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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봄 못보고…”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봄 못보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6일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의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조전에서 박용길 장로의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박용길 여사는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봄을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애석하게 떠났지만 그가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바친 애국의 넋은 북과 남, 해외 온 겨레의 마음속에 길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장례위 방북 불허 앞서 김양건 북한 아시아태평양위원회 위원장은 26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팩스를 보내 박 장로의 장례에 대해 협의하자며 유족과 장례위원회 관계자의 개성 방문을 요청했지만 통일부가 방북을 불허했다. 장례위는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일부의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다. 장례위에 따르면 북측의 개성 방문 요청 사실을 통일부에 알렸으나 통일부는 ‘조문단이 서울로 온다면 정중하고 안전하게 편의를 보장하겠지만, 북이 내려오지 못한다면 개성이든 다른 곳이든 일체의 접촉을 허용할 수 없다.’며 방북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례위는 이 같은 내용을 북측에 전했다. 북측은 이에 대해 “준비시간 관계상 개성으로 갈 수 없게 됐다.”는 답변을 보냈다. 북측은 박 장로에 대한 조의 표시나 조문단 파견 등을 위한 협의를 염두에 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 장로는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준비위 명예대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을 지내며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또 류우익 통일부 장관 취임 이후 이번 장례 접촉 제의를 통해 남측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떠보기 위한 포석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례식 소박하고 검소하게… 노제 생략 김상근 장례위원장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장례위와 유족의 입장을 정리해 북측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통일부 측은 “유가족이나 장례위 관계자가 방북해 북측 관계자를 만나는 것은 전통적인 장례 예법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장로의 장례식은 28일 오전 9시 30분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한신대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겨레장’으로 치러진다. 겨레장 명칭은 ‘통일의 봄길’로 정해졌다. 장례식에서는 고은 시인이 조사를 낭독하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이 조사를 한다. 소박하고 검소하게 하겠다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운구, 영정 차량은 없이 이동하며 노제 또한 생략한다. 장례식을 마친 뒤 수유리에 있는 통일의 집을 거쳐 오후 1시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문익환 목사와 합장된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故정주영회장 10주기… 범현대家 한자리

    故정주영회장 10주기… 범현대家 한자리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 제삿날인 20일 저녁 정 명예회장의 생전 청운동 자택에 범현대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범 현대가의 회동은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지난 10일 추모사진전과 14일 추모음악회에 이어 이날 정 명예회장의 자택에 다시 모여 제사를 지냈다. 통상 제사가 치러지는 오후 9시가 되기 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형제들과 정의선 부회장 등 3세들, 사촌들이 청운동 자택에 모두 들어섰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1시간 30분 전인 오후 7시 29분쯤 가장 먼저 청운동을 찾았고, 정몽준 의원이 8시 42분쯤 손수 운전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청운동 제사에 참석했다. 정몽구 회장도 오후 8시 52분쯤 카니발 승용차를 타고 자택으로 들어섰고, 이에 앞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오후 8시 35분쯤 소복을 입고 딸인 정지이 전무와 함께 자택으로 들어갔다. 이외에도 정 명예회장의 조카인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과 정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 정일선 비앤지스틸 대표, 정대선 비에스엔씨 대표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제사 역시 앞선 두 차례의 추모행사에서와 같이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만남에 관심이 쏠렸다. ‘집안싸움’으로 번졌던 현대건설 인수전이 끝난 뒤 갖는 세 번째 만남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과 현 회장은 앞선 두 차례의 만남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과 관련된 각자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두 회장은 침묵을 지킨 채 자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둔 정몽구 회장은 앞서 열린 사진전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다른 곳에 매각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의향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흘 뒤 현 회장은 “현대상선 지분은 우리한테 와야 한다.”면서도 “현대차그룹 측의 화해 제안이 오면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혀 어느 정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것처럼 보였다. 정 회장과 현 회장이 10주기 추모 행사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속깊은 이야기가 오갈 가능성도 있다. 가족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현대가인 만큼 ‘왕자의 난’부터 ‘현대건설 인수전’까지 쌓인 앙금을 계속 가져가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받은 데 이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추모 화환을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김양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통일전선부장 겸임) 명의의 추모 화환은 지난 19일 현대아산 개성사업소에 전달됐다. 화환의 빨간색 리본에는 ‘고 정주영 선생을 추모하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현대그룹 측은 절차상의 문제로 추모글이 적힌 화환의 리본만 받았고, 정 명예회장 기일인 21일 리본을 다른 화환들과 함께 선영에 배치할 예정이다. 앞서 18일에는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현대아산 금강산 사무소를 찾아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국방위원장의 말씀을 직접 전하는 것’이라며 구두 친서를 읽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정주영 선생은 민족화해와 협력의 길을 개척하고 북남관계 발전과 조국통일 성업을 위해 참으로 큰일을 했다.”면서 “그의 명복을 기원하고 아울러 현대 일가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 부위원장이 낭독한 김 위원장의 친서를 현지에 있던 현대아산 직원이 받아 적어 서울에 전달했다. 북한은 2001년 3월 21일 정 명예회장이 사망하자 사흘 뒤인 24일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 조문단 4명을 남한에 보내 조의를 표시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조전을 전달한 바 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국군수도병원, 하루 조문객 4000명 넘어서

