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문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성별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소청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부대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71
  • 자민련, 내각제 헌법안 마련-독일식 순수내각제 골격

    자민련 내각제개헌추진위(위원장 金龍煥 수석부총재)는 독일식 순수내각제를 골격으로 135개 조항과 부칙 5개항으로 구성된 내각제 헌법안을 마련한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추진위의 한 관계자는 이날 “지난 2월 총재단회의에서 통과된 자체 헌법 요강을 토대로 이같은 내용의 내각제 헌법안에 대한 조문화작업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헌법안은 전문과 총강,국민의 권리와 의무,국회,대통령,정부,법원,헌법재판소의 선거관리,지방자치,경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헌법안은 총리를 수상(首相)으로 바꾸고 국무회의는 ‘내각회의’로 이름을 바꿨으며 현행 헌법의 ‘대통령절’인 제4장 1절은 ‘수상절’로 대체하는등 수상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부칙에는 개헌안 통과 후 구성된 국회가 첫 소집된 10일 이내에 대통령과 수상을 뽑도록 규정했으며,현 15대 국회는 임기 말까지 존속토록 했다. 부칙은 또 대통령은 개정 헌법에 따라 차기 대통령을 선출할 때까지 직무를수행토록 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제2공화국과 張勉](22)-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上)

    장면(張勉)정부는 실로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짊어지고 출범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남긴 유산을 4월혁명에서 확인된 민의(民意)대로 처리하는 일이었다.이정권이 저지른 정치비리인 ‘6대 사건’과 경제비리인 ‘부정축재자 처벌’이 주요 관심거리였다. 6대 사건이란 ▲4·19 때의 발포 ▲장면부통령 저격 ▲서울·경기도 부정선거 ▲민주당 전복 음모 ▲정치깡패 ▲제3세력 제거 음모 등을 말한다.한결같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노려 국민과 야당을 탄압한 사건들이었다.이와 관련한 재판을 ‘혁명재판’이라고들 불렀다. 혁명재판의 진행은 그러나 순조롭지 못했다.먼저 법리상의 문제가 제기됐다.피고인측 변호사들은 “6월15일 헌법이 개정되었으므로 ‘3·15선거’ 때의 관련법은 효력을 상실했다.따라서 몇몇 피고인은 무죄”라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4월혁명유족회’회원들이 법원에 들어와 규탄데모를 벌이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그러자 변호사들은 재판이 안전한 상태에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는보장이 없는 한 참석하지 않겠다며 출정을거부했다. 혁명재판은 지지부진했고 민심은 부정선거 원흉들이 그냥 석방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장면정부도 사태 진행을 우려했지만 과거 이승만이 했던 것처럼 법원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존중한다는 뜻에서였다.변호사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해 법정으로 돌아오게한 것이 고작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재판장 張俊澤부장판사)는 피고인 48명에게 1심형량을 선고했다.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13명 가운데 3명에게만 사형을 언도했고,8명에게는 무죄·공소기각·면소(免訴)판결을 내려 풀어주었다. 이에 앞서 마산지법은 ‘3·15부정선거’피고인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내린 바 있어 서울지법의 ‘경미한’ 판결이 불러일으킨 분노는 더욱 컸다.장판사는 훗날 “국민감정과 동떨어진데다 기존 법의 한계를 보인 판결이지만 증거에 따라 당시 법대로만 판결했다”고 밝힌다. 온유하기로 유명한 장면도 이 판결에는 크게 화를 냈다.그는 회고록에서 “나 자신도 분격했다.법조문에 의한 공정한 판결이었을지는 모르나 국민감정에 미치는 영향도 참작했어야 할 것이다.적어도 혁명재판이라는 성격을 띠었다면 말이다.여하간 평상시의 법조문에 의한 것으로도 너무 가벼운 형이었다”고 술회했다. 전국적으로 벌떼와 같은 시위가 벌어지고 3일 후 4·19 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소급입법으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피고인들을 엄중 처벌하라는 여론이 불길처럼 일어난 것이다. 민의원은 10월13일 ‘민주반역자에 대한 형사사건 임시처리법’을 서둘러통과시켰다.주요 내용은 ▲특별입법을 할 때까지 재판을 중단하고 ▲관련 피고인들에게는 구속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며 ▲재판에서 석방되더라도 즉시 재구속한다는 것이었다. 특별입법을 전제로 한 ‘임시처리법’이 통과된 뒤 소급입법을 위한 개헌논의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총리로서 장면은 이를 거부한다.보복을 목적으로한 소급입법은 정치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대신 현행법에서 가장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장면은 민주당 의원들이 소급입법을 놓고 최종 토론을 벌인 현장에서도 강력히 반대했다.심지어 “소급법을 고집한다면 나는 당을 떠날지도 모르겠다”고까지 굳은 결심을 보였다.그렇지만 소급법은 결국 제정되고,장면은 회고록에서 “격렬한 국민감정과 지배적인 공기로 보아서는 이를 안 할 도리가없을만큼 험악했다”면서 “소급법이 가능하게 된 점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심정을 밝혔다. 장면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원인은 신·구파 갈등과 소장파 반발 등으로 안정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데 있었다.민주당 구파는 이미 분당작업에 들어갔고 소장파도 공공연하게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 신·구파로 이루어진 제2공화국 행정부와 의회는 사회적 압력에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급입법은 구파의 주도 아래 차근차근 진행됐다.민의원은 10월17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해 11월23일 통과시켰다.투표에 참석한 200명 가운데 191명이 찬표를 던졌다.부정선거관련자·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고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소급입법을 할 수 있으며,이를 맡을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후속조치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및 특별검찰청 조직법이 잇따라 연내에 제정됐고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 61년 4월 공포됐다. 특별재판소는 61년 1월25일 5개 심판부를 구성,전국 각지의 법원이 맡던 관련사건을 이송받아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이 가운데 제1심판부(재판장桂昌業대법관)는 4월17일 부정선거 사건 피고인들에게 선고를 내렸다.최인규(崔仁圭)전내무장관에게는 구형대로 사형을,이강학(李康學)전치안국장에게징역 15년,이성우(李成雨)전내무장관에게 징역 7년,최병환(崔炳煥)전내무부지방국장에게는 징역 5년을 각각 언도했다. 소급입법은 이후 두차례 더 등장한다.박정희(朴正熙)가 만든 ‘정치활동정화법’과 전두환(全斗煥)의 ‘정치풍토쇄신특별법’이 그것이다.둘 다 구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법이었고,제2공화국에서 소급법을 제정한 당사자들이주로 대상에 들었다.이용원기자 ywyi@-실패한 許政과도정부 4월혁명이 난 뒤 장면(張勉)정부가 들어서기까지는 넉달이 소요됐다.그 넉달 동안 혁명과업의 첫 처리를 맡은 정치 주체가 허정(許政)과도정부이다. 허정정부는 이름 그대로 과도기에 한시적으로 존재했고 따라서 역사·사회발전에 큰 구실을 하리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정권이다.그렇지만 이승만(李承晩)정권이라는 구체제가 무너지고 처음 등장한 정권이라는 점에서,어차피 4월혁명이 제기한 갖가지 혁명적 요구를 수행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도 사실이다. 허정정부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실패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실제 과도정부가 행한 역할은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도 훨씬 미치지못했다“(孫浩哲 서강대교수 등)고 본다.그 이유는 “4·19 취지에 의거해구체제와의 단절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과도정부 자신과 민주당,그리고 4·19혁명에 참여한 중요한 지식인 및 사회세력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개혁을 위한 타협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崔章集 고려대교수)이다.그 결과 “후계정권(장면정부)에게 제한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혁명’을 수행해야하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주었다.”(韓昇洲 고려대교수)허정은 서울 각대학 교수들이 시위를 벌인 1960년 4월25일 외무장관에 임명된다.이틀 뒤 이승만이 하야하자 그는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된다.대통령승계권을 가진 장면부통령이 4월23일 이미 사임했기 때문이다. 과도정부의 내각수반이 된 허정은 각료진 구성을 마치고 5월3일 ‘5대 시책’을 발표한다.‘반공정책을 한층 더 견실하게 전진시키는 것’을 비롯해▲부정선거 처벌대상은 고위책임자와 잔학행위를 한 자에 국한하고 ▲혁명적 정치개혁을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단행하며 ▲4월혁명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내정간섭’운운하는 것은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를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전 국민이 이 시기에 위대한 관용을 보이고 그 정력의 전부를 국가의 부강과 국민 공익에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해 정치보복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했다.한마디로 “최소한의 정책변화를통해 현상유지를 담보하는 정책”(최장집)을 편 것이다. 이같은 기본원칙은 각 부문에 그대로 적용됐다.먼저 ‘3·15부정선거’등정치비리 관련자 처리를 이승만정권 때부터 유지된 법원·검찰에 맡겼다.이때문에 ‘혁명재판’성격은 사라지고 국민감정이 용납못할 판결이 잇따랐다. 서울지법 형사1부의 10월8일 선고가 대표적인 예이다.“공판은 장면이 이끄는 다음 정부로 넘겨졌으며,장면정권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의 원인이 되었다”(한승주)‘부정축재자 처벌’도 마찬가지였다.과도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처벌 의지를 여러차례 공표했지만 명백히 ‘축소지향적’이었다.6월 1∼20일을 부정축재 자수기간으로 정했고,7월2일에는 허정이 “부정재산을 정부에 반환하면 형사책임을 감면하겠다”고 밝혔다.사흘뒤 부정축재 1차 조사대상자로 기업인18명,기업체 61사를 공개했다. 결국 과도정부에서는 몇몇 사람이 부정축재 사실을 자진 발표하고 축재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그쳤다.장면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밖에 ▲고위장성의 반발을 두려워해 군 개혁을 외면했고 ▲민원(民怨)의 대상인 경찰을 민주화하는 방안도 자리바꿈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허정과도정부는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한다’는 슬로건을내세웠지만 결과는 “사회 내 어떤 부문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무능과 무작위 탓으로 장면이 이끄는 그후의 정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한승주)말았다.이용원기자
