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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연재를 마치며

    이 연재의 목적은 광복 이후 오늘까지,20세기 후반기의 한국문학이 정치사회사적으로 당했던 검열과 규제와 탄압의 양상을 시대별로 정리하려는 것이었다.주로 작품을 중심으로,그것도 사회체제나 정치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만다뤘기 때문에 몇몇 필화 사건들은 빠졌다. 예컨대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투옥까지 당했던 조영암의 ‘하와이 근성 시비’라든가,역시 같은 이유로 월간 ‘문학사상’을 몇 호 정간 당하게 만들었던 오영수의 ‘특질고’같은 사건인데,다른 자리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비화되진 않았으나 독재자에 의하여 슬그머니 폐기처분 당해버렸던 서정주의 ‘이승만박사 전기’(1949)도 흥미있는 사건이었다.진보당가의 작사 시인 박지수,김동명 시인의 국가보안법 반대 논설문,소설 ‘오발탄’ 때문에 교직에서 쫓겨난 해직교사 제1호 이범선,이병주·송지영의 민족의식이 강했던 논설과 투옥 사건,단편 ‘임진강’으로 곤욕을 치렀던 유주현,희곡 ‘수치’로 물의를 빚었던 시인 구상,통혁당 관련으로 치도곤을 당했던 조동일·임중빈,동베를린 사건 관련의 천상병,1974년 문학인 사건의 이호철·정을병·김우종·장백일,긴급조치로 구속 당했던 김지하,언론인 해직기자 김병익,남민전 사건의 김남주 시인,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송기원,대학에서 해직 당한 김병걸·송기숙·백낙청,민족문학작가회의에 의한 여러 차례에 걸친 각종 집회와 시위로 끊임없이 연행 당했던 고은·신경림·민영·박태순·이문구·조태일·채광석·김정환,노동해방문학 사건에 연루되었던김사인·임규찬·정남영 등등은 문학인의 직접적인 사회참여 활동이 가져왔던 변혁운동의 일환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도 문학인은 가장 앞섰다.세칭 ‘문학인 방북 사건’ 제1호는 작가 황석영이었다.1989년 3월 20일,남한작가로 공개적으로는 처음으로황석영은 북한을 방문,아마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북한인사들과 가장 넓은지역을 두루 다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그는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4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기행문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신동아’와 ‘창작과 비평’에 연재하다가 필화를 일으키기도 했으며1993년 귀국,구속되었다. 두 번째 방북 문인은 시인 박영희였다.그는 1991년 4박5일 동안 방북했다가7년의 수감생활을 겪어야 했던 불굴의 시인이다.1962년 무안에서 출생한 이시인은 중학 2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상경,공원·구두닦이·신문배달·건축공사장 인부 등 밑바닥 인생을 체험하면서 시집 ‘조카의 하늘’‘해뜨는 검은 땅’을 냈다.박시인은 일제 치하의 광부 징용을 서사시로 쓰기 위해 그취재차 방북을 감행했으나 전혀 목적을 이루지 못하여 아예 일정을 앞당겨귀국,즉각 투옥당했다. 세 번째의 방북은 작가 김하기였다.부산소설가협회 소속회원들과 백두산 등정 후 연길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실종,나중에 월북으로 밝혀졌던 이 사건은분단 민족사에서 가장 ‘문학적인 사건’으로 꼽을 만하다. 문학은 사회정치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에로티시즘과도 끊임없이 마찰했다. 박용구의 ‘계룡산’ 이후 박승훈,염재만으로 이어졌던 외설시비는 마광수와장정일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면서 20세기를 마감한다. 20세기 세계 문학사에서 변혁으로서의 문학운동은 아마 한국이 가장 풍성한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며,이것은 21세기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 순천 왕조동사무소 직원 김장거리 수확 복지시설 전달

    전남 순천시 왕조동사무소(동장 金承植)가 놀리는 땅에서 김장거리를 수확해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왕조동사무소는 9일 자체 수확한 무와 배추,당근,갓 등 8t가량의 김장김치를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사회복지관에서 담갔다.이 김장은 정신지체인등의 보금자리인 인애원과 조례사회복지관에 전달된다. 동사무소는 공공근로사업으로 국도 17호선(순천∼여수) 주변인 뉴코아 순천점 앞 빈터 600여평을 지난 8월말 밭으로 만들었다. 이곳에 무와 배추씨 등을 뿌려 지난 4일 마침내 튼실한 김장거리를 수확했다.배추 5,000포기,무 3,000여개 등 8t(시가 750여만원)가량이다. 김동장은 “토·일요일에도 동사무소 직원(26명)들이 쉬지 못해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땀을 흘린 대가로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순천 남기창기자 kcnam@
  • 핀크스컵 한일 골프대항전

    제1회 핀크스컵 한일여자프로골프 대항전이 2,000년대 한·일 여자골프의새 장을 열면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비록 원년 우승을 일본이 차지,국내 팬들의 아쉬움을 샀지만 두나라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참가해 수준 높은 경기를 선보임으로써 짧은 준비기간에도불구,이 대회가 ‘솔하임컵’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는 평을 얻었다.솔하임컵은 미국과 유럽대륙간에 펼쳐지는 여자프로골프 정기전. 핀크스컵대회 성공 배경에는 우선 이 대회가 한·일간 라이벌전이라는데서설득력을 얻고 있다.골프도 축구 못지 않게 이미 한·일대결이 국제무대로옮겨지고 있는 시점인데다 올 미국 LPGA에서 뜨거운 신인왕 경쟁을 벌였던김미현과 후쿠시마 아키코가 출전,골프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 대회가 가져다 준 또다른 성과는 ‘관광 제주’의 홍보.대회와 직·간접으로 관련돼 제주를 찾은 외부인만도 줄잡아 4,000여명에 달했다.제주도관광협회측은 “핀크스 대회로 호텔 숙박업 등의 객실률이 평소보다 20∼25%가 늘었으며 일본인 관광객도 지난달에 비해 11.4%가 늘어난 1,720여명이었다”고 밝혔다. 대회본부측도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제주를 세계적인 골프명소로 알리고 핀크스컵대회를 ‘동양의 솔하임컵’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방침. 조동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장과 히구치 히사코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장은 대회가 끝난 뒤 핀크스컵을 정기대회로 정례화시키기로 합의하고 내년 대회를 8월쯤 제주에서 치르는 등 구체적인 실무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원년대회였던 만큼 풀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았다. 우선 내년 이후의 일본측 대회 유치계획이 아직 확실치 않다는 점.히구치일본협회장은 “3회 대회부터는 일본유치를 희망하나 최종결정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밖에도 경기방식 보완과 두나라의 톱 12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확실한 대표 선발방식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성수기자 sonsu@
  • 司試 최종합격자 명단

