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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 총공세 펴는 北…진정성 의심하는 韓·美

    북한의 ‘대화공세’가 눈에 띄게 세지고 있다. 특유의 ‘알맹이 없는 말장난’이라는 평가가 상존하지만, 북한이 실질적인 국면 전환으로 가는 수순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5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베이징에서 “9·19공동성명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유화적 발언을 ‘한사발’ 쏟아낸 데 이어 1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이행하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16일 보도에서 북한의 최근 전략에 대해 ‘화해공세’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도 주목된다. 조선신보는 북한이 지난달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9월 이후의 화해공세는 고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도했다. 이어 “북남관계를 그 어떤 국제파동에도 끄떡없는 동족 간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키는 것이 조선노동당과 공화국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이라며 “북남관계 개선의 돌파구도, 2012년(강성대국 달성 시한)을 향한 노정도, 위에서 또렷이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9·19 공동성명에는 비핵화뿐 아니라 북한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결도 함께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번에 구체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도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대화를 위한 미끼로서 (대북)제재를 해제할 의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북한이 다음 수순으로 한·미 정부가 요구하는 ‘비핵화의 행동’을 제시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변 핵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접근을 전격 허용하는 조치 등을 말한다. 실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답변에서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IAEA 사찰단 복귀와 핵시설 모라토리엄 선언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대화국면으로 본격 전환될 것이라거나, 수개월 내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관측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신보가 16일 북·미관계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유독 강조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한편 한·미·중·일·러 5개국의 6자회담 차석대표들이 18~19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1차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기고] 격랑 속의 한반도, 국가안보 이상 없나/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

    [기고] 격랑 속의 한반도, 국가안보 이상 없나/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

    북한이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김정일의 셋째아들 김정은의 권력 세습을 공식화했다. 김정은은 지난 10일 당 창건 기념대회에서 열병식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내 ‘선군(先軍)영도의 계승’과 군의 충성심을 과시하며 후계체제 굳히기에 한발 더 다가선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국에서는 북한의 독재체제를 비판하며 망명했던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타계했다. 황 전 비서는 김일성 생존 시 북한에서 ‘인간 중심의 주체철학’을 창시하고 김정일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쳤다. 그러나 북한의 독재 세습에 항거해 가족의 희생을 감수하고 망명을 결행했다. 그의 주체철학이 민주주의와 부합되지 않지만 북한체제의 반(反)역사적이고 반(反)인간적인 실체를 폭로한 용기는 오래 기려져야 한다. 김정은의 후계자 부상과 황장엽 타계는 한반도 안보 상황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특히 북한 내부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김정일의 병세가 깊어 유고가 임박해지고 있는 가운데 경험이 일천한 20대 후반의 김정은이 90만의 군대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면 한반도는 새로운 위기 상황을 맞게 된다.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실패할 경우, 격렬한 권력투쟁과 급변사태로 한반도 전체가 불안한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도 높다. 어떤 시나리오든 한반도가 격랑의 시기에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중국은 권력세습을 비난하는 국제사회 여론에 역행해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와 부주석 시진핑(習近平) 등이 북한을 지지하고 나섰다. 북한을 ‘완충지대’로 간주해 준(準) 위성국가화하려는 중국의 한반도정책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한국의 국익과 통일정책에 맞지 않다. 국제사회의 평화추구 정신에도 어긋나며 장기적으로 중국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편 한·미 양국은 지난 8일 제4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공동인식하고 핵 억제력을 재확인했다. 또 한 단계 발전된 핵 ‘확장억제정책위원회’ 신설에 합의했다. 아울러 2015년 12월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한 새로운 작전계획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를 전제로 마련되는 대비책들은 한반도 안보를 보장하기엔 부족하다. 현 한미연합사 체제야말로 양국군의 단일 지휘체제하에서 한반도 전쟁억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SCM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2만 8500명 동결의 명문화를 거부한 대신 이들을 해외로 차출할 수 있게 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재거론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미 양국이 ‘천안함’사건 이후 중국의 동북아 팽창전략에 대처함에 있어 이견을 보여왔기에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미국과 중국 등 열강이 각축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중도(中道) 외교’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의 한반도 팽창전략에 공동대처하는 것이 옳은 전략이라고 본다.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일체가 돼 안보태세 확립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반미 종북좌파의 확산을 막고 대외적으로 북한 후계체제의 무모한 도발 가능성에 대처하며, 동북아 열강 간 세력 재분포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 [故 황장엽씨 영결식] 분단의 초상… 통일의 화신으로

