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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호씨 형제/48년만에 차례상 “큰절”

    ◎탈북일가 서울서 첫 설맞이/임진각 올라 두고온 맏딸 생각에 눈시울도 지난해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씨(62) 일가족 등 16명이 8일 상오 서울 은평구 대조동 불광시장안에 있는 큰 형님 경태씨(71)집에서 귀순 후 첫 설을 맞았다. 경호씨 형제가 함께 모여 차례를 올린 것은 48년만이다. 이날 차례상은 불광시장 상가번영회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부인과 사별한 경태씨 대신 장만해준 것이어서 경호씨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훈훈하게 했다. 조부모와 부모의 차례상 앞에서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경호씨는 차남 성철씨(27)의 부축을 받으며 경태씨와 함께 큰절을 올렸다. 이어 장남 금철씨 등 딸·며느리·사위·손자·손녀 순으로 절을 올렸다. 차례를 마친 뒤 경태·경호씨 형제는 조카 등의 세배를 받고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건넸다. 이들은 이어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실향민들과 함께 두고온 북한의 산하와 조상들을 기리며 차례를 지냈다. 임진각 3층 전망대에 올라 북녘하늘을 쳐다보며 김씨 일가는 탈출에 동행하지 못한 맏딸 생각에 끝내 눈시울을붉혔다. 하오에는 서울 송파구 신천동 최씨의 작은 아버지인 전도씨(77)의 집을 방문,세배를 드리는 것으로 첫 설 행사를 마감했다.
  • “올브라이트 유태혈통”/조부모 아우슈비츠서 희생

    ◎아랍 “중동평화 앞날 걱정” 【워싱턴 AP 연합 특약】 매들린 올브라이트 신임 미국무장관이 자신이 유태인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시인해 중동평화과정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해온 아랍권들의 심기가 편치않게됐다.올브라이트 장관은 지난 3일 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조부모가 모두 유태인으로서 2차대전때 아우슈비츠수용소에 학살당했음을 처음으로 시인,자신도 이 사실을 장관이 된 뒤에야 알았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는 장관의 가계문제는 개인사일뿐 외교정책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있지만 런던에서 발행되는 한 아랍계 신문은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에서 이스라엘로 옮긴 격이 됐다」며 올브라이트 장관의 유태인 핏줄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올브라이트장관은 과거 유엔주재 대사시절 노골적인 친유태인 발언을 자주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 서양화가 권옥연(이세기의 인물탐구:116)

    ◎허무·고독을 즐기는 화단의 신사/세련된 멋·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레 공존/구상·추상 오가며 미지의 세계 정신적 탐구 권옥연은 슬픔과 허무가 엇갈리는 낭만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다.화려하고 사치한 사교적인 면을 지니면서 「군중속에 둘러싸인 고독」 같은 이미지가 전신에 배여 있다.스스로를 옷 한벌도 없는 「무의자」로 불리기를 원하거나 그림 곳곳에 잔잔한 슬픔의 무늬가 운문율처럼 번지고 문학적 향수와 비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그만의 예술가적 기질일 것이다. 그의 작품도 일본과 프랑스유학에서 연유한 세련된 멋과 우리만의 꾸미지 않은 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공존된다.이른바 지난 역사속에 숨겨진 한국인 특유의 비애와 한을 떨쳐버리지 않고 이를 안으로 익삭여서 그림의 특징으로 삼은 것이 특별히 남다르다.그의 화면의 배경은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무겁게 내려앉은 청람의 하늘과 차갑게 빛나는 납빛의 달,상서로운 길조 한마리가 피안을 향한 아득한 미래를 응시하면서 미묘한 조율과 변주로 탐미적 향기를 풍겨낸다. 그의초기작품은 자연주의적 공간의 원근법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전개되는 선상에서 간결하고 절제된 대상이 평탄한 색조로 수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이는 한때 고갱의 예술세계에 경도된 흔적이기도 하지만 평론가 유준상에 따르면 「사상을 색채가 아닌 형체에 의해서 파악」하고 「인간을 비극적인 고뇌의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추상화는 「해학성과 불가사의한 세계를 동경하는 정신적 탐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림곳곳 잔잔한 슬픔… 화면구성의 배치와 균형뿐만 아니라 색채의 의장을 무시한 자기억제적인 색조는 「관념적인 영원성마저 표출시킨다」고 했다.또 내적 경험을 암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상형기호는 보석타래처럼 허공을 부유하면서 「비현실세계에서의 신비적 허무」로 반짝이는 것도 그만이 보여주는 화경의 특징이다. 그는 유치한 것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예를 들어 당장에 눈에 띄는 그림보다는 어둠이 눈에 익어 천천히 나타나는 그림이야말로 「벨벳속에 싸인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다」고 주장한다.그래서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시기를 거쳐 그의 화면은 「바닷속같이 괴괴한,정일과 정미의 경지」를 끌어낸다.구상에서 추상,다시 최근에는 「구상적이면서도 구성적」인 그림으로 그는 남보다 앞장선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상적인 매너는 누구를 만나든 포용력 있게 반기는 제스처에 능하다.한때는 주한프랑스대사로 10여년이상 한국에 머물었던 로제 상바르대사와 절친하여 그가 주관하는 파티의 주역이었고 다른 자리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등 사교적인 폭이 두껍고 넓은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의외로 비사교적이고 사회성이나 경영에 어둡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하여 같은 예술원회원인 천경자씨가 가짜 미인도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철저히 감싸주었고 그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원로화가 김흥수씨가 「외국작가초대에 대한 이의제기」나 「국전의 의미」를 묻는 시비를 만들 때도 옳은 것의 편에 서서 이들을 두둔해왔다. ○17세에 선전 입선 같은 함흥 출신에다일본과 프랑스유학을 비슷한 시기에 보낸 김흥수씨는 『그는 함흥의 명문가의 자손으로 남보다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고 올바르게 처신하여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면서도 언제나 겸허하여 오만이 없다』고 말한다.이른바 예술가로서 신사의 도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보기드문 순수파라고 할 수 있다. 화가로서의 그의 위치나 면모를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그의 긴 화력과 그가 성취한 새롭고 혁신적인 화풍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 그는 함남 함흥읍에서 대지주의 5대독자로 태어나 조부모와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은 천진무구성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어릴 때는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여 『지휘자나 작곡가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음악에 관한 한 앉은 자리에서 100여곡 이상의 노래가 그의 몸에서 물처럼 흘러나온다.오죽하면 작곡가 김성태씨는 『그의 머리를 한번 해부해보고 싶다』고 했고,김순애씨는 『그가 허밍으로 부르는 즉흥곡을 악보로 써둔다면 틀림없이 주옥 같은 명편』이 됐을 거라고 감탄할 정도다. 함흥에서 서울 제2고보(경복고)로 유학한 후 3학년되던 해 선만 학생전람회에서 준특선,다음해 특선했고 졸업반인 5학년때 선전에서 입선하면서 17세에 벌써 화가로 호칭되었다.그러나 『50년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화가」라는 타이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리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었다』고 자신을 돌아본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화가이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도쿄와 파리유학,수많은 국제전에 선정,초대되었고 세종문화회관 개관때도 가로 40m,세로 20m의 초대형 「십장생도」커튼을 제작하여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일본·덴마크·파리국립·현대·근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그는 개인적으로 금곡에는 개인박물관을 가지고 있고,무대의상을 미술의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부인 이병복씨는 국제무대에서 공연하는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이며 한때 서울대에 출강하긴 했지만 한평생 그림만을 그려온 전업작가다. ○40m 「십장생도」 제작화제 이처럼 행복만이 점철된 그에게 뼈저린 아픔이 있었다면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 봄 긴 투병끝에 있던 장남을 잃은 일이다.지상의 모든 슬픔을 온몸으로 얼싸안은 채 『나는 평생 철들지 못한 철부지였으나 아들을 잃자 갑자기 철드는 자신을 느꼈다』고 소년처럼 절규한다. 자녀는 파리화단에서 활동하는 딸(이나씨)과 첼리스트인 차남(유진)이 있다.지난해 도시계획에 밀려 고풍스럽고 오래된 광희동집을 떠나 성북동의 빌라로 이사하게 되자 현대적인 낯선 분위기가 싫어서 집에선 잠만 자고 장충동 화실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다.술을 마다하지 않으며 줄담배를 피운다. 그의 신작분위기는 빈 바위 같은 회색산정과 앙상한 나목에 앉은 흰새 한마리.새는 머언 공간을 향한 긴 응시를 끝내고 지금 마악 비상직전,아니면 탐색직전의 긴장과 정적을 품고 있다.그의 득의의 화면은 보는 이의 마음에 철학의 심연을 만들어주고 있으나 이제 허무주의와 문학주의를 딛고 그는 화가의 가장 찬란한 광채인 청람의 보석 같은 구두점을 그의 화면속에 감추고 싶어하는 시기다. □연보 ▲1923년 함남 함흥 출생 ▲39년 선만학생전람회 특선 ▲40·42년 선전입선,제2고보(경복) 졸업 ▲44년 도쿄제국미술학교 졸업 ▲48년 첫개인전(동화백화점 화랑) ▲49년 국전입선 54·56·60년 국전특선 ▲56∼60년 체불,파리살롱도톤,파리 레알리테누벨전선정초대출품 ▲60년 프랑스 파리아카데미 드페수학,도쿄 일본교갤러리 개인전 ▲61∼72년 국전초대작가 및 국전심사위원 역임 ▲65년 도쿄개인전,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 출품 ▲68년 서울개인전(신세계미술관)「한국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70년 엑스포70 세계100인선 작가로 선정,현대화랑개관 기념전 ▲73∼74년 한국미술대상 심사위원,미 국무성 초청 미국문화계 시찰 ▲75년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선집」 출간(금성출판사) ▲78∼현재 금곡박물관장 ▲79년 개인전(갤러리 현대),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및 소강당 커튼(막)제작(가로 40m,세로 18m) ▲83∼현재 예술원회원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서울·파리전」(서울갤러리) ▲95년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전 ▲96년 이목화랑 개관 20주년기념전 출품(권옥연·천경자·윤중식·임직순) 〈작품소장〉 미국 체이스맨해턴은행·도쿄국립근대미술관·일본겸창근대미술관·덴마크코펜하겐국립근대미술관·파리국립현대미술관외 〈수상〉 예술원상·보관문화훈장·3·1문화상
  • 조건부 석방소식에 안도·불안 교차/이원영 대사 집 표정

