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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절 종교행사 개최/교계대표에 감사서한

    노태우대통령은 13일 지난 3·1절을 계기로 종교계가 각기 특별미사·특별기도회·특별집회를 통해 국민화합과 국가와 민족의 밝은 장래를 위해 노력해준 데 대해 김수환추기경·한경직목사·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 등 각 교계대표자들에게 감사서한을 전달했다.
  • 국민도덕교육 강화/노 대통령,불교계인사와 오찬

    노태우대통령은 31일 낮 서의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인사 6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베풀며 그동안 종교계가 새질서 새생활실천 운동에 크게 기여해준 데 대해 치하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이같은 도덕성 회복은 지률보다는 자율적으로 해야하며 이에대한 국민교육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곧 있게될 지방의회선거가 잘못 운용될때 타락·무질서·분열·경제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하고 『공명선거를 통해 내고장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서원장 외에 이운제 한국불교 태고종 총무원장,전운덕 대한불교 천태종 총무원장,이홍파 한국불교 종단협의회 사무총장,유혜춘 전국비구니회 회장,이철행 원불교 교정원장이 참석했다.
  • 외언내언

    파고다공원은 곧 탑공원이다. 그 곳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본래는 13층 석탑)에 연유하는 이름. 이 석탑으로 해서 전에는 이 언저리가 탑골(탑동) 또는 탑사동이라 불렸다. ◆동네 이름·공원 이름이 될 만큼 이 석탑은 정교하고 절묘하여 지금 우리의 국보 제2호. 당나라의 장수가 고구려를 칠 때 세운 것이라느니 고려때 원나라 공주가 중국 공인을 시켜 만들었다느니 하는 전설도 따른다. 하지만 김수온의 원각사비문에 분명히 조선 세조때 원각사 건물과 함께 세워졌다고 적어 놓았다. 더구나 해방후 지상에 있던 최상부 3층을 미군이 기중기로 들어올릴 때 나타난 각자는 건조 연월이 세조 13년 2월임을 알렸던 것. 조각·건조자는 18세의 천재 석공 김석동이었다. ◆본디 고려때는 흥수사가 있던 곳. 조선 태조가 조계종의 본사로 삼았다가 세조때에 원각사를 지었다. 역사가 흘러 1897년(광무원년),당시 총세무사로 있던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따라 이 곳이 우리나라에서는 맨처음인 현대식 공원으로 된다. 이 공원을 만드는 일을 지휘·감독했던 사람이황성신문 사장을 지낸 무궁화 할아버지 한서 남궁억. 당시의 직책이 내부 토목국장이었다. ◆파고다공원이 3·1운동의 발상지임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의암 손병희 등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함과 함께 수많은 국민들은 이 곳에 모였다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울 거리로 휩쓸고 나갔던 것. 그를 이어 독립만세의 함성은 3천리 방방곡곡으로 메아리져 나간다. 그런 연유로해서 파고다공원에는 손의암의 동상과 독립선언 기념탑이 서 있다. 파고다공원은 독립만세 공원이다. ◆오늘 방한하는 가이후(해부후수) 일본 총리는 이 파고다 공원을 사죄 방문할 예정이라 한다. 그곳이 독립만세의 진원지였다는 것뿐,생각하자면 이 강산 그 어디라하여 「파고다공원」 아닌 곳이 있겠는가. 「상징적 방문」에 뜻이 있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그 사죄를 행동으로 이어가는 일 아닐까.
  • 전 전대통령 어제 귀가/은둔 2년만에 연희동 사저 도착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여사와 함께 2년1개월여의 백담사 은둔생활을 마치고 30일 상오 하산,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귀환했다. 전전대통령 내외는 이날 상오9시 장세동·안현태·이량우·허문도·김병훈·민정기씨 등 측근들 및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 등과 함께 백담사를 출발,하오2시쯤 연희동 집에 도착했다. 전전대통령은 서울로 출발하기에 앞서 백담사에서 예불집회에 참석했으며 「서울 귀환을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란 발표문을 통해 하산 및 귀경소감을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이 발표문에서 『저는 오늘 지난 2년여 저희 내외가 의탁해 살아온 백담사를 떠나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면서 『이같은 결정은 연내에 하산하여 연희동 옛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 대통령과 여야정치 지도자의 의사를 존중함은 물론 언론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의견과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하면서 심사숙소한끝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산결심의 배경을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저는 88년2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하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오던 때의 보람을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 정해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영일 사정수석을 서울에 도착한 전전대통령에게 보내 안부를 전했으며 전전대통령의 가족·친지 및 다수 5공 출신 정치인과 전직 각료들이 연희동 집을 찾아 전전대통령의 귀환을 환영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정비서실장과 김사정수석에게 『노대통령이 남은 2년 임기동안 좋은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참모들이 착실히 보좌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김수석이 전했다. 전전대통령이 은둔생활을 끝내고 이날 서울로 귀환함으로써 내년봄 지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5공과 6공 등 범여권 결속작업이 보다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5공 인사 일부가 전전대통령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되나 전전대통령 자신은 정치적 활동을 자제하면서 6공 정부에 협력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 전대통령,연희동 오던 날

