의 측근이 많다.그래서 이들이 석방을 제의해 김의 지시로 석방된뒤 강성산의 도움으로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발령받고 작년 12월 강재수출관계로 중국으로 가게됐다. 그러나 강재를 못 팔아 자금회수가 어려워 1주일로 예정했던 체류기간이 한달로 길어졌다.북한에서는 내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돼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이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게돼 탈출을 결심했다.강성산이나 가족들은 탈출사실을 모른다. ­한달간 머문 행적은. ▲(강씨)중국에서는 겨울이 지나야 강재값이 오르므로 팔지 않고 있었다.돈을 돌리기 위해 심양과 북경등지를 왕래했다.김일성 사후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했다.오늘의 귀순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되면 강성산에 대한 대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군부내 권력다툼이 심각하다는데. ▲(강씨)북한 군부내의 권력다툼은 오진우·오극렬·이봉원파등 3개파로 갈라진다.그 밑으로 1군단과 2군단 출신파로 갈려 있다. 오진우파와 오극렬파가 갈려진 배경은 이렇다.87년에 오진우가 김정일과 함께 만찬에 참석했다가 대형 벤츠 승용차를 직접 몰고 돌아오다 가로수를 받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오진우는 거의 죽을 상태가 돼 후임을 오극렬이 대행하게 됐다.오는 이후 총참모부에 공군사령부 출신을 측근으로 기용하는등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가 무력부장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오진우가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1년만에 회복돼 복귀해 이봉원한테서 이런얘기를 듣고 분개했다.이봉원은 오극렬과 사이가 안좋았다. 원래 오진우는 혁명1세대이고 오극렬은 만경대학원 출신의 2세대인데 오진우는 오극렬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김일성에게 교체를 요구해 결국 오극렬은 물러났고 그의 사람도 다 나가게 됐다. ­김정일의 후배로서 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무원 간부들이 성향은.(강씨에게)김달현의 근황은.강성산이 88년 좌천이후 재발탁된 배경은.강성산과 김정일의 관계는. ▲(조씨)나는 북한에서 풍파를 격은 사람이 아니다.고스란히 자라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남산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고등반 인민반 유치원반으로 나눠져 있고 장차관급이상 자녀들만 따로 교육하는 곳이다.이 곳에서나는 김정일의 동생 김평일,영일과 함께 공부했다. 대학졸업후 김일성대학 교원이 돼 상류생활을 하면서 행복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그러면서 김정일체제와 북한 사회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김정일은 정치적 경제적인 업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남쪽의 소식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나의 행동이 북조선 통치자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김평일과 영일은 공부도 잘했다.김평일은 사람을 많이 끌었다.학교에서는 김정일을 치켜 세우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결단코 제거하자는 운동이 미사여구로 미화됐고 정당성으로도 연결됐다.이런일도 있었다.학생들은 김평일과 영일과는 대면하지 못하게 돼 있으나 어느날 축구를 하고 선생들이 평일 영일과 식당에 가 식사를 같이 했다.서로 불문에 부치기로 했으나 어느 선생이 노트를 두고 나와 탄로가 나 많은 선생들이 물러났다. 정무원 각료들은 파벌은 없다.그러나 이들은 개방을 원하고 있다.정무원의 모든 부장들은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강씨)김달현은 나의 친척이다.할아버지는 강선욱인데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와 6촌형제이며 전부주석 강양욱과 친형제이다.김달현은 강반석의 오빠 강진석의 손녀 사위이다. 김달현은 대외분야를 많이 맡아 92년 12월 강성산이 총리가 되면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에서 같이 승진했다.그런데 김은 강성산이 심장쇼크로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총리를 대행하면서 경제를 책임지게 됐다.그때 군수공장의 전기를 30% 삭감해 탄광등지로 보냈는데 그 때문에 군수생산계획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김일성이 받게됐다.김일성은 대노해 『정신 있는 사람인가』 하면서 질책을 했고 김달현은 사상검토를 받고 도청도 당했다.김달현은 강성산과 때로 맞서기도 했다.강성산이 내놓는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결국 김은 작년 12월 함남에 지도원으로 내려갔다. 강성산은 경제문제등이 꼬여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당뇨병이 심해졌다. 그래서 김일성이 쉬도록 권고해 88년에 함북으로 휴양을 갔다.91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는데 재기는 상상도 못했다.강성산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다.강은 중국 출신이고 아버지 강위련은 빨치산출신으로 김일성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강의 삼촌 강위룡은 아직 살아 있다.강위련은 기관총 분대장을 했는데 강이 죽자 김일성이 몹시 울었다고 한다.강은 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 이근모 연형묵등과 함께 체코에서 유학도 해 체계적으로 키워져 김일성이 등용했다.강은 김정일과도 가깝다.김정일과 사이가 나쁜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비리를 들춰 낸 것이 계기가 됐다. ­북한의 핵 상황은. ▲(강씨)김정일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핵이라 생각하고 있다.인민생활과 경제가 파탄상태인데도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핵이라고 여기고 있다.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민간공장보다 더 많다.핵이 개발됨으로써 군수공장의 투자를 민간으로 돌릴 수 있다는 논리이다.동구권국가가 허물어지면서 공격받지 않으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북한은 5개 정도의 핵폭탄생산을 완료했다.핵을 실어나를 로켓 생산은 실험단계이고 94년까지 완전 생산할 것이다.최소한 10개정도 확보한 다음에는 보유사실을 공개해 남북 대미 관계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핵폭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다만 갯수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이 이야기는 영변 핵단지에 있는 고위 간부가 아들 결혼식 때문에 나와 술과 담배 식료품등을 취급하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은 것이다. ­북한내 지식인이나 고위층주변의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어떠한가. ▲(강씨)북한의 지식인들과 일부 고위층 사이에는 김정일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이때문에 식량난과 경제난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평소 김정일은 지나치게 즉흥적인 정치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일부 원로들에 대해서까지 너무 편견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이러한 내막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나 고위층들은 그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조씨)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이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북한사회를 빠져 나올 경우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뿐 80년대 중반부터 노골화된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체제는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강씨)20년전부터 정치를 해와 권력기반은 튼튼해 수명이 길 것으로 본다.75년부터는 정권기반을 닦았으며 85년부터는 김정일이 외교권 행사를 제외하고는 총지휘했다. 