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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계 문화유산·환경보전 ‘열기’

    종교계 문화유산·환경보전 ‘열기’

    “숙원사업인 개성 영통사 복원작업이 무사히 마무리돼 보람이 큽니다.” 지난 2년여에 걸친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을 도맡아온 대한불교천태종 김무원 사회부장은 19일 복원기념 낙성식을 앞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영통사 복원불사는 남북 최초의 사찰 복원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주변 환경을 지키려는 종교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북한 사찰의 복원활동을 통해 ‘민간 문화외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문화유산 주변의 환경을 지키려는 운동도 종교계가 앞장서고 있다. ●북한사찰 복원 적극 지원 북한의 노후한 사찰 문화재를 직접 찾아 복원하는 활동을 벌여온 불교계가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불교천태종은 2003년 5월 북측과의 개성 영통사 복원 합의서 채택 이후 2년여 만에 29개 건물과 사찰 주변을 복원, 오는 31일 개성 현지에서 이를 기념하는 낙성법회 및 학술토론회를 갖는다.16차에 걸쳐 기와 40만장과 건축재료 등을 보냈으며 스님 등 300여명과 차량 180여대가 영통사를 방문한 결과다. 최근 북측과 낙성법회 개최를 합의한 김무원 스님은 “영통사 복원으로 남북 문화교류 및 북한 문화재 복원활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천태종의 성지인 국청사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개성의 다른 사찰들도 복원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조계종도 지난 1년간 공들인 금강산 신계사 삼층석탑 복구사업을 최근 끝내고, 연말까지 요사채·산신각 등 신계사내 다른 곳들도 복원할 계획이다. 조계종 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석탑을 해체한 뒤 대웅전 낙성, 만세루 복원과 함께 1년여만에 석탑의 보존·조립이 마무리됐다.”면서 “붕괴 직전의 탑을 복원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문화환경 지키기에도 앞장 천주교 수원교구는 최근 교구내 ‘생명환경연합’라는 시민단체 성격의 조직을 만들었다. 지난 2000년부터 안성 미리내 성지 앞 약산마을에 부지를 매입, 골프장 건설을 추진해온 업체를 상대로 반대운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골프장 건설업체가 제출한 사업안이 이들의 철회운동에 부딪쳐 안성시로부터 반려된 뒤 업체측이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청구했고, 다음달 중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수원성당 강정근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유택이 있는 미리내 성지는 국내 천주교의 모태인 곳으로, 문화유적 답사지로 정해져 있으며 성지 부근은 산림보존지역으로 오염을 막아야 한다.”면서 “골프장업체를 무조건 내쫓겠다는 것이 아니라 업체와 안성시, 성지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용도변경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템플스테이 활성화 정부가 나서야”

    “템플스테이 활성화 정부가 나서야”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내·외국인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템플스테이’(불교 사찰체험)가 열악한 시설과 재정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선진국 수준의 템플스테이 환경 조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제시됐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사무국은 12일 지난 2개월간 전국 사찰 현지조사 및 지난 3년간 템플스테이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템플스테이 활성화를 위한 사찰수용태세 개선전략 수립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주5일 근무, 한류·웰빙 열풍 등에 힘입어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전국 41개 사찰에서 시설 및 인력 부족을 겪으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설이 노후하고 객실 및 화장실·주차장 등 편의시설 부족, 안내체계 미흡, 지원인력 부족 등으로 단체 참가자를 맞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선진국 수준의 템플스테이 환경을 만들기 위한 ‘10개년 계획’을 수립, 제시했다. 우선 오는 2015년까지 템플스테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운영사찰을 100개로 늘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이들 사찰의 숙박·편의시설을 정비, 확충하고 프로그램을 특화하며 안내·지원인력을 늘리기 위해 2489억원의 예산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원 분담은 정부 측 2083억원, 조계종 332억원으로 제시됐다. 보고서 용역을 맡은 한국관광정보센터 황병중 팀장은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올들어 8월까지 3만 7000명이 넘어 지난해 대비 57% 늘어나는 등 2015년까지 매년 100% 이상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전통 불교문화를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운영사찰별 맞춤식 컨설팅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조계종 총무원장 ‘합의추대’ 될까?