  • 내각제 발언 구설수이후 李총재 꼬이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웃음’을 잃었다.평소에도 빈틈없어 보이는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최근 하는 일마다 꼬이기 때문이다. 당내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심작’으로 내세웠던 고승덕(高承德) 서울송파갑 재선후보의 전격사퇴는 충격 그 자체였다.29일 충남 예산으로 내려가는 도중 고변호사의 사퇴소식을 전해듣고는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불편한 심기는 30일에도 이어졌다.오전에 열린 당직자회의에서는 모두(冒頭) 발언을 하지 않고 보도진을 물리쳤다.이례적인 일이다.이총재는 매일 새벽 가회동 자택에서 하순봉(河舜鳳)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주요 이슈를 정리하고 있다.공식 회의때 발언할 내용을 정리하는 자리다. 고변호사의 후보사퇴가 이총재의 ‘지도력’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26일 의총에서의 ‘권력구조문제’발언도 결과적으로 감점요인이 됐다는 게 당안팎의 지적이다.임기말 내각제 개헌을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연내 개헌시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내비친 대목이다.여권으로부터 강한반발을 샀음은 물론이다. 급기야 의총 다음 날인 27일 청와대측으로부터 한 방 맞았다.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총재가 지난 달 1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가진 총재회담에서 내각제 개헌을 절대 반대한다고 말해놓고도 여당을 교란하기 위해 꼼수를쓰고 있다”고 이총재를 몰아붙였다.이에 대해 이총재는 “내각제 얘기는 그만 하자”고 진화를 시도했다.
  • 병역비리 관련자 명단

    ● 병역면제 청탁 금품공여자(135명)●구속 이용일(67·쌍방울구단주 대행·전KBO사무총장) 임금택(55·신한은행 서초지점장) 김경희(46·서울은행 응암지점장 홍성봉의 처) 조인택(61·세무사) 한대희(66·전 총무처 소청심사위원) 서용빈(29·프로야구선수·LG트윈스·보석) 마미숙(54·충남대 교수 이원웅의 처) 안승택(57·의사·부평안병원) 김교천(49·부산동아대 강사) 김영분(57·분당자동차학원장 배병태의 처) 민옥자(57·동남유화대표 최남호의 처) 최덕광(59·숙박업) 송진화(53·신생프러덕션대표) 이외룡(59·부동산임대업) 김현숙(50·회사원 김진철의 처) 양한묵(53·음식점 전무) 박춘옥(51·원창물산 상무 이강일의 처) 유일수(51·전 대유공영 대표) 이권재(48·전 로베르패션 대표) 노창식(61·무직) 권옥순(56·대원레저대표 박완순의 처) 김예균(54·개인택시) 박춘식(51·목수) 신영환(54·㈜신성 회장) 조규완(57·대창전기 대표) 송영섭(56·척추교정치료사) 민성기(49·철강판매업) 이상용(61·출판업) 김병준(50·㈜거봉 감사) 장재순(50·농장경영 김봉일의 처) 서재설(59·㈜삼성전기 부사장) 유병국(49·화랑운영) 이낙수(59·의류판매업) 김은배(46·회사원 이창명의 처) 오정자(57·삼익주택 법정관리인 원수언의 처) 정덕남(44·수산물중매인) 허창삼(52·㈜삼전 대표이사) 이한기(56·약국운영) 정광만(56·음식점경영) 고병헌(54·㈜금비 대표이사) 박청(55·직물도매업) 오동희(56·동조무역 대표) 오동훈(49·부동산임대업)●구속(적부심 석방) 주경빈(49·한양대 의대교수) 김용문(56·의사·강서고려의원) 백명자(62·한국기공 대표 서종국의 처) 구모환(49·동우직물 대표) 박무웅(55·신성전자부품 대표) 전용배(47·부동산임대업)●불구속(영장 기각) 김종윤(56·성남시의원) 송경(54·외환카드㈜ 감사) 전영실(51·의사·전영실 산부인과) 윤원조(59·건물임대업) 장유자(55·전 농어촌진흥공사 직원 단한주의 처) 정동건(54·개인택시) 홍기식(56·풍산전기 대표) 김정태(61·동양기업 대표) 김현수(54·삼립인쇄 대표) 이정상(55·무직) 이복연(54·의류판매업) 최종태(45·㈜우림해운 대표) 정혜경(48·영남정보통신 부사장 김용환의 처)●불구속 김영욱(51·하나은행장 김승유의 처) 최순강(55·가수·예명 김상희) 홍원식(48·㈜남양유업 대표이사) 이재홍(49·㈜대우중공업 상무) 전용수(55·인하대교수) 김병만(56·관악세무서 6급) 정창호(50·김포세관 6급)박철조(49·전 신한은행지점장) 방대영(63·전 주택은행지점장) 박순철(53·전 한일은행지점장)이석도(49·전 서초구청 도시국장) 곽원문(54·전 도로공사감리단 감사) 이혜경(52·LG LCD 사장 김선동의 처) 이근옥(69·전 호서대 교수 박윤성의 처) 강대균(68·변호사 임영득의 처) 김증자(56·변호사 최병륜의 처) 박순이(49·㈜LG화학이사) 이순상(53·의사 주영철의 처) 권혁권(63·의사·대림성모병원) 김기영(58·의사·서울구치소의무서기관) 구정열(56·의사·마산중앙자모병원) 이병원(60.의사·산재중앙병원) 우영혜(47·쌍용양회 지사장 권대헌의 처) 김명수(50·㈜해태상사 이사) 정영민(53·무역업) 이기석(43·건설업) 조재린(59·크린타치오 대표) 박융길(45·의류판매업) 김정택(57·건설업) 박재명(48·한일유통㈜ 부사장) 백송수(58·동성유통 대표) 송용민(52·전 ㈜이원대표이사) 이정희(50·음식점경영) 황태리(45·의류판매업) 한택환(49·부동산임대업) 김영창(57·건축사) 감경철(55·㈜익산 대표이사) 김두환(56·스포츠용품점) 문희지(61·부동산임대업) 정석명(53·의류제조업·두손 어패럴) 허용호(51·상원산업대표) 주명희(46·주부) 김은정(56·약사) 송희순(53·주부) 채실경(46·부동산임대업) 박상석(53·다남산업 전무) 김용심(50·건화상사 부회장 정우경의 처) 이재오(44·루치아노 대표 최원만의 처) 송인복(59·주부) 전희식(58·완구제조업) 우금순(58·환경미화원 박성구의 처) 방기봉(52·무직) 한은순(45·제마트 대표 임성재의 처) 정양호(55·국세청 5급) 최승계(55·무직) 안동진(52·무직) 장신자(57·전 농협직원 최정웅의 처) 정춘자(54·신라교역 대표 박준형의 처) 김병성(55·.의류판매업)●지명수배 김찬영(61·개풍산업㈜ 대표) 정종대(53·그린웨딩홀사장) 이민우(28·프로농구선수) 갈지원(53) 김용희(56) 신정희(50) 여창대(51) 박성래(55) 박정하(51) 허계근(57) 이상도(57)●참고인 중지 이연우(59·전 상업은행과장) 이명복(50·무직) 김유진(54.주부)● 알선자 및 전직 군의관(49명)●구속 최기택(44·서울병무청 7급) 정건표(46·〃 6급) 김재우(56·〃 6급) 김종기(43·〃 7급) 김세환(40·〃 7급) 이인옥(43·〃 7급) 유남술(54·〃 6급) 정윤근(47·병무청 징병검사과 6급) 박기석(56·〃 총무과장 4급) 이영운(40·〃 감사실 6급) 이영운(40·〃〃) 송두표(47·〃 산업지원과 5급)한상태(54·〃 징모국 4급) 박용원(41·경기병무청 8급) 허주철(45·〃 6급) 이기왕(52·신길1동 병무담당 7급) 김정권(57·전 모병관·해군준위) 성치용(55·전 국군수도병원·대령) 장용기(50·〃 소령) 이승준(59·전 관악구청 5급) 유광영(54·건물임대업) 권태훈(50·평화초등학교 7급) 나춘균(48·반도정형외과 의사) 이민용(39·의사·전 군의관) 손호열(39·〃〃) 김경수(32·〃〃) 이일철(35·〃〃) 이상표(34·〃〃) 이춘오(46·울산대학병원의사)●불구속 김진우(34·의사·전 군의관) 김평호(36·프로야구 코치) 곽주표(55·예비역대령) 소병빈(53·〃) 강선호(52·건물임대업)●지명수배 김진대(51·서울병무청 6급) 김영식(42·〃〃) 김영국(55.서울병무청 6급) 성용현(47·〃〃) 이흥섭(40·〃〃) 안계영(40·〃 7급) 양태근(40·〃〃) 조진구(45·〃 기능직) 조문길(48.전 〃 직원) 한소열(52·병무청징병검사과 6급) 김종근(41·경기병무청 7급) 최경희(51·전 강남구청 병사계장 6급) 황동연(44·전 성동구청 직원) 이상진(67) 정재효(63) 이상직(61)● 군인 및 군무원(23명)●구속 임영호(37·국군수도병원 외과처장·소령) 고기복(38·〃 안과과장·소령) 최경석(34·국군수도병원 신검과장·소령) 송상현(35·국군수도병원정형외과·대위) 윤영현(34·〃 정형외과·소령) 김익수(37·〃 정형외과장·소령) 윤태일(32·〃 정형외과·대위) 김장훈(34·〃 안과·소령) 김도술(52·〃 주임원사) 김양태(48·〃 군무원·7급) 이정수(50·〃 주임원사) 김용호(52·국군부산병원 주임원사) 임종범(47·〃 행정부장·중령) 임만석(48·국군대구병원 행정부장·중령) 김경환(35·국군 백제병원 안과·소령) 김인식(37·국방부 의무실장·소령) 박종영(45·〃 합조단 군무원 5급) 허성초(36·육군본부 의무감실·소령) 윤일선(39·공군교육사 진주기지병원장·소령) 조규섭(37·공군15비행단 신경외과·중령) 김규형(48·의무사령부 인사행정처장·대령) 정인호(44·〃 인사과장·중령) 여광조(46·연합사령부 기무대·준위)
  • 총기난동학생 부모 기소 가능성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희대의 교정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이 25일 콜로라도주 리틀턴시에서 열렸다. “케시 버낼(17)이란 여학생은‘신을 믿느냐’는 질문에‘그렇다’고 답한직후 범인이 쏜 총을 머리에 맞고 숨졌습니다.범인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녀는 곧 신의 곁으로가 편안히 안주할 것입니다” 빌리 그레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목사는 25일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동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추도식에서 이처럼 어이없는 한 소녀의 죽음을 비롯해13명의 영혼을 위로했다. 잔뜩 흐린 날씨 속에 학교에서 1마일 떨어진 상가 주차장에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앨 고어 부통령을 비롯,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8만여명의 조문객이모여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희생자 이름에 맞춰 한마리씩 날려진 비둘기 13마리가 날아오르고 4대의 F-16기가 추모비행을 한 뒤 빌 오웬 콜로라도주지사는 “엄청난 악을 겪은 뒤우리들은 오히려 더 가까워졌습니다”며 희생자 가족을 위로했다. 한편 범인 해리스와 클리볼드의 부모는 사건과 관련해 형사입건됐는데 경찰은 “각종 총기와 일기가 서랍이나 벽장등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었음에도부모가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이들이 기소될 가능성을 비쳤다. hay@
