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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조끼’ 시위 주말에도, 에펠탑과 루브르 내일 하루 휴관

    ‘노란조끼’ 시위 주말에도, 에펠탑과 루브르 내일 하루 휴관

    프랑스 파리의 명물이자 자랑거리인 에펠탑이 8일(현지시간) 폐쇄된다.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며 정부의 도입 방침을 철회시킨 노란조끼 시위대가 주말에는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등 더 큰 규모의 가두시위를 벼르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지난 주말 개선문의 조각상이 파손돼 파리시 당국은 유명한 관광 명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에두아르드 필리페 총리는 프랑스 전역에 8만 9000명의 경찰 인력과 무장 차량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파리 시에는 8000명의 경찰이 배치된다. 경찰은 샹젤리제 거리의 가게들과 식당들도 이날 휴업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보통 노천 카페에 쓰이는 의자와 탁자 같은 것도 거리에 내놓지 말라고 채근하고 있다. 프랭크 리에스터 문화부 장관은 루브르와 오르세이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들과 그랑팔라 단지 등이 폐쇄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무부 관료들은 좌파와 우파 모두 파리 도심 시위와 집회를 계획하고 있어 “상당히 심각한 폭력 사태”가 빚어질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AFP통신에 밝혔다. 이에 따라 파리-몽펠리에, 모나코-니스, 툴루즈-리옹, 생테티엔-마르세유 등의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 경기들이 연기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1100년 만에 흩어진 고려 모인 날 스승은 북쪽의 왕건을 기다렸다

    1100년 만에 흩어진 고려 모인 날 스승은 북쪽의 왕건을 기다렸다

    희랑대사상 옆에 제자 조형물 자리 비워 전시 도중 北서 온다면 사제 간 첫 만남 美·英 등 국내외 고려 유물 450점 공개 ‘아미타여래’ 최태원 후원으로 한국행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최대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이하 대고려전)이 4일 화려한 막을 연다. 광복 이후 고려 미술을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대규모 전시로 국내외 흩어진 주요 고려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 전시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4개국 11개 기관과 국내 34개 기관이 소장한 고려 문화재 450여점을 공개한다. 기대를 모았던 북한 왕건상 전시는 불발됐다. 박물관 측은 이례적으로 왕건상 자리를 비워둔 채 전시를 연다.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대고려전은 다른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고려 시대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로, 고려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그 어떤 전시보다 힘을 기울였다”면서 “태조 왕건이 분열된 후삼국을 통일한 정신이나 국제화된 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문화를 섭렵, 융합한 태도 등에서 고려 고유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태조 왕건이 918년에 세워 1392년까지 존속한 고려는 외국인을 재상으로 등용할 만큼 개방적이었고 주변국과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를 이뤘다. 중국 본토에 세워진 송이나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몽골이 세운 원과 두루 교류하며 꽃피운 문화는 어느 시대보다 찬란했다. 눈에 띄는 유물은 왕건의 스승이자 화엄종의 고승인 희랑 대사를 조각한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이다. 93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82㎝의 목조 조각상으로, 국내 유일한 승려 초상 조각이다. 경남 합천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로 평소 보기 힘든 유물이다. 건칠희랑대사좌상 왼쪽은 왕건상이 놓일 자리다. 현재는 연꽃 모양의 조형물만 설치돼 있다. 전시 도중에라도 왕건상이 북한에서 온다면 사제 간 역사적인 만남이 처음으로 성사된다. 배 관장은 “왕건상 자리를 비워둔 것은 남북 간 활발한 교류와 문화적 동질성 확인을 바라는 염원의 표현”이라며 “전시가 끝날 때까지 왕건상이 오지 않아도 공간 자체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의 소장품인 아미타여래도 눈에 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인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후원으로 한국 나들이를 하게 됐다. 중국 불화로 인식됐으나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를 통해 14세기 전반의 고려 작품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에 전하는 160여점의 고려 불화 가운데 10점이 채 안 되는 독존(獨尊) 형식의 희귀한 도상이다. 이 밖에 팔만대장경보다 이른 시기인 1098년에 새긴 합천 해인사 목판, 대나무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주한 은제 주자(注子·미국 보스턴박물관 소장품)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찬란한 물질 문화를 생산해낸 고려의 저력과 격동기에 500여년을 지탱하게 한 힘이 어디서 나왔을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계속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자유인이 사는 땅 카자흐스탄 속으로

    자유인이 사는 땅 카자흐스탄 속으로

    카자흐스탄은 튀르크어로 자유인 또는 변방의 사람을 가리키는 ‘카자흐’와 땅을 의미하는 ‘스탄’이 합쳐진 말이다. ‘자유인(또는 변방인)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드넓은 초원의 중심에서 변방인들이 이룩한 화려한 문명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카자흐스탄문화체육부·카자흐스탄국립박물관과 함께 준비한 특별전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이다. 27일 개막하는 이 전시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450여점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6일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남한의 약 30배 면적의 카자흐스탄은 동서양 문명이 뒤섞인 곳으로 특히 황금 문화가 발달했다”면서 “신라도 황금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듯 이번 전시를 통해 양국 문화의 연결 고리와 우리 문화의 원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초입에는 뜻밖에 ‘경주 계림로 보검’(보물 제635호)이 전시돼 있다. 장식이나 형태가 카자흐스탄 유물과 유사해 일찍이 학계에서 관심을 모은 유물이다. 1973년 경북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길이 36㎝의 이 칼은 양날이 있는 검(劍)으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한쪽 날만 있는 도(刀)와는 형태가 다르다.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출토 보검을 비롯해 악티스티 고분군, 카나타스 고분군, 레베카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제품의 세공 기술과 유사한 점이 많다. 중앙유라시아에서 신라로 전해진 이 칼이 카자흐스탄의 대초원 문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살핀다. 1부 ‘대초원 문명, 황금으로 빛나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유물은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고분 유적지인 이시크 쿠르간에서 여러 부장품과 함께 출토된 ‘황금 인간’이다. 1969년 발견된 이 유물은 끝이 뾰족한 모자와 화려한 황금 장식으로 치장한 붉은 옷을 입은 남성으로, 현재 카자흐스탄 국가를 상징한다. 강건우 학예연구사는 “황금 인간은 나이는 15~18세, 키는 약 168㎝로 추정되며 통치자나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2부 ‘초원, 열린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면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이자 다양한 민족의 역사가 어린 대초원에 얽힌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옛 사람들의 종교 관념이 반영된 ‘동물 머리 장식 제단’, ‘세발 달린 솥’, ‘튀르크인 조각상’ 등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 3부 ‘유목하는 인간, 노마드’는 카자흐스탄 민속품과 공예품에 초점을 맞췄다. 유목민들의 이동식 숙소인 유르트와 내부를 장식한 화려한 카펫, 담요, 아기 침대, 옷 보관함, 악기 등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4일까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쇠똥구리’도 미라로 만들었던 고대 이집트, 왜?

    ‘쇠똥구리’도 미라로 만들었던 고대 이집트, 왜?

