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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북핵 공동대처”/“대북 추가양보 반대” 입장전달

    ◎양국 국방회담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을 방문중인 권령해국방장관은 28일 하오(미국시간) 레스 애스핀 국방장관과 한미국방장관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에 대한 공동대응방안,클린턴행정부의 세계군사전략과 한반도 안보문제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의 재확인,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협력기구 추진문제등이 협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워싱턴의 외교·군사소식통들은 오는 7월중으로 예정된 미·북한 2단계 후속고위회담에 대비해 양국 국방장관은 북한핵에 대한 공동대응방안을 중점논의했다고 전하고 북한이 제2단계 고위회담에서도 영변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호한 대북조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권장관은 애스핀 국방장관,앤터니 레이크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상하원 군사위 지도자들과의 일련의 요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는 김영삼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미국측 역시 북한핵문제를 조기에 타결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 구소 붕괴·냉전종식 원인/부시,고르비개혁 신뢰 안했다

    ◎“지지” 외치며 경원은 최소화/미 사학자 비슐로스·언론인 탈보트 공저 화제 최근 러시아의 정치상황이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저명한 소련전문학자와 외교문제 칼럼니스트가 공동으로 냉전종식의 내막을 기술한 저서를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화제의 책은 역사학자인 마이클 비슐로스와 타임지의 외교문제 칼럼니스트 스트로브 탈보트가 함께 집필한 「최고위급에서 이뤄진 냉전종식의 내막」­.특히 탈보트는 클린턴 미대통령으로부터 현재 구소련지원 관련업무를 책임맡고 있는데다 러시아대사로 내정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미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관계에 관한 수권의 저작을 낸자 있는 이 두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고르바초프 소련전대통령을 비롯,세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전베이커미국무,스코크로프트 전백악관안보보좌관등 소련붕괴 당시의 미소외교정책결정 핵심인물들을 수없이 면담하여 자료를 확보했다. 이 책은 부시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간의 개인적 유대관계를 비롯,부시의 대소전략,고르바초프의 실각과정등을 소상하게 적고 있다. 책내용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급진 개혁파와 공산주의 강경파 사이에 줄타기를 하면서 동구에 대한 통제포기,독일통일의 수용,사담 후세인의 비판등 친서방정책으로 선회해나가는 과정을 기술했다.1부 후반에는 부시대통령의 전화외교,중동에서의 소련영향력 배제전략등을 소개하고 있다. 베이커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암살 이후 질서회복을 위해 소련이 개입하기를 희망했다면 미국은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제2부는 부시대통령이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정책을 어떻게 구사했는가를 적고 있다.부시행정부가 91년1월 소련의 대학살 이후 리투아니아를 지원하기를 꺼린 것이나 고르비의 정적인 옐친과의 관계를 확립하라는 현지 대사의 건의를 받아들이지않은 것등은 소련의 안정이라든가 나토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독일통일에 협력을 구하려는데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이 모스크바에 대한 원조를 최소화한 이유는 소련지도자들의 개혁정책 추진능력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부는 고르바초프가 몰락한 과정과 그 배경을 분석하고 있다.고르비는 과감하면서도 온화한 면이 있는가 하면 혼란스럽고도 자만신이 넘치는 등 매우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기술하고 있다.고르비는 개혁을 추진하는 방향을 잡긴했으나 분명한 개혁의 청사진이 없어 결국 실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두가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하나는 부시나 고르비나 할것 없이 소련이나 미국의 국민저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고르비는 옐친에 의해 밀려났고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다.또하나는 부시대통령이 고르비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강력한 제동을 걸지 않았지만 소련의 원조요구에 끝까지 버틴것은 옳았다고 평가된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원조를 해주었더라면 소련 구체제의 생명만 연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4백98쪽,24달러 95센트.
  • 미국/“옐친퇴장땐 제2냉정 우려”/서방의 「옐친 선언」지지 안팎

    ◎EC,“러 개혁 보장할 유일한 대안” 평가/백악관,“모스크바서 정상회담개최 용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불가리아등 동유럽국가 지도자들은 대통령의 비상통치를 선언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에 대해 대체로 지지를 표명했다. 각국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지원책 모색 ▷미국◁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은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비상통치선언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옐친선언 즉시 발표된 백악관성명은 ▲미국은 러시아의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지원 ▲옐친은 이같은 개혁의 기수이자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오는 4월3일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클린턴­옐친회담 예정대로 개최 ▲우방들과 러시아지원방안모색등을 적시,신속하고도 구체적인 지지입장을 밝혔다. 미국측은 기본적으로 비상통치의 선언이 결코 바람직스러운 사태발전은 아니지만 옐친이 자신의 신임여부를 국민투표에 회부했고 적어도 인민대표대회를 해산한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 일단 다행하게 생각하고 있다.이러한 평가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민주화와개혁을 위해서는 아직까지 옐친말고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수있다. 클린턴행정부는 옐친이 실각하여 의회쪽 보수파들이 승리하게 된다면 미국과 러시아간의 군비감축이 무산되고 결국 국방비의 대폭 삭감이라는 클린턴의 미국경제회생처방을 뒤흔들게 되고 나아가 냉전종식의 세계질서를 역행시킬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행정부의 러시아의회내 보수강경파들에 대한 시각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저지하는 옛공산세력의 잔재들』이라는 옐친의 판단과 맥을 같이 하고있다. 클린턴행정부의 옐친지지 입장에는 내심 「비상통치,국민투표」를 통해서라도 옐친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희망적 기대가 깔려 있다.그러나 의회의 샘 넌상원군사위원장 같은 이는 『옐친에 대한 반대세력을 모두 옛공산계열로 보는 것은 러시아정치를 너무 단순화시켜보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디디 마이어스 미 백악관대변인은 22일 내달 3·4일로 예정돼있는 빌 클린턴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장소를 모스크바로옮기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어스 대변인은 『옐친대통령이 그같은 필요성을 느낀다면 이는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 관측통들은 이같은 백악관측의 공식발표는 위기상황에 빠진 옐친이 모스크바를 비울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것으로 분석. ○의장국서 성명발표 ▷유럽공동체(EC)◁ 한스 반 덴 브뢰크 EC 외무담당 집행위원은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개혁절차가 보장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현재로서는 옐친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할수 있는 유일한 지도적 인물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EC 의장국인 덴마크의 니엘스 헬베크 페테르센 외무장관은 『EC와 덴마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러시아의 정치·경제개혁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그는 또 『옐친 대통령의 입지를 확인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돼 러시아의 개혁이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시민권리 존중 다행 ▷영국◁ 외무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지난 수일간 러시아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왔다』면서 러시아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 수호를 계속 다짐하고 있는 것을 환영하고 러시아의 개혁과정에 대한 영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권력투쟁 종식기대 ▷독일◁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옐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옐친 대통령이 의회와의 권력투쟁을 종식할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프랑스◁ 옐친 대통령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러시아에 대한 긴급지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서방선진공업 7개국(G­7)정상회담의 조기개최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내정문제 유보 자세 ▷일본◁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러시아 정세와 관련,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개혁노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야자와총리는 이날 국회출입 기자들에게 『현재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내정문제로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옐친 대통령의 개혁노선 자체에 대해서는 지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리아 등도 동조 ▷기타◁ 캐나다와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도 옐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구소련의 동구권 동맹국이었던 불가리아등도 서방 국가들의 이같은 지지에 동조했다.
  • 북,핵탄 4∼6개 개발완료/영 군사지간부 주장