    ◎8순 노부모 경위 물으며 아들무사 기원 페루 좌익반군에 억류됐던 이원영 페루주재 대사가 조건부 석방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21일 이대사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집은 기쁨과 실망이 교차했다. 초조하게 아들의 무사 귀환만을 고대하던 어머니 김태달씨(81)는 상오 9시20분쯤 페루에 있는 며느리 조성실씨(54)씨로부터 『건강한 모습으로 석방됐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하지만 외무부로부터 『22일 반군들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일본대사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며느리와 외무부에 잇따라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서 『다친데는 없는지,먹을 것은 제대로 먹었는지』를 물었다. 노환에다 아들 피랍소식이 겹쳐 병석에 누운 아버지 이우석씨(80)는 『완전히 석방된 줄 알았는데…』라며 실망하면서도 『무사히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며 침착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이대사 피랍이후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조부모를 모셔온 이대사의 맏아들 장환씨(28)는 『TV에 나타난 아버지가 매우 수척한 모습이었다』면서 걱정했다.
  • 김 대통령 1년만의 착잡한 성묘

    ◎36년전 무장공비에 희생 모친 기일 맞아/공비소탕 안돼 청남대로 무거운 발걸음 김영삼 대통령이 추석절 연휴를 하루 앞둔 25일낮 고향인 경남 거제시 장목면을 방문,모친 묘소에 성묘했다.이어 지방집무실인 청남대에 도착,30일 상오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김대통령의 모친 고 박부연여사는 지난 60년 무장간첩에 의해 희생됐다.25일은 모친 별세 36주기 되는 날이다. 강원지역에서 무장공비 토벌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역시 무장간첩에 의해 희생당한 모친의 36주기를 맞아 묘소를 찾은 김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대통령은 모친묘소에서 생가마을을 내려다 보며 『모두들 집을 고치고 있는데 우리집은 못고치게 했더니 낡아 보인다』며 웃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모친 묘소에 이어 조부모 묘소에도 성묘했으며 성묘후 생가에서 가족 친지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김대통령은 생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주민 1백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특히 생가안에는 김대통령의 장목초등학교 1회 동창생 9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김대통령과 반갑게 해후. 김대통령의 생가에는 모친이 무장간첩에 의해 희생당할때 생긴 권총 유탄자국이 남아있는 헌 장롱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김대통령의 고향방문은 지난해 추석이래 1년만이다.김대통령은 취임후 추석과 설날 등 한해 두차례씩 고향을 찾았으나 올해 설날에는 성묘를 하지 않았다. 김대통령의 이날 고향방문에는 부인 손명순 여사,차남 현철씨 부부가 동행했다.청와대의 김광석 경호실장과 유도재 총무수석,번기문 의전수석,김기수 수행실장 등도 수행했고 김혁규 경남지사와 이 지역출신인 김기춘 신한국당 의원이 현지에서 영접했다. 김대통령은 추석연휴기간동안 청남대에 머물지만 공비소탕작전 등에 대한 보고청취와 지시는 청와대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할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 근무 직원들의 애로를 고려,거처를 청남대로 옮겼을 뿐 공비사건이 완료되기까지는 「정상집무」를 하게 될 것 같다.청남대에서 돌아온뒤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주목거리다.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을 제안한김대통령으로서는 경제난 타개책도 숙고의 대상이다.
  • 8순 노파의 목메인 절규/박성수 전국부기자(현장)