    이집트 수도 카이로 인근의 고대 무덤에서 4400여년전의 고양이와 쇠똥구리(scarab)의 미라 수십 점이 발굴됐다고 가디언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양이뿐 아니라 쇠똥구리도 신성시 한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을 볼수 있는 귀중한 단초가 됐다는 평가다.이집트 고대유물부는 지난 10일 카이로 남부 사카라 유적지에서 고대 무덤 7개를 새로 발굴했다고 밝혔다. 무덤은 이집트 제5왕조 시대(기원전 2498년∼기원전 2345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의 정면과 출입문이 온전히 보존된 상태였다. 특이한 건 7개의 무덤 가운데 3개가 고양이들을 위한 무덤이었다는 점이다. 무덤에서는 고양이 미라 수십 점을 비롯해 표면이 도금된 목재 고양이 조각상 100점,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 여신인 ‘바스텟’에게 바쳐진 고양이 모양의 청동상 한 점도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으며, 미라가 돼 신에게 바쳐지기도 했다.이번 발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쇠똥구리 미라도 발견됐다. 둥근 뚜껑이 덮인 직사각형 모양의 석회석 소재의 관(棺) 속에 미라 2점이 들어 있었다. 관의 표면에는 쇠똥구리 3마리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모스타파 와지리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 위원장은 “사카라 지역에서 처음으로 쇠똥구리 미라가 발굴됐다”면서 “(미라화된) 쇠똥구리는 정말 희귀하다”고 말했다. 쇠똥구리는 둥근 배설물을 굴리는 곤충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모습이 마치 태양을 움직이는 것 같다고 신성한 벌레로 추앙받았다. 이집트 사람들은 쇠똥구리가 배설물을 땅속으로 가져가 그 속에 알을 낳고 성충이 배설물을 먹고 자라 다시 땅을 파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미라를 통한 부활 신앙과 연결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쇠똥구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발굴팀은 이외에도 사자, 소, 매 등 도금된 동물 목상(木像)들과 항아리, 고대 필기도구,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바구니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발굴팀은 몇 주 내로 발굴된 유물들을 분석할 계획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왕건 스승’ 희랑대사 조각상 1100년 만에 해인사 밖 나들이

    ‘왕건 스승’ 희랑대사 조각상 1100년 만에 해인사 밖 나들이

    고려 태조 왕건(877~943)의 스승이자 화엄종의 고승인 희랑대사(생몰년 미상) 목조 조각상이 1100여년 만에 해인사 문을 나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2월 4일 개막하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에 선보일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과 대장경판 이운(移運·불화나 불구 등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을 부처에게 알리는 고불식(告佛式)을 오는 9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연다.93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희랑대사좌상은 해인사 조사(祖師)였던 희랑대사의 진영상(眞影像) 조각이다. 앞쪽은 건칠(乾漆·헝겊을 여러 겹 바르고 칠을 거듭하는 방식) 기법, 뒤쪽은 나무로 제작했다.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크고, 자비로운 눈매와 잔잔한 입가에 번지는 미소 등 인자한 모습이 잘 드러났다. 9일 오전 해인사에서 진행되는 고불식에서는 법보전에서 일주문까지 이운 행렬이 재현된다. 10일에는 고려의 실질적인 종묘인 경기 연천 숭의전지(사적 제223호)에서 왕건의 초상화와 희랑대사좌상 사제의 만남을 축하하는 문화 행사가 열린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운행사가 열린다. 한편 정부는 ‘대고려전’을 앞두고 북한이 소장한 태조 왕건상과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를 대여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태조 왕건상이 2006년 이후 12년 만에 한국을 찾으면 처음으로 희랑대사좌상과의 만남이 성사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태조 왕건 스승 희랑대사좌상, 1100여년 만에 해인사 바깥 나들이 나선다

    태조 왕건 스승 희랑대사좌상, 1100여년 만에 해인사 바깥 나들이 나선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의 스승이자 화엄종의 고승인 희랑대사의 목조 조각상이 1100여년 만에 해인사 문을 나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2월 4일 개막하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서 선보일 경남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과 대장경판 이운(移� ㅊ蘆?� 불구 등을 다른 장소로 옮길 때 하는 의식)을 부처에게 알리는 고불식(告佛式)을 9일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연다. 93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희랑대사좌상은 해인사 조사(祖師)였던 희랑대사의 초상 조각인 진영상(眞影像)이다. 이 불상은 앞쪽은 건칠(乾漆·여러 겹 삼베를 바르고 옻칠하는 방식) 기법으로 만들었고 뒤쪽은 나무로 제작했다.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큰 편으로 자비로운 눈매와 잔잔한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고불식에서는 해인사 주지인 향적 스님이 고불문을 낭독한 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경판을 전달한 후 법보전에서 일주문까지 이운 행렬을 재현한다. 이어 대장경과 희랑대사좌상을 차량에 싣고 경기도 연천 숭의전지(사적 제223호)로 이동한다. 숭의전은 고려 왕조 4왕인 태조·현종·문종·원종과 고려의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는 고려의 실질적인 종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0일에는 숭의전지에서 왕건의 초상화와 희랑대사좌상를 두고 사제의 만남을 축하하는 동시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의미의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에서부터 취타대 및 전통의장대의 안내를 받으며 대장경과 희랑대사좌상을 옮기는 의식을 연다. 신달자 시인의 헌시 낭독과 특별 공연이 마련되고, 박물관 앞 거울못에서는 소원등을 띄우는 행사도 펼쳐진다. 내년 3월 3일까지 이어지는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서는 청자병(국보 제94호), 고려 불화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문화재 390점이 전시된다. 정부는 북한이 소장한 태조 왕건상과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를 대여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태조 왕건상이 2006년 이후 12년 만에 한국을 찾으면 처음으로 희랑대사좌상과의 만남이 성사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조각가 박은선, 이탈리아 ‘조각 도시’ 피에트라산타서 최고조각상 수상...동양인으로 3번째

    조각가 박은선, 이탈리아 ‘조각 도시’ 피에트라산타서 최고조각상 수상...동양인으로 3번째

    조각가 박은선(53)이 이탈리아 서부의 조각 도시 피에트라산타에서 주는 최고 조각상을 받았다. 피에트라산타 시는 도시의 명성을 빛낸 조각가에게 부여하는 상인 ‘프라텔리 로셀리’의 제28회 수상자로 박 조각가를 선정해 28일 시상했다. 알베르토 스테파노 조반네티 시장은 이날 열린 시상식에서 “이제 이곳 시민이나 다름없는 박은선 조각가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으며 피에트라산타의 문화 대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도시의 예술적 역동성을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25년간 이곳에 거주해온 박 조각가는 1991년 제1회 상을 탄 페르난도 보테로 2회 수상자인 폴란드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 등 세계적 조각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한국 작가가 이 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동양인으로는 1995년 야스다 칸 등 일본인 조각가 2명에 이어 3번째다. 박 조각가는 이날 시상식에서 “25년 동안 차가운 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작업이었는데 큰 상까지 받게 돼 뜻깊고 영광스럽다”며 “피에트라산타를 위해 더 기여할 방법을 찾아보고 한국과 이탈리아의 조각 교류를 위해서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경희대 조소과를 거쳐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원을 졸업한 그는 피에트라산타에서 생산되는 대리석과 화강석을 이용해 동양적인 곡선과 조형미가 살아있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일구며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최근 부쩍 이름이 높아졌다. 유럽과 미주 지역을 오가며 굵직한 전시를 잇따라 열어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6월에는 서울에서 9년 만에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2000여년 전 피라미드에서 ‘비밀의 방과 터널’ 발견