    ◎96년까지 핵탄두 발사 가능/“북핵은 깊은 우려”/전 백악관 보좌관 【도쿄=이창순특파원】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영국의 군사 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의 폴 비버 편집발행인은 18일 『북한은 현재 4∼6개의 핵폭탄 개발을 끝냈으며 오는 96년까지는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비버 발행인은 18일 하오 일본의 니혼 게이자이 (일본경제) 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이같은 견해를 밝히고 『세계 12대 무기 수출국 안에 들어 있는 북한은 그들이 개발한 핵 무기를 중동 등에 상업용으로 판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버 발행인은 특히 『북한은 제2차 대전중 미국이 추진했던 「맨해턴 계획」정도의 핵폭탄 장치 개발을 거의 완성한 단계』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북한은 아직 핵폭발의 타이밍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과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핵 폭탄을 소형화,핵탄두로 만들어 이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8일북한의 핵개발 계획진척이 깊은 우려를 자아내는 단계라고 말했다. 스코크로프트 전보좌관은 이날 미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깊이 우려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북한은 과거 한국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폭력행위를 자행한데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 다국군,이라크 3차공습/남·북부 미사일·통신기지

    ◎전폭기 75대 3시간 맹폭/이라크,“2·3차공격 사망자 24명” 발표 【워싱턴·파리·런던 AP AFP 로이터 연합】 미·영·불 서방 3국은 17일 바그다드 교외 핵시설을 겨냥한 미국의 단독 제2차 이라크공격이 단행된지 불과 12시간만인 18일 낮 이라크내 남·북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대대적인 제3차 합동공습을 단행했다. 지난 13일 제1차공습에 이어 나흘만이자 걸프전발발 만2주년이 되는 17일밤 단행된 제2차공격은 미국측의 단독작전으로 전투기동원 없이 단지 원거리 해상에서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만이 발사되었으며 이어 불과 12시간여만에 재개된 제3차공습에는 75대의 걸프지역배치 미·영·불 공군기들이 동원됐다. 이라크는 미국의 제2차공격직후 사담 후세인의 긴급 대국민성명을 통해 항전결의를 재확인함으로써 걸프지역에 드리운 전쟁기운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폴 클라크 미백악관 대변인은 걸프전 참전 다국적군 공군기들은 18일 상오9시20분(한국시간 하오6시20분)경 남부 비행금지구역내의 이라크 미사일포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3차공습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 공습은 북위 32도선 이남에 지대공미사일체제를 재구축하려는 이라크의 기도를 봉쇄하고 남부 비행금지구역위반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대변인은 말했다. 미국은 이와함께 북부 비행금지구역에서도 이라크 방공시설에 대한 수차례의 소규모 파상공습을 가했다고 한 미군관계자가 밝혔다. 백악관 성명은 『이라크가 또다시 도발적 행동으로 나올 경우 사전경고없이 강력한 응징을 받게될 것』이라고 재강조했다. 미 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남부에 대한 이번 제3차 공습이 지난 13일 제1차공습지점을 다시 목표로 잡아 『임무를 완성하기위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출격기들은 손실없이 모두 원 발진기지로 귀환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국방부는 성명에서 이번 3차공습에는 프랑스의 미라주 2000전투기 6대등 모두 75대의 다국적군 항공기들이 동원됐으며 약 3시간동안 공습이 계속됐다고 발표했다. 영국 국방부도 이번 공습에 자국 공군기도 동참했다고 발표했는데 이와 관련해 영국 PA통신은 사우디의 다란기지에서 토네이도 지상공격기 4대가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미 CNN은 이번 제3차공습에는 걸프만배치 미항모 키티호크에서도 전투기들이 발진했다고 전하고 국방부 소식통들을 인용,사마와기지등 이라크 남부의 미사일포대를 지휘통제하는 통신센터들이 집중적 폭격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의 한 군성명은 이날 서방측의 공습으로 2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으며 군사 장비들이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미국은 3차공격 12시간여전인 17일 밤(한국시간 18일 새벽)바그다드 교외에 있는 한 핵시설을 목표로 약40발의 토마호크 미사일들을 발사,지난 13일에 이어 나흘만에 대대적인 2차공격을 단행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공격이 바그다드 중심부로부터 동남쪽으로 13㎞ 떨어진 자파라니야 소재 핵농축시설 부품공장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공격의 목표는 『이라크가 다시는 대량살상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유엔결의안을 준수하도록 하기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2차공격으로 바그다드시 중심부에 있는 알 라시드 호텔이 피격돼 3명이 사망하고 걸프전발발 2주년을 맞아 이라크가 소집한 국제회교회의에 참가중인 일부 대표들을 포함,34명이 부상한 것으로 이라크 관영통신(INA)이 전했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미국의 바그다드교외 핵시설 공격직후 대국민성명을 통해 미국의 2차공격이 「완전한 실패」라고 주장하고 항전결의를 재확인했다.이라크 공보부측은 미국이 목표로 잡은 시설은 핵시설이 아니라 단순한 기계주물공장이라고 말했다.
  • 부시,웨스트포인트서 사실상 고별연설

    ◎미의 강력한 지도력 필요하지만 세계경찰 역할 추구해선 안된다/인류 핵공포 벗게한 인물로 평가받고 싶다 조지 부시미국대통령은 5일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서 사실상의 고별연설을 함으로써 2주 앞으로 다가온 그의 퇴임을 마무리해 나가고 있다. 오는 20일 백악관을 떠나는 그는 이날 연설이 많은 청중을 상대로 하는 마지막 공식연설임을 감안,「외교대통령」으로서 미국민과 다음대통령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썼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강력한 지도력의 필요성 ▲상시 세계경찰 역할반대 ▲신고립주에의 경고등 메시지를 감정의 기복과 함께 절실하게 전했다. 그는 재임중에 결정했던 파나마 침공,걸프전 수행,소말리아 파병등 각종 군사조치의 필요성을 다시 상기시켰다. 부시는 『우리가 소극적이고 초연한 입장을 유지하면 폭력과 혼돈으로 점철된 세계에 직면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언제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해야 되느냐하는 법칙은 없지만 국가의 지도력이 때때로 그러한 조치를 요구하게 되는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우리의 가치와 국익에 일치하는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도록하기 위해서는 세계문제에 개입해야한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미국이 모든 분쟁에 개입하는 세계경찰의 역할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3주전인 지난해 12월15일 자신의 기념도서관기공식이 있은 텍사스대에서 한 연설의 제2탄이라고 할수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미국은 냉전이후 세계질서에 대한 지도력을 계속 유지해야한다.만약 세계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도력이 후퇴하게된다면 그것은 우리 다음 세대가 값비싸게 지불해야만 복원할 수있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텍사스대 연설과 이날의 웨스트 포인트 연설은 결국 부시대통령이 외교정책에 관한 자신의 경험적 철학을 강도높게 클린턴차기대통령에게 전해주는 것이라고도 할수있다. 부시대통령은 연말연시 4일동안 1만8천마일을 여행,소말리아파견 미군위문및 격려에 이어 모스크바에서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조인했다. 본인 스스로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크게 벗어나도록 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평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듯이 부시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대외문제에서만은 높은 점수를 얻을수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퇴임전에 또 한차례의 연설을 할수있는 기회가 있기는 하다. 오는 13일 그의 전임자인 레이건 전대통령에게 「자유의 대통령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연설을 할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청중을 상대하는 자리는 아니다.
  • 클린턴,“21세기 향한 진군의 시작”/대통령 당선되던 날

