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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계 표정

    17일 강원용 목사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종교계는 각각 애도문을 발표하는 등 고인의 소천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강원용 목사님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고비마다 큰 빛을 보여주셨다.”면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강 목사님의 소천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목사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오전 11시쯤 강원용 목사가 입원한 강남 삼성의료원 중환자실을 찾았으나 뇌사상태였던 강 목사와 대화는 나누지 못한 채 강 목사의 귀에 대고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세요. 하느님께 다 맡기시고 편안히 가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김 추기경은 21일 장례식에서 고인을 위한 축복의 말씀을 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강 목사님이 사회민주화에 끼친 남다른 정의심과 열정은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이루는 밀알이 되었고, 종교간 화합이나 분단된 민족의 갈등을 통합하는 데 종교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했다.”고 추모했다. 지관 스님은 18일 오후 강 목사의 빈소를 조문할 계획이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스님도 “강 목사님은 기독교 지도자일 뿐 아니라 민중과 민족지도자로서 목회활동을 펴며 종교간, 도농간, 노사간, 종파간 대화를 이끌었고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대화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기반을 조성하려 노력해온 민족의 스승”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한편 강 목사의 임종을 지킨 박종화(경동교회 담임) 목사는 “전체 기독교계 입장에서 볼 때 큰 별이 졌다.”며 “강 목사님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공동체적 리더십으로 계속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각묵스님 초청 ‘불교이해’특강

    조계종 중앙신도회 산하 불교인재개발원(이사장 허경만)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인 각묵 스님을 초청해 18일 오후 7시 조계사 극락전에서 ‘불교의 핵심과 올바른 이해’ 특강을 마련한다. 각묵 스님의 ‘앙굿따라 니까야’출간을 기념한 자리로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와, 현대인들의 참다운 삶과 관련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각묵 스님은 화엄사에서 출가해 인도와 미얀마 등지에서 산스크리트와 파알리, 프라크리트를 배웠으며, 실상사 화림원에서 파알리 삼장 번역작업에 전념하고 있다.(02)735-2428.
  • 불교관심! 일탈귀의?

    ‘절집도 고학력시대’출가해 승려가 되기 위한 행자교육에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대거 몰려 불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올해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 불교 3대 종단 행자교육과 수계식에서는 각 종단별로 전문대졸 이상이 40%선에서, 많게는 70%까지 차지해 본격적인 고학력 추세를 예고했다. 이처럼 고학력 출가자가 느는 것을 놓고 불교계에서는 일단 한국불교 발전과 포교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종단 운영과 수행 측면에선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이란 견해가 적지 않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16일 조계종 교육원에 따르면 지난 11일 직지사에서 개원한 제31기 행자교육 입교 지원자 232명(남 149명, 여 83명) 가운데 전문대졸 17명, 대졸 76명, 대학원 5명 등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가 98명으로 전체의 42%나 됐다. 연령층도 40대 81명,50대 15명 등 40대 이상이 96명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이번 행자교육에 참여한 출가자들은 5급 승가고시를 통해 공부결과를 점검받은 뒤 사미, 사미니계를 수지해 예비승려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행자교육은 지난해 출가연령을 40세 이하에서 50세 이하로 상향조정한 뒤 실시하는 첫 예비승려 교육. 따라서 조계종은 이처럼 올해 고학력자가 행자교육에 대거 지원한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禪·명상에 관심 늘고 불교 인식 개선 고학력 출가자가 느는 것은 태고종, 천태종도 마찬가지.IMF사태 이후 고학력·고령층 출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태고종의 경우 행자교육을 수료하는 250여명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이 절반 정도에 이르고 있다.천태종은 3년간의 행자교육을 마쳐야 수계를 하는데, 지난 7일 구인사에서 계를 받은 18명 가운데 70%인 12명이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로 나타났다. 고학력·고령 출가자가 느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 전체적으로 고학력·고령자가 증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특히 선(禪)·명상 등 불교에 대한 관심이 늘고 인식도 좋아지면서 자연 이같은 고학력·고령 출가자의 불교계 유입이 늘어났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불교계의 예비승려 과정은 엄격한 기상과 취침, 예불·공양, 묵언, 철야정진, 외부 접촉금지 등 까다롭고 힘이 드는 만큼 보통 30∼50% 정도가 교육을 모두 마치지 못한 채 중도탈락한다. 따라서 불교계는 행자교육을 마쳤다고 해서 모두 승려가 되는 게 아닌 만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불교 포교에 도움… 기대 충족할 프로그램 필요”조계종 기획실장을 지낸 여연(일지암 암주) 스님은 고학력 출가자가 느는 것과 관련,“종전 불교는 개신교나 천주교에 비해 사회적인 역할에 있어서 뒤졌고 거듭된 분란으로 인해 우리사회에서 전반적인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근래들어 불교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바뀌고 불교계 자정운동이 늘면서 빚어지는 긍정적인 현상”이라면서 “그러나 사회에서 낙오된 뒤 귀의하거나 소외 등 일탈의 해결처로 출가를 택하는 것은 불교계나 본인을 위해 모두 불행한 일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태종 사회부장 무원 스님도 “고학력 출가는 불교의 대승적 포교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불교의 특성상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일치시켜야 하는 수행 차원에서 볼 때 어려움이 적지 않아 고학력 출가자들에 대한 별도의 프로그램 마련 등 종단차원의 배려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범종단 반환운동 나서

    최근 조계종 현등사(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163)가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현등사 사리구반환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조계종이 사리구 반환을 위한 범종단 차원의 운동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계종은 2일 “지난달 20일 현등사 사리구와 관련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은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해온 조계종의 법통을 정면 부정한 것으로, 현등사 사리구 환수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계종은 이와 관련해 빠른 시일 안에 기획실, 문화부, 현등사, 현등사 본사인 봉선사 등으로 대책위를 결성키로 했다. 조계종이 이처럼 강도높은 반응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재판부가 소송의 쟁점인 사리·사리구의 소유권 판단을 유보한 채 옛 현등사와 지금의 현등사를 동일성이 없는 별개의 사찰이라고 적시한 때문. 조계종은 이 대목에 대해 비단 현등사 사리구 반환 차원을 넘어 한국불교의 연속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만약 판례로 남을 경우 향후 조계종의 도난·발굴문화재 등 불교문화재 환수 추진에 큰 지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사리구에 음각된 ‘운악산 현등사’가 지금의 현등사인지 인정할 근거가 부족한데다 1829년 화재로 사찰 건물이 모두 불탄 기록이 있고 조선조 400여년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찰의 동일성이 유지돼 왔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등사라는 이름이 같다 하더라도 별개의 권리주체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패소 판결했었다. 이와관련, 현등사 주지 초격 스님은 “전국을 통틀어 폐사지를 포함해 현등사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은 지금의 가평 현등사가 유일하다.”며 “사리구에 ‘운악산 현등사’라는 이름이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도 무시한 채 엉뚱하게 옛날 현등사와 오늘날 현등사가 전혀 다르다고 한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9) ‘화엄의 세계 압축판’ 영주 부석사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9) ‘화엄의 세계 압축판’ 영주 부석사

