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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뚜벅뚜벅, 제주를 기억하다

    뚜벅뚜벅, 제주를 기억하다

    봄 여행주간이 오는 29일부터 시작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관광공사,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국내여행 수요 창출을 위해 벌이는 대형 이벤트다. 새달 14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봄 여행주간에도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제주에서는 ‘제주시 원도심의 재발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시 재생 전문가와 함께 제주 재생 현장을 돌아보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의아하다. 제주에 원도심이 있다고? 보통 원도심이라고 하면 대도시가 외연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낙후되어 가는 도심 지역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를 지방 소도시 정도로 인식되는 제주에 적용하니 어딘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라 안에서 가장 극심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 제주다. 개발로 인한 상전벽해가 하루아침에 생겨난다. 그러니 원도심을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라고 전제한다면 제주야말로 숱한 원도심을 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글로컬제주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제주 원도심을 돌아봤다. 오롯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제주인 듯 아닌 듯한 풍경들이 제법 많았다.원도심은 제주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축적된 장소다. 제주의 지리, 역사적 근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는 제주목관아와 제주성(城)이 있었던 구도심을 일컫는다. 제주공항을 기준으로 보면 제주시 동쪽에 해당된다. 제주성을 중심으로 일도 1동, 이도 1동, 삼도 2동과 건입동, 중앙로, 칠성동 등이 포함된다. 삼도동은 제주 삼성신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제주를 일군 삼형제가 활을 쏴 정한 각각의 거주지가 그대로 이름이 됐다. 맏이가 일도, 둘째가 이도, 막내가 삼도를 중심으로 거주지를 형성했다고 한다. 원도심이다 보니 제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간선도로, 극장 등 기록으로서 최초가 된 것들이 꽤 많다. 제주 최초의 제빙공장 터, 거울공장 터, 발전소 터, 1920년대 목욕탕 터 등도 이 일대에 있다. 1950년대 가장 먼저 양복점과 양장점이 들어선 패션의 거리이기도 했다. 미용실, 다방 등의 간판도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가장 번화한 곳은 칠성로다. 지금껏 ‘제주의 명동’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양·부 삼성 시조가 세 지역의 땅을 나눠 차지할 때 북두칠성 모양으로 대를 쌓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각각의 대는 일제강점기 무렵까지 보존됐으나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칠성로란 이름으로만 남았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칠성로 일대는 제주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연동 등 이른바 ‘신제주’에 자리를 내줬고, 새 천년이 되면서 화려함도 잃었다.원도심 투어의 출발지는 동문로터리다. 이어 산지천 일대-건입동 동자복-금산수원지(김만덕 기념관)-탑동광장-북초등학교-관덕정-삼도동 문화의 거리-오현단 등을 돌아본 뒤 동문시장에서 마무리한다. 동문로터리와 동문시장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 사실상 출발과 종착지가 같은 원형의 코스로 이뤄졌다. 동문로터리 건너편의 ‘동문시장’ 간판을 내건 옛 건물이 눈길을 끈다. 1965년 세워진 옛 동양극장 건물이다. 건물엔 제주 바다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외벽의 원형 창문은 여객선을 떠올리게 하고 지붕은 물결치는 파도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원도심의 랜드 마크로 삼을 만한 자태다. 원도심 한복판엔 산지천이 흐른다. 한라산에서 발원해 원도심 중심부를 관통한 뒤 산지포구에서 바다와 몸을 섞는 하천이다. 한때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동문로, 칠성로, 중앙로, 탑동, 동문시장 등이 이 하천 양쪽에 매달려 있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오염이 심해지면서 1960년대 복개됐다가 2002년 옛 모습을 되찾았다.사람이 사는 마을은 물길 주변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산지천도 마찬가지. 기원전 1세기쯤부터 제주와 육지를 잇는 뱃길의 중심지 노릇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지천 끝자락의 산지포는 제주의 관문이자 최고의 상업지역이었다.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으로 회자되는 의녀 김만덕(1739~1812)의 객주터가 있던 곳도 산지포였다. 객주를 통해 재산을 모은 만덕은 조선 정조 때 나라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으로 전복되자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아 관덕정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쑤어 굶주리는 백성을 먹였다. 이를 기리는 기념관이 산지천 아래쪽에 있다. 김만덕 객주터는 최근 옛 모습대로 재현돼 주막집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객주터 바로 위에는 복신미륵이 떡하니 서 있다. 복신미륵은 행운과 복을 가져다 주는 미륵보살을 뜻하는 말이다. 제주성 동쪽에 있는 자복이라 해서 동자복이라 불린다. 용담동의 서자복과 함께 제주성을 향해 마주 보고 서 있다. 동자복은 입상이다. 신장이 286㎝, 얼굴이 161㎝이다. 눈 위에는 눈썹을, 앞가슴에는 맞잡은 팔의 소맷자락을 표현했다. 예전 제주에도 성이 있었다. 제주성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갈랐다. 서울의 이른바 ‘4대문 안’을 떠올리면 알기 쉽겠다. 성 밖에는 초네따이(시골아이)가, 성 안에는 시에따이(도시아이)가 살았다. 지금도 제주목관아 뒤편의 ‘묵은성’(지나간 옛 성을 뜻하는 사투리) 지역에는 평수 너른 옛집들이 남아 있다. 제주성벽은 일제강점기에 산지포구와 오현단 등의 조성 공사에 쓰이느라 산산이 해체됐다. 몽돌해변을 매립해 조성한 탑동광장, 설립 연도가 올해로 꼬박 110년이나 된 북초등학교를 휘휘 돌아가면 관덕정(보물 제322호)에 이른다. 제주목관아 앞에 있는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꼽힌다. 조선 세종 때인 1448년 처음 지어진 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관덕정 앞 뜨락엔 돌하르방 2기가 서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도 내 40여기의 돌하르방 중 하나다. 근래에 조각된 돌하르방에 견줘 단연 비범한 자태다.도로를 건너면 삼도동 문화의 거리다. 미술, 공예 등 작가들의 공방이 밀집돼 있다. 제주도 한량들의 회합 장소였던 향사당 등 볼거리가 은근히 많다. 이 골목에 제주 고유의 초가집이 남아 있다. 초가는 안거리와 밖거리 2채로 이뤄져 있다. 단단한 돌담과 새(띠), 집줄로 바둑판처럼 얽어 맨 초가지붕은 태풍도 견딜 만큼 견고하다. 오현단은 제주 발전에 공헌한 송시열 등 다섯 명의 현인을 배향하는 옛 터다. 유적지 둘레를 제주성지가 둘러치고 있다. 오현단에서 남수각을 거쳐 내려오면 동문시장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주)동문시장, 동문재래시장, 동문공설시장 등으로 나뉠 만큼 규모가 크다. 오메기떡 하나 사들고 천천히 돌아보기 딱 좋다.이제 화북포구를 말할 차례다. 원도심의 ‘연관검색어’쯤 되는 곳이다. 다소 떨어져 있긴 해도, 원도심의 형성과 관련이 깊고 정서 역시 맞닿아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게 좋다. 화북포구는 고전소설 ‘배비장전’의 고사가 얽힌 곳이다. 풍경만큼이나 담긴 이야기들도 곱다. 예전 화북포구는 제주에서 뭍과 연결되는 두 곳의 관문 중 하나였다. 수많은 비바리(갯마을 처녀의 사투리)들이 뭍에서 군역 등을 마치고 돌아오는 연인을 마중하던 곳이자, 눈물로 배웅하던 곳이다. 그렇게 쌓인 비바리들의 애환의 두께가 ‘배비장전’을 낳은 것일 터다. 포구는 억척스러운 삶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다. 섬인 탓에 포구가 필요했지만 화산섬의 거친 자연은 이를 쉬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이 얕고, 바위는 뾰족해 배를 부수기 일쑤였다. 제주 사람들은 노고에 지혜를 얹어 이를 해결했다. 수중 암초인 ‘여’나 그보다 높은 ‘코지’를 중심으로 돌을 쌓아 파도의 위력을 줄이고, 내부를 ‘안캐’, ‘중캐’, ‘밧캐’의 세 칸으로 나눴다. 아직 원형을 잃지 않은 제주의 몇몇 포구들이 일직선으로 뻗은 뭍의 나룻터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동문로터리 인근 대동호텔(064-722-3070)은 1971년 세워진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도 재일교포나 일본인 등 수십년 인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동문시장 안에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오메기떡이 특히 알려졌다. 횟집도 있다. 1층에서 생선을 고르고 2층에서 먹는 형태다. 기념품으로 인기인 말린 옥돔 등도 싸게 살 수 있다.
  • 세월호 조타실 진입… 침몰 원인 찾나