    ◎769일만의 “환속”… 은은한 찬불가 마중/“그동안 배려로 인생 새로 깨달아” 출발인사/“대통령 보필 잘하라” 청와대 참모에 당부도/전직의원등 1백명과 악수뒤 사저 안으로/“송구영신” 글귀넣은 난초화분 보내/노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년1개월여의 백담사 은둔생활을 마치고 30일 상오9시 하산,이날 하오2시 연희동 사저로 귀가. 지난 88년 11월23일 5공비리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강원도 인제군의 자그마한 산사인 백담사로 「유배」돼 숱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반승반속의 생활을 해온 전전대통령 내외는 정확히 7백69일만에 「환속」한 셈. 전전대통령으로서는 지난 12월31일 국회 5공·광주 특위합동청문회에 출석,증언한후 백담사로 돌아간지 만 1년만에 다시 서울 땅을 밟은 셈인데 지난해의 굳은 얼굴과 달리 비교적 밝은 표정. ○주민에 손들어 답례 ▷연희동 사저 도착◁ ○…전전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여사를 태운 서울2 두6759호 베이지색 그랜저승용차가 백담사에서 4백여리 길을 달려와 먼지를 뒤집어 쓴채이날 하오1시54분 연희2동 사저입구 골목길에 도착하자 주위에 모여있던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 검은색 오버코트에 미색 머플러를 두른 전전대통령은 미소를 띠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을 돌려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승용차 옆에 대기하고 있던 최석립 대통령 경호실차장,김원환 서울시경국장과 악수를 하며 『고생했다』고 노고를 치하. 전전대통령은 오랜 산사생활과 29일 밤 잠을 설쳤는지 약간 여윈 모습이었으며 검은색 오버코트에 물방울무늬의 검은색 머플러를 한 이여사는 엷은 화장을 했고 사저로의 귀환이 기쁜듯 시종 웃는 얼굴. 전씨부부는 서울 조계사와 수국사 연합합창단 69명이 부르는 찬불가 「나의 연꽃」 「보현 행원」의 은은한 합창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가운데 골목길에 늘어서 대기하고 있던 주민대표·스님대표 및 이한동의원 등 현직의원,김용갑씨 등 전직각료,유흥수씨 등 전직의원 등 모두 1백여명의 환영인사들과 6분여 동안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 전전대통령은 주민대표들에게는 『일요일인데 쉬지않고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스님들에게는 『바쁘실텐데… 추운데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고 했고 전현직 의원들과 전직 각료들에게는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고만 인사를 했는데 김정례 전 보사장관에게는 어깨를 두드렸다. 이어 전씨부부는 불교합창단이 있는 곳으로 가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는데 집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의 일체 대화를 나누지 않고 하오2시 정각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가 아쉬움을 남겼다. 전전대통령은 집안에 들어가기 직전 『집에 돌아오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기자질문에 말없이 미소만 띈채 대문안으로 들어갔는데 사전에 기자들과의 만남은 일체 계획하지 않았었다는 후문. ▷노대통령 안부 전달◁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1시40분쯤 붉은 꽃이 화사하게 핀 난초화분을 연희동으로 보내 전전대통령의 귀환을 환영했는데,화분리본에 「송구영신」의 글귀를 써넣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비서실쪽에서는 지난 27일 백담사를 다녀온 김영일 사정 수석비서관이 영접나와 전전대통령에게 인사한 후 집안으로 들어가 노대통령의 간절한 「안부말씀」을 전달. 노대통령은 하오3시30분쯤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을 김수석과 함께 다시 연희동으로 보내 자신의 「기쁨 마음」을 간곡히 전언. 전전대통령은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 측근들과 함께 정실장으로부터 노대통령의 「안부말씀」을 전해 듣고 자신의 경험을 피력하면서 『잔여임기가 2년이지만 나머지 1년은 선거 등으로 경황이 없기 마련』이라며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이 노대통령을 잘 보필하여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노대통령과의 짙은 「우정」이 넘쳐흐르는 분위기였다고. ○아침부터 친척 모여 ▷영접인사들◁ ○…이날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집 귀환을 앞두고 자택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친인척들의 출입이 잦았으며 상당수의 신·구 정치인들이 인사차 찾아와 눈길. 이날 상오 전전대통령의 친형 전기환씨 부부와 처남 이창석씨 부부,동서 김상구 전 의원 부부 등이 전전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여러차례 집을 들락거렸고 5공출신의 정치인들로는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이 이날 정오 무렵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이한동·정동성·권해옥·이원조·이학봉·강성모의원(이상 민자)과 권익현·김정례·권정달·유흥수·이영일·홍우준·이대순·한갑수·김정남 전 의원 등이 눈에 띄었고 이원홍·이상의·김주호·이해원 전 장관 등과 고명승 전 보안사령관 등의 인사들도 연희동 자택에서 미리 기다리다 전전대통령을 영접. ○“막상 떠나니 섭섭” ▷백담사 출발◁ ○…전전대통령 내외는 30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새벽4시에 새벽예불을 올린 뒤 상오8시쯤 대웅전인 극락보전에서 차남 재용씨와 막내아들 재만씨 등 가족들과 신흥사 혜법주지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조계종 스님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하산예불」. 전전대통령은 하산예불이 끝난 뒤 상오8시30분쯤 「서울귀환에 즈음해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발표문을 보도진에게 배포한 뒤 백담사 출발에 앞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전전대통령은 『감개무량하시지 않습니까』라는 기자들의 물음에 『감개무량할 것 까지는 없고…』라고 말끝을 흐린 뒤 『남들이 서울로 돌아가게 돼 기쁘겠다고 하지만 막상 이곳을 떠나자니 섭섭한 마음도 있다』고 소회를 피력. ○…전전대통령 내외는 상오9시 정각 백담사를 출발,귀경길을 재촉. 백담사는 백담사 일주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분 서울 귀환 환송」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한편 전전대통령 내외가 거처하던 만해당의 문마다 자물쇠를 채워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등 「환송」에 신경을 쓰는 모습. 전전대통령 내외는 이에 앞서 29일 저녁 가족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허문도 전 통일원장관,이양우변호사,민정기비서관 등 「백담사 캠프」와 귀경이후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한편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김도후 백담사 주지 등과 가족예불을 드리고 만찬을 함께 하며 지난 2년여 동안의 산사생활을 회고하며 환담. ○차량행렬 2백여m ▷귀경연도◁ ○…상오9시에 백담사를 떠난 전전대통령의 차량행렬은 원통∼인제∼홍천∼양평∼구리∼워커힐∼올림픽대로∼양화대교 등을 거쳐 약 5시간만인 하오2시께 연희동 사저에 도착. 전전대통령의 하산행렬은 민정기 비서관이 탄 로열프린스 승용차가 선도했고 이어 선도경호차량,전전대통령 차량 순으로 뒤를 이었는데 전전대통령 승용차 뒤편엔 안전경호실장,이량우 고문변호사 등 측근 차량,장남 재국씨 부부 등 가족·친지차량,서총무원장 등 조계종 차량을 포함해 20여대의 차량이 줄을 이어 대열의 길이가 2백여m에 이를 정도. 11시50분께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근처의 파라다이스호텔에 도착한 전전대통령 일행은 전전대통령의 제의로 복지리로 점심식사를 들며 휴식을 취하기도. ○대학생들,반대시위 ▷연희동 주변◁ ○…이날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사저 주변에는 20개 중대 2천4백여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어 긴장된 분위기. 경찰은 이날 하오1시55분쯤 전전대통령 내외가 무사히 이곳에 도착해 집안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안도하는 모습들. ○…이날 전전대통령의 사저 골목입구에는 이웃사촌 명의의 『수현이 할아버지 할머니 환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주민일동 명의의 『건강한 모습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눈길. 또 연희2동 부녀회 회원 1백여명은 골목입구의 어린이놀이터에 쌀막걸리 육개장밥 등을 준비해와 환영나온 주민들을 접대하기도. ○…연세대 학생 50여명은 이날 하오1시10분쯤 학교 교문앞에 모여 전전대통령 내외의 환가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10여분 남짓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유인물에서 『현정권이 전씨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5공으로 회귀하려는 국민 기만행위이며 민주세력에 대해 탄압을 가중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산사생활 감사 표시 ▷백담사 주변◁ 전전대통령이 막상 2년1개월여만에 「삭풍의 광야」로 불리는 이곳 백담사를 떠나자 현지 주민들은 대체로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여 인정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 백담사 홍천 총무스님(40)은 전전대통령이 전날밤 만해당에서 차를 나눈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해 입산을 하도록 배려해 준 여러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만약 내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처럼 값진 새삶을 알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산사생활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전언.
  • 전 전대통령 31일께 하산/김 사정수석 면담

