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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참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같았던 분”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교황님과 교황청과 각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온 국민이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버지 같은 분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고 희망은 안 보이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편안히 가십시오. 주님 나라 들어가시면 평소 불쌍히 여기시던 백성을 위해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이 기증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빛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장기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다섯 배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떤 장관도 본받아서 기증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000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각막 이식 대기자가 모두 빛을 보려면 5년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년 혹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추기경을 모범으로 이 눈을 열게 되면 이는 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홍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 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기로 다짐합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교황청, 세번째 추기경 임명 앞당길 듯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 천주교계에 닥쳐올 변화에 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주교계는 교회 기구와 운용을 비롯한 천주교 내부의 큰 지각 변동은 당장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 천주교의 유일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의 은퇴가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사회활동과 관련한 일반인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천주교 교회가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새 서울대교구장 취임·정진석 추기경 은퇴 임박 만 75세면 주교에서 은퇴하도록 하고 있는 천주교 규정상 78세인 정진석 추기경은 이미 정년을 3년 넘긴 상태. 정 추기경이 로마 교황청에 은퇴 의사를 밝혀 교황청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천주교는 가장 상징적이고 높은 자리인 서울대교구장을 새로 맞게 된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정진석 추기경은 정년을 맞은 시점부터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혀 왔다. 정 추기경의 은퇴와 그에 따른 새 서울대교구장의 취임 이후 대주교, 주교들의 연쇄 이동이 예상된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은 세번째 추기경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제3의 추기경 탄생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관측은 교황청이 정진석 추기경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특사로 전격 임명해 김 추기경의 장례를 서울대교구장에서 교황장으로 격을 높여 치르도록 한 것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김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연일 이어지는 조문행렬을 본 로마 교황청이 한국천주교를 새롭게 인식, 새 추기경 임명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회약자 위한 천주교 나눔·생명운동 탄력 한국천주교 교회의 성격과 관련해선 대(對)사회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기경의 생전 활동이 부각되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가면서 교회의 역할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대전 교구를 비롯한 일부 교구에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 강조하고 치중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활동을 높일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 발족시킨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비롯한 천주교 사회복지 단체엔 가입을 원하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본부장인 김용태(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천주교계의 나눔과 생명 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 추기경 聖人 추진

    가톨릭계가 김수환 추기경을 성인(聖人)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의 한 관계자는 20일 “성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생전이나 사후에 기적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라면서 “하지만 명동성당을 찾은 40만명의 조문객이 상징하듯 분열과 갈등의 한국 사회가 자성의 기회를 되찾고, ‘통합과 화합의 신드롬’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21세기의 사회적 기적’이라고 해석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톨릭 교회가 아직 이 문제에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김 추기경의 성인을 추진하는 것은 그의 삶과 업적, 사후 전국민에게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불가피하다는 데 가톨릭 내부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가톨릭계는 197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던 자기희생뿐만 아니라, 1969년 추기경이 된 이후 80만명이던 신자를 520만명으로 6배가량 급속히 교세를 늘린 것 등도 기적에 준하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인 추진은 통상적으로 사후 5년이 지나야 한다.”고 성인 추진에 일단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뒤 “그러나 ‘살아 있는 성인’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사후에 무덤 참배객들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사례가 외국에서 종종 보고되고 있어 완전히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가톨릭 성인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조선 후기의 순교자 103명이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입양인이라면 누구나 내 장례식에 오세요”

    │파리 이종수특파원│한국의 해외 입양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실제 인물인 수잔 브링크(한국명 신유숙)씨가 지난달 23일 사망했다. 45세. ●새달 6일 스웨덴서 영결식 국제입양아연합은 수잔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이 새달 6일 오전 10시 고인이 살던 스웨덴 노르셰핑의 외스트라 에네비 교회에서 열린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딸 엘레오노라가 있다. 고인의 장례식이 사망 한 달여 뒤에 열리는 이유는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입양아연합은 “고인의 삶은 한국인 입양아는 물론 전 세계의 입양아 공동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며 “특히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지 말라.’는 기고문을 통해 세계적 논쟁을 불러 일으키면서 입양아 문제를 환기시켰다.”고 전했다. 고인이 오래 활동해온 스웨덴 입양아협회에 따르면 고인은 오랜 기간 암과 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협회는 고인이 운명을 달리하기 전에 가족에게 “원하는 입양인이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내 장례식에 올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모두 어서 오시길! 내게 그렇게도 중요한 이들이었기에 식구들이 사랑으로 맞이해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웨덴 입양아협회는 회원들에게 초대장 형식의 부고문을 보냈다. 이 협회는 부고문에서 “고인의 스웨덴 이름과 한국 이름 모두 백합를 의미하기에 원하는 사람은 백합을 가져와서 그녀의 관에 놓아주어도 좋다.”며 “수잔은 자기의 장례식이 기쁨의 순간이 되길 바랐던 만큼/ 이제 고통이 끝나고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갔으니/ 조문객들 역시 상복이 아닌 밝은 복장으로 오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입양인 네트워크 넓히는데 큰 역할 고인의 성장기는 1991년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자살로 삶을 마감하며 큰 충격을 준 최진실이 주연한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한국이 ‘쉬쉬 하던’ 해외 입양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입양 문제를 실존적으로 체득한 고인은 입양아 문제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스웨덴에서 입양인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했고 해외 입양인들의 네트워크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스웨덴 및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는 ‘우리는 지금-해외 입양아’ (MBC), ‘한때 나는 한국인이었다’(스웨덴 STV) 등 여러차례 다큐멘터리와 르포로 방영됐다. vielee@seoul.co.kr
  • [사설] 세상에 큰 사랑 남긴 김수환 추기경

