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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속 문화공간’ 지하철

    ‘생활속 문화공간’ 지하철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생활속 문화공간입니다. 하루평균 632만명이 드나들며 재즈에 취하고 명화에 흠뻑 빠집니다. 자치구 현장민원실을 찾으면 인터넷과 책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지요. 이색 결혼식장으로 깜짝 변신하기도 한답니다 30년간 지하철이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소리가 끊이질 않고, 의자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자주 만납니다. 내리기도 전에 몸을 밀치며 먼저 타려는 승객들로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습니다. 지하철 마니아들은 우리 지하철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뉴질랜드는 개찰구에서 표를 확인해 번거롭고, 프랑스 파리는 문을 직접 열고 닫아야 해서 내릴 역을 지나치기 쉽답니다. 중국은 덜컹거리고 소음이 심하고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지하철, 올해는 문화시민답게 이용해 봅시다. 해질 무렵 한강철교위를 질주하는 열차의 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희망을 읽어 봅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녹사평역에서 행복한 새출발 이색적인 결혼식을 꿈꾼다면 6호선 녹사평역으로 달려가 보자. 국내 유일의 지하철 결혼식장이 그 곳에 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수현 부역장은 “교통이 편리하고,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시설이 완벽해 장애인에게 더없이 좋은 예식장”이라고 자랑했다. 서울시 건축상 동상을 받은 곳이라 볼거리도 다양하다. 녹사평의 특징은 자연광이 지하 5층까지 오롯이 비추는 원통형 구조라는 점이다. 천장이 돔형(지름 12m)이라 은은한 빛이 하루 종일 역사를 감돈다. 지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유리로 만들어 바닥까지 반짝인다. 햇빛 만큼이나 화사한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웃음을 머금은 신랑에게 내려가는 길이다. 층마다 매단 청사초롱이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182인치 대형 멀티비전에선 신랑, 신부의 성장 모습이 상영된다. 결혼식장은 에스컬레이터를 가운데로 둔 원형이다. 규모가 1520㎡(460평)라 출장 뷔페를 부르면 식장 반대편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평소엔 갤러리로 활용되는 터라 하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폐백실, 신랑·신부대기실도 모두 공짜다. 역사를 꾸미는 비용은 이벤트 회사와 따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녹사평의 또다른 볼거리는 이색 벽화다. 작가 최범진·안혜경씨가 색상 유리로 만든 ‘교렴(轎簾)’과 ‘상생(相生)’은 빛과 색을 조화시킨 작품이다. 교렴은 전통적인 조각보의 느낌을 살렸고, 상생은 손을 맞잡아 새로운 화합을 표현했다. 덕분에 영화,TV,CF, 뮤직비디오, 각종 잡지의 단골 촬영장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말아톤’‘와일드키드’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 50여곳선 흥겨운 공연활동 24일 오후 6시, 지하철 7호선 이수역 공연장. 록밴드 ‘아수라’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부르고 있다. 보컬의 목소리가 역사를 뒤흔들고, 연주자는 시린 손을 털어가며 기타와 드럼을 두드린다. 찬 바람이 지하 1층에 자리한 공연장까지 그대로 불어왔다. 퇴근길 시민들이 공연장 앞에 멈췄다. 락밴드의 화려한 음악과 몸짓에 눈길을 빼앗긴 탓이다. 여중생들은 ‘보컬이 꽃미남’이라며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회사원 박영석(35)씨는 “대학 축제 때 이후로 록밴드 공연을 본 적이 없다.”면서 “오랜만이라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그러나 이봉학(71) 할아버지는 “시끄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같은 날 오후 1시30분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자신을 ‘산해’라고 소개한 안중신씨가 통기타를 치며 고 김광석씨의 노래 ‘일어나’를 부르고 있다. 하모니카 연주까지 이어지자 탄성이 나왔다. 박수를 친 관객들은 1000원짜리를 꺼내 기타 케이스에 집어넣었다.2004년 10월부터 지하철에서 공연하는 안씨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멈춰서서 감상하는 시민들이 참 고맙다.”면서 “지하철 공연은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는 포크송, 남미민속음악, 록밴드, 응원퍼레이드, 섹스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매일 펼쳐진다. 주말에는 더욱 다채롭다. 사단법인 서울지하철문화연구원 등이 오디션을 통해 뽑은 예술가들이 지하철 50여곳에서 활동한다.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도시철도공사(www.seoulmetro.co.kr)에서 공연자와 공연장소·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 곳곳에 미술품 상설전시장 지하철역이 갤러리로 거듭났다. 벽화에 더해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곳곳에 생겼다. 대표적인 곳이 3호선 경복궁역 지하 1층에 자리한 서울메트로미술관.400평 규모로 전시면의 크기는 가로 4m, 세로 2m. 전시관은 1,2관으로 나뉘어 있고, 중간에는 출입문을 설치해 미술품 도난을 방지한다. 24일 찾은 미술관에선 ‘서울체신청 100주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공간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져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과 측면에 달린 조명이 은은하게 작품을 비췄다.CCTV와 함께 공익근무요원이 전시장 주변을 맴돌며 도난을 방지하고 있었다. 사진을 감상하던 주부 이정녀(49)씨는 “편지를 써놓고 우편 배달부를 애타게 기다리던 옛 생각이 떠오른다.”면서 “전시장 덕분에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짜증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지하철 전시장이 일상생활을 여유롭게 해준다는 얘기다. 딸 이소희(8)양과 함께 방문한 직장인 김인수(여·36)씨도 전시장이 만족스럽다고 했다.“바빠서 아이와 문화생활을 즐기기 쉽지 않는데 지하철 갤러리는 오가며 자주 찾게 된다.”면서 “다양한 미술품이 많이, 자주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볼륨을 높인 TV 소리가 아쉬웠다. 서울시내 교통정보를 들으며 미술품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4호선 혜화역에 위치한 혜화전시관은 아기자기하다.1층 대합실에 유리담장으로 구분해 조성한 57평 규모.50여점을 전시할 수 있다. 5호선 마포, 광화문역,6호선 녹사평역,7호선 이수역,8호선 몽촌토성역 등에도 상설전시장이 있다. ■ 지하철에도 지름길 있다 ‘2호선을 타고 한번에 갈까? 중간에 4호선으로 갈아탈까?’ 지하철 노선이 얽혀있다보니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기 전에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고민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좋은 방법은 경험자들로부터 도움말을 듣는 일이다. 이마저도 안된다면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도시철도공사(www.seoulmetro.co.kr)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환승 시간까지 계산해 최단 거리를 알려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경험담이 최고다. 서울의 ‘동서남북’에 살며 시청 인근 도심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4명으로부터 생생한 지하철의 지름길을 들어봤다. ●목동에서 시청까지 서울 서쪽 양천구 목동에 사는 조모(38)씨는 갈아타기가 귀찮아 5호선을 이용,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요즘에는 신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에서 내린다. 직장이 시청 인근이어서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출퇴근 시간이 5∼10분정도 빠른데다 요금도 100원 저렴하다. 목동에서 시청까지 가는 방법은 모두 3가지.(1)목동∼광화문까지 5호선을 타는 방법.(2)목동∼신길(1호선)∼시청 (3)목동∼영등포구청(2호선)∼을지로 입구. 시청을 기준으로 광화문, 시청역은 지하철 맨 앞칸, 을지로역은 맨 뒤칸에 타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노원역에서 시청까지 서울 북쪽 노원구 상계동에서 사는 이모(43)씨.4호선 노원역에서 출근을 시작한다. 그리고 환승노선에 따라 길이 2가지로 갈린다. (1)노원역∼동대문역(1호선)∼시청역과 (2)노원역→동대문운동장역(2호선)→을지로입구역 (1)코스와 (2)코스의 경우 승차시간은 45분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1)코스는 동대문역에서 환승거리가 길다. 게다가 혼잡하다.(2)코스는 동대문운동장의 환승거리가 짧지만 을지로역에서 시청 인근 회사까지 좀 긴 편이다. 전체적으로 (2)코스가 2∼3분 빠르다. 이씨는 4호선 노원역 신문판매대에서 한 칸 뒤쪽에서 탄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내리면 에스컬레이터가 바로 앞에 있다.2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는 전철 진행방향 가장 앞쪽에서 타면 을지로입구역 계단과 만난다. ●방배역에서 시청까지 서울 남쪽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30)씨는 2호선 방배역∼사당역(4호선)∼서울역(1호선)∼시청역으로 다녔다. 시간은 36분.2호선 방배역∼시청역 코스보다 13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동료직원 고모(29)씨에게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리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차한 뒤 역사 밖으로 나오는 거리가 절반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맞았다. 방배역에선 여섯번째 칸, 첫번째 문에서, 사당역에서 맨 앞 칸에서 타면 갈아탈 때 가장 빠르다. 특히 환승자가 많은 사당역에선 인파의 앞 부분에 서야 편하다. ●오금동에서 시청까지 이모(31)씨가 서울 동쪽 송파구 오금동에서 시청까지 오는 방법은 2가지다.(1)버스∼잠실역(2호선)∼을지로입구역 (2)방이역(5호선)∼광화문역이다. 이씨는 첫 번째 방법을 선호한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잠실역까지는 20여분, 지하철로 잠실역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는 28분 걸린다. 방이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36분 소요된다. 그러나 집에서 방이역까지는 13분, 광화문역에서 시청까지는 10분을 걸어야 한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청까지는 도보로 5분이면 충분하다. 출퇴근시간의 지하철 배차간격도 2호선은 2∼3분인 반면 5호선은 5∼6분이다. 모두 감안하면 첫번째 방법이 두번째보다 5∼10분 정도 덜 걸리는 셈이다. 더구나 5호선이 2호선보다 더 붐빈다. 시청을 향한다면 2호선이나 5호선 모두 앞쪽에 타는 게 좋다. 서울시청팀종합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명당’ 잡으면 10분을 아낀다 지하철에도 ‘베스트 포지션’이 있다.‘아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만 골라탄다. 바로 환승역과 가장 빨리 연결될 수 있는 열차 위치다. 어떤 문으로 내리느냐에 따라 목적지 도착 시간이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10분은 하루를 좌우할 만큼 가치있다. 당신의 황금같은 10분을 위해 서울인이 베스트 포지션을 공개한다. 지하철 1호선이나 3∼8호선을 이용하다가 2호선으로 갈아탄다면 열차 앞쪽이나 끝쪽이 베스트 좌석이다. 시청역에서 1호선 인천·천안행을 탔다가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의 첫번째 칸 첫번째 문에서 내리면 좋다.2호선 환승구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반대로 의정부북부행에서 2호선으로 가려면 열차 마지막칸 마지막문 앞에 서면 된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 동대문운동장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도 열차의 맨 앞 또는 가장 끝부분이 베스트 좌석이다. 사당행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는 열차 마지막칸 마지막 문이, 오이도행 4호선에서는 첫번째 열차 첫번째 문이 빠르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승강장 중간쯤에서 탑승해야 한다.1호선 인천행 열차를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바꾸어 타려면 뒤에서 네번째 칸 두번째 문, 의정부북부행에서 갈아타려면 네번째 칸 네번째 문을 이용하면 빠르다. 지하철 3개선이 한꺼번에 있는 종로3가역과 왕십리역은 매우 혼잡하고 환승구간이 길기 때문에 베스트 포지션을 알아두면 특히 유용하다.1호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이나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무조건 여섯번째 칸 첫번째 문앞에 서는 것이 좋다. 반면 3호선 종로3가 역에서 1호선으로 빨리 갈아탈 수 있는 베스트 포지션은 다소 복잡하다.3호선 수서행 열차에서 1호선 인천·병점행 열차로 빨리 갈아타려면 첫번째 열차 첫번째 문을,1호선 청량리행 열차에 타기 위해서는 두번째 열차 두번째 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반대로 3호선 대화행 열차에서 인천·병점행 1호선을 타려면 가장 마지막 열차 마지막 문을,1호선 청량리행에 타려면 아홉번째 열차 두번째 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지하철 5호선 상일동·마천행 열차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1·3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 맨 앞칸에 타는 것이 좋다. 반대로 방화행 열차에서 1·3호선으로 바꾸어 타려면 맨 마지막 열차 마지막 문을 이용하면 가장 빠르다. ■ 1호선 동묘앞역 안전·편리 최우수 지난해 12월21일 개통된 1호선 동묘앞역은 새로운 개념의 역사다. 이용이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게 설계됐다. 우선 기능실을 지상으로 올려 지하를 말끔히 정리했다. 그래서 6호선까지 환승거리가 45m에 불과하다. 에스컬레이터 16대와 엘리베이터 8대, 장애인 전용 게이트를 만들어 장애우, 노약자가 불편 없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승강장 바로 옆에 화장실을 배치한 것도 작은 배려다. 개찰구도 승강장과 맞붙어 오가기 편하다. 안전시설은 정교하다. 승강장과 대합실을 불연소재를 마감하고, 계단 부근에 제연수막을 설치해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았다. 승객대피 유도등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음성안내기를 마련해 비상시를 대비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차단된다. 불이 위층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승강장을 2배로 넓혔다. 종합화상감시시스템을 도입해 역무실에 CCTV 48개를 한꺼번에 보며 승강장을 관리한다. 문철현 역장은 “동묘앞역은 ‘안전하고 편리한 지하철’을 말 그대로 실천한 새로운 역사”라고 강조했다. 역사의 또 다른 변화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4호선 숙대입구역와 삼각지역이 깨끗한 화장실로 명성을 얻자 서울메트로 강경호 사장이 1∼4호선 전 역사의 화장실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24일 삼각지 화장실 입구. 무가지와 잡지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자화장실에는 화장대와 아동용변기, 기저귀대, 숙녀용 비데가 마련돼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까지 눈에 띈다. 겨울이라 화분은 역무실로 옮겼지만 작은 화분과 시계가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장실 개선을 주도한 삼각지 영업사업소 황춘자 소장은 “화장실이 깔끔해져 기분까지 상쾌해 졌다는 시민을 자주 만난다.”면서 “작은 변화가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 하루 632만명, 한해 22억명 수송 연간 22억명을 수송하는 서울지하철은 서울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규모면에서 세계 3∼4위를 다툴 정도로 선진 지하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에서 운영하는 서울지하철은 1974년 8월15일 1호선이 개통한 이래 30여년 동안 양적·질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알고 타면 더 유익한 지하철에는 재미있는 통계가 살아 숨쉬고 있다. 수송인원은 하루평균 632만명을 수송, 연간 22억명에 이른다. 이는 하루 32만명에 불과하던 30년전에 비해 무려 27배가 늘어난 것이다. 서울지하철은 모스크바 33억명과 도쿄 26억명에 이어 세계 3위다. 영업거리는 286.9㎞로 30년전 7.8㎞에 비해 36배나 늘어났다. 이는 런던 415㎞, 뉴욕 368㎞, 도쿄 292㎞에 이어 세계 4위다. 서울지하철 역사는 30년전 9개 역사에서 1∼4호선 117개,5∼8호선 158개 등 모두 265개 역사로 29배 증가했다. 전동차량 수도 60량에서 3505량으로 59배 증가했다.2호선 본선과 1·3·4호선은 편성당 10량이다.5·6·7호선은 8량,8호선은 6량으로 구성돼 있다.2호선 지선인 성수∼신설동 구간은 편성당 4량이며, 신도림∼까치산역 구간은 6량이다. 한량의 길이는 20m로 내구연한 25년이 지나면 폐차시킬 수 있다. 지하철 1량의 탑승정원은 160명이지만 최고 400명까지 탈 수 있다. 최고 운행속도는 1∼4호선이 시속 110㎞이며,5∼8호선은 80㎞다. 가장 깊은 역은 8호선 산성역으로 지하 60m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짧은 역간 길이는 5호선 행당∼왕십리 구간으로 552m이며, 가장 긴 곳은 3호선 삼송∼원당 구간으로 5㎞에 이른다. 전철은 평택∼성환 구간이 9.4㎞다. 지하철역 중 가장 많은 출입구를 가진 역사는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 3가역으로 출입구가 16개나 된다. 역무원 수는 4139명이다. 서울메트로 2380명, 도시철도공사 1759명이다. 하루 수익금만도 31억여원에 이른다. 1∼4호선의 전력사용량은 연간 8억 8000㎾, 한달 7360만㎾로 연간 655억원으로 한달 평균 55억원이 전기료로 들어간다. 이는 서울시 전체 전력사용량의 2.7%이며, 인구 14만여명이 거주하는 김포시나 구리시 전체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다. 지하철 1㎞를 운행하는 데 1998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전기료로만 운임수익의 약 10%가 쓰여진다. 지하철 전기는 71%가 전동차 운행, 전동차 내부조명, 에어컨 가동 등에 쓰이며, 나머지는 역사조명과 에스컬레이터, 환기시설 가동 등에 사용된다. 2005년 지하철 1∼4호선의 유실물은 하루평균 74건, 연간 2만 6846건으로 한해 접수된 유실물의 70.2%인 1만 8850건이 본인에게 인계됐다. 유실물 중에는 가방이 전체 28.9%인 777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휴대전화와 MP3 등 전자제품이 12.3%(3305건), 의류 11.1%(2981건) 등의 순이었다. 현금도 7.9%(2145건)로 액수로 따지면 3억원에 달했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량은 5∼8호선의 경우 하루 15t에 이르는데 연간 5475t의 쓰레기가 나오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하로 들어간 구청 민원서비스 지하철 현장민원실의 대민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강남·서초·노원·동작·양천구청 등 25개 구청에서 운영중인 지하철 현장민원실에서는 각종 민원서류 발급 뿐만 아니라 도서 대여, 인터넷 이용, 휴게실, 공부방, 어학강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민원서류 발급. 직장인들이 50여개 역사에 있는 현장민원실이나 무인민원발급기에서 주민등록등초본 등 일선 동사무소에서 발급되는 대부분의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운영시간은 구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양천구청(구청장 추재엽)은 양천구청역과 신정네거리역, 목동역 등 3곳에 민원서비스와 함께 도서대여점을 운영한다. 하루 민원처리 건수는 하루 평균 100∼200건 정도로 이용객의 대부분이 출퇴근 직장인들이다. 역별로 2000여권의 도서를 배치해 무료도 대여해 주고 있다. 특히 차별화된 구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역사내에 도서방, 문화의집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노원구청(구청장 이기재)은 지하철 7호선 마들역에 ‘문화의집’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어학강의와 문화교실, 어린이 놀이방, 인터넷 이용시설, 휴게실 등을 제공, 구민들이 주말에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하루 평균 100∼120명이 이용한다. 공부방에는 지하철 이용객은 물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컴퓨터 교실과 노래교실, 서양화교실, 한문교실, 서예교실 등 13개 강좌가 매일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 지하철 타고 고궁여행 “진분홍 연꽃을 물에 띄우고, 금으로 장식한 배로 봉래궁(蓬萊宮)에 이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이 경복궁 경회루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지금은 연꽃도, 금으로 장식한 배도, 봉래궁도 없지만 조선시대 왕들이 노닐던 장소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하철 티켓 한 장이면 그 곳들을 손쉽게 갈 수 있다. 서울시내에서 역사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지하철역 주변의 명소를 소개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풍류 경복궁(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건축한 조선시대 정궁(正宮). 광화문의 해태조각상,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방위신상, 경회루 다리 및 영제교의 석교에 설치된 석조조각물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조각 미술품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경회루 방지(方池)는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침전의 서쪽과 연결됐으며 잔치도 하고 뱃놀이도 즐기며 때로는 외교사절을 영접하던 곳이다. 규모는 남북 113m, 동서 128m에 이른다. 1506년 연산군 시대 기록을 보면, 방지 서쪽에는 만세산(萬歲山)을 만들어 화려한 꽃을 심고 금·은·비단으로 장식한 봉래궁(蓬萊宮), 일궁(日宮), 월궁(月宮) 등 작은 궁궐을 만들었다. 왕은 황용주(黃龍舟)라는 작은 배를 타고 만세산(萬歲山)을 오고 갔으며, 때로는 비단꽃을 물 위에 띄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밤이 낮같이 밝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통합요금권 3000원(성인 기준) 한 장이면 경복궁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조선 왕실의 유물 4만여점이 전시된 국립고궁박물관도 함께 둘러 볼 수 있다. ●왕이 거닐던 정원 둘러볼까 창덕궁(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은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었다. 경복궁 주요건물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했다.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자·연못·담장·다리 등을 설치해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창덕궁은 현재 남아 있는 궁궐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돼 있고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언어권별로 정해진 시간에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일정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다. 창덕궁 건너편의 종묘(1·3·5호선 종로3가역 8·11번 출구)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심 속에 숲으로 둘러싸여 엄숙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길 걸으며 문화의 향기 덕수궁(1호선 시청역 3번 출구,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는 곳으로 구한말 수많은 시련의 역사를 간직한 궁이다. 아관파천의 장소였던 옛 러시아공사관과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국중유물전시관과 덕수궁미술관이 있으며, 대한문에서는 월요일을 빼고 매일 수문장 교대의식이 열린다. 덕수궁 돌담길 건너편의 서울시립미술관도 볼거리다. 현재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3월 5일까지)’‘박노수 기증 작품전(2월 19일까지)’‘천경자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는 한국화단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로 남정의 작품세계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풍경 등을 모티브 삼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실험도 선보이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울역사박물관(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이 나온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보여 주는 대표적인 도시 역사박물관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과학·생활·놀이 문화 등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실전 논술] 윤리의 발생과 존속