  • 金대통령, 金정무수석 주의조치 안팎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최근 김정길(金正吉)정무수석의 정계개편 발언에 대해 공개 주의조치를 취한 것은 지금은 권력구조나 정치권의 역학관계에 국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라는 인식의 산물이다.일부노동계의 격한 움직임으로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마저 권력구조문제로 요동칠 때의 국가적 손실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실제 김 수석이 사견(私見)을 전제로 발언한 이후 그 추진 여부를 떠나 자민련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의 ‘반격’을 야기했고,설상가상으로 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까지 ‘내각제 검토 용의’를 들고나와 권력구조개편 논의가 확대일로에 놓여 있었다.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내각제 검토’를 들고 나오자 이를 “여·여간 공조를 깨려는 술수”로 여기며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다.정균환(鄭均桓)국민회의 사무총장은“정치개혁 입법시한이 다음달로 다가왔는데 이 와중에 그같은 말이 나온 것은 개혁입법을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며 신 총장의 발언배경에 촉각을 세웠다. 자민련은 신 총장의 발언에 솔깃하면서도 여당간 공조틀을 유지하는 데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그러다 한나라당이 ‘내각제 검토’에서 “정확한 뜻이전달 안된 것”이라며 한발 물러날 기색을 보이자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청와대 등 여권은 신 총장의 발언을 여권에 대한 ‘교란용’으로 보고 있다.나아가 공동여당간 어렵게 합의한 ‘8월 말까지 내각제 논의 자제’를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판단한다.김 대통령의 주의조치는 이런 소모적인 상황 전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읍참마속의 본질을 고려할 때 내각제론자인 자민련김 수석부총재까지도 겨냥한 것이며,김종필(金鍾泌)총리의 발언에도 유감를표시하는 뜻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야 개혁세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찮게 전개되고 있는 데다 권력구조문제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과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운명과 직결돼 있어 정치권의 권력구조 논의는 정국의 주요 고비마다 불거져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34] 친일의 군상

    친일파 가운데는 부자,형제,부부,사돈간 등 일가족이 집단으로 친일대열에섰던 경우가 더러 있다. 부자간에 친일을 했던 인물로는 ‘조선어 전폐론’을 폈던 현영섭과 그의 부친 현헌(중추원 참의),일진회 회장으로 ‘병합청원서’를 제출했던 이용구와 그의 아들 이석규,그리고 부자가 모두 일제하 고급관리를 지낸 손지현-손영목 부자가 대표적인 예다. 형제로는 고급관리 출신의 송문화-송문헌 형제,‘밀정형제’로 유명한 선우순-선우갑 형제 등이 있으며 부부간에는 만주에서 일본군 밀정을 지낸 이종형-이취성 부부와 초기 애국부인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변절,밀정을 지낸 오현주-강낙원 부부가 유명하다. 또 사돈간에 친일을 한 집안으로는 매국노 송병준과 을미사변의 주역으로 나중에 중추원 참의를 지낸 구연수가 서로 사돈간이며 구연수의 아들 구용서는 일제하의 은행원 출신으로 해방후 초대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을사5적’의 하나인 이하영은 한일병합후 중추원 고문을 지냈는데 그의 손자 이종찬은 일본육사 49기생으로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부자간에 친일을 한 경우로는 민병석-민복기(전 대법원장) 부자도 빼놓을수 없다.민병석(閔丙奭·1858∼1940)은 여흥 민씨 출신으로 명성황후의 척족이다.좌찬성 민영휘의 손자이며 민경식의 아들로 충남 회덕에서 태어났다.1879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 검열로 벼슬길에 오른 그는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를 호위한 공로로 척족 가운데서는 일찍부터 권력의 핵심에 든 사람이다. 1884년 성균관 대사성에 이어 승정원 도승지,예조참판,규장각 직제학을 거쳐 1889년 11월 평안감사로 임명돼 1894년까지 재직하였는데 이때 당오전 발행을 남발,민중들로부터 원성을 샀다.평양시절 그는 대원군 계열로 몰려 당시 평남 순천에 유배중이던 우범선(禹範善)을 알게 돼 그를 장위영 영관으로 천거하였다.우범선은 나중에 친일훈련대 대대장으로 ‘명성황후시해사건’,즉 ‘을미사변’의 주역이 되었는데 그를 추천한 사람이 민씨 집안의 척족이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1895년 일본 낭인집단의 손에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민씨 척족의 정치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였다.그러나 그만은 여전히 지위를 보전하였다.이듬해2월 그는 정2품 궁내부 특진관(칙3)에 임명됐으며,1898년 이후 농공상부·궁내부·학부·내부대신 등 요직을 두루거쳤다.처세술에 비범한 재간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친일·친러정권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하였다.이런 그를 두고 고종은 “민병석은 짐이 부르려고 할 때는 이미 와 있고,내치려고 할 때는 이미 떠나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민병석의 대표적인 친일은 대한제국 황실의 척족으로서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에 앞장선 사실이다.‘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앞서 그는 조정의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伊藤博文)를 초빙해왔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공로로 그는 육군부장·표훈원총재·시종원경 내대신 등을 역임하였으며 1907년 10월 대훈이화대수장(大勳李花大綬章)을 수여받았다.1909년 이토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처단되자 그는 궁내부 대신으로 정부측 조문사절로 도일,이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1912년에는이강공(李堈公)을 수행하여 일왕 메이지(明治)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도 있다. 1910년 한일병합 당시 그는 궁내부 대신으로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직에 있었다.당시 청와대 경호실장격인 시종원경은 낙선재 윤비(순종의 황후)의 백부 윤덕영(尹德榮)이었는데 이 둘은 이완용(李完用)과 통감 데라우치(寺內正毅)의 회유와 사주를 받고 ‘병합반대론’을 무마,조정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정부 대신담당이 이완용이었다면 이 둘은 궁중담당이었다.‘한일병합’의 1등공신인 이들은 병합후 모두 일왕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으로 매국공채를하사받았다.이때 민병석은 훈1등 자작(子爵)과 매국공채 10만엔(현 시가 10억원 정도)을 받았다. 일제치하 1911∼19년까지 이왕직 장관을 지낸 그는 1925년 7월부터 14년 3개월동안 중추원 고문을 지내다가 1939년에 중추원 부의장으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사망 직전까지 그는 일생을 친일로 일관했다.공직 이외에 그는 틈틈이 친일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중일전쟁 직후 귀족·고급관리 부인들의금비녀 수집을 목적으로 결성된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가하기도 했고,조선사편수회 고문·왕공족심의회 심의관·조선귀족세습재산 심의회원을 지내기도 했다.또 서예,특히 행서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선전(鮮展)의 심사위원도 지냈다.사망 직전 종2위 훈1등까지 올랐던 그는 1940년 8월 6일 도쿄 스가모(巢鴨)의 강락(康樂)병원에서 설암(舌癌)으로 사망하였다.그의 나이 82세 때였다.그의 자작 작위는 동년 11월15일 장남 민홍기(閔弘基)가 습작하였다. 역대 정권에서 법무차관·장관,검찰총장,대법원 판사,대법원장(5·6대 연임)을 지낸 민복기(閔復基·창씨명 岩本復基·1913∼생존)는 민홍기의 동생이다.1937년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38년 3월 사법관 시보로 법조계에 몸을 담았다.이후 40년 5월 경성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해방 직전인 45년 6월 경성복심법원 판사로 승진하였다.평소 얘기할때 입가에 거품이 생겨 ‘민(閔)사이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해방전후를 통틀어 법조계에서 가장 관운이 좋은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법조계 내외에서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의 소지자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사법부의 수장(首長)으로서는 그의 말대로 ‘제삿상의 대추·밤’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대에 걸친 친일집안은 이제 역사속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이 집안이 명문가로 불리는 것이 마땅한지는 후세의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 [98∼99 프로농구가 남긴것](5)-’아마추어’구단·KBL

    프로출범 3년째인 98∼99시즌에서도 구단과 한국농구연맹(KBL) 모두 아마추어 티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구단은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가지고 움직였다기 보다는 하루 하루의 경기진행과 승리만을 쫓는데 급급했고 KBL 역시 조직과 운영에서 여전히 주먹구구식을 면치 못한 것.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단들은 ‘IMF한파’를 내세워앞 다퉈 긴축예산을 짰다.이 때문에 적자체제를 흑자로 돌릴 공격적 운영 전략은 아예 구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이었다.출범 초기 각종 수익사업 등 선진형의 보라빛 운영 계획을 밝혔던 구단들조차 적자폭을 줄이는데에만 관심을 쏟아 ‘2001년까지 흑자 전환’이라는 목표는 한발짝 더 멀어진 느낌을주고 있다. KBL 또한 조직의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해 시스템 보다는 소수인에 의해 좌우되는 낙후성을 드러냈고 규정상의 허점과 인적 구성의 난맥상까지 노출시켜 총체적인 정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각종 위원회의 구성원이별다른 검증없이 선임돼 제몫을 못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특히 재정위원회와 징계위원회가 학맥과 인맥,여론 등에 휩쓸려 시즌 내내 원칙없는 징계를 남발한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농구계 안팎의 중론.이와 관련해 ‘죄형법정주의’를 원용해 징계의 절차와 내용을 조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아마추어시절을 연상케하는 ‘정실주의’ 냄새를 씻어내지 않고서는 KBL이 공정한 집행자역을 자임하기는 어렵다.기회있을때 마다 미국프로농구(NBA)를 모델로 내세우는 구단과 KBL 모두 오늘의 NBA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가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 항공기업문화 이렇게 바꾸자(상)

