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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1] 불화(佛畵)에 담긴 일제강점기 사회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1] 불화(佛畵)에 담긴 일제강점기 사회상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 보여 주는 불교회화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감로탱화, 감로왕도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3단으로 그려졌다. 아래부터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감로탱은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감로탱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각각의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조성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록화이자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 의미가 뚜렷한 감로탱 가운데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가 있다.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의 원찰 흥천사는 1939년 감로왕도를 새로 봉안했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대표적 화승 보응 문성과 그의 제자 병문이 참여했다. 두 화승은 기존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것은 물론 당시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담아냈다.  두 화승 가운데 병문의 족적은 흥미롭다. 병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 조각가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를 주도한 김복진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1949년 출범한 ‘불교미술연구회’에는 미술부장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흥천사 감로왕도가 그려진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1941년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보응 문성과 병문은 이 언저리의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기세등등한 육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총독부로 바뀌었으니 당대의 모습은 아니다.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새로운 문물의 양상도 보인다.  흥천사 감로왕도는 최근까지 전쟁 장면이 담긴 몇몇 장면은 호분칠을 하고 흰 종이로 가려놓기도 했다. 하단의 오른쪽 맨 아래 장총을 둘러메고 일렬로 행진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호분칠이 짙어 종이를 떼어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럼 모습은 흥천사 감로왕도를 한때 친일적인 사회상을 담은 불화(佛畵)로 분류하게 만든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당대의 새로운 사회상을 가감없이 투영한 이 그림을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불교회화의 하나로 적극 재평가하고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초보 창업자 위한 소자본 아이템, ‘츄레리아’만의 경쟁력은?

    초보 창업자 위한 소자본 아이템, ‘츄레리아’만의 경쟁력은?

    프랜차이즈 창업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은 효율적인 임대료와 인건비를 고려하여 15평 미만의 소형 디저트카페 창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창업자금도 비교적 저렴하며 리스크가 적은 소자본 창업 아이템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도 요식업 시장이다. 따라서 요리에 자신이 없거나 창업이 처음인 초보창업자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만약 요리를 해본적이 없거나,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다면 가맹비와 로얄티가 없는 지역밀착 맞춤형 디저트 카페 츄러스 전문 브랜드 ‘츄레리아(Churreria)’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스페인에서 온 디저트인 츄러스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 간편하게 들고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츄레리아는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츄러스 디저트 업체와 다르게 Cj제일제당㈜과 독점 제조한 ‘츄러스 믹스’를 독점 공급하고 있어 품격있는 맛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기업과의 독점 업무 제휴를 통해 다양한 츄러스 믹스를 개발하고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가맹점에 안정적으로 츄러스 믹스를 제공함으로서 츄러스의 맛과 품질, 경쟁력에서 자신있게 앞서고 있다고 츄레리아 관계자는 전하고 있다. 또한 츄레리아의 츄러스 믹스는 100% 식물성 재료만 사용해 웰빙 디저트, 건강 간식이라고 부를 만하다. 따라서 먹거리 안전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츄레리아에서는 매일 매장에서 자동반죽기를 통해 즉석 반죽을 만들고,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츄러스를 만들어 내놓기 때문에 늘 신선한 수제 츄러스를 맛볼 수 있다. 또한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메뉴를 구성했다. 롱 츄러스, 미니츄러스에 다양한 디핑소스(초코, 블루베리, 딸기, 망고)를 활용해 가지각색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아이스크림 츄러스, 소프트아이스크림, 커피, 스무디, 대만면빙수, 허니브레드, 와플, 베이글, 머핀, 조각케익, 쿠키 등 매장의 입지, 상권에 따라 지역 밀착 맞춤형으로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츄레리아 창업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chur.co.kr)나 대표번호(02-412-9547)를 통해 알아볼 수 있으며 본사에서는 방문하시는 예비 창업자에게 무료 시식과 함께 자세한 상담을 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천 삼강리서 구석기 유물 출토… 4만~8만년 전 석기 160여점 발굴

    예천 삼강리서 구석기 유물 출토… 4만~8만년 전 석기 160여점 발굴

    예천 삼강리 유적에서 전·중기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문화층을 보여 주는 석기가 대량 출토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6월부터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일대를 발굴 조사 중인 동국문화재연구원은 삼강리 유적에서 8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시대와 8만년에서 4만년까지 중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보여 주는 몸돌, 격지, 찍개, 여러면석기, 망치돌 등 석기 160여점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삼강리 유적은 낙동강을 가르는 내성천 인근의 하안단구(하천의 흐름을 따라 생긴 계단 모양의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은 4~4.5m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고, 퇴적층은 5개의 유물층(일명 1~5문화층)으로 구성돼 있다. 1~3문화층에선 주로 강돌로 만든 석기가, 하층에 속하는 4~5문화층에선 안산암 등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가 나왔다. 연구원 측은 “안산암 같은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는 주로 전기와 중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런 석기 재료와 문화층의 차이로 볼 때 삼강리 유적은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1~2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 중에는 긴 직사각형 석재를 얇은 너비의 조각으로 떼어 내는 방법을 사용해 구석기인들의 역동적인 석기 제작법을 보여 주는 유물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조사 지역 인근에는 상주 신상리 유적, 안동 마애리 유적 등 구석기 시대 유적이 있지만 출토된 유물 수량이 적고 유물구성상을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반면, 삼강리 유적은 경북 지역에서 확인된 유적 중 다양한 문화층과 유물 구성을 보여 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발굴 조사 경과보고는 19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예천 삼강리 유적서 구석기 유물 무더기