    가영현 강경표 강길연 강남수 강대권 강동원 강동혁 강명수 강민성 강범구강석원 강석훈 강선령 강성모 강성용 강승희 강영신 강용섭 강윤미 강인규강인석 강재원 강정재 강종률 강주헌 강지현 강태헌 강 한 강현구 강희석 고경단 고성규 고영신 고용기 고은설 고창우 고필형 고형곤 고환경 공태구공태용 공호선 곽원곤 곽윤경 곽지환 구민승 구승모 구자승 권 규 권대식 권순열 권영국 권영빈 권영식 권오성 권용일 권재칠 권재환 길기관 김강산김경준 김경진 김경희 김관영 김규혁 김균태 김기태 김길량 김남호 김대욱김대현 김덕곤 김도완 김도요 김동아 김동원 김명수 김명종 김민규 김민형김배정 김보성 김보현 김봉선 김봉현 김상규 김상연 김상일 김석담 김석범김석수 김석현 김성동 김성욱 김성주 김성진 김성흠 김세용 김세한 김소영김소원 김수엽 김수정 김수현 김 신 김신희 김애영 김양진 김양훈 김영규 김영기 김영만 김영숙 김영일 김영주 김영훈 김영희 김용두 김용수 김용재 김용택 김우석 김원학 김원형 김유랑 김윤희 김윤희 김은심 김의래 김의환김인숙 김일순 김재식 김재하 김정곤 김정길 김정수 김정아 김정현 김정화 김종민 김종복 김종철 김종호 김종훈 김주석 김준형 김준호 김지연 김지혜 김진선 김진우 김찬겸 김창진 김채윤 김태관 김태균 김태선 김태완 김태호 김평수 김평호 김학성 김학웅 김한규 김한조 김 현 김현섭 김현성 김현옥 김현철 김현철 김형록 김형석 김형완 김형욱 김형원 김호삼 김호진 김훈장 김희경 김희철 나상훈 나창수 남기욱 남기헌 남선미 남승한 남태우 노미은 노진영 노현미 도규창 도춘석 류경진 류국량 류동호 류석환 류승필 류정석 문건영 문경식 문상석 문성윤 문양수 문영권 문형승 문홍주 민경철 민소영 민지현 민진국 민창식 박갑동 박강균 박계덕 박광직 박광현 박권의 박금낭 박노수 박노창 박덕희 박미화 박민재 박사랑 박상길 박상용 박상진 박상호 박상화 박성민 박성윤 박성준 박성준 박성준 박성훈 박세진 박승헌 박신호 박영욱 박영운 박영재 박영진 박재현 박재형 박정대 박정삼 박정해 박정호 박정희 박종범 박종수 박종태 박종훈 박종흔 박주현 박준연 박준오 박준현 박준희 박지연 박지환 박진웅 박진현 박진홍 박찬석 박창수 박철규 박치범 박태기 박태원 박태호 박하영 박혁수 박현민 박현수 박현주 박현철 박혜경 박혜준 박홍규 박흥준 배민경 배상근 백대용 백상우 백수회 백승복 백승재 백영화 백중현 백진규 변대중 변옥숙 변희경 부상일 서문채 서병률 서봉조 서봉하 서수정 서영효 서인선 서정민 서정식 서정원 서창원 서향희 석준협 선구완 설광호 성소영 성종규 소병진 소정임 손영은 손용진 손우근 손우창 손지혜 손한규 송각엽 송난근 송대한 송민경 송영승 송영욱 송중호 송진호 송호창 신동영 신명희 신미용 신민우 신보섭 신성희 신신호 신용무 신재환 신종수 신태호 신희철 심규황 심보문 심영진 심정희 심주은 안병수 안선영 안영은 안찬식 안창삼 안창주 안철현 안효상 안희길 양동운 양민호 양성태 양승은 양진호 양환승 엄기표 엄 철 여운승 오동균 오민석 오성욱오세영 오연수 오영상 오원찬 오인섭 오재길 오준화 오창섭 오창윤 오치석오해진 오현석 옥창식 왕해진 우양태 원종찬 위대영 위은진 유동규 유정호유창식 유천열 유현재 유현정 유희선 윤강식 윤경원 윤기창 윤대영 윤병준윤상구 윤석진 윤성인 윤성일 윤성현 윤신승 윤영환 윤용준 윤재남 윤정인윤중현 윤춘주 윤학채 윤홍배 이건령 이경권 이경석 이경아 이경희 이계정이광민 이광숙 이광우 이광진 이광훈 이규영 이규호 이규훈 이근영 이기영이덕진 이덕환 이덕희 이도형 이도형 이동렬 이동욱 이동욱 이동재 이동헌이문세 이미화 이민종 이병욱 이병일 이병주 이병주 이병창 이병희 이봉수이상권 이상묵 이상아 이상원 이상헌 이상형 이상호 이석재 이선혁 이성일이성호 이성환 이세영 이세진 이세창 이소영 이소희 이 순 이순자 이승수 이승준 이승호 이여진 이연주 이영남 이영진 이영철 이예슬 이완형 이용운이은정 이인재 이재권 이재범 이재성 이재숙 이재훈 이정구 이정규 이정수이정원 이정형 이정호 이정환 이정훈 이정희 이제식 이제혁 이종순 이종운이종찬 이준범 이준식 이준영 이지선 이지철 이진수 이진우 이진욱 이진호이창경 이창섭 이창열 이창우 이창현 이창현 이철호 이충우 이탁헌이태일이한진 이현석 이현아 이현정 이형걸 이형석 이홍배 이홍원 이홍주 이화종이환기 이효진 이흥우 이흥주 임경섭 임광호 임대호 임상준 임성실 임성훈임소연 임수현 임승철 임영심 임우석 임정근 임주용 임주혁 임준환 임창국임치영 임혜진 장경수 장래아 장선영 장성학 장성훈 장수영 장윤선 장은용장재혁 장정애 장정언 장준희 장현우 장호재 전경능 전무곤 전성한 전영준전완규 전재혁 전준철 전현민 전현철 전형배 전호성 정경일 정경진 정광일정남기 정다주 정동원 정동혁 정두성 정민성 정병운 정병원 정봉기 정상진정상철 정새봄 정성균 정성원 정수근 정수연 정수용 정승일 정영태 정영훈정우식 정욱도 정원일 정유철 정은숙 정인섭 정일배 정재웅 정재훈 정재훈정재희 정종국 정찬삼 정찬우 정 철 정철승 정해영 정현석 정희도 제갈창 조동현 조명순 조범제 조병학 조성천 조수정 조영봉 조영선 조영수 조용래조용훈 조원경 조장혁 조재돈 조정희 조찬만 조홍래 조효정 주강원 주경태주진우 주진태 지귀연 진정길 진철민 진형혜 차순길 채규달 채성용 채인경채정원 채형석 채휘진 천관영 최계영 최광업 최두천 최문환 최민호 최병선최보영 최상종 최성수 최성일 최수진 최승욱 최애숙 최우진 최웅선 최윤상최윤정 최윤철 최재원 최정미 최정식 최종구 최종진 최지석 최지선 최진복최진영 최찬욱 최철민 최춘구 표극창 표종록 하신욱 한낭규 한명옥 한상인한상호 한원교 한정석 한종훈 해덕진 허금탁 허인석 허 정 현두륜 현의선 홍보가 홍성원 홍성탁 황금천 황선웅 황성조 황성택 황인영 황정엽 황희석
  • [기고] 부채비율 200%규제와 ‘大宇 교훈’