    대한항공이 잇따른 사고로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족벌경영 타파 요구로 지난 30년간의 조중훈(趙重勳)회장체제도 기로에 서게 됐다.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의 기업문화는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본다. 대한항공은 지난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당시 47개이던 국제노선을 현재 97개 노선으로 두배 이상 늘렸다.운항횟수도 89년 주 200회에서 주 352회로 증편했다.지난 97년 기준 매출액이 4조2,000억원에 여객 수송능력은 세계 13위를 자랑했다.오는 2000년대 초까지 13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세계 7위권의항공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항공전문가들은 그러나 대한항공의 조직이 너무 비대해져 현재의 중앙집권식 경영체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총수 1인에 모든 의사결정을 의존하는 경영방식으로는 한해 2,500만명의 생명을 책임지고세계를 누비기에는 이미 한계를 벗어났다는 얘기다. ‘몸집’부터 과감히 줄여야 전문가들은 인명 중시 풍토 조성을 위해 대한항공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형 위주의 확대경영을 지양하는 것이라고말하고 있다.과감한 분사(分社) 경영을 통해 스스로 감당하기 버거운 ‘몸집’을 적정선으로 줄임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안전체계를 확립하라는 소리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항공사가 여객·화물수송에서 기내식업무까지 할 경우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워 조직의 순발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기내식업무 등 일부사업에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독립시킨 뒤 대한항공은 여객수송분야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통개발연구원 김연명(金淵明)박사는 대한항공이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문어발식 노선확장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김박사는 “항공사들이 무분별하게 노선확장에 나선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대한항공은 인력과 장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노선 확장을 지양하고 장거리노선에 주력하는 쪽으로 경영방침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사고를 줄이려면 모든 국내·국제노선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며 우선 사고다발기종인 MD-11,A300-600,MD-82의 운항 제한조치를 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투자의 우선순위를 올바로 판단해야 대한항공이 30년간 성장일변도로 기업을 이끌어오는 바람에 안전운항이 영업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게 전문가들의공통된 견해다. 건교부 관계자는 “조종사들이 회항 및 결항으로 호텔·연료비 부담 등 막대한 손실을 낼 경우 회사의 문책이 뒤따르기 때문에 무리한 운항을 하게 된다”며 경영진의 그릇된 안전의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하대 박기찬(朴基贊)교수(경영학)는 “노선·항공기 확충에 따른 투자비를 인건비 절감으로 보충하려는 대한항공의 잘못된 경영방침이 화(禍)를 자초했다”며 “지난해 인건비를 아끼려고 정비사를 대거 퇴출시켰다가 요즘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느냐”고 반문했다.‘선(先) 안전투자-후(後) 비용절감’의 경영풍토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영구도 어떻게 바뀔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0일 대한항공의소유와 경영 분리를 강력히 촉구하면서 조중훈(趙重勳)회장-조양호(趙亮鎬)사장 체제의 거취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는 우리 정치문화 특성상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구체적인 법조문 이상의 힘을 갖는데다 대통령의 발언이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에나온 것이어서 더욱 예민하게 받아 들이는 눈치다.이런 맥락에서 조회장의퇴진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이면서 대한항공의 향후 경영구도를 놓고 추측이무성하게 일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조만간 대한항공이 ‘제 2의 창업’을 선언하며 새로운 경영진을 출범시킬 것으로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우선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는 조회장이 명예회장,조사장이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이 대한항공 사장으로 영입될 것이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하지만 이 보다 조회장 부자의 동반 퇴진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회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조사장도 명예회장으로 물러앉는 대신사장에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방안이다.전문경영인 후보로는 대한항공의L씨와 S씨 등이 거론되고 있다.이들은 대한항공에서 두루 요직을 거친 항공전문가일 뿐 아니라 조회장의 신임도 두텁다.현재 하와이에서 머물고 있는조중건(趙中建) 전 회장을 다시 영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그러나 조 전 회장이 대한항공과 지분관계를 완전히 청산한데다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게 대한항공 주변의 분석이다. 박건승기자*대한한공 움직임 대한항공의 경영체제 개편 요구 등 정부의 강력한 메시지에 대해 한진그룹측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그러나 분위기는 침울했다.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회장과 대한항공 조양호(趙亮鎬)사장을 비롯한 계열사 대표,심이택(沈利澤) 대한항공 부사장 등 임원들은 21일 아침 일찍부터 소공동 한진해운센터 21층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청와대의 지시가 단순경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한 탓인지 경영체제 개편문제에 관해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회장 집무실과 회의실이있는 본관 21층으로 통하는 출입문은 굳게 닫힌채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는 등 회사측은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경영층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만간 나올 경영진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직원들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항공안전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조종사들은 차제에 조직을 재정비해‘대한항공=사고뭉치’라는 오명을 떨쳐버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력 9년째인 한 부기장은 “대한항공은 ‘비행기는 뜨면 돈’이라는 생각에 수익올리기에만 급급해 조종사들의 불만이 컸다”면서“‘안전’이라는 절대목표를 최우선으로 모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수기자 sskim@ *금감원 현대 주가조작 고발 안팎 금융감독원이 현대중공업과 상선 회장을 시세조정 혐의로 검찰에 고발,재계가 긴장하고 있다.특히 반도체 빅딜 타결을 앞둔 시점에서 금감원이 초강경방침을 굳혀 구조조정 압박용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금감원은 규정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하나 재계는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검찰도 수사에 적극 나설 뜻을 비쳐 앞으로 현대의 구조조정노력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수법 사자주문을 여러차례 쪼개서 내는 분할매수 방식을 활용했다.주식을 매집한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현대중공업의경우 1,882억원을 들여 805만7,420주를 사들이면서 매수주문을 무려 1,952차례나 냈다.하루에 149차례 주문을 낸 적도 있으며 현대전자의 하루거래량 가운데 93.2%를 사기도 했다.현대상선도 252억원을 투입,88만5,830주를 총 207회에 걸쳐 샀다.하루에 146차례의 주문을 내기도 했다. 종가를 높이는 수법도 썼다.장이 끝날 무렵,사자가격과 매도잔량을 파악해고가로 대량매수 주문을 내 종가를 뛰게 했다. 현대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 일가의 시세차익 현대전자의 주가조작 배경이 규명되지 않았으나 정씨 일가가 세금을 내지 않고 주식을 처분하기 위해주가를 높였을 개연성도 충분하다.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 4월1일까지 보유중인 현대전자 주식 285만4,508주를 팔았다.정몽규(鄭夢奎) 산업개발 회장도 지난 연말 유상증자 직후 100만주를 처분했고 정몽준(鄭夢準) 의원과 정몽근(鄭夢根) 금강개발 회장은 지난해 7∼9월을 전후해각 8만주와 41만주를 팔았다. 대주주들의 불공정거래 경기화학 권회섭(權會燮) 대주주 겸 대표이사는 증시 거래에서 포괄적 사기혐의가 적용된 첫 케이스다.권 대표이사는 계열사인 경기엔지니어링으로부터 57억4,000만원을 편법으로 대출받아 경기화학 CB(전환사채·전환가격 5,400원)를 샀다.그는 97년 반기 실적이 101억원 적자임에도 16억원 흑자가 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한데 이어 신문광고를 통해 실현가능성이 없는 유통센터건립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7,100원에서 1만9,000원으로 높였다.권 대표이사는 CB 전환주식 106만주와 기존에 갖고 있던280만주를 팔아 100억여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나승렬(羅承烈) 거평그룹 회장은 대한중석과 (주)거평 등 일부 계열사가 부도가 날 것을 알고 98년 4∼5월 중 대한중석 주식 19만여주와 (주)거평 주식 8만여주를 차명계좌로 팔아11억원의 손실을 회피했다. 처리전망 5대그룹 계열사가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고발된 것은 처음이다. 시세조정 혐의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상사기와 같은 형량을 적용하고 있다.그러나 현대측이 시세를 조정할 목적이없다고 끝까지 부인하고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무혐의 처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백문일기자 mip@
  • 항공사고 제재 어떻게

