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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대통령들의 기록물 제대로 관리해야/설문원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시론] 대통령들의 기록물 제대로 관리해야/설문원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오래 간직해온 선물에는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받은 선물이라면 대통령 개인의 역사를 넘어 외교와 국정의 역사가 담기게 된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기록관과 우리나라 대통령기록관은 현재 대통령이 받은 선물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미국 아칸소 주에 위치한 클린턴 전 대통령 기록관에서는 ‘보석에서 젤리빈(사탕의 일종)까지(Jewels to Jelly Bean s)’라는 주제로 레이건 대통령이 즐겨 먹던 젤리빈 병을 비롯해 역대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가 담긴 애장품과 선물 2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기록관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받은 선물과 유품 약 200점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하는데(10월20~29일), 전시물 모두가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외국을 방문하거나 각국 정상 및 주요 인사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대개 선물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선물은 각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품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 교재가 되기도 한다. 가령 이번에 전시되는 선물 중 존슨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받은 백마 조각상, 김일성 주석이 1972년 7·4공동선언 발표 때 증정한 금강산 선녀 자수, 장제스 전 타이완 총통이 선물한 쌍사자 조각상 등은 1960~70년대 굵직한 외교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1981년에 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의해 대통령이 일정 가격 이상의 선물을 받으면 신고·제출해야 하며 이에 따라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 받은 선물들은 이미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돼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법률 시행 이전의 대통령이었으므로 신고하거나 제출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었지만, 기증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앞으로 국가기록유산의 일부로 관리될 수 있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물과 달리 대통령기록물이 국가 소유임을 명시하고 국가가 보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공공기록물관리법은 1999년에야 제정되었다. 따라서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 이전의 대통령 기록물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국가기록원의 역대 대통령기록 소장통계를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 대통령 문서는 박정희 대통령 9044건, 전두환 대통령 4782건, 노태우 대통령 2494건, 김영삼 대통령 8214건으로, 연간 문서철 생산량으로 추산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약 50철, 전두환 대통령 100철, 노태우 대통령 50철, 김영삼 대통령 170철 정도가 될 것이다. 그나마도 알맹이 있는 정책문서가 아니라 행정문서가 다수를 차지한다. 많은 문서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거나 당시 폐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의 찬란한 기록문화유산을 이야기할 때마다 머리 한쪽에서 떠오르는 풍경은 이렇게 초라한 현대사 기록의 현장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시가 역대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이 기증한 기록 전시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물론 특정 인물을 중심에 둔 전시가 어쩔 수 없이 ‘공적(功績)’ 위주로 흐를 위험은 있다. 이는 개별 대통령기록관 체제로 운영되는 미국의 대통령기록 전시가 비판받는 대목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록은 역사 속에서 ‘스스로 말을 하는’ 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 현대사의 씨줄과 날줄이 제대로 얽힌 충실한 기록유산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선물 외에도 많은 문서와 기록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설문원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사설] 국감 팽개치고 10·28 재보선 뛰는 당 지도부

    10·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시작부터 과열로 치닫고 있다. 불과 5곳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 선거이건만 여야, 특히 당 지도부의 모습은 전쟁에라도 나선 듯 비장하기까지 하다. 선거운동 첫날인 어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아예 중앙당을 경기도로 옮기다시피 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죄다 경기도 수원과 안산으로 달려가 최고위원회의를 가졌다. 두 당의 정몽준·정세균 대표는 수원과 안산, 경남 양산 등을 돌며 온종일 선거지원유세를 벌였다.재·보선이 뭔가. 여야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이 불법선거 또는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해 치르는 선거다. 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막대한 선거관리 예산을 쏟아붓게 만드는 선거다. 이번 선거만 해도 한나라당 의원 3명, 민주당 의원 1명, 무소속 1명 등 5명의 의원직 상실로 치르게 됐다. 지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부터 해야 마땅하건만 여야는 ‘정권심판’이니 ‘지역살리기’니 하며 표 줍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다 보니 유권자들 사이에선 대체 누가 후보로 출마한 건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지역연고도 없는 거물급 인사 공천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도 도무지 뉘우침이 없는 행태들이다.더욱 걱정인 것은 국정감사다. 그러잖아도 재·보선을 앞두고 여당의 정부 감싸기와 야당의 마구잡이 공세로 인해 알맹이 없는 재선거용 국감이라는 비판을 받는 터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건만 당 지도부가 국회를 비운 판에 온전한 감사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영호남은 아예 제쳐놓은 채 고작 수도권의 1, 2석을 갖고 정권 심판이니, 당 지도부 문책이니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재·보선으로 좋은 인재를 선출하는 것 못지않게 나라와 국민에겐 국감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는 당장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
  • 영산강유역 대형전용 옹관가마터 확인

    나주 오량동 토기요지(사적 제456호) 발굴 현장에서 옹관 가마터와 가마 폐기장이 대거 확인됐다. 그간 일부에서 제기해 왔던 대형 옹관을 굽던 곳이 아니라는 논란도 이로써 잠잠해지게 됐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14일 “가마 밀집 분포지역을 전면 발굴 조사한 결과 가마 18기, 폐기장 1기, 작업장 1곳 등 20기의 유구(遺構)와 옹관 조각, 토기 조각 등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연구소 측은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가마 18기는 1500㎡에 걸쳐 밀집 분포돼 있으며 이 외에도 유적 전체 면적인 2만 6000㎡에서 가마의 흔적이 확인돼 이 지역에 대규모 옹관 생산 시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마의 조업 시기는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정성목 학예연구사는 “오량동 토기요지는 영산강 유역에만 있는 대형전용 옹관 가마터로 그동안 알려졌지만 그렇게 볼 수 없다는 이견도 일부 있었는데 가마의 구조적 특징과 폐기장에서 확인된 옹관 조각 등을 볼 때 그간의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15일 오전 발굴 현장에서 관련 전문가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HAPPY KOREA] 테마로 다시보기 ⑩ 예술체험 부산 기장군 대룡마을