    ◎“우리 주지사 보라” 아칸소에 축제물결/“새 대통령 밀어달라” 부시,국민에 당부 ○주청사앞 환영인파 ○…제42대 미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은 3일 승리를 자축하면서 자신의 압승이 「미국이 냉전의 종식과 21세기의 시작이라는 도전에 맞서 싸우기 위한 진군나팔소리」라고 선언. 클린턴 당선자는 아칸소주정부 청사앞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오늘 드높은 희망과 용기있는 가슴을 가진 수많은 미국인들은 새출발을 향해 표를 던졌다』고 풀이. 그는 13개월전 대통령 후보 출마를 발표한 바로 그자리에서 행한 이 연설에서 이어 유권자들이 자신에게 변화에의 소명을 안겨주었으며 자신의 임무는 미국의 성장을 회복시키고 국민들에게 다시 기회와 힘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청사앞에 운집한 수천명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이번 선거는 미국이 탈냉전시대조류와 다음세기의 출발점에서 직면하게될 도전앞에서 울린 진군나팔 소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패배를 자인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도 경의를 표하면서 걸프전당시 미국과 동맹국들을 이끈 그의 지도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오늘밤 한평생을 공직에 바쳐온 부시 대통령에게 감사를 보내고자 한다』면서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한 부시 대통령의 공적도 높이 평가했다. 클린턴 당선자는 『나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서부터 환경문제와 경제체제의 전환에 이르기까지,그리고 국방에서 국내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등한시해온 문제들을 처리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고 특히 다양성을 국력의 원천으로 삼아 국민을 한데 결집시키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정권인수단 곧 구성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고 있는 공화당진영과는 달리 빌 클린턴 대통령당선자는 빠르면 5일 정권인수반 반장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져 향후 대통령직 수행에 따른 행정부 구성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 대조적. 특히 취임식등 관련절차보다 정권인수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정책방향이나 대의회전략등 통치구도에 관한일일 것으로 전망. ○…민주당의 빌 클린턴후보는 3일 13개월의 힘든 선거유세를 모두 마치고 부인 힐러리,딸 첼시와 함께 리틀록으로 귀환,수백명의 친지 지지자들과 포옹하고 승리의 눈물을 나눈뒤 첼시와 함께 덴버 커뮤니티 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 도착,투표를 마치고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주지사 관저로 향했다.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보잘 것 없는 지역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아칸소주민 18만명중 4만여명은 이날 밤 리틀록 중심가에 모여 대형텔레비전을 시청하며 각 주가 클린턴의 수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환호성을 올렸다. 주민들은 클린턴의 승리가 굳어지는 양상을 보이자 『우리는 보잘것이 없지만 대통령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생각처럼 낙후되지 않았다. 우리의 주지사를 보라』고 외치기도 했다. 클린턴의 지지자들은 인근 한 호텔의 대형 회의장에서 축하파티를 열었으며 앨버트 고어의 재정후원자들은 지난 88년 아칸소를 「대통령주」로 만들겠다던 고어의약속이 성취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멋진 리틀록 클럽에 모였다. ○사냥허가증 등 구입 ○…재선에 실패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낮1시15분(한국시간)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고 국민들에게 클린턴을 밀어줄 것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의 소개로 제2의 고향 휴스턴에서 지지자들 앞에 나타난 부시대통령은 논물을 글썽이는 부인 바버라와 측근들이 허망한 표정을로 지켜보는 가운데 피로한 모습으로 패배를 시인했다. 부시는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미국의 민주제도의 위대함에 존경을 보인다고 말문을 열고 클린턴의 당선을 축하하며 클린턴이 강력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고 칭찬한 뒤 『백악관에서 잘 하기를 바라며 순조로운 정권이양을 위해 협조를 다하겠다』고 다짐. 그는 『국민들이 뒤에서 새 대통령을 밀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하고 바버라와 선거운동 팀에게 감사를 표시한 뒤 『상황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은 아직도 부상하는 나라』라고 선거운동시 강조한 입장을 재강조 한뒤 미국의 꿈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 한편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미 은퇴를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시는 3일 아침 일찍 자신이 정치를 시작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투표를 한 후 사냥먼허를 갱신했고 새 낚시릴과 미국의 대중음악인 컨트리 뮤직 카세트를 몇개 구입했다. 또한 후덕한 백악관 안주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바버라 부시 여사도 백악관을 떠나면 휴스턴에 있는 부부 소유의 빈땅에 새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스 페로 후보는 3일 밤(한국시간 4일 낮) 지지자들에게 『미국민이 클린턴을 선택했다』며 패배를 솔직히 시인. ○유권자 1억 투표 ○…냉전체제후 처음으로 실시된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미국 전체 유권자의 53∼55%에 해당하는 약 1억명의 유권자가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 선거관계 전문가가 밝혔다. 「미국 유권자 연구위원회」의 커타스 캔스 대표는 이같은 수치는 지난 88년 대선에서의 투표율에 비해 3∼5%포인트 상승한 것이라면서 특히 최근 각종 선거에서 투표를 피해왔던 30대미만의 청년층이 선거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망.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당 클린턴과 공화당 후보로 낙선한 부시 대통령 및 무소속의 로스 페로 등 3명은 지난 선거 유세중 모두 2억8천90만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미연방선거위원회가 3일 발표. 이 가운데 부시가 1억1천2백50만다럴로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지출했으며 클린턴은 1억9백20만달러,페로는 5천9백20만달러를 썼으며 특히 페로는 1백30만달러를 빼고는 전부 개인돈을 쓴 것으로 나타나 재력을 다시한번 과시. ○중국출신후보 “쓴잔” ○…중국인으론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출마한 SB우(53) 전델라웨어 부지사는 3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된 델라웨어주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델라웨어 주지사를 두번이나 연임한 마이클 캐슬 공화당 후보에 패배.
  • 클린턴 미 대통령 당선/선거인단 부시에 압승/370대 168