    ◎“산불 경계령에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23일 하오 4시.동두천시청 3층 상황실. 이날 낮 발생한 동두천 소요산 줄기 산불로 순식간에 직원 7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실은 울음바다를 이뤘다. 상황실 복도 한켠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 온 한 노파가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한채 실성한듯 그대로 바닥에 나딩굴고 말았다. 『아이구 어떻게 키운 손잔데…』 이날 희생된 녹지과 산림계 이강욱 계장(39·임업6급)의 할머니 임상천씨(88)의 목메인 절규였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잠까지 설치며 일을 하더니 끝내 목숨까지 내놓았구나.』 군사지역으로 둘러싸인 동두천지역은 곳곳에 지뢰나 불발탄이 묻혀 있어 산불이 났다 하면 거의 손을 쓰지 못하기가 일쑤다. 지난해 1월 진급과 함께 산림계장으로 임명된 이씨는 그동안 불을 끄기 위해 5차례나 산을 누벼왔다. 평소 친형처럼 직원들을 아끼고 책임감이 강한데다 어려운 살림에 조부모까지 봉양하는 등 효성까지 극진해 부하직원들의 신뢰를 받아왔다. 한 동네 사는 김국한씨(39)는 『이계장은 매일 새벽마다 조부모들을 모시고 약수터를 찾아 이웃들로부터 효성이 지극하다는 칭송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산림과장 김준만씨(59)는 『이달들어 산불경계령으로 직원들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소설가 박완서(이세기의 인물탐구:95)

    ◎결혼 20년만에 작가의 꿈 실현한 “독종”/신랄한 비판의식으로 사회각층의 모순 파혜쳐/인간심리 선·악의 양면성 자연스런 문체로 추적/「한말씀만…」은 통곡없이 읽을수 없는 「발작적 설움」의 기록 박완서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미화의 욕구」를 극복하면서 「뼛속의 진까지 다 빼주다시피」하는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 증언」 때문일 것이다.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병의 물을 거꾸로 쏟아붓듯이」 생동감 넘치게 흘러내리는 문체는 오늘의 세태풍속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말 뒤에 숨겨진 섬광 같은 비판」으로 「인간심리의 악마적인 양면성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일에 능란하다. 평론가 정호웅은 이를 「천의무봉의 문체」로 표현하고 『방법론이나 지적인 장난 없이 글을 글답게 써내려가는 자연스러움이 일품』이라고 말한다.내용도 마찬가지다.그의 가차없는 비판정신은 「현모양처로서 충분히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여성에게 일상의 안일을 뒤흔들어놓는 위협적인 존재」이며 그 자신은 「삶의 진실을 희생시킴으로써 소설의 진실을 건져올리고 있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지난 8년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참담과 파란을 겪은 뒤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발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슬픔이 발효되고 아픔이 승화된 체관의 경지에서 「언어의 사제,진실의 사제」다운 여유를 치렁치렁하게 펼치는 것이 눈에 띈다.『도대체 소설이 이렇게 진실해도 좋은가』라는 평론가 김윤식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자기미화의 욕구 극복 이 두 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기록된 「한 개인의 삶의 역사」이자 「20세기 한국의 생활풍속사」이며 식민지지배와 태평양전쟁,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수난과 격동의 세월을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작가의 유년의 기억을 쓴 1부작 「그 많던 싱아…」는 「고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세상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고통에는 어떤 종류의 삶이 생성되는가를 생생하게 되살린 반면 성장의 나날을 그린 2부작 「그 산이 정말…」은 참혹한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속에서 「고귀한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 인간이 어떻게 몸부림쳐왔는가」에 대한 눈물겨운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서는 지금은 휴전선 이북인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그늘진 평평한 골짜기에 초롱초롱한 은방울꽃이 눈부시게 쫙 깔린」 평화로운 시골에서 태어났다.세살때 부친을 잃었으나 조부모를 비롯,숙부·숙모·사촌들이 한솥밥을 먹는 대가족 사이에서 아버지가 그리워 청승을 떤 적도 없고 각박함도 모른 채 「태평스럽고 구김살 없는」 유년기를 보냈고 여덟살되던 해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서울에 정착했다.그러나 서대문밖 현저동꼭대기 「공동수도언저리에 물통행렬이 끝도 없이 줄서 있는」 빈민촌에 살면서 문안의 학군인 매동국민학교에 입학했고 「진짜 주소와 학교에서 선생님이 물을 때 대답해야 할 사직동의 가짜주소를 반복연습」하는 「조마조마하고 헷갈리고 주눅들린」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던 해 6·25를 만나 「미래의 희망」이던 오빠마저 죽자 학업을 중단한 채 미8군 PX에 취직,그 자신이 법이 되고 질서가 되어 세상의 힘과 부딪쳐야 하는 황막한 「한발의 시기」에도 그는 「걸신들린 듯」 세계명작에 탐닉하면서 그때 이미 「소설가가 되리라는 찬란한 예감」과 함께 20년후의 데뷔소설인 「나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바로 성장기에서 53년, 「직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호영진과 결혼」한 내용이다. 그가 변치 않는 것은 언제나 조용한 목소리,조용한 몸짓.일상적인 레가토와 모데라토를 지키면서 어디서나 도무지 불규칙과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 점이다.그러나 그의 목소리속에 깃든 격렬한 웅변과 감연한 비판정신은 입가의 미소로도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다.오히려 일찍이 범상치 않아 어떤 상례에 얽매어 자신의 가치관을 팽개쳐버릴 만큼 안이한 일면은 그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기에나 남들 보기에 팔자좋다고 일컬어질 만큼 평탄하게」 사는 중에도 간혹 「인간 같지 않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이하의 수모를 받을 때는 『너를 내 작품속에 넣어 네가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리라』라고 앙칼진 독기를 품고 있었고 막상 소설가가 되자 「역사의 한줄기가 내 개인사를 어떻게 할퀴고 지나갔는가」를 꿰뚫어가면서 「사람은 결국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사람은 존엄하다는 것」과 사회각층의 모순을 작품 곳곳에 비정하리만큼 냉정하게 파헤쳐놓고 있다. ○빈민촌 불루한 어린시절 백낙청도 「휘청거리는 오후」등 박완서의 일련의 작품에 대해 「명백하고 신랄한 사회비판의 문학」으로 평가하고 있다.이남호·이동하는 「정확하고 세세한 기록은 그 자체로 진실의 힘을 갖는다」고 전제한 데 비해 간혹의 평자는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이기주의자」 「결혼한 스무해동안 작가가 될 야심을 은근히 불태운,매섭고 냉혹하게 삶을 움켜쥐려」한 「말못할 독종」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렇다.그가 뭇사람의 입에 회자되는 작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두배 세배로 슬픔과 아픔을 겪으면서 머언 기억속에서 곱씹고 있던 그의 과거를 「탁월한 기억력과 용기 있는 솔직함」으로 기록한 것만 봐도 그의 작가의식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운명」은 그가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던 지난 88년,폐암을 앓던 남편을 잃었고 다시 몇달만에 「딸을 넷씩이나 낳고 마지막으로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아들」마저 잃게 했으며 그는 절망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왜 하필 나인가」,「지옥」을 안겨준 신에게 「한말씀만 해보시라」고 애걸복걸 매달린 「참척의 일기」는 통곡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발작적인 설움」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당시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저의 개인적 불행을 매스컴에서 너무 강조할 때는 인간의 고통도 상품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는 그는 엄청난 타격을 딛고 일어선 지금도 문득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원한대로 『외롭다』고 대답을 해주긴 하지만 속으로는 「너는 외롭지 않은가,외롭지 않다면 바보」라고 끝내 얄팍하고 야비한 인심에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10여년전부터 살고 있는 방이동 대림아파트에서 그는 탤런트 김혜자를 풍기는 상큼하고 상냥한 미소를 되찾아 아침에 눈뜨면 『내게 글쓰는 일이 없었으면 어땠을까』,글쓰고 싶은 감동이 시들지 않는 것이 행복하며 「내안에서 생기와 기쁨이 무수한 입자처럼 들고나는 걸」 실감하고 재확인하고 있다. ○창작욕 시들지 않아 다행하게도 네딸이 모두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손주들이 그의 「낙」이 되어 「가족」의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는 잡념없이 요즘은 결혼후의 이야기와 작가생활에서 체험한 제3작 집필을 앞두고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은 「먼산」처럼 흘러가버렸으나 유년의 골짜기에 피어 있던 「싱아」와 「그 산」을 되살려낸 그는 이제로부터는 「죽을 때까지의 현역」의 자리에 우뚝 선 채 더 멀리 더 높이,그리고 작열하는 창작욕과 기억의 힘을 창천의 끝까지 날리고 싶어한다. 「그 산이 정말…」의 마지막 부분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성장도 하고 싶었다」고.바로 그는 이를 실천한 선택된 작가의 한 사람인 것이다. □연보 ▲1931년 경기도 개풍출생 ▲1950년 숙명여고졸업및 서울대 국문과입학,6·25로 학업중단 ▲1970년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나목」 당선 ▲1975년 「문학사상」에 「도시의 흉년」 연재시작 ▲1976년 첫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일지사) 출간 작품집 「휘청거리는 오후(전2권)」 중편집 「창밖은 봄」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혼자부르는 합창」(77년),창작집 「배반의 여름」 장편 「목마른 계절(원제 한발기)」 수필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78년),「도시의 흉년(전2권)」 장편 「욕망의 응달」 창작동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79년),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80년),단편집 「엄마의 말뚝」 장편 「오만과 몽상」 수필집 「살아 있는 날의 소망」(82년),장편 「그해 겨울은 따뜻했내」(83년),장편 「서 있는 여자」(85년),수필집 「서 있는 여자의 갈등」 창작집 「꽃을 찾아서」(86년),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89년),장편 「미망(전3권)」 수필집 「나는 왜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90년),창작집 「저문날의 삽화」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91년),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92년),「La piquet de ma me're(엄마의 말뚝)」불역(93년),「한말씀만 하소서」(94년),「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95년)등 장단편 30여권 수상 한국문학작가상(80년) 이상문학상(81년) 대한민국문학상(90년) 이산문학상(91년) 중앙문화대상 및 현대문학상(93년) 동인문학상(94년) 한무숙문학상(95년)
  • 한자녀 갖기운동/중국 응석받이 천국으로