    [故 황장엽씨 영결식] 분단의 초상… 통일의 화신으로

    “걸머지고 걸어온 보따리는 누구에게 맡기고 가나 / 정든 산천과 갈라진 겨레는 또 어떻게 하고. / (중략) / 삶을 안겨준 조국의 거룩한 뜻 되새기며.”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2008년 유작시 ‘이별’ 중) ‘비운의 망명객’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험난했던 삶을 뒤로하고 영면에 들었다. 14일 오전 영결식이 치러진 서울 풍납동 현대아산병원은 조용한 흐느낌 속에 내내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였다. 서정수 민주주의정치철학연구소 이사가 지난 4월 황 전 비서에게서 받아 보관해 온 고인의 자작시 ‘이별’을 낭송할 때에는 1층 로비가 아예 울음바다가 됐다. 통일사회장으로 엄수된 영결식에는 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68)씨를 비롯해 명예 장의위원장을 맡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 정몽준 의원 등 조문객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측 인사들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민주당 인사 등이 불참한 것과 관련, “친북 좌파세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만큼 북한 문제에 보다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이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약 50분에 걸친 영결식이 끝나자 영정, 위패를 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안혁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따라 고인의 관이 장례식장 밖에 있던 운구차에 실렸다. 오후 2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린 운구차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도착했다. 40여분 뒤 태극기로 덮인 고인의 관이 묘역에 들어서자 고인에 대한 경례와 함께 안장식이 거행됐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의 약력 보고와 정희경 청강학원 이사장의 조사가 낭독됐다. 강찬조 대전지방경찰청장과 탈북단체 회원 등 3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안장식을 지켜보던 탈북자 출신의 한 노인은 “내 가족을 잃은 것처럼 슬프다. 북한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탈북자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후 3시. 대전현충원장 등의 헌화·분향에 이어 하관이 진행됐다. 유가족 대표인 김숙향씨가 “고인의 위업을 계승하는 일로써 국민의 관심과 격려에 보답하겠다.”면서 “장례를 함께해 준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고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자리로 돌아가려던 김씨는 지친 탓인지 크게 휘청거려 옆에 서 있던 지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유가족을 비롯해 참석자들이 흙을 한줌씩 집어 관 위에 뿌리면서 안장식은 막바지에 달았다. 색소폰을 든 한 60대 남성이 진혼곡으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면서 안장식이 마무리됐다. 한편 대전현충원은 고 황 전 비서가 잠든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의 폐쇄회로(CC)TV를 보강하고 전담 경비인력을 확충한다고 밝혔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故 황장엽씨 영결식] 부검 결과 감감무소식 왜?

    고(故)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부검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황 전 비서가 사망한 날 수사당국이 즉시 부검을 실시했으나 검시 결과 발표를 두 차례 미뤘고, 14일 안장식이 마무리될 때까지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경찰에 ‘부검 감정서’를 전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정확한 사망원인을 분석한 ‘부검 감정서’를 아직 보내오지 않았다.”면서 “신중을 기하기 위해 심장조직·병리검사 등까지 포함한 정밀검사를 추가로 실시하느라 시간이 늦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검 결과에서 (타살 등) ‘특이 소견’이 발견됐다면 중간에 통보가 와서 수사에 착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검사의 종류와 사안에 따라 부검 기간은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곽정식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는 “화학검사, 혈중알코올농도, 조직 검사 등을 포함시키면 며칠,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 혈중알코올농도 검사는 금방 끝나는 데 반해 심장조직을 떼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은 일주일가량 걸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간단한 부검이라 해도 법의학자의 소견서 작성 기간을 포함하면 1주일 정도는 필요하다.”고 전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진보·보수 인사 2인 소회] “황씨와 나는 악연이었다”

    [진보·보수 인사 2인 소회] “황씨와 나는 악연이었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사망 이후 새삼 주목 받는 인물이 있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다. 황 전 비서는 지난 1997년 망명 직후 국가안전기획부 통일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에서 “송 교수는 김철수라는 가명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주장했다. 이듬해 송 교수는 황 전 비서를 상대로 1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4년 심리 끝에 “송 교수를 ‘김철수’라고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노동당 후보위원” 황씨증언으로 구속 2003년 9월, ‘37년’ 만에 조국을 찾은 송 교수는 ‘1991년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돼 반국가 단체의 임무에 종사했다.’는 혐의로 그해 10월 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송 교수를 기소한 데는 황 전 비서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황 전 비서가 1990년대 초반 김용순 북한 대남담당 비서로부터 ‘송씨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더니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2008년 대법원은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황 전 비서는 지난 10일 세상을 떠났다. 13일 독일 베를린 자택에 있던 송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황 전 비서와 나는 악연”이라고 말했다. 학자로 만난 기억밖에 없는데 황 전 비서가 남한으로 온 뒤 왜 말을 바꿔가며 자신을 ‘해방 이후 최대 거물 간첩’으로 둔갑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송 교수는 학자 ‘황장엽’에 대해서도 “전혀 대화가 안 됐다. 오히려 그의 제자인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장 김영춘, 주체사상연구소 실장 박승덕, 주체과학원사회학연구소 소장 이성갑 등이 여러 나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비교적 얘기가 통했다.”고 평가했다. ●“분단의 기류가 폭풍처럼 밀려오는 듯” 2004년 2월 재판정에서 10여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 전 비서와의 연이은 악연에 대해 송 교수는 “당시 공안당국이 황 전 비서를 앞세워 나를 창끝으로 삼아 노무현 정부를 겨냥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분단의 기류가 한반도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으로 만나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이 밀려오는 상황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날 정부가 황 전 비서를 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송 교수는 “황 전 비서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지 평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정부의 조치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교수는 “북한이 싫어하는 인물을 현충원에 안장하면 불필요하게 북한을 건드리는 꼴이 된다. 안 그래도 주변국과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남북이 단결해 힘을 확장해야 하는데(이번 결정은)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송 교수는 지난해 독일 뮌스터대학을 정년퇴직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이문열씨 “북한의 실상 소설로”