    세상에 큰 사랑의 빛을 던진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김수환 추기경 현상’은 기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흘간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을 찾은 행렬은 평화로웠지만 뜨거웠다. 조문객 40만명이 성당 안 빈소에 들어가기까지 2∼3㎞ 줄을 서서 서너 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불평을 하거나 실랑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례미사가 진행된 어제도 1만여명이 몰렸다. 그들은 김 추기경의 관이 성당을 빠져나오자 “추기경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노소, 빈부, 종교, 이념을 초월한 ‘국민장’의 모습이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선종 2∼3일 전부터 병실을 찾아온 이들에게 되뇐 말이다. 김 추기경은 1969년 한국 최초이자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된 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재하면서 제자들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사랑의 제물로 내놓으며 하신 말씀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스도 사상에 기초해 김 추기경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인간’이었다. 그 신념은 엄혹했던 1970, 1980년대의 군부통치 시대를 헤쳐 나오면서 절대적인 판단기준으로 작용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돼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도 침범할 수 없다.”며 기독교 복음정신에 입각한 인간관을 피력했다.김 추기경은 그 중에서도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거나 불의에 희생된 사람, 노동자와 농민, 죄수 등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더 사랑했다.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좀 더 몸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 점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겸손해했다. 그런 큰 어른이시면서도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마음에 와닿는 분이었다. 청중들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애모’, ‘만남’, ‘사랑으로’ 등 대중가요도 즐겨 부르는 친근한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얼마 전엔 ‘바보야’란 자화상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선 바보가 되고, ‘밥’이 되어야 한다는 넉넉한 다짐이었다.김 추기경이 있었기에 우리는 덜 외로웠고 행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고인이 보여준 사랑과 나눔, 통합과 화해의 정신을 살려나가야 한다. 김 추기경의 안구 기증은 이미 불씨가 돼 신체의 일부를 내놓기로 약속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고인이 촛불처럼 자신을 태워 우리 가슴에 뿌린 고귀한 선물인 사랑의 씨앗을 키우고 널리 퍼져 나가게 해야 한다. 정치권은 ‘김 추기경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되새겨야 한다. 고인의 가르침은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새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조문행렬에서 평화를 보았어요”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조문행렬에서 평화를 보았어요”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열린 명동성당에는 지난 나흘 내내 그랬듯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마치 무엇에 이끌린 듯 종교와 이념, 지역을 가리지 않고 40만명 가까운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얼마간의 혼란은 불가피했다. 연인원 3500명에 이르는 평신도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절실했다. 지난 16일 저녁 김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명동성당으로 달려온 이기연(54·여)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씨는 닷새동안 찬 바람을 맞아가며, 때로는 들머리나 대성당, 때로는 남산 1호터널까지 길게 늘어선 추모 행렬 곁에 섰다. 20일 장례미사를 막 끝낸 뒤 만난 이씨의 눈자위는 붉어져 있었다. 이씨는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오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젊은 아기 엄마가, 시골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앞 줄에 세워 줄 수 없겠느냐며 간곡히 부탁했던 장면과 원불교 정녀님들이 함께 와서 기도드리던 장면 등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추기경님이 말씀하셨던 가족간 사랑, 종교간 사랑, 모든 세상의 화합, 평화란 이처럼 소박하게 나타나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김 추기경은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처럼 고생을 자처했을까. 이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등을 꼭 붙잡고 푸근한 마음으로 학교가던 추억이 있다. 추기경님은 아버지처럼 늘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다.”며 또다시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1999년 김 추기경이 머물던 서울 혜화동 주교관 옆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을 다니던 이씨는 어느날 아침 큰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김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은 면식도 없던 이씨에게 “주부가 학교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고 위로하며 손때 묻은 묵주를 손에 꼭 쥐어줬다고 한다. “며칠 전 술을 먹고 명동성당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던 노숙자들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드린 뒤 돌려보냈는데, 돌이켜보니 아마 그 분들이 예수님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사랑, 용서… 그 분이 남긴 귀한 유산”

