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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내금강/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지난해 정초 금강산을 찾았다. 산도 계곡도, 폭포도 감추는 구석이 없다.‘겨울 개골’ 별칭다웠다. 옥류동 입구 신계사 터를 찾았다. 한국전쟁때 모든 가람이 소실됐다. 복원 불사가 한창이었다. 절터 주위에 곧게 뻗은 노송 숲이 피안이고, 선계였다. 고개를 들자 회색빛 하늘속 구름이 무심하다. 정처없는 중생의 마음 같다. 불사는 조계종과 현대아산 주관이었다. 불사를 맡은 스님을 만났다. 탈속의 스님에게 남·북이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그쪽 사람들과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중 선생’이라고 부르다, 지금은 ‘스님’하고 찾는단다. 그것만으로도 살갑고, 가까워진 것 같다고 했다. 표정이 속세의 벗처럼 다정하다. 최근 내금강이 개방됐다. 조계종단 원로선사들이 금강산내 불교유적을 순례했다고 한다.8만 그리고 아홉 암자가 있었다던 금강산이다. 무수한 선승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못자리라 할 만하다. 한 스님이 “눈 푸른 납자들이 이 곳서 용맹정진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금강산서 선지식을 만날 날을 고대해 본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종교갈등 넘어 화합 다져나가자”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공동대표의장 지관스님, 이하 종지협) 소속 7대 종교 대표자들이 2일 오전 대구 계산성당을 시작으로 대구, 경북 지역에 있는 각 종교 성지에 대한 합동 순례에 나섰다.7대 종교 대표자들이 다른 종교의 성지를 함께 순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각 종교 대표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첫 합동 순례지로 1899년 대구에 설립된 천주교 계산성당에 들러 유물기념관을 둘러봤다. 성당에 들어선 지관 스님이 “다함께 참배합시다.”라고 제의하자 지성소 아래 나란히 선 일행은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여 참배했다. 이들은 이어 김보록 로베르 초대 본당 신부의 동산에 소나무를 기념 식수했다.20년된 반송으로 알려진 이 소나무는 ‘화합과 평화의 나무’로 명명됐다. 이번 행사에는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과 천주교 주교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 김희중 주교, 원불교 이성택 교정원장, 성균관 최근덕 관장, 천도교 김동환 교령,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등이 참가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대표회장인 이용규 목사의 해외 출장으로 공동대표 가운데 한 명인 한창영 목사가 참석했다. 각 종교별로 3명씩 20여 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대구 계산성당(천주교)에 이어 원불교의 경북 성주성지(2대 종법사 탄생지), 비구니 사찰인 경북 청도 운문사를 방문하고 이어 3일에는 경주 용담정(천도교), 경주 향교(성균관), 경북 영천 자천교회(기독교) 등을 순례할 예정이다. 종교 대표자들은 이에 앞서 지난 4월 북한산 진관사에 모여 사찰음식을 공양하는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종지협 공동대표의장인 지관 스님은 “한국 종교사상 7대 종단 대표들이 뜻을 모아 다른 종교의 성지를 합동 순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모임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화합해 국민을 위하고, 종교간 이해와 화합을 다져나가자.”고 당부했다. 이날 비구니 사찰인 경북 청도 운문사를 둘러본 김희중 주교는 “종단 수장들의 의례적인 만남을 떠나 각 종교 창시자들의 탄생지와 구도지를 함께 찾아 가르침을 새길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한편 종지협 관계자는 “이번 성지순례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해외 각 종교 성지를 함께 순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지협은 1997년 출범한 국내 7대 종교의 대화 협력 기구로 종교간 현안이나 갈등에 대한 조정 역할 등을 하고 있다. 출범 이후 매년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를 열고 있으며 지역종교문화행사를 공모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대구·성주 김성호문화전문기자kimus@seoul.co.kr
  • ‘일반신도 다비장’ 길 튼 통도사

    지난 22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는 이례적인 다비(茶毘)의식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다름아닌 지난 18일 77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기장(沙器匠) 장여 신정희 선생의 장례가 이 통도사 연화대에서 열렸던 것. 우리 삼보사찰 중 불보(佛寶) 사찰이라는 천년고찰 통도사에서 일반 재가신자들에게 다비를 허용하기는 처음으로 불교계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통도사가 일반 신자에게 다비장을 내준 데는 주지 정우 스님의 역할이 컸다. 정우 스님은 이번 신정희 선생의 다비에 앞서 지난 2002년 하운청 덕성여대 중문과 교수의 장례 때도 사찰 다비장을 쓰도록 한 전례를 남긴 스님이다. 고(故) 하운청 교수가 남긴 유고시집 ‘산으로 가는 마음’을 들여다 보면 정우 스님이 인도와 네팔을 순례하며 찍은 사진이 여럿 들어 있다. 정우 스님과는 아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웠던 것이다. 물론 신정희 선생의 통도사 경내 다비 허용은 통도사의 대중회의를 통해 결정한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주지 정우 스님의 목소리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정희 선생은 일본 이도다완의 원형인 조선 황도사발을 500년 만에 재현해 내는데 성공, 도예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통도사에 ‘신정희요(窯)’를 차려 놓고 작품 활동을 해온 만큼 통도사와는 인연이 아주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산중회의 때도 정우 스님의 주장이 무리없이 수렴됐을 것이다. 통도사측은 일반인의 경내 다비허용과 관련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통도사와 인연이 깊고 사회적 공로가 많은 신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경내 다비를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지 정우 스님도 다비장 개방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통도사의 일반인에 대한 다비장 개방을 놓고 “본래의 다비 의미를 희석시키고 오남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의견과 “다비에서 스님과 재가신도를 구분하는 것은 시대착오로 다른 사찰들도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일반 신도가 원하고 순수한 의미의 장례로 치러진다면 종단에서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그러나 사찰들이 사찰 훼손과 불교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박원순 봉은사 미래위원장 위촉