    오는 31일 열리는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합의추대론’과 ‘인물론’이 힘을 얻고 있다. 계파를 떠나 조계종을 제대로 이끌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지만 계파간 조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12일 조계종에 따르면 지난달 말 ‘여권’계파가 구성한 ‘제32대 총무원장 추대위원회’는 지난 5일과 10일에 이어 이날 오후 회의를 갖고, 최종 후보 1명을 뽑았다. 이날 회의는 지난 5일 회의에서 압축된 후보들인 지관·설정·도영 스님 가운데 최종 후보를 논의한 자리. 가산불교문화원장인 지관 스님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이에 앞서 ‘야권’계파인 금강회·보림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여권의 합의추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3명의 후보 중 자신들이 내세울 후보에 여권이 동의하지 않으면 별도의 후보를 선정, 경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야권측은 도영 스님을 선정할 것으로 알려져 결국 여·야의 합의추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소장파 스님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총무원장 선거의 계파 폐해가 컸다는 반성에 따라 서로 편가르지 않고 종단의 행정수반에 적합한 인물을 뽑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법랍 20여년 안팎의 스님 38명으로 구성된 화합승가포럼은 이날 서울 견지동 조계사 설법전에서 ‘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의 인물론과 역할’을 주제로 첫 포럼을 열었다.영원(전 한산사 주지) 스님은 기조발제를 통해 “책임감 있는 종무행정 능력과 제도개혁 의지, 사업 마인드 등을 갖춘 인물이 뽑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금강산 유감/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이른 아침 조계사 마당에 ‘금강산 신계사’라는 글씨가 선명한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다. 해질 무렵 안국동 사거리에 ‘개성공단’이라는 노선표를 크게 써붙인 대형버스가 지나간다. 신계사 복원이라는 역사적 큰 짐을 지고 있는 조계종의 소임자들은 금강산을 ‘마실 가듯’ 오가고 있다. 개성공단 버스 역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현대아산 직원들의 출퇴근용 정기편이라고 한다. 냉전시대 금강산은 ‘이상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그것을 현실 속에서 찾아낸 것은 비무장지대(DMZ)의 금강산 끝자락에 간신히 얹혀 있는 건봉사였다. 거기도 마음놓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출입허가절차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사미시절에 DMZ 밖 간성읍내에 있는 건봉사 포교당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그곳 현판은 ‘금강산 건봉사 포교당’이었다. 이것이 현실에서 내가 처음 만난 금강산이었다. 그 뒤 건봉사 부도탑의 ‘부처님 치아사리’의 도굴범이 검거되면서 매스컴을 탔고, 이후 이 절이 유명해지면서 출입이 좀 쉬워져 가 본 그곳의 금강산은 ‘다이아몬드 산’이 아니라 여느 평범한 산과 다를 바 없었다. 절집에서는 ‘금강산에서 발심(發心)하고 묘향산에서 수행하며 지리산에서 보임(保任)한다.’라는 말이 있다. 금강산에 가면 누구든지 출가할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묘향산에 가서 열심히 정진한 후 지리산으로 가서 그 공부를 마지막으로 푹 익히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던 것이다. 엿장수 차림으로 전국으로 떠돌던 이 찬형 거사(뒷날 종정과 송광사 방장을 지낸 효봉선사;1888∼1966)가 석두선사라는 도인을 만난 곳이 금강산이다. 대뜸 처음 만나 “어떻게 왔느냐.”고 하니 “이렇게 왔다.”고 하면서 엿판을 안은 채 방안을 한바퀴 빙 돌아보이는 선문답 끝에 ‘10년 공부한 수행자보다 낫다.’는 칭찬과 함께 출가를 허락받게 된다. 물론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이차돈의 순교지인 경주 천경림의 흥륜사를 복원한 혜해(慧海) 스님이 금강산으로 출가한, 생존하고 있는 유일의 노비구니이시다. 연세가 팔순을 훨씬 넘겼으니 또다른 살아 있는 현대사인 셈이다. ‘돌아다니는 것(만행)이 직업’인 승려이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금강산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올여름에 지인이 시월초 사흘간의 연휴에 금강산 여행을 신청하려고 하니 여권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지금 신청해야 그 때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관광’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날짜가 가까워짐에 따라 만산홍엽의 풍악산을 생각하면서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구월 어느 날이었다.“죄송합니다. 금강산 입산인원을 반으로 줄이는 바람에 공식업무가 아닌 순수한 관광객은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할 수 없죠. 다음에 흰눈이나 보러 갑시다.”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야만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알고 보니 그 회사의 오너와 경영자 간의 불협화음이 급기야 정치적으로 비화되어 북쪽에서 관광인원을 반으로 축소하라는 통보로 이어져, 그 화가 나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그 두 양반은 뉴스화면과 공식행사장의 먼발치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계획해 놓은 일이 가을에 무산되는 걸 보니 새삼 세상의 모든 일이 서로 서로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연기(緣起·관계성)의 법칙’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북쪽의 국제적 정치적 협상력의 탁월함이야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비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운 경제 협상술은 그렇게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 시각 내지는 인기주의로 풀어가려는 방식은 남과 북이 21세기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울산공단은 꼭 가봐야 하는 ‘근대화의 현장’이었다. 그 때 받은 그 기업의 ‘통 큰 이미지’는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라건대 이번 갈등이 모두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잘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이 아침이다.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종교플러스] 제12회 오대산 불교문화축전

    불교조계종 오대산 월정사는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제2회 오대산 불교문화축전’을 갖는다.첫날에는 진신사리 이운식과 2014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및 재난극복기원 영산대재, 영화 ‘웰컴투 동막골’ 상영 등이 있다.둘째날은 사찰무술 시연, 사찰음식 경연대회, 청소년 사생대회 등이 열리며 전국 20여 청소년 댄스동아리가 참가하는 댄스경연대회도 펼쳐진다. 마지막날은 춤공양, 산사음악회 등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한마당 행사로 꾸며진다.(033)332-6664∼5.
  • [여의도in] 朴대표 ‘울다가 웃다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불교계 지도자로부터 ‘쓴소리’와 ‘단소리’를 함께 들었다.28일 국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권한대행 현고 스님과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 수경 스님 등 불교계 지도자들과 만나 최근 입적해 장기 기증을 한 법장 스님을 애도한 자리에서다. 수경 스님은 “불교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기대할 것이 없다.”면서 “그런데 밖에서 보기에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수경 스님은 이어 “여야가 민생을 위한 정치를 안하고 정쟁만 한다.”고 지적한 뒤 “그런데 박 대표는 좀 낫더라.”라고 평가했다. 현고 스님은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서 사회를 변화시켰고, 국민들을 변화시켰고, 굶주림에서 해방시켰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그 새마을운동이 빛을 바래고 있다. 안타깝다.”면서 “손해보는 일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정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데스크시각] 법장 스님이 사리 대신 남긴 것은/임창용 문화부 차장

