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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 안보이는 조계종 분규­조계사 점거와 경찰력 투입의 전말

    ◎佛心도 등돌린 ‘절뺏기 싸움’/총무원장 선출싸고 해묵은 갈등 재연/“폭력방치” 비난 여론에 해산작전 돌입 지난 11월 1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조계종 총무원청사 점거로 시작된 조계종 분규가 43일 만에 공권력의 강제진압으로 일단락됐다. 법원은 11일 퇴거단행 가처분 결정에 따라 23일 오전 경찰의 협조를 얻어 정화개혁회의(상임위원장 월탄) 소속 승려들을 청사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경찰은 그동안 조계종 분규가 종교내부의 문제인데다가 진입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적극적인 개입을 미뤄왔으나 법원의 강력한 요청과 조계종의 폭력사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에 따라 장비와 인원을 동원해 해산작전에 돌입했다. 더욱이 22일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이 대구 동화사를 무력으로 접수,이른바 ‘절뺏기싸움’이 전국적으로 번져 나갈 조짐을 보이자 26일로 예정된 집행시한까지 기다릴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계종의 분규는 제29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송원장의 ‘3선출마 문제’로 시작됐다. 송원장의 3선출마에 반대하는 월탄 지선 설조 후보진영을 비롯한 일부 종회의원과 승가단체들이 ‘송원장 3선 반대 범불교도 연대회의’를 구성,송원장의 3선반대 운동을 펼쳤고 여기에 월하 종정이 송원장의 3선 출마를 반대하는 교시를 내리는 등 총무원장 선거에 직접 개입하고 나섰다. 그러나 송원장이 ‘3선출마’를 강행할 태도를 보이자 선거 하루전인 11월11일 전국승려대회를 연 뒤 총무원청사를 점거,‘정화개혁회의’를 발족시키고 지금까지 ‘제2의 정화’를 부르짖으며 총무원 청사를 점거해왔다. 조계종 분규는 겉으로는 송원장의 3선 출마강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양측에서 ‘제2의 정화불사’와 ‘종헌종법수호’를 내걸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종정과 총무원장의 갈등및 치탈도첩자(승적을 영구히 박탈당한 사람)문제,경북 경산 선본사(갓바위)와 서울 봉은사 등 노른자위 사찰과 동국대재단 운영권 다툼,교구본사주지 선거제도 등을 둘러싼 이른바 ‘이권’ 싸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불교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금까지의 구도는 종정 및 월탄 상임위원장에 대항해 혜암 전 원로회의 의장과 법등 중앙종회 의장,지선후보,도법 총무원장 권한대행 등이 연대,정화개혁회의측을 압박해 온 형국이었다. 정화개혁회의측에는 월하 종정을 비롯해 벽암 원로회의 의장,다수의 원로스님,월탄 후보지지세력,특별사면을 원하는 황진경 등 일부 징계승려,서울 봉은사 연고권을 주장하는 중앙승가대 동문,조계사 통도사 은해사 등 일부 교구본사가 적극적으로 가담해왔다. 이에 반해 중앙종회측에는 ‘영우회’로 불리는 중앙종회 중심세력 등 동국대 재단 운영에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과 송원장 지지세력,실천승가회 등 지선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과 조계종 원우회 등 재가종무원과 재가불자 단체들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상당수 교구본사 주지들은 사태의 추이를 관망해온 상태였다. ◎조계종 사태 어디로 갈까/새 총무원장 29일 선출… 早期수습 총력/정화개혁회의측 핵심인물 중징계 불가피… 후유증 클듯 법원의 강제집행에 따라 청사에 복귀한 조계종 총무원(원장권한대행 도법)은 29일로 예정된 제29대 총무원장 선거를 통해 일단 새 체제를 출범시킨 뒤 최단시일 내에 사태를 수습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2일로 등록을 마감한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는 지선(知詵)백양사 주지와 고산(65) 쌍계사 주지가 후보등록을 마쳤다. 이번 사태 수습과정에서 정화개혁회의 핵심인물들에 대한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교구본사 주지 선거제도와 직영사찰 운영권 및 일부사찰에 대한 주지교체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동안 진통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청사에서 내몰린 정화개혁회의는 월하 종정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한 채 법원및 경찰에 대한 규탄과 함께 복귀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그 거점으로 양산 통도사와 영천 은해사,대구 동화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월하 종정은 23일 법원의 강제집행후 “정화개혁회의가 그냥 손들고 말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 분규가 계속될 가능성을 비쳤으며 정화개혁회의측의 한 관계자도 “종정교시 봉행을 위해 조계사 인근 건물에 사무실을 마련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 총무원 청사 강제 진입에 따라 정화개혁회의는 급속히 세를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튼 조계종 분규가 자체내의 협상이나 합의에 따라 수습되지 못하고 공권력을 불러들인 것은 불교계에 큰 상처로 남게 됐으며 한동안 후유증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조계사 사태 일지 ●98년 10월24일=‘宋月珠 총무원장 3선반대’ 승적박탈 승려 30여명,조계사 총무원청사 점거 농성 ●11월3일=宋月珠 총무원장,제29대 총무원장 후보 출마선언 ●11월4일=宋月珠 스님 반대파,3선출마 저지위한 ‘종정예하 교시봉행’ 거행 ●11월11일=宋月珠 스님 반대파,승려대회 개최 후 총무원청사 강제 점거. ‘정화개혁회의’출범 ●11월12일=총무원장 선거 무산 ●11월12일=조계종 중앙선관위,선거연기 발표 ●11월13일=宋月珠 스님,月誕 스님 등 반대파 승려 3명 업무방해 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 ●11월16일=反정화회의,정화회의 상대로 서울지검에 퇴거단행 및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 ●11월19일=宋月珠 스님파,청사진입 시도하다 정화회의측과 충돌. 宋月珠 스님 총무원장 후보사퇴 발표 ●11월30일=反정화회의,노상 승려대회 개최 후 청사진입 시도 ●12월6일=反정화회의측,제1차 범불교도대회 개최. 범불교연대회의 구성 ●12월11일=법원,총무원 점거 정화회의측에 퇴거명령 ●12월18일=법원,퇴거결정 강제집행 무산 ●12월19일=법원,퇴거결정 2차 강제집행 무산 ●12월21일=퇴거결정 3차 강제집행 연기. 정화회의,대구 동화사 강제 접수 ●12월22일=동화사 性德 스님,정부개입 촉구 ●12월23일=경찰 조계사 투입. 법원 강제집행 완료
  • 끝 안보이는 조계종 분규­불법점거 해산 이모저모