    대우그룹의 붕괴로 차입경영의 성장신화는 이제 막을 내리게 됐다.특히 올연말은 재벌이 부채비율을 200%로 낮추어야 할 시한이기에 대우사태가 던져주는 충격은 그만큼 더 크다고 하겠다.정책과 현실이 따로 맴돌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IMF 이후 정부의 재벌에 대한 부채비율 축소요구 자체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총론적인 방향설정은 옳았으나 정책추진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다.정부는 충분한 논리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99년 말까지 부채비율 200% 축소’를 마치 긴급경제명령인 양 재벌에 요구했으며 정치권은재벌의 정책수용 여부를 통치력의 시금석으로 간주하고 재벌에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정부가 독려한 만큼 재벌의 재무구조 건전성이 높아진 것 같지는 않다.부채비율 200% 축소 지시는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정부의 정책의지가 강할수록 역설적으로 재벌에는 ‘종이호랑이’로 비춰지기 십상이다.상황논리에 입각한 그리고 시장원리를 우회한 정치적주문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벌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구체적으로 부채비율은 기업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며 부채비율 200% 고집은 경직된 정책발상이라는 것이다.지시적 규제는 반드시 ‘규제회피행위’를 유발하게 된다.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순환출자를 통한 부채비율 낮추기가 규제회피 행위의 전형인 것이다. 순환출자란 3개 이상의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본금을 늘려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A사가 100억원의 자본금을 갖고 우선 B사의 유상증자에 참여,50억원을 출자한다.B사는 C사에 30억원을 출자하고 C사가 다시 A사에 10억원을 출자한다.이렇게 되면 A사는 자본금은 110억원으로 증가하게 되나 실제 자본금은 100억원이며 나머지 10억원은 ‘거품’이다.계열사간의 거미줄 같은 재무적 연결망을 감안할 때,순환출자 규모나 내역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서로써 우회적으로 순환출자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있다.98년 30대 재벌그룹의 출자총액은 17조7,000억원에서 99년 4월 29조9,000억원으로 무려 12조2,000억원이 증가했으며,계열사에 대한 출자분은 10조9,000억원으로 전체 출자증가분 가운데 89%에 달하고 있다.이는 재벌이 순환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을 늘려 인위적으로 부채비율을 짜맞춰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며,사전적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와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한편 정부의 저금리정책도 문제가 있다.시장금리가 떨어져 이자부담이 크게 경감된 상황에서 어느 재벌이 부채규모를 줄이겠는가? 저금리정책으로 주식시장은 활황을 맞이했고,재벌은 증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척’했을뿐이다.IMF 직후의 고금리정책이 부적절했던 것처럼 무리한 저금리정책도 재벌의 채무조정을 미루는 결과를 초래했다.결국 시장을 우회한 지시적 규제로는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없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도산 위험이 높아진다.대우사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도산확률이 높은 기업은 당연히 가산금리를 물어야 하며,고부채로 경기변동에 대한 대응력이 약한 기업은 적대적 기업사냥(M&A)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퇴출돼야 한다.따라서 자율적 부채조정의 관건은행정명령이 아니라자금시장,경영권지배 시장,도산관계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정비돼 있는가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재벌의 고부채 비율을 초래하게 한 제도적 유인구조의 왜곡을 바로잡아 ‘시장의 힘’에 의해 부채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추진의 합리성과 유연성을 제고하는 일이다.또한 재벌은 부채조정이 공익차원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일임을 명심해야 하며 대우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시장은 더이상 과다차입경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생존전략인 것이다.대우그룹의 부침과정에서우리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조동근 명지대교수.경제학 dkcho@wh.myongji.ac.kr
  • 주가조작혐의 10여명 고발/ 권성문한국종합기술금융대표등

    권성문(權聲文) 미래와 사람(옛 군자산업) 대주주 겸 한국종합기술금융대표등 10명이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됐다. 금융감독원은 10일 이 회사가 개발이 안된 냉각캔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것처럼 발표하고 허위 기술도입계약을 공시해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로 권씨를 검찰에 고발했다.이 회사는 지난해 2월초 세계 최초로 냉각캔 양산체제를 추진중이며 영업이 본격화되면 천문학적인 로열티 수입이 가능할 것이라고발표,1월까지만 5,000∼6,000원하던 주가가 3만4,500원까지 치솟았다. 미래와 사람은 지난해 6월 일본업체와 냉각캔 제조기술 독점판매대행 계약을 한 뒤 유상증자를 했으나 100억원의 실권주가 나오자 기술료 1억달러를받기로 하고 캐나다 BTI사와 냉각캔 라이센스 계약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발표,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이 회사 감사 박광호(朴光浩)씨와 이사대우 한영우(韓榮宇)씨를같은 혐의로 고발했다.전병현(田炳玹) 현 대표는 수사통보했다.그러나 미래와 사람측은 “냉각캔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97년부터 172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현재도 연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금감원은 또 대한종금이 지난 2월 거래업체인 해태전자의 감자(減資)계획을 미리 알고 담보로 갖고 있던 이 업체 주식 99만여주를 팔아넘겨 95억원의손실을 부당하게 입지않은 사실을 적발,대한종금 박동희(朴東憙) 전대표와박면순(朴勉淳) 전 금융부장을 고발했다.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K기업 주식을 166회에 걸쳐 고가매수주문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세를 조종한 일반투자자 김명수(金明秀)씨를 검찰에 고발하고최병호(崔秉浩)씨는 검찰에 통보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허위·과장공시 수법은… 주가 올린뒤 차익 챙겨 주가상승을 노린 상장사의 허위 기술개발 발표가 증시투자자들에게 심대한해악을 끼치고 있다.상용화 가능성이 없는 기술을 과장 발표,주가를 조작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미래와 사람’의 ‘냉각캔’은 ‘공갈캔’으로 드러났다.금감원이 이 회사 전 대표 권성문(權聲文)씨를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냉각캔 기술발표가 지난해 2월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년가까이돼서야 시정조치가 된 셈이다. 유사 사례들은 이외에도 많다. 지난해 8월 신동방이 물로만 세탁하는 ‘무세제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다.전자업계는 무세제 세탁기가 기술적으론가능하지만 전기료가 너무 많이 들어 경제성이 없다고 지적한다.당시 모 일간지 기자가 보도자료를 이용,시세차익을 노려 주식을 사들였다가 사법처리되는 파문까지 겪었다. 97년말 매연저감장치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A사도 당시 7,000원정도 하던 주가가 98년초에는 2만9,000원대까지 급등했다.그러나 이 장치는 대당 가격이너무 비싸 가격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97년 B사가 개발했다고 발표한 특수 형광기술도 당장 상품화할 수 없는 기술로 판명났다.현재 시제품으로만 나오고 있다.97년초 6,000원대였던 주가가 같은해 8월 6만원을 넘어섰다가 실효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98년초 9,600원으로 곤두박질쳐 적지않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다. 증시 관계자들은 “상용화하기 어려운 기술개발 발표가 난무하고 이 와중에 주가가 급등락함에도 감독당국이 뒤늦게 대처하는 바람에 피해투자자들이속출하고 있다”며 감독당국의 뒷북행정을 비난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권성문은 누구인가…M&A 30여건 성사‘기업사냥꾼’별명 권성문(權聲文) 미래와 사람 대주주 겸 한국종합기술금융 대표(37)는 증권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박현주(朴炫柱) 미래에셋 자산운용 대표,김석기(金石基) 중앙종합금융 대표,김형진(金亨珍) 세종증권 회장과 함께 ‘증시 5인방’으로 불린다. 95년 1월 한국 M&A를 설립해 30여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켜 ‘기업사냥꾼’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서기 전 한솔전자(옛 한국마벨) 한솔텔레콤(옛 광림전자) 한솔종합금융(옛 동해종금) 등을 한솔그룹이 인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96년 10월에는 자신의 중개로 경영권이 넘어갔던 한국KDK의 주식을 내부정보를 이용해 사고판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경영권을 확보했던 영우통상 주식 15만주중 9만주를 조동길 당시 한솔제지부사장에게 매각하면서 9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기도 했다.96년 11월 인수한의류업체 군자산업의 이름을 미래와 사람으로 바꾸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한때 D그룹 종합조정실에서 M&A업무를 보기도했다. [곽태헌기자]
  • 가요계‘노장들의 쿠데타’가능할까