    2000여년 전 피라미드에서 ‘비밀의 방과 터널’ 발견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멕시코 피라미드 내에서 의문의 방으로 향하는 ‘비밀의 터널’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멕시코뉴스데일리 등 현지 언론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연구진은 북부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Pyramid of Mood)에서 특정 공간으로 향하는 터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달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세기 후반 건립된 것으로, 달을 향한 제사를 목적으로 건축됐다. 높이 46m, 한 변의 길이는 146m이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발굴을 책임지고 있는 베로니카 오르테가 박사 및 전문가들은 달의 피라미드 지하 8m 부근에서 방사선(엑스선) 탐사를 이용해 해당 터널의 존재를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이 터널이 장례의식에 사용된 방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고대인들은 현존하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신앙이 있었으며, 발견된 터널과 공간은 이러한 의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오르가테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터널은 달의 피라미드 광장의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터널을 지나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의문의 방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 발굴을 통해 터널 부근에서 기형의 유골들과 함께 목걸이나 의인화 된 신의 형태를 본딴 돌들이 발견됐다”면서 “의심할 여지없이 더 깊은 지하에서 이와 유사한 유물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고대 주요도시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이와 이어진 메소아메리카 문명에 대한 이해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달의 피라미드는 과거 꼭대기에 20t이 넘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테오티우아칸 중앙을 가로지르는 ‘죽은 자의 길’을 지나 달의 피라미드에서 심장과 피를 바치는 제물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생생리포트]‘누가누가 더 큰 불상 세우나’ 경쟁하는 중국 지방도시들

    [생생리포트]‘누가누가 더 큰 불상 세우나’ 경쟁하는 중국 지방도시들

    중국 각 지방에서 좀 더 큰 불상을 세우기 위한 승자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산시(山西)성에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불상이 3억 8000만 위안(약 622억원)을 투자해 건설됐다. 한 사업가가 8년여에 걸쳐 만든 이 불상은 높이만 88m로 22층 빌딩에 해당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허난성 핑딩산시 루샨현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불상이 있다. 2008년 108㎏의 금으로 만든 금불상이 12억 위안을 들여 세워졌다. 루샨현은 연간 주민 소득이 1만 2800위안(약 200만원)에 지나지 않는 가난한 시골 마을이다. 건설에 11년이 걸린 이 금불상의 높이는 208m에 이른다. 2011년 이 일대는 중국 최고 등급의 관광지인 5A급 관광명소로 지정되었다. 중국에서는 몇 년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조각상이 들어서고 있다.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초대형 조각상은 단지 부처만이 아니라 관우, 노자, 공자, 황제, 영락제, 마조, 마오쩌둥 등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황금을 입힌 마오쩌둥 조각상은 2016년 허난성의 한 빈곤촌에 세워졌지만 당황한 지방 정부에 의해 바로 다음날 산산조각이 났다. 생전에 마오는 우상과 종교 숭배를 금지했지만 중국 각 지방에서 불상을 비롯해 대형 조각상을 세우는 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다. 중국의 관광지는 물가 대비 입장료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의 왕쭤안(王作安) 국장은 “중국의 몇몇 불상은 지나지게 큰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만약 누군가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을 세우면 다음에 더 큰 불상을 세우려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라며 중국의 거대 불상 세우기 경쟁을 설명했다. 경쟁적으로 대규모 조각상을 세우는 것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이는 1997년 우시에 들어선 88m의 링샨 불상의 성공 때문이다. 당시 링샨 불상이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조명받으면서 경쟁적으로 더 큰 불상이 생겨나게 됐다. 중국 불교협회와 국무원, 국가종교사무국에서는 더 이상 대규모 야외 불상을 세우지 말라며 불상 건설 경쟁을 자제시키려 했지만 관광 수익을 벌어보려는 이들은 당국의 경고를 무시했다. 하지만 링샨 불상이 연간 400만명의 관광객을 쓸어모으는 명소가 된 것은 단지 거대한 불상 때문이 아니라 불교문화 박물관, 불교 주제 민속촌 등을 건설하고 세계 불교 포럼을 여는 등의 노력 때문이다. 관광 전문가들은 거대한 조각상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국외여행으로 눈이 높아진 중국 관광객을 그러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남북한은 화합 귀하게 여기는 민족, 더는 분단으로 약점 잡히지 않기를

