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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자씨 특별기고/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매일은 회담의 상대방인 북측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면모를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재미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의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특별기고와 북한문제 전문가인 서대숙(徐大肅) 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의 국제전화 인터뷰로 구성했다.이번 기획특집은북한을 현실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위원장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이 어떠한지를 전문가들을 통해 파악해보자는 것이다.이는 김정일 위원장을 ‘성격이괴팍한 영화광’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과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최근 북한연구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을 재평가하는 연구서를 잇따라 출간하고 있는 것도이같은 의미로 풀이된다.문씨의 기고는 지면사정으로 절반가량 압축한 것이며 함께 실린 사진은 문씨가 제공했다. [편집자주]■나는 지난 92년 4월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인터뷰했다.참으로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인터뷰 성사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는데 그것은 오찬을 겸한 인터뷰였다.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 접견실에는 식탁 가운데에 김정일화가 장식되어 있었다.김 주석은 그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꽃을 개발한 일본 사람의 요청에 따라 ‘김정일화’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는데 사실 저 꽃이 너무 고와서 조직비서 성격하고는 맞지 않는단 말이오.우리 조직비서는 통이 크고 사나이 답거든.” 김 주석은 아들을 꼭 ‘조직비서’라고 불렀다.나는 내심 갸우뚱했다.서방에 알려진 ‘내성적인 영화광’이라는 평과는 다른 얘기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부모다.계속 연구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비로소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게 된 것은 94년 7월 14일 김일성 주석의장례식 시기였다. 비록 국장의 마당이었지만 나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그를세밀하게 관찰했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가짐은 정중했고 목소리에는 무게가 있었다.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주장과는달리 말을 더듬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얼굴은 여위고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지만 손은 따뜻했고 손아귀에 힘이 있었다.전혀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조문 후 잠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그는 말했다. “지난 4월 쓰신 수령님 인터뷰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제가 글자를 크게 확대해서 수령님께도 가져다 드렸습니다.” “혹시 잘못된 곳은 없었습니까.” “아주 정확히 쓰셨습니다.잘 읽었습니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와의 면담을 포함해 김일성 주석의 언급,측근들의 증언,주변 취재,북한 인민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그의 진면목에 다가서 보고자 했다.단지 김정일 총비서와의 94년 7월 이후의 면담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자세히 밝힐 수 없어 양해를 구한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의 생일 명절인 2.16 기간에 북을 방문한 일이 있다.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본인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전에도자신의 생일 행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그 시기 그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그 점이 궁금했는데 뒤에 알게 되었다.그는 매년 그 무렵이면 백두산을 찾는 듯 했다.특히 99년 2월에는 백두산 천지를 등반한 후 2월 16일 갑무(갑산-무산) 경비도로를 달리다 차에서 내려 10리를 걸었다고 한다.갑무경비도로는 길 양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한대림이 끝없이 이어진 풍치 좋은 길이다.그러나 이 무렵의 백두산 지역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린다.혹한 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며 특히 백두산의 겨울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지금까지 그가 “내성적이며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그가 사람들 앞에 나서지않는 것은 사실이었다.김일성 주석의 급서 후 나는 당시 북미 회담의 북측대표이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국가원수가 서거하셨는데 회담 진행에 차질이 없겠습니까.” “물론 회담은 수령님의 결재로 진행되어 왔지만 장군님께서 직접 지도해오신 사업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김정일 총비서가 막후에서 북미회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 사후에도 김 총비서는 외교 의전 일선에 나서는 시기를계속 미루어 왔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그 이유 중 하나를 그의 ‘내성적인성격’ 때문으로 평가해 왔다.반면 그의 측근 인사인 김용순 비서는 그를 “박력 있고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평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 나는 종종 두 인물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받는다.물론 차이가 있다.소년 김정일은 대단히 영리했던 것 같다.김정일 총비서는 아버지를 꼭 ‘수령님’이라 불렀다.그런데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라 외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바로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였다.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고무된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7월 한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들르게 될 묘향산 특각을 직접 돌아보기 위해 평안북도로 떠났다.묘향산 인근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고 묘향산 특각에 도착한 김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 부처가 묵게 될 방의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았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노인의 건강을 염려한 김정일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평양으로 돌아올 것을 계속 권유했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일념에 가득차 있던 김 주석은 말을 듣지 않았다.계속 설득하던김 비서가 마침내 전화통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제발 돌아오십시오.” 김정일 총비서가 스타일상 김 주석과 다른 점이라면 표현 방식의 차이를 들수 있을 것이다. 김 주석과 달리 김 총비서는 노기를 표현하는 인물이다.그만큼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사후 대부분의 평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점쳤다.짧으면 3개월,길어야 3년 안에 붕괴한다는 것이다.그 유력한 논거 중하나가 북의 새 지도자 김정일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후계자가 되었을뿐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오늘날 페리 보고서조차 ‘김정일 정권의 안정성’을 공언하는 것을 보면 이같은 문제는 해소되었다는 얘기가 된다.지난 95∼97년 사이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총비서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한 것이다.그의 정책 결정의 특징중 하나는 ‘의외성’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의 장지가 금수산기념궁전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현재 금수산기념궁전은 북의 사회 통합의 구심이 되고 있다. 98년 8월 북이 발사한 ‘물체’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며칠 후 북이 그것을‘인공위성’이라 발표했을 때 세계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국문제의 인공위성은 한반도의 정세를 뒤바꾸어 놓았다. 미국에게 북은 ‘붕괴시켜야’ 하거나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대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체제를 인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변화했다.물론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막대한외화를 들여 인공위성을 개발했어야 하는가라는 비판도 있다.이에 대해 북의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우리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우리를 이라크나 유고처럼 대했을 것이다.그것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북의 인민들은 김 총비서의 정책적 의외성을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는’ 강점으로 인식하지만 서방에서는 ‘예측불가’라는 그다지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내가 아는 김 총비서는 다양한 방면에 대해 화제가 풍부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이같은 측면이 성격적 대담성과맞물려 정책의 ‘의외성’을 빚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64년 6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당사업을 시작했다.총비서에 이르기까지 37년간의 당 사업에서 그는 여러 가지 일화를남겼다.업무스타일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것은 ‘한밤중의 전화’다.나는 북의 여러 고위인사들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김 총비서는 “서류를 결재하던 중 의문이 생겨 늦은 시간이지만 부득이 전화했다”며 낮에 올린 결재서류에 대해 보다 자세히 묻곤 한다고 한다. 그가 반드시 묻는 말 중의 하나가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는 것이다.그러니 부하들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김 총비서 업무스타일의 한 특징이라 한다.“새로 작곡된 음악을 틀어놓고 평가하면서 눈으로는 결재 서류를 검토하는 한편 전화로는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식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다.그가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이유를 물었을 때 한 측근 인사는 “화려한 옷차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계셨다”고 했다.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화꽃이라는 점은 같은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목화꽃은 화려하지 않으나 유용하다. 서방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북의 지도자 김 총비서가 세계적인 추세를 제때에 파악해 나가는 수단은 무엇일까.김 총비서가 서방의 방송,영화를 많이 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서방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나는 특히 그가 영어를 이해하는 것으로 느꼈다.그가 구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국식 영어가 아니라 현대미국어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는 ‘김정일 사적관’이 있다.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라 한다.이 곳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의 대학시절을 잘 볼 수 있다.사적관에서 필자는 그가 재학중 쓴 ‘3국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라는 논문을특히 관심깊게 보았다.핵심내용은 “신라의 3국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라는것이다. 동시대 조선반도에 발해라는 다른 주권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며,신라는 영토를 넓히려는 야심만 있었을 뿐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지향이 없어서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민족통일은 3국중 통일 지향이 가장 강했던 고구려를 이어 받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관에는 김정일 학생과 동료들이 군사 강의,사격훈련,점호,야간습격 전투훈련,군사야영훈련 등을 받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사적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다 보면 재미난 공통점이 발견된다.학급 동료들과 함께 찍은 여러장의 사진에서 김정일 학생은 사진의 가운데 있는 인물이 아니다.그의 모습은 항상 맨 뒷줄 한켠에서 발견된다.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던 4월 10일 나는 평양에 있었다.4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 제9차 조일회담 취재차 방북했다가 역사적인 뉴스에 접하게 됐던 것이다.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 총비서의 한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분단이후 여러차례 최고위급 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이루어지지 못했다.특히 94년에는 수령님의 서거로 최고위급 회담이 무산되었는데 이제 드디어 성사되었으니 우리 민족의 손으로 통일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장군님께서는 지금 회담 준비로 대단히 바쁘다.그 분의 건강을지켜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는 특히 “지난날 조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이번에는 아무런 전제 없이 서로가일단 부딪혀 보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오는 6월 12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될 남북의 두 정상.그 한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나는 30년간의 취재 파일을 바탕으로 지난해 책을 한 권출간한 바 있다. 나의 눈에는 두 정상의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게 비친다.오는 정상회담에서 이 두 정상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어떻게 어우러져 분단 50년의 역사를 청산해 나갈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 문명자씨 프로필.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의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문씨는 73년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주석을 회견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면담한 바 있다.그녀는 서방기자중‘최고의 북한소식통’으로 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깊다.