    국군수도병원, 하루 조문객 4000명 넘어서

    고 서정우 하사와 고 문광욱 일병의 유족들은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전날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 조문객을 맞았다. 25일 하루 조문객 수는 4000여명을 넘어섰다.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태영 국방부장관, 정부 조문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안상수 대표, 당 관계자 40여명이 찾아와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金국방 “北만행 언젠간 되돌려 줄 것” 김 총리는 유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분발해 국민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국방장관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북의 만행으로 일어난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되돌려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안보를 튼튼히 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서 하사의 어머니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북 정책에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고 박 전 대표는 “말씀을 새겨 국회에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국군수도병원에는 부상 사병 16명이 입원해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6명 가운데 이진규 상병과 김인철 일병은 수술 뒤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4명의 장병도 모두 수술 뒤 회복 중으로 조만간 일반병실로 옮겨질 예정이다. 연평도 공사장에서 일하던 도중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에 의해 숨진 김치백(61)씨와 배복철(60)씨의 시신이 안치된 인천 길병원. ●“한푼이라 도 더 벌겠다고…” 울먹 이들의 시신은 25일 낮 12시 30분쯤 해경 함정에 실려 연평도를 떠나 오후 4시 10분 해경부두에 도착한 뒤 곧바로 유족들이 빈소를 마련한 길병원 영안실으로 옮겨졌다. 조문 첫날이라 아직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지는 않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김씨와 배씨였던 만큼 가족, 친지들은 애절한 사연을 쏟아냈다. 김씨의 부인 강성애(58)씨는 남편의 시신이 도착하자 어루만지며 “5개월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해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섬에 갔다가 이렇게 돼 돌아오니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며 오열했다. 아들 영모(30)씨도 “아버님이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연평도까지 가셨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안전대책을 세우지 못한) 당국에 울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인과 이혼한 상태인 배씨는 두 딸과 조카 등이 빈소를 지켰다. 김씨 등의 시신은 지난 24일 오후 3시 20분쯤 연평도 해병대 관사 신축 공사현장에서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현장을 수색하던 해경 특공대원들에 의해 발견됐다. 윤상돈·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한국에 시집간 베트남 새댁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한국에 시집간 베트남 새댁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한국에 시집 간 다른 베트남 여성들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공평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결혼 일주일 만에 한국인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고 한줌 재가 돼 고향으로 돌아온 딸을 마을 한 곳에, 동시에 마음 깊이 묻은 어머니의 눈물샘은 말라버린 듯했다. 고인이 된 베트남 새댁 탓티황옥(20)의 친정 어머니 쯔엉티웃은 17일 오후 껀터시 외곽에 자리잡은 집으로 찾아온 한나라당 소속 한선교 의원 등 한국 조문단에게 다른 베트남 여성의 ‘사람다운 삶’을 당부했다. 먼곳까지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딸이 늘 말했다.”고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떨렸다. 고인의 고향은 소수 민족인 크메르계 주민 300여명이 모여사는, 전형적인 베트남의 가난한 농촌 마을이었다. 호찌민시에서 차로 6시간 걸리는 이 작고 조용한 마을의 평화는 충격적인 소식에 산산이 깨졌다. 한 의원, 호찌민 주재 한국총영사관, 태광비나 등 현지 진출 기업체 대표들로 이루어진 10여명의 조문단이 온다는 소식에 마을 주민 50여명이 고인의 집에 모여 있었다. 몇마디 건넨 뒤 입을 닫은 아내를 대신해 고인의 아버지인 탁상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 16일 딸의 유골을 받아들고 김해공항을 통해 한국을 떠났을 때처럼 “반드시 사위를 처벌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사위를 용서할 수 없다. 그가 공정한 법의 처분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처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껀터 연합뉴스
  • [부고] ‘21년간 올림픽 대통령’ 사마란치 前위원장 하늘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심장 이상으로 21일 별세했다. 90세. 스페인 바르셀로나 퀴론 병원의 카를로스 세귀 대변인은 심장 이상으로 매우 위중한 상태에 빠졌던 사마란치 전 위원장이 이날 결국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병원 측은 사마란치 전 위원장이 급성 관상동맥기능 부전으로 지난 18일 병원에 입원했으며, 입원 직후 쇼크 상태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은 진정제를 투여 받고 인공 호흡기에 의존했고, 추가 검사가 예정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마란치는 이에세 경영대학원(IESE Business School)을 졸업하고 스페인올림픽위원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1967년 스페인 체육장관으로 임명됐다. 사마란치가 스페인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동시에 IOC 위원으로 선임된 것도 그해였다. 1974~78년 IOC 부위원장을 지낸 사마란치는 1980년 IOC 제7대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사마란치는 1977~80년 주소련 대사를 지내면서 소련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IOC 위원장 선출에 큰 힘이 됐다. 