    다비식 없는 스님 입적은 왠지 쓸쓸하다. 절집 너른 마당에서 ‘스님 불 들어갑니다….’란 불제자의 소리와 함께 육신을 태우며 열반에 들어야 제격이 아닌가? 다비식후 수습된 영롱한 사리들. 중생들은 이를 보며 스님의 강철같은 수행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데 최근 입적한 법장 스님이 다비식도 없이 법구를 의대에 기증했다. 스님, 그것도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대종사 스님의 시신이 다비식도 없이 의대생들의 해부용 칼에 맡겨진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할까? 다비(茶毘)가 무엇인가. 사전적으론 단순히 ‘시신을 불태운다’ 즉 화장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고 ‘초탈’을 강조하는 불교에선 미혹의 근저에 남아 있는 티끌까지 태우고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뿐인가. 속되게 생각한다면 수만 사부대중의 극락왕생 축원 속에 치러지는 다비식은 승려로서의 마지막 ‘호사’가 아닌가? 이 모든 것을 마다한 법장 스님이 영롱한 사리 대신 남긴 것은 무엇일까? 입적 전 말씀과 행적을 살펴 미루어보건대 스님은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종교계에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남긴 것 같다. 바로 ‘실천과 포용’의 정신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한국 종교계의 가장 고질적 병폐중 하나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종교생활이라고 한다. 남을 이롭게 하는 대신 자신의 이득과 복을 구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고, 절을 찾는다. 속된 말로 ‘기도발’ 잘 받는다는 절과 암자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고,‘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협박하는 목사 앞에 겁먹은 사람들이 꼬인다. 법장 스님이 평소 강조한 것이 바로 실천적 불교 보급이다. 지난 7월 법장 스님 일행을 따라 타이완의 생활불교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타이완 최대 종단인 포구앙산스를 창건한 싱윈 스님이 ‘수행력은 다름 아닌 자비의 실천력’이라고 한 말에 법장 스님이 공감을 표했던 생각이 난다. 승려가 먼저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고,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고, 봉사에 앞장설 때 신도들도 자신만을 위한 종교에서 벗어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 같다. 자비와 사랑의 실천보다는 타인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행위가 판치는 우리 종교계의 현실은 실로 아타까울 정도다. 얼마전 집에서 TV를 보다가 한 종교채널에서 어이없는 장면에 부닥쳤다. 종교가 없는 내게 종교방송은 영 눈길을 끌지 못하는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포복절도하듯 웃는 방청객들 모습이 궁금증을 자극했나 보다. 강사 얼굴이 눈에 익었다. 요즘 한 공중파 TV가 인기리에 방송중인 프로에 출연하는 목사님 아닌가. 그는 시종일관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재담으로 타종교, 타종파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108번뇌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게 바로 109번뇌란 말요’‘드넓은 대웅전을 부처님 혼자 차지하고 있다니, 욕심도 많으시지’ 등등. 사랑을 전파해야 할 성직자가 어떻게 이런 억지 코미디로 타종교를 욕보일 수 있을까. 더구나 방송이라는 공기(公器)를 통해서 말이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긴 한국 불교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절에 한 번 가보자. 탑이 신기하고 대웅전 내부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 아무리 기웃거려도 어떤 스님 한 분 다가와 들어와보라고 하는 곳이 없다.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따뜻한 미소로 방문객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 또한 자비의 실천일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한국 불교는 내향적, 나아가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법구를 중생을 위한 ‘실험재료’로 던진 법장 스님의 메시지는 따끔한 죽비다. 사랑과 자비에 인색한 우리 종교계, 나아가 물질만능주의를 숭배하는 현대인들이 ‘화들짝’ 놀라 깨어나게 하려는 죽비 말이다. 법장 스님 입적후 장기 기증을 서약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한다. 스님이 영롱한 사리 대신 남긴 ‘보이지 않는 죽비’가 효험을 발휘하고 있나 보다. 임창용 문화부 차장 sdragon@seoul.co.kr
  • “어머니 염원 신도회관 꼭 건립” 조계종 첫 여성신도회장 김의정씨

    “악착같은 여성의 참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아울러 독자적인 신도회관 건립을 임기 중 최우선 과제로 삼아 추진해나가겠습니다.” 김의정(金宜正·64)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27일 서울 견지동 신도회관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뒤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회장은 지난 24일 열린 대의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23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여성 신도회장이 나오기는 조계종단 사상 이번이 처음. 백창기 전 회장의 사의표명으로 공석이 된 회장 자리를 이어받은 김 회장은 앞으로 2년6개월간 신도수 1000만명의 거대 조직을 이끌게 된다. “외국에서도 여신도들의 활동은 활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김 회장은 “여자들은 무슨 일을 해도 남자보다 악착같이 하는 면이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임기동안 꼭 매듭짓고자 하는 사업은 신도회관 건립. 당선 전 중앙신도회 부회장을 약 20년 동안 맡아오면서 독자적 신도회관 마련에 관심을 쏟아온 그는 “임기가 2년여밖에 안 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신도회관 마련은 돌아가신 어머니(궁중다례 및 다도 전문가였던 명원(茗園)김미희 여사)의 염원이기도 했는데, 때가 잘 맞아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울예술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음대와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을 나온 김 회장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로 한국 차문화를 복원·보급하는 데 앞장서 왔다. 불교TV 이사, 만해사상실천선양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동국대 병원·한방병원 개원식

    동국대학교 병원·한방병원이 2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식사동 병원 대강당에서 개원식을 갖고 본격적인 진료 활동에 나섰다. 진료 개시 3개월을 맞아 열린 이날 개원식에는 대한불교조계종 법전 종정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을 비롯, 손학규 경기도지사, 대한의사협회장 등 의료단체장과 김현해 동국대 이사장과 홍기삼 총장, 이석현 의무원장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개원식에서 김근태 장관은 “불교계가 큰 뜻을 모아 개원한 동국대 일산병원·한방병원이 국민건강과 우리 의료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동국대 일산병원 제공
  • 새달 31일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도공 스님)는 21일 회의를 열고 최근 입적한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뒤를 이을 제32대 후임 총무원장 선거를 오는 10월31일 오후 1∼4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후보자 등록기간은 선거일 10일 전부터 사흘간인 다음달 21∼23일이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다음달 21∼30일까지 열흘이다. 선거인단은 중앙종회 의원 81명과 24개 교구에서 10명씩 선출된 대의원 240명 등 모두 321명이며, 이중 과반 득표를 해야 총무원장에 선출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차 투표의 1·2위 득표자를 놓고 2차 투표를 해 다수 득표자가 총무원장이 된다. 어느 경우든 원로회의 추인을 받아야 4년간 조계종을 이끌게 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이명박시장, 법장스님과 인연 뒤늦게 화제