    고(故) 황장엽(87)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13일에도 하루 종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전 국가보훈처가 황 전 비서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빈소를 지키던 유가족과 탈북자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유가족·탈북자들 ‘환영’ 장례위원회 대변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유가족과 탈북자 단체 등이 상의해 통일이 될 때까지 현충원에 안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며 “평소 선생님께서 늘 평양에 가겠다는 말씀을 해왔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 바로 평양으로 묘역을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 전두환 전 대통령, 정운찬 전 총리,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조현오 경찰청장, 소설가 이문열씨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 총리는 “탈북자들을 깊이 껴안아 준 귀중한 분이신데 돌아가셔서 애석하다.”면서 “평안히 잠드시고 통일이 된 뒤 고향으로 돌아가시길 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황 전 비서의 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정부에서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전 전 대통령은 “황 선생님 같은 용기 있는 분이 북한의 실정을 알려 북한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는 일부 계층에 좋은 교육이 됐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축원하고 북한에 많은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문열씨는 조문을 마치고 나와 “황 선생과 종종 만나 그만 아는 북한에 대한 것을 많이 들었다.”면서 “작품을 계획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 쓰게 되면 (들은 것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의금, 장례비용·탈북자 지원 등에 쓰여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의 향후 용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3일 오후까지 32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가 부의금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을 포함한 전경련 임원진이 1억원의 부의금을 전달했다. 황 전 비서의 수양딸이자 상주인 김숙향(68)씨는 법적 대리인 조원룡 변호사를 통해 “부의금 일부는 장례 비용에 쓰고 나머지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탈북자 지원, 북한 민주화 사업 등에 쓰겠다.”고 전했다. 조 변호사는 “남는 부의금은 북한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겠다.”고 덧붙였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황장엽 ‘1등급’ 무궁화장 추서

    황장엽 ‘1등급’ 무궁화장 추서

    행정안전부는 12일 고(故)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 역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통일부에서 황 전 비서에 대해 1등급 훈장을 추천해옴에 따라 내부 검토를 통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맹형규 장관은 오후 황 전 비서 빈소가 마련된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해 직접 훈장을 전달했다. 상훈법에 명시된 훈장은 국민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으로 각각 5등급까지 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황 전 비서는 ‘국가나 사회에 현저히 공헌한 사람 중 사망한 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으로 안장 대상자에 해당한다. 국가보훈처는 13일 오전 안장대상심의위원회를 열어 국립현충원 안장여부를 심의, 결정한다. 앞서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 당시 희생자가 1등급 훈장을 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례가 있다. 안장여부는 발인인 14일 전까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보수도 진보도 흔든 ‘黃의 죽음’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사망 사건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새삼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황 전 비서에 대한 서훈 및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 등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세력은 해묵은 ‘색깔’ 논쟁을 벌이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 및 진보세력 내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시각차가 나타나고 있으며, 보수세력 역시 내부 의견차이를 보이는 등 분화한 이념의 스펙트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진보의 복잡한 시선 진보진영은 북한의 ‘3대 권력세습’ 평가 문제로까지 확대돼 더욱 복잡한 분화 양상을 드러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12일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 “북한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라며 “중요한 현상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진보정치세력을 포함, 모든 정치세력의 기본적 의무”라고 밝혔다. 그는 “통일은 남북한, 국민, 민중의 통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사로, 이에 대해 분명한 자기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진보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8일 “남북관계가 평화, 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라면서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이 민주노동당과 나의 선택”이라고 밝힌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민주당도 황씨를 조문하느냐 마느냐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날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에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손학규 대표를 대신해 양승조 비서실장이 찾아와 조문했다. 남북관계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박지원 원내대표 등 원내대표단도 12일 ‘망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조문했다. ●보수의 미묘한 시각차 보수 진영도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현충원 안장 등은 지나친 대접이라는 평가에서다. “북한 1인 독재지배에 충성하고 그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에게 어떻게 훈장을 주고 국립묘지에 안장을 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황 전 비서가 북한에서 탈출해 그동안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발표한 건 높이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현충원까지 가서 대우를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원희룡 사무총장이 이 의견을 공식 제기했다. 원 총장은 내부 회의에서 “(현충원 안장이) 좋지 않다는 여론이 높다.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김무성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점검회의에서 “황장엽 선생은 북한 주민이 김정일 독재 안에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내 자생적 주사파, 종북주의자들이 뉘우치고 전향하도록 한 공이 있다.”며 국가유공자급 예우를 거듭 강조했다. 중앙대 이상돈 교수는 “진보와 보수가 이념적으로 갈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황 전 비서를 둘러싼 문제가 수면 아래에만 있다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문제는 앞으로 주요 정치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혜영·김정은기자 koohy@seoul.co.kr ▶관련기사 2면
  • YS “생명 걸고 한국행 선택한 애국자”

