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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멈춰선 숲, 숨이 되다… 버려진 길, 쉼이 되다

    멈춰선 숲, 숨이 되다… 버려진 길, 쉼이 되다

    멀찌감치 떨어져 티어가르텐을 품다… 호수 위 나뭇잎 소리에 취해 노를 젓다… 신선한 공기 한 줌·따스한 햇살에 감사할 줄이야… 새로운 일상과 삶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일까요. 요즘 외지에서 살아 보기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서울신문은 뒤늦게 만난 ‘뜻밖의’ 연인을 따라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간 이동미 여행작가와 함께 ‘베를리너로 살기’를 연재합니다. 베를린은 살아 보기 좋은 도시입니다. 물가가 싸고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넘어온 젊은이들이 베를린에 모여 사는 이유일 겁니다. 흔히 뉴욕이 미국이 아니듯 베를린은 독일이 아니라고들 하지요. 이 작가는 앞으로 3주에 한 번씩 베를린에서 이웃 도시와 이웃 나라를 오가며 새로운 일상과 영감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갈 수 있는 곳이 공원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공원이라서 또 얼마나 다행인지. 베를리너들의 유별난 사랑을 받는 공원으로 가 봤다. 모두가 그곳에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제재) 두 달째. 독일 베를린은 3월 초 한 유명 클럽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한국이 신천지가 문제였다면, 베를린은 테크노 문화의 성지답게 클럽이 진원지가 됐다. 가장 먼저 폐쇄 조치를 당한 곳도 바와 클럽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생필품을 사야 하는 슈퍼마켓과 약국만 갈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는 외출을 하려면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조깅도 한 시간 내로 제한한다고 들었다. 그에 비하면 베를린은 유럽에서 상황이 나은 편이다. 조깅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고 한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어도 1.5m 간격을 유지하면 지인 한 명과 함께 걷거나 공원 벤치에 앉을 수 있다(3인 이상은 금지). 이런 방침도 초반엔 혼선이 많았다. 공원 벤치에 앉는 건 괜찮지만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건 안 되고, 공원을 걷는 건 괜찮지만 잔디밭에 앉을 수는 없었다. 일주일쯤 뒤엔 방침이 또 바뀌었다. 잔디에 혼자 혹은 가족 단위로 앉는 게 가능해졌다. 단 사람들과의 거리를 5m 간격으로 유지해야 한다.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각자의 방법으로 이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렇게라도 밖에 나갈 수 있고 신선한 공기와 햇살을 쬘 수 있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은 큰 불만 없이 시의 방침을 잘 따랐다. 최근 메르켈 총리는 정부의 방침에 적극 따라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의료시설의 부족난을 겪지 않고 낮은 곡선 만들기에 성공한 독일은 최근 록다운 체제에서 조금씩 완화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달 22일부터는 작은 숍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한 달 동안 완전히 영업을 중단했던 레스토랑도 지금은 배달과 픽업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 쓰는 것이 규제화됐다. 그래도 불필요한 이동을 삼가고 되도록이면 집에 있어야 하는 건 똑같다. 이런 와중에 날씨는 눈치도 없이 왜 이렇게 좋은지. 4월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화창한 날씨가 한 달 내내 계속됐다. 날이 좋아서 공원으로 매일 출근 중이다. 갈 수 있는 곳이 공원밖에 없지만 그게 공원이라서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베를리너들의 극진한 공원 사랑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공원뿐 아니라 강, 호수, 숲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갈 데라곤 공원밖에 없는 것처럼 항상 나와 앉아 있다. 맥주 한 병 들고 혹은 와인을 나눠 마시며 기나긴 오후를 베를리너답게 보낸다. 며칠 전 박물관 섬 근처의 대형 아시아 마켓에 한국 식재료를 사러 갔다가 잠시 주변을 산책했다. 상업시설이 몰려 있는 번화가는 문 닫은 빌딩들로 삭막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더 그랬다. 하지만 베를리너 돔 앞으로 걸어가니 넓은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명소가 건너다보이는 몽비주 공원에도 사람이 많았다. 한국의 TV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의 베를린 편에 버스킹 장소로 나왔던 곳이다. 여름에는 모래사장이 깔린 비치 바가 들어서고, 웃통 벗고 일광욕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늘 관광객이 많아서 공원이라기보단 내겐 한강 잔디밭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숲을 방불케 하는 큰 나무와 자연으로 둘러싸인 베를린의 진짜 공원을 만나면 그 매력에 곧 빠져들게 된다.●베를린의 녹색 심장, 티어가르텐 베를린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2500개 있다. 베를린을 처음 오는 여행자라면 도시 중심부에 있는 티어가르텐을 가장 먼저 들르게 될 것이다. 미국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듯이 베를린에는 티어가르텐 공원이 있다.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됐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공원 크기만 63만여평에 달한다.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전승기념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거대한 브로콜리처럼 뻗어 있는 티어가르텐의 방대한 숲을 볼 수 있다. 도시는 그 평평한 숲 너머에서 경계를 이룬다. 이 전승기념탑을 중심으로 동쪽 끝으로 가면 브란덴부르크 문이, 서쪽 끝으로 가면 샤를로텐부르크궁이 나온다. 북쪽에는 대통령 관저인 벨뷔궁전이 있고 남쪽으로 가면 동물원과 포츠다머 플라츠로 갈라진다. 베를린의 중요한 랜드마크가 모두 티어가르텐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2시간은 거뜬히 걸린다. 많은 조각상과 작은 연못들, 잘 정돈된 잔디가 펼쳐지는가 하면 거대한 나무기둥이 도열한 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공원 안에서 유난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도 있다. 배를 탈 수 있는 호수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비어가든, ‘카페 노이암제’이다. 여름이면 이 비어가든에는 거의 빈자리가 없다. 호수에서는 배도 빌려 탈 수 있다. 베를린에 사는 한 친구는 한국에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무조건 이곳으로 데려와 노를 젓게 한다. 베를린 초보 여행자들은 처음엔 어디로 배를 몰아야 할지 갈팡질팡하지만 양팔 뻐근하게 노를 젓다 보면 티어가르텐 호수의 매력에 끌려들어 간다. “베를린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 물으면 의외로 친구들은 이 호수에서 나뭇잎 소리를 듣고 노 젓던 시간을 고백한다. 바쁜 일상을 잊고 초록에 둘러싸여 있던, 그 평화로운 시간에 모두가 위로받고 갔다. 몇 해 전 취재차 베를린에 왔을 땐 티어가르텐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최고급 빈티지 가구와 디자인으로 꾸며진 다스 스투에 호텔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부티크 호텔로 꼽히는 그곳에서 제일 인기 있는 방은 동물원이 보이는 방이다. 내 방에선 기린이 보였다. 사람들은 동물이 보이는 전망을 갖기 위해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한다. 그러곤 깨닫겠지. 막상 발코니에 앉으면 동물원에서 풍겨 나오는 똥 냄새 때문에 10분도 앉아 있기 힘들다는 걸. 하지만 피곤한 불평 대신 모두가 웃어넘길 수 있다. 호텔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일어나자마자 티어가르텐 공원으로 들어가 걸었던 이른 아침이다. 고요하고 신비로운 아침 햇살에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티어가르텐에 산다는 야생 여우를 만날 것 같은, 그런 아침이었다. “알렉산더 플라츠에 여우가 나타났대.” 며칠 전 아침 신문을 읽던 남자친구가 말했다. 도로에 차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집에 갇히자 베를린에선 야생 여우들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실 베를린의 공원에는 여우와 멧돼지, 토끼 등 꽤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한밤중에 클러버들이 동네 거리에서 여우를 마주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크로이츠베르크에 사는 한 남자는 동네 이웃처럼 종종 마주치는 여우가 있는데, 전에는 멀리 피해서 돌아가던 그 여우가 요즘은 그냥 자기 앞을 가로질러 간다는 내용으로 신문 인터뷰를 했다. 코로나 시대에 인간들이 사라지자 텅 빈 도시를 되찾은 건 야생 동물이었다.●무너진 베를린 장벽 아래 생긴 마우어파크 티어가르텐과 함께 베를린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공원은 마우어파크다. 여행자에게는 베를린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도 크지만 단순하게 중고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많은 거리 공연과 버스킹이 펼쳐지고 다양한 먹거리 포장마차가 생겨 즐겁다. ‘가라오케 쇼’라고 부르는 노래공연 대회도 유명하다. 원형의 야외무대에서 저마다 노래자랑을 하는 건데, 베를린 특유의 자유로움과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일요일의 축제장 같은 이 벼룩시장도 지금은 두 달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마우어 장벽에 새로운 그래피티를 그리는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열심이다. 빠른 주기로 작가들이 그림을 지우고 덧그리기 때문에 이곳의 그래피티는 유독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화장지를 들고 있는 골룸 그림만은 코로나 시간과 함께 아직 남아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젊은 아티스트들은 이 벽에 무엇을 제일 먼저 그리게 될까. 28년 동안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었고 장벽이 무너진 후에도 한동안 버려져 있던 이곳은 1994년에 시민들의 공원으로 완성됐다. 남아 있는 장벽 아래의 넓은 언덕 기슭에는 이제 사람들이 앉아 해를 쬔다. 젊은 가족이 많이 사는 프란즐러베르크 동네의 친근한 공원답게 작은 동물 농장과 놀이터,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인공 암벽 등도 있다.●버려진 폐공항을 그대로, 템펠호프 공원 “어라? 이곳이 공원이라고?” 별다른 정보 없이 템펠호프 공원에 도착한다면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공원 같지 않은 공원, 어쩌면 가장 아름답지 않은 공원에 꼽힐 이곳은 그러나 베를린 시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지켜낸, 가장 베를린스러운 공원이기도 하다. 템펠호프는 2008년까지 군용 공항으로 쓰이다가 2010년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됐다. 베를린시에서 대규모 주택단지로 만들려고 했지만 시민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초기 정책과 달리 실제 계획안에는 적정 주택이 터무니없이 적었고, 책정된 임대료도 평균보다 높았다. 시민들은 적극적인 투표로 정부 개발을 무산시키고 공원으로 지켰다. 공원이 됐다고 해서 새로 만들거나 고친 것도 없었다. 활주로도 기존 공항의 것 그대로이고 관제탑 같은 건물도 그대로 남았다. 360도로 탁 트인 사방으로는 높은 건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라 더 낯설고 광활하다. 시민들은 이 활주로에서 자전거도 타고, 카이트서핑도 하고, 풀숲에 들어가 명상도 한다. 이 못생긴 공원이 매력적인 건 특별한 건축 시도나 디자인 없이도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다하고 있다는 것. 개발하지 않고 남겨둔 곳, 템펠호프는 결국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공원이 됐다.●노이쾰른의 숨어 있는 귀족 정원, 쾨너파크 베를린의 홍대 같은 동네인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노이쾰른이 나온다.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집값 싼 동네를 찾아 처음 미테에서 크로이츠베르크로,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더 밀려난 곳이 노이쾰른이다. 베를린 중심지보다 치안이 안 좋다고는 해도, 노이쾰른만큼 요즘 베를린을 잘 보여주는 핫한 동네도 없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체 못 하는 끼를 발산하고, 숨은 클럽과 바가 모여 있으며, 온갖 그래피티와 자유로움이 넘쳐난다. 이런 거침없는 동네 분위기와는 달리 노이쾰른 땅 7m 아래에는 시간을 초월한 궁전식 공원이 숨어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공원이라 불리는, 쾨너파크다. 노이쾰른에 살지 않는 이상 현지인도 잘 모르는 이 땅 밑 공원에는 프랑스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아름다운 조각상들과 분수대, 잘 가꾼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공원이 되기 오래전 이 지하는 커다란 자갈 구덩이 밭이었다. 당시 땅의 주인이었던 프란츠 쾨너가 자신의 성을 후대 공원 이름에 넣는 것을 조건으로 시에 넘겨주었고, 당대의 유명 건축가가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이곳을 완성했다. 공원으로 내려가면 삼면이 거대한 옹벽으로 돼 있어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동시에 베르사유궁의 미니 정원을 걷는 듯한 우아함도 느낄 수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은 샤를로텐부르크성 앞에 있지만, 노이쾰른의 이 느닷없는 지하 정원에서 훨씬 더 신화적이고 은밀한 시간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오늘도 가까운 공원에 나와 앉아 있다. 베를린의 공원에서만큼은 코로나19로 닫혀버린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dongmi01@gmail.com
  • 크래프트하인즈, 세상에서 가장 느린 퍼즐 이벤트 론칭

