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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님 따라 강남 간 화랑… 가로수길에 예술이 피어났다

    사모님 따라 강남 간 화랑… 가로수길에 예술이 피어났다

    서울미래유산 투어로 가는 길.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핸드폰 화면에 고개를 박고 있지만 보고 있는 것은 제각각이다. 지하철 한 칸이라는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은 핸드폰 화면을 통해 가까이는 집에서부터 학교, 일터, 부산, 먼 이국으로 가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만나는 투어를 앞두고 있어서일까? 공간에 가득 이어진 가상의 선들이 보이는 듯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6회 ‘백남준 만나기’는 비 내리는 한남대교를 바라보며 시작됐다. 예술로 소통을 시도했던 백남준의 투어를 소통의 관문인 한남대교에서 시작한 전혜경 해설사의 선택이 탁월했다.●서울미래유산 지정된 ‘제3한강교’ 한남대교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서울 강남 시대를 여는 출발점인 교량이고,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돼 서울과 전국이 소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 사이를 잇는 한강에서는 네 번째로 건설된 교량이다. 개통 당시 광진교를 제외한 인도교 중에서 세 번째로 지어졌기 때문에 제3한강교로 불려서 1979년 가수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했다. 1985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하면서 한남대교로 이름이 변경됐다. 한남대교는 한양과 삼남(충청·전라·경상) 지방을 연결하는 선상에 위치한 교통 요충지로 한양의 ‘한’, 삼남의 ‘남’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붙여진 명칭이다. 경부고속도로의 종점은 양재IC이지만 한남대교 남단이 경부간선도로의 종점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경부고속도로 입구라고 부른다. 투어단 일행은 발걸음을 옮겨 길 입구에 노란 은행잎 문양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가로수길로 들어섰다. 1980년대 중반 자발적으로 길가에 심은 은행나무 때문에 가로수길이란 명칭을 얻게 됐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중요한 특색은 갤러리와 패션 관련 업종의 입점을 들 수 있다. 갤러리는 신사동 가로수길 형성 과정에서 문화적 이미지 활성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 미술품을 향유하던 부유층이 강남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자 인사동 지역의 화랑들도 강남으로 이전했다. 1997년 17곳이던 갤러리는 신사동 가로수길이 문화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미술품 수요가 사라지면서 강남의 미술품 수요가 위축됐고 화랑들은 다시 강북으로 회귀하게 된다.●파리 패션전문기관 에스모드 분교 개교 패션 관련 업종으로 프랑스 파리의 패션 전문교육기관인 에스모드(ESMOD)가 1989년 신사동에 서울분교를 개교했고, 1991년에는 서울모드 패션전문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로 인해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과 해외 유학을 다녀온 디자이너들이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패션 거리’, ‘디자이너 거리’로 불리게 됐다. 2011년에는 패션 관련 업종이 45.7%를 차지할 만큼 가로수길의 상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로수길처럼 자생적인 변화를 겪어 온 장소들은 대부분 일정한 변화의 패턴을 거친다. 먼저 특정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건을 찾아 모여든다. 두 번째 단계는 이들이 선호하는 예술적 분위기를 가진 카페, 다양한 외국 음식점 등이 생겨난다. 이용자들의 특색에 맞춰 형성된 독특한 분위기에 매혹된 다수의 일반인들이 유입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방문자의 증가가 지역 상권 확대로 이어지며 지대와 임대료를 끌어올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는 업소는 결국 떠나게 된다. 사람들이 가로수길로 모이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인데, 현재 가로수길에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들어서며 예전의 독특한 매력과 정체성을 지닌 분위기는 사라졌다. 압구정로에서 가로수길로 들어서 잠시 걷다 보면 오른편에 거대한 캔버스를 연상시키는 예화랑이 보인다. 예화랑은 1978년 개관해 백남준 관련 작품전을 기획했고, 강남의 첫 화랑으로서 신사미술제를 개최하는 등 강남 지역의 미술문화를 선도한 화랑으로 지난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예화랑 건물은 장운규 건축가가 설계했다. 이 건축물은 2006년 한국건축가협회상, 2006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제24회 서울시건축상 등을 받았다. 외벽을 하나의 공간으로 설계한 입체적인 건축물은 벽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하는 입체 조각물이다. 정면보다 골목을 돌아 측면에서 봐야 외벽 사이 공간으로 새로운 시야를 경험할 수 있다. 건물 자체가 예술이다.●화랑 ‘강남 시대’ 연 이숙영 관장 우리나라 화랑의 강남 시대를 연 어머니 이숙영 관장의 뒤를 이어 예화랑을 이끄는 2세대 김방은 관장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을 지향한다. 갤러리 공간 안에서의 전시기획뿐 아니라 도시의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외부 전시 기획, 기업과의 문화 마케팅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층에는 니콜라스 보데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계단 사이로 비추는 빛과 조도를 달리한 조명등에 보이는 작품들은 공간과 소통하는 듯 생생한 감동을 전달해 준다. 이날 참석자들은 2016년 백남준 타계 10주년을 기념해 예화랑에서 개최했던 특별전 ‘백남준 쇼’ 관련 영상을 3층 영상실에서 보면서 김 관장의 특별해설을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상황에서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소통’인데, 백남준은 50여년 전부터 ‘참여와 소통’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한국의 무속이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소통이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굿쟁이’로 규정하며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무당에 비유했다. 백남준의 여권 번호는 7번이었다. 그만큼 해외로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에 일찍부터 일본과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한다. 1958년에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인생과 예술세계에 일대 전환을 맞는다. 이후 1963년 독일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TV’로 비디오아트의 선구적 활동을 전개하고, 1964년 뉴욕에서 음악, 퍼포먼스, 비디오를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비디오아트에 관심이 많았던 백남준은 TV 기술 연구에 몰두해 영상제작 기계인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개발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기술과 예술을 합친 비빔밥이라고 칭한다.이러한 백남준의 경력은 그를 세계적 예술가로 평가하게 하는 데 손색이 없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하지만 백남준은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모두 흡수했고 자신의 뿌리는 한국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은 예술 창조에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굿하는 장면은 그가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고백한다. 한 예로 샴페인을 구두에 따라 마시기 같은 해프닝은 어린 시절 새참과 함께 나온 막걸리를 고무신에 받아 마시는 것을 봤던 기억에서 비롯된 의식이라고 한다.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은 ‘많음’의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수신(受信)의 절대 수’, 즉 커뮤니케이션을 뜻한다. 차별 없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고 들으면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결국 현대의 소통 부재인 조직의 혁신까지도 가능하게 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처럼 백남준은 일생 ‘참여와 소통’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예술로 승화시켰다. 백남준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과감하게 예술에 도입해 새로운 장르들을 열며 시간을 앞서간 개척자다. 이는 그가 예술뿐 아니라 기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예술과 기술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각 영역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한 점에서 그는 ‘현대예술의 르네상스 맨’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날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도산공원이었다. 도산공원에는 도산기념관과 도산 안창호 선생 내외 묘소, 동상이 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은 코로나19로 관람할 수 없었는데 입구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앉아 있는 포토존 벤치가 마련돼 있다. 16세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했다는 안창호 선생의 애국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백남준과 안창호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이들이다. 업적의 경중을 따지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여 준 열정에서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글 이소영 동화작가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7회 풍납동 전설 ●일시 : 9월 19일(토) 오전 10시 ●신청: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안녕? 자연] 무서운 속도로 녹는다…또 쪼개진 북극 그린란드 빙하

    [안녕? 자연] 무서운 속도로 녹는다…또 쪼개진 북극 그린란드 빙하

    그린란드 북동부에 위치한 빙하에서 또다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위성으로 포착됐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외신은 그린란드 북동부에 위치한 빙하 79N(Nioghalvfjerdsfjorden Glacier)를 분석한 결과 110㎢ 정도 크기의 얼음덩어리가 여러조각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보도했다. 위성으로 공개된 사진을 보면 79N의 한 귀퉁이의 얼음덩어리가 여러 조각으로 산산히 부서진 채 바다를 떠도는 것이 확인된다. 오래 전 부터 관련 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79N은 길이 80㎞, 폭 20㎞의 거대 빙하로 그간 서서히 녹고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연구 대상에 올라있었다.특히 지난 2월 독일 브레멘에 위치한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해양연구소(AWI)는 대서양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따뜻한 물이 곧바로 79N의 아랫부분으로 흘러 들어가고, 이로 인해 빙하가 녹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다시 빙하의 일부가 부서진 이유는 역시 지구 온난화 탓이다.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극지방 연구원 제니 터튼 박사는 "이 지역의 대기 온도가 1980년 이후 대략 3℃ 따뜻해졌다"면서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기록적인 여름 기온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지질학연구소(GEUS) 제이슨 박스 교수도 "지난 2010년 그린란드 북서쪽의 피터만 빙하가 손실된 이래 79N은 가장 큰 규모였다"면서 "앞으로도 기후가 계속 따뜻해진다면 이 지역이 빙하가 녹는 주요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그린란드의 빙하가 계속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을 상승시킬 수 있다. 지난해 12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는 속도는 1992년에 비해 7배나 빨라졌다. 그린란드의 빙하는 지구의 해수면을 7.3m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의 물을 가지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고무신의 원조 ‘경제화’를 아시나요/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고무신의 원조 ‘경제화’를 아시나요/손성진 논설고문