    YS “생명 걸고 한국행 선택한 애국자”

    염습사들이 앙상하게 마른 시신에 천천히 삼베 수의를 입혔다. 160㎝, 40㎏의 작은 체구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그러나 하얀 면포 사이로 드러난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고(故) 황장엽(87)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황 전 비서 사망 사흘째인 12일 오전 11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에서 입관식이 시작됐다. 입관식에는 황 전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68)씨와 지인, 장례위원회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입관 절차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염습사가 얼굴을 수의로 감싸기 전 “고인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드리겠다.”며 한켠으로 물러났다. 의연하게 눈물을 참던 김씨가 고인의 목과 가슴 등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지인들도 “편하게 가세요.”, “아버지”를 외치며 통곡했다.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이날도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후 7시까지 다녀간 조문객만 2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장의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임태희 대통령실장,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등 정관계 인사와 탈북자 단체 회원들도 잇따라 빈소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고인에 대해 “남한에 와서 다른 사람을 접촉할 수 있게 됐을 때 그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나”라며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을 같이 했다. 탈북한 뒤 부인과 아들이 자살하고 딸까지 모두 죽어 얼마나 외로웠겠나. 나랑 만나는 것을 큰 위로로 삼았다.”고 돌이켰다. 또 “해외에 갔을때 누가 목숨 위험하니 여기 망명하라고 하자 ‘그게 무서웠으면 내가 왜 한국 왔겠냐.’고 하더라.”며 “목숨걸고 한국행 선택한 훌륭한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오후 9시 넘어 빈소를 찾은 이정국 천안함 전사자 유가족협의회 전 대표는 “북한에 친누나가 살고 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 전 비서가 기거했던 서울 논현동의 안전가옥은 매각될 것으로 보인다. 시신 검안 및 수습을 위해 경찰과 정보기관 관계자 등이 드나들면서 위치와 용도가 공개돼 안전가옥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대지면적 463.4㎡(140평), 연면적 278.94㎡(84평)에 이르는 이 주택은 땅값만 18억 2422만원, 실제 매매가는 30억원에 달한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황장엽 사망이후] “北세습 심적고충 크셨는데 통일도 못보고…”

    [황장엽 사망이후] “北세습 심적고충 크셨는데 통일도 못보고…”

    고(故) 황장엽(87)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는 11일 내내 정·재계 등 각계 인사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특히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대부’인 황 전 비서를 ‘분단시대의 영웅’으로 떠올리며 밤새도록 빈소를 지켰다. 탈북자들은 고인이 그토록 열망하던 통일을 끝내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에 대해 애석해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등도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황 전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68)씨와 고영환(55) 북한민주화위원회 간부 등이 상주를 맡아 조문객을 맞았다. 10년 넘게 황 전 비서를 모셨다는 김씨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바라보며 심적 고충이 크셨다.”며 “북한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른의 못다 이룬 꿈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故人 못다 이룬꿈 이뤄지게…” 장례식장 1층 로비에는 황 전 비서의 빈소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됐고, 턱 앞에 두 손을 깍지 낀 모습의 황 전 비서의 사진이 대형 전광판 한쪽에 떴다. 빈소 입구 벽면에는 ‘고인 황장엽, 상주 김숙향’이라고 적힌 흰색 종이가 붙었다. 첫날과 달리 빈소 안팎은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오후 3시쯤 조문 행렬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경찰은 일반 조문객을 제한했다가 1시간여 만에 다시 허용했다. 경찰은 장례식장 입구와 빈소 주위를 계속 순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등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탈북자들은 마치 가족을 잃은 것처럼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었다. 평양상업경제전문학교에서 고인을 스승으로 모셨다는 오윤진(83)씨는 “정부가 고인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아쉽다.”면서 “선생님의 의견을 따랐다면 남북관계를 더 잘 풀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충원 안장·훈장 추서 검토” 정부는 황 전 비서에게 1등급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방식으로 고인을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통일부에서 황 전 비서에게 1등급 국민훈장을 추천해옴에 따라 추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훈장이 추서되면 논란이 됐던 황 전 비서의 국립묘지 안장 요건도 갖춰지게 된다. 황 전 비서의 장례절차를 논의 중인 장의위원회는 장례형식을 닷새 동안 ‘통일사회장(통일에 이바지한 공적이 많은 인사의 사망시 연관 단체 등이 연합해 치르는 장례)’으로 치르기로 했다. ●최종 부검결과 내일쯤 발표 경찰은 11일로 예정됐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 발표가 2~3일 연기됐다고 밝혔다. 이성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사인을 둘러싼 논란을 차단하고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독극물·약물 등 화학 관련 검사로 시간이 지체돼 이르면 수요일쯤 최종 검시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 전 비서는 최근까지 고령에 따른 잔병을 앓았지만 중증 질환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백민경·이재연기자 white@seoul.co.kr
  • [황장엽 사망이후] ‘황씨 배웅길’ 與 - 野는 갈렸다