    10대 가수들이 판치는 가요계에서 진지한 음악세계를 열어가는 노익장을 만날 수는 없을까. 라틴록의 황제로 추앙받으며 70년대를 풍미한 카를로스 산타나가 내놓은 ‘슈퍼 내추럴’음반의 싱글 ‘스무드’가 빌보드차트(10월27일자)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그의 나이 57세.이밖에도 톰 존스(59),폴 매카트니·제프 벡(57),에릭 클랩튼(54),데이비드 보위(52) 등이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다. 산타나 앨범에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는 단지 사라진 것으로 치부하던 노장의 컴백에 대한 경의를 뛰어넘는다.그가 현재적 음악경향과 조류에 보여주는대단한 흡수력에 보내는 경의이고 평가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분장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던 70년대 글램록과 80년대 테크노로 세기말을 예감했던 데이비드 보위 등 나이들수록 변화와 진보의 최선두에 서왔던 노력을 평가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인기차트에는 30대 가수를 찾아보기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KBS-2TV의 ‘파워인터뷰’에 출연한 이현우에게 ‘대기실에서 후배들 마주치면 쑥스럽지 않느냐’고 물어볼 정도다. 무엇보다 음악산업의 기형적 구조가 문제로 지적된다.10대 위주로 재편된 시장은 동세대간의 결속력에 반비례해 40·50대는 말할 것도 없고 20·30대를음악시장에서 축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10대들이 열광하는 H.O.T와 조성모가 앨범판매 100만장을 넘어섰지만 다른 뮤지션들은 철저히 시장에서 소외돼있다.오죽하면 2만장 팔리면 대박이라는 평가가 나올까. 컬럼니스트 박준흠은 뮤지션의 확고한 의지 결핍에 책임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언제까지 시장 탓만 하고 노화를 극복할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세상에 함몰되어 가느냐는 질타이다. 30대가 넘어가면 사업이나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카페나 해볼까 하는 유혹과 방향전환을 권유받는다.물론 독특한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새 세계에 대한갈망을 담기엔 역부족이다. 음반기획사 ‘2clips’의 임기태 실장은 “70년대 초 전세계적으로 일었던플라워 무브먼트가 우리나라에선 박정희정권의 말살정책에 의해 뿌리 뽑혔고 90년대 초 부활 조짐을 보이던 청년문화운동이 서태지를 출발점으로 한 댄스음악의출현으로 명맥이 끊긴 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환경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겨울비’의 조동진이 헌정음반을 제작 중이고 ‘10대에게 바치는 음반’을 기획 중이라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 없다. 펑크,테크노 등으로 옮겨가며 우리 음악의 나아길 길을 개척하고 있는 달파란(강기영)의 편력도 돋보인다.박준흠은 ‘공무도하가’등으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선도하는 ‘담다디’의 이상은에 대해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권한다. 임병선기자 bsnim@
  •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역사학자모임 회견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및 국고지원을 반대하는 전국 역사학자 모임’(공동대표 姜吉遠) 소속 10여명은 25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정희기념관 대신 전직 대통령의 역사자료를 전시하는‘역대대통령 기록관’의 건립을 제안했다. 이들은 “정부가 지난 5월 박정희 기념관 건립 지원 방침을 밝힌 뒤 사회각계 각층으로부터 반대의견이 잇따랐지만 오히려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이들은 역사학 관련 교수,교사,강사 등 1,100명의 서명도 공개했다. 이어 오후 1시부터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조동걸(趙東杰)국민대 명예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아직 박대통령이 죽은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고 일본군 복무,남로당 프락치 활동,쿠데타 등 기념해선 안될 경력이많다”면서 “기념관 건립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산업화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만큼 기념할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상) 집권 18년의 功·過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특히 시간이 지나도 영향력이 줄지 않는 지도자 일수록 평가의 스펙트럼은 폭넓고 다양하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도 현재진행형이다.객관적이고 엄정한 공(功)·과(過)의 분석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26일 박 전대통령 서거 20주기를 맞아 역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상·하로 나눠 살펴본다. 【 功 】 ‘박정희(朴正熙) 시대’가 우리 현대사에 남긴 긍정적 의미는 ‘한강의 기적’으로 요약된다.‘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업적을 이룩했다는 평가다.초고속 성장의 잔영으로 사회 곳곳에 부작용을 남겼다는 지적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근대화에 기여한 통치자라는 사실에 물음표를 던지는 시각은 드물다.일부 ‘박정희 옹호론자’는 “위로부터의 경제개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의운명을 바꿔 놓은,존경받아 마땅한 통치자”라고 찬사를 보낸다.이른바 ‘개발독재 불가피론’이다.박 전 대통령의 독재적 리더십은 경제 근대화의 동력(動力)을 제공한 ‘필요악’이었다는 시각이다. 특히 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전후(戰後) 복구에 치중한 50년대를 극복하고 60년대 성장의 물꼬를 튼 경제개발 모델로 기록된다.이는 가난과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과 도약의 의지를 심어준 계기였다.국가가 주도한 수출위주 공업화 정책은 이후 여러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발전 모델로 ‘차용’됐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 ‘박정희 붐’이 일고 있는 현상도 ‘박정희 시대’의 ‘경제 신화(神話)’에 기대려는 향수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결집된 국가적 에너지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이란 이름으로 더욱 고조됐다.대중동원식 개발 프로그램은 일제 치하의 1930년대 조선농촌진흥운동이나 일본의 농촌경제갱생운동 등을 비롯,2차세계대전을 전후해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진영 곳곳에서 전개됐지만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이 보기 드문 성공사례로 꼽힌다. 남북관계에서 ‘박정희 시대’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3대원칙에 합의한 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만든 것으로 기억된다.‘7·4남북공동성명’은 유신체제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 수단으로 활용되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6·25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간 공식대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분단 이후 통일운동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 過 】 ‘박정희(朴正熙)정권’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암영(暗影)은 그의 공적(功績)을 무색케 할 정도로 짙고 투박하다.민주주의와 인권,분배 정의 등의 가치를 부정한 폐해가 ‘보릿고개의 극복’과 ‘초가지붕의 개량’이라는 ‘박정희 옹호론’을 일축하는 근거로 제시된다.박 전 대통령과 무원칙한 화해를 시도하면 자칫 민주주의의 가치와 역사의식의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을 무시한 쿠데타로 막을 올린 박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한 3선개헌과 유신체제,연고주의와 지역감정을 조장한 지역패권주의 등으로 우리 정치사에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겼다.경제성장 지상주의로 인한 물질만능 풍토와 정경유착 등 왜곡된경제구조도 박정권이 후세에 남긴 부채(負債)로 꼽힌다. 이를 두고 일부 ‘박정희 비판론자’는 “쿠데타로라도 정권만 잡으면 되고,돈이면 다 되는 관행을 만든 장본인이 박정희”라면서 박정권의 민중억압성과 냉전적 권위주의,비합리적 정치행태 등을 비판한다.최근 ‘박정희기념관건립과 국고지원’문제와 관련,강만길(姜萬吉)고려대·조동걸(趙東杰)국민대 명예교수 등 일부 역사학자가 토론회와 각종 모임을 통해 부당성을 강조하는 등 ‘박정희 비판론’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박정권의 국가중심 발전지상주의적 산업화가 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선단식 경영 위주의 재벌경제를기본축으로 하는 ‘박정희식(式)’ 권위주의 발전모델이 역사적 한계를 보이면서 한보부도,기아부도 등 IMF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도 ‘박정희 비판론자’에게는 비난의 대상이다.농민운동가나 비판적 지식인들은 새마을운동을 전시행정이라고 폄하한다.이들은 “박정권이장기집권체제를꾀하면서 사회적 저항을 희석시키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한다.유신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적(政敵)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거나 의문의 주검으로 몰아 넣은 대목에서는 ‘자연인 박정희’를 옹호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지적이다. 박찬구기자 *朴정권 탄압사 ‘제3공화국’은 오랜 통치기간 만큼이나 많은 반체제인사를 만들어냈다.현대사의 한획을 그을 만한 굵직굵직한 ‘사건’과 ‘파동’,‘의혹’이 잇따랐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그 대표적인 표본이다.71년 7대 국회의원 선거를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고,73년 납치사건을 겪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를 넘겼다. 잡지 ‘사상계’를 이끌면서 정권비판에 앞장선 장준하(張俊河)선생도 마찬가지다.한·일회담과 월남파병문제 등 계속되는 비판으로 정권의 미움을 샀다.이로 인해 여러차례 구속됐고 세무사찰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75년 장선생은 결국 의문의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최종길 서울대교수도 비슷한 경우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도 ‘유신체제의 위험인물’로 꼽히면서 수난을 겪었다. 72년 유신체제 등장은 이른바 ‘민주인사’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계기가 됐다.정계 뿐 아니라 학계,종교계,언론계,문인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반민주·반독재 항거가 일어났다.74년 ‘긴급조치1호’는 이에 대한 탄압의 신호탄이었다.장준하·백기완씨를 시작으로 함석헌·안병무·문동환·계훈제씨 등수백여명의 재야인사와 교수들이 기소됐다.그해 ‘긴급조치4호’를 발동시킨 ‘민청학련사건’으로는 253명의 민주인사,학생들이 구속됐다.이철,유인태씨 등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대부분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배후조종자로 김동길교수,박형규목사,지학순주교,김지하시인 등이 기소됐다.75년 긴급조치9호가 선포되기까지 구속자는 수천명이나 됐다. 정치인들은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혹독한 고문에 시달렸다.이세규·조윤형·조연하·이종남·강근호·최형우·김상현씨 등이 대표적인 피해자들이다. 이지운기자 jj@. [특별기고] 朴正熙 리더십의‘이중성’정치인의 행위나 업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시대적 상황에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고 나타난 결과의 중요성을 보는 각도도 다를 수 있는 까닭이다.특히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통치를 경험했던 우리 세대는지극히 주관적·감정적으로 그를 평가할 개연성이 높다. 개인을 상황과 연계시켜 구분해볼 때 정치 리더십은 이상주의자,현실주의자,그리고 창조적 지도자로 나누어진다.현실주의 리더십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미사여구로 그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할지언정실제 행동은 다분히 이에 부합하지 않는 형을 지칭한다. 반대로 이상주의 리더십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이념에 집착하여 추구하는 목표에 근접하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보통이다.창조적 리더십은 역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이를 단계적으로 성취해 가는 유형이다. 이러한 리더십 유형에 비추어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실주의 지도자였음이분명하나 창조적 리더십의 특성도 부분적으로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내걸었던 국정목표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상징화된 조국 근대화였다.경제성장 지상주의 정책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계기를마련했고 경제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물론 ‘선(先)성장 후(後)분배’정책에서 나타난 심각한 경제불평등과 재벌에 집중된 자본,그리고 다원화되어 가는 시민사회의 강압적 통제는 문제로지적할 수 있다. 60년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관 주도의 경제정책과 선성장 후분배정책이최선의 것이었는가는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몫이다. 그의 ‘근대화’정책이 가진 본질적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다원적인 사회로 이행되고 좀더 제한적·분권적권력구조가 성립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체제로 역행했기 때문이다. 3선개헌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의 상징이다.공작정치는 야권을 회유하거나 분열시켜 정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되었다.시민사회의 자율성 신장에 관한 요구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제도적으로,그리고 실질적으로 억압되었다. 권위주의의 제도화를 기도했던 유신체제는 결국 권력 엘리트들의 균열로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거대한 민주화의 흐름이 70년대 중반 포르투갈을 시발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자유민주주의가 시대의 보편적 흐름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그의 정치행보는 잘못된 것이었다.분명히 그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정권의 유지와 재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현실주의자였다. 그러나 ‘조국근대화’를 경제적 측면에서 국한시켜 볼 때 그는 어느 정도창조적 역할을 했었다.여기서 박정희 리더십의 이중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나는 그가 만일 3선개헌으로 정권을 연장하고 유신을 통해 권력의 영속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아마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았을 것으로 본다. 사회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정치도 변해야 하고 역사 흐름에 부응한 현실의변화도 아울러 추구해야 정치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우리는 박정희통치가 남긴 역사적 교훈으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柳勝男 국민대교수·정치학]
  • KDI 제시 정책방향