    대한항공의 대형사고 발생은 정부의 미온적인 행정처분에 기인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항공사고를 낸 항공사측에 확실한 경제적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 사고 재발의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20일 “정부가 적당히 체면치레로 제재를 하니 (기업이)아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건교부를 질책했다. 지난 97년 8월 괌사고의 경우 현행 규정대로라면 대한항공은 1억원의 과징금만 물면 된다.사고 직후 항공법 129조에 따라 면허를 취소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28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참사에 대해 겨우 1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지난해 3,000억원의 흑자를 낸 대한항공측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아픈 벌’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따라서 전문가들은 확실한 경제적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항공법 122조(사업개선 명령)를 적용,다른 노선의 운수권을 일정부분 회수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체가 두 동강난 지난달의 포항공항 활주로 이탈사고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잇따른 사고로 국내선 20% 운항감축의 제재를 받던 기간에 다시 대형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교통개발연구원 관계자는 “비록 항공법에 가중처벌 조항이 없지만 형법이나 행정법의 규정 및 실무관행에 따르면 가중처벌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지역주민의 민원 때문에 해당 노선 면허취소가어려우면 실질적인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인접노선의 일부를 회수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에 대한 포괄제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교통개발연구원의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법 조문만 들먹이며 과징금 1억원을 추징한다면 안전불감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괌사고와 김포공항사고·포항사고·상하이(上海)사고 등 4건을 한데 묶어 노선 감축및 회수 등 뼈아픈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건승기자)
  • 金대통령 ‘연합공천’ 언급 의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8일 KBS 대구방송 특별회견에서 16대 총선 국민회의·자민련 연합공천을 언급한 것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김 대통령이 16대총선 연합공천 구상을 피력한 것은 처음으로,무엇보다도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공동여당 합당 주장을 수용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연합공천의 중요한 시사점은 정치권에서 한창 변경논의가 진행중인 선거구제와 관련된 해석이다.선거구제에 관한 국민회의의 당론은 아직 ‘소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지만 중·대선거구도 검토중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일부가 선호하고 있는 중·대선구제 아래에서 연합공천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선거구당 3∼4명 이상의 여러 후보를 뽑기 때문에 소선거구제처럼 연합공천이 파괴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선회 움직임을 보이던 김 대통령의 최종 선거구제 구상이 다시 소선거구제로 가닥잡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의석 확대를 노려 중·대선구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공동정권의 대주주인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대응이 주목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관련된 투표방식이다.‘각 지역별로정당의 총득표로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하에서 연합공천은 후보를 내지 않는 쪽은 총득표에서 어느 한 쪽의 양보 없이는 성사가 어렵다.이 때문에 정당 투표까지 하는 1인2투표제의 필요성도 여전히 검토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양당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총론이라는 해석이다.지난해 지방선거와 3·30 재·보선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양당의 공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위한 원론적 언급이었다는 것이다.청와대 관계자도 “어떠한 경우에도 공조가 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즉 권력구조문제와 상관없이 총선 뒤에도 양당이 현재와 같은 공조관계를유지해야 한다는 당위론이라는 것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정직한 역사 되찾기](32)춘원 이광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宋稶) 전 서울대 교수(80년 작고)는 생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 지식인의 역사적 현실’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의 편린 하나를 남긴 바 있다.문학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당대의 대문호이자 우상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볼 요량으로 춘원의 부인(허영숙)이 경영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찾아갔다.간호사의 안내로 병원의 긴복도를 지나 온돌방에 다다르자 춘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황송해하며 춘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설 무렵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왔다.그러자 춘원이 “이 방송은 이세대신궁(伊勢大神宮)에서 올리는 ○○제(祭)의 실황 중계방송이죠”라며 자못 경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춘원은 일본군국주의 종교의식에 방송을 통해서 참가하고 있는 것이었다.의외의 장면을 목도하고 춘원에 대해 실망을 느낀 두 사람은 이내 그와 작별하였다.두 사람의 등 뒤에 대고 춘원은 “이제부터는 작품을 일어로도 쓸 수 있고 우리말로도 쓸 수 있어야죠”라고 권했다.이후로 그는 춘원의 글을 많이읽지 않았다고 적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창씨명 香山光郞).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를 어찌 볼 것인가?그의 당대에서부터 사후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려 왔다.문학적 업적을 강조한 ‘대문호’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92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유족·추종자들이 기념행사를 하면서작성한 한 자료에 의하면,그를 연구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40여편이나 됐다.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전부 문학분야였다.그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연구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이래놓고 그의 진면목을 탐구했다고 할 수는없다. 이처럼 그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생애 전반을 아우르기 보다는 문학분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그에 대한 평가가 균형을 잃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춘원처럼 ‘시대의 인물’로 활동한 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상황과 당시 민중들이 그를 어떤 인물로 인식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춘원이 문인인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민중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2·8독립선언’의 작성자이자 샹하이 시절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을 만든 ‘민족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의 변절에 대해 민중들이 안타까와 하고 분노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춘원을 문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군인,만해 한용운(韓龍雲)선생을 스님으로만 평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춘원에대한 평가는 이래서 시각교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지사’의 거울에 비춰본 춘원은 어떤 모습인가.한마디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모습이다.그의 일생을 통해 정신사를 관통하고 있는 ‘친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원은 1892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과거에 실패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원(李種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명은 보경(寶鏡).5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우치고 8세 때 동양고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총명한 그였지만 10세때 콜레라에 걸린 양친이 사망,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러던중 14세 때 천도교 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 입학하면서처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데다 별다른 학문적 기초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제국주의라는 물결이 넘실대는 일본이라는거대한 ‘바다’에 내던져지게 됐다.그의 비극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주체의식을 키우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도일 초기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메이지학원 동창회보 ‘백금학보’(1909.12.15,제19호)에 일본어로 된 단편소설 ‘사랑인가’(원제 ‘愛か’)를 발표하였다.조선인 소년이 일본인 소년을 신격화하여 연모하는,일종의 동성애를 내용으로 하는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발표시점이 문제다.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날짜(1909.11.18)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동양천지를 뒤흔드는 의거가 조선인 손에서 일어난 그 무렵 그는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1917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無情)’을 발표한 후 ‘전조선여성의 연인’ 소리를 듣던 그는 본처와 이혼한 후 허영숙(許英肅)과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1919년 2월 도쿄 유학중 ‘2·8독립선언’을 작성,일약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선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합병 이래 일본의 조선통치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吾族)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오족에게 참정권,집회·결사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라며 일제가 ‘합병’당시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삼고있는데 이는 강도가 한 약속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해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2년 남짓 활동하다가 애인 허영숙의권유로 ‘독립신문’ 편집을 그만두고 사랑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왔다.