    ‘저승길 배웅마저 두 편으로 갈렸다.’ 11일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빈소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긴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야는 남북 분단의 상징으로 불렸던 황 전 비서의 죽음을 놓고 대북 문제에 대한 이분화된 접근법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치자마자 빈소가 차려진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정두언·나경원·서병수 최고위원, 고흥길 정책위의장, 배은희 대변인도 조문행렬에 동참했다. 김 원내대표는 “북한이 자유의 나라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셔서 안타깝다.”면서 “아마도 김정은의 3대 세습은 보지 못하겠다고 일찍 가신 것 같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유족들이 희망하는 ‘국립현충원 안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당 차원의 적극적 지원도 약속했다. 김 원내대표는 “황 선생은 (망명 후) 북한 실상을 폭로해 왔고, (이로 인해) 북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종북주의자들을 전향시킨 공로가 있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예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꾀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황 전 비서의 북한 민주화 운동에 미온적이었던 것과 차별화하려는 속내도 엿보였다. 앞서 김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사회 정보의 바다였던 황 선생이 좌파정권 10년 동안 제대로 활동도 못했고, 또 그 정보를 우리 정부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에 대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전 비서의 사망에 대해 “남북분단 비극의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라고 짧은 논평을 낸 정도였다. 그는 대신 “북한의 세습체제가 바람직하진 않지만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한의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더 절감한다.”며 북한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황장엽 사망] 정부 당국자 “심장마비 추정… 남북관계 영향 없을 듯”

    [황장엽 사망] 정부 당국자 “심장마비 추정… 남북관계 영향 없을 듯”

    “황장엽(87)씨 사망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10일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사망이 가져올 대내외적 파장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강조했다. 자연사로 밝혀졌기 때문에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황 전 비서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2월 망명했을 때부터 이날 사망하기까지 한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활동에 부침이 심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뀌면서 황 전 비서와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정권따라 황씨 활동 부침 심해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황 전 비서가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에 망명, 바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며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황 전 비서의 대외 활동이 금지되는 등 그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물론 경찰까지 그의 신변 보호를 이유로 활동을 제약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분위기가 바뀌면서 황 전 비서가 강연을 하고 전문가들을 모아 특강을 하는 등 예전에 비해 활동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갔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차관을 지낸 이봉조 전 차관은 “황 전 비서와 정권과의 관계는 관점의 차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3년 황 전 비서가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인 수잔 솔티 여사의 초청으로 방미, 미 하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도 있다.”며 당시 황 전 비서의 방미에 관여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방미때 양국 경호에 가장 신경 이 전 차관은 “당시 황 전 비서를 미국에 보내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그의 안전 문제였다.”며 “문제가 생길 경우 어느 쪽이 책임을 져야 할지, 경호는 어디서 해야 할지 등이 논란이 됐지만 이를 잘 조율해 황 전 비서의 대외 활동을 도왔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의 대외 활동이 정권의 영향으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암살 위협 등이 계속되면서 경호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황 전 비서에 대한 경호는 일반적으로 탈북·망명 후 1년이 지나면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되는 일반 탈북자와 달리 국정원에서 계속 관리하다가 6~7년 전쯤 경찰 전담팀으로 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 “세습소식에 마음 좋지 않았을 것” 이 전 차관은 “황 전 비서가 망명한 지 오래되면서 더 이상 나올 얘기가 없어졌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의 판단이나 분석은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든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황 전 비서와 정권과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대북 전문가들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안타깝다.”며 입을 모아 안타까워했다. 한 전문가는 “연세가 많아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애기를 들었다.”며 “북한의 독재정권을 바꾸고자 했는데 김정은이 세습한다는 소식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황장엽 사망] “암살가능성 0%에 가깝다”