    크래프트하인즈, 세상에서 가장 느린 퍼즐 이벤트 론칭

    글로벌 식음료기업 ‘크래프트하인즈’는 하인즈 케첩 애호가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응원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느린 퍼즐 캠페인을 론칭하기로 했다. 하인즈 케첩 퍼즐 캠페인은 전 세계 17개국의 케첩 애호가들에게 추첨을 통해 각 57개의 퍼즐을 제공할 예정이며 한국에서는 총 57명에게 행운의 기회가 돌아갈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크래프트하인즈코리아 공식 인스타 이벤트 포스팅에 댓글로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를 태그로 소환하면 57중 한명이 되는 행운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해당 이벤트는 5월 6일부터 5월 9일까지 지속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퍼즐이 소셜 피드에서 역주행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하인즈는 하인즈 케첩 올레드 컬러와 570 조각으로 구성된 놀랍도록 느린 퍼즐을 소개했다. ‘크래프트하인즈코리아 마케팅 담당자’는 “아마도 그동안 세상에 없었던 가장 느린 퍼즐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새로운 일상에서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 한국의 하인즈 케첩 팬들에게 재미있는 이벤트를 제공할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글로벌 브랜드로써 다양한 접점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요리의 한 끗 하인즈 한편 하인즈가 150년 이상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한결같이 만족스러운 맛으로 사람들에게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고, 즐기는 기쁨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하인즈는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케첩을 탄생시켰고 매년 140여 개국에 6.5억 개 이상의 케첩을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한 첫 발병 나흘 전 파리에 첫 환자’ 주장 왜 중요한가

    ‘우한 첫 발병 나흘 전 파리에 첫 환자’ 주장 왜 중요한가

    지난해 12월 2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한 의사의 주장은 여러 모로 당혹스럽다. 같은 해 10월부터 중국 우한의 한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외부로 유출됐으며, 폐렴 의심 환자가 있었다는 리원량 박사의 증언이 있었다는 점을 알지만 언론에서는 중국 보건당국이 우한에서 첫 환자가 나왔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보고한 같은 해 12월 31일을 세계 첫 발병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말이 맞다면 프랑스의 공식 첫 환자 발생일인 1월 24일보다 한달 남짓, 세계 첫 발병일보다 나흘 앞당겨지게 된다. 국내 언론들이 4일과 5일 이 소식을 전하자 적지 않은 이들이 ‘명백한 중국 책임론에 물타기하려는 의도’ 쯤으로 폄하하는 댓글을 달았다. 조금 더 명확한 근거를 확인한 뒤에 기사화했어야 중국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는 것이란 주장을 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4일 미국 CNN의 ‘쿠오모 프라임타임’에 출연한 의학전문기자 산제이 굽타도 ‘현재로선 누구도 진위를 모른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진실을 알기 위해 지금은 조금씩 조각을 맞춰나가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5일 영국 BBC가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보도했고 WHO도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새 환자는 어떻게 찾아냈나? 문제의 의사는 파리 근처 아비센느 장베르디에 병원의 응급실 팀장인 이브 코엔 박사다. 그는 지난해 12월 2일부터 올해 1월 16일 사이 독감 증상으로 입원했으나 독감 확진을 받지 않았지만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 환자 24명 가운데 특히 폐렴 증상을 보인 14명의 냉동 샘플을 해동해 다시 검사한 결과 한 환자의 샘플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한 번 더 검사를 했는데 마찬가지였고, 흉부 엑스선 사진과 코로나19 환자의 것을 비교해봤더니 일치했다. 파리 북동부 비비니에 사는 아미루체 함마르란 43세 남성이 지난해 12월 27일 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의 샘플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마른 기침, 고열, 호흡곤란 등 지금은 가장 일반적인 코로나19 증상으로 인정되는 증세를 호소했다. 함마르는 현지 방송 BFMTV에 자신은 아프기 전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코엔 박사는 그의 두 자녀도 아파했지만, 아내는 어떤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샤를 드골 신공항 근처 슈퍼마켓에서 일해 그 전에 중국을 다녀온 이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어 감염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때로는 손님들이 공항에서 곧바로 가게에 여행가방을 끌고 왔다”고 말했다. 코엔 박사는 “그녀가 무증상 전파자였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초 이번주 ‘국제화학요법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Antimicrobial Agents)에 실릴 예정이었는데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전문 공개를 앞당겼다. 왜 이렇게 중요한지? 지금까지는 프랑스에서의 첫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례는 1월 24일 확인된 세 환자였다. 두 환자는 우한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가까운 가족이었다. 유럽에서의 첫 인간 대 인간 감염은 지금까지 같은 달 19일과 22일 사이 독일을 방문한 중국인 동료에게 감염된 독일 남성으로 여겨졌다. 로울랜드 카오 에딘버러 대학 감염내과 교수는 함마르의 발병일이 맞다면 세계의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들에서 아주 빠르게 첫 감염이 진행된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그는 “우리가 이 질병을 판단하고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데 걸린 시간이 아주 짧았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WHO “놀라운 일이 아니다” WHO는 더 많은 연구소들이 보유한 샘플들을 다시 검사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크리스티앙 린트마이어 대변인은 5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브리핑을 통해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한다”면서 “과거 샘플을 다시 분석해보면 더 이른 사례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발견이 코로나19의 잠재적인 확산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도 작년 말에 발생한 미확인 폐렴 사례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만 초기 검사 결과를 재검토한 것은 아니다. 2주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사후 부검을 통해 미국에서의 첫 감염 사망 사례가 당초 인정된 것보다 한달 가까이 앞당겨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민주 “통합당, 거짓 선동 태영호·지성호 징계해야”