특히 사마란치는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가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때도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재임 기간 순수 아마추어리즘에서 탈피해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방송 중계권료를 비약적으로 키우면서 IOC의 재정을 확대시켰고, 올림픽을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로 탈바꿈시켰다. 또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IOC 본부 인근에 올림픽 박물관을 개관했으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창설한 데 이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는 IOC 선수위원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 불거진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로 인해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사마란치는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자크 로게 위원장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종신 명예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21년 동안의 위원장 생활을 마무리했다.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올림픽이나 각종 IOC 총회에 참석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현재 그의 아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도 IOC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IOC 총회 당시 2016년 여름올림픽 유치에 나선 스페인 마드리드를 지원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한 사마란치는 “내 나이 89세로 이제 생의 마지막에 와 있다. 나를 위해서라도 마드리드를 지지해 달라.”고 IOC 위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장례 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조문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폴란드 대통령부부 영면에 들다

    지난 10일 러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서거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가 18일(현지시간)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서 폴란드 국민과 세계 각국의 애도 속에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오후 2시 크라쿠프시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성 마리아 성당의 종이 울리면서 시작된 장례식은 유족과 세계 80여개국의 조문단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영국 찰스 왕세자 등 주요 국가 지도자들은 유럽 전역을 뒤덮은 화산재로 폴란드 공항이 폐쇄되면서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화산재 구름의 위험을 뚫고 비행기를 이용해 크라쿠프에 도착, 장례식에 참석해 폴란드와의 화해와 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영결 미사는 바티칸 교황청의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집전했다. 미사가 끝나자 폴란드 국기로 덮인 카친스키 대통령의 관과 흰색 바탕에 빨간색 무늬를 한 영부인 마리아 여사의 관이 1㎞ 정도 떨어진 바벨 대성당으로 운구됐다. 안치식은 카친스키 대통령의 쌍둥이 형제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법과정의당(PiS) 당수와 대통령의 딸 마리아 등 유족과 지인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고, 대통령 부부의 관은 성당 지하실에 안치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 쇼욤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을 비롯한 조문사절단은 바벨 대성당 정원에서 유족과 폴란드 정부에 조의를 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성 마리아 성당과 바벨 대성당 주변에는 15만명 이상의 추모 인파가 몰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장례식 장면을 지켜봤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MB대북관, 北 DJ조문단 접견뒤 우호적”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관(對北觀)이 지난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때 북한 조문단이 온뒤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친한(親韓)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는 7일 출간된 ‘2020 대한민국’에서 “2009년 늦여름부터 약 6주일간 세 차례 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는데 (북한과 관련한) 사고에 상당한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8월 중순쯤만 해도 이 대통령은 다소 강경하고 신중한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기대를 아예 접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후 북한 조문단을 접견한 뒤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큰 변화를 보였다고 그레그 회장은 설명했다. 그레그 회장은 “이 대통령은 상당히 우호적인 톤으로 (북한 조문단과의) 대화가 진행된 부분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은 듯 했다.”면서 “북한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대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이가 같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작년 남북정상회담 일정 합의뒤 결렬”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김정은기자│남북한이 지난해 10월17, 18일 이틀간 싱가포르에서 가진 비밀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일정까지 잡았지만, 막판에 의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한국 측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남북한은 지난해 봄부터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서 여러 차례 비밀 접촉을 갖고 북한 핵 문제, 북한 식량지원, 회담 장소, 납북자 문제 등을 조율했다. 