월탄박종화(朴鍾和)는 그의 ‘일기’에서 춘원의 귀순(歸順)은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허영숙이 설득한 결과이며 이 일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秦學文)은 홧김(?)에 일본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쓴 바 있다. 귀국(1921.3)도중 춘원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서울로 호송됐으나 별다른 조사나 재판 없이 곧 석방되었고 두달 뒤 5월에는 허영숙과 결혼하였다.다시 9월에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면담하는 등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당국의비호를 받고 있었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5월 그는 잡지 ‘개벽’에 일제의 반독립 논리를 민족논리로 위장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동아일보 입사는 그 이듬해 23년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월 3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수를 받았다.24년 그는 동아일보에 다시 ‘민족적 경륜’이라는 대일 타협노선의 논설을 발표,어용적 민족개량·자치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위의 두 글에서 그는 조선이 쇠퇴한 이유는 민족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약소국의 침략·지배를 정당화한 것을 배낀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1개월전인 37년 6월 그는 소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났다.이 단체 역시 발족 당시부터 총독부와 사전협의하에 조직된 단체이고 보면 독립운동단체라고 할 것도 없다.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는 “민족본능인지하수(독립사상)가 지표(地表)로 분출했을 때는 극격히 막지말고,버려두지도 말고,자연의 유력(流力)을 이용해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랑을 설치’하라”고 하였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은 “이 ‘도랑’이 바로‘민족개조론’이요,수양동우회요,‘민족적 경륜’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일전쟁 이후 춘원은 전시협력을 위주로 보다 행동적인 친일대열에가담하게 된다.39년 중국에 출정한 일본군 위문단(북지황군위문작가단)결성식의 사회를 맡은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이해 10월 결성된 조선문인협회 결성식에서 그는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듬해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는 그 다음날로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모범적인(?) 창씨개명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그리고는 외쳤다.“…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매일신보’,1940.9.4) 심지어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그를 두고 단국대 김원모(金源模)교수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그의 심저(心底)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고 있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해방직후 춘원은 향리에 칩거하며 ‘나의 고백’ ‘돌베개’ 등을 쓴 바 있다.그는 인조(仁祖)가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여인들을 홍제원(弘濟院)에서 목욕시킨 후 정조문제를 거론치 못하도록 한 예를 들어 친일파문제도 이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수감돼 있던 그는 재산보전을 위해 허영숙과 위장이혼하는 교활함까지 드러냈다.일관된 친일과 타협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춘원.그는 공사를 막론하고역사와 민족 앞에 단 한번도 진실한 적이 없다.
  • 50~60년대 한국멜로영화 회고전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사전행사의 하나로 7∼9일 서울 예술의 전당 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 멜로영화 회고전’이 열린다.회고전에는 50∼60년대의 한국멜로영화 6편이 상영된다.상영작은 ‘귀로’(감독이만희·67년작) ‘단발머리’(김수동·67년작) ‘애와 사’(최경옥·70년작) ‘자매의 화원’(신상옥·59년작) ‘성녀와 마녀’(나한봉·69년작) ‘속,벽속의 여자’(박종호·70년작) 등이다. 이어 영화제 기간인 18∼23일에는 행사장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학사기생’(김수용·66년작) ‘자유부인’(한형모·56년작) ‘김약국 집의 딸들’(유현목·63년작) ‘남편’(조문진·69년작) ‘미워도 다시 한번’(김수용·66년작) 등 5편이 추가 상영된다. 이들 멜로영화에는 문정숙(귀로),문희(애와 사),최은희(자매의 화원),남정임 및 고은아(성녀와 마녀) 등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들이 나온다. 영화상영 일정은. 영상자료원 7일 오후 2시 단발머리,4시 귀로 8일 오후 2시 자매의 화원,4시 애와 사 9일 오후 2시 (속)벽속의 여자,4시 성녀와 마녀 동숭홀 18일 오전 11시 김약국집의 딸들 19일 오후 6시30분 자유부인 20일 오후 1시30분 미워도 다시 한번 21일 오후 4시 학사기생 23일 오후 1시30분 남편 (02)-3476-0663
  • 「정치개혁 어떻게 돼가나」여야협상 진척도-각계 제시案 점검

    ‘정치개혁’에 대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까지나서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여기에 선관위도 자체 안을 마련,불을 지피고 나섰다. ■국회 거의 합의를 이끌어낸 상태다.이번 임시국회에서 국회 관련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나 ‘인사청문회’ 대상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청문회 대상을 현행대로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받아임명하는 공직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이 대상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대상자의 폭을 넓혀 국정원장,경찰청장,검찰총장,국세청장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여당을 몰아붙이고 있다.정치개혁시민연대는 나아가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참여연대측도 “인사청문회 대상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으로 정치개혁이지지부진하다”면서 “국회의 임명동의를 필요로 하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되,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장 등에 대해서는 중립적 인사로 구성된‘고위공직자인사위원회’를 만들어 검증하면 된다”고 대안(代案)을 제시했다. 국회의장 당적 이탈,국회 상시 개원,예결위 상설화 등은 지난해 말 합의를본 상태여서 인사청문회 문제만 남은 셈이다. ■선거 각 정당,개개 의원의 정치생명과 직결된 만큼 신경전이 대단하다.여야(與野)뿐 아니라 여여(與與) 사이에도 입장 차이로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공동여당이 ‘단일안’을 아직 도출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은 선거제도를 논의하기 전에 ‘대통령제냐,내각제냐’의 권력구조문제를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고 두 여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다.최대한 틈새를 벌려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속내다. 여야 3당이 소선구제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중·대선거구제의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대안으로 거론될 공산이 크다.선관위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소선거구제 쪽으로 기운다. 국민회의측이 ‘전국정당화’를 위해 내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한나라당이 적극 반대하고 있어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하다.시민단체들은 순수 독일식이라면 좋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또 국회의원 정수는 270명선으로 여야간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그러나 선관위와 시민단체는 250명선이 적당하다는 주장을 편다. ■정당 ‘돈 안드는 정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로 불리는 정치권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기 위해 반드시 ‘메스’를 댈분야다.방만한 지구당을 정비하고 ‘검은돈’의 유혹을 받기 십상인 정치자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자금제도에 관한 여러 안 가운데는 선관위의 안이 특히 눈길을 끈다.후원금 상한선을 개인의 경우 연간 1,000만원으로 묶으면서 기업의 정치자금기부도 금지했다.대신 기탁금제도를 개선,1억원 이상 법인세를 내는 법인은법인세의 0.5∼1%를 의무적으로 선관위에 내 국고보조금 배분비율로 각당에지급토록 하고 있다. 오풍연- 여야‘말로만 개혁’ 1999년 4월13일.선거법에 따라 여야가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안을 마련,국회의장에 제출해야 하는 시한이다.총선 직전 선거법을 급히 뜯어고치는 후진적전례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 정치권이 만들어놓은 법이다. 여야 정치권은 그러나 또 이 법을 어기게 됐다.열흘 안팎 남은 기간 안에국회가 선거구획정안을 완성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새 정권 출범 후 지난 1년간 여야는 당쟁(黨爭)만 일삼으며 정치개혁 현안을 뒷전으로 미뤄왔다.이것이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켰고 유권자들은 ‘3·30재보선’에서 30%대의 ‘최악의’ 낮은 투표행태로 반응했다.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여기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여야 총재는 지난해 11월10일에 이어 지난달 17일 만나 발표·합의문을 냈다. 모두 정치개혁 입법을 본격 추진키로 합의했으나 진전은 없다. 정치개혁을 하자는 것은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얘기다.정치무대인 국회의 효율성을 높여 생산적인 정치토대도 구축하자는 것이다.정치인의 지갑이 투명한 ‘유리지갑’이 되고 돈을 많이 들여 선거를치러도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저비용고효율’구조를 만들라는 압력이다. 정치개혁 필요성은 ‘3·30선거’에서도 드러났다.