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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진보의 미래’ 찾아 고민하는 유럽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진보의 미래’ 찾아 고민하는 유럽

    21세기 들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우파들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최근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에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던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대대적인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진보진영은 그간에 신자유주의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돼 온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펼쳐 왔을까? 또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 평등성 강화로 사회 양극화 해소 앞장 |베를린(독일) 류지영특파원|베를린시 중심지인 베를린역 인근의 녹색당 당사를 찾았을때, 그곳에선 ‘규제없는 자본주의의 결과물’인 환경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2005년 총선에서 우파 기독교민주당에 정권을 내주며 소수정파로 다시 전락했지만 당원들의 얼굴에는 녹색당의 진보적 이념이 금융위기로 촉발된 사회불안에 대한 대안이 돼야 한다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집권 당시 녹색당 대표였던 요시카 피셔는 2005년 총선 뒤 정계를 떠나 현재 베를린에서 녹색당의 미래와 신자유주의의 대안에 대한 강연과 저술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녹색당 대변인 옌스 알토프는 1998년부터 좌파 사회민주당과의 ‘적녹연정’(적녹은 사민당의 상징인 붉은색과 녹색당의 초록색을 의미)을 통해 녹색당을 이끌었던 요시카 피셔 전 대표의 근황을 소개했다. 그가 자신의 정치역정과 다이어트 경험을 담아 직접 쓴 ‘나는 달린다’라는 책은 한국에도 번역돼 소개된 바 있다. ●독일내 원전 폐쇄 이끈 것 가장 성과 독일 녹색당은 1970년대 유행했던 좌파 이념의 ‘신사회운동’ 세력이 모여 1980년 창당한 진보 이념의 정당이다. 중도 좌파를 지향하는 사민당보다도 급진적이다 보니 지난 20여 동안 지지율이 5% 안팎에 머물러왔다. 그러다 1998년 총선에서 7%를 득표하면서 사민당(44% 득표)과 공조해 연립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 최초로 급진 좌파 세력이 정권을 창출한 사실만으로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8년을 이어 온 적녹연정의 ‘진보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정권 초기부터 노사정뿐 아니라 실업자 연대까지 포함한 사회적 대합의로 사회적 평등성을 강화하려 했지만 경제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세계 경제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1% 정도의 저성장에 머물다 보니 대부분의 정책이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실업률도 10%를 넘어서면서 재정적자도 심화돼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 위기”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국정에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이상을 펼치던 연정 시절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 피셔의 뒤를 이어 녹색당 대표를 맡고 있는 게르하르트 뷰티코퍼는 크게 웃었다. 첫번째 진보적 실험이 실패했다고 이것이 진보의 한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앞으로 녹색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 때가 오면 지금의 경험이 독일 사회에서 정치적·사회적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데 실질적 노하우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외부의 평가와는 별개로 우리는 스스로 지난 8년간의 집권 과정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 비용 절감만을 최선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상황에서도 2021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것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줄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대체에너지를 통해 분권과 자치의 정신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독일을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사회적 불평등 줄이려는 좌파적 가치 재평가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약세를 보이던 좌파 진영의 새로운 미래 찾기가 한창이다.‘탈규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식 경제이념만으로는 인류가 더 이상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진보 정치세력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복지국가 이념을 구현하는 데 좌파식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최고의 재무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고든 브라운 현 총리가 저소득층에 대한 조세 정책 실패로 ‘20세기 이후 최악의 총리’로까지 불리고 있다. 프랑스 또한 2000년 당시 집권 사회당 조스팽 총리가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주 35시간 노동제를 추진했다 결국 정부의 재정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좌파적 이념이 최근 가치를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확대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 방지를 위해 앞장서기 때문이다.1990년대 중반부터 영국 노동당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3의 길’이나 독일 사민당이 내걸었던 ‘신(新) 중도’ 노선 등은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평등성을 강화하려는 좌파적 노력의 산물이다. 최근 대표적 진보주의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진보 이념의 유용성을 입증한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만약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 고객의 평균 재산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술집에 이미 앉아 있던 고객들이 실제로 더 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2001년 이후 (세계는) 마치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간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폴 크루그먼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에서) superryu@seoul.co.kr ■ ‘경제 신자유주의’ 한국식 대안은 - “내수위주 실물경제 확대해야” “GM, 포드,GE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해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한결같이 주식, 채권 투자로 자산 불릴 생각만 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해서 산업이 죽고 금융만 덩치가 커지니까 미국에서 실업이 늘고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낮아지는 겁니다. 금융산업은 부(富)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재분배할 뿐입니다. 우리나라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산과 고용·임금 상승을 통해 경제활성화의 활로를 찾아야 해요.” 한국의 진보세력들이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한국식 대안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진보주의 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에서 미국의 금융위기와 한국경제를 비판한 뒤 내수 위주의 실물경제 확대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서는 더 이상 수출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수출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해 내고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거든요. 가난한 사람이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정부가 나서서 취직도 시켜주고 실업수당도 많이 줘야 합니다. 그래야 국내 시장이 활성화되고 국내에서 물건 파는 회사가 성장하게 됩니다. 커다란 틀에서의 정책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진보정치 세력의 이른바 ‘NL-PD’ 담론의 틀이 현실의 여러 문제를 담아내기에는 협소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통일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평등과 관련된 정책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은 계속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두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통일과 평등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성장, 대외개방, 사회적 소수자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진보정치 세력들은 이런 문제들에 좀 더 폭넓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광장] 남은 4년 6개월 뭘 할 건가/김인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남은 4년 6개월 뭘 할 건가/김인철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넘기면서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촛불도 기세가 꺾였고,10%대로 떨어졌던 지지율도 30%를 넘어서고 있다. 지지율 회복에 올림픽 거품이 끼어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로서는 액면 그대로 믿고 싶을 것이다. 덩달아 자신감을 되찾은 양상이다. 엔도르핀이 돈다거나 좌고우면 않겠다는 등의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대통령의 강한 의욕이 잘못일 수는 없다. 문제는 지난 6개월을 어떻게 정리했느냐이다.‘잃어버린 6개월’을 반성하고, 실패원인을 찾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남은 4년 6개월 펼칠 국정운영의 ‘수정본’을 마련했는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아닌 듯하다. 우선 진정성 있는 반성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대통령과 당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깝고 걱정이 컸을 것”이란 대통령의 편지나,‘대내외의 어려움 속 삶의 선진화를 준비한 6개월’이라는 청와대의 자평은 지난 6개월의 소용돌이를 무색하게 한다. 반성이 없으니 오답노트도, 제대로 된 국정운영의 수정본도 없다. 지난 6개월을 그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원안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태세다. 그런데 그 원안이 기실은 시대착오적 과거회귀다. 정치는 유신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를, 경제도 1960,70년대 성장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규제 완화는 전국적인 투기 광풍을 촉발했던 수년전의 정책 실패와 닮아 있다. 이 대통령이 부쩍 ‘법치’를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시위피해 집단소송제나 사이버모욕죄 등의 신설 움직임과 맥이 닿아 보인다. 행여 법으로 제2, 제3의 촛불의 싹을 아예 잘라 버리겠다는 계산이라면 오산이다. 국민이 바라는 건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적 법치가 아니라, 통합과 소통의 정치다. 민주적 정당성이 전무했던 독재정권의 부끄러운 유산을 왜 이 대통령이 물려받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버락 오바마는 지난달 28일 미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의 숫자나 포천 500대 대기업의 이익으로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제를 이루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자본의 가치가 아니라 중소기업·서민·근로자를 존중하는 경제를 주창했다. 이에 질세라 존 매케인도 이제 44살의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미 대선 사상 두번째인 여성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며 ‘공화당식’ 변화와 개혁의 맞불을 놓았다. 변화와 개혁이 작금의 시대정신임을 보여준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얼마 전 “변화하지 않는 보수는 수구다. 진보보다 더 진보적 가치를 수용해 나가야 한다.”고 한나라당에 한 주문은 액면 그대로 이 대통령에게도 전해져야 한다. 내가 눈을 감는다고 앞에 있는 사물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남은 4년 6개월 촛불을 곁에 끼고 살 작정이 아니라면, 지난 6개월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이 내려준 ‘첨삭지도’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첨삭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어버리고 옛 방식대로 문제를 푼다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운이 좋으면 20점에서 30점대로 조금 오르겠지만, 낙제점이긴 마찬가지다.4년 6개월 뒤면 이 대통령도 역사 속으로 돌아간다. 그 역사가 이 대통령이 상위 1%를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려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기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계로 뛰는 한국 대표기업]KT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계로 뛰는 한국 대표기업]KT

    ‘빛(光)의 실크로드’를 만들고 있는 회사.KT의 해외사업은 러시아에서 시작해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르완다까지 이어지고 있다.2000년 전 인류의 대표적 교역·문화교류의 통로로 ‘실크로드’가 있었다면 KT는 통신기술로 새로운 ‘빛의 실크로드’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 내수산업인 통신은 해외진출이 어렵다. 또 대규모의 망(網)투자를 해야 하는 유선통신 사업자는 해외시장 진출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KT의 글로벌 사업전략은 철저한 사업분석에 따른 내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 등 성장이 예상되는 글로벌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무선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분야 등 투자기회를 찾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KT의 대표적 성공사례로는 철저한 사전 현장 분석을 통해 성공적으로 러시아 연해주 시장에 안착한 엔터카(NTC)가 꼽힌다.KT는 97년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NTC를 인수해 10년 만에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제1위 이동통신사업자로 재탄생시켰다. 지난해 NTC 매출액은 1억 1500만달러, 영업이익은 4000만달러다. KT의 성공은 NTC의 사업구조를 유선 위주에서 이동통신으로 전환하는 ‘역발상’ 전략에서 시작됐다. 국내 유선전문 통신회사가 이동통신사를, 그것도 해외에서 운영하는 것에 대한 이견도 많았지만 이동통신 자회사인 KTF와의 연계사업 경험과 무선랜, 위성기술, 통신망 관리 등을 통해 쌓은 무선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이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KT는 지난 5월5일부터는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모바일 와이맥스(와이브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러시아 시장 성공에 힘입어 KT는 우즈베키스탄 시장 공략도 고삐를 죄고 있다. KT는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의 제2유선사업자 이스트텔레컴(ET)과 와이맥스사업자인 슈퍼아이맥스(SiMAX)의 지분을 각각 51%와 60% 사들였다. 이를 바탕으로 연내부터 우즈베키스탄 시장에서 와이맥스 상용 서비스에 들어갈 계획이다. 타슈켄트 등 12개 지역에서 초고속인터넷,IP(인터넷)TV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 와이브로 서비스를 수출했다. 아프리카는 미개척 시장으로 외국 통신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KT는 르완다를 발판 삼아 아프리카 시장 선점에도 나설 계획이다. KT는 베트남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국영통신공사(VNPT)와 사업협력계약(BCC) 방식으로 97년부터 베트남 북부 경제특구 지역 4개성에서 통신망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KT 관계자는 16일 “통신망 구축 수익금의 일부로 베트남 현지에 4개의 초등학교를 건립, 베트남 국민들에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KT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KT는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각종 통신기술을 상품화해 해외시장 진출 속도를 내고 있다.KT는 베트남과 태국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방글라데시 공중전화 통신망 구축사업을 했다. 또 자체 개발한 무선망설계 솔루션(CellTrek)을 일본과 러시아에 수출해 정보기술(IT) 솔루션 제공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해 왔다. 지난해에는 파라과이 통신망 현대화 사업을 수주했다. 파라과이 전자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기초 단계인 통신망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KT는 이 사업을 통해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 다른 중남미 지역에서도 활발한 해외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또 네팔과 몽골의 정부통합데이터센터(GIDC) 구축사업, 르완다 와이브로망 구축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며 글로벌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남중수 KT 사장은 “‘글로벌 KT’ 실현을 위한 해외진출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한국 고객들로부터 고객만족 1위 기업, 고객불만이 가장 적은 기업으로 인정받은 KT의 노하우와 역량으로 전 세계에서 제2, 제3의 NTC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일부 병원 평가맞춰 직원 3배로