    ◎물대포·화염병 공방 6시간/경찰 새벽 굴삭기로 바리케이드 제거 경내 진입/일부 승려 자해·분신위협… 총무원 ‘아수라장’ 23일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의 격렬한 저항 속에서 진행된 경찰의 조계사 총무원 건물 진입작전은 전쟁상황을 방불케 했다. 건물 안에 있던 승려들은 경찰과 법원집행관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화염병과 음료수병,깨진 유리조각,석유통,LP가스통 등을 마구 던져 경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일부 승려들은 건물 난간에 서서 자해하거나 분신하겠다고 위협했다.오전 6시30분쯤 승려 2명이 웃옷을 벗고 배를 흉기로 긋는 자해 시늉을 하거나 석유를 몸에 끼얹으며 불을 붙이겠다고 협박했다.개혁회의측은 “승려 2명이 할복했다”며 구급차를 요청,경찰이 구급차를 들여보내려 했으나 돌과 병을 던지며 진입을 막기도 했다.또 난간에 가스통과 시너통 10여개를 세워놓고 들어오면 폭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경찰이 작전을 개시한 것은 이날 새벽 4시쯤.승려 100여명은 경찰의 진입 작전을 눈치채고 대웅전과 덕왕전 사이에 관광버스로 바리케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총무원 청사 앞에는 건설용 목재 등을 쌓아놓고 화염병 등을 던지며 저항했다. 경찰은 굴삭기와 견인차량 등을 동원해 개혁회의측 차량 2대를 견인하고 바리케이드용 관광버스를 끌어냈다.구급차와 소방차 10여대를 조계사 주변에 배치했다. 9시30분쯤에는 건물 3층에서 방화로 여겨지는 불이 나 건물 전체가 시커먼 연기와 화염에 휩싸였다.완강한 저항에 좀처럼 진입하지 못하던 경찰은 오전 9시40분쯤 최루액 물대포를 쏘며 특공대 80여명을 앞세워 진입작전에 들어갔다.먼저 청사 뒤편의 철조망을 뜯고 장애물들을 걷어냈다.현관 옆 유리창문으로 들어간 경찰은 사다리차 1대를 동원,5층 옥상으로 특공대를 투입했다.승려들을 제압하고 청사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는 30여분 정도 걸렸다. 이 과정에서 고가사다리차를 통해 청사로 진입하던 특공대원 5명이 철제계단 난간이 부서져 나가면서 3층 높이에서 떨어져 全炳周 순경(26)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 조계종 분규 ‘사이버 전쟁’

    ◎모든 종단 자료보관된 ‘전산망 확보전’/전산실 암호 풀려 美서 전문가 초빙도 ‘전산 정보를 확보하라’ 조계종 사태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전쟁’이 있었다. 총무원이 구축한 조계종 전산정보를 장악하기 위해 정화개혁회의측과 총무원측의 치열한 작전이 펼쳐진 것이다. 첩보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종의 ‘사이버 전쟁’인 셈이다. 총무원은 지난 96년부터 조계종 종무기관의 모든 자료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조계종 승려들의 승적과 교육기록,종단의 회계자료 및 재산내역,문화재 자료 등이 담겨있다. 총무원 청사를 점거한 개혁회의측이 이 자료들을 확보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총무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개혁회의측은 40여일간 청사를 점거하면서 이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총무원 전산계장 薛東哲씨(31)는 “개혁회의측이 지난달 말 M스님을 통해 미국의 한 전산전문가를 초빙,전산망에 침투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총무원 청사 2층 전산실에서 네트워크의 암호를 푼 뒤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다. 이 때조계사 밖에서 업무를 하고 있던 총무원 전산직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외부에서 급히 네트워크에 접속,암호를 어렵게 바꿔 놓는 등 방어전을 펼쳤다. 이 전산전문가는 암호가 바뀌자 당황한 나머지 2∼3일 뒤 薛씨에게 전화를 걸어 바뀐 암호를 묻기도 했다. 이 전문가는 암호를 풀려다 실패하고 얼마전 미국으로 되돌아 갔다. 薛씨는 “데이터베이스 암호를 바꾼 뒤 개혁회의측으로부터 수차례 협박전화를 받았다”면서 “총무원 청사는 점거 당했지만 전산자료를 지켜내 ‘실질적인 총무원’을 운영해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조계종 개혁회의측 승려들/대구 동화사 전격 접수