    ●다음 글의 저자는 윤리의 발생과 존속에 대하여 특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자의 입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공평 무사함에 대한 예찬과 그 기원 서로 이웃한 두 명의 족장 사이에 수 년 전부터 불화가 있어서, 그들은 서로 씨앗을 파헤치고 가축을 훔치며 집을 불태웠는데 전체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힘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영토가 동떨어져서 이 싸움에 휩쓸려들지 않았던 제 3의 족장은 이 호전적인 두 족장 중에서 한쪽이 결정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날이 올 것을 염려하여, 결국 양자 사이를 호의와 친목으로써 중재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 때부터 평화를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는 자신과 상대방이 합세하리하는 것을 각각에게 암시함으로써 은근히 자신의 협상안을 강요했다. 그래서 양자는 그 앞에 모여 여태껏 증오의 도구이며 또한 빈번히 그 증오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자신들의 손을 망설이며 그의 수중에 맡겼다. 그리하여 실로 그들은 성실하게 평화를 추구하려 애썼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복지와 쾌적함이 갑자기 증대했다는 것, 이웃은 더 이상 음험하거나 조롱을 하는 악인이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상인이라는 것, 심지어는 뜻밖의 재난이 닥치면 지금껏 그래 왔듯이 이러한 이웃의 곤경을 이용하거나 그것을 최고도로 높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 재난에 대해 상대방을 구제해줄 수 있다는 것 등등을 놀라워하면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흡사 두 지방에 사는 부족인들은 그 이래로 아름다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눈이 밝아지고, 이마의 주름살도 없어졌으며, 모두가 자신의 미래를 신뢰할 수 있게 된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있어 이러한 신뢰보다 더 쓸모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매년 동맹일에 다시 만났다. 족장과 그 부족민들 모두가, 더욱이 그 중재자의 앞에서 모였던 것이다. 그 중재자 덕분으로 얻게 된 이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중재자의 방식을 경탄하며 존경해 마지않았다. 그들은 중재자가 ‘공평 무사’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 후 자신들이 모으게 된 이익에만 너무도 몰두했던 나머지 그 중재자인 이웃의 행실을 보지 못하여 그의 상태는 중재 이후에도 그전의 상태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몰랐기 때문이다. 즉, 그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므로 그가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기라도 한 듯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공평 무사함을 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경우에서 그 때까지 그와 유사한 일이 종종 일어났음에도 그들이 그런 일이 덕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그것이 처음으로 전 부족들이 볼 수 있도록 아주 큰 글씨로 벽에 쓰여졌을 때 이후의 일인 것이다. 도덕적 특성은 그것이 ‘가시적’으로 전 사회의 행·불행을 결정한 그 순간에야 비로소 덕으로 인식되고 명명되며 존중되고 함양하도록 권유를 받게 된다. 즉, 그럴 경우엔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정의 높이라든가 내면적 창조력의 흥분은 너무 엄청나서 그들은 각각 자신이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이러한 특성에 부여한다. 즉, 엄숙한 자는 자신의 엄숙함을, 기품 있는 자는 기품을, 여인들은 온화함을, 청년들은 자기들 본질에 가득 차 있는 온갖 희망과 미래를 그 도덕적 특성의 발치에 놓는다. 시인은 그것에 언어와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을 유사한 계열에 넣어 혈통을 주고, 최후에는 예술가들이 하듯 자기의 상상이 창조한 형상으로 새로운 신격으로서 숭배하는 것이다. 그는 숭배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것은 하나의 덕이 된다. 만인의 사랑과 감사가, 마치 조각상에 그러하듯, 그것에 작용하여 결국에 가서는 훌륭한 것과 숭배할 만한 것이 ‘결합’하여 일종의 신전인 동시에 일종의 신적 인격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 후 덕은 유일한 덕으로서, 즉 이전과는 다른 독립된 존재로서 서게 되는 것이며, 신성시되는 초인간성으로서의 권리와 권력을 행사한다. 윤리와 윤리적인 것 도덕적·윤리적·윤리학적이라는 것은 오래 전에 설정된 규율이나 관례 따위에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고통스럽게 기꺼이 복종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으며, 복종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랫 동안 유전되어 온 천성에 의하여 윤리적인 일을 쉽고도 기꺼이 해치우는 사람(예컨대 고대 희랍인에게 있어서처럼 복수하는 일이 선한 윤리에 속해 있을 때 복수를 해치우는 사람)을 ‘선하다’고 한다. 그는 ‘무엇엔가’ 선하기 때문에 선하다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호의와 동정심 같은 것들은 윤리의 변천 속에서도 늘상 ‘무엇엔가 선한 것’으로, 유용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로 호의적인 사람, 자비심이 많은 사람을 ‘선하다’고 한다. 악은 ‘윤리적이지 않은 것’, 비윤리를 저지르는 일, 그것이 이성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습을 역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을 해침은 서로 상이한 여러 시대의 모든 윤리 법칙에 있어서 대체로 해악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악하다’는 말에서 자유 의지로 이웃을 해치는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인간이 윤리와 비윤리, 선과 악에 대하여 구분을 지어 온 근본 대립은 ‘이기적인 것’과 ‘비이기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습 및 규율의 속박과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인습이 어떻게 ‘성립’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 가서는 선악이라든가 그 밖에 내재적 지상 명령(도덕 법칙)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무엇보다도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민족’의 보존이 목적인 것이다. 잘못 판단된 우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모든 미신적 관례는 인습을 강요하는데, 이 인습에 복종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 인습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위험한 것인데,‘공동 사회’의 경우가 개인의 경우보다 훨씬 유해하다. 그런데 모든 인습은 기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이 망각될수록 계속해서 존중될 만한 것으로 되어 간다. 거기에 바쳐지는 숭배는 세대가 지날수록 더 두텁게 쌓여 인습은 마침내 신성한 것이 되고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문의 분석 이 글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일부이다.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친구이자 동지였던 바그너와의 절교로 깊은 상심과 사상적 변이를 겪고 있는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니체에 의하면 도덕은 특정한 습관이나 풍습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의 준수가 유쾌함을 창출함으로써 도덕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입증한다 하더라도 도덕이 곧바로 선하다고 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도덕 및 윤리와 관련하여 대단히 파격적인 니체의 입장은 일단 상대주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나, 그의 도덕 이론을 통칭하기에 딱히 적합한 용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덕 및 윤리의 발생과 관련하여 니체가 상대주의적 외양을 띠는 것은 분명하지만, 도덕 이론과 관련하여 그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기존의 나약하고 노예적인 기독교 윤리를 파괴하고 건강하며 활기찬 초인의 도덕을 강조하는 데 놓여 있기 때문이다. ●출제의도와 생각하기 제시문에서 니체는 도덕 및 윤리가 결코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합의에 의해 우연히 창출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아울러 인습적인 힘에 의해 존속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보면 도덕 법칙은 사실 정당한 가치 척도가 될 수 없으며, 우연히 만들어져 인습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원칙들을 강제하는 체계일 뿐이다. 비교적 난해한 제시문이지만 나름대로 제시문의 입장을 요약한 다음, 거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단, 제시문의 주장에 대한 논박과 옹호가 논의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글을 써 나가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명료하게 제시하는 방법이다. 제시문이 비교적 추상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제시할 경우에는 적절한 예를 들어 접근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의 입장을 찬성한다면 니체의 주장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 도덕 규범의 예를 보여 주고, 반대할 경우에는 니체의 주장에 대해 반례가 될 만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와 관련해 볼 때 주제의 방향은 도덕에 대한 니체의 입장 검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제문은 도덕에 대한 니체의 입장이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방향과 관련하여 서론은 먼저 전통적 도덕관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문제 의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면 된다. 본론의 처음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한 전통적 도덕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자연스럽게 글을 연결해 나갈 수 있다. 이어서 도덕의 발생에 대한 니체의 입장과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 된다. 도덕 및 윤리가 합의에 의해 우연히 창출된다는 니체의 입장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논술하면 된다. 이 때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으면 자의적이거나 추상적인 주장이 될 수 있으므로 구체적 예로써 보완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본론의 마지막 부분에는 도덕의 존속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정리하면 주어진 문제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본론의 마지막 부분인 도덕의 존속에 대한 니체의 입장, 즉 인습적인 힘에 의해 존속된다는 입장에 대해서 비판하는 내용으로 마무리지으면 된다. 단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닌, 자신의 견해가 드러난 논리적 비판이어야 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패션유망주 교포 디자이너 정두리