    ◎민주,상­하원·주지사 선거서도 대승/“미 국민에 기회와 힘을 주겠다”/당선연설 【뉴욕·워싱턴=임춘웅·이경형특파원】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 아칸소주지사가 4일 제4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변화의 기치를 내세운 46세의 클린턴후보는 3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워싱턴 특별구와 32개주에 걸쳐 3백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당선에 필요한 2백70명을 훨씬 상회하는 압승을 거뒀다.클린턴은 개표가 시작되면서 당초 우세가 예상되던 뉴욕주를 비롯,펜실베이니아·일리노이주등에서 공화당 후보인 조지 부시대통령을 가볍게 제치고 경합지역으로 분석됐던 뉴저지·매사추세츠주등까지 휩쓸어 자신의 표밭인 서부지역의 개표가 시작되기도전에 이미 승리를 굳혔다. 반면 부시대통령은 인디애나·오클라호마등 18개주(선거인단 1백68명)에서만 이기는 부진을 보였고,한때 돌풍을 일이키는듯 했던 무소속의 로스 페로후보는 각주에서 10∼20%의 득표율을 올렸으나 한 주에서도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그러나 모두 1억2백만명의 유권자가 투표한 이번 선거에서 클린턴은 43%,부시는 38%를 득표,득표율에선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클린턴은 당선이 확정된 뒤 아칸소주 청사앞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나의 압승은 미국이 냉전의 종식과 21세기의 시작이라는 도전에 맞서 싸우기 위한 진군의 나팔소리』라고 선언하고 『나의 임무는 미국의 성장을 회복시키고 국민들에게 다시 기회와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선에 실패한 부시 대통령은 그의 제2의 고향인 휴스턴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클린턴의 당선을 축하하고 국민들에게 클린턴을 밀어줄 것을 당부했다. 냉전 종식이후 처음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클린턴은 부시의 경제정책에 불만을 품은 미국인들의 반발에 편승,역대 선거사상 7번째로 현직 대통령을 물리치고 지미 카터이후 12년만에 민주당출신으로 백악관 주인이 되게됐다. ◎내년 1월20일 취임 존 F 케네디이후 미국 최연소 대통령이 되는 클린턴의 공식 당선은 12월14일의 선거인단 선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뤄지며 내년 1월20일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게 된다. 【워싱턴 AP AFP 연합】 미 민주당은 4일 상하 양원선거와 주지사 선거에서도 압승,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했다. 민주당은 4백35명의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뽑는 이번 총선의 중간개표결과 (한국시간 4일 하오8시20분 현재) 2백50개 지역에서 당선이 확정됐고 9개 지역에서 우세를 나타낸 반면 공화당은 ▲당선 1백72명 ▲3개 지역 우세로 집계됐다. 또 1백명중 35명을 개선하는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당선 20명 ▲1개지역 우세로,공화당은 당선 14명으로 각각 나타나 현 상원의석 분포(민주 57대 공화 43석)를 대체적으로 유지했다. 이밖에 50명의 주지사중 12명을 개선하는 주지사선거의 최종 개표결과 민주당후보 8명,공화당 4명으로 민주당의 압승으로 판가름났다.
  • 미 대선현장을 다녀와서/신희석 외교안보연 교수(특별기고)

    ◎“클린턴 당선돼도 대한정책 불변”/「우려」보다는 국민적 단합으로 대응을/“카터식 일방통행은 없을 것” 필자는 이번에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대통령선거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정치제도와 대외관계를 연구·시찰하기 위하여 약1개월간 미국을 방문하고 10월25일 귀국하였다.약20개 가까운 도시를 방문하면서 미국의 정치인,공화당 부시후보의 선거대책본부,민주당 클린턴후보의 선거대책본부,언론인·학자·관료 및 재계인사들과 접촉,미국대통령선거의 현황과 한미 관계에 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이를 기초로 하여 대통령선거 이후의 한미관계를 간단히 전망하기로 한다. 흔히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한다.아시아태평양시대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고 하겠다.이 3개국이 최근에는 국내정치의 이행과정을 둘러싸고 적지않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오는 3일의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커다란 소용돌이를 맞고 있다.자민당정권하에서 기본적으로 안정기반이 구축되어 있다고하는 일본도 요즈음 크게 흔들리고 있다.일본 제2의 화물운송회사인 사가와 규빈으로부터 5억엔을 받은 일본 정계의 거물 가네마루는 국회의원직 사퇴,자민당 부총재직의 사임,나아가서는 다케시타파의 회장직도 사임함으로써 다케시타파에 의하여 정권유지를 꾀하고 있는 미야자와 정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오는 12월 중순의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그동안 여야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분열과 통합,그리고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중에서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미국정치의 향방은 우리들의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왜냐하면 그 결과는 한미관계는 물론 미국의 대외관계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세계적 관심사이기 때문이다.지난달 31일 CNN과 USA 투데이지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클린턴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42%,공화당 부시후보의 지지도가 39%,그리고 무소속 페로후보의 지지도가 14%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 출신인 무소속의 페로 후보에 대한 지지도의 상승이 클린턴 후보에 대한지지도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 당일까지 클린턴 후보의 상대적 격차가 점진적으로 좁혀질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3차에 걸친 3후보간의 TV토론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단독우세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지 못했으며 오늘날의 미국인들은 「현상유지」보다는 「세대교체」와 아울러 점진적 「변화」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클린턴 후보의 신승이 예상된다. 공화당의 부시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저조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국내정치적인 면에서 볼 경우 재정적자및 예산 불균형,고금리 정책에 따른 경제정책의 실패,실업인구의 점진적 상승(10%돌파),인종문제와 마약사범 등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대외정책의 관점에서 보았을 경우 부시의 지지율 하락은 7백억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미일간의 무역불균형,위에 말한 국내문제,이란­콘트라 사건에 관련된 커다란 오직사건,아태지역에 있어서 미국의 과도한 안보공약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 등에서 기인된 것이다. 우리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클린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민주당 정권이 백악관에 등장하였을 경우,클린턴 행정부는 한반도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을 추구할 것이며,클린턴 정권하의 한미관계는 어떤 양상으로 발전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클린턴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에 대한 통상문제,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요구와 감축의 면에 있어서 현 공화당정권보다는 약간 강도높은 정책이 투영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하여 그다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내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약9백50억달러의 군사비 감축을 공약하고 있는 클린턴 후보의 절감정책을 고려해 볼때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정부의 분담요구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주당 정권이 미국내의 실업자 문제와 경제안정을 위하여 방위비로 사용되는 잉여자금을 전용할 것이라는 발상에 그 기초를 두고있다. 이와같은 판단은 그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우리는 민주당정권이 등장한다손치더라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째,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갖는 위상은 1980년대초 카터정권때의 그것과는 너무나 차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올림픽을 전후로해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크게 향상되었으며,미국정부가 마음대로 한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이미 전근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둘째,필자가 이번 미국방문기간을 통하여 면담한 수십명의 관료·정치인·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민주당정권이 등장한다손 치더라도 한반도정책에 관한한 미국정부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것이며,민주당의 기본입장은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 감축된 형태의 주한미군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고위층이 강조하는 소위 「인권문제」는 제3공화국당시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오늘날 한국인들은 정치발전을 위한 국민적노력을 함께 전개하고 있으며 여러가지의 기복은 정치발전을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당정권의 등장 가능성에 대하여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지금은 우리들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국민적통합과 슬기로운 대응책을 조용히 강구할 때라고 하겠다.
  • 브레진스키 전 미 안보보좌관,SBS와 특별대담