    조계종 분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이 21일 하오 대구 동화사를 전격 접수했다. 조계종 내분이후 개혁회의측이 총무원측 주지가 있는 본사를 접수한 것은 동화사가 처음이다.
  • 한국불교 다시 서야 한다/여익구 전 민중불교운동연합 의장(기고)

    ◎불교 내부문제 사법부에 맡겨/종교적 위신 스스로 내팽개쳐/불자의 ‘화합 염원’ 겸허히 수용/개혁·발전의 힘찬모습 보여야 불교신자들이 많이 읽는 불서(佛書) 가운데 ‘보왕삼매론’이 있다. 이중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구절은 ‘세상살이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말라’는 말씀이다. 곤란이 없으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니 인간은 그 곤란을 약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경책이다. 하긴 세상살이에 다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고려시대의 국사였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수심결’에서 비유하였듯이 ‘모래를 삶아 밥을 지어먹으려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곤란이나 다툼을 사전에 예방하던가 혹은 사후에라도 올바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할 것이다. 영화 ‘소림사’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아니 그보다도 더 적나라하고 다이내믹하게 폭력적 장면을 연출하여 세계적인 뉴스를 제공하더니,드디어 조계종은 지루한 법정다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법을 다루는 판사가 종교적 권위보다 우위에 서는 비극을 스스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 어느쪽 주장이 옳든 그르든 불교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맡겼다. 신도의 애환을 들어주고 해결해주어야 할 스님들이 스스로의 종교적 위신을 내버린 결과가 되고만 것이다. 4년전 조계종은 불교신자와 국민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 새롭게 태어났었다. 대중의 열화같은 염원과 열정을 뒷받침으로 독재정권과 야합하고 정권의 시녀역할을 하면서 불교의 종교적 위엄을 상실했던 서의현체제에서 서의현의 3선출마를 저지하고 불교자주화와 민주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개혁불사를 성공리에 성취한 것이다. 그 성과로 출범한 것이 ‘송월주원장체제’이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는 미진한채 송원장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날로 커졌다. 그의 3선출마가 종헌에 위배되느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다. 여러가지 종단운영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지도자로서의 대중적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런 상황에서 종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종단을 파국으로 몰아가게 만든 것이다.무엇보다도 종단 최고어른인 종정의 ‘3선불출마’라는 질책을 ‘불순한 세력의 사주’라고 비하한 것은 실로 전대미문의 독선인 것이었다. 최소한 대중의 여론과 어른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차기총무원장선거는 종단운영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정책과 인품의 대결로,개혁의 성과는 한층 발전하고 불자는 불자라는 자긍심에 기꺼워했을 것이다. 여론과 가풍을 무시한 결과는 너무도 참담하게 나타났다. 송원장 자신도 불명예스럽게 퇴진해야 했고 그후 종권을 둘러싼 물리적 공방은 4년전의 감동을 완전히 땅에 떨구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종권다툼에 재가자들 마저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종단운영을 감시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이끌어갈 책임이 재가자들에게도 있다. 바로 4년전 부패한 종권을 개혁하는데 헌신적으로 앞장을 섰던 모습이 진정한 재가불자들의 전형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광란의 현장을 연출하고 있는 무리들의 현장에 서서 분규를 부채질하는 것은 진정 올바른 불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선과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어느 편도 싹쓸이는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정당한 절차가 아니면 조계종의 내분은 끝이 없게 된다.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모든 당사자들의 대표가 자리를 함께 하여 타협과 화합의 길로 가서 원융한 종단으로 일어나 개혁과 발전의 힘찬 모습을 국민앞에 보여야 한다. 그래야 불교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역사앞에 굳건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정화개혁회의 총무원 퇴거령/법원,가처분신청 수용

    ◎거부땐 경찰 투입될듯 조계종 총무원 건물을 한달째 점거중인 정화개혁회의 승려들에 대해 법원의 퇴거결정이 내려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는 11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측이 정화개혁회의측 月呑 스님 등을 상대로 낸 ‘조계사 퇴거단행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정화개혁회의측은 총무원 건물에서 퇴거하고 조계종의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宋月珠 전 총무원장의 3선 출마문제를 놓고 지난달 11일 이후 1개월여 동안 조계종 총무원 건물을 점거한 채 대치해온 정화개혁회의 승려들이 자진 철수하지 않으면 경찰병력 등에 의한 강제퇴거 조치가 뒤따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한용운 선사 묘소에서(金三雄 칼럼)