    민주 “통합당, 거짓 선동 태영호·지성호 징계해야”

    더불어민주당은 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을 주장한 미래통합당 태영호·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인에 대해 당 차원의 사과와 징계를 요구했다. 송갑석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두 당선인이 김 위원장 사망설 등 허위정보로 국민 혼란을 가중한 데 대해 통합당의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고 있다”며 “두 당선인의 거짓 선동은 당사자 사과로 유야무야 넘길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이들의 발언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두 당선인을 21대 국회 국방위원회·정보위원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그런데 통합당은 안보 혼란의 본질을 흐리고 남의 당 일에 간섭하지 말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두 당선인이 국민적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의 안보를 심각하게 저해한 데 대해 공식 사과와 징계 조치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두 당선인이 퍼뜨린 가짜뉴스가 자칫 국가적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심각한 위해였음을 자각하고 당내에 만연한 안보 불감증을 깊이 되돌아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무소속 민병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해프닝으로 그들이 가진 정보도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민감한 상임위 배정은 국민적 신뢰가 깨져서 이미 어렵게 됐다. 다른 상임위를 통해 북한이탈주민, 다문화 가정을 포용하는 따뜻한 보수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언관 타락이 언권 혁파 불러… 총선서 ‘시민, 권력이 된 언론 외면’ 확인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언관 타락이 언권 혁파 불러… 총선서 ‘시민, 권력이 된 언론 외면’ 확인

    “대체로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나쁘지 않은 곳이 없다. 붕당을 만들어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모으고 권세를 부려 가난한 백성들을 괴롭힌다. … 신축년(1721년)과 임인년(1722년) 옥사 이래 조정에는 노론, 소론, 남인 세 색목의 원한이 날로 깊어져 서로 역적의 누명을 뒤집어씌우더니, 그 영향이 시골에까지 미쳐 싸움터가 아닌 곳이 없다.” ‘택리지’의 저자 청담 이중환이 3장 ‘복거총론’ 중 ‘인심’ 편에서 그린 18세기 초중반 조선의 사회상이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인심이 일그러지고 무너져 본성을 잃은 나라가 있었다 해도 오늘날 붕당으로 인한 환난보다 더한 적은 없었다. … 백만 백성이 장차 인간의 본성을 모두 잃어 구할 수 없을 터이니 이 또한 슬픈 일이다.” 인문지리서가 당쟁의 폐해를 장황하게 전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살 곳을 선택할 때 가려야 할 것이 인심의 좋고 나쁨, 기후의 건습 따위지만, 당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색목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중환은 이렇게 충고한다. “사대부가 살지 않는 곳을 선택해서 두문불출하며 홀로 착하게 살라.”그러나 이 책을 쓰던 1751년 즈음 조정의 풍경은 판이하다. “근래에 와서는 사색이 조정에 함께 나가서 오로지 벼슬만 할 뿐이고, … 옳고 그름과 충신 역적에 대한 논란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피 터지게 싸우던 습관은 전에 비해 적어졌지만, 나약하고 게으른 새 병폐가 생겼다.” 영조의 탕평책이 나름 뿌리를 내리던 시절이었다. 이중환은 이런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경신년(1741년) 전랑권 혁파를 꼽았다. “경연에 참석한 신하들이 붕당의 분열은 전랑(이조 정랑과 좌랑)에서 시작됐으니 전랑의 권한을 없애기를 청하자 임금이 허락했다.” 다음은 영조 17년 4월 19일치 영조실록. “임금이 늘 조정의 붕당을 근심하였는데, 이조 낭청과 한림을 선발할 때면 두 당에서 서로 싸우기를 그치지 않으니 임금이 그들의 하는 짓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경장하려 했다. 마침 송인명, 조현명, 원경하, 정우량 등이 극력 찬성하니 임금이 혁파를 명했다.” 전랑의 3사 당하관 인사권(통청권)과 한림(예문관 검열, 사관)이 한림을 추천(한림회천제)하는 관행을 없애라고 한 것이다. 혁파의 이유는 이렇다. “붕당의 행태가 신하들을 함몰시키고 기강을 문란시키고 있으니 신하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편당 만드는 것뿐이다. 폐단을 바꾸려고 한다면 마땅히 그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낭청(정5품 이하 관리)의 통청(청요직의 추천 혹은 비준)과 야료의 온상이 된 한림의 자천제도 혁파해야 한다.” 조선은 언론을 중시했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民本) 백성을 위한 정치(爲民)를 하려면 꼭 필요한 게 백성의 입장에서 권력자를 성역 없는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언권이었다. 조선은 개국 초 심지어 풍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할 수 있는 풍문탄핵까지도 허용했다. 요체는 언론 활동의 독립성이었고, 이를 위한 인사의 독립성 확보였다.조선의 언론은 사간원(간쟁), 사헌부(관리에 대한 검증 및 감찰), 홍문관(학문) 등 3사의 당하관과 사초를 기록하는 예문관 사관이 맡았다. 이들 기관 언관의 독립성을 위해 도입한 것이 낭청권(이조 전랑이 3사 언관을 추천하는 통청권, 전랑이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하는 자대권)이다. 전랑은 이 밖에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공론을 수렴하는 처치권도 행사했다. 낭청권은 중종 11년 조광조 등의 요구로 제도화됐다. 중종은 사림을 청요직에 적극 기용해 언권으로 공신과 훈구세력을 견제했다. ‘공론재하’(공론은 아래에 있다)의 원칙, 즉 공론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으로 공론정치의 철학적 토대였다. 물론 언관이 대변한 것은 백성의 여론이 아니라 사림의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여론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훈구 및 외척세력의 전횡에 사림이 맞서던 시절 사림의 공론은 백성의 여론과 다르지 않았다. 선조 때 사림이 조정을 주도하면서 언관의 행태가 변질됐다. 붕당이 생기고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1575년 동서 분당은 바로 그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각축에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언관은 공론이 아니라 붕당의 당론을 대변하고, 상대 당을 탄핵하는 데 치중하기 시작했다. 선조 때 기축옥사를 시작으로 광해군대의 잇따른 고변과 무고, 문묘종사 논란과 회퇴변척 논쟁, 현종대의 을해예송 및 갑인예송 등은 대부분 언관에 의해 주도됐다. 숙종대로 넘어오면서 공론정치는 당쟁으로, 당쟁은 아예 살육전으로 치달았다. 당시 붕당의 행태가 얼마나 타락했으면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오로지 ‘남인 박멸’을 위해 사림이 지켜 온 의리(척신 타파)를 버리고 김석주 등 척신의 정탐정치와 고변을 옹호하고 지원(경신환국)했을까. 이는 서인이 노론, 소론으로 분당하는 원인이 됐다. 숙종은 붕당의 이런 행태를 이용해 신권을 강력히 통제하며 왕권을 강화했다. 국왕 주도로 이루어진 급격한 정권교체, 곧 ‘환국정치’다. 숙종은 갑인예송이 촉발한 갑인환국(1674년) 이후 특정 붕당이 비대해져 왕권을 흔든다 싶으면 집권당을 교체했다. 1727년 정미환국까지 50여년 동안 무려 아홉 번의 환국이 있었고 그때마다 숙청과 살육이 벌어졌다. 그것이 ‘택리지’가 전하는 시대상이었고,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의 시대적 배경이었다. 탕평은 사색당파에서 인사를 고루 기용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당쟁의 총구인 언관의 횡포를 막아야 했다. 그리하여 영조는 낭청권 등을 혁파했지만, 말년에 혼미해진 영조는 노론의 등쌀에 밀려 부활시켰다. 최종적으로 혁파한 이가 정조다. 정조 8년(1784)년 청요직에서 노론의 입으로 잔뼈가 굵은 김하재 옥사가 발생했다. ‘사도세자가 죄인이므로 정조도 죄인인다’, ‘정조가 사림을 주살하려 한다’ 등의 흉언을 담은 쪽지를 돌린 게 문제였다. 정조는 조정 신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하재 한 사람만 처형하고 증거물인 쪽지는 불에 태우도록 했다. 쪽지가 공개될 경우 대규모 당쟁과 살상극이 재연될 게 분명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정조는 결단한다. 판중추부사 채제공이 나섰다. “전랑에 대한 옛 제도를 다시 설치한 뒤에는 단지 다투는 단서가 나날이 심해지고 사의(私意)가 날로 자라는 것만 볼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조종조에 누차 설치하였다가 누차 혁파한 것이 폐단의 근원을 환하게 살핀 데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서유린, 정창순, 심이지 등이 혁파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정조가 말했다.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까지 혁파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신중치 못하다는 이론에 어찌 구애되겠는가. 이조의 낭관에 대한 규정을 혁파하도록 하라.”(정조 13년 12월 8일) 언관의 타락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이용해 특정 정파의 총구 노릇을 하고, 나아가 스스로 권력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왕에게 전권을 내맡기는 환국정치를 초래했고, 결국 언권 자체가 혁파당하기에 이르렀다. 언관의 권력화가 자초한 것이다. 2020년 4·15총선 결과에 대해 대한민국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가 하품할 소리다. 훈구세력은 여전히 강력한 언론(사간원, 족벌 매체)을 운용하고, 감찰과 탄핵기관(사헌부, 수사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과 유착해 있으며, 주류 학계(홍문관, 대학교수)의 지원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최고권력인 재계와 한 몸이다. 공론은 훈구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총선은 시민이 더이상 주류 언론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거대한 감염병 재난 속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이들은 기상천외한 왜곡과 거짓을 유포했지만, 시민은 외면했다. 호주의 싱크탱크인 로위 국제정책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디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는 최근 이런 글을 올렸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이 통제하는 선전(언론)의 노예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언론의 위기에 처해 있다. … 가장 큰 언론사들은 언론의 자세를 망각한 게으름, 권위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부패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족벌언론을 북한의 선전 매체와 나란히 세운 것이 이채롭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양치질 습관을 바꾸다 -‘라이온 치마’/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양치질 습관을 바꾸다 -‘라이온 치마’/손성진 논설고문