    일부 병원 평가맞춰 직원 3배로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전국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대한 의료기관평가 결과는 공개 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보건의료노조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보여주기식 일회성 평가로는 안 된다.”면서 제도개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료기관평가위원회 회의 정례화 ▲위원회를 제3의 기구로 독립 ▲전문성과 공공성을 갖춘 별도의 전문평가요원 선발 ▲평가 예고기간 최소화 및 불시에 불규칙적으로 평가 등을 제시했다. ●병원직원 환자 보호자로 둔갑시켜 평가과정에도 잡음이 있었다. 현장에선 일부 병원들이 평가기간에 맞춰 직원을 3배까지 늘리는가 하면 병원직원을 환자보호자로 내세워 조사에 응하기도 했다. 복지부도 장관보고까지 마친 자료를 오류가 발견됐다면서 하루만에 재평가에 나서고, 항목이 많을수록 정확한 평가지표를 오히려 축소하는 등 미숙한 처리과정을 드러냈다. 복지부가 중간자료라고 설명한 보고문건에선 ‘환자만족도´ 외래환자 항목의 A등급과 최하점수인 C등급간의 점수차가 불과 7점 안팎에 불과했다. 상대평가라는 이유로 상위 25%, 중위 50%, 하위 25%로만 나눈 탓이다. 외래환자 만족도는 삼성서울병원이 89.1점, 서울아산병원이 88점으로 A등급을 받은 반면 서울대병원(80.8점), 신촌세브란스병원(80.2점), 강남성모병원(80.1점)은 최하인 C등급으로 분류됐다. ●발표직전 재평가 신뢰성 의문 문건에는 복지부가 공표를 앞두고 고민한 흔적도 있다. 기관전체나 평가부문, 영역에 걸쳐 ‘실제값 공표’,‘등급화 공표’ 등을 섞어 모두 12가지 방안이 고려됐으나 결국 실제값(점수)은 발표에서 모두 배제됐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문건은 보건산업진흥원에서 보내온 것을 요약한 것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이를 바로잡았을 뿐”이라며 “‘임상의 질’은 몇개 항목갖고 전체를 평가하는 데 문제가 있어 막바지에 임상이란 용어를 뺄 것도 검토했다.”고 전했다. 한 보건전문가는 “병원평가는 국민에게 공개돼 해당병원의 생사를 가름하는 ‘살생부’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중요한 평가를 진행하면서 여러 문제점을 불과 1∼2일 사이에 바로잡아 발표 직전 수정했다는 것은 평가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고 지적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391개댐 균열등 피해… 긴급사태 선포

    |청두 이지운특파원·서울 최종찬기자|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의 여파로 두장옌(都江堰)시 북쪽의 지핑푸 댐에 ‘아주 위험한’ 균열이 생겨 인민해방군 2000명이 급파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14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핑푸 댐 외에 고대 수리시설인 위쭈이 제방에도 금이 생겼다. 지핑푸댐이 붕괴되면 인구 60만명의 두장옌시가 수몰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 개발개혁위원회도 이날 홈페이지에 대형댐 2개를 포함해 391개 댐이 균열등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교도통신과 마이니치신문은 충칭(重慶)직할시내 17개 댐에 균열이 생겨 긴급사태가 선포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댐과 둑 등 수리시설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또한 프랑스의 핵 감시기구는 이날 쓰촨성 인근의 핵 시설들이 잠재적인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추가 조사를 통해 피해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피해지역에 전염병 우려가 확산되면서 대지진에 이은 ‘제2의 재앙’,‘제3의 재앙’이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의 구조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중국 무장경찰과 군 병력이 진앙지 원촨(汶川)현에 진입해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이날 “10만명의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을 쓰촨성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지역이 워낙 넓은 데다 진입 도로가 끊기고 쓰촨성에 폭우마저 내려 구조작업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구조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사망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날 현재 사망자는 2만명이 넘어가고 실종자도 8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특히 인구 11만명의 소도시로 지진 이후 주민 6만여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원촨현은 전체가 쑥대밭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잉슈는 도로와 교량이 70% 넘게 파손됐으며 주민 1만여명 가운데 80%가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 2300명 가운데 1000명은 중상을 입은 상태다. 이때문에 군 헬기들이 잉슈 등 고립된 산악지역의 생존자들을 위해 의약품과 식량들을 공중 투하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구조 작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잇따르고 2000여차례의 여진이 발생하면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중국 지진전문가들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진앙지 주변에서 여진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iinjc@seoul.co.kr
  • [기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홍원식 원광디지털대 교수

    [기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홍원식 원광디지털대 교수

    “눈 덮인 들녘을 걸어가는 동안/발자국 함부로 남기지 말자/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근혜 누님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거듭나던 무렵 제가 모 일간지를 통해 누님께 드렸던 서신에 담았던 서산대사의 자작시 한 구절입니다. 이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하여 지인들에게 친필휘호로 많이 선물한 바 있음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유수 같은 세월 속에서 누님은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부친이신 박정희 전 대통령 치하에서 고통을 받은 국민들을 향한 사과 선언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등 정치적 위상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부친을 대신한 대국민 사과는 지난번 부족한 제가 용기 내어 요청드린 바 있어 남다른 감회를 받았었지요.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군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음은 물론 4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누님의 소속 정당이 아닌 ‘친박연대’라는 세계 정당사에 없는 정치집단이 배출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총선 이후 현재까지 누님과 관련된 뉴스의 초점은 오직 ‘친박연대의 한나라당 복당 여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이상기류를 편하게 관조하고 있는 정치권과 국가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수년 만에 부족한 제가 누님께 다시 고언의 편지를 다시 쓰기로 하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애창곡 중 하나로 알려진 ‘짝사랑’이라는 노래 가사에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라는 구절이 있지요. 유수 같은 세월과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역정에 대한 회한을 담은 노래라 할 수 있는데, 지나칠 수 없는 비범성이 내재된 가사가 아닐까요? 세월이란 것이 촌각의 연장이라 할 때 “지금 한순간을 잘못 관리하면 평생의 통한으로 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이 시점에서 누님이 ‘복당 화두’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라, 진정으로 검토하고 실행에 옮겨 볼 만한 민족사적 대업 몇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현 후 급속하게 냉각되고 헝클어진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역할을 지금 누님이 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실용주의 경제내각’으로 특징되어 지는 현 정부는 ‘남북관계야말로 최고의 경제 기반’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가 평화국면과 긴장국면 간에 외국 자본의 한반도 투자나 국제수지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은 공식 통계자료로 확인 가능합니다. 불필요한 말실수로 국력을 소모하는 우를 범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고, 대북 관계자들이 북측의 심장을 뒤집어 놓는 발언을 남발하기보다는 명실상부한 ‘실용적 남북관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합니다.‘맹목적 퍼주기’도 비판 받아야 하지만 ‘맹목적 퍼붓기’도 민족적 공익에 반하므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현 시점은 누님이 방북하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다시 만나 남북 모두의 ‘윈윈 전략’을 탄생시켜 볼 절묘한 기회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1인 헌법기관’임을 직시하시고 평양에서의 ‘제2차 김·박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뒤, 신록으로 물들고 있을 묘향산을 돌아보고 와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스위스형 사회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제3의 헌법 이념을 추구해온 바 있는 백범은 “벼랑에서 살아남고자 나무뿌리를 부여잡고 매달리는 것도 용기이나, 잡고 있던 나무뿌리를 놓아 버리는 것 또한 진정한 용기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 시점 최고의 화두인 ‘복당’이라는 나무뿌리를 과감하게 놓아 버리고 북행에서 돌아온 뒤야말로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홍원식 원광디지털대 교수
  • [데스크시각] 화성연쇄살인의 추억과 진실/박찬구 사회부 차장