    [색다른 인터뷰] 남북한은 화합 귀하게 여기는 민족, 더는 분단으로 약점 잡히지 않기를

    “(1992년) 한·중 수교 16일 전에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는데 한국의 김정숙 여사처럼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예술가 한메이린(韓美林·82)은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한·중 양국 우정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지난달 18일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찾은 날 베이징 외곽 퉁저우에 있는 한메이린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사실상 한 나라인 남한과 북한이 좋은 관계를 맺기를 기원했다. 1936년 산둥성 지난시에서 태어난 한은 칭화대 미술학원을 졸업하고 서예를 비롯해 조각, 회화, 디자인, 도예 등 전 예술 방면에 걸쳐 창작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베이징을 비롯해 항저우, 인촨 등 중국에 세 곳이나 있다. 모든 작품을 지방 정부에 기증한 그는 베이징 미술관 안에 작업실과 주거공간을 함께 마련해 매일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넓은 작업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격정적인 클래식 음악과 함께 인체의 아름다움을 먹선으로 그려낸 수묵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누드 수묵화는 최근에 열중하고 있는 작업으로 수십 분만에 수십 장의 작품을 완성해 냈다. 3000점의 작품이 있는 베이징 미술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로고와 마스코트, 봉황을 형상화한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로고 디자인으로 중국의 국보로 불리게 된 그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평일에도 많은 중국인이 미술관을 찾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경계 없이 뻗어나가는 한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다. ‘격정·융화·올림픽’을 주제로 한 그의 세계 순회전시는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지난 6~7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오는 12월 베이징 자금성에서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한의 세계순회전이 서울에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의 인연이 컸다. 지난해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으로 서울에서 열린 중국 화가 치바이스(齊白石)의 전시를 관람한 김 여사는 한과 인사를 나눴고, 지난해 12월 중국 국빈방문 때 한메이린미술관을 찾았다. 두 사람은 미술관에서 건강식으로 유명한 한의 집밥을 함께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김 여사는 전시 공간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한의 세계순회전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수 있도록 도왔다.한은 “한국과 중국은 손만 내밀면 손뼉을 칠 수 있는 가까운 관계”라며 “고대 문자를 서예로 표현한 나의 예술을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감동했다”며 서울 전시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1992년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당시는 남과 북이 대립하는 상황이었고 한·중 수교 직전이라 북한이 불만스러웠던지 김일성 주석과 같이 사진도 찍고 북한의 미술협회장과 대화도 했지만 직접적인 교류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미술에 대해서는 아직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며 당시에는 북한 예술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은 “북한의 예술은 한국과의 교류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그는 “사람들은 화합하기를 원하지 뿔뿔이 흩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한민족이 화합해서 분단 때문에 약점을 잡히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화위귀’(和爲貴)라는 글씨를 직접 쓰면서 “남북한은 사실상 한 나라로 화합을 귀하게 여기는 민족”이라고 덧붙였다. 한이 스스로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자존심이 세고 자부심이 넘치는 민족’이다. 하지만 중국적 특성이 넘쳐나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인정하고 받아준 데 대해 감사하고 감동했다고 표현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전시가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문화 체계가 같고 문화와 예술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중국의 피카소’라는 평가에 대해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한은 “나는 중국의 한메이린으로 동양과 서양의 예술 스타일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피카소를 전혀 모방하거나 따라 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동양의 예술은 혼을 담아내고 기가 스며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서양 예술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림 한 장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파안대소하게 한 일화도 소개했다.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문 대통령이 참석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당시 아베 총리는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한이 즉석에서 말 그림을 그려서 선물하자 활짝 웃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총리 얼굴의 미소가 바로 외교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한은 “정치적 외교를 할 때는 서로 껴안지 않아도 문화 교류를 하면 정상들도 내려놓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운 화합의 장을 펼칠 수 있다”며 “예술가들은 문화 교류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지만 민간 예술교류는 절대 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은 일본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평화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사과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문제”라며 “모든 정부는 평화를 통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남북 회담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도 민간 예술과 문화 교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은 “남북이나 한·중 관계도 말로 표현하기보다 문화 교류로도 충분할 수 있다”며 “정치적 문제도 마음에 와닿고 피부에 와닿는 문화로 해결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한메이린은 누구 중국에서 한메이린은 누구나 다 아는 예술가다. 국제사회로부터 중국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20세기 중국의 위대한 화가 치바이스처럼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조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도 등지에 답사를 가서 현지 문화를 작품으로 담아낸다. 높이가 80m에 가까운 대형 관우 조각상부터 우표 디자인까지 다채로운 예술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1992년 북한 김일성 주석에게 중국화를 증정하기도 했다. 올해 네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왼팔로 아기를 안고 오른팔로 붓을 휘두른다. 중국의 전통을 담아낸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와 로고를 제작하는 등 올림픽 문화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4월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쿠베르탱상을 받았다. 한·중 문화 교류에 이바지한 그의 노력이 높게 평가돼 올해 중국인 1호 한국 문화훈장 수여자로 결정됐다. 훈장은 오는 24일 수여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시 덕에 천재적 작품 남겼다” (연구)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시 덕에 천재적 작품 남겼다” (연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역사적인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가 ‘간헐성 외사시’로 불리는 눈 질환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집중할 때는 사물이 하나로 보이지만 긴장을 풀면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이 증상이 아이러니하게도 다빈치가 사물의 거리나 깊이를 평면상에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시티대학의 크리스토퍼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사시였다는 증거를 ‘미국의학협회 안과학’(JAMA Ophthalmology) 최신호(18일자)에 발표했다. 타일러 교수에 따르면, 다빈치는 간헐성 외사시를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간헐성 외사시는 피로할 때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는 공상을 할 때 등에 한쪽 눈이 바깥쪽을 향하는 상태를 뜻한다.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의 후기 자화상 1점을 비롯해 그를 모델로 한 다빈치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조각상 2점, 그리고 다빈치가 자기 모습을 투영했다고 알려진 그림 3점까지 총 6점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선의 방향을 비교 분석했다. 각 작품의 동공과 홍채 그리고 눈꺼풀의 위치를 측정해 각도로 변환했다. 그 결과, 다빈치에게는 외사시 경향이 있으며 눈의 긴장이 풀렸을 때 왼쪽 눈이 바깥쪽으로 -10.3도 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다빈치가 후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은 -8.3°였으며, 최근 경매에 나와 유명해진 ‘살바도르 문디’ 역시 −8.6°로 나타났다. ‘세례 요한’(Young John the Baptist)은 −9.1°, 인체 비례도로 유명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5.9°로 나타났다. 다빈치를 모델로 삼은 베로키오의 ‘다비드’와 ‘어린 전사’도 각각 -13.5°와 −12.5°로 외사시 증상을 드러냈다.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외사시 덕분에 평소와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빈치가 봤던 세상은 우리처럼 3차원 스크린이 아닌 평평한 캔버스에 가까웠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대상을 캔버스에 표현하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빈치의 오른쪽 눈은 정상 각도를 지녀 3차원 물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타일러 교수는 추정한다. 이에 따라 다빈치는 자기 작품에 정확한 명암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타일러 교수는 덧붙였다. 기존 연구에서도 렘브란트와 에드가 드가,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다른 거장들도 다양한 형태의 눈 정렬을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다. 당시 연구는 다빈치의 일부 작품에서 동공들의 방향과 크기가 다르다는 점을 한쪽 동공이 다른 동공보다 더 큰 상태인 동공부등(anisocoria)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동공부등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자신의 한쪽 눈이 다른쪽 눈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에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다빈치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므로, 그 천재성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고 타일러 교수는 말했다. 사진=JAMA Ophthalmology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휴양도시 싼야에서 분위기에 취하다