    백두대간이 내달리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태백산에서 꺾어내린 봉황산 중턱에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앉은 부석사(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중국에서 유학한 의상 대사가 신라통일기인 676년 화엄종을 들여와 ‘해동 화엄종 수사찰(海東 華嚴宗 首寺刹)’로 세운 한국의 화엄종찰이다.‘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이자 ‘나라에서 가장 예쁘며 웅장한 절집’으로 통하는 1300년 고찰.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사격이 떨어졌지만 한국불교의 ‘처음’으로 평가받는 화엄과 한국불교의 요체인 선(禪)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화엄세계의 결정판이다. 중국에서 지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화엄(華嚴)을 깨친 뒤 돌아온 의상 대사가 화엄종지를 펼 곳을 찾아다니다가 낙점한 곳이 바로 부석사.“신라 문무왕 16년(676) 왕명에 의해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들어있어 창건주와 창건연대가 명확한, 몇 안되는 고찰중 하나다.9세기 이후부터 크고 작은 가람들이 들어섰고 고승대덕들을 숱하게 배출했지만 고려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해 소실된 것을 1376년 원응 스님이 중창에 나서 많은 건물을 다시 세웠다.“이름 없는 꽃을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꽃으로 법계(法界)를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화엄. 부석사는 이 화엄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유일무이의 걸작인 것이다. ‘태백산 부석사’현판이 걸린 절의 첫 문, 일주문을 들어선 뒤 천왕문∼범종루∼안양루∼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극락정토로 이르는 찰나의 점철이다. 천왕문 바로 앞 왼편엔 절에서 불사며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세우던 당간 지주가 보란 듯이 버티고 섰다.“한국 사찰의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세련된 명작”으로 평가받는 그 유산이다. 여기서부터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으로 구성된 아홉 개의 석축은 극락에 이르는 화엄의 구품정토(九品淨土),‘구품 만다라’를 상징한다. 하·중·상품은 각각 3개의 또 다른 품계로 구성되어 있어 계단을 오를 때마다 고통의 사바 세계를 하나씩 떨쳐내고 마침내 최상품인 극락, 그 유명한 배흘림기둥의 무량수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가파른 산기슭, 자로 잰 듯한 구품층계로 나뉘어진 석단 위에서 차례로 자태를 뽐낸다. 범종루와 안양루는 각각 별개의 건물이면서, 무량수전으로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서 몸은 숙이되 얼굴은 치켜들어야만 지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돌계단을 딛고 누각의 바닥을 쳐다보며 걷다 보면 구품의 정점인 무량수전이 마침내 저 높이서 모습을 드러내보인다. 무량수전에 이르기 전 바로 전 품인 안양루. 난간 아래쪽의 편액은 ‘안양문’, 위층의 것엔 ‘안양루’라고 쓰여 있듯 누각과 문의 이중역할을 하는 독특한 건축이다. 극락의 다른 이름인 안양(安養). 여기서 내려보면 소백산맥의 봉우리와 줄기가 파도치듯 꿈틀거리며 첩첩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풍경이 일품이다. 여기에 서서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처럼 헤엄친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을 볼까나.”라는 시를 남긴 김삿갓의 심경이 절실히 읽힌다. ‘화엄 구품정토’ 부석사의 절정은 아무래도 고려 말 세워진 무량수전이다. 안양루의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사뿐히 고개를 내쳐든 추녀와 아래 중간 부분이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눈에 쏙 들어온다. 배흘림이란 멀리서 볼 때 착시현상을 고쳐잡기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일부러 굵게 만든 수법. 여기에 중앙을 향해 다소 기울도록 기둥을 만들어 가람이 뉘어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한 ‘안쏠림’과 ‘귀올림’같은 목조 건축방식은 후대에 ‘우리 민족이 보존해온 목조건축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미명을 남겼다.“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최순우 선생이 기록한 무량수전 평이다. 바로 화엄인 것이다. 그런데 무량수전 안에는 석가여래가 없다. 대신 고려시대에 봉안된 소조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 법당 서편을 지키고 있다. 흙을 빚어 만든 불상치곤 균형미가 아주 빼어나다.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가지고 서방극락을 주재한다는 아미타불. 그래서 앉은 방향도 남향이 아닌, 동쪽의 사바세계 쪽이다. 화엄사찰이라면 당연히 화엄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셨어야 할 텐데 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신 이유는 무엇일까? “화엄과 정토의 융합을 통해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삶 속에서 하나로 정착시켜 진리를 인식 밖에서 보게 한 의상 스님의 요체”라는 게 학계와 불교계의 일치된 생각이다. 그 대신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3층석탑이 무량수전 동쪽에, 석등이 앞 마당에 각각 놓여있다. 불상이 안치된 조선시대의 수미단 안쪽에는 신라 형식의 사각형 불대좌가 있다. 불상의 앞쪽에는 전통적으로 불단과 법당 바닥을 장식했던 녹유전(綠釉塼)이 깔려 있었지만 후대에 전부 마룻바닥으로 교체되었다. 이 녹유전은 일제가 모두 가져갔고 지금 부석사 유물전시관에 석 점,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점이 남아있을 뿐이다. 의상 대사가 화엄의 정신과 세계를 조형으로 압축해 놓은 부석사. 이 부석사의 가람과 공간 하나하나에는 모두 철학과 원칙이 배어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 가람을 놓고 끊임없이 연구를 지속해 왔는데 그중 하나가 안양루∼무량수전을 이루는 맥과 그것에서 30도 비켜서 한 축을 이루는 천왕문∼범종각의 이중적 가람배치다. 천왕문∼범종각 축의 끝에는 무량수전과는 별개의 대웅전이 있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그곳에는 주초의 흔적뿐만 아니라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결국 의상 대사는 한 사찰 안에 두 절을 세우고 화합과 융화를 일굼으로써 화엄의 큰 뜻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kimus@seoul.co.kr ■ 의상대사와 선묘 부석사에는 창건주 의상 대사와 중국 여인 선묘 낭자에 얽힌 유명한 설화가 전해진다. 선묘는 국비 유학생으로 당나라에 머물던 의상 대사를 흠모해 의상 대사가 공부를 마치고 배편으로 신라에 돌아올 때 용으로 변해 무사히 험한 풍랑을 헤쳐 나오도록 도왔고,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큰 도움을 주었다는 인물. 용으로 변해 의상을 보호하며 신라까지 날아온 선묘는 의상 대사가 절을 지을 때 이 지역에 있던 500명의 도적 무리가 절 창건을 방해하자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려 물리쳤다고 한다. 무량수전 왼편 뒤쪽에는 당시 선묘가 들어올려 도적 무리를 제어했다는,‘浮石(부석)’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 절의 이름을 부석사로 정한 것도 이같은 사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부석사와 관련된 의상대사와 선묘의 이야기는 설화로 회자되지만 삼국사기 등 사료에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무량수전 뒤편, 의상대사의 상과 일대기를 담은 벽화를 봉안한 조사당 오른쪽 벽면에 선묘 상이 걸려 있다. 1916년 일제가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할 때 무량수전 기단부 아래에서 기다랗고 꾸불꾸불하게 이어진 용 모양의 돌덩이가 발견되어 이 설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음이 입증되기도 했다. 당시 무량수전에 봉안된 소조 아미타여래좌상 바로 아래에 용의 머리 부분이 있었고 꼬리 부분은 무량수전 앞의 석등에서 발견되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후 이 돌덩이가 바로 설화와 사료의 내용을 따라 의도적으로 만든 석룡(石龍)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용의 허리 부분이 이어지지 않고 중간이 끊겨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의 기를 끊기 위해 저질렀거나, 혹은 일제강점기에 잘라내어 가운데 부분을 가져갔다는 등의 추측이 무성하다. 아무튼 선묘 용의 꼬리 부분이 묻혔다는 석등을 100번 돌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 석등 둘레를 도는 신도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 [토요일 아침에] 평범한 사람처럼 남으라/현고 스님·조계종 전 총무원장 대행

    사람이 오랫동안 애써 해오던 일을 그만두면 해방감도 있지만, 상실감도 없지 않다. 중앙종단에서의 소임에 끝을 맺고, 귀사한 지 한 달이 다해가는 데도 왠지 지난날들에 대한 회상이 깊어간다. 그러나 깊어진 여러 회상의 그늘 속에서 유별나게 되뇌어지는 말이 있다 입보리행론(入普提行論)에 있는 보살도(菩薩道)를 수행하는 자는 “평범한 사람처럼 남으라!”이다. 이 말속에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하나가 늘 평범한 수행자로 있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행자(스님)는 자신의 시주(신도)를 즐겁게 하려 하거나 수행 외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거나, 특권과 지위를 얻으려 할 때 분쟁에 휘말리고, 부질없는 욕망과 불화만이 수행자 자신과 그들 주변에 일어나고, 본분사인 배우고, 명상하고, 정진하는 활동이 퇴보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명해져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에게 다소 무례하게 보일지라도 “평범(평등)하게 대하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연륜이 거듭하여 때가 되면 조금씩 지위가 향상되고 소속기관에 대한 염려와 나름대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현상은 세간만이 아니다. 출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승랍과 경륜이 거듭할수록 직책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른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소위 ‘종단관’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소속된 집단 안팎의 문제를 진단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할 일과 목표를 산정하여 나름대로 노력하게 된다. 이때 승이 속과 다른 것은 향상된 능력과 높아진 지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수행자로서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행자로서의 초심(初心)과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하심(下心)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근거는 겸손해야 한다는 단순한 윤리적 관점만이 아니라 그 근원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단지 대통령으로서의 부분일 뿐 전체가 되지 못하며, 그 어떤 부분적 존재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능력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부분의 역할을 독차지하여 혼자 분주하고, 이를 과시하며 이를 통해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되면 필연코 밖으로부터 무슨 소리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능력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이명증(耳鳴症) 환자가 된다. 이명증은 풀벌레 같은 자기 소리에 잔귀가 먹고, 밖으로부터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지도자의 이명증은 요란한 자기 소리에 갇혀 많은 사람들이 청량한 개울물소리같이 흘려보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소리 그대로를 순수하게 감지하지 못한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갖기 전에 어두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이를 먼저 많이 보고 들어서 얻는 문혜(聞慧)다. 즉 궁금한 것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청하는 청문(請問)을 하고 말해주는 설법(說法)을 신중하게 듣는 경청(敬聽)을 자주 해야 얻어진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하면 사혜(思慧)를 얻고, 이를 다시 실천수행(實踐修行)하여 수혜(修慧)를 얻으면 무학도(無學道)에 이른다. 결국 사람은 남 말을 듣고 보지 못하면 어떤 지혜도 얻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자는 어떤 노력을 해도 갈등과 분열을 가져올 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 심신이 장맛비에 젖은 것 같고, 떠나온 뒤끝이 개운치 못하고 유별나게 깊은 회상의 그늘 속에 빠져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없는 듯 평범하게 있지 못하고 너무 드러났으며, 모든 사람을 평범하게 대하는 하심(下心)과 평범한 수행자로서의 초심(初心)을 좀더 잘 지켜내지 못한 허물이 있다. 현고 스님·조계종 전 총무원장 대행
  • 회색도시 떠나 내 마음속으로의 여행