    [데스크시각] 화성연쇄살인의 추억과 진실/박찬구 사회부 차장

    “맞습니다. 경찰도 J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턱, 숨이 막혔다.‘그럼, 왜….’라고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용의자를 다른 지역 경찰에게 빼앗긴 수사본부의 축소·은폐, 고질적인 관할 다툼, 부실한 초동수사, 물증 확보 실패….’ 돌아올 답이란,15년 전 화성사건을 취재한 이후 기자가 줄곧 자문자답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터였다. 날선 의구심과 죄책감은 뜻밖의 충격에 오히려 맥이 풀렸다. 맞은쪽에 앉은 경찰청 소속 베테랑 형사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1993년 여름 화성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된 J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거짓말탐지기 검증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기사가 서울신문에 실렸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적어도 86년 12월과 87년 1월 두차례의 범행을 J가 자백했다고 밝혔다. 당직 변호사는 J를 단독 면담한 뒤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J는 경기도경 수사본부로 인계된 직후 풀려났다. 사건 당시 J가 수사본부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가 무혐의 처리된 적이 있으며, 뚜렷한 물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서대문팀의 한 간부는 수사본부가 공조수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당초 J를 무성의하고 형식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른 책임 추궁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기자에게 푸념했다. 권력기관, 특히 경찰에서 진실은 때로 현실에 묻혀버리고 만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백지장처럼 핏기 없는 손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날림체로 이름 석자가 적혀 있었다.H는 소스라치며 잠을 깼다. 화성사건을 다룬 신문기사를 뜯어보던 뒤끝이었다. H는 경찰에서 일하는 고향 후배의 도움으로 화성과 수원 인근에서 ‘꿈속의 이름’을 검색했다. 탐정을 자칭하는 H는 기자에게 다른 몇건의 살인사건 수사에 간여하거나, 단서를 제공한 적이 있다며 화성사건에 집착했다.H는 ‘화성사건은 미궁이 아니다’라는 책을 펴냈고, 다음에 회원 2만 7000여명의 관련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H가 꿈 속에서 보고, 서대문팀에 제보한 이름이 바로 J였다. 서대문팀이 H의 꿈에 놀아났다 하더라도, 거짓말탐지기 반응, 당직 변호사에게 자백한 정황, 최근 경찰청 형사의 ‘고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실은 때로 상식을 일탈하고, 진실은 이성의 바깥에도 존재하는 것인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화성에 경찰서가 새로 생겼다.‘혜진·예슬법’도 만든다고 한다. 제2·제3의 피해자가 줄어든다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수사는 전시행정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강력 사건에서 진실과 현실의 괴리는, 허공 속에서도 범인의 채취를 찾아내는 과학수사와 현장의 담배꽁초 하나도 놓치지 않는 초동수사, 제 몸을 사리지 않는 공조수사가 전제되어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등록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대학생 행렬에 경찰력을 곱절이나 배치하고, 대통령 행사를 이유로 도심 건물을 철통같이 에워싸는 일에 일선 경찰을 투입하는 전근대적 행태가 되살아난다면 ‘93년 화성’의 오류가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현 정부는 실용을 얘기한다. 공안이나 권위의 부활이 실용은 아닐 것이다. 경찰서 하나 세울 여력으로,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 저돌성으로, 묻혀가는 강력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노력을 보인다면, 그때 민생치안의 실용은 설득력을 지닐 것이다. 다시 화성을 생각한다. 원혼은 누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J, 그는 10년 전 자택에서 돌연사했다. 혹자는 양심의 가책에 따른 것이라 했고, 어떤 이는 누군가의 계획된 살인이라고 했다. 경찰의 강압수사 후유증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화성은 잊혀져 간다. 박찬구 사회부 차장 ckpark@seoul.co.kr
  • “교통사고 낸 뒤 버렸다” 거짓말 전과 7범의 계산된 형량 줄이기

    “교통사고 낸 뒤 버렸다” 거짓말 전과 7범의 계산된 형량 줄이기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의 피의자 정모(39)씨가 끊임없는 거짓말로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고 있다. 반박증거를 들이댈 때마다 바뀌는 그의 진술은 결정적 증거가 부족한 경찰의 약점을 이용하면서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경기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해 12월25일 오후 9시쯤 이혜진(10)·우예슬(8)양에게 교통사고를 낸 뒤 집 화장실에서 시체를 처리하고 시흥의 한 개천에 버렸다.”고 말했다. 검거 직후에 큰 목소리로 “억울하다.”던 말을 뒤집은 것이다. 교통사고 주장도 하지만 바로 거짓임이 탄로났다. 경찰은 ▲혜진양 시체와 렌터카에서 교통사고 충격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 ▲정씨가 렌터카를 빌린 시각(오후 9시50분)이 교통사고 주장 시각(오후 9시)보다 오히려 늦은 점 ▲혜진·예슬양이 집 근처에서 최종 목격된 시각이 오후 5시쯤이어서 교통사고 시각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 등에서 정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씨의 이런 거짓말은 다분히 계산된 행동이라는 게 경찰과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수절도 등 전과 7범으로 경찰과 검찰 수사, 법원 재판 등의 경험이 있는 정씨가 처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지능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찰이 압수한 정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은 썩는가’,‘토막 실종사건’,‘살인’ 등의 검색어들도 정씨가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검거됐을 때의 대처법까지 구상해 놨음을 보여 준다. 한 법조인은 “과실치사와 살인죄는 형량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정씨가 이전 경험을 살려 형량을 낮춰 보려 한 것 같다.”면서 “살인죄는 결정적 증거가 없어도 객관적 정황증거와 진술의 신빙성이 뒷받침되면 유죄 판결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여죄를 덮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씨는 2004년 7월 전화방 도우미인 A(당시 44세·여)씨 실종사건과 관련해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받았다. 당시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결국 풀려났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고 있다. 정씨의 집 화장실에서 혈흔 일부가 발견됐지만 제3의 장소에서 시체를 처리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정씨가 여죄가 있거나 제3의 시체 처리장소 등 경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씨의 컴퓨터에는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성적 집착을 가지는 ‘롤리타 신드롬’을 소재로 한 동영상과 사진 등이 수만건 저장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의 삐뚤어진 성 관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양 이재훈 황비웅기자 nomad@seoul.co.kr
  • ‘아줌마 드라마’의 맛깔스런 퓨전

    ‘아줌마 드라마’의 맛깔스런 퓨전

    ‘제3의 성’‘외계 인종’이라 불리는 아줌마. 바야흐로 안방극장이 아줌마 전성시대를 맞았다.‘조강지처클럽’‘천하일색 박정금’‘엄마는 뿔났다’ 등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향연을 펼치는 중이다. 여기에 또 한 편이 추가된다.MBC 새 주말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극본 문희정, 연출 이태곤)이다. ‘겨울새’의 후속 드라마인 ‘내 생애’이 그리는 아줌마의 모습은 이제껏 숱한 드라마들에서 선보인 아줌마 캐릭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불혹을 앞둔 39세 전업주부 홍선희(최진실)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고통 받고, 혼자 고단한 살림을 억척스럽게 꾸려나가며, 뒤늦게 톱스타가 된 첫사랑을 만나 로맨스를 꽃피운다. 하지만 ‘내 생애’은 기존 아줌마 드라마들의 전형성을 장르 퓨전화를 통해 새롭고 맛깔스럽게 요리해낼 것이라 자신한다. 톱스타와의 로맨스라는 다분히 환상적인 멜로 소재에 유쾌한 해프닝 연속의 코미디, 사라진 남편의 행방을 쫓는 미스터리, 해체가정과 출생의 비밀이 빚는 신파 등 여러 장르의 성격들을 섞는다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이태곤 프로듀서는 “자신의 매력을 깨닫고 사랑을 찾아가는 선희의 모습을 통해 30∼40대 아줌마들에게도 꿈과 열망이 있다는 것을 밝게, 코믹하게 그려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밋빛 인생’‘나쁜 여자 착한 여자’에 이어 다시 씩씩한 전업주부 역에 도전하는 최진실은 “이제 홍선희 역을 통해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를 능가하는 또 다른 인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아줌마를 위한, 아줌마에 의한, 아줌마 드라마’를 표방하는 주부 트렌디 드라마 ‘내 생애’(토·일 오후 9시40분)은 8일 첫 방송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한국경제 재도약의 길] (2)밑바닥 경제 살리기