    [HAPPY KOREA] 테마로 다시보기 ⑩ 예술체험 부산 기장군 대룡마을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케도 내는 이곳 안 떠나. 동네 꽃이 확 폈제. 담장이고 어디고 안 예쁜 데가 어데 있노.” 김진규(54) 대룡마을 반장은 꽃 그림이 새겨진 담벼락을 가리키며 마을에 품은 애정을 있는 대로 드러낸다. “이게 다 반장님 덕분 아입니꺼.” 옆에 선 현직 대학교수인 정동명(39) ‘살기좋은 대룡만들기’ 추진부위원장이 공을 반장을 비롯한 주민들에게 돌리며 맑게 웃는다. 부산국제영화제로 시끌벅적한 부산 해운대에서 국도(14호)를 따라 30분만 가면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마을’,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이 나타난다. 광역시 가운데는 유일하게 2007년 2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시범마을로 지정됐다. 대룡마을은 사업이 진행된 지 3년 만에 마을 전체가 예술작품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예술·농촌·체험이 어우러진 ‘오감만족’ 예·농(藝·農) 공동체로 변신했다. 실제 거리에는 주민들이 직접 이름을 적고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깜찍한 문패가 집집마다 걸려 있다. 미적 감각을 살린 문체와 색상으로 조화를 이룬 안내판과 다채로운 벽화가 눈길을 끈다. 변신의 중심에는 이곳에 아예 상주하거나 작업장을 갖고 있는 젊은 예술인 16명과 대룡마을 주민들이 있다. 대룡마을에 사는 91가구(194명) 가운데 8%가 조각, 미술, 도자기, 목각, 철공예 등을 다루는 예술인이다. 30년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2002년 해제된 대룡마을은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경관을 개선하고, 관광상품을 개발해 지역 문화와 상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녹색관광’이 포인트다. 예술가들은 흉가로 변한 폐가에 근사한 대형 목각 소파를 설치해 시선을 묶는가 하면 옥상에 살아 있는 듯한 9마리의 흰 고양이상을 세워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 부위원장이 건네준 동화책도 그랬다. 이곳 예술인들은 대룡마을의 설화를 어린이 동화책으로 직접 제작해 마을의 전통을 알리는 동시에 90%가 농가인 지역에 부가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지역캐릭터인 용(龍) 그림이 그려진 옷, 도자기 컵 등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지역 상품으로 속속 탄생했다. 특히 ‘무인(無人) 카페’는 인상적이다. 아늑한 공간에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설치작가가 남기고 간 흔적도 곳곳에 보였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대룡마을은 사업 초창기인 2007년보다 가구 수는 30가구가량 늘었고 부산, 울산 등 도시관광객이 증가하면서 땅값도 훌쩍 뛰었다. 사업 마무리해인 올해 추진위는 농사·예술체험장, 연꽃과 허브·야생화 체험 등 다양한 자연체험장도 만들었다. 이곳에서 주말에는 예술가들과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예술품 전시 외에 관광객들이 숙박과 지역특산물 구매를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11월 탄생할 기와집 형태의 복합전시관은 인부들의 마무리 손길로 바빴다. 하지만 당초 예술과 소득의 농촌체험마을임을 알리기 위해 3000만원을 들여 정성껏 준비한 첫 번째 지역축제(‘한마음 예농한마당’)는 신종 플루라는 악재 속에 축제 4일 전 취소, 주민과 예술가들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마련해놓은 허브 화분은 관광객이 자유롭게 들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송영호(54) 살기좋은 대룡만들기 추진위원장은 “관광객들이 체험하고 쉬고 갈 수 있도록 농가 11곳을 리모델링해 무료로 민박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화합하고 삶의 질이 개선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김득용(47) 마을이장은 “사업은 연말에 끝나지만 운영위원을 다시 구성해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갈 계획”이라면서 “도자기 체험 등 예술체험과 배 등 지역특산물 판매를 통해 마을 수입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기장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월드이슈] 政·財·言 한손에… 견제세력 없는 현대판 카이사르

    [월드이슈] 政·財·言 한손에… 견제세력 없는 현대판 카이사르

    나이 73세. 이탈리아 최대 민방 메디아셋과 유명 축구클럽 AC밀란을 소유한 억만장자. 각종 추악한 스캔들을 몰고 다니면서도 총리만 세 차례 오른 정치인. 바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다. 질긴 정치적 생명력을 자랑하던 그에게도 고민이 생겼으니 좌파 세력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온갖 비판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승승장구해 왔던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인생은 이런 고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면책특권 박탈이 “좌파 사법부, 좌파 대통령의 음모”라는 그의 성토에서도 왠지 모를 자신감마저 묻어 나온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왜 이탈리아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지난 9일(현지시간) 수도 로마 키지궁전의 기자회견장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 나라를 이끌 유일한 적임자는 바로 나”라며 목소리를 높일 때 인근 티베르강 맞은편에서는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진보진영의 학생·근로자들은 “우리의 미래를 훔친 XX”라며 총리를 성토했지만 주목 받을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시위대의 구호는 금세 허공 속으로 사라졌고 일부는 패배주의적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시위에 나선 고교생 실비아 칸니조(16)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실패했음을 상기시키며 “좌파진영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대안없는 이탈리아 정치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7일 총리 등 고위 공직자의 면책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며 베를루스코니는 사법적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그가 순순히 총리직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베를루스코니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자.”는 이탈리아 일간 일 지오르날레의 12일 보도는 그의 정치적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전문가들은 온갖 추문과 부패 혐의에도 베를루스코니가 건재할 수 있는 비결로 견제세력의 부재를 꼽는다. 그가 1994년 처음으로 총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마니 풀리테’(90년대 정계를 뒤흔든 정치자금수사) 이후 이탈리아 정계가 초토화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했던 정당은 공산당뿐이었고, 역설적으로 베를루스코니는 손쉽게 우파 세력을 연합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견제세력이 없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특히 중도좌파 정부를 이끌다 지난해 1월 사임한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 이후 이탈리아의 좌파 정당들은 사실상 국민의 머릿속에서 ‘증발’됐다.”고 전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 당일 여론조사에서도 베를루스코니의 지지율은 68%에 이르렀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56%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그의 지지율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국민 여론의 미묘한 변화도 감지되지만, 야당 내 유력한 대항마가 없는 상황에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호재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적은 오히려 내부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연정 파트너인 지역주의 정당 북부동맹이 더 많은 재정적 자치권을 원하며 베를루스코니를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정적 이미지에서 스캔들 메이커로 일각에서는 그를 현대판 ‘카이사르’에 비유한다. 끊임없는 정치적 야망과 여성 편력, 위기관리 능력 등이 카이사르를 연상케 한다는 의미다. 그는 이미지 관리에도 큰 성공을 거둔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4년 총선 승리 당시 베를루스코니는 국민에게 자신의 가족 사진첩을 선물했다. 그의 어릴 적 모습과 아내와의 다정한 한때, 성공한 기업가가 된 모습 등을 담은 사진첩은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각종 추문으로 얼룩진 그가 ‘가정적 남편’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1978년에는 슈퍼마켓으로 재건축될 뻔했던 밀라노의 유서 깊은 극장인 ‘테아트로 만조니’를 인수하며 ‘문화재 지킴이’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전체 방송시장 90% 점유 북부보다 소외됐던 남부지역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한 것도 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야당 지지도가 높았던 남부 이탈리아인들은 정부의 엄청난 재정적 지원과 함께 ‘이등 국민’ 의식을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성공의 가장 큰 배경으로 ‘언론장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3개의 민영방송은 물론 공영방송 RAI의 이사진까지 장악한 그는 전체 방송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또 그는 2차대전 이후 가톨릭 문화가 지배하던 방송에 ‘성문화’를 주입시킨 장본인이다. 낯 뜨거운 TV 영상은 정치 무관심을 불러왔고, 이는 각종 추문에도 그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는 얘기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2030]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

