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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교동 사저, 대통령 기념관으로” 이희호 여사의 유언은

    “동교동 사저, 대통령 기념관으로” 이희호 여사의 유언은

    고(故)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별세하기 전에 남긴 유언에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생전에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이러한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11일 김대중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가 발표문을 통해 공개했다. 이 여사는 또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고 유언했다. 이 여사는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 여사는 유언의 집행에 대한 책임을 김성재 상임이사에게 부여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달라”고 당부했다.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김 상임이사는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낭독한 발표문에서 “이 여사님의 장례는 유족, 관련단체들과 의논해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면서 성경을 읽어드리고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 여사님도 함께 찬송을 부르시며 편히 소천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이 여사님께서는 평생 어려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늘 함께 하시고,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서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한 일을 계속 하시다가 소천하셨다”고 강조했다.이 여사는 지난 3월 20일 입원해 83일간 병원에 있었다고 김 상임이사는 전했다. 그는 “노환을 조금 회복해 사저로 돌아갈 것을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노환이 아닌 다른 질병 때문에 돌아가신 것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북한 측의 조문단 파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연락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자유한국당 황교안·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5당 대표가 고문으로 참여한다. 김 상임이사는 “5당 대표가 모두 장례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정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좌담회’에서 “제가 어제 5당 사무총장들에게 연락을 드려서 5당 대표들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의원들은 장례위원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각 당에서도 응해왔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황교안 대표는 ‘담당할 일이 무엇인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민주당, 평화당, 정의당은 대표와 의원이 전부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참여 여부는 확인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 北 김여정 등 조문단 파견 가능성…이희호 여사 김정일 사망 때 조의

    文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지지 기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97) 여사가 10일 밤 별세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문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북측 조문단을 파견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 여사는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남측 조문단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직접 조의를 표하고 김 위원장에게 위문의 뜻을 표시한 바 있다. 그동안 6·15 남북공동선언 정신을 수 차례 강조해왔던 북측이 김 위원장의 조문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비롯한 최측근 인사를 대표로 하는 조문단을 파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김 부부장은 지난 4일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김 위원장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관람 수행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식 석상에 다시 등장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행돼온 남북 화해 분위기에 가교 역할을 했던 김 부부장이 북측 조문단을 이끌고 방남할 경우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 등을 비롯한 남북 및 북미 교착상태를 여는 전환점을 마련할 지 주목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주요국의 폭넓은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달말 이어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미 대화 재개를 앞두고 또다시 김 부부장을 통한 김 위원장과의 실질적 협의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 민주화 투쟁·한반도 평화 개척… 여성 정치 확대에 ‘큰 획’

    [이희호 여사 별세] 민주화 투쟁·한반도 평화 개척… 여성 정치 확대에 ‘큰 획’