당정의 지시를 받아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유일적 지도체제에서 당정은 사실상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또 기본권력수뇌부인 당정 조직 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 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총비서,주석을 다 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청진시의 화학석유공장이 91년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작년 9월 한달동안 김책제철소가 가동되지 못하는등 경제의 70%정도가 파탄지경이어서 김정일 체제 수명은 주민 불만고조로 짧아질 수도 있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총정치국장을 겸하고 있는가. ▲정치국과 참모부간의 갈등이 많아 오진우가 겸임하고 있다. ­94년을 잘 넘긴다는 뜻은 무엇이고 핵수출 가능성은. ▲지난해 김정일은 북미회담과 IAEA핵사찰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진의,핵사찰에 대한 중국의 입장등을 파악하느라 집에도 가지못하고 청사에서 자면서 북미회담을 지휘했다. 이때문에 김정일은 당시 내년(94)만 잘 넘기면 북미회담및 남북회담에서 유리하다고했다.핵수출여부는 잘 모르겠다. ­외화보유고는 얼마나 되나. ▲대성은행이 전쟁에 대비해 마카오,스위스,일본은행등에 외화유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사로청과 한총련과의 관계는. ▲사로청 산하 조선학생위원회는 사로청의 외곽지도를 받고있으나 사실상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지도하고 있다.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럴싸한 이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왜 남조선으로 오는 귀순자들이 있는지 학생들은 심각히 생각해봐야한다. 또 서강대 박홍총장의 얘기는 약과다.대남정보부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보다는 흥분하기 쉽고 혈기가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의 성격,지식,지도력,건강,가족관계는.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성질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뜻의 「패났다」는 소릴 들을 정도다. 피아노를 전문가이상으로 치는등 예술에 매우 조예가 깊다.매우 건강한편이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서 우는등 눈물도 많다. 김정일이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등 졸렬하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 않는다.83년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는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였다. 또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하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출신의 고영희씨(40)이며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송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 김군은 그러나 김정일 뒤를 이를 후계계승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김군을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을 때 김군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가. ▲(조씨)남산고등중학교 시절에는 남한 신문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가 건설부부장으로 일할 때 장관급 이상 고위직에게 보급되는 국제정세,남조선정세,과학기술정세등에 관한 참고통신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이 통신은 논평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기록돼 있다.또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같은 정보가 비밀히 나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사망으로 집단 통곡하는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조씨)북한의 주체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고 주민들은 세뇌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주민들은 주체사상이 대중과 민중을 위한 이론으로 알고 있어 이를 만든 김일성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또 주민들이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장인 강총리 숙청될것” 괴로운 표정/“북뉴스 접촉기회” 내외신기자 2백명 몰려/귀순자 기자회견장 이모저모 27일 귀순한 강명도씨와 조명철씨의 기자회견이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회견장에는 두 사람이 북한고위인사의 친인척이어서 폐쇄적인 북한 내부의 고급 뉴스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특히 일본의 교토통신과 유럽의 로이터통신등 외신기자가 보도진의 절반을 넘었으며 국내 기자들보다 앞서 질문공세를 펼침으로써 최근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강씨등은 시종 진지하고 또렷한 말투로 취재진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했으며 종래 귀순자들과는 달리 고위층 내부의 비밀스런 활동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 이날 회견에서 강씨는 여유있는 태도와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북한 내부사정을 조리있게 설명.