    ◎수입 50%까지 자녀에 소비… 빚얻어 과외도 『아이가 밥 한숟가락을 받아먹고는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할아버지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개짖는 소리를 낸다.그래야 아이가 밥을 먹기 때문이다.또 한숟가락을 받아먹은 아이가 뛰어가자 할아버지는 고양이 소리를 내며 그 뒤를 쫓아간다.아이에게 밥을 한끼를 먹이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할아버지는 진땀을 흘리며 「우리 손자녀석 좀 봐,밥도 잘먹지」라며 추켜세운다』 중국인들의 자녀 과보호를 풍자한 소설 「중국의 작은 황제」의 한 대목이다.한자녀만 갖게 된 부모가 자식을 「황제」처럼 떠받드는 바람에 중국사회가 온통 응석받이의 「천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정부가 지난 79년 인구억제책으로 「한자녀 갖기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외동아이만 키우게 된데다,최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점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부모가 문화혁명기(66∼76년)에 교육을 제대로 못받았던 자신의 한풀이를 위해 자녀만은 교육를 많이 하도록 해야한다는 집념의 세대인 탓도 있다. 따라서 가계수입의 50%를 자녀들의 과외비나 군것질등 욕구충족 비용으로 쏟아부을 만큼 중국 부모의 투자열의는 대단하다.중국의 경우 아이의 구매 영향력이 가계소비의 69%로 미국등 선진국의 40%보다 훨씬 높은 것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같은 엄청난 투자는 자녀의 영양상태가 좋아져 체격이 커지는 반면,자기밖에 모르는 응석받이를 양산하거나 지나친 교육열로 비싼 과외를 시키기 위해 빚을 끌어다쓰는 가정이 늘어나는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의 교육은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및 조부모는 국내외 유명 대학원까지 보내기 위한 장기 마스터플랜을 미리 마련해 놓는 탓이다. 반면 북경의 보통가정은 우리돈으로 한달에 평균 16만원을 벌고 있다.이같은 형편에도 자녀를 컴퓨터학원에 보내기 위해 부모는 누에치기 부업을 하고,피아노를 사기 위해 2년동안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다.수입의 대부분을 아이들의 과외비나 팬시의류·장난감·스낵비 등으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외국 유명브랜드의 장난감가게나 팬시의류점,월트 디즈니상품 코너,맥도널드 햄버거점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올해의 경우 어린이들의 스낵비는 40억달러(약 3조2천억원),장난감 판매액은 14억달러(약 1조1천2백억원)에 각각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트 디즈니사는 지난 93년 6월 처음으로 북경에 지점을 낼 때 중국의 소득수준이 낮아 구매력이 없을까봐 고심했다.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불과 2년만에 지점수가 1백개로 늘어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암암리에 광주·상해·무한·심양등 중국전역에 분점을 내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의보 피부양자 대폭 확대/1일부터 복지부

    ◎부양중인 숙부·고모·이모 조카 포함/외조부모·외손자녀·의붓부모·­자녀도 대상 다음달 1일부터 의료보험 가입자가 부양하고 있는 숙부,고모,이모,조카 등 3촌 이내의 방계혈족과 외조부모와 외손자녀,의붓(계)부모,의붓자녀,생부모와 생자녀도 피부양자로 인정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이같은 내용의 피부양자 인정기준 개정안을 확정해 각 시도와 의료보험 관련단체 등에 시달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전국민 의보실시 이후에도 직계 부양 가족이 없어 의보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않은 등 불합리한 사례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행 의료보험법과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의료보험법은 피부양자를 「피보험자(보험가입자)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직계 비속의 배우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따라서 삼촌이나 고모,이모,외조부모 등 생계능력이 없는 친족을 실질적으로 부양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했다.특히 따로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하고도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어 2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의보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의료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받으려면 사실상 부양관계에 있는 보험가입자와 동거해야 하며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호적등본 또는 주민등록등본 등 관련서류를 해당조합 등에 제출하면 된다.
  • 의보 「사각지대」 완전 해소/피부양자 범위 대폭확대 의미