    美유학파 엘리트女, 반대 딛고 DJ와 결혼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달라” 편지 등 DJ 민주화 투쟁 고비마다 버팀목 역할 석방투쟁·옥중 뒷바라지·가장 역할까지 ‘여가부 전신’ 여성특별위 등 출범에 앞장 퇴임 후엔 더 나은 한반도 평화위해 매진고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전에 여성인권 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큰 별이었다. 이 여사는 일제강점과 해방, 독재와 민주화, 한반도 전쟁과 평화 시대의 개척자였고, DJ의 영원한 동행자이자 동역자였다. 이 여사는 1922년 9월 의사 부친과 한의사 모친 사이에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이용기씨는 세브란스의전을 나온 국내 의사면허 4호로 전북 남원과 경기 포천의 도립병원장을 지냈다. 모친 이순이씨도 한의사집 가정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이 여사는 가톨릭 신자인 DJ와 종교적 화합을 이루는 데도 기여했다. 이 여사는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의 창천교회를, DJ는 동교동 성당을 다녔다. 이 여사는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944년 일제의 교육긴급조치로 학교가 문을 닫아 졸업하지 못했다. 해방 후 1946년 서울대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영문학 전공이지만 2학년 때 교육학과로 옮겼다.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칼렛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5월 마흔이던 이 여사, 서른여덟이던 DJ가 종로구 체부동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아들이 딸린 빈털터리 실업자 김대중과 미국 유학까지 하고 돌아온 여성계 엘리트 이희호의 결혼에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이 여사가 몸담았던 YWCA 선후배들이 반대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은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이어졌다. 이 여사는 남편 DJ의 민주주의 투쟁에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DJ가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에서 주춤거리거나 물러서지 않도록 단단히 매어낸 것도 이 여사다. 1971년 대선 때는 직접 연단에 올라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만약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0월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본에 갔던 DJ는 사실상의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여사는 서슬 퍼런 감시망을 피해 DJ에게 편지를 썼는데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적었다. 1973년 5월에는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 달라”는 편지를 썼고, 3개월 뒤 도쿄납치사건이 일어났다. DJ가 지칠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이 여사였다. DJ도 훗날 아내에 관한 글에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는 글을 썼다. 1977년 ‘3·1 구국선언문’ 사건으로 DJ가 구속되자 이 여사는 석방투쟁으로 1년을 보냈다. 또다시 구속된 남편을 대신해 가장으로서의 책무에 시달렸다. 당시 이 여사는 몸무게 43㎏까지 야위었다. 이 여사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손에 쥔 채 울었다고 한다.이 여사는 DJ가 옥중에 있을 동안 매일 편지를 썼다. 아들의 안부 등 일상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철학적·신학적 논쟁거리, 남편에 대한 격려 등을 담았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이 청한 책 외에 자신이 직접 고른 책도 한 두 권씩 꼭 전했다. 이 여사가 이때 쓴 편지는 1998년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으로 출판됐다.1987년, 1992년 DJ가 대선에서 잇달아 패하자 이 여사도 상심했다. 하지만 1997년 4수를 결심했을 때 이 여사가 앞장섰다. 1997년 12월 18일 남편이 당선됐다. 이 여사는 훗날 “당선이 확정된 직후에 청와대 경호팀이 우리에게 왔다. 오랜 세월 정보기관의 미행과 감시만 받다가 갑자기 경호를 받게 되니 어색하고 낯설었다”고 했다. 시대를 이끈 여성인권·사회 운동가였던 이 여사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씨앗이 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 부부가 동반하는 문화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1999년 발족한 한국여성재단을 탄생시킬 때도 퍼스트레이디가 재단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지 정치적 후유증은 없는지 등을 세심히 살핀 후 명예추진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5월 셋째 아들 홍걸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고 한 달 뒤 둘째 홍업이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여사는 감옥에 있는 아들들에게 “잘못을 회개하라”는 편지를 썼는데 항상 “내 잘못을 회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03년 2월 퇴임을 앞둔 내외는 청와대에서 민주당, 자민련 인사들고 고별 만찬을 했다. 당시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여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남편”이라며 “남편이지만 저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 무렵 대북송금사건이 터졌고 2월 14일에는 DJ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퇴임 후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이 여사는 DJ와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진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던 DJ가 석달 뒤 8월 서거했다. 이 여사는 DJ 장례식 후 2015년까지 매주 두 번씩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주 화요일에는 가족, 동지들과 묘역을 찾았고 매주 금요일에는 혼자 남편의 무덤을 찾아 기도했다. 이 여사는 보수 정부 시절 두 차례 북한을 방문, 햇볕정책의 맥을 잇고자 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이 여사는 6·15 공동선언의 주역이었던 김 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을 신청했다. 육로로 방북한 이 여사는 당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했고, 김 위원장은 “멀리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당국 차원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았고, 이 여사 일행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유족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에만 북측 조문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조문을 허용했다. 북측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이 여사가 머물렀던 백화원초대소 101호를 내어주며 극진하게 예우했다. 막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난 남측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당시 방북의 의미와 상징성은 매우 컸다. 이 여사는 3년 7개월 뒤인 2015년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친서를 보내 이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하 이뤄진 방북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당시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을 찾았다. 하지만 3박 4일의 일정 동안 끝내 김 위원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이 여사도 방북 4개월 후인 2015년 12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15주년 기념식에서 ”15년 전처럼 남과 북이 왕래하고 대화하는 시대로 돌아갈 것을 호소한다“며 꽉 막힌 남북관계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이 여사는 남편의 정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도 극적인 순간이었을 평양 6·15 남북정상회담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당시 이 여사가 평양에서 과거 이화여고 재학 당시 수학선생님이었던 김지한씨와 ‘60년만의 해후’를 한 것도 화제가 됐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생을 마감한 이 여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여성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문 대통령 환영한 평양시민들이 손에 든 꽃의 정체