    이명박시장, 법장스님과 인연 뒤늦게 화제

    예부터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대권주자 후보군으로 떠오르면서 한때 서울시를 하늘에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명박 서울시장과 지난 11일 새벽에 입적한 법장 스님의 끈끈한 인연이 뒤늦게 화제다. 독실한 기독교인과 불교계 거두와의 만남인데다 갑작스러운 스님의 입적으로 더욱 회자되고 있다. 이 시장은 1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영결식에서 이처럼 각별한 인연을 조사(弔辭)에서 소개했다. 이 시장은 “42년생 동갑내기로 종교를 떠나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회고했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되면서 3년여 동안 국가의 장래를 함께 걱정했는데, 삶의 스승이자 친구를 잃었다며 애달픔을 나타냈다. 이 시장은 지난해 7월 ‘봉헌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을 때 스님으로부터 격려를 받고 더욱 가까워졌다고 되돌아봤다. 당시엔 불교계에서 집단으로 항의하는 바람에 이 시장으로서는 어려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두 인사는 한 달에 한 차례씩 번걸아 점심식사를 사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지난 13일에는 이 시장이 대접하는 날. 그러나 스님이 최근 조계사 인근을 녹화하는 사업을 서울시가 해주기로 한 데 대해 고맙다며 대신 내기로 했다가 돌연 입적하는 바람에 쓸쓸한 명절밑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어제 조계사서 법장스님 영결식

    어제 조계사서 법장스님 영결식

    “어느 것 하나 남김 없이 대중에게 회향(回向)하고 떠나신 법장 대종사를 추모합니다.” 지난 11일 새벽 입적한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스님과 일반신도, 각계인사 등 2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계종단장으로 엄수됐다. 행사는 타종으로 시작해 삼귀의, 영결법요(능허 스님), 행장 소개(적명 스님), 영결사(장의위원장 현고 스님), 법어, 추도사(중앙종회의장 법등 스님), 각계 대표의 조사(弔辭)와 헌화, 문도 대표 인사 등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교구본사 주지 대표 정락 스님, 수좌 대표 혜국 스님, 비구니 대표 명성 스님, 노무현 대통령(김병준 정책실장 대독), 중앙신도회 대표 김의정 권한대행,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가톨릭 김희중 주교, 달라이라마(초펠라 동북아대사 대독) 등 국내외 각계 인사의 조사가 낭독됐다. 종정 법전 스님은 영결법어에서 “생전에 법장 대종사는 생명에 대한 외경과 애종심(愛宗心)이 깊었고 이사(理事)에 집착하지 않는 기략(機略)이 있었다.”고 추모했다. 이어 법장 스님이 후원해준 최예슬(13·서울 효제초 6년)양이 ‘큰스님에게 올리는 편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주위를 숙연케 했다. 행사에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 등 정계 인사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영결식 직후 법장 스님의 위패와 영정, 훈장 등은 충남 예산 수덕사로 이운됐다. 수덕사에서는 법장 스님의 유품과 스님이 수행했던 토굴이 공개됐으며, 수덕사 설정스님 등이 법장 스님의 유고를 기리며 단체로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초재는 수덕사에서,49재는 조계사에서 각각 열린다. 한편 법장 스님의 법구가 지난 13일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됨에 따라 종단장 사상 처음으로 다비식은 열리지 않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차기 총무원장은 누구?

    지난 11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입적함에 따라 차기 총무원장이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조계종 종법의 하위법인 총무원법은 ‘총무원장 유고시 3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른다.’고 규정하고 있어 영결식이 열리는 15일 이후 선거일 공고 등 본격적인 선거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조계종 총무원 안팎에 따르면 법장 스님의 뒤를 이을 후임 총무원장 후보로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인 법등(57) 스님과 포교원장 도영(63) 스님, 부산 내원정사 주지 정련(63) 스님 등이 거론되고 있다. 도리사 주지인 법등 스님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는 등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3년 31대 총무원장 선거 때도 후보로 거론됐으나 출마하지 않았다. 도영 스님은 완주 송광사 주지를 맡고 있으며, 정련 스님은 총무원 총무부장과 포교원장 등을 지냈다.정련 스님은 소장 개혁파 등의 지지를 받아 지난 선거 때에도 후보군에 올랐다. 이밖에 조계종 교육원장, 중앙종회위원 등을 거쳐 군종특별교구장으로 자리를 옮긴 일면(58) 스님과, 경남 겁외사 주지와 벽연암 암주를 맡고 있는 원택(61) 스님 등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그동안 총무원장 선거에는 보통 2명, 많게는 3명 정도 출마해 경쟁했다.”면서 “이번에도 2∼3명 정도가 후보로 등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선거는 총무원법과 총무원장 선거법에 따라 한달 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규정대로라면 다음달 중순쯤 후임 총무원장이 선출돼야 한다. 그러나 장례 일정과 추석 연휴 등이 고려돼 선관위 소집 및 선거일정 공고 등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조계종 관계자는 “지난 1999년,2002년 선거때도 45일 이상 걸렸다.”면서 “부득이한 상황이 고려되면 60일 내에 선출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추석 이후 선관위가 소집돼 일정이 공고되면 10월 말이나 11월 초쯤으로 선거일이 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법안스님등 시신기증 서약 동참

    불교조계종 총무원 교역직 스님들이 지난 11일 입적한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생명나눔 유지를 받들어 사후 시신기증 서약에 동참했다. 조계종 기획실장 법안 스님 등은 13일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마련된 생명나눔 서약 접수대에 들러 사후 시신기증 서약서에 서명했다. 시신기증 서약에는 이밖에 문화부장 탁연 스님, 불교신문 주간 정범 스님 등도 참여했으며 다른 스님과 불자들의 서약도 이어지고 있다. 장의위원회(위원장 현고 스님)는 법장 스님의 영결식이 열리는 15일까지 조계사에 생명나눔실천본부 부스를 설치해 장기기증 서약을 받을 계획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법장스님 다비식않고 장기 기증