    회색도시 떠나 내 마음속으로의 여행

    산사에 가면 특별함이 있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을 떠나 느끼는 자유로움에다 깊은 산속의 고요함이, 둥둥 떠다니며 방황하던 ‘자아’와 마주보게 한다. 혼자라도 좋고, 가족과 함께라도 좋다. 아이들을 위한 불교 학교도 있고,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템플스테이가 점점 전문화되면서 참선과 명상 외에도 차 만들기, 선무도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대자연을 품고 있는 산속 사찰에서 며칠만 머물러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올 여름 참선의 삼매에 빠져 보자. 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사업팀(02-732-9925,www.templestay.com)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템플스테이를 찾을 수 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61) 전북 부안 내소사 마음의 때를 벗겨, 무명(無明·어리석음)을 밝히는 일이 이리도 힘들까. 출가한 스님처럼 평생도 아니고, 단 며칠에 불과한데 새벽잠 설치고 예불 드리는 것부터가 만만찮다. 그래도 어렵사리 일어나 천년 고찰 내소사의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쏟아질 듯 총총히 박혀 있는 새벽별들, 이른 아침 전나무 숲에서의 감동, 울력과 아침공양을 마친 뒤 차탁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스님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 전통다도 강좌, 청련암으로 향하는 길의 고즈넉함…. 내소사에서는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어거지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고 몸에 착 달라 붙어 마음의 거울을 닦아준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산사에서의 하루 하루가 즐거워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웅보전은 물론 정교하게 연꽃과 국화꽃이 수놓인 나무 꽃 창살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곳 템플스테이만이 주는 선물이다.(063)583-3035,www.naesosa.org (62) ‘철새탐조’ 특화 충남서산 부석사 부석사가 위치한 천수만 일대 서산 간척지가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보니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단연 돋보인다. 새벽 예불, 아침 발우공양후 이뤄지는 ‘철새 탐조’가 바로 그것. 장다리물떼새가 논에서 하얀 날갯짓을 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황토방 10개가 있어 가족들과 머물기에는 더없이 좋다.(041)662-3824,www.pusoksa.org (63) 저승 체험속 지혜를… 전남 보성 대원사 죽음의 지혜를 가르치며, 죽음을 준비하는 도량이다. 직접 관에 누워 보는 저승체험도 하고 유서도 써 본다. 자신이 죽었다는 가상 아래 지장보살을 찾는 기도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또 자신이 지은 죄의 중압감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생명의 귀중함을 새삼 깨달아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갖게 한다. 전통 무예 수벽치기 수련도 있다.(061)852-1755. (64) 동굴법당 인기, 경북 경주 골굴사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으로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등 여러 동굴법당이 있다. 신라화랑들의 수련장이던 명성을 이어 받아 전통 무예와 불교의 참선을 결합한 선무도 수련체험이 특징.‘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경내에서 외국어 통용이 가능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054)744-1689,www.golgulsa.com (65) “월인석보 탁본해보자” 충남 공주 갑사 계룡산 숲길의 산림욕 시간과 불교 무술을 직접 배우는 시간은 몸을 건강하게 하는 웰빙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있다. 특히 도예 만들기 프로그램도 미리 신청하면 가능하다. 또 갑사만의 자랑인 월인석보 판목(보물제 582호)을 탁본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가족들을 위한 전용 숙소도 있어 가족 템플스테이 장소로 적합하다.(041)857-8981,www.tibetmuseum.org (66) 전남 해남 대흥사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자 차의 성지이다. 두륜산 숲길 산책과 차로 유명한 일지암 등 암자를 순례하는 일정이 마련돼 있다. 두륜산에 많은 차밭이 있어 직접 차를 따서 덖어 보는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참선에 관심이 있다면 별도의 참선수련회에 참가하면 된다.(061)535-5775,www.daeheungsa.com (67) 각종 프로그램 완비, 강원 오대산 월정사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머무는 이곳의 템플스테이는 하늘을 덮는 전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가족수련회, 어린이들을 위한 불교학교, 단기출가, 주말수련회, 여름수련회, 산사의 하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피부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불교에 귀의해 병을 고쳤다는 상원사가 인근에 있다. (033)332-6664, www.woljeongsa.org (68) 참선 중심 수행, 전남 순천 송광사 목사와 신부 등 타 종교 성직자들도 찾을 정도로 여름 수련회의 명성이 자자하다. 이곳 템플스테이는 이색 체험을 내세우는 다른 사찰과 달리 참선 위주의 수행 방식을 고수한다. 송광사의 큰 스님들이 직접 나서는 불교 교리와 경전 강의도 들어 볼 만하다. 어린이 불교학교도 있다. (061)755-0107,www.songgangsa.org (69) 최고 목조건물 극락전, 경북 안동 봉정사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고,‘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의 영화 촬영지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도 볼 수 있다. 새벽예불과 108배, 영산암에서의 참선, 저녁예불과 다도 그리고 창건과 관계가 깊은 천등굴 산행 등 알찬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054)853-4181,www.bongjeongsa.org (70) 무릉계곡 비경, 강원 동해 삼화사 백두대간 두타산 무릉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속에 자리한 삼화사 지척에는 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어 사찰에 머물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대자연속에서 이뤄지는 범종치기 체험, 참선, 스님과의 대화는 물론 이른 아침 일출보기, 산행 명상은 세속을 떠나 마음을 가라 앉히는 프로그램들이다. (033)534-7676,www.samhwasa.or.kr ■ 팜스테이&전통 체험마을 강릉 선교장, 아산 외암마을 등 전통체험마을을 거닐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조선시대 생활상을 느끼며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낮에는 감자를 캐거나 고기를 잡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 수 있는 팜스테이. 전국의 250여개의 팜스테이 마을에서 오붓하게 가족끼리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다.‘팜스테이´(02-2080-5588,www.farmstay.co.kr)에 지역별, 체험별로 자세하게 정리가 돼 있다. 자녀들과 함께 역사 기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강릉 선교장과 아산 외암마을 등 전통체험 마을에 가면 조선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농협, 문화재청 (71)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선교장 명품 가방, 명품 옷과 같은 명품의 홍수시대에 이 고즈넉한 고택 선교장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명품 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종의 형 효령대군 11대 손인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10대에 걸쳐 300년이 흐르도록 집의 형태와 기운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가옥인 이 선교장은 독특한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민간 소유의 고택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1965년 국가지정 문화재가 됐다는 안내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외에도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이 그대로 있어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고택 곳곳에서 이씨 가문의 인품과 향기가 절로 느껴진다. 