    문 대통령 환영한 평양시민들이 손에 든 꽃의 정체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방북 첫날 평양 순안공항에서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향하는 동안 연도에 늘어선 평양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한복 또는 정장을 갖춰 입은 평양 시민들은 이날 문 대통령 부부가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손에 든 꽃과 한반도기, 인공기를 흔들며 문 대통령 부부를 맞이했다. 또 일부는 “조국통일”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무개차를 함께 타고 평양 도심을 지나는 동안에도 환영 인파가 들고 흔든 ‘붉은색 꽃’이 관심이 집중된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평양 시민들이 ‘김정일화(花)’를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화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징하는 꽃으로 ‘불멸의 꽃’으로도 불린다.김일성화가 김일성 주석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김일성화는 1965년 4월 김일성 주석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당시 수카르노 대통령이 난과(蘭科)의 열대식물에 김 주석의 이름을 붙여 선사한 것이다. 김정일화 역시 1988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46회 생일 때 일본의 원예학자 가모 모도데루가 선물한 베고니아과 다년생 식물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환영 인파가 손에 든 꽃은 김일성화나 김정일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탈북민은 “북한의 행사용 조화(造花)는 특정한 꽃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탈북민은 “간혹 철쭉이나 진달래 모양으로 행사용 조화를 만드는 일이 있긴 하지만, 김일성화나 김정일화를 본뜨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가 전했다. 또다른 탈북민도 조화를 든 평양 시민들의 사진을 보고는 “김정일화가 아니다”라며 “김일성화나 김정일화는 생화로만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평양 시민들은 큰 행사에 동원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행사용 조화를 직장에 보관해 놓는다. 행사가 열릴 때마다 이를 꺼내 사용하고는 다시 반납하는 방식이다. 행사용 조화는 비닐로 만들어지는데, 빨간색이나 분홍색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한편 김일성화와 김정일화가 남북관계 역사에 등장한 적이 있다. 북한은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김기남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단장으로 한 특사 조문단과 함께 진분홍색의 김일성화와 붉은색의 김정일화를 중앙에 배치한 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앞서 200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장례 때도 중앙에 붉은색 김정일화로 장식한 북한식 조화(弔花)를 보낸 바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DJ 3남’ 김홍걸 “日강제징용자 유골봉환 평양서 합의”

    ‘DJ 3남’ 김홍걸 “日강제징용자 유골봉환 평양서 합의”

    남북공동추진위 구성 등 논의 “북미협상, 작년 비해 천지개벽”“항일 투쟁이나 일제 강점기 역사에 대해서는 남북 간 이견이 별로 없어 조선인 유골 봉환을 통해 남북 주민의 마음을 풀어주고 민족 동질 회복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김홍걸(55)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일제 강점기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 봉환을 남북이 같이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북측에 제안했더니 좋다며 방북해 논의하자고 했다”며 “평양에서 공식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16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방북한다. 그는 일본 각지에 흩어진 약 2200구의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을 봉환하는 사업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달에 북한으로부터 ‘조선인 유골 송환 운동’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연락을 받았고 이번 방북을 통해 합의문에 서명하고 북측의 참여 방식 등 남북공동추진위원회 구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장은 “무연고 유골의 경우 제주에 임시로 모셨다가 남북 간 평화협정 등이 이뤄지면 비무장지대에 조성되는 평화공원에 유골을 모셔 남북이 공동 참배하는 안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 의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남측 조문단의 일원으로 모친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로서는 7년 만의 방북이다. 그는 북측 민화협은 통일전선부의 부서처럼 존재하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나 누가 합의문에 서명할지는 통보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서너 시간 전까지 방북 일정을 알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8년 창립해 올해 20주년이 되는 민화협의 의장이자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만큼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는 않았다. 김 의장은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이 곧 시작될 전망이라 유골 송환과 같은 인도주의적 일에는 협조해서 북측에 관계 개선의 긍정적 신호를 보내자고 일본에 말했다”며 “미·중·일이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버지의 햇볕정책으로 남북 관계 개선하려면 북·일 관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협력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규모를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만큼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분석해 맞춤형으로 대응해야 기회가 온다고 주장했다. 북·미 비핵화협상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을 두둔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만 봐도 전쟁이 날 것 같던 작년에 비해 천지개벽했는데 급한 불을 끈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후] “김정은, 솔직·대담했다… 회담 장소·발표문 대부분 확정”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후] “김정은, 솔직·대담했다… 회담 장소·발표문 대부분 확정”