    ●명진스님(봉은사 주지) 종교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인 소탈함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배타적이지 않은 자세가 타종교인들의 머리도 숙이게 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다”는 말씀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그분의 전체 삶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메시지이자 물질만 추구하는 시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박형규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관심을 뒀던 분이다.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고자 한 그의 삶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낮은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덕(성균관장·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참다운 종교인이면서 종교간의 벽을 허물었던 분이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이 별다른 종교분쟁 없이 지내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분의 덕이 크다. 종교간 화합을 위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창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종교보다 이웃종교를 더 배려한 마음은 종교인은 물론 모든 국민이 배워야 할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김남조(시인)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갔다 왔는데 추위에 몇시간씩 떨면서 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의 아름다움을 봤다. 사람들 마음 속에 더 많은 공감과 더 좋은 유대가 이뤄지게 한 것도 그 분의 유산이다. 고인의 큰 뜻이 후세까지 전달돼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데에 언제나 조언을 제시하는 귀한 유덕(遺德)이 됐으면 한다. ●정호승(시인) 결국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온몸으로 남겼다.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추모열기를 보면서 추기경이 종교인 차원이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 온 하나의 구심점 또는 우리 삶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리가 그의 소중함을 너무 뒤늦게 깨닫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안진(시인) 내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정도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추구한 그의 모습이나 “고맙다.”나 “사랑하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물질이나 명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종교인의 삶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장무(서울대 총장) 그의 선종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희생과 사랑을 몸소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실천한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이석연(법제처장)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에 진실과 관용에 기초한 공동체적 유대가 필요하다. 추기경은 하느님의 나라로 떠나면서도 그 유대를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하고 정부나 국회는 통합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국민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 때 떠난 그의 정신을 생각해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강지원(전 청소년보호위원장)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희망의 등불이 돼 줬고 불의에 대해 가차없이 질책했던 분이다. 그러면서 약자에게는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데 대해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들 마음의 등불이 돼 주기를 기원한다. 국민들이 그의 정신을 깊이 새겨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은 외할아버지의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해 주신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김 추기경께서 직접 대중가요 ‘애모’를 부르는 것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사회를 위해 애써 오신 그의 선종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주 커다란 손실이며,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추기경 떠난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의 운구차가 장지로 떠난 20일 정오 명동성당은 5일만에 휑뎅그렁한 회색 콘크리트 바닥을 드러냈다. 썰물처럼 조문객이 빠져나간 그곳에는 김 추기경을 보낸 안타까움이 남아 있었다. “털장갑 만들다가 이제서야 왔는데 벌써 가셨다니요….”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이기수(56)씨는 오후 2시 텅빈 성당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겨울 대목이라 도저히 시간을 못 내다가 겨우 왔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이씨와 부인 김말연(54)씨는 도통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어려운 이웃을 제 일처럼 돕는 추기경의 모습에 감동받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우리도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왔다.”며 이씨는 눈물을 훔쳤다. 뇌성마비 2급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권순욱(35·서울 방화동)씨는 바리케이드와 인파에 막혀 운구차량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차가 떠난 방향으로 손만 흔들 뿐이었다. 5년 전부터 성탄절이면 명동성당에 와서 생전에 세 번 김 추기경을 뵈었다는 권씨는 “먼 발치였지만 추기경님은 정말 온화하신 분이셨다.”고 했다. 장례미사에 참석하지 못했어도 추기경을 향한 안타까움과 존경은 다름이 없었다. 김 추기경과 인연을 맺고 노숙인 보호 활동을 해온 사랑의 나눔회는 인파가 몰리는 곳에 단체가 움직이기 힘들어 미사 참석을 포기했다. 하지만 회원들은 이날 함께 모여 TV중계로 장례미사를 참관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아! 스테파노님” 1만8000여 추모객 하늘길 배웅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아! 스테파노님” 1만8000여 추모객 하늘길 배웅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잘 가세요.”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안타까운 조문객들은 운구차라도 만져보려 손을 뻗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치러진 20일 오전 11시40분. 장례미사를 마치고 김 추기경을 실은 관이 대성전을 빠져나왔다. 앞장선 십자가에 영정이 뒤따랐다. 서울대교구의 가장 젊은 사제 8명이 관을 들었다. 명동성당 하늘 위로 조종(弔鐘)이 울려퍼졌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렇게 떠났다. 오전 10시부터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진행된 장례미사에는 1만여명이 참석했다.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8000여명의 시민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되는 미사를 바라봤다.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 특사 자격으로 집전한 장례미사는 기도 후 성수를 세 번 뿌리는 의식으로 시작됐다. 정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김 추기경의 유언처럼 감사와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10시50분쯤 참석자들이 줄지어 영성체를 받는 성찬전례가 고요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오전 11시5분부터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강우일 주교, 이명박 대통령 등 각계의 고별사가 이어졌다. 고별사 낭독이 시작되자 고요했던 대성전 안팎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김 추기경의 관이 성당을 빠져나오자 흐느낌은 절정을 이뤘다. 신부들이 관을 들고 대성전을 나와 운구차가 대기해 있는 성당 앞 마당으로 이동하자 추모객들은 “추기경님, 사랑합니다.”라고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일부 신자들은 성호를 긋고 하얀 미사포를 벗어 흔들며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쉬워했다. 운구 차량은 오후 1시15분쯤 경기 용인 성직자묘지에 도착했다. 2000여명의 추도객이 운집한 가운데 하관예식이 진행됐다. 정 추기경이 기도를 한 뒤 관에 성수를 뿌렸고, 묘지관리원 6명이 광목 천으로 관을 내렸다. 추도객들의 입에서는 가톨릭 성가가 흘러나왔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관이 끝난 뒤 정 추기경이 다시 성수를 뿌렸고,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추도객들은 묵주기도를 올렸다. 흙을 덮는 순간이 되자 봉분 주변으로 주교들이 도열했다. 정 추기경이 성수를 뿌린 뒤 주교와 유족들, 김 추기경의 비서신부와 비서수녀가 성수를 이어 뿌렸다. 삽으로 흙을 뿌리는 의식도 같은 순서로 진행됐다. 유족들의 표정에서는 진한 슬픔이 배어나왔다. 오후 2시쯤 관은 흙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무덤 위에 놓여진 하얀 국화 몇 송이가 김 추기경의 하늘길을 마지막으로 배웅했다. 김민희 조은지기자 haru@seoul.co.kr
  • 이재오 “새달초 예정대로 귀국할 것”