    [황장엽 사망] “암살가능성 0%에 가깝다”

    10일 오전 서울 논현동 안가(安家·안전가옥)에서 숨진 채 발견된 황장엽(87)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자연사했는지 암살당했는지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최종 부검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후 1시부터 20여분간 진행한 1차 검안 결과를 바탕으로 황 전 비서가 심장마비로 자연사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안병정 강남경찰서장은 검안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이 없다. 전날 통상적으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10일 아침에도 평소처럼 좌욕을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살 가능성도 낮다.”고 밝혔다. 경찰은 서울 가락동 경찰병원에 임시 안치한 황씨의 시신을 곧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부검을 실시하고, 오후 7시45분쯤 다시 장례를 위해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겼다.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30여개의 북한 단체 관계자와 지인들은 시신이 아산병원에 도착한 뒤 황씨의 수양딸로 알려진 김숙향씨를 상주로 정하고 임시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장례를 국가에 현격한 공로가 있는 인물에게 시행하는 ‘사회장’으로 5일간 치르고 시신을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방안을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또 장례위원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장례위원회 명예위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인 1997년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 황씨의 한국행을 성사시켰던 인연이 있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는 이날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9시 30분 평소 황씨와 함께 안가 2층에 머무르던 신변보호팀 직원은 방에서 기척이 들리지 않자 방문을 두 차례 두드렸다. 황씨는 보통 이 시각이면 거실에 앉아 헛기침을 하는 등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날 따라 방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든 직원은 “안 나오십니까.”라고 재차 질문했지만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제서야 직원이 당직실에 있는 비상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급히 방안 욕실을 확인한 결과 알몸 상태의 황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씨는 욕조 속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호흡이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황씨가 공교롭게도 북한이 대내외에 ‘3대 세습체제’를 발표한 미묘한 시점에 사망해 일각에서는 암살 의혹도 제기됐다. 그는 지난 3월 말 미국을 비밀리에 방문, 3대 세습체제를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또 황씨가 사망한 10일은 북한의 최대 국경일 중 하나인 ‘노동당 창건일(10·10절)’이어서 이런 의혹이 더욱 부각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천안함 사태와 북한의 3대세습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황씨의 사망시점에 대한 의문과 암살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황씨가 기거했던 논현동 안가에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을 들어 암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24시간 출입과 외부 연락은 물론 식사 등을 모두 철저히 검사하기 때문에 암살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씨가 거주했던 안가는 3m가 넘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담장 안쪽으로 쇠고리와 가시철망이 설치돼 외부의 침입이 쉽지 않다. 또 지붕과 담장에 7대의 CCTV가 설치돼 있고 10여개의 적외선 센서도 작동되고 있다. 건물 안쪽에는 각종 화기로 중무장한 20여명의 신변보호팀이 황 전 비서를 밀착경호했다. 저격에 대비해 2층에는 창살과 불투명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마당에 맹견(猛犬)을 풀어놓기도 했다. 정현용·윤샘이나기자 junghy77@seoul.co.kr
  • ‘주체’ 지던날… ‘그깟 놈’ 北軍 첫 사열