반면에 조씨는 구체적인 답변보다는 학자풍의 원칙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해 대조적. ○…특히 강씨의 경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87년 음주교통사고를 낸 상황을 설명하면서 오의 대형벤츠 승용차 번호인 216­5555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도 해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이날 강씨는 3시간여동안의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나의 귀순과 기자회견으로 단기간내에는 강성산총리의 신변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숙청등 그 대가를 치르고 상당히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도중 땀을 훔치는 등 다소 힘든 모습을 보인 조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동료들은 북한의 모순된 체제를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달아났다고 비난할 것』이라면서 『다만 우리들의 귀순동기가 북한사회에 알려져 북한사회를 바로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인적사항 ▷강명도◁ ▲나이·생년월일:36세,58.12.4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1동7반 ▲직책: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 ▲학·경력 ­70.8∼76.9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6.10∼79.9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79.9∼82.7 중앙사로청 과외교양지도국 외사과 지도원 ­82.7∼85.10 조선인민경비대원,평양시당 39호실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7.6∼92.2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 *외국인 무단접촉으로 90.3∼92.2 평남 북창군 「18호관리소」수용 ­92.3∼ 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대외명칭 「릉라888무역회사)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부사장 ▷조명철◁ ▲나이·생년월일:35세,59.4.2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봉수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1동 8반 아파트 20층1호 ▲직책: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92.8부터 중국 북경언어학원·천진시 「남개」대학 유학 ▲학·경력 ­71.9∼77.8 남산고등중학교 졸 ­77.9∼83.8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자동조정학과 졸업 ­83.9∼87.10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 *기업관리 현대화 전공,준박사학위 취득 ­87.10∼92.7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경제수학·기업관리 현대화 강의 ­92.8∼93.7 중국 유학,북경 언어학원 중국어 연수 ­93.9∼ 중국 천진시 남개대학관리학부 연수 *경영합분야의 정책결정론 과정
  • 대동여지도/“지형도 아닌 풍수지도”

    ◎한균형 교원대교수 논문 「…교수논총」서 주장/지도 구성도가 풍수 3요소 산·강·향과 일치/산맥이 용의모습…태극지형으로 명당 표시 우리나라 고지도의 대명사인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풍수지이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지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균형 한국교원대교수(지리학)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지리학적으로 본 대동여지도」라는 제목의 논문을 「교원대 교수논총」에 발표했다. 한교수는 『대동여지도를 지도요소별로 분석하면 산맥도·하계망도·도로망도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바로 풍수지리의 기본적인 3요소인 산·강·향과 일치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볼 때 대동여지도는 틀림없는 풍수지도』라고 주장했다. 「대동여지도」는 잘 알려진 대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철종 12년)에 펴낸 약 16만분의 1 축척의 목판본 전국지도.남북 22층으로 각층은 가로 20.1㎝,세로 30.2㎝ 크기의 8폭으로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순서대로 이으면 세로 7m,가로 3m에 달하는 한장의 커다란 우리나라 전도가 된다. 한교수는 「대동여지도」가 지형 부분은 김정호 자신이 1834년(순조 34년)에 펴낸 「청구도」를 바탕으로 했으나 그림은 완전히 달라 풍수도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를테면 풍수에서 산을 용에 비유해 신성시하는 것처럼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산과 산맥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대동여지도」를 보면 풍수에서 말하는 대간용에 속하는 백두대간이 가장 굵고 소간용에 해당하는 장백정간은 가늘어지며 각각 하나 씩이 보인다.대지용과 소지용에 비유되는 많은 정맥들과 지맥들도 점점 가늘어지며 어떤 곳은 끊어져서 나타나기도 한다.이것은 연결선이 굵을수록 기가 조산으로부터 많이 전달된다는 풍수의 원리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한교수의 주장이다. 또 산태극·수태극의 태극지형으로 명당형태를 지도에 의도적으로 많이 나타낸 것이나 고을의 위치를 3면이 산으로 싸인 삼태기지형 속에 나타낸 것도 이 지도가 실제 지형의 묘사보다 풍수도로서의 역할이 강함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것이다.한교수는 『실학자였던 김정호가 당시 서양의 지도제작 기술을 참작했다면 더욱 정밀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1832년 영국의 통상압력에 이은 1854년 러시아군함 및 1856년 프랑스군함의 잇따른 출몰에 따라 나타난 조선사회의 안전지대나 명당자리에 대한 간절한 요망이 김정호로 하여금 이 지도를 만들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당시 김정호의 나이 60여세로 묘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가능성이 큰데다 조선 후기 전국 송사의 80% 가까이가 묘자리 싸움이어서 풍수지도의 출현을 사회가 몹시 갈망했다는 점도 이 지도가 만들어진데 대한 설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북대표부 “주석사망” 소식에 울음바다/「미북회담 중단」제네바 표정

    ◎북측 분향소 설치… 조문객 받을 채비 미·북 3단계고위급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제네바에서는 회담이 잠정중단된 가운데 북한대표부 직원들은 47년간 영웅시되면서 집권해온 그들의 「지도자」를 잃은데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온통 침울한 표정 ○…북한대표부는 이날 상오 인공기를 약간 내려 반기를 게양해 애도의 뜻을 나타냈으며 직원들은 모두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는등 온통 침통한 표정. 북한측은 월요일인 11일에 대표부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을 받을 계획. 대표부의 직원들은 이날 상오6시까지만해도 김일성주석의 사망사실을 몰라 부드러운 반응이었으나 그들이 김주석의 사망을 확인한 뒤부터는 격앙된 목소리로 응답을 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대표부의 한 외교관은 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강석주외교부부부장등이 뭐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그런데 신경쓸 때가 아닙니다』고 말해 어수선한 대표부분위기를 반영. ○연락받고 사실 확인 ○…북한대표부는 이날 상오5시20분(한국시간 낮12시20분)까지만 해도 김주석의 사망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기자들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야 사실을 확인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 최일1등서기관은 『평양에 사실확인을 위해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고 거듭 인사. 