    마지막달 첫 일요일 오후, 황초(黃草) 소슬한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선사 묘소에 엷은 햇살이 꽂힌다.선사 가신지 54년,생애를 조국독립과 불교유신에 바친 선사는 광복을 한해 앞두고 60년의 삶의 나래를 접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조국을‘님’으로 기리며 빼앗긴 님을 찾고자 애태우던 ‘선사님’가시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광복된 조국이 아직도 선사를 공원묘지 일우에 방치해온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지금 삭발에 장삼 걸치고 폭력 휘두르는 불교계 현상은 더욱 가슴아픈 모습이다. 사바중생은 실업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나라가 온통 환난에 시달리는데 승려들은 광제창생은커녕 법력아닌 폭력 의존의 부끄러운‘소림사혈투’를 계속한다. 부끄럽지 않은가. 석가모니는 ‘유교경(遺敎經)’에서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부끄러움은 쇠갈퀴와 같아 사람의 법(法)답지 못함을 다스린다.그러므로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버려서도 안된다.만일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모든 공덕을 잃게될 것이다.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착한 법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조계종단의 일부 승려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어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친지 한달,폭력과 기물파손 혐의로 승려 39명에 경찰의 소환장이 나와도,사부대중의 간절한 화합 기원도 아랑곳없다. 만해는 조선불교가 일제와 결탁하여 호국불교의 전통을 잃을 때 ‘불교유신회’를 통해 “진실로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고자 할진대 재산을 탐하지 말고 이 재산으로써 민중을 위하여 법을 넓히고 도를 전하는 실제적 수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고 설파했다. 어찌 오늘의 불교계에 던지는 설법,화두는 제외된다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선불수보(善不受報)’라 했던가.“좋은 일에 어찌 보수가 있을 것이냐”란 뜻,무소득의 경지를 말한다.무소득과 무소유는 바로 불도의 알파요 오메가다.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광대무변의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대왕은 늘그막에 “내가 누울 곳은 기껏 이 정도면 족한 것을 그 넓은 땅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바쳤구나”라고 탄식했다 한다. 출가승의 신분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채우려 하는가.만해 선사 가로되, 공(空)은 가히 분별치 못할 뿐만 아니라 분별자체도 또한 공하여 비로소 공이 되느리라. 이로 말미암아 보면 객관적 실재의 공은 없느니라.공이라 하면 어떤 것도 없음을 의미함이니 곧 유형도 없고 따라서 무형도 없음을 공이라 할지라. 나라 어려울 때면 분연히 일어나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호국불교의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원효와 서산과 만해의 정신이 계승돼야 이나라 불교가 산다. 풍란화 매운향내 당신에야 견줄손가 이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빛날런가 불토(佛土)가 이의없으니 혼아 돌아오소서. 위당 정인보가 만해 영전에 띄웠던 조사처럼 ‘이날에 님 계시면’오늘의 조계종단 사태를 어찌 볼 것인가. 총독부 건물이 보기싫어 북향한 심우당에서 변절 崔麟에게 절교를 선언하고,최남선이 인사하자 “내 아는 육당은 죽어장송했는데 당신 누구냐”고 물리치며,무소유와 민족적 기개로 불맥을 이은 만해 선사가 오늘 승려들의 행동을 보고 뭐라 하실지,그 해답을 조계종단 승려들께 묻는다.
  • 범불교도대회 충돌없이 끝나

    제29대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조계종 중앙종회와 총무원·정화개혁회의측이 6일 별도로 집회를 가졌으나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서울 종로경찰서는 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승려 48명이 1차 소환에 응하지 않음에 따라 2차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 범불교도대회 6일 개최/조계종 분쟁양측 성명전

    ◎개혁회의선 분열행위 비난 조계종 月下종정은 3일 담화문을 발표,“폭력 사태로 불교계의 위신이 떨어지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모두가 참회해 분쟁을 빨리 종식시키자”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승려대회 봉행위원장단’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6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 공원에서 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정화개혁회의측도 성명서를 내고 “봉행위측의 대회 강행은 교단과 국론을 더욱 분열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 月誕·知詵 등 승려 39명/경찰,출석요구서 발부

    서울 종로경찰서는 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청사 점거를 둘러싸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조계종 승려 39명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부,조사하기로 했다. 소환대상은 月誕 정우 등 정화개혁회의측 승려 27명과 知詵 道法 등 승려대회측 승려 12명이다.출두시한은 오는 5일 오전 10시까지이다.
  • 金 대통령 “교원 정년단축 시행 꼭 성공해야”/국무회의

    ◎“설 두번 쇠는 나라는 우리뿐”/이중과세 폐지 필요성 역설 1일 金大中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는 과천청사에서 열렸다. ◆金대통령은 교원 정년단축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자 “교육계의 혁신으로 참신한 인력을 충원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성공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다만 퇴직교사는 자문위원 혹은 자원봉사자 등으로 일할 기회를 준다면 본인은 물론 학교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金대통령은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으로부터 조계종 분규 보고를 받고 “종교문제는 미묘하므로 치안질서를 교란하는 묵과할 수 없는 부분에 경찰력을 투입하되 어느 쪽도 차별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한뒤 “경찰력이 개입하더라도 최대한 자제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집행하라”고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이중과세에 대해 직접 언급,“과거 신정이 굳어지다가 6공때 구정을 인정해 이중과세가 됐다”고 지적하고 “설을 일년에 두번 쇠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으며,이는 큰 낭비”라고 강조,이중과세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법률안 ▲은행법개정안▲수입인지에 관한 법률개정안 ▲공인회계사법개정안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개정안 ▲금융기관부실자산 등의 효율적 처리 및 성업공사의 설립에 관한 법률개정안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안 ▲증권거래법개정안 ▲여권법개정안 ▲전당포영업법 폐지법률안 ▲용역경비업개정안 ▲청원경찰법개정안 ▲도로교통법개정안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개정안 ▲대한민국재향경우회법개정안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개정안 ▲유실물법개정안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개정안 ▲교육공무원법개정안 ▲사립학교법개정안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개정안 ▲변리사법개정안 ▲정신보건법개정안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개정안 ▲국민건강보험법안 ▲공중위생관리법안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직업안정법개정안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개정안 ■대통령령안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시행령개정안 ▲중소기업수출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 ▲컴퓨터 2000년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책수립 및 지원 등에 관한 규정안 ■일반안건 ▲공공차관 도입계획안 ▲98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 ▲98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이행에 대응한 98년도 농림수산업 구조조정사업 시행내용 보고서안 ▲장애인 인권헌장 제정안
  • 조계종‘양분위기’/승려대회 계기 정화개혁회의·중앙종회측 유혈충돌