    이재오 “새달초 예정대로 귀국할 것”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김지훈 기자│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19일 “계획했던 대로 다음 달 초순에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센터 방문교수로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최고위원은 이날 베이징대에서 한국유학생회 주최로 열린 특강에 앞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귀국 시기가 4월 이후로 늦어질 것이란 국내 정치권 일각의 관측에 대해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2일 미국에 돌아간 뒤 다음달 초 베이징대와 존스홉킨스대 공동세미나 등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귀국할 것”이라며 “3월 초순에서 늦어도 하루 이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귀국 일정에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제 들어가든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하지만 오랫 동안 국내 정치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의 귀국이 한국 정치에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최고위원은 ‘(3월 초 귀국이) 4월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두 군데는 전북이어서 한나라당과 관련이 없고, 나머지 세 곳은 어떤 누구도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역”이라며 “몇군데 공천 때문에 전체적으로 욕을 먹을 일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최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의 만남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것이라는 정치권의 각종 관측과 관련해서는 “오래 안 봤으니 안부 인사차 와서 만났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차단했다. 그는 또 민주화운동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언급한 뒤 “추기경 선종 후 잠깐 귀국해 조문할 생각도 했고, 측근들과 상의한 결과 80% 정도로부터 권유도 받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생각을 접었다.”며 “홈페이지에 조문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참 아쉽다.”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위령기도 창 음률로…영복 비는 토착의식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대성당을 찾는 조문객들은 성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잔잔하게 울려펴지는 독특한 노랫소리에 묘한 느낌을 갖는다. 천주교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겐 낯설기만 한 이 노래는 바로 ‘연도(煉禱)’라고 부르는 기도노래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천주교의 장례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연도’는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바치는 위령기도(慰靈祈禱)를 창((唱) 음률에 얹어 부르는 소리. 전통의 우리 창과 그리스도교의 기도문을 절묘하게 융합한 것으로, 천주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토착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채택해 쓰고 있는 대표적인 산물이다. 전통적으로 천주교 교회에선 초대교회부터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바쳐왔으며, 지금도 각국 천주교계는 지상의 삶을 마친 영혼이 하느님 품에서 영복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전통 의식을 전례에 포함시키고 있다. 천주교 교리상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사도신경의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 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기도형태인 우리 ‘연도’도 시편 129·50편, 성인 호칭 기도 및 찬미기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는 “교회는 지금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뿐 아니라 천국의 성인들, 연옥에서 단련받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공동체인 만큼 하느님 백성이 서로 공을 나누고 통교(通交)할 필요성을 갖는다.”며 “우리 고유의 전례인 연도는 비단 천주교 교회의 보편적인 기도뿐 아니라 희생과 사랑에 바탕한 토속적인 문화를 담은 특이한 전례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장례식에 앞서 19일 있은 입관식도 한국 천주교회만의 독특한 의식. 시신을 씻고 옷을 입히는 ‘염습’이 한국의 장례 양식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돼 외국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마지막 밤까지 나눔다짐 행렬…오늘 교황葬