    휴양도시 싼야에서 분위기에 취하다

    톈야하이자오 관광지는 하이난(海南)성 싼야시 톈야(天涯)구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톈야하이자오 뒤로는 마링(馬嶺)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해당 관광지는 하이난성 건성(建省) 이래 20년 동안 제일관광명소, 신중국 설립 60주년 하이난 제일관광브랜드, 국가 4A급 관광지로 이름을 알려 왔다. 관광지 내 모래사장에 위치한 ‘톈야석’, ‘하이자오석’, ‘르웨(日月)석’, 난톈이주(南天一柱) 사이로는 크고 작은 돌 100여 개와 석각이 세워져 있다. 청(淸)나라 옹정(雍正)연간 야저우(崖州, 애주) 주수(州守: 영주)였던 정철(程哲)은 이곳에 ‘해판남천(海判南天)’이란 글을 새겼으며 해당 석각은 톈야하이자오 최초의 석각 작품이다. 하이난성 싼야시 난산쓰는 하이난성 싼야시에서 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난산문화관광구 ‘불교문화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史誌) 기록을 살펴보면 난산쓰는 보살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보달락가(補怛洛迦)’, ‘대광명산(大光明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난싼쓰의 면적은 400묘(畝, 면적 단위: 1묘는 약 666.67㎡)에 달하며 당(唐)나라 건축형태를 띠고 있다. 내부에는 인왕전(仁王殿), 대웅보전(大雄寶殿), 동서배전(東西配殿), 종고루(鐘鼓樓), 전륜장(轉輪藏), 법당(法堂), 관음원(觀音院), 비전원(悲田院) 등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난산쓰는 산을 끼고 있고, 건축물의 엇갈린 배열, 엄숙한 분위기, 깨끗하면서도 품위 있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쑹청옌이(宋城演艺)가 개발한 관광 공연 브랜드 ‘첸구칭’은 ‘중국 무대 공연의 으뜸’으로 불린다. 현재 ‘쑹청 첸구칭’, ‘싼야 첸구칭’, ‘리장(麗江) 첸구칭’, ‘주자이(九寨) 첸구칭’, ‘탄허(炭河) 첸구칭’, ‘장자제(張家界) 첸구칭’, ‘중화(中華) 첸구칭’ 등 다양한 첸구칭 시리즈가 공연되고 있으며 모든 ‘첸구칭’ 공연은 각 도시의 문화를 담은 이야기를 연출하고 있다. ‘첸구칭’은 이렇게 체인형 브랜드 경영 실현에 성공했다. 대형 가무극 ‘싼야 첸구칭’은 하이난성 ‘오개일공정(五個一工程)’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싼야 첸구칭’은 말과 문자로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이다. 싼야의 길고 넓은 역사를 포용하고 있으며 참신한 무대 디자인은 전통과 감각적인 공간이란 틀의 한계를 넘어섰다. 한 편의 시 또는 그림과도 같은 무대는 관객들에게 시각적 아름다움과 미학적 감각을 선사한다. 뤄비둥(落筆洞) 동굴의 1만 년 전의 메아리, 여장부 승부인(冼夫人)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들을 수 있으며 해상 실크로드의 이국적 풍경, 젠전둥두(鑒眞東渡)의 거친 파도소리, 루후이터우(鹿回頭)의 아름다운 전설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야자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바다가 풍기는 운치, 모래사장 등은 잠시 잊고 있던 낭만을 되찾아 주기도 한다. 루후이터우산딩(鹿回頭山頂)공원은 싼야시 남부 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낮은 산으로 주봉의 해발은 275.1m이다. 루후이터우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한 편의 전설에서 온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루후이터우 정상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지어져 있으며 아름다운 전설을 기리기 위해 산 정상에 높이 12m, 길이 9m, 넓이 4.9m의 거대한 조각상을 새겼다. 루후이터우가 유명해지면서 싼야시를 ‘루청(鹿城)’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산 위로 올라가면 바다로 돌출한 육지와 파도를 감상할 수 있고 멀리 연이어진 산들과 싼야시의 전경 및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루후이터우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며 산을 따라 핼리혜성 관측소, 청조정(聽潮亭), 관해건(觀海乾), 칭런다오(情人島)섬, 허우산(猴山)산, 사슴 목장, 려가료방(黎家寮房), 귀별천당(龜鱉天堂), 유어선지(遊魚仙池) 등 명소가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루후이터우산에는 사계절 꽃이 피기 때문에 언제든지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과 하이난을 대표하는 야자수인 립스틱야자를 관람할 수 있다. 야룽만(亞龍灣)열대삼림공원은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글로벌 열대 해양휴양도시인 싼야시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야룽만국가관광리조트의 양측으로는 산이 있으며 총면적은 1506헥타르에 달한다. 이곳에는 열대우림과 어울리는 거대한 천연 불상이 있는데 현지인들에게 산신(山神)의 ‘룽터우스(龍頭石, 용두석)’라고 불린다. 공원 내부에는 페이라이(飛來)석, 판룽둥(盤龍洞) 동굴, 천리정(千裏亭), 페이룽(飛龍)석, 성관(升官)석, 파차이수(發財樹), 룽먼(龍門)석, 선인각(仙人脚), 여지원(荔枝園), 천공색교(穿空索橋), 위린(雨林)잔도, 공산정(空山亭) 등 10여 곳에 달하는 명소가 개발되어 있다. 또한 5성급 냐오차오(鳥巢) 리조트와 독채 별장 등 210개의 객실이 구비되어 있으며 독특한 리조트 콘셉트와 다양한 최첨단 설비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車가 운전하는 동안 먹고 쉬고… 파리의 가을, 미래를 만나다

    車가 운전하는 동안 먹고 쉬고… 파리의 가을, 미래를 만나다

    “‘이지 얼티모’의 프라이빗한 공간은 고객을 위한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로 보면 된다. 이동 중에도 휴식하고 직장으로 가는 길에 차에서 내 집처럼 편히 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로런스 반덴애커 르노그룹 디자인 총괄 부회장)르노가 자율주행 기술수준 4단계에 달하는 로보자동차 ‘이지 얼티모’를 지난 2일(현지시간) ‘2018 파리모터쇼’ 현장에서 깜짝 공개했다. 이지 얼티모는 이지고, 이지프로에 이은 르노의 미래 공유형 모빌리티 로보자동차 콘셉트의 3부작 완결차다. 예컨대 차가 알아서 운전해 주는 동안 차 안에서 승객이 음료를 마시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마치 긴 조각상을 닮은 듯한, 차 같지 않은 외관에 모터쇼 현장에서도 탄성이 나왔다. 밖에서는 차 안이 보이지 않았는데 내부는 마치 나무가 깔려 있는 레스토랑을 연상케 했다. “저렇게 커서 도심을 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장은 5.7m에 달한다. 반덴애커 부회장의 표현처럼 흡사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처럼 디자인돼 있다고 보면 된다. 외관만 신기한 것이 아니다. 승객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프리미엄 자율주행차를 불러 공유할 수 있다. 승객이 이동 경로나 목적지만 입력하면 프리미엄급 자동차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자율주행 4단계는 앞차와의 거리 유지, 차선 유지, 차선 변경 및 교차로 회전 등이 가능하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통제 센터의 제어를 받아 차량의 컨트롤이 자동으로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소음이 없는 전기차인 만큼 전기 모터용 특수 플랫폼으로 설계됐고 무선 충전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프랑스 파리 포르트 베르사유 박람회장에서 막을 올린 ‘2018 파리모터쇼’에는 19개국 200여개 자동차 관련 업체가 참여했다. 규모가 예년에 비해 축소됐어도 세계 최초로 공개된 신차만 38종에 이르고, 유럽 최초 공개 모델은 19종에 달했다. ‘대세’로 떠오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친환경차, 자율주행 기술 차량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가운데 중국의 첫 파리모터쇼 데뷔 무대도 관심을 받았다.중국 자동차 기업 GAC 모터사(광저우자동차)는 이번 행사에 주력 모델 ‘GS5’, 하이엔드 SUV ‘GS8’ 등을 선보였다. ‘GS5’는 스마트폰으로 실내 공조 장치를 원격 조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유준 GAC 대표는 “GS5는 글로벌 시장 판매를 위한 고품질 SUV”라며 “실용성, 프리미엄 이미지, 합리적인 가격 등 시장 요구에 모두 맞춘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장판 GAC 부사장은 이날 모터쇼 행사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한국으로부터 자동차 기술을 배웠지만 이제 한국은 우리의 경쟁자다. 한국보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포르셰는 콤팩트 SUV 모델인 ‘신형 마칸’을 공개했다. 마칸은 2014년 출시된 이후 스포티 플래그십 세그먼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를 실시한 신형 마칸은 미립자 필터 기술(GPF)이 적용된 2.0ℓ, 4기통 터보차지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 최고 출력은 245마력이며 최대 토크는 37.8kg.m 수준이다. 7단 PDK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장착해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 시간)은 단 6.7초에 불과하다.푸조는 ‘푸조 e-레전드 콘셉트’, 그리고 새로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엔진’을 이번 모터쇼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푸조 e-레전드 콘셉트는 푸조 504 쿠페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고전적 쿠페형 외관에 순수전기 자율주행 기술을 얹은 콘셉트카다. 시트로엥은 ‘뉴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 하이브리드 콘셉트’를 처음 선보였다. 이 브랜드의 첫 번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차로, 2020년 상용화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3개 모델을 이번 행사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벤츠의 SUV 라인업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GLE 신형 모델 ‘더 뉴 GLE’와 7년 만에 완전 변경된 왜건형 ‘더 뉴 B-클래스’,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을 갖춘 ‘더 뉴 메르세데스-AMG A35 4매틱’이 그 주인공이다. 또 지난달 스웨덴에서 처음 공개한 벤츠 ‘EQ’ 브랜드의 첫 순수전기차 ‘더 뉴 EQC’ 등도 관람객을 맞았다. BMW는 내년 3월 출시될 ‘3시리즈’의 7세대 신형과 럭셔리 스포츠 쿠페인 ‘8시리즈 쿠페’를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였다. 역동적이고 민첩한 주행 성능의 3시리즈는 BMW의 간판이다. 3시리즈는 진입 때 이용한 동선을 그대로 따라 최대 50m까지 차량을 자동으로 후진시키는 ‘리버싱 어시스턴트’, 차선 내에 차량을 유지시키는 조향 기능,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의 반(半)자율주행 기능도 탑재했다. 파리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팬이 만든 188cm 아놀드 슈워제네거 목각상