  • 풍납토성…정부대책 안팎

    16일 정부가 밝힌 풍납토성 보존대책은 그동안의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불만스러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풍납토성 안쪽 주민들의 움직임이 크게 주목된다. 문화재청은 먼저 경당연립 현장의 발굴조사가 모두 끝나기 이전이라도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보존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추가발굴이 이루어짐에따라 늘어난 발굴비 부담도 정부가 부담할 수 있고,때에 따라서는 법 조문을고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문화재위원들이 보존쪽으로 결정을 내려 보상에 들어가든,아파트를 계속 짓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그동안 주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던 금융비용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뜻이다.‘제 무덤 파는데 제 돈을 쓰라는 꼴’이라고주민들이 반발해왔던 ‘발굴비용의 시행자 부담’ 원칙도 양보할 수 있다는유연성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일단 발굴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경당연립 현장에 국한됐다는 점에서 문화재 보호론자와 토성 주민 모두로부터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받는다.토성 안쪽에는 22만6,000여평에 4만2,000여명이 살고 있으나 경당연립터는 221가구분 2,390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토성 안쪽 다른 지역에 대해 문화재청은 일단 ‘문화지구’로 지정하는 등다각적인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문화지구란 세제 등에서 일부 혜택이 주어지지만 쉽게 말해 개발을 제한하는 제도다.당연히 고층아파트를 짓는것은 불가능해진다. 현재 이 지역에는 고층아파트 41동과 연립주택 45동을 제외하면 다세대주택·단독주택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고층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현재도 외환은행 주택조합은 발굴조사 허가를 요청하고 있고,미래마을 주택조합은 재건축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등 재건축사업이 상당 수준 진척돼 있다. 이들 모두 재개발에 따른 적지않은 시세차익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정부가 장기적으로 ‘슬럼화’를 통해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땅을 수용하려는 것 아니냐고 주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있는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토성 안쪽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주민들의 재산권을 제한하기보다는 문화재 보호를 염원하는 전체 국민들에게 조금씩 부담을 나누는방향으로 풍납토성 해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金대통령 애도 조전 보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4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총리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조전에서 “오부치 전 총리는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 “총리 취임 후에는 일본 경제의 회복과 아시아 및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고 말했다. 박태준(朴泰俊)총리도 이날 조전을 보내 오부치 전 총리의 서거를 애도했다. 한편 정부는 오부치 전 총리의 장례식에 총리급 조문사절을 파견할 것으로알려졌다. 양승현 이도운기자 yangbak@
  • 오부치, 日불황 타개 ‘성공한 총리’

    ‘인품의 오부치’도 병마 앞에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총리는 지난 4월 2일 하오 7시30분 혼수상태에 빠진지 43일만에 타계했다. 98년 7월30일 대망의 총리 자리에 올라 내각이 총사퇴한 4일까지의 총리 재임일수는 616일로 역대 총리중 ‘장수’부문 14위.부드러운 인상과 온유한인품,자리를 같이 하면 누구라도 빨아들이는 듯한 겸허한 성품 덕분에 ‘블랙홀’이란 별명을 지녔던 그는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침체된 경제를 회복궤도에 올려놓은 ‘성공한 총리’로 평가받았다. 1937년 군마(群馬)현에서 출생한 오부치는 아버지 오부치 고헤이(小淵光平)의원의 2남으로 2세 정치인이었다.와세다(早稻田) 대학원 재학중이던 63년 26세의 나이로 첫 출마해 당선된 옛 군마3구는 오부치의 정치색을 결정지은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후쿠다 다케오,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같은 거물 정객들의힘겨루기 씨름판이었다.이들과 함께 출마하면 오부치는 언제나 3,4위였다.그래서 어느 일본 정치인은 이런 오부치를 ‘미국과 소련 양대국 사이의 골짜기에 핀 한송이 백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스승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와 비슷하게 ‘참을성 많고 적을 만들지 않는 인품’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파벌내 분열로 군소파벌로 전락했던 옛 다케시타파를 물려받아 오부치파 회장이 되면서 그는특유의 ‘인품’으로 다른 파벌의원들을 끌어들여 최대 파벌로 키웠다. 사토(佐藤)파를 거쳐 다나카(田中)파 회원이었던 79년 그는 오히라(大平)내각때 총무장관겸 오키나와(沖繩) 개발청장관으로 첫 입각했다.87년 다케시타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다케시타 총리의 최측근이자 중간보스로서 다케시타와 ‘2인3각’의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91년에는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대망’을키웠다.‘관방장관과 간사장을 거친 사람의 절반은 총리가 된다’는 통념에따라 총리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년8개월의 총리 재임중 10년 불황과 낮은 지지율로 사면초가에 빠진자민당을 수렁에서 건져올렸다.뿐만 아니라 취임초기 ‘경제회생 내각’이라 이름을 붙이고 경제회복에 전력을 기울여 99회계년도의 경우 공약대로 플러스 성장으로 되돌려놓았다.연립정권을 통해 정권의 기반도 안정시키고 외교에도 적극적이었던 그에게 그러나 마냥 ‘행운’만 따라주지는 않았다.50%대가 넘던 지지율이 지난해 10월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아선데다 최근 비서관의 수뢰의혹,경찰비리,금융재생위원장의 망언 등 악재(惡材)가 겹치면서 정치적 수세에 몰렸었다.더욱이 쓰러지기 하루 전날 자유당의 연정 탈퇴는 극도로 쌓인 심신의 피로함에 결정타를 안겼다. 오부치는 일본 정계에서 널리 알려진 친한(親韓) 성향이었다.일한 의원연맹 창립 멤버이자 사망전까지 이 연맹 부회장이었다.총리취임후 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고 이듬해 그가 한국을 방문,한국과 우호를쌓았다.양국이 서로 인정하듯 한일관계는 오부치 총리 시대에 가장 탄탄대로를 걸었다.한국으로선 듬직한 ‘우군’을 하나 잃은 셈이다. ■1937년 군마현 출생. ■58년 와세다대 문학부 입학. ■63년 최연소 중의원 의원 당선. ■70년 우정성 정무차관. ■79년 총무장관 겸 오키나와 개발청장관. ■87년 다케시타 내각 관방장관. ■91년 자민당 간사장. ■92년 다케시타(이후 오부치파) 회장. ■97년 하시모토 내각 외상. ■98년 7월 총리 취임. ■99년 1월 자민·자유당 연정수립. ■〃 10월 자민·자유·공명 연정수립. ■2000년 4월2일 뇌경색 긴급입원. ■〃 5월 14일 사망. 황성기기자 marry01@. *오부치 총리 타계 이모저모. ●자택 안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의 유해는 이날 병원에서 수습된 뒤 오후 7시쯤 병원을 나와 빈소가 마련된 도쿄 시내 자택에 안치됐다. 유해를 실은 차량은 경찰 호위를 받으며 그가 40년 가까이 지냈던 국회의사당과 쓰러지기 전까지 집무했던 총리 관저를 한바퀴 돌아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오부치 전총리의 타계로 공석이 된 중의원 군마(群馬) 5구는 둘째딸인 유코(優子·26)씨가 물려받아 6월25일 실시될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 일본 정부·여당은 장례를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를 것을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역대 총리중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장례는 국장,7년여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국민장,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등은 자민당장,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등은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렀다. ●조문 및 애도 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소식이 알려진 직후 최측근인 노나카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간사장과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관방장관 등이병원을 찾아 미망인 지즈코 여사 등 유족을 위로했다.오부치 전총리의 타계소식을 접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지도자를잃어 슬픔을 참기 어렵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오부치 전 총리의 정치적스승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76) 전 총리는 “오부치군과는 40여년간 고락을 같이 해왔다”면서 “이제 편안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성명을 발표,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를 애도하고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향후 정국 모리 총리가 이날 6월25일 중의원 선거 방침을 확인하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돌입.일본 여야는 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가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면서도 자민당쪽으로 ‘동정표’가 움직여 다소 여권이유리할 것으로 전망.특히 오부치 전 총리가 쓰러진 이후 다케시타 전총리 등 원로 정치인들이 대거 은퇴의사를 밝혀 이번 총선에는 세대교체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황성기기자
  • IMF·주식투자로 ‘부익부 빈익빈’강력범죄 부추긴다

    사람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대형 사건이 부쩍 늘고 있다.한동안 뜸했던 강도,살인,인신매매 등 강력 범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최근의 대형 사고는 빈부 격차의 사회현상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와 증권 열풍 등으로 인한 ‘부익부빈익빈’현상이 강력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특히 대형 국책사업과 관련한 로비 의혹사건을 접한 서민들의 좌절감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가정윤리와 사회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지난 9일 500만원을 받고 딸을 부산지역 사창가인 ‘완월동’의 업주 문모씨(48·여)에게 팔아 넘긴 장모씨(44)를 부녀매매 혐의로구속했다. 장씨는 “사기를 쳐 경찰의 수배를 받자 피해자와의 합의금이 필요해 딸을윤락가에 팔아넘겼다”고 말해 조사 경찰관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난 7일에는 서울중앙병원 지하 주차장에서 회사 직원을 조문하고 나오던현대종합상사 정재관 사장이 피습됐다.경찰은 금품을 노린 단순강도로 보고있다. 지난달 23일 대전에서는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하려다 실패하자 옛직장 동료와 애인 등 2명을 살해한 강영민(姜永旻·29)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강씨는 3억원짜리 부부형 생명보험에 든 뒤 아내 박모씨(30)를 승용차로 치어 숨지게 하도록 청부업자를 사주했으나 박씨는 다행히 상처만 입었다. 강씨는 이어 옛 애인을 찾아가 자신의 직장 동료와 결혼을 하게 하고 부부형생명보험에 들게 해 같은 수법으로 이들을 살해했다. 이외에도 지난달 중순에는 10개월 새 시민 17명을 연쇄 살해한 정두영(31)이,같은달 25일에는 4명을 연쇄 살해한 천병선(52)이 각각 붙잡혔다. 가정윤리가 파괴되면서 어린이 학대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한국이웃사랑회 전국 18개 어린이 학대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96년71건,97년 159건,98년 367건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무려 1,149건으로 늘었다. 충남대 사회학과 박노영(朴魯英)교수는 “최근의 강력사건은 도덕적 황폐와황금만능주의가 극에 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가정윤리 파괴와 인명경시풍조가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정신과 고경봉(高京鳳)교수는 “최근의 극단적인 강력범죄를 단순 개인범죄로 봐서는 안된다”면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한 사회기강의 확립과 교도행정의 개선,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풍토 등 사회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사설] 재벌 변칙상속 뿌리뽑도록