    세월호 조타실 진입… 침몰 원인 찾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26일 사고 원인 규명의 단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타실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참사 당시 선체의 급격한 항로 변경 등을 설명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침로기록장치’(코스레코더)의 확보에는 실패했다. 코스레코더는 선박 진행 방향과 방위 등을 종이에 그래프처럼 기록하는 장치다.선조위 조사위원 2명과 민간위원 2명은 이날 코스레코더 확인을 위해 인양 후 처음으로 세월호 4층 좌현 선수 부분 진출입로를 이용, 조타실에 진입했다. 그러나 조타실 내에 1.5m 높이로 장애물이 쌓여 있어 접근이 불가능해 코스레코더의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내부 장애물 제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코스레코더 확인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인양 이후 처음으로 3∼4층 객실 내부에 대한 수색도 이날 이뤄졌다. 김철홍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과장은 브리핑에서 “선체 우현(육상 거치 기준 위쪽) 상부에서 밑으로 내려가 3∼4층 객실에 진입했다”며 “이곳에서 (희생자들의) 뼛조각이 나올까 조심스레 예상한다”고 밝혔다. 3∼4층 객실은 단원고 교사와 학생(4층·6명), 일반인 승객(3층·3명) 등 시신 미수습자 9명이 머물렀던 곳이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탈모 치료가 미용 시술입니까”

    “탈모 치료가 미용 시술입니까”

    비싼 치료제 건보 적용 못받아 전립선 비대증약 편법 사용도…복지부 “건보 포함 중장기 검토” “탈모는 질병입니다. 미용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안 겪어 본 사람은 몰라요. 탈모약을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좀 싸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전적 탈모 환자·취업준비생 한모(28)씨 직장 생활, 취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탈모 환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21만 2916명이 탈모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현재 탈모 치료제는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엔 탈모가 비급여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탈모는 주근깨, 여드름 등과 함께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질환으로 묶여 있다. 탈모 환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20대 중반부터 탈모약을 복용해 온 직장인 전모(35)씨는 “탈모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업무와 일상생활에 명백한 지장을 준다”며 “약효를 보려면 매일 약을 먹어야 해서 약값을 무시할 수 없다. 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탈모 치료제로 승인한 약은 먹는 약 ‘프로페시아’와 바르는 약 ‘미녹시딜’뿐이다. 특히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프로페시아는 1개월 분량에 약 7만원이다. 제네릭(복제약)도 5만원 선이다. 약값이 부담스러운 탈모 환자들은 고령의 친지에게 부탁하거나 의사와 짜고 프로페시아와 성분이 같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프로스카’를 처방받아 복용하기도 한다. 프로스카에는 탈모를 방지하는 성분이 프로페시아의 5배가 들어 있기 때문에 면도칼 등으로 알약을 쪼개 먹는다. 프로스카의 1개월분 가격은 프로페시아와 비슷하지만 5조각으로 나눠 먹기 때문에 가격이 5분의1인 셈이다. 조현 순천향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최근 20대 젊은 탈모 환자 수가 급증하는 추세인데 약이 너무 고가여서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건강보험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젊은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형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탈모 환자가 급증하고, 이들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여러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좀더 전향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공적 재원을 투입하는 일이니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장 탈모 치료제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은 없다”며 “탈모 치료제에 대한 지원을 해 달라는 민원이 많이 접수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우주를 보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한 점 티끌일 뿐…

    [우주를 보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한 점 티끌일 뿐…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1934~1996)은 지난 1994년 저서인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저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의 저서에 모티브가 된 '창백한 푸른점'은 바로 지구를 말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이라 불리는 이 사진은 지난 1990년 2월 미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촬영한 것이다. 당시 보이저 1호와 지구와의 거리는 약 60억 km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난 21일, 이번에는 토성탐사선 카시니호가 토성의 고리 사이에 얼굴을 내민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NASA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지구는 그저 빛나는 작은 점으로만 보인다. 카시니호와 지구와의 거리는 14억 km로 더 놀라운 점은 사진을 확대하면 지구 왼편으로 달도 보인다는 사실. 1억 2700만 km 떨어진 화성 궤도에서도 지구와 달은 촬영됐다. 지난해 11월 NASA의 화성정찰위성(MRO)이 촬영한 작품에는 왼편의 달과 오른편의 지구가 어슴푸레 얼굴을 드러낸다. 실제 달은 지구보다 훨씬 어둡기 때문에 이 사진은 일부 합성됐다. 보다 진기한 사진도 있다. 화성 땅 위에서 하늘을 본다면 과연 지구가 보일까라는 호기심을 풀어주는 사진이다. 호기심 해결사는 NASA의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다. 지난 2014년 1월 화성 땅 위에서 바라본 지구는 70억 인구가 아웅다웅 싸울 것이라 믿기지 않는 작은 점으로만 빛난다.   칼 세이건 박사는 저서 '창백한 푸른점'에서 다음과 같은 육성 소감을 남겼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삶이 깃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갈 수는 있겠지만, 살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당분간 이 지구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오만함을 더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자각을 절절히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도심, 책을 품다