    KDI의 김준경(金俊經)·조동철(曺東徹)박사는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다음과같이 제시했다. ▲앞으로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대우 등 부실과 관련된 손실을 최대한 당사자들이 분담한다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대우그룹에서 회생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감자를 통한 기존 주주의 손실부담을 전제로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추진한다.회생가능성이 없는 회사는 정리한다. ▲투신사 환매사태에서 투신사 신탁자산의 부실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단기적으로는 유동성을 공급하되 물가압력을 높여 투신사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투신사의 자산 위험 관리를 강화해 투자자의 자기책임, 투신사의경영책임과 감독당국의 감독책임 등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해야 한다. ▲항후 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 신축성을 유지하되 중기적인 인플레 압력의발생을 지속적으로 제어할 필요가 있다.단기금리의 조절은 통화당국의 독립된 결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연간 3% 이상의 물가상승률은 선진국에서 거의 없는 만큼 경쟁력약화와환율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구조조정이 추진될 경우 일시적 충격 완화 차원에서 단기 금리의 상향 조정을 당분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년도 통합재정수지 기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축소해야한다. ▲가칭 ‘재정건전화특별법’을 제정해 예산의 총량을 규제해야 한다. ▲경기적 요인에 따른 실업은 크게 줄었지만 장기실업자 급증 등 고실업이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앞으로의 실업대책은 구조적 실업을 줄이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 이상일기자
  • [신당 추진인사 릴레이 인터뷰](3)김은영 정책위원장