    팬이 만든 188cm 아놀드 슈워제네거 목각상

    ‘I’ll be back!‘.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목각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아티스트 겸 미국 할리우드 액션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의 팬인 제임스 오닐(James O’Neal)이 만든 목재 조각상을 소개했다. 아놀드의 팬인 제임스가 자신의 영웅 조각상을 완성시키는데 소요된 시간은 무려 6개월. 제임스가 조각한 아놀드의 목각상은 그의 트레이트 마크인 진공 자세(Vacuum Pose)를 취하고 있으며 실제 아놀드의 키인 188cm와 똑같은 크기로 제작됐다. 완성된 목각상에 폴리우레탄 코팅으로 풍부한 색조와 나뭇결을 강조했다. 제임스는 실물과 똑깥은 목각상 제작을 위해 아놀드가 출연한 영화 터미네이터와 프레데터 수백장의 사진을 참고했으며 심지어 아놀드 섬세한 근육과의 튀어나온 혈관까지 세부적으로 묘사했다. 제임스는 자신이 만든 목각상 에 아놀드의 출생지인 오스트리아를 감안해 ‘오스트리언 오크’(Austrian Oak)로 이름지었다. 제임스는 며칠 전 아놀드가 이 동상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다고 전했다. 사진= James O‘Neal, SWNS.com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황제 납치 프로젝트1] 일본 압박에도 항일신문 찍어낸 베델

    [황제 납치 프로젝트1] 일본 압박에도 항일신문 찍어낸 베델

    서울신문은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찾았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입니다. 작가가 조선과 일본에 머물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이들 소설에는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대한제국이 배경인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먼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내가 조선의 옛 황제(고종) 퇴위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은 아니다. 그토록 온 세상이 원하던 소리(조선 독립)를 듣지 못하고 영혼의 자유를 얻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1851-1908)는 더더욱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 당시 일본은 스티븐스 암살 사건을 빌미로 한국인들을 잔인하게 보복 살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오직 소녀와 나 둘 뿐이겠지... 지난 겨울 나는 중국 상하이의 애스터하우스 호텔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나는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게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말에 몸서리치듯 괴로워하더니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빌리, 정신 나갔어? 이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나 다름없어.” 지금(이 소설이 출간된 1912년 12월)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브루클린의 고급 아파트에 산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도 있는 꽤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 것이 지루하기는 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복도에 있는 저 ‘자메이카 머큐리’(사람을 닮은 동물 조각상으로 추정)는 하세가와(당시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으로 훗날 조선의 2대 총독이 되는 하세가와 요시미치·1850~1924)의 충실한 심복(당시 일본 공사관원이자 훗날 외무성 통상국장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1868~1911)을 닮은 것 같은데... 나는 왜 뉴욕에 살면서도 낡고 오래된 서울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는걸까. 나는 왜 동북아 외교 정글에 갇혔던 기이한 늙은 황제 때문에 목숨을 잃은 3명(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민영환,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를 신문에 쓰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창밖을 내다보니 아래층에 사는 웬 미친 여자가 자기 사진을 보며 3시간째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허름한 옷 차림의 남자 하나는 술에 잔뜩 취해 소리를 지르고 있고...이윽고 내 머릿 속 커튼이 열리며 오래된 기억이 서울의 케케묵은 먼지 쌓인 그곳(이 소설의 시작점인 서울 서대문의 애스터하우스 호텔)으로 데려다줬다. 테러와 위험이 가득했던 그 때(1905년 10월~11월 을사늑약 체결 전후) 조선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모험을 다시 한번 감행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곳에서 평범한 시민이지만 한때는 조선 왕실의 비자금 관리처 ‘골든엄브렐라’(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한제국 세관조직)의 책임자였고 소녀는 조선 황제 납치의 주범이었다.우선 여러분에게 베델이 누구인지부터 말해주고 싶다. 그는 키가 작고 말이 많은 황소고집 영국인이었다.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러일전쟁이 끝난 ‘슬픔의 땅’ 조선을 점령한 일본인들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것 하나뿐인 듯 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른다. 일본 나가사키 아니면 고베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베델은 자신이 발간하는 네 페이지짜리 영자신문 코리아데일리뉴스(1904~1909)가 있는 ‘그림자의 도시’ 서울에 살았다. 그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이에 아랑곳없이 조선인 조판공이 만든 활자로 신문을 찍어 일제의 만행을 끊임없이 비난했다. 하기와라는 “베델이 러시아 비자금으로 신문을 만든다”라고 악의적 소문을 냈다. 하지만 나는 베델이 진심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또 자신의 펜으로 일본 제국주의을 무너뜨리겠다고 자신하는 무모함도 알기에 그 말을 믿진 않았다. 나는 그저 이 날카로운 성격의 ‘대영(大英)남자’가 어떻게 신문 하나로 하세가와와 메가타(탁지부 고문으로 대한제국 화폐개혁을 이끈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 조선 황제의 일본인 고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곤 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일제가 대한제국 백동화를 오사카의 일본제일은행권 화폐로 교환(1905년 화폐개혁)하면서 보여준 꼼수를 베델이 폭로하자 메가타는 길길이 날뛰었다. 일본인들이 소위 “군사적 목적으로” 한국 농부들의 토지를 가로채려던 속임수(1904년 황무지 개간권 요구)도 밝혀내자 하세가와 역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겉으로는 “대한제국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인들을 착취하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유교문화 특유의 간접적 방식으로 느리지만 치밀하게 한반도를 잠식해 나갔다. 베델은 이런 처지의 조선인들을 지켜주려고 나선 유일한 인물이자 조선 황제를 대신해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단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의 온갖 술수를 하나하나 까발리며 조선인에게 독립과 자유를 위해 저항하라고 소리쳤다. 물론 그도 가끔 사고를 내 문제를 일으켰다. 조선의 암울한 현실에 지나치게 몰입해 보기에 불편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지금 서울 어딘가에 있을 이 친구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을 것 같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의지 만으로 조선인을 위해 싸웠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지킬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양화나루의 고민’ 재현