    ◎“연내 귀가 청와대 뜻 감안” 【백담사=이목희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년1개월여의 백담사 은둔생활을 마치고 오는 31일쯤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하산,서울 연희동집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은 27일 낮 백담사를 방문한 김영일 청와대사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노태우 대통령의 연내 하산희망을 전달받은 뒤 『노 대통령의 뜻을 충분히 감안해 조속한 시일내에 향후 운신을 결정,통보하겠다』고 밝혀 연내 하산의사를 비췄다고 김 수석이 전했다. 김 수석은 이날 3시간 동안의 전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끝낸 뒤 『귀경일자와 절차논의는 구체적으로 없었으나 전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뜻을 충분히 감안하겠다는 심경을 피력했다』고 말해 전 전 대통령의 연내 하산,귀경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수석과 함께 백담사를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의 법정대리인 이양우 변호사는 『28일중 백담사에서 참모진들이 회동,하산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하고 『29·30일쯤 하산시기와 관련한 전 전 대통령의 최종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한편 지난 26일 밤 전 전 대통령을 면담한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은 이날 『전 전 대통령에게 오는 31일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불교계의 희망을 전달했다』면서 『이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은 측근들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서 총무원장은 『전 전 대통령이 오는 31일 하산할 경우 30일 환송행사를 겸한 송년법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이성철종정 새해 법어