    [김수환 추기경 추모] 마지막 밤까지 나눔다짐 행렬…오늘 교황葬

    때마침 하늘에선 천사처럼 하얀 눈송이가 내려 오기 시작했다. 장례미사를 하루 앞둔 19일 오후 5시,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 안 유리관에 임시로 안치됐던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이 삼나무관으로 옮겨졌다. 염습 후 잠깐 김 추기경의 얼굴이 공개된 20분 동안 명동 성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영영 보지 못할 추기경의 얼굴을 눈동자에 꼭꼭 담았다. 김 추기경은 반평생을 함께 한 추기경 반지, 십자가와 함께 청빈을 상징하는 삼나무로 만들어진 일반 관으로 옮겨졌다. 정진석 추기경은 “김 추기경님이 천상에서도 주님의 자세로 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분향과 성수 뿌리기가 이어졌다. ●장례식 교황장(葬)으로 격상 이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을 교황 특사로 임명함에 따라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는 서울대교구장에서 교황장으로 격상됐다. 김 추기경의 관은 20일 오전10시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장례미사가 끝나면 정오쯤 경기 용인 성직자 묘지로 운구된다. 운구 차량은 일반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 우회해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양재 인터체인지, 수원 톨게이트를 지나 태광컨트리클럽, 죽전로터리 등을 거쳐 장지에 도착한다. 이어질 하관 예절은 무덤 축복, 기도, 성수뿌리기, 분향 등 일반 사제와 같은 형식으로 30분간 이어진다. 묘비에는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이자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성경 구절 중 하나인 시편 23편 1절(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이 새겨진다. 이날도 조문 행렬은 이어져 대성전이 문을 닫은 자정까지 13만 6000여명이 빈소를 방문했고, 이로써 총 조문 인원은 38만 5300여명이라고 장례위원회는 밝혔다. 조문을 위해 오전 4시30분에 집을 나섰다는 이시몬(66·서울 구파발)씨는 “서두른다고 했는 데도 도착해 보니 이미 줄이 늘어져 있어 1시간 20분을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못 오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오전 9시40분쯤 빈소를 방문한 파딜랴 교황 대사는 “김 추기경의 선종은 사제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시민들은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다급한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2001년 김 추기경의 백내장 수술을 집도한 김재호 원장은 “수술 전에 추기경께서 상담을 하며 각막을 기증할 예정인데 늙고 난시도 있어 기증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면서 각막 기증의 뒷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백발의 민경봉(76)씨는 “이렇게 큰 규모의 자발적인 조문 행렬은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수 총리, 작가 박완서씨 등 참석 한편 장례위원회는 이날 장례미사에 참석할 귀빈 명단을 확정해 발표했다. 한승수 국무총리, 김형오 국회의장 등 100여명이다. 장례위원회는 “김 추기경님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소설가 박완서, 공지영씨를 비롯해 정부 인사와 외교사절, 국회의원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참석 가능성이 점쳐졌던 이명박 대통령은 불참하는 대신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 애도사를 대독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의 주치의인 강남성모병원 정인식 교수, 김영균 교수와 황태곤 병원장도 참석할 예정이다. 일반인의 참석은 제한된다.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은 “890석 정도인 대성전의 공간 문제 때문에 입장권을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장례미사는 귀빈 100여명과 유가족, 주교단 30여명과 서울 각 성당에서 1명씩 뽑힌 평신도 230명, 수도자 150여명 등이 참석하게 된다. 대성전 밖에서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야외에서도 미사를 볼 수 있고, 대성전 왼편 꼬스트홀에서도 동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김민희 박성국기자 haru@seoul.co.kr
  • 한분순 시조시인 겹경사

    한분순 시조시인 겹경사

    시조시인 한분순(66)이 겹경사를 맞았다. 그는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옥적’으로 등단한 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조를 지켜왔다. 세련되면서도 품격있는 시어를 구사한다는 평가 속에서 젊고 촉망받던 여류 시조시인은 그동안 ‘소녀’, ‘서울 한낮’, ‘실내악을 위한 주제’ 등 시조 시집을 냈고, 장편소설 ‘흑장미’를 쓰며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꾸준히 시조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한국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받았고 어느새 시조 분야의 원로가 돼 있었다. 한분순은 19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한국시조시인협회 총회에서 22대 이사장으로 뽑혔다. 이병기를 시작으로 이은상, 이근배, 정완영 등 한국의 대표적인 시조시인들이 이끌어 왔던 시조시인협회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최근 시의 위기가 회자되기 전부터 정형시로서 시조는 그저 명맥을 유지해 오는 데 그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특히 젊은 시조시인들이 협회를 외면하는 등 그간 조직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분순으로서는 마냥 기쁘기보다는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이미 전국을 돌며 젊은 시조시인들을 만나 협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약속받는 등 구체적 활동을 펼쳐 ‘제2의 도약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개인적으로 명예로운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앞서 지난 12일 한분순은 현대불교문인협회와 계간 ‘불교문예’가 주관하는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시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는 기쁨도 함께 맞았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4월1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이사장을 맡게 돼 기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시조가 고리타분한 장르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문학임을 확인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제 영이별입니까”… 마지막 날까지 나눔다짐 행렬