    예천 삼강리 유적서 구석기 유물 무더기

     예천 삼강리 유적에서 전·중기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문화층을 보여 주는 석기가 대량 출토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6월부터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일대를 발굴 조사 중인 동국문화재연구원은 삼강리 유적에서 8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시대와 8만년에서 4만년까지 중기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보여 주는 몸돌, 격지, 찍개, 여러면석기, 망치돌 등 석기 160여점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삼강리 유적은 낙동강을 가르는 내성천 인근의 하안단구(하천의 흐름을 따라 생긴 계단 모양의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은 4~4.5m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고, 퇴적층은 5개의 유물층(일명 1~5문화층)으로 구성돼 있다. 1~3문화층에선 주로 강돌로 만든 석기가, 하층에 속하는 4~5문화층에선 안산암 등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가 나왔다. 연구원 측은 “안산암 같은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는 주로 전기와 중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런 석기 재료와 문화층의 차이로 볼 때 삼강리 유적은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1~2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 중에는 긴 직사각형 석재를 얇은 너비의 조각으로 떼어 내는 방법을 사용해 구석기인들의 역동적인 석기 제작법을 보여 주는 유물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조사 지역 인근에는 상주 신상리 유적, 안동 마애리 유적 등 구석기 시대 유적이 있지만 출토된 유물 수량이 적고 유물구성상을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반면, 삼강리 유적은 경북 지역에서 확인된 유적 중 다양한 문화층과 유물 구성을 보여 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고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발굴 조사 경과보고는 19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1만2000년만에 모습 드러난 고대의 새끼사자 2마리

    1만2000년만에 모습 드러난 고대의 새끼사자 2마리

    1만 2000년 전 얼어붙어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온 두 마리 새끼 ‘동굴사자’의 사체가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동부에 위치한 야쿠티아 공화국의 ‘야쿠티아 과학아카데미’(Academy of Sciences of Yakutia)는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어린 동굴사자 2마리의 사체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11월 중에 이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던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현대의 집고양이보다 약간 더 큰 새끼 사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주둥이나 눈, 신체를 뒤덮고 있는 털 등 각각의 신체부위가 눈에 잘 들어온다. 이들에 대한 조사를 맡은 현지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의심의 여지없이 획기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을 이끈 알베르트 프로토포보프 박사는 “이들은 털, 귀, 연조직, 심지어는 수염 등 모든 신체 기관이 온전히 남아있는 상태”라며 “지금까지 발견된 동굴사자의 사체 중에 가장 완벽하다”고 설명했다. '동굴사자'(Panthera leo spelaea)는 지금으로부터 258만~1만 년 전에 해당하는 시기인 신생대 홍적세(洪績世·Pleistocene) 중기부터 후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에 서식했던 고대동물이다. 그동안 동굴사자의 사체가 발견된 사례는 드물다. 간혹 발견되는 사체들조차 대부분 뼛조각 등 전체 신체 부위 중 일부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생물의 모습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번 두 마리 사자의 사체는 야쿠티아 지역 영구동토층 안에 갇혀 보존돼왔으며, 부패하거나 훼손되지 않아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지난여름, 해당 지역의 하천인 우얀디나 강의 수위는 갑작스럽게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고, 그 과정 중에 이들을 가두고 있던 동토가 갈라졌다. 이에 따라 사체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났으며 지역 주민이 이를 포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토포보프 박사는 “새끼들의 크기를 현대의 사자들과 비교해 유추하면 이들은 겨우 약 1~2주 정도 된 매우 어린 개체들로 추정된다”며 “아직 눈조차 온전히 뜨지 못했으며, 유치도 다 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어째서 이들이 어린나이에 함께 죽어 냉동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박사는 어미사자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굴에 숨겨놓은 뒤 불행히도 산사태가 일어나 두 마리가 안에 갇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에 의해 두 마리는 영구동토층에 파묻혔으며 이 때 공기의 유입까지 차단돼 지금과 같은 상태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 이들의 성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따라서 각자의 성별에 맞추어 이름을 짓는 대신 이들이 발견된 우얀디나 하천 지역의 이름을 따 사자들을 각각 ‘우얀’과 ‘디나’라고 부르고 있다. 연구팀은 전 세계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 동굴사자와 현대 사자 사이의 차이점, 동굴사자들이 시베리아의 혹한을 견뎌낼 수 있었던 비결 등을 밝혀내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프로토포보프 박사는 이들의 유전자를 복제해 살아있는 동굴사자를 탄생시키는 연구에 대해서는 ‘아직 고려하기에 너무 이른 단계’라고 말한다. 박사는 “현재 우리의 연구 목표는 우선 이들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시베리안타임즈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인류가 양봉한 시기는 최소 8500년 전 - 네이처

    인류가 양봉한 시기는 최소 8500년 전 - 네이처

    인류가 꿀을 얻기 위해 벌을 기르는 양봉을 시작한 시기가 최소 8500년 전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고고학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톨대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이 유럽과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등의 고고학 유적지 150여 곳에서 나온 질그릇 조각 6400여 점에 남아 있는 화학물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벌집을 만들 때 분비되는 밀랍의 화학적 흔적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이런 증거는 여러 유적에서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것과 같은 밀랍의 흔적은 비교적 드물지만 여러 지역에 걸쳐 널리 분포된 게 특징이다. 영국 남부와 덴마크에서 시작해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7000년 된 알제리의 유적에서도 밀랍 흔적이 발견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선사 시대의 암각화에 꿀을 채취하려고 하는 채취꾼이나 고대 이집트 왕의 벽화에도 양봉하는 듯한 모습이 표현돼 있는 등 이전에도 인간과 꿀벌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있었다. 터키에 있는 차탈회위크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7500년 전 조리 그릇에 가장 오래된 밀랍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이 유적지 벽화에서는 벌집 모양의 문양까지 발견됐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멜라니 로펫-살크 박사는 “꿀벌과 관련한 물건이 신석기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다는 것은 양봉 시작을 의미한다”면서 “당시 농부들은 소, 돼지 등의 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꿀벌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의 그릇에서는 밀랍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이런 북유럽에서는 기후 때문에 벌의 서식이 제한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연구논문은 지난 20년간에 걸쳐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결과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사시대의 양봉이 상상 이상의 속도로 퍼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로펫-살크 박사는 “당시 사람들에게 꿀은 귀중한 감미료였을 것”이라면서 “밀랍은 의식과 화장품, 의료 목적은 물론 도자기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 최신호(11월 11일자)에 게재됐다. 사진=ⓒ포토리아(위), 네이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거대한 컨테이너·금세 사라지는 물글씨 디지털 시대 정보와 인간관계를 빗대다