    도심, 책을 품다

    “‘순화동천’은 책에 대한 내 인생의 헌사이자, 책을 통해 이성적인 담론을 펼쳐 보고 싶다는 꿈을 담은 공간입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라 정신이니까요.”●“인문·예술·담론의 공간이자 독자들의 아지트” 김언호(왼쪽) 한길사 대표가 24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문을 연 복합 문화공간 ‘순화동천’(巡和洞天)에서 한 말이다. 동네 지명인 ‘순화동’과 ‘평화’를 뜻하는 한자음의 중의적 표현에다 주역의 이상향을 가리키는 ‘동천’이 합쳐진 멋들어진 문패다. 김 대표는 하석 박원규 서예가 등 여러 사람에게 이름값을 빚졌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뜻을 풀자면 ‘하늘인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평화를 순례하는 이상향’ 정도 되겠다”며 “40년 전 이곳(순화동)에서 출판사를 시작했던 초심을 살려 새로운 인문·예술·담론의 공간이자 독자들의 아지트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순화동천은 서점과 박물관, 갤러리, 인문학당이 합쳐진 공간이다. 김 대표가 애착하는 공간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진 ‘책의 길’(한길사를 의미). 한쪽 벽은 미술작품으로, 다른 쪽 벽은 지난 41년간 한길사가 펴낸 책 4만여권이 들어차 있다.유료인 박물관에서는 개관 기념전으로 19세기 영국의 책 장인인 윌리엄 모리스와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북 아트’전과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4인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최은경 이화여대 교수의 조각전 ‘북스’와 목판화가 김억의 ‘국토진경’ 작품전을 볼 수 있다. 인문학당은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 등으로 나눠 강연 장소로 쓰인다. ●“디지털 갖고 난리 칠 때 저만은 책을 얘기하고파” 김 대표는 이날 독일 여성 철학자 아렌트의 핵심 사상 ‘악의 평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보며 든 생각이 ‘우리 사회가 평범한 악에 얼마나 둔감한지’였다”며 “아렌트의 사유는 우리 국가·사회 공동체를 회복하고, 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순화동천의 공식 개관 전인 지난달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독자를 대상으로 ‘아렌트 정치사상 특강’을 연 이유다. “서점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별빛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활자 매체의 위기를 논하며 디지털 갖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그래도 전 책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뇌가 두개골 밖으로 자란 아이…희망 버리지 않는 엄마

    뇌가 두개골 밖으로 자란 아이…희망 버리지 않는 엄마

    한 젊은 엄마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데려왔다. 의사들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지만, 강인한 엄마는 딸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더썬, 미러 등은 두개골 밖에서 뇌가 자라는 아이를 낳은 엄마의 사연을 공개했다. 북아일랜드 아마주 출신의 엄마 애널리 기브니(24)는 임신 20주차에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검사 결과 뱃속의 아이에게 ‘뇌류’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뇌탈출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환은 뇌가 머리 뒤쪽에서 자루모양으로 돌출해 자라는 상태를 말하는데, 임신 중 아이의 신경관이 완전히 닫히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의사들은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가 태어나도 죽을지 모른다고 일렀고, “고통을 완화하는 치료 이외에는 자신들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모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이후 애널리의 행복은 혼자 감당해야 할 공포로 바뀌었고, 모든 꿈은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누군가 앞에서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로서 나약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애널리는 “가슴이 저미는 듯 아팠다. 아이가 발로 차는 것을 처음 느꼈을 때 마냥 기뻤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용품을 사지 않았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아이가 살지 못할 거란 말을 들은 순간부터가 지옥이었는데…”라고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난 달 9일 엄마 애널리는 결국 제왕절개로 딸 메이로즈 기브너를 낳았고, 이제 메이로즈는 태어난지 6주가 됐다. 태어난 이후로 울지 않고 좀처럼 눈도 잘 뜨지 않아 걱정 되긴 하지만 차츰 나아지고 있다. 그녀는 “딸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나도 처음으로 울었다. 그것은 나 자신도 듣지 못할거라 기대했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말과는 달리 밥도 잘먹고, 밤에 잠도 잘 자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튼튼해지고 살도 찌고 있다”며 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의사들은 모두 치료를 중단한 상태지만, 딸이 편히 죽을 날만 기다릴 순 없단 생각에 엄마 애널리는 딸의 건강상태에 대해 조사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희귀질환의 치료법을 갖고 있는 ‘약속의 땅’ 보스톤으로 가는 자금을 서둘러 마련해 아이에게 선구적 치료를 받도록 하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엄마 애널리는 “의사들이 있을 수 없을 거라 단정했던 수많은 과정을 메이로즈가 잘 이겨내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앞으로도 딸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딸을 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하고 싶다. 엄마로서 시도조차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의료 전문가에게 딸을 데려가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대해 애널리는 ”딸을 보내줄 시간이 왔다고 생각되면 놓아줄 것이다. 딸아이가 고통받기를 원치 않는다. 다만 아직은 아이가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메이로즈를 너무 사랑한다. 딸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公슐랭 가이드] 속이 ‘든든’ 영양 ‘빵빵’… 서울시의회 주변 맛집