    미국 뉴욕 패션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정두리(32)씨가 내년도 패션부분을 이끌 유망주로 뽑혔다. 뉴스위크는 최신호(26일자)에서 뉴저지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국 이민자 집안에서 자란 정씨가 뉴욕 패션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면서 내년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로 정씨를 소개했다. 자신의 의상을 ‘3차원적 조각상’에 비유하는 정씨는 “의상은 여성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으며 훌륭한 옷이란 바로 이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 의상의 특징은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선과 투명함이라고 잡지는 전했다. 4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그녀는 1995년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제프리 빈의 문하로 들어가 6년 간 일했다. 이후 부모님이 운영하는 뉴저지주 새들브룩의 세탁소 지하실에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얼마전 뉴욕 맨해튼에 개인 매장을 열었지만 아직도 부모님의 세탁소 지하실에서 보낸 4년을 잊을 수 없다. 정씨는 특히 “부모로부터 근면과 인내를 배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정씨는 지난해 미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와 패션잡지 보그지가 선정한 ‘유망디자이너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9월 정씨의 가을 패션쇼 이후 유명 고급 백화점들로부터 입점 요청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정씨 이외에 차기 영국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과 뉴올리언스 재건계획을 주도하고 있는 조지프 카니자로, 이론물리학자인 리사 랜달 하버드대학 교수 등을 내년에 각계에서 주목받을 인물로 선정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롯데월드 파라오의 보물을 찾아라

    롯데월드 파라오의 보물을 찾아라

    롯데월드가 드디어 파라오의 분노라는 새로운 놀이시설을 오픈한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고 엄청난 놀이기구이기에 ‘5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네.’ ‘10년 동안 기획하고 4년 동안 공사를 했네.’라는 여러 소문이 떠돌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공식오픈 전에 롯데월드로 달려가 체험해봤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롯데월드가 변했어요 최근 롯데월드를 가본 사람 중에 눈치가 빠른 사람은 롯데월드의 스카이라인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쪽에 갑자기 나타난 황금색의 성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곳이 파라오의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출발점이다. 어드벤처 4층부터 6층까지를 모두 사용하고 있는 파라오의 분노로 인해 롯데월드가 새롭게 보인다. ●박물관이 따로 없네 입구에 살짝 들어갔다. 처음 맞이하는 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스핑크스.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무려 1㎞에 달하는 줄서는 곳은 흡사 이집트 피라미드에 들어선 듯하다. 벽에는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유명 벽화들이 수작업으로 그려져 있고, 곳곳에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스핑크스를 비롯해, 지하 묘지를 지키는 아누비스 신상, 파라오의 황금 조각상, 미라의 관 등 1000여점의 흉상 및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굳이 이집트를 가지 않고도 다양한 이집트의 건축과 풍물을 체험할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6세대 멀티모션 다크라이더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타는 곳이야.’라는 생각을 할 때쯤 커다란 파라오의 관을 열고 들어서니 탑승장이 나온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쿠구쿵 부왕∼’하고 8인승 지프가 달려온다. 마치 장갑차를 연상케 하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파라오의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6세대 멀티모션 다크라이더’란 설명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지프가 미끄러지듯 출발하자 하얀 연기와 함께 커다란 금단의 벽이 열리며,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지프가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채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당하는 일격,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위협하는 커다란 이무기와 회오리가 세차게 불어댄다. 차의 움직임도 진짜 지프와 같은 느낌을 주고 회오리 바람 등 특수효과가 여태까지의 놀이기구들의 느낌을 확실하게 뛰어넘는다. 죽은 탐험가들의 뼈들이 곳곳에 널려 있어 동굴을 지날 때마다 차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동물들의 울음소리, 괴물들의 괴성은 두려움에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세계 최고의 다크라이더 정말 말이 안 나온다.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일본의 디즈니랜드 시보다 한수 위임이 분명하다. 죽음의 화신이 내뿜는 스모킹 링(Smoking Ring)에는 숨이 막힌다. 벽면으로는 수백마리의 거미 떼가 지나간다. 이때 무엇인가 내 얼굴을 스치며 허벅지를 만진다.“뭐얏!”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허벅지를 털어냈다.“이게 티클러예요.” 옆에서 웃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바람과 천으로 다리에 무엇인가 기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치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뒤이어 수십개의 독화살과 괴물들과 뱀들의 공격이 16채널의 음향효과와 스모그, 조명 등으로 마치 실제상황인 듯 시작된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흔들리고 소리 지르고, 무엇인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그런데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확 덮쳐온다. 강렬한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불덩이가 동굴 위에서 지프를 향해 다가온다. 지프가 갑자기 어둠 속으로 추락한다.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격고 도착한 곳이 파라오의 보물 창고. 대형 파라오의 흉상이 무서운 레이저 빛을 쏘아대며 엄청난 소리와 함께 자신의 구역에 도착한 낯선 이방인을 공격한다. 이때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벽과 천장이 무너진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구르릉 쾅’ 소리를 내며 무섭게 전체가 무너지는 곳을 지프가 내달린다. 탑승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자이로드롭처럼 짜릿하지는 않지만 재미와 스릴이 적당하게 합쳐진 놀이기구였다.21개 장면의 특수효과와 음향 등 정말 최첨단 놀이기구라는 설명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롯데월드의 새로운 명물이 탄생했음을 느꼈다. 파라오의 분노는 큐패스(놀이기구 시간예약제)를 실시한다. 롯데월드에 도착하자마자 큐패스로 예약은 필수. www.lotteworld.com,(02)411-2000.
  • 장애를 넘은 ‘비너스의 美’

    팔과 다리도 없고, 남편에게 학대까지 받은 여성이지만 앨리슨 래퍼(40)는 29일(현지시간)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영국의 구족 예술가인 래퍼는 이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으로부터 세계 여성상 가운데 성취 부문을 수상했다. 모성애와 장애에 관한 세상의 편견을 깼다는 게 수상 이유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올해로 두번째 열린 세계 여성상은 10개 부문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여성에게 상을 준다.래퍼는 팔다리가 없거나 자라지 않는 유전적 기형인 해표지증을 안고 태어났다. 생후 6주만에 엄마로부터 버려져 19년동안 정부의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자랐다. 하지만 예술가와 엄마가 되기 위한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고, 결국 성취했다.스스로를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상에 빗대 ‘현대의 비너스’라 부르며 자신의 나신을 모델로 조각 같은 영상의 사진을 찍었다.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는 임신 9개월인 그녀의 나신을 모델로 조각가 마크 퀸이 만든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다.‘내 인생은 내 손에’란 자서전을 펴냈으며, 건강한 아들 패리스를 남편없이 혼자 낳아 기르고 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고향소식/전남 장성군] ‘文의 고장’ 망치소리 요란

    [고향소식/전남 장성군] ‘文의 고장’ 망치소리 요란

    백양사의 앙증맞은 애기단풍 이파리가 파르르 몸부림치는 겨울의 길목, 산사로 들어가는 장성호 초입에선 느닷없이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눈을 들어보니 낯설지만 다가서게 만드는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시퍼런 호수를 배경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해 나그네의 발목을 붙잡는다. 명망 높은 선비를 배출,‘문(文)의 고장’으로 불리는 장성군이 북하면 쌍웅리 장성호 관광지 안에 국내 최대로 문화예술공원을 조성 중이다. 연말까지 호수 옆 7만 9000여㎡에다 48억원을 들여 고대∼조선∼현대를 넘나드는 시·서·화 작품을 대리석에 형상화한 조각공원 만들기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미 조각 작품 42점이 세워졌고 연말까지 전국 현상공모로 선정한 61점을 포함해 103점이 마저 들어선다. 조각상은 현대시 30점, 한시 26점, 글씨 11점, 국내외 그림 22점, 역사인물의 어록 13점, 준공기념비 1점 등 모두 103점이다. 예를 들면 동양화의 일문을 이룬 허백련 화백의 산수화는 큼지막한 사각형 대리석에 풍경을 찍어내듯 그대로 옮겨 조각했다. 또 한시로 이름을 날린 김인후(하서)의 자연가는 번뇌를 털고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인간의 고뇌를 대리석에 표현해 시구를 옮겨 새겼다. 현대시로는 이은상의 백암산(백양사 뒷산), 박용철의 좁은 하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박목월의 나그네, 박두진의 청산도 등 11점이 조각을 마치고 배치됐다. 한시로는 김우급의 백암산 노대암, 윤선도의 오우가 등도 조각품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글씨로는 김정희의 해서, 광개토대왕의 예서, 한호(석봉)의 해서, 양사헌의 초서 등이 마치 살아움직이는 듯 조각돼 원본보다 낫다는 평가다. 어록으로는 김구의 ‘나는 38선을 베고’, 윤봉길의 ‘우리 청년의 시대에는’ 등이 돌에 새겨져 영원한 역사교육의 자료로 자리매김됐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블링크-첫 2초의 힘/말콤 글래드웰 지음