    [2030]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

    가을 입사철이다. 심각한 취업난을 뚫고 입사했지만 오래지 않아 꿈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다. 이른바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입사 뒤 업무에 의욕을 잃고 주위를 냉소적으로 보는 것)을 앓는 사람들이다. 직장을 얻었지만 막상 부딪쳐 보니 생각했던 길이 아닌 것 같아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고 일벌레로 살다가 어느날 뒤를 돌아보니 인생에 정작 내가 없음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 희망을 외치는 2030들의 직장인 사춘기 극복기를 들어봤다. 유대근 오달란 박성국기자 dynamic@seoul.co.kr 기업에서 민원업무를 맡고 있는 전모(34)씨에겐 직장인 사춘기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거친 항의를 견디며 지내던 그는 입사 2년이 지나면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자신이 애초 꿈꿨던 사회복지 분야 공무원에 대한 미련이 되살아났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왁자지껄한 술자리 문화에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사소한 트집으로 일주일 동안 전화를 걸어와 항의하는 고객과 입씨름을 벌인 전씨는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결의를 하게 됐다. 사회복지대학원 진학을 마음먹은 그는 6개월을 준비해 야간 전문대학원에 당당히 합격했다. ‘주경야독’을 시작한 전씨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려니 몸은 힘들었지만 무기력증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자신감도 더해졌다. 5학기를 거쳐 ‘지역상담복지’를 주제로 논문까지 써낸 그는 내년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전씨는 “한때는 아침에 눈뜨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 때의 괴로움이 나를 공부의 길로 인도해 준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신모(28·여)씨는 지난달 치른 영어인증시험인 IELTS 성적표를 받아들자마자 맥이 탁 풀렸다. 9점 만점에 6점이었다. 영국 유학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3년차 직장인인 신씨는 석 달 전부터 무기력증에 빠졌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에 진절머리가 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주어진 일은 대충 처리하고 멍하니 앉아 의미 없는 웹서핑에 빠져 지내기 일쑤였다. 취미생활을 가져보라는 친구의 조언에 영국문화원 회화프로그램에 등록한 것을 계기로 신씨는 유학의 꿈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한국만 떠나면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슬럼프 극복엔 ‘시간이 약’ 영국유학을 위해 필요한 IELTS 시험을 신청한 신씨는 그날부터 주경야독을 하는 ‘샐러턴트’ 생활을 시작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원 유학을 하려면 6.5점 이상의 점수가 필요했다. 신씨는 대학 때 ‘토익박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만큼 영어시험에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무난히 목표를 달성하리라 믿었지만 목표점수에 0.5점 모자란 6점을 받은 것이다. 꿈이 깨진 신씨는 정신이 번뜩 들었고 현실로 돌아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3·6·9 징크스’. 5년차 회사원 김모(31·여)씨가 굳게 믿고 있는 직장생활의 법칙이다. 3년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2년 전 김씨는 ‘삼재에 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컴퓨터 프로그램 전문가였던 그가 회계부서로 발령난 것이었다. 김씨는 “충격 그 자체였다. 회계의 ‘회’자도 몰라서 첫 회의에서는 상사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속 상관인 A차장은 악명 높은 일벌레였다. 일주일에 4~5일씩 야근이 계속됐다. 피곤한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식욕도 떨어지고 불면증까지 찾아와 결국 이직 생각까지 하게 됐다. 김씨는 실제로 헤드헌팅 업체에 인재로 등록하고 두세 차례 면접도 보았다. 하지만 그가 이직 생각을 접은 건 5년 선배인 여자 상사의 조언 덕이었다. 그 선배는 “아직 경력이 많지 않아 이직이 어려운 만큼 조금만 참아라. 3년마다 찾아오는 이 고비만 넘기면 편해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시간이 약’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면서 “3개월쯤 지나자 새 일과 새 상사에게 익숙해지더라.”며 웃어 보였다. 출판사 직원인 이모(26)씨의 다이어리에는 점심·저녁식사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점심 약속은 고등학교 동창 등 옛 친구들이 주 대상이고 저녁에는 다른 출판사 선배들과 주로 만났다. 이씨에게 식사 약속은 직장인 사춘기를 떨쳐내기 위한 수단이다. 입사 뒤 1~2년간 개인생활도 없이 주말마다 서점에 들러 시장조사를 하고 야근을 자처했던 그는 3년차가 되니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박봉인 데다 비전이 있는 업계가 아니니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한번 자신의 일에 회의감이 들고 나니 예전처럼 의욕이 생기지도 않고 회사의 나쁜 점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씨.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이씨가 택한 방법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담받기’였다. 혼자 끙끙 싸매고 고민하느니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점심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기분 전환을 한 이씨는 저녁엔 소주 한 잔 하며 진지한 얘기를 주고받기 위해 인생 선배들을 주로 만났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기분도 나아지고 선배들로부터 슬럼프를 이겨내는 노하우도 전수받았다고 한다. 중견 무역회사의 바이어인 유모(30·여)씨는 2년 전만 해도 현장을 누비던 취재기자였다. 인지도가 높은 인터넷 언론사에서 기자로 3년간 일하며 문화부와 체육부 등을 오갔고 각종 문화·체육행사를 다녔다.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에서 자신이 바라는 일을 했던 그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유씨는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 어려서부터 품었던 언론인의 꿈은 이뤘지만 일에 쫓겨 자신의 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하면서 조금씩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일에 빠져 지내는 동안 친구들은 하나 둘씩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고 그러다 보니 점점 주말에도 만날 사람 없이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랜 시간 고민해온 그는 지난해 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적 여유가 보장된 회사로 이직하게 됐다. 유씨는 “지난 3년간의 시간은 이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면서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올해 초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한 전모(30)씨도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을 혹독하게 앓은 케이스다. 전씨는 2005년 대학 졸업 직후 국내 굴지의 증권사에 입사했다. 20대엔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전씨의 바람이 그대로 반영된 직장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전씨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금융계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주위 친구들도 “너같이 지적이고 꼼꼼한 성격에는 천직”이라며 격려해줬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날수록 ‘이 생활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쳇바퀴 돌듯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게 끔찍했다. 지난해 7월 전씨는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아직 결혼 전이라 딸린 식구가 없었던 것도 이직 결심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처음엔 반대하던 부모님도 나중엔 “네 인생이니 네가 고민해봐라.”며 허락했다. 전씨는 일단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 그동안 모아놓은 돈 1000만원을 들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퇴직금은 부모님께 전부 드렸다. 인도, 뉴질랜드 등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나라들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도 썼다. 인생을 돌이켜보는 시간도 가졌다. 전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전 직장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회사를 다니며 유학 준비를 하고 있다. “취업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입사 전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많이 다를 수도 있어요. 또 예전과는 달리 기대수명도 길어지고, 노동시장도 바뀌었으니 한 직업에만 목을 맬 수는 없잖아요. 기왕 온 사춘기라면 이를 자신의 인생 항로를 재탐색하는 계기로 삼는 게 어떨까요.”라고 전씨는 말했다.
  • 깨진 유리·쇠파이프… 당시 모습 그대로

    깨진 유리·쇠파이프… 당시 모습 그대로

    “심지가 꽂힌 채 깨진 화염병이 망루 출입구쪽에 상당히 많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검찰 “화염병이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망루가 무너지면서 깨진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변호인단 “양쪽 의견 모두 기재해 놓겠습니다.” -재판장 12일 오전 용산 재개발지역 화재참사 사건이 일어난 남일당 건물에서 법정을 옮겨놓은 듯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가 사건 발생 265일만에 현장검증을 실시한 것. 재판부는 남일당 건물 및 망루 상황 등을 확인했고, 검찰과 변호인단은 화재원인 등과 관련된 현장상황이 나올 때마다 각자 의견을 개진했다. 재판부는 우선 주변건물의 피해상황과 차량통행량 등을 살펴봤다. 이어 용역업체 직원들이 상주하던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는 주차장을 둘러본 뒤 경찰차로 막혀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현장은 화재발생 당시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유리조각이 바닥에 가득했고 옥상에는 못과 나사, 소주병, 복면, 소화기 등이 널려 있었다. 옥상에 설치된 새총과 골프공 수백개가 담긴 푸대자루도 그대로였다. 망루를 지탱하던 쇠파이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어져 있었고, 외벽을 만드는 데 쓰인 함석판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현장검증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긴 11시45분쯤 마무리됐다. 한양석 부장판사는 “오늘 본 것을 토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 현장을 떠났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4인4색 수공예 미술전