    서울고등법원이 참여연대가 낸 ‘삼성 SDS 신주인수권 행사 금지가처분 신청’을 수용한 것은 오랜만에 보는 법원의 전향적인 결정으로 환영한다.그동안 보수적인 판결 때문에 부당한 부(富)의 대물림에 소극적이란 비판까지 받아온 법원의 새로운 태도는 바람직하다.이번 결정은 아직 본안 판결과 대법원 최종 판결을 남겨두고는 있지만 변칙 상속과 증여를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고법의 이번 결정으로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회장의 자녀 4명과 그룹최고간부 2명 등은 본안 판결이 있을 때까지 신주인수권부 회사채를 팔거나담보로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이에 따라 이들 6명이 삼성 SDS의 지분율을 14.8%에서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수준인 32.6%로 높이기도 일단 힘들게 될것으로 보인다. 삼성 SDS가 지난 99년 2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면서 이들 6명에게 1년 뒤 321만여주를 주당 7,150원이라는 싼 값에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준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동안 변칙 증여·상속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신주인수권가격과현재 주가 47만원 차이를 계산하면 이회장의 자녀와 간부들이 무려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고 회사를 장악하게 되기 때문이다.일반 주주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데다 재벌 오너 자녀에게 부를 변칙 대물림하는 문제도 있다. 사실 그동안 재벌 오너들의 변칙적인 증여와 상속이 사회문제화되면서 법의개정과 세무행정 강화가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법원이 지나치게 법조문의 해석에 얽매이는 바람에 변칙 증여와 상속 규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정부일각에서 잇따랐다.외국의 경우 법원이 적극적으로 변칙적인부의 이동을 강하게 규제하는 현실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법이 사회변화를 예측해 예상 가능한 변칙 행위를 앞서 규제하기는 어렵다.신주인수권부사채도 법이 미처 규제하지 못한 신종 사채였으며 마음만먹으면 아직도 법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적지 않다.더욱이 재벌 오너들이 법률전문가들의 자문을 미리 받을 경우 세금을 아주 적게 물거나 거의 물지 않고 부를 상속시키거나 이전하는 수단은 여전히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하급심의 결정을 뒤집고 서울 고법이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처리에 제동을
  • SBS 문화재단,언론계 해외연구 지원자 선정

    SBS문화재단(이사장 尹世榮 SBS회장)은 올해 언론학 교수 및 언론인 해외연구 지원 대상자 13명을 선정했다.다음은 명단. ■언론학계(5명) ▲최현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조교수 ▲목진자 단국대 방송영상정보학부 부교수 ▲유종원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부교수 ▲이원행 호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언론계(8명) ▲이하경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차장 ▲김재목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지영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조정복 한국경제신문 정보과학부기자 ▲박인택 KBS 비서실장 ▲조문배 불교방송 보도부 기자 ▲이웅모 SBS보도본부 부장 ▲방문신 SBS 보도본부 차장대우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1)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대한매일은 1945년 분단 이후 현재까지 중요한 남북관계 일화와 사건들을 특별기획으로 연재한다.이번 특집은 남과 북의양측 당국이 대화와 협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고,또 어떤 이유로 그같은 노력이 좌절됐는가를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92년 2월 19일 오전 10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 남북한의 TV와 라디오가 생방송하는 가운데 정원식(鄭元植)국무총리를 비롯한 남측대표와 연형묵(延亨默) 정무원 총리를 비롯한 북측대표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행사를 시작했다. [민족사적 의미] 수행원들의 기립박수 속에 발효절차를 마친 정 총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오늘은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뜻깊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감격을 표시했다.연 총리도 “최근 시베리아 고기압은 낮아지고 우리민족의 통일열기는 높아진다”고 시대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이날로 남과 북은 분단 반세기만에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음 날남측 언론은 기본합의서 발효사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어찌된일인지 북측은 남북의 공동발표문과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만 간략히 보도했다.그리고 기본합의서 발효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남측에서도 북한의핵 개발의혹이 점차 실체적인 위협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역사적 배경] 1990년을 전후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했다.동·서독의 통일,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등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이어졌다.세계적인 대변혁의 물결은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밀려왔다. 북한은 국제환경의 급변속에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이와함께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체제붕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념적·폐쇄적 노선을 포기하고 개방·개혁의 실용주의노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측도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다.88년2월 취임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4월21일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임기중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이룩할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천명한 뒤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가 잇따랐고,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으며 한-러,한-중 수교도 이뤄졌다.그 시점에 남은 것은 남과 북 두 당사자간의 관계개선 뿐이었다. [추진 과정] 1988년 12월28일 강영훈(姜英勳)국무총리가 북한의 연형묵(延亨默)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총리회담을 제의했다.이에 대해 연 총리는 다음해1월16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남북은 90년 9월부터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이어갔다.91년 12월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돼 양측총리가 서명했다. 92년 2월18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다. [내용상 함축]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조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서문에서는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본문에는 남북화해를 위한 실천과제와 불가침 약속,군축문제가 담겨있다.군축대상인 대량살상무기에는 화학·생물학무기와 핵무기도 포함하는 것으로남북간에 합의됐다. 또 경제교류와 협력,인적 왕래,교통로와 우편·통신의 재연결,통신교류의비밀보장과 관련한 규정도 담겨있다.남과 북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류 방안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북측의 불이행] 북한은 1992년 11월 5일부터 개최키로 합의한 분야별 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을 거부한 이래 기본합의서 이행과 당국간 대화를기피했다.93년 1월 북한 핵 문제가 터지면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은 물론 남북관계 전체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입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측 이행노력]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실천을 임기중 시행할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있다.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와 8·15 경축사 등여러 계기를 통해 북한측에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위해 분야별 공동위원회 가동과 특사교환을 제의한 바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기본합의서 법적 성격…민족 특수관계 규율 문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규율하는 문서이다. 기본합의서는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따라서 국가간의 조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다만 서문과 조문의 배열,발효의 절차,권리와 의무에 관한 규정,정부대표가 서명한 점 등은국가간 조약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기본합의서의 이중적 성격 때문에 합의서의 국회동의 필요 여부,국내법과의 저촉 등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2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뒤 국회에 인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국가간 문서가 아니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명후 최고인민회의 동의를 거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8년 7월26일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李根雄 부장판사)는 “남북기본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사항에 대한 체결 주체의 준수·이행을 명백히 요구하고 있다.