    [公슐랭 가이드] 속이 ‘든든’ 영양 ‘빵빵’… 서울시의회 주변 맛집

    서울시의회에서 올해로 일한 지 6년 차 되는 나는 돌쟁이 육아에 신경 쓰는 아빠입니다. 새벽에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은 항상 나의 몫이지요. 그 때문에 출근시간이 되면 아침식사는 우유 한 잔이나 과일 한 조각으로 때우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점심은 든든하게 먹습니다. 오후에 일할 기운이 더 생기지요. 아침을 거르기 일쑤인 바쁜 현대인에게 점심때는 하루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무실에서와는 달리 밝은 표정으로 직장 동료와 담소를 나누며 영양 보충을 하며 재충전의 기회가 되는 점심시간, 서울시의회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변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탱글탱글’ 복어살 #시원하다~ 참복집직장인에게 가장 힘든 날은 과음한 다음 날이다. 이런 날은 그 어느 때보다 점식식사가 중요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신물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개운한 국물맛으로 속을 풀어 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광화문 참복집이다. 동화면세점 뒤편에 있는 이 식당에서는 복지리를 꼭 맛봐야 한다. 얼큰한 국물과 파릇한 미나리로 전날 과음했던 속을 말끔히 해장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탱글탱글한 복어살은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게 입속에서 녹듯이 사라진다. 미나리 리필은 필수다. (복지리 2만 3000원(1인), 복매운탕 2만 3000원(1인)) ‘야들야들’ 돼지살 #향긋하다~ 오양식관정동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향긋한 김치찌개 향을 느낄 수가 있다. 그렇다. 바로 오양식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이다. 김치를 직접 담그고, 국내산 암퇘지 1등급 규격돈만 사용해 손님들에게 내놓는다는 김치찌개의 최고봉 맛집 오양식관. 엄마가 해 주신 국물맛이 진한 김치찌개가 생각나면 이 집을 찾곤 한다. 저녁에는 야들야들한 보쌈과 아삭한 파전에 막걸리 한 잔으로 직장인들의 하루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이다. (김치찌개 7000원, 보쌈 3만 2000원, 해물파전 1만 2000원) ‘보글보글’ 보약 육수 #구수하다~ 정동국밥정동 세실극장 옆, 덕수궁 담벼락을 마주하는 정동국밥. 이 집은 수익금 전액을 무료급식에 사용하는 ‘공익’ 국밥집이다. 하얀 국물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국밥에 새콤한 깍두기 국물과 매끈한 흰 쌀밥을 넣어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전날 마신 술로 쌓였던 피로가 가시고 오후에 새로운 기분으로 일할 수 있다. 여기에 곁반찬으로 순대 하나를 집어넣으면 금상첨화다. 가격 또한 직장인들의 지갑을 울리지 않아 만족감을 준다. (국밥 6000원 , 찹쌀순대 5000원)박인근 명예기자(서울시의회 언론홍보실 주무관)
  • 세월호 수색 범위 확대…4층 이어 3층 일반인 객실도 곧 수색

    세월호 수색 범위 확대…4층 이어 3층 일반인 객실도 곧 수색

    세월호 선내 수색의 범위가 단원고 학생이 머문 4층에 이어 3층으로 확대된다. 일반인 승객이 머물렀던 3층 수색도 곧 시작된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22일 세월호 위쪽(우현)에서 3층 일반인 객실로 진입할 비계(가설 사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계를 설치하고 우현 가운데 지점에서 3층 객실로 진입하게 된다. 3층 객실에는 미수습자 권재근 씨와 여섯 살짜리 아들 혁규, 이영숙 씨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날까지 단원고 학생이 머문 4층 선수 2곳, 선미 1곳에 진출입로가 뚫려 수색이 이뤄지고 있다. 이날 오후 4층 선수에 1곳의 진출입로가 추가로 확보될 예정이다. 전날 4층 선수에서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 1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와 선체정리업체 코리아쌀베지는 작업 속도가 늦어지자 선체조사위원회, 미수습자 가족 등과 선체에 추가로 천공(구멍 뚫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천공을 늘리고 확대하는 외에 다른 수색 대안도 마련해달라고”고 요구한 상태다. 선체 내외에서 수거한 진흙 분리 작업도 계속된다. 전날 진흙을 분리하면서 동물 뼈로 추정되는 뼛조각 4점이 발견됐다. 진도 침몰해역 수중 수색도 진행되고 있다. 21일까지 인양·수색 과정에서는 뼛조각(동물 뼈 추정) 47점, 유류품 235점이 수습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전남 평일도 섬마을 미스터리 살인사건

    ‘그것이 알고싶다’…전남 평일도 섬마을 미스터리 살인사건

    22일 밤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평화로운 평일도 섬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전남 완도에서 배로 30분 거리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평일도가 살인의 현장이 된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2016년 5월 16일, 몇 해 전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지내던 마을 주민 김씨(가명)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최초 현장 목격자는 “방문이 한 이 정도나 열려 있었어. 형님 그러고 밀고 들어가려고 보니까 방바닥에 피가 막 범벅이 되어 있더라고”라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부검 결과 피해자의 사망 원인은 고도의 두부손상이었다. 누군가 둔기로 김씨(가명)의 머리를 십여 차례 내려친 것이다. 모두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는 이 작은 섬마을에서 도대체 누가, 왜 김씨(가명)를 살해한 것일까. 과학수사팀이 현장에서 채취한 샘플은 무려 240여점이다. 단 100여 가구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 사건은 금방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범행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도구는 시신 옆에서 발견된 아령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범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현장에는 피해자가 흘린 피가 낭자했지만 범인은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현장에 남아 있던 둔기 외에 추가적으로 범행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는 현장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건이 발생한 김씨(가명)의 방 안은 작은 몸싸움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어 있었고, 일반적인 타살 시신에서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적 역시 김씨(가명)의 시신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 후 현장을 정리하고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 만큼,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었던 걸까? 그리고 김씨(가명)는 왜, 제대로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사망했을까.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이 범인은 미리 본인이 흉기를 가져 왔을 가능성이 있고요. 그렇다 라고 한다면 애초부터 피해자를 공격할 의도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범인은 평소 김씨(가명)와 잘 알고 지낸 사람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범인은 여전히 이 섬 안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사건 현장에 남은 단서는 피해자가 남긴 혈흔이다. 그리고 당일 멀리서 범행이 일어난 집 주변을 비추고 있던 마을에서 단 하나 뿐인 CCTV다. 사건 현장 곳곳에 남아 있는 혈흔은 그날의 진실의 조각을 간직하고 있었고, CCTV에는 범행 현장을 향하던 용의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건 발생 일 년 가까이 미궁에 빠져 있는 평일도 살인사건을 추적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수영강사 네모씨가 찾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