    4인4색 수공예 미술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책(작은 도판)으로 보면, 노리끼리한 비단 위에 험준한 산봉우리만 구불구불 한없이 그려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동양화의 기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얼핏 성의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조선 전기 최고의 그림이라지만 큰 감흥이 없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에서 최근 전시한 안견의 그림을 직접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오른쪽 도원에 아주 가는 붓으로 그려진 복숭아 나무의 잔가지와 복사꽃, 그 나무들 사이로 낮고 짙게 드리운 안개, 중간에 배치된 폭포수나 그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바위에 부딪쳐 일어나는 포말까지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리 크지 않은 그림을 안견이 삼일 꼬박 그린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화가들이 세부 묘사에 힘을 쏟고 수공예적인 작업을 즐기는 이유를 들어보면 무념무상에 빠지고, 작업이 지속되면서 그런 심신의 상태를 더욱 즐기게 된다고 한다. 10월에 열리는 개인전 중에는 특별한 세부묘사와 수공예적인 작품세계에 빠진 작가들이 있다. ●향불로 구멍 내서… 한국화가 이길우 ‘무희자연’ 한국화가 이길우의 ‘무희자연’은 크고 얇은 순지에 드로잉을 한 뒤 향불로 무수한 구멍을 내 화면을 형성한 것으로, 산 등 자연을 배경으로 춤추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마이클 잭슨이 연상되기도 하고, 한국무용가나 발레의 포즈가 겹쳐져 나타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차용한 전시 제목은 무희가 각고의 노력으로 무아지경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자연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닮았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작가는 이전까지 두 장을 겹쳐서 이미지를 완성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세 장을 겹쳤다. 그는 어느 가을날 뜰 앞 은행나무의 무수한 잎사귀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구멍을 내는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의 수공예적 기법은 디지털이 지배하는 요즘 시대와 달리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무수히 반복되는 점의 배열은 아이러니하게도 0과 1로 구성되는 디지털의 신호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27일까지. 서울 소격동 선컨템포러리.(02)720-5789. ●핀을 꼬아서… 조각가 김용진 ‘기(氣)와 기(器)’ 조각가 김용진의 ‘기(氣)와 기(器)’전은 기를 모아서 ‘기물’을 만든다는 의미다. 얇고 긴 핀을 그냥 사용하기도 하고, 꼬아서 면을 만들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면서 캔버스 위에 도자기와 그릇 등을 부조 형태로 선보인다. 손끝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굳은살이 배긴 상태에서 만들어낸 이들 작업은 수공예적인 경지를 보여준다. 어떤 때는 핀을 촘촘하게 박아서 그림자를 표현하고, 동그랗게 만 핀으로는 도자기 위의 포도송이나 연꽃 무늬 등을 표현하는 그의 작업은 멀리서 볼 때 수묵화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까이서 보면 와이어의 양감과 질감, 단순성, 여백의 미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 김 작가는 “금속 선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붓으로 먹물의 농담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노려봤다.”고 말한다. 반복적인 과정을 인내로 견뎌내며 소박하고 절제된 미감을 나타낸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 31일까지. 서울 삼청동 아트파크.(02)733-8500. ●주사기 속에 아크릴 물감 넣어… 서양화가 윤종석 ‘위장’ 서양화가 윤종석은 주사기로 그림을 그린다. 주사기 속에 빨강, 파랑, 노랑, 하양 등 밝은 명도의 아크릴 물감을 넣고 검은색이나 진초록 등 어두운 색깔로 칠해진 캔버스 위에 0.5g 정도를 짜서 점묘화처럼 이미지를 만든다. 얼핏 보면 웃옷들인데 강아지의 얼굴이나 권총, 수류탄, 군화, 악어, 가방 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윤 작가는 “아버지의 산소를 다녀온 뒤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두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벗어놓은 내 옷들을 보니 그 모습이 집 같기도 하고 산소 같기도 해서, 옷을 매개로 한 이미지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흔적을 찾아가는 그의 작업은 옛날 조각가들이 나무나 돌에서 불성을 찾아내 부처를 조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테면 고등학교 교련복으로 만든 총은 그가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그렸다. 군복으로 그린 수류탄이나 권총, 군화, 악어 등은 군복이 가지고 있는 ‘위장’한 이미지의 형상화다.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트싸이드. (02)725-1020. ●명화 이미지 오리고 붙여… 서양화가 한만영 ‘시간의 복제’ 작품만 보면 그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작가였어야 했다. 그러나 한만영은 이순(耳順)을 넘어선 작가. 그는 1980년대부터 팝아트적인 작업을 해왔다. 예술가의 사회적 참여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던 그 시절탓에 그의 작품은 터무니없이 폄하되곤 했다. 하지만 꾸준히 작업에 정진해온 결과 오브제를 활용한 그의 작업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는 미술 화보를 가위로 오리거나,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명화의 이미지를 오려서 폐기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 등에 붙인다. 인상파 모네, 비디오작가 백남준, 요절한 미국 작가 바스키야, 팝아트 작가 리히텐슈타인, 고흐 등의 작품 이미지들이다. 사방을 거울로 붙이고 바닥을 푸르게 칠한 상자 안에 화보를 오려 붙인 첼로나 바이올린을 올려놓았다. 이런 작업을 한 작가는 “고급문화를 대중문화의 기호로, 대중문화를 고급문화의 기호로 전환하고 병치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24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 (02)732-355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시와 산] (28) 영동 민주지산