    여권 신당추진위 김은영(金殷泳·전 KI ST원장)정책위원장은 11일 “신당의 지도체제,정강정책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면서 “창당준비위 모임 이전인 11월 중순까지는 구체적인 신당 정책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당의 정강정책 준비는. 신당이 내걸 기본정책과 새로 제시할 이슈 등을 만들기 위해 교수,국책연구원으로 구성된 외부전문가 10여명과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산하 전문위원 20여명 두 그룹의 의견을 수렴중에 있다.신당의 분야별 외부전문가로는 서울대 미학과 김문환 교수,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산업정책연구소장 조동성 교수등이 있다. ■1인지배식 당 구조를 타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아주 예민한 문제다.정책위원회에서도 지도체제 문제를 정치개혁 분야의 중요 정책으로 꼽고 있다.현재 외부 전문가들이 논의한 바에 따르면 당원 중심의 지도체제를 구성하고 당의 민주화를 위해 상향식 공천제도가 초석이라는의견이 지배적이다.특히 당직자 선정도 당원들의 선거를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신당의 정책 이념은. 6가지로 정리했다.첫째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과 완성을 위한 개혁적 국민정당,둘째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 주도와 일류국가를 건설하는 창조정당,셋째 인권수호와 중산층 및 서민 중심의 복지정당,넷째 국민의 참여를 실현하는민주적 참여정당,다섯째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건전한 지역대표성에 기반한전국정당,마지막으로 남북간 평화협력을 지향하고 통일의 초석을 놓는 민족정당이다. ■정당·선거·국회제도에 대한 신당의 입장은. 선거제도와 관련,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를 수용했다.그러나 정당·국회제도는 획기적 선거공영제 도입 등 공동여당이 합의하지 못한 부분까지 망라하는 안을 내놓을 것이다. ■향후 발표 계획은. 정강정책과 창당준비위 규약 등을 만들고 국민의 정부에서 내건 100대 과제 중 실현되지 못한 나머지도 추가해 내년 선거공약에 사용할 것이다.오는 20일까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을 끝내고 30일까지 신당차원에서의 검토를 거쳐 11월15일쯤 정강정책 등의 초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주현진기자 jhj@
  • 여자 프로골프 한-일 정상 다툰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급 여자프로골프선수들이 대한매일신보사 주최로 창설되는 국가대항전에서 국가와 개인의 명예를 걸고 한판 승부를 펼친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회장 조동만)는 4일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1회 핀크스컵 한·일여자프로골프대항전을 오는 12월 4·5일 제주도 핀크스골프장에서 개최키로 확정했다”고 밝혔다.이 대회는 대한매일신보사 외에 핀크스골프클럽,한솔PCS가 공동주최한다. 총상금 4,000만엔(약 4억6,000만원)에 단체전 우승상금 2,400만엔,개인전우승상금 150만엔이 걸린 이 대회는 두 나라에서 각각 12명씩 출전한 가운데 이틀간 36홀 스트로크플레이-매치 방식로 펼쳐진다.스트로크와 매치플레이를 혼합한 이 경기 방식은 두나라 대표가 1대1 12경기를 펼쳐 단체전과 개인전 성적을 동시에 매기게 된다.즉 업·다운에 의한 홀별 승부 없이 18홀 경기가 끝날 때마다 타수를 계산,이긴 선수의 소속국가에 단체전 점수 2점(패자 0점,무승부시 각 1점)을 주면서 타수에 의해 개인전 성적도 동시에 매기는 방식이다.한국은 올 시즌 국내 상금왕과 주최측 초청 5명 이내,외국에서 활약중인 한국태생 선수 등 12명을 대표로 선발할 예정이며 일본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상위권 10명과 2명의 초청선수로 팀을 구성키로 했다.현재 구옥희등 일본에서 활약중인 선수들의 한국대표 가담은 확정적이나 박세리·김미현·펄신 등 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출전은 미지수다. 대회를 주관할 한·일 여자프로골프협회는 또 내년까지 핀크스골프장에서대회를 치른 뒤 2001년부터는 두나라를 오가며 대회를 열기로 했다. 한·일여자프로골프대항전 확정 사실은 이날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발표됐다.이 대회는 서울방송(SBS)과 일본 마이니치방송이 중계방송할 예정이다. 박해옥기자 hop@
  • [義烈 독립투쟁] (6)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현 노신공원)에서는 일본군이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이날 한국의 의혈청년 윤봉길(尹奉吉)이 그 단상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침공의 우두머리인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원흉들을 쓰러뜨렸다. 당시 현장에서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사열대와 함께 엎어지고 쓰러지는 원흉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 제국주의가 함께무너지는 장쾌함을 보였다.윤의사가 세계로부터 정의의 삶을 대변한 ‘의사'로 불리고 있는 것는 바로 이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상하이를 주목했는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언론일수록 제국주의를 맹타한 윤의사를 높이치켜세웠고 또 한국의 독립운동을 들먹였다.국내외 동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특히 ‘상하이의거’를 주도한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그리고 한인애국단 단장 백범 김구(金九)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러한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왜냐하면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파리강화회의의 안정기조라고 하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에 온 세계가 눌려 독립운동도 외면당하고 있었으므로 그 신질서를 깨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고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때마침 뉴욕 월가(街)의 증권파동을 계기로 경제공황이 몰아쳐 왔고,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하더니 다시 상하이를 침공하여 상하이의 한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파리강화체제를 무너뜨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을 만들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세웠다.이봉창(李奉昌)의사로 하여금 일제의 심장인 도쿄 궁성을,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의사로 하여금 만주침략의 아성인 관동군사령부를 공격토록 한데 이어 윤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침공의 선봉을 꺾어놓는다는 소위 ‘삼면작전’을 세웠다.이같은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백범이었는데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성공으로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윤의사는 원래 농민운동을 통해 고향의 부흥을 꾀하던 진보적 계몽주의자였다.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야학당과 청년회·체육회·부흥원을 조직하였으며 ‘농민독본’도 저술했다.그러나 경제공황까지 덮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다.윤의사는 마침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그것이 1930년 윤의사가 23세 때의 일이다. 처음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윤의사는 이듬해5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때마침 상하이에서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군과중국군이 싸우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어머님께 보낸 편지에서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꽝꽝하는,민족과민족이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윤의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웠다. 청년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자신의 생명을불태워 정의를 현양하는 꿈을 실현코자 했다. 윤의사는 ‘성인군자는 살아서영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는‘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윤의사는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일본 국기를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났다.도시락과 물통이 바로 폭탄이었다.이 폭탄은 당시 중국군 장교로 상하이 병공창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명 王雄·전광복회장)이 만든 것이었다. 의거 당일 아침 윤의사는 백범과 살아서는 ‘마지막 식사’를 같이했다.그리고 윤의사는 자신의 시계와 백범의 시계를 바꾸어 찼다.자신의 시계는 6원짜리였고 백범의 것은 2원짜리였다.“선생님,나는 한시간밖에는 시계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며.죽음을 앞에 둔 청년이 보여준 태연한 여유를 보면서 백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렇게 떠나간 윤의사에게 시계는 아니나 다를까한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11시반쯤 홍구공원의 폭음과 함께 그 시계도 멈추고 말았다. 윤의사의 의거로 침체됐던 독립운동이 생기를 찾고 활기를 띠게됐다.또 국내외 동포가 다시 임시정부로 마음을 모으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한국독립을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중일전쟁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중국대륙 곳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나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8·15광복때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사의 의거로 국내외 동포들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으고 중국정부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가네자와(金澤)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일제는 윤의사의 시신을 길거리에 묻어 행인들이 밟고 다니게 했는데 이같은 야만성은 일본제국주의밖에는 없다.해방후 윤의사의 유해는 백범의 지시로 이봉창·백정기(白貞基)의사등과 함께 봉환,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尹의사의 사회개혁 활동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는 초창기 야학·문맹퇴치운동 등에 헌신한 개혁주의 성향의 농촌운동가였다.윤의사가 20세 되던 해인 1927년에 출간한 ‘농민독본(農民讀本)’은 윤의사의 계몽사상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은 유실되고 현재 제2·3권만 전해오고 있다. 제2권은 ‘계몽편’으로 편지 쓰는 법,인사법 등 생활교양과 조선지도,백두산 등에 대한 소개 등 일반상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8과까지만 보존돼있다.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제3권은 농촌개혁 방향과 농민의 당면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앞부분에는 ‘소리의 갈래’등 한글맞춤법도 소개돼 있다. 총 25과로 구성된 제3권은 현재 7과까지만 보존돼 있다. 제2권이 기초학습자료라면 제3권은 일종의 사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윤의사로부터 야학지도를 받은 예산군 덕산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농민독본’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윤의사 평전에서 “매헌은 한낱 시골의 야학당교사가 아니라 이미 이 무렵부터 사회개혁과 이상국가 건설을 꿈꾼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고 평했다. 정운현기자 jwh59@kdaily·com *윤봉길의사 직계후손들 근황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윤의사 의거 당시 장남 종(淙)씨는 세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둘째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하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67·서울 동작구 상도동 거주)씨.김씨는 딸 여섯에 끝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겨우 윤의사의 대를 이었다.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29)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현재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재직중인데 97년에 결혼,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정운현기자]
  • 한솔PCS(018) 13일 정기 이사회