특히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면회하면서 “관계 개선이 진전되면 정상 간 회담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어 지난해 10월17, 18일 이틀간 임태희 노동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회담, 2009년 특정일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기본합의가 이뤄졌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그러나 아사히는 “임 장관이 귀국 후 기본합의 내용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부분이 애매하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 명문화되지 않았던 점,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이 정상회담의 전제로 받아들여지는 표현이 있어 한국 정부 내에서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 측은 또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평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6·25전쟁 당시의 포로와 한국인 납치 피해자 10여명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도록 북한에 요청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국 측은 포로와 납치 피해자의 귀환이 실현되면 대규모 식량지원도 가능하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북한이 난색을 표하면서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 측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10월 비밀접촉 등을 통해 주요 의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확인한 만큼 이견조율만 끝나면 정상회담은 예상보다 빨리 성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마 연내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 미 정부 당국자들과 한·미동맹 현안 및 북핵 해결 공조 방안에 대한 협의에 들어갔다. 김 비서관은 남북정상회담이 공론화되면서 한국의 입장을 미국에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hkpark@seoul.co.kr
  • 김정일위원장 수행빈도로 본 北 권력지도

    김정일위원장 수행빈도로 본 北 권력지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방 군부대와 경제시설 등을 찾는 ‘현지지도’에 소수의 최측근 인물을 대동함으로써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인물일수록 실세로 꼽힌다. 2009년 한 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은 누구일까. 24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현재 모두 157차례 현지지도를 했고, 여기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내민 주요 인물은 13명이다. 그중 최다 수행은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108차례나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85회),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77회), 현철해 북한군 총정치국 상무부 국장(56회), 이명수 국방위윈회 행정국장(48회) 등이다. 김기남 비서는 선전·선동과 김정일 우상화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대표적 구호인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도 그의 작품이며 김 국방위원장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주요 문헌이나 각종 축하문의 경우 대부분 김 비서의 손을 거친 것이다. 특히 그는 향후 북한 후계 구도에서 김 위원장의 3남 정은의 우상화 작업을 담당할 유력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김 비서는 신중하고 침착한 언행으로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우며 매사 꼼꼼하고 일처리에 실수가 없어 한 번도 숙청을 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 비서에 대해 “김정일 앞에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측 조문단의 단장으로 서울을 찾았다. 2005년 8월에는 북한 인사로는 처음 서울의 국립 현충원을 방문했다. 장성택 행정부장은 김 위원장의 매제다. 그는 한때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04년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좌천되면서 2005년에는 단 한 번도 현지지도에 동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6년부터 권력을 회복, 올해 김 위원장의 측근으로 회생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 그는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져 있다. 현철해 국장은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수행 횟수에서 상위권을 지켰다. 그는 10년간 모두 435회 현지지도에 동행했다. 과묵한 성격에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이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北 이대통령초청 발언, 백악관 “오해 있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백악관은 18일(현지시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는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과 관련, “오해(misunderstanding)가 있었다.”고 해명하면서 구체적인 방북 초청 사실을 부인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이날 한국 특파원단과의 전화통화에서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 배경에 대해 “우리가 말하려고 한 것은 최근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북한의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북한 방문을 얘기하기도 했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당국자는 “그 이외에 다른 구체적인 방북초청이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가 브리핑한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백악관의 이번 설명이 (이 사안과 관련해) 최종적인 것이며, 국방부의 별도 브리핑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백악관의 이같은 언급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초청했다는 미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이 파장을 불러일으키자 백악관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은 이날 이번 사안에 대해 파문의 당사자인 국방부가 해명하지 않고, 백악관이 직접 해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kmkim@seoul.co.kr
  • [사설] 남북 정상회담 혼선 빨리 정리돼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혼선을 빚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유감스럽다. 한·미 정보공조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미 국방부의 기자 브리핑이 있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배경 브리핑에서 최근 북한이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명박 대통령 평양 초청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을 예로 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이 이 대통령과 면담한 자리에서 운을 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원칙적 수준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중국을 가운데 두고도 관련 얘기들이 오갔다고 한다.그럼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놓고 혼선이 이는 것은 북측의 유화 공세를 해석하는 시각이 다른 데다 한·미 간 정보공유 시스템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강하다. 