    ◎“붉은 해가 높이 솟아 세계를 비추니/남극의 펭귄과 북극의 곰들이 환호 불교조계종 이성철종정은 26일 신년법어를 발표,『붉은 해가 높이 솟아 시방세계를 비추니 남극의 펭귄과 북극의 곰들이 떼지어 환호한다』며 밝은 새해가 되길 기원했다. 성철종정은 또 『악마와 부처가 한 몸이요,공자와 노자가 함께 가며 태평가를 부르니 희유한 세상이란 이를 말한다』고 대화합을 전제하면서 『고양이님은 쥐를 업고 토끼는 사자를 타서 삼오야 밝은 달에 노래하며 춤을 추니 벗님들은 웃으며 축복한다』고 이상세계를 강조했다.
  • 산문 폐쇄 유보/조계종 총무원

    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12일 국립공원 관리업무의 내무부이관 작업과정에 조계종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한다는 정부측 통보에 따라 13일부터 무기한 단행키로 한 산문 폐쇄를 일단 유보조치 했다. 또 오는 15일 하오 여의도광장에서 갖기로 했던 범불교도 궐기대회도 무기한 연기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이날 정부가 수용키로 긴급 통보해온 ▲공원입장료 수입의 10∼30%를 사찰에 지급(자연 공원법 시행령 또 시행규칙에 명문화) ▲공원 조성시 당해 사찰주지와의 협의를 행정지침으로 수용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으로 불교계인사 추가 ▲공원입장료와 문화재 공개관람료 합동징수 문제의 행정지침 수용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 조계종 3백여 사찰/내일부터 산문 폐쇄

    ◎국립공원 내무부 이관 추진 반발 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정부의 국립공원 관리체제 내무부 이관작업과 관련,13일 상오9시를 기해 설악산 신흥사 등 전국 국립공원내 3백여 사찰의 산문을 무기한 폐쇄키로 결정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산문을 폐쇄하는 것은 외부인의 사찰소유지 출입을 전면으로 금지시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산문폐쇄를 단행할 경우 일반인들의 등산·관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산문을 폐쇄키로 한 사찰 가운데는 속리산 법주사,계룡산 동학사,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내장산 내장사,가야산 해인사,오대산 월정사 등 유명 고찰 등이 거의 포함되어 있다. 조계종은 산문폐쇄 조치와 아울러 정부조치에 반대하는 「국립공원 관리 내무부 이관저지 범불교도대회」를 15일 하오3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전국 신도와 승려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기로 했다.
  • 사회운동 종교인 청와대 초청,격려/노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20일 하오 청와대에서 건전사회운동종교인사 19명을 접견,건전한 국민정신을 세워나가는 데 앞장서고 있는 종교계의 노력을 치하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사치·과소비·퇴폐풍조는 우리 경제를 좀 먹게 하고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가치관의 혼란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21세기 태평양시대의 주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윤리도덕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청와대에 초청된 인사는 불교계(사회복지활동)에서 김도각 조계종사회부장등 7명,개신교(사랑의 쌀나누기운동·바른삶 실천운동)에서 이성택 기독교총연합회부회장등 6명,천주교에서 오태순 한마음한몸운동추진본부장등 4명,원불교(은혜심기운동)에서 이철행 원불교교정원장,유교(충효교실)에서 이중기 성균관총무처장 등이다.
  • 조계종 총무원장 서의현 스님 유임

    불교 조계종 중앙종회는 22일 상오 제26대 총무원장으로 현 총무원장 서의현스님을 선출했다. 이날 종회에서 서의현스님은 출석의원 71명(재적 73명)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42표를 득표,경합에 나선 유월탄스님을 13표차로 누르고 이겼다. 한편 중앙종회의장에는 서정대스님,부의장에 조학능스님과 방지하스님 등 현 의장단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 제8회/교정대상 수상… 보람과 영광의 얼굴들