    ◎“한국 분단사태 10년내 해결된다”/“북한,김일성사후 정치적 혼란… 붕괴/미는 한국의 안보 끝까지 책임질 것”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미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26일 한국의 분단사태는 10년내에 해결될 것이며 그 직접적인 계기는 김일성 사망이후 초래될 북한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 변화에서 초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터대통령 시절 안보담당보좌관을 역임,미국의 대한정책을 주도해온 브레진스키씨는 이날 밤 방영된 서울방송과의 특별대담에서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른 미국의 정책변화및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등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이같이 밝혔다.닉슨대통령 당시 역시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바 있는 리처드 앨런씨와 한국의 전국회의원 도영심씨가 공동진행한 이 대담에서 브레진스키씨는 또 한국 북방외교의 성공은 한국의 경제적·사회적 성공이 이끌어낸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브레진스키씨는 특히 김일성 사후에 일어날 북한사회의 변화를 3단계로 분석,제1단계로 확고부동한 후계자의 부재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국제적 고립으로 인해 경제실패에 직면하게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그는 또 제2단계로 북한이 개방으로 유도되고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나 내적인 더큰 변화 욕구로 동요가 가속화 될것으로 내다봤다.3단계로는 중국의 후원이 단절되면서 북한은 마지막 몸부림뒤 간단히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레진스키씨는 한국의 북방외교와 관련,북경이나 모스크바의 지도자들이 한국을 가능성있고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델로 보고 국교정상화를 통해 이득을 확신했기 때문에 결실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특히 중국의 경우 한국으로부터 투자유치로 인한 이득과 과학기술및 경영경험 획득의 측면에서 일본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서둘렀다고 말했다. 브레진스키씨는 이어서 차기 미행정부에 있어서의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안보문제나 인권문제보다는 무역문제가 더큰 현안으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그는 미국은 한반도에 현재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안보책임을 끝까지 지게 될 것이며 인권문제도 한국에서 엄청난 진전을 보인 가운데 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민주주의 속에서 평화롭게 치러질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11월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행정부의 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클린턴이 외교경험이 없다는 점을 가장큰 약점으로 들었으며 반면에 강점으로는 오늘날 미국의 외교정책이나 대내정책 어느 문제에 있어서도 국내적으로 의견일치가 잘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 부시,제2걸프전의 단추 누를까/이라크 재공습 득실 저울질 안팎

    ◎인기만회·국제위상 제고 검토/클린턴도 무력사용 지지… 조만간 단행 관측도/“국내경제 외면” 비난 여론 우려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다시 한번 징벌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후세인이 유엔사찰단의 농무부청사진입을 계속 거부,휴전협정을 준수할 의사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미국을 포함한 유엔을 농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대통령은 23일 딕 체니국방장관,콜린 파월합참의장,그리고 안보관계보좌관들과 이라크상황을 검토하고 중동을 순방중인 제임스 베이커국무장관과도 일련의 협의를 가졌다.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은 이라크에 대한 공습전망을 묻는 말에 『군사적 조치에 관해 언급은 않겠지만 모든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고있다』고 답변,여차하면 다국적군의 공습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비록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멀지않은 시기에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최종 결정하기까지는 의외로 고려할 요소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따라서 대이라크 무력제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기보다는 장고에 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11월 대통령선거를 3개월여 앞둔 현시점에서 부시대통령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가 모두 나름대로의 문제점이 따르고 있다. 군사력을 사용할 경우 인기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부시대통령이 이를 만회하기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살수 있다.사실 군사적 행동은 대통령의 지도력을 크게 부각시키게 마련이다.지난 89년 12월 파나마침공때 그의 지지도는 80%였고 91년 1,2월 걸프전때는 무려 90%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그러나 만약 공습작전으로 미국조종사들이 많이 격추되고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민간인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면 무력사용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큰것이다. 무력제재를 하지않을 경우에도 부시대통령은 비판을 받게된다.예를 들어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세계지도자로서의 부시대통령의 위상이 대폭 약화되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의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점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대통령후보도 유엔이 이라크의 무기기지에 대한 사찰이 더 필요하다고 간주할 경우 대이라크무력제재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그러나 민주당은 부시행정부가 걸프전이전에 사담 후세인을 대거 지원해주었고 그 결과가 후세인의 쿠웨이트침공을 초래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어쨌든 부시대통령으로서는 이라크에 대한 무력제재를 단행할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심해야할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3개월후 대통령선거만 없다면 부시대통령의 선택의 폭은 매우 넓을 수있으나 「군사행동=인기만회」라는 장애때문에 불가피하게 장고를 하고있는 것같다. 미국은 이미 후세인에게 ▲유엔사찰팀의 활동을 보장할것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있으며 어물어물 넘길수는 없다는 입장을 「최후통첩」했다.또 군사면에서는 페르시아만에 인디펜던스항공모함을 비롯,17척의 전함,홍해에 6척의 함정이 배치되어있고 이 일대에 2만1천명의 병력이 계속 남아있으며 공습작전에 대비,페르시아만및 지중해상의 항공모함,사우디및 터키의 공군기지등 4개 방향에서 폭격기를출격시킨다는 작전계획도 마련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결국 이라크에 대한 공습계획은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완료되었고 미국의 국내정치,특히 선거상황과의 함수관계를 면밀히 따지고 있는중이라고 볼수 있다.
  • 「제2의 흑인폭동」 막는 길은(우리는 일어서리라:6)

    ◎경제적 성공 걸맞게 발언권 확대 시급/한인단체 내부다툼이 결속 해쳐/교육받은 2세들의 적극적 사회참여 바람직 미국땅을 통틀어 한국교민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이민간 사람만으로 교포의 수를 내기에는 그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주미한국대사관의 집계가 91년 말 기준 1백50만명인데 반해 90년 미국당국의 인구센서스에는 79만8천명으로 조사되고 있다. LA지역만 하더라도 우리 영사관측은 50만,현지매스컴에서는 60만명,교포사회에서는 70만명에 가깝다고 한다.「고무줄 인구」인 셈이다. 「고무줄인구」가 왜 생겼으며 늘어나는 만큼의 인구가 어디서 어떤경로로 미국땅을 밟게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곧 미국사회에서의 우리교포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국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지난 65년 「케네디이민법」이 새로 발효되면서 부터다.이전에는 1902년 하와이로 노무자가 송출되면서 이들과 극소수의 유학생,국제결혼자등이 주류를 이뤘지만 그수가 1만명 안팎이었다. 65년이후 매년 3∼4만명씩 늘어 28년만에 무려 1백배가량늘었다.물론 공식이민자가 많지만 최근까지 유학생·상사주재원이 그대로 눌러앉거나 친지 가게일을 돕기 위해 왔다 불법으로 머물고 있는 이도 상당수다.교민들은 LA·샌프란시스코·시카고·뉴욕등 10만∼60만명까지 대규모 한인타운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가운데 8∼10%정도를 불법체류자로 보고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든 아니든 유학생이든 그렇지않든 일단 이곳에 온 사람들이 지향하는 것은 같다.즉 고국에서보다 나은 생활과 이를 위해 자녀교육에 힘을 쓰기 위함이다.20∼30년동안 「바깥세상」을 등지고 일한결과 한인교포들은 단시일내 유태인 이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자리잡았다. 65년 흑인폭동이 일어났고 당시 유태인들이 상권을 잡았던 LA사우스 센트럴지역의 상가주인들은 현재 거의 한인들로 바뀌었고 남가주 1만4천여개에 달하는 리커 세탁소 옷가게 주인도 교포들이다. 흑·백인,히스패닉등 고객을 가리지 않았고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미국땅만 밟으면 해야했던 「접시닦기」등 허드렛일은멕시칸등 중남미 사람이나 흑인들로 대체된지 오래다. 뉴욕·시카고지역도 비록 육체가 고달픈 일이지만 야채·생선가게,세탁소주인은 거의가 한인들이다. 어느정도 경제적여유를 갖게된 한인들은 80년대 들어서면서 부동산에 대한 투자로 막대한 거금도 함께 손에 쥐게됐다.LA만해도 적어도 2천여명이상이 다운타운이나 도시주변에 크고 작은 빌딩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않아도 백인들이 남긴 소상권을 한인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던 흑인들은 이후 더욱 교민들을 질시의 대상으로 삼게되었다. 4·29폭동때 흑인들은 주로 이같은 배경에서 한인교포들을 비판의 메뉴로 삼았다. 한인들이 경제적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관심을 둔 분야는 자신들의 신분상승.이때문지 이들은 사회적지위를 구가하는 쪽으로 각종단체의 성질을 변질시키기도 했다.이민초기인 60∼70년대 미국내 한인들의 사회·문화·친목단체는 그 수는 적었지만 서로 위로하고 정보를 교환하는등 「끈끈한」단체였다.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그 성질이 감투싸움이나 신분과시 장소로 변질되면서 숫자는 엄청나게 불었지만 결속력은 미미해진 실정이다. LA의 경우 한인회·코리아타운번영회·남가주번영회등 각종 사회·문화단체의 정관상 이사자리 수가 20명에서 50명에 이르기도 한다.「자리」는 많지만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교포들이 잘 뭉쳐지지 않는 것은 지리적인 문제도 있다.집단을 이루며 살던 한인들이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시교외의 주택가보다 나은 곳을 찾아 또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돈을 많이 모아도 계속 하나의 타운에서 머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포들의 경제적 지위향상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그동안 교육에의 투자가 이제 결실을 보고있는 것이다.다시말해 흑인등 다른 소수민족이 그렇지 못한것에 비해 우리교민들은 교육받은 2세라는 「미래의 씨앗」을 뿌려놓은 것이다. 4·29폭동이후 이 2세들은 정부(미국)에 대해 발언권을 높였고 또 이제까지 미국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나 지위를 누리지 못했던 부모세대를 위해 공동체를 위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자 LA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전역의 한인대학생이 곧 대규모시위를 계획하는 등 「한인들의 위상찾기」를 위한 각종 모임·단체를 조직하고 있는것도 그 하나다. 이들은 또 「상·하원의원에게 전화걸기」「백악관에 전화걸기」등 그동안 무관심했던 부모세대의 한을 대변하는데 정력을 쏟고 있다. 미국내 한인사회는 서서히 참여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21세기 한인들의 번영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 “북한 핵보유는 시간문제”/칼럼니스트 앤더슨 WP지 기고