    블링크-첫 2초의 힘/말콤 글래드웰 지음

    ●본능적 순간판단의 과정 상세히 기술 1983년 9월, 장 프랑코 베치나란 미술상이 미국 캘리포니아 폴게티 박물관을 찾아왔다. 이른바 ‘쿠로스상’으로 알려진 기원전 6세기의 대리석상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술상은 1000만달러를 요구했다. 박물관은 철저한 조사에 들어갔다. 전자현미경과 마이크로분석기, 질량분석계 등 첨단 기계와 지질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14개월간의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진품’이라는 것. 그리고 구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 석상은 얼마후 가짜임이 드러났다. 가짜 판정의 시초를 제공한 것은 박물관 운영위원이었던 해리슨이 조각상을 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쳐간 ‘무언가 미심쩍다.’는 직관적인 반발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을 지낸 토마스 하빙도 큐레이터가 덮개를 벗기는 순간 ‘새것’(Fresh)이란 단어를 떠올렸다고 후일 회상했다. 조각상은 결국 1980년대 로마의 모조품 제작소에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블링크-첫 2초의 힘’(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21세기북스 펴냄)은 이처럼 무의식중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 판단의 힘을 다룬 책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복잡한 일에 맞닥뜨리거나, 긴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솟아오르는 생각과 느낌들. 저자는 약 2초 동안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같은 순간적 판단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생각 체계를 조직화하여 의사결정 능력을 높일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사실 불과 몇 초 동안 이루어지는 본능적 판단이나 인식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하지만 꼭 그럴까?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처음 느꼈던 ‘감’이 정확하게 맞았던 적이 없는가? 이유 없이 찜찜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결국 큰 낭패를 초래한 적이 없는가? 산더미 같은 일을 섬광처럼 스치는 판단으로 처리해본 적은 없는가? ●탁월한 의사결정자들 단 두가지 요인에 초점 책은 오랜 시간을 투입하면 할수록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깨준다.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작동으로 이루어지는 순간 판단이 전문지식 못지 않게 중요함을 논리적으로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순간 판단은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Thin Slicing)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일부분만을 파악하여 결론에 이르는 방법이다. 판단을 흐리는 쓸데없는 가지들은 가차없이 쳐내고 핵심이 되는 요소들만 뽑아낸다는 것. 탁월한 의사결정자들은 덜 중요한 98가지 요인을 직관적으로 차단하고 정말 중요한 두 가지 요인에 초점을 맞출줄 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단숨에 결론까지 도약하는 뇌의 영역을 ‘적응 무의식’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묘사한 혼돈에 휩싸인 무의식과는 다르다. 최근 심리학에서도 이같은 적응 무의식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연구를 매우 중요한 분야로 여긴다. ●편견·차별로 순간판단이 치명적 오류 범할수도 책은 물론 이같은 순간 판단이 치명적 오류를 범할 수 있음도 지적한다. 특히 편견과 차별에 오염돼 있을 경우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워런 하딩의 오류’와 ‘펩시 챌린지’. 미국의 29대 대통령이었던 워런 하딩은 그의 출중한 외모에 압도당한 국민들이 나머지 본래 모습을 직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대통령으로 뽑았고, 결국 ‘최악의 대통령’이란 오명을 남겼다고 지적한다. 또 한 모금만 맛볼 때만 단맛의 펩시가 우세했던 사실을 놓친 코카콜라가 펩시와 비슷한 맛의 ‘뉴코크’를 출시했다가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맛본 사례도 소개한다. 저자는 정확한 순간 판단 능력, 즉 직관과 통찰은 뼈를 깎는 노력과 숙고, 그리고 고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즉, 순간적 판단의 힘도 교육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것. 만일 우리가 무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신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쟁하는 방식에서부터 선반 위 물건들과 입사면접 방식까지, 모두 달라질 것이라는 것. 물론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 깜빡하는 동안의 순간적인 판단이 수개월에 걸친 이성적인 분석만큼 가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1만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中 183m 마오쩌둥 동상 추진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는 높이 183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건립을 추진 중이다. 창사시는 마오쩌둥이 젊은 시절 혁명의 꿈을 키우던 쥐쯔저우(橘子洲)에 그의 신장 183㎝에 착안해 높이 183m의 조각상을 건설키로 했다고 창사만보(長沙晩報)가 최근 전했다. 마오는 창사의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이곳에서 정치단체인 ‘신민학회(新民學會)’를 조직하고 중국 공산당에 가입,1927년 추수폭동 등을 지휘한 바 있다. 창사시는 마오와 공산혁명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계획이다.연합뉴스
  •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자신의 그림을 그린 거장은 렘브란트로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1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인간적인 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말년에 그린 ‘쾰른 자화상’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오랜 불화를 견뎌낸 여유가 느껴집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다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17세기 말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입니다. 남인이었던 그는 출세길이 막혀 막막했던 심경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허울이 아닌 사실을, 시대를 녹여버릴 듯한 강렬한 눈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의 수염은 떨리는 듯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애석하게도 웃는 얼굴이 아닙니다. 여섯 차례의 이사 끝에 겨우 마련한 집. 그러나 유명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남산은 주한미군의 골프연습장에 가려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헬기 소리로 요란합니다. 일제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굴곡은 이곳에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시 희망을 힘겹게 떠올려 봅니다. 먼 훗날에도 이 땅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고백’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요. 당당하면서도 너그럽고, 가난하지 않아도 겸손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층 고고관·역사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그 곳에 있었다. 후손들에게 기록을 남긴 역사(歷史)시대의 모습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문자를 남길 수 없어 유물로만 자취를 남긴 선사(先史) 시대의 모습도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동관으로 줄지어 이어진다.1층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인 고고관과 역사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구석기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까지 한눈에 동관 1층 101∼110 전시실이 바로 고고관이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전도와 함께 일본·중국·대한민국·세계고고학의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역사부도 등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서울 암사동 출토)는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유물. 이어 ‘요령식 동검’(청동기시대·황경남도 신천 〃),‘산수무늬 벽돌’(백제·충남 부여 〃)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검은 돌처럼 바싹 말라버린 선사시대 ‘도토리’(신석기시대·경남 창녕 비봉리 〃)는 ‘갈판·갈돌’(〃·서울 암사동〃)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500년 쯤 지나면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나 배경 화면을 사고 파는 전자화폐 ‘도토리’가 나란히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이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스치며 지나간다.4∼6세기 고구려 고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는 벽화는 ‘사신도’가 대표하고 있었다. 비록 모사품이지만 청룡·주작·백호·현무의 모습은 그 시절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백제실을 대표하는 ‘백제금동대향로’(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 앞에서는 좀처럼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博山) 굽이굽이마다 상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향로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가야실에서 볼 수 있는 ‘투구’와 ‘말머리가리개’(부산 복천동 〃)는 외국 영화의 전투장비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오래 머문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아니었지만 발해실의 ‘용머리 장식’이나 ‘도깨비 기와’(중국 헤이룽장성〃)는 세상의 모든 나쁜 귀신을 쫓아낼 듯하다. 반면 두명의 부처가 함께 조각된 ‘발해불상’(발해 팔련성 〃)은 이민족도 너그러이 융합했던 민족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딸을 시집보낸 왕도 범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고관을 다돌고 나면 맞은 편 111∼120 전시실인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표적 기록문화유산인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금석문, 문서, 지도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역사관 첫 전시실인 한글실에는 한글의 과학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랜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 하노라.’며 조선 현종 임금이 궐 밖으로 시집간 셋째 딸 명양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도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밑거름이 됐던 ‘동국대전도’가 2.3배 확대돼 바닥 타일로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굽혀 살펴보면서 걸어보면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양 한반도 전체를 걷는 느낌이다.‘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도성도’ 등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옛 지도도 직접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등기제도, 노비의 경제적 가치, 조선시대의 의술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소파나 영상물 상영관 등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시설이 전시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해진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정해진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층 미술관Ⅰ·기증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서예·회화·불교회화 등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Ⅰ’과 국내·외 각계각층 213명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 있는 ‘기증관’이 있다. 특히 미술관Ⅰ에는 교과서에 실려 눈에 익은 작품들도 많아 직접 실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네? 미술관Ⅰ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 춤추는 아이, 행상, 벼타작, 담배잎썰기, 씨름도 등이 눈길을 모은다. 꽉 짜인 원형 구도에 간략한 필선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았다. 작품 크기는 30㎝ 안팎으로 아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씨름도’의 씨름꾼 옆에는 이들의 신발로 보이는 신발들이 내팽겨쳐져 있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 하나는 고급신발로 보이는 고무신이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데도 공평한 승부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경기를 보고 있다.‘허허, 저런’‘빨리 넘겨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긴박한 표정과는 달리 엿판을 매고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위를 치면서 열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얼핏보면 빛 바랜 누런 종이에 검은 잉크가 뭉개져 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면 왼쪽 하단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 오른편 상단 도원의 세계가 보인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한 것이다. 전체적인 경관은 짙은 안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잘 어우러져있다. 꿈과 현실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를 법하다. 두루말이 형태로 폭이 20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당대 지적 권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 양쪽에 자신이 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제발(題跋)뿐만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20여명의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품은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불교회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들이 모여있는 불교회화관에 들어서면 좀 더 화려해진다.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 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웅전 석가모니 불상 뒤에 놓였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석가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사실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불화의 세계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 自讚)’은 날카로움 속에서 정중함과 정성을 담아 쓴 흔적이 엿보였다.‘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에서는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나는 듯하다. ●문화재 사랑으로 만들어진 기증관 기증관은 11개실로 구성됐으며 이홍근 박병래 등 문화재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1946년 이희섭 선생이 금동불상 세 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213명이 청동기 금속공예 회화를 비롯한 국보 6점과 보물 32점 등 모두 2만 2091점을 기증했다. 특히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운영자인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등 일본인 3명도 기증자 대열에 포함돼 있어 눈에 띈다. 기증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국보 904호)를 볼 만하다. 투구는 1500년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제작됐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생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투구는 베를린 박물관이 보관하다가 1986년 뒤늦게 손 선생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 투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라 생각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3층 아시아관·미술관Ⅱ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 3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인기 유물’과 그렇지 못한 ‘비인기 유물’ 사이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봐 왔던 익숙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도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 유물도 전시 3층에는 306∼311호까지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중국·일본의 유물이 전시된 ‘아시아관’이 있으며,301∼305호까지 ‘미술관Ⅱ’에는 불상·청자·백자 등 우리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통 301호부터 관람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오면 바로 왼쪽으로 ‘아시아관’입구인 306호가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들은 306호 ‘아시아관’을 먼저 관람하게 된다. 306호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나가 301호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시아관’을 얼른 둘러본 뒤 ‘미술관Ⅱ’에서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아시아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조금 빨라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팔을 가진 부처 조각상이나, 인자해 보이지 않는 부처의 미소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 박사 수준의 설명을 해 주던 엄마들도 이곳의 잘 모르는 유물들 앞에서는 슬쩍 조용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시아관’에서 잠시 풀 죽은 엄마들은 3층 북쪽에 자리잡은 ‘미술관Ⅱ’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볼것 많고 배울것 많은 고려청자 전시실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로 가득찬 301호 불교조각 전시실을 지나면, 전시된 모든 유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숙한 금속공예(302호)·청자 전시실(303호)을 지나게 된다.304호에는 수수한 느낌의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고 305호에는 백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유물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따로 마련된 방에 모셔진 이 불상은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자체에서 풍기는 위엄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미륵반가사유상 외에도 고려청자 전시실은 관람객들의 ‘정체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사방이 온통 비취색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옮길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또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학생들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진열된 어느 것 하나 국보·보물 아닌 것이 없을 듯한데, 그 가운데서도 국보가 있고 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부터 차례로 관람하면서 올라왔다면 3층이 마지막 장소다. 특히 조선백자들이 전시된 305호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된다면, 어수선하게 관람했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손목없는 부처님…왜? “엄마, 왜 부처님 손이 없어요?” 3층을 관람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301호에 마련된 불교조각 전시실에는 많은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3개 철조불좌상의 양 손목이 없다. 공교롭게도 ‘손목 없는 불상’3개 모두 철로 만들어졌으며 앉아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첫번째 ‘손목 없는 불상’은 301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약 2m크기이며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두번째는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된 것으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며, 세번째는 10세기에 만들어져 경기 포천군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손목 없는 불상’에 대해 불상 전문가인 홍익대 김리나 교수는 “불상의 손목은 다른 곳에 비해 가늘고 몸체에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누군가 고의로 잘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불상의 손 모양새(손갖춤)는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짓는 것으로 부처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수목공원·공연장…가족나들이 ‘딱’이네 “박물관도 즐기고 공원 나들이도 하세요.” 박물관은 자칫 아이들에게는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유물에 서려 있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공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런 염려를 덜어도 될 것 같다.‘거울못’과 10만그루의 수목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이 박물관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아이도,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은 어른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연못·폭포·정원·식물원 등 눈길 박물관 바로 앞에는 도심 공원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못’이다. 거울못은 지름만 150m에 달하는 인공연못이다. 박물관을 설계한 정림건축 박승홍 건축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만나게 된다. 거울못은 성벽 모양을 한 박물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모든 물들이 한데로 모이는 저수지이자 통일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연못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연못과 박물관 정문 사이에는 언덕이 하나 있다. 박물관 정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겨울에는 거울못이 얼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열린마당’은 박물관 중심에 시원하게 배치된 수목 공원이다. 한옥의 대청마루에 해당한다.10만 그루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2호 보신각종, 보물 365호 흥법사 진공대사탑 및 석관 등이 숨어 있다.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공부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설계가의 바람이 담겼다. 박물관 왼편으로 석조물정원, 어울마당, 미르폭포 등 다양한 녹지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뒤편에도 크지는 않지만 녹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통염료식물원에서는 개암나무, 씀바귀 등이 재배된다. 그 옆으로는 의자와 잔디밭 등이 펼쳐져 있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도시락을 먹기에 그만이다. ●뮤지컬 즐기고 도서관서 책도 보고 박물관에는 공연장과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전문 공연장 ‘용’은 805석짜리 중극장이다. 서관에 있다. 박물관 안 공연장으로는 국내 최초다. 클래식,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공연도 연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지난달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금난새·정명화의 공연이 열렸다.4일부터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 연극 ‘이’, 뮤지컬 ‘러브 다이어리’ 등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점은 1층에 8석의 장애인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휠체어로 들어와서 옮겨 앉지 않고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회전무대 등 무대시설이 부족하고 완벽한 음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흠이다. 지적인 관람객들이라면 서관 4층에 있는 도서관이 제격이다.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전문 도서관이다.9만여권의 장서와 6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그러나 한 번도 ‘제 집’을 갖지 못했다. 무려 6차례나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60년 동안 타의에 의해 ‘역마살’에 시달렸다. 전쟁과 문화 홀대의 역사를 아프게 말해주는 대목이다. 국립박물관은 광복이 된 1945년 12월 경복궁 내 건물에서 정식 개관했다. 그러나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요 유물 2만여점은 부산대학교 박물관 등으로 전전해야 했다. ‘전세방 처지’는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53년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남산 분관에 자리잡았다가 55년 덕수궁 석조전에 이어 72년에는 경복궁 현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했다. 86년 박물관은 옛 중앙청 건물로 네번째 이사를 갔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96년 경복궁 사회교육원 건물로 옮겨가 지난해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은 환갑이 돼서야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마련한 셈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교통편 ●지하철 용산∼회기 국철과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정문까지 걸어서 100m도 안 된다. 박물관 입구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0분 거리다. ●버스 버스도 비교적 편리하다. 초록버스 0211번(보광동∼옥수동)이나 빨강버스 9502번(의왕 고천∼신세계백화점)을 타면 된다. 용산가족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도심순환코스)를 타도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승용차 서문으로 입장하면 된다. 주차료는 2시간에 소형차 2000원, 대형차 4000원이다.30분당 각각 500원,1000원의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단 종일 주차는 각각 1만원,2만원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개관 초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 ◆관람료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매표소에서 무료관람권을 발급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서다. 내년부터는 성인(19∼64세) 2000원, 청소년(7∼18세) 10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20인 이상 단체는 성인 1500원, 청소년 500원이다.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어린이박물관도 7∼64세까지 500원을 받는다. 6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돈을 안 내도 된다. 그리고 매달 넷째 토요일과 관람 시간 종료 1시간 전부터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국빈이나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 등도 무료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된 문화 기관 17곳 가운데 5곳을 이용하면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관람시간·입장제한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매표는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한다. 휴관일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이다. 최대 300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최대 허용인원은 1만 8000명이다. 어린이박물관은 더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9시부터 1시간30분 단위로 150명만 들어갈 수 있다. 평일에도 오전 일찍 가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관람 유의사항·편의시설 이용법 박물관 안은 당연히 금연지역이다. 음식물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와도 안 된다. 다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은 출입할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돌려 놓는 것은 상식이다. 전화 통화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다면 차라리 전화 전원을 꺼 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유물과 작품의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삼각대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몰지각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상업적 용도의 촬영도 금지돼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유물을 관람하는 값이다.1000원짜리 두 장 냈다고 제것처럼 만지면 안 된다. 혹시 아이들이 제집처럼 뛰어다니거나 유물을 손대면 따끔하게 혼을 내자. 편의시설도 꽤 갖춰져 있다. 유아나 노약자, 장애인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품보관함도 있어 가방 등을 넣어둘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PDA·MP3플레이어 이용하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최첨단 IT(정보기술) 박물관을 자랑한다. 설비시설은 물론 박물관 관리에 최신 IT 기술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PDA와 MP3 플레이어 등 개인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더욱 편리하고 상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모바일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PDA와 MP3를 갖고 전시품 앞에 서면 단말기가 전시품 위 적외선 발생장치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후 관람객들에게 화상과 음성으로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 준다. 지난해 리움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사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PDA를 켜면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언어 선택 화면이 뜬다. 이후 각각의 박물관 전시실과 관람 코스가 안내된다. 전시실이나 코스를 따라 돌기만 하면 된다. 또 세계 최초로 박물관 네비게이터 기능도 갖췄다. 관람객의 현재 위치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MP3 플레이어도 유물 소개는 PDA와 마찬가지다. 다만 네비게이션만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PDA 300대,MP3 400대를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는 각각 100대 이하만 선착순 대여하고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오전 10시만 되면 바로 동이난다. 대여료는 종일 PDA 3000원,MP3 플레이어 1000원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속눈썹, 달빛에 떨다