    칫솔과 치약이 없던 근대 이전에는 소금을 손가락에 묻혀 양치질을 했다. 수십 년 전 시골에서도 노인들이 소금으로 이를 닦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소금도 귀한 물건이어서 서민들은 그저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치아의 이물질을 제거했다고 한다. 또 버드나무 가지 끝을 수십 개로 쪼개어 지금의 칫솔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는 것이 양치질인데 양치의 어원이 버드나무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즉 버드나무 가지를 한자어로 양지(楊枝)라고 하는데 양지질이 양치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추스틱이라는 이쑤시개로 치아를 관리했다. 최초의 칫솔은 15세기에 중국에서 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수퇘지의 억센 털을 대나무나 뼛조각에 박아 칫솔을 만들어 썼고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1780년 무렵의 영국에서 개량된 칫솔이 나왔는데 나폴레옹이 사용했다는 말털로 만든 칫솔의 실물이 지금까지 전한다. 1938년 미국 듀퐁사가 나일론 칫솔을 내놓아 칫솔은 획기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 치약 대용으로 소금 외에 고대로부터 달걀껍질이나 조개껍데기 등을 가루로 내 썼다고 한다. 1860년 무렵 영국에서 가루도 된 치분(齒粉)이 발명됐고 현재와 같은 형태의 치약은 1896년 미국의 콜게이트가 개발했다. 우리나라에 치약이 들어온 것은 1889년이며 가루 형태였다. 그 후 1891년 일본에서 창업한 생활화학 기업 ‘라이온’은 ‘사자표 라이온 치마’라는 치약을 1896년 개발, 국내에도 들여와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치마’(齒磨)는 이를 갈아 낸다는 뜻의 분말치약이다. 라이온 치마는 일제강점기에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광고의 하나였다. 일본 기업 라이온으로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약을 써 본 적이 없는 한국은 큰 시장이었다. 그런데 라이온 치마는 광복 후에도 계속 팔렸다. 아마도 일본은 물러갔지만 수요가 있었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대표인 라이온 치마 국내 회사가 일본에서 물건을 들여와 판매했을 것이다. 위 광고는 1950년 3월에 나온 라이온 치마 광고로 대표가 전석규로 돼 있는데 전씨는 일제강점기에 라이온 치마 국내 지점의 대표로 있던 사람이다. “너도나도 조석으로 이를 닦는데 반드시 라이온 치마분을 애용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LG그룹의 모태 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가 칫솔은 1952년, 튜브형 치약은 1954년에 생산하기 시작했다. 짜서 쓰는 젤 형태의 치약을 드디어 우리 손으로 만들어 냈지만, 분말 치약도 바로 없어지지 않아 라이온 치마는 1950년대 중반까지도 팔렸다고 한다. sonsj@seoul.co.kr
  • 데미언허스트 걸작 ‘잘라팔기’…가격 7배 예상

    데미언허스트 걸작 ‘잘라팔기’…가격 7배 예상

    MSCHF 3만 달러짜리 허스트 판화 잘라 팔아동그라미 하나당 480달러에 88개 모두 매진돼 나머지 하얀 종이 경매서 17만 2000달러 호가소수 부자의 전유물인 ‘미술 작품 놀이화’가 목적 바이러스 감염된 삼성노트북 약 16억원에 팔기도미국의 한 예술단체가 3만 달러(약 3657만원) 상당의 데미언 허스트 판화를 조각조각 잘라 팔아 화제다. 이런 작업을 통해 가격은 7배로 뛸 것으로 보인다. 미술작품의 원래 가치를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소수 부자들의 돈놀이로 변질된 미술매매시장을 비꼬는 의미가 있다는 지지층이 늘고 있다. CNN은 1일(현지시간) 뉴욕의 MSCHF그룹이 허스트의 점박이 판화(L-Isoleucine T-Butyl Ester)를 구입한 뒤 88개의 점들을 손으로 잘라 각각 480달러에 판매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작품은 가지각색의 원을 격자로 늘어놓은 허스트의 유명한 판화시리즈 중 하나다.이미 벌어들인 수익만 약 1만 2000 달러(약 1463만원)인데다 이것들을 잘라낸 뒤 격자로 구멍이 난 나머지 하얀 종이의 경매가가 약 17만 2000 달러(약 2억 967만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지금 상황으로도 원래 가격에서 6.1배의 수익을 낸 것이지만 경매는 다음주초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7배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MSCHF는 지난 1년간 2주에 한 번씩 소위 ‘불손한 예술 프로젝트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컴퓨터 바이러스 몇 개가 설치된 2008년산 삼성전자 노트북을 130만 달러(약 15억 8000만원)에 팔기도 했다.대니얼 그린버그 MSCHF 전략본부장은 CNN에 “미술품 가치가 2배가 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지만, 잘라 팔아 며칠 안에 가능케 할 것”이라며 “사람들이 예술을 즐기도록 하면서 미술계 전체를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MSCHF의 웹사이트에는 미술에 대해 “부자들이 부를 저장하는 맞춤 제작 차량”이라고 기술돼 있다. 또 세금 회피를 위한 부자들의 미술거래에 대해 “다시 한 번 밝혀질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우주를 보다] 6000년 만에 찾아와 산산조각난 아틀라스 혜성 포착