단순한 정치선언이나 강령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의지를갖고 실천하면 ‘민족의 장전(章典)’이 될 수 있다. 이도운기자. [기고] 남북정상회담과 '기본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1992.2.19)된지 8년 4개월만에 그 정치적 실천을 담보하는 정상회의가 6월 12∼14일 평양에서 열린다. 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교류·협력,불가침 이행을 약속한 현상확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남북정상회담은 현상확인적 요소와 함께 현상변경적 요소도 담아야 한다. 남한의 역대정부(노태우,김영삼,최근 김대중)들이 내놓은 통일방안의 공통점은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국가연합적 성격을 가진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둔 점이다.그 이유는 동서독과 달리 상호 무력충돌을 가졌고,50년이상 장기간의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와 깊은 상호 불신 때문이다. 북한측도 1960년초 부터 고려연방제를 내놓았지만 1988년 이래 점차적으로통일의 점차적인 완성을 강조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남한의 남북연합에 매우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1991년 김일성 신년사는 제도적 국가적 통일을 후 세대에 미룬다고 함으로써 국가연합적 성격의 통일방안을 명백히 하고 있다.이것은 남북한 양통일방안이 상호 수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양 정상들은 남북연합이라는 가시적인 통일 청사진을 합의하여 발표해야 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남북연합의 헌장-통일헌법과의 관계는 3단계 통일방안으로설명이 가능하다.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협력단계의 법적 기초(1단계)라면,남북연합 헌장은 남북연합의 법적 기초(2단계)이고,통일헌법은 1민족 1국가 통일국가의 법적기초(3단계)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는 평화를 강조한다면,남북정상회의는 기본합의서의실천과 동시에 통일에 대한 큰 그림도 합의하는 현상변경적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남북기본합의서가 평화에 대한 총론을 규정했다면 남북 정상회의는 평화를 실천하는 보다 구체적인 각론적 내용을 합의해야 한다.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한 것은 남북한의 정치적 동기가 공통적으로 강했다.남한은 북방정책의 한건 주의의 일환으로,북한은 동구권 붕괴이후 정치·외교적 체제위기의극복을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남북한의 동기야 어떻든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 내용은 최초로 공식적인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 장전의 문서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3대 원칙을 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그 법적 성격과 실천을 둘러싸고 쌍방간에 많은 공방이 있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쌍방 모두 그 동안 그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정치적실천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쌍방 당국은 이제 지난 과오를 겸허하게 민족과 양쪽 국민 앞에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은 향후 모든 민족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풀어가겠다는정치적 결단과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조치를 재다짐해야 한다. 한 예로 쌍방은 기본합의서 제15조의 민족내부거래를 세계무역기구(WTO)를포함한 국제기구에서 공인받기 위해 유엔헌장 102조에 따라 유엔 사무처에등록함은 물론,4개 분과위원회와 5개 공동위원회의 조속한 가동에 합의하기를 바란다.이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쌍방은 사문화된 기본합의서의정신 복원과 그 실천성을 살려서 한반도에 평화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할 것이다.그래서 한국전쟁 50년이 되는 2000년 그리고 6·25라는 동족 상쟁의 이미지를 가진 6월이 이제 평화와 희망를 잉태하는 해와 달로 바꿔지기를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교수·국제법
  • [사설] 재벌개혁 아직 멀었다

    재계가 정부 개혁방침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특히 우리경제는 지금까지 꾸준한 개혁노력으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의 위기를 벗어나 항구적 안정성장기반을 구축해가는 중요한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재계가 보여주는 개혁거부 몸짓은 이러한 성장계획을 그르치게 될 것으로 크게우려된다. 과다한 차입경영 등으로 우리경제가 IMF사태에 이르게 된 데 대해많은 책임이 있는 재벌이 개혁을 마다할 경우 국제신인도 하락과 함께 저소득층의 불만 또한 매우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일행은 29일 경기도 포천군 일동 레이크컨트리클럽에서 가진 4월 정례회의에서 ”구조조정본부 역할 등 지배구조문제에 대해정부가 구체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30대 재벌그룹 지정제도에 대해서도 축소 또는 폐지해 줄 것을 정부에요청했다.이에 대해 정부는 재벌 구조조정본부 등 계열사간 기업지배를 뒷받침하는 조직은 폐지돼야 한다는 당초 방침을 재확인하고 30대 그룹 지정제도축소·폐지 요구도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재벌 움직임과 관련, 우리의 입장은 앞으로 정부가 보다 강력한 개혁의지를 갖고 재계의 그릇된 의식과 관행을 철저히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개혁을 중도에서 그치면 개혁이전보다 더욱 비능률적인 상태가 되기 쉽다.만약 재벌개혁의 고삐가 그들의반발로 느슨하게 풀릴 경우 오너전횡이나 문어발 확장에 의한 경제력 집중등 국민경제를 해치는 관행들이 빠른 속도로 원상회복될 것이다. 구조조정본부나 30대 그룹 지정을 문제삼아 반발하는 것은 5%도 채 안되는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황제경영의 즐거움을 계속 누리겠다는것이며 부당내부거래나 상호지급보증 등의 불법적인 경영관행에서 손 뗄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밖에 이해가 안된다.또 부(富)와 경영권을 변칙세습함으로써 일반서민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거액의 상속·증여세 탈세를 자행하는 것이다.재벌대표들이 골프장에 모여 반(反)개혁을 말하는 TV화면도 일반서민들에겐 적잖은 위화감을 준 것으로 지적된다. 재벌의 개혁거부는 용납될수 없다.국민들은 과거 재벌의 그릇된 경영행태가 얼마나 국가경제체질을허약하게 하고 빈부격차를 초래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사상최고의순익규모를 이룬 재벌들의 경영실적은 저소득·중산층이 급여격감의 고통을감내하고 열심히 일한 대가라 할 수 있다. 재벌들은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선단경영을 해체하고 핵심업종에주력해서 기술혁신과 신제품개발로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강화,선진산업사회건설의 견인차가 돼야 한다.
  • JP “공조 안한다니까”…여권, 당분간 냉각기 가질듯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의 화법이 달라졌다.특유의 은유적 표현이 줄었다.전보다 훨씬 직설적이다.민주당과의 공조문제에서 특히 그렇다.거부하는 어조가 단호하다.당분간 공조복원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JP는 지난 19일 사석에서 공조거부 입장을 밝혔다.충청권 지방지 기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다.기자들이 묻자 JP는 “공조안한다”고 잘라말했다.“지금이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함께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광옥(韓光玉)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호통쳤다는 얘기도 소개했다.지난 17일청구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랬다는 것이다. 소속의원들이나 측근들이 전해준 당시 분위기는 차갑다.한 실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공조복원 의사를 전달하자 “그런 얘기를 할 때냐”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총선과정에서의 오해를 풀어달라는 요청에는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같은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더 직설적이다.다소 거칠고 험악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김대통령이 나를 완전히짓밟으려고 했다”고 심경의 일단을 피력했다. 또 “김대통령을 돕지도 않겠거니와 솔직히 너무 섭섭하다”고 공조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상임고문을 선대위원장으로 기용한 것에도 불만을 표출해왔다.총선 결과 텃밭인 충청권조차 민주당에 잠식당했다.그러다보니 민주당측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인상이다.김명예총재는 총선과정에서 “선거후에도 민주당과 공조안한다”고 거듭 밝혔다.당시는 ‘총선용’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지금도 가능성을 믿는 관측들은 여전히 있다.정치가 그렇고,특히 JP의 정치행로가 그랬듯이 ‘절대로’는 없기 때문이다. 여권의 반응은 일단 조심스럽다.당분간 냉각기를 갖겠다는 자세다.일각에서는 공조복원을 위해 ‘당근’도 검토하고 있다.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에서 15석으로 낮추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해볼문제”라고 말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김복동 의원 별세

    자민련 수석부총재를 지낸 김복동(金復東)의원이 19일 오전 9시4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67세. 고 김의원은 경북고와 육사 11기 출신으로 육사교장 등을 거쳐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광업진흥공사사장과 국제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거쳐 14대 국회 때 정계에 입문해 15대까지 재선의원으로 활동했다.이번 16대 총선에는지병이 악화돼 출마를 포기했다. 고 김의원은 국민당 최고위원,신민당 대표,자민련 수석부총재 및 상임고문등을 역임했다.육사 동기인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처남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와 박태준(朴泰俊)총리 등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빈소에는 노전대통령과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 이한동(李漢東)총재 등이 문상했다.또 자민련 김학원(金學元)대변인과이원범(李元範)의원,정진석(鄭鎭碩)총선당선자 등이 조문했다.손영길씨 등육사11기 동기생들도 빈소를 찾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금주(任金珠·65)여사와 4녀가 있다.영결식은 21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앞에서 국회장으로 치러진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5호실(02-3410-6915)에 마련됐다. 박대출기자 dcpark@