    ◎27년째 봉직… 출소자 결혼식엔 꼭 참석/진익화 52세ㆍ수원교도소 교사/대상 『남달리 뚜렸한 선행을 한 것도 아니고 교정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아온 제가 이런 큰상을 받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올해 제8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뽑힌 진교사는 짤막하게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63년4월 수원교도소에서 「반징역살이」라는 교도관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7년째를 맞은 진교사는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교정행정의 산 일꾼으로 일관해왔다. 『앞으로의 교정행정은 재소자들을 격리ㆍ구금하는 것 보다는 이들을 교화ㆍ선도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는 진교사의 얼굴엔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이 어려있다. 재소자들을 위한 직업ㆍ교화교육을 통해 9백50여명의 각종 기능자격자와 59명의 대입ㆍ고졸합격자를 배출해냈다. 박봉을 쪼개 돕고 출소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하는 일이 진교사의 업무가 된지 오래다. 진교사는 『신참시절인 65년 혼자서 경기도 화성군 간척지조성 새마을사업장에서 6개월동안 재소자 35명과 함께 숙식을 하며 바다막는 일을 아무사고 없이 마치고 온 일이 후배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를 때면 감회가 새롭다』고 활짝 웃었다. 27년의 교도관생활을 통틀어 살인죄로 복역하던 김모씨(50)가 70이 다 된 노모와 어린 두자녀를 남겨두고 빚독촉에 못이겨 부인이 가출한 것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몰래 도와주자 출소후 부인과 함께 찾아와 이마가 땅에 닿도록 감사해 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비록 교도관과 재소자 관계지만 그들이 출소한 뒤 검소한 생활을 하는것을 볼때면 교정계에 투신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출소자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음지에서 사명감이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교정직에 종사하는 진교사는 『교도관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와 냉대,비난을 접할 때 가장 괴롭다』고 밝히고 『다른 행정기관에서 조차 최근까지도 교정기관을 「혐오기관」으로 분류한 것을 접할 때면 참담한 심정까지 든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교정행정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와 정부차원의 뒷받침을 아쉬워하며 『묵묵히 뒤에서 도와주고 교도관직을 자랑스럽게 여긴 아내와 4남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불우출소자 피복지원운동 전개/우규식(면려상) 54세ㆍ영등포구치소교사(본상) 60년 6월15일 교정계에 첫발을 내디딘이래 30년동안 재소자들을 선도하고 처우를 향상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64년 2월 공주교도소에서 근무할때 불우출소자들을 위해 피복지원운동을 시작,3년이 넘도록 계속하면서 옷가지 1백여점을 모아 출소자들에게 나눠줘 새생활을 돕기도 했다. 73년 영등포구치소 의무과에 재직할때는 폐결핵을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최모씨를 인공호흡으로 회생시킨 뒤 지속적인 상담으로 새 생활을 하도록 돕는 등 사경직전의 재소자 2명의 생명을 구했다. ◎무연고자 가족 찾아주기에 앞장/민도영(성실상) 53세ㆍ춘천교도소 교사(본상) 재소자들이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정교육과 무연고자 가족찾아주기에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출소후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취업알선과 사회생활에 대한 상담으로 27년 2개월동안 정성을 쏟아왔다. 73년2월부터 의지할곳 없는 출소자 17명을 지역사회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이들의 자립갱생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86년4월에는 강원대학교와 협조해 사범대학생 6명을 강사로 초빙,남모씨 등 26명을 고입ㆍ고졸자격 검정고시에 합격시키는 등 재소자들의 학과교육지도에 힘썼다. ◎문맹원생 1백여명에 한글 교육/조기선(창의상) 57세ㆍ대전소년원 보도사(본상)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61년1월 보도직에 임용된 이래 소년원생들이 퇴원한 뒤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습득과 문맹원생 한글해독ㆍ취업알선 등에 앞장서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릴수 있도록 열과성을 다했다. 72년부터 80년 4월까지 문맹원생 1백69명에게 한글을 가르쳐 진로선택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응을 도왔다. 83년부터는 원생들에게 내실있는 직업교육을 실시해 1천4백20명이 각종 기능자격을 취득하고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은메달 등 19개의 메달을 따내 소년원에 대한 사회인식을 개선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수형자 4백여명 자매결연 주선/김무웅(교화상) 49세ㆍ인천소년교도소 교회관(본상) 의지할 곳 없는 장기수와 문제수형자 4백57명에게 각계인사와의 자매결연을 주선하고 허물없는 신상상담을 통해 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81년 1월부터 교정참여인사들로부터 피아노ㆍ컬러TV 등 2억5백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 7백54점과 7천여만원어치의 교화용도서 2만8백여권을 기증받아 재소자들의 교정교육과 정서함양에 기여했다. 73년부터 78년까지 광주교도소에 근무할 때에는 좌익수 교화기법을 개발,무기수 허모씨 등 98명을 전향시키는데 공헌했다. ◎신앙통한 교화로 갱생의지 부축/이의정(박애상) 49세ㆍ예장전북노회 목사(특별상)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7년 3월부터 13년이 넘도록 재소자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앙을 통한 재소자교정교화에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성직자로 법무부장관표장을 2차례 받았다. 77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52만3천5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8백80여차례에 걸쳐 기독교적 교화를 실시했다. 종교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알게된 김모씨 등 출소자 15명을 신학교에 진학시켜 이 가운데 11명이 교육을 이수,전주와 남원 등지에서 목회자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 ◎「출소자들의 어머니」… 취업등 알선/정팔기(자애상) 73세ㆍ서울대교구사목회 회원(특별상) 78년8월 인천소년교도소 소년재소자 교화선도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뒤 11년여동안 매달 2차례씩 영등포ㆍ의정부ㆍ홍성교도소 등을 순회하면서 재소자 교화활동을 한 공로로 88년 법무부장관표장과 89년 「카톨릭대상」을 받았다. 재소자들의 심성순화활동 뿐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재소자 28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영치금 2백10만원과 1백30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하는 등 불우재소자들의 수형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교도소 포교 자원… 20여년간 헌신/서병진(자비상) 39세ㆍ조계종 삼천사주지(특별상) 재소자교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교도소 포교법사를 자원해 20년동안 서울구치소와 수원ㆍ강릉교도소 등에서 재소자교리지도ㆍ신앙상담ㆍ사형수와의 자매결연 등 재소자교화선도에 헌신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법무부장관표장을 받은 성직자. 79년1월 서울구치소종교위원으로 위촉된 뒤 3백70여차례에 걸친 불교모임을 통해 4만6천여 재소자들에게 자비사상을 고취해 심성을 순화했다. 매주 1차례씩 사형수 3백21명에게 신앙상담을 해 과거의 죄를 참회토록 교화하고 해마다 불경암송대회를 열어 재소자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재소자전용 직업훈련시설 기증/박광식(공로상) 48세ㆍ성보산업주식회사대표(특별상) 부산교도소 교화위원과 부산진구 갱생보호위원을 겸직하면서 재소자의 직업훈련 및 교화기자개기증 뿐 아니라 86년부터는 자신의 신발제조업체인 성보산업에 재소자들을 출퇴근시켜 기술훈련을 시킨뒤 원하는 경우 출소뒤 취업시키는 등 교화사회정착사업에 헌신해왔다. 성보산업 안에 재소자전용직업훈련 시설을 마련,현재까지 1백97명을 훈련시켜 이들에게 9백80여만원의 생활정착금을 지급하고 이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는 60명은 정식직원으로 채용해 재소자들의 출소후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 ◎재소자 9백명에 직훈/정해원 50ㆍ안동교도소 교사(장려상) 63년 12월 교정계에 투신한 뒤 27년동안 확고한 신념과 성실한 복무자세로 각종 재소자직업훈련과 출소자취업알선 등 교화선도에 헌신했다. 9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가구ㆍ미용기술 등 직업훈련과 영농교육을 실시해 근로정신을 함양하는 한편,출소자 17명의 신원을 보증해 취업을 시키는 등으로 사회복귀를 지원했다. ◎소년수형자 취업알선/양택민 52ㆍ군산교도소 교사(장려상) 농촌지도요원으로 8년동안 일하다 지난 66년 교도관으로 전직한 뒤 불우재소자돕기와 취업알선,독서ㆍ서예활동을 지원해 재소자의 정서함양에 남달리 헌신했다. 86년 소년재소자에 대한 수용관리대책을 마련해 직원들과 1대1로 자매결연을 맺고 취업을 알선,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힘썼다. ◎장기수에 생필품 지원/정인옥 51ㆍ광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유도2단의 무술교도관으로 21년동안 근무하면서 재소자교정교화 및 수용질서확립 등 각종교정사고방지에 기여했다. 재소자특별할동의 하나로 서예반과 회화반을 만들어 여가선용 및 심성순화에 힘썼다. 장기수 등 재소자 1백여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을 지원,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수용환경 개선에 힘써/김병윤 48ㆍ제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교도소가 개청될때부터 근무해오면서 기반조성에 공헌하고 민원실환경을 이용자들에게 편리하도록 개선하는데 힘썼다. 불우재소자 58명을 종교인들과 자매결연토록 주선해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있도록 상담했다. 교도소 주변의 환경미화작업에 앞장서 수용환경을 개선했다. ◎21년간 교화위원 활동/노지욱 76ㆍ공주제일감리교 장로(장려상) 고령에도 불구하고 21년동안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재소자의 신앙상담ㆍ종교교화ㆍ출소자취업알선 등 불우재소자를 위해 봉사해왔다. 의지할 곳 없는 출소자들을 집에 데려가 돌보며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명절때마다 재소자들을 찾아가 격려해왔다.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 신앙활동을 지도했다. ◎출소자 30명 보호선도/김봉래 61ㆍ순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73년부터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소자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마련,소외감을 없애고 불우재소자의 자활의욕을 고취시키는데 힘썼다. 불우출소자들에게 취업은 물론 결혼을 주선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갱생보호위원도 겸직하면서 출소자 30여명을 보호선도했다. ◎재소자 검정고시 교육/김태수 71ㆍ김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소년재소자의 교화교육과 면학기회를 마련해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재소자들을 위해 중입검정고시제도를 신설,9백38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김천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과정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84년 화랑소년대 권투부를 만들어 재소자의 체육활동을 활성화시켰다. ◎감호자 정신교육 앞장/안의종 49ㆍ청송 진성중학교장(장려상) 81년 청송교정시설의 개청과 함께 교화위원으로 일해오면서 감호자정신교육과 수용생활을 지원하는데 헌신했다. 진성중학교 교사를 검정고시강사로 보내 3백40명을 고입 및 고졸검정고시에 합격시켰다. 장기감호자와 신체장애자 5백여명에게 7백여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했다.
  • 대상 진익화 교사/제8회 교정대상 수상자 17명 결정