사람의 손으로 이리도 예쁘게, 그러면서도 위엄을 갖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싶다. 여름이지만 따뜻하게 군불 땐, 문간의 행랑채에서라도 하룻밤 묵고 가고픈 마음이다. 이는 다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며 전통의 고택을 ‘과거’가 아닌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현재’의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진 이 집은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자연이 됐다. 강릉 경포대 호수 가까이 자리잡은 명당 선교장 뒤로는 몇 백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앞으로는 큰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아마도 이 연못의 정자‘활래정’에서 이 집 주인들은 경포 호수의 경관을 보며 시 한 수를 읊었으리라.(033)648-5303,www.knsgj.net (72) 소금 만들기 체험, 태안 볏가리 마을 “아, 참 신기하네. 어떻게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 수 있을까?” 충남 태안반도를 끼고 있는 바닷가 마을 태안 볏가리 마을에서 염전 체험을 하는 아이들의 탄성이 바다에 울려 퍼진다. 바둑판 같은 염전에 놓여진 바닷물이 태양 아래서 염도 2도에서 27∼28도로 올라가자 하얀 소금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의 손에 직접 채취한 하얀 소금이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염전에 물을 퍼올리는 수차와 용두레 등을 돌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5000원만 내면 해설을 해주는 가이드와 함께 1시간 남짓 체험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다 보니 벌써 이달중 염전체험의 예약이 끝난 것이 못내 아쉽다. 갯벌에서는 돌게잡이 등 생태학습을 하고 포도 따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인근에 마애삼존볼과 꽃지해수욕장이 있다. 마을의 명칭은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세웠던 볏가리대에서 유래됐다. 숙박비 4만원. 한원석 001-9635-9356, www.byutgari.com (73) 계단식 다랑논 풍경 독특, 남해 다랭이 마을 바닷가에 인접한 농촌마을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은 바닷가 절벽을 깎아 계단식의 작은 다랑논의 독특한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 곳이다. 손그물 고기잡기, 떼배타기, 바다 래프팅, 문어잡이 등 다른 농촌마을과 차별화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숙박비 1만원.(055)862-4511,www.darangyi.gozvil.org (74) 조선시대 생활상 생생…아산 외암마을 지난 2000년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이십여 채의 기와집과 삼십여 채의 초가집이 고루 뒤섞여 있어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마을 곳곳에 조선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는 물론 참판댁, 참봉댁 등 양반가옥과 초가집이 원형 그대로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가장 유명한 집은 영암댁이란 이름이 붙여진 180년쯤 된 기와집. 거북, 두꺼비와 같은 십장생 형상의 정원석과 반달 모양의 연못 등으로 꾸며진 정원이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부인이 이 집안 사람이었기에 영암댁의 현판 등의 글씨는 대개가 추사의 것이다. 농촌과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041-541-0848,www.oeammaul.co.kr (75) 15세기 골기와집 옹기종기…경주 양동마을 고색 창연한 골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동마을은 15∼16세기에 형성된 전형적인 민속마을이다. 마을 가옥의 대부분이 문화재인데도 그것도 모자라 마을 전체를 다시 중요 민속자료로 다시 한번 지정할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월선 손씨의 종가 서백당과 중종이 회재 이언적 선생의 모친 병간호를 배려해 지어 준 향단, 성종과 중종 양대에 걸쳐 벼슬을 한 우재 손중돈 선생의 관가정 등은 조선시대 대저택을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길을 걸으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해 재밌다.(054)762-4541,www.yangdongsarang.com (76) 조선시대서 시간이 멈춘 곳, 영주 선비촌 경북 영주의 고택 열두 채를 원형대로 재현,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의 생활상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전통 체험 마을이다. 살림살이 집은 물론 정자, 물레방아, 대장간, 곳간 등 76채의 건물로 저잣거리와 전통골목까지 꾸며져 있다. 이곳 열두 채의 전통 가옥에서는 실제 숙박도 가능해 하룻밤 글 읽는 선비생활을 할 수 있다.‘소수서원’‘소수박물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자녀들과 함께 역사 공부하기에 딱 좋다.(054)638-7114,www.sunbitown.com 번잡함이 싫어 여행을 떠나지만 사실 여행지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에 치이기 쉽다. 한적한 시골길, 특히 돌담길이 예쁜 곳을 찾아 떠나보자. 콘크리트 벽과 길 속에 지친 마음이 야트막한 돌담길을 걷노라면 어느샌가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다. (77) 실개천 감싼 경남 의령 산천렵마을 정겨운 농촌마을 경남 의령 산천렵 마을은 풀섶에 뒤덮인 실개천과 마을을 감싸안고 있는 찰비산, 아름다운 동굴법당의 일붕사 등이 있다. 산천렵마을이란 이름에 걸맞은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미꾸라지 등의 물고기잡기. 이밖에 짚공축구나 전통사냥 도구인 덮치기를 이용해 참새를 잡는 덮치기 참새사냥, 대나무 낚시 등을 할 수 있다. 숙박 2만원.(055)572-8185.www.yedong.go2vil.org (78) 고구마 심기 체험, 인천 장봉도 인천 장봉도는 영종도에서 배로 45분거리로 인접한 신도와 시도 등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섬이다. 국사봉 등 섬안에 봉우리가 많아 장봉이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직접 고구마 심기 등 농사체험 외에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백사장의 옹암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은 게와 조개들을 잡을 수 있다. 일과후 숙소의 푸른 풀밭에서 열리는 숯불 바비큐 파티가 일품.(032)746-8003,017-312-8003, www.nongwon.org (79) ‘팜스테이 1호’ 여주 상호리마을 놀다 보면 하루해가 짧게 느껴지는 경기 여주 상호리마을은 팜스테이 마을 1호로 지정된 곳이다. 산자락에 파묻혀 옹기종기 지붕이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두부, 인절미, 손수건 천연염색, 천연향비누 등 다양한 만들기 체험뿐 아니라 금싸라기 참외, 찰토마토, 호박따기 등 다양한 농사체험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숙박비는 2만원.010-9763-0160,www.suksoo.com (80) 맑은 계곡물 압권, 강릉 해살이마을 여름 피서지로 인기 높은 강원 강릉 해살이 마을은 마을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압권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놀다가 문득 바다가 그리워지면 인근 동해안 해변으로, 산이 그리워지면 오대산 국립공원으로 달려갈 수 있다. 동네 사람들과 수리취떡 만들기와 감자 캐기를 할 수 있다. 막사발 도자기 만들기와 솟대 만들기, 짚물공예, 천연 염색도 체험할 수 있다. 숙박비는 1인당 1만원.(033)641-8251,www.haesari.go2vil.org (81) 고성 학동마을 돌담길 수백년간 대대로 만들어져 온 경남 고성 학동마을 돌담길은 수태산 줄기에서 나는 납작돌(판석두께 2∼5㎝)과 황토를 섞어 쌓았다. 이 가운데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55)670-2221. 이밖에 문화재로 등록될 정도로 예쁜 옛 돌담길 6곳을 소개한다. (82) 성주 한개마을 돌담길 경북 성주 한개마을의 돌담길은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해 기와를 담위에 얹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은 영화 ‘춘양전´의 촬영 장소였던 한주종택이다. 성주군청 새마을과 (054)933-0021. (83) 강진 병영마을 돌담길 전남 강진 병영마을의 돌담길은 담장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 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아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담쌓기를 해 다른 지방과 구별된다.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061)430-3229. (84) 거창 황산마을 돌담길 경남 거창 황산마을의 돌담길은 나지막한 이곳 산세처럼 키가 작지만 기와를 이용해 꽃모양을 수놓아 미적 감각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창군청 문화관광과 (055)940-3183.
  • 도난문화재가 박물관으로 간 까닭은?