    속눈썹, 달빛에 떨다

    경·이·롭·다. 새 벽 두시, 난 홀로 일어나 아얼친산에 섰다. 그리고 경, 이, 롭, 다, 그렇게밖에 말 할 수 없는 내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산이, 풀 한포기 없는 산이 있을 수 있다니, 아니, 이렇게 높을 수 있다니, 이렇게 산맥을 이룰 수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냄새도 없다. 움직임도 전혀 없다. 진공 상태가 이럴까? 쿡쿡, 크고 작은 바윗돌들만 군데군데 박혀 있을 뿐, 풀 한포기 없는 모래산이 산맥을 이루고, 그 산맥의 산 어딘가에, 그 계곡 어딘가에 우리 일행이 텐트를 치고 이렇게 있다. 장대한 산맥이 우리를 담쑥 안고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상에서, 난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 무엇에게도 잡히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잡을 수 없는 바람이,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얼친산에 둘러싸여 나는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람이 되어 이곳에 한동안 머물고 싶다.’고. 그들도 바람이 되었을까? 서시. 월나라인인 그녀는 적국 군왕을 유혹하는 임무를 띠고 오나라로 보내진다. 그리고 계획대로 오나라 국왕 부차의 애첩이 되어 그를 파멸시킨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는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차를 그녀는 정말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사랑했지만 나라를 위해서 눈을 질끈 감았을까?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그녀는 누군가와 다시 진실한 사랑을 했을까? 아님, 바람이 되었을까? 당 현종. 그는 양귀비를 사랑해 자신의 나라와 그녀를 맞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양귀비 이전에 한 여자를 사랑했다. 무혜비였다. 사랑했던 그녀가 죽고 시름에 빠져 있던 그에게, 여덟째아들의 첩인 양귀비가 눈에 띠었다. 그는 아들은 변방에, 며느리는 절에 보낸다. 그리고 오년 동안 양귀비를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다. 그는 양귀비와 십여년을 꿈같이 살았다. 그러나 그후, 그는 양귀비를 처형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폭도상태의 그들에게 양귀비를 내주고, 그녀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만약 지하에서 그들 셋이 만난다면 당 현종은 누구를 옆에 둘까? 아님 바람이 되어 그냥 스쳐 지나갈까? 향비, 그녀는 청나라 건륭제의 비이다. 용모가 뛰어나고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몸에서 향긋한 향이 난다고해서 향비라는 이름이 붙은 그녀는, 원래 신장성 남부 어느곳의 공주, 혹은 왕비였다. 공주, 혹은 왕비의 나라는 청나라의 건륭제에게 멸망당하였고 향비는 포로가 되어 중원으로 끌려온다. 건륭제는 부귀영화를 약속하고 그녀를 거두려하지만, 그녀는 황제를 거절한다. 건륭제는 향비가 고향을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망향루를 지어주기도 하고, 위구르의 재료를 날라다 그녀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하는 등 온갖 정성을 들였지만, 그녀는 결국 자결함으로써 끝끝내 황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고향에서 성녀로 추앙받았다. 어쩌면 한줄기 바람이 되어 그곳을 맴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아얼친산에 둘러싸여 그 산을 바라보고 섰다. 달빛이 흐른다. 그리고 작은 바람이 일었다. 나는 속눈썹조차 움직이지 못한다. 산은 그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그대로인데, 바람은 일어났다 스러지곤 했다. 이 세상에는 없는, 듬직하고 아름다운 ‘그 사람’의 어깨 같은 아얼친 산에서 나는 사랑을 떠올린다. 함부로 부질없다 말 할 수 없는 사랑을. 그것은 ‘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아, 장대한 아얼친 산인, 그가. 8월16일 7시. 우루무치 아침 먹으러 가려는데 호텔 앞마당, 우리 차 옆에서 기웃거리는 한국인을 만났다.“아니, 여길 다 지나 오신 모양이네!” 차를 뺑뺑 돌아가며 써 놓은 우리들의 행선지를 가리키며 입을 벌린다. 인천-천진-북경-서안-난주-무위-금창-바단지린사막-주천-장예-돈황-하미-투루판-우루무치-쿠얼러-타클라마칸사막-민풍-치에머-아얼친산-거얼무-청해호-난주-은천-혹호트-북경천진-인천 “아, 예! 반 좀 지났나요?”한 보름 만에 목청 큰 한국인 아저씨를 만나니, 우리도 무척 반갑다. 김치 공장을 한다는 그 아저씨는 차 옆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김치를 한 뭉치 주고 갔다. 역시 우리는 배달민족, 한겨레다. 배급 담당은 나다.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내 손끝만 바라본다. “빨리 빨리!” 김치를 자르는 손길이 가볍게 떨렸다. 8월16일 12시 쿠얼러 가는 길 해발 0m인 사막을 지난다. 길가에 느닷없이 공룡, 말, 코끼리 모양의 조각상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석고로 만들었을까, 모습이 희다. 가이드의 말이 그것이 예전에, 수천년 혹은 수만년 아니면 수십만년 전에 해당 지역에 그 동물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라고.‘공룡?’‘코끼리?’나는 새삼스레 끝없는 모래벌판을 둘러본다 8월17일 14시 창밖의 풍경이 반복된다. 사막에서 초지로, 초지에서 다시 사막으로. 그런데 지금 창밖의 풍경을 뭐라고 해야 할까? 사막에 아름드리 고사목이 숲을 이뤘다.3000년을 산다는 호양림이다. 중국에서는 생일날 ‘이 나무처럼 오래 살아라!’라고 덕담을 한단다. 나무의 모습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기기묘묘하다. 혹시 팬터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면 이런 곳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직업병이다. 8월19일 15시 아얼친 산을 향해 사막 한가운데로 길이 뻥 나있다. 길 양쪽에는 풀이 조경되어 있고, 길 가에는 전봇대가 끝없이 연결되어 있다. “사막은 사막 그대로 놔둬야 자연보호가 아닌가요? 사막을 억지로 초지로 만들려고 하는 거, 저것도 자연 훼손이라니까요! 아, 안 그래요?” 아버지 흑기사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고 싶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마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8월20일 17시 톈산산맥을 바라보며 3000,3500,3900m…. 고도가 계속 높아진다. 멀리 톈산의 만년설이 둘러섰다. 전봇대만 늘어서 있는 황량한 사막을 지나고, 소금밭을 지나고, 유전을 지나 달렸다.8월 중순인데, 춥다. 점퍼를 두 개나 껴입고 뒷좌석에서 한참을 잤다. 눈을 떠보니 고도는 여전히 3000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의 백두산이 2744m인 것이 생각났다. 여기가 이 정도인데 저 톈산은 어떨까? 나는 눈을 들어 톈산을 바라보았다. 고선지 장군이 저 톈산산맥을 넘었다고? 그 옛날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8월21일 14시 청해호 가는 길 고도계가 고장 난 것일까? 하루 종일 달려도 고도는 3500m이다. 양을 방목하고 있는 장족 텐트를 만났다. 아줌마는 후덕하게 웃으며 자기 텐트를 열어 보인다. 유목민의 간단한 살림살이. 누가 이들을 안쓰럽다고 하는가.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우월감이다. 조심해라, 조심해라. 나는 내 자신에게 타일렀다. 8월21일 23시 청해호 도착 초대소에서 자기로 했다. 한국으로 치면 여관, 혹은 여인숙에 해당된다고 한다. 근처에 마땅한 호텔이 없기도 했고, 초대소에서도 한 번 자 보겠다는 모험심의 발로였다. 한 방에 서너개의 침대가 있고, 침대 한 개당 10위안이라는데, 전기장판까지 깔려 있었다.(성능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초대소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다. 나무 한 짐을 다 태우고 나자, 주인 아줌마가 말똥 말린 것을 가져다 인심을 썼다.‘말똥?’그러나 말똥은 역겨운 냄새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잘 탔다. 별은 또랑또랑 한 밤 내 반짝이고, 우리는 말린 말똥 한 자루를 다 태울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 어린이 문화전문지 ‘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이 있다.
  • [역세권 아파트 탐방] 문정동 삼성래미안