    지난 11일 새벽 열반한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가 동국대 병원에 기증된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구가 다비식(주검을 불에 태워 장사하는 일)을 거치지 않고 기증되는 것은 조계종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인곡당 법장 대종사 종단장 장의위원회’와 조계종 종무회의, 법장 스님 문도회 등은 12일 회의를 열고 “장기기증운동 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세운 법장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스님의 법구를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장 스님은 지난 1994년 3월 생명나눔실천회(현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설립하고, 불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사후(死後) 각막과 시신 기증’,‘뇌사시 장기 기증’ 등을 서약한 바 있다. 이로써 오는 15일 오후 3시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다비식은 열리지 않게 됐다.스님의 법구는 이날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간단한 이운의식을 거쳐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앞서 법장 스님을 24년간 보필해온 맏상좌 정묵 스님은 조계사 옆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장 스님께서 수술 전 자동차 열쇠와 방 열쇠를 저에게 건네셨다.”면서 “평생 개인 통장 하나 없이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사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의위에 따르면 11일 하루에만 4000만원이 넘는 조의금이 답지했다. 한편 이날 조계사 빈소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등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장례식은 15일 오전 10시 조계사에서 열린다. 한편 정부는 법장 스님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추서키로 12일 결정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박정희家 3세 봤다

    박정희家 3세 봤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 손자가 12일 태어났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도 첫 조카다.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인 박지만(47)씨의 부인 서향희(31)씨는 이날 새벽 강남 청담동 마리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으로 3.58kg의 건강한 아들을 순산했다. 이날 상임운영위를 주재한 박 대표는 조카의 출산 소식을 미리 들었던 듯 유달리 표정이 밝았다. 회의가 끝나기 전에 박 대표가 일어서자 김무성 사무총장이 이유를 물었더니 박 대표는 귓속말로 “조카가 태어났대요.”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예정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입적식 일정에 늦지 않기 위해 회의 중간에 나와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오전 10시10분쯤 병원에 도착한 박 대표는 산모 서씨와 아기를 본 뒤 “너무 기쁘다.”며 “집안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기여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박 대표는 “아기가 아빠·엄마를 반씩 닮아 너무 예쁘고 산모와 아기가 모두 건강해 다행”이라며 큰고모가 된 소감을 들려줬다. 박 대표는 30여분 병원에서 동생 지만씨와얘기를 나누며 기쁨을 함께했다. 이어 박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인권법 공청회’에 참석한 뒤 “아버님이 손자를 보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으셨겠어요, 동생 결혼식도 못보고 돌아가셨는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렸다. 박 대표는 “우리 가문에 귀한 선물을 안겨준 올케에게 다시한번 감사하고 늦둥이 애기 아빠가 된 동생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열반한 법장스님 북한으로 이라크로…실천불교 앞장

    열반한 법장스님 북한으로 이라크로…실천불교 앞장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我有一鉢囊) 입도 없고 밑도 없다(無口亦無底)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受受而不濫)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出出而不空)” 11일 입적하기 전 시자(侍者)인 진광 스님에게 이같은 열반송을 남긴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왕성한 대외활동과 함께 실천적 불교 보급 등을 통해 한국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장 스님은 지난 5월 민간 지도층 인사로는 처음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를 방문, 국군 장병들을 위로했다. 이어 평양에서 열린 6.15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 등과 만나 남북 불교 교류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현직 총무원장으로서는 첫 방북이었다. 또 스리랑카에 조계종마을을 세우는 한편,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조지프 디트러니 대북협상 북핵대사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의견을 나누는 등 최근 2년간 10여개국을 순방하며 한국 불교 세계화와 남북 화해 증진을 위한 대외활동에 힘을 쏟았다. 고인은 ‘신행을 중심 삼아 실천적 불교로의 지향’을 화두 삼아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1986년부터 교도소 재소자에 대한 교화사업을 벌여왔으며,1994년에는 부처의 가르침인 동체대비사상을 바탕으로 장기기증운동을 펼치는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세웠다.2003년 2월 제31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법장 스님은 1941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1960년 예산 수덕사에서 현재 수덕사 방장인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4선), 중앙종회 사무처장,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과 수덕사 주지 등을 거쳤다. 또 열반 직전까지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중앙승가대 이사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왔다. 조계종 종정표창, 교정대상 자비상,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 ‘덕숭산 수덕사’ ‘수덕사 중수기’ 등이 있다. 11일 조계사 극락전에 마련된 빈소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방문,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조의를 표했다. 멕시코 국빈방문 중 법장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한 노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법장 대종사께서는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 화해와 협력에 크게 기여하셨다.”며 “부처님의 자비하심을 생활속에서 실천해오신 높은 공덕을 기린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날 빈소에는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환경부 장관, 이미경 국회 문광위원장,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등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입적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입적