    조계종 봉은사(서울 강남구 삼성동)는 13일 공식 자문기구인 ‘봉은사 미래위원회’를 발족, 위원장에 박원순(희망제작소 대표) 변호사를 위촉했다. 발족식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 정성헌 평화생명포럼 대표,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장, 신계륜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 25명이 참석했다.
  • 19일 종교계 나눔과 배려의 행사

    19일 종교계 나눔과 배려의 행사

    소외된 이들을 위한 종교계의 배려와 나눔의 행사가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19일 낮 12시30분 불교 조계종이 조계사 대웅전에서 여는 ‘장애인 수계법회’와 같은 날 오후 4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천주교 라자로돕기회가 마련하는 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장애인 수계법회’가 조계종단사상 처음 마련한 장애인을 위한 수계의식이라면 ‘자선음악회’는 세상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한센병 환자 가족들을 위한 흐뭇한 나눔의 자리이다. ●장애인 수계의식 조계종단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어렵게 결정한 수계(授戒) 의식. 종단 사상 처음으로 장애인만을 위해 마련한 엄숙한 자리이다. 장애인들이 소규모의 모임에서 계사 스님을 모시고 계를받는 의식은 간간이 있었지만 이처럼 종단 차원에서 대규모로 장애인들에게 수계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계사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공동 주관해 열리는 수계의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직접 계사로 참여할 예정. 조계종 장애인 포교단체인 원심회에 소속된 시각·청각 장애인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을 통해 수계를 신청한 장애인 등 300여명이 동시에 계를 받게 된다. 지관 스님은 “불가에서 불·법·승의 삼보중 하나인 스님은 신앙과 귀의의 대상인 만큼 외형상 결함이 있으면 신심을 떨어뜨린다는 차원에서 장애인들의 비구계 수계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며 “그러나 인연을 중시하는 불교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보살행은 장애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종단의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한센병 환자와 함께할 천주교 나눔음악회 천주교 라자로돕기회가 주최하고 성라자로마을이 주관하는 25번째 자선음악회.1975년 12월 서울 정동문화체육관에서 고(故) 이경재 신부와 배우 김성옥씨가 뜻을 합쳐 나환자촌인 라자로마을 의왕정착촌 학생들의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작은 음악회로 시작해 이후 2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어온 나눔의 현장이다. 음악회의 이름 ‘그대 있음에’는 김남조 시인의 노랫말에서 딴 것으로 국내에선 가장 오래된 자선음악회이기도 하다. 음악회의 수익금 전액을 성라자로마을을 비롯한 국내외 무의탁 한센병 병력자들의 치료나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쓰고 있다. 올해 음악회에는 1990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으로 출연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독일 성악가 안나 마리아 카우프만이 방한해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바리톤 김동규, 테너 김재형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25년째를 맞아 전세계인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뜻에서 일을 벌였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사랑과 자비로 사회를 밝게”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15일 불기 2551년 부처님오신날(24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조계종 총무원에 전달했다. 정 추기경은 메시지에서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자비와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명으로 주신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생각”이라면서 “서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 위해 노력할 때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의 동반자요 동지가 되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상생의 길 열자”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불기2551년 부처님오신날(24일)을 맞아 “부처는 본래 나지 않아 오고 감이 없고 법(法)은 본래 없어지지 않아 온 누리에 가득하다.”는 내용의 봉축 법어를 14일 발표했다.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무명(無明) 속에 걸림 없는 지혜를 빚어낸 이는 곳곳에서 부처를 이루어낼 것이요, 나고 죽음 속에서 무생(無生)의 눈을 뜬 이는 생멸(生滅) 없는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특히 “대립과 투쟁 속에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이룬 이는 화해를 빚어내어 상생의 길을 열 것이며 탐욕 속에 들어 있는 이타의 덕성을 깨달은 이는 평화와 안락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라며 “무명은 도(道)를 이루는 바탕이요, 삼독번뇌(三毒煩惱)는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석가탑 유물 불교박물관에 전시키로

    문화재위원회는 2일 동산·국보분과 합동회의를 열고 1966년 불국사 석가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사리장엄구 관련유물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석가탑중수기 등이 들어 있는 종이뭉치인 묵서지편(墨書紙片)은 전시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구체적인 전시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이 협의하도록 했다.전시가 끝난 뒤 출품된 문화재는 중앙박물관으로 다시 이관하여 보존처리한 뒤 종합학술조사보고서를 간행하며, 이 과정에는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가 참여하도록 했다.문화재위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28건 70점의 지정문화재와 1건 12점의 비지정문화재의 소유주가 불국사라는데 이견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 결정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석가탄신일인 24일 이전에 조계종에 이관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첫 한국인 불교 성자 누가 될까