    ‘사랑 댓돌 위에는 고무신, 경제화가 네댓 켤레 놓여 있다.’ 1931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어사전은 경제화를 ‘예전에 신던 마른신의 하나. 앞 부리는 뾰족하며 울이 깊고, 앞에 솔기가 없이 한 조각의 헝겊이나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오른편 짝과 왼편 짝의 구별이 없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고무신은 후에 언급하겠지만 구두는 19세기 말에, 고무신은 1910년대 말에 등장했는데 경제화는 그 중간 형태의 신발로 20세기 초에 나왔다. 이미지 사진을 보면 앞부분은 국어사전의 설명과는 달리 뭉툭한 미투리를 닮았고 뒤꿈치 부분은 옆보다 조금 솟아 있다. 고무신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고무신의 원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는 오늘날의 남자 고무신과 여자 고무신의 중간쯤 되는 것 같다. 20세기에 접어들어 가죽 구두 보급이 속도를 냈지만, 당시 구두 한 켤레 값은 쌀 몇 가마와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 이런 현실을 알고 경제화를 처음 고안한 사람이 1905년 인천 경동에서 ‘삼성태’(三盛泰)라는 양화점을 경영하던 이성원이었다. 누구나 값싸고 좋은 신발을 신을 수 있게 하자는 게 이성원의 생각이었다. 경제화는 바닥은 질긴 가죽을, 옆과 앞쪽은 우단(羽緞)이나 천을 사용했다. 모양으로 볼 때 한복에 잘 어울리는 실용적인 신발이었는데 이성원은 세계 각국의 신발을 살펴본 끝에 중국 광둥 지방의 신발에서 경제화를 착안했다고 한다. 이성원은 ‘만능호’(萬能糊)라는 아교와 같은 접착제도 발명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이 접착제는 밑창에 못을 박아 만들던 군화에도 대신 이용됐다고 한다(매일신보 1927년 5월 8일자). 이성원은 ‘만력호’(萬力糊)라는 개량된 접착제를 발명해 도쿄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나아가 만력호로 만든 ‘만력저’(萬力底)라는 튼튼한 신발 바닥도 개발했다. 경제화를 발명한 이성원은 특허 등록도 했지만 그의 사업에 돈을 댄 전주(錢主)가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를 등록하고 모조품들이 나도는 바람에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실제로 당시 신문을 보면 김계연, 이동호라는 이름의 사람도 경제화를 발매한다는 광고를 실었다. 이성원은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뒤 다시 구두 제작으로 눈을 돌렸다가 접착제를 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개량한 접착제 만력호는 미국에서도 독일 제품보다 낫다는 호평을 받았고 이성원은 미국으로 건너가 상담을 벌인 끝에 수출 판로를 뚫기도 했다. 특허에서 풀린 경제화라는 신발은 다른 여러 사람도 제조해 판매했는데 1941년 3월에 ‘경제화로 폭리’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 것을 보면 광복 당시까지도 시중에 팔린 것으로 추측된다. sonsj@seoul.co.kr
  • 쓰레기봉투로 보이는 예술가의 작품, 낙찰가 수천만원…이유는?

    쓰레기봉투로 보이는 예술가의 작품, 낙찰가 수천만원…이유는?

    예술가 중에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참신하고 보기 드문 작품을 만들어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예술가로 활동해온 개빈 터크(53)도 그중 한 사람이다. 터크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영국 현대미술의 부흥기를 주도한 일군의 영국작가를 일컫는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일원으로, 그의 작품은 지금도 세계 예술 시장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경매회사인 필립스의 웹사이트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에는 어떻게 봐도 쓰레기가 담긴 검은색 봉투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 필립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터크의 이런 작품을 광고하면서 SNS 사용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급증했다. 검은 쓰레기봉투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들에는 ‘덤프’(Dump)나 ‘트래시’(Trash)라는 쓰레기를 뜻하는 이름까지 붙어있어 진짜 쓰레기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이들 작품의 가격이다. 평균 4만6000파운드(약 7000만원) 수준의 낙찰가가 형성돼 있고 경매에서는 최소 2만 파운드(약 3000만원) 이상의 최저 낙찰가격이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특히 쓰레기봉투 5개를 한데 모아놓은 것 같은 작품은 2016년 뉴욕에서 열렸던 한 경매에서 무려 13만1000달러(약 1억5000만원)라는 거액에 낙찰됐다. 여기까지 보면 이런 쓰레기가 어떻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쓰레기봉투가 아니다. 겉모습은 쓰레기봉투이지만, 청동으로 주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진짜 쓰레기봉투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작품은 모양과 질감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어 어찌 보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사실 알고 나면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높다는 점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영국 왕립예술대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터크는 1991년 졸업전으로, 텅빈 스튜디오 공간에 ‘개빈 터크/조각가/여기서 작업하다 1989~1991’이라고 쓴 기념패만 설치했다가 보수적인 교내 분위기에 밀려 학위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일로 미술계의 시선을 끌었고 1997년 거물 컬렉터 찰스 사치가 기획해 30만 관객을 동원한 ‘센세이션’ 전에 참여하면서 yBa의 중요 인물로 부상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등 유명 인물로 변장한 뒤 이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자화상 등이 유명하지만, 그는 2000년 이후 20년째 작업 중인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는 실제와 착각할 만큼 정밀하게 묘사하는 기법을 이용한 청동 주조품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터그의 쓰레기봉투 작품은 바로 이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한 것으로, 그는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의 쓸데없는 소비 생활에 의해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는 유기물이 가득 찬 쓰레기 봉투를 이미지하고, 마치 진짜 쓰레기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완성했다” 터크는 이밖에도 일회용컵이나 골판지상자와 같은 쓰레기처럼 생긴 작품도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SNS 사용자들은 “이런 쓰레기봉투는 정말 많다. 쓰레기가 이만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비싸다니 그안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냐?”, “이런 작품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니 부럽다”, “현대미술로는 뭐든지 가능하구나” 등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필립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중국 태생 미국 감독 클로에 자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중국 태생 미국 감독 클로에 자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중국 태생의 미국 감독 클로에 자오가 연출한 영화 ‘유목민땅’(Nomandland)이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처음 열리는 국제 영화제라 주목받았다. 맥도먼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고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과부를 연기했다. 자오 감독은 10년 만에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여자 감독이 됐다. 호주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녀는 심사위원끼리 “건전하고 격렬한 ” 토론 끝에 황금사자상 수상작을 뽑았다며 “마스크를 썼건 안 썼건 좋은 토론은 좋은 토론”이라고 말했다. 맥도먼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화상회의 시스템 줌으로 연결해 수상 소감을 얘기했는데 “이토록 괴이하고 괴이하며 괴이한 세상에서 여러분의 축제에서 저희를 불러주신 데 대해 무척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경쟁 부문에 18편, 비경쟁 부문에 19편 등 50여개국에서 72편이 초청돼 시작한 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시상식은 1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리도 수변공원에서 열렸는데 객석의 절반 이상을 비운 채 관객은 반드시 마스크를 쓰도록 했다. 지난해와 달리 유명인사들은 아주 소수만 초청됐다. 남우 주연상은 ‘우리 아버지’(Padrenostro)에 출연한 이탈리아 배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가, 여우 주연상은 ‘여성의 조각들’(Pieces of a Woman)의 영국 배우 버네사 커비가 받았다. 최우수 감독상과 심사위원 대상은 각각 ‘스파이의 부인’(Wife of a Spy)의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멕시코 감독 미첼 프랑코의 ‘새로운 질서’(Nuevo Orden)에 돌아가 은사자 트로피를 받았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러시아 영화 ‘친애하는 동무들!’(Dear Comrades!)의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최우수 각본상은 ‘제자’(The Disciple)가 각각 수상했다. 세계 3대 영화제에 베니스 영화제가 꼽히는데 베를린영화제는 지난 2월 20일에서 다음달 3일로 옮겨 치러졌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19 확산은 독일에서 이제 막 시작한 단계였다. 칸느 영화제는 5월 예정돼 있었는데 무기한 연기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코로나 전쟁과 백신 민족주의/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코로나 전쟁과 백신 민족주의/오일만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바로 코로나19를 둘러싼 ‘바이러스 전쟁’이다. 패권전쟁의 서막을 울렸던 무역·경제 전쟁이 표면적으로 봉합됐지만 미중의 코로나 전쟁은 더 치명적이다. ‘포스크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리더십과 직결된 패권 경쟁과도 연결된다. 일단 중국이 기선 제압에 나섰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8일 “10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전염병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중대하고 전략적인 성과를 거뒀다”며 최종 승리를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비등한 코로나 책임론을 반격하는 한편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한껏 과시하려는 노림수지만 코로나19 책임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글로벌 리더가 되기엔 역부족이다.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수에서 세계 제1위의 불명예를 안은 미국 역시 불안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리더로서 상처도 컸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등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병)이 미국에 또 다른 ‘수에즈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50년대 영국이 미국과 소련에 밀려 수에즈운하에서 철군한 뒤 순식간에 헤게모니를 잃어버린 교훈을 상기시킨 것이다. 중국은 이런 공백을 파고드는 절묘한 전략을 구사 중이다. 중국은 지난 3월 우한 위기를 넘긴 직후 신규 감염자 제로를 선언한 뒤 ‘건강실크로드’(健康絲組之路) 구축에 나섰다. 세계를 대상으로 수술용 마스크와 방호복 등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의료품을 대량으로 원조하면서 친중(親中) 국가를 만드는 작업이다. 장쥔 유엔 대사는 193개국 회원들에 “국제사회와 연대해 전염병과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2009년 리먼사태 이후 휘청거렸던 미국의 공백을 틈타 주요 2개국(G2)으로 발돋움했던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 패권을 흔들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중국의 파상적인 공세에 맞선 트럼프의 승부수는 코로나 백신 개발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단번에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트럼프의 눈물겨운 노력까지 가세했다.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부동의 1위인 미국이 첨단 기술과 최고의 기술·자본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선점하겠다는 의미다.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아랍국들의 ‘석유 민족주의’와 같은 ‘백신 민족주의’가 출현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물론 중국과 유럽, 러시아까지 백신 개발 전쟁에 뛰어들었다. 백신전쟁의 승전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동원 가능한 최대한의 인력과 기술, 정보, 자본을 바탕으로 전대미문의 경쟁이 시작된 이유다. 중국도 백신 개발에 혈안이다. 공산당 일당 체제의 강점을 살려 무한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산하의 연구진 1000여명을 백신 개발에 투입했고, 군인들을 대상으로 지난 6월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중국 전염병 분야 최고권위자인 중난산 원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분야에서 다른 국가에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다. 백신 확보전도 치열하다. 미국은 이미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등과 계약해 7억회 분량의 백신을 확보했다. 2022년 1분기까지 백신 생산 규모를 10억회 분량으로 예상할 경우 백신 확보전에서 소외된 나라들의 고통은 불 보듯 뻔하다. 백신 경쟁은 이면에 바이오 제약의 패권과도 연결돼 있다. 바로 백신산업 자체가 유전자 조작이나 인공지능(AI)을 응용한 4차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시장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2018년 기준)다. 4차 산업혁명에 승부를 던진 중국은 이미 50조 위안(약 871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중국의 산업 스파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분야도 바이오·제약 기술이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백신전쟁’의 승자가 누구 되든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만인대 만인의 투쟁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소 삐끄덕거려도 다양한 규범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미중 간의 신냉전 패권 다툼은 환경이나 빈곤, 군비 등 지구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던 국제 네트워크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지 모른다. “코로나19(전염병)는 핵전쟁보다 더 재앙”이라고 말한 빌 게이츠의 말대로 험악한 정글의 법칙이 판치는 세상이 도래할까 두렵다. oilman@seoul.co.kr
  • 풍요의 이면, 불편한 진실을 봐야 할 때