    [우주를 보다] 6000년 만에 찾아와 산산조각난 아틀라스 혜성 포착

    약 6000년 만에 지구를 찾아온 혜성이 최소 30조각 이상으로 부서졌다는 사실이 관측결과 드러났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등 공동연구팀은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혜성 ‘C/2019 Y4’가 적어도 30개 이상의 파편으로 분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8일 처음 존재가 확인된 C/2019 Y4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원하는 하와이대학 천문연구소의 ATLAS(Asteroid Terrestrial-impact Last Alert System·소행성 충돌 경보시스템)에 처음 포착돼 ‘아틀라스’로 불린다. 당초 아틀라스는 5월이면 밤하늘의 초승달 만큼이나 밝게 빛나 맨눈으로도 관측이 가능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아왔다. 그러나 3월 중순 경까지 빠르게 밝아지던 아틀라스 혜성은 이후 갑자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이에대해 한국천문연구원은 "혜성의 중심 밝기가 타원형으로 일그러지고 있으며 당초 예상 궤도를 약간 벗어나 있다"면서 "현재 아틀라스 혜성은 태양으로 다가가면서 쪼개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해석했다. 지난 20일과 23일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아틀라스 사진에는 그 해석에 대한 증거가 담겼다. 사진 상으로도 쉽게 혜성이 쪼개진 모습이 확인된 것.   UCLA 데이비드 제윗 교수는 "부서진 혜성 조각들이 태양빛을 받아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전등처럼 꺼졌다 켜졌다하는 것인지 아예 다른 조각이 생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윗 교수는 "이같은 혜성이 부서지는 사건을 관측하는 것은 10년에 한 두번 정도 발생한 만큼 매우 희귀한 사례"라면서 "대부분의 혜성은 너무 희미해서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아틀라스는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했을 때를 기준으로 지구로부터 약 1억4600만㎞ 떨어져 있다. 다행히 완전히 부서지지 않고 혜성 일부가 살아남으면 다음달 23일 경 1억 1600만㎞ 거리까지 지구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때는 두려움과 경이의 대상이었던 혜성은 타원 혹은 포물선 궤도로 정기적으로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천체를 말한다. 소행성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행성이 바위(돌) 등으로 구성된 것과는 달리 혜성은 먼지와 암석, 물 성분의 얼음 및 얼어붙은 가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때문에 혜성이 태양에 가깝게 접근하면 내부 성분이 녹으면서 녹색빛 등의 꼬리를 남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여기는 남미] 코로나19 무서워…콜롬비아 교도소 집단 탈옥 시도

    [여기는 남미] 코로나19 무서워…콜롬비아 교도소 집단 탈옥 시도

    코로나19 지옥으로 변한 교도소를 빠져나가려던 재소자들의 계획이 무산됐다. 콜롬비아 비야비센시오교도소에서 탈출계획을 세우고 터널을 판 재소자 7명이 적발됐다고 현지 언론이 3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교도소 당국은 쇳조각을 잘라 만든 사제 마체테와 칼 43자루, 핸드폰 4대 등을 압수했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탈출을 시도한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후 터널을 통해 빠져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비야비센시오교도소는 수감 환경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다. 교도소 수용인원은 최대 800명이지만 현재 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는 1800명에 이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교도소 내에서 무섭게 퍼지고 있는 코로나19다. 비야비센시오교도소에선 지난달 1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집단감염이 현실화하면서 3주 만에 이 교도소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319명으로 확 늘어났다. 사망자도 이미 4명에 이른다. 현지 언론은 "비쟈비센시오교도소가 위치해 있는 메타 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를 모두 합쳐도 300명이 되지 않는다"며 "확진자가 유난히 많은 건 수감환경 때문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수용정원을 훨씬 초과한 상태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교도소가 '코로나19 지옥'으로 변하자 재소자들은 지난 27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익명을 원한 한 재소자는 "급식까지 부족할 정도로 정원초과 문제가 심각하다"며 "코로나19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날도 많아 손을 씻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가 있다"며 "재소자나 교도관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야비센시오교도소는 교도소 집단감염의 원천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현지 언론은 "지난 4월 초 비야비센시오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 일부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다"며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던 다른 교도소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해 비야비센시오교도소 바이러스의 원천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탈출을 기도한 재소자들도 코로나19를 피해 탈출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탈출을 기도한 이유를 묻자 7명 중 몇몇은 코로나19에 걸릴까 두려워 탈출을 하려 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사진=콜롬비아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中 10대 유학생이 밝힌 영국의 ‘코로나19 방역 실태’에 이목 쏠려

    中 10대 유학생이 밝힌 영국의 ‘코로나19 방역 실태’에 이목 쏠려

    10대 중국인 유학생이 영국의 코로나19 방역 문제를 낱낱이 밝혀 이목이 쏠렸다. 지난 17일 영국 런던을 출발, 약 10시간 만에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유 샤오즈(15) 군의 귀국 전 생활을 중국 현지언론들이 대대적으로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 샤오즈 군은 지난해 4월부터 약 1년 동안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한 공립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10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샤오즈 군은 올 초 코로나19가 중국에 만연했을 당시 중국에 있는 모친 유 모 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제의 전염병 소식을 처음 접했다. 샤오즈 군은 “어머니와의 전화로 당시 중국에서의 코로나19 전염 사태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처음 느꼈다”면서 “그렇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누구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았고 나 역시 전화를 끊고 난 뒤 해당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더욱이 이 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1월 2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대한 강제 봉쇄령이 내려진 직후에도 영국 내에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의견이 만연했다. 영국에서는 지난 3월 5일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자 정부가 국공립 교육기관에 대한 1차 휴교령을 권고한 바 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휴교 조치는 각 학교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권고’ 사항에 불과했다. 샤오즈 군은 “당시에도 학교 측 선생님들은 코로나19에 전염될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학생들이 감염 가능성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학교 측 관리자들은 젊은 학생들은 대체로 면역력이 좋아서 감염되더라도 하룻밤 자고 나면 낫는다고 했다”고 떠올렸다. 특히 샤오즈 군이 재학 중인 학교 측의 방역 조치는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손 세정제를 각 가정에 소량 배부하는 것이 유일했다. 샤오즈 군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가 영국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황에서도 학교 내부에서는 일상 중 손을 자주 씻는 등 위생을 강화하면 전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여기는 양상이었다”면서 “특히 대부분의 학생과 교사는 생각보다 문제가 위험하지 않고 감염자에 대해 격리 조치하거나 휴교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당시까지 영국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샤오즈 군 역시 당시까지만 해도 귀국 시 학업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 탓에 영국에 체류하겠다는 결정을 중국의 가족들에게 통보했었다. 지난 3월 18일 개빈 윌리엄슨 영국 교육부 장관은 이틀 뒤인 20일부터 영국 내 모든 국공립 교육기관에 대한 휴교 방침을 밝혔다. 더욱이 이번 달 13일 샤오즈 군은 재학 중인 학교 측으로부터 “기회가 있을 때 서둘러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통보문을 이메일로 전송받았다. 해당 안내문에는 “만약 영국 내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외국인 유학생은 막대한 치료비용을 감당, 완치 시까지 귀국할 수 없는 등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게재돼 있다. 또 이달 16일 영국 당국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안내문을 공고, 다수의 인파가 밀집한 장소에서의 사교 모임을 금지하고 불필요한 외출과 술집, 식당 등의 이용을 가급적 자제하라는 내용을 공포했다. 아울러 발열과 기침 등의 증세가 있는 이들은 반드시 14일 동안 격리토록 조치했다. 이 시기 영국 다수의 도시에서는 휴지와 마스크 등에 대한 사재기 현상이 목격됐다고 샤오즈 군은 회상했다. 그는 “영국 정부의 ‘주민 이동제한령’에 대한 발표가 나온 직후 사람들이 갑자기 마트로 몰려가 마스크와 화장지, 그리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료품을 사재기하기 시작했다”면서 “마스크를 구매할 때 사람들은 한두 개를 낱개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몇십 개씩 사재기했다. 그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구매하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품귀 현상이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샤오즈 군의 가족들은 그의 조기 귀국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샤오즈 군의 모친 유 씨는 “아들이 평소 거주했던 영국의 홈스테이 가족들은 아버지가 소방관이고 어머니는 회사원으로 그 댁의 두 자녀가 함께 살고 있었다”면서 “이들 가족은 모두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친절했지만, 당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단계에 이른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거나 외출을 감행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유 씨는 이어 “일단 이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라도 한 사람이 외부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한 집에 사는 이들은 모두 쉽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면서 “비록 아들이 아무리 방역에 힘을 쓴다고 해도 홈스테이 가족 구성원들의 부주의에 의해 감염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무렵 유 씨는 영국 런던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을 아들 대신 무려 4만 위안(약 680만 원)에 구매했다. 아들의 거주지였던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이동, 런던에서 다시 베이징행 비행기를 통해 귀국하는 경로였다. 당시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의 비행시간은 단 45~60분에 불과했지만, 해당 편도 항공권의 가격은 1만 2900위안(약 221만 원)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유 씨는 “중국 국내 항공사의 코로나19 검역 검사가 엄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모두 국내 항공사 항공권을 구매하기를 원했다”면서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 항공사 항공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온라인 SNS 대화방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등 매우 급한 상황이 며칠째 이어지곤 했었다”고 설명했다.이런 상황 속에서 샤오즈 군은 이달 17일 귀국길에 올랐다. 샤오즈 군은 “일단 귀국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면서 “당시 마스크와 소독약 등은 이미 품귀 현상이 심각했기에 결국 공항에서 임시로 7만 원짜리 고글을 구매해서 쓰고 이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약 10시간 동안의 비행 중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면서 “중간에 한 차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초콜릿 몇 조각을 먹은 것이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샤오즈 군은 약 10시간의 이동 끝에 이달 18일 베이징 공항 T3 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모친 유 씨는 “아들의 체중이 귀국 당일과 비교해 약 2.5㎏이나 줄었다”면서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들의 몸무게는 65㎏대였는데 집에 도착하니 62㎏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씨는 “많은 고난 상황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과정에 자녀들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을 마주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귀국 길의 고난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한편, 중국 유력언론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8일 기준 영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6만1145명, 누적 사망자 수는 2만1678명에 달했다. 특히 28일 당일 추가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3996건, 586명으로 확인됐다. 일평균 확진자 수가 400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최근 20일 만에 처음이라고 해당 언론은 집계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생명을 새기는 삶, 흙과 살어리랏다