    [한국경제 재도약의 길] (2)밑바닥 경제 살리기

    “성장의 내실이 실제 사회적 약자에게 어떻게 혜택을 주느냐, 그런 관점에서 정책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전인 지난 17일 열린 새 정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한 말이다. 경제성장률의 수치도 중요하지만 그 혜택이 서민이나 중소기업에게도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더욱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며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특히 성장 우선의 성장복지 경제정책이 핵심인 ‘이명박식 경제주의’(MB노믹스)의 특성상 이 대통령이 표방한 친기업 정책이 친재벌 또는 친대기업 정책으로 변질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MB노믹스의 핵심은 선(先)경제성장이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능력 있는 기업과 인재를 많이 키워내 ‘선진 사회’로 가면 경제도 성장하고, 결국 일자리도 늘어 자연스럽게 복지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아랫목이 따뜻하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논리다.‘능동적 복지’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의 걱정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 정부의 서민경제 정책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 근거한다. 있더라도 규제를 푼다는 식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해 실행 가능성 자체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금까지 나온 내용 가운데 서민경제를 위한 의미있는 대책은 산업은행을 민영화한 기금으로 한국투자펀드를 조성, 중소기업 금융을 강화한다는 것이 전부다. 김남근 변호사는 “시장자율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공공성 원리를 위해 해결해야 할 부분도 중요하다.”면서 “서민 신용대출을 위한 국책은행의 설립이나 개인파산·회생제 활성화, 장기전세 임대주택 공급계획, 대학 등록금 해결 방안, 비정규직 축소, 징벌적 손해배상 등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은 “대기업 위주의 낡은 성장전략만 고수하기보다는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을 목표로 한 직접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대책만 해도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조했다. 김상조 소장은 “2002년 현재 보증과 융자, 투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금융지원 규모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6.6%로 미국(0.2%)이나 프랑스(0.5%)보다 훨씬 높지만 이를 체감하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면서 “중소기업을 잘 아는 은행 등에 지원 대상의 선별·관리·회수 업무를 맡기는 등 지원의 전달장치부터 개선, 지원 자금이 눈먼 돈이 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규제는 풀더라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하청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정승일 박사는 “핀란드의 노키아가 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이 규제 완화에 있다고 하지만 노키아가 하청업체를 쥐어 짠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규제도 강화할 것은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도 “미국의 경우 불공정 거래에 대한 감독장치나 소송제도가 잘 발달해 있고, 유럽은 노조의 경영참여나 노사정 협의체, 적극적인 사회보장제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친기업 정책을 펴더라도 양극화를 막을 수 있었다.”면서 “둘 중 하나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선진사회는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빈부 양극화 이유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서민과 중소기업이 갈수록 먹고 살기 어려워지는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고도성장과 세계화를 꼽는다.1980년대 이전까지 고도성장을 이루던 산업화 시기, 성장의 ‘과실’은 모두에게 돌아갔다.‘파이’가 계속 커지면서 생활 수준은 상향 이동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성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국제화 추세는 여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국제화가 이뤄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우리 경제는 무방비 상태로 국제화에 휩쓸렸고, 기업들의 국제화 진전 노력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잇따랐다. 국제화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을 키워 주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국제화에 따른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주주를 경영의 중심에 두는 주주 자본주의가 나타난 것이었다.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경영의 목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실적을 강조했다. 이 결과 고액 연봉과 대량 실업이 일상화됐다. 비정규직도 늘어 지난해 8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570만 3000명, 임금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도 35.9%에 이르고 있다. 현재 주주 자본주의는 세계 기업경영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지만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기업들은 빠른 실적을 위해 단기 투자에만 열을 올렸고, 장기적인 연구개발에는 소홀했다. 이 와중에 직원 채용은 줄고, 명예퇴직자는 늘어나는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서민은 물론 대기업과 상생 관계에 있던 중소기업에도 직격탄이었다.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과거 형평성 차원에서 이뤄진 중소기업 보호육성 정책 대신 무한경쟁의 원칙이 적용됐다. 고유가 등 악재가 터질 때에도 대기업들은 납품 단가를 내리는 등의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중소기업은 마땅한 해결 수단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기술의 부가가치를 올려 제조 원가를 낮춘 일부 중소기업은 살아남았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은 해외의 싼 인력을 고용하는 손쉬운 방법을 썼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는 벌어지고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소득계층별 실질소득도 상위 10%와 중간 계층, 하위 10%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고도성장 이후 불거진 부동산 붐의 여파는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2000년 54조 2000억원 수준이었던 주택담보 대출은 지난해 221조 6000억원으로 7년 만에 4배 이상 늘었다. 대출 이자를 갚느라 돈을 쓸 여력이 없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힘든 경제 상황 속에서 더욱 쪼들리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스웨덴·덴마크의 성장복지 비결 성장복지의 성공적 모델로는 스웨덴, 덴마크 등이 거론된다. 이들 모두 복지의 기본은 일자리라고 생각한다. 일자리가 있어야 고용의 안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복지의 재원이다. 나아가 복지가 빈곤구제가 아니고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넓은 복지로 지지 확보 참여정부의 ‘비전 2030’ 선포로 관심이 집중된 스웨덴은 친(親)대기업 정책과 광범위한 복지정책이 공존한다. 좌·우도 아닌 제3의 길이다. 성장의 파이를 키워 그 과실을 사회복지에 쓴다는 개념으로 기업 우대세제, 기업 집중유도 등을 펴왔다. 대기업들은 직원교육,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쓰는 재생기금(옛 투자기금)에 세전 이익의 20%(1982년 이전에는 40%)를 적립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답한다. 삼성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브,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등의 최대주주인 발렌베리가(家)는 스웨덴 시가총액의 40%, 국민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삼성과 달리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복지는 특정 계층이 아닌 많은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공감대를 넓혔다. 주 스웨덴 대사관에 따르면 2002년 스웨덴 복지제도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찬성률이 80%였다. 소득이 높을수록 부가연금, 질병수당, 실업보험 등의 급부가 결정되는 소득비례형 복지 프로그램으로 중산층의 지지가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 위해 대다수 국민이 내는 세금은 33% 수준이다. 세금의 상당부분이 복지 형태로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조세저항이 적다. ●덴마크, 실업자 보호에 강점 덴마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기업이 3개월 전에 해고를 통보하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직업 안정성이 높다고 여긴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는 최장 4년간 직전 급여 90%까지를 실업급여로 준다. 실업자 교육과 재취업 등에 GDP의 1.5%를 쓴다. 다른 유럽 국가의 두 배 가량 되는 수치다. 이같은 노력으로 해고자의 95%가 1년 안에 재취업한다. 재취업에서 탈락해 빈곤층인 된 사람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잘 돼 있다. 빈곤층에게는 주거시설을 제공하고 최저 생활을 보장해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과 의료 서비스는 무료이며 17세까지 매월 일정액의 양육비가 나온다. 개인소득세가 평균 50%에 이를 정도로 세율이 높지만 불평의 목소리는 매우 적다.2006년 영국의 신경제재단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대학이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덴마크가 1위를 차지한 것은 당연하다.‘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단독] “태안 앞바다 기름 초기 방제인력 유독성 물질에 노출 가능성 자원봉사자 등 건강검진 시급”

    [단독] “태안 앞바다 기름 초기 방제인력 유독성 물질에 노출 가능성 자원봉사자 등 건강검진 시급”

    “사고 발생 후 5일간 40∼50%의 기름이 증발했다면 초기 방제 투입자들은 고농도의 유독성 물질에 노출된 것입니다. 주민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의 건강 영향조사에 즉각 나서야 합니다.”(서울대 의대 홍윤철 교수) “현재 확보하고 있는 흡착포의 총량이 얼마인지, 제대로 배급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서울대 공대 박준범 교수)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방제 작업을 하는 주민과 자원봉사자, 군인들에 대한 건강 영향조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비롯해 의대·자연대·공대·농생대 교수 등 14명은 본지 기자와 함께 지난 19일 태안을 둘러본 뒤 보다 체계적인 방제 작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생태계 복원·사고 재발 방지 등의 종합적인 방안 마련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서울대 교수팀은 자원봉사자 건강영향 조사, 방제도구 보급시스템 점검 등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기름이 거의 제거되지 않은 구릉포에서 홍 교수는 “남아 있는 타르 등은 피부에서 차단되지만 휘발성 기름은 호흡기 등을 통해 몸으로 직접 들어와 매우 유해하다.”면서 “초기 방제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은 공장 근로자들보다 더 많은 양의 유독성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대 팀에 합류한 이화여대 하은희(환경의학전공) 교수도 “(건강에 미치는)급성 영향과 만성 영향을 조사해야 한다.”면서 “빨리 조사하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대 교수들은 원시적인 오염물질 제거법을 안타까워했다. 박준범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헌옷 보내기 운동’의 효과에 의문을 던지며 “면의 기름 흡수량은 면 자체 무게의 2.5배이지만 흡착포는 60배에 이른다.”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남아 있는 미세 기름 제거가 더 중요한데 ‘스팀 인젝션’과 같은 도구 활용과 소각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대의 한 교수는 “손으로 닦는 것은 감동적이지만 감동으로만 그칠 문제는 아니다.”면서 “앞으로는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춰 효율적인 제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 유출에 의한 직접피해와 방제작업에 따른 2차 피해는 물론 제3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윤순진 환경계획학과 교수는 “기름 유출이 국립공원 훼손이라는 또 다른 피해도 낳은 것”이라면서 “기름 제거 작업이 비교적 잘 되고 있지만 이러한 부분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호 환경대학원장은 “현재 생태복원의 핵심은 어민, 시민단체, 정부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현실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정화시킬 것인지 먼저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면서 “사고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지만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팀은 공동조사를 바탕으로 ‘태안 사고 백서’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고, 내년에 문을 여는 ‘아시아 지속가능연구센터’에서 태안 사고를 첫 프로젝트로 삼아 연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태안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서울 과부 후려먹은 양주(楊州) 춤솜씨