안양시장과 시흥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듯 국민은 개혁적이고 참신한 후보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아직 신진세력 수혈을 막는 구조다.비례대표 의석을 받으려면 최소득표율이 높아야 하고 정당 설립때는 ‘지구당의무’조항이 만만치 않다.정당구조를 들여다보면 공직선거 후보를 결정하는 대의원 선출 과정 또한 반(反)민주적이다.당직 경선이나 상향식 공천제는 찾을 수 없다.전당대회에 수십억원을 쏟아붓는가 하면 국고보조금에서 정책개발비로 나가는 돈은 쥐꼬리만 하다.이런 것들이 개혁 대상이다.돈을 많이 써야 하는 선거제도도 문제다.돈을 많이 쓰면 표도 많이 받는 게 현실이다. 현행 전국구제도가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구조라는 지적이 있다.88년 13대 선거때는 제1당이 전국구 의석의 반을 가져갔고,96년 15대때는 전국구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했으나 전국구는 15%에 그쳤다.15대때 여당인 신한국당은 34.5%의 득표를 하고도 46.5%의 의석을 가져가기도 했다.이런 불합리한 구조개선을 위해 여권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당론화했다.야당은“여당에 유리하다”며 반대하고 있다.여야를 떠나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에 불이익을 주는 배분 틀을 만드는 것 또한 정치개혁의 중요한 테제다. 유민- 정치개혁 걸림돌은 뭘까 국회·정당·선거법 개혁 등 정치제도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당리당략이다.정치권은 정치개혁이라는 총론에는 합의하면서도 각론에서는 모든 것이상충된다.선거제도의 당리당략은 첨예하다.선거제도만 합의하면 정치개혁의80% 이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여권 단일안을 만들기 위해 8인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했으나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여권 단일안이 마련되더라도 첩첩산중이다.한나라당은 구체적 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다.시간을 늦추면서 최대한 당리를 챙기려는 속내다.당내에 주류·비주류,그리고출신 지역에 따라 의견이 달라 쉽사리 합일점을 찾기 힘든 측면도있다.현역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도 개혁의 걸림돌이다.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비례대표제,중·대선거구제 등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검토해야 한다.그러나행여 내 선거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현역 의원들의 몸조심은 선거판의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의원정수를 줄이기 쉽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흑색선전 방지,정경유착고리 끊기 등 이밖의 난제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강동형- 시민단체“더이상 두고 못보겠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압력이 커지고 있다.급기야는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작업을 보다 못해 ‘협상파트너’로 나설 것을 선언했다.정치개혁을 가로막거나 대(對)국민 약속을 어기는 의원과 출마자들에 대한 ‘낙선캠페인’도 검토중이다. 정치개혁시민연대,시민개혁포럼,행정개혁시민연대 등 39개 단체로 구성된‘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최근 실무위원회를 갖고 정치개혁을 위해 시민단체의 ‘직접 참여’를 선언했다. ‘정치개혁 연대회의’ 孫鳳淑공동대표는 2일 “당리당략 등 첨예하게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로는 문제해결이 안된다”면서 “민간인이 참여해 정치개혁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정치권에 맡겼다가는 정치개혁작업이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위원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국회 정치개혁특위24명에 시민단체 대표 24명이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국회·선거·정당정치개혁 현안을 포괄 논의하는 것이다. 정개연은 오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제안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여야 3당 총재를 직접 방문,‘정개위’ 구성을 촉구할 계획이다.정치개혁시민연대 金石洙사무처장은 “이제 정치권은 스스로 정치개혁을 할 자정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고 말했다. ‘정치개혁 연대회의’는 오는 14일 공청회를 거쳐 ‘시민단체의 단일안’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정개연은 우선 ‘시민단체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계획이다.시민단체도 지지후보를밝히는 ‘구체적’인 형태로 정치권에 ‘압력’을 넣겠다는 취지에서다.정치개혁을 위한 각종 캠페인과서명운동 등을 통한 여론 확산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金令培부총재는 “시민단체가 직접 정치개혁 협상에 나서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그러나 “시민단체의 안이 나오면 정치권에서반영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안이 정치권에 수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그러나 외면하기도어렵다.정치권이 개혁과 구조조정의 ‘사각지대’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최광숙
  • [특별기고] 장묘문화의 새 지평을 열자

    요즘 우리 사회에 선조들에 대한 지나친 숭조관념 때문에 장례문화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여론과 함께 ‘명당’에 대한 무속적 기복주의에 심취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지적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 숭조관념의 하나로 승계돼 내려온 오늘날의 장례절차와 명당을 묘지로 선정하려는 관행은 시대착오적,비과학적인 요소가 많다.그 뿐 아니라 국토를 잠식하고 자연경관을 크게 훼손하고 있어 의식과 관행의 전환은 국가정책적 차원에서도 시급히 개선해야할 현실적 과제 중의 하나이다. 서양인들도 조상을 섬기고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한국인 못지않게 솔직하게 표시한다.그러나 이들의 장묘문화는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퍽 실용적이다.장례절차는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이 모여서 간소하고도 정중하고 경건하게 치러진다.그리고 시신은 대부분 화장돼 국가,또는 지방자치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조성한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묘지와 비석의 크기도 표준화돼 있으며,한 묘지에 전가족이 안장된 가족묘도 상당히 많다.공원묘지는‘공원’이라는 뜻 그대로 아름다운 관상수와 꽃들로 잘 가꿔져 있다.그리고 도심에 위치해 있거나,도시로부터 멀지 않은 교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연고자는 언제라도 쉽게 방문할 수 있고,주위에 거주하는 시민도 공원이라는 친근감을 가지고 산책을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장례문화는 어떠한가.전통적인 장례절차는 상복과 조문객을 맞이하는 절차부터 음식의 접대와 노제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번거로움으로 가득찬 비현실적 형식들이다.또한 자기과시적인 허례허식,음성적인 비리,술과 화투 등으로 얼룩진 경박한 분위기의 경우가 많다. 한국의 국토는 분묘들로 얼룩지고 황폐해 가고 있다.분묘의 수가 전체인구의 43%에 이르며,그 면적 또한 무려 9만6,000여㏊로 전체 산림면적의 1.5%에 해당하고,여의도 면적 900㏊의 120배나 된다.그리고 매년 늘어나는 분묘수도 20여만기여서 해마다 88㏊의 국토가 추가로 잠식되는 추세이다.이만큼 넓은 면적을 묘지가 점유하며 국토가 비생산적인 용도로 잠식당하고 황폐화돼가는 나라는 하늘 아래 한국뿐이다. 더욱 놀라운것은 전국에 산재한 개인묘지의 면적이 전체 묘지면적의 77.5%에 이르고 있으며,한때 100평 이상의 호화롭게 치장된 호화묘지가 109개소에 이르렀다는 점이다.이런 맥락에서 작년에 작고한 재벌총수가 자기와 부인을 화장해 줄 것을 유언한 것은 전근대적인 장례문화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수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젠 한국도 장례문화의 허례허식,고비용 그리고 번거로운 절차의 전근대성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검소하고 간편하며 정중한 선진국형으로 획기적인 전환을 해야할 때다. 그리고 비생산적 목적으로 엄청난 면적의 국토를 잠식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분묘문화의 비과학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명당’의 관념이 전혀없고 매장보다는 화장이 일반화돼있는 대부분의 서구사회가 우리보다 훨씬먼저 선진화되고 더 잘 살고 있는 현실은 ‘명당’에 의한 기복주의의 허구성을 실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화장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지난해 생활개혁실천범국민협회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94년도의 50.1%에서 무려 15%이상 증가한 65.2%의 응답자들이 화장을 수용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이러한 변화의 추세에 부응하여 정부는 장례시설을 현대화하고,묘지의 크기를 보다 더 엄격히 규제하며,묘역의 명실상부한 공원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아울러 현재 계류중에 있는 공설화장장과 납골시설 설치 등을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장묘법의 조속한 입법화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 장묘문화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국민의식의 전향적인 전환과 제도 및 시설개혁이 함께 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실천적인 안목으로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한다. 문석남/전남대교수 사회학
  • 경찰, 중앙·지방자치로 이분화