    한국불교미술박물관(서울 종로구 원서동·관장 권대성)에 전시 중인 불화 ‘아미타회상도’가 지난 1994년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도난당한 후불탱화로 밝혀짐에 따라 원소장처인 백양사와 현 소장측인 불교미술박물관이 반환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조선 영조연간인 1775년에 제작된 ‘아미타회상도’는 백양사 극락보전에 걸려 있었으나 1994년 도난당한 뒤 그 이듬해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이 인사동 고미술상에서 구입해 수장고에 보관하다가 2003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전시해오고 있다. 지난 4월 이 불화를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서 발견한 백양사측은 “도난당했을 때 즉시 문화재청에 신고했고 1999년 발간된 조계종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에도 실려 있어 박물관측이 도난문화재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부터 전시를 시작한 것은 공소시효를 피하려 한 것인 만큼 성보(聖寶)를 즉각 반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상 구입한 시점으로부터 7년이 지나고 구입할 때의 ‘선의 취득’이 인정되면 도난문화재라 하더라도 소장자가 처벌받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박물관측은 “불화를 구입하면서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 단속반을 통해 도난신고 여부를 확인했으며 구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불교문화재 도난백서가 나오지 않아 백양사 성보임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백양사측은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문제의 백양사 후불탱화 말고도 ‘대흥사 사천왕도’(1978년 도난),‘불회사 동종’(1992년 도난),‘관룡사 영산회상도’(1992년 도난) 등 3건의 도난 문화재들이 소장되어 있음을 확인, 이 박물관을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조계종 총무원과 원 소장 사찰들이 연대한 반환운동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7) 불상없는 ‘寂滅宮’ 효시 통도사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7) 불상없는 ‘寂滅宮’ 효시 통도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신라 진골 출신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출가해 당나라에 유학한 뒤 선덕여왕의 요청에 따라 귀국한 자장 율사가 계율의 근본도량을 삼겠다는 원을 세워 건립한 1300년 역사의 신라고찰이다. 자장 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 삼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로 통하는 사찰. 선원, 율원, 강원의 삼원을 갖춘 사찰에만 격이 주어지는 국내 5대 총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라 최대의 거찰 황룡사와는 형제사찰로 여겨졌을 만큼 사세가 컸던 도량. 다른 사찰의 가람 배치와는 크게 다른 파격에 더해 다양한 전각과 불상으로 인해 불교는 물론 한국건축 양식의 총집합처로 여겨지는 독특한 사찰이다. 해발 1050m 영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봉우리들이 한군데로 모아지는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핵. 통도사의 근본정신이 집결된 곳이자 한국불교 최상의 성지이기도 하다. 산문을 들어선 뒤 조금 걷다가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을 차례로 지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범상치 않은 전각들. 신라기에 세워진 대부분의 사찰이 남북 일직선상에 금당과 탑이 놓여진데 비해 통도사는 전각들이 남북 축을 유지하면서 동서로 길게 배열된 파격을 보여준다. 냇물을 끼고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3개의 권역으로 나뉘어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만도 50여개. 상로전에는 금강계단과 대웅전이, 불이문부터 세존비각까지의 공간인 중로전에는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이,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영역인 하로전에는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만세루가 들어서 있다. 각 구역의 전각들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열로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 사이의 공간 크기와 모양이 보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게 독특하다. 이 가운데 금강계단과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만 창건 초기에 건립되었고 나머지 것들은 대부분 고려 이후 세워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통도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삼국유사’등의 기록을 볼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자장 율사가 귀국한 643년부터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646년 사이로 추정되며 지금은 646년이란 게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통도사란 사명이 붙은 것에도 여러 설이 통한다. 첫째는 출가한 모든 스님들이 이곳의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고 득도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 또 하나는 통도사가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것이다. 자장 율사는 중국에서 부처님 정골(頂骨)과 손가락뼈, 치아사리 등 사리 100과, 부처님이 입었던 금란가사, 대장경 400권을 갖고 돌아왔는데 이 가운데 정골과 손가락뼈, 치아사리, 금란가사, 대장경이 통도사에 봉안되었다. 나머지 사리는 경주 황룡사탑과 울산 태화사탑에 나누어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 통도사는 불상 없이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는 ‘적멸궁’의 원조이자 모든 사찰의 근본도량이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통도사에는 범상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1956년 한밤중에 대웅전에서 화엄산림법회가 열릴 때 갑자기 금강계단 사리탑에서 빛줄기가 뻗어올라 대낮같이 밝아져 양산 주민들이 통도사에 화재가 발생했다며 놀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새벽 예불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한 스님들이 종종 금강계단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종소리를 듣곤 놀라서 깨어나기도 한단다. 이런 통도사의 핵심이자 요체는 단연 금강계단과 대웅전. 이 가운데서도 금강계단은 부처님 사리가 봉안된 통도사의 적멸궁이다. 창건 때부터 사리를 친견하려는 참배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고려 왕실과 사신들은 물론 몽골 황실에서도 참배했다고 한다. 고려말∼조선시대엔 사리를 약탈하려는 왜구들을 피해 스님들이 개성 송림사, 서울 흥천사, 금강산 등지로 옮겨다니며 사리를 구했다.“몸과 마음이 부정한 사람이 사내에 들어오면 고약한 냄새가 나 곧 사람이 광란하여 땅에 쓰러져 미치게 된다.”“금강계단 위로는 일체 날짐승이 날지 않고 그 위에 오줌과 똥을 누지 않는다.”는 ‘통도사 사적기’의 사리 부분 기록도 흥미롭다. 창건 때의 모습은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의 “2층으로, 위층 가운데에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과 같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계단은 2중 사각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浮屠)가 놓인 석조로 계단 사방에는 고려∼조선시대에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불좌상(佛坐像)과 천인상, 신장상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금강계단 남쪽에 맞닿아 있는 정면 3칸, 측면 5칸의 대웅전은 금강계단과 함께 축조된 통도사의 중심건물. 대웅전 바로 뒤편 금강계단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때문에 커다란 불단만 있을 뿐 불상이 없는 게 특징이다. 불단 북쪽 벽에 큰 창을 내어 금강계단을 향해 참배하도록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64년(인조22년) 중건했는데 건물 4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린 게 독특하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이라 쓰여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바라보이는 대웅전의 서쪽 벽은 측면이지만 마치 정면처럼 보이듯 모든 방향에서 볼 때 정면으로 느껴지며 지붕도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형을 띠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신용철 학예연구실장은 “통도사 대웅전의 정(丁)자 건축은 여주 영릉 등 왕릉 사당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태로 보통의 왕릉 사당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신성한 공간의 의미에 더해 두 개의 건물이 한 건축안에 혼재된 유일한 사찰 건물로 목조건축의 백미”라고 평가했다. kimus@seoul.co.kr ■ 자장율사와 구룡지 통도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장 율사와 구룡지(九龍池)에 얽힌 이야기이다.‘삼국유사’‘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 등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가 창건되기 전 이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여기에는 아홉 마리의 큰 용이 살고 있었는데 자장 율사가 용들을 제압해 그 곳에 세운 가람이 통도사라고 한다.“자장 율사의 항복을 받은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다섯은 오룡동(五龍洞), 셋은 삼동곡(三洞谷)으로 가고 한 마리가 이곳에 남아 절을 수호할 서원을 세우자 자장 율사가 그 용을 머무르게 한 뒤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는 게 바로 지금 대웅전 서편의 구룡지. 구룡지는 불과 4∼5평 남짓한 크기에 수심도 한 길이 채 안 되는 타원형의 작은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수량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 통도사 스님들 사이에서는 ‘구룡신지(九龍神池)’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간에 전하는 다양한 전설에서도 구룡지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자장 스님이 중국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할 때 승려로 현신한 문수보살이 부처님 진신사리와 불경, 가사 등을 주면서 “그대의 나라 남쪽 영축산 기슭에 나쁜 용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귀국한 자장 스님이 선덕여왕과 함께 영축산 연못을 찾아 나쁜 용들을 위해 설법한 뒤 못을 메우고 그 위에 금강계단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자장 율사와 구룡지의 관계를 다르게 해석한다. 자장 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당시 양산 지방에는 경주의 왕권에 버금가는 세력집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자장 율사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연못의 나쁜 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통도사 금강계단을 설치했다는 설화는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양산 지방의 정치집단을 제압하기 위해 통도사를 세웠다는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즉 불교와 중앙왕권이 제휴했다는 풀이인 셈이다.
  • 가족과 떠나는 템플스테이