    ◎지역조합도 가입못하는 빈곤층 혜택/국민 개보험 제도 실질적 완성 큰 의의 보건복지부가 다음달 1일부터 의료보험 부양자범위를 방계 혈족등에까지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은 국민개보험제도를 실질적으로 완성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지난 77년 1백인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데 이어 89년 지역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민개보험시대를 맞았다.그러나 이 제도는 지역의보마저 가입할 형편이 못되는 빈곤층에게는 여전히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의보 「사각지대」를 완전 해소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생계를 꾸려갈 능력이 없는 친족을 「동거부양」하고 있는 피부양자는 대부분 이번 조치로 혜택을 보게 된다.특히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와 재해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에서 「고아아닌 고아」가 늘고 있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해당자는 별도의 지역조합 가입없이 부양자의 보험증으로 바로 의보혜택을 받을 수 있게된다. 그동안 이들이 따로 지역의보조합에 가입할 경우 의료보험료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달평균 가구당 1만5천원정도 부담해왔다.일반인에겐 별 부담이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보험료가 두달이상 체납돼 지역의료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급여정지」사례가 적지 않고 이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대상자가 1백75만명에 이르는 생활보호대상자보다는 적지만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어림하고 있다. 이 혜택을 누리게 되는 사람은 「3촌이내의 방계 혈족」과 외조부모 외손자녀 계부모 계자 생부모 생자 등으로 부양능력이 없는 경우로 한정된다.법률상의 자녀는 아니나 친자녀를 말하는 생자녀의 경우 동거하지 않더라도 혜택이 돌아간다. 계부모는 직계존비속이 없거나 있어도(결혼한 딸 제외)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로 피보험자와 동거상태에 있어야 한다. 생부모 생자녀 생모의 남편 및 생부의 부인은 법원에서 친생자존부확인을 받거나 통·반장의 인우보증서로도 가능하도록 했다.
  • 민속축제 수르하루방(시베리아 대탐방:47)

    ◎풍년 기원하는 부랴트족의 명절/인구 43만의 바이칼호 주변 최대 소수민족/샅바 없고 제한시간 없는 맨몸씨름 인기/경마종목 복잡… 앞발로만 뛰기 등 이색적 남부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 최대의 민족은 부랴트족이다.이들은 지난 92년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행정적으로 독립한 부랴트자치공화국내에 모여 산다.총인구가 43만 1천여명(95년 상반기기준).이들은 다시 공화국내 6개 자치관구에 흩어져 살고있다. 흥미를 끄는 것은 부랴트족은 러시아 연방내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79년 말 35만명의 인구가 10년 뒤인 지난 89년에는 20%가 는 42만명에 이르렀다. 취재진이 부랴트족을 찾은 곳은 바이칼호 남서쪽 이르쿠츠크에서 90여㎞ 떨어진 우스치 아르딘스크 마을이었다.때마침 이들은 자신들만의 축제한마당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축제의 이름은 「수르하루방」.이들은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최대명절로 「수르하루방」을 꼽았고 파종을 끝내고 「하늘」에 좋은 수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 축제를 민속축제로 전승하고 있었다. ○파종 끝내고 축제 시작 하지만 이들 어느 누구도 「수르하루방」의 의미는 모르고 있었다.우스치 아르딘스크시장이라는 칼 보리스씨의 안내로 취재진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집회가 벌어지는 한 운동장을 찾았다. 이곳은 부랴트식 씨름·활쏘기·말타기가 열리는 자리였다.동시에 구역을 대표한 가무단들이 나와 민속노래와 춤을 곁들이며 마을사람들을 축제무드로 이끌고 있었다.공설운동장 격인 이곳에는 아침 축제시작전부터 3만여명의 마을 주민가운데 수천명이 모여들어 스탠드를 메웠다.축제는 3단계로 진행됐다.이곳은 이미 구역단위에서 예선전을 거친 팀들이 「준결승전」을 갖는 곳이었다.여기서 이긴 팀들은 곧 열릴 전 부랴트공화국 축제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취재팀은 「귀빈」대접을 받고 귀빈석으로 안내됐다.옆좌석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한 노인이 자리했다.알렉산드르 우베예프란 이 노인은 79세였다.까닭을 물으니 「수르하루방」에는 반드시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을 모시도록 돼 있었다.칼 보리스시장은『부랴트족은 어릴적부터 손윗사람을 모시는 것을 큰 덕목으로 삼고 있다』면서 『자녀들이 (거절하지 않고) 부모나 조부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그는 『부랴트족은 주술을 행하고 점을 보며 굿을 행하기도 하는 등 샤머니즘을 잘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고 전했다.또 적어도 10촌까지는 친척이며 친척간 혼인도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는 것이 보리스시장의 얘기였다. ○화목이 가장 큰 덕목 민속명절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민속의상을 입고 나오리라는 취재팀의 기대는 깨졌다.관중으로 나온 주민들은 대부분 평상복차림이었다.또 격투종목에 출전한 선수들도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거나 아디다스등 현대식 추리닝 차림으로 경기에 임했다.이윽고 시장이 개막을 선언하자 관중들은 환호로 답했다.시장의 개막연설,심판소개,지난해 최우수선수들의 성화점화식이 있었고 성화는 성화봉에 그냥 불을 붙여 사용했다.어린이들이 갖고 나온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고 이어 구역을 대표하는 민속가무단이 그들의 민요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약 30분간의 식전행사가 끝나자 경기가 시작됐다. 처음 경기는 씨름이었다.「바리바」라는 이 씨름은 우리나라의 씨름과 흡사했다.먼저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는 선수가 지는 것이다.샅바는 없이 맨몸으로 경기를 벌였다.제한시간이 없이 끝장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관중들은 운동장 주변의 포장마차 같은 곳에 몰려가 샤스리크(구운 양고기) 등에 보드카를 곁들여 먹으며 축제분위기에 빠져들어갔다.이웃 학교운동장에서는 구역을 대표한 민속가무단들이 자리를 옮겨 노래를 계속해댔다.우리의 남도가락 같은 「요하루」를 불러댔고 노래를 부르는동안 가무단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연기」했다.이들의 춤을 구경하던 한 40대 주부는 『우리는 화목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다』며 부랴트족의 특질을 얘기해주었다.이들은 취재진에게도 『한번 받으면 잔을 비워야 한다』며 술을 권했는데 이 술은 바로 말젖을 발효시킨 시베리안 술이었다.엷은 우유빛을 한 이 술은 와인처럼 마시기는 부드러웠지만 생각보다 독한것 같았다. ○주변의 포장마차 인기 이어 장내는 활경기를 한다고 선수들을 집합시키려 했으나 각 구역에서는 선수가 구성이 안돼 경기를 하지 못했다.곧 이어 경마경기 안내방송이 나왔고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경마장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취재진은 운동장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약 4㎞ 떨어진 경마경기가 열릴 예정인 들판으로 나갔다.벌써부터 많은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 처음 운동장의 수보다 관중이 많이 나와 있어 경마에 대한 부랴트족의 관심도를 반영했다. 경마종목은 생각보다 많고 복잡했다.2백m 단거리에서부터 3천m,5천m 경기가 있었고 말 뒤에 작은 트레일러를 달고 달리는 짐경마경기도 따로 있었다.또 말이 뛰는 형식에 따라 3종목이 있었다.사람으로 치면 경보 같은 것과 앞발로만 뛰기,네발을 모두 사용해 뛰기,지상으로부터 항상 한 발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뛰기 등이었다.말이 이런 형식으로 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말이 그러한 규칙을 지키며 경기를 벌이는 것이 흥미로웠다.기수들의 나이제한은 없었고 6세 이상이면 누구나 어떤 경기도 참여할 수 있었다. 경마를 구경하던 한 주민은 『부랴트족은 3∼4세 때부터 말타기를 배운다』면서 『말을 타지 못하면 부랴트족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영친왕 가족사진첩 공개/울산 최갑수씨