  • JP 칩거·장고 닷새만에 말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명예총재가 18일 입을 열었다.칩거와 장고(長考)를 거듭한 지 닷새만이다.19일에는 당선자 간담회에도 참석,공식활동을 재개한다.총선 패배의 시련을 딛고 당을 재정비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날 낮 청구동자택을 찾은 이한동(李漢東) 총재와 신임 당직자에게도 이런속내를 털어놨다. JP는 민주당측이 공조복원으로 일방적으로 몰고가는 분위기에 불쾌감을 드러냈다.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전날 밤 찾아와 “오해의 소지가있었으며 공조복원을 희망하는 김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한 것에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그는 “오해는 무슨 오해냐.오해할 것 하나도 없다”면서 “공조문제는 그럴 계제가 아니라 일체 대응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그동안 뚜렷한 의지를 보이지 못해 이렇게 된 것으로안다”고 반성론을 편뒤 “다시 출발하는 각오로 하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재기 의지를 내비쳤다.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일부 당선자를 염두에 둔 듯 ‘집안단속’에도 부쩍신경을 썼다.그는 “4∼5명이 기우뚱거린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지난번에도당내에서 흔들어놓은 사람이 있었다”면서 “내부에서 그런 불신의 원인을만들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이미 총선참패를 둘러싼 갈등기류가 확산되고 있다.‘강성(强性)’인 강창희(姜昌熙) 신임 사무총장은 당직자 취임식에서 JP를 겨냥,독설을 퍼부었다.그는 “내각제문제와 합당문제,선거법 협상에서 자민련은수없이 말을 바꿔왔고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의 늪에 빠졌다”면서 “선거패배도 민주당,한나라당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 더 크다”며 JP를향해 화살을 날렸다. 김성수기자 sskim@
  • 4·13 이후/ 특별좌담

    대한매일은 14일 오석홍(吳錫泓)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손봉숙(孫鳳淑)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황태연(黃台淵) 동국대 정외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16대 총선후 정국 및 정치개혁 방향’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참석자들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이번 총선에 미친 영향과 총선 후 정치개혁,남북관계 등 정국현안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했다. ●손봉숙이사장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낮은 게 특징입니다.역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할 때마다 5%씩 낮아져 15대때는 63%대로 낮아졌고 이번에는 57%대까지 떨어졌습니다.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무관심이 작용한 결과입니다.더구나 결과를 보면 지역주의가 뿌리깊게 박혀있습니다.지역주의 심화는 한국정치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반면 후보들에 대한 신상검증은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고 봅니다.병역·납세·전과 공개로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됨됨이를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반면정책대결은 거의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혼탁·금권선거가 여전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오석홍교수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생각해 봤습니다.후보검증 과정과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유권자에게후보들을 다시 한번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만큼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386세대를 비롯한 참신한 정치신인들을 많이 발굴한 것도 큰 수확입니다.몇몇 여성후보들이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등 여성의 진출이 과거에 비해 두드러진 것도 긍정적인 변화입니다.수도권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인물중심의 후보 선택도 특정 당이나 지연·학연 위주의 선거풍토를 벗어나는 발전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선거 전과정을 통해 드러난 지역갈등과 같은 정치적 앙금은 결과적으로 더 심화된 상태인데 이것이 정치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황태연교수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선거였습니다. 처음이라 그런지 명단을 너무 남발해서 걱정들이 많았습니다.그러나 나중에20여명으로 압축해 집중낙선운동을 벌였는데상당히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대상 지역 중 7∼8곳은 실패하고 수도권 등 거의 전 지역에서는 성공을 거뒀습니다.다만 시민단체가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니까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의도치 않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정치인은 ‘다 몹쓸 사람’이라는 인식을심어줘 유권자들이 선거로부터 이탈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이대로라면 다음번 선거의 투표율은 50% 이하로 갈 수도 있습니다.투표불참자에게 벌금형을내리는 선거법 개정이라도 필요하지 않나 봅니다.기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얘기도 있지만 기권자도 투표소까지 나와 무효표를 만드는 노력이라도 해야합니다. 정책선거가 잘 안됐다는 비판에는 동감입니다.언론이 특히 대오각성해야 합니다.여야의 비방은 마구 실으면서 정책은 각 당이 계속 내놓아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손이사장 시민단체가 열심히 활동했지만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못한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민주노동당,청년진보당 등 진보세력이 원내 진출에 실패해 우리 사회의 보수의 벽이 여전히 두텁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특히 시민운동이 낙선운동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환경운동,여성운동,소비자운동 등 부문별 정책 부각에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통일된 낙선운동에는 성공했지만 다양성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는 아쉬움이남습니다. ●오교수 이번 총선을 평가하면 저는 여야 모두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을 유지했고 민주당도 수도권의 약진을 바탕으로 의석수를 늘리는 한편 영남권을 제외하고 고른 득표를 해 지역적 한계도 다소 벗어났습니다.다만 이번 선거를 통해 더욱 뚜렷이 드러난 영호남의 지역색은 여야모두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역감정이 드러난 것을 비관적으로 보고 무조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야 모두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여유있는 마음을 갖고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탈피해야 합니다. ●손이사장 한나라당은 제1당이 됐고 민주당도 수도권에서 선전했습니다.하지만 영남과 호남을 보며 많은 사람이 답답한 심정을 느꼈을 것입니다.호남은 늘 몰표를 줘서 익숙하겠지만 영남이 이 정도로 몰표를 준 것은 두 가지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우선 김대중(金大中)정부에 대한 영남인의 정서를 읽어야 합니다.‘친(親)이회창(李會昌)’이 아니라 ‘반(反)DJ’ 정서가 표출된 것으로 봅니다.민국당이 부진한 것도 영남지역 사람들이 민국당을 찍으면 민주당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똘똘 뭉쳤기 때문입니다. 야당은 제1당이 된 데 만족하지 말고,정책적으로 밀어야 할 것은 여당과 공조하는 등 수권정당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황교수 한나라당도 결과적으로 잘 싸웠고 민주당도 의석수가 상당히 늘었습니다.의석이 273석으로 준 것을 감안할 때 현재 98석인데 20석 가까이 많은 115석을 얻었으니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민주당은 특히 영남지역의 기대했던 두 곳은 실패했지만 나머지 지역에서 의석을 얻어 지역정당을 탈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반면 한나라당은 지역적인 측면으로 치우쳐 영남정당으로편향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민심을 따라간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민심이 지역주의적이면 따라가지 말고 고쳐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포퓰리즘에 빠져 나라가 결딴납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표심 움직임도 주목할 만합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당을 밀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영남권의 견제심리가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같은 민심의 흐름을 볼 때 향후 여야관계는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예측됩니다.전통적인 해법으로는 풀어나가기 힘들 것으로 봅니다.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은 여야가 어우러진 의견을 갖고 임해야 하는데 뭔가 이성적인 차원에서 애국심을 진작시키는 정치혁신 내지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손이사장 한나라당도 이기고 민주당도 이겼다는 평가는 숫자로만 보면 그렇습니다.그러나 지역주의 면에서 보면 두 당 모두 실패했고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한나라당은 영남을 싹쓸이했고 민주당도 사실상 호남에서 마찬가지입니다.지역주의가 정상회담 개최라는 국가적 호재를 집어삼킬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여야 정치인,국민 모두 반성해야합니다. ●황교수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서는 선거법 개혁이 필요합니다.1인2표제,정당명부제가 좌초한 것을 두고 시민단체가 아쉬워했는데,너무 선거일에 임박해 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이번 16대 첫 임시국회에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그래야 호남에서 한나라당이,영남에서 민주당도 입지가생깁니다.또 정치신인의 정치진입도 가능해집니다.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춰 젊은 사람들을 당당한 유권자로 선거에 끌어들이는 개혁도 필요합니다.시민단체들의 선거관련 활동 범위도 제한돼있는데 넓히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국가보안법을 손질해야 하고 인권법 등시급한 과제도 16대 국회에서 다뤄야 합니다. ●손이사장 사실상 현행대로라면 전국구 리스트를 체크할 방법이 없어 ‘전국구(錢國區)’라는 말까지 나옵니다.1인2표제에 비례대표의 직능성을 살려야 유능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선거법도 코앞에 두고 개정돼 관리하는 데 어려움 있었습니다.적어도 선거 1년전에는 통과돼야 합니다.이밖에 정당법,정치자금법등 관련 정치개혁입법도 손질이 필요합니다.경제안정,빈부격차 해소 등도 16대 국회가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일입니다. ●오교수 선거운동기간 동안 낙천·낙선운동에 주력했던 시민운동이 이제부터는 국회활동에 대한 감시로 전환돼야 합니다. ●손이사장 21세기에 시민단체의 확장은 불가피합니다.이번 총선에서도 시민연대가 보여준 선거운동은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 나가고 올바른 정치인 양성과 신뢰구축이라는 사회자본 형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습니다.그러나 정부가 시민단체의 지원을 정권연장이나 그런 의도 없이 해야 합니다. 시민연대도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평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시민연대는 총선기간 동안 한개의 정당같은 역할을 한 게 사실입니다.