현재 대결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하지만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발효되고 있고 6자회담은 물론 북·미, 남북 대화도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를 넘어선 초미의 현안이다. 북핵 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져도 큰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북한의 정상회담 거론은 이런 맥락에서 공세적 측면이 강하다. 국제적으로 남측이 정상회담에 소극적이라는 선전 효과와 함께 우리 내부는 물론 국제공조의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북한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한·미간 정보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지난달 유엔 방문 때 이 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그랜드 바겐’을 둘러싼 한·미간 엇박자가 재연돼서는 곤란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우리 내부를 조율하는 한편으로 한·미간, 가능하면 중·일까지 한목소리를 낼 때 국제공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진보와 보수, 위기의 남북관계를 말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측의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개성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이 논의되는 등 모처럼 남북관계의 긴장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기조와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으로 야기된 남북 위기 상황은 여전히 심상치 않다. 진보 성향의 계간지 ‘역사비평’과 뉴라이트 계열 ‘시대정신’이 가을호에서 각각 남북관계의 현 지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해 눈길을 끈다. 먼저 ‘역사비평’은 특집 ‘위기의 남북관계와 10대 현안’에서 남북관계의 평화적 재구축을 위한 전문적이고 실리적인 방안을 살펴 본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교수는 현재 진행되는 남북관계 위기의 원인을 남북한 당사자의 상호인식에 심각한 충돌이 있기 때문으로 본다. 즉 남한 당국자들은 북한 정권이 비정상적인 권력이기 때문에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 당국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보수반동’ 정부이기 때문에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인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 양자의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정치적·민족적 의미를 뛰어 넘는 경제적·실용적 접근만이 현재의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경제적 접근은 북한에 대한 실용적 접근조차 반대하는 보수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부교수도 “핵 없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으로 향하는 최후의 열쇠는 남북한 당사자들이 쥐고 있다.”면서 “남북문제의 해법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실리중심의 평화공존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비평’은 이와 더불어 남북 합의의 지속과 단절,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 이산가족문제, 문화교류 등을 10대 현안으로 꼽고, 분야별 전문가가 각 문제에 대한 현황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실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대정신’은 특집 ‘북한의 선군정치, 핵개발, 붕괴 및 대책’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어떻게 핵 개발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가를 분석한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기고문 ‘선군정치와 강성대국 건설’에서 “경제정상화를 포기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택한 것이 북한 선군정치 노선의 본질인 만큼 교류협력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는 가설은 잘못됐다.”면서 “대북정책은 김정일 정권의 변화가 아닌 약화로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북한의 붕괴와 재건’에서 “북한은 밖으로 드러난 몇가지 사실만을 가지고도 이미 붕괴단계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체제가 붕괴됐고, 재정체계와 관료체계가 무너졌으며, 통치체계와 사회기반 시설이 거의 마비됐다는 것이다. 안 이사장은 이어 북한이 붕괴하는 경우 혼란과 통일비용을 줄이고, 북한의 국제분쟁지화를 회피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북한을 당분간 지금과 같은 독립적인 정치경제단위로 존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빅 이슈에 비판적 접근을/김재범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

    [옴부즈맨 칼럼]빅 이슈에 비판적 접근을/김재범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

    최근 국내외에서 연일 타전되는 굵직한 뉴스들이 유독 많았다. 서울신문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신종플루 사망자 속출, 최진실 유골함 도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양용은 미국 PGA 대회 우승, 나로호 발사 등과 같은 굵직한 기사들을 전면에 배치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커다란 컬러 사진과 자세한 정보는 사안에 대한 이해를 돕고 향후 전개될 사안들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언론의 주요 기능인 감시와 교육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보도된 기사들을 보면서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사안들이 있다. 우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비판적 접근이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8월17일과 18일 1면에 보도된 ‘현 회장 김 위원장 면담’, ‘이산상봉 금강산 길 다시 열리나’와 18일 2면에 보도된 ‘김 위원장이 원하는 거 다 얘기하라 했다’의 기사에서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 피살로 원인을 자신들이 제공해 놓고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인 관광을 다시 거론한다는 것이 국민 정서를 거스른다는 것 정도는 강력히 제기했어야 했다고 생각된다. 남북의 원만한 협조 관계가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북한 당국의 명확한 사과 없는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짚어줘야 했다고 생각된다. 사업가가 자신의 사업적 이익을 위해 며칠씩 기다리며 김 위원장 면담을 위해 북한당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에 국민적 자존심까지 상할 필요는 없더라도, 북한의 관광객 피살로 야기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는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확실한 장치와 최소한의 국민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비판은 있어야 했다. 