    【울산=이용호 기자】 울산 여천공단내 한솔화학업무과 직원 최갑수씨(남구 무거동 927의 1)가 13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공의 가족사진을 담은 사진첩을 공개했다. 이 사진첩은 1920년대의 것으로 「기념사진첩」이란 앞뒤 표지를 포함,18쪽에 25장의 사진이 실려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내외모습과 순종·윤비·민비·덕혜옹주 등이 한자리에서 찍은 장면 등이다. 최씨는 이 사진첩이 고향인 진주에 있을 때부터 조부모로부터 전해져 내려왔으나 자세한 입수경위는 모른다고 말했다.
  • 인력수입 실사(외언내언)

    외국인 인력이 많이 들어와 있다.중국국적 동포를 제외하고도 베트남 미얀마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동남아시아인서부터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인들과 이란 우즈베키스탄인들까지 다양하다. 외국상사 사람들과 호텔과 음식업소에서 일하는 구미출신 주방장들까지 합하면 우리 사회 외국 인종 수도 가히 세계적이다.연수생 이름으로 들어온 수가 2만9천여명 되고 개별취업까지 합하면 10만여명은 될 것이라고 한다. 구미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우리사회 외국인 혼재율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 혼재속도는 상당히 빠르다.앞으로 연수생 수를 더 늘리고 우수 외국인력에 대해서는 18년까지 장기체류할 수 있게 하고 영주권과 비슷한 특별 신분제도 부여를 고려한다는 방침이다.우리도 이제는 세계인과 함께 사는 사회로 들어선다. 우리가 어렵던 60∼70년대 서독에서는 우리 광부와 간호인력을 도입했다.처음에는 그곳 병원서 일하던 우리 동포 유명 의사가 자기병원에 필요한 간호사를 한국에 와서 선발해 간 것이 계기가 됐다.간호사들이 똑똑하고근면하고 특히 노인환자들을 우리네 조부모 대하듯 공경하고 친절하게 돌보아 평판이 대단했다. 이들로 인해 광산인력도 한국에서 모집해 가게 됐다.서독에는 지금 이들중 상당수가 정착해 있다.근무후 대학에 진학하여 상당한 전문직에 책임자로 있기도 하고 서독인과 결혼하여 정착한 경우도 많다.교민수가 2만8천여명으로 미국(1백60만여명) 다음 순인 것은 이들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서독은 우리 간호사와 광부들을 모집해 갈때 그 자격과 건강·심성·근면성·발전성 등을 전문적으로 점검했다.그 사회 정착에 대비한 것이다. 우리도 외국인력을 일하고 나간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함께 사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좋은 인력 도입에는 선발·송출과정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 한다.송출업체 현지실사는 여러면에서 필요하다.
  • 「조부모부재」의 현실을 생각하며(박갑천 칼럼)

    전통사회의 3대(조부모·부모·나)관계는 공변된 점이 있다.나는 아버지를 두려워한다.아버지는 그 아버지인 할아버지를 두려워한다.그런데 할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이 관계가 가정의 가리새에 균형을 이루어준다. 어느날 나는 아버지한테 회초리를 맞는다.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나무란다.지난 날에는 자신도 그랬으련만 그렇게 주눅들게 때리는게 아니라면서.할머니는 부어오른 맷자국에 참기름을 발라준다.그날 할아버지 저녁상의 고기반찬은 나의 몫이다.어머니의 불만은 크다.나의 버릇 못되게 만드는건 할아버지 할머니라면서.하지만 「친구」인 할아버지와 바둑두는 나의 마음은 풀려있다.할아버지는 그때 집안내력하며 사람다워져야할 보법에 미립등을 조용조용 가르친다. 어머니가 걱정했던 「버릇없어짐」은 자라면서 가멸진 정서로 싹튼다.핵가족화한 오늘의 세대에게는 그 조부모의 애정이 배어들어 있지않다.그게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누군가 이렇게 대답한다.『오늘날에도 조부모 모시고 있는 집안에는 일부의 예외말고는 이른바 문제아가 없습니다』사리를 분별케하는 힘이 그 애정속에는 서려있다는 뜻이다. 박양한의 「매옹야록」에 보이는 이상의의 경우를 보자.좌찬성이었던 그가 살아있을때 아들 지완이 아경(참판)으로 올랐다.나라법도에 종2품된 자만이 헌차를 탈수 있는데 그나마 그부형이 살아있으면 못탄다.그런데도 아들이 탄 것을 안 아버지는 그 아들을 헌거와 함께 나무에 묶어두고 못 내려오게 했다.이글을 쓴 박양한은 이렇게 말한다.『이상의 자손이 지금껏 현달하게 된것은 바로 이같은 법도때문이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이런 법도를 몸으로 익히면서 자라난다. 누구는 오늘의 우리사회 윤리도덕의 혼란상에 대해 「조부모부재(불재)」를 원인으로 든다.이에 대해서는 외국인이 지적한 일도 있다.슬프지만 혈연으로서의 조부모는 있어도 정신적 기둥으로서의 조부모는 스러진게 현실이다.자의반 타의반으로.얼마전 제일생명이 조사한 노인들의 의식조사 결과에도 그게 나타난다.중산층노인의 64%가 『자녀와 따로 살겠다』고 응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서로 불편하기 때문이다.「조부모부재」는 세상이 만들어간다.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조부모의 이름도 못쓴다. 빛바랜 탈무드의 한구절을 외어보자.『노인이 집에 있는건 짐이다.그러나 할머니(할아버지)가 집에 있는건 보배다』
  • 북에서 온 손녀(외언내언)