일부 도에 넘는 일을 했지만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많아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시민단체도 이제는 본연의 자리에서 충실해야 합니다.2000년 첫 4개월을 선거에 밀려 보냈으니 지금부터는 새롭게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황교수 21세기는 고령화 사회라고 하고 비경제활동인구도 늘어납니다.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해야 할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국가 위기의 커다란 징후입니다.행정부가 하던 일 중에 비효율적인 것을 시민들이 책임지고 할 수 있도록 활성화해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일하지 않고 노는 인구가 많아집니다.비경제활동인구를 ‘소시얼 캐피털(social capital·사회자본)’로 활용하기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오교수 정치와 행정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그동안 정책적으로 어긋나면서도 정략적으로 개입돼 행정 전반에 혼란이 일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현재도 부처 통폐합 문제 등 뒤틀린 행정개혁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한 상태입니다.장기적으로는 행정체제를 유연화·연성화해 국민과 행정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자 검증 등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이런 시대적 추세에 발맞춰 각종 행정정책도 말로만 끝나지 않고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당을 초월해서 정치권이 합심해야합니다. ●황교수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디플로매틱 테크닉(diplomatic technique·외교협상술)’이 필요합니다.우선 당장 어려운 대목은 정상회담이 합의되었다해도 북한 김일성 주석의 조문문제가 불거지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측이 조문을 안하면 회담분위기가 굳어질 수밖에 없습니다.반면 조문을하면 남쪽에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골치아픈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오교수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공식발표했지만 6·25를 체험한 세대들이 아직 생존해있는 상태에서 대북문제는 어려운 문제입니다.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만큼 수많은 의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권의 능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손이사장 남북문제를 더 이상 보수·진보 이분법으로 봐서는 안됩니다.대통령도 야당총재를 국정파트너로 보고 남북문제를 잘 설명해주고 설득할 건설득해야 합니다.깜짝쇼만 할 일이 아닙니다.야당도 협조할 것은 최대한 하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리 김성수 이상록기자 sskim@
  • [대한시론] 4·13 총선이 남긴 숙제

    4·13 총선거의 결과가 나왔다.선거에 대한 감회나 평가는 각자,각 당의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어떻든 국민의 선택이고 결단이란 점에서 일응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다만 선거를 통해 나타난 우리의 모습이예쁘냐,그렇지 못하고 미흡하냐 하는 것은 별문제이다.따라서 그 점을 두고우리의 진로를 진지하게 모색해 나름대로 제언하고 싶다. 먼저 총선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에서 제시된 낙선대상자가 상당수 낙선되었다는 점이다.이 점에서 우리의 정치구도는 그래도 계속 노력해가면 개선될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다음에는 정당별 당선 수에서 여당과 야당,양당 구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철새정당’이나 색깔시비의 지역정당이 쇠락해 가고 있다.그런데 한편으로 혁신·진보정당의 좌절은 50여년의 보수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풍토에서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현상은 지역정서와 지연 연고의식이 일부 지역에서 더욱 거세게 나타났다는점이다.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논구되어야 할 것이지만,먼저 대통령과 여당 지도자에게 한마디 한다.어떻게 하든지 ‘지역 패거리주의’를 돌파하기 위해 보다 솔직하고 과감하며 성실한 대국민 접근과 견실한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이 난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의 정치발전은 있을 수 없다.이유가 어떻든 지역주의의 망국병을 뿌리뽑는 노력이 각계 각층으로부터 전개되어야 한다.이 운동이야말로 향후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번 선거는 부패 보수기득권 세력이 총선연대와 386세대,인터넷으로 나타나는 네티즌의 목소리,개혁을 발목잡는 부패세력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새 세대의 각성,외국 비판세력의 재벌 구조문제 제기 등에 대항해 생사를걸고 총력전으로 도전했던 싸움이다.물론 끝난 싸움은 아니지만,그들은 과거 독재하에서 얻은 특권과 특혜,재산과 사회적 지위 등 유리한 점이 개혁의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릴까봐 결사적으로 자기편을 지원했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50여년 뿌리를박아 온 독재하의 부패구조에 도전해정권을 교체하여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의 정치구도 재정비로서 의의가 있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정부는 선거에서 승리했느냐,패했느냐 하는 것을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다.다만 김대중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이며,구독재정권처럼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수는 자제했다고 본다.과거의 선거판을 보면 이 점은 알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향후 정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이다.국민에게 직접 국정을 알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라는 것을 체감토록 하여 개혁을 위한 재정비로서 정계개편에 나서야 할 것이다.변화된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응해야하는 것이다.기존틀이나 기득권 세력의 현상고착 등 올가미에 걸려들어서는안된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반적 징후와 현상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구시대 우민정책의 잔재가 건재하다는 점이다.이를 그대로 놓고서는 21세기 정보기술혁명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시민의식이 근대 이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내버려둔 채로 일부정치말썽꾼의 눈치나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해선 안된다. 지금 내외정세는 남북정상회담에까지 이른 시대이다.그런데 일부 이승만시대나 박정희시대에 써먹던 색깔론이나 호전적 무책임한 강경책이 애국 반공인양 멍텅구리 짓을 하는 것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러한 정치색맹으론 21세기 정치에선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국민이 알고 소리높이 외치도록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우리 나름의 성숙도와 함께 구시대 구세력의 잔재가 건재함을보여주었다.우리의 그러한 한계를 시인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우리 정치가 제모습을 찾는 것은 개혁의 성패여부에 달려있다. 한상범 동국대교수 법학.
  • [우리학원 명강사] 한림원 형법담당 강종훈씨

    한림법학원 형법강사인 강종훈(姜鍾勳·40)씨는 철저한 ‘소비자 중심의 강의’를 지향한다.각론의 추상적 집합체인 형법 총론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처음 배우는 수험생 입장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이해를 돕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강씨 역시 대부분의 고시학원 강사와 마찬가지로 사법시험을 준비한 수험생이었다.79년 금호공고를 졸업,연세대 상경대에 입학해 대학공부를 하다가 군복무를 마친 83년 성균관대 법학과에 다시 입학했다.변호사가 되기 위한 준비였다. 졸업후 잠시 일반 기업체에 입사하게 됐다.하지만 역시 그가 가야했던 길은법조인.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93년부터 사시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강씨에게 사시를 그만두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97년 치러진 제39회2차 시험.38회(96년) 사시 1차에 합격한 뒤 39회 2차 시험에 도전했다가 뼈저린 실패를 맛봤다. “가장 자신있었던 과목 중 하나인 형사소송법에서 문제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서 “이후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물었더니‘네가 자세하게 설명해줬던 것 아니냐’며 풀지못했던 것에 의아해 하더라”고 강씨는 돌이켰다. 이같은 일이 계속된다면 합격의 길은 멀기만 할 것이라고 느낀 강씨는 과감히 사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98년 7월부터 후학양성의 길로 들어섰다.강씨는 ‘완성도 높은 공부’를 강조한다.총론부터 법조문까지 추상적인 형법을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수험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한 1,2차에 모두 포함되는 과목이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공부를 해야 합격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사시준비생에게도 “총론의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다른 공부에 할애해야 할 시간도 놓치게 된다”고강조한다.또한 학설간의 대립이 많은 형법과목에서 학설을 따로 공부하기 보다는 학설을 대조해가면서 그 차이를 파악하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강씨는 “올해 사시 형법문제 자체는 좋았지만 난이도가 비교적 낮게 출제됐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면서“2차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판결까지 모든 과정을면밀히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알림 ‘우리학원 명강사’ 코너에서는 고시계 명강사들의 생활과 애환,강의법 그리고 그들이 추천하는 학습방법 등을 소개합니다.추천하고 싶은 강사가 있으면 전화 (02)2000-9254나 E메일 kid@으로 연락바랍니다. 최여경기자
  • ‘감동지수’로 票心 모은다