    [도시와 산] (28) 영동 민주지산

    민주지산(岷周之山·1241.7m)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전북 무주 등 3도에 걸쳐 있다. 전체의 70%가량이 영동군에 자리 잡고 있어 영동군민들의 애정이 각별하다. 동으로는 석기봉과 삼도봉, 북으로는 각호산이 우뚝 솟아 웅장한 기상을 펼치고 백두대간을 굽어본다. 훼손이 거의 없는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물한계곡, 지역주민의 대화합을 상징하는 삼도봉, 독특한 산 이름 등 볼거리와 얘깃거리도 많다.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명산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름을 빼앗긴 슬픈 산? 민주지산은 산 이름이 독특하다. 그래서인지 이름을 두고 두가지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주민들은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 산세가 민두름(밋밋)해서 ‘민두름산’으로 부르던 것을 일제가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민주지산’으로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영동군이 1982년 발행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 책자에도 이같이 쓰여 있다. 민주주의(民主主義)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백운산으로 부르던 것을 일제가 산의 격을 낮추거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민주지산으로 개명했다는 설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반계 유형원이 1667년에 쓴 ‘동국여지지’에 나오는 백운산을 지금의 민주지산으로 보고 있다. 산림청도 2004년 ‘우리산 이름 바로찾기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해당 시·군에 민주지산의 개명을 건의했다. 이 때문에 2007년 영동군 지명위원회가 개최되는 등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민주지산 인근인 전북 무주군 설천면에 백운산(1010m)이 존재하고 있어 민주지산을 백운산으로 개명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역사서에 나오는 백운산이 무주에 있는 백운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군 관계자는 “논의는 중단된 상태”라며 “현재로선 백운산으로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지산은 영동군의 보배 이름을 두고 논란은 있지만 민주지산이 영동군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한다. ‘민주지산을 타고’라는 시집을 낸 향토시인 성백일씨는 “민주지산은 영동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지역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어머니와 같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영동군이 자랑하는 관광명소와 특산품들을 얘기하다 보면 민주지산이 따라붙는다. 군의 대표적 관광지인 물한계곡은 민주지산에 둘러싸여 있다. 물한계곡은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 상류에서부터 20여㎞를 흐르는 깊은 계곡이다. 폭포와 숲이 조화를 이뤄 등산객과 피서객들로 사계절 붐빈다.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어 생태관광지로 손꼽힌다. 지난해 200만명이 다녀갔다. 민주지산 기슭에서 생산되는 상촌 호두는 명품 호두로 유명하다. 민주지산으로 인해 이 지역 일교차가 커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고소하다. 호두는 피부와 모발을 윤기 있고 건강하게 가꿔주는 비타민 B1과 뇌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노화를 막는 비타민 E가 풍부해 수험생을 둔 부모들이 많이 찾고 있다. 민주지산에서 생산되는 고로쇠 수액 역시 인기가 좋다. 해발 500m 이상에서 위생적인 방법으로 채취하는 청정 음료다. 일반 천연수보다 칼슘은 40여배, 마그네슘은 27배 정도가 많다. 위장병, 고혈압, 피로회복, 숙취해소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주민의 대화합 상징 삼도봉 민주지산이 동쪽으로 품은 삼도봉은 태종 14년에 조선을 팔도로 나누면서 충북, 경북, 전북 등 3도의 분기점이 된 이후 이렇게 불린다. 삼도봉 정상에는 돌무더기가 세 곳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 3도 사람이 각각 자기 동네 쪽으로 돌을 던져 돌무더기가 많이 쌓이기를 원했다고 한다. 돌이 높이 쌓인 지역이 대길한다는 전설 때문이다. 지금은 돌무더기가 사라지고 지역주민간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기념탑(높이 2.6m, 무게 7.6t)이 세워졌다. 이 기념탑은 거북받침의 기단부와 영원한 발전을 상징하는 3각 용조각의 탑신부, 둥근 해와 달을 표현해 대화합을 뜻하는 원구의 상륜부로 구성됐다. 이 탑은 1989년부터 삼도봉에서 화합을 다지는 ‘만남의 날’ 행사를 갖기 시작한 영동군, 김천시, 무주군이 2회째 행사 때(1990년) 준공했다. 만남의 날 행사는 해마다 10월10일 3개 시·군 단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자연생태계의 보고 물한계곡을 중심으로 한 민주지산 일대는 국립공원 못지않게 자연자원이 풍부하다. 군에 따르면 민주지산에는 국내 관속식물의 17%가 분포한다.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한국의 고유한 지적자산인 특산식물도 7종이 발견됐다. 식용식물은 233종, 약용식물은 218종이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물들도 많다. 민주지산은 또 올빼미, 솔개, 참매, 털발말똥가리, 붉은배새매, 소쩍새, 원앙 등 조류 7종의 번식지 및 경유지이기도 하다. 군 관계자는 “자연생태계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민주지산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등산로가 잘 정비된 편은 아니다. 물한계곡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정상에 오르면 2시간가량 걸린다. 영동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민주지산 안가면 후회할 곳! 해발 700m 휴양림… 숨쉬기도 큰 운동 자연휴양림은 충북 영동 민주지산의 자랑거리다. 전국의 자연휴양림은 대부분 해발 200~300m에 있다. 하지만 이곳은 700m에 자리잡고 있다. 황토로 만든 숙박시설은 750m에 있다. 단풍으로 유명한 전북 내장산 주봉인 신선봉이 763m, 충남 청양의 칠갑산은 정상이 561m다. 주변의 웬만한 산보다 휴양림이 높은 곳에 있다. 영동군이 자연휴양림의 위치를 강조하는 것은 해발 700m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생활환경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해발 700m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면서 인체에 가장 적합한 기압상태를 유지해 인간과 동식물의 생체리듬에 가장 좋다고 한다.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멜라토닌도 증가, 5~6시간만으로 충분한 수면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혈류공급도 잘돼 젖산과 노폐물 제거에 효과가 있어 피로회복이 고·저지대보다 2~3시간 빠르다.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도 있다. 휴양림 관계자는 “과음을 한 숙박객들이 다음날 아침 일어나 머리가 무척 가볍다고 하는 얘기들을 자주 들었다.”면서 “여기는 인간 최적의 생활환경을 갖춰 머무는 자체가 휴양”이라고 자랑했다. 군이 700m를 강조하지만 이곳에 계획적으로 휴양림을 조성한 것은 아니다. 공사하기 편한 곳을 찾은 것이지만 뒤늦게 이런 가치를 알게 됐다. 군은 부랴부랴 ‘HAPPY 700’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자연휴양림 홍보에 이용하려고 했지만 이미 강원 평창군이 ‘HAPPY 700’을 선점, 무산됐다. 군 관계자는 “철 따라 산행의 즐거움이 달라지는 등산로, 피톤치드가 풍부한 산림욕장, 13.4㎞의 산악자전거코스, 건강지압을 위한 맨발 숲길까지 있어 해마다 이용객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지난 7·8월 두달간 8000여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군은 조만간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춘 숙박시설 1동과 찜질방을 건립할 예정이다. 하루 이용료는 6인용 표고방과 송이방이 비수기 3만 5000원, 성수기 6만 5000원이다. 영동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홍익대 미대 60주년 ‘100만원 그림전’

    홍익대 미대 60주년 ‘100만원 그림전’

    홍익대 미술학과 개설 60주년을 기념하는 ‘홍익 아트·디자인 페스티벌’이 12~25일 홍익대 서울 캠퍼스와 홍대앞 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학부학생 2000여명과 대학원생 500명, 해외대학생 100명, 전·현직 교수 400여명 등 총 30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미술·디자인 축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홍대 홍문관 2층 전시장에서 열리는 ‘동문 및 전·현직 교수 작품전’. 400여 작가의 작품 700여점을 아트페어 형식으로 100만원부터 판매한다. 이번 행사의 추진위원장인 최병훈 미술대학장은 “한국 미술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마련한 행사로, 중견 이상의 작가의 작품도 2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참여가 원칙이라지만, 작품 가격이 맞지 않아 일부 홍대 출신 작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흠. 이번 전시작에는 동시대 한국화를 주도하는 문봉선·이선우, 서양화가 박광진·지석철, 조각가 이일호·이형우 등이 200만원에 작품을 내놓았다. 서양화가 이두식(90만원)을 비롯해 ‘장갑화가’ 정경연(130만원), 설치작가 금누리(100만원), 도예가 원경환(100만원), 판화작가 곽남신(160만원), 섬유작가 김호연(180만원) 등은 일반 거래가보다 훨씬 낮다는 주장이다. 작품판매는 선착순을 원칙으로 1인당 3점까지 구입할 수 있다. 개막일은 12일 오후 3시부터.(02)320-1202.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양현미술상에 獨작가 이자 겐즈켄