대표부의 한 여직원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서 『회담이 어떻게 될 것같으냐』는 질문에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냐』며 『조선사람이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비통을 감추지 못하기도. ○비상근무체제 돌입 ○…한국대표부는 이날 상오6시 허승대사와 김삼훈대사를 비롯한 전직원이 대표부에 나와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하고 대책마련에 부심. 직원들은 CNN방송에서 김주석의 사망뉴스를 시청하면서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허대사는 『고위급회담이 이번에는 잘될 것같았는데…』라고 아쉬움을 표시했으며 북한이 분향소를 설치할 경우 조문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아직 본부로부터 지침이 없다』고 답변. ◎북,평화공약 준수를/카터,애도 표명 【도쿄 연합】 북한의 김일성주석과 지난달 회담을 갖고 대화의 물꼬를 튼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9일 김주석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고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주석의 평화공약을 준수해줄 것을 당부했다. 7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카터 전대통령은 주일 미국대사관을 통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나와 아내 로절린은 김주석의 예기치않은 사망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있다』며 『김주석의 가족과 북한 국민에 대해 충심으로 슬픔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터 전대통령은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일비서등 새 지도부가 2주전에 김주석이 결단을 내린 평화공약을 준수함으로써 김주석의 업적을 빛내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올 노사안정 “가늠자”/조선3사 분규 금주가 고비

    ◎당국,“불법엔 강경대응”… 노조원도 등돌려 철도·지하철파업이후 부산·경남지역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한진중공업등 조선 3개사가 노사분규로 또 한차례 몸살을 앓고 있다. 강성 노조집행부가 장악하고 있는 이들 3개사는 산별체제를 겨냥해 올해초 결성된 「전국조선업종노조협의회」의 핵심으로 철도등의 파업사태가 아니더라도 노동당국을 벌써부터 긴장시켜온 사업장들이다. 노동부의 예상대로 이들 3개사 노조는 6월말부터 쟁의강도를 높여 조선사 노조의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 노조가 회사측의 협상안에 반발해 1,2일 벌이기로 했던 전면파업 방침을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거부하고 정상조업함으로써 일단 긴장의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 또 현대중공업과 한진중공업도 회사측이 1일 노조에서 수용가능한 현실적인 수정안을 제시하고 조합원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노조로서도 협상테이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현재 조선 3개사의 분규를 보는 시각은 낙관론이 우세하다. 대우조선의 경우 지난 87,88년 극렬한 분규로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까지 몰렸던 상황을 겪은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파업으로 회사에서 얻어낼 것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실리없는 파업은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노동부는 보고 있다. 또 최근 제시된 회사측 수정안에 조합원들이 대체로 만족스러워 하고 있는 점등도 대우조선의 임금단체협상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는 요인이다. 현대중공업노조는 2일 부분파업에 이어 다음주부터는 쟁의강도를 크게 낮추고 협상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측도 1일 ▲기본급 7.34% ▲상여금 50%인상 ▲각 수당 5천원 추가인상 ▲성과급 1백%지급등의 대폭 양보한 수정안을 제시,노조로서도 협상에 응하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다. 69년 조선공사 당시 첫 긴급조정권이 발동됐을 만큼 강성전통을 갖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조의 경우 조합원 1천여명이 28일부터 건조중인 LNG선에서 농성에 돌입,파업 장기화의 조짐도 있으나 선상파업농성이 한계가 있는데다 회사측도 ▲기본급 7.3% ▲격려금 40만원 지급등의 수정안을 제시,협상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노동부는 이들 조선 3개사의 파업 장기화 여부가 노사안정을 이루는데 관건이라고 판단,한진중공업 노조의 불법파업이 장기화되고 다른 산업체로 파업확산이 우려되면 공권력투입을 포함,정부가 쓸수 있는 모든 조처를 동원해 대응한다는 입장이어서 조선사 분규는 이번주중 최대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 담배끊을 사람… 자존심에다 거시오(박갑천칼럼)

    담배 피우는 사람이 「죄인」같이 돼가는 세상이다.집에서고 직장에서고 그렇다.심지어는 못피우게 하는 음식점도 있다.흡연자가 설땅은 그렇게 자꾸만 좁아져 간다.그래서 직장에서도 보면 몹쓸짓이라도 하는 듯이 층계 한편구석 같은데 모여서서 부옇게들 뻐끔거린다.그렇게라도 피워야 할만큼 마력을 지닌 것이 담배이긴 하다. 4천여종 유독성분이 들어있는 담배라면서 화면까지 곁들여 겁들을 준다.폐암·사망률등의 수치를 보여주기도 하고.이를 보는 공포감보다 더 두려운 것이 설땅을 옥죄면서 비참하고 비굴하게 만들어가는 현실이다.장유의 「계곡만필」에 보이는 옛날의 예찬론까지는 젖혀두더라도,「금연」이란 두글자만 보면 송충이나 독사를 보듯 소름이 끼친다고 했던 골초 공초 오상순이 오늘에 그말을 다시 한다면 말벼락·활자벼락 숱하게 받을 그런 시류가 아닌가.이미 담배를 끊은 처지이긴 하면서도 혐연권의 일방적 득세에 움츠러들고 있는 흡연권의 자닝스런 모습이 보기좋은건 아니다. 담배가 들어온 초기에는 그 약효를 믿었던 듯하다.조선사람은 아이들도 4∼5세면 담배를 피운다고 「하멜표류기」는 적어놓고 있는데 그건 회병 다스리기 위한 뻐끔질을 잘못봤던 것.비단 어린이 회병뿐 아니라 어른의 경우도 해소·담·가래를 삭이는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이에 대해서는 「지봉유설」이나 「성호사설」도 언급하고 있다.그야말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얘기이다.이젠 약효는 커녕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의 꼬리를 이어준다는 따위 정서적 예찬론도 발붙일 수 없는 백해무익쪽.정신병으로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형편이다. 사상 처음으로 담배소비가 줄어들었다고 한다.5월말까지 작년보다 14.5%나 덜팔렸다는 것.그렇긴 해도 새로 피우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난다.시름과 함께 뿜어내는 자연의 맛과 멋 때문이다.그걸 설명해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있다.『내가 겪은 일중에서 가장 쉬운게 담배 끊는 일이었지』.그 다음이 재미있다.『왜냐고? 천번도 더 끊었으니까』.이 마크 트웨인과 같이 끊고 피우고를 되풀이해 오는 사람은 또 얼마이겠는가. 시시덕거리며 담배 피우는 기녀들을 호되게 꾸짖고서 자신의 담뱃대를 끊고 담배까지 끊은 근재 박윤원의 결단력을 생각해 보자.까짓거 치사해서 오기로라도 끊어야 할 시류가 아닌가.약을 먹느니 침을 맞느니 할일은 아니다.자존심에다 걸고 끊어야 한다.그거하나 실천 못하는 의지로 뭘하겠느냐는 자존심에다 걸어보라는 말이다.자존심 강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끊을 수 있을 것이다.