    ◎영변 핵시설 은닉·위장작업으로 부산/“김정일 제2의 후세인 될까” 큰 우려 북한은 핵무기제조에 총력을 기울여 불과 몇달내에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 시킬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미국의 정보계가 믿고 있다고 미정부의 극비정보에 정통한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씨가 29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 다음은 앤더슨씨의 기고문 요지. 「북한의 핵무기 계획을 총관장하는 김정일은 또다른 사담 후세인이 될지도 모른다. 편집광적 은둔자인 그는 핵무기의 축적은 물론 그의 진척정도를 숨기는데 열심이며 비극적인 오산의 명수이기도 하다. 북한의 김일성이 오는 4월15일 80세 생일을 기해 정식으로 권력을 인계할 것이라는 추측이 정보계를 풍미하고 있으나 김정일에 대한 뉴스는 좋은게 없다.그는 격리돼 살아와 세상사에 무지하며 외국외교관을 만나지 않고 기자회견조차 해본적이 없다.북한 밖을 나가 본 것은 두번에 걸친 잠깐동안의 중국방문이 고작이다. 미정보사회에서는 김정일 지시하에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하기 직전에 와있다는 경고가 점증하고 있다.그는 국제사찰을 지연시키는데 성공한다면 핵무기보유를 몇달내에 기정사실화 시킬수 있으며 최소한 핵심부품들을 깊숙이 숨기는 시간을 벌수있을 만큼 목표달성에 근접해 있다. 북한은 금년들어 중동에 대한 미사일판매를 증가시키면서 휴전선에 스커드를 증강배치하는 불길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백악관과 국방 국무부가 묘안을 강구해도 별수가 없다. 지난 6개월동안에 걸쳐 영변주변의 대공포대가 5에서 40으로 늘었고 정찰위성으로부터 작업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망이 여기저기 설치됐으며 지하터널이 굴착되고 대형트럭들이 부산하게 들락거리고 있다.이들은 모두 핵무기 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한,또는 중요한 물질이 사찰팀 도착전에 이동중이라는 시사로 보여진다.」
  • “북한 핵개발 저지” 미의 무력압박/왜 북한선박 강제검색 시도하나

    ◎북서 사찰 늦추자 초강경대응/압류하거나 북으로 되돌려 보낼 가능성/비난여론 일어 강행여부 미지수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중동으로 항진중인 북한 선박 「대흥호」등을 강제 검색하겠다는 워싱턴의 공개적인 「위협」은 평양의 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미사일 확산에 대해서도 이젠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미국의 강경 방침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은 미해군 함정의 북한 선박 검색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지금 부시 미행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최선의 해결방안은 북한 선박이 지난해처럼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인도를 포기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평양은 시리이에 대한 스커드 C 미사일 1백50기 판매 합의에 따라 작년 3월 24기를 인도한후 10월에 제2차분을 넘기려다가 이스라엘이 미사일을 수송중인 북한 선박 「무포호」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자 이를 회항시켰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번의 북한 선박검색 방침도 이스라엘의 압력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 방지는 부시 미행정부가 탈냉전 시대에 추구해야 할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 놓은 정책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워싱턴의 정책의지 자체가 시험받는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또한 지금 미국서 진행되고 있는 선거가 대북한 강경론을 부추겨 이번 사태가 의외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백악관의 브랜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북한의 미사일 확산을 「위험하고 안정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문제가 악화돼 승선 검색까지 가게 될지는 불확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수행중」이라며 미국 정부의 결의를 시사했다.현재 중동의 미 해군은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북한 선박을 검색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강경대응방침이 핵카드를 자꾸 쓰려고 드는 북한의 상투적 전술에 쐐기를 박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그동안 북한은 핵카드를 이용해 주한미군 핵무기 철수,한국의 핵 재처리시설 포기,팀스피리트 훈련 중지,미·북한 고위회담등을 따냈다.그럼에도 북한이 핵사찰을 지연하자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은폐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구심 속에서 강경 대응을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둘러싼 협상이 중요한 고비를 넘긴후 북한의 미사일 판매에 대한 워싱턴의 우려가 터져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즉 북한이 회피해 오던 핵사찰을 오는 6월까지 받겠다고 공언하자 이젠 북한의 미사일 확산을 저지할 차례라며 이 문제에 손을 대게 됐다는 것이다. 대흥호 등이 페르시아만으로 접근하면 유엔의 대이라크 금수 조치를 집행하는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활동중인 미해군 함정들은 이들의 항로를 차단,검색할 예정이다. 이 함정들은 이라크로 금수 물자를 수송하는 혐의가 있는 선박을 조사 수색하기 위해 유엔 승인 아래 작전중이며 전함의 사령관들에겐 금수 물자를 수색,강제 압류하거나 되돌려 보낼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그러나 북한과 이란,시리아는 MTCB(미사일기술 통제협정)의 서명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국가간의 미사일 이전을 막을 수 있는 직접적인법적 권한은 없다.부시 미행정부는 백악관,국무부,펜타곤간의 협의를 거쳐 대흥호 등의 검색은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 「깃발」아래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미프리게이트함과 구축함들은 대흥호를 정선 검색해서 미사일 적재를 확인하더라도 이 배가 항해를 계속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미관리들은 말했다. 적재화물과 목적지의 확인을 거부하거나 적재 화물이 서면 신고 내용과 상치되지 않는한 이 배가 페르시아만을 떠나도록 진로를 바꾸게 할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다만 행선지가 서아프리카로 된 선박이 엉뚱하게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의 확인은 평양의 거짓말과 미사일 확산을 세계에 인식시키는 좋은 증거로 이용될 것이라고 미관리들은 말했다. 대흥호는 싱가포르 기항시 적재 화물의 행선지를 페르시아만과는 동떨어진 서아프리카의 적도 기니라고 신고했다.미관리들은 이 미사일의 행선지가 이란의 반다르 아바스항이며 미사일은 궁극적으로 시리아에 인도될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의 북한 선박 검색계획은 그 적법성을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일부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뉴욕 타임스지는 지난 7일 사설에서 「미국의 북한 선박 검색은 전쟁행위」라고 비판하며 「유엔의 대이라크 금수조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군함들을 금수대상이 아닌 국가로 가는 선박을 조사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아메리칸대의 톰 파러 교수(국제법)도 『화물의 행선지가 이라크가 아니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면 검색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하며 『대흥호의 행선지가 이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유엔안보리 결의에 근거한 권한을 행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해양법에 따르면 공해상에서의 선박검색은 이 배가 적을 두고있는 국가의 허락아래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 강제사찰땐 어떻게 되나/「제2의 이라크」 될 가능성