고 최진실씨 유골함 절도사건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유명 연예인이었고 아직도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뉴스거리가 나타나지도 않은 사안을 흥밋거리로 보도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히 21일 10면의 ‘최진실 유골 절도범 CCTV 공개’, 24일 10면의 ‘최진실 유골함 CCTV 추가 확보’, 25일 8면의 ‘최진실 유골 절도용의자 공개 수배’ 등의 보도는 비슷한 내용을 새로운 내용 없이 지속적으로 보도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수많은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한국정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당연히 국내외에서 관심의 대상이었고 국민적으로 큰 사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과 업적에 대한 보도가 주류를 이뤘고, 국내외의 반응에 대한 뉴스가 많이 제공되었다. 특히 북한 조문단 방한과 관련, 남북관계의 개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뉴스의 피크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뉴스가 보도되면서 너무 어수선하고 중복된 내용들이 있지 않았나를 검토해야 했다. 또한 아무리 국민적인 비극이라도 언론은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지난 24일 1면에 영결식 사회를 맡은 손숙씨의 사진과 함께 소개된 내용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해 읽으면서 거북함을 느낀 독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도 작지만 나름대로 가치 있는 기사를 발굴하고 혹시 빠지고 소외된 기삿거리가 없나를 살펴보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다. 예를 들면 27일 5면에 소개된 제주지사 주민소환투표 관련 기사는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간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에 묻혀 자세히 다뤄지지 못한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김재범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
  • [열린세상] 6자회담 의미 제대로 파악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6자회담 의미 제대로 파악해야/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교착되고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서 북한이 화해모드로 나섰다. 북한 자세 변화는 클린턴 방북과 미국 두 여기자 석방, 개성공단 억류 근로자 석방, 현대그룹과 북한의 5개항 합의, 북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 파견과 일련의 조치들에서 알 수 있다. 남북 당국간 대화의 물꼬도 트일 전망이다. 남북 화해와 협력, 대화에 우리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지만 북한의 화해 제스처로 인해 북핵 완전폐기라는 궁극 목표를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북한의 일련의 움직임에 뚜렷한 원칙을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한 전략 원칙은 6자회담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은 6개국이 참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군(國家群)으로 나누어져 있다. 미국,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를 포함하는 다섯 국가는 동북아지역의 ‘현상유지국가’이고, 북한은 ‘현상타파국가’이다. 동북아 지역 현상유지가 역내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지난 1세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동북아 지역은 커다란 분쟁없는 ‘평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이와 달리 20세기 전반기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은 동북아 지역을 전쟁상태로 몰아넣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동맹 체결과 미군의 한국 주둔과 함께 미국이 이 지역의 세력균형자로 나서면서 동북아 지역은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중국이 북한의 전쟁 재도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여타 지역과 달리 동북아 지역은 50년이 넘는 ‘긴 평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장기간 평화의 도움을 받아 동북아 지역은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발전을 누리고 있다. 북한의 핵 보유는 바로 동북아 장기간 평화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장기 평화를 지속시키려는 ‘다섯 국가’와 개방·개혁을 거부하고 비정상국가로 행동하는 ‘북한’이라는 두개의 국가군으로 6자회담 참여국들은 분명하게 나뉜 것이다. 최근 6자회담 교착상태에서 5자회담 혹은 5자협의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5자회담의 성사 여부를 떠나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관점서 볼 때 ‘5자’의 중요성에 대한 지적은 향후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전략 원칙의 핵심을 찔렀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전략가들이 이러한 점을 거시적 관점서 설득력있게 국민들과 주변국가들에 제시하지 못한 게 아쉽다. ‘5자’의 중요성은 대소련 봉쇄정책을 입안한 미국 전략가 조지 케넌이 제시한 ‘다섯개 중심국가론’에 버금간다. 케넌에 따르면 냉전초기 세계는 미국, 영국, 일본, 서유럽, 소련 등 다섯 개 중심국가로 재편되었다고 보았다. 당시 중국은 ‘구석기시대’에 머물렀기 때문에 중심국가의 하나로 볼 수 없다고 케넌은 보았다. 다섯 국가 중 미국이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을 미국의 동맹권으로 흡수해 장기간에 걸쳐 소련을 봉쇄해 나갈 경우 냉전은 평화적으로 종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냉전초기 구석기시대에 머물렀던 중국이 개방을 통해 6자회담 의장국이 되었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5자’의 참여국이 됐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제 미국, 일본과 함께 동북아 지역 장기간 평화가 자신들의 번영에 긴요함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전략가들은 6자회담의 ‘5자’가 갖는 중요성을 거시적 전략 관점에서 분명하게 인식, 이들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의하여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서울광장] 남북 정상회담 빠를수록 좋다