    양현미술상에 獨작가 이자 겐즈켄

    재단법인 양현(이사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제정한 국제 미술상인 양현미술상의 올해 수상자로 독일 출신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인 이자 겐즈켄(61)이 9일 선정됐다. 겐즈켄은 건축적 구조와 일상용품 등을 결합해 동시대 정치·사회·경제 문제를 고찰하는 작가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여한 경력을 갖고 있다. 심사위원단인 캐시 할브라이시 뉴욕현대미술관 부관장은 겐즈켄의 작품에 대해 “회화와 건축물, 건축 양식간의 경계, 즉 매체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이 많다.”며 “조각의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 낸 작가”라고 평했다. 양현미술상은 예술 애호가였던 고(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해 제정된 상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약탈한 고대유물로 장사하는 박물관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반환요구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듣고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임진왜란 때로 추측할 뿐, 언제 일본으로 유출됐는지 확실하지 않은 몽유도원도가 13년 만에 잠깐 고향 나들이를 한다는 소식에, 이 걸작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 덴리대의 으름장에 밀려 국내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3~4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분 정도 구경했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는 몽유도원도 외에도 우리 것이지만, 해외에서 빌려와야 했던 문화재들이 수두룩했다. 빌려준 곳도 각양각색이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LA카운티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일본 오쿠라 문화재단 등등. 최근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규모가 7만 6000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수치가 이렇다. 그런데 1955년 일본으로부터 처음 환수가 시작된 뒤 국내에 돌아온 문화재는 10개국 8154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시킨 말이 떠오른다. “이거 왠지 씁쓸하구만.” 이집트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 천장에는 천궁도의 석고 복제품이 있다. 진본은 세계적인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골동품 수집가 세바스티앙 루이 솔니의 대리인들이 1821년 폭약을 터뜨리며 진품을 뜯어내 프랑스로 가져갔다. 솔니는 이를 프랑스 국왕 루이 18세에게 팔았다. 루브르는 관람객들에게 이집트 천문학에서 사용된 난해한 형상과 상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이 장엄한 미술 작품의 약탈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역사와 유물, 문화재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박물관에게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입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에 한해서다. 루브르의 3대 유물 가운데 하나인 승리의 여신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부영사 샤를 샹푸아소는 1863년 사모트라케 섬을 탐사하다가 산산조각난 이 조각상을 발견했다. 루브르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이를 복원해 냈다. 루브르가 승리의 여신 입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를 발견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고 유익한 역할을 했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에 다름 아닌 셈이다. 뉴욕타임스의 문화부 기자 및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샤론 왁스먼은 ‘약탈 그 역사와 진실’(오성환 옮김, 까치 펴냄)을 통해 약탈당한 고대 유물과 현재 그 유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반환 전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8개국 10여개 도시를 찾아가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취재했다. 상당수 고대 유물에 대한 입수 경위에 의문이 제기됐고, 반환을 요구받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J 폴 게티 박물관 등 서양의 4대 박물관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만났다. 또 적극적으로 고대 유물 반환을 요구하고 추진하고 있는 이집트,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를 찾았다. 언론을 통해 압력을 가하는 이집트 고유물 최고위원장인 자히 하와스, 법적인 기소도 불사하는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피오릴리 검사, 특종 보도로 유물 반환에 기여한 터키의 언론인 오르겐 아자르 등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대형 박물관은 고대 유물의 약탈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장과 마찬가지다. 서양 박물관 쪽 입장은 다르다. “그리스 조각상이 그리스에 있었을 경우 누가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이런 유물들이 위대한 것은 루브르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루브르의 수석공보관 아지 르롤의 말이 이를 웅변한다. 박물관들은 고대 유물들이 원래 자리를 떠나 제대로 보관됨으로써 고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이 탄생했고, 유물들이 파괴로부터 구제받았다고 항변한다. 반환 문제에 있어서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국가들에 무조건 유물을 반환하는 것은 유물의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때 이집트 정부가 피라미드의 돌을 이용해 공장을 지으려고 했다는 사실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문명 발전에 공헌한다는 신념보다는 유물 소유에 대한 탐욕이 출발점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약탈된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일부 국가들의 보존 역량을 믿을 수 없어 반환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서양 박물관들이 유물 취득 경위를 선별적으로 왜곡해 유물을 빼앗긴 나라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것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유네스코에 약탈 문화재 반환 규정이 있지만 1970년대 이후에 거래된 약탈 문화재에만 적용되며 여전히 도굴, 밀수입 등을 통한 약탈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서양 박물관들은 유물 약탈 역사를 밝히고,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출처 국가들과 대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서양 박물관들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유물의 구입을 근절하고 출처 국가들과 공조해 유물을 공동관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한다. 2만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00개국 출판사 6936곳 참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14일 개막

    100개국 출판사 6936곳 참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14일 개막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전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오는 14일(현지시간)에 개막돼 5일간 열린다. 독일서적상출판인협회 주최로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전시공간 ‘메세(Messe)’에서 진행된다. 매년 30여만명이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을 방문하는데, 올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신종플루 등이 방문객 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올해로 61번째를 맞은 도서전은 100개국 6936개사가 참여해 40만 1017종의 출판물을 전시한다. 지난해 108개국 7363개사보다 줄어든 규모다. 참가국 중 76개 국가가 따로 국가관을 설치하고, 세계 각국의 출판 관계자들이 참여해 토론회와 세미나, 프레젠테이션을 벌인다. 올해 주빈국은 중국. ‘전통과 혁신’을 주제로 모옌(莫言), 쑤퉁(蘇童), 위화(余華) 등 중국 작가 50여명과 출판인 2000여명, 예술가들이 참석해 다양한 행사를 연다. 450개 이상의 주빈국 관련 행사가 개최되는데, 이중 절반 정도는 중국 측에서 개최하며 나머지는 연구소·출판사·NGO 등에서 준비할 예정이다. 공식 개막일 전날인 13일 오후 열리는 행사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주빈국 관료·작가·출판인들이 참석하며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郞朗) 등이 공연을 펼친다. 중국측은 책뿐 아니라 종이·판화·비주얼아트·조각·무형문화재 등 예술 전시도 함께 열며 중국 출판과 경제 개혁, 교육 등을 주제로 한 포럼, 전통 음식과 음악이 있는 파티 등 여러 행사를 마련한다. 1961년부터 참석해온 한국은 출판문화협회(회장 백석기) 주도로 한국관을 설치, 국내 18개 출판사가 참여해 800여종을 선보인다. 또한 20개사 위탁전시와 특별전시까지 예정돼 있다. 특별전시로는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한 동의보감 전시와 지난 3월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전 주빈국관에 전시됐던 원화 작가들의 그림책이 전시된다. 또한 한국관 참가사인 사계절의 아동 도서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만화영화 프리뷰도 상영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中건륭제 옥좌, 사상 최고가 130억원에 낙찰

    홍콩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청나라의 건륭황제가 사용한 옥좌가 중국 고(古)가구 사상 최고가에 팔렸다. 지난 8일 ‘2009 가을 중국 도자기 및 미술품 경매’에 나온 이 옥좌는 140㎝ 높이의 박달나무 일종인 ‘자단’으로 만들어졌다. 의자의 등받이와 팔걸이 등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 5마리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수 백 년이 지났어도 광택과 단단함이 여전해 수집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또 개인 수집가가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경매에 나왔다는 점에 끌린 수집가들은 연거푸 높은 가격을 부르며 눈독을 들였다. 1300만 홍콩달러(약 20억원)로 시작된 경매는 수집가들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8578만 홍콩달러(약 130억원)에 낙찰되면서 끝을 맺었다. 이 낙찰가는 중국 고가구의 경매 기록을 경신한 것이며, 최종 낙찰에 성공한 사람은 상하이의 한 사업가로 알려졌다. 소더비의 한 관계자는 “이 옥좌는 경매에 나오기 전부터 전 세계 수집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면서 “중국 가구 경매의 기록을 깰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청나라 제6대 황제(재위 1735∼95)인 건륭제는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한 황제이며, 중국 역대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황제이기도 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수요일 점심 시청로비는 콘서트홀

    수요일 점심 시청로비는 콘서트홀

    “부산시청 로비에 웬 음악 소리가….” 지난 7일 점심 때 부산시청을 찾은 윤재웅(53·자영업)씨는 시청 지하철 연결로를 이용해 로비로 들어서는 순간 은은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궁금증이 풀렸다. 다름 아닌 시가 마련한 수요 로비콘서트에서 나는 음악 소리였다. 그는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시청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져 마치 음악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했다.”며 미소 지었다. 부산시청 1층 로비가 문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청사를 찾는 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시는 시민들에게 문화의 장과 향유 기회를 확대하려고 지난해부터 매주 수요일 점심 시간(낮 12시30분~1시)을 활용해 청사 1층 로비에서 수요 로비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 콘서트는 부산시립예술단과 음악을 사랑하는 동호회가 중심이 돼 운영되는 문화공연으로 시청을 방문하는 시민과 소속 직원에게 점심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월9일 부산시립교향악단의 레이디스 필 앙상블 공연을 시작으로 7일까지 총 73회가 열렸다. 매월 1·3주는 음악을 사랑하는 동호회 공연으로, 2·4주는 시립예술단(교향악·국악·무용·합창·극단 등)의 테마가 있는 공연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7일 피아니스트 윤효간의 독주회를 시작으로 ▲14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대금산조와 판소리, 가야금 제주(침향무) ▲21일 메트로폴리탄 팝스오케스트라의 재즈·영화·애니메이션 주제곡 연주 ▲28일 부산시립무용단의 춘행무·쾌지나칭칭나네·설장구 등이 준비돼 있다. 이와 함께 시청 로비와 지하철역 연결로 공간도 작품전시회 등의 다양한 문화 행사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도 한국화훼소비자회 회원들의 초대 작품전시회(7~9일) ▲관광서비스개선비교 사진전(〃) ▲아이사랑백일장 우리가족 사진전(14~16일) ▲국제교류재단의 극동 러시아 부산 그리기 대회 우수작품 전시회(19~23일) 등이 열리거나 열릴 예정이다. 이 밖에 시청사 로비 곳곳에는 유명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품 등 예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시 관계자는 “청사가 열린 문화예술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테마스토리 서울] (15) 뚝섬 경마장