    ◎‘제2정화불사’·‘종헌 종법 수호’ 명분/종권 둘러싸고 세력다툼/어제 서로 충돌없이 상호비방 회견 송월주 총무원장의 ‘3선 출마강행’으로 비롯된 조계종 분규가 종단의 양분 위기로 치닫고 있다.20일째 총무원 청사를 접수중인 정화개혁회의(상임위원장 월탄) 세력과 지난달 30일 전국승려대회를 주도한 중앙종회(의장 법등)와 총무원(원장권한대행 도법) 집행부를 중심으로 한 세력으로 종단이 나눠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중앙종회측은 승려대회를 연 뒤 총무원청사 탈환을 시도했으나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그러나 중앙종회측은 총무원청사 탈환은 실패했지만 법적 정통성은 자신들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별도의 살림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월하 종정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중앙종회측 청사탈환을 저지한 정화개혁회의는 정화개혁회의법을 통과시키는 등 새 종권 창출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다. 중앙종회와 총무원측은 지난달 11일의 전국승려대회와 14일 서울 구룡사에 있은 원로회의의 결의가 원천 무효라며 특히 ‘3선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던 월주 전 총무원장이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정화개혁회의의 총무원 청사점거는 더 이상 명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이 때문에 ‘3선반대 연대회의’에 참여했던 지선 후보도 30일 승려대회에 적극 참여했다. 지금의 조계종 분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제2정화불사’와 ‘종헌종법 수호’를 내걸고 있지만 내면을 보면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의 구도는 종정 및 월탄 상임위원장에 대항해 혜암 전 원로회의 의장과 법등 중앙종회 의장,지선 후보,도법 총무원장 권한대행 등이 연대,정화개혁회의측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정화개혁회의는 월하 종정과 벽암 원로회의 의장,다수의 원로스님과 월탄 지지세력을 비롯,특별사면을 원하는 황진경 등 일부 징계승려,서울 봉은사 연고권을 주장하는 중앙승가대 동문과 조계사 통도사 등 일부 교구본사가 적극적으로 가담해 있다. 중앙종회측은 ‘영우회’로 불리는 중앙종회 중심세력 등 동국대에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과 월주 전 총무원장 지지세력,지선 지지세력 등이 포함돼 있다.그러나 상당수 교구본사주지들은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상태. 따라서 아직까지 총무원 청사를 둘러싼 공방이 어떻게 끝날 지는 알 수 없지만 종단이 당분간 양분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편 정화개혁회의의 월탄 상임위원장은 1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 교육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무원이 양분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1,600년 전통을 가진 조계종에 분종은 있을수 없다며 어떤 진통이나 아픔이 있어도 시간을 두고 화합해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월탄 위원장은 “정화개혁회의는 종정교시와 원로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분규로 얼룩진 한국불교현대사의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승단의 풍토를 행정위주에서 수행위주로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30일 열린 전국승려대회의 지선 봉행위원장(백양사주지)도 1일 오전 서울 견지동 천마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무원청사를 둘러싼 폭력사태에 경찰이 개입하지 않은데 대해 강력히 비난하면서 “30일과 같은 물리적 수단이 아닌 모든 방법을 동원,기필코 총무원 청사를 돌려받겠다”고 말했다.중앙종회도 이날 오전 제136차 임시회의를 열고 총무원집행부 중앙종회 교구본사주지 원로의원 등이 참여하는 수습대책위를 구성,총무원과 중앙종회의 모든 권한을 위임할 것을 결의했다.
  • 우려되는 조계종 사태(사설)

    조계종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이제 실망스러움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다.제29대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세속의 우중(愚衆)보다 더 적나라한 극한대결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3선 불가(不可) 시비가 붙고 이어 폭력행위를 동반한 총무원 청사 점거 사태가 일어났을때 우리는 대화와 양보를 통한 원만한 사태해결을 촉구했었다.다행히 사태의 한 당사자인 전임 宋月珠 총무원장이 임기를 하루 남기고 사퇴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조계종단의 분규는 계속 꼬여 가기만 하고 있다. 宋원장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정화개혁회의의 총무원 점거가 계속되면서 관계 당사자들의 사태해결을 위한 합의마저 月下종정의 거부로 무산됨으로써 30일 ‘종헌 종법 수호를 위한 승려대회’가 노상에서 강행돼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지고 또다시 난투극이 벌어져 5,0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결국 조계종단이 두쪽으로 나뉘는 파국을 맞게 될 전망이다. 조계종단의 이같은 사태는 일찍이 불교유신론을 제창한 卍海 韓龍雲의 “벼룩 서말을 몰고가는 일보다 중 셋을 몰고가는 일이 더 어렵다”던 한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일제 총독부의 분열책동에 놀아나 이합집산하는 당시 스님들을 꼬집은 卍海의 한탄이 오늘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국인에게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불교는 1600여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하며 한국인의 정신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더욱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떨쳐 일어선 호국불교의 전통도 간직하고 있다.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 제2건국을 위한 개혁 작업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터에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계가 길거리에 내몰린 실직자 구제등 국난 극복에 도움은 못줄망정 오히려 우리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계종 사태의 당사자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뜻을 둔 듯한 종권다툼의 격앙된 자세를 버리고 중생제도(衆生濟度)를 위해 속세를 떠나 출가할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어려운 시대를살아가는 중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종교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이미 재가 불자들이 폭력스님들에 대한 공양·청법·예경을 거부했듯이 크게 실추된 종단과 불교의 위상을 되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 또 아수라장 ‘佛亂’ 조계사