    ◎대상/우규식 민도영 조기선 김무웅/특별상/이의정 서병진 정팔기 박광식/서울신문사ㆍKBSㆍ법무부제정/8일 본사서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한국방송공사 및 법무부와 함께 제정한 제8회 교정대상수상자 17명이 5일 최종확정됐다. 영예의 대상은 불우재소자돕기와 출소자 취업 알선 등 재소자교정교화에 27년 2개월동안 앞장서온 수원교도소 진익화교사(52)가 차지했다. 이밖에 본상 4명,특별상 4명,장려상 8명 등이 수상자로 뽑혔다. 시상식은 오는8일 상오11시 서울신문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수상자 명단 ◇대상 ▲진익화 ◇본상 ▲면려상 우규식(54ㆍ영등포구치소 교사) ▲성실상 민도영(53ㆍ춘천교도소 교사) ▲창의상 조기선(57ㆍ대전소년원 보도사) ▲교화상 김무웅(49ㆍ인천소년교도소 교매관) ◇특별상 ▲박애상 이의정(49ㆍ예수교장로회 전북 노회목사) ▲자비상 서병진(39ㆍ조계종 삼천사 주지) ▲자애상 정팔기(73ㆍ여ㆍ천주교서울대교구 교도사목회 회원) ▲공로상 박광식(48ㆍ성보산업주식회사 대표) ◇장려상 ▲정해원(50ㆍ안동교도소 교사) ▲양택민(52ㆍ군산교도소 교사) ▲정인옥(51ㆍ광주교도소 교사) ▲김병윤(48ㆍ제주교도소 교사) ▲노지욱(76ㆍ여ㆍ공주 제일감리교회 장로) ▲김봉래(61ㆍ순천교도소 교화협의회장) ▲김열수(71ㆍ김천소년교도소 교화협의회장) ▲안의종(49ㆍ청송진성 중학교교장)
  • 전국 사찰서 봉축법요식/어제 부처님오신날