    가족과 떠나는 템플스테이

    산사(山寺)에 가면 특별함이 있다. 정갈하게 빗질된 산사의 앞마당을 보노라면 아등바등 살아가는 속세의 때가 문득 느껴진다. 여유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 일상에 쫓겨 사는 중생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래서 한번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숲이 우거진 산사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 속세와 잠시 인연을 끊고 마음의 휴식과 사색·명상 등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시간, 즉 ‘산사 체험’이 우리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도 좋고, 가족과 함께라도 좋다. 근처 산사를 찾아 하룻밤을 지내며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맛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올 한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 왔다면 이제는 ‘중간점검’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주는 충남 서산 도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부석사를 찾았다. 녹음이 우거진 6월의 산사에는 짙푸른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뿐 아니라 고즈넉한 절집, 깨끗한 물과 공기, 바람따라 춤을 추며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 듣고만 있어도 마음을 씻어주는 불경 소리에 세상 시름을 잠시 놓게 하기에 충분하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나무들도 돌아보고 천수만의 철새를 보며 생명의 존귀함까지 느끼게 하는 알찬 체험이 가득하다. #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충남 서산에서 어렵게 부석사를 찾아 차를 세웠다. 눈을 들어 쳐다봐도 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만든 터널 아래 잘 정돈된 돌계단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부석사의 일주문인 사자문. 양쪽에 사자가 버티고 서 있다.‘입차문래 막존지혜.’(이 문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지혜를 갖지 마라.)라는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 이제 일주문을 지났으니 세속의 모든 인연과 지식을 벗어버리고 나를 한번 찾아보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계단을 걸었다. # 새소리가 그리우면 부석사로 가라 “휘리∼릭” 휘파람을 불자 새 한 마리가 스님 손에 앉아 무엇인가를 물고 다시 날아간다.“신기하지요.”라며 저두(합장하며 목례를 건네는 것)를 한다. 이어 스님은 “제가 여기 주지인 주경이라 합니다. 우리 부석사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고 하더니 “우리가 살면서 항상 자신에게만 집중했다면 여기서는 다른 생명들도 생각하고. 또 늘 보기는 했지만 보지 못했던 세계를 느끼고 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갖가지 새들이 끊이지 않고 날아들고 또다시 산으로 날아간다. 아니 무슨 새들이 절 주변에 이렇게 많다니 정말 신기하네…. 새들이 모여드는 것은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석사의 정신 때문이다. 겨울철에 새들의 먹이통을 매달아주고, 툇마루에도 새들의 먹이를 항상 놓아둔다. 그것도 모자라 스님과 보살들 주머니에는 항상 새 먹이를 가지고 다닌다. 보은에 화답하듯 새들도 아름다운 노래로 스님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삐리릭’,‘지찌릿 찍’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들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나무 향이 가득한 산사 산사에 가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좋은 공기와 나무에서 뿜어내는 각종 발산물질인 피톤치드가 있기 때문. 도비산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아침 안개가 걷힐 무렵 스님과 함께 떠나는 산책은 말 그대로 ‘보약 세첩’이다. 도비산 정상까지 빠른 걸음으로 30분. 우거진 나무들을 친구 삼아, 그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이렇게 자연으로 둘러싸인 부석사에서의 아침은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 108배, 그리고 철새야 놀자 때마침 주말을 이용해 30여명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 주경 스님은 저녁 공양 후 이들과 녹차를 마시며 차담을 나누고 기본적인 참선 수행 방법을 가르쳐준다.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눈을 반쯤 뜨고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며 1에서 20, 다시 20에서 1로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호흡을 한다. 호흡하며 수를 세는 동안 잡념과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탁 탁 탁’하고 경쾌한 죽비소리에 따라 호흡을 가다듬다보면 상사와 불화, 집안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덧 가슴속에서 사라진다. 다음날 새벽 4시 맑은 목탁 소리에 산사는 잠에서 깨어난다. 아침예불(참가는 자유)을 마치고 올리는 108배.‘어떻게 절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108번째 절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벽 미명이 세상을 밝힐 때쯤 모두 모여 아침 참선을 했다. 이어지는 ‘울력’은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절 마당을 쓸기도 하고 호미로 주변의 잡초를 캐는 시간. 처음 빗질을 하는 아이들에겐 마냥 신나는 시간. 문득 자신의 마음을 닦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침 공양 후 천수만 간월호와 그곳으로 흐르는 해미천 철새 탐조 시간. 이는 부석사만이 간직한 특별종목이다. 출발 전에 절 마당에서 스코프(망원경) 사용법과 철새 보는 법 등의 교육을 받고 떠난다. 천수만 습지 연구센터 생태학교장 한종현(서산 서일고 교사)씨가 강사로 나선다. 천수만 일대 서산 간척지는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길다란 빨간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장다리물떼새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모내기를 막 끝낸 논에서 하얀 날갯짓을 하는 새백로와 중백로. 회색의 깃털이 아름다운 왜가리의 움직임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탄성을 자아낸다. “여러 가지 곤충과 새 등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는 김진선(21·한서대)씨,“도심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공영실(30·부산)씨. 다들 푸른 숲속에서 몸과 마음을 잠시 놓아두고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 아니라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생명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피력한다. ■ 산사체험 여기가 좋아요 충남 서산 부석사(041-662-3824,www.busoksa.com)의 산사 체험은 말 그대로 자연과 함께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참선과 발우공양, 그리고 각종 철새에 대한 공부, 탐조 등을 할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다. 부석사는 단체뿐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조그만 황토방 10개를 갖추고 있다.충남 공주 마곡사(041-841-6221)는 마음 바로보기, 감사명상, 편지쓰기 등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욕심을 버리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마음을 비우는 자비명상 체험을 진행하고, 전남 보성 대원사(061-852-1755)는 직접 관에 누워보는 저승체험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경북 경주 골굴사(054-744-1689)는 전통 무예와 불교의 참선을 결합한 선무도 수련체험으로 외국인에게 인기.충남 공주 갑사(041-857-8981)는 선체조와 호신술인 불무도를 체험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사업팀(02-732-9925),www.templestay.com을 참조하면 된다.www.pusoksa.org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5) 대구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5) 대구길

    청도 옛길은 팔조령을 넘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으로 들어선다. 가창은 지난 1995년 경북도에서 대구시로 편입된 곳이다. 편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시골풍경이 완연하다. 날씨마저 흐려 퇴비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지방도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고 곳곳에 러브호텔이 들어서 개발의 손길이 턱밑까지 왔다는 느낌이다. 팔조령 아래 녹문삼거리는 새로운 도로가 개설돼 녹동서원과 남지장사를 찾는 사람만 지나가는 한적한 곳으로 전락했다. 녹문삼거리에서 2㎞쯤 가면 벌판 한가운데 위치한 데서 유래됐다는 ‘들마마을’이 나온다. ●얼음같이 찬 ‘냉천´ 하루 5000명 발길 오동원을 거쳐 30번 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처음으로 큰 건물을 만난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장외경마장이다. 여기서부터 위락시설과 음식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중 가장 우뚝한 봉우리인 최정산 자락에 허브힐즈(구 냉천자연랜드)가 자리잡고 있다. 가창면 냉천2리 정동곡(50) 이장은 “냉천은 최정산 골짜기와 청도 팔조령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가창면 주리에서 만나면서 큰 계곡을 만들고, 이 물이 얼음같이 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소주회사가 냉천의 물로 소주를 만들 만큼 수질이 좋아 주말에는 하루 5000여명의 대구 시민들이 물을 받기 위해 몰려 든다. 옛길은 냉천에서 파동을 거쳐 신천을 넘어 대구 시내로 들어간다. 파동은 수성못 입구에서 가창까지 난 길이 곧다고 해서 ‘니리미, 파잠, 파집’ 등으로 불렸다. 파동에서 상동교를 거쳐 대봉네거리, 봉산육거리로 이어진다. 이 길은 비교적 곧게 연결돼 있다. 대봉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건들바위가 나온다.4m 높이의 건들바위는 대구시 기념물 2호로 지정돼 있다.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바위의 모양이 삿갓을 쓴 노인과 같다고 해서 ‘입암바위’ 즉 ‘삿갓바위’라고도 불리고 있다. 원래 이 바위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1776년(조선 정조1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면서 물줄기가 신천으로 돌려져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대구시가 1994년 건들바위 종합조경공사를 실시하여 분수와 폭포를 새로 설치하고 물이 흐르도록 하여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건들바위 뒷산은 조선 순조 때부터 정오를 알리는 대포가 설치돼 오포산으로 불렸다. ●약령시 주변 전국서 사람 모여들어 봉산육거리에서 성밖 골목을 지난 옛길은 서문시장과 원대동으로 이어진다. 성밖 골목은 계산동과 대구읍성 남쪽 성곽사이에 난 길이다. 대구시 거리문화시민연대 권상구(32)국장은 “성밖 골목은 전정리라고 불렸으며 우리말로 풀이하면 앞밭골, 앞밖걸”이라고 말했다. ‘대구 천주교사’에는 ‘앞밖걸엔 천주교 신자였던 상인이 많았다. 이들중 중심인물은 최철학이란 사람이었으며 그는 1890년대부터 대구지방 보부상단의 도회장으로 활약했다.”고 적혀 있다. 권 국장은 “성밖 골목은 대구를 지나는 교통요지였으며 넓이는 크게 줄어들어 지금은 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전형적인 골목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곳은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이 만나는 길목이라 일찍부터 자유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성밖 골목에는 약령시의 보조기능을 하는 상점들과 업체들이 들어섰다. 권 국장은 “약령시 주위에는 유생과 한약종상은 물론 한약재를 수집하여 판매하는 중간상인과 객주, 거간 등과 관련되는 한의약업인이 모여들었다.”며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약을 팔고 사면서 여러 날을 이 일대에서 보내야 했고 자연스럽게 성밖 골목 주변은 객주집과 여각이 성업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큰 장으로 통했던 서문시장은 약령시와 함께 전국 상권을 주도했다. 대구문화육성추진협의회 손필헌(72) 위원은 “당시 서문시장은 현 섬유회관 맞은편인 오토바이 골목 일대에 있었다.”며 “성주, 고령, 의성, 김천 등 대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도 2일과 7일 장날에 장꾼들이 모여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서문시장 자리에는 천황지라는 못이 있었으며 1923년 이를 메워 옮겼다.”고 곁들였다. ●관문동 ‘밤숲´ 수백가마 알밤 따기도 서문시장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달성지구대와 자갈마당을 지난다. 달성지구대 건너편에는 달성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달성공원은 대구시민의 오랜 휴식처다. 손 위원은 “고려 중엽 이후 달성 서씨가 대대로 살던 사유지였으나 조선 세종 때 국가에 헌납했다.”면서 “1905년 공원으로 조성됐으며 1967년 5월 대구시가 현재의 대공원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집창촌인 자갈마당은 행정명으로 중구 도원동이다. 낮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상가지역과 다름없이 보였다. 도원동은 복숭아 나무가 많아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있다. 한때 700명이 넘는 윤락녀들이 모여 호황을 누렸으나 윤락행위방지법 시행 뒤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단다.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 지하차도를 건넌 옛길은 달성초등학교를 거쳐 원대오거리로 향한다. 지명에 ‘원’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구 북부의 관문인 원이 위치했던 데서 유래했지만 그 자리는 찾을 길이 없었다. 금호강을 건너면 또 한번 쉬어갈 곳이 나온다.‘밤숲’이다. 현재의 북구 관문동 동양자동차학원 부지 일대다. 이 일대는 밤나무가 무성해 가을걷이 때는 수백가마의 알밤을 땄다고 전해진다. 대구의 강북으로 불리는 이곳도 최근 아파트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는 등 급성장했다. 러시아워 때는 차량이 밀려 팔달교를 통과하는 데 상당한 곤욕을 치러야 한다. 금호강을 건넌 옛길은 현 금호인터체인지에 못미쳐 난 경부고속도로 지하 굴다리를 통과해 경북 칠곡군으로 넘어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조선에 투항한 日장수 모셔져 있는 ‘녹동서원’ 일본 관광객이 대구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녹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시대 김충선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이다. 일본 이름은 사야가. 그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회의를 품고 전투를 포기한 채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김 장군은 임진왜란 동안 화포 및 조총 만드는 법과 사용기술을 조선군에게 전수했다. 또 왜적이 점령한 18개 지역의 성을 탈환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선조에게 간청해 정이품인 정헌대부에 올랐으며, 선조가 그에게 ‘사성 김씨‘라는 성을 하사했다. 그는 1600년부터 우록리에 둥지를 틀었다. 녹동서원은 1789년(정조 13년)에 창건됐으며 김 장군의 후손과 인근 유림들이 봄·가을로 제향하면서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서원 주변에는 녹동사와 숭의당, 향양문, 장군의 이력과 공을 새긴 유적비, 장군의 묘소 등이 있다. 또 충절관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된 조총을 비롯해 모하당(김 장군의 호) 문집과 친필 등 유품, 유물이 두루 전시돼 있다. 연간 2만여명의 관광객이 이 서원을 찾고 있으며 이중 일본인이 5000여명에 이른다. 김 장군의 후손 중에는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지낸 김치열씨 등이 있다. 녹동서원에서 비슬산 쪽으로 1㎞쯤 가면 남지장사가 나온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684년(신라 신문왕 4년)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키고 병사들을 지휘한 곳이다. 사명대사는 3000명의 승병을 이곳에서 배출시켰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있다고 해서 남지장사가 되었다는 유래이다. 왜군에 의해 불탔다가 1940년 중수되었다. 현재는 대웅전과 설현당, 삼성각, 광명류 등이 자리해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서울 ‘종교월드컵’ 20여개국 한자리