    거대한 컨테이너·금세 사라지는 물글씨 디지털 시대 정보와 인간관계를 빗대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장 높고 큰 박스 공간에 거대한 프레임만 남은 컨테이너 형태의 구조물 4개가 층층이 쌓였다. 4층 건물의 입면도처럼 보이는 10m 높이의 설치물에서 시간차를 두고 단어 형태의 수많은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물글씨’는 뜻을 알아차릴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을 지원하는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전시 작가로 선정된 독일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율리어스 포프(42)가 선보인 작품 ‘비트.폴 펄스’(bit.fall pulse)다. 포프는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정보의 관점에서 보고자 했다”며 “물방울 글씨는 현대의 시대 정신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이지만 단어 자체보다는 키워드들이 잠깐 보였다가 환경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통해 문화가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작업의 제목인 ‘비트.폴 펄스’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 정보 조각(bit)의 떨어짐(fall), 즉 쏟아지며 짧은 순간만 존재하는 정보의 ‘일시성’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정보의 활발한 맥(pulse)을 상징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하는 작품 ‘비트.폴’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포프는 독일 라이프치히 시각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뉴욕현대미술관(2008), 리옹 현대미술관(2008),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미술관(2009), ZKM(2015) 등 해외 유수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한 바 있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은 정보의 자연적 특성에 주목하고 디지털 시대의 정보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표현한다. ‘비트.폴’은 작가가 고안한 통계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연결돼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역동적인 기계음과 물을 쏟아낸다.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들은 짧은 순간 단어를 만들며 떨어진다. 물글씨로 쓰여질 단어들은 인터넷 뉴스피드 게재 단어 중 노출 빈도수에 따라 중요도를 측정해 선택한다. 10여년째 세계 곳곳에서 진행해 온 ‘비트.폴’ 시리즈 중 최대 규모인 이번 신작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 지속해 왔던 인간의 정보 소비 방식과 그에 따른 문화의 변화를 한층 더 은유적이고 심화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포프는 “물건을 실어나르는 컨테이너의 프레임은 그 자체로 물류와 정보의 흐름을 나타낸다. 그것을 ‘현대의 바벨탑’처럼 쌓아 필터링을 거친 메시지를 쏟아내는 거대한 디지털 통신의 구조를 상징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는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한 작가를 선정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박스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신작을 제작,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서울관 개관과 함께 시작돼 2013년 한국작가 서도호, 2014년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을 전시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글씨’로 쓴 이 시대.. ‘비트.폴 펄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글씨’로 쓴 이 시대.. ‘비트.폴 펄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장 높고 큰 박스 공간에 거대한 프레임만 남은 컨테이너 형태의 구조물 4개가 층층이 쌓였다. 4층 건물의 입면도처럼 보이는 10m 높이의 설치물에서 시간차를 두고 단어 형태의 수많은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물글씨’는 뜻을 알아차릴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을 지원하는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전시 작가로 선정된 독일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율리어스 포프(42)가 선보인 작품 ‘비트.폴 펄스’(bit.fall pulse)다. 포프는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정보의 관점에서 보고자 했다”며 “물방울 글씨는 현대의 시대 정신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이지만 단어 자체보다는 키워드들이 잠깐 보였다가 환경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통해 문화가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작업의 제목인 ‘비트.폴 펄스’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 정보 조각(bit)의 떨어짐(fall), 즉 쏟아지며 짧은 순간만 존재하는 정보의 ‘일시성’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정보의 활발한 맥(pulse)을 상징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하는 작품 ‘비트.폴’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포프는 독일 라이프치히 시각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뉴욕현대미술관(2008), 리옹 현대미술관(2008),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미술관(2009), ZKM(2015) 등 해외 유수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한 바 있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은 정보의 자연적 특성에 주목하고 디지털 시대의 정보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표현한다.  ‘비트.폴’은 작가가 고안한 통계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연결돼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역동적인 기계음과 물을 쏟아낸다.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들은 짧은 순간 단어를 만들며 떨어진다. 물글씨로 쓰여질 단어들은 인터넷 뉴스피드 게재 단어 중 노출 빈도수에 따라 중요도를 측정해 선택한다. 10여년째 세계 곳곳에서 진행해 온 ‘비트.폴’ 시리즈 중 최대 규모인 이번 신작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 지속해 왔던 인간의 정보 소비 방식과 그에 따른 문화의 변화를 한층 더 은유적이고 심화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포프는 “물건을 실어나르는 컨테이너의 프레임은 그 자체로 물류와 정보의 흐름을 나타낸다. 그것을 ‘현대의 바벨탑’처럼 쌓아 필터링을 거친 메시지를 쏟아내는 거대한 디지털 통신의 구조를 상징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는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한 작가를 선정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박스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신작을 제작,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서울관 개관과 함께 시작돼 2013년 한국작가 서도호, 2014년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을 전시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삼성 스마트폰 덕분에 구사일생”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삼성 스마트폰 덕분에 구사일생”