    ‘천주교에 성인(聖人)이 있다면 불교엔 성자(聖者)가 있다.” 한국 천주교가 순교 사제와 신자들을 복자·성인품에 올리기 위한 시복시성(諡福諡聖) 작업을 추진하는 것과 맞물려 불교계도 역대 대선사들의 성자 추대 운동을 벌여 눈길을 끈다. 불교 각 종단이 소속된 (사)대륜불교문화연구원(이사장 무공 태고종 중앙포교원장)은 불기 255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최근 불교 성자 추대를 결의, 이같은 내용을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에 공식 제의했다. 이에 따라 조계종을 비롯해 태고종·천태종 등 각 불교 종단은 자체적으로 대상자를 선정한 뒤 종단협 차원에서 최종 논의를 거쳐 성자를 추대할 것으로 보인다. 불교사를 볼 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 제자 외 16성(聖),500성, 독수성,1200제대(諸大), 아라한 등 숱한 인물이 성자로 추대돼 왔으나 한국에선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추대하지 못한 상황. 특히 한국 불교는 1700년의 역사상 부처님과 조사(祖師)의 방편(方便)을 갖춰 대오견성한 대선사로 추앙받는 스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단에서 외국의 옛 선사들을 종조로 모시는 실정이다. 한국 불교계가 성자 추대 움직임에 나선 것도 이같은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대륜불교문화연구원이 종단협에 제출한 제안서에서 “한국 불교사에는 기라성 같은 대선사들이 존재하고, 심지어 중국 불교에선 한국 승려 지장 법사를 육신보살로, 무상대선사를 500나한 중 한 분으로 추대하고 있는 만큼 조속히 성자추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한국의 사찰들이 대부분 조석예불과 정례 공양 때 석가모니 10대 제자와 16성,500성, 독수성 내지 1200제대, 아라한들에게 예배 공양하면서 단 한 사람의 한국 성인도 배출하지 못한 것은 민족적 주체성과 자존심을 포기한 사대주의 망상에서 온 결과”라는 주장이다. 현재 불교계가 지목하는 성자 대상은 일단 원효를 비롯해 의상, 원측, 자장, 의천, 지눌, 태고, 무학, 휴정, 유정 등 크게 깨닫고 대승(大乘) 신통(神通)을 얻어 보살 경지에 오른 선사들로 보인다. 각 종단 대표들로 구성된 추대위원회가 결성되면 이들을 대상으로 성인, 득신통대보살, 아라한 등의 품격에 따라 16명을 선정 추대해 예배, 공양할 것으로 보인다. 대륜불교문화원 이사장 무공 스님은 “한국 불교 신생 종단들이 외국의 옛 선사들을 종조로 모시는 풍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외국 민족불교 종파의 종지종풍을 왜 한국에 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와 관련해 불교종단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사실 불교계에서 한국 선사들의 성자 추대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면서 “각 종단이 추앙하는 종조와 선사들이 달라 대상자 선정이 쉽지 않겠지만 공동추대위와 불교학자들이 뜻을 모으면 적합한 성자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부처님 같이, 세상을 향기롭게

    부처님 같이, 세상을 향기롭게

    ‘우리도 부처님 같이, 마음을 맑게 세상을 향기롭게’(올해 부처님 오신 날 봉축표어) 불기(佛紀) 2551년 부처님 오신 날(5월24일) 봉축행사가 다음달 9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장엄등 점등식을 시작으로 24일까지 연등행사와 제등행진, 각종 봉사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장엄등 점등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한 각 불교종단의 주요인사와 신도들이 함께 참여하며, 점등식과 동시에 광화문∼경복궁 경회루 구간에 설치된 가로연등이 일제히 밝혀진다. 지난해부터 ‘국민축제의 장’으로 시작된 연등음악회는 다음달 20일 오후 9시30분 연등축제 회향한마당이 열리는 종각사거리에서 있을 예정이다. 봉축 법요식은 다음달 24일 오전 10시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각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된다. 올해 봉축기간 중에는 특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비의 행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수원지회는 다음달 5일까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와 함께 나누는 부처님의 마음’을 진행한다. 조계사는 5월10일까지 전국 군부대의 장병과 교도소 재소자, 독거노인들에게 자비의 선물 보내기 행사를 마련하며, 봉축위원회와 전국 17개 대형 병원의 법당은 다음달 24일까지 병실에 ‘병원 연꽃등’을 전달한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도 전국 주요 사찰을 대상으로 다음달 29일까지 ‘이웃을 위한 희망의 등 밝히기’ 행사를 추진한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다음달 5∼6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이웃을 위한 3000배 정진기도’를 열어 법회 보시금 전액을 불우한 이웃에 전달한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지관스님)는 부처님 오신 날에 앞서 오는 30일 오후 6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20여개 종단의 스님과 신도들이 참여하는 ‘평화와 민족번영을 위한 국민화합 기원 대법회’를 봉행한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이웃사랑 실천이 곧 구원이고 해탈”

    기독교와 불교의 요체는 구원과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기독교)과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자력 해탈’(불교)은 두 종교의 가장 핵심이면서도 그 목적과 방법이 상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구원·해탈의 인식과 방법도 점차 열린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넘어선 남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부처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를 볼 것”이라는 법전 조계종 종정의 일갈은 그런 측면에서 빛이 났다. 지난해 5월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붓다와 예수’라는 주제로 공동 모임을 가져 주목받았던 한국불자교수연합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이번엔 ‘구원’과 ‘해탈’의 현재적 의미를 화두로 종교의 공동 본질 탐색에 나선다.27일 오후 1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국제회의장에서 여는 ‘오늘 우리에게 구원과 해탈은 무엇인가’주제의 학술회의에서다. 고려시대 태고(太古)스님은 ‘만법이 돌아가는 하나의 진리는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一歸何處)라는 화두 참구 끝에 득도했다고 한다.‘모든 종교는 동일하며 길은 다르더다도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27일 학술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천하에 진리는 둘이 아니고, 성인의 마음도 둘이 아니다’(天下無二道,聖人無兩心)라는 공동 인식아래 자비와 사랑을 토대로 한 구원과 해탈의 실천방안에 뜻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찬수(종교문화연구원장)씨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는 요즘, 구원도 근원적 관계성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상호 소통하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 측면을 구체화시킬 때 구원은 완성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소외된 남을 남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보는 가운데 의식적으로 남에게 맞추는 것이야말로 내적 개인 구원의 징표이자 사회 구원의 시작이며,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데서 구원은 최고의 구체성을 띤다.”고 못박았다. 이민용(참여불교연대 공동대표)씨는 “무아·무상 등 무(無)를 강조하며 열반으로 이끄는 불교는 기독교의 서구인들에겐 허무주의에 다름아니었지만 점차 부정주의적 현실관을 극복하는 최대의 이상론으로 격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불교에서 현장을 떠난 이상 세계(천국)가 있을 수 없고 천국의 전제없이 현실은 발붙일 근거가 없다.”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느니라’‘성령이 너희 속에 계시다’는 기독교의 구원론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명권(코리아 아쉬람 대표)씨는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출발하지만 불교의 해탈은 개인이 깨달음을 추구한 뒤 중생을 제도하는 상이한 구조를 띤다.”며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새로운 계명을 실천하는 구원이나 해탈의 결과 깨달음을 사회 속에 실천하는 보시는 결국 사회적 구원이라는 연대적 해탈로 만난다.”고 주장했다. 즉 ‘십자가’의 자기부정으로 출발해 만인의 대동사회를 열어가는 ‘만다라’의 조우, 그것은 유토피아를 넘어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시키는 것이요, 극락을 이땅에 실현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黃의 외출? 장애인시설등 방문… 대외활동 재개하나