    “솔직하고 대담했다.” 평양의 조선노동당사에서 지난 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고 6일 귀국한 대북특별사절대표단의 인상 비평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7일 전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등 남측 조문단이 상주인 김 위원장을 만난 적은 있다. 그후 남측 당국자가 북의 권력자로 김 위원장을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특사단은 김 위원장이 만찬장에서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북한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비핵화는 선대(김일성·김정일)의 유훈”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히는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솔직하고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한 데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날 북한 조선중앙TV가 김 위원장과 특사단의 만남을 10여분간 공개한 영상에서 김 위원장은 자주 웃었고, 큰 동작을 섞어 가며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전날 청와대가 발표한 6개 항의 발표문 내용은 특사단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대부분 확정지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6일 발표한 내용은 우리 특사단이 북에서 들은 이야기를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북측 의사를 묻고, 포괄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라며 “국가 간 신의와 무게감이 실려 있는, 북한이 인정한 항목”이라고 설명했다.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이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장소로 결정된 것도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논의된 결과로, 대담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평화의 집’ 하나만 놓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 장소에 대해 몇 가지 안을 가지고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면서 “남북이 자유롭게 논의한 끝에 회담 장소가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방북한 만큼 남측에서 제3차 정상회담은 남측의 여론을 감안해 김 위원장이 방남하기를 요청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여야 회동에서 “ 평양, 서울 또는 판문점 어디든 좋다고 제안했는데 북측이 남쪽의 평화의 집에서 하겠다고 선택했다”고 밝혔다. 공개되지 않았던 특사단의 평양 일정도 알려졌다. 특사단은 5일 만찬을 마친 후 ‘고방산 초대소’에서 묵었으며 6일 오전 11시부터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실무회담을 진행했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도 배석했다. 특사단은 김 부위원장과 실무회담을 마치고 북측 참석자들과 평양 옥류관에서 오찬을 한 뒤 순안공항으로 이동해 특별기(공군 2호기) 편으로 귀환했다. 방북 기간 특사단과 남측의 팩스 교신은 3차례였다. 지난 5일 오후 5시 ‘1보’를 보내 김 위원장과의 면담 및 만찬 확정을 알렸고 오후 11시 20분쯤 4시간 12분간의 만찬이 끝났음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6일 오후 3시쯤 ‘4시 30분 순안공항 출발, 상황실 종료’라는 내용의 상황 보고를 보낸 뒤 귀국길에 나섰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후락 청산가리 품고 방북... 역대 대북 특사 모습은?

    이후락 청산가리 품고 방북... 역대 대북 특사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대북특사로 파견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역대 대북특사의 모습에 관심이 쏠린다.대북특사(밀사)의 시작은 1972년 5월 김일성 국가주석을 극비리에 만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이 부장은 만약의 사태엔 자결을 위해 청산가리 캡슐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방북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5년 10월엔 장세동 안기부장이 방북했으나 88올림픽 공동 개최를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9월에는 서동권 안기부장이 방북했으나 정상회담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2000년 5월 경, 국가정보원이 올린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관련된 서면보고서, 영상자료, 관련 서적 10여 권의 요약본을 살펴본 김대중(DJ) 대통령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이같은 지시를 내린다. ▲김 위원장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고 ▲정상회담에서 협의할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입장을 들어보며 ▲공동선언 초안을 사전에 합의해 올 것 등이다. 남북이 이미 그해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세부 항목에 대한 조율은 쉽지 않았다. 임 전 원장은 5월 27일 방북했다가 DJ의 금수산궁전 참배를 요구하는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에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당일 밤 귀환했다. 임 전 원장은 6월 3일 다시 방북해 이번엔 김정일 앞에서 1시간 동안 우리 측 입장을 설명했다. 김정일은 “김 대통령의 뜻을 잘 설명해주어 매우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평양에 오시면 존경하는 어른으로,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품위를 높여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다.2005년 6월 17일에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는 등 북핵문제를 협의했다.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대북특사가 평양을 찾았다. 정부는 2007년 8월 8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28∼30일 연다”는 사실을 발표하며 대북특사 파견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2, 3일과 4, 5일 두 차례에 걸쳐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친서를 전달했다. 앞서 7월 초 우리 정부가 먼저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다는 사실도 이날 공개됐다. 2차 회담은 북한 수해로 연기돼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대북특사는 대표적인 ‘공개 특사’가 될 예정이다. 김정은을 만난 한국 인사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조문단으로 방북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화협 신임 의장에 DJ 3남 김홍걸

    민화협 신임 의장에 DJ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8일 제10기 2차 의장단회의(이사회)를 개최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을 대표상임의장으로 선출했다.민화협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 신임 대표상임의장은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조문단을 맞이했다”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김 신임 대표의장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와 미국 캘리포니아대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태국 넘어 아세안의 마음 노리고… 불꽃튀는 ‘조문 외교’

    태국 넘어 아세안의 마음 노리고… 불꽃튀는 ‘조문 외교’