    사상 최악의 프랑스 파리 테러에서 한순간 생사의 운명이 갈린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바타클랑 극장의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20대 여성이 테러 현장을 묘사한 글과 피 묻은 자신의 옷을 찍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이소벨 보더리는 14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십 명이 내 앞에서 차례로 사살됐고 극장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며 당시 처참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하며 몇 시간 동안 죽은 체하고 누워 있었다”면서 “운이 좋아 살아 남았다”고 말했다. 그의 글이 게시된 직후 150만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생환의 기쁨을 공유했다. 테러 직후 바티클랑 극장에서 이송된 환자 50명을 치료한 파리 조르주 퐁피두 병원의 필리프 쥐벵 응급센터장은 “전쟁보다 참혹했다”고 증언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베스트르(왼쪽)라는 이름의 남성은 테러 당일 스타드 드 프랑스 근처에서 테러범이 터뜨린 폭탄 파편에 맞을 뻔했으나 휴대전화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프랑스 방송 아이텔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길을 건너는데 오른쪽에서 폭탄이 터졌다”면서 “휴대전화가 대신 파편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화기가 아니었으면 내 머리는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라면서 파편을 맞은 충격으로 앞면 액정과 뒷면이 파손된 삼성전자의 흰색 스마트폰(오른쪽)을 꺼내 보였다. 이 남성은 복부 쪽에 폭탄 파편 일부를 맞았으나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교황 “프랑스 위해 기도”… 쿡 “우리는 파리지앵” 트윗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발생한 사상 최악의 연쇄 테러로 전 세계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나는 프랑스 국민과 희생자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매우 슬프다”며 비통해했다고 바티칸 라디오가 보도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13일 밤 시민 500명이 모여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킨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추모 집회를 열었다. 드니 코데르 몬트리올 시장은 “테러범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프랑스 국가를 합창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 등이 전했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프랑스인 유학생 수십 명이 모여 추모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인도의 모래 예술가는 인도 부바네스와르에서 ‘테러를 종식하라’ 등의 문구를 새겨 넣은 모래 조각 작품을 완성해 희생자 추모와 반테러 의지를 표시했다. 이번 테러로 숨진 미국인 교환학생이 소속된 대학이 추모집회를 열었다.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CSULB)의 제인 클로스 코널리 총장은 이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이 대학의 디자인 전공 3학년생 노에미 곤살레스(23·여)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고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드레이크 대학에서 이날 밤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2차 TV토론은 전날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발생한 테러 여파로 인해 다소 절제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CBS 방송 주최로 진행된 토론회는 먼저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진 뒤 이슈 토론에 들어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추모 글이 넘쳐났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파리와 희생자,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며 “우리는 모두 파리지앵이다”라는 문장을 프랑스어로 덧붙였다. 해리포터의 배우 에마 왓슨은 ‘특정 단어에 대한 글’이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파리를 위해 기도합니다’를 올린 뒤 파리 주재 영국·아일랜드·미국·호주·캐나다 대사관의 전화번호를 올렸다. 일반인들도 트위터를 통해 “파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프랑스다” 등의 해시태그를 통해 현지 상황을 공유하거나 희생자를 추모했다. 세계적 건물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으로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흰색, 붉은색 조명을 점등했다.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 호주 캔버라의 국가종탑, 중국 상하이 둥팡밍주 타워 등에도 삼색 조명이 비춰졌다. 뉴욕의 9·11테러 자리에 새로 세워진 원월드트레이드센터,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 런던의 명물 관람차 런던아이,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도 추모 조명을 점등했다. 반면 조명을 모두 끄고 어두운 모습으로 희생자를 기린 곳도 있었다. 한때 삼색조명을 환하게 점등했던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이날 밤에는 조명을 모두 끈 채 조용히 애도를 표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0] 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0] 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지금 국립현대미술괄 과천관에서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83세 노(老)조각가의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200점 남짓한 작품이 두 개의 전시공간에 나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최종태의 화업(畵業) 60년은 ‘구도(求道)의 여정’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우리 교회 조각을 현대 미술의 한 지류로 편입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그의 성상(聖像) 작업은 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한국 교회 조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최종태의 작품은 전국 가톨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의 작품이 없는 가톨릭 교회를 찾는 것이 오히려 빠를 지경이다. 그럼에도 최종태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관음보살상을 조성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1997년 길상사 개산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하는 등 종교 사이의 벽을 허무는데 노력했던 법정 스님의 뜻에 화답한 것이었다.  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맡기도 했던 최종태는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땅에는 나라도, 종교도 따로따로 있지만 하늘로 가면 경계가 없다”고 했다. 관음상은 2000년 4월 설법전 앞에 봉안됐다. 여섯 개의 봉우리가 솟은 관을 쓰고 있는 관음보살상은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왼손에는 맑은 물이 담긴 정병(淨甁)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펴든 시무외(施無畏)인을 짓고 있다. 이것말고는 불교미술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교적 분위기를 풍긴다.  최종태가 길상사 관음보살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성북동 언덕에 오르기 앞서 혜화동로터리에 있는 천주교 혜화동성당을 찾아볼 일이다. 본당 계단 왼쪽에 장미넝쿨 너머로 최종태 특유의 소녀적 분위기가 풍기는 성모상이 보인다. 성모마리아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길상사 관음보살상의 상호(相好)와 쌍동이자매만큼이나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종태는 “길상사 관음상의 이미지가 성모상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은 심성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불교의 견성(見性)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모두 같은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모마리아가 되었건, 관음보살이 되었건 다른 것을 외향이지 본뜻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도 종교도 근원으로 가는 방편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최종태는 자신의 예술 인생에서 창작에 한계를 느꼈을 때 마다 삼산관사유상을 비롯한 삼국시대 불상들이 막혔던 길을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보면 최종태는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를 길상사 관음보살에 대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삼국시대 불교조각의 이미지를 수십년동안이나 성모 조각에 응용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최종태 회고전이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교회 미술가가와 불상을 만든 불모(佛母)의 경지를 두루 개척한 인물의 조각 세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대로 돌을 깎는 석공이 아닌 조각가로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최종태가 세계 역사상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회고전은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디카프리오, 다이아몬드 ‘창조’ 기업 투자…이유는?

    디카프리오, 다이아몬드 ‘창조’ 기업 투자…이유는?