    ‘황우석 박사 대외활동 시작?’ 지난해 3월 줄기세포 논문조작으로 파면된 뒤 대외활동을 극히 자제해오던 황우석(전 서울대 교수) 박사가 최근 부산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대외활동을 재개한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23일 정신지체 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인 ‘컴넷하우스’에 따르면 황 박사는 지난 11일 부산 수영구 컴넷하우스를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났다. 컴넷하우스 측은 단체 블로그에 황 박사와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채인숙 원장은 “황 박사가 근처 노인요양시설에 왔다가 옆에 장애인 기관이 있다고 해서 방문한 걸로 알고 있다.”면서 “특별한 행사 없이 10여분 둘러보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현재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등지의 연구실에 머무르며 외부 활동을 자제해 온 황 박사가 부산을 찾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자신을 지지해온 시설 대표들과의 인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황 박사가 방문한 곳은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노인요양기관인 ‘상락정배산 실버빌’과 컴넷하우스로, 이들은 불교계 사회복지법인 ‘불국토’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다. 불국토의 공동대표는 혜총·범산·정관 스님이다. 혜총·범산 스님은 배아줄기세포 논문조작 사태부터 황 박사 지지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혜총 스님은 올 2월 조계종 포교원장에 취임했고, 범산 스님은 부산경실련 공동대표와 중앙승가대학 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계 생활협동조합의 이정호 인드라망생협 이사는 “황 박사가 장애인을 찾아가 희망을 주는 듯한 행동을 할지라도 그의 학자적 소양에 결함이 있음은 사회적으로 판명난 지 오래”라면서 “불교계에서 어떤 평가를 하더라도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사경(寫經)을 아시나요? 시계바늘을 잠시 고려시대로 돌려본다. 왕족과 귀족들은 하루 일과 중 사경원(寫經院)에서 불경을 베껴쓰는 일(寫經)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먹물이 아닌, 금·은가루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공덕과 불심의 깊이를 스스로 가늠했음은 물론이다. 충렬왕 이후가 절정기였다. 원나라측은 고려의 사경기술을 거듭 요청했고 고려는 1회 100여명씩 수차례에 걸쳐 파견, 그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사경 기술이 역수출된 셈. 아마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일하게 큰소리 뻥뻥 치며, 콧대를 꺾은 대목이 아닐까. 전생이 있다면 아마 고려시대의 사경승(寫經僧)이었을 것이다. 꿈 속에서 고려 사경원의 각 처소를 돌면서 관리·감독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경호(46)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조선시대 이후 쇠퇴한 고려사경 재현의 길을 30년째 고독하게 걷고 있다. 마치 서산대사가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踏雪野中去)처럼 사경 발걸음에 잠시라도 어지러이 하지 않았다(不須胡亂行). 또 지금 걷는 발자국(今日我行蹟)이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듯(遂作後人程)이 말이다. ●새달 28일 중국서 사경전시회 그 결과, 이제는 사경이 하나의 어엿한 예술장르로 꽃을 피우고 있다. 다음달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산둥(山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한국사경연구회 회원 20명과 함께 사경전시회를 갖는다. 이는 중국땅에서 원-고려 이후 700년만에 고려사경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중국의 4대 명찰 중 하나인 영암사에서 최초의 사경법회까지 연다. 특히 오는 7월24일부터 9월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중·일 사경 특별전이 처음 개최되는데 여기에서 김씨의 수준높은 사경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선보인다. 아울러 9월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 서예비엔날레에 특별초청을 받아놓은 상태. 지난 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이제야 사경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며 탄식이 섞인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개인전만 11차례나 열면서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외로운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경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역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연원입니다. 사경이 지닌 전법, 그 기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품이 개발된 것이지요.” 또한 “(사경이)고려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전제한 뒤,“고려 왕조 500년 동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그리고 목판대장경을 포함해 무려 열번의 대장경을 사성했을 정도로 고려왕조는 가히 사경왕조였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청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고려시대의 미술을 깊이 있게 연구한 미술사학자들도 사경과 청자를 고려의 대표적 예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빛을 잃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예술성이 사실상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는 것. 김씨는 이같은 고려사경을 재현하기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 언론매체와 방송 등을 통해 사경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했다.‘사경의 기법’ ‘사경서체’ ‘또다른 수행-사경’ 등을 주제로 책을 펴내는 한편, 문화센터와 대학사회교육원 등에서 십수년간 강의도 했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 사경 지도자 과정을 신설했을 때 김씨가 최초의 지도교수가 됐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교육원·포교원 등에서 사경수행법 연구 및 조사집필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전과 단체전 등 모두 4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꾸준히 알렸다. “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지금은 사경인구가 많이 늘어 1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충식 교수님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제가 은사로 모셨는데, 그분의 격려가 없었다면 도중하차했을 겁니다.2005년 은사님이 돌아가실 때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심정으로 사경을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불교미술사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고 장충식 교수는 생전에 김씨의 사경작품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한글 궁서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꽃뜰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으며, 문화재위원과 여러 미술사학자들로부터 “인간문화재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만권 문헌 뒤지며 고려사경 직접 조사 그의 사경기법에는 몇가지 독창적인데가 있다.▲최대한 권위있는 원전을 5종 이상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번역을 하며 ▲가급적 녹교를 끓여 사흘 이상 쓰지 않으며, 사경지를 포수처리하고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의 순도를 유지한다. 특히 모든 과정을 문헌에 근거, 제작하기 위해 슬라이드만 수만장에 이를 만큼 고려사경을 직접 조사하고 연구해왔다.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묘를 구사(1㎜ 공간에 5개 이상의 금선을 그음)할 만큼 사경의 정교함을 한 차원 높였다. 아울러 2005년 ‘사경수행법’을 집필할 때까지 종단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았던 사경수행의 방법을 체계화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경은 서예의 영역을 뛰어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그는 또 “사경은 서예와 회화, 공예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종합예술”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동·서양의 사경 만남전’을 추진 중이다. 이때 우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명실공히 인정받겠다며 매일 12시간씩 사경에 몰두한다.“아들과 딸도 애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전국 서예대회에서 1,2위를 다툰다.”고 귀띔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2년 김제 출생 ▲76년 중학때 묵서로 사경 독학 ▲82년 남성고 졸업 ▲86년 전북대 국문과 졸업 ▲97년 제1회 불경사경대회 대상수상(조계종 총무원 주최) ▲99∼2006년 연세대 사회교육원 서예·사경 지도자과정 지도교수 ▲04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현재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전시 금산사 창건 1400주년 기념초대전(98년) 등 40여회. #주요 저서 학의 울음(96년), 외길 김경호 사경집(02년), 신라백지 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연구(04년), 수행법연구(사경 책임집필·05년), 한국의 사경(06년). ■ 사경(寫經)이란? 사경의 사(寫)는 베끼다, 옮겨놓다 등이며, 경(經)은 ‘법, 이치, 성인이 지은 책’이라는 뜻을 지녔다. 본래 ‘경’은 ‘수트라’로 ‘실(線)’이라는 뜻으로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짤막한 금언(金言)이나 격언을 모은 것에서 기원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사경이 병과 고뇌와 악업을 씻어주고 큰 죄도 용서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불가에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고귀한 말씀을 사경을 통해 접하고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건너온 사경은 원래 불교 경전만 옮겨 쓰는 행위였으나 최근에는 성경, 꾸란 등 타 종교의 경전으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경주 나원리 5층석탑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편(8세기초)으로 전해졌으나 사성기(寫成記)가 없어 사성연대가 명확한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진묵서 화엄경 제2축’이 현존 최고(最古)의 사경으로 알려져 있다.
  • ‘마음 부처’ 찾으면 미움·애착 사라져요