    서울 과부 후려먹은 양주(楊州) 춤솜씨

    서울의 춤꾼들과 「플레이·보이」들을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 났다. 경기(京畿)도 양주(楊州)군 화두면 하산리의 시골신사가 서울로 진출, 미끈하고 날씬한 춤솜씨로 내노라하는 30대 미인들을 후려잡아 명성을 드날린 것. 그런데 이 시골신사의 솜씨가 결국 「돈 우려내기」여서 뒷맛이 개운찮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단박에 녹은 미장원 「마담」 다음은 여관서 2「라운드」 성동(城東)경찰서는 지난 8일 김은식(金銀植·36·무직·양주군 화두면 하산리 67)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고소인은 성동구 신당(新堂)동에서 미장원을 경영하고 있는 강옥초(姜玉草·34·가명). 김은 양주군 화두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춤의 명수로 명성이 자자한 백수건달. 경찰조서에 의하면 김은 지난 1월 2일 신당동 소재 D「카바레」에서 처음으로 강여인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강여인은 34살 한창 나이에 수수한 미모의 소유자. 거기다가 돌아다니며 놀기에 적당할만큼 돈도 벌리고 하여 춤을 배운 소위 「유한마담」으로 통하는 처지였다. 1월2일밤 신나게 두사람은 돌고나서 바로 이튿날 다시 만나게 됐다. 그만큼 김의 춤솜씨는 나무랄데 없이 훌륭했고, 강여인은 김의 용모와 사나이다운 태도에 마음이 끌렸던 것. 이날 밤의 춤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차 숨가쁜 호흡소리로 이미 의사를 소통하게 됐다. D「카바레」의 바로 옆골목에 붙은 E여인숙의 방에 들어가 이들은 제2「라운드」의 춤을 즐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여인은 김이 홀아비인 것으로 알았고, 그래서 돈쓰는 것도 인색하지 않게 썼다. 한번 트인 뱃길은 파도도 없다는 옛말처럼 이들은 거의 매일밤 만나서 춤추고 여관에 가는 짓을 되풀이 했다. 용돈 뜯고나면 사업자금…즐기고 돈버는 양수겹장 그러나 김의 내심은 강여인의 그것처럼 순수(?)한 것은 아니었다. 돈깨나 쥔 과부를 우선 춤과 육체교섭으로 「녹·다운」시킨뒤 적당한 기회를봐서 돈을 우려낼 심보. 김은 고향에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본처는 물론 자그마치 5남매를 거느린 가장. 춤을 밑천으로 돈깨나 있는 여자를 꾀어 「즐기고 돈도 버는」양수겹장의 사기한이었던 것. 영화구경, 교외 「드라이브」등으로 이들의 「뜨거운 관계」는 무르익어 갔다. 지난 2월 25일께. 이들의 분방한 애욕행각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발전했던 것인지 이날은 강여인의 미장원 안방에서 회포를 풀었다. 정사가 끝난뒤 드디어 김의 마각은 드러났다. 사업자금이 필요한데 30만원을 빌려주어야 하겠다고 강요를 한 것. 강여인은 일언지하에 『안된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정사와 사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 비슷하게 타일렀다. 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은 벌떡 일어나 「팬티」바람으로 가게에 나가 미장원 거울과 창문을 몽땅 때려부수고 말았다. 이날 피해 추산액이 3천원. 이때부터 그의 정체를 알게된 강여인은 집요한 김의 요구를 거절하며 만나주지도 않았다. 2월26일 밤 10시께 또 다시 미장원을 습격(?)한 김은 새로 비치한 거울과 화분을 모조리 깨뜨려 4천8백원어치 피해를 입히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러도고 김은 끈덕지게 그녀를 따라 다녔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손댄게 아니냐』는등 달콤한 사탕발림에 30대 여자의 마음은 너무도 허약했던 것일까? 3월6일부터 제기(祭基)동에 전셋방을 얻더 동거생활에 들어가 버렸다. 이후 강여인은 날이 갈수록 김의 화려한 「엽색행각」의 전모를 알게 됐다. 시골에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 것은 물론 때로 첩이라는 여자를 끌고 들어와 한방에서 거북한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일쑤. 그 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제3의 여자도 있었고, 숱한 유부녀와도 춤솜씨를 발휘해서 여전히 교섭중인 것을 알게 됐다. 처자있는 가짜 홀아비, 울린 여자10여명 3월15일 저녁. 김은 느닷없이 본처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겠으니 그 위자료 1백50만원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강여인은 이 요구를 묵살하면서 『이젠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이 소리에 미치광이처럼 흥분한 김은 부엌의 칼도마를 들고 들어와 강여인의 얼굴을 여지없이 후려갈겼다. 피투성이가 되어 묵사발이 된 그녀는 이날 밤으로 전셋집을 탈출, 미장원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러나 김은 미장원까지 뒤쫓아와 『네가 미장원을 해먹나 보자. 모조리 죽이고 만다』고 미쳐 날뛰었다. 이튿날 강여인은 신당동의 K다방에서 김을 만나 『8만원을 위자료로 지불』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이날 하오 그녀는 8만원이라는 위자료아닌 위자료를 김에게 주며 이제 이것으로 우리는 그만이라고 당부했다. 『지긋지긋해요. 그 사람이 그렇게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최악의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거예요. 저만이 아니고 10명 이상의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우려서 먹고 살아가는 치사한 사람이에요』 강여인은 아직도 치가 떨리는 듯 경찰신문에서 토로한 말. 4월7일 하오 5시. 아주 헤어진줄 알았던 김이 다시 미장원에 나타났다. 무턱대고 사업자금을 내놓으라는 요구. 이를 거절당한 김은 미장원의 의자와 기물들을 모조리 두들겨 부쉈다. 종업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김은 결국 쇠고랑을 찼고, 악마적인 엽색행각의 종지부를 찍기에 이르렀다. 『춤을 즐기는 것을 말릴수는 없어요.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선 그게 사회악으로 빠져들어갈 요인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번 강여인의 예가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피해자들이 창피해서 어물어물하기 때문에 결국 드러나지 못하고, 이런 백수건들이 활개질치고 다니는 겁니다』 성동서 형사과장의 말이다. 춤한번 잘못 추었다가 돈 털리고, 두들겨 맞은 강여인. 「춤 좋아하다 패가망신 하였네」라고나 해아할까?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4월 18일호 제4권 15호 통권 제 132호]
  • [옴부즈맨 칼럼] 어젠다가 실종된 대선 보도/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앞으로 대한민국 5년간의 향방을 좌우할 2007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기간만 코앞으로 다가왔을 뿐 대선 분위기는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과거처럼 삼삼오오 모여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자신이 반대하는 후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현 상황에까지 이른 것은 물론 후보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대권주자들 모두가 결정적 약점을 가지고 있어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후보들 못지않은 책임이 언론에 있다. 대선 후보 등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와 후보 간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TV토론 한번 보지 못했다. 신문에는 후보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 기사들만 난무할 뿐 정책 기사 역시 찾아볼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종이신문의 위기시대에서 종이신문의 위력이 가장 크게 발휘될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여론 주도의 사명을 실현하고 정론직필의 길을 가야 할 신문이 여론 호도를 도맡고 있으니 독자는 한숨만 나올 뿐이다. 올해 정치판은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졌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후보의 경선,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헐뜯기 선거운동 등 2007년 신문의 정치면은 언제나 네거티브 정치를 보도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읽는 사람은 물론 쓰는 사람도 지겨울 만하다. 하지만 언론은 여론을 이끌어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제3의 권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지금처럼 결코 넋 놓고 상황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지난주 서울신문 역시 다른 언론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선 초반 정책 중심의 매니페스토 운동을 주도하겠다던 의도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방과 여론조사 분석,BBK 의혹 등 각종 의혹 기사만이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제대로 된 후보 비교분석 기사는 없고 후보 등록에 맞춰 내보낸 11월26일자 4면의 ‘후보들 신상명세표’만이 하단 광고란에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후보등록 이전에 각 후보들을 하나씩 조망한 기획기사를 내보낸 것을 위로로 삼으려 하지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같은 날 1면의 ‘사상최다 생존게임, 어젠다 실종’이라는 기사에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번 선거를 무정책, 무정견, 무비전 등 3무(無)선거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서울신문 역시 ‘어젠다 실종’을 여실히 보여줬을 뿐이다. 서울신문의 강점인 기획기사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선거운동에 한창인 대선후보들의 하루 일과를 추적해본 ‘대선후보 동행 25시’는 흡사 각 후보의 홍보물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독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각 후보의 모습을 인간적 관점에서 조망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각 후보의 정당성 결여를 희석시키는 기사밖에 되지 못한 것 같다. 반면에 11월30일자 6면의 ‘李후보 지지·반대 넷심 모두 증가’기사는 여론의 향방을 뚜렷이 보여주는 인터넷 댓글을 분석한 기사로 시의적절한 기사였다. 주요 포털과 후보 홈페이지, 팬클럽사이트를 분석해 현재 여론의 모습을 조망한 것은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한 기사보다 현재의 여론을 더욱 정확히 보여줄 수 있는 기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신문은 편한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불편한 사람을 편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신문을 보면 편한 사람은 편하게, 불편한 사람은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선이 얼마 안 남은 지금, 각종 의혹 기사와 후보들의 선거운동 모습을 다룬 기사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매니페스토 선거 기사와 객관적인 후보 분석 기사로 불편한 독자들을 부디 편하게 만들어 주는 서울신문이 되길 바란다. 전혜영 고려대 국문과 4년
  • ‘떡값’사진 제시…靑에 불똥?

    ‘떡값’사진 제시…靑에 불똥?

    19일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삼성 뇌물제공’ 폭로로 삼성 특검법안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로비의 구체적 정황과 로비를 시도한 삼성 관계자의 실명, 뇌물 사진 등 증거까지 제기된 이상 청와대 역시 특검법에 대한 입장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그동안 김용철 변호사의 도덕성에 대한 ‘물타기식 폭로’가 이어지면서 삼성과 김 변호사에 대한 양비론으로 흐르던 삼성의 전방위 로비 의혹 역시 진실 규명을 위한 2라운드를 맞이할 전망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기소여부 뜨겁던 때”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삼성의 접촉이 시도된 것으로 알려진 2003년 말과 2004년 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사건의 기소여부를 놓고 삼성이 극도로 민감하던 때다.2003년 9월부터 민정2비서관으로 에버랜드 사건을 담당하던 이 전 비서관이 같은해 12월 법무비서관을 맡으면서 “당시 청와대 내에서 에버랜드 기소 관련 포지션(입장)을 정하는 명실상부한 담당 실무자(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주장)”가 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상조 소장은 “에버랜드 관련자들에 대해 업무상 배임을 적용해 기소할 경우 공소시효 만료가 2003년 12월3일이었다.”면서 “삼성으로선 12월20일 부로 법무비서관으로 보직 통합이 예정된 그(이용철 전 비서관)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집중관리대상인 그에게 설을 핑계로 (로비를) 시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용철 전 비서관의 양심선언에 따라 청와대도 삼성비자금 특검과 관련, 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이 전 비서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측에서 법무비서관에게만 로비를 했다고 보기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돈문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은 “청와대도 이건희 일가의 불법로비 대상이라는 증거가 제시됐다.”면서 “일개 법무비서관인 이용철 변호사에게만 뇌물이 제공됐을지는 의문이다. 이 변호사에게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돈이 갔을지, 얼마나 많은 청와대 인사에게 전달됐을지 의구심이 생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2, 3의 양심선언´ 뒤따를 가능성 국민운동측이 이날 “삼성과 이건희 일가에 대해 특검제를 회기내에 도입하라. 이제 청와대도 수사 대상이 됐다.”고 밝힌 것은 향후 ‘이용철 전 비서관 폭로’의 후폭풍을 가늠케 한다. 또 김용철 변호사와 이 전 비서관에 이어 ‘제2, 제3의 양심선언’이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그동안 국회에서 3년째 잠자고 있던 공직자부패수사처법과 연계해 삼성 특검을 받아들이겠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혀 왔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자 전 법무비서관이 삼성의 로비 대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상 특검법을 미룰 만한 명분이 없게 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앨빈 토플러 “인간의 미래는 바다에 달려 있다”

    앨빈 토플러 “인간의 미래는 바다에 달려 있다”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는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지구 온난화와 살아있는 바다와 연안’을 주제로 제2차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학술 행사는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11월27일)을 앞두고 여수가 세계박람회 주제로 정한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 시의 적절하다는 점을 알려 세계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제3의 물결’을 쓴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기조 발표를 했고 피터 브리지워터 국제습지조약(람사) 전 사무총장이 ‘지구 온난화에 따라 예상되는 해양과 연안의 변화’를 발표했다. 앨빈 토플러는 기조 발표에서 “이번 학술 토론회가 인간이 얼마나 바다에 의존하는지를 인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미래 환경에서 바다가 갖는 중요성을 역설했다. 토플러는 인간의 미래와 사회제도가 바다에 의존한다는 점을 중시했다. 그는 “지식을 경제 생산에 접목시키는 지식산업시대에 지식이 새로운 경제의 핵심이 되면서 바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됐다.”며 “이 새로운 경제구조가 기술과 사회, 환경의 복잡성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또 삶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변화보다 그 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그는 “해양운송 속도가 세계적으로 2020년까지 3배로 늘어나고 이 변화는 바다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선박이 물건만 나르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나 종교, 언어, 예술, 음악, 관습 등 비가시적인 것을 더 많이 전달한다.”고 말했다. 토플러는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는 “산업화 시대에 지구의 자원을 활용하면서 환경적 영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며 “이를 해결하려면 가장 첨단화된 접근 방법과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대안을 내놨다. 그는 “제3의 물결에 따라 지식기반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바다나 연안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사회가 복잡해지고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창출되고 이 같은 현상은 해양부문 전반에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플러는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가장 흥미로는 변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기회도 얻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행사 이튿날이자 마지막날인 14일에는 세계박람회 활용 방안을 토론하고 빈센테 곤잘레스 로세르탈레스 세계박람회기구(BIE) 사무총장의 총평으로 행사의 막을 내린다.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제3의 성/유정애 옮김