    북한 TV를 볼때면 우리를 참을 수 없도록 가슴아프게 하는 것이 있다.아직 유아음이 남아있는 북한 어린이들이 이상한 몸짓으로 『경애는 하는 수령님…』을 찾으면서 뭣도 주시고를 되뇌며 김일성 부자에 대해 학습한 내용을 지어낸 목소리로 외고 있는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빈약한 옷에 빨갛고 커다란 리본을 머리에 얹은채 특유의 억양으로 『수령님』타령을 달달 외는 여자어린이의 모습은 절망감을 안겨준다.보모의 닦달을 의식하는듯 할끈할끈 눈치를 보며 톤높은 가성으로 소리치는 이 자동인형같은 어린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순진무후한 어린 영혼을 그토록 오염시킨 죄는 갚을 길이 없어 보인다. 일가 5명을 이끌고 북을 탈출해온 오수룡씨는 『아들과 손녀의 장래를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그의 팔과 그의 부인의 팔에는 눈이 까맣고 너무도 귀엽게 생긴 손녀가 하나씩 안겨 있다.우리가 북한 뉴스에서 슬픔과 분노를 억제하며 바라보곤 하던 바로 그만한 나이의 어린이들이다.이 손녀들 때문에 탈출을 감행한 그들은 위대한 조부모다. 그들의 용기가 해낸 일은 이 까맣고 아름다운 눈동자들이 해괴하게 자라는 일에 희생되지 않고 사람답게 성장하여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개척하며 사는 길을 열어주었다.이곳에서의 삶이라고 해서 다 만족스러우리라는 말은 할수 없다.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그들의 유아음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 소름돋는 의성어로 뜻도 모르는 소리를 지껄여야 하는 운명은 벗어난 것이다. 어린 생명의 먹이는 일,입히는 일을 인질삼아 충성을 각인하고 그 죄임쇠를 조종하는 것으로 집단을 경영하고 있는 그들은 잘못되었다.그것을 알지만 죽음을 무릅쓴 탈출을 모두가 다 할 수는 없다.오씨 일가의 탈출 성공은 그래서 값지다.그손녀와 손녀들의 가족을 환영한다.
  • 귀농 목적 2주택/양도세 면제/1월부터 소급 적용

    도시인이 귀농할 목적으로 연고지인 농어촌 지역에 주택을 구입,1가구 2주택이 된 경우 올해부터 기존의 도시주택을 팔 때 양도소득세를 물리지 않는다. 귀농주택으로 인정되는 연고지의 범위는 본인과 배우자 및 그 직계 존속의 원적지(본적지 포함)와,5년 이상 거주한 지역으로 경기도를 제외한 읍·면 지역이다.읍의 경우 도시계획 구역은 제외된다.주택과 함께 3백평 이상의 농지를 구입해야 한다. 재정경제원은 23일 이같은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1월1일 이후 도시주택 양도분부터 소급해 적용한다고 밝혔다.주요 내용은­. ◇연고지의 범위=본인의 부모·조부모의 원적지와,배우자의 부모·조부모의 원적지가 모두 해당된다.즉 처가가 있는 곳에도 귀농주택을 살 수 있다.뿐만 아니라 본인과 배우자 및 본인의 부모·조부모,배우자의 부모·조부모가 5년 이상 살던 지역과 그 인접 읍·면 지역도 포함된다. ◇귀농주택의 규모=고급주택(전용면적이 50평 이상이고 국세청 기준시가로 5억원 이상인 아파트,건평이 80평 이상이거나 대지가 1백50평 이상이고 5억원을 넘는 단독주택)은 제외된다.아파트의 경우 값이 5억원 미만이거나 5억원을 넘더라도 전용면적이 50평 미만이어야 하며,단독주택의 경우에는 값이 5억원 미만이고 건평 80평,대지 1백50평을 넘지 않아야 귀농주택으로 인정된다. ◇양도세 면제 요건=귀농주택을 한 채 지닌 사람이 기존의 도시주택을 팔 때 면세 혜택을 받으려면 해당 도시주택은 3년 이상 살거나 5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1월 1일 이전에 판 경우 혜택이 없다.기존 도시주택을 팔고 귀농주택으로 이사하는 경우만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다른 도시주택으로 이사하는 경우에는 과세된다.
  • 「출세엔 권력·배경이 으뜸」이라고(박갑천 칼럼)

    옛전적들에는 「문음」이라는 말이 가끔씩 나온다.정식으로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집안덕」으로 벼슬하는 경우를 이른다.예컨대 한명회의 장인인 민대생도 그런 사람중 하나였다(「죽창한화」). 「송와잡설」에 의하면 생원과 진사는 「선인」이라 해서 임용하고,효자·순손(조부모를 잘모시는 손자)과 글잘하고 덕행높은 선비는 「유일」이라해서 천거했다.그래서 문벌이 낮은자는 소외될밖에 없었다.이에대해 저자 이기는 이렇게 개탄한다.『어진이를 등용한다는 핑계아래 문음으로 뽑는 일을 시작하여 자기들 좋아하는 사람들만 고르니…벼슬길도 차츰 혼잡해졌다』 이러한 문음관계가 조선후기로 내려오면 더욱더 문란해진다.그런 현상은 가령 황현의 「매천야록」에서만도 여기저기서 대할수 있다.황매천은『근래의 재상들은 거의가 통과출신』이라고 지적한다.통과란 순조·헌종 이후에 생겨난 문란해진 과거시험이다. 여기 응시하는 사람들이 『낫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황현은 말한다.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이런 타락현상을 이렇게 비웃었다.『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자들이 과거를 주재하고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자들이 과거를 치르며 낫놓고 ㄱ자도 모르는 자들이 급제한다』.권문세가의 자제들이 실력없이 등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음을 알게한다. 이같은 역사의 줄기가 오늘에 안이어졌다고 할수는 없다.『권력있고 돈있고 빽이 있어야…』라는 말을 듣그러울 정도로 들어오는 우리들이 아닌가.그런 의식구조의 한 꼬투리가 연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서도 드러난다.학생들은 우리사회에서 출세하는데 가장 비중높은 요소가 「권력·배경」이라고 꼽았다(46.5%).주목되는 점은 2.2%의 「인격」과 1.5%의 「학식」.맨꼴찌로서 시답잖게들 보고있다. 이것이 그들눈에 비치는 우리 자화상이다. 어느사회고 「권력·배경」이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는 할수 없을것이다.하지만 그게 지나칠땐 부패로 이어진다.또 이런현상은 그걸 못잡는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함께 암상·옥생각을 안긴다.그것은 사회의 곪집으로 변해간다.그럴때 위에서 외치는 「맑은사회」에 메아리가 있을수 없다.부정부패의 원인요법을여기서 찾게 되어야 할것이다. 『사향을 가졌으면 저절로 향기가 날것이니 어찌 반드시 바람부는데 서서 향기풍기길 바라랴』(명심보감).
  • 북 3·1절 왜곡(외언내언)