    유권자들을 감동시켜 득표로 연결시키려는 총선 출마자들의 ‘감동지수’선거전략이 백출하고 있다. 젊은 피 수혈론을 노려 헌혈운동을 주도하는가 하면 상가를 찾아 조문하며특유의 정서에 호소하기도 한다.동명이인의 연예인을 동원해 사인회를 계속하며 이름을 알리고 스타 배우인 친동생을 앞세워 유권자의 마음을 끌기도한다. 경기도 수원 팔달구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하려는 김환진씨(43)는 매주 한번씩 뜻을 같이하는 200여명의 대학생들과 헌혈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경실련 부설 지역연구소에서 일해온 이미지를 ‘젊은피 수혈론’과 접목시키려는 계산이다. 전북 김제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 채비를 마친 이건식씨는 상가 방문으로선거에서 승리를 굳히려 한다.‘상가는 기본이 20표’라는게 선거에 밝은 이들의 분석이고 보면 선거전략치고는 괜찮다는 평가다. 경기도 수원 팔달에서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늘푸른주택㈜ 대표 박정수씨는 같은 이름의 여자 탤런트를 회사의 전속모델로 기용해 팬사인회를계속하면서 인물 알리기에진력하고 있다.‘탤런트 박정수 팬사인회’라는플래카드를 내걸었지만 ‘탤런트’는 글씨가 작아 박정수만 쉽게 부각된다. 대전 대덕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김창수씨(46)는 배우로 잘 알려진 친동생 김학철씨(41)를 앞세우고 어린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집중 공략하고다닌다.동생 김씨가 나서 시트콤 형식의 달콤한 동화를 들려준다.어린이들의 ‘감동’은 곧바로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선거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어린이들이 최고의 운동원이 되어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남칠우씨(41)도 조금은 엉뚱하다. 유권자의 호기심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만나는 사람마다 부부가 나란히 찍은 사진만이 덜렁 실린 ‘백지 명함’을 돌린다.호기심을 유발해 이름을 알리고 득표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하나같이 여느 출마 예상자들과는 다른 캠페인으로 총선의 관문을 뚫으려는 아이디어 맨들이다.경쟁자를 비방하거나 약점을 폭로하지 않는다.일부는 재력도 있지만 금품선거 따위는 꿈도 안꾼다.유권자들을 찡하게 감동시켜 지지를 얻으려는 이들은 혼탁해만 보이는 선거전에 봄바람만큼이나 상큼한 충격을 주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전국종합 kbchul@
  • [우리학원 명강사] 한국법학원 민법 이원영씨

    서울 신림동 한국법학원에서 민법을 강의하고 있는 이원영(36)씨는 자기 스스로를 ‘낙방인생’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법학과 84학번인 그는 4년뒤인 88년 학교를 졸업하고 10여년 동안 사법시험에 매달렸다.그러다 방향을 틀어고시학원의 강사로 출발했다.그의 강의 방식은 독특하다.딱딱한 민법을 어눌한 말씨로 쉽게 풀어내기로 소문나 있다.그러한 재치는 자신의 인생역정에서길러졌다. 이씨는 지난 79년 고등학교 1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82년 대입검정고시를통해 서울대에 들어갔다.학교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선 여간해서 입을 열지않는다.다만 대학에 갈 생각을 한 이유는 “친구들이 하나둘 대학가는 것을보고 결심했다”고 말할 뿐이다. 어쨌든 그는 2년동안 대학입시 준비를 했고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다.그때까지만 해도 사시를 준비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그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대학생들이 그랬듯 재야운동에 열을 올렸다.주체사상을 공부하고 데모에도 참가했다.억압된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대학졸업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러던 그에게 대학졸업장을 받고,사시를 준비하도록 한 사람은 아버지.아버지의 건강이 점차 악화되자 대학졸업장을 안겨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 잡았다. 대학을 졸업한 88년부터 사시 공부를 시작했다.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듯,대학에 입학하듯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원강사가 된 98년까지 꼬박 10년동안 사시를 준비했지만 지난 91년 제33회 사시 1차에 합격한 것이 합격사의 전부다.이씨는 “노력하면 모든 것을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시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이씨는 생활비도 없어 쩔쩔 맸다.하는 수 없이 고시학원으로 달려갔다.민법을 택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그의 강의에도수학적 재능은 번뜩인다.추상적인 민법의 법조문을 수학의 논리성을 가미해해설해 나간다. 그는 최근의 출제 경향에 대해 “암기보다는 논리적 사건을 중심으로,판례문제를 많이 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면서 “기본개념을 기초로 소송법,상법 등과의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서브노트를 필요로하는 공부가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논리력과응용력을 겸비해야 하는 민법의 경우 서브노트를 토대로 한 암기위주의 공부는 것은 치명적일 수가 있다”고 수험생들에게 당부했다.그를 따르는 수험생들은 수백명 수준.연봉은 프로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최여경기자
  • [인터뷰] 박형상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언론분과위원,언론개혁시민연대 운영위원,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정책위원,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영상물등급위원회심의위원…‘법조계의 언론지기’로 통하는 박형상(朴炯常·41) 변호사가 갖고 있는 직함들 가운데서 공통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변호사라는 신분으로 ‘언론개혁운동’에 뛰어든지 10여년.법률자문을 비롯,‘언론개혁’에대한 그의 거침없는 주장과 비판은 언론계 안팎에서 유명하다. 지난 95년 저작권관련 세미나를 시작으로 최근 열린 ‘4·13총선보도와 신문개혁’ 토론회까지 박 변호사가 참석한 언론관련 토론회만 해도 40여차례. 최근 한 토론회에서는 “관련 법률도 모른채 정치인들이나 따라다니는 기자들의 기사를 어떻게 믿고 읽을 수 있겠느냐”면서 언론인의 자질문제를 강하게 제기,참석한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전에 비해 방송법·정간법 등 언론계에서 법제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고 형식적이기 일쑤입니다”최근까지 민변에서 방송법에 대한 법률지원을맡았던 박 변호사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다.그렇다고 언론개혁에 있어서 ‘법률우선주의’는 아니다.그는 “진정한 언론개혁은 법적·제도적 개혁뿐 아니라 인적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면서 언론의 자질과 책임론을 강조한다.따라서 법적 책임 추궁보다는 각종 윤리위원회를 통한 ‘명예법정’ 및 ‘언론인 비리백서’ 작업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발족된 ‘편파·왜곡보도 시민고발센터’에서 심의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시민단체들의 언론보도 감시활동이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언론인 경력감시’ 차원에서 검증자료로 축척할 것”이라고 밝혔다.언론개혁이 앞당겨지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근 언론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개정선거법의 ‘공정보도 규제조항’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언론인의 불만은 이해가 되지만 불공정보도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따라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를확대·개편하는 등 중립적 기관을 통한 ‘윤리적 제재’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언론개혁’의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구슬도 꿰어야보배”라는 말로 대신했다.정간법 개정 및 편집권 독립 등 여러차례 관련 토론회에도 불구,모두 ‘공염불’로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언론계와법조계가 머리를 맞대고 ‘언론법학회’등을 구성,구체적인 조문작업 및 제도정비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동안 ‘언론개혁’이란 큰 과제에 대해 언론계와 법조계의 의견이 조율되지 못했다는 자성도 덧붙였다. 그는 “현업 언론인은 아니지만 언론계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도 크다”면서 “기자들의 출입처 문제 및 저작권 문제 등 언론계의 고질적인 관행들도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언론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최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기자생활을 시작했다는 박 변호사는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신념으로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중국내 한국인 피랍 무엇이 문제인가]

    *피해 실태. 지난 92년 한·중 수교 이후 관광이나 사업,유학,포교 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이와 비례해 중국에서의 한국인 납치 등 사건·사고도 급증하고 있다.한국인을 노리는 강력 범죄는 조선족이 몰려 사는옌볜 등 동북 3성에 집중됐었다.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대상도 유학생,사업가,관광객 등 무차별적이다.범죄 유형도 단순 강·절도에서 납치나 살해 등으로 흉포화하고 있다.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 내 한국인 납치사건 등 피해실태와 사건이 잦은 이유,한·중 수사 공조문제 등을짚어본다. 수교 이듬해인 93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19만명에 불과했다.그러나 지난해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유학생 수도 1만여명에 이른다.한국은 97년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낸 나라가 됐다.기업체 주재원과 가족 등 장기간 머무는 교민도 2,000여명이나 된다. 96년 8월 옌지시에서 한국인 관광객 노부부가 대낮에 유흥주점에서 커피를마시다 조선족 폭력배들이 흉기로 위협하는 바람에 23만원을 내고 위기를 넘기는 사건이 발생했다.당시 이 사건은 교민 소식지에 보도됐으며 한국인 교민사회를 분개하게 했다. 97년 3월에는 베이징과 톈진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잇따라 납치됐다.조선족 납치범 4명은 신고를 받은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곧 붙잡혔지만 거주민들에겐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 있다. 같은해 톈진의 한국 회사인 한창공예유한공사 정모과장(34)이 강도로 돌변한 조선족 택시 운전사에게 피살됐다.업무로 베이징을 방문한 S증권 최모과장(36)은 납치됐다가 이틀 만에 구출됐다. 중국 당국은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잦아지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98년9월 베이징에서 한국인을 상습적으로 납치하거나 강도 행각을 벌였던 조선족3명을 사형에 처했다.7명은 중형 선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중국 내 한국인 관련 사건·사고(신고기준)는 182건으로 98년 84건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발생한 한국인 관련 사건·사고는 피살이나 강도 피해 등 강력 범죄가 대부분이다.피살 4명을 포함,사망자가 18명,강도 피해자 14명,상해 피해자 18명 등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죄꾼들은 처음부터 범죄 대상이 한국인인 줄 알고 접근한다”며 “중국에서 일본인을 납치하는 사건은 한해에 1건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면서 한국인 사장과 고용관계에 있는조선족 근로자 사이의 채권 채무와 관련된 범죄도 늘고 있다.중국 하청공장현장관리인인 조선족 윤원택 등 4명에게 납치됐다가 탈출해 지난달 29일 귀국한 신아무역 대표 김수흥(金秀興)씨는 완구류 납품대금 5,700만원을 제때갚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여권을 빼앗거나 훔치는 사건도 올 들어 10건이나 될 정도로 늘고있다.한국 여권은 변조하기가 쉬운 데다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국가가 많아중국을 빠져 나가려는 범죄자들 사이에서 고액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인 모임인 ‘한국상회’는 중국 공안당국에 한국인의 신변 안전을 위한 조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베이징의 한국 총영사관 김병권(金柄權)영사는 지난달 25일 교민 소식지 ‘베이징저널’을 통해 ‘납치 주의령’을 내렸다.