    [이주의 어린이 책] 수영강사 네모씨가 찾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

    중요한 문제/조원희 지음/이야기꽃/48쪽/1만 2000원 수영 강사 네모씨가 불안에 집어 삼켜진 건 작은 구멍 하나 때문이다. 크기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지만 스트레스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얄궂게도 정수리 한가운데를 보란 듯이 파고들어 자리잡은 원형 탈모 얘기다.그 작은 구멍은 네모씨의 일상을 완전히 잠식한다. 네모씨가 찾아간 병원 의사는 말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반드시 처방대로 따르세요.” 처방은 네모씨의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온통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이다. 뜨거운 목욕 대신 미지근한 샤워를 해야 한다. 목욕 뒤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도 참아야 한다. 아끼는 강아지의 보드라운 털을 만질 수도 없다. 새벽 달리기도 주말 등산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 대신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의 늘어난 목록 속에서 네모씨의 마음은 점점 뾰족하고 우울해져만 간다. 귀여워하던 아이들은 귀찮기만 하고, 회원들의 웃음은 나를 향한 비웃음 같기만 하다. 의사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정말 중요한 문제’는 뭘까. 네모씨는 머리에 대한 집착 대신 사소한 취향을 누리는 일상의 즐거움을 선택한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따뜻한 물결, 초콜릿 한 조각과 커피 한 모금의 안온함,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 등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감정들, 작고 소중한 것에 관해 그림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처럼 작가는 우리가 정작 놓치고 마는 사소한 것의 귀중함을 원색의 위트 있는 화풍으로 전한다. ‘이빨 사냥꾼’으로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에서 스페셜멘션(우수상 격)을 수상한 조원희 작가의 신작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세월호 수색 사흘째…디지털카메라·휴대전화 추가 수습

    세월호 수색 사흘째…디지털카메라·휴대전화 추가 수습

    사흘째 계속된 세월호 선내 수색에서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가 발견됐다. 지금까지 세월호 인양·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휴대전화는 총 4대이며, 디지털카메라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20일 세월호 A 데크(4층) 선수 부분에서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은 휴대전화 1대와 디지털카메라를 추가로 수습했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디지털 정보기기는 진상규명 차원에서 증거 가치가 있어 다른 유류품과 달리 수거 직후 선체조사위원회에 인계된다. 선체조사위는 산화 방지 등 작업을 거쳐 민간 전문기관에 복원을 의뢰할 방침이다. 세월호에 남겨진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은 참사 당시 통화 기록, 문자메시지 내역, 사진, 동영상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보여 진상규명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복원 가능 여부는 2주 후에 알 수 있다. 인양 이후 발견된 휴대전화는 인양하면서 1대, 선내 수색 이틀째 A 데크(4층) 선수 부분에서 2대에 이어 4대째다. 이날 사흘째 선내 수색에서는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를 비롯해 신발 6점(슬리퍼 4·운동화 2), 의류 5점, 가방 1점, 변압기 1점, 휴대전화 배터리 1점 등 총 16점의 유류품이 추가로 수습됐다. 그동안 인양·수색과정에서 발견된 유류품은 모두 183점이다. 세월호 수습팀은 이날 세월호 A 데크(4층) 선수 좌현에 총 2곳의 진출입구를 뚫고 선내로 진입, 수색하고 있다. 수습팀은 A 데크(4층) 선미 하단에서도 진출입로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세월호 우현(위쪽)에는 작업자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난간 설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날 오후 선내에서 수거한 150㎏ 안팎 포대 16개 분량의 진흙을 분리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진도 침몰해역 수중 수색에서는 이날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 2점이 추가로 발견됐다. 수중 수색에서는 지금까지 뼛조각 5점이 수거됐다. 인양·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뼛조각(동물뼈 추정)은 현재까지 총 42점이다. 뼛조각은 DNA 확인 등 정밀검사를 거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4년간 신발 신지 않은 ‘맨발 애호남’

    [월드피플+] 4년간 신발 신지 않은 ‘맨발 애호남’