    지난 2006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지역 ‘다이아몬드 분쟁’의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출연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번에는 다이아몬드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캐나다 벤처기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캐나다 기업 ‘다이아몬드 파운드리’(Diamond Foundry)는 인조 다이아몬드가 아닌 진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으로, 자신들의 다이아몬드가 현재 유통되고 있는 이른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대체하게 되길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분쟁 다이아몬드’(conflict diamond)라고도 불리며,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일부 분쟁국가에서 채굴, 불법 거래되는 다이아몬드를 뜻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연을 맡아 분쟁 다이아몬드의 실상을 알리는데 일조한 것은 물론 그 외에도 해당 다이아몬드 산업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에라리온을 포함해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생산되는 여러 국가들에서는 다이아몬드 채굴·개발 권한을 두고 무력충돌이 일어나는가 하면 어린 아이들이 위험한 다이아몬드 채굴작업에 강제 동원되고 군벌이나 반군 조직이 다이아몬드 밀거래 대금을 군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다이아몬드에 관련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해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생산국들과 여러 비정부기구는 함께 논의 끝에 ‘킴벌리 협약’을 만들어 분쟁지역 다이아몬드 및 원산지 미확인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2002년 유엔은 이를 공식 승인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다이아몬드 분쟁은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서구권의 매우 높은 다이아몬드 수요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다이아몬드 파운드리는 자신들의 제품으로 서구권 다이아몬드 수요를 충당해 이 같은 문제의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주장한 셈이다. 미국 태양열발전기술 개발기업 ‘나노솔라’(Nanosolar)의 창립자이기도 한 마틴 로쉬하이젠이 설립한 기업 다이아몬드 파운드리는 이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외에도 에반 윌리암스 트위터 대표이사, 제프 스콜 전(前) 이베이 대표, 앤드류 맥컬럼 페이스북 공동창립자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식물을 기르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들은 얇은 자연산 다이아몬드 원석 조각을 일종의 ‘씨앗’처럼 사용해 그 위에 새로운 원자 층을 입혀 다이아몬드를 ‘길러 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이 때 씨앗으로 사용한 다이아몬드는 다시 다른 다이아몬드를 길러내는 작업에 재활용 될 수 있다. 이들은 비록 해당 기술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자연산 다이아몬드 조각 위에 원자를 직접 흡착시킬 수 있는 새로운 플라스마(이온핵과 자유전자로 이루어진 집합체로, 고체·액체·기체와 더불어 제4의 물질상태에 해당한다) 물질을 개발해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이 기업은 최대 9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석들은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보석감정기관인 전미보석감정원(GIA)의 품질검증까지 거쳤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제품 가격은 기존 다이아몬드보다 비싸진 않겠지만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될 예정이다. 다이아몬드 파운드리는 “우리 제품은 땅에서 채굴된 일반적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인 순수한 다이아몬드다”며 “이에 더하여 도덕적, 윤리적으로 순수한 다이아몬드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9] 불상에 적힌 신라문학의 정수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9] 불상에 적힌 신라문학의 정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경주 감산사터 석조아미타여래입상과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드물게 한국의 미술사는 물론 문학사까지 풍요롭게 하는 걸작이다.  미륵보살입상은 목과 허리를 엇갈린 방향으로 살짝 구부린 삼곡(三曲) 자세가 매력적이고, 온몸을 휘감고 있는 장신구도 우아하다. 불상의 시원인 간다라와 마투라를 아우르는 4∼5세기 인도의 굽타 양식이 중국을 건너뛰어 들어온 뒤 통일신라 특유의 미의식과 결합한 사례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아미타여래는 살집 있는 몸매에 키는 작달막하고, 조각도 상대적으로 평면적이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석괴(石塊)의 제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어 재미있다. 주어진 재료가 그렇게 조각할 수 밖에 없도록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론 미술사에서도 거창한 해석보다 단순한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두 불상이 후하게 대접받는 데는 명문도 한몫을 했다. 아미타여래의 광배 뒷면에 21행 391자, 미륵보살에도 비슷한 자리에 22행 381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집사성 시랑을 지낸 김지성이 719년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조성했고, 아미타여래는 아버지를 위해 만들려 했지만 이듬해 김지성이 죽자 두 사람의 명복을 함께 빌고자 세웠다는 내용이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통일신라의 가장 이른 석불로, 반세기쯤 지나 모습을 드러내는 석굴암이 어떤 ‘조형적 트레이닝’을 거쳐서 완벽해질 수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명문의 문학적 가치에 주목한 사람은 국문학자인 조동일이다. 자신의 ‘한국문학통사’에서 “이 명문은 전성기에 이른 신라 한문학의 정수”라면서 “두 조각이 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듯, 명문 또한 문학사에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는 명작”이라고 강조했다.  불상을 조성한 과정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6두품으로 더 이상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신분적 제약을 물리치고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문학’으로 획기적 발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명문은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불상을 봉안한다는 것이 요지이지만, 글쓴이 자신이 보탠 말이 더 많다.  정해진 사연을 적는 글을 이용해 자신의 심정을 술회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의식각성의 현장’이라는 책에서는 이 불상이 미술과 문학을 함께 존중해 창작한 신라인의 식견을 깨닫게 만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술은 미술이고, 문학은 문학이어서 다른 쪽의 사정은 알지 못하는 요즘 세태를 바로잡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각의 아름다움을 해설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명문은 더욱 무시된다.”고 안타까워한다.  유식함이 극도에 이른 시대의 무식함을 입증하는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앙박물관에서 가서 감산사 아미타여래와 미륵보살을 만나면 꼭 불상 뒤로 돌아가 명문이 있는지를 확인해 볼 일이다.  ‘비록 이 몸이 다한다 하여도 이 원(願)은 무궁하며, 이미 돌이 닳아 버릴지라도 존용(尊容)은 없어지지 않는다. 구함이 없으면 과(果)도 없으니, 원(願)이 있다면 모두 이룰 것이다. 만일 이 마음을 따라 원하는 자가 있다면, 함께 그 선인(善因)을 지을 것이다’ (감산사 미륵보살상 명문 중에서)  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사이언스 톡톡] 고용량 비타민C 항산화 효능 암세포 억제·사멸 효과… 위·신장 약하면 주의해야