  • 현대중 내일 부분파업/5시간/전기협탄압 규탄대회도

    【울산=이용호기자】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 이갑용)는 25일 오는 27일 상오10시부터 12시까지와 하오2시부터 5시까지 모두 5시간 파업을 실시,중앙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과 함께 전국기관사협회 공권력투입 규탄대회를 갖기로 했다. 노조측은 또 27일이후 실시키로 했던 쟁의방침을 바꿔 이날 상오10시부터 휴식시간 10분을 20분 연장,30분으로 늘리는 전조합원 휴식파업을 벌이는등 쟁의강도를 높였다. 한편 조선사업부 의장3부 근로자 1천4백61명은 지난 24일 실시한 출근투쟁 과정에서 있었던 관리직사원들과 조선사업부조합원과의 몸싸움에 항의,25일 상오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동안 작업을 전면중단하는 부분파업을 벌였다.
  • “나는 한국전에 이렇게 참전했다”/중국군의 증언

    ◎중국군 참전병사 2인 인터뷰 중국은 미국이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만주까지 넘봤다는 당시의 주장을 아직까지도 공식 입장으로 고수하고 있다.대부분의 일반 주민들도 그대로 믿고 있다.특파원이 만난 당시 참전 병사들도 그랬다. 이같이 한국전에 관한 정확한 재평가가 없어선지 고위 지휘관 출신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그래서 어렵사리 사병과 초급 지휘자 몇 사람의 체험만을 들을 수 있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가식없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우리 땅에 왔던 「중공군」들의 40년후 회고담을 들으며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었다. ◎“동홍각/“미서 중국 침략” 선전 믿고 압록강 도하/51년3월 터키군과 교전… 4명만 살아 『미국은 왜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남북조선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괴로움을 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50년 11월 중순 중국인민지원군의 한 분대장으로 압록강을 넘었던 동홍각씨(66·가명)는 아직도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그는 미국이 49년에 나라를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을 넘어뜨리기 위해 조선북쪽을 삼키고 압록강까지 와서 중국땅 단동에까지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으며,이는 일본이 조선반도를 거쳐 만주를 빼앗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수법이라고까지 주장했다.당시 중국에선 병사들에게 참전명분을 이렇게 선전했던 모양이다. ­당시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사실을 언제 처음 알았었나. 『1950년 10월초로 기억된다.당시 미군이 인천에 상륙해서 조선이 불바다가 되었다는 전쟁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었다』 ­이 전쟁은 6·25전쟁이라고도 한다.이는 6월25일에 일어난 때문인데 그로부터 4개월도 더 지난뒤에야 개전소식을 알았단 말인가. 『그렇다.우리는 군대에서 훈련 받느라 6월에 전쟁이 터졌다는 얘기는 못들었다.아무도 그런 얘기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그뒤 2∼3개월만에 낙동강이남을 제외한 한국 땅 대부분을 점령했다.그래서 미군을 비롯한 16개국 유엔군이 참전키로 했다.미군이 먼저 침략했다면 유엔깃발아래 16개국가의 유엔군이 어떻게 파견될수 있었겠는가. 『처음 듣는 얘기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격전지는. 『51년3월에 우리 중국군 30명은 한 고지를 지키고 있었는데 터키군 1백80여명이 한밤중에 산위로 진격해 올라왔다.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육박전까지 벌이다가 도망치듯 하산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고지에는 터키군도 보이지 않아 그들도 밤중에 퇴각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이 전투에서 받은 칼자국 상처가 아직도 내몸 여러곳에 남아있는데 당시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쪽에선 단 4명뿐이었다』 ­전쟁중 고통스러웠던 점은. 『우리의 군장비나 무기는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유엔군에 비해 크게 낙후됐었다.그렇다고 북조선에서 물자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식량이나 의류등 모든것을 중국에서 가져 갔다.우리가 신세진 것은 먹는 물뿐이었다.이같은 장비의 낙후외에도 제공권을 완전 장악한 미군의 끈질긴 공습으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8노군때부터 군대생활을 시작해 국공내전과 이른바 6·25때의 항미원조참전을 거쳐 70년대 중반까지 현역생활을 했던 그는 『전쟁으로 손해보는 것은 인민들 뿐이다.