    ◎경제·외교적 고립… 무력제재 받을 수도 북한이 핵시설에 대한 시범사찰이나 남북한간에 합의된 동시공동사찰등을 마다하며 시간을 지체 시킬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제사찰로 귀결되어질 공산이 한결 높아졌다. 물론 북한은 패전국으로 강제사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라크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할수 있다.전쟁에 진 나라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들어가기가 힘든것은 사실이나 국제사회가 이를 방치할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IAEA가 강제사찰조치를 결정할 경우 북한은 화해와 공존의 남북한간 관계에 찬물을 끼얹게될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북측이 제시한 「4월 비준,6월 사찰」일정이 악화된 세계여론의 무마용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파한 미국·일본등 서방국가들은 우선 이에대한 방안으로 ▲미·일의 대북한경제­외교적 제재 ▲IAEA의 강제사찰결의안 채택 ▲유엔안보이에 의한 대북제재등을 고려하고 있다. 한걸음 더나아가 우리정부는 「절차」와 「내용」에 알맹이가 담겨있는 동시·시범사찰이 이루어지지 않을때는 최근들어 북한측이 「집착」을 보이고있는 남북경협을 재검토할 방침임을 분명히 하고있다.즉 우리측은 교류협력을 우선적 과제로 추진해오다 이제는『핵문제해결 없이는 경협도 불가』라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에 관한한 우리정부와 미·일등 주변당사국들의 태도는 단호하다.지난 24일 방한한 더글러스 팔 미백악관 아주담당보좌관이 『6월의 IAEA정기이사회 이전에 남북핵통제공동위에 의한 남북한 상호사찰이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우리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선택의 볼은 북한측에 넘어가 있다. 강제사찰에 착수될 경우 사찰을 위한 무력의 동반은 필수적이다.그 결과는 무력에 굴복한 이라크의 선례를 밟게된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은 자신의 「버티기전략」이 자칫 무력충돌의 위험이 따른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 구토뒤 쓰러지자 참석자들 비명/세계 놀라게한 부시 졸도 이모저모

    ◎병원가던 부시 “관심끌고 싶었다” 농담/달러화 한때 급락… 내일부터 정상 업무/일 경찰 취재차단에 수행원들 “놔둬라” 고함 ○…부시 미대통령이 이날 일본총리관저에서 열린 만찬에서 건배직후인 하오8시19분쯤 갑자기 식탁밑으로 몸을 숙여 음식물을 토한 뒤 쓰러지자 부인 바바라여사가 비명을 지르는 등 만찬장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엄습. 경호원과 미야자와 일본총리 등의 부축을 받아 창백한 얼굴로 일어선 부시대통령은 박수를 치는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뒤 옆방으로 옮겨져 5분정도 휴식을 취하다 황급히 달려온 의료진의 진료를 받고는 스스로 현관까지 걸어나와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 대기중인 구급차를 물리치고 리무진승용차에 올라타면서도 『다소 관심을 끌고 싶었을 뿐』『굿나잇』이라고 경호원들에게 농담을 건네는등 여유있는 표정. 부시대통령은 하오8시35분쯤 숙소인 아카사카영빈관에 도착,주치의로부터 위장염이란 진단을 받은뒤 2명의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잠자리에 들면서도 재선을 의식한 듯 『비록 쓰러지기는 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었다』고 해명. ○…부시대통령이 만찬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만찬은 계속된 가운데 스코크로프트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이 부시연설을 대독한 후 바바라여사로부터 메모를 건네받은 미야자와총리가 방금 받은 연락이라며 『부시대통령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다』고 밝히자 참석자들은 우뢰같은 박수로 환영. 이어 등단한 바바라여사는 『오늘 아침 아키히토 일왕 부자와의 테니스복식경기에서 남편이 의외로 졌다』면서 『남편이 쓰러진데는 한조를 이룬 아머코스트주일미대사의 책임이 크다』고 조크. ○…피츠워터백악관대변인은 『대통령이 위장염에 걸렸을 뿐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며 지난해의 심장박동 이상증세와는 무관하다』면서 『내일 하오부터 예정된 일정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 ○…졸도 사건 와중에 「대통령」에 관한 언론보도에 대처하는 미국과 일본 관리들의 판이한 형태가 극명하게 대조되기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만찬장에 배치됐던 일본경찰들은 대통령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있는 장면이 기자들에 의해 사진찍히지 못하도록 즉시 흰 식탁커버로 현장을 가리는 한편 기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무가내로 차단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백악관관리들은 일본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는 기자들에 동조,경찰들에게 『기자 「일」을 하도록 내버려둬라』고 같이 고함. ○…부시대통령의 졸도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외환시장의 달러화는 급속히 가치가 하락했으나 그의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지자 곧바로 원래수준을 회복. ◎부시 경선가도에 “제2의 악재”/경제침체 이어 「건강이상」 핸디캡으로/작년에도 입원… 유권자 등돌릴까 우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지난해 5월에 이어 8일 또다시 졸도함에 따라 그의 재선전망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대통령자격요건으로 무엇보다 건강을 중시하는 미국사회의 풍토를 감안할때 그의 건강이상은 올 연말로 다가온 선거에서 크나큰 핸디캡으로 대두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시대통령은 지난해초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뒤 역대 미대통령사상 최고인 90%가까운 지지율을 얻어 재선이 확실시됐으나 그후 미국경제의 계속되는 침체와 불경기로 인해 인기도가 40%대로 떨어져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는 만67세 7개월(1924년6월12일생)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하루 11시간씩 휴일없이 집무하는 만능스포츠맨 대통령으로 소문나 있으며 미역대 대통령중 외교적인 해외방문을 가장 많이한 인물이나 지난해 5월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조깅중 심장에 이상을 일으켜 워싱턴근교 베데스다해군병원에 입원,이틀간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에 적신호를 밝혔다.당시 병명은 갑상선이상인 심방세동으로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다. 부시대통령 주치의인 버튼리박사는 이날 부시대통령의 졸도원인이 『지난해의 심장이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흔한 장염이며 내일 아침이면 평상시 건강을 회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고 부시 자신도 『쓰러지기는 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고 거듭 밝혀 재선을 앞둔 부시진영의 안타까움을 드러냈다.미국인 유권자들이 이번 사고를 단순한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건강상의 문제로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2