    1997년 프랑스에서 출판돼 화제를 모은 ‘제3의 성’이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프랑스 그르노블대 철학과 교수인 질 리포베츠키가 쓴 ‘제3의 성(유정애 옮김, 아고라 펴냄). 프랑스의 여성작가 보부아르가 쓴 ‘제2의 성’이 페미니즘의 경전으로 떠오른지 58년만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제3의 성’의 핵심은 ‘독립성’이다.‘뱃속에 심어진 씨앗을 키우는 유모’로 여겨졌던 제1의 여성은 악마화되고 경멸받았다. 또한 제2의 여성은 사랑받고 찬미의 권좌에 오르긴 했으나,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였을 뿐이다. 이에 비해 제3의 여성은 자기 자신의 지배를 받는 창조적인 존재다. 공부, 직업, 결혼, 이혼, 자녀 문제 등 삶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여성은 선택의 주체가 됐다. 하지만 굴레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사노동은 아직도 영원한 불평등지대다. 시간제 근무자의 80%는 여성이며, 자녀를 세 명 둔 가정에서 어머니가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는 5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직생활에서 여성이 수장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 역시 저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직에서의 경쟁은 처음부터 남자들에게 유리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소년은 소년답게, 소녀는 소녀답게 가르치고 키우는 사회화 모델은 남성에게 권력 투쟁에 더 적합한 정신상태와 태도를 심어준다. 여성은 또한 권력쟁탈, 출세주의, 남성들의 기회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두 성의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한 것인가. 저자는 현재 남성들이 과장되고 그릇된 남성우월주의를 버리고,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제3의 성이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굴종과 대립의 여성상을 뛰어넘고,‘남성화’의 다른 이름인 ‘남녀평등의 신화’를 무너뜨린 곳에 여성과 남성 양성의 미래가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피랍자 추가 석방] ‘선교마케팅’ 개선을