인민들만 온갖 고통을 받는다』고 말하고 『전쟁중 부모형제를 잃고 넋이 나간채 울부짖던 고아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리속에 생생히 남아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강/소속부대원 1천명중 2백여명 전사/보급물자 모자라 미군이 버린 약품써 『중국군 의무부대에는 당시 약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미군들이 버리고 간 의약품이 중국군 부상병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우리는 심지어 미군시신을 샅샅이 뒤져서 약품을 챙겨 쓰기도 했다』 한국전 당시 의무병 반장으로 참전했던 왕강씨(64)의 회고다.그는 당시 중국군은 물자가 너무 부족했지만 미군이나 기타 유엔군들은 보급물자가 풍족해서 부럽기 한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래서 당시 중국군인들이 전투때마다 꼭 승리하려고 기를 썼던 이유중에는 승리한후 적군이 소지했던 맛있는 음식이나 약품등을 빼앗아 쓸수 있다는 희망도 꼽지 않을수없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군 의무부대에서는 어떤 약들을 보유하고 있었나. 『중국에서 제조한 서양의약품들로 진통제·지혈제·소염제가루에 붕대정도를 갖고 있었던게 전부였다.당시 한약은 가져가지 않았었다』 ­의무병이어서 당신은 비교적 안전하게 지냈겠다. 『그런 것도 아니다.내 몸에도 세군데나 상처가 남아있다.특히 내 오른쪽 가슴에는 탄환이 완전히 뚫고 나갔었다.천만다행으로 당시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좋은 약을 써서 탄환 상처를 깨끗이 완치시킬수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한번 사용했던 붕대를 다시 쓰기 위해 냇가에서 빨래하고 있을 때 총탄을 맞았다고 했다.놀라운 사실은 그 당시는 총소리도 못듣고 아픈줄도 모르고 막사로 돌아왔는데 동료들이 등뒤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고 말해줘서야 총맞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당시 가장 고통스럽던 기억은 무엇인가. 『먹을 게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우리는 밥이나 고기 채소류는 먹어보지도 못했다.강냉이를 먹거나 녹두 콩등으로 만든 미숫가루로 연명하는 게 고작이었다.워낙 영양가 없는 것들만 조금씩 먹다보니 야맹증에 걸려서 제대후에도 오랫동안 고생했다』 왕씨는 50년10월25일 66군 588단 위생반장으로 압록강을 건넌후 이듬해인 51년4월까지 불과 반년남짓 참전하고는 귀국했다.그후엔 중상을 입고 중국으로 후송돼온 병사들을 치료하느라 바삐 보냈다는 것이다. ­당신소속 부대는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가. 『588단은 1천여명에 달했다.그중 2백여명이 전사했다.이들은 마대자루에 넣어 그대로 땅에 묻어버렸다.부상병도 수없이 많았는데 주로 민간주택에서 20∼30명씩 모아 치료를 하다가 어떤때는 미군의 공습으로 혼쭐이 나기도 하고 전투가 조용해지면 좀더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후송하기도 했다』 ­요즘은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전쟁에서는 침략자든 피침략자든 어느쪽을 막론하고 피해를 보는 것은 인민이라는 생각이다.그래서 다시는 참전하고 싶지 않다.우리 자손들에게도 전쟁이 일어나면 불참하라고 권유하겠다』
  • 타슈켄트(외언내언)

    『조선사람으는 김치랑 밥이랑 먹을 째비지.빵만 먹고 어찌 살갔음』우즈베크공화국에 사는 한인들은 그렇게 말한다.그렇다고 그들이 교민 1세들만도 아니다.50·60대의 그곳서 태어난 2세들도 그렇게 말한다.「째비」란 말이 많이 나와서 무슨 말인가고 물었더니 「조선사람으가」어째서 조선말도 모르느냐고 오히려 핀잔만 줄뿐 딱히 설명도 못한다. 억양이나 사투리로 보아 1930년대의 함경도언어쯤 되는 말투를 그들은 쓰고있다.그시절의 우리말과 생활풍습 그대로 타임캡슐 속에 칩거해 있다가 방금 튀어나온 사람들같은 한인들이 우즈베크공화국에만 20여만명이 살고 있다. 거의가 30년대 말께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원동 연해주로부터 옮겨온 후예들이다.열사의 중앙아시아땅에 내버리듯 던져졌지만 지혜롭고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오늘을 보게된 우리의 동포들이다.아마도 그들을 여전히 그렇게 「조선사람」이게 한 힘이 오늘의 그들을 있게 했을 것이다.우수하고 지혜로워서 『잘 사는 소수민족』으로 존중받으며 살고있다. 소연방에 합쳐져 70여년이 되었지만 결코 러시아에 동화되기를 원치 않았던 민족의식이 강한 이 나라는 소련해체후 제일 먼저 독립을 하고 언어부터 우즈베크어를 공식언어로 바꿨다.타슈켄트만 해도 민족주의 회귀로 소수민족에게 가혹하게 구는 분위기가 고개를 들고 있는 도시다.그러면서도 한국처럼 신생국이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당찬 나라에 대해서는 배우고 지원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되어 손짓하는 나라다. 그 수도 타슈켄트를 오늘 대한민국의 김영삼대통령이 방문한다.최상의 국빈대접을 받으며 찾아온 조국의 대통령이 그곳 동포들에게는 참으로 자랑스럽고 소중할 것이다.그 먼 이역에까지 조국을 옮겨다 보여주는 대통령에게 오랜 세월 한맺혔던 그곳 한인동포들은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대통령의 방문이 큰 위로와 고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조선설비 확장말라” 선진국 압력