    세계 각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종교간 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한 뜻을 모은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가 8일 개막식(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을 시작으로 14일까지 13차례에 걸쳐 진행하는 종교지도자 회의와 ‘종교와 평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 만해 한용운의 사상을 따라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한 자리로 중국, 인도, 미얀마, 이라크 등 20여개국 종교지도자 30여명과 국내 종교지도자 200여명, 각계 인사 500여명 등 700여명이 참가한다. 주제는 ‘21세기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종교의 역할’.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참석자들의 면면. 스리랑카 대표인 시리세나 반다 헤티아랏치(자웨와테나푸라대학) 교수는 프랑스·스페인·유네스코 대사를 역임했고, 미얀마 대표 타엣 사야도 바단타케사라 대승정은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수행해온 선승으로 현재 미얀마 국립불교승가회의장을 맡고 있다. 중국의 유·불·선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차세대 불교대표인 스융신(釋永信) 소림사 방장은 1981년 출가해 소림사를 브랜드화한 데 이어 최근 쿵푸 최고수들을 영화계에 진출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 유교 대표인 쿵더반(孔德班) 산둥성 취푸(曲阜)시 상공회 전 주석은 공자의 77대 직계 후손으로 눈길을 끈다. ‘종교화합’이라는 대회의 화두에 따라 테러·전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세션도 이채롭다. 여기에는 나와즈 칸 마르와트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 유대교 대표인 예후다 스톨브 예루살렘 종교간협의회(IEA)소장, 모사 바샤 미국 이슬람연합 의장, 힌두교와 시크교를 각각 대표하는 인도의 TD 싱과 모힌데르 싱 등이 주제발표와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루스산트세렌 겔에잠스 몽골 불교연구소장, 성휘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판 아나메데 타이불교도우회 회장과 프라 뎁소폰 세계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등이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참석자들은 행사 기간 중 조계사를 비롯한 사찰과 명동성당, 순복음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시설을 차례로 순례할 예정이다. 한편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 정부에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주최 측에 보내온 메시지를 통해 “전통은 세계 평화의 진정한 바탕인 내적 평화로 이르는 길”이라면서 “이런 선물을 잘 간직해 평화를 위한 소망으로 후세에 전할 것인지, 아니면 후세의 미래를 위협하는 무기로 바꿀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종교간 화합을 강조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소유권과 관리권 사이에서/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북관대첩비는 일제시대 때 반출되어 그 유명한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일본과 한국의 두 노스님의 관심과 열정에 힘입어 10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남한을 거쳐 북한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면서 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의미가 있다는 원론에 동의하면서도 새삼 관리와 소유의 경계선이 어딘가를 되묻게 한다. 지난 5월 한달동안 국립박물관의 기획전인 ‘사리함(舍利函)’전시회를 접한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절집의 소유물임이 분명한데 어떤 경로를 밟아 박물관의 관리를 받으면서 국가의 소유 아닌 소유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소유자와 관리자의 한계마저 모호해졌다. 경천사지 10층석탑을 용산의 신축 박물관에 복원하면서 탑이 가지는 예배대상으로서의 종교적 의미는 무시한 채 사리공(舍利孔)에 사리도 없이 ‘이건기(移建記)’만 넣겠다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리함을 맡기기에는 원소유자로서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다. 마치 남의 무덤 앞에 있는 무인석을 뽑아다가 정원장식물로 쓰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 의미는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미적 조형물로만 인식하는 의식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문화재 관리자가 원소유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계속 관리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소유자의 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건 유물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극히 프로다운 생각이니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그동안 유물 관리비용을 적지 않게 투자하다 보니 내 소유물이 된 양 착각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관리하다 보니 거기에 묻은 손때와 정성 그리고 유물과의 교감으로 인한 집착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원소유자가 그동안의 복원관리비용을 모두 지불하겠다고 해도 돌려받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의 반환소식을 접하면서 또 소유와 관리의 경계선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역으로 불교계가 관리자의 입장에 속하는 문화재이다. 월정사 경내의 영감사는 오대산 사고(史庫)를 지키기 위하여 지어진 암자이다. 임진란 이후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될 때가지 몇백년을 사찰에서 관리해 왔다. 보존을 위해 시설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승군까지 조직해 외곽을 지켰다. 물론 소유자는 조선왕조였다. 왕조가 망한 후 대리 관리를 자처하며 가져갔으나 결국 일본에서 대지진을 만나 거의 소실되었다. 마침 그 무렵 대출된(빌려간 연구자가 누구인지 그 후손에게라도 감사패를 드려야 할 것 같다.) 74책만이 무사하여 27권은 일제말기 경성제국대학으로 이미 돌아온 상태였고, 나머지 43권은 도쿄대학에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를 알고서 오대산 월정사 스님네들이 반환을 위하여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기존 관리자인 사찰이 아니라 서울대 규장각으로 반환된다고 한다. 도쿄대학이 관리자와 소유자 사이에서 반환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를 줄타기하다가 나름대로 고심하여 내린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규장각에는 같은 종류의 완질본이 남아있다. 물론 이본(異本)이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따라서 산질(散帙)인 오대산본을 부분적으로 중첩하여 가지고 있는 것은 ‘소유’라는 욕심 충족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기존 27권과 이번에 돌아오는 43권을 포함한 오대산본 74권 모두를 원소재지에 두는 것도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다. 왜 북관대첩비가 휴전선을 넘어 자기 자리로 가야 했는지 우리는 그 도리를 알아야 한다. 현재 오대산에는 두 채의 텅빈 사고(史庫)가 복원되어 있다. 건물은 있는데 내용물이 전혀 없는 것은 사리없는 탑을 보는 것만큼이나 허전하다. 그리고 이끼 낀 석물들이 도굴로 실려 나가버린 오래된 큰무덤을 바라보는 것처럼 안쓰럽기까지 하다. 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천태종 ‘새터민 정착’ 지원 나서