    [역세권 아파트 탐방] 문정동 삼성래미안

    ‘조경시설+투자가치+강남입지’서울 송파구 문정동 삼성래미안은 문정주공 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로 33·44·53·60평형 총 1696가구가 살고 있는 대단지다. 입주는 2004년 10월에 이뤄졌다.2001년 서울 5차 동시분양에서 377가구를 일반 분양할 당시 청약 경쟁률이 51.68대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모든 주차 공간을 지하로 배치했다. 때문에 지상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어 단지의 쾌적성이 눈에 띈다. 공원, 분수대, 조각상 등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단지 안이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단지와 바로 인접해 개롱공원, 두댐이 공원 등 녹지 공간도 충분하다. 가격은 많이 올랐다. 최초 분양가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입주 시점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2500만원을 웃돈다. 강남권에 위치한 대단지인데다 브랜드 인지도까지 더해진 때문이다. 문정 삼성래미안은 최초 분양자에 대해 등기후 5년 내에 양도세가 100% 감면되는 조세특례제한법이 적용되는 단지이다. ●인근에 법조타운·첨단 산업단지 등 추진 앞으로도 가격 상승 여력이 있어 보인다. 인근 올림픽훼미리 하단으로 오는 2010년 동부지법, 동부지검 등이 들어서 법조타운이 형성되는 데다 동남권 유통단지 등의 개발 호재까지 겹쳐 있다. 법조단지 주변 생산녹지 지역에 IT(정보통신)·BT(생명공학) 등 미래형 산업단지 유치계획을 연말까지 확정지을 예정이다. ●3호선 연장·장지지구 건설도 ‘한몫´ 또 근처 가락시장을 경유하는 지하철 3호선(수서∼오금역) 연장선(수서∼가락시장∼경찰병원∼오금역)이 오는 2009년 말쯤 개통될 예정이어서 교통 여건도 좋아질 전망이다. 2007년 완공될 동남권 유통 단지의 경우 부지(15만 5000평)의 지주들에게 보상 작업이 진행 중이다. 부지 내에는 청계천 이주 상인들을 위한 이주상가 단지와 화물 취급장, 집배송센터, 창고 등의 물류단지, 복합상업단지 등이 조성된다. 서울외곽순환도로(송파IC)와 수서∼분당 고속화도로 및 송파대로와 인접해 있다. 게다가 단지 하단에 장지지구 등 200만평의 미니신도시도 들어설 계획까지 있어 호재가 많은 곳이다. ●출·퇴근때 진입로 다소 붐비는 게 흠 5호선 개롱역과 8호선 문정역이 도보 15분 거리다. 단지 진입구는 편도 2차선인데 단지를 조금 지나 문정초등학교와 문정중학교 앞 4거리에서 차선이 편도 1차선으로 줄어들어 평일 출·퇴근 시간에 차가 다소 밀릴 수 있는 것이 단점이다. 교육시설로는 문정초, 평화초, 가원중, 문정중, 송파중 등이 있으며 편의 시설로는 단지근린공원,GS마트, 가락시장, 송파도서관, 경찰병원, 로데오거리 등이 있다. ■ 도움말 내집마련정보사 김정용 팀장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LAT, 이명박시장 소개

    이명박(63) 서울시장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혀 대권에 도전하는 배경을 분명히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11일자(현지시간) ‘서울시장, 서울을 수리중’이라는 제목의 이시장 인터뷰 기사에서 이같이 소개했다. 바버라 데믹 기자는 “이 시장이 2002년 취임한 이래 청계천 복원사업을 펼치면서 3억 3000만달러가 투입돼 콘크리트 숲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으며, 다양한 모습의 교각 22개와 조각상, 분수 등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다음달 완공된다.”고 전했다. 스 중앙차로제 및 새교통카드시스템 도입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사업 추진이 지나치게 즉흥적이며 과시하려는 측면이 많다고 지적한 뒤 “이 시장이야말로 과거 밀어붙이기식 개발정책을 이어가는 정치인”이라는 한국외대 유재홍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고려 500년 도읍지였던 개성은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까탈스럽고 번거로운 CIQ(출입관리시설) 검문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북측의 통제를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여행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분단 55년 만에 문을 연 개성 관광길. 금강산에 이어 두번째 북한 관광길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손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개성 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다소 낡아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는 화분으로 한껏 멋을 냈고, 그 사이로 시민들이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교복 입은 아이들, 한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들…. 풍경 하나하나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진촬영을 통제해 가슴에만 담아온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개성. 하루로는 진정 아쉬움이 컸던 개성 당일관광으로 안내한다. 개성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것은 조심하세요 개성 관광은 북측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이 적지 않다. 어길 경우 위반금을 물어야 하며, 심할 경우 북측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때와 북측 CIQ 및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북측의 정치, 경제, 사상 등 서로 자극할 수 있는 대화는 자제하고, 검문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소지물품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신분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개성관광증은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출입 여권 및 비자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휴대품에는 제한 규정이 있는데 ▲10배율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초점거리가 160㎜ 이상인 카메라 렌즈나 이를 탑재한 카메라 ▲광학 24배줌 이상 캠코더 ▲휴대전화(PDA포함)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 관광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물품 등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는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측 귀환시 반환받을 수 있다.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기념품은 1인당 300달러까지만 면세가 적용된다. 북측 의약품과 뱀술, 영정술, 우황청심환과 북한 사상 관련 각종 출판물은 남측 반입이 되지 않는다.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북한군들은 남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지 내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삼가고,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 개성 37mile 당일치기 여행 벽은 무너지고… ‘개성 시내의 모습은 어떨까. 선죽교, 박연폭포의 경치가 아름답다던데’ 설렘 속에 시범관광단을 실은 버스가 서울 경복궁을 출발했다. 개성까지의 거리는 약 50㎞. 승용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는 북한 땅으로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 곳은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 민족의 통일 염원을 담은 다리지만 차량 통제를 위해 겹겹이 막아놓은 바리케이드가 먼저 분단 현실을 실감케 한다. ‘남북왕래차량외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가로막힌 도라산역 남측 CIQ(출입관리시설). 버스에서 내려 CIQ에서 간단한 짐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경수속을 마쳤다. 출경 수속은 일찍 끝났지만 정해진 시간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버스가 다시 남측 CIQ를 출발했다. 군사분계선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평온해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한다.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철길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널리 알려진 낡은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북한땅.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으로 넘어가자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버스를 응시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군 장교가 버스에 올라 눈으로 인원체크를 하는 것으로 북측 CIQ 입경 수속이 시작됐다. 버스 앞에서 눈으로 인원을 세는 사이 버스에는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그 시선은 마치 이곳부터는 ‘북한’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이어 인민군 장교가 ‘개성 관광증’에 찍힌 일련 번호에 따라 호명하는 순으로 버스에서 내린 뒤 몸검사와 짐검사가 시작됐다. 인민군과 세관,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CIQ에서는 가방을 열어 일일이 모든 것을 체크한다.CIQ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기정동 마을이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몇 ㎜입네까?”라며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위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여행의 재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CIQ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평양 아리랑 총회사 소속 직원들이 술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판매원 김윤화(21)씨는 “시내에 들어가면 술 한병에 여기보다 다섯달라(5달러) 이상 비싸요.”라며 권한다. 실제 개성인삼주가 이곳에서는 8달러지만 박연폭포 앞에서는 14달러를 줘야 한다. 1시간이면 달려올 거리를 3시간 만에 버스가 개성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는 20대 후반의 문광철(관광총회사 소속)씨와 조성(개성시 소속)씨 등 2명의 안내원이 동승했다. 이동중에 시내나 북한 주민 등의 사진 촬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일행 중 한명이 “시내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문씨는 “그러면 아주 불쾌한 관광이 됩네다.”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끝나지 않아 덜컹거린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드디어 개성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중심가에는 20층은 족히 돼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베란다는 갖가지 화분들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제갈길을 재촉했다. 아파트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멀리 아파트 창문으로는 빠꼼히 버스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보고픈 충동이 밀려 왔다. 언젠가는 마음놓고 걸어볼 날이 오겠지…. 버스는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에 도착했다.992년 창설된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으로 1308년 성균관으로 개칭됐으며, 조선시대 설립된 성균관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성균관으로 불린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10년 재건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물과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 석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북측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안내원들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이어진다.“고려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많이 약탈했습네다. 이제 북·남이 힘을 합쳐 다시 찾아와야지요.” 송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이옥한(40) 해설원은 유물 설명중 ‘개성 깍쟁이’의 유래에 대해 “‘깍쟁이’라는 말은 ‘가게 쟁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셈이 밝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상업이 번창해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박물관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죽교에 도착했다.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의 일환으로 건립한 돌다리지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의 길이는 6.67m, 너비는 2.54m. 원래는 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둘러 보호하고 옆에다 돌다리도 하나 더 놓았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화려함은 없지만 정갈한 느낌이다. 안내원 한명이 다리 한편에 있는 옅은 붉은색 얼룩을 가리켰다. 그는 “이게 정몽주 선생의 피”라며 “그래서 선지교였던 이곳이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죽교 옆에는 정몽주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여러개 서 있다. 당초 일정이 개성민속여관에서 정몽주 생가인 ‘숭양서원’으로 바뀌었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여관으로 꾸민 것으로 현재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고 있어 관람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7월11일 붉은기, 선죽동, 제2인민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측 안내원에게 “학교 간판이냐.”고 묻자 “번지인데 이 집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주 영정 등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서는 개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원 앞에 있는 간이 상점에 들르자 북한 음료가 눈에 띈다. 코카콜라와 비슷한 검은색 음료는 ‘코코아 탄산단물’이며, 환타와 같은 음료는 ‘모란봉 레몬 탄산 단물’이란다. 가격은 1달러. 냉장고에서 꺼낸 코코아 탄산단물은 달착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갈증을 풀어준다. 숭양서원을 나와 개성백화점, 김일성 동상 등을 지나 개성 남대문 로터리를 돌아 다시 선죽교 인근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다른 식사 장소로는 통일관과 영통식당, 민속여관내 식당 등이 있다.2층 식당에서는 한상 가득 개성식 식사가 차려져 나왔다. 반찬으로는 개성 약밥과 떡합석, 삼색나물, 닭고기 장과, 돼지고기 편찜, 오이소박이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우메기’. 종업원 김영실씨는 “찹쌀 70%에 멥쌀 30%로 만들었는데 기름에 튀긴 뒤 떡 위에 우묵우묵 칼자국을 내서 ‘우메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왜 안 나오느냐고 묻자 “개성은 보쌈김치가 유명한데 그건 겨울에 오셔야 합네다.”라고 덧붙인다. 식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하지만 11첩 반상기와 단고기(개고기) 정식 등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을 연상시킬 만큼 널찍한 초원이 반긴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은 구릉들로, 푸른 초원이 덮여 있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에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아스팔트 4차선 도로다. 평양까지는 160㎞로 승용차로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도로 주변에서는 옥수수 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농부들이 노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감시원이 있어) 멋진 경치를 눈으로만 담아와야 했다. 200m 남짓한 숲길을 오르자 박연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다 못을 만들고 그 아래 37m 높이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 위에는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 아래 직경 40m의 고모담이란 바위 연못이 있다. 박연폭포는 화강암벽의 순수 자연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반도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인근 소나무, 화강암벽이 자연스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포수 아래 동쪽 언덕에는 법사정이라는 정자가,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각각 절묘한 미색을 자랑한다. 자남산 여관 서점에서 산 ‘개성관광안내 책자’에 따르면 ‘옛날 퉁소를 잘부는 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서 퉁소를 부는 그에게 끌리어 물 밖에 나온 용왕의 딸이 박진사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살았다고 하여 ‘박연’이라고 한다. 그 아래 고모담은 박진사의 어미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통곡하다가 물에 떨어져 ‘어미담’ 또는 ‘고모담’이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박연폭포 위 대흥산성에 오르면 위에서 박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는 마사토로 질지 않다. 1시간 남짓 박연폭포를 돌아본 뒤 짧은 개성 관광이 마무리됐다.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원들의 재촉에 “여행이 수박 겉핥기 식이다. 너무 짧다.”며 곳곳에서는 아쉬움 섞인 푸념들이 들려 왔다. 박연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반세기 만에 찾은 남측 손님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 꼭보자 베스트3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던 만큼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왕릉과 고려 31대 공민왕릉, 고려민속박물관, 선죽교, 영통사 등 고려 유적지가 주류를 이룬다. - 왕건왕릉(북한 사적 제53호) 개성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왕건왕릉과 신혜왕후 무덤은 왕건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왕릉은 1994년 새롭게 단장됐다. 3단 축조의 웅장한 무덤과 그 앞에 문무관의 석인상, 호랑이와 양을 비롯한 석조군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능문과 제당도 갖춰져 있다. 무덤안을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으며, 능앞에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왕릉에서 청동의 왕건조각상이 출토돼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등신대의 인물조각상으로 연구가치가 높다. - 공민왕릉(북한 국보급문화재 제39호) 개성에서 서쪽으로 9.8㎞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봉명산 문선봉 아래에 있는 무덤은 쌍분으로 왼편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이고, 오른편이 부인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이 무덤은 남한에서 주로 보는 왕릉과 달리 3개의 층단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분의 높이는 6.5m. 각 봉분에는 12각의 병풍석을 돌리고 12지신상과 연꽃무늬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애통한 나머지 9년 동안 자신이 직접 주관, 방대한 조영사업을 벌였다. 이 왕릉에는 고려시대 수학, 천문, 지리, 건축, 예술 등 총체적인 역량이 집대성돼 있다. - 영통사(북한 보물급 문화재 35~38호) 1027년(현종 18년) 창건되었다.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해 분향하였으며,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도 이곳에서 교관을 배웠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로는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6호인 영통사대각국사비, 제37호인 영통사 당간지주, 제35호인 영통사동삼층석탑, 제38호인 영통사서삼층석탑, 국보급문화재 제37호인 영통사오층탑이 있고 보광원, 중각원 등이 있다. ■ 3가지 코스 중 고르세요 개성관광은 ‘고려반’‘박연반’‘왕릉반’ 등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코스를 택하게 돼 있다. 고려반은 오전 개성시내관광(고려박물관, 선죽교, 개성민속여관), 오후 박연폭포를 참관하는 코스이며, 박연반은 오전 박연폭포, 오후 개성시내 관광을 하는 것. 왕릉반은 공민왕릉과 왕건릉을 참관한 뒤 오후에 개성시내관광을 하는 것이다. 관광은 대략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쯤 모두 끝나게 되며,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 시범단지를 견학한다. 관광 중 세부적인 해설은 북측의 전문 해설원들이 맡게 되며, 점심식사는 개성시내에 있는 자남산호텔식당이나 영통식당, 통일관, 민속여관내 민속식당 등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아산에 따르면 본 관광 시기와 요금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3차례 실시된 시범관광의 경우 관광요금 17만 4000원과 식대 2만 1000원을 포함해 19만 5000원인데 본 관광 요금이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문의 및 예약은 현대아산 (02) 3669-3000.
  • 다이애나·도디 실물 조각상 런던 해러즈 백화점에 세워