    한 남성이 4년 동안 신발을 신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땀나고 냄새가 풍기는 발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1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늘 신발없이 걷는 자유로운 상태를 좋아하는 영국 런던 켄싱턴 출신의 벤 도넬리(33)의 사연을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항상 신발없이 달리는 것을 즐겼던 벤. 그는 10대 때 미국 웹사이트에서 신발 없이 사는 삶을 홍보중인 단체 ‘더티 소울’(the Dirty Soul Society)을 우연히 알게 됐다. 더티 소울의 ‘맨발 캠페인’(the barefoot movement)은 벤에게 신발 없이 살 권리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점을 알려줬다. 벤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난 신발 신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신발을 꼭 신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내 발은 항상 쉽게 열이 나고 땀이 차 신발을 신어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발에서 냄새가 난다고 할 때 신발을 신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2002년, 벤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용기를 얻어 공공장소에 맨발로 다니기 시작했다. 맨발로 걷는 일은 생각보다 잘 맞았고, 편했다. 여가 시간에만 맨발로 지내다 차츰 신발없이 지내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리고 4년 전, 프리랜서 음악교사로 직업을 바꾼 후, 하루 종일 맨발이다. 공원이나 상점을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일을 할 때도 맨발로 걸어다닌다. 벤의 낯선 모습에 사람들은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지만, 여자친구 캐롤라이나 리오(32)만큼은 남친의 ‘신발 보이콧’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그가 거짓이 없는 사람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런던의 거리는 흩어진 유리파편, 담배 꽁초, 개똥 등 유해한 물질로 가득함에도 벤은 걷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매우 가끔, 아마 1년에 두 번 정도 발에서 아주 작은 유리조각을 빼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살갗이 꽤 두꺼워서 피를 흘린지도 오래 됐다. 심각한 감염, 그와 유사한 것에도 걸린 적이 없다. 오히려 신발을 신으면 해로운 것을 피하려하거나 서 있기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맨발로 다니면 어려운 점도 있다. 기온이 35도나 그 이상 오르는 무더위에 발바닥을 그을리지 않으려면 매우 조심하게 걸음을 내딛거나 빨리 움직여야 한다. 4년 동안 자신의 맨발투혼에 확신을 가져온 벤은 “맨발일 때 가장 큰 혜택은 내가 편안하다는 것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즐겁다. 사물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시야가 넓어졌고, 발 아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맨발의 실질적인 이점을 전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종로 뒷골목 인사동, 옛 시간을 더듬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종로 뒷골목 인사동, 옛 시간을 더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중략)…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 ‘귀천’ 中 일부) 천상병(千祥炳·1930∼1993) 시인은 세상에 소풍 나왔다가 그렇게 갔다. 독일 유학을 하였던, 서울대 상대 동기로부터 막걸리 값 몇 번 받아썼던 게 빌미가 되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이다. 막걸리 값은 어느덧 ‘간첩자금수수’라는 죄목으로 그를 전기고문 의자에 앉혔다. 친구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막걸리 값 얻어 술 마시고 시 쓰던 천상병은 졸지에 간첩이 되고 만다. 진정한 블랙코미디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수사일지에는 “100원 내지 6500원씩 도합 5만여 원을 갈취 착복"한 무뢰한으로 천상병은 국가기관 기록에 남는다. 행려병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한 그를 따뜻하게 받아 준 여인이 바로 목순옥(1935~2010) 여사였다. 목 여사는 문인들의 도움으로 인사동에 작은 찻집을 하나 내고 생계를 이어 나간다. 문단에서 이름 석 자 대면 절 서너 번씩 받을 수 있던 문필가들도 인사동 거리에서는 결코 내로라하지 못했다 한다. 인사동 골목 골목에는 이런 저런 사연들이 상처 아문 실핏줄처럼, 보드라운 이야기길을 만들어 서울 한 복판을 흐른다. 1984년 11월 7일에 길이 0.7㎞, 너비 12m에 이르는 인사동길이 제정된다. 이후 인사동은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고, 1997년 4월 13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꾸며진다. 또한 1999년 7월부터 역사탐방로 공사를 하여 2000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현재의 인사동 길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인사동 길은 종로 2가에서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하지만, 예전에는 종로에서 태화관길(현재 태화빌딩)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또한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방(坊)은 조선의 행정구역 명칭으로 하나의 구획을 일컫는다. 인사동에 골동품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부터였으며, 1970년대까지 인사동은 한국전쟁 이후 흘러들어온 골동품을 거래하던 큰 골목이었다. 하지만 가짜 고서화 사건, 금당살인사건으로 인해 1980년대부터 인사동 골목은 골동품 가게들이 점차 토속음식점, 전통찻집,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판매점이 들어서면서 현재 인사동 모습의 원형을 만들었다. 현재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길을 가리키는 ‘매니스 앨리’(Many’s Alley)로 통하며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인사동 거리에서 눈여겨 볼만한 주요 유적지 및 전통 가게들이 몇 군데 있다. 최근에 스타강사인 설민석 강사의 룸살롱(?) 발언으로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옛 독립선언 유적지인 태화관(현 태화빌딩) 자리다. 사실 태화관은 원래 이완용의 집터였기에 삼일운동 때 그 조약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으로 여기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인사동 194번지인 이 곳에서 한용운 선생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또한 인사동 주요 유적지로는 경인미술관으로 운용되는 조선 철종 때 지어진 박영효 대감댁의 터,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는 승동교회,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15인 민가다헌, 조선시대 궁중 약재를 관리하던 전의감터, 한국 전통 회화의 요람이던 도화서터,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자결하였던 충정공 민영환의 집터가 있다. 인사동에는 거개 나름의 전통을 뽐내는 점방(店房)들도 많다. 1934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통문관, 국내 최초의 전각 전문 갤러리인 문정전각, 목조각상을 소장하고 있는 목인박물관, 인사동 대표명소인 쌈지길, 다양한 전시회를 만날 수 있는 인사아트센터, 한국 최고 김치박물관인 뮤지엄김치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들린 서예도구 판매점 명산당필방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가게와 전시관 등이 있다. 인사동 골목길을 걷는 맛은 나름 운치가 있다. 대로변 번화한 거리의 번잡함을 피해 잊혀진 옛 시간이 만든 길을 걷다보면 가슴 먹먹한 추억도 한량없다. 인사동 골목길은 길을 잃어도 또 다른 길을 만나게 한다.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다. <인사동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한 번은. 아직은 명맥이 살아있는 곳. 특히 외국인 친구가 있으면 필수!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출구 인사동 방면 도보 1분/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 안국동 방면 도보 7분 4. 감탄하는 점은? -골목 골목, 구석 구석에도 관광객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 볼거리가 풍부하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비해 점점 유흥업소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 추세. 인사동의 장소성과 문화경쟁력 제고의 방향으로 인사동 거리가 유지되어 함. 6. 꼭 봐야할 곳은? -쌈지길, 경인미술관 7.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남짓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insainfo.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낙원상가, 조계사, 탑골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인사동 들리기 전 반드시 북인사 관광안내소 나 남인사 관광안내소에 들러 나들이 장소 체크하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는 아무 생각 없이 나올 수 있는 곳. 구석 구석 볼거리 많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가짜 같은 진짜, 진짜 같은 가짜의 진실