    ◎미·일·EU,“세계 조선시장 타격” 구실로/「합리화」 해제 석달만에 정부개입 불가피/“중단땐 투자손실 엄청” 업계,대책 고심 우리 조선업계가 도크를 신·증설하려는 계획에 대해 미국·일본·유럽연합(EU)등 선진국들이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정부도 이에 못이겨 지난 연말 조선업을 합리화업종에서 해제한지 3개월만에 또다시 조정,개입할 전망이다. 23일 상공자원부에 따르면 미국과 EU 등 선진국들은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조선 수뇌회담,한·일·EU 등이 참석한 14일의 조선업계 회의,14∼18일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자간 조선협상에서 잇따라 강력한 항의를 제기,통상마찰로 비화될 조짐이다.특히 OECD 협상에서는 미국,일본,EU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상공자원부 박삼규 차관보는 『우리의 설비확장이 세계 조선업계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선진국들의 항의가 이미 국제적인 통상압력으로 나타나고 있어,피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일단 업계의 자율조정에 맡기지만 실패할 경우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선진국들은 현재 세계 조선시장의 공급능력이 7백만∼9백만t이나 넘치는 상태에서 한국이 3백만t을 증설할 경우 과잉설비가 1천만∼1천3백만t으로 늘어나 세계 조선업계가 큰 타격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국내 조선업계는 『신·증설은 규모의 경제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정부가 자율조정을 유도하더라도 엄청난 투자손실 때문에 이미 착수한 도크증설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 조선업계의 공급능력은 1천8백만∼2천3백만t,우리는 5백만t으로 증설계획량은 현대 1백20만t,삼성 70만t,한라 60만t 등이다. 업계는 지난 80년 과당경쟁을 막기위해 자율조정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각 조선사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해결책을 찾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따라서 선진국들의 통상압력도 더욱 거세어질 전망이다.
  • “시베리아 벌목장에 감옥도 있다”(북한 이모저모)

    ◎봄철 식목 독려 궐기대회 잇달아 ○이즈베스티아지 보도 ○…시베리아 벌목장에는 1만여명의 북한노동자들이 있으며 이들의 노동조건은 「강제노동수용소」를 방불케 한다고 러시아 유력지 이즈베스티야 최근호가 보도. 이즈베스티야는 「조선특무기관들이 도망한 벌목공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제하의 기사에서 올해초 하바로프스크변강의 임산사업소에서 탈출한 한 북한노동자의 말을 인용,『조선사람이 일하는 임산사업소들은 강제노동수용소와 차이가 없으며 거기에는 조선의 특무기관이 상주,자체의 감옥도 가지고 있다』면서 그같이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벌목장에서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은 극동지역에 숨어지내면서 러시아주재 한국공관에 「정치적 피난처」를 요청하고 있으나 북한주민이라는 증명서조차 구비하고 있지 않아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 ○음반시장 무역분쟁 관심 ○…북한은 UR협상의 타결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영화·비디오·음반 등과 같은 「음상제품」부문에서의 국제적인 분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특히 미국의 해외영상음반 시장 진출을 둘러싼 무역분쟁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최근호에서 『UR협상은 끝났으나 일련의 문제들에서 미국과 유럽공동체(EU)사이의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음상제품의 분쟁도 그 중의 하나이며 특히 영화와 녹화물·텔레비전연속물 분야의 문제가 복잡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이 음상제품을 EU등 외국시장에 들이밀어 미국식 문화와 생활양식을 퍼뜨리고 자기나라의 영화업체들과 관련분야를 보호하려하고 있다면서 이에대해 EU국가들은 미국의 압력에 맞서 자기시장과 문화를 지키려 하고 있다고 소개. ○「세금없는 나라」체제 선전 ○…북한은 21일 남북한의 세금제도를 비교,『북의 인민들은 세금없는 나라에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으나 남조선인민들은 세계최악의 세금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이날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앤 데 대하여」법령채택20주(3·20)를 맞아 내보낸 특집프로에서 북한사회에서는 세금철폐후 20년동안 『자기가 일한 몫에 따르는 분배보다 더 많은 국가적및 사회적 혜택을 받아 행복한 삶이 보장됐다』고 말했다. 북한방송들은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세금수탈행위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현정권과 기어이 결판을 내고 말 것』등으로 왜곡하기도. ○정무원·노동자 모범 촉구 ○…북한은 최근 식수절(4·6)을 앞두고 지역별로 「봄철 나무심기를 군중적 운동으로 전개하기 위한 궐기모임」을 잇달아 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북한은 지난 19일 평성에서 평남도 궐기모임을 열고 올해 평남도에 할당된 조림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도·시급 기관및 기업소의 정무원들과 노동자·사무원·학생·가두인민반들이 모범이 될 것을 촉구했다고 평성방송이 20일 보도.