    ‘비운의 영국 장미’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연인 도디 파예드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의 청동 조각상이 런던의 해러즈 백화점에 세워진다. 1997년 교통사고로 함께 사망한 두 사람의 조각상은 파예드의 아버지이자 해러즈 백화점의 소유주인 모하메드 파예드의 뜻에 따라 만들어졌다.‘무고한 희생자들’이란 이름의 조각상은 실물 크기로 신천옹(알바트로스)의 날개 아래에서 두 연인이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춤추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조각상의 제목은 아들과 다이애나가 살해당했다는 파예드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3)진해와 포르투갈인 세스페데스

    진해는 일본인들이 붙인 지명이다. 원래 웅천읍성이 자리했던 곳으로, 그 웅천 바닷가에는 ‘세스페데스 방한 400주년(1553~1993)기념’이란 설명문이 붙은 조각상이 서 있다.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 톨레도의 니야누에다 데알카르데테 시민들이 우정의 정표로 기증한 것이다. 그는 1593년 12월27일에 웅천포에 도착해 1년여를 이곳 왜성에서 묵었다. 그 34년 뒤인 인조 6년(1628)에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부산 근처에 표착했고, 그로부터 59년 뒤인 1653년에는 하멜이 표류해 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표류가 아닌, 자의로 이 땅에 온 최초의 서양인이다. 그가 머물렀던 웅천 남산왜성을 올랐다. 돌들이 웅장하다. 틀림없는 왜성인데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축성했고 정유재란때 재침해 수축한 것이다. 경상도에는 유난히도 왜성이 많다. 웅천 안골포 양산 영등포 마산 고성 사천 남해왜성 등등 아예 장기 주둔을 염두에 두고 진을 쳤던 흔적들이다. 진해에는 웅천왜성 바로 건너편 안골포에도 왜성이 있다. 사면이 두루 보여 그만한 요새가 없다. 세스페데스가 웅천까지 온 이유를 알자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하다. 임진왜란때 평양성을 공격했던 고니시 고니시는 포르투갈 예수회에 의탁한 천주교도였다. 고니시의 딸 마리아는 당시 19대 대마도주 소오 요시토시(宗義智)의 아내였는데, 소오는 임란 직전까지 대마도 병마사로 조선의 녹봉을 받았다. 그 역시 천주교 신자였다. 소오는 조선의 지리를 꿰뚫고 조선말에도 능통해 왜군의 앞잡이로 선봉에 섰다. 세스페데스는 이때 일종의 종군 신부로 온 것이다. 그의 수기에 의하면 조선의 훌륭한 문화재는 모두 고니시와 소오가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들은 문화재 약탈뿐 아니라 사람들도 엄청 붙잡아 갔다. 오죽했으면 강항이 ‘간양록’에서 ‘배 600∼700척이 몇 리에 걸쳐 바다를 메우고 있는데, 배마다 조선 남녀의 통곡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시킬 정도’라고 기록했을까. 고니시도 평양성 전투에서 6살 난 전쟁고아 소녀를 데려가 ‘오타’란 이름을 지어주고 길러 ‘줄리아’라는 세례명까지 얻게 했다. 도요토미가 죽은 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벌인 대격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니시는 패하여 처형된다. 줄리아도 이때 외딴 섬으로 귀양가 신앙을 지키며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하나의 ‘신화’가 됐다. 한편 고니시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오는 마리아와 이혼하고 도쿠가와의 가신으로 들어간다. 세스페데스는 1597년 3월에 다시 내한했다가 도쿠가와의 선교사 추방령으로 수박골에 피신해 있다 두달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다. 임진왜란이라는 한·일간의 유쾌하지 못한 전쟁통에 묻어 오기는 했지만 서양인의 첫 방문은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왜성이 위치한 안골포는 임란 전승지로 유명한 곳.1952년 7월 왜 수군의 주력부대가 한산도에서 참패를 당하자 그를 따르던 가토 기요마사의 42척 제2 주력부대가 당황한 나머지 안골포에 옮겨 정박한 것을 이순신이 추격, 격파한다. 한산도해전과 더불어 안골포해전은 왜 수군 주력부대를 격멸한 큰 전공지였다. 이듬해인 1593년 2월부터 한달동안 이순신 함대는 웅포에 무려 7차례나 출격해 해전을 치렀는데, 이때 웅포 남산왜성의 왜 육군이 엄호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세스페데스는 그 해 겨울 웅천으로 들어왔다. 안골포에는 굴강(掘江)이 남아 있다. 방파제와 선착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남 여천에 선소(船所)와 굴강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진 지금 이곳의 해양문화사적 의미는 크다. 이순신의 대격전지에 이같은 해양 유적이 전해지고 있어 감회가 새로운데 머잖아 간척될 계획이라 운명이 풍전등화다. 매립하여 공원을 조성하고 바닷물을 끌어들여도 굴강만은 살릴 계획이라지만 이 희귀한 문화유산이 전해지는 임진왜란 대첩지를 매립해 땅을 얻어 써야겠다는 문화적 반달리즘을 두고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진해는 대마도를 거쳐서 규슈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마산에서 여몽연합군이 후쿠오카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듯 최단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본디 최초의 왜관이 자리잡은 곳도 또한 이곳 웅천이다. 왜관은 모두 세 군데에 있었으나 삼포왜란 이후에 변란을 걱정해 웅천왜성은 폐지되어 부산의 초량 왜관으로 통합됐다. 이같이 일본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진해에 다시 왜인들이 나타난다. 근 300여년 만에 이번에는 왜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로 변신해 나타났으니, 그들은 지형·정서적으로 가장 잘 아는 곳부터 점령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진해만을 동양 제일의 대군항으로 키우기 위해 한반도 최초로 조직적·계획적 도시계획을 입안한다. 진해라는 말부터가 일인에 의해 처음 쓰여졌고, 옛 웅천읍성과 무관하게 신도시로 재탄생했으니 식민지 항구도시 건설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당시 비동 현동 좌천 등 여러 마을을 합해 진해라 부르고 진해만 군항지를 편의상 진해만이라 칭한 것이다. 군항지 경영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돈인 800만원을 퍼부어 10개년 사업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바닷가 염습지와 황무지를 매립하여 땅을 얻고 농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했다.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12일에는 해군 함정을 거제도 송진포 연안에 대놓고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도 했다. 송진포에 ‘일본제국 해군 가근거지 방비대’를 설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의 여세를 몰아 웅천지역의 토지를 강탈하기에 이른다. 당시 시가지는 12만평이었으며, 계획도시답게 모범적 시가를 만들기 위해 도로는 방사형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오늘날 진해의 중원로터리 등을 보면 사방팔통으로 도로가 교체하는데, 여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미관을 엄격히 고려하고 토지를 1∼3등으로 3분하여 건축을 제한했다. 건물은 2∼3층을 원칙으로 하고 4층 이상은 허가를 받아 짓도록 했다. 이곳 토지를 불하받은 일인은 히로시마 후쿠오카 도쿄 사세보 사가 조슈 나가사키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한국에 오래 전에 나와있던 용산, 마산, 부산 등지의 일본인들도 이곳으로 몰려 왔다. 이로써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의 신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조선인도 참여할 수 없었으며, 목포나 군산처럼 본래의 조선인촌과 병존하게 하지도 않은 식민도시였다. 그리하여 일제 해군본부가 들어서고, 한국뿐 아니라 극동의 군항으로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한국 해군의 본거지로 자리매김했다. 진해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풍경을 읽는다.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로터리 모퉁이에 고색창연한 진해우체국이 서있어 식민지 시대를 전하고 있다. 도로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일장기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충무공 동상으로는 전국 최초인 1951년에 창원 통영 고성 김해 마산 등에서 갹출해 북원광장에 조성한 것이다. 일장기형 도로와 이순신의 동상이 주는 이중창이 묘한 갈등으로 다가온다. 자고로 벚꽃이 유명하여 4월 초순에는 군항제가 열린다. 충무공의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벚꽃도 즐기는 최대의 행사인데,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 속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의 이미지는 왠지 좀 거북한 느낌이었다. 제황산정에는 웅장하게 솟은 탑이 있다. 일인들이 세운 러일전쟁 기념탑을 광복 후 철거하고 1967년 해군의 기함사령탑을 상징하는 이 탑으로 교체했다. 시내 로터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했을 때 남긴 기념휘호를 각인한 비석이 있는데 가장자리가 깨져 있다.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을 땜질해 붙여놓았다. 로터리 중심의 나무에 가려져 있어 외부인은 그런 비석이 있는 줄도 모른다. 반면에 진해 바닷가에는 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과 전용 낚시터, 장제스를 만났다는 육각정 등이 잘 보존돼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디 일본군 통신대가 쓰던 건물이다. 진해 사람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해군기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보니 도시의 주요 토지들은 모두 군용으로 묶여 발전이 없다. 군사도시인 탓에 규제가 심해 발족 당시의 인구에서 별반 늘어난 게 없다. 게다가 부산시와의 갈등도 내연 상태다. 신항만 건설부지의 80%를 내놓았지만 명칭이 부산신항만으로 결정되는 분위기여서 폭발 일보 직전이다. 부산신항인지, 부산·진해신항인지를 놓고 대격돌을 벌이는 중이라 이래저래 군사도시의 고충이 깊은 요즘이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군항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게다가 이웃 거대도시 부산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진해 사람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가장 쾌적하고 맞춤한 인구, 공장이 적은 대신 맑은 숲과 바다를 지닌 천혜의 미항 진해이건만 미래가 투명하게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벚꽃 펄펄 날리는 조건에서도 소작쟁의는 물론 동양제사 노동자들의 대투쟁, 그리고 각종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주기철 목사같이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진정한 종교인을 배출한 곳이 진해 아닌가(황정덕의 ‘진해 항일독립운동사’ 참조). 진해예술촌장을 맡아 군사도시 속에서 문화를 가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박차생 진해문화원장이 망산도로 안내하면서 간절하게 전한 말은 이랬다.“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아유타국 허왕옥 공주가 처음 내린 망산도도 진해지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국제 항구도시였으니 부산·진해신항으로 결정돼 사람들 시름 좀 덜었으면 합니다.”
  • [내 인생의 등대]목영만 서울시 환경국장

    [내 인생의 등대]목영만 서울시 환경국장

    목영만(46)서울시 환경국장은 조각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과 하위직 공무원이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목 국장은 “가끔 ‘칼레의 시민’을 보면서 공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칼레의 시민’은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으로 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때 프랑스의 칼레시(市)를 구한 영웅적 시민들의 기념상이다. 이 작품은 죽기를 각오한 시민대표 6명의 희생정신이 칼레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다. 목 국장은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칼레 시민대표 6명 가운데 두 번째 인물이 공무원인 ‘장 대르(Jean d’Aire)’였다.”면서 “내가 그 사람처럼 목숨 걸고 공직에 임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작품을 보면서 항상 자성해 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통 고위층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할 때 ‘칼레의 시민’을 많이 인용하지만 그는 “굳이 거창하게 ‘노블리스 오블리주’까지 언급할 것도 없이 공무원으로서 ‘제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른바 목 국장의 ‘공무원 제정신론(論)’이다. 청렴·형평성·투명성 등을 함의하고 있는 그의 지론은 역사가 길다. 올해로 63년째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40년 공직생활이 그에게 고스란히 남겨진 때문이다. 목 국장은 “아버지 때문에 공무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아버지가 퇴임한 그 해에 공직에 들어선 것이나, 사무관으로 퇴임한 아버지를 이어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것 등은 왠지 아버지의 삶을 이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가진 ‘제정신론’의 핵심인 ‘청렴’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목 국장의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 40년 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한 ‘자전거 공무원’이었다. 비오는 날이 유일하게 버스를 타는 날이다. 목 국장은 어릴 적부터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저절로 청렴을 배웠다. 공무원은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한때는 남들이 으레 받는 선물도 못받는 아버지가 왠지 융통성도 없어 보여 싫은 때가 있기도 했었다.”면서 “하지만 공직에 들어와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른 공무원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17·끝) ‘Female Torso and Sculpture IdeasⅠ’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17·끝) ‘Female Torso and Sculpture IdeasⅠ’