    ◎미군의 원산상륙 소 잠함 방해로 지연/중공군 압록강집결 「단순한 위협」 오판/애치슨,6·25발발 책임 CIA에 전가 1950년 6월26일 월요일,때마침 개회중이던 상원 예산지출승인위원회는 공화당 출신 스타일스 브리지의원의 제의로 중요한 국가외교정책에 관한 비공개청문회를 열어 미국이 왜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게 됐는지를 정부책임자들을 불러 따졌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열린 회의에서 애치슨국무장관과 존슨국방장관은 야당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호되게 질책을 당했다. 이들의 증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CIA본부에서는 힐렌쾨터국장과 월터 포르자이머법률고문이 의회에서의 증언을 협의하고 있었다.얼마후 증언을 마친 애치슨국무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자신이 성난 상원의원들의 원색적인 공격앞에서 정보담당자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또 그날 하오3시 트루먼대통령에게 브리핑하도록 주선을 해놓았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이 브리핑 계획은 오후의 청문회 출석과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힐렌쾨터는 청문회에 제출키로 했던 모든 자료를 싸갖고 포르자이머와 함께 백악관으로 갔다.만일 대통령에게의 보고가 길어질 경우 국회에는 그를 보낼 생각이었다. 대통령에게의 보고는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가운데 간략하게 이루어졌으며 의회에 제출하려던 모든 자료들이 제시됐다.대통령은 정보수집에는 잘못이 없었음을 수긍하는 듯했다. 힐렌쾨터와 포르자이머는 백악관을 나와 급히 의회로 가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그곳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왜 애치슨장관이 자신들을 백악관에 묶어두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증언에서 애치슨장관은 국무부로 쏟아지는 전쟁발발의 비난을 CIA로 돌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으며 그것이 바로 언론에 새나가 대서특필된 「정보수집실패」보도들의 주요한 소스가 되었던 것이다. 힐렌쾨터는 화가 치밀었지만 침착을 유지하며 정보평가서와 북한의 침략의도가 명백히 언급된 정보원들의 보고를 읽어내려갔다.잠시후 민주당출신의 매켈러 위원장이 왜그같은 보고들을 국무부와 국방부 책임자들에게 배포하지 않았는가고 물어왔으며 그에 대해 힐렌쾨터는 모든 정보평가가 정부의 핵심부서에 전달되도록 돼있다고 답했다. 이날 청문회가 끝날무렵 여야 대부분의 의원들은 CIA가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고 이해하게 됐지만 매켈러위원장만은 생각을 바꾸지 않고 다음날까지 그들 증거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다음날 애치슨장관의 것을 포함,장관들로부터 받은 정보문서 수령증들이 제시됐을때 그는 그것들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이것들은 전부 위조된 것이야.모두 가지고 나가!』라며 전부 바닥에 팽개쳐버렸다. 포르자이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정중하게 그들 사인이 모두 믿을만한 것임을 설명했으며 매켈러의원은 그들이 다른 서류에 사인한 것과 하나하나 자세히 비교한뒤 점차 이들 수령증이 진실된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언론에 그같은 사실을 다시 알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해 7월초 82공수사단 505공정연대 3대대의 행정관(소령)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브래그기지에 배속됐다.당시 82공수사단에는 미국내에서 전투경험이 있는 전문 공수요원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개전초기 10일간 어이없는 공격을 당하는 동안 트루먼대통령은 미군이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할것을 천명했고 유엔은 남한에 파병을 결정했다.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전황은 불과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됐다는등 우울한 것이었다. 초기에 미군의 개입은 일본점령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24보병사단의 부분적 투입으로 이루어졌으며 경무장 돼 있었기 때문에 탱크로 무장된 북한군을 당할수 없었다.7월 중순이 되자 24사단은 절반의 병력도 남지 않을 정도로 패퇴했으며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의 남쪽끝에서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그러나 점차적으로 미 제1기갑사단의 경장갑차들이 남해안에 당도했고 하와이로부터 25보병사단이 투입됐다. 1950년 8월,8군은 한국전에 참전중인 전투부대내에 장거리정찰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어 각사단에 소규모의 특수정찰중대를 편성케 했다.그들은 적진 후방에 투입돼 정찰업무를 수행하고 적의 통신교란을 목적으로 했으며 나는 그 요원들의 교육을맡게 됐다. 특수정찰요원들의 교육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한국전의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9월 중순 맥아더장군은 육군제7보병사단과 해병제1사단으로 편성된 제10군단을 지휘,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공산군의 저항을 일거에 뚫고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워커장군 휘하의 8군은 북으로 공격을 개시, 파죽지세로 몰고 올라가 10월 들어서는 연합군이 38선까지 쳐올라갈 정도로 전세는 역전됐다. 워싱턴의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맥아더장군에게 소련군이나 중국공산군의 개입을 부를수도 있는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경고했고 맥아더도 그점에서는 신중했다. 맥아더는 대담한 전략가였다.그는 한반도의 지형을 고려,평이한 산악공격을 피하고 10군단 병력으로 원산에서 다시 상륙작전을 시도하려했다.그러나 이 작전은 소련잠수함들의 기뢰부설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기뢰를 제거하는데만 2주일이 걸려,미제1해병사단이 상륙을 감행했을때는 한국군 제3사단과 수도사단이 이미 수십㎞ 북쪽으로 진격해 있었다. 이 작전에서 유엔사령부는 언밸런스한 두개의 지휘부로 나눠지는 양상이 나타났다.맥아더원수의 참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소장이 지휘하는 10군단이 주력이된 반면에 워커중장이 이끄는 8군은 보조적 역할을 맡게 됐다.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워커장군이 몇몇 부대들을 압록강을 향해 북으로 진군하도록 한 것이었다.북한인민군으로부터 저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와 그의 참모들은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판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것이다.결국 그의 지상 주력부대인 제2·제25보병사단과 제1기갑사단의 북한 북서해안지방에 대한 공격은 무모한 것이었다. 한편 극동사령부 정보참모 윌로그비소장이 소련과 중공의 개입가능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보고를 올린것은 10월14일이었다.그는 소련은 개입의사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중공군에 대해서는 만주 주둔 9개 야전군의 38개사단 가운데 24개사단이 압록강을 따라 배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외교적 위협」으로 간과해 버렸다.그러나 그로부터 6주가 채못돼 미군은 중공군의 예기치 못한공세에 허를 찔리게 됐다.
  • “아태 국가간 호혜적 경제협력 다지자”(노 대통령 북미순방 여로)

    ◎“소와 수교해 이젠 KAL기 타도 안전”/노 대통령/“한국의 세계정세 유연 대응 특기할만”/멀로니 ◎…나티신 캐나다 총독내외가 노태우대통령내외를 위해 4일 저녁 총독관저에서 베푼 공식만찬에는 우리측의 공식수행원과 수행경제인,멀로니총리를 비롯한 캐나다 각계주요인사 1백여명이 참석. 이날 저녁7시50분(현지시간) 노대통령내외는 나티신총독내외,멀로니총리내외의 안내로 만찬장입구쪽으로 입장,역대 총독들의 초상화가 걸린 벽면을 배경으로 함께 기