    생명을 새기는 삶, 흙과 살어리랏다

    박달재와 다랫재 사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 잔디가 깔려 있는 너른 마당이 있는 걸 빼곤 특별할 것 없는 집이 한 채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면 한국화인 듯 추상화인 듯 싶은 그림을 그려 놓은 한지가 빽빽하게 걸려 있고 벽에는 판화작품으로 만든 예쁘장한 병풍을 펼쳐 놓은 작업실이 나온다. 1987년 가족과 함께 충북 제천시 백운면으로 둥지를 옮긴 이철수(66) 화백은 수십개는 돼 보이는 붓과 조각칼, 목재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철학책과 종교책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작업실에서 수십년째 밑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새기며 생명과 평화를 설파하는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농부로서 판화가로서, 어떨 때는 명상가이자 수필가로서 삶을 살고 있는 이 화백이 말하는 건강한 삶의 조건을 들어 봤다.-농사를 지으며 판화를 새기는 삶은 어떤 삶일까 궁금했다. 뭔가 막걸리 한 잔부터 떠오르는 안빈낙도 느낌일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론 죽비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면벽수련일 것도 같다. “사람들이 나를 ‘농부’보다는 ‘화백’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나는 전업화가처럼 살지는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진 천상 논과 밭에서 산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그제야 작품활동에 몰두한다. 보통 겨우내 밑그림 작업을 해 두고 농번기에는 비가 오거나 해서 일을 쉴 때 틈틈이 판화를 새겨서 작품을 만든다. 개인전을 하고 그림엽서를 보내는 것 말고는 외부활동은 별달리 하지 않는다. 가장 관심을 갖고 사는 게 평화와 생명이다 보니 환경운동연합과 ‘호아빈의 리본’이라는 평화단체 공동대표를 맡아서 도와주는 정도다.” -간결하고 단순한 그림 속에 소소한 일상을 길어 올린 작품이 많다. 선(禪)이라든가 마음을 울리는 철학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작년 가을걷이가 끝난 뒤 줄곧 ‘무문관’(無門關)’이라는 불교 화두모음집에서 모티브를 딴 판화집 작업을 하고 있다. 겨울 내내 밑그림 작업을 했다. 1년은 걸릴 것 같다. 내년쯤 책으로 내고 전시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불교 경전인 ‘대종경’을 판화로 표현한 전시회를 하느라 3년간 기운을 다 써 버리느라 예정보다 늦어졌다. 원래 판화 100점을 기획했는데 200점을 했다. ‘대종경’과 ‘무문관’을 마치면 ‘성경’을 내 나름대로 해석한 연작작품집에 착수할 계획이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성경까지 마치고 나면 내가 세상과 약속했던 목표는 다 이루는 셈이다. 그럼 마음의 짐을 덜고 좀더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싶다.” -1980~90년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관련 대규모 집회가 열릴 때마다 ‘이철수 화풍’으로 표현한 걸개그림을 볼 수 있었다. 특히 1988년 울산 골리앗 투쟁 당시 크레인에 걸렸던 ‘거리에서’는 지금도 그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작품을 보면 날이 서 있다고 할까 분노가 느껴졌다. 지금과는 상당히 결이 달라서 놀라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국어나 고전문학만 성적이 좋았고 대학도 가지 않았다. 글을 쓸까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다 군대에 갔다. 문학은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작품이 많은데 미술은 그런 게 적었다. 제대할 무렵 그럼 나라도 해 보자 결심했다. 80년대는 저항이 당연한 시대였다. 판화를 통한 변혁운동을 했다. 그 시대에 맞는 작업을 했던 것 같다. 80년대 후반부턴 고민이 많아졌다. 강하고 거칠고 날카로운 작품에 사람들이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점점 더 눈에 보였다. 감성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진보적인 언어가 꼭 저항적이고 완강하고 그런 것만이어야 할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갖게 됐다. 고민 끝에 아주 분명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게 됐다. 내 스스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독일 순회전이었다. 3주 동안 독일을 둘러보면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귀국하고 1년 넘게 작품활동을 전혀 못 했을 정도였다.”-독일에서 순회전을 할 때 마침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들었다. “베를린에서 전시회를 마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독일 기자들한테서 소감을 묻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 짧은 영어로 독일 통일에 대한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케테 콜비츠라고 유명한 사회참여 예술가가 있는데 그의 작품조차 독일에서 이미 잊혀지고 있는 걸 보았다. 한 시대에 유효했던 예술적 가치가 다음 시대에도 고스란히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독일 전시회를 주선한 한 준비위원이 내 그림에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을 때 받은 충격도 엄청났다. 그 자리에선 부정했지만 귀국한 뒤 오랫동안 그 지적을 고민했다. 1년가량 작업도 못 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그 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놓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마음 공부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고 작품에도 반영이 됐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그르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작품 역시 투쟁보다는 생명과 평화, 관조와 성찰로 옮아가게 됐다. 세상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건 맞다. 하지만 미움이 앞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농사를 열심히 짓고 논밭이 공부 도량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됐다. 그러다가 정말 가끔 한 번씩 화가로서, 내가 세상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마당 같은 마음으로 판화를 새기고 전시를 한다.” -작품마다 깊은 성찰을 담은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떤 이들은 ‘그림으로 시를 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산문집도 여러 권 냈는데. “노동 속에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생각의 조각조각을 가지고 그림을 만든다. 일종의 고백이기도 하고 성찰이기도 하고 때로는 청유이기도 한 그림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일은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에 메모해 둔 게 바탕이 된다. 예전에는 메모를 많이 했다. 요즘은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예전만큼 메모를 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에서 교육문제로 힘들어하지 않는 부모가 없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자녀들을 사교육으로 몰고 일부는 그걸 거부하며 대안학교로 보내기도 한다. 귀농하는 삶을 살면서도 정작 자녀 둘을 대안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를 보낸 게 얼핏 독특해 보이기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아이들이 먼저 대안학교 얘기를 꺼냈는데 일반 학교에 가라, 대신 하고 싶은 걸 하고 싫은 건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때로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라 하더라도 동시대의 또래들이 경험하는 것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 사실 대안학교 교장 자리를 제안받은 적도 있는데 내가 거절했다. 대안학교가 좋아지는 건 사실 우리 사회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규학교가 좋아지도록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이 제법 있다. 귀농이란 말이 생기기도 전에 귀농을 했던 귀농선배로서 조언을 해 준다면. “1987년 이곳에 정착했다. 당시 ‘샘이 깊은 물’에 ‘탈서울의 변’이라는 기고문도 썼다. 서울을 저주하고 미워하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에서 도망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자연이 나에게 많은 걸 베풀어 주고,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와 보니 그게 아니더라. 자연이라는 게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에겐 말도 건네지 않고 배려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폭력은 지향해야 할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시골 생활을 통해 ‘언어’를 바꾼 게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진 핵심이었다.” -생명과 평화, 농사와 예술이 조화를 이룬 삶은 많은 이들이 꿈꾸는 ‘건강한 삶’에 꽤 가까이 있지 않나 싶다. ‘건강한 삶’을 위해 조언한다면.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쉼 없이 건강한 삶이란 주제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애정이 결핍되는 이런 시대에 생명을 좀더 생각해 보는 삶을 권해 주고 싶다. 작게라도 텃밭도 좋고, 여건이 안 되면 베란다 농사나 화분 농사도 좋고, 하여간 흙과 만나는 삶을 권해 주고 싶다. 흙을 만지며 그 속에서 생명을 키우는 자리를 품고 살면 고맙겠다. 별 볼 일 없는 푸성귀 하나도 다 한 생명이다. 돈 주고 사서 홀랑 입에 털어 넣는 게 아니라 사람과 푸성귀가 생명과 생명으로 만나는 관계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천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허정화 개인전 ‘판타지가 시작하는 곳’ 5월1일 경남 진주 HuB에서 열려