    ‘헨리 무어’ 作. 석판화 28.3×40.3㎝.1979. 영국 출신의 헨리 무어(1898∼1986)는 전위적이고 추상적 형태조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모델링에 의한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을 거부하고 상징화된 인체의 조형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현대조각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1919년부터 리즈의 미술학교와 런던 왕립미술학교에 다니며 조각을 배웠고 그때 대영박물관에서 원시 미개문화의 조각을 통해 자연재료를 이용한 단순한 형체를 연구했다. 또한 파리와 이탈리아를 다니며 당시 전위조각의 동향을 접하면서 독자적인 작품을 추구해 나갔다. ‘Female Torso and Sculpture Ideas Ⅰ’ 작품은 여인의 몸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유기적인 형체를 통해 인체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분출한다. 하나의 조각상이 작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 모습, 길게 드러누운 모습, 고개 숙여 엎드린 모습 등이 서로 다른 크기로 연결성을 갖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1930년대부터 길게 드러누운 여인이라는 주제가 무어의 전형적인 작품 형태다. 조각을 위한 소묘 중에는 ‘런던 방공대피소 풍경’이 유명하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기 간 2005년 5월7일(토)까지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장 소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 전관(한국프레스센터 1층) ●입장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단체접수 및 문의 서울신문사 (02-2000-9752)
  •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⑮ ‘WRAPPED STATUES’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⑮ ‘WRAPPED STATUES’

    ‘크리스토’ 작. 스크린프린트 88.9×68.62㎝.1988. 크리스토(1935∼)는 불가리아 태생으로 파리를 거쳐 미국에서 활동 중인 환경미술가로 대지예술의 대가로 불린다. 천을 이용해 ‘부드러운 조각’을 발상한 올덴버그를 초월해 1958년부터 천을 이용, 주변의 작은 물체부터 포장하기 시작해 나무, 섬, 빌딩, 파리의 다리를 천으로 포장했다. 그는 물체를 포장하는 행위를 통해 완성품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현상으로서의 예술을 성립시켜 나가는 과정을 중시했다. ‘포장된 조각품’이라는 이 작품은 유럽의 어느 신전에서 발굴된 조각품들을 찍은 사진 위에 그 조각상들을 천으로 싼 모습을 콜라주로 붙여 놓은 것이다. 천의 형상을 보면 방패를 든 용사가 천 속에서 꿈틀거리는 등 판화 아래 왼편의 조각상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판화 아래 오른쪽 사진은 조각상이 발굴된 현장이다. 그는 지난 2월 뉴욕 센트럴파크에 ‘The Gates(문)’라는 제목으로 공원 산책로에 주황색 천을 이용한 문 7500개를 설치하는 특별한 작업을 실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기 간 2005년 5월7일(토)까지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장 소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 전관(한국프레스센터 1층) ●입장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단체접수 및 작품판매 문의 서울신문사 문화사업부(02-2000-9752)
  • 미리 본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5

    미리 본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5

    신명나는 잔치 한마당이 시작된다. 고궁·광장·거리 곳곳에서 서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5’가 4월3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5월 5일까지 진행된다.‘서우리’(39·여)씨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흥미로운 행사만 골라 다니는 서울 마니아다. 그를 따라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알짜배기’ 프로그램을 미리 살펴보자. # 조용필이다!… 4월30일 이게 얼마만인가. 플레어 스커트를 나풀거리며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을 손에 꼭 쥐고 찾아갔던 콘서트장에서 조용필씨를 처음 본 게 벌써 20년이 다되어간다. 서울광장 무대 위에 선 ‘그’를 본 순간 처음 본 그때처럼 가슴이 콩딱거리기 시작했다.7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들으며, 나는 이미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반복해 듣던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청계천’이 발표되면서 콘서트는 정점을 향했다. 내친 김에 좀 더 젊어지자. 야외 댄스 파티 ‘댄스 마니아 인 서울’이 펼쳐지고 있는 명동 중앙로로 향했다.DJ 7명이 흥을 돋운다. 사람들은 물결처럼 일렁이는 리듬에 따라 몸을 흔든다. 말로만 듣던 ‘홍대 앞 클럽’ 분위기가 이런 것이구나…. 저녁 9시에 시작된 파티는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 청계천 따라 걸으며 서울에서 세계 여행을… 5월1일 두 아이와 함께 청계천 걷기대회가 시작되는 신답초등학교로 향했다.11시가 조금 넘자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지참물이었던 라디오를 켜니 생방송이 막 시작됐다. 두물다리에서는 농악이, 다산교에서는 탈춤이, 삼일교 위에서는 송파 답교 놀이가 열리고 있었다. 두시간 정도 걸린 도보 여행은 결코 피곤하지 않다. 서울광장 앞에서 서울시청 뒤쪽 무교동길을 따라 무교동 사거리까지는 세계의 산해 진미들이 늘어서 있다. 알고보니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지구촌 한마당’이 진행 중이다. 평소에는 잘 먹을 수 없는 태국의 스프링롤과 인도의 케밥을 아이들과 함께 맛보고 2시 반쯤 서울광장에서 북경·모스크바·베를린·바르샤바·호놀룰루 등 9개 해외 자매도시의 전통공연단이 펼치는 민속공연을 감상했다.‘미니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어 가면을 쓰고 살사·탱고를 따라 추는 ‘세계의 리듬 5+6’이 열려 흥겨운 ‘댄스∼’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 나는 뮤지컬, 얘들은 게임쇼, 어머님은 국악 한마당… 5월2∼4일 월요일(2일) 저녁 7시30분, 가족들의 저녁식사는 ‘중국집’에 맡겨두고, 오래간만에 고교 동창들을 만나 서울광장으로 나왔다. 남경주·전수경·최정원 등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이 펼치는 ‘뮤지컬 갈라쇼’에서 ‘미녀와 야수’부터 ‘렌트’,‘사랑을 비를 타고’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관람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공짜로 그것도 두 시간만에 보는 행운을 누렸다. 화요일(3일) 저녁엔 게임을 좋아하는 큰 아이를 데리고 ‘프로게임쇼’를 보러, 오늘(4일)은 어머니께 ‘국악한마당’을 보여드리러 다시 서울광장에 나왔다. 서울에 살면서도 남산에 가보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고 낮엔 남산 팔각정에 들렀다. 처용무·검무 등 궁중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궁중무용 춤사위 배우기 코너에서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는 어머니를 보니 어깨를 눌렀던 일상의 무게가 잠시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붉은 기운을 느끼며… 5월5일 어린이날, 아이들을 데리고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 갔다.3년 전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뛰어다니던 그 곳 하늘에는 스카이다이빙과 에어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녁때 서울광장으로 나와 인순이·윤도현밴드 등이 출현하는 ‘다이내믹 서울’을 보며 소리를 지르니 그날의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대∼한민국.!! ! !!. 서재희 고금석기자 s123@seoul.co.kr ■ 하이서울 총기획 표재순씨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자연과 문화를 만끽하며 뛰노는 ‘길거리 종합문화 축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올해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기획한 표재순(69·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특임교수)씨는 행사의 주제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자연과 문화의 한마당’이라고 말했다. 표씨는 2003년부터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주도한 축제 전문가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축제의 주제는. 올해는 청계천이 새로 흐르고 뚝섬에 서울 숲이 개장하는 등 서울이 친환경적인 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해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녹색’ 이미지를 연출했다. 시민들이 친환경적인 도시를 함께 꾸미자는 의미에서 청계천 함께 걷기 등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늘렸다. 지난해와 다른 점은. 조용필 콘서트·가면 무도회·뮤지컬 쇼·게임쇼 등 누구나 참여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일 저녁 7시30분 서울광장에서 열린다.‘저녁 7시30분에 서울광장에 가면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월드컵때처럼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통일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행사는. ‘청계천 함께 걷기 프로그램’이다. 승용차로 고가도로 위를 달리던 시민들은 청계천 물길 위를 직접 밟는 기회를 갖게 된다. 참여하고 싶다는 시민이 많았던 ‘거리 행렬’도 큰 볼거리가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남대문까지 갖가지 복장으로 꾸민 사람들이 행진을 벌여 장사진을 이룬다. 행사가 다양해 ‘서울’의 축제라는 인상이 없는데. 서울이란 도시의 특색을 하나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서울 토박이는 27만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000만여명은 8도에서 모였다. 따라서 서울 축제도 다문화적인 서울의 성격이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했다.8도 민속대동놀이·세계음식축제 등 출신지역이 다른 시민들과 외국인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구상했다. 왜 축제를 5월에 하나. 당초 10월28일이 서울 시민의 날이지만 그 때는 다소 춥다. 그래서 하이서울 페스티벌은 봄으로 옮기고,10월에는 ‘드럼 페스티벌’을 연다. 게다가 5월은 어린이날, 노동자의 날이 있는 의미있는 달이다. 일주일간 이어지는 일본의 휴일과 중국의 휴일이 5월에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대부분 지역 전통문화에 뿌리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본받을만한 다른 나라의 축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국적 퓨전문화제를 표방한 하이서울 페스티벌과는 달리 다른 나라의 이름난 축제는 해당 지역의 기후나 특산물, 전통문화 등에 뿌리를 둬 그 기반이 탄탄하다. 특히 일본 삿뽀로의 눈축제,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브라질의 리우축제는 ‘세계 3대 축제’로 손꼽힌다. 매년 2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눈축제 때는 눈과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이 시내 곳곳에 설치돼 장관이다. 또 일본 전역에서는 지역별로 ‘마쓰리’라는 축제가 일년 내내 이어진다. 도쿄나 오사카에서 열리는 마쓰리가 특히 유명하다. 홍콩아트 페스티벌, 중국 하얼빈 빙등제 등도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다. 축제하면 유럽이 연상될 만큼 축제가 많은 유럽의 축제는 다양하다. 종교적인 뜻을 담아 거리와 교회를 꽃으로 꾸미는 이탈리아의 인피오리타, 투우 등 대중적 행사가 이어지는 스페인의 빰쁠로나 페스티벌 등은 고유의 문화를 살린 축제다. 영국의 에딘버러 국제예술제는 전세계 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페라·발레 등 고전예술에서 영화·재즈 등 현대예술까지 총망라한 ‘예술의 올림픽’이다. 매년 가을 맥주가 유명한 독일 뮌헨에서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수천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천막술집이 뮌헨시청앞에 설치된다. 이외에 브라질 리우축제(카니발)는 흥겨운 삼바리듬에 속살을 내비치며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무희들의 거리행진이 눈길을 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쿠폰을 오려 가져가면 할인을 받습니다
  • 지구촌 ‘광고속으로’

    지면 광고에 세계 최고 경쟁이 거세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저마다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자신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전자의 에어컨인 휘센의 지면 광고는 ‘세계 판매 연속 5년 1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제품인 와인색 에어컨과 같은 색상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 이영애 앞에 ‘세계 1위의 유혹’이란 문구도 보인다. 하단에는 예약판매 행사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현대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싼타페는 ‘싼타페의 매혹에 세계가 뜨거워진다’를 제목으로 쓰고 있다.136개국에 수출되는 세계적 제품임을 강조하기 위해 달궈지는 체온계 위에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등을 배경으로 달리는 싼타페 그림을 넣었다. 하단에는 ‘미국 스트래티직 비전사 2004 종합 품질만족도 1위’ 등 싼타페가 받은 국제 평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신도시 아파트도 글로벌 경쟁에 합류했다. 포스코건설이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 국제업무지구에 짓는 주상복합 단지인 ‘더(the#) 퍼스트 월드’는 ‘세계의 질투는 시작되었다!’는 제목 아래 완공된 단지를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질투의 눈물을 흘리는 그림을 넣었다. 하단에는 일반 신도시와 달리 송도에는 무역센터, 특급호텔, 국제학교, 골프장 등이 들어선다고 강조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 도시가 세계를 이끌어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다는 설명이다. 동탄 신도시에 짓는 두산위브 광고도 ‘세계 수준의 생활 프리미엄’이 주제다. 완공된 동탄 위브 아파트 앞으로 분수대 조각상 등이 있는 녹지가 넓게 펼쳐진 가운데 자신감이 가득찬 표정의 이미연이 독자를 향해 여보란 듯 미소짓고 있다. 레저 등 편의시설을 중앙 광장에 모아 놓은 서구 도시 문화가 이 아파트의 자랑임을 강조하는 내용이란 설명이다. 금융서비스업도 세계 최고 경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외환은행은 ‘당신의 은행은 세계와 만나고 있습니까’란 주제의 글로벌 캠페인을 벌인다. 그림에는 베트남 호치민시청을 배경으로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가운데 양복을 입고 한가롭게 앉아 있는 모델 지진희가 보인다. 하단에는 ‘미국 글로벌 파이낸스 선정 5년 연속 최우수 무역금융은행’ 등 세계적인 성과들이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 ‘상하이편’에 이은 두 번째 캠페인으로 조만간 3편도 선보인다. ING생명은 사자 그림의 자사 CI(기업이미지통합)를 배경으로 ‘국내 생보사중 유일하게 5년 연속 A등급을 획득했다’를 제목으로 뽑았다.‘세계 최고의 보험회사 전문평가기관인 AM BEST로부터 국내 최고 등급을 인정받았다.’ 등의 내용을 게재하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관계자는 “자사제품이 세계 1위 혹은 세계적인 수준임을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라면서 “세계를 무대로 뛰는 국내 기업이 많은 만큼 세계 1등을 주제로 삼는 광고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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