    ‘주체’ 지던날… ‘그깟 놈’ 北軍 첫 사열

    북한의 김정은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을 통해 3대 세습의 후계자로 공식 ‘등극’한 10일 김일성 주석을 도와 주체사상을 창시했으면서도 ‘김정일 체제’를 누구보다 경멸해 남으로 망명했던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역사는 때로 거짓말 같은 우연을 만들어낸다. 황장엽씨의 사망과 김정은의 세습은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난, 무리하다 싶을 만큼 숨가쁘게 진행되는 후계세습,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부대 열병식을 사상 처음 생중계한 일 등 줄을 잇는 북한의 이례(異例)성은 정권말기적 증상을 연상시키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북한의 권력층이 별안간 혼란에 빠졌을 때 뒤따를 사태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압제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해방과 겨레의 숙원인 통일이 벼락같이 찾아오는 축복의 시나리오도 가능하지만, 최악의 경우 북한 급변사태는 세계 13위권의 경제번영을 구가하는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이 지난 8일 열린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불안정 사태’라는 표현을 공동성명에 올린 것은 이런 불안감이 기우가 아님을 웅변한다. 이에 맞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9일)과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국가부주석(8일)이 잇따라 북한 후계세습에 힘을 싣고 나선 것은 ‘김정일 이후의 불안’이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황장엽씨는 김일성 주석을 인정했지만 그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환멸을 느껴 서울행을 택했다. 누구의 말을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주체사상을 만든 황씨가 김 위원장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세습의 정당성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3대세습을 바라보며 느꼈을 황씨의 분노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과거 그는 김정은 얘기가 나오면 “그깟 놈이 뭘…”이라면서 언급 자체가 얼토당토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 87세인 황씨는 오전 9시30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1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좌욕을 하러 욕실에 들어간 황 전 비서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보안요원이 들어가 보니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숨져 있었다. 안병정 서울 강남경찰서장은 “황씨가 물이 반쯤 찬 방안 욕실 욕조에 알몸 상태로 앉아 사망한 채 발견됐다.”며 “서울청 현장감식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과장 등의 합동검안 결과, 타살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안 서장은 “검안결과로는 자연사로 보이지만 워낙 관심이 많은 사항인 만큼 부검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안전가옥 주변 폐쇄회로(CC)TV 녹화자료를 분석하고 신변보호팀의 최초 발견자와 당일 근무자를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황씨의 시신은 현재 경찰병원으로 옮겨진 상태다. 황씨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당 국제담당 비서 등을 맡다 1997년 망명한 뒤 북한의 김정일 독재체제를 맹렬히 비판해 왔으며, 망명 이래 암살 위협을 줄곧 받아왔다. 김상연·윤샘이나기자 carlos@seoul.co.kr
  • [황장엽 사망] “북 최고위급 망명자 사망” 일제 보도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에 10일 주요 외신들은 “북한 최고위급 망명자가 사망했다.”면서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뤘다. AP통신은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주체사상의 기반을 닦은 이론가이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가정교사였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했다.”고 긴급 타전했다. 이 통신은 고(故) 김일성 주석과 친구였던 황씨가 1997년 베이징 방문길에 남한으로 망명한 뒤 서울에 거주하며 김정일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고 강연해 왔다고 소개했다. AFP통신도 경찰과 국내 언론 보도를 토대로 황씨가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통신은 망명 뒤 줄곧 북한체제를 비판해온 황씨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한국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AFP는 특히 “최근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의 지시로 2명의 남파간첩이 황씨를 살해하려고 남한에 입국했다가 검거돼 10년형을 받았다.”면서 황씨가 수차례 살해 위협에 시달려 왔다고 소개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황장엽 사망] 北선 ‘주체사상 대부’… 망명후 北체제비판 저격수로

    [황장엽 사망] 北선 ‘주체사상 대부’… 망명후 北체제비판 저격수로

    북한의 ‘주체사상 대부’로 불리던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손자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후계 공식화 선언을 마무리한 10일 세상을 떠났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인사 가운데 최고위층으로 10여년간 한반도와 주변국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그는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이 3대(代) 세습의 버팀목이 되는 모습을 보며 쓸쓸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일성 부자의 정신적 선생 87살로 사망한 황 전 비서는 1923년 2월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났다. 1949년 구 소련의 모스크바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유학파로 1970년대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체계화해 ‘김일성주의’로 발전시켰다.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게 된 계기다. 그는 1965년 김일성 대학의 총장에 오른 뒤 김 주석의 뒤를 이어 권력을 물려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체사상 개인교사가 된다. 김일성 부자의 사상적 기틀이 돼 준 셈이다. 그는 김 부자의 절대적 신뢰 속에 해외 주체사상연구소를 설립하고 제3세계로의 주체사상 전파에 앞장섰다. 특히 김 위원장의 백두산 출생설을 포함해 후계자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도 그다. 김일성 부자의 신뢰는 황 전 비서를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세 차례나 지내도록 했다. 1984년 김 주석의 중국방문을 단독 수행하면서 대외 활동에서도 최고위층으로서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1993년 말부터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으로 당차원의 외교를 맡기도 했다. 대내외 중요 임무를 독식한 셈이다. 하지만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담당 비서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며 최고위층으로 자리잡고 있던 황 전 비서는 1997년 2월 망명을 결심하게 된다. 망명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에 대해 자신이 이론화해 체계화시킨 주체사상과 관련해 김 위원장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기 때문으로 전했다. 황 전 비서의 고민은 1990년대 중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주체사상에 대한 강연회나 세미나에서 밝힌 의견에서도 드러난다. 199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는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상이 아니라) 인간을 근본으로 한 인본사상이다.”라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런 그의 발언들은 평양에 보고됐고 위험을 감지한 황 전 비서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활발한 반북활동 북한의 방해 공작, 중국의 제3국으로 떠날 것에 대한 조치 등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망명하게 된 황 전 비서는 이후 대표적인 반북인사로 활동한다. 그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체제가 김일성 시대보다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강하다고 비판하고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 죽게 하는 김정일이라고 말하는 등 정권 세습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북한은 여러 차례 황씨를 암살 계획을 세워 틈을 노려왔다. 올해 초 황씨를 살해하기 위해 침투했던 북한의 전문 암살조가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로 체포된 것도 이를 방증하는 모습이다. 이런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의 체제 비판 강도를 높여오던 황 전 비서였지만 세월에는 버틸 수 없었다. 10일 북한 체제변화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주석단에 선 김정은] 김정은 공식 외교무대 데뷔