  • 「모호성」유지,대미 핵협상 주도 포석/특사교환「시간끌기」북의 속셈

    ◎대미수교·경협 얻되 한미공조 깨기/급속한 교류따른 주민동요 우려도 16일 열린 남북한 실무접촉이 성과없이 끝남에 따라 당초 21일로 예정된 미·북 3단계회담 이전의 남북 특사교환이 일단 무산됐다. 또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한 사찰 역시 핵의혹을 해소하는데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IAEA가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핵사찰은 일단 끝났지만 북측이 방사화학실험실 시료채취 등 2개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활동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북측이 이처럼 핵사찰에 순순히 응하지 않은 것은 핵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인지,아니면 핵카드를 활용하기 위해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려는 노림수인지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IAEA의 사찰개시→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개시및 팀스피리트훈련 중단 선언→특사교환→3단계 미·북회담이라는 지난 2월 미·북한간 뉴욕합의가 전체적으로 뒤틀리게 됐다는 점이다.우선 미·북3단계회담의 연기가 불가피하게 됐다. 따라서 이같은 「작은 일괄거래」의 성과를 토대로 3단계 미·북회담에서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과 IAEA의 특별사찰 등을 맞바꾸는 「큰 일괄타결」을 꽤해나간다는 한미 양국의 구상이 차질을 빚게 됐다.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표를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을 맞은 셈이다. 사실 특사의 교환절차에 대해서는 ▲특사의 임무 ▲방문순차 ▲방문기간 등 3개를 제외하고는 이미 거의 의견접근이 이뤄진 상태이다.특사의 임무도 북측이 주장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방도 확정등 3개항에 대해서 우리측이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에 기초한 통일 실현문제」라는 양보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북한의 최종 선택만 남은 상황이다. 북측은 올들어 열린 4차접촉부터 지난해의 이른바 「핵전쟁연습중지」와 국제공조체제 포기 주장에다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계획 중지와 김영삼대통령의 북한핵 관련 발언 취소 등 2개항을 추가,특사교환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왔다.북측은 이 4개항을 6차접촉에선 스스로 철회했으나 대신 특사교환 의지를 담은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자는 또 다른 엉뚱한 주장을 제기해 16일 7차접촉에서까지 고집했다.특사교환 절차를 합의하려는 마당에 새삼스럽게 특사교환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합의하자고 요구한 것은 4개항의 전제조건과 마찬가지로 특사교환을 지연시키겠다는 의도와 다를 바가 아니다. 북한이 이처럼 특사교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크게 두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하나는 극심한 경제난 등으로 체제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주민의식의 동요가 수반될 지도 모르는 급속한 남북관계 개선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가설이다.다른 하나는 어차피 핵게임을 벌이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이나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그 과정에서 한미 양측을 이간시키는 부수 효과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9일의 8차접촉에서 특사교환에 극적으로 합의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이 이같은 속셈을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물론 조만간 발표될 IAEA측의 중간 사찰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와 미·북 3단계회담이 잠정 취소될 경우 특사교환자체가 완전 물건너가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북 「공동발표문」 고집… 2시간 설전만/남북 7차 실무접촉 스케치 16일의 제7차 남북한 실무접촉은 북측이 6차 접촉에서 엉뚱하게 제기한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자고 계속 주장하는 바람에 한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2시간여에 걸친 이날 접촉은 쌍방이 「공동발표문」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으로 회담시간의 3분의 2를 허비하는 등 북측의 계산된 지연술로 인해 격렬한 논쟁으로 일관됐다. ○…우리측 송영대수석대표는 북측이 지난 6차 접촉에서 제기한 공동발표문 합의를 다시 들고 나오자 『알맹이가 없는 원칙을 합의하자고 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 박영수대표단장이 이 문제를 거듭 제기하자 송대표는 공동보도문 발표 제안을 회담 지연책략으로 비판한 내용의 사설을 담은 국내신문 스크랩을 보여주며 『이는 내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국민의 의견』이라며 절차문제에 대한 실질토의를 촉구. ○…송대표는 회담을 마친 후 『절차문제의 핵심 사항인 특사의 임무 등 3개 이견부분에 대해 절충안도 내놓지 않고 공동발표문이라는 장애물을 설치한 북측의 태도는 퍽 실망스럽다』면서 『말로만 특사교환을 하자면서 말과 행동이 다른 북측의 태도를 좀더 지켜보겠다』며 오는 19일 접촉에서 북측의 태도 변화에 한가닥 기대. ○…송대표는 회담에 들어가면서 이날 접촉이 7차인 점을 의식,『89년 박선생과 함께한 고향방문을 위한 접촉이 7차까지만 하고 성과없이 끝났으나 그때는 그때고 7은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이므로 잘 해보자』고 한마디. 그러자 북측 박단장은 『7은 예수가 6일간 일을 하고 하루를 쉬었다는 뜻에서 그런 얘기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독교문화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조선사람들은 3을 좋아하는 숫자로 알아왔다』,『숫자에 구애될 것이 뭐있느냐』고 찬바람일 듯 응수. 송대표는 그동안 접촉에서 북측 박단장이 자주 언급한 「오늘로 합의를 끝내자」라고한 대목을 겨냥,『성과가 없어 겨레에게 실망만 주고 있는데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실질적 합의를 독촉. ◎전기침 중국외교부장 한시로 “핵 지속협상을” 중국의 전기침외교부장이 16일 북한핵사찰문제와 관련,한시까지 인용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난관을 극복해갈 것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전부장은 이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8기2차회의에서 주선한 대외문제관련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최근의 핵사찰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산궁수진응무로,유암화명우일촌」(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길이 없는 듯하나 자세히 찾아보면 더 좋은 마을이 나타난다)이라는 시구를 인용,인내심 있는 협상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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