    풍요의 이면, 불편한 진실을 봐야 할 때

    지구촌의 기후 변화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우리 앞에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다반사다. 전 지구적 돌림병 코로나19가 8개월이나 지속되고 50일 넘게 이어지던 장마 끝엔 폭염 아니면 태풍이다. 기후 변화는 이제 더이상 먼 `북극곰´ 이야기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태평하다. 여성 과학자의 삶을 녹여 낸 전작 `랩 걸´로 국내에도 친숙한 지구과학자 호프 자런이 신작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통해 그 속절없는 둔감함에 경종을 울리고 나섰다. 지난 50년간 사람들이 먹고 소비해 온 일들이 지구를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뜨렸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 이면엔 외면하고 싶은 모습들이 똬리를 칭칭 틀고 있다. 기후 변화를 비롯해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 자원 고갈, 넘쳐나는 쓰레기…, 그 불편한 진실들 탓에 인간들은 지금까지의 태평한 삶을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호프 자런은 그 심각한 현실을 주지시키는 데 겁주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삶을 소환해 지구가 어떻게 망가져 왔는지를 설득한다. 극지의 급속한 해빙을 아기 손에서 녹아내리는 얼음 조각에 빗대고, 이젠 캐나다에서도 어린이 하키 리그 시즌 운영이 어려워지고 동계올림픽을 실내경기장으로 옮기는 실태를 안타까워한다. 과도하게 많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통계수치가 등장하지만 경험과 실험 결과를 동반해 이해가 쉽다. 대서양 연어 생산량은 1970년대 연간 1만 3000t 정도였지만 지금은 300만t에 이른다. 그만큼 풍요로워졌지만 연어 1㎏을 얻으려면 먹이 3㎏이 필요하고, 그 먹이 1㎏은 물고기 5㎏을 갈아 만든다. 책은 `덜 먹고 더 느리게 쓰자´는 당부에 기울지만 우리 자신의 자원으로 위기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빼놓지 않고 있다. “희망이 해진 주머니로도 흘러간다”던 유치환 시 `향수´를 인용해 쓴 한국어판 서문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샤워기 틀었더니 황동 조각이...” 김포 신축 아파트단지 전수조사

    “샤워기 틀었더니 황동 조각이...” 김포 신축 아파트단지 전수조사

    경기 김포의 한 신축 아파트단지 일부 세대에서 욕실 수도꼭지에서 1㎝ 길이의 황동 조각이 나와 건설사가 전수조사에 나섰다. 10일 김포시와 이 아파트단지 건설사인 A업체에 따르면, 지난 7일 욕실 샤워기에서 1㎝가량 길이의 황동 조각이 나왔다는 민원이 8건 접수됐다. 이는 샤워기 구멍을 통해 수돗물과 함께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A업체는 조사에 나서 이 황동 조각이 수도꼭지 뭉치에 연결된 황동 재질의 부품에서 나온 것을 확인했다.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부품은 황동을 주조해서 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황동 조각이 나오지만 출고 전 세척하기 때문에 실제 사용 시에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A업체는 황동 조각이 나온 세대의 부품을 모두 교체하는 한편, 해당 부품 제조사와 이 아파트단지 전 세대의 욕실을 점검하고 있다. A업체의 한 관계자는 “아직 추가 민원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입주민들의 우려가 일어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부품 제조상의 문제인 만큼 제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입주가 시작된 해당 아파트단지는 3510세대 규모로 지하 2층∼지상 21층, 52개 동, 2개 단지로 조성됐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크고 질긴 잎의 놀라운 능력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크고 질긴 잎의 놀라운 능력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나는 꽤 많은 식물과 마주했다. 식물 중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거나 재배하는 식물도, 우리나라에선 본 적 없는 외국 식물도 있었다. 캄보디아 열대우림의 넓은잎과 노르웨이의 날카로운 바늘잎처럼 생소하고 낯선 식물을 그릴 때 나는 종종 새로운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3년 전 뉴질랜드 토착식물인 ‘뉴질랜드 플랙스’를 그릴 때였다. 어렵게 통관돼 받아 든 이 식물은 전체 키가 3m에 가까웠고, 잎 한 장이 내 키만 했다. 이것을 다 그리고 표본으로 누르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려면 원래 식물보다 크게 그려야 하는데, 생체가 거대하니 어떤 구도로 그려야 할지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결국 잎을 10분의1로 축소하고, 뿌리 일부분만 그림에 넣기로 했다. 다시 뉴질랜드로 보낼 표본을 누를 때에도 잎을 여섯 조각내어 번호를 매긴 후 신문지 사이에 말렸다. 표본이 마르는 사이에도 나는 여러 번 신문지를 들춰 혹여 썩는 부분은 없는지, 표본이 잘 눌러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수분이 많은 잎이나 꽃은 잠시만 소홀해도 색이 까매지고 썩기 쉽기 때문이다. 아열대의 거대하고 두꺼운 잎은 내게 까다롭고 어려운 상대다. 물론 이 커다란 잎들이 세상 모두에게 까다롭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는 아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시기엔 말이다. 지난해 여름 친구를 만나러 베트남 호찌민으로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베트남에서 직장에 다니는 친구는 평소에도 그곳 식물 사진을 내게 자주 찍어 보내 줬다. 하루는 집 앞 화단에 바나나 줄기 덩이가 떨어졌다며 회사에 가져가 덜 익은 바나나를 조미료에 찍어 먹는 사진을 보내왔고, 또 어느 날은 파파야를 나물처럼 무쳐 먹는 사진을 보여 줬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식물을 이용하고 있었고, 나는 사진으로만 접한 것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호찌민에서 만난 우리는 쌀국수집부터 갔다. 들어간 식당에서 내준 물병엔 마개 대신 돌돌 말린 바나나잎이 꽂혀 있었다. 내가 놀라자 친구는 이곳에서 바나나잎을 이렇게 쓰는 건 흔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다. 유난스러운 건 나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식탁에 수저받침 대신 놓이고, 마트와 시장 진열대의 채소를 포장하며, 도시락통으로 쓰이는 바나나잎을 자주 봤다. 우리가 늘 쓰는 비닐과 종이, 플라스틱의 역할을 이곳에선 바나나잎이 해내고 있었다. 바나나는 필리핀과 인도 등 아시아에서 주로 재배되는 세계의 대표 과일 중 하나다. 세계에 수출되다 보니 바나나 재배지는 넓고, 원주민은 바나나 열매가 수확되기까지 성장해 떨어지는 바나나잎을 자연스레 생활에서 이용하게 된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자원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이것이 민속식물의 정체성이자 바나나잎이 생활에 활용된 이유다. 바나나잎은 내 얼굴보다 훨씬 크고 두꺼우며 섬유질이 많아 질기다. 그래서 나는 이런 넓은잎 식물을 그리기가 부담스러웠지만, 같은 이유로 바나나는 접시와 포일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잎 표면에는 왁스와 같은 코팅이 돼 있어 방수가 잘돼 비닐의 역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접시와 그릇은 아무리 깨끗하게 닦아도 세제가 남기 마련이지만 바나나는 먼지가 잘 달라붙지 않기 때문에 물로만 닦아도 깨끗하고 다 쓰면 100% 생분해된다. 동남아 사람들은 식재료를 찌거나 구울 때도 바나나잎에 싸서 요리하는데, 이렇게 하면 특유의 달콤한 향도 내면서 안의 재료를 촉촉하게 유지해 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재료의 영양분 파괴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물론 바나나만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슷한 재질의 판단잎이나 코코넛 껍질, 대나무와 연잎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주로 이용해 왔던 짚처럼 식물을 포장재나 그릇으로 활용한 게 베트남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며, 그렇게 자연과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나마 최근 지구 온난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쓰레기 문제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이제 자각을 시작한 듯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바나나를 병마개나 포장지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한 양의 바나나잎이 생산되지 않는 데다 수천년간 이어 온 동남아 원주민의 생활 방식을 갑자기 따르는 것도 무리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마트와 시장에서 비닐로 깨끗이 마감된 채소 대신 식물의 잎으로 포장돼 있는 식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마음, 조금 더 불편하고 덜 깨끗해 보일지라도 500여년간 썩지 않을 스티로폼 대신 약간의 수고를 감내하는 태도다.
  • 장승과 탑으로 빚은 ‘전설’