    [서울광장] 남북 정상회담 빠를수록 좋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사실상 실패했다. 그는 집권 중반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일을 꺼렸다. 집권 2년차인 2004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정상회담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해 가을 제주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북핵문제가 해결돼야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상회담을 북핵 해결과 연계함으로써 ‘북핵의 덫’에 걸린 것이다. 특검으로 대북 송금을 파헤친 그로서는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썩 내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비공식 라인을 통해 북측과 대화를 시도했던 것 같다. 그의 최측근 안희정씨와 대북사업가 권오홍씨의 접촉설 등이 무성했다. 그는 집권 말기에 가서야 비공식 라인으로는 북측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토로하면서 공식 라인을 활용해 대북 접촉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라인이 가동됐고,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07년 10월4일 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분단 사상 두번째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너무 늦었다. 임기를 불과 4개월여 남겨 놓았고, 18대 대선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레임덕의 정점에서 실질적인 합의와 진전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했다. 김 위원장의 측근 중의 측근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 일행이 지난 주말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산삼이라도 먹어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을 걱정했다. 이에 김기남 비서는 “(김 위원장의)업무량이 많고, (저희가)보좌를 잘하지 못해서….”라면서 말을 흐렸다고 한다. 청와대는 이 자리에서 정상회담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정상회담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 건강을 걱정하고, 체제 문제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정상회담의 여건을 성숙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이미 정상회담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남북이 어제 적십자 회담에서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 일정과 규모 등에 합의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의 신호탄이다. 주변 여건과 맞물려 고위급 회담이나 장관급 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급한 듯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과 후계체제 구축도 중요한 동기가 될 것이다. 후계체제를 흔들지 않겠다는 약속은 정상 만남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한반도 위기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유엔의 제재가 진행 중이고, 북핵 해결도 되지 않은 터에 정상회담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주장은 이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되풀이하라는 주문과 다름없다.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 신평화구상의 시점을 북한이 핵무기 포기를 ‘결심’할 때로 유연하게 설정한 점은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해야 할 때다. 김기남 비서 일행이 ‘특사 조문단’의 명칭을 달고 왔기에 답례 형식의 대북 특사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북 특사는 정상회담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은 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연안호 나포 일지

    ▲7월30일 ‘800연안호’ 강원도 고성군 동북쪽 36㎞ 상의 NLL북방 11.2㎞ 해상서 나포 ▲31일 북, 전통문으로 “연안호 조사결과 따라 처리” 통보 ▲8월1일 북 조선중앙통신, “조선인민군 해군 경비함이 7월30일 동해 우리(북한) 측 영해 깊이 불법 침입한 남측 선박 1척을 나포했다.” 보도 ▲7일 이명박 대통령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연안호 문제에 모든 역할 다하고 있다.” 발표 ▲10~17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방북 ▲13일 북, 유씨 추방형식으로 136일 만에 전격 석방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3일 북 특사조문단, 이 대통령 면담 및 귀환 ▲26~28일 남북 적십자 대표단, 이산가족 상봉 관련 회담 ▲28일 북, 군통신으로 “‘800연안호’ 29일 오후 5시 동해상에서 석방”통보
  • 남북관계 완만한 해빙 모드로

    북한이 25일 남북적십자 회담 제의를 수용했다. 또 이날 북측은 남북간 주요 통신채널이었던 판문점의 남북 직통전화 5회선을 9개월 만에 복구했다. 최근 북한이 보이고 있는 유화적인 제스처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말 육로통행 제한조치인 ‘12·1조치’와 지난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라 최악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가 바닥을 치고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들이다. ●北, 국제 대북제재 돌파구 활용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는 것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북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가 합의한 5개항에 포함된 내용이다. 따라서 북측이 적십자회담 제의를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20일 제의한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해 북측은 24일까지 응답이 없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6일 남북적십자회담을 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봤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방한한 특사조문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23일 귀환한 뒤 북측이 적십자회담 수용의사를 밝힌 게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산가족상봉뿐 아니라 남북간 주요 현안을 협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김 비서는 서울을 떠나기 직전 기자들에게 “다 잘됐다.”면서 “좋은 기분으로 간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뒤 만족감을 표시했다. 북측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강경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지난 21일 조문단 파견을 전후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여 왔다. 지난 20일에는 통지문을 통해 ‘12·1조치’를 전면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남북적십자회담을 수용한 것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북측이 북·미 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 조문정국에서 형성된 남북 간의 대화 및 교류협력의 분위기가 북측의 남북적십자회담 수용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라며 “남북 적십자회담 이후 고위급의 당국간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방면 교류협력 이어질듯” 양 교수는 “고위 당국간 회담을 전후해서 민간인의 방북 및 인도적 지원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포괄적 이산가족인 국군포로나 납북자 가족들에 대한 상봉 문제 등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측이 남북 적십자회담을 수용한 것은 앞으로도 남북간 합의된 사안에는 적극적으로 이행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이려는 뜻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나로호 날았지만 위성 행방 묘연 전라도 보수, 경상도 진보 나와야 이영애 美서 극비결혼 태평양전쟁 가짜유골 봉환 논란 SM 이수만 최고급 오피스텔 롯데 16.8도에 진로 “물탄 소주” ”수능 코앞인데 휴교하라니… “