    ◎승려대회측­정화개혁회의 난투극 철야 대치/화염병·돌 난무… 취재기자 등 30여명 중경상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싼 조계종 내분이 30일에도 대규모 폭력사태를 불렀다. 지난달 11일에 이어 두번째다. 이날 폭력사태는 전국 16개 교구 본사에서 상경한 승려 1,200여명과 신도 500여명 등이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 왕복 6차선 차도에서 ‘전국승려대회’를 가진 뒤 3시35분쯤 조계사로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조계사를 점거한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이 경내 입구에 설치한 그레이스 차량을 뒤집고 난투극 끝에 진입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두 세력 사이에는 각목이 등장했고 돌과 유리병이 난무했다. 특히 총무원 건물을 점거하고 있던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은 미리 준비한 화염병 10개,석유통 2개,벽돌 200여장,시너 등을 던지거나 뿌리며 격렬히 저항했다. 승려대회측 승려들은 저녁 6시40분쯤 총무원 건물 옆 덕왕전을 통해 1층으로 진입했으며 밤늦도록 공방전을 벌이며 대치했다. 충돌 과정에서 포교원 직원金유신씨(34)가 돌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등 30여명이 부상,강북삼성병원과 한국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또 한겨레신문 安昶賢 기자(28)가 정화개혁회의 승려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 일부가 함몰되고 두피가 15㎝가량 찢어지는 등 중상을 입고 강북삼성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현장에 5,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나 종단 내부 문제라는 이유로 폭력사태에 개입을 자제했다. 한편 이날 승려대회에는 원로회의 의장 慧菴 스님을 비롯,呑星·知詵 스님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무분별한 교시를 남발한 月下 종정 불신임 ●12월24일까지 총무원장 선거 실시 ●총무원 건물을 불법 점거한 정화개혁회의 즉각 해산 등을 결의했다.
  • 조계종 분규 최악사태 모면할듯

    ◎교구본사 주지회의 대책위 구성 사태수습 적극적/27일 승려대회 유보등 6개항 결의/총무원장선거 조속실시 등 중재나서/중앙종회·정화개혁위측도 긍정반응 마주오는 기차처럼 파국을 향해 달려가던 조계종 분규가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의 노력에 의해 일단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수습을 위한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장충동 타워호텔에서 열린 교구본사주지회의에는 지금까지 정화개혁회의나 송원장측이 소집한 어떤 모임보다 많은 21명(총 24명)의 교구본사주지 및 대리참석자들이 나와 열띤 토론끝에 현 사태를 중대한 종단 위기국면으로 인식하고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사태수습에 적극 나서기로 결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본사주지들은 ●종헌종법 개정시 본사주지연합회 의견수렴 ●빠른 시일내 총무원장 선거 실시 ●사태에 대한 책임 불문을 원칙으로 수습방안 강구 ●27일 전국승려대회 유보 ●수습기간동안 정화개혁회의 종단분규 소지 있는 사항 진행 유보 ●수습노력 무산시 본사주지연합회가 승려대회를 개최사태해결 등 6개항을 결의하고 법장 수덕사 주지,도후 신흥사 주지 등 11명의 본사주지들로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수습을 위한 모든 사항을 대책위에 위임했다. 이에 따라 수습대책위는 빠른 시일내에 종단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24일부터 중재에 나섰다. 승려대회를 준비하던 중앙종회측도 본사주지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27일로 예정된 승려대회를 일단 30일로 연기하면서 중재활동을 주시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정화개혁회의 월탄 상임위원장은 “본사주지스님들의 결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고 “이 시점에서 또다른 승려대회가 열려 폭력사태가 빚어지면 불법(佛法)도 놓치고 종단도 깨질수 있다”고 우려한 뒤 “사태수습은 물론 종단화합을 위해 본사주지스님들의 중재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고 밝혔다. 지선스님은 “본사주지모임후 가진 만찬에서 도법 총무원장 권한대행의 총무원 대신 정화개혁회의와 본인,중앙종회측 등 3자가 참여하는 중립내각을 구성,사태를 수습한 뒤 빠른 시일내 선거를 통해 차기총무원장을 뽑자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해 이같은 방향으로 수습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불교계 인사들은 또다른 승려대회가 열리면 폭력사태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일단 충돌고비는 넘긴 것같다”고 반가워하면서 분규가 지속된다면 종단이 파탄에 이른다는 인식에 동의하고 있어 이번 본사주지스님들의 역할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 宋月珠 총무원장 후보사퇴 발표