    장승과 탑으로 빚은 ‘전설’

    지난해 10월 타계한 조각가 최충웅(1939~2019)의 1주기 초대전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미술을 평생의 작업 화두로 삼았던 작가의 유작 130여점 가운데 45점이 ‘최충웅, 우리 눈으로 조각하다’는 타이틀 아래 한데 자리했다. 1963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동시대 청년 미술인들이 서구 미술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현실에 비판적이었다. 경제 개발과 산업화란 이름으로 장승과 서낭당 등 우리 전통문화가 미신으로 치부돼 사라지는 광경에도 분노했다. 전국을 답사하며 장승과 탑, 자연 풍광을 열정적으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이유다. 눈은 한국 전통의 미감을 좇았지만, 손은 혁신적이었다. 1974년 스티로폼을 재료로 한 조각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스티로폼에 석유나 휘발유를 바르면 녹아내리는 성질을 이용해 표면을 붓으로 터치하거나 분무기로 뿌려 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세부 표현과 질감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작가는 우연적인 효과를 작업의 일부로 즐겼다. 장승과 탑을 모티브로 한 추상조각 ‘전설’과 ‘작품’ 시리즈는 이후 40년간 이어졌다. 1970·80년대에는 청동 주조 비용이 부담돼 스티로폼으로 조각을 완성했지만, 1990년대에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원형을 거푸집으로 싼 뒤 청동을 부어 주물을 떴다. 초기 스티로폼 조각들은 거의 폐기됐고, 남은 작품들은 대부분 청동 조각이다. 이번 전시에는 여인 조각상도 여러 점 나왔다. 작가가 아내와 네 딸을 위해 만든 작품들이다. 고적 답사 사진을 정리한 앨범과 슬라이드 등 유품도 소개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경기중에서 교편을 잡은 작가는 1991년 서울산업대 교수로 임용돼 200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후학 양성과 작업을 병행했다. 2002년 암 발병 이후 오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작가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성품과 엄격한 자기 관리로 생전에 작품 발표를 많이 하지 않은 탓에 대중적으로 덜 알려졌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묵묵히 옛것을 통해 새것을 이루고자 매진했던 선생의 작업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했다. 평소 작가는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대학 은사로 김종영(1915~1982)을 꼽았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전시장에서 열리는 그의 유작전이 더욱 뜻깊다. 전시는 29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매년 여름이면 베를린은 음악 페스티벌과 테크노 파티로 각 공연장과 클럽들이 바빠진다. 몇천 명씩 모이는 페스티벌 역시 올해는 모두 취소됐다. ‘롤라팔루자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거의 매주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던 친구 멜도 올해는 풀이 죽었다. 빌리 엘리시, 마틴 게릭스, 칼리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세계무대를 휩쓰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롤라팔루자’도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됐다. 록과 일렉트로닉, 힙합, 인디뮤직이 어우러지는 10만명 축제가 사라지면서, 베를린의 여름도 광기를 잃었다. 내로라하는 클럽과 파티가 없는 베를린은 이제 무엇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도시 물들인 이벤트 회사들의 ‘적색경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가장 직격탄을 입은 건 이벤트 업계였다. 기획자부터 조명 기술자,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 설치가,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케이터링 담당자 등 행사에 관련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한 달 전쯤, 베를린에서는 이 업계 사람들의 고통과 파산 직전의 상태를 알리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산업 종사자들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빨간색 조명으로 쏘아 ‘빛의 밤’(night of light)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를 알리고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단발성 행사였다. 이벤트 종사자들은 도시의 상징이 되는 건물에 빨간 조명을 쏘아 일종의 ‘적색경보’를 보냈다. 관람객도, 홍보도 없는 조용한 이벤트였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사람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 말았을 것이고, 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이벤트 종사자들을 응원하며 지나갔을 것이다.붉은 조명의 건물들을 찾아나서 봤다. 전기로 가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중의 베를린을 질주했다. 동남쪽 끝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텅 빈 도시를 달리며 빨간빛을 찾아다녔다. 파티가 많이 열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클럽들은 외벽부터 클럽 안까지 빨간 조명을 설치했다. 란트베르 운하를 지나 조너선 보롭스키의 ‘분자맨’이 보이는 슈프레강 앞에도 길고 가느다란 빨간빛이 이어졌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예술극장 외관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건물들도 온통 빨갰다. 화려한 이벤트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이 한편으론 나와 다르지 않기에 빨간빛은 더 위태롭게 보였다.●자유 멈추고 ‘룰’ 따라야 하는 베를린의 밤 베를린은 괴짜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금요일 밤에 클럽에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무슨 유별난 짓을 해도 상관없는, 자유의 도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를린도 큰 손상을 입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온 베를린은 이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며,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도시가 됐다. 춤추는 사람들이 없는 베를린 클럽이나 파티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내로라하는 클럽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비어 가든’으로 임시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여는 클럽과 바로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클럽 비지오네레’와 노이쾰른에 있는 옥상바 ‘크룽커 클라니히’처럼 야외 공간이 있는 곳은 그 야외 공간만 오픈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우주 최강’의 하드코어 클럽인 ‘베르크하인’도 계속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거칠고 거대한 클럽 공간이 음악과 전시,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해 내부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 듀오인 ‘탐탐’의 사운드 설치 전시 마지막 날, 친구와 나도 베르크하인에 갔다. 전시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베르크하인 클럽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겨울에도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차례가 돼도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베르크하인은 못 가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줄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최고의 클럽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500m는 이어진 듯했다. 줄의 뒤꽁무니에 섰던 우리는 남은 네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관계자가 와서 이 줄 뒤부터는 들어가기 힘드니 돌아가라고 했다. 계속 줄을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서게 되니 줄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줄은 바로 우리 앞에서 끊겼다. 우리는 위용 넘치는 베르크하인의 외관만 구경하다 돌아섰다. 그래도 다행인 건 베르크하인이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은 앞으로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100명의 사진과 조각, 회화, 비디오,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보로스 재단과 베르크하인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이 예술 전시는 베르크하인 내부에 있는 파노라마 바와 거대한 시멘트 기둥이 우뚝 선 조일레 공간, 할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를린의 파티는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갈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매년 여름이면 베를린은 음악 페스티벌과 테크노 파티로 각 공연장과 클럽들이 바빠진다. 몇천 명씩 모이는 페스티벌 역시 올해는 모두 취소됐다. ‘롤라팔루자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거의 매주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던 친구 멜도 올해는 풀이 죽었다. 빌리 엘리시, 마틴 게릭스, 칼리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세계무대를 휩쓰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롤라팔루자’도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됐다. 록과 일렉트로닉, 힙합, 인디뮤직이 어우러지는 10만명 축제가 사라지면서, 베를린의 여름도 광기를 잃었다. 내로라하는 클럽과 파티가 없는 베를린은 이제 무엇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도시 물들인 이벤트 회사들의 ‘적색경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가장 직격탄을 입은 건 이벤트 업계였다. 기획자부터 조명 기술자,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 설치가,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케이터링 담당자 등 행사에 관련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 한 달 전쯤, 베를린에서는 이 업계 사람들의 고통과 파산 직전의 상태를 알리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산업 종사자들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빨간색 조명으로 쏘아 ‘빛의 밤’(night of light)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를 알리고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단발성 행사였다. 이벤트 종사자들은 도시의 상징이 되는 건물에 빨간 조명을 쏘아 일종의 ‘적색경보’를 보냈다. 관람객도, 홍보도 없는 조용한 이벤트였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사람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 말았을 것이고, 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이벤트 종사자들을 응원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붉은 조명의 건물들을 찾아나서 봤다. 전기로 가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중의 베를린을 질주했다. 동남쪽 끝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텅 빈 도시를 달리며 빨간빛을 찾아다녔다. 파티가 많이 열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클럽들은 외벽부터 클럽 안까지 빨간 조명을 설치했다. 란트베르 운하를 지나 조너선 보롭스키의 ‘분자맨’이 보이는 슈프레강 앞에도 길고 가느다란 빨간빛이 이어졌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예술극장 외관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건물들도 온통 빨갰다. 화려한 이벤트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이 한편으론 나와 다르지 않기에 빨간빛은 더 위태롭게 보였다. ●자유 멈추고 ‘룰’ 따라야 하는 베를린의 밤 베를린은 괴짜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금요일 밤에 클럽에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무슨 유별난 짓을 해도 상관없는, 자유의 도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를린도 큰 손상을 입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온 베를린은 이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며,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도시가 됐다. 춤추는 사람들이 없는 베를린 클럽이나 파티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내로라하는 클럽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비어 가든’으로 임시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여는 클럽과 바로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클럽 비지오네레’와 노이쾰른에 있는 옥상바 ‘크룽커 클라니히’처럼 야외 공간이 있는 곳은 그 야외 공간만 오픈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우주 최강’의 하드코어 클럽인 ‘베르크하인’도 계속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거칠고 거대한 클럽 공간이 음악과 전시,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해 내부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 듀오인 ‘탐탐’의 사운드 설치 전시 마지막 날, 친구와 나도 베르크하인에 갔다. 전시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베르크하인 클럽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겨울에도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차례가 돼도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베르크하인은 못 가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줄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최고의 클럽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500m는 이어진 듯했다. 줄의 뒤꽁무니에 섰던 우리는 남은 네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관계자가 와서 이 줄 뒤부터는 들어가기 힘드니 돌아가라고 했다. 계속 줄을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서게 되니 줄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줄은 바로 우리 앞에서 끊겼다. 우리는 위용 넘치는 베르크하인의 외관만 구경하다 돌아섰다.그래도 다행인 건 베르크하인이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은 앞으로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100명의 사진과 조각, 회화, 비디오,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보로스 재단과 베르크하인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이 예술 전시는 베르크하인 내부에 있는 파노라마 바와 거대한 시멘트 기둥이 우뚝 선 조일레 공간, 할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를린의 파티는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갈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 여름을 틀어줘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 여름을 틀어줘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내 베를린 생활은 어땠을까? 