    새터민, 즉 탈북자들을 위한 템플 스테이가 국내 처음으로 천태종 사찰에서 실시된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주한 외교사절이나 국내의 신자·일반인들을 위한 템플스테이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탈북자만을 위한 사찰문화 체험 행사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대한불교 천태종(총무원장 정산 스님) ‘나누며하나되기운동본부’는 탈북한 뒤 남한 사회에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새터민들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1,2일 충북 단양 구인사와 단양 일대에서 전통사찰문화 체험과 봉사활동으로 꾸며진 템플스테이 행사를 개최한다. 불교 종단 차원에서 처음 마련한 이번 템플스테이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새터민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받고 있는 탈북 1∼2개월의 남성 30명이 참가한다.천태종은 이에 앞서 지난달 12일 탈북자 80여명을 구인사와 인근 마을에 초청해 노인들과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효도 큰잔치를 열었다. 탈북자들은 템플스테이 기간 중 북녘에 두고 온 가족들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기도와 탑돌이를 비롯한 불교문화체험을 한 뒤 구인사 인근 온달동굴 관광과 적성농공단지를 견학하며 봉사활동도 벌이게 된다. 천태종 사회부장 무원 스님은 “무엇보다 정신적인 안정을 필요로 하는 탈북자들이 이 사회에서 빨리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준비했다.”며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생활필수품을 지원하는 등 지속적인 새터민 정착지원사업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올 가을 내금강 단풍구경 가능할 듯

    금강산 내금강 관광을 위한 남북측 공동 답사가 지난 27일 내금강 현지에서 실시돼 이르면 올 가을 내금강 관광이 가능할 전망이다. 남북측 합의는 끝났고 도로 포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 공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남북관계의 특성상 아직도 본관광이 시작되지 못한 개성관광처럼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8일 현대아산 등에 따르면 이번 답사는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후 8년 만에 이뤄진 것으로, 지난해 7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내금강 관광을 합의한 바 있다. 이번 답사에는 남측에서 현 회장과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관광공사 및 조계종 관계자 등이 참석했고 북측은 전금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서기장과 장우영 금강산관광총회사 총사장 등이 동행했다. 답사단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 오전 9시 차량으로 금강산 호텔을 출발해 온정령과 말휘리, 금천리 등 북측 민간·군사 지역을 통과, 오전 11시 내금강 표훈사에 도착했다. 이후 금강문, 보덕암, 만폭동 내팔담 계곡, 마하연, 묘길상, 삼불상, 명경대, 장안사터 등을 둘러봤다. 금강문에서 보덕암으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에서는 금강산 일대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측 천연기념물 232호 금강국수나무도 발견했다. 현 회장은 “단풍이 드는 가을까지는 내금강 관광이 가능하도록 북측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관광 노정과 편의 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을 단풍철까지는 시범관광과 본관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장우영 총사장은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내금강 답사에 이어 시범관광과 본관광도 하자는 것이 우리의 의지”라고 화답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가야산 호랑이’와의 아름다운 인연

    성철 스님은 입적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불교계의 큰 별로 살아있다. 생전 수행을 게을리하는 도반이나 후배들에겐 예외없이 엄하게 대해 지금도 선방 수좌들에겐 ‘가야산 호랑이’로 널리 회자된다. 일반 신도들도 108배 혹은 3000배의 참회기도를 하고서야 만날 수 있었을 만큼 사람 대하는 데 있어서 여간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성철 스님은 스님이나 일반인 모두에게 ‘대쪽같은 스님’‘만나기 어려운 스님’‘무서운 스님’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도서출판 아름다운 인연이 ‘아름다운인연만들기’시리즈 세 번째로 펴낸 ‘가야산 호랑이를 만나다’는 그저 엄하기만 한 것으로 비쳐진 성철 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색다른 책이다.스님의 법문을 듣고서, 혹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뒤 불가에 귀의했거나 감화를 받은 11명이 스님과의 훈훈한 인연 이야기를 풀어낸다.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을 비롯해 전 조계종 전계대화상 일타 스님, 동화사 선원장 지환 스님, 박경훈 전 동국대 역경위원, 김천진성 백련암 신도회장, 직지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 삼정사 주지 원소 스님,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남자비심 전 대구 정혜사 신도회장, 장성욱 동의대 불문과 교수, 김선근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가 그들이다.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회고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야단을 치는 ‘가야산 호랑이’선사의 면모부터 철저하게 규칙적이고 자신에게 사정없이 엄했던 극기, 마치 독심술을 하는 듯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안목, 엄하지만 크게 포용하는 도량이 어렵지 않게 읽혀진다. 법전 스님은 1949년 전국의 수좌들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봉암사에서 뜻을 모은 이른바 ‘봉암사결사’에 성철 스님과 함께 참여한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승. 봉암사 시절 모셨던 성철 스님의 인상을 이렇게 소개한다.“성철 스님은 왕왕 대중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언제나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좌의 멱살을 잡아끌어서 봉암사 계곡의 시린 물 속에 가차없이 집어넣곤 했다. 그 숨막히는 분위기가 나에게는 오히려 살아 숨쉰다는 안도감으로 작용했다.” 성철 스님은 법문에 자주 현대물리학이며 기하학, 심리학을 녹여 전문가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성철 스님의 법문을 들은 동화사 선원장 지환 스님이 “산중에 계시는 스님께서 어떻게 현대 학문을 그렇게 많이 알고 계시느냐.”고 묻자 “예끼 이놈 네깐 놈이 뭘 안다고….”라고 대답하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삼정사 주지 원소 스님은 백련암에서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기 며칠전 평생 승려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 망설이던 무렵 성철 스님의 일갈에 마음을 굳혔다고 회고한다.“하산할까 하는 고민을 붙들고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고 있는데 성철 스님이 지나가시면서 한 말씀을 하셨다.‘인생의 일대사를 해결하는 승려생활처럼 보람있는 일은 없다. 우리들 인생이란 너무 짧은 것이다. 쓸데없는 망상 말아라.’도망가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놈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지금까지 승려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25일 동국대 이사장 취임식

    동국대는 25일 오전 11시 정각원에서 제35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영배 스님의 취임식을 갖는다. 영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불교방송 상무, 동국대 이사장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다.
  •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조선소 찾아 근로자 격려

    조계종 종정 법전(80ㆍ해인총림 방장) 스님은 16일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등과 함께 경남 거제시 신현읍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방문,1시간30분가량 머물며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법전 스님의 이날 방문은 해인사 고불암 신도회의 권유에 따른 것으로 조계종 종정이 산업시찰에 나서기는 조계종단 사상 처음이다.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의 안내로 건조중인 선박에 올라간 법전 스님은 근로자들에게 “불가(佛家)에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ㆍ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노동이야말로 신성한 것으로, 세상을 더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명약(名藥)은 근로자들의 정직한 땀방울”이라고 격려했다. 스님은 특히 현장을 둘러본 뒤 근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술개발도 사람의 일이고 이는 결국 인간마음의 개발에 달려 있다.”며 “조선소 전 구성원들간의 화합을 통해 오대양 육대주를 빛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불교인사 “황우석박사 600억 지원”

    조계종 전 중앙종회의장 설정 스님 등 승려 5명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교계 일부 인사들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재개를 위해 60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설정 스님은 “한 사찰의 주지 스님과 불교 신도인 중소기업가 2명이 연구 자금 450억원과 서울, 부산에 있는 150억원대 부동산을 연구 부지로 아무런 조건없이 내놓기로 했다. 이름을 밝히면 논란이 일 수 있어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에게 대신 발표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황 박사측 이건행 변호사는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서면 확인서를 받은 상태다. 황 박사는 이들의 뜻을 전해듣고 고맙다는 의사만 전했으며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이라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세우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동국대 개교 100주년 맞아

    동국대가 8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동국대는 이날 오전 10시30분 교내 만해광장에서 ‘건학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기념식에서는 동국대 100년사 영상자료와 각계 명사의 축하메시지가 상영되며, 홍기삼 총장이 ‘민족의 화해, 종교의 화합’ 메시지를 담은 평화선언문을 읽을 예정이다. 또 미당 서정주 선생이 작고 전에 남긴 100주년 기념시도 낭독된다. 기념식에는 법전 조계종 종정, 박경조 성공회 주교, 최근덕 성균관 관장, 이혜정 원불교 교정원장 등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김진표 교육부총리, 정운찬 서울대 총장, 알프 짐머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총장,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명박 서울시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열린우리당 최재성 의원 등 외빈과 학생, 교직원 등 1500여명이 참석한다.12∼13일에는 ‘달빛 연등축제’ ‘동국인 한마당’ 등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만해 한용운 선생이 1906년 첫 입학생이었다. 서정주와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동국대 동문이며 시인 신경림, 소설가 황석영,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조정래가 문인요람의 맥을 이었다. 이덕화, 고현정, 최민식, 한석규, 김혜수, 이경규 등 연예인들도 연극영화과 출신이다.홍기삼 동국대 총장은 “개교 100년을 계기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만전을 기해 명문 3대 사학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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