    지금 태국은 ‘조문외교’가 절정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한 명을 기리는 자리를 세계 각국은 놓치려 하지 않았다. 25일부터 열리는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장례식은, 2015년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식과 함께 당분간 아시아에서는 갖기 힘든 형태의 외교 현장으로 꼽힌다.푸미폰 전 국왕은 1946년부터 70년이나 왕좌에 머무르며 숱한 손님들을 맞았고, 전 세계 군주·리더들과 교류를 나눠 왔다. 재위 30년이 지나고부터는 해외 순방을 하지 않았지만 직접 30개국 이상 방문했다. 여기에 더해 태국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경제 2위의 대국이자 아세안의 지리적 중심이라는 중요성 등에서 이번 장례식은 ‘소프트 외교’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특별히 왕실을 보유한 나라는 이 행사를 중요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왕실이 줄어드는 추세인 가운데 왕족들끼리 끈끈한 유대를 이어 나가기 때문이다. 북구 먼 곳에서 스페인의 소피아 왕비, 네덜란드의 막시마 왕비, 스웨덴의 실바, 벨기에의 마틸드 왕비도 왕족 조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덴마크 왕국의 프레데릭 왕세자, 호쿤 마그누스 노르웨이 왕세자와 함께 영국의 앤드류 왕자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부탄의 왕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 부부와 아프리카 레소토의 레트시에 3세, 통가의 투포우 6세, 말레이시아 페락의 술탄인 나즈린 샤 등이 왕비와 함께 방콕을 방문한다. 부탄은 푸미폰 전 국왕의 ‘로열 프로젝트’를 통해 농업과 수자원관리 기술 등을 태국으로부터 배워 간 인연으로 태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4일 현재 모든 참석자 명단이 공개된 건 아니지만 2006년 푸미폰 전 국왕이 ‘대왕’ 칭호를 받았던 즉위 60년 기념식에 25개국 28명의 왕족이 참석했던 걸 감안하면 이때와 비슷한 구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캄보디아, 카타르, 쿠웨이트, 요르단, 브루나이, 모나코, 룩셈부르크, 스와질랜드, 리히텐슈타인, 네덜란드, 바레인, 벨기에, 모로코, 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의 왕실에서 참석했었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전 세계 왕실 관계자는 대부분 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23~24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제4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 참석 후 방문한다. 중국은 조문단 파견을 공식 발표하진 않았지만 부주석급을 보낼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아키히토 일왕의 차남인 아키시노노미야 왕자 부부가 26일 조문을 위해 방콕을 찾는다. 앞서 일왕 부부는 지난 3월 태국을 방문해 푸미폰 전 국왕의 장남인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과 회담을 나눴다. 우리는 박주선 국회부의장, 민주당 강병원·자유한국당 백승주·바른정당 지상욱 의원으로 정부 조문 특사단이 꾸려져 24일 방콕에 도착했다. 장례식을 하루 앞둔 이날 주요국 대사관들은 의전 준비 등으로 분주했다. 이번 장례식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태국이 속해 있는 ‘아세안’의 특수성 때문이다. 아세안은 태생부터 동남아 10개국이 ‘집단’으로 움직여 왔다. 동남아 약소국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결성된 아세안은 사회적·문화적으로 상당히 이질적인 국가들의 느슨한 연대체임에도 불구하고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포럼(ARF),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체(ADMM+) 등 다양한 지역협력체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했다. 아세안은 아무나 상대해 주지 않았다. 선진국과 강대국만 상대한다. 정식 대화상대국은 한국을 포함해 11개국뿐이다. “한국이 대화상대가 되기까지 기울였던 노력에는 서럽고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많다”고 한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아세안은 경제·외교안보적으로도 몸값이 급부상했다. 경제적으로는 인구 세계 3위(6억 3000만명),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7위(약 2조 6000억 달러·2015년 기준) 규모를 기록하는 등 매력적인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67년 출범 당시 GDP 총합이 376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다.외교적인 측면에서도 아세안은 남중국해를 끼고 있어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이 앞다퉈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외교전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푸미폰 전 국왕의 장례식을 계기로 펼쳐지는 소프트 외교의 이면에는 이렇듯 ‘아세안’이 있다. 각국이 조문 사절을 보내 태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고, 아세안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노광일 태국 대사는 이날 “태국인들에게 푸미폰 전 국왕은 단순한 국왕을 넘어서 아버지 같은 존재”라면서 “국왕에게 경의를 표시하고 태국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하는 행위 자체가 앞으로의 외교 관계에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세안의 시초가 된 방콕 선언이 이곳 방콕에서 탄생한 것만 봐도 태국은 아세안에서 중심 국가”라고 덧붙였다. 방콕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별세…영결식, 고향 사마르칸트에 안장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별세…영결식, 고향 사마르칸트에 안장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장례식이 3일(현지시간) 거행됐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뇌출혈로 쓰러져 수도 타슈켄트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 2일 78세로 별세했다. 우즈벡 정부는 3일 간의 국장을 선포했다.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는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총리를 장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우즈벡 정부 공보실은 17개국 조문단이 카리모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대통령과 벨라루스·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의 총리, 중국·한국 등의 부총리가 조문을 위해 우즈벡에 왔다고 공보실은 전했다. 러시아는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대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조문단장으로 현지에 왔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독재를 비판해온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을 통해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 우즈벡 국민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다”는 짤막한 성명만 발표했다. 카리모프의 시신은 이날 오전 특별기에 실려 타슈켄트에서 고향인 동부 도시 사마르칸트로 이송됐다. 운구 차량 행렬이 지나는 타슈켄트 도로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주민 수천 명이 나와 흰색 천과 우즈벡 국기로 덮인 대통령의 관을 향해 꽃을 던지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많은 사람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 주민은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이슬람 아브두가니예비치(카리모프 대통령)는 나라를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했다. 우리의 첫 대통령인 그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마르칸트에서도 수천 명이 운구 행렬을 맞았다. 영결식은 사마르칸트 시내 중세 유적지 레기스탄 광장의 이슬람 교육시설(메드레세) 틸랴카리 근처에서 이슬람식으로 치러졌다. 무프티(이슬람 성직자)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한 뒤 친척과 지인들이 대형 천에 싸인 고인의 시신을 약 2㎞ 떨어진 샤히-진다 묘지로 운구했다. 우즈벡의 역사적 영웅들이 잠든 이 묘지에는 카리모프의 두 형제와 어머니도 영면하고 있다. 카리모프의 시신은 가족 옆에 안장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터키 총리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 별세”…우즈벡 당국은 ‘묵묵부답’