겨울에 꼭 다시 가자던 ‘바발리’(베를린의 유명 혼욕 사우나)에 가서 뜨끈한 사우나를 즐겼을 거고, 예정대로 3월에는 서울에도 다녀왔을 것이다. 설날만큼 큰 명절인 부활절에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갔을 테고, 프랑스 남부나 이탈리아 바사노로 둘만의 여름휴가를 갔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봄과 여름에 열리는 베를린의 페스티벌들을 빼놓지 않고 즐겼으리라. 베를린에 살면서 꼭 가 보고 싶었던 축제들을 드디어 가 보는구나 설는데, 이제는 내년에도 열릴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모든 것들이 취소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로 미뤄졌다. 이제 우리에겐 엄청난 인파의 페스티벌도, 음악이 골목골목을 메우던 베를린의 여름도 정말 사라지게 되는 걸까?●35년 전통, 브레메어 삼바 카니발코로나가 터지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페스티벌은 브레멘에서 열린 ‘브레메어 삼바 카니발’이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명함도 못 내미는 작은 축제이지만, 유럽의 여러 도시와 독일 전역에서 삼바 드럼팀이 참가하는, 나름 유럽 최대의 삼바 카니발이다. 브라질 리우의 삼바 혼이 살아 있고 수많은 색과 재치 넘치는 가면들, 장대 예술가와 삼바 댄서들이 퍼레이드를 펼친다. 여기에 다양한 삼바 드럼을 연주하는 밴드들이 생생한 리듬을 들려주며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이곳에 간 이유는 남자친구가 베를린의 삼바팀인 ‘사푸카유 노 삼바’(사푸)의 멤버이기 때문이었다. 목요일마다 하는 삼바 드럼 연습이 취미 정도인 줄 알았건만, 브레멘에 가서 보니 매년 1, 2등을 놓치지 않는 유명한 팀이었다. 이 축제에 독일에서만 80여팀이 참가하고 유럽까지 포함하면 100여팀, 참가하는 멤버가 1500명이나 되는 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그저 그런 팀은 아니었다. 카니발에 참가한 모든 팀이 이틀간 거리 퍼레이드에 나서고 그중 잘하는 몇몇 밴드는 저녁 공연 무대에도 서는데, 사푸는 메인 밴드답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공연장에는 “사푸카유 노 삼바”를 외치며 환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일렉트릭 기타 리드 너무 멋지던데! 프란시가 한 랩도 최고였어!” 오랜만에 만난 다른 도시의 삼바팀들이 다음날까지 찾아와 응원의 말을 남겼다. 서로가 연대하고 지지하는 모습에 코끝이 찡할 정도였다.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카니발에 참여하는 팀의 일원으로 보는 축제는 또 달랐다. 숙소부터 백스테이지, 식사 장소, 메인 공연까지 팀과 함께한 3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푸 팀 숙소는 브레멘의 한 공공 유치원이었다. 모두가 익숙하게 침낭을 싸왔고, 아침엔 아이들이 앉는 의자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아침을 먹었다. 이를 닦는 세면대도 아이들용이라 다들 무릎을 꿇고 이를 닦았다. 마치 일곱 난쟁이들 집에 놀러 온 거인 같았달까.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워 인상적이었다. 축제에 참가한 다른 삼바 팀도 브레멘의 공공 교육시설이나 기관을 숙소로 빌려 이용한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35회째를 맞은 올해까지 브레멘 카니발은 100% 비상업적인 축제로 운영됐다. 모든 참가자들이 축제를 위해 무보수로 참가하고 독일 전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와 예술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축제 운영진도 수익을 이듬해 행사에 재투자했다. 마지막 날, 독일 각지에서 온 삼바 팀은 모두 한데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장소는 브레멘의 한 초등학교 로비다. 임시로 긴 테이블과 의자들을 붙여 놓고, 뷔페처럼 한쪽에는 토스트와 수프, 햄과 치즈, 커피 등을 두었다. 소박했다. 축제의 모든 것이 비상업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브레멘까지 오는 교통비나 진행비는 각자가 부담하되 브레멘에 머무는 3일 동안의 숙소와 식사는 운영팀이 제공했다.카니발에서 인상적인 점은 또 있었다. 공연을 하는 많은 팀원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많은 시니어들이었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십몇 년씩 삼바 드럼을 배우고 함께 공연을 해 온 이들이었다. 드러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카니발 댄서와 장대를 타는 예술가 중에도 중년이 훌쩍 넘은 사람들과 부모님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있었다. 한두 해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닦은 전문가였다. 브레메어 삼바 카니발에는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는 사람들의 하모니가 있었다. 22세의 장대 예술가에서 40대 중년의 삼바 댄서, 60세가 넘은 드러머까지 모두가 함께 팀을 이루고 서로를 지지해 준다. “5년째 이 카니발에 왔는데, 올해 우리 팀 공연이 최고였어!” 브라질 출신의 브루노가 말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몇 달 전 사랑하는 독일인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독일 말을 아직 능숙하게 못하는 브루노를 사푸 멤버들은 정말 가족처럼 대하고, 따로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들었다. 아내를 잃고 참가한 올해 카니발에 브루노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이미 사푸 멤버 모두를 알고 있는 아이는 유치원 안을 제 집처럼 뛰어다니며 사푸 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브레멘 공연을 한 사푸 멤버는 총 25명 정도. 건설 노동자, 이벤트 회사 대표, 정보기술(IT) 소프트 엔지니어, 변호사 등 직업도 가지각색인 사람들이 20년 넘게 한 팀이자 큰 가족을 이루고 있다. 1996년에 팀을 만든 리더 ‘디디’와 딱 10년째를 맞이한 남자친구, 5년째 사푸와 함께하고 있는 브루노, 그리고 이제 막 멤버들과 얼굴을 트기 시작한 내가 모두 함께한 축제였다. 브레멘 삼바 카니발은 매년 주제가 있다. 각 팀들은 그 주제에 어울리는 의상과 깃발, 소품들을 직접 만들고 준비한다. 올해의 주제는 ‘In The Intoxication of Love’, 즉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최고의 열정’이었다. 이틀간의 퍼레이드에서 ‘사랑’을 갖가지 방식으로 표현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었다. 거리 어딜 가나 ‘하트’ 모양이 떠다녔고, 히피 차림의 삼바 드러머들이 거리를 누볐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 상황으로 ‘사랑’은커녕 얼굴도 보기 어려워진 시대, 나는 유치원 의자에 모여 앉아 서로의 커피를 따라 주던 사푸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줄줄이 취소된 베를린 페스티벌 5월을 기다렸다. 베를린의 가장 큰 축제인 ‘카니발 데어 쿨투어렌’이 열리는 달이다. 여기서도 사푸 팀이 매년 선두에 서서 축제를 이끈다고 했다. 4일 동안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서 열리는 이 문화 카니발에는 평균 50만명 이상이 참가한다. 퍼레이드에 직접 나서는 참가자만 5000명 이상. 브라질 삼바에서 중국 사자춤, 서아프리카의 드럼, 한국의 사물놀이까지 각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행렬이 줄을 잇는 카니발이다. 올해 축제는 당연히 열리지 못했다. 낮이 가장 긴 날, 하지. 유럽에선 이 날에 맞춰 ‘페트 드라 뮤지크’ 행사가 열린다. 1981년에 파리에서 시작한 이 축제는 독일에선 뮌헨에서 먼저 시작했고(1989년), 베를린에서는 1995년부터 열렸다. 독일에서는 원래 길거리 공연을 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페트 드라 뮤지크’ 때만큼은 허가 없이 누구나 어디서나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날은 거리를 걸으면 어디서나 일렉트로닉 음악과 버스킹, 거리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댄스 등을 볼 수 있다. 많은 뮤지션들이 줄줄이 공연하는 오버바움 브리지에는 매년 10만명이 모인다고 했다. 6월에 열리는 이 행사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대신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 안에서 댄서들이 춤추는 것을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 줬다. 많은 음악 공연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대체됐다. 이런 와중에도 게릴라 공연을 시도한 버스커들이 있었다. 에바스발더역 아래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경찰이 득달같이 나타났고, 사람들에게 빨리 흩어지라고 손짓을 했다. 어딜 가나 한산한 요즘이라 30명 정도만 모여 있어도 금방 눈에 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도로 반대편에서 기웃거리다 곧 제 갈 길을 갔다. 나도 이내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를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매년 여름이면 베를린은 음악 페스티벌과 테크노 파티로 각 공연장과 클럽들이 바빠진다. 몇천 명씩 모이는 페스티벌 역시 올해는 모두 취소됐다. ‘롤라팔루자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거의 매주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던 친구 멜도 올해는 풀이 죽었다. 빌리 엘리시, 마틴 게릭스, 칼리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세계무대를 휩쓰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롤라팔루자’도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됐다. 록과 일렉트로닉, 힙합, 인디뮤직이 어우러지는 10만명 축제가 사라지면서, 베를린의 여름도 광기를 잃었다. 내로라하는 클럽과 파티가 없는 베를린은 이제 무엇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도시 물들인 이벤트 회사들의 ‘적색경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가장 직격탄을 입은 건 이벤트 업계였다. 기획자부터 조명 기술자,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 설치가,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케이터링 담당자 등 행사에 관련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한 달 전쯤, 베를린에서는 이 업계 사람들의 고통과 파산 직전의 상태를 알리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산업 종사자들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빨간색 조명으로 쏘아 ‘빛의 밤’(night of light)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를 알리고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단발성 행사였다. 이벤트 종사자들은 도시의 상징이 되는 건물에 빨간 조명을 쏘아 일종의 ‘적색경보’를 보냈다. 관람객도, 홍보도 없는 조용한 이벤트였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사람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 말았을 것이고, 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이벤트 종사자들을 응원하며 지나갔을 것이다.붉은 조명의 건물들을 찾아나서 봤다. 전기로 가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중의 베를린을 질주했다. 동남쪽 끝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텅 빈 도시를 달리며 빨간빛을 찾아다녔다. 파티가 많이 열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클럽들은 외벽부터 클럽 안까지 빨간 조명을 설치했다. 란트베르 운하를 지나 조너선 보롭스키의 ‘분자맨’이 보이는 슈프레강 앞에도 길고 가느다란 빨간빛이 이어졌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예술극장 외관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건물들도 온통 빨갰다. 화려한 이벤트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이 한편으론 나와 다르지 않기에 빨간빛은 더 위태롭게 보였다.●자유 멈추고 ‘룰’ 따라야 하는 베를린의 밤 베를린은 괴짜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금요일 밤에 클럽에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무슨 유별난 짓을 해도 상관없는, 자유의 도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를린도 큰 손상을 입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온 베를린은 이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며,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도시가 됐다. 춤추는 사람들이 없는 베를린 클럽이나 파티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내로라하는 클럽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비어 가든’으로 임시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여는 클럽과 바로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클럽 비지오네레’와 노이쾰른에 있는 옥상바 ‘크룽커 클라니히’처럼 야외 공간이 있는 곳은 그 야외 공간만 오픈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우주 최강’의 하드코어 클럽인 ‘베르크하인’도 계속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거칠고 거대한 클럽 공간이 음악과 전시,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해 내부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 듀오인 ‘탐탐’의 사운드 설치 전시 마지막 날, 친구와 나도 베르크하인에 갔다. 전시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베르크하인 클럽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겨울에도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차례가 돼도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베르크하인은 못 가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줄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최고의 클럽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500m는 이어진 듯했다. 줄의 뒤꽁무니에 섰던 우리는 남은 네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관계자가 와서 이 줄 뒤부터는 들어가기 힘드니 돌아가라고 했다. 계속 줄을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서게 되니 줄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줄은 바로 우리 앞에서 끊겼다. 우리는 위용 넘치는 베르크하인의 외관만 구경하다 돌아섰다. 그래도 다행인 건 베르크하인이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은 앞으로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100명의 사진과 조각, 회화, 비디오,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보로스 재단과 베르크하인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이 예술 전시는 베르크하인 내부에 있는 파노라마 바와 거대한 시멘트 기둥이 우뚝 선 조일레 공간, 할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를린의 파티는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갈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코로나 희생자와 참전용사 짓밟고, 골프카트에 올라탄 트럼프 풍자