    1919년3월1일 정오.민족대표 33인이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으로써 3·1운동이 점화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수없는 역사적 사실이다.그러나 북한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왜곡·날조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의 아버지인 김형직선생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청년들과 함께 평양에서 대중적인 반일시위에 떨쳐 나선 것을 시발로 하여 3·1인민봉기는 삽시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북한의 「근대조선역사」(84년)가 기술하고 있는 내용.3·1운동을 3·1인민봉기로 바꾸었고 민족대표 33인을 김형직으로 둔갑시켰으며 3·1운동의 발원지도 평양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3·1운동이 실패한 원인은 대중을 이끌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해놓고는 『모든 인민이 지도자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리게 되었고 그 절절한 염원을 받들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민족 앞에 나서게 됐다』고 터무니 없는 선전을 하고 있다. 북한의 역사왜곡과 날조는 3·1운동에 그치지 않는다.제너럴 셔먼호 격침사건의 주동자를 김일성의 증조부로 변조했고 조부모인 김보현·이보익,부모인 김형직·강반석,삼촌 김형권,전처 김정숙 등 일족을 모두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위대한 애국자」로 떠받들고 있다.또 이들을 위한 정례적인 기념행사까지 치르고 있다.최근에는 고고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단군릉까지 만들어놓고 김일성부자의 우상화놀음을 더욱 거세게 펼치고 있다. 김일성 가계의 혁명전통을 미화하는 한편 김일성부자세습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어쩔수없는 궁여지책이겠지만 이쯤되면 할 말을 잃게 된다.역사적 사실을 왜곡·날조하는 것이 얼마나 큰 반민족적 범죄인가를 모르고 있단 말인가.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산당 수법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북은 지하의 애국영령들을 제발 더이상 모독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 국회통과 주요법안 요지

    ◎사법연수원생 법률구조 종사/공익법무관법/금융자료 목적외 사용자 처벌/공직장윤리법/세관에 외화유출 조사 사법권/사법경찰권법/농산물 수입이익금 부과·징수/농산물가격법 ◇공익법무관법(제정)=병역미필 사법연수원 수료자가운데 일부를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공익법무관으로 임용해 법률구조공단이나 법무부 소속기관 또는 각급 검찰청에 배치,법률구조업무 및 국가소송 등 관련사무에 종사하도록 함.의무복무기간은 3년으로 하고 보수및 여비등은 군법무관과 형평을 유지. ◇검찰청법(이하 개정)=고등검찰청 검사가 원거리의 지방검찰청 소재지에서도 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함.63세와 60세인 검찰총장과 검사의 정년을 각각 65,63세로 연장. ◇공직자윤리법=공직자윤리위가 금융기관의 장에게 공직자의 금융거래내용에 관한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함.금융거래자료를 제공받은 자가 이를 누설 또는 목적외 용도로 이용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함.외조부모및 외손자녀의 재산은 등록대상범위에서 제외. ◇물가안정및 공정거래법=법안 명칭을 물가안정법으로 변경.주무장관이 매점매석행위에 대해 물가안정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고발할 수 있도록 함.매점매석행위자나 가격표시의무 위반자에 대한 벌칙을 상향조정하고 주무장관이나 시·도지사 등이 가격표시의무 위반자에 대해 직접 과태료를 부과·징수할 수 있도록 함.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이 법의 적용대상인 중소기업자의 기준에 상시고용 종업원수 외에 매출액도 포함시킴.소프트웨어개발및 엔지니어링활동 등 신산업분야의 하도급거래도 제조위탁범위에 포함.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목적물의 제조등에 필요한 물품 등을 사도록 할때 원사업자의 구입가격 또는 제3자에게 공급하는 금액을 넘지 못하도록 함.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법=체신관계 단속업무 종사공무원에게 전파·전기통신기본법 위반사범,세관공무원에게 외화등의 밀반출입사범및 지적재산권 침해사범에 대한 사법경찰권 부여. ◇공익법인설립·운영법=대통령령이 정한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가 공익법인 이사회 정수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도록하던 것을 5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함.주무관청은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면 공인회계사등 관계전문기관의 감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함. ◇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농산물 수입업자에 대해 수입이익금을 부과·징수하여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에 포함.수입업자가 수입농산물을 신청용도 외의 용도로 사용한 때는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 ◇산림법=임산물 수입업자에게 수입이익금을 부과·징수,산림개발기금에 납입할 수 있도록 함. ◇양곡관리법=양곡에 대한 수입제한규정을 삭제하되 수급조절과 수입양곡의 관리를 위해 양곡수입업자 또는 수입양곡의 판매·가공업자에게 판매가격이나 판매방법·시기·용도 등을 제한할수 있도록 함.농산물이행계획서상 수입이익금을 부과할수 있는 양곡의 수입·판매업자에게 국내가격과 수입가격의 차액범위 안에서 일정금액을 부과·징수,이를 양곡관리특별회계 또는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에 납입하도록 함. ◇사료관리법=농림수산부장관의 사료판매가격 지정제도 폐지.배합사료및 보조사료 제조업의 허가제를 등록제로 변경.사료판매업은 신고제를 폐지하고 자유업으로 전환. ◇축산법=종축등의 수출입 추천제를 신고제로 전환.가축의 인공수정업무를 가축인공수정사 외에 수의사도 할수 있도록 함. ◇종묘법=종묘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종묘상은 등록제를 신고제로 변경. ◇주요농작물종자법=종자판매업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
  • 입양고지(외언내언)

    북구 노르웨이가 한국아 입양을 시작한 지 40년된다.6·25전쟁후 병원선 봉사자들이 전쟁고아 한둘 데려가기 시작한 이래 지난 5월말로 5천명에 이르렀다.한국아이를 기른 양부모들 잔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주 중요한 조사자료가 40년 기념으로 발표됐다. 13세이상 한국입양아출신 3천명과 노르웨이태생 3천명에 대한 사회조사결과다.전문사회조사기관이 1년여에 걸쳐 방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적응도·사회비중도·부모기대부응도등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항목을 조사한 것이다.한국입양아출신이 건강도·적응도등 여러 항목에서 우수하고 학교생활·학업에서는 단연 적극적인 것으로 나왔다. 특히 부모기대부응도에서는 단연 점수가 높았다.십대만되면 일찍 부모곁을 떠나는 노르웨이 아이들에 비해 집 떠나는 것이 늦고 학교 남녀친구문제등 걱정거리를 부모나 조부모에게 말하고 조언을 들어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점에 양부모들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청소년기 봉사활동참여도 높고 사회직업에서도 남을 돕는 간호직·사회사업직·의료직·법률직등에 많이 진출하여 노르웨이 국가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됐다.미국이나 덴마크·벨기에등 세계 13개국에 입양된 한국아이들이 우수하고 유난히 부모를 따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이들은 모두 알만한 나이에 입양자라는 것을 알고 큰 아이들이다.양부모들이 잘 키워낸 것이다. 국내서도 입양자라는 것을 알리고도 잘 길러낸 사람들이 많다.홀트양자회가 57년도부터 입양한 국내 입양자명단 1만3천여명속에는 이름대면 바로 알 저명인도 상당하다.개중에는 입양자인것을 알게 된 아이가 가출하거나 반항해서 곤경을 겪은 집도 있지만 적합한 시기에 입양사실을 알게 한 것이 양육성공과 좋은 관계 지속조건이라고 조사됐다.다만 충분한 사랑속에 키우고 소중한 자식이라는 확신을 들게 한 것이 성공의 전제였지만…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2명의 국민교 5년 여아사건은 가슴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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