    한솔PCS(018)는 13일 정기 이사회를 열어 조동만(趙東晩) 현 부회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정의진(鄭宜鎭) 현 영업총괄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선임했다.또 정용문(鄭溶文) 사장은 상임고문으로 선임하고 박재욱(朴在旭)전 삼성전자 마케팅담당 상무를 마케팅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조 부회장은 전략사업과 신규사업을 관장하면서 경영일선에 나서게 되며 정 신임 사장은 영업과 기술분야를 총괄하게 된다. 한솔그룹 이인희(李仁熙) 고문의 차남인 조 부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뒤 한솔제지 부사장을 지냈으며,정 신임사장은연세대 교육학과를 나와 삼성전자 기획실장,한국통신진흥 관리담당,서울이동통신 부회장 등을 지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한솔PCS] 업계 최초 두 전화번호 동시 사용

    018 한솔PCS(사장 鄭宜鎭)는 ‘정보의 홍수’시대에 자기만의 생활을 가지려는 이용자들의 욕구와 값싼 이용요금에 마케팅의 포인트를 맞췄다. 최근 내놓은 대표작은 ‘투넘버 서비스’.한개의 휴대폰으로 두개의 전화번호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업계 최초의 첨단서비스다.휴대폰을 따로 살 필요없이 업무용과 개인용 등으로 나눠 번호만 달리 사용할 수 있다.기본료와통화료,전파사용료없이 월 5,000원에 번호를 하나 더 가질 수 있어 현재 2만명이 가입했다.올해 안에 20만명을 넘어설 것이란 게 회사의 전망. 연예스타 관련 정보의 검색이나 음성·문자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스타매니아’서비스,018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직접 작곡을 통해 휴대폰벨소리를 바꾸는 ‘나만의 벨소리’ 등 젊은 층을 위한 서비스 외에 무선데이터 서비스에서도 차별화를 꾀한다.특히 개인정보단말기(PDA) 등을 활용한무선인터넷서비스를 강화,특화된 컨텐츠 및 정보서비스를 개발할 계획. 기존 음성통화에서 데이터 송수신,인터넷 검색 등 무선데이터 부문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초고속 무선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클릭 월드’라는이름으로 통합했다.특히 마이크로소프트,야후 코리아 등 세계적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최적의 컨텐츠 개발을 추진 중이다. “10∼20대 가입자를 겨냥해 스타매니아나 투넘버서비스 같은 연예·오락중심 서비스에 주력하고 30∼40대를 위해서는 주식거래 등 금융서비스,50∼60대를 위한 건강·레저 등 가입자 층에 따른 맞춤 서비스를 적극 개발할 계획입니다.”(조동수 데이터서비스기획팀장)
  • 金대통령 APEC·오세아니아 정상외교 이모저모(I)

    [오클랜드 양승현특파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및 뉴질랜드·호주 국빈방문에 나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1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뉴질랜드 수도 오클랜드에 도착,공항도착 행사를 시작으로 8박9일간의 공식일정에 들어간다. ?김대통령의 이번 뉴질랜드·호주 국빈 방문에는 다양한 분야의 경제인들이 수행한다.비공식 수행 경제인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농수산물유통공사·포항제철 등 정부투자기관과 민간기업 대표 등을 합쳐 54개 공사·기업 관계자 103명.나라별로는 뉴질랜드에 14개 유관기관 관계자 25명과 11개 민간기업 대표 16명이 수행하며,호주에는 14개 유관기관 관계자 35명,15개 민간기업 대표 27명이 동행한다.APEC 정상회의 수행 경제인은 모두 18명이다. 이번 수행 경제인의 특징은 자원·해양·제지·가스 등 1차산업과 반도체·텔레콤 등 정보통신분야에 집중돼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대성그룹 김영훈 사장과 사조산업 주진우 회장,한솔그룹 조동혁 부회장,캐드랜드 윤재준 사장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동시 수행한다.동원수산 송장식 사장과 제철화학 민병초 회장 등은 뉴질랜드만,아남반도체 김이환 부회장,풍안 류진 사장,고려아연 최창걸 회장 등은 호주만 수행한다. APEC 비공식 경제수행원에는 김영훈 대성그룹 사장,현재현 동양그룹회장,조석래 효성그룹회장,손병두 전경련부회장,황두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유상부 포철회장,윤재준 캐드랜드 사장 등이다. ?지난 7월초 미국과 캐나다 방문때는 아시아나 특별기를 이용했던 김대통령은 이번 뉴질랜드·호주 국빈방문에는 대한항공(KAL) 보잉 737-200 특별기를 이용했다. yangbak@
  • 3∼60대그룹 총수 간담회 이모저모

    8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6∼30대 기업 대표들과의간담회는 격의없이 얘기를 나누는 자리였다고 배석한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참석한 기업대표가 많아 모두 발언을 하진 못했지만, 숱한건의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기호(李起浩)경제수석도 “합의문에 대한 이의는 없었다”고 전하고 “분위기가 상당히 진지했다”고 말했다.그는 또 간담회의 핵심은 첫째,체질을강화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주겠다는 약속이었고 둘째,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대등한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노사문제,기업 역할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달라는 주문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실제로 “어느 나라든 성공한 나라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관계가 확립되어 있다”고 강조했다.“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대금지불을 늦추는 일 등은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다”며 구체적인 폐해사례를 적시하기도 했다. 참석한 그룹대표들은 5대그룹 총수들과 달리 지난 1년반 동안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에 동참해온 탓인지 주로 외국인 투자유치와 회사의 구조조정 노력,그리고 회생과정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김승연(金昇淵) 한화그룹회장은 노사합의를 통한 원만한 구조조정을 자랑했고,조동만(趙東晩) 한솔그룹부회장은 신문용지 공장의 매각과 고용안정을 설명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보다 20분 넘는 1시간50분 동안 계속됐다.지난달 25일 5대그룹 총수들과의 정·재계간담회 때보다는 35분 정도 일찍 끝났다.김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점심으로 닭국물 우거지탕을 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 6∼30대그룹 총수 간담 대화록