    ◎어제 새벽 또 폭력사태… 7명 부상 宋月珠 조계종 총무원장은 19일 오후 서울 구의동 영화사에서 제29대 총무원장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宋총무원장의 3선출마를 둘러싼 종권다툼으로 내분상태에 빠졌던 조계종 분규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宋원장은 “종무행정 중단 및 종단의 위상 추락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개인적 명분이나 단기적 종단이익을 떠나 한국불교 전체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후보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5시10분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서 宋총무원장의 3선출마 지지세력과 반대세력간에 또 한차례 충돌사태가 빚어졌다.양측은 소화기 분말과 물을 뿌리고 돌과 화분을 던지는 등 30여분간 공방전을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청사 1,2층 유리창과 출입문이 부서지고 7명이 머리 등을 다쳐 강북삼성병원과 한국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총무원장 선거싸고 조계종 분규 갈수록 혼미

    ◎종정도 없고 원로도 없고…/원로회의 의장 불신임…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대회 추인/중앙종회 “원로회의 결의 무효”… 또 다른 승려대회 결정/교계 “사태수습 위해 분쟁 당사자 3후보 모두 사퇴를”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의 3선 출마강행으로 빚어진 조계종 사태가 현시점에서 누가 나서도 해결할 수 없는 난국에 빠져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선어록(禪語錄)에서나 볼수 있는 양상이 승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신자는 전체인구의 1/3 정도. 조계종은 그중 95%를 차지하는 명실공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그러나 현재 조계종단에는 종정도,원로도,어른도 없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얽매 어른들의 말씀이 한쪽에서는 받아들여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묵살되고 있다. 종단의 어른들 마저 양분된 형국이다. 지난 14일 구룡사에서 열린 원로회의(총원 21명중 7명 참석,8명 위임. 모두 15명 참석)는 그동안 원로회의 소집을 기피한 혜암 원로회의 의장(전 해인사 방장)을 불신임하고신임의장으로 벽암 부의장(신원사 조실)을 선출하는 한편 종회해산 제청과 함께 총무원 청사를 점거한 정화개혁회의측의 11일 승려대회 결의사항을 추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16일 봉은사에서 열린 중앙종회는 원로회의 결의사항을 무효로 결의하는 한편 중앙종회가 주축이 돼 또다른 승려대회를 열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구룡사 원로회의를 끝으로 사표를 제출한 원로회의 사무처장 효림스님(파주 보광사 주지)은 “14일 구룡사 원로회의는 적법 절차에 따라 열린 것”이라며 “그동안 원로회의 소집을 기피한 혜암스님이 오히려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종회나,송원장캠프나,정화개혁회의나,지선캠프나 그 어느쪽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정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송원장이 16일 오전 측근을 통해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원장의 사퇴결심에도 불구하고 정화개혁회의측은 총무원청사 점거상태를 풀 생각은 없는 것같다. 종정교시의 핵심사항이 해결됐다 해도 물리력 동원에 의한 청사점거에 대한 비난여론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태를 몰고 온 것은 송월주 원장을 세운 94년 개혁회의의 개혁작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으로 ‘정화개혁회의’를 통해 ‘새롭게’ 개혁을 해야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정화개혁회의는 월탄 상임위원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라기보다는 갖가지 이해관계를 지닌 세력의 집합체로 볼수 있다. 따라서 정화개혁회의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종헌종법 개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16일 지선후보쪽 인물을 포함한 개혁회의 간부명단을 발표한 정화개혁회의측은 교구본사 주지와 종회의원을 최대한 영입해 자신들의 구도로 새로운 선거법을 만든 뒤 종권을 창출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선후보측은 송원장이 후보사퇴를 언론을 통해 공식발표한다면 이로써 3선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정화개혁회의측은 총무원 점거를 풀고 종헌종법에 따라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교계여론은 세후보가 모두 분쟁 당사자인만큼 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송원장 뿐 아니라 월탄,지선스님도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송원장측에선 중립적인 종회의원및 일부 교구본사주지를 아우르는 연대틀을 만들어 자신이 낙점하거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전략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종회결의에 따라 송원장 임기만료일인 20일을 전후해 또 다른 승려대회를 열 계획으로 있어 조계종 분규사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혼미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 조계종 분규 약사/54년 비구·대처승 사찰 접수싸고 유혈충돌