    그의 빈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의 성스러운 삶의 행적을 닮기 위한 마음의 다짐일까. 김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인 19일에도 서울 명동성당의 조문객 행렬은 계속됐다. 지난 3일간 24만 9000여명이 빈소를 다녀갔는데도 새벽 4시부터 몰려든 인파로 명동 성당 일대는 북새통을 이뤘다. 오스왈도 파딜랴 주한 교황 대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조문했다. 시민들은 개방 시간인 오전 6시 이전부터 성당 너머 1㎞가량 줄을 섰다. 오전 4시30분에 집을 나섰다는 이시몬(66·서울 구파발)씨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도착해보니 이미 줄이 늘어져 있어 1시간 20분을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못 오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오전 9시40분쯤 빈소를 방문한 파딜랴 교황 대사는 “김 추기경의 선종은 사제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외롭고 괴로운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치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송구스럽다.”며 애도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온 시민들은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다급한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2001년 김 추기경의 백내장 수술을 집도한 김재호 원장은 “수술 전에 추기경께서 상담을 하며 각막을 기증할 예정인데 늙고 난시도 있어 기증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면서 각막 기증의 뒷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백발의 민경봉(76)씨는 “이렇게 큰 규모의 자발적인 조문 행렬은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추기경의 입관예식은 이날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시신은 오후 5시부터 25분간 얼굴만 공개된 뒤 관 속에 담겼다. 시민들은 더 이상 추기경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의 예식을 지켜봤다. 김 추기경의 시신은 20일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장례미사를 마친 후 장지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로 운구된다. 추도미사는 22일 낮 12시부터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열리며 같은 시간 용인 성직자 묘역에서도 염수정 주교의 주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글 / 서울신문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추모] 3초 조문 위해 수시간… “그래도 행복”

    [김수환 추기경 추모] 3초 조문 위해 수시간… “그래도 행복”

    오전 10시46분. 김수환 추기경이 누워 있는 유리관이 멀리 바라보이는 대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명동성당에서 1㎞쯤 떨어진 남산1호 터널 입구에서부터 줄을 선 지 벌써 50분 가까이 지났다. 날씨는 여전히 매서웠다. 발도 시리고 목 뒤쪽이 추위로 뻣뻣해지는가 하면 콧물마저 흐른다. 성당 관계자들은 ‘목례만 하고 지나 가세요.’라고 적힌 푯말을 들어 보였다. ‘조문객들이 밖에서 1시간이 넘게 추위에 떨고 있으니 빨리 조문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연이어 귓전을 때렸다. 이제 막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재촉하는 목소리가 야박하다고 느껴졌다. 조문객들은 그러나 안내에 따라 빠르게 성호를 긋고 짧게 묵상한 뒤 입구 맞은편 출구로 나갔다. 조문에는 불과 3초 정도가 걸렸다. 정면에선 김 추기경의 구두 밑창만 보였다. 출구 쪽으로 움직여 유리관을 바라보니, 그제야 옆 얼굴이 살짝 보인다. 일반 조문객과 유리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까이서 조문하고 있는 수녀님들이나 주요 인사들이 부러웠다. 출근길에 ‘오늘은 명동성당 조문객 행렬에 동참해 보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유리관 때문이었다. 유리관 공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첫 장면에 나오는 존경받은 한 신부님의 죽음을 연상시켰다. 어제는 남산까지 줄이 늘어섰다고 하더니, 오늘도 오전 10시30분을 넘어서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내 뒤의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은 부천에서 7시쯤 채비를 차려 나왔다고 했다. 일행 중 한 아주머니는 이미 어제 낮 12시에 조문줄을 선 뒤 연도(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와 위령미사를 마치고 오후 6시에 귀가했다고 했다. 서울 창동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입성도 허술했지만 “어제·오늘은 하느님도 감기에 걸리지 않게 봐주실 것”이라고 장담했다. 조문객 줄 뒤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스쳐 지나갔다. 오전 11시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문이 예정돼 있었다. 짧은 조문이 끝난 뒤 1시간의 연도와 1시간의 추도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다시 줄을 섰다. 모든 행사가 끝났을 때는 오후 1시였다. 명동성당을 걸어 나오는데 “지금 조문하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누군가가 소리쳐 안내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1970~1980년대 격동의 현대사의 한 장이 닫히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명동성당 종마루에 앉은 채 뙤약볕 아래서 최루탄 가스와 땀 범벅으로 1980년대를 보냈던 격정의 20대들도 떠나가는 것 같다. 명동성당 앞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의 김 추기경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세대초월 ‘웰다잉’ 바람