    코로나 희생자와 참전용사 짓밟고, 골프카트에 올라탄 트럼프 풍자

    11월 3일 미국 대선을 두 달 앞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막말 논란 등으로 궁지에 몰린 가운데, 뉴욕 한복판에서 트럼프 풍자 공연이 펼쳐졌다. 8일(현지시간) 뉴욕데일리뉴스는 맨해튼 배터리파크에 ‘살아 숨 쉬는’ 황금 조각상 퍼포먼스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예술가 집단 ‘트럼프 조각상 계획’(The Trump Statue Initiative)은 이날 화려한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나와 트럼프 대통령을 연기했다. ‘마지막 대공격’(The Final Push)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대 위에서 대통령을 희화화했다. 전시대 전면에는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민권과 자유의 파괴자 (2016~2020)’이라는 설명이 달렸다.공연에서 트럼프 대통령 역은 보수성향인 폭스뉴스의 인기진행자 숀 해니티와 로라 잉그러햄 역이 뒤에서 미는 골프 카트에 올라타 골프채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폭스뉴스 카메라기자 역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 모습을 촬영했다. 이들이 밟고 선 땅은 누군가의 무덤으로 연출됐다. 무덤에는 묘비 여러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코로나19 희생자, 또 하나는 참전용사의 것이었다. 코로나19로 20만 명이 죽어 나가는 동안 ‘골프광’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비호 속에 국민 혈세로 골프를 치러 다니며 참전용사 비하를 일삼았다는 날카로운 풍자가 깃든 공연이었다. 17만 명 죽었는데 ‘어쩔 수 없다’니공연에서 대통령이 밟고 선 무덤의 코로나19 희생자 묘비에는 ‘비극을 기리며; 어쩔 수 없다(It is What It Is)’라는 비문이 적혀 있었다. ‘어쩔 수 없다’(It is What It Is)는 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악시오스 온 HBO’ 인터뷰에서 내뱉은 말이다.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와 관련 “치명률이 낮다. 훌륭히 대응했다”며 황당한 논리를 펼쳤다. 그러다 기자가 “코로나19로 하루에 1000명씩 죽어 나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It is What It Is)”며 진땀을 뺐다. ‘It is What It Is’는 직역하면 ‘그냥 그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주로 바꿀 수 없는 절망적이거나 도전적인 상황을 나타내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의미로 쓴다. 당시 사망자만 17만 명(현재 20만 명)이 넘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에는 믿기 어려운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참전용사는 패배자, 호구" 막말 논란에도 골프장으로공연에 쓰인 또 다른 참전용사 묘비에는 ‘비극을 기리며; 루저’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얼마 전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참전용사 비하 발언 보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미국 시사주간지 ‘더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1월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 묻힌 미군 전사자들을 ‘루저’(loser), ‘호구’(suckers)라고 비하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측근들에게 “내가 왜 묘지에 가야 하느냐? 그곳은 패배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짐승이나 할 소리”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일련의 논란 속에서도 ‘골프광’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말 어김없이 골프장을 찾았다. 6일 자신이 소유한 개인 골프장 ‘워싱턴D.C.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지인들과 라운딩을 즐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20일 취임 이후 6일 현재까지 278차례나 라운딩을 즐겼다. 전용기 사용료와 비밀경호국 요원 숙박비 및 급식비 등을 포함해 그간 골프에 들어간 국민 혈세만 1억4100만 달러(약 1677억 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 한 번 칠 때마다 60만 달러(약 7억 원)의 세금이 날아간 셈이다.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적을 바탕으로, 예술가집단 ‘트럼프 조각상 계획’(The Trump Statue Initiative)은 이번 거리 공연을 기획했다. 행사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할 기회의 장을 열고자 했다. 투표를 독려하고 싶었다”는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슈가 가라앉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심지어 참전용사를 패배자라 비하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사나흘 만에 헤드라인에서 밀려났다”며 국민 관심을 호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조절이 중요하다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조절이 중요하다