    중국이 북한의 후계체제 안착에 적극 나섰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는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이라는 ‘호재’를 이용, 북한과의 지속적인 우호협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나섰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중국공산당 축하사절단 면담에 동참하는 것으로 공식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공식 사절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당서열 9위 저우융캉(周永康)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10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열병식을 김 위원장 부자와 함께 주석단에서 지켜봤다. 김 위원장 바로 옆에 서 있던 저우 상무위원은 김 위원장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열병식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앞서 저우 상무위원은 방중 첫날인 9일 김 위원장과 만나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김 부위원장도 이 자리에 배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중요한 시기에 대표단을 보내준 것은 조선 혁명 사업에 큰 격려가 된다.”고 말했다. 저우 상무위원은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서기를 수반으로 하는 새 영도집단의 지도 아래 조선 인민들이 더욱 밝은 미래를 창조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이 자리에는 김 부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영호 총참모장 등이 배석했다. 후 주석 등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도 베이징에서 북한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후 주석이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중·조(북·중) 우의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가야 한다.”는 내용의 축전을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후 주석은 축전에서 “중국과 조선은 서로 힘을 합쳐 우호협력 관계를 끊임없이 발전시켰다.”면서 “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 방침으로 중국은 양국 간 전통적 우의를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황장엽 사망] 탈북자들 “北 살해위협 지속… 마음에 걸려”

    여야 정치권은 10일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사망에 애도의 뜻을 밝혔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황 전 비서는 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회복을 위해 헌신해 왔다.”면서 “한나라당은 고인의 업적을 초석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안보와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황 선생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세운 학자이면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갖고 있었다.”면서 “이렇게 급격히 사망하신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인간의 자유와 가치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인의 영전에 애도의 묵념을 올린다.”고 밝혔다. 황씨의 망명을 성사시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황씨는 전쟁을 막고 북한의 세습독재에 대한 허구를 통렬하게 질타하던 훌륭한 애국자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망명 당시 황씨의 신변인도를 꺼리던 중국 장쩌민 국가 주석을 상대로 “황씨가 북한으로 압송되면 중국은 인권 말살 국가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직접 설득했었다. 황씨와 함께 반북 활동을 해온 국내 탈북자들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모든 탈북자 단체의 중심이자 리더였고 우리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며 애통해했다. 황 전 비서가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공식화한 날 세상을 떠난 데 대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탈북자들도 많았다. 김영일 ‘성공적인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는 “연세가 있으시긴 해도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하셔서 뜻밖이라는 생각도 든다.”면서 “자연사로 알려졌지만 북한에서 계속 살해 위협을 해 왔기 때문에 좀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구혜영·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황장엽 사망] 그동안 줄곧 ‘암살대상자 1호’ 지목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10일 사망하면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북한 정권은 황 전 비서를 ‘암살대상 1순위’로 공공연히 지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며 지도부의 높은 신뢰를 받았던 황씨가 1997년 탈북, 한국으로 망명하자 극도의 분노감을 표출했다. 특히 황씨가 최근까지 북한 체제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날선 비판 행보를 이어가자 ‘눈엣가시’ 같은 그를 호시탐탐 노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김 위원장이 남파 간첩들에게 황씨를 직접 ‘암살 대상 1호’로 하달했다는 정보도 있었다. 실제로 같은 달 황씨를 암살하라는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위장 탈북했다는 간첩 2명이 체포돼 구속됐다. 황씨의 사망과 관련, 북한은 10일 오후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황씨 사망일이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과 같다는 점에서 빠르면 11일 정도 관련 반응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을 보낸 뒤 ‘조국과 인민의 배신자의 최후가 좋지 않았다.’고 선전하는 내용의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정은 생김새 논란…“성형수술” vs “다른 인물”

    김정은 생김새 논란…“성형수술” vs “다른 인물”

    북한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얼굴 사진을 대외에 공개하자 호사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토론회에서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 전 주석을 닮아도 너무 많이 닮지 않았느냐.”면서 “성형수술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농담’을 던졌다. 그는 “어떤 정보를 갖고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학창 시절 찍은 것으로 알려진 사진 속 인물과 최근 공개된 김정은이 다른 사람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4일 미국 abc뉴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독일의 한 전문가는 독일 일간지 슈피겔 요청에 따라 스위스 베른 시절의 김정은 사진과 최근 공개된 사진을 비교한 뒤 “동일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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