    ‘마음 부처’ 찾으면 미움·애착 사라져요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깨닫고 무슨 일을 하다가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청정한 근본정신이랄 수 있는 마음의 법등(法燈)을 발견해 전해준 성자(聖子)의 탄생은 모든 인류가 축하해야 할 경사입니다. 그 성자들의 깊은 뜻을 깨달아 생활 속에 올곧게 실천하도록 돕는 게 종교인의 역할이 아닐까요.” 원불교 창교일인 대각개교절(28일)에 앞서 지난 17일 전북 익산 총부를 찾은 기자들을 반갑게 맞은 장응철(67) 종법사는 “성자들은 은혜로 얽혀 있는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마음의 개벽을 중시했다.”며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마음부처’를 찾아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창교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뜻을 전했다. “물질이 중시되는 세상에선 정신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런 점에서 정신 개벽을 통해 물질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앞서가는 사람과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생활 속에서 사고나 사유(생각)를 쉬면서 의심머리(화두)를 직관하는 노력을 계속하면 누구나 관조할 수 있고, 파워와 실천력을 갖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법사. 그는 “어떤 일을 할 때 온전하게 그 일에 전심전력하면 선입견이나 감정 흐름, 딴 생각의 경계에 걸린 마음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각개교절을 맞아 종도들에게 무엇보다 잊고 사는 ‘본 마음’(마음부처)을 되찾도록 당부하고 있다는 종법사는 “많은 사람들은 ‘본 마음’이 가려진 탓에 마음의 난리 속에 살고 있다.”며 기자들에게도 “마음의 등불을 밝히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세상의 현안들로 화제를 옮긴 종법사는 새 지도자상에 대해 “지금 우리는 보수·진보, 빈부 차별 등 극도로 양분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며 무엇보다 흩어진 사람과 일들을 모아 ‘화합동진’(和合同進)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통일의 열정뿐만 아니라, 중심무대가 동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향도할 안목도 중요합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움을 헤처나갈 바른 지도자가 절실한 때입니다.” 남북 통일과 관련해선 “바다의 물이 들고 날 때 들락날락하면서 서서히 간·만조를 이루듯이 평화 공존 역시 성급하게 서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한·미무역협정(FTA)에 대해 묻자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도전과 응전에 강했다.”며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자연과 생명을 거스르면 결국 재앙을 가져온다.”는 종법사는 지구온난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문제점을 따지기도 했다.“속세에서 지은 업(業)에 따라 생기는 병은 약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병을 낳는 근본적인 원인인 업은 약으로만 고쳐지지 않습니다. 인연으로 얽힌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래의 ‘마음 부처’를 찾다 보면 잡념의 뿌리를 녹여 죄가 없는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이참(理懺)에 이를 수 있습니다. 미움과 애착이 없는 행복을 이루기 위해 늘상 나쁜 곳에서 좋은 곳으로 마음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익산 글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원불교 ‘이웃종교’와 사랑 나눔 원불교가 창교일인 대각개교절을 맞아 이웃 종교의 사회복지시설을 돌며 사랑의 나눔행사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이성택(64) 교정원장이 지난 16일 전북 익산시 월성동의 천주교 작은천사어린이집(원장 강마리루시 수녀)과 전북 완주군 소양면의 조계종 송광녹지원(원장 우용호)을 차례로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성금을 전달한 것. 원불교의 ‘처처불상 사사불공’ 정신에 따라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 확대와 종교화합 실천의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마련한 행사다. 먼저 발달장애아 교육·치료시설인 작은천사어린이집을 방문한 이성택 교정원장은 40여명의 발달장애 아동들을 둘러본 뒤 성금을 전달했다. 이 원장은 “우리 주변에 불우한 이웃이 많지만 일반인들의 관심 부족으로 소외된 채 어둡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웃종교끼리 교류를 활성화해 이들에 대한 사랑과 지원을 확산시키자.”고 종교 복지시설간의 교류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강 원장수녀는 “교육과 치료시설이 잘 갖춰진 이곳과 원불교 사회복지시설이 힘을 합하면 더 많은 아동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원장 일행을 배웅했다. 이어서 정신질환을 앓는 노인 169명을 수용 치료 중인 완주 송광사 녹지원을 찾은 이 원장은 시설 곳곳을 일일이 돌며 노인들을 격려하고 성금을 전달했다. 녹지원은 개인이 운영하다 2년 전 조계종 송광사가 인수해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노인 요양시설. 이 원장 일행을 따뜻하게 맞은 덕산 스님(상임이사)이 “전북 지역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선도적으로 운영해온 원불교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전해달라.”고 청하자 이 원장은 덕산 스님의 손을 맞잡고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익산 글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화산 아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188).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 전농동)에서 화성(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겨 모신 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능침사찰(陵寺)이다.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의 합장묘인 융릉(용주사에서 동북쪽으로 10여분 거리)을 수호하기 위해 지어 ‘효(孝)의 본찰’로 널리 알려진 도량이다. 능사의 사격 그대로, 다른 전통사찰과는 달리 산이 아닌 평지에 들어서 사찰보다는 오히려 궁궐과 사대부 가옥의 특징들을 더 많이 갖춘 독특한 가람이다. 능사란 왕이나 왕비의 능 근처에서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재(齋)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1곳이 세워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론 용주사를 비롯해 세조의 광릉을 위한 봉선사, 세종의 영릉 수호사찰 신륵사, 중종의 정릉 능사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 능사 가운데 용주사는 당파싸움의 와중에 억울하게 뒤주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절절한 효심이 그득한 ‘효 사찰’이란 차별성을 갖는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조성한 뒤 능사를 짓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각처에서 길지를 모색하던 중 신하들로부터 ‘천하제일의 복지’로 추천받아 낙점한 곳이 바로 옛 갈양사 터이다. 신라시대부터 사찰의 이름이 등장하는 갈양사는 한국불교 선종(禪宗)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제2조 염거 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했던 선찰이다. 지금도 그 선풍을 이은 선원 서림당과 중앙선원엔 안거(安居)를 가리지 않고 참선수행하는 선승들의 정진이 이어진다. 신라기부터 고려기까지 왕실 원찰로 받들어졌으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과 아귀를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는 ‘수륙재’가 처음 열린 곳이기도 하다. 