    [피랍자 추가 석방] ‘선교마케팅’ 개선을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선교봉사단 피랍사태가 28일 밤 극적인 협상타결로 해결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의 41일이 남긴 충격과 슬픔은 단비처럼 날아든 협상타결 소식의 기쁨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부는 물론 언론과 기독교계, 그리고 시민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교훈을 남겼다. 서울신문은 테러문제 전문가인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과 이슬람 전문가인 이원삼 선문대 국제학부 교수, 소장파 신학자로 한국 개신교의 성찰과 전환을 촉구해 온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장을 초청해 좌담을 가졌다. 사회는 이석우 서울신문 국제부장이 맡았다. ●사회 피랍자 석방에 합의를 이뤘지만 테러집단과의 타협이란 선례를 남김으로써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최진태 소장 테러조직과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암묵적 합의다. 일단 테러조직에 양보를 하면 또 다른 테러를 불러온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탈레반과 협상을 하면서 ‘협상’ 대신 ‘접촉’‘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동시에 정부는 피랍자들의 안전과 무사 귀환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한 탓이다. 다만 탈레반과의 대면접촉이 첫번째 희생자가 난 뒤에야 이뤄진 것은 유감이다. 탈레반의 요구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이번 협상이 제2, 제3의 테러를 부를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볼 문제다. ●이원삼 교수 정부가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다. 테러단체와 협상·거래를 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보여준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도 좋다. 어차피 테러에 대한 대응은 국제적 룰이 정해진 게 없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게 최선이다. 미국도 자국민이 납치됐을 때 협상한 전례도 있다. ●김진호 소장 사실 이번 사태가 빚어진 데는 한국의 비정부기구(NGO) 활동이나 선교가 국제적 공신력을 갖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선교 마케팅’으로 불리는 한국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행태다. 국내적 필요를 위해 국제적 선교를 활용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랍사태 초기 전세계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것에는 이같은 한국 개신교의 선교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이 작용했다. ●사회 정부가 아프간 현지에서 기독교 선교활동 금지를 약속했는데 실현가능할까. ●김 소장 아랍지역 선교는 상당히 위축될 것이다. 국가의 지침에 자발적으로 순응해서라기보다 이것을 어기면 ‘법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여러 가지 불이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조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개신교의 선교가 문제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교란 국가가 나서서 ‘하라 마라’ 할 영역은 아니다. 과연 지금의 한국 선교가 국제평화와 현지인들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지 성찰은 물론 필요하다. ●최 소장 피랍자들이 전적으로 개신교 봉사단체 소속이었기 때문에 납치단체의 표적이 됐다고는 보지 않는다.1968년부터 2006년까지 테러를 1회 이상 겪은 국가가 189개 국가다. 그만큼 테러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 단체든 순수 NGO든 테러에 노출되지 않는 최선의 방책은 테러 다발지역에 가지 않는 것이다. 불가피할 경우 안전대책을 충분히 강구해야 한다. 다만 한국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방식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요자 입장을 고려한 봉사가 아니라 공급자 관점에 따른 접근이 반발을 불러온 측면이 크다. ●사회 개신교계 내부에 자성의 움직임은 있나. ●김 소장 한국 교계에 특별한 선교적 성찰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사회적 시각은 극도로 부정적이지만 분당 샘물교회의 교인이 피랍사태 이후 늘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 해외 선교를 주도하는 교회의 교세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선교 마케팅’이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선교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한국 교회가 해외 선교를 본격화한 시기가 국내에서 교세 팽창이 벽에 부딪친 1980년대 이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 활동은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내적 위기를 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이 교수 사실 이슬람권에도 성당과 교회는 다 있다. 오래전부터 유대교·가톨릭이 공존해 왔다. 문제는 한국 개신교가 이슬람 지역에 나가 선교를 하면서 필요 없는 적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를 하려면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가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열정만 갖고 무작정 간다. 이 때문에 호의를 갖고 가지만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슬림에겐 이슬람교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생활이고 관습이며 모든 규범의 지배원리다. 이들에게 개종을 하라는 건 삶의 방식을 포기하라는 것, 한마디로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유럽의 기독교 역시 이슬람권 선교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선교는 대를 이은 선교다. 관습과 언어, 심지어 사투리까지 익히고 그들의 삶에 철저히 녹아든다. 우리처럼 단기코스가 아니다. ●김 소장 단기 선교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이번에 피랍된 사람들도 열흘짜리 선교팀이다.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려면 안전에 대한 자기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현지인과 의사 소통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의 단기 선교는 일종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위험한 곳에 보내 선교를 시킴으로써 교회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목회자들 역시 선교팀을 이끌고 위험 지역을 다녀오면 ‘차세대 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현지인과 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회가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선교를 주도하는 보수 기독교단이 이같은 현실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회의적이다. ●이 교수 이슬람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문제다. 사실 아프간의 상황 악화는 종교 문제와는 무관하다. 소련과의 10년 전쟁에 뒤이은 10년 내전,9·11 이후 또 전쟁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3분의1이 난민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종교전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빌려 전쟁을 벌였을 뿐이다. 중동 지역은 15세기까지만 해도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훌륭하게 공존했다. 자기 종교를 지키면서도 다종교·다문화사회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 이후 정치적 문제에 석유 확보 문제가 겹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무슬림들도 생존 차원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심지어 집권 시절 양귀비 재배를 엄금했던 탈레반이 양귀비를 키운다. 이런 것들을 정당화하려면 종교로 포장하는 수밖에 없다. 종교를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거기에 선교하러 가는 사람들이 사안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들어가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들어가려면 ‘종교’가 아니라 ‘전쟁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들어가야 한다. ●사회 우리 정부의 초기 대응 미숙과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 소장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테러단체 입장에서 보면 협박만 가지고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절대 인질을 죽이지 않는다. 협박이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협박이 효과를 거두려고 한다. 두 사람이 희생을 당했는데 정부가 노력했더라도 막기 어려웠다. ●이 교수 정부 대응은 신속했고 적극적이었다. 그것을 탈레반이 인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희생을 줄였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정부가 관심 갖고 정비해야 할 게 있다. 사태 초기 아프간 정부의 채널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는 적대적 관계인데 그쪽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아프간 정부 채널이 벽에 부딪치자 민간단체와 이슬람 단체의 영향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과의 인적 교류 네트워크를 갖지 못한 정부로선 한계가 명확했다. 무엇보다 현지 전문가가 없었다. ●김 소장 이번 사건이나 김선일 사건에서 느낀 것은 우리 정부 관료들이 현지 한국인에 대한 세심한 관심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국가와 관료들이 노력해도 쉽게 안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이럴 때 현지에 정착한 한국의 NGO나 기독교 활동가들이 현지인과의 교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문제는 기독교 선교사나 NGO 활동가들이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파고 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 소장 그동안 우리 정부의 외교가 미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 중동과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데는 지나치게 인색했다. 중동 등 지역 전문가들을 특별 관리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에도 김선일 사건 당시처럼 정부가 부족장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안이한 접근이었다. 지금까지 탈레반을 인정한 국가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3개국뿐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족장 채널보다는 탈레반을 인정하고 자금을 대준 주변국가들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김 소장 전문가가 없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에서 활동하는 민간인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제는 이번에 정부가 현지 NGO 활동가 철수와 선교활동 금지를 약속함으로써 현지에서 활동하는 건강한 민간 활동가들의 활동 여지마저 없애버린 점이다. 환부를 도려내려다 건강한 부위까지 다치게 만든 셈이다. ●사회 이번 사태가 해외파병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 소장 정치권 일부에서도 철군만 하면 한국인 테러 문제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순진한 생각이다. 테러 피해를 입은 190여개 나라 가운데 해외 파병 국가가 얼마나 되나. 이번 피랍사건도 파병은 하나의 원인일 뿐 전부는 아니다. 사실 아프간과 이라크 모두 유엔 결의에 따라 군대를 보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방안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 교수 개인적으로 해외 파병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테러가 파병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다만 우리처럼 미국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파병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도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중요한 것은 파병 대상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그들에게 우리의 파병 목적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비전투부대, 재건지원부대라고 해도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파병지와 주변국 정세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장병들의 안전만이 최선은 아니다. 군대를 보낼 때는 어차피 희생을 각오하고 보내는 것인데 그럴 바엔 국제정세를 고려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 점에서 이라크 자이툰부대가 쿠르드 지역으로 간 것은 실책이다. 실익을 챙기려고 했으면 정권을 쥔 시아파 지역으로 갔어야 했다. 또 어차피 보낼 수밖에 없다면 주먹구구식으로 부대를 편성해 보낼 게 아니라 상설적인 파병부대를 조직해 유엔의 요구시 병력을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 소장 국가가 국익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많다. 하지만 군대를 분쟁지역에 보내는 것은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국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 이번 피랍 사태에서도 드러나듯 현지에서 활동하는 민간 활동가들에게 자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축 요인이다. ●최 소장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함으로써 국익의 규모도 커진다. 물론 현지인들에 대한 설득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민사작전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 40여일에 걸친 대규모 피랍사태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최 소장 테러가 우리와 무관한 남의 나라 일이 아니란 점을 실감하게 된 점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 차원의 대테러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한 때다. 연간 해외 출국자가 1100만명에 달하는 시대다. 그만큼 외국에서 테러에 노출될 개연성이 높아진 셈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 못지않게 개인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 해외 여행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나 교육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교수 우리 국민들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다. 정교일치 문제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히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깊은 연구가 없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국내에 아랍어를 하는 사람이 수십명이나 되지만 그들의 종교·문화·법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문제는 개인들이 노력해 연구하고 학위를 받아도 취업이나 진급이 어렵다는 점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지역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 ●김 소장 국제정치가 갖고 있는 반(反)생명적인 속성이 여지없이 폭로됐다. 한국 정부는 물론 한국 기독교와 시민사회의 폭력적 에토스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 모든 행태들의 뿌리엔 성공·성과 지향적 사고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일상화된 폭력·공격지향적 속성들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데스크시각] 신정아 파문의 교훈/주병철 사회부 차장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가짜 학위 파문이 온나라를 들쑤셔놓고 있다. 뿌리박힌 학벌사회 폐단의 단면이라고 하지만, 파문의 본질은 거짓말이고, 용서할 수 없다는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연일 당사자들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그러던 참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조선 중기때 과거에 장원급제해 명성을 날렸던 서예가 한석봉(1543∼1605)의 얘기다. 신씨를 한석봉과 대비시키는 것을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신씨와 한석봉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신씨가 도덕적 양심을 팔아 화려한 위조 학벌을 얻어 한때 지식인사회의 주목을 끌었다면 한석봉은 어머니의 독하고 엄한 가르침 덕분에 빛을 본 인물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문제는 닮은 점이다. 신씨와 한석봉은 시대만 달랐지, 출세 지상주의적인 사회라는 활동 공간은 같았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절간 공부를 마다하고 돌아온 자식에게 불을 끈 뒤 글씨를 써보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자 엄하게 꾸짖은 뒤 다시 내보냈다. 양반 중심의 출세주의 학문관이 자리잡았던 당시 한석봉 어머니의 처세는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석봉이 살던 시대는 임진왜란(1592년)을 겪으면서 나라가 뒤숭숭하던 때였고, 중국은 한족의 명나라가 힘을 잃고 만주족이 득세해 청나라(163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는 과도기였다. 양반문화와 출세주의에 함몰된 조선사회는 훗날 일본에 강점되는 수모를 당했고, 변화에 둔감한 청나라도 아편전쟁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즈음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시대가 개막되고 있었다. 나침반·화약이 발명되고 활판인쇄술이 생겨났다. 나침반은 신항로 발견에 큰 도움을 줬다. 조선과 중국이 폐쇄적인 봉건문화에 안주한 반면 서양은 이미 인간의 재발견으로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가정이지만, 한석봉의 어머니가 ‘글씨를 비뚤게 쓴다고 나무라지 말고 떡을 고르게 썰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보라.’며 아들에게 역발상을 제의했다면 조선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수백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급변하는 글로벌 체제의 물결을 타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옛날식 사고 방식에 집착하고 있고, 학벌 중심과 출세주의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신씨의 일그러진 자화상도 이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떠들지만, 교육부 장관이 바뀌어도, 교육정책이 바뀌어도 학생들은 학벌과 출세를 위한 성적 채우기에 급급하다. 자식들을 학벌 중심과 출세 지상주의 대열로 몰아넣기 위해 제2, 제3의 한석봉 어머니들의 정성(?)도 한몫하고 있다. 지금의 세태를 한석봉의 조선시대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무작정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력이 낮고 학벌이 처지면 출세하지 못한다고 자식을 다그치고, 출세를 위해 자신의 학위를 위조할 게 아니라 역발상으로 이를 이겨내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실력과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기회를 갖고 경쟁할 수 있는 ‘간판 불문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 이른바 능력이란 용역을 사고 팔 수 있는 ‘능력 시장’이다. 이 시장을 만드는 데는 국가, 기업, 사회, 국민 모두 나서야 한다. 낮은 학력, 시원찮은 학벌을 가진 자들의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가짜 학위’라는 불량품은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나선 대선 후보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주병철 사회부 차장 bcjoo@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조선이 모문룡의 작폐에 시달리고 있던 정묘호란 무렵 대륙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1621년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요동 전체를 장악했다. 후금은 요동 벌의 중심인 심양(瀋陽)으로 천도하여 산해관까지 넘볼 기세였다. 명은 분명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명의 내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당쟁은 격화되었고 환관들은 날뛰고 있었다. ●격화되는 黨爭 1620년 7월 명의 만력제(神宗)가 죽었다. 제위에 오른 지 48년만이었다. 장남 주상락(朱常洛:1582∼1620)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창(泰昌)으로 고쳤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만력제의 암우(暗愚)와 태정(怠政)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태창제(光宗)에게 기대를 걸었다. 태창제는 즉위 직후 내탕(內帑)에서 100만냥의 은을 풀어 누르하치를 방어하고 있는 요동의 장사들에게 지급하고, 악명 높았던 광세사(鑛稅使) 등의 파견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조야는 감동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태창제는 즉위한 지 한달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다시 태창제의 아들 주유교(朱由校)가 즉위하니 그가 곧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이다. 만력 중반부터 천계 연간까지 명 조정의 당쟁은 격렬했다. 비운의 황제였던 태창제의 존재와 급사는 당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만력제는 정비(正妃)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주상락은 왕(王)씨 성을 지닌 궁녀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만력제는 왕씨와 주상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력제는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삼남 주상순(朱常洵)을 총애했다. 그는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신료들은 ‘장유(長幼)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당시 명 예부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조선의 요청을 계속 거부한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차남’ 광해군을 승인할 경우, 만력제가 ‘삼남’ 주상순을 책립(冊立)하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상락의 황태자 책립은 19년 동안이나 미루어졌고, 그는 1601년에야 비로소 황태자가 되었다. 황태자가 된 이후에도 그는 파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1615년 장차(張差)라는 괴한이 주상락의 거처에 몽둥이를 들고 난입하여 그를 위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벌어졌다. 황태자를 해치려 했던 엄청난 사건임에도 재상 방종철(方從哲) 등은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사건의 배후에 정귀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신료들은 방종철 등을 탄핵했다. 이 사건을 ‘정격안(檄案)’이라고 한다.‘안(案)’이란 사건을 가리킨다. 태창제의 급사 원인을 둘러싼 당론(黨論)도 치열했다. 태창제는 병석에 누운 뒤, 이가작(李可灼)이란 관인이 바친 붉은 환약(紅丸)을 복용했다. 홍환 복용 후 황제가 급사하자 다시 치열한 논란이 빚어졌다. 동림당 관인들은 시약(侍藥)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방종철을 공격했고, 방종철을 옹호하는 관인들은 황제의 죽음이 홍환과는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1625년(천계 5)까지 이어진 치열한 논란을 ‘홍환안(紅丸案)’이라 부른다. 태창제 사후, 그가 총애하던 후궁 선시(選侍) 이(李)씨는 황자 주유교를 자신의 거처인 건청궁에 감추었다. 주유교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환관 위충현(魏忠賢)과 연결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동림당 계열은 그 같은 기도에 반발하여 주유교를 이씨에게서 떼어내고, 이씨를 별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또한 격렬한 정쟁이 빚어졌는데 그것이 ‘이궁안(移宮案)’이다. ●東林黨과 奄黨 ‘정격안’,‘홍환안’,‘이궁안’을 아울러 삼안(三案)이라고 한다.‘삼안’을 놓고 명 조정의 관료들은 수많은 장주(章奏)를 올려 논쟁했고 그 과정에서 당쟁은 격화되었다. 천계 연간(1621∼1627) 명 조정에는 절당(浙黨), 초당(楚黨), 선당(宣黨), 제당(齊黨), 곤당(昆黨) 등 여러 당파가 있었지만 당쟁의 중심은 동림당과 엄당이었다. 동림당은 만력 초기 재상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의 전횡에 반대, 도전했던 청의파(淸議派) 관료인 고헌성(顧憲成), 추원표(鄒元標), 조남성(趙南星)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장거정이 죽은 뒤에도 내각과 환관들의 비정을 비판했다. 동림당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에 있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거점으로 삼았다. 주자학 강학(講學)을 통해 자파 세력을 결집하는 한편, 조정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그들이 황태자 책립, 인사, 요동 방어 등 다양한 문제를 놓고 내각이나 환관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당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엄당은 환관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는 환관을 가리켜 ‘만들어진 제3의 성(性)’이라고 표현했다. 환관 가운데는 종이를 발명한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나 명 초기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대원정(大遠征)을 주도했던 정화(鄭和)처럼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환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환관이 맡은 일은 천한 것이었지만 때로 천자나 후궁과의 연결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궁극에는 국가의 명운마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자들도 나타났다. 명대에 특히 환관의 폐해가 심했다.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 등이 대표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삼안’처럼 궁정의 문제가 정쟁의 현안이 될 경우, 환관들이 그 과정에 개입하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았다. 천계 연간 위충현이 엄당을 이끌며 조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유명하다. ●끔찍한 魏忠賢의 시대 위충현(?∼1627)은 하북성(河北省) 숙녕현(肅寧縣)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무뢰배였던 그는 도박에 모든 것을 탕진한 뒤, 스스로 환관이 되었다. 본래 이진충(李進忠)이었던 이름도 위충현으로 바꾸었다. 천계제가 즉위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날로 높아졌다.1621년 사례감(司禮監)의 병필태감(秉筆太監)이 되었다. 환관들의 수장 격이었다. 그는 황제 직속의 비밀 경찰인 동창(東廠)의 책임자도 겸했다. 1624년, 동림당원 양련(楊漣)은 위충현을 탄핵했다. 그에게 스물 네 가지의 잘못이 있다고 했다. 위충현은 동창의 책임을 사임하는 등 일단 몸을 낮춰 위기를 벗어났다. 이윽고 천계제의 신임이 회복되자 보복이 시작되었다. 위충현은 1625년 동림당의 핵심 인물인 양련, 좌광두(左光斗), 원화중(袁化中), 위대중(魏大中), 주조서(周朝瑞), 고대장(顧大章) 등 6인을 ‘수뢰’ 혐의로 탄핵했고, 곧 이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다. 위충현의 심복 허현순(許顯純)은 이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고문을 못 이겨 고대장은 자살했다. 차라리 그가 행복했다. 나머지 5명의 시신은 전부 문드러졌다. 위충현은 1626년에도 옥사를 일으켰다. 고반룡(高攀龍), 주순창(周順昌), 황존소(黃尊素) 등 7명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고반룡은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나머지 6명은 예의 혹형을 받았다. 환관들이 금의위(錦衣衛)에서 행한 고문은 잔혹했다. 끌려온 자들에게 5가지의 도구를 이용하여 혹형을 가한 후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고 한다. 주순창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위충현을 비판하다가 이를 모두 뽑혔다. 동림당을 탄압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 배경에는 천계제의 방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림서원을 비롯한 동림당의 근거지는 파괴되었고, 각 지역에는 위충현을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모문룡도 가도에 위충현을 기리는 생사당을 세웠다. 위충현의 전횡에 절망한 관료들은 사직했고, 변방의 지휘관들 상당수는 누르하치에게 귀순했다. 누르하치의 철기(鐵騎)는 달려오고 있는데 명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여성&남성] 세상의 중심에 선 알파걸