    [사이언스 톡톡] 고용량 비타민C 항산화 효능 암세포 억제·사멸 효과… 위·신장 약하면 주의해야

    안녕하신가, 라이너스 폴링(1901~1994)일세. 난 평생 화학 결합구조에 대해 연구를 했다네. 그 덕에 1954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지. 나는 또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았다네. 반핵 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196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런 것들보다는 나를 고용량 비타민C 요법의 창시자로 더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더군. 사실 말년에 비타민C와 질병 예방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기는 했지. 미국 오리건주립대는 내 이름을 딴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를 만들어 비타민C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더군. 비타민C의 화학명은 ‘아스코르빈산’(ascorbic acid)이라네. 비타민C가 존재감을 처음 드러낸 것은 17~18세기 영국 해군들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오랜 시간 항해를 하다 보면 잇몸에서 피가 나고 관절이 부어 고통 속에서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다네. ‘괴혈병’이었지. 1747년 군의관 제임스 린드가 병사들에게 비타민C가 풍부한 레몬을 한 조각씩 섭취하도록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지. 비타민C는 세포나 뼈의 형성과 유지에 필수적이라네. 노화를 방지해 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고혈압을 내려주는 등 항산화 작용이 비타민C의 대표적인 효능이지. 나는 바로 그 항산화 효능에 주목했던 거야.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야. 그래서 1970년대에 말기 암환자들에게 고용량 비타민C를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했는데, 환자들의 평균 생존일이 300일 이상 늘어나더군. 그래서 ‘비타민C가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지. 논문 발표 이후 학자들 사이에서는 비타민C에 대한 효능을 두고 갑론을박이 시작되더군. 그런데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5일자 온라인판에 미국 코넬대 의대 루이스 캔틀리 교수와 윤지혜 박사가 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더군. 암을 유발시킨 생쥐에게 고용량의 비타민C를 주입했더니 암세포가 더이상 자라지 않고 사라졌다는 거야. 이번에 생쥐에게 투입한 비타민C의 양은 사람이 한번에 300개의 오렌지를 먹는 수준의 고용량이었다네. 연구팀은 고용량의 비타민C가 BRAF와 KRAS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결장암 세포를 죽이는 것을 확인했어. 암세포는 포도당에서 영양분을 얻는데, 비타민C가 암세포의 포도당 대사과정을 억제해 암세포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거야.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안 좋다네. 비타민C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위장이 약한 사람은 속쓰림으로 고생할 수 있고 신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신장결석이나 요로결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말이야.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 보통 사람들 ] 시대의 상처·아픔을 품다

    [ 보통 사람들 ] 시대의 상처·아픔을 품다

    “역사는 기득권자,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죠. 그 역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드러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도 역사의 주체입니다. 그늘 속에 갇힌 삶의 향기와 애환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고뇌와 상처를 보듬고, 부조리를 강렬하고 노골적인 화풍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화가 안창홍(62). 그의 40여년에 걸친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나르지 못하는 새 : 안창홍 1972-2015’전이 11일부터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열린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과 신작을 포함해 회화, 조각, 콜라주, 드로잉 등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 개막에 앞서 전시장에서 만난 안창홍은 “회고전은 아니다”라면서 “한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무엇을 통해 어떻게 발언하고 싶었는지 지나 온 과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 출신으로 부산 동아고를 졸업한 안창홍은 카뉴국제회화제 특별상(1989)과 제10회 이인성미술상(2009), 제25회 이중섭미술상(2013)을 수상했다. 내년 1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현대인의 상처라는 큰 틀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시대의 초상’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눠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3개의 벽면에 어린아이부터 청년, 노년까지 다양한 모습의 인물이 담긴 49개의 초상 사진이 일렬로 걸렸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눈을 감고 있지만 입술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전령의 상징물인 나비 한 마리가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부산비엔날레와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였던 2004년의 대표작 ‘49인의 명상’이다. 1980년대 한 산동네의 사진관이 폐관하면서 버려진 네거티브 필름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사진에 색을 입힌 작품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실재했던 시간들을 과거와 현재의 틈 사이에 놓음으로써 존재와 부재의 틈, 삶과 죽음의 틈, 소멸된 시간과 현재의 틈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작가는 “명상하듯이 눈 감은 얼굴들을 보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탯줄을 그대로 감은 채 죽은 것 같은 아기 인형을 사진으로 찍어 대형 화면에 프린트한 ‘야만의 역사’는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15년 전 의료용 아기 인형에 에폭시로 분비물을 만들어 입체물을 만들어 놓았다가 지난 9월 터키 해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어린아이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 뉴스를 접하고 평면 작업으로 옮겼다”며 “어른들의 탐욕과 무자비함에 유린당한 어린 생명들을 위로하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입체에서 평면까지 15년간의 창작적 고뇌가 곰삭은 작품인 셈이다. 4층 전시장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20대 작가로서 치열한 연구 과정을 담은 ‘자화상’(1973), ‘달을 보고 놀란 아이들’(1974) 등을 비롯한 미공개 초기작 20여점과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나르지 못하는 새’(1991) 등 드로잉 작품들이 한켠을 차지한다. 1970년대 말 작가의 사회적 의식을 보여 주는 대표작 ‘인간 이후’(1979), 어두웠던 시절에 피어난 투쟁 의식과 절망이 반영된 ‘절규’(1986), 1990년대 자본주의 사회의 초상을 보여 주는 ‘우리도 모델처럼’(1991), 작가의 내면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담은 ‘어둠 속에서-인간은 결코 날지 못한다’(1991) 등 재료별·시대별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평범한 사람들의 관능미를 끌어낸 ‘베드 카우치’ 연작과 연필로 그린 ‘사이보그’ 연작은 안창홍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한 인간의 노골적인 야만성과 시대의 색깔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나는 밝은 쪽보다 어두운 쪽으로 더듬이가 발달한 사람이에요. 아름다움만 있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니잖아요. 시대의 빛과 아름다움보다는 어두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찢기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글 사진 천안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옛사람도 다양한 예술작품 만든 것 알려주고파”