갈양사는 이처럼 명성이 높았지만 어떻게 소실됐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잦은 전란으로 사라져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용주사 대웅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에 따르면,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봉안한 다음해인 1790년 2월 공사를 시작해 불과 7개월 만에 사찰 짓기를 모두 마무리했다.140여칸이나 되는 사찰 규모를 볼 때 정조가 용주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절을 지을 때 큰 시주를 한 관료의 명부인 ‘대시주진신안(大施主縉紳案)’에는 경기감사를 비롯한 각 도의 감사 9명, 군수·현감·부사·만호·첨사 같은 지방관료 87명 등 모두 96명의 관직명과 이름이 들어 있다. 중앙의 고위관리들도 당연히 시주했을 것이며 ‘용주사건축시각도화주승’에서 확인되었듯이, 용주사 창건을 위해 각 지방의 승려들이 책임을 맡고 나섰음을 볼 때 이 불사는 승속을 초월해 대규모로 진행된 유례없는 것이었다. 절 이름 ‘용주(龍珠)’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는 지형에서 비롯됐지만, 절을 다 지은 뒤 낙성식이 있던 전날 정조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 꿈을 꾼 뒤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람의 큰 골격은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故) 정대 스님이 주지 시절 새로 지은 불음각이며 중앙선원, 호성각, 천불전을 빼곤 창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제일가람 용주사’라고 쓴 일주문을 들어서 좌우에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같은 불교 경전 속 경구들을 새긴 표석들을 바라보며 천왕문을 넘으면 좌우 양쪽에 행랑을 거느린 맞배지붕 양식의 삼문이 눈에 들어온다. 삼문이란 동서 옆문과 중앙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부르는 이름. 전통사찰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인데 사도세자의 재궁(齋宮)으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용이 꽃구름 속에 서리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한다.” 삼문 네 기둥에 ‘龍珠寺佛’의 네자를 각각 첫 글자로 딴 시구를 적은 주련이 인상적이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꾼 꿈에서 비롯됐다는 사찰 이름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삼문과 주 전각인 대웅보전 중간에 서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천보루(天保樓)도 왕실이 직접 지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주문 쪽에서 보면 천보루요, 대웅전 쪽에서 보면 홍제루(弘濟樓)라고 쓰인 현판이 사찰 양식이 아닌, 꼭 궁궐 풍이다.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한다.” 여섯 개의 목조기둥을 떠받치는 거대한 장초석도 주로 궁궐 건축에 쓰이는 것들이다. 누각 좌우로 7칸씩의 회랑이 맞닿아 있고 동쪽에 나유타료, 서쪽에 만수리실이 회랑과 연결돼 있다.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모두 바깥 마당으로 출입문이 나 있고 툇마루가 달려 있어 절집보다는 오히려 대갓집을 연상케 한다. 창건 당시 각각 선원과 강원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회의 때 사용하는 큰방과 스님들의 요사채로 바뀌었다.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이 천보루와 나유타료, 만수리실을 대웅전과 연결해 ‘ㅁ’자형으로 도드라지게 꾸며 그 정점에 대웅보전을 놓았다. 대웅보전은 창건 때 세워진 주 전각으로 조선후기 사찰양식을 그대로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화려한 닫집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옹휘하는 듯하다. 삼존상 뒤 후불탱화의 아랫부분 중앙에 ‘주상전하 수만세(壽萬歲) 자궁저하 수만세 왕비전하 수만세 세자저하 수만세’라 쓴 축원문이 들어 있다. 부처님의 가피가 왕실에 미치기를 기원한 탱화인 것이다. 당대의 불화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서양화법의 원근법·명암법을 쓴 게 특이하다. 오래 전부터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대웅보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의 “민관 상겸 성윤 등 25인이 탱화를 그렸다.”는 기록을 앞세운 학자들이 김홍도가 아닌 다른 화승들의 작품임을 주장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웅전 앞의 회양목(천연기념물 제264호)은 정조가 직접 심은 나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뒤 갖은 위협과 고난을 참고 견뎌냈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번뇌를 떨어내려 심었을까. 오래도록 사철 푸른 잎을 피웠지만 지금은 병이 들어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세운 뒤 융릉과 용주사를 틈나는 대로 들렀다고 한다. 아버지의 능을 참배한 뒤 귀경하다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해 일행이 걸음을 늦추곤 했는데, 바로 그곳이 서울로 향하는 1번 국도변의 ‘지지대 고개’이다. 정조의 효심이 담긴 때문인지 대웅전 앞의 회양목은 마른 가지에서도 힘겹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를 잉태하고, 쓴 것은 뱉고 단 것은 먹여 주시며, 나를 키워주고, 먼길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수억만년 돌아다녀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 마치 바로 옆 ‘부모은중경탑’의 경문에 화답하듯이…. kimus@seoul.co.kr ■ 용주사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정조는 즉위 초기에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마찬가지로 억불정책을 폈던 것으로 전한다. 즉위하자마자 조선 초기부터 궁실에서 빈번하게 지어왔던 원당(願堂) 사찰 건립을 금지시켰고, 걸미승(乞米僧)들의 성내 출입을 엄금하는 조치를 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정조가 어떻게 전 국민이 동참하는 불사인 ‘용주사 건립’의 뜻을 세웠을까. 다름 아닌 불경 ‘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때문이다.‘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정조는 전남 장흥 보림사의 보경 스님이 바친 ‘부모은중경’을 읽고 마음에 느끼는 바가 커 용주사를 창건토록 지시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크고 깊은 10가지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친 경전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컸던 정조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정조는 실제로 ‘부모은중경’에서 비롯된 용주사 창건을 전후해 불교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었다. 해남 대흥사에 세워진 휴정 스님 사당의 편액 ‘표충’을 직접 썼으며, 안변 석왕사의 고사(古事) 내용을 담은 비문을 손수 지어 세웠다. 표훈사의 사찰 중수를 도왔는가 하면, 무학대사에게 ‘개종입교보조법안광제공덕익명흥운대법사’라는 법호를 내리는 등 고승들의 추존에도 열성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가 ‘부모은중경’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는 용주사의 숱한 유물들에서 그대로 읽힌다. 용주사 건물들에 걸린 많은 주련들은 정조가 당대의 명 문장가였던 이덕무에게 명해 쓰도록 한 것이다. ‘부처님과 용주사의 복을 빈다’는 내용의 게송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는 직접 지은 것이며,‘부모은중경’의 내용을 한문·언문·그림으로 새긴 73매의 ‘부모은중경판’중 목판 42매(변상도·김홍도 그림)도 정조가 하사한 것이다.
  • ‘해결사’ 한총리