    [테마스토리 서울] (15) 뚝섬 경마장

    한국전쟁 직후 어렵게 하루를 살던 서울시민들이 ‘대박’을 꿈꾸며 주말마다 경마장을 가득 메웠다. ‘뚜~뚜~뚜~’ 대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와~’ 대박을 알리는 함성, 그리고 ‘아~’ 휴지조각이 된 마권을 찢어 날리며 뱉었던 탄식이 어우러졌던 ‘뚝섬경마장’을 아십니까. ●조선초엔 왕실 사냥터로 쓰여 지금 경마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서울숲공원의 달리는 말에 탄 기수 조각상 10여점이 그때의 추억을 대신하고 있다. 1922년에 조선경마구락부가 발족됐고 1945년 광복과 더불어 한국마사회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마사회는 신설동에 경마장을 개장했지만 전쟁을 겪으며 1951년 주한 미공군 비행장으로 징발되고 만다. 따라서 한국마사회는 1930년대 조선경마구락부가 경마장 이전 목적으로 매입했던 뚝섬에 경마장 공사를 시작했다. 그 날이 바로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뚝섬은 옛날부터 말과 인연이 깊었다. 조선시대 초부터 말을 먹이는 목장이 있었고 왕실의 사냥터로 쓰이기도 했다. 마사회는 보유한 모든 자산을 팔아, 천신만고 끝에 이듬해인 1954년 5월8일 뚝섬경마장의 문을 열었다. 비록 채소밭 속의 보잘것 없는 경마장이었지만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3년 11개월만에 명맥을 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경마는 그야말로 초보 수준. 말(馬)도 지금처럼 미끈하게 생긴 경주마가 아니고 조랑말이었다. 충분한 마필 자원을 확보하지 못했던 마사회는 광주, 목포 등에서 몽골계 재래종마를 겨우 모아 명맥을 이었다. 경주로는 모래와 초지가 섞였고 경주로 가운데 채소밭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지는 풍경이다. ●한국전쟁 이후 급조… 경주로에 채소밭도 또 관람대는 미제 맥주깡통을 이어 붙인 허름한 모습이었다. 토털리제이터(배당률 계산기)가 없어 경주 20분전에 베팅을 마감하고 수십명의 직원들이 주판으로 배당률을 산출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968년에는 경마장 가운데 골프장이 들어선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채소밭으로 쓰이던 경주로 가운데를 골프장으로 개발하라고 한마디하자 전혀 연관이 없는 골프와 경마가 한 솥밥을 먹게 된 셈이다. ●1989년 과천경마장 생기며 역사속으로 35년 간 서울시민의 애환을 간직하던 뚝섬경마장의 시대는 1989년 과천경마장 개장과 더불어 막을 내린다. 골프장도 1994년 문을 닫고 뚝섬 가족공원으로 변신한다. 이후 서울시가 2005년 대규모 생태공원인 뚝섬 서울숲으로 조성했다. 비록 조각상 몇 개가 그때의 추억을 대신하고 있지만 뚝섬경마장에 서려있는 서울시민들의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14~25일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

    월급쟁이 등 소시민들도 미술품을 살 수 있도록 기획한 마니프(MANIF·로고)서울국제아트페어가 14~25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1995년 시작해 15회째를 맞는 행사로 올해는 국내·외 작가 165명의 작품 2500여점이 정찰제로 판매된다. 과장 명함을 가진 개인이나 동반 가족 등을 무료로 입장시키는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행사와 참여작가들이 출품한 100만원 소품전도 열린다. 지난해 마니프 참여 작가 중에서 관객들의 투표와 미술 전문가의 자문으로 선정한 유희영(대상)과 김만근(우수작가상) 등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수상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된다. 매일 관람객 2명을 추첨해 10호 크기의 판화를 선물하는 행사도 진행된다. 마니프 조직위 사무국측은 “이번 전시는 위축되고 있는 한국화와 조각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 부문의 젊은 작가를 모셨다.”고 설명했다. 마니프측은 “현재 블루칩 작가로 불리는 안성하, 도성욱, 박성민, 윤병락, 이길우, 이정훈 등 젊은 스타작가들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입장료 일반 5000원. (02)514-9292.
  • [NOW포토] 장동건, 옆모습도 조각이네

    [NOW포토] 장동건, 옆모습도 조각이네

    8일 부산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에 참석한 배우 장동건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서울신문NTN (부산) 강정화 기자 kj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글 국가브랜드 육성 조타수역할 하겠다”

    “한글 국가브랜드 육성 조타수역할 하겠다”