    1951년 미국의 한 병원 의료진은 연구목적으로 헨리에타 렉스라는 여성으로부터 자궁경부암 조직을 추출했다. 이 여성은 곧 세상을 떠났지만 추출한 암 조직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세포분열을 하고 있다. 이 세포는 현재도 많은 동물학 연구실에서 연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데 제공자의 이름을 따 ‘헬라 세포’라고 부른다. 많은 연구진의 노력 덕분에 이제 암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지만 여전히 사망 원인 1, 2위를 다투고 있다. 암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까? 아마도 세포분열 자체를 막으면 가능할지 모른다.세포는 아무 때나 분열하지 않는다. 외부의 신호가 있거나 세포 자체가 커지면 분열한다. 세포는 우선 분열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분열하기로 결정하면 분열하기 전에 준비 작업을 한다. 분열된 세포에 염색체를 나누어 주기 위해 염색체를 두 배로 증폭시켜야 하고, 염색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방추사를 만든다. 그리고 핵막을 임시로 조각낼 준비 등을 한다. 준비 과정은 실제로 분열이 일어나는 시간의 9배 정도가 걸린다. 즉 세포분열이 10분 동안 일어난다면, 준비 과정은 약 90분 동안 이어진다. 세포가 분열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세포분열이 조절된다고 말한다, 세포를 분리해 세포분열 실험을 해 보면, 하나의 세포는 다른 세포와 접촉하기 전까지 분열하고 다른 세포와 접촉하면 분열을 중단한다. 그리고 일부 세포를 제거하면 제거된 수만큼만 세포가 생겨난다. 그래서 세포분열은 부착할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고 밀도가 높으면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세포분열 조절이 모든 세포에서 무한정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나 근육세포는 평생 분열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릴 때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다리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평생 다리를 절게 된다. 그리고 정상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복제된 염색체의 양 끝인 말단소체가 조금씩 짧아지는데 이로 인해 세포의 종류에 따라 20~50회 정도밖에 세포분열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상세포의 이러한 세포분열의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바로 암세포이다. 세포는 특정 단백질들이 작동해 분열하게 되는데, 이 단백질들의 유전자가 너무 활성이 강한 돌연변이로 바뀌면 암세포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과도한 세포분열을 억제하는 종양억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고장 나면 암세포가 생긴다. 다시 말해 세포분열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를 조절하지 못하면 암세포가 생기는 것이다. 암은 정상적인 세포분열 조절 유전자의 변형으로 일어난다. 요즈음 특정 암에 맞춤형으로 작용할 수 있는 표적 치료제와 면역요법이 암 치료에 크게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암은 세포분열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 즉 고에너지 방사선이나 독한 화학약품을 사용해 치료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장세포, 모낭세포, 면역세포 등의 생성이 일어나지 않아 구역질, 모발 손실, 감염 증가 등이 발생해 암에 의한 고통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을 받게 된다. 수많은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지지만 많은 경우 적절한 수준에서 운영되지 않아 그 법과 제도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들이 만들어진 취지가 국민을 위한 것일 텐데 조절을 무시한 암세포처럼 오히려 국민들에게 폐만 끼치게 되는 것 같다.
  • 뉴스 생방송 도중 앵커 뒤로 떨어지는 ‘불덩이’ 포착…정체는 유성

    뉴스 생방송 도중 앵커 뒤로 떨어지는 ‘불덩이’ 포착…정체는 유성

    호주 저녁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이 생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2일(현지시간) 저녁 6시 40분쯤 시드니 사람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에 고정됐다. 호주 7뉴스 화면에 유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7뉴스 측은 이날 시드니 지역 6시뉴스 도중 진행자 마크 퍼거슨 뒤로 유성이 관측돼 시청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고 보도했다. 환한 빛을 내는 유성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장면은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시청자에게 전달됐다.같은 시각, 뉴사우스웨일스주와 빅토리아주 국경 부근에서도 유성이 관측됐다. 운행 중이던 차량 블랙박스에는 커다란 불덩어리가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가정집 감시카메라에도 유성이 포착됐다. 맨눈으로 유성을 봤다는 목격자 제보도 다수였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천체물리학자 브래드 터커는 3일 캔버라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일 저녁 6시 45분쯤 수도 캔버라 일대에 유성이 떨어졌다”고 확인했다.터커 박사는 “유성은 뉴사우스웨일스주 센트럴 코스트 지역 대기권을 통과했다. 이후 캔버라 서쪽, 시드니 상공을 가로지른 뒤 뉴사우스웨일스주와 빅토리아주 경계 부근에서 ‘소닉 붐’(음속폭음)과 함께 폭발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유성 크기가 1m 정도로 큰 위협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느 집 뒷마당에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화구 등 관련 흔적이나 피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터커 박사는 “200t 분량의 돌덩어리가 매일 지구를 강타하지만,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조각조각 잘게 부서진다. 이때 대기와의 마찰로 불이 붙은 채 떨어지는 파편이 유성”이라고 설명했다. 땅에 떨어진 유성이 바로 운석이다. 그는 “낮에도 유성이 떨어지지만 잘 보지 못하는 건 밝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크지 않아서이기도 하다”면서 “요즘은 CCTV와 블랙박스 등 촬영 장비가 늘어나 쉽게 추적이 가능하고 훨씬 더 자주 보이는 것뿐”이라고 부연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왕건의 스승’ 해인사 희랑대사 조각상 국보 된다

    ‘왕건의 스승’ 해인사 희랑대사 조각상 국보 된다

    문화재청은 2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승려 초상조각인 경북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신라 말∼고려 초 활동한 희랑대사(希朗大師)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제작 시기는 10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옻칠한 삼베 등을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건칠 기법을 활용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으로, 해인사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왕건이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이곳에 두었다고 전해진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祖師像)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원형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아울러 16세기 전염병 치료 한의학 서적인 ‘간이벽온방(언해)’과 17세기 공신들의 모임인 상회연(相會宴)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방구석 1열에서 미술 전시 감상할래

    방구석 1열에서 미술 전시 감상할래

    미술축제 온라인 콘텐츠·비대면 관람홈피 업로드·사전 녹화·VR 대안 활용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전국에 방역 비상이 걸린 가운데 부산비엔날레 등 대규모 미술축제들이 이번 주말부터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맞춰 온라인 개막 및 비대면 관람 확대 등을 대안으로 마련했다. 올해 개최 예정이던 국내 3대 비엔날레 가운데 유일하게 행사를 치르는 부산비엔날레는 오는 5일 오후 4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김성연 집행위원장과 덴마크의 야콥 파브리시우스 전시감독 등 최소 인원이 참석해 유튜브로 개막식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를 주제로 11월 8일까지 65일간 열린다. 국내외 소설가 10명과 시인 1명에게서 부산에 관한 신작을 받아 문집을 발간하고, 이를 토대로 미술가 68명과 음악가 11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주최 측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전시장을 열기 전까지 온라인 콘텐츠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시감독이 부산현대미술관과 원도심 일대, 영도의 전시장을 소개하는 투어 영상을 개막식에서 공개하는 한편 문집을 부산 시민 목소리로 녹음한 오디오북, 3D 입체전시 영상, 작가 인터뷰 등을 홈페이지에 순차적으로 올릴 예정이다.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8일부터 12월 6일까지 대전비엔날레 ‘AI :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가 열린다. 한국, 미국, 독일 등 6개국 16팀이 참여해 인공지능의 진화, 인류와의 공존을 성찰하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작품 위주로 전시가 구성돼 상대적으로 비대면 관람 전환이 수월한 편이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은 “가상공간에 현실세계의 전시장을 옮겨놓은 ‘디지털 트윈 뮤지엄’을 도입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시를 병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시 패러다임의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조각비엔날레도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성산아트홀, 용지공원에서 개최된다. ‘비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를 주제 삼아 30여개국 90여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예정된 일정대로 행사를 진행하되 온라인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개막식과 국제학술콘퍼런스를 사전 녹화하고,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비대면 관람 등 현장에 가지 않고도 안전하게 전시를 즐기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여수국제미술제는 ‘해제 : 금기어’를 주제로 4일부터 10월 5일까지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다. 주제전은 국내외 초대 작가 46명, 참여전은 여수 지역 작가 41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조은정 전시감독은 “여수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이지만 전시장 천장이 높고 개방된 공간이어서 현장 관람이 가능하다”며 “동시 입장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방역과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야외 전시 위주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신 섞기 시대-또 다른 조우’는 지난달 29일 충남 공주시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서 개막했다. 11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엄마, 코로나 없어지면 나 여기 가볼래