  • 北 “연안호 선원 조사중”… 전문가 “석방 임박”

    ‘800 연안호’ 선원 4명이 북한에 억류된 지 24일로 26일째를 맞았다. 사건 발생 이후 북한은 현재까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일관된 답변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연안호 선원 석방이 임박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연안호 선원 석방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했던 북측 조문단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나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과의 면담에서 긍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22일 북측 조문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면담하면서 “사절단이 귀환하면 연안호 선원을 잘 해결해 달라.”고 말하자, 김 비서는 “안전상 절차에 따라 시일이 걸릴 뿐”이라라고 답했다. 조사 절차에 따라 시일이 다소 걸릴 뿐 반드시 곧 석방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연안호 선원 석방설은 지난 17일 현 회장이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환하면서 힘을 얻었다. 도착 직후 현 회장은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안호 선원은) 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초 연안호 선원들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끝나는 27일 이후 석방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북측 조문단이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화답 차원에서 곧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靑 “北, 남북정상회담 제의 없었다”

    청와대는 24일 북한 조문사절단이 전날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 등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남북정상회담 관련 사항은 일절 거론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청와대는 이날 외교안보수석실 명의의 해명자료에서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조문단 접견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있었을 뿐”이라면서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동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어제 접견에서 그와 같은 언급은 없었다.”고 잘라 말한 뒤 “지금 단계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며 “1년 반 동안 그렇게 경색국면이었는데 북측도 갑자기 정상회담을 제의하겠느냐. 우물 가서 숭늉 달라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접견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며 “다른 경로를 통해 이 같은 뜻을 전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식 제안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2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남북간 모든 당면문제를 해결하려면 당국간 대화가 필요하고, 역시 정상간에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북측의 공식제안이라기보다는 타진 수준이라는 입장을 정리하고, 이 대통령이 북측 조문단을 접견할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면담 성사까지…김양건·김기남 잇단 요청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의 조문사절단을 면담하기까지는 남북 당국자간 치열한 수(手)읽기가 펼쳐졌다. 북측은 조문단 방문 이틀째인 22일 오전 남북 고위급간 회동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가져왔다며 이 대통령을 예방하겠다는 뜻을 적극 피력했다.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이날 현인택 통일부 장관에게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로 왔다.”며 ‘특사’라는 말을 세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누구든 만나서 모든 분야에서 톡 까놓고 솔직하게 얘기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은 현 장관에게 “22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고 현 장관은 북측의 뜻을 접수하고 청와대의 의중을 긴급 타진했다. 현 장관은 청와대를 방문해 이 대통령과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 참모들과 오찬을 갖고 면담 내용 및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 의사 등을 보고했다. 북측 조문단 대표인 김기남 비서는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와 별도로 만난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요구, 김 특보도 적극 움직였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현 장관은 “이 대통령의 일정상 22일 예방은 힘들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조문정국을 대내외적 선전에 활용하는 듯한 북측의 전략·전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북측이 청와대 예방을 희망한다고 해서 바로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게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판단을 했다. 북한이 조문단을 보낼 때 정부를 배제하고 민간단체인 김대중평화센터를 상대하는 ‘통민봉관(通民封官)’식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 상황에서 덥석 북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23일 11개국 해외 조문사절단 중 주요국 대표단과 면담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사설(私設) 조문단’이라고 규정한 북한 조문단을 먼저 면담하는 특별대우를 하는 게 적절한 것이냐는 시각도 반영됐다. 정부의 확답이 늦어지면서 북측이 발끈하고 예정대로 22일 귀환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북측은 기다렸다. 이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체류를 하루 늦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날 현 장관은 북측 대표단과 만찬하는 자리에서 23일 오전 청와대를 예방하는 것으로 합의해 고비를 넘었다. 북한 조문단은 청와대 예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들어간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고, 정부는 이런 북한에 대해 ‘원칙적 대응’을 고수하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이종락 김정은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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