    터키 총리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 별세”…우즈벡 당국은 ‘묵묵부답’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78) 별세 소식이 외신들로부터 속속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아직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다. BBC 방송은 2일(현지시간) 터키 총리의 발언을 인용해 카리모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이날 자국 내각 회의를 주재하면서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이 별세했다”고 밝히면서 “터키는 우즈벡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어디서 사망 정보를 얻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로이터 통신도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카리모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일부 국가들이 이미 우즈벡으로 조문단을 보냈으며 카리모프의 시신이 타슈켄트에서 고향인 사마르칸트로 이송됐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우즈벡 이웃 키르기스스탄 고위 외교관은 AP 통신에 자국 총리가 카리모프 장례식에 초청받았으며 곧 우즈벡으로 떠날 것이라고 전했다. 우즈벡 항공 당국은 사마르칸트 공항이 3일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항공기들에 통제될 것이라는 공고를 냈다고 미국 연방항공청이 밝혔다. 중앙아 뉴스 전문 러시아어 통신 ‘페르가나’는 카리모프의 형제와 어머니가 영면하고 있는 사마르칸트의 묘지에서 장례식 준비 작업으로 보이는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게재했다. 우즈벡 정부는 이날 오전 카리모프 대통령의 병세가 크게 악화해 위독한 상태라고 밝힌 뒤 아직 추가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18 알린 獨기자, 유언대로 광주에 잠들까

    5·18 알린 獨기자, 유언대로 광주에 잠들까

    가족은 반대… 광주 조문단 파견 검토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79)가 지난달 25일 숨지면서 “광주에 묻히고 싶다”던 그의 유언이 실현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시는 유가족으로부터 그의 사망 소식을 확인했으며 오는 5일(현지시간) 오전 열리는 영결식에 조문단을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그는 심장마비 후유증 등으로 투병 생활을 해 오다 독일 북부의 휴양도시인 라체부르크에서 숨졌다. 힌츠페터는 2005년 5·18민주화운동 25주년 때 광주를 방문해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5·18기념재단에 맡겼다. 그가 “가족이 반대해 유해의 광주 안장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당시 신체의 일부를 맡긴 것이다. 그는 앞서 2004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광주 망월 묘역에 묻히고 싶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시는 유족이 동의하면 유해를 옮겨 오거나 그 당시 기증한 신체 일부를 망월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독일 제1공영방송(ARD TV) 촬영기자였던 힌츠페터는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현장을 영상으로 촬영한 뒤 독일로 보내 5·18의 참상을 가장 먼저 세계에 알렸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상을 세계에 알렸고 19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 불의에 맞서 진실을 알린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받아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윤장현 시장은 이날 애도 성명을 내고 “그가 5·18을 불의에 저항하는 민주항쟁으로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며 “150만 시민과 함께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힌츠페터 “광주에 묻히고 싶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힌츠페터 “광주에 묻히고 싶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79) 씨가 지난달 25일 숨지면서, 고인이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생전에 남긴 유언이 실현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시는 유가족으로부터 그의 사망 소식을 확인했으며, 오는 5일(현지시각) 오전 열리는 영결식에 조문단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그는 심장마비 후유증 등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독일 북부의 휴양도시인 라체부르크에서 숨졌다. 시 조문단은 이번 영결식에 참석, 유가족의 의견을 들은 뒤 5·18 망월 묘역 안장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힌츠페터씨는 2005년 5·18 민주화 운동 25주년 때 광주를 방문해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5·18 기념재단에 맡겼다. 그는 “가족이 반대해 유해의 광주 안장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당시 신체의 일부를 맡긴 것이다. 그는 앞서 2004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광주 망월 묘역에 묻히고 싶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광주시는 유족이 동의하면 유해를 옮겨오거나 그 당시 기증한 신체 일부를 망월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유해가 아니면 안장기준 조례에 구애받지 않고, 시와 5·18 기념사업회·5월 단체 등의 협의를 통해 망월 묘역에 묘지를 조성할 수 있다. 시는 또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추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독일 제1공영방송(ARD TV)의 촬영기자였던 고 힌츠페터씨는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현장을 영상으로 촬영한 뒤 독일로 보내 5·18의 참상을 가장 먼저 세계에 알렸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상을 세계에 알렸고, 19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 불의에 맞서 진실을 알린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받아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날 애도성명을 내고 “그가 5·18을 불의에 저항하는 민주항쟁으로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며 “150만 시민과 함께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정부 남북관계 고려한 ‘장례 대화’