    “미술 강의는 시각 자료를 많이 만들어야 해서 힘들긴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자체가 놀라워요.” 1994년 출간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50만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열풍을 일으켰던 최영미(54) 시인이 서울 관악구의 미술 전도사로 나섰다. 1997년 유럽미술관 순례 산문집인 ‘시대의 우울’을 낸 최 시인은 9일 관악구 평생학습관에서 세계의 명화를 주제로 ‘인문학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8개월 전 관악구로 이사 와 관악구민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1회로 끝나는 특강이 아니라 한 달 반 가까이 강의를 하니 관악구민이란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시인의 ‘관악구살이’는 처음이 아니라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닐 때 관악구에서 자취했고, 20여년 전엔 관악구 고시원에서 머물며 첫 시집을 완성했다. 각 지역에서 유명 문인을 유치하려고 집필실 등을 제공하지만, 서울 출신인 최 시인은 50세가 넘어서도 아직 월세 신세를 지고 있다. 관악구로의 이사도 단지 방세가 싸서 결정했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관악구는 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시인에게는 거의 그대로다. 언덕이 많아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걸 걱정해야 하고 벌써 온풍기를 끼고 살아야만 하는 등 집 난방도 허술하다.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교통도 불편하다.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의라 걱정이 많았다. 서양미술은 누드 작품도 많아 도판을 고를 때도 조심스럽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수강생들이 시인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당황이 된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해야 할 귀중한 낮에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미술 강의를 들으려 시간을 낸 수강생들이 시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즘 역사가 화두잖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고 다양한 양식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시민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어요.” 최 시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 사진을 칠판에 크게 띄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조각한 것 같지 않나요?”라고 열띤 질문을 던졌다. 흰머리의 노신사부터 젊은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은 일제히 “네~”라고 착하게 답했다. 글 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난민은 사람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섬, 예고된 비극

    난민은 사람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섬, 예고된 비극

    ‘호주의 관타나모 수용소’로 불리는 인도양 크리스마스섬의 난민 수용 시설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호주 ABC방송 등 외신들은 난민들이 시설을 사실상 장악하고 처우 개선과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지난 7일 시설을 탈출한 30대의 쿠르드계 이란인 남성이 이튿날 해안가 절벽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폭동이 시작됐다. 격앙된 중동 출신 수용자들은 방화와 폭력을 일삼았고 이 섬에 자리한 무시무시한 구금 시설의 실상도 전 세계에 드러났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남성은 2010년 호주로 밀입국한 뒤 강제로 크리스마스섬의 시설에 수용돼 바깥세상과 격리됐다. 난민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수용소 경비원들이 살해했다”며 누적된 불만을 터뜨렸다. 경비원과 직원들이 모두 대피하면서 수용소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망명 신청자와 난민의 인권을 돌보지 않은 호주 당국의 가혹한 태도가 불러온 결과”라고 비판했다. 크리스마스섬은 예쁜 이름과 달리 슬픈 역사를 지녔다. 섬의 이름은 1634년 동인도회사의 함장이 크리스마스 전야에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딘 데서 유래한다. 이후 영국 함대가 주둔하면서 영국령이 됐다가 1957년 영연방의 호주에 양도됐다. 호주 서부 퍼스에서 북서쪽으로 2600㎞ 떨어진 작은 섬으로,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는 불과 360㎞ 거리에 있다. 면적은 135㎢에 불과하고 열대우림과 해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졌다. 북동부 끝자락에 1400명 남짓한 주민이 거주하는 정착지구만 자리할 따름이다. 주민의 80%는 중국·말레이계다. 호주 정부가 수용소를 세워 외딴섬에 난민들을 몰아넣기로 한 것은 2001년 9·11테러 직후였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미군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버금가는 시설을 호주에도 만들자는 밀약 아래 2003년 난민 수용소를 설치했다. 대규모 난민선 입항을 금지하는 이민 정책을 내놓고 난민들의 밀입국 루트 길목에 자리한 이 섬을 지목했다. 인권단체들은 수용소를 교도소로 규정하고, 과거 원주민들을 분리 수용하면서 박해하던 ‘백호주의’의 잔재라고 비난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수용소가 인종차별주의와 반테러리즘, 이슬람혐오증 등의 복합품이라고 진단했다. 호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추방당한 뉴질랜드인도 수용돼 있지만 이 섬은 ‘난민들의 무덤’으로 더 악명을 떨쳐 왔다. 2010년 12월 중동 출신 난민 100여명을 태운 어선이 섬 절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지만 호주 구조대가 구조에 불성실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너살 아이들이 부서진 배의 파편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출동한 구조요원들은 구명조끼만 던져 줘 70명 넘는 난민이 익사했다. 호주 정부는 현재 크리스마스섬에 2900여명의 난민이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호주 야당 측은 수용 인원이 2배가 넘는 5400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호주 정부의 태도는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호주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국제적인 분쟁 지역에 자국 군대를 파견하면서 난민이 발생한 책임을 일부 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아픔의 땅’ 매향리, 평화의 땅 꿈꾼다