    불기2534년 「부처님오신날」봉축대법요식이 2일 상오10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뜰에서 베풀어졌다. 33차례의 범종이 울리는 가운데 시작된 이날 법요식에는 조계종 서의현총무원장을 비롯,박완일전국신도회장,삼부요인,주한외교사절등 국내외 인사와 불자 1만여명이 나와 무명의 사파빛이 가득하길 기원했다. 한편 불교태고종은 서울 성북동 태고사에서,불교천태종은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봉축법요식을 갖고 대자대비의 불타의 원력이 시방세계에 충만하길 축원했다.
  • 불교방송 개국

    불교방송(BBS)이 1일 상오 10시 개국식을 갖고 정규방송에 들어갔다. 이날 개국식은 불교방송국(서울 마포구)3층 공개홀에서 최월산조계종원로회의장ㆍ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 등 불교계 인사와 최병렬공보처장관등 내외귀빈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로써 불교방송은 세계최초의 불교포교방송으로서 호출부호 HLSGㆍ주파수 101.9 MhzㆍFM스테레오 방식으로 하루 21시간씩 음악ㆍ보도ㆍ포교 등의 종합방송을 하게 됐다.
  • “일체 용화… 본래불의 세계로”/이성철종정 불탄법어

    불교조계종 이성철종정은 불기2534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어를 발표,『일체가 용화하여 아무리 싸울래야 싸울 수 없는 본래불의 장엄한 세계를 바라보자』고 말했다. 이종정은 또 『나는 새,기는 벌레,사나운 짐승,온순한 양떼가 형제 아님이 없으니 작은 생쥐와 날쌘 고양이,독사와 개구리가 형제로 살아가니 장한 일』이라면서 『가없는 우주를 집으로 삼고 살아가는 만물은 전체가 평등하며 낱낱이 완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금의 영웅가운데 영웅으로 추앙받은 나폴레옹도 절해의 고혼이 되었고 만리장성을 쌓아올려 천만세를 누리려던 진시황의 일대제국도 몇년안에 사라졌다』고 지적한 이종정은 『이 세계는 미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조계종 대표 30명 5월단오에 파북