    정부 남북관계 고려한 ‘장례 대화’

    지난 8·25 남북고위급 접촉 합의의 주요 당사자이자 북한의 대남업무 총책인 김양건(73) 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밝혔다. 정부도 즉각 통일부 장관 명의의 조의를 표하는 등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동지는 교통사고로 2015년 12월 29일 6시 15분에 73살을 일기로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김 비서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의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숙청을 통한 사망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정은 정권의 ‘대남·외교 브레인’으로 알려진 김 비서는 2007년 통일전선부 부장을 맡으면서 대남 분야를 담당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강석주 당 국제비서의 부재가 길어지며 사실상 대외 분야까지도 총괄했다. 그는 특히 지난 8월 북한의 지뢰 도발로 촉발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국면에서도 대화 분위기를 마련해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사망으로 남북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기존보다는 대남 업무가 다소 서툴고 거칠어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정부도 이날 발빠르게 움직였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10시 40분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통일전선부 앞으로 김 비서 사망과 관련해 전통문을 발송했다”며 “지난 8월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함께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낸 김 비서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의를 표한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북측 주요 인사의 사망과 관련해 조의를 표명한 것은 2007년 백남순 외무상 사망 때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조의를 표명한 이후 8년 만이다. 정부의 이번 조의 표명은 김 비서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대외·남북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난 12일 제1차 차관급 당국회담 결렬 이후 정체 상태인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대화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의도로도 관측된다. 다만 정부 주도의 조문단 파견 등은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단출한 해외 조문단

    26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에 본국에서 조문단을 파견한 나라는 일본, 카타르, 스리랑카, 바레인 등 4개국이었다. 일본에서는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단장이 아베 신조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조문단은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기신 데 경의를 표하며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고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전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도 함께했다. 카타르에서는 무함마드 빈살레 알사다 에너지·산업부 장관을 보냈다. 스리랑카에서는 와산타 알루위헤어 농림부 정무장관을, 바레인에서는 왕족이자 국영석유가스회사 최고경영자인 알 칼리파가 참석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은 주한 외교사절단이 참석했다. 미국에서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와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 등이 참석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 대사,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도 자리를 지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11개국 정상은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조전을 보냈다.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 등도 조전을 보내 왔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 때는 미국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 10여명의 조문단을 파견하는 등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 때는 3개국이 본국에서 조문 사절을 파견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DJ·盧 서거 때와 다른 北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북한은 당일(22일)은 물론 23일에도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았다. 또 조전도 보내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 특별히 조의 입장을 밝히거나 조문단을 파견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 관영 및 선전매체들도 이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개 활동 외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는 모두 다음날 관영매체를 통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전을 통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가 터졌을 때 김 전 대통령이 ‘핵과는 결코 손을 잡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강경하게 대처한 데 대해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을 대북 강경론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 또는 김 제1위원장의 명의로 조전을 보내거나 조의를 표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 시절 북한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남북이 1994년 정상회담 개최까지 합의하는 등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인 바 있고, 중단됐던 당국 간 대화가 기지개를 켜는 현시점에서 북측이 조전을 보내는 등의 ‘예의’를 표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오는 26일 당국 간 대화를 위한 실무접촉 과정에서 우리 측에 간접적으로 조의를 표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빗 속에서 장례식 엄수