    경찰이 올해 안에 중앙경찰과 지방자치경찰로 나뉘어 재조직된다. 경찰청은 金大中대통령의 15대 대통령선거 공약사항이고 국정 100대과제의하나인 자치경찰제의 도입과 관련,일본경찰의 모델을 따르기로 내부결정을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광역 자치단체별로 자치경찰제도를 운영,중앙경찰과 시·도경찰이업무를 분담하는 절충형을 채택하고 있다.경찰청은 지난해 4월1일 기획단을구성하여 영국·미국·일본 등의 자치경찰제도를 연구해왔다.지난해 10월1일에는 경찰간부 30명으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로 확대개편하여 자치경찰제의 기본적인 구상을 거의 마무리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자치경찰제 도입에 따른 세부사항에 대한 논의를 거쳐 4∼5월 중에 법안 조문화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법안은 당·정협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현재 일본이 시행중인 자치경찰제는 중앙경찰과 지방자치경찰간에 일정 범위 내에서 업무를 분담하는 제도이다. 경찰의 기본적인 사무는 시·도 자치경찰에서 수행하되 특정 범위의 사무는 국가가 관여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고 있다.즉 방범·교통과 일부 인사권등은 지방경찰이 자체적으로 처리해 나가고 지방경찰 고위직 인사 및 공안문제 등 특정 범위의 업무는 중앙경찰이 통제 관리하는 식이다. 그러나 경찰이 자치경찰제를 실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든다는 점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광역 자치단체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울산·광주·대전 등 현재 별도의 지방경찰청이없는 3개 광역시에 지방경찰청을 신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3개 지방경찰청의 개청에 드는 예산만도 9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金대통령은 23일 오전 정부 세종로 종합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5월 말까지 경찰의 지방자치제 개혁안을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 국민회의 韓총무 화났다

    국민회의 韓和甲총무가 대화파트너인 한나라당 李富榮총무의 연이은 ‘저질발언’에 정말 화가 났다. 韓총무는 13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金鍾泌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협의회에서“국가원수에게 터무니없는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사과도 하지 않는 李총무와는 앞으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도 여야 대화는 해야 하는 만큼 자민련 具天書총무에게“李총무를 상대해 달라”고 부탁했다.협상론자인 韓총무가 이처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과거 李富榮총무를 “합리적인 사람,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추어올린 이가 바로 韓총무다. 국민회의 내의 격앙된 분위기도 역력하다.공인으로서 李총무의 ‘발언’을金洪信의원의 ‘공업용미싱 발언’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鄭均桓총장은 14일 “당내에 저질 의원의 저질 발언에 대해 ‘분노’가 있다”고 말했다.金玉斗지방자치위원장은“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성”이라면서 李총무를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라고 몰아붙였다. 李총무가 지난 11일 한나라당 시흥지구당 임시대회에 이어 12일 구로을 임시대회에서도 현 여권과 金大中대통령에게 ‘독설’을 퍼붓자 여권 고위관계자들의 ‘감정이 폭발’한 것 같다. 한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고(故) 諸廷坵의원 장례식때 미망인에게 직접 전화로 위로하고 정무와 공보수석을 보내 조문했으며 훈장도 수여했다”고 상기시킨 뒤 “그런데 李총무가 諸의원이 ‘DJ암에 걸려 사망했다’는 식의 극언을 할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할 입장에 있는 야당측 원내사령탑의 ‘저질 발언’이대화정국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 3·1절에 보는 베델의 한국사랑

    1904년 창간된 순수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의 사장 베델(裵說)과 신채호등 항일언론인들이 펼친 구국운동이 TV영상을 통해 조명된다.3·1절 80주년을 맞아 KBS 1TV ‘역사스페셜’(토 오후 8시10분)은 ‘3일간의 재판-영국인 베델을 추방하라’를 특집으로 내보낸다.재판은 AP통신에서 특파원을 보낼정도로 국제적 화제를 모았다.이 프로는 90여년 전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서 3일동안 계속된 공판장면을 재현함으로써 시작된다.‘국내 최초의국제재판’이었던 당시 재판의 피고는 베델이었고 죄목은 ‘한국민 선동죄’였다. 이에 앞서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11월20일 을사보호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직후 황성신문에 장지연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리자 같은달 27일 이를 영문으로 번역,호외를 발행하는 등 민족의 소리를 대변했다.당시 1만 3,256부로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했고 영문판까지 있어 국내는 물론 국제여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베델은 영국인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신문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베델이 한국에 온 것은 1904년 2월.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자격이었다.‘경운궁의 화재’를 특종보도했던 그는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등 지사적 언론인들과 자주 접촉하다 스스로도 항일 정신을 갖게 됐다. 이런 사실은 일본과 영국의 외교문서에 기록된 베델의 흔적을 추적한 결과확인됐다.자료들은 베델의 ‘처리’를 놓고 영·일 간에 빚어진 외교적 마찰과 베델의 한국 밖 추방결정 과정 등을 알려준다. 담당연출자 김형석PD는 취재과정에서 베델의 한국사랑과 선각자들의 활동에 “감탄했다”면서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프로제작 때 가장 신경을 기울인 부분은 법정의 재현 장면.법정에서 시작해 법정에서 끝나기 때문에 자칫 ‘재미’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 이를 위해 버츄얼 스튜디오(가상공간)에서 진행자가 3자적 관점으로 재판을지켜보는 연극적 방식을 채택,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피고석의베델은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연기자 대신 확대한 사진을 활용했다. 베델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도 공개된다.1909년 베델이 서울에서 숨지자 한국인들이 보낸 조문편지 묶음 등이 그 것.편지에는 유림과 농부,동경유학생 등 각계각층의 애통해 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어있다. 취재 뒷이야기도 많다.베델의 며느리 도로시여사(82)는 시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도로시여사는 당초 ‘촬영 절대불가’를 조건으로 취재에응했다. 이에 따라 김PD는 카메라 뚜껑도 열지 못했으나 이튿날 도로시여사의 자녀들이 찾아와 “할아버지를 많이 알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도로시여사를 설득해 비로소 촬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PD는 “베델은 ‘한국의 쉰들러’라는 표현외에 달리 형언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許南周yukyung@
  • 보안법 개정논의를 보고

    국민회의는 올 상반기중에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당정협의에 들어간다고 한다.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정부·여당안에서 보안법 개정논의가 시작된 사실을 일단 평가한다. 국가보안법은 문제가 많은 법으로,그동안 국민의 인권유린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던 것은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따라서 이제라도 보안법에 손을 댈 필요가 있다.첫째,그동안에 일어난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그 이유로 들 수 있다.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산 사람들이 사면·복권등의 조처로 정치권과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금강산 관광등북한을 방문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또한 보안법 대부분의조문이 형법이나 군사기밀보호법과 중복될 뿐 아니라 남북교류협력법과 충돌,법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로,보안법 7조(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등)와 관련한 국제적 압력이다. 지난해 12월 유엔 B규약인권위(통칭 유엔인권이사회)는 보안법 7조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박태훈씨 사건을 심리한 끝에 “보안법 7조를적용해서 처벌하는 것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19조에 규정된 의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결정하고,박씨에 대한 금전적 배상등후속조처를 취하도록 우리 정부에 촉구했다.이 위원회는 또 金槿泰 국민회의 부총재의 보안법 7조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뿐만 아니라 국제사면위도 다음달부터 석달 동안 국가보안법 개정,노동권 보장등 한국의 인권상황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집중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전세계적으로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아가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여전히 ‘인권 후진국’으로 매도(罵倒)되는 것은 치욕이 아닐 수 없다.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는 金大中대통령 정부라서 더더욱 그렇다. 정부와 여당이 보안법 개정에 손을 대게 된 것도 이같은 배경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그러나 자민련과 보수층의 반발을 고려,국가보안법을 대폭개정해서 민주질서수호법으로 대체한다는 기존 당론을 폐기하기로 했다고 한다.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해가 가는 조처로 보인다.문제는 확대·유추해석의 소지가 있는 7조의 폐지 여부다.폐지가 최선이지만,전면적 폐지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면 죄형법정주의에 맞게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확대·유추해석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 행정규제 현황 인터넷에 공개

    규제개혁위원회는 13일 정부의 행정규제 현황을 국민들이 어느때나 확인할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키로 했다고 밝혔다. 개혁위는 이를 위해 현재 법률·시행령·규칙·고시 등에 근거하고 있는 행정규제를 전산시스템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 오는 22일부터 4월 말까지 시험적으로 운영한다. 이 서비스는 규제개혁위원회 홈페이지(http://www.rrc.go.kr)와 정부 대표홈페이지(http://www.gcc.go.kr) 및 국무총리실 홈페이지(http://www.opm.go.kr)에서 접속이 가능하며 실시간 통계자료를 수시로 입력한다.이번에 공개되는 서비스는 부처별,유형별,법령별 등 9종으로 분류돼 있으며 규제 근거법령의 조문을 동시에 열람할 수 있도록 법령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돼 있다.또그동안의 규제변경내용,관련통계 및 각종 조건 검색 지원 등 27종의 서비스도 제공된다.이밖에 규제신설을 억제할 수 있도록 규제총량제도 보여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