    허정화 개인전 ‘판타지가 시작하는 곳’ 5월1일 경남 진주 HuB에서 열려

    경남 진주 갤러리카페 에이치유비(HuB)에서 5월1일부터 7월31일까지 개최독일유학파인 허정화 작가의 개인전 ‘환타지가 시작하는 곳’이 경남 진주에 있는 갤러리카페 에이치유비(HuB)에서 5월1일부터 7월31일까지 열린다. 6년 전부터 고향인 진주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 작가는 낡은 근대주의의 ‘구각’(舊殼)을 깨고자 모색해 왔으며 이번 전시는 허 작가의 지난 10여년을 결산하는 작품전이다. 미술평론가 김복영 전 홍익대 교수는 “허 작가가 독일유학과 박사시절부터 시작한 ‘유토피아의 추억’은 그 간 두 번의 큰 전시를 개최한 바 있어 이번 개인전은 무엇보다 명실상부한 10여년을 결산하는 작품전이 될 것”이라면서 “허 작가가 생각하는 이미지들이 우리 시대의 ‘하이퍼리얼’로 지칭되는 전 시대와는 차별적인 실재를 노크하는 이른바 랑게류의 ‘가상론’이 시사하는 의식적 자기환영을 오늘의 21세기적 시각으로 재시도하고자 하는 바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허 작가가 추구해 온 그간의 회화적 모색은 ‘판타지 픽션’의 방법적 모색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주요 소재는 달항아리이며 이것 말고도 도자기에서 토기에 이르는 많은 자기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소나무와 조각보, 수보와 그림보, LED를 곁들인다. 겸재의 금강전도에 나오는 명산 또한 주요 품목이다. 허 작가의 달항아리는 항아리를 보는 게 아니라 달의 판타스마(Phantasma)를 먼저 보게 된다. 항아리를 그린게 분명한데 달의 판타스마가 먼저보이는 것이다. 달이 아니라 달 같은 밝음의 덩어리를 보고 환영으로서의 달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전시장까지 찾아가기 어려운 관람객은 서울신문 미술전문 포털사이트 ‘서울갤러리’(seoulgallery.co.kr)에서 전시 내용을 확인하거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명 중 1명 무증상… ‘재유행 뇌관’ 우려

    4명 중 1명 무증상… ‘재유행 뇌관’ 우려

    코로나19가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지 28일로 100일이 됐지만 이 바이러스에 대해 일반인이 아는 것은 백과사전의 서문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사스나 메르스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무증상 전파’와 ‘완치 후 재양성’ 등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복병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증상 전파는 코로나19 재유행 뇌관이 될 수 있고, 완치 후 재양성 사례와 감염된 환자에게 생긴 항체 방어력은 백신 개발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방역당국에 따르면 집단감염 환자 중 확진 당시 무증상이었던 비율은 약 30%다. 앞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환자 4명 중 1명이 무증상 감염자일 수 있다고 밝혔다. 감염력은 있으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일상생활을 하는 환자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의미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27일 브리핑에서 “서울 구로구 콜센터의 경우 진단 당시 무증상이었던 8명 중 4명은 이후 증상이 나타났고, 나머지 4명은 격리해제될 때까지 무증상이었다”고 밝혔다. 무증상 시기에 어느 정도 전염력이 있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완치 후 재양성 사례도 늘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재양성 환자는 268명으로 일주일 전(181명)보다 87명 늘었다. 방역당국은 재양성 환자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지 조사 중이다. 현재까지 재양성자에 대해 바이러스 분리 배양검사를 39건 시행한 결과 배양검사가 완료된 6건은 모두 음성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표본 수가 워낙 적고, 나머지 건은 검사가 완료되지 않아 ‘재양성자는 전파력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재양성 사례는 해외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에서는 확진환자의 5~25%가 재양성으로 나타났다. 방역당국은 재양성 원인을 바이러스의 특성과 면역력의 영향 때문으로 추정한다. 면역력이 약해져 바이러스가 재활성화하거나 죽은 바이러스 조각이 발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면역력 때문이라면 20대 중 재양성자(64명·23.9%)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방역당국은 재양성 사례가 바이러스 변이와 관계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이겨 낼 수 있는 길은 결국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환자 1500여명의 검체를 모아 면역 연구와 백신 개발, 완치 후 재양성 발생 원인 규명 등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치료제의 경우 올해 말 출시를 목표로 에이즈와 말라리아 치료제 등 4건의 임상시험이 정부 주도로 진행된다. 이르면 연말 이내에 진료 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방역당국은 기대한다. 국립보건연구원이 주도하는 백신 개발 작업도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 후보물질 발굴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와의 시간 싸움이다. 기초 개발 단계부터 임상시험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내 감염이 소강상태를 보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감염이 확산하는 상황에서는 올가을 또는 겨울 등 언제든지 국내에서 2차, 3차 유행이 올 수 있다. 단기간 내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해 모든 사람이 이를 접종하는 것도 난망한 일이다. 한마디로 코로나19의 조기 종식은 어렵다는 얘기다. 정 본부장은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코로나19 유행이 “악화와 완화를 이어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1년 이상 심지어 수년 동안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마스크와 보낸 한철 -코로나19를 견뎌내며

    마스크와 보낸 한철 -코로나19를 견뎌내며

    현실 문제 앞에서 시는 공허한 울림일까요. 힘들고 외로울 때 시집을 열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위로가 되는 시의 본령을 알고 있는 겁니다.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시는 위로다’에서 그 본질을 전합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독자 여러분께 이 시대의 시인들이 재능 기부로 위로를 건넵니다.살다 살다 그깟 마스크를 사려고약국 앞에 줄을 설 줄이야그래도 고맙다 신통한 부적처럼우환을 막아 줘서 고맙고속이 다 내비치는 안면을 가려 줘서 고맙고세수를 안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더 고맙다 병자호란 임진왜란육이오 동란까지 겪고 또 겪고살다 살다 마스크 대란이 올 줄이야저들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벌레군단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 인류 침공에어벤저스 슈퍼 히어로들도 속수무책인데귓바퀴가 없으면 걸 데도 없는 저손바닥만 한 천 조각들이 지구를 구할 줄이야 모든 화는 입으로 들어온다기에쓸데없는 말 안 하고나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며마스크와 한철 보내고 나니까아무래도 내가 좀 커진 것 같다나라도 이전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 양양. 1976년 ‘겨울추상화’로 등단.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뿔을 적시며’ 등. 정지용문학상,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마스크와 보낸 한철 -코로나19를 견뎌내며