    실천적 불교를 지향하며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쳐왔던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속명 김계호 金界鎬) 스님이 11일 새벽 3시50분 서울대병원에서 64세(법랍 45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은 “원장 스님께서 최근 심장혈관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새벽에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입적하셨다.”고 이날 밝혔다. 법장 스님은 지난 5일 지병인 협심증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았으며,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기를 보내고 있었다. 법장 총무원장의 영결식은 15일 오전 10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거행되며, 다비식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종법에 따라 총무부장 현고 스님이 새 총무원장이 선출될 때까지 권한 대행을 맡게 된다. 새 총무원장은 장례 직후 구성될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하는 선거일정에 따라 종회위원 80여명과 24개 교구별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해 선출하게 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 속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버릴 수 있는 땅,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신들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산을 첩첩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좀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해 히말라야로 가는 국내여행객도 1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을 경배하고, 욕심과 분노덩어리인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히말라야는 트레킹마니아들의 천국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과 얼음, 드넓은 초원과 에메랄드빛 빙하가 흘러내린 호수, 야생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셰르파족 등…. 히말라야에서 지낸 20여일은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글·사진 히말라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서,‘히마’는 빙설(氷雪),‘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 즉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KHUMBU HIMALAYA)는 히말라야산맥(약 2800km)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 일대를 말한다.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이었던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서 붙인 이름으로서 네팔어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이다. ■ 마칼루·바룬 - 쿰부히말라야 26일간 대장정에 오르다 에베레스트의 이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권위가 담겨있다. 높이에 대한 감탄뿐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러르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경외감까지 포함돼 있다. 또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죽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들만을 위한 산은 아니다. 이곳에도 초등학생부터 70세의 어르신들까지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또다른 미덕이다. 배타적이지 않은, 열려있는 산 히말라야가 오라고 손짓해서, 그래서 떠났다. ‘동네 뒷산처럼 쉽게 갈 수 있다’는 쿰부 히말라야코스, 산에 다녀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 등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산악부원 12명, 해외원정 경험이 많은 단장, 대장, 지도위원 4명.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번 뒷산에 오르는 나까지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2005 한국청소년오지탐험’ 마칼루팀은 7월23일, 서울을 떠났다. 우리팀은 히말라야 지역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했다. 히말라야에 머무는 날은 20일정도, 오가는 비행길까지 포함해서 26일간의 여정은 시작됐다. 옛날 광부들이 다니던 길로 5000m의 패스(고개)를 2개나 넘어야 하는 준전문가들용 코스인 마칼루와 바룬지역을 지나, 일반인들의 여행코스인 쿰부히말라야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여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문가들이라야 갈 수 있다는 6461m의 메라피크 등반이었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꾼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초보의 심정, 막상 떠나려니 가슴이 무겁고 두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는 3년된 등산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향한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장비를 구입하고, 빌렸다. 사용법도 모른 채 장비를 카고(등산용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고 떠났다. ●아름답고 낯선 관문 루클라 히말라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장난감 같은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루클라로 향한다.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몇 번을 날라가다 뚝 떨어지고 옆으로 밀려가는 통에 자이로드롭을 탄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50분을 날아 루클라 비행장에 도착했다. 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서울의 편도 4차선 크기의 달랑 하나뿐인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경사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착륙을 돕는다. 반대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륙한다. 활주로 끝은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이렇게 도착한 비행장은 내전 때문에 가 제법 삼엄하다. 아직도 포카라지역은 마오이스트들(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무리)이 제법 많아 정부군과 교전이 잦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총멘 군인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손에 잡힐 듯한 산들,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소리, 파란 하늘과 구름들. 히말라야의 첫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접어들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별을 보며 저녁산책을 하리라는 꿈을 접고 롯지(산장)에 앉아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구경을 했다. 히말라야는 9월말까지 몬순기간이라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셰르파가 다가왔다. 이름은 왕추, 나이는 31살.5명의 셰르파와 60여명의 포터의 대장인 ‘사다´로 에베레스트를 무려 8번이나 올라갔단다. 내 걱정을 알겠다는 듯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해줬다. 산사나이의 말을 믿고 습기로 축축한 침대에 올랐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잠을 깼다.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수가. 간밤의 오던 비는 꿈이었던가. 파란 하늘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는다. ●오후만 되면 비내리는 몬순의 고산지대 우리는 쿰부히말라야 일반적인 트레킹코스와 반대로 간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으로 해서 쿰부히말쪽으로 돌아서 루클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은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루클라부터는 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전화, 전기도 들어 오지않는다.(큰 롯지에만 자가발전기를 쓴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가진 자나 그러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오직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포터나, 집을 고치기 위한 나무를 지고 가는 주민들처럼 우리도 히말라야를 한발 한발 내디디며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껴간다. 루클라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자 스티마 쿠알라계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자연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위를 파랗게 덮고 있는 이끼. 조그만 씨앗 하나가 몇백년동안 저렇게 바위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콸콸콸’하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압도당한다. 그런데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스틱에 의지하며 건너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찌릿찌릿’전기처럼 다가오는 차가움. 몇 발을 떼자 아예 통증이 된다. 루클라를 떠난 지 4시간30분만에 캠프사이트인 추탕가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린다. 몬순기간에 고산지대는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며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맑아진다. 히말라야에 머문 20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비로 눅눅해진 텐트에 몸을 눕혔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고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고소’, 즉 고산병이다.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것이 원인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생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저하돼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무기력증, 손발 저림, 실어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증세는 단 몇백m만 아래로 내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씻은 듯이 낫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트레킹에서는 고소적응 기간을 두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우리는 짧은 일정탓에 바로 4000m이상 올라 갔다. 4610m의 체트라고개를 넘어 4300m의 틸리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3시간을 걷자 3910m까지 올라갔다. 