    [흥미진진 견문기] 지킬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양화나루의 고민’ 재현

    뜨겁던 여름의 열기도 태풍에 대한 걱정도 내려놓은 저녁, 아름다운 밤 풍경을 기대하며 옛 양화 나루로 출발했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것은 잠두봉의 붉은 노을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붉은 피로 물들었던 절두산 순교성지였다. 잔혹한 형벌 도구들과 순교당한 성인들의 조각상을 지나 뜬금없이 서 있는 척화비를 바라보며 “그때 쇄국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이곳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라는 덧없는 생각을 해 본다.수백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으로 들어섰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비문에 숙연해진다. 선교사들의 작은 비석이 묘원을 둘러싼 빌딩보다 높아 보이는 이유이다.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난지 생명 길을 따라 한강의 밤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화대교의 아치와 붉은 노을은 한강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이어폰 가이드시스템을 통해 전해지는 가곡 ‘한강’은 마음을 적셨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쯤 망원정에 도착했다. 월산대군의 ‘추강에 밤이 드니…’, ‘무심한 달빛만 싣고…’ 등 시조 2편을 들었다. 그때와 지금의 풍경은 사뭇 다르겠지만, 마침 떠오른 보름달과 선선한 바람만은 예나 지금이나 헛헛한 마음을 채워 주고 쓰다듬어 줬다. 다시 난지 생명길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조명의 성산대교와 웅장한 서울함 공원이 시선을 끌어당겼다. 서울함 공원에 전시된 세 척의 배를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타고난 낭랑한 목소리 신수경 해설사가 들려주는 망원동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기존의 것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100여년 전 양화나루에서의 고민이 망원동에 재현되고 있었다. 피 철철 흘러넘쳤던 절두산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색하지만 신구가 공존하는 망리단길, 대형할인매장과 공생협약을 맺고 새롭게 변화하려고 애쓰는 망원 전통시장에서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살포시 점쳐 봤다. 황미선 책마루독서교육연구회 연구원
  • 프랑스 어딘가 묻힌 부엉이 조각 25년째 찾아 헤매는 이들