    [여성&남성] 세상의 중심에 선 알파걸

    페미니즘의 ‘제3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알파걸(α-girl)’은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학 댄 킨들러 교수가 정의한 새로운 사회계층인 알파걸은 학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오히려 능가하는 엘리트 여성을 일컫는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직장에서 알파걸들의 활약은 남성을 압도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는 알파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지만 여전히 시기와 질투어린 시선도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알파걸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따로 또 같은’ 생각을 들어봤다. ●알파걸은 대세다? 알파걸의 약진은 중·고교의 학생회장 등 리더그룹에서 두드러진다. 많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고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보다는 강한 자아를 지닌 소녀들이 전방위로 나서고 있는 것. 남녀 공학인 K중은 남녀 반장을 각각 한 명씩 뽑는다.K중 1학년의 한 반에서 남자 반장은 특별히 나서는 아이가 없어 추천을 받아 투표로 선출했다. 하지만 여자 반장을 뽑을 때는 달랐다. 심모(13)양이 손을 번쩍 들고 반장에 단독 출마를 했다. 심양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관해선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 주위 친구들의 평가이다. 하다 못해 담임 선생님이 벌을 줄 때도 이유를 따져 물어 곤혹스럽게 하고, 환경미화나 체육대회 때도 남자 반장의 도움을 받아 주도적으로 행사를 준비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원 한 번 다니지 못했지만 첫 시험부터 지금까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담임인 정모(32·여) 교사는 “가끔씩 황당한 일을 벌이곤 하는 알파걸들은 교사들에겐 ‘예측불허’란 의미다.”라면서 “공부도 1등이고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도 남자 아이들을 압도해 요즘에는 남자 반장보다 더 믿음직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남자들의 미묘한 시기 20∼30대의 알파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던 5년차 회사원 박모(29·여)씨는 팀내에서 공인된 ‘알파걸’이다. 똑 부러지는 일처리로 상사들의 신뢰를 독차지할 뿐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다. 세살배기 딸을 둔 박씨는 남편과 시댁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박씨는 스스로 알파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중·고와 여대를 다니면서 사회의 고정된 ‘성역할’에 얽매이지 않게 됐을 뿐이고 회사에서도 남자들과의 경쟁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알파걸’이란 말이 트렌드처럼 되는 게 모든 여성에게 알파걸이 되라고 강요하는 새로운 억압 기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라면서 “알파걸도 필요하지만 조용히 살림하고 내조하며 사는 삶도 가치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일부에선 알파걸만 훌륭한 것처럼 떠드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2·여)씨는 자타공인 알파걸이다. 능력도 워낙 빼어나지만 리더십과 강한 ‘포스’를 뿜어내 남자 동료들도 그 앞에 서면 꼼짝을 못한다. 그렇다고 모나거나 잘난 척하는 성격도 아니어서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 중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 박씨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알파걸로 길러졌다. 돈벌이는 어머니가 도맡아 하고 외려 아버지는 살림살이와 딸의 사소한 고민까지 챙겨 주는 등 전통적인 관념의 성역할이 전도된 가정에서 자라난 것. 킨들런 교수가 “아버지와 딸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딸들의 사고방식과 심리, 사회와의 교류 방식, 인생에 대한 소망과 기대치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박씨 역시 알파걸이란 타이틀이 탐탁지 않다. 박씨는 “여자 동료나 후배들은 저를 롤모델로 여기고 따르지만, 남자 동료나 후배는 겉으로 내색을 안해도 묘한 질투 같은 게 실린 것을 느끼곤 해요.”라고 털어 놓았다. 대학생 우모(23·여)씨는 ‘알파걸’하면 동창 김모(23·여)씨가 떠오른다. 다른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갈 때 김씨는 8학기를 연속으로 학교에 다니며 과외로 돈도 벌고, 어학원 등도 꾸준히 다녔다고 한다. 학교에서 발표수업을 할 때도 떨기는커녕 남자 조원들을 ‘수족처럼’ 부렸고, 남자 동기들도 서로 김씨의 조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우씨는 “남자를 잘 이끌며 리더로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웠다.”면서도 “어쩔 땐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남자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고 미모를 활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 샘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알파걸에 대한 호들갑… “이해하기 힘들어” 6년차 회사원 김모(31·여)씨가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동료나 선배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특히 상사는 물론 동료나 아랫사람에게까지 인정받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면서도 “솔직히 내 주위에서 미디어에서 떠드는 의미의 완벽한 알파걸은 찾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파걸’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잡아가는 데 대해 김씨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능력 외적인 사회의 차별 구조 때문에 여자들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적었을 뿐이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각종 입사시험이나 고시, 학교에서 여자들이 더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알파걸이란 개념이 은연 중에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데, 남자보다 잘 하는 여자들이 많아지니까 신기하다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것 자체가 가치 차별적인 용어인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일선 학교에서 거센 ‘알파걸’ 열풍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장모(30) 교사는 최근 일선 학교에 거세게 불고 있는 ‘알파걸 열풍’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 교사는 “6개 반이 남녀 합반으로 한 반에 남자 반장과 여자 반장을 한 명씩 뽑는데 남자 반장은 얌전하고 차분한 반면 여자 반장은 목소리가 크고 리더십이 강하다.”면서 “결국 ‘여자 반장-남자 부반장’ 구도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남녀공학 A중에 다니는 이모(13)군은 또래 사이에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는 데다 성격까지 좋은 ‘알파걸’들이 꽤 있다고 말한다. 이군은 “솔직히 공부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 아이들이 잘 했다. 평균 점수도 조금 더 높았다. 하지만 알파걸들은 공부뿐 아니라 뭐든지 잘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32) 교사는 ‘알파걸’ 하면 남자애들을 한 손에 휘어잡아 ‘카리스마’란 별명으로 불리던 이모(15)양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성격도 털털하고 포용력이 좋아 불량 학생(?) 그룹에 속하는 남학생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같은 반에 5살이나 많은 남학생 C군이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도 반항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C군이 급우를 괴롭히는 것을 본 이양은 멱살을 다잡고 ‘맞짱’을 떴고, 결국 급우 전체에게 사과를 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싸움의 기술로 C군을 제압한 것은 아니다. 이양의 ‘카리스마’에 C군이 저도 모르게 물러선 것이다. 김 교사는 “왜 그런 무모한 싸움을 했냐고 물었더니 ‘남자애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서도 무서워서 가만히 있기에 그랬다.’면서 ‘불의를 보고 어떻게 참느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세대의 단어로는 원더우먼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들도 진급하면 변신한다? 철강회사에 다니는 김모(27)씨가 피부로 느낀 알파걸들은 주로 대리급 여자 상사들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일처리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처리를 요구한다. 철강업계의 경우 설비에 한계가 있고 지금껏 해온 관행과 제약 때문에 수익성이 높아도 많이 생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규모는 적지만 수익성이 높은 회사보다는 수익성은 적어도 덩치가 큰 회사를 우선적으로 상대하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그런데 우리 팀의 여자 상사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자 상사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을 요구했고, 그 결과 기획부터 공장 생산방식,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변하게 됐다. 하지만 남자 직원들은 갑자기 달라진 일에 짜증을 내면서도 그녀의 정확한 일처리에 군소리 한 마디도 못하고 두려워하기만 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런 알파걸들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일처리로 최고경영자(CEO)의 눈에 들어 관리직으로 승진하면 다른 남자 선배들처럼 평범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대리 때처럼 지적하기보다는 승진을 먼저 생각해 말을 아끼는 것으로 보였다.”면서 “그래서 알파걸이 알파우먼(?)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회사원 이모(31)씨 역시 “여자 신입 사원들의 창조력과 패기에 놀라지만 표출하는 방식에서 조금씩 부작용을 드러낸다.”면서 “결국엔 남자들의 표현법과 사회 적응력을 터득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남자들의 표현법은 알고 있어도 절대로 공개석상에서 상관보다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남자 역시 분명 알파맨이 있지만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면서 “알파걸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남자들을 넘어서려면 끌어 주는 알파우먼이 많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도 내 딸이 알파걸이었으면… 갓 돌이 지난 딸을 둔 회사원 이모(31)씨는 자신의 딸이 알파걸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성 역할을 벗어나 미래에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는 “나는 남자로서 생활을 책임지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배우고 살았지만 딸은 아무 부담 없이 스스로를 위해 맘껏 능력을 펼쳤으면 좋겠다.”면서 “내가 주위의 알파걸들이 두려운 만큼 내 딸도 많은 남성들을 두렵게 만드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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