    한글날을 앞두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7일 서울 세종로 문화부 장관실에서 만났다. 지난 9·3개각에서 유임된 유 장관은 이제 16명의 역대 문화부 장관 가운데 4번째로 장수하는 장관의 반열에 올랐다. 유 장관은 뒤늦게 유임소감으로 “이제까지 뿌린 문화의 씨앗을 거둬 결실을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되도록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은 그의 새로운 약속이다. 유 장관은 한글을 국가브랜드로 키워나가기 위해 문화부가 주무부서로서, 법정 공휴일을 확정하는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옛 기무사 부지에 짓게 될 미술관 건물에 대해 “국내 건축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면서 “문화부가 지원하는 공공건물들은 실제보다 저평가돼 있는 국내 작가들을 활용하고, 오히려 이들의 작품이 세계적인 건축잡지에 실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한글은 물론 영어도 배워야 하는 글로벌 세상이 됐다.”면서 “청소년들이 차라리 두 개의 언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도 배워서 아시아의 리더가 될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병아리 연예인들의 노예계약서가 파문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유 장관은 “계약기간 7년이 넘지 못하도록 하는 표준계약서 등이 포함된 ‘연예진흥법안’(가칭)을 제정해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은 또한 신문산업이 위축되는 것과 관련해 “인터넷 포털이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신문기사를 유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정부가 정책적으로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가겠다.”고도 밝혔다. 신문부수공사협회(ABC협회)가 유료 부수의 기준을 완화하는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해 유 장관은 “문화부가 ABC협회의 유료부수 발표에 따라 정부광고를 집행하기로 한 만큼 ABC협회의 공신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글날을 공휴일로 재지정하자는 의견들이 많다. 주무부서에서 추진할 생각이 없는지. -지난 6월24일 제14차 국가경쟁력위원회 회의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사공일 위원장이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발의했다. 원래 공휴일 지정 여부는 행안부 소관이지만, 한글을 국가브랜드화하자고 했기 때문에 주무부서인 문화부가 충분히 행안부를 설득하고,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해야 국민들이 기념일이 됐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경제위기 등도 있어 반대하는 의견들도 있겠지만 추진해 보겠다. →문화부 출입구에 ‘세상을 담는 아름다운 그릇, 한글’이라는 조각품을 설치했는데, 사실 이번 정부 초기부터 ‘오륀지’ 파동부터 영어몰입교육 등으로 영어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 아니었나. -어차피 국제화 시대라서 영어를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에서 영어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된 것으로 이해한다. 요즘 시대에 영어는 기본이다. 청소년들에게 중국어와 일본어도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리더 역할을 하려면 이들 언어도 배워야 한다. 유럽 사람들 5개 국어가 기본이라고 하지 않나. 다만 아쉬운 것은 한글을 배우는 청소년들이 언어를 구사하는 훈련이 안 돼 있다. 꾸준히 글쓰고, 말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실생활에서 한글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연극배우를 하면서 ‘우리말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남다른 각오가 있었다. 우리나라 말은, 영어의 억양과도 완전히 다르고, 말의 높고 낮음에 따라 뜻이 바뀌는 중국어의 사성과도 다른, 고저장단, 강약완급 등 8가지의 표현방식이 있다. 이 방식대로 우리말을 사용하면 재밌고 화려하다. 요즘 연극하는 친구들이 우리말과 글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지 의문이 든다. 최소한 국립극단원은 우리말의 사용에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은 없어도 정신적 자산, ‘국립’이란 딱지를 붙이려면 자부심, 자존심을 가지고 일해야 존경받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제대로 된 영어를 배우려면, 연극배우를 만나라고 한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는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완벽한 언어를 구사할 수가 없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압축된 말로 한 사람의 60년 인생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모국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일테면 괴테는 파우스트를 60년간 써내려 갔는데, 연극배우가 그것을 2시간에 표현해 내려면 제대로 된 언어구사와 표현양식을 익혀야 한다. →국감에서 여자배우 10명 중 4명이 원하지 않는 술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올해 ‘장자연 사건’이나 동방신기 등 연예계의 노예계약서 등이 논란이 됐다. 연기자로 활동하실 때 후배들에게 그런 애로사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옛날에는 PD나 작가, 배우들 사이에서 동료의식이 강했다. 술을 마셔도 정으로 먹고, 좋아서 만났다. 그런데 매니지먼트 시대, 기획사 시대가 되면서 부작용이 드러난 것 같다. 각자의 매니저, 에이전트가 활성화되면서 종속관계가 형성되고, 경쟁도 격렬해져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싶다. 올 정기국회에서 ‘연예진흥법안(가칭)’을 통과시킬 생각이다. 계약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중재위원회, 상담센터를 통해 사고가 나기 전에 여과장치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다. 표준계약서에서 계약기간을 7년으로 하니까 기획사가 반발하는데, 내 개인 생각으로는 7년도 길다. 수익의 수준에 따라 이익을 일정한 비율로 나눠주는 러닝개런티 방식으로 계약서를 써야 한다. 잘나가는 기획사에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신인들이 몰릴 때 조건이 없다. 청소라도 하면서 하겠다고 한다. 예전에 법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이런 사건들을 조정한 적이 있다. 이순재씨와 둘이 번갈아가면서 몇차례 했다. 신인들이 계약을 파기하면 기획사가 라면값, 자장면값까지 영수증으로 첨부해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법률 상으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신인이 지게 돼 있지만 어떤 면에서 기획사들이 좀 나쁘다. 악질 기획사들도 적지 않다. →기무사 옛터를 미술관으로 돌려준다고 해놓고, 국군서울지구병원이 남아서 미술계 인사들의 불만이 많다. 빨리 넘겨달라고 하는데 언제쯤 가능한가. -대통령 위급상황에서 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서울지구병원을 옮길 수 있는 대체부지가 결정돼야만 옮길 수 있다. 청와대 인근에 그럴 만한 부지를 찾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전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마땅치 못하다. 다만 미술관과 군복을 입고 보초서는 군인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군복 등을 문화적으로 바꿀 방안을 찾고 있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무사 옛터에 지을 미술관 건물을 해외 유명 건축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랜드마크가 되도록 신축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술관을 운영해야 하는 배 관장은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월 말 건축협회 세미나에서 기무사 건물이 건축사에서 중요해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복원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앞으로 건축물을 짓는다면 기무사뿐만 아니라 문화부가 지원하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공공건물에 대해서는 국내 건축디자이너들을 활용할 생각이다. 우리 건축가의 역량도 높은데, 평가절하돼 있다. 재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멋진 건물을 지은 뒤 세계적인 건축잡지에 실리는 방식으로 지원하겠다. →대한민국관에 현재 문화부 건물을 넘겨주면 어디로 이사를 가나. -내년 초에는 이사를 가야만 한다. 경복궁처럼 문화적 상징성이 있는 곳이나 과거 산업유산을 문화시설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걸맞은 곳을 찾고 있다. 용산이나 서울역 쪽의 이전 건물을 알아봤는데, 마땅치 않다. →신문산업에 지원하기 위해 어떤 복안들이 있나. -신문 뉴스에 대해 유료화를 해야 한다. 문화부는 ABC협회를 통해 유가부수를 발표하고 이것을 통해 정부광고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광고의 비율이 작지만, 정부가 가는 방향으로 기업 광고들도 따라가게 돼 있다. 뉴스를 유료 사이트화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사람들은 CD를 안사지만 작곡가에게 음원에 대해 돈을 내고 있다. 정부가 신문사에 뉴스를 저작권으로 취급하고 유료화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제시하겠다. ABC협회의 공신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 1997~99년 중앙대 연극과 수업을 신문 사설을 가지고 했다. 신문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다 있다. 신문은 연극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거세刑/육철수 논설위원

    역사상 거세형벌을 받은 가장 유명한 사람은 중국 한무제 때 사관 사마천일 것이다. 그는 선비족과의 전투에서 투항한 장군 이릉을 비호하다 무제의 심사를 뒤튼 죄(?)로 궁형(성기를 통째로 도려내는 형벌)을 당한다. 역사소설가 가오광(高光)은 사마천이 뜨끈뜨끈한 누에방에서 노인 형리 두 명에게 궁형을 받는 장면과, 공포에 몸서리치는 사마천의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래도 거세의 치욕을 딛고 불후의 역사서 ‘태사공서(사기)’를 남겼다. 그걸 보면 남성을 잃은 저주스러운 형벌이 그를 더욱 강인한 역사 인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거세는 구약성서에 등장할 정도로 동서양에서 오래된 형벌의 하나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로마, 인도 등에서는 전쟁에서 지면 성기를 자르는 관행이 있었단다. 성욕을 막으려는 종교의식이나, 환관이 되기 위한 거세도 있었다. 18세기 유럽에선 성악가(카스트라토)가 되려는 소년들에게 거세를 시행했는데, 이 역시 형벌과는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거세든 남자들에겐 끔찍한 일임에 틀림없다. 문명의 시대인 요즘, 국내에서 거세 논란이 한창이다. 조모(57)씨가 초등학교 어린이를 성폭행한 데 대한 최근의 재판 결과 때문이다. 이 일로 어린이는 심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고, 그 가족은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런데 대법원이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은 조씨에게 고작 징역 12년형을 선고한 게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양심에 털이 난 조씨 같은 흉악범에게 ‘화학적 거세(chemical castration;약물 주입으로 성욕을 억제시키는 처방)’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이 형벌을 이미 시행 중인 덴마크는 꽤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피해 어린이와 가족 처지에선 흉악범을 능지처참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러나 이용훈 대법원장 말대로, 형량을 여론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동 성폭행범의 경우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가 적잖다고 한다. 형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국민의 법감정이 폭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짐승 같은 범인에게 아무리 형량을 높이고 거세형을 도입한들 이미 산산조각난 피해자의 인생은 어디서 다시 찾겠는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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