    엄마, 코로나 없어지면 나 여기 가볼래

    어느 지역이나 소리 없이 강한 것들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인파가 몰리는 유명 관광지보다 외려 덜 알려진 곳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이런 강소형 관광지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충북 충주에 그런 공간이 몇 곳 있다. 조만간 명소 반열에 올라설 게 분명하지만 대부분 ‘신상’ 여행지들이어서 아직은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SNS 핫플’ 오대호아트팩토리 먼저 오대호아트팩토리부터. ‘오대호’란 이름을 처음 듣는 이들은 대부분 미국의 오대호를 떠올린다. 그래서 굉장히 너른 호숫가에 조성된 공간을 흔히 연상하는데, 사실은 폐교된 능암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오대호아트팩토리는 국내 정크아트 1세대로 꼽히는 ‘오대호’ 작가의 갤러리 겸 체험 공간이다. 정크아트는 버려진 것들을 활용해 만든 조형미술 작품을 뜻한다. 한때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최근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소형 작품 전시와 체험 공간으로, 뛰어놀던 운동장은 대형 작품 전시장 겸 온갖 탈것이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버려진 공간에 정크아트 작품들이 들어섰으니 그 무대에 그 작품인 셈이다. 문을 열자마자 한국관광공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에 선정되더니 곧이어 한국의 언택트 관광지 100선, 11월에 가 볼 만한 곳(2019) 등에 거푸 이름을 올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핫플’로 떠오른 건 당연지사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이라 초등학교 등 단체 체험객 수는 격감했지만 오히려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겐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1300점 정도다. 폐차로 만든 대형 로봇, 녹슨 못으로 만든 고슴도치 등 다양하다. 작품엔 하나같이 이름이 없다. 왜 그럴까. 언제 아이들 손에 부서질지 몰라서다. 여느 갤러리와 달리 오대호아트팩토리에선 아이들이 전시 작품을 마음껏 만져도 된다. 부수지만 않으면 된다. 주인장은 외려 “부숴도 좋으니 다치지만 말라”고 걱정이다. 고궁 잔디밭에 발가락만 얹어도 경비원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세상인데, 이런 놀이터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적당히 만든 것도 아니다. ‘쓰레기 같은 것들’을 이어 붙여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나하나, 정교하게. 그 덕에 버려진 폐교에 다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맴돌기 시작했다. 버려진 것들의 반란은 이렇듯 유쾌하다. 오대호아트팩토리의 강점 중 하나는 탈것으로 쓰이는 정크아트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두발자전거에서 네 바퀴 자동차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탈것 대부분은 아빠의 노동을 ‘강제’하는 것들이다. 힘에 부칠 수도 있겠지만 부디 하루 정도는 온전히 아이들의 슈퍼맨이 돼 주시길.‘사진 맛집’ 활옥동굴 SNS ‘사진 맛집’을 꼽자면 ‘활옥동굴’을 빼놓을 수 없다. 1919년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활석광산을 재활용한 공간이다. 7080세대에겐 교실 마룻바닥 닦을 때 쓰던 ‘곱돌’을 캐던 곳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 최대 활석광산이었던 활옥동굴은 ‘중국제’ 활석이 밀려들면서 2018년 문을 닫게 된다. 이후 활석광산을 인수한 기업이 광물 채광을 중단하고 동굴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업태도 완전히 변경됐다. 현재 개방된 동굴 길이는 1.8㎞ 정도다. 전체 동굴 길이 55㎞에 비하면 아주 짧은 구간이다. 동굴 내부는 거무튀튀한 여느 동굴과 달리 밝고 은은한 느낌이다. 동굴을 이루고 있는 백운석 등이 밝은 우윳빛이기 때문이다. 동굴 안에는 와인저장고, 건강테라피 시설 등이 조성돼 있다.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은 밝은 조명으로 화려하게 꾸민 ‘음악실’,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들이 빛을 내는 ‘해양세계 빛의 공간’ 등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동굴 호수에서 즐기는 카약 체험이다. 밑창이 투명한 카약을 타고 동굴 내부에 형성된 커다란 호수를 돌아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동굴 내부는 꽤 쌀쌀하다. 평균기온 13도. 와인셀러 내부 온도와 비슷하다. 겨울에는 외투를 벗어야 할 정도로 따뜻하지만 반팔 차림의 여름철엔 한기가 느껴질 만큼 차다. 동굴 입구에서 긴팔 옷을 대여해 주지만 태부족이다. 특히 노약자의 경우 긴팔 옷은 필수다. 건장한 남성이라도 연인에게 멋진 포즈로 겉옷을 벗어 주려면 얇은 재킷 하나는 가져가는 게 좋겠다.탄금호 하류 중앙탑사적공원 탄금호 하류 쪽의 중앙탑사적공원은 ‘중원문화의 꽃’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을 중심으로 조성된 복합 공원이다. 남한강변을 따라 중앙탑과 26점의 조각 작품, 조형미술 작품 등이 펼쳐져 있다. 중앙탑공원은 밤에 찾는 게 좋겠다. 경관 조명이 켜지면서 낮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중앙탑 옆의 탄금호 무지개길이 특히 인기다. 물 위에 설치된 1.4㎞ 길이의 구조물인데, 요즘 충주를 대표하는 SNS ‘핫플’ 중 한 곳으로 떠올랐다. 밤에 경관 조명이 켜질 때 특히 아름답다. 남한강 상류의 삼탄(三灘)은 자태가 수려해 ‘충북의 동강’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충주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이 여름이면 찾아가 물놀이를 즐길 만큼 꽤 알려진 관광지이지만 외지인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게다가 지난 장마 때 입은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적다. 삼탄유원지에서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삼탄역이다. 수해 후유증으로 기차는 멈춰 섰고, 플랫폼엔 새소리, 물소리만 가득하다. 적요한 공간에선 조용히 쉬는 게 제격이다. 강변을 천천히 산책하며 족욕을 즐겨도 좋고, 조약돌을 주워 물수제비뜨는 것도 좋겠다. 삼탄유원지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하류 쪽으로 가면 산자락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물놀이터가 펼쳐진다. 특히 마곡리와 구곡리 구곡교 일대는 어느 유원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글 사진 충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삼정면옥은 충주에선 드물게 슴슴한 평양냉면을 내는 집이다. 육수는 개운한 편. 다만 면이 구수한 맛이 덜해 충주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반면 돼지고기 수육은 ‘엄지 척´ 할 정도로 맛있다. 충주 시내 관아골목에 있다. 충주에선 ‘회’ 하면 송어회로 통한다. 송어회에 채소 얹고 콩가루 뿌린 뒤 초장 넣고 썩썩 비벼 먹는 송어비빔회 돌풍을 일으킨 곳이기 때문이다. ‘들림횟집’, ‘황금송어’ 등 스무 곳이 넘는 송어회 식당이 영업 중이다. -중앙탑사적공원의 경관 조명은 밤 11시까지 운영된다.
  • 조각상인 줄 아셨나요, ‘속살’은 주전자입니다

    조각상인 줄 아셨나요, ‘속살’은 주전자입니다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는 신라인의 의복과 말갖춤 등을 정교하게 표현한 신라시대 대표 문화재다. 말을 탄 사람을 형상화한 장식용 조각처럼 보이지만 용도는 주전자다. 말 등에 있는 깔때기 모양 구멍에 물이나 술을 넣으면 말 가슴의 대롱으로 따를 수 있다. 담을 수 있는 액체의 양은 240㏄.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감춰진 내부 구조와 기능을 밝혀낸 건 컴퓨터 단층촬영(CT)이다.국립중앙박물관은 보존과학 측면에서 문화재를 깊이 있게 다루는 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를 온라인으로 먼저 개막했다.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 등 총 67점이 출품됐다. 전시는 1부 ‘보이는 빛, 문화재의 색이 되다’, 2부 ‘보이지 않는 빛,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3부 ‘문화재를 진찰하다’로 이뤄졌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리구슬은 엑스선 형광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산화나트륨을 융제로 사용한 소다유리로 확인됐다. 다양한 색상을 나타내기 위해 청색·주황색·적색은 구리, 황색·녹색은 납, 자색은 철과 망간 성분의 착색제를 사용한 점이 밝혀졌다. 조선시대 목조석가불좌상의 복장물도 CT로 확인했다. 표면의 금박이 심하게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이 심각한 불상 안에서 종이와 직물, 후령통(복장물을 담는 통) 등 다양한 복장물이 발견됐다. 복장물은 불상을 만들 때 가슴에 넣는 물건으로, 주로 금과 은, 칠보 같은 보물과 서책 등을 넣는다. 박물관은 “특별전 준비는 끝마쳤으나 코로나19로 박물관이 문을 당장 열 수 없어 초·중학생에게 꼭 필요한 영상 자료를 온라인으로 우선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go.kr) 특별전시 코너에서 볼 수 있다. 박물관 재개관 시 특별전시실에서 11월 15일까지 진행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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