    불교 조계종 남북 불교교류추진위원회(위원장 송월주)는 2일 성명을 내고 『남북교류와 통일을 저해하는 모든 법률들을 전향적으로 개폐하여 자유ㆍ평등ㆍ복지의 정토가 실현되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 당국이 노력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 불교교류특별위원회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받아 오는 단오절에 특위소속 승려 30명이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정치,그리고 「건달」론/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조계종 종정 성철 큰스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다. 그런 표현이 결례가 된다면 자미롭다거나 그냥 친근감을 갖게 되는 분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우선 그분의 상호부터가 그러하다. 우리같은 속중의 눈으로 보는 그분의 상호는 부처님쪽보다는 나한상에 가깝다. 그래서 보다 친밀감을 갖게 하고 깊은 산속에 은거하며 속세에는 미동도 않는 높은 뜻이 돋보이는지 모른다. 그 성철스님이 문하스님들을 「건달」로 몰아붙이며 야단을 친 일이 있다. 작년 그가 주석하는 해인사의 하안거 해제 때 법문을 통해 『해인사에 건달이 제일 많다』며 『중이면 중값을 해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그는 『중들은 공부를 안하고 신도들은 속아서 큰스님인줄 알고 시주를 많이 한다』고 불교계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기실 중들만을 건달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건달로 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건달이란 일정한 주소나 직업도 없이 관계없는 일에 잘 덤벼들고 풍을 치며 돌아다닌다는 뜻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건달이란 팔부중의 하나­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제석천의 아악을 맡아보는 신,이른바 건달파를 가리킨다.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만 사르며 공중으로 날아다닌다. 또 서역에서는 배우를 일컫는 말도 된다. 「건달」 풀이가 길어졌는지 모르지만 지난날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란 자기와 무관한 일에 잘 덤비고 풍을 치며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이를테면 건달들이나 하는 일로 돼 있었다. 사실이 그런 적도 있었다. 허황된 꿈과 자기도취 속에서 무위도식하며 온통 「민중」이요 「대중」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판을 꾸몄다. 그러니까 그들이 일궈내는 정치 또는 정치판은 「건달들의 놀이터」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 당시 한 유수한 정치인이 정치는 백수건달들이나 하는 것으로 스스로 비하했다. 자유당 때에 이어 공화당 정치를 주름잡던 성곤 김성곤의 이른바 「백수건달론」이 그것이었다. 해방 직후 우후죽순처럼 생성 소멸했던 숱한 정당ㆍ사회단체ㆍ정당인ㆍ정치인들 그리고 자유당 때 집권당을 감싸고 위성처럼 기생하던 많은 정당ㆍ단체들과 사람들이 결국 건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그 시절 다른 말로 표현해 정치 브로커라고도 했다. 올바른 정치가 없고 사회가 혼란했을 때는 모리배나 정상배,심지어는 뒷골목의 주먹들마저 정치 브로커를 겸업했거나 아니면 민중을 들고나온 본격 정치꾼들에게 고용되어 건달놀이를 일삼았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정당이나 정파ㆍ사회단체의 난립은 정치의 빈곤을 뜻하는 것이고 정객의 과잉은 정치의 부재와 결여를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섣달 그믐날 자정이 넘도록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며 왜 성철스님의 「건달중」 호통이 상기됐으며,왜 우리의 정치와 정치판을 들여다보며 성곡의 건달 정치론이 뇌리를 스쳤는지 오늘 생각해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지난 일을 청산하자고 이뤄낸 정치의 장을 국민의 한사람으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적잖은 충격과 당혹감을 느낀 것만은 분명하다. 청산하자는 마당에 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보였던가를,다시는 그것을 거론치 말자며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 또한 쉽게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좀더 따지고 보자면 그날의 정치희극 아니 정치비극은 이미 약속된 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는 뭇정치인들의 무능력과 무책임과 건달적 사고방식에서 이미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청산은 일찍이 국민적 합의였고 정치인들의 실천사항이었다. 그것을 실행하는데 힘이 부쳐 저들끼리는 포기하고 1노3김이라는 「결단회담」까지 가지고 가게 한 사람들은 정확히 말해 건달론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 자체가 아무리 우리 현실정치의 통과의례 일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호위하는 쪽과 마당에 팽개치려는 쪽의 충돌과 해프닝,그로 인한 정회소동은 그처럼 힘들게 마련된 새 출발의 통과의례를 무참한 의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증인이 국회를 모독한다고 분개했으나 그들 스스로도 국회를 모독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을 왜 또다시 들먹이는가를 따지는 일은 이 문제에 관한한 무의미하다.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정치 또는 정치판에서 다시는 그런 희비극 같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말은 바로 해보자는 얘기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 같은 국가적 망신이요 국민적 수치요 개인적인 치욕에 속하는 일은 역사에서 단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충정에서이다. 올해에는 그동안 군소정치인들이 그토록 주장하던 대망의 지방자치제가 실시된다. 그와 때를 같이 했음인지 정계개편론도 이미 슬슬 제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자신의 개인적인 구상으로만 간직해야 할 채 익지 않은 양당제로의 개편론을 드러냈다가 그 즉시로 집권당 대표위원직을 떠난 경우도 있고 조금 낯선 연합공천론도 공개적으로 띄워졌다. 공당의 총재에 의해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제기됐었고 그 무슨 말빠른 생각이냐는 반론도 나왔다. 「정치」와 「건달」이 연결됐던 우리 정치의 과거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한 기간의 과거청산도 역시 역사에 묻히려 하고 있다.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의 정치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진정한 보혁논쟁으로 새로 태어나고,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을 벗어나 이념에 기초한 그러한 정치로 재편돼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 그 재편은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 오는 봄의 지방선거,그 이듬해의 총선거,다시 그 이듬해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행사가 줄이어 있다. 그 기간이 앞으로 3년이며 3년이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인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성철스님이 중들을 야단치듯이 국민들로부터 『정치판에 건달들이 제일 많다』거나 『정치인은 정치인 값을 해야 한다』는 질책을 더이상 받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을 새해의 덕담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소망스런 우리 정치의 건달파들이여 다시 한번 힘을 내서 해봐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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