    8일 청와대에서 가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6∼30대 그룹 대표 30명의 오찬 간담회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준용(李埈鎔) 대림회장 석유화학분야에서 한국화약과 전문화·대형화를추진중이다.구조조정과 전문화·고부가가치를 위한 기술도입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건설도 통폐합을 통해 합리화하고 있다.서울증권의 경우 소로스에게경영을 위탁하고 자본을 유치하고 선진경영기법을 배우고 있다. ?김승연(金昇淵) 한화회장 IMF과정에서 노사가 회사를 살리자는 일념으로,합의를 이뤄내 구조조정을 원활히했다.석유화학은 과당경쟁,중복투자를 하는기업을 중심으로 빅딜을 진행했다. 큰 피해자는 지난 20∼30년 동안 석유화학을 이끌어온 기업이다. ?장상태(張相泰) 동국제강회장 과거 일본은 우리에게 기술지도를 했으나 포항제철 등장 이후 우리를 견제해 왔다.그러나 최근 한국투자에 관심을 갖고있다.원료공급 등에서 좋은 협조관계를 기대하고 있다. ?조동만(趙東晩) 한솔 부회장 신문용지 공장을 매각하고 종업원 고용도 안정시켰다.통신과 제지분야에서외자를 유치해 경영성과를 높였다.전주공장은외국 투자기업이 33%를 재투자해 대폭의 해고도 없었다. 외자유치를 통해 대외적 신뢰도 높아졌다. ?현재현(玄在賢) 동양 회장 자본과 토지,노동이 전통적인 경제 요소였는데이제는 지적요소가 새 원동력이 되고 있다.지식을 기반으로 한 창조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우리회사도 이같은 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이것 없이는진정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손경식(孫京植) 제일제당회장 제약과 생명공학부분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수출도 활발하다.생명공학은 우수한 두뇌가 많은 한국이 세계수준에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생명공학 산업을 발전시키겠다.제약산업도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현재의 9%인 연구개발비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고 연구과제를 핵심부문에 집중하겠다. ?김주채(金柱采) 아남 부회장 IMF때 거의 부도날 뻔한 회사가 광주 반도체공장을 매각하고 외자를 유치한 결과 튼튼해질 수 있었다.매각비용을 부채상환에 사용함으로써 부채를 20% 이상 줄였다.그후 세계시장의 수요가 늘어나고 금리가 내려 경상이익을 보고 있다. ?김대통령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게 된 것은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가기전에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자, 정부는고통을 경험했고 여러분의 희생과 어려움도 있었다.국민들이 돌반지 등을 내놓으면서 협력했고 근로자들도 힘을 모았다.기업인들이 주도하고 정부가 노력해서 외환위기를 극복해냈다. 금융 등 4대개혁을 성실하게 추진한 결과다. 기업인들도 경영개선과 외환위기 극복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빨리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국민,근로자,기업,정부가 합심한 노력때문이었다.정부도 환율 적정선의 유지,금리인하,물가 안정에 심혈을 기울였다.기업들의 자구노력도 있었다.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오늘의 결과를 오게 했다. 많은 고통을 경험했지만 결과는 기업과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역사상 최대의 흑자를 내고 있다.개혁이 얼마나 필요하고 이득이 되는 것인지 알수 있다.그러나 지금은 아직 절반의 성공이다.이것으로 만족해선 안된다.최근 경제와 수출이 성공하자 일부에선 너무 안심하거나 해이해지는 분위기가있다.우리가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강원도의 옥수수도 구멍가게도 경쟁해야한다.현재의 경제회복에 만족하지말고 세계경제와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지금 잘못하면 제2,제3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해야한다. 최근 일부에서 외환위기가 극복되니까 외국투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외국투자는 많은 이점이 있다.원금과 이자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투명성,세계 시장의 접근가능성,국민들에게 일터도 제공한다.외국에게도 국제적인 신용평가가 높아지고 주가도 오른다.일석오조인 셈이다.기업주들의 재산가치도 높아지게 된다.외국투자가 들어오면 재산가치가 높아진다.이런 점에서 부작용을염려할 필요도 없다. 특히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함께 동반자정신으로 협력해야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노사관계는 중요하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앞으로 중산층이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미래경쟁시대에 자신을 갖고 나갈 필요가있다. 정리 이석우기자 swlee@
  • 초가을 詩와 노래가 만난다

    삭막한 회색도시위에 한떨기 생명을 꽃피우는 나팔꽃의 생명력을 기억해내기 위해 시와 노래가 만난다. 시노래모임 ‘나팔꽃’은 9일과 10일 한양대 동문회관 대극장(오후 7시30분)에서 ‘작게,낮게,느리게’콘서트를 연다. 이 모임은 좋은 노래를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시가 지닌 음악성을 복원하고 시집 밖으로 걸어나와 대중의 일상에서 하나되는 노래를 지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번 공연은 시인과 음악인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고 구성을 했다는 점에서도 도드라진다.좌장격인 김용택 시인의 시에 이지상이 곡을 붙인 ‘내 사랑은’,도종환의 시에 백창우가 선율을 붙인 ‘똥개’,정호승 시와 김현성의 만남 ‘북한강에서’등이 무대에 올려진다. 특히 안도현의 시에 유종화 시인이 직접 곡을 붙인 ‘땅’은 프로 작곡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는 후문이다.이밖에 신형원이 ‘북한강에서’로 무대를 빛내고 임희숙·장사익도 열심히 연습 중이다. 시와 노래를 함께 빛낸 흘러간 명곡들도 소개된다.목마와 숙녀·세월이 가면(박인환 시,박인희 낭송)은 물론이고 고은의 시에 김민기와 조동진이 곡을붙인 가을편지와 작은배,정호승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우리가 어느 별에서 오른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시인들이 직접 다양한 퍼포먼스를 연출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계획이다. 나팔꽃 모임 관계자는 “이따금 시를 노래로 만들던 간헐적인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힘을 얻어내기 위해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그 흐름을 만들기 위해 이번 콘서트를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임병선기자
  • 모범그룹 청와대서 성공사례 발표

    8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6∼30대 그룹 총수간 정·재계 간담회에서 ‘모범’ 그룹 총수들이 구조조정 등 성공사례를 ‘3분 스피치’ 형태로 발표하게 된다. 정부와 재계가 7일 사전조율을 거쳐 확정한 성공사례 항목은 ▲구조조정 ▲외자유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신지식 경영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분야에선 한화 김승연(金昇淵) 회장과 대림 이준용(李埈鎔) 회장이 나프타 분해공장의 통합 등 석유화학 자율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성사과정과 추진 현황을 발표할 예정이다. 외자유치에서는 한솔의 조동만(趙東晩) 부회장이 한솔PCS에 대한 캐나다의BCI사 자본유치 사례를 소개하기로 했다. 워크아웃 분야에서는 워크아웃 과정에서 상반기중 1,360억원의 세전이익을거두며 창사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아남반도체가 선정됐다.아남의 김주채(金柱采) 부회장이 발표자로 나선다. 최근 미국 타임워너사의 자본을 케이블TV 사업에 유치한 현재현(玄在賢) 동양 회장은 신지식 경영의 사례로서 케이블 방송사업에 대한 그룹의 전망을발표하게 된다. 각 그룹 관계자들은 오전까지만 해도 별로 준비할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갑자기 결정된 3분 스피치를 준비하느라 오후 내내 분주했다. 한화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직접 하는 이례적인 브리핑이라는 점에서 짧은 시간에 보다 인상적인 발표문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일부 그룹은 홍보실 관계자들이 자구 하나하나를 놓고 회장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김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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