앞에는 하얀 봉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 커리륭이라는 7500m의 산과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바위들, 파란 초지,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4000m를 넘자 이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이 숨막히게 한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잠시 멈추면 바로 ‘헉헉’하고 몇 번 숨을 몰아 쉬고 걸어야 한다. 사진 한장 찍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다.1시간 전에 웃고 떠들던 대원들도 단한마디 말이 없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사헌의 시조가 생각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그래 가자 가. 그렇게 5시간을 넘게 오르자 체트라정상에 섰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모를 산들. 마치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체트라 정상 구석에서 덩치가 제일 큰 원준희(춘천대 3)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구토를 한다.“괜찮아?”하고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하지 못한다. 몇 명의 대원들이 고소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로만 듣던 고소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년 이어져온 자연의 힘 너덜지대를 걷는다.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지대로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한바퀴 구른다. 아예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떻게 4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에 날려 왔을 리도 만무하고…. “이게 자연의 힘이에요. 여름에 물기를 머금은 바위산이 겨울에 얼면서 갈라져 저렇게 커다란 바위가 생기고 또 바위가 여름에 물기를 머금고 겨울에 팽창을 하는 물 때문에 갈라져 이런 바위 너덜지대가 생겨요. 수 천년동안 이런 현상의 반복으로 바위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옆에 있던 서병란(43)지도위원이 대원들에게 설명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4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오늘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 좀 할 걸.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서울 가면 반드시 운동하리라, 지키지 못할 맹세도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멈추고 그토록 괴롭히던 고소도 상당히 좋아졌다. 오늘은 3690m로 내려가 모솜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 변변한 길도 없이 하루종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린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고목을 뒤덮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정글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도를 내리자 고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4356m의 탕낙을 지나 5045m의 카레캠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젠 5000m를 넘어서자 기온이 달라진다. 날씨가 초겨울 날씨같다. 이젠 5400m의 메라베이스 캠프다. 가파른 오르막과 험준한 산을 넘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확실히 산소가 희박해짐이 느껴진다. 호흡을 일정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간혹 기침을 한번 하면 자리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가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기조차 힘들다. 아니 0.1초라도 숨을 멈추고 있으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다. 모 등산화광고에서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보고 연기인 줄 알았는데,5000m를 넘어서자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을 걸으니 이젠 거대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메라라’ 라는 만년설로 덮힌 언덕. 보는 순간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고 이중화와 안전띠를 착용한다. 난생 처음 신어 보는 이중화. 스키부츠와 비슷하다. 겉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설산에서 며칠을 있어도 방수가 완벽해 동상을 막아주는 신발이다. 그러나 정말 무겁다. 거기에 아이젠을 끼웠다. 그리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띠를 착용하고 자일을 잡고 메라라를 오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몸속에 있는 독소와 스트레스가 히말라야의 기운으로 바꿔 채워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얼음절벽 위에 서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메라픽 정상을 가는 길과 홍구를 거쳐 추쿵을 가는 갈림길이다. 어디를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메라 베이스캠프부터 홍구, 판치 포카리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바위 너덜지대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인 5800m의 암푸랍체가 우리를 기다렸다. 더구나 눈까지 내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좁고 눈이 계속 내렸기 때문에 미끄러운 암푸랍체의 하산길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쿰부히말라야다. 히말라야 마을 중 가장 오지이며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4730m의 추쿵. 왼쪽으로 8500m의 로체, 정면에는 6160m의 아일랜드피크, 오른쪽에는 6812m의 아마다블람은 거칠고 황량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하얀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산. 그 선이 매우 날카롭지만 웅장하고 고왔다. 역시 많은 산사나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추쿵은 셰르파족이 사는 마을이 아니다. 몇 개의 롯지가 모여 트레킹족의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이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여기 추쿵부터는 일반인들이 쉽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추쿵부터 루클라까지를 히말라야에선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란 뜻이다. 길이 잘 이어져 있고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일단 여기부터는 롯지가 계속 있고 마을에 가게도 있어 콜라며 맥주, 과자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일단 300루피(약 70루피가 1달러. 한화로 4000원)를 주고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우∼ 세상에 맥주가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맛있다니’ 히말라야에서 먹는 맥주는 입에 쫙쫙 붙는다. 어제와 오늘은 단순한 하루 차이지만 나의 느낌은 지옥과 천당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걷기도 편하다. 집들이 이어지고 돌담이 쳐진 밭에서는 감자와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즐거운 트레킹이다. 이제 며칠동안 햇빛을 못 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을 만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긴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트레킹족들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인데, 나는 지옥훈련을 택한 셈이다. 2시간을 걷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딩보체가 닿는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라마의 문구를 새겨 놓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인 스투파. 포터들은 발길을 멈추고 스투파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간다. 셰르파족인 그들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간다. 우리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 욕심없이 라마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있다. 머리에 40㎏의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다니는 락기리(17) 또한 아버지의 직업인 포터를 대물림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사는 셰르파족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오는 락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한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들의 인생은 우리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소년 락기리가 좀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기를 빌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딩보체,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 가는 길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험준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짧은 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다리에 여러 색깔의 깃발이 걸려있다. 처음에는 ‘멋으로 했겠지.’하고 지나쳤지만 다리마다 걸려 있는 오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신성시하여 카타와 룽다(기도 깃발)를 걸어놓는 것은 물론 지날 때마다 ‘부디 하는 일 잘 되고 가족 모두 아무 탈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가득 담은 오색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3860m의 탱보체는 라마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유명한 산들을 같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전망대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후원을 한다는 티베트사원인 콤파를 만나게 된다. 탕보체의 콤파에는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콤부히말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화재로 사원이 전소되었다가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는 제1전망대에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정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남체 바자르로 향했다. 계곡의 물소리 정겨운 작고 아담한 마을, 우거진 숲.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쿰부히말라야의 명동 쿰부히말라야의 제일 번화가는 당연히 남체 바자르다. 해발 3440m에 위치한 쿰부 히말라야의 상업적 요충지이며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다. 