하지만 교민들은 중국측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한 기업인은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해도중국 언론은 한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길 것을 우려,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민들은 한국계 신문에 이름이 나면 조선족 폭력조직이 보복하지 않을까 겁에 질려 있다”고 토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왜 범죄 표적되나.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 피랍사건이 속속 드러나면서 한국인의 섣부른 행동이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국보다 물가가 낮은 중국에만 가면 ‘졸부’행세를 하는 한국인이 많기 때문이다.최근의 피해는 한국인들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모씨(27)는 지난 97년 중국 베이징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용돈을 벌기 위해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국인 사업가들의 돈 씀씀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업차 베이징에 들른 B무역회사 사장 최모씨는 귀국 전날 이씨를 베이징의한 고급 커팅(歌廳·단란주점)에 데려가 “고생했다. 남은 돈을 다 쓰고 가자”며 호기를 부렸다. 최씨가 당시 쓴 돈은 7,500위안(元),우리 돈으로 90여만원이나 됐다.술과‘2차’를 포함한 값이었다.베이징의 직장인들의 월급이 보통 1,000∼1,500위안인 것을 감안하면 5개월치 이상의 돈을 하룻밤에 쓴 것이다. 돈을 앞세워 우쭐거리는 한국인의 행태는 ‘돈부채’라는 말이 생겨난 데서도 알 수 있다.한국인들이 조선족들 앞에서 빳빳한 미화 100달러짜리 여러장을 펴서 부채질을 하며 돈 자랑을 했다는 데에서 나온 신조어다. 96년 중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송재복(宋在馥·29·서울 서초구 우면동)씨는 “돈 자랑을 하고 다니는 한국 유학생이나 사업가가 범죄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한국인의 어리섞은 행동이 조선족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한국인을 경멸토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족들의 ‘한탕주의’도 주요 요인이다.자본주의가 도입된 이후 ‘돈이면 뭐든 할 수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퍼지면서 한탕만 잘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돈 자랑을 늘어놓는 한국인들에대해 동포라는 생각보다는 범죄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조선족의 범죄는 몇년 전부터 조직화하는 추세다.조선족들이 주로 모여 사는 지린,헤이룽장,랴오닝 등 동북 3성에는 현재 옌볜파,지린파 등 서너개의폭력조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일부 조직은 마약과 납치,강도사건 등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중국 공안당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최모씨(46·중국 지린성 창춘시)는 “조선족들은 최근 한국인들의 피해에 대해 ‘안됐다’는 생각보다는 ‘당해도싸다’라는 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김재천 박록삼기자 patrick@. *외교부 허술한 대응. 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 내 한국인들의 사건·사고는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정책 부실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중국 내 베이징대사관을 비롯한 현지 재외공관들의 안일한 대처와 파견 부처들간의 ‘부실 공조’,중국 공안당국의 비협조 등이 어우러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매년 100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재외국민 보호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선 외교부와 다른 부처간의 비협조는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다.최근 탈북자 조명철(趙明哲)씨 납치사건이 대표적 사례다.사건을 최초로 접한 국정원측은 ‘수사 기밀’을 이유로 외교부와의 정보 공유를 거부했고 외교부측은 언론을 통해 사건을 인지할 정도였다. 재외공관에 파견된 경찰과 국정원 협력관들이 현지 총영사의 지휘 계통에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유기적 협조체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의 보이지 않는 ‘저자세 외교’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자국민들의 신변 문제가 걸릴 경우 모든 채널을 동원,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 달리 우리 정부는 한·중관계 악화를 고려,중국당국의 미온적 태도를 ‘방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공안당국의 협조 부실로 이어져 한국인을 표적으로 노리고 있는 조선족 범죄조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현재 7∼8개로 추정되는 이들 조직에 대해 대사관과 경찰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잇단 납치·강도사건이 대체로 미제로 남아 있다.조선족 범죄조직을 새로운 범죄로 유혹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실정이다. ‘영사 전문가 부재’도 재외국민 보호정책의 걸림돌로 지적된다.영사직을기피하는 외교부 내의 분위기와 잦은 인사 교체가 중국당국과의 원만한 채널구축을 가로막는 분위기다.‘관계’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 맞춰 전문가 양성 등 영사 업무의 영속성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사건·사고 신고에 대한영사관들의 ‘관할권 다툼’도 재외공관의 ‘매너리즘’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韓·中 수사공조 어떻게. 인터폴이라는 국제형사경찰기구에는 전 세계 178개국의 경찰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회원국들은 인터폴협약에 따라 긴밀한 공조수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인터폴 전담 부서는 경찰청 외사3과다.중국 역시 인터폴 회원국으로우리와 돈독한 수사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지난해에만 인터폴을 통해 중국측의 협조를 받아 15명을 송환했다.올 들어서도 6명을 송환했다. 경찰청 외사3과는 국내 피의자가 중국으로 달아난 사실이 확인되면 중국 인터폴에 피의자 신원과 혐의내용,수사 협조사항 등을 전문으로 보낸다.중국측은 수사를 해 그 결과를 한국에 통보한다.중국 현지에서 용의자를 붙잡으면한국측의 의사를 물어 강제 추방할 수 있다. 중국에는 한국의 경정급 주재관 3명이 베이징과 칭다오,홍콩에 1명씩 상주하고 있다.현지 주재관은 별도의 수사권한은 없다.하지만 중국측에 수사를독려하고 수사내용 등을 신속히 국내로 보낼 수 있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일본 등 주요국에 모두 13명의 주재관을 두고 있다.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미국(4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주재관을 중국에상주시키는 등 중국은 한국의 주요 수사 협조국이다. 그러나 경찰은 조선족에 의한 한국인 납치사건 수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경찰은 공조수사를위해 당초 1일 중국에 경찰관 4명을 파견할 예정이었으나 두 나라 외교당국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보류한 상태다. 한국은 지난달 24일 중국과 사법공조 조약을 맺었다.이에 따라 한국 경찰은이 조약이 효력을 갖게 되는 오는 24일부터 법무부를 통해 중국에 ▲범죄인의 소재 및 신원 파악 ▲압수수색 요청 ▲증인 또는 피의자 이송 ▲범죄 관련 정보 제공 등을 요청할 수 있다. 김경운기자.
  • [대한광장] 시민단체의 선거참여

    부패한 돈으로부터 정치를 해방시키려는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제도정치권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분명한 것은 시민운동 세력이 총선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정치에 환멸을 느껴온 시민들이 마음을 돌리고 다시 눈을 부릅뜨고 정치를 개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이 때에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운동이 성장할 계기를 봉쇄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선진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형사법 상의 ‘명예훼손죄’라는 칼날을 들이대며 시민운동단체들을 위협하고있는 데다 정치입법으로 위헌 가능성마저 보이는 선거법 조문을 동원해 주권의 위탁자인 모든 국민에 대한 탄압도 불사하려는지 염려스럽다. 총선시민연대의 활동과 관련해 박원순 변호사가 검찰 소환에 응하면서 고백한 글을 읽으며 필자는 한 줄기 맑고 깨끗한 샘물로 썩어 빠진 정치를 개혁하려던 이들마저 도도한 흙탕물 정치의 와중에 휩싸인 듯하다는 느낌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시민단체들은 각급 선거에서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고양하고 정치개혁을 선도하는 데 앞장선다.미국 시민운동단체 가운데 하나인 PFAW는 최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매케인 진영의 선거운동 고문인 리처드 퀸의 해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그들이 수집한 증거에 따르면 리처드 퀸은 극우파로 킹목사의 흑인 해방운동과 만델라의 민주화운동을 폄(貶)하는 기사를 썼는가 하면 KKK단 지도자를 공개 옹호하는 글도 썼다는 것이다.우리가 보기엔 주제넘은 이유로 선거참모에 불과한 사람까지 공격을 받은것이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이 특정인을 거명하며 낙천과 낙선운동을 벌이거나 공천철회 압력을 가하는 일쯤은 정치적 의사의 하의상달이 쉽지 않은 우리의실정에서 시민의 정당한 참정권 행사에 해당하는 일이다.또한 시민단체가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공시하거나 이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행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과도 합치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법 정서와도 부합하는 행동이다. 진작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했거나 스스로 군사독재 가담자 또는 부정부패의 죄로물러났어야 마땅한 수구세력들이 건전한 민주시민운동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홍위병을 동원한 문화대혁명에 빗대어 공격하니 적반하장도유분수다.이것이 ‘색깔논쟁’을 다시 일으키려는 음모가 아니라면 모든 국민에 대한 모욕이요,시민운동에 대한 명예훼손이다.문화대혁명은 군중심리를 이용한 마오쩌둥 주석 만세운동이며 홍위병을 동원해 지식인·금융자본·외세 등을 일거에 매도하고 중국의 사회발전을 마비시킨 커다란 실수였음을 오늘날의 중국 위정자들은 하나같이 인정한다. 그런데 양식 있는 시민과 더불어 진정한 대의민주정치 시대를 열어보려는시민운동을 중국의 역사상 큰 과오였던 홍위병 난동시대에 빗대 빈정대는 무리들을 못본 체하거나 공권력을 앞세워 단속하려는 것은 정부의 판단력 부족이거나 시대착오적인 정치인을 독려하는 일중 하나로 귀착되고 말 것이다. 이번 총선을 대중선전이 관철되는 명목만의 자유선거가 아니라 시민의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해 강력한 국가권력과 원자화된 개인 유권자를 연결하는 진정한 민주정치 시대를 열어가려는 기회로 삼겠다면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은더욱 자유롭게 보장돼야 한다. 옥에도 티가 있듯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정의 실현에 충실하지 않은시민운동단체들이 있어 함부로 국민을 선동하거나 자신들과 무관한 지식인이나 시민을 무료(無料)로 이용하는 일도 더러 있을 것이다.그래서 바라건대시민운동가들은 행여 자기발등에 도끼를 찍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의 도덕성을 다시 한번 추슬렀으면 한다. 柳一相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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