    프랑스 어딘가 묻힌 부엉이 조각 25년째 찾아 헤매는 이들

    프랑스 어딘가에 묻혀 있는 부엉이 조각 동상(銅像)을 찾기 위한 노력이 25년째 이어지고 있다. 작가 막스 발렌틴이 자기만 아는 프랑스 본토에 숨겨놓은 뒤 1993년 펴낸 일러스트레이션 책 ‘Sur La Trace de La Chouette d’Or(황금 부엉이 사냥)’에 실어 일종의 수수께끼를 냈다. 찾아내는 이에겐 똑같은 모양에 금과 은으로 만든 조각 오리지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찾아내는 사람에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보물 사냥을 매듭지었다는 더 큰 명예가 주어질 것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당시 이런 일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영국 예술가 키트 윌리엄스가 앞서 베스트셀러 ‘마스쿼레이드’에 여러 가지 눈에 띄는 단서들을 흘려 독자가 황금토끼 목걸이를 찾아내게 했다. 그는 1979년 황금토끼목걸이를 파묻었는데 결국 30년 뒤 자신에게 돌아왔다.황금 부엉이 사냥에는 모두 12개의 수수께끼가 실렸는데 그 가운데 다른 11가지는 모두 해결됐지만 이 부엉이 조각상은 4반세기가 흐르도록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전히 부엉이 조각을 찾는 이들이 있다. 이름하여 ‘chouetteurs’. 그들은 인터넷에서 공짜로 관련 자료를 다운로드 받아 자신들만의 채팅 포럼을 만들어 가설을 교환하고 연례 모임도 갖는다. 모의법정을 열어 가설을 주장하고 반박하기도 한다. ‘A2CO’ 모임의 창립 멤버인 피에르 블로흐는 “1993년부터 찾고 있다”며 “당시에 우리는 책이 나온 지 3개월 만에 찾기 시작해 남들보다 빨리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렇게 될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부엉이 추격자들처럼 블로흐도 자신의 가설을 좇아 중부 부르주 시의 이곳저곳을 파헤치기도 했다. 엔지니어로 은퇴한 그는 이제 온라인 문헌을 뒤져 새로운 단서를 찾는 데 열중하고 있다. 11가지 수수께끼들은 프랑스의 한 마을로 귀결되며 12번째 수수께끼는 11번째까지 것들에서 이용되지 않은 실마리들을 풀면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있게 돼 있다. 인터넷으로 여러 아이디어들을 모은 결과 여러 수수께끼들에 이미 답이 제시돼 있다는 점에 합의가 이뤄졌다.그러나 인터넷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블로흐는 “요점은 발렌틴은 책들을 참고로 삼아 수수께끼들을 만들었는데 지금 우리는 그가 접근할 수도 없었던 정보들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미있는 것은 발렌틴이 초기 인터넷인 미니텔(한국의 하이텔 같은 것일지 모른다)에서 몇년 동안 독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냥꾼들의 질문에 답했다는 것이다. 일련의 답들이 쌓여 일종의 선지자 말씀처럼 통한다. 선지자 발렌틴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9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밀봉된 봉지에 답을 적어놓고 유족들에게 전했다. 답을 알지 모르는 한 사람은 화가 미셸 베커인데 책의 삽화를 그리고 직접 부엉이상을 조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4년 전 원형인 금과 은으로 만든 조각상을 팔려고 시중에 내놓아 chouetteurs가 들고 일어나는 사태를 야기했다. 법원은 조각 소유권이 미래의 승자에게 있다며 판매 시도를 중단시켰다. 그 역시 은닉 장소를 알지 못한다고 밝혀 현재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정확한 장소를 아는 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은닉 장소가 재건축 등으로 형태가 바뀌었을 수 있으며 실마리들이 너무 흐릿해 끝내 눈에 띄지 않거나 아예 처음부터 거짓이었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chouetteurs은 발렌틴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1996년 그는 “만약 모든 탐사꾼들이 지혜를 총동원하면 금방, 두 시간 안에 부엉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디에서나 인류는 장례 문화를 갖췄고, 권력자들은 살아서건 죽어서건 장대한 분묘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로마의 석관, 조선 왕릉이나 고구려 벽화고분도 같은 범주다. 하지만 이는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생전의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에 불과했다.누구에게는 권력과 위계를 만천하에 보여 주는 일이 중요했고, 누구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절절한 애도가 필요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비통을 숭고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고,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예수를 바라보는 애통한 심정을 묘사한 제단화도 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죽은 자를 직접 묘사한 경우가 없다. 단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그것은 석가모니의 열반이다. 열반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하며 미술로 재현했다. 일본 고야산(高野山) 곤고부지(金剛峰寺)의 ‘석가열반도’(1086년)에는 열반을 애도하는 다양한 군상이 그려졌다. 사라나무 아래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온갖 짐승과 사람, 천인, 보살들이 에워쌌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반을 대한다. 석가모니 왼편 아래에는 인간적으로 흐느껴 우는 왕과 대신들이 있고, 발치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왕이 있다. 왼편 위쪽의 보살은 세속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열반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슬퍼하는 대신 평온하게 미소 짓는다. 화면 하단 오른편 구석에는 슬픔에 못 이겨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사자도 있다. 높이가 267.3㎝에 이르는 이 대형 불화는 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억하고 애도하게 한다. 그림 속 군상처럼 누군가는 통곡을 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쳤을지도 모른다. 일본 호류지(法隆寺) 오중탑에도 8세기에 만든 열반 조각이 있다. 석가모니의 열반을 슬퍼하는 여러 형상의 군중이 보인다. 이들은 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들인지라 감정의 기복이 매우 잘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석가모니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도 제자들의 얼굴은 막상 스승의 죽음을 맞닥뜨리자 놀랍고 당황스러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심장이 터질 듯한 슬픔에 일그러졌다. 누구는 소리를 내어 통곡하고, 누구는 머리를 쥐어뜯고, 또 누구는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쾅쾅 친다. “오호, 애재라!” 하던 ‘조침문’ 문구와 달리 비통에 빠진 인간의 자학적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두 손으로 막 닦으려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 이 조각상의 온몸에서 절절이 배어 나오는 슬픔이 보는 이들 맘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조각가는 최선을 다해 애도하는 감정을 드러냈다. 목까지 차오르는 스승을 여읜 슬픔을 1000년 전의 예술가는 어찌 이리도 애절하게 묘사했고, 또 21세기의 우리는 그 애곡함에 공감하는가? 슬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소리를 지르든, 통곡을 하든, 조용히 눈물을 훔치든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다. 애도의 미학은 우리를 그 시간과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애도의 미학, 슬픔에 옳고 그름은 없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인류는 장례 문화를 갖췄고, 권력자들은 살아서건 죽어서건 장대한 분묘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부터 로마의 초상 조각과 석관까지 죽음을 매개로 한 서양 미술품은 많다. 아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 왕릉이나 신라 고분 출토 공예품, 고구려 벽화고분도 이 범주에 있다. 죽은 자를 기리려는 것이라기보다 그가 지녔던 생전의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동과 서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는 권력과 위계를 만천하에 보여 주는 일이 중요했고, 누구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애도가 필요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비통을 숭고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고,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예수를 바라보는 애통한 심정을 묘사한 제단화도 있다. 성경이나 신화 속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처절하게 죽음을 직시하는 그림들도 그려졌다. 아시아는 어떤가. 아시아에서는 죽은 자를 직접 묘사하거나 그가 죽음을 맞는 상황, 즉 죽음을 마주하며 이제까지의 ‘생’과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을 표현한 경우가 없다. 단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그것은 석가모니의 열반이다. 열반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했고, 미술에서도 그렇게 재현했다. 일본 고야산(高野山) 곤고부지(金剛峰寺)의 ‘석가열반도’(1086년)에는 열반을 애도하는 다양한 군상이 그려졌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 열반에 든 석가모니를 온갖 짐승과 사람, 천인, 보살들이 에워쌌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열반을 대한다. 석가모니의 왼편 아래에는 눈물을 훔치며 인간적으로 흐느껴 우는 왕과 대신들이 있고, 발치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왕이 있다. 왼편 위쪽에 그려진 보살은 세속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열반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에 슬퍼하는 대신 평온하게 미소를 짓는다. 온몸으로 비통해하는 사자도 있다. 화면 하단 오른편 구석에서 슬픔에 못 이겨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이다. 높이가 267.3㎝에 이르는 이 대형 불화는 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억하고 애도하게 한다. 그림 속 군상처럼 누군가는 통곡을 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일본 나라 호류지(法隆寺) 오중탑에도 8세기에 만들어진 열반 조각이 있다. 석가모니의 열반, 곧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러 형상의 군중이 보인다. 이들은 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들인지라 감정의 기복이 매우 잘 드러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석가모니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석가모니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도 제자들의 얼굴은 막상 스승의 죽음을 맞닥뜨리자 놀랍고 당황스러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슬픔에 일그러졌다. 어떤 이는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하고, 어떤 이는 머리를 쥐어뜯고, 어떤 이는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쾅쾅 친다. “오호, 애재라!” 하던 ‘조침문’ 속 점잖은 글월과 달리 비통에 빠진 인간의 자학적 감정 표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막 닦으려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 이 조각상의 온몸에서 절절이 배어 나오는 슬픔이 보는 이들 맘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조각가는 최선을 다해 애도의 감정을 드러냈다. 목까지 차오르는 스승을 여읜 슬픔을 1000년 전의 예술가는 어찌 이리도 애절하게 묘사했고, 또 21세기의 우리는 그 애곡함에 공감하는가. 슬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소리를 지르든, 통곡을 하든, 조용히 눈물을 훔치든 저마다의 애도 방식이 있다. 애도의 미학은 우리를 당시의 시간과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글: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강진 청자축제, 3000만원 경품 받아가세요

    강진 청자축제, 3000만원 경품 받아가세요

    제46회 강진청자축제에 다양한 청자 경품 이벤트들이 마련돼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흙을 밟고·던지고·적시는 체험(투게더 점핑 소일), 나이트 팝 페스티벌을 킬러콘텐츠로 오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 일원에서 개최된다. 축제 기간에는 30% 청자할인 판매(일부품목 제외)를 진행해 평소보다 저렴하게 청자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진행하는 청자 경품이벤트는 청자구매 금액 10만원당 경품권 1매씩을 수여해 이벤트 담청자를 발표한다. 1등 상품으로 수여되는 3000만원 상당의 청자는 ‘이천학문 상감청자매병’이다. 일반적인 일천학문을 뛰어넘는 이천마리의 학을 조각상감한 특색 있는 작품이다. 2등에 500만원 상당 2점, 3등에 100만원 상당 3점, 장려상에는 식기세트 등을 경품으로 제공한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청자 경품이벤트는 군민에게는 소득창출에 기여하고, 소비자에게는 뜻깊은 경품을 수여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며 “많은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성대한 축제다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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