또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쿰부히말라야에 사는 모든 셰르파족들이 생필품을 여기서 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빵집과 레스토랑, 클럽, 당구장 등이 밀집해 있어 깊은 히말라야의 산중이란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을 뒷산 꼭대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네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메라피크 정상에 서는 것이다. 메라피크는 해발 6461m로 히말라야 트레킹피크 중에서 제일 높다. 윤대장이 은근히 나를 떠본다.“베이스에서 쉬시지?”내가 등반대장이라 해도 걱정이 되겠다. 장비라고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지, 자일을 타 보길 했나, 설산 경험이 있나. 하지만 나는 큰소리쳤다.“해발 6000m, 자신있습니다.” 큰소리 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5800m의 메라 하이캠프로 올라간다.3명의 대원은 고소가 심해 베이스에 남았다. 눈부신 설원을 밟으며 걷는 대원들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마치 파란 하늘을 향해 걷고 있는 천사들 같다. 하얀 천국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통 하얀색뿐이라서 그런지 1시간을 걸었는데도 제자리인 것 같다.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일단 하이캠프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음날 새벽 2시.8명이 정상으로 향했다. 서로 몸을 자일로 묶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며 오르기 시작했다.8명중 4번째 내가 섰다. 앞뒤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걸을 수 있다. 내가 못가면 앞뒤 사람이 다 못간다. 처음 1시간은 잘 걸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잠시 대기”라는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3∼4발자국을 걷기가 힘들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로 거대한 설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자 이젠 마지막이야.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야.”라는 외침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울 때 “정상이야. 메라픽 정상이야.” 하는 외침이 들린다. 나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는 앉아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상이다. 그런데 표지 하나 없다. 약간 허탈했다. 그때 셰르파가 다가 오더니 저기 보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가르쳐 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신기루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불가능 같았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신기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만봐도 행복해지듯…. 눈앞에 드러낸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깐,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햇볕에 눈이 녹으면 발이 빠져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 있거라.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은 없지만 안녕!’ 13시간을 눈밭에서 구르다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길고 힘든 하루였다. ■ 네팔 가려면 네팔은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면적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루피(Rupee).1달러가 69루피 정도.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드물며 한화는 환전을 할 수 없으므로 출국하기 전에 달러로 바꿔야 한다. 환전은 공항이나 카트만두에 있는 타멜시장의 시설 환전소를 이용하면 된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네팔 비자를 받고 싶으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명예 네팔영사관(02-555-9040)’에 전화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발급은 보통 이틀 걸린다. 비자수수료는 32달러.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낫다. 단 비자수수료는 한국보다 2달러 싼 30달러. 비행기는 직항노선이 없다. 홍콩, 방콕, 상하이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www.nepal.pe.kr,www.nepaltour.pe.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트레킹 하려면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네팔 트레킹의 선두주자. 한 해에 3500명 이상이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알려주며 네팔 현지 지사에서 셰르파나 포터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도 공급해준다. 셰르파의 고향 남체로 찾아가는 9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205만원,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완성인 17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60만원. 푼힐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는 9일 일정의 로얄 트레킹은 185만원,180도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 13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20만원. 또 10월쯤이면 루클라에서 출발, 추탕가와 메라베이스, 암푸랍체를 거쳐 쿰부 하말라야인 추쿵, 남체를 거치는 20일 일정의 히말라야 일주 트레킹 상품도 나올 예정이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맞춘 다양한 트레킹 여행도 가능하다. 네팔 트레킹은 여행기간이 길고 오지로 떠나기 때문에 전문여행사를 통해서 가야 한다.
  • [토요일 아침에] ‘장외인간’과 ‘방외지사’/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사실 무엇이건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 글을 쓰는 것만큼의 품과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글을 읽게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상 내용보다는 제목인 까닭이다. 주변에 글줄깨나 써대고 저서라도 가진 안면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탈고 이후 제목을 다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긴 뭔가 있어 보이려면 제목이 그럴 듯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제목에 사상성과 시류성까지 반영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얼마 전에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책이 인구에 회자되더니 이즈음은 ‘장외인간(場外人間)’이란 소설이 신문의 광고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내용은 그만두고서라도 두 제목이 주는 공통적 메시지가 더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지라 나 역시 서평도 열심히 읽고 광고문마저도 통독했다. 방외지사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장의 이해관계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인기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책사(策士)인 요시라(要時羅)라는 인물은 방외지사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장수가 흥분할 때마다 사태를 차분하게 보라고 조언한다. 따지고 보면 고니시는 천주교인인 까닭에 종군 선교사 프로이스가 따라다녔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요시라가 승려였는지는 불확실하다. 더구나 그는 조선말을 잘했다는 것 말고 신분에 대해 별로 알려진게 없다. 그럼에도 작가적 상상력은 이 프로이스와 요시라라는 인물을 함께 묶어 장외인간이라는 동일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또다른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 것이라고 본다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혜에는 영역이 없다. 그리고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외환위기 시절의 일이다. 어느 승려한테 지인이 상의를 해왔다. 부도로 인해 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나니 이 정도의 금액이 남았는데 무슨 주식을 사면 가장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자포자기 상태로 반쯤은 도박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 회사 주식을 사라고 권했다. 그 승려 역시 보통사람들처럼 경제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마저 망한다면 우리나라 자체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추천했다는 것이다. 몇 년 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 지인에게 ‘진짜 도인’ 소리를 들으며 지금도 귀의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 승려가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와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장외인간인 까닭에 주변을 상식적으로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방외지사를 제대로 표현한 말은 ‘축성여석(築城餘石)’일 것이다. 성을 쌓고도 남은 돌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성을 쌓자면 큰 돌과 작은 돌 모두 각각 쓰이는 위치가 있다. 하지만 막상 다 쌓고나서도 남은 돌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거대한 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조차 필요치 않는 돌이라는 말이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지식들이 나이가 들어 소일거리 삼아 이야기나 나누면서 지내고자 몇 번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모두 뒷방으로, 그리고 승단마저 떠나 진짜 장외인간의 안목으로 살고 싶다는 그 마음은 ‘남은 돌’이라는 이 한마디에서 묻어난다. ‘방외지사’와 ‘장외인간’이라는 말은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깨고 뭔가 일탈된 삶이면서 동시에 내면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시대적 욕구의 또다른 경향을 반영한 외마디 언어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추구한다고 해서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이슬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발은 땅을 딛고 살지만 마음만큼은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또다른 욕구가 ‘방외지사’ 내지는 ‘장외인간’이란 말로 등장한 까닭에 모두에게 잔잔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나 보다.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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