    마스크와 보낸 한철 -코로나19를 견뎌내며

    현실 문제 앞에서 시는 공허한 울림일까요. 힘들고 외로울 때 시집을 열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위로가 되는 시의 본령을 알고 있는 겁니다.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시는 위로다’에서 그 본질을 전합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독자 여러분께 이 시대의 시인들이 재능 기부로 위로를 건넵니다.살다 살다 그깟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설 줄이야 그래도 고맙다 신통한 부적처럼 우환을 막아 줘서 고맙고 속이 다 내비치는 안면을 가려 줘서 고맙고 세수를 안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더 고맙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육이오 동란까지 겪고 또 겪고 살다 살다 마스크 대란이 올 줄이야 저들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벌레군단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 인류 침공에 어벤저스 슈퍼 히어로들도 속수무책인데 귓바퀴가 없으면 걸 데도 없는 저 손바닥만 한 천 조각들이 지구를 구할 줄이야 모든 화는 입으로 들어온다기에 쓸데없는 말 안 하고 나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며 마스크와 한철 보내고 나니까 아무래도 내가 좀 커진 것 같다 나라도 이전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 양양. 1976년 ‘겨울추상화’로 등단.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뿔을 적시며’ 등. 정지용문학상,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코로나19 격리해제 후 재양성자 263명…“2차 전파는 없어”

    코로나19 격리해제 후 재양성자 263명…“2차 전파는 없어”

    정은경 본부장 “배양검사 6건 모두 ‘음성’”“완치자 전원 재검사 필요성은 낮아”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후 다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26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26일 0시 기준 코로나19 재양성자는 총 263명으로, 전날(250명)보다 13명 늘었다. 방역당국은 재양성이 왜 발생하는지, 이들이 추가 전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은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바이러스 배양검사를 진행하고, 재양성자의 접촉자에 대한 추적관리를 통한 2차 감염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양성자의 감염력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접촉자 추적관리에 2주가 걸리는 만큼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재양성자로 인한 ‘2차 전파’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 본부장은 “현재까지 완료된 배양검사 총 6건은 모두 ‘음성’이었다”며 “59건은 배양 검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바이러스 분리를 시도했지만 바이러스 자체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이러스가 분리·배양되지 않을 만큼 미량만 존재하거나, 진단검사에서 이미 사멸해 감염력을 잃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조각이 검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재양성 시기의 노출에 의해 신규로 확진된 2차 전파 사례는 아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미 완치해 격리 해제된 이들 전원을 대상으로 재검사를 진행할 계획을 묻는 말에 정 본부장은 “현재로서는 무증상 사례를 포함한 일제검사는 필요성이 낮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양성자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감염력의 위험도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전수검사나 격리해제 이후 관리 강화에 대한 지침으로 반영하고,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통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퇴원 3주 만에 코로나19 재양성…방역당국 “감염 가능성 낮다”

    퇴원 3주 만에 코로나19 재양성…방역당국 “감염 가능성 낮다”

    서울 용산구는 보광동에 사는 49세 여성이 코로나19 완치 3주 만에 재양성 판정을 받고 재입원했다고 25일 밝혔다. 용산구에 따르면 이 환자는 3월 4일 관내 1번 환자(서울 102번, 전국 5666번)로 최초 확진돼 순천향서울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은 후 4월 4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으나, 24일 오전에 받은 검사의 결과가 25일 재양성으로 통보됐다. 이 환자는 22일에는 종일 자택에 머물렀으며 23일 저녁에는 외출해 집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음식을 포장해서 가져간 것 외에는 특별한 동선이 없었다. 용산구는 이 환자가 재양성으로 통보된 직후 가족 3명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를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25일 오전 10시 기준 서울 발생 확진자 누계 629명 중 재양성자가 최소 10명 확인됐다. 한편 방역당국은 이날 재양성 환자가 타인에 바이러스를 옮겨 감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이날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전체 재양성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이들에게서 검출된 바이러스가) 실제로 살아서 감염력을 가지는 바이러스 조각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지난 22일에도 재양성자에 대한 바이러스 분리 검사 결과 전파력이 거의 없거나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권 부본부장은 “현재 200건이 넘는 재양성 사례 중 39건에 대해 조사하고 바이러스 분리를 시도했으나 바이러스 자체가 분리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재양성자에게서 살아있거나 감염력을 나타낼 수 있는 바이러스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안녕? 자연] 세계서 가장 큰 빙산에 닥친 ‘종말’…면적 줄기 시작

    [안녕? 자연] 세계서 가장 큰 빙산에 닥친 ‘종말’…면적 줄기 시작

    세계에서 가장 큰 빙산인 남극의 A-68에 분열로 인한 면적 감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문가은 A-68의 ‘종말’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약 6000㎢ 크기의 A-68 빙산은 지난 2017년 7월 남극의 라르센C 빙붕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후 2년 반 동안 크기가 거의 줄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3일, 영국 스완지대학 연구진이 유럽우주국의 위성인 센티넬-1이 전송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현재 남극반도에서 북쪽으로 이동 중인 A-68에서 넓이 175㎢(약 5300만 평), 길이 150㎞ 크기의 빙산 조각이 떨어져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생성 당시 A-68의 면적은 약 6000㎢, 평균 두께는 약 190m, 무게 1조t에 달했으며, A-68로 명명된 이후 바다로 분리된 후부터는 바람과 해빙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지난 2월 연구진은 A-68이 남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돼 바다를 떠다니는 해빙(海氷)이 될 것으로 보이며, 해빙이 된 후에는 거친 해류와 높은 수온의 영향을 받으며 북쪽으로 떠내려가면서 점차 크기가 작아질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연구를 이끈 스완지 대학의 애드리언 러크먼 교수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얇고 연약한 무언가가 공해상에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 계속 놀라웠다”면서 “이제 마지막 헤어짐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A-68의 크기가 작아지더라도 한동안은 남아있는 파편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생긴 분열로 빙산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가는 분열이 생겼고, 이것은 결국 이 거대한 빙산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A-68은 지난 몇 개월 동안 해저에 발을 잡힌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지난 2월 빙그르르 돌면서 북쪽으로 표류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속도가 붙었고, 이러한 이동은 올 여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전문가들은 빙산의 이동이 빨라질수록 더 많은 분열이 생길 것이며, 러크먼 교수의 표현대로 A-68이 사라질 날도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A-68처럼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빙산이나 크고 작은 빙하가 바다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자연 방어막’인 빙붕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 역시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빙붕의 붕괴는 급격한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A-68이 ‘탄생’한 라르센C 빙붕의 붕괴가 계속됨에 따라 전 세계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주말 콕! 이 전시]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 토비아스 레베르거 개인전

    [주말 콕! 이 전시]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 토비아스 레베르거 개인전

    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 개인전: 5월 18일까지 서울 자하문로 리안갤러리. 무료 미술작가라면 점 하나를 찍거나 선 하나를 긋는 데도 다 계획이 있고, 거기에서 벗어난 실수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 작가는 다르다. 실수와 우연, 실패를 오히려 자신의 창작 본질로 삼는다. 독일 추상작가 데이비드 오스트로스키(39)의 작품들은 얼핏 그리다 만 미완성작, 혹은 낙서처럼 보인다. 락카 스프레이나 연필로 단숨에 그린 선들은 작품 안에 작가의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된 방식이다. “회화 공간이 작가의 자기표현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게 작가의 지론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아니라 오직 작품을 대하는 관객이다. 관객 중심주의는 전시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관객의 시선보다 위쪽에 그림을 거는데, 오스트로스키는 감상자와 작품이 대등한 위치에서 충분히 교감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게 배치했다. 3m가 넘는 두 점의 대형회화는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 작품처럼 매달았다. 그 아래 뉴질랜드산 양모로 만든 고가의 카펫을 펼쳐두고, 관객이 카펫을 일부러 밟도록 유도한 동선도 재밌다. 이번 전시는 오스트로스키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전시를 보고난 뒤 더 궁금해지는 작가다.토비아스 레베르거 개인전: 5월 13일까지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 무료 길을 잃은 느낌이다. 분명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작품은 보이지 않고, 눈앞엔 천장까지 닿은 벽과 문이 있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전시가 펼져지는 걸까. 틀렸다. 문을 열자 또다른 벽과 문이 가로막는다. 다섯 개의 벽과 문으로 이뤄진 이 작품의 제목은 ‘다른 무언가가 가능하다’(2020). 벽을 장식한 이미지는 부산, 몰디브 등 세계 다섯 도시에서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활용한 것이다. 일부러 픽셀을 짓뭉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어 현실과 실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감성을 강조했다.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가인 토비아스 레베르거(54)는 국내에서도 부산현대미술관 등 여러 차례 소개돼 낯설지 않다. 화려한 패턴과 색상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양한 매체와 스케일의 작업 방식을 통해 예술의 장르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찾아낸 이미지를 토대로 추상적인 오브제를 만들고, 여기에 담배를 놓을 수 있는 홈을 만들어 ‘재떨이’로 이름붙인 작품과 레베르거 특유의 네온과 세라믹 조각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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