    종교가 없는 배성숙(65·여·서울 서초동)씨는 18일 명동성당을 찾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평화로운 죽음을 느끼기 위해 긴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젊은 날에는 돈에만 얽매였고, 나이 들어서는 오래 살 궁리만 했는데 이제 욕심을 버리고 현명한 죽음을 준비해야겠어요.” ●선종의 의미 속세에 투영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이 ‘웰다잉(well-dying)’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한 추기경의 모습에서 ‘웰빙(well-being)’만 좇던 우리시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이다. 웰다잉은 정신적·육체적으로 품위 있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다. ‘선하게 살다 복되게 마친다.’(善生福終)는 천주교식 선종의 의미가 속세에 투영된 개념이다. 명동성당을 찾은 15만여명의 추모객들은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 추기경의 평화로운 모습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이모(33)씨는 “그의 온화한 정신과 육체를 보면서 삶과 죽음,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면서 “불현듯 끝날지도 모르는 생을 위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말했다. 유서쓰기, 입관체험, 자서전 집필, 나눔알기 등 웰다잉을 체험하는 기관들에는 문의 전화가 급증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추기경이 선종한 뒤 웰다잉 프로그램을 문의하는 전화가 평소보다 40% 이상 늘었다.”면서 “20~30대들의 문의 증가가 특히 눈에 띈다.”고 말했다. ●‘죽음준비학교’ 수강생 급증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죽음준비학교’는 3월 중순 개강이지만 벌써 20명 모집인원 중 절반이나 찼다. 관계자는 “추기경을 추모하며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원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마련한 웰다잉 프로그램도 신청자가 지난해보다 2배로 늘어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한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서혜경 교수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근했던 김 추기경의 감동적인 삶과 죽음은 그를 본받고 싶어 하는 국민들에게 선종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대근 조은지기자 dynamic@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지방에서… 출근前에… 끊이지 않는 행렬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일째인 18일 서울 명동은 거대한 조문 행렬 그 자체로 변해 버렸다. 5㎞를 훌쩍 넘는 조문객 행렬은 남산 터미널 방면으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명동 일대를 꽉 메웠다. 장례위원회는 오후 11시30분 현재 조문객이 14만 2450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성당 밖 인파를 감안하면 이날 조문객은 15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각계 인사들도 속속 빈소를 방문했다. 오전 11시쯤 빈소를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라의 경제·안보가 어려워 김 추기경이 더 조언해 주셨어야 하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사는 “교파는 달랐지만 평소 존경하고 사랑해 온 어른”이라며 애도했다. 성당 안은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로 큰 혼란 없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됐다. 대구에 사는 안성희(50)씨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큰 어르신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싶어 달려 왔다. 2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조문했다.”고 말했다.이날 오후2시에는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에 남아 있던 김 추기경의 유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제복과 제구, 각종 임명장 등과 함께 김 추기경이 사용하던 안경, 파이프 담뱃대 등이 눈에 띄었다.한편 장례위원회는 입관예식과 장례식에 대한 세부 일정을 발표했다. 19일 오후 4시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서 염습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오후 5시부터는 유리관에 안치됐던 김 추기경의 시신을 관에 넣는 입관예식이 시작되는데, 약 10분간 추기경의 얼굴을 공개한 뒤에는 시신을 직접 볼 수 없게 된다. 시민들의 조문은 19일 자정까지 허용된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진행될 장례미사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다. 시민들은 마당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장례미사를 볼 수 있다. 미사가 끝나면 장지인 경기 용인 성직자묘지로 시신이 운구된다.박성국 최재헌기자 psk@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허영엽 신부 문답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의 홍보담당인 허영엽 신부는 17일 “추기경께서는 병상에서도 당신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도록 신신당부했다.”면서 “그래서 화환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허 신부는 “20일 장례미사도 일반 신자와 다르지 않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 신부는 이날 구성된 장례위원회 첫 회의를 마친 뒤 명동성당내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이렇게 브리핑했다. 장례위는 정진석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은 염수정 주교, 김운회 주교, 조규만 주교 등 3명이 각각 맡으며 한국천주교주교단이 고문역할을 담당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기경의 시신 옆에 놓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둘러싼 얘기들이 분분한데. -추기경께서 군사독재에 반대해 거부한 훈장을 정부가 갖다 놓아 갈등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다. 추기경께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70년 8월15일에 이미 받았다. 유신 선포전이다. 어제 정부가 유인촌 장관을 통해 이 훈장을 다시 갖다 놓은 이유는 국민의 사랑의 표시로 다시 제작,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미사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나. -미사 끝에 몇분의 조사가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자의 장례미사와 기본적으로 같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진행된다. 여기에 마지막 기도를 바치는 고별 예식이 따른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안구 상태는. -감염이 없는, 일반적인 각막으로 판정됐다. →유리관은 특별한 장치가 돼 있나. -냉장 장치가 돼 있다. →19일 입관되면 더 이상 얼굴을 못 보나. -그렇다. 정식 관에 모시는 것이다. →추기경의 재산은 어떻게 되나. -재산도 많지 않다. 교구 사무처에 맡겨 놓은 유언장에 모든 것을 교구에 넣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황청의 조문 일정은. -일단 조전이 와 있다. 일반적으로는 교황청이 조문 대표를 선임해 조문하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게 일반적인 관례다. →후임 추기경은 누가 되나. -전 세계에 추기경은 150명가량이다. 교황청이 임명에 대한 전권을 갖는다. 특정한 나라에 배당하는 게 아니다. 후임이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李 대통령 빈소 직접 조문