    ◎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 법난 발생/94년 서의현 원장 축출 개혁회의 출범 ·1938년­일제의 불교 왜색화 정책에 저항,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조선불교 총본산 태고사(현 조계사)를 건립 ·46년 12월­선학원 중심의 진보적인 승려 ‘불교혁신총동맹’ 결성,사찰령 폐지,주지전횡 타파,농민에게 사찰토지 무상분배 등 기치로 제1차 불교혁신운동 ·54년­李承晩 대통령 유시로 정화불사(태고종에서는 법난으로 규정)시작. 비구­대처 사찰 접수 둘러싸고 유혈극 ·62년­통합종단 출범으로 비구­대처의 극한적인 대립 주춤. ·66년­대처승 처리문제와 동국대 재단운영 등을 둘러싸고 청담 종정과 경산총무원장간 대립. ·67년­대처승 분종선언,한국불교 조계종(70년 한국불교 태고종 개명) ·73년­경산 총무원장,고암 서옹 양대 종정과 대립 격화. 총무원장의 구속과 종정 감금 사태 발생. ·78년­총무원장 중심제파 월하스님(현 종정) 총무원장 선출,개운사에 총무원 개설. ·80년­개운사측 조계사측과 법적 합의,월주스님 통합 총무원장 선출,신군부에 의한 10·27 법난 발생. ·81년­불국사와 월정사에서 총무원측이 발령한 주지측과 전임 주지측간 난투극. ·83년­설악산 신흥사에서 주지 취임과정에서 살인사건 발생,비상종단운영위원회 출범. ·84년 6월­성철종정 사퇴,성철지지파 해인사에서 승려대회,록원스님 총무원장 선출,종권 접수. 소장파 해인사 승려대회 불법 규정,범어사종무소에서 총무원 현판식. ·88년 4월­서의현 총무원장 총무원장 해임결의안 상정 시도한 밀운 봉은사 주지(현 봉선사 주지) 해임. 밀운스님측 신도 봉은사 점거. ·88년 12월­밀운측 비상종단운영위원회 구성,봉은사에 총무원 개원. 1년여에 걸친 분규 양측 합의로 종결. ·91년­종정추대를 둘러싸고 성철 종정유임파와 월산 불국사 조실 옹립파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승려대회 개최. 월산옹립파 강남총무원 개설. ·94년 4월­서의현 총무원장 3선으로 범종추 조계사에서 전국승려대회 개최, 서의현 원장 축출. 개혁회의 출범. ·94년 11월­월주 총무원장의 개혁종단 출범. ·97년 3월­해인사와 봉은사에서 주지문제로 마찰. ·98년 11월­송월주원장 3선 출마강행 분규 시작.
  • 원로회의/방장·조실스님들로 구성된 최고 권위기구

    ◎총무원장 인준·종회해산 제청권 등 행사 원로회의는 방장(方丈)이나 조실(祖室)등 원로스님들로 구성되는 조계종단의 최고 권위기구다. 종헌에 따르면 ‘승랍(僧臘)40세,연령 65세이상 종사(宗師)급 원로비구로 구성하며 의원은 중앙종회에서 추대하도록 돼있다. 현재 의원은 碧岩(신임의장·신원사 조실) 圓潭(부의장·수덕사 방장) 瀞暎(신임 부의장·갑사 대자암) 雲鏡(봉선사 조실) 飛龍(월정사 조실) 應潭 道堅(금성사) 知宗(불갑사) 昔珠(전 개혁회의 의장) 呑星(전 개혁회의 총무원장) 淸霞(현 조계종 전계대화상) 綠園(동국대 이사장,직지사 주지) 日陀(전 조계종 전계대화상) 崇山(화계사 회주) 道圓(파계사) 法傳(해인사 방장) 正天(문수암) 普成(송광사 방장) 宗山(보살사) 性壽 등이며 慧菴스님(전 해인사 방장)은 14일 원로회의에서 제명된 상태다. 원로회의가 정식으로 발족한 것은 80년대초. 오랫동안 불교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해온 장로회의가 발전해온 형태다. 종헌상 ‘총무원장인준및 불신임결의안’ ‘종회해산 제청권’등 권한과중요 종책 조정은 원로회의의 의결을 거치도록 돼있다. 지난 90년 성철종정 재추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계기로 종단의 중요문제에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더욱이 전통적으로 ‘어른’의 발언권이 큰 불교계에서 원로회의의 결정은 법적 권한여부를 떠나 종단 안팎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원로회의 의장은 원로회의에서 호선으로 선출토록 돼 있으며 원로의원 5인 이상의 소집요구가 있으면 의장은 원로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 전국승려대회/종단 비상사태때 열리는 대규모 집회

    ◎80년대 이후 대부분 종단 내분 있을때 열려 ‘승려대회’는 산문중심으로 교구 단위의 스님들이 모여 중요사안을 의결하던 불교고유의 직접 민주주의방식의 조계종 최대의 군중 집회이다. 종헌 종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은 승려들의 총회로 모든 승려가 참여해 난상토론을 거쳐 현안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초법적인 효력과 구속력을 갖는다. 종단의 비상사태나 긴급사태시에 열리는 승려대회의 소집권자는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아 누구나 소집할 수 있지만 종단의 원로회의 등 큰스님들이 동의하는 것이 관례이다. 지금까지 개최된 승려대회는 해방이후만 해도 7∼8차례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것은 지난 83년의 해인사 승려대회를 비롯해 4차례다. 조계종 창종이후 첫 승려대회는 45년 9월로 기록된다. 38선이남의 승려 60여명이 참여,사찰령 및 31본사법 폐지와 독자적인 조선불교 교헌제정을 결의했다. 80년대이후 승려대회는 내분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83년 9월에는 당시 황진경 총무원장의 파행적인 주지인사로 촉발된 신흥사 전·후임주지 세력간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승려대회가 열려 결국 총무원 집행부가 퇴진하고 비상종단이 들어섰다. 또 86년 9월 해인사에서 열린 승려대회는 불교자주화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집회. 2천여명의 참석자들은 불교관계 악법 즉각 철폐와 사찰 관광유원지화 중지,불교탄압 전면거부,10·27법난 해명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이끌어냈다. 89년에는 밀운스님을 중심으로 봉은사측 총무원이 통도사에서 대회를 개최했고,91년에는 종정자리를 놓고 성철지지파와 월산 지지파가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승려대회를 갖고 총무원을 양분시켰다. 그리고 94년 4월에는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과 장기집권에 반대,범종추를 중심으로 조계사에서 승려대회를 개최,서원장을 퇴진시키고 개혁회의를 출범시킴으로써 승려대회의 ‘위력’을 재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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