    세상에는 가짜 아니면 진짜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대종을 이룬다. 사랑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술품 진위 문제는 원본도 보지 못한 채 진위를 말하는 자칭 전문가들까지 나타나 사람들을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이런 세태 속에서 그림 감정을 업으로 살아온 버질(제프리 러시)이 정체 모를 여인 클레어(실비아 휙스)를 만나 미스터리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미술관을 능가하는 그림들을 모두 잃고 마는 영화 ‘베스트 오퍼’(2013)는 진짜와 가짜란 모두 자신의 믿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수작이다. 영화 제목인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서 진정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를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글쎄 세상 사람 중 몇이나 평생에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버질은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으로 감정 분야의 독보적 존재이자 세기의 경매진행사이다. 결벽증이 있는 버질의 유일한 취미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친구인 빌리(도널드 서덜랜드)를 시켜 경매를 통해 여성의 초상화를 낙찰받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방에 모셔두고 혼자 즐기는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초상화미술관을 능가한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을 비롯해 라파엘, 티치아노,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이 망라돼 사조별로 각각 여성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이런 세기의 명화들은 영화를 통해 예술품의 진위를 사랑과 대비시키려는 감독의 속셈의 산물이다. 감독은 그림과 오늘날 로봇의 전신이라 할 18세기 자동인형 ‘오토마톤’을 등장시켜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를 통해 제아무리 뛰어난 눈을 가졌다 할지라도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초상화들도 사실은 ‘눈속임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류의 그림은 인간의 눈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한다.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실제로 사물이 있는 것처럼 현혹시킨다. 관객들은 진짜인 줄 알았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요즘 난무하는 트릭아트도 이런 류다. 하지만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는 눈속임 그림을 ‘낯설음’이며, ‘아이러니한 모조물’이라고 보았다. 그저 사물과 똑같이 그려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이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 재현의 시각으로 본 눈속임이 아니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눈속임 회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타인과의 관계를 애써 무시했던 버질에게 클레어는 유산으로 받은 오래된 빌라와 그곳의 가구, 미술품, 조각상 등을 경매에 위탁하겠다며 접근한다. 어릴 때부터 은둔했다는 클레어에게 버질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같은 듯 다른 두 외톨이는 교감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달릴 즈음 친구 빌리는 경매에서 놓쳤던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되찾아온다.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 인물화의 대표작으로 미술사학자 조엘 업턴이 “검은 벨벳 쿠션 위에 놓인 유백색의 진주를 닮았다”고 평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바라보는 특이한 초상이다. 어느 날 클레어는 스스로를 감금했던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버질은 여기서 나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마치 풀리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다고 답한다. 물론 영화의 결말을 보면 버질이 거미줄에 걸린 셈이지만. 그 후 버질은 경매를 진행해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들고 클레어의 집을 찾지만 그녀는 집에 없다. 부랴부랴 경매장으로 돌아와 실수를 연발하며 경매를 마친 버질은 사라진 클레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뛴다. 그 와중에 빌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빌리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이고, 모두를 속일 수 있지. 기쁨, 고통, 증오, 병, 회복, 심지어 사랑도”라고 귀띔(?)한다. 사라진 클레어 걱정에 여인의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버질은 클레어가 집안 비밀의 방에 있을지 모른다는 전화를 받는다. 버질은 집으로 뛰어가 클레어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녀를 찾았다가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클레어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버질은 클레어를 초대해 자신의 결벽증을 고백하면서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다며 평생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가득한 비밀의 방으로 안내한다. 클레어 빌라의 경매 도록이 만들어지고 경매일을 기다릴 무렵 돌연 클레어가 경매를 취소한다. 은퇴를 결심한 버질의 마지막 경매에서 빌리가 인사를 건네며 그림을 한 점 선물한다.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클레어는 친구들과 외출한 상태. 빌리가 선물한 그림을 가져다 두려고 비밀의 방으로 간 버질은 텅 빈 방을 발견한다.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기계음만 반복되는 오토마톤만 남아 있다. 급하게 클레어의 집으로 향하지만 아무도 없다. 집 앞 카페의 왜소증환자는 자신의 이름이 클레어라며 저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렇게 끝에 가서야 또 다른 복선을 드러낸다. 클레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빌리가 준 그림에서 그의 사인을 발견하면서 그제야 속았음을 알아챈다. 버질은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찾지만 곧 돌아서서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프라하로 떠난다. 전에 그녀가 말했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릴 심산으로. 우리는 빌리처럼 가짜라고 알지만 진짜이길 원하는 마음이 워낙 커 알면서도 스스로 속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눈속임 그림처럼. 그래서 사기당할 사람은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번 대선엔 이런 과도한 믿음에서 벗어나 후보를 감정해 보자.
  • 세월호 이틀째 수색…학생증·휴대전화 등 유류품 41점 발견

    세월호 이틀째 수색…학생증·휴대전화 등 유류품 41점 발견

    세월호 선내수색 이틀째인 19일 학생증, 휴대전화 등 유류품 41점이 발견됐다. 수습팀은 이날 오전 8시쯤 세월호 A 데크(4층) 선수 좌현에 뚫은 진출입구로 선내에 진입해 수색을 벌였다. 수색은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이날 수색에서는 휴대전화 등 유류품 41점이 수거됐다. 발견된 유류품은 휴대전화 2점, 신발 15점, 의류 15점, 가방 2점, 지갑 1점, 학생증 1점, 충전기 1점, 화장품 1점, 베개 3점 등이다. 유류품 중 스마트폰은 산소와 접촉해 급격히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증류수에 담가 보관한 뒤 선체조사위원회를 통해 복원업체에 넘겨진다. 선체 내부에서는 150㎏ 안팎 포대 16개 분량의 진흙, 선체 내장재 등 지장물도 수거됐다. 진도 침몰 해역에서 진행된 수중수색에서는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 3점이 발견됐지만 다른 유류품은 없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수색 돌입… 단원고 객실서 유류품 쏟아져

    세월호 수색 돌입… 단원고 객실서 유류품 쏟아져

    미수습자 최다 추정 4층 객실부터 모종삽으로 펄 한겹씩 벗겨내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9명의 마지막 미수습자를 찾기 위한 선체 수색이 18일부터 시작됐다. 사고 발생 1098일 만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머문 선체 4층 객실 내부 수색이 시작되자마자 옷가지와 가방 등 각종 유류품이 쏟아져 나왔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이날 세월호 선체에 대한 세부 수습과 미수습자 수습 계획을 발표했다. 이철조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오늘은 선수 좌현 4층 A데크부터 진입할 계획”이라며 “당초 계획대로 3개월 내 본수색 완료를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수색 장소로 4층 선수가 우선 결정된 데는 생존자와 잠수사 증언, 선내 폐쇄회로(CC)TV 등에서 가장 많은 5명의 미수습자가 있을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선체정리업체 코리아쌀베지가 주도하는 수색은 보고서 작성 기간(2개월)을 뺀 예비수색(1개월)과 본수색(3개월) 기간을 감안하면 한여름인 8월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수습팀은 1개조에 해경,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 1명씩과 선체정리업체 직원 5명 등 8명으로 꾸려 총 9개조 70여명이 투입될 예정이다. 내부에는 조명과 CCTV, 통풍구 등이 설치됐다.수습팀은 이날 오후 1시 선수 좌현 4층 A데크에 가로 1.2m, 세로 1.5m 규모의 사각형 모양의 입구를 뚫고 선내로 진입했다. 선체 진입은 4층 A데크 6개(객실 3개, 중앙 로비 1개, 선미 2개), 일반인 객실이 있는 3층 B데크 3개(객실 1개, 선미 2개) 등 9개 입구를 통해 이뤄진다. 지장물과 펄(진흙)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름표가 붙은 가방, 옷가지 등 유류품이 상당수 나왔다. 수색은 굴착기로 흙을 파내듯 수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모종삽을 이용해 유해가 다치지 않게 발견되도록 수평으로 펄을 한 겹씩 벗겨 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장에는 유해 발굴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다. 뼛조각이 발견되면 작업은 즉시 중단된다. 유류품은 품목별로 상자에 담아 보관된 뒤 세척, 소유자 확인 등을 거쳐 유가족에게 전달된다. 김창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장은 “미수습자들이 사고 당시 입은 의복 형태와 색깔 등에 대한 가족 설명을 종합해 발견 즉시 미수습자의 대략적인 신원이 보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신원 확인은 국과수에서 DNA 검사로 3주 뒤 최종 판명된다. 이날 추가로 공개된 사진 12장 속의 선체 내부는 회색빛 펄에 뒤덮여 있었다. 객실과 복도를 구분하던 간이벽체들은 모두 좌현으로 쏠려 내려갔다. 철판들은 늘어지고 철근은 튀어나와 3년 전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선내수색 개시, 4시간여 만에 종료…가방 등 유류품 18점 발견