    ‘해결사’ 한총리

    한덕수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임기 말 참여정부의 현안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국회에서 부결된 국민연금법안 재입법 불 지피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대책 마련이 행보의 핵심이다. 12일에만 오전 7시30분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주재를 시작으로, 한·일 경제인회의 일측 대표단 접견, 정진석 추기경 및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예방, 김영삼 전 대통령 예방, 한·미FTA 2차 워크숍 참석 등 7건의 굵직한 일정을 차례로 치러냈다. 거의 매일 4건 이상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총리의 공식 일정이 통상 두 세건이던 것에 비하면 두 배 정도다. 일정 하나하나의 무게감도 달라졌다.“개성공단, 빌트인 방식 아니다.”“FTA 협정 전문 공개”“기초노령연금법안 대통령 거부권 건의 검토” 등 중량급 발언을 쏟아냈다. 외빈 접견 때도 마찬가지다. 김석환 총리 공보수석비서관이 이날 급히 기자실을 찾은 것도 이 때문. 김 수석은 “통상적으로 외빈 접견시엔 의례적 내용을 주고 받을 때가 많은데, 오늘 여러가지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올라왔다.”고 밝혔다. 김 수석에 따르면 한 총리는 한·일 경제인회의 일측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일 FTA 협상은 양국이 농업과 제조업 경쟁력에서 균형을 이루기까지는 협상을 해 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이이지마 히데타네 한·일 경제협회 일본측 회장이 한·일 FTA 협상의 조기 착수를 희망한다는 발언에 대한 답변이었다. 앞서 열린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되지 않으면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의 재의 요구를 건의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회를 압박했다. 국무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임기 말에 지렛대 역할을 자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실무형 총리로서 대국회 설득 등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며 “두 현안의 처리 성과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국의 불화’ 3156점 집대성