    [김수환 추기경 추모] 李 대통령 빈소 직접 조문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후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빈소가 차려진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방문,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정진석 추기경과 안병철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신부의 안내로 명동성당 대성전 안으로 입장했다. 이 대통령은 성당에 안치된 김 추기경의 유리관 앞에서 30~40초간 고개 숙여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조문록에 ‘우리 모두 (김 추기경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적은 뒤 정 추기경과 잠시 환담했다고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 추기경께서는 안구기증을 통해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희생정신이라는 큰 메시지를 우리 모두에게 던지셨다.”면서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김 추기경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1970년대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 근로자들을 위한 병원을 만들면서 김 추기경에게 병원을 위탁관리해 줄 것을 부탁했었다.”고 소개했다. 지난 1975년 현대조선 부속병원으로 문을 연 해성병원(현 울산대병원)이다. 이 대통령은 그 인연을 시작으로 서울시장 재직시절 김 추기경을 자주 찾아가 문안인사를 했고, 김 추기경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비롯해 여러 현안에 자문을 하고 기도도 해줬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끝없는 조문행렬… 9만여명 애도 발길

    [김수환 추기경 추모] 끝없는 조문행렬… 9만여명 애도 발길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틀째인 17일 서울 명동성당은 본격적인 조문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시민들은 명동성당을 넘어 계성여고 쪽으로 1㎞가량 길게 줄을 섰다. 볼이 에일 듯한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시민들은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조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 각계 인사 50여명의 조문도 아침부터 계속됐다. 김 추기경의 시신이 놓인 명동성당 대성전에는 오전 6시부터 신도와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명동성당 지하 성당에서는 추모미사가 오전 5시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진행됐다. 대성전과 꼬스트홀 2층에서는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도(煉禱·천주교식 위령기도)도 계속됐다. 이날 명동성당을 방문한 조문객은 9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유명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천주교 신자로 김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방문해 “김 추기경은 야당 시절부터 나의 정신적 지도자였다.”면서 “성직자로서뿐 아니라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을 위해 광야의 소리 같은 말씀을 하신 위대한 신앙가”라고 말했다. 오전 10시쯤 빈소를 방문한 불교방송 이사장 영담 스님은 “종교는 다르지만 국민의 성직자로서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명동성당은 일체의 조의금이나 조화를 사절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되돌려보냈다.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공보국장은 “장례식이 간소하게 진행됐으면 했던 김 추기경의 유지를 받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조문객들은 김 추기경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척추장애로 다리를 저는 김윤식(80·경기 산본)씨는 “개신교 신자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40년 동안 존경해온 분의 마지막을 보고 싶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3시간이 걸려 이곳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40년간 천주교 신자로 지내온 김방지거(81·서울 청량리)씨는 개종의 이유가 김 추기경이라고 했다. 김씨는 “사진사로 1968년 피정(종교 수련회)에 참여했는데 그때 김 추기경이 피곤하겠다며 집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해 결국 천주교로 개종하게 됐다.”면서 “천국에서도 다시 뵈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편 김 추기경이 입원했던 서울 강남성모병원은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황태곤 병원장은 “마지막까지 진통제나 다른 처치를 하지 않고 영면하셨다.”고 말했다. 또 김 추기경에게서 적출된 각막은 이식이 가능하며 대상자가 이미 정해졌지만, 누가 추기경의 두 눈을 받을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병원측은 밝혔다. 김민희 이영준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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