    세월호 미수습자 선내수색 개시, 4시간여 만에 종료…가방 등 유류품 18점 발견

    세월호 선내수색이 18일 4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이날 18점의 유류품이 나왔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세월호 A 데크(4층) 선수 좌현 수색 작업을 마치고 19일 재개한다고 밝혔다. 현장수습본부는 안전과 수색 효율성 등을 고려해 야간작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선내수색에서는 슬리퍼(8족)와 운동화(1족) 등 신발 9점, 캐리어(2개)와 백팩(2개) 등 가방 4개가 수거됐다. 청바지, 트레이닝 바지, 학생용 넥타이, 세면도구가 들어있는 손가방, 구명조끼도 1점씩 나왔다. 선체 내부에서는 15∼20㎏ 포대 80개 분량의 진흙, 선체 내장재 등 지장물도 수거됐다. 그동안 인양 과정에서 나온 108점을 더하면 유류품은 모두 126점으로 늘었다. 인양 중에는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도 37점 나온 바 있다. 진도 침몰해역에서는 수중수색이 진행됐지만, 유류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지점에 설치된 철제 펜스 안 40개 구역 가운데 11곳에서 수중수색이 진행된 동안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현장수습본부와 선체정리업체 코리아쌀베지는 19일에도 A 데크 좌현 선수 부분 등에서 이틀째 선내수색과 수중수색을 이어갈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조각 외모는 여전하네’… 다니엘 헤니,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식 참석

    [포토] ‘조각 외모는 여전하네’… 다니엘 헤니,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식 참석

    영화배우 겸 감독 게리 시나이즈(가운데)가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식에서 배우 다니엘 헤니(왼쪽), 아라나 데 라 가르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배우는 TV 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국제범죄수사팀’에 함께 출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미수습자 선내수색 시작…4층 선수로 진입

    세월호 미수습자 선내수색 시작…4층 선수로 진입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선내 수색 작업이 18일 시작된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이날 오전 목포 신항만 취재지원센터 브리핑에서 “오늘 선수 좌현 A데크(4층)부터 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색은 4층 A데크 6곳(객실 3, 중앙로비 1, 선미 2)과 3층 B데크 3곳(객실 1, 선미 2) 등 9곳부터 시작한다. 이날 중 A데크 선수 부분 진입로를 확보한 뒤 1개 조 8명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B데크와 A데크 남은 구역 수색도 상황에 따라 진행한다. 총 투입 인력은 9개 조 70여명이다. 현재 세월호 내부는 구간별로 차이는 있지만 일부 철제 벽을 빼고는 패널로 된 간이벽체 등이 대부분 붕괴돼 바닥인 좌현 쪽으로 진흙과 함께 몇미터 높이로 쌓여있다. 이에 따라 A데크는 선수 쪽 좌현 3곳과 선미 쪽 좌현 1곳에 진입을 위한 구멍(1.2m×1.5m)을 내 바닥(좌현)에 쌓인 지장물을 수거하면서 수색할 예정이다. 선미 쪽의 경우, 핸드 레일(난간)을 제거한 뒤 상하단 기존 열린 공간(개구부)로 진입한다. 선수를 향해 수색하면서 철제 벽이 남은 중간 구역은 가설 사다리(비계)를 설치해 위아래 방향으로 수색한다. 3층 B데크는 선수 쪽 1곳에 진출 입구를 내 선미 방향으로, 선미 쪽 우현 상판과 하단 개구부를 통해서는 바닥으로 내려와 선수 방향으로 수색한다. 이번 수색은 유해발굴 전문가의 자문, 교육을 거쳐 미수습자 발견에 대비한다. 수색 작업 중 뼛조각 등이 발견되면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유해발굴 전문가·신원확인팀 등을 투입하게 된다. 수습본부는 현장 보전과 채증과정을 거쳐 안치실에 안치해 검체를 채취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DNA 대조작업(3주 소요)이 끝나면 절차에 따라 가족에게 인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500년 전 금동신발서 파리 번데기 껍질… 시신 묻기 전 수일간 장례 치른 듯

    1500년 전 금동신발서 파리 번데기 껍질… 시신 묻기 전 수일간 장례 치른 듯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1500여년 전 금동신발에서 파리 번데기 껍질이 확인됐다. 고대 인골이나 매장 유물에서 파리 번데기 껍질이 발견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 주목된다. 이는 당시 장례를 치를 때 시신을 바로 매장하지 않고 외부에서 일정 기간 의식을 치른 뒤 땅에 묻는 ‘빈장’(殯葬)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실마리이기 때문이다.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12월 정촌고분 1호 돌방에서 발견된 금동신발 안의 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무덤 주인의 발뒤꿈치 뼛조각과 함께 파리 번데기 껍질 10여개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연구소는 파리 번데기 껍질로 당시 장례 문화가 빈장이었을 가능성, 무덤 주인공의 사망 시점, 1500여년 전과 현재의 기후변화 등 세 부분으로 나눠 법의곤충학 분석 연구를 진행했다. 정촌고분 1호 돌방처럼 빛을 차단하고 평균온도 16도, 습도 90%의 환경을 만들어 파리 생태 변화를 관찰한 결과 알이나 구더기는 성충이 되지 않고 번데기 상태일 때만 성충으로 변했다. 오동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매우 추운 겨울이 아닌 이상 통상 사람이 사망하면 1시간 안에 파리가 접근해 알을 낳는데, 파리가 알에서 번데기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6.5일이므로 이 기간 동안 시신이 외부에 노출된 상태였을 것”이라며 “당시 시신을 바로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의식을 가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고고학적 정황을 과학적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금동신발에서 찾아낸 파리 번데기 껍질은 현재도 정촌고분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검정뺨금파리의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1500여년 전과 지금의 기후변화는 크지 않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또 검정뺨금파리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간이 5~11월임을 감안했을 때 정촌고분 1호 돌방의 주인공도 이 기간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파리 번데기 껍질과 출토된 고인골의 신체 특성을 분석해 무덤 주인의 사망 원인과 나이, 식습관, 신체 크기 등을 밝혀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고대 영산강 유역에 살았던 이들의 모습과 장례 문화 등을 복원해 나갈 계획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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