    미군 사격장으로 사용하다 10년 전 폐쇄된 경기 화성시 매향리 농섬 일대에 평화생태공원 조성 사업이 본격화한다. 국내 유소년 야구단지도 함께 조성된다. 9일 화성시에 따르면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조성계획이 포함된 ‘2020년 화성 도시기본계획 변경(안)’이 최근 경기도로부터 최종 승인됐다. 매향리 농섬 주변 갯벌은 1955년 2월 19일 주한미군에 제공돼 미군전용 사격장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포탄이 농가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사격으로 인한 소음으로 주민이 난청에 시달리는 피해가 잇따랐다. 지금까지 사격장으로 인해 713가구 4000여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오폭과 불발탄 사고로 13명이 숨지고 22명이 손목 절단 등 부상을 당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전체 주민의 26.5%로 다른 지역보다 4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들의 거듭된 폐쇄 요구로 2005년 8월 11일 사격훈련이 중단되면서 국방부로 반환됐다. 시는 미군사격장을 평화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농섬(폭격장)과 육상사격장 97만여㎡ 가운데 58만㎡를 사들이기로 하고 지난해 말 국방부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토지매입비는 775억원이며 국가가 424억원, 시가 351억원을 2018년까지 나눠 내기로 했다. 시는 매입 부지 가운데 33만 5000㎡에는 평화생태공원을 만들고 나머지 24만 2000㎡에는 리틀야구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생태공원에는 매향리 역사박물관·야외조각공원을 비롯해 피톤치드 숲, 허브테라피 등과 오토캠핑장 등 레저시설이 들어선다. 야구단지에는 리틀야구장 4면, 주니어 야구장 3면, 여성야구장 1면 등 총 8면의 야구장이 조성되고 실내야구 연습장 1곳도 설치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닷새간 열리는 산업 디자인展…한자리에 모인 트렌드와 거장

    닷새간 열리는 산업 디자인展…한자리에 모인 트렌드와 거장

    국내 최대 규모의 디자인 비즈니스 전시회 ‘DK2015’(디자인코리아2015)가 오는 11일부터 15일까지 닷새 동안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다.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열리는 행사에는 중국과 일본의 빅 바이어를 포함한 국내외 190개 기업이 참가해 국내외 디자인 우수제품 2000여점을 전시한다. 13회를 맞는 올해 행사에서는 산업 디자인계의 세계적 트렌드를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강연과 특별전이 마련된다. 한국과 홍콩의 디자인계 유명인사들이 참여해 디자인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기술, 라이프스타일 등의 주제로 11차례 강연을 펼친다. 먼저 홍콩 유명 디자이너 토미 리가 11일 오후 2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브랜딩, 정체성을 디자인하라’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브랜드계의 신화로 불리는 토미 리는 100년이 넘은 잉키 티하우스를 디자인해 잉키 티하우스가 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12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더플레이그라운드 김홍탁 대표의 강연은 한국 광고마케팅 거장의 눈으로 바라본 ‘효과적인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다룬다. 13일 오전 11시에는 우주인을 꿈꾸던 청년에서 성공적인 벤처 창업가로 변신한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가 ‘3D 프린터 메이커 무브먼트 그리고 디자인’을 주제로 강연한다. 독특한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한명수 이사는 14일 오전 11시 ‘언더스탠딩 우아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그의 생각을 공유하고, 한국화가 김현정은 15일 오전 11시 30분 참신한 발상과 새로운 도전으로 이뤄진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아울러 이탈리아의 현대적 디자인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이탈리아 3대 디자이너전’도 열린다. 주한 이탈리아상공회의소와의 협업으로 열리는 전시에선 산업 디자인계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작품, 건축가 겸 디자이너 클라우디오 벨리니가 직접 디자인한 가방과 지갑 등 패션 잡화, 주얼리에 건축적 구조를 담아 모형조각가로 불리는 디자이너 잠파올로 바베토의 대표작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밖에 해외기업관에는 유럽, 북남미, 아시아 등에서 총 29개 기업이 참여해 대표적인 디자인제품도 전시될 예정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만화로 배웠어요”…응급처치로 친구 구한 자폐증 소년

    “만화로 배웠어요”…응급처치로 친구 구한 자폐증 소년

    같은 반 여학생의 기도가 막혀버린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응급처치를 정확하게 실시해 친구를 구한 13살 자폐증 소년의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 반즈 중학교에서 점심을 먹던 자폐증 소년 브랜든 윌리엄스는 자신의 학급 친구 제시카 펠레그리노가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소리를 내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곧 브랜든은 제시카의 기도가 막혀버린 상태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호흡을 차단했을 경우 사용하는 응급처치인 ‘하임리히 요법’을 시도했다. 하임리히요법을 실시하려면 먼저 환자의 등 뒤에서 환자의 배에 팔을 두른 채 주먹 쥔 한 쪽 손의 엄지 부분을 환자의 배꼽과 명치 중간 정도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 다음에는 다른 한 손으로 주먹 쥔 손을 감싼 뒤 팔에 강하게 힘을 주면서 배를 안쪽으로 누르며 상측 방향으로 4~5회 빠르게 당기면 된다. 이렇게 하면 환자 체내의 횡격막이 눌리면서 공기가 기도를 통해 빠르게 빠져나기 때문에 기도에 걸린 이물질이 빠져나올 수 있다. 만약 한 번에 이물질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과정을 반복해줘야 한다. 브랜든은 이러한 방법을 정확히 수행했고 덕분에 제시카는 목에 걸렸던 사과 조각을 기도 밖으로 빼내 별다른 피해 없이 살아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곧 지역사회에 알려졌으며 NBC등 현지 언론이 브랜든을 찾아가 그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터뷰에서 브랜든은 ‘무엇을 통해 하임리히요법을 배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명 아동용 만화 ‘스폰지밥’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만화 스폰지밥에는 실제로 이번 사고와 유사한 상황이 등장하고 ‘하임리히요법’ 이라는 용어가 나오긴 하지만 그 구체적인 실시 방법은 소개된 바가 없다. 이에 대해 브랜든의 아버지는 “아들은 여러 가지 정보를 빠르게 흡수해 기억하는 재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만화영화가 아닌 다른 어디선가 하임리히요법을 접해 습득했으리라는 것. 아버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자폐증이 있는 아이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한다”며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폐증 아동들도 많은 일에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NBC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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