    싱가포르의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국장이 29일 오후 2시쯤(현지시간) 싱가포르국립대학 문화센터(UCC)에서 엄수됐다. 장례식에는 리 전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를 비롯한 가족, 토니 탄 대통령, 고촉동 전 총리, 각국의 조문 인사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외국 조문단으로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토니 애벗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각국 지도층 인사가 찾았다. 박 대통령은 조문록에 “리콴유 전 총리는 우리 시대의 기념비적인 지도자였다”며 “그의 이름은 세계사 페이지에 영원히 각인될 것이고, 한국민은 리 전 총리를 잃은 슬픔을 싱가포르의 모든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영문으로 적었다. 리셴룽 총리는 추도사에서 “우리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다”며 “싱가포르를 리 전 총리가 실현하려고 애쓴 이상을 반영하고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도시로 만들자”고 말했다. 장례식에 앞서 낮 12시40분쯤 의사당에 안치된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시청, 파당 광장, 싱가포르 콘퍼런스홀 등을 거쳐 15.4㎞ 떨어진 UCC로 운구됐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은 만다이 화장장으로 옮겨져 가족과 측근들만 참석한 가운데 화장됐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으로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가 23일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넴초프 장례식에 조화… 반러 인사 참석은 봉쇄

    푸틴, 넴초프 장례식에 조화… 반러 인사 참석은 봉쇄

    암살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5)의 장례식이 3일 모스크바 사하로프센터에서 치러졌다. 식 뒤에 시신은 센터 옆 트로예쿠로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반체제 인사들이 많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추도사는 야권 진영인 공화·국민자유당 공동의장이었던 미하일 카시야노프가 맡았다. 그는 “고인은 성공적인 주지사이자 열정적인 개혁가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면서 “살해범은 반드시 잡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에서는 또 다른 지도자 블라디미르 리슈코프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 정부 대표로는 세르게이 프리호디코 부총리 등이 참석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조전을 보낸 데 이어 장례식장에 화환도 보냈다. 각국 대사들도 참석했다. 존 테프트 주러미국대사는 “더 나은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싸운 고인을 러시아는 애국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러 인사들의 조문은 차단됐다. 소련 시절 반소운동 지도자였던 보그단 보루세비치 폴란드 상원의장은 러시아 입국을 거부당했다. 라트비아의 산드라 칼니에테 유럽의회 의원도 모스크바 공항에서 입국이 거절됐다.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러시아를 비판했고 국가 차원에서도 가장 강력한 친유럽 세력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 지도자 중에는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알렉세이 나발니도 참석을 금지당했다. 한편 암살 사건 수사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친푸틴 언론들은 넴초프의 여자 친구인 모델 출신 안나 두리츠카야(23)의 미모와 우크라이나라는 국적을 부각시킨 데 이어, 이제는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을 노린 외부 세력의 작품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체첸인들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정부군 산하 부대를 지목했다. 이 부대 지휘관인 아담 오스마예프는 푸틴 암살 기소 혐의로 2012년 2월 체포된 전력이 있다. 야권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강력히 비판한 넴초프를 우크라이나가 암살할 이유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미리 본 MB회고록] “北, 다양한 채널로 남북 정상회담 제안… 2009년엔 대가 100억弗 지불 요구도”

    [미리 본 MB회고록] “北, 다양한 채널로 남북 정상회담 제안… 2009년엔 대가 100억弗 지불 요구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북한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해오며 1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가 지불을 요구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29일 공개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북한은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김기남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 등 조문단이 청와대를 예방했을 때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면서 북측이 수차례 제안한 비사를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그해 “10월 10일 베이징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는데 정상회담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또 10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임태희(당시 노동부 장관)·김양건(북한 통일전선부장) 간 비밀접촉 뒷얘기를 전하면서 다만 “나는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성 지원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 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11월 통일부와 통일전선부 간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임 장관이 합의한 옥수수 10만t과 쌀 40만t, 비료 30만t,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 1억 달러어치, 북측의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해 회담이 또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2011년 5월 25일 베이징에서 김 위원장이 원 총리와 오찬 이후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고 곧바로 평양으로 돌아간 배경에 대해 “김정일이 중국에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으나 중국 측으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군·장병 46명이 사망·실종된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인 2010년 7월에도 국정원의 고위급 인사가 방북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이때 북측은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는 유감이라 생각한다”는 ‘제3국’과 같은 입장만 밝히겠다고 맞섰고 이후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위해선 쌀 50만t을 요구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박왕자씨 피격 사건 당시에 “예정된 국회 시정연설 원고를 바꿔야 한다는 참모들의 의견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대북 정책의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원고를 수정하지 않는 쪽으로 대응”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사실을 상세히 전했다. 이 밖에도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당시 연평도 포격에 대해 청와대의 ‘확전 자제’ 보도와 관련, “알고 보니 언론의 브리핑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의 사견이 잘못 전달돼 언론에 나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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