    ‘한국의 불화’ 3156점 집대성

    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원장 범하 스님)의 ‘한국의 불화’ 출판 사업이 20년 만에 마무리됐다. 조계종 24개 본사의 전국 476개 사찰과 국·공립박물관, 대학박물관, 사립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불화 3156점을 40권에 담았다. 1989년 범하 스님을 중심으로 불화조사단이 출범한 뒤 1996년 통도사 본사편 상·하와 직지사 본·말사편 상·하를 시작으로 2000년까지 해마다 4권씩 발간했고, 이후 20권을 추가해 한국 불화를 집대성했다. 원색도판으로 제작된 ‘한국의 불화’는 불화의 유형에 따라 존상 뒤에 봉안하는 후불탱과 대형 걸개그림인 괘불, 보살탱과 신중탱·여러 폭으로 나뉜 각부탱과 각 단에 봉안한 각단탱, 초상인 진영, 전각을 장식하는 도량장엄 순으로 편찬되어 있다. 각 불화는 전도와 부분도를 실은 뒤 해설과 관련논문, 해당 사찰의 약사를 덧붙였다. 불화의 명칭과 조성연대, 조성불사에 참여한 사람, 작품 재료와 비용을 보시한 시주자도 밝혔다. 성보문화재연구원 구미래 기획연구실장은 “정부 지원이 채 2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단체가 20년에 걸쳐 50억원 가량을 투입해 완성했다는 점에서 대장경 판각에 비유할 만한 일로 자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불화’ 사업을 발원하고 비용을 마련하는 화주(化主)를 맡은 석정 스님은 21∼27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완간기념회를 겸해 선서화(禪書畵) 300점으로 ‘석정연묵전(石鼎硏墨展)’을 갖는다.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인 석정 스님은 1996년에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그려 모아두었던 작품으로 생애 첫 개인전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기도 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석가탑 유물 왜 못 돌려주나”

    “국내의 문화재조차 제자리에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외국의 우리 문화재를 떳떳하게 환수해올 수 있습니까.”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불국사 석가탑내 발견유물 일괄(국보 제126호)을 원 자리인 불국사에 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한 데 대해 조계종이 강도 높게 반발하고 나섰다. 조계종 문화부장 탁연 스님은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위탁 문화재의 반환 여부 결정은 문화재청의 관할사안인 만큼 국립중앙박물관은 반환과 관련해 어떠한 권한도 없다.”며 종회와 전국 주지회의 등 종단 차원에서 석가탑 사리장엄구의 반환을 위해 소송을 검토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부터 석가탑 사리장엄구를 비롯한 위탁 문화재 반환을 위해 조계종과 협의해 오던 국립중앙박물관이 불교중앙박물관 개관을 10여일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반환 불가로 입장을 바꾼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탁연 스님은 불교중앙박물관의 보존관리시설이 미비하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반환 불가 이유에 대해 “담당 직원이 들러 간단한 점검 끝에 결정한 것으로 국가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무책임한 업무진행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탁연 스님은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997년부터 이 유물들을 보존처리하면서 원 소유자 동의 등 관련 법령을 준수했는지에 대해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며 위탁 당시와 현 보존상태를 실사 비교할 방침임을 밝혔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유물 일괄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포함해 모두 29건 71점으로 출토 이듬해인 1967년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에 이관됐다가 1969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위탁 관리해 왔다. 지난해 10월 불국사가 유물들을 조계종에 이관할 것을 요청,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관에 문제없다.’는 확인을 받았으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물의 보존 전시 여건 미비를 문제삼아 조계종측에 반환 불가 입장을 전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가봉대통령등 만해대상 수상자로

    엘하지 오마르 봉고 온딤바(72) 가봉공화국 대통령이 제11회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19일 선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가 제정하고 백담사 만해마을과 만해학술원이 주관하는 이 상의 문학부문은 김남조(80) 시인, 학술부문은 유종호(72) 연세대 석좌교수, 포교부문은 루이스 R 랭카스터(74) 전 버클리대 교수, 실천부문은 네팔기자연맹(FNJ)과 회장 비슈누 니스트리, 특별부문은 서인혁(68) 국술원 총재가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각 3000만원(외국인은 3만달러)이며, 시상식은 8월12일 오후 3시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 중앙박물관 “석가탑 유물 반환불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위탁관리하고 있는 불국사 석가탑 수습유물을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15일 불교 조계종단에 통보해 파란이 예상된다. 박물관은 이날 ‘석가탑 삼층석탑 내 발견유물 이관 요청에 대한 회신’을 통해 “이 유산이 화재·도난·항온항습 문제에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과학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국민의 의무라고 판단된다.”고 반환 불가 입장을 밝혔다. 박물관측은 “2007년 3월2일 불교중앙박물관 현지점검을 실시한 바, 개관 24일 전임에도 불구하고 진열장 골조공사 중이어서 신축건물 자재의 유해성분이 무구정광다라니경과 같이 보존과학적으로 민감한 지류유물에 미칠 해독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전시를 위해 국보 2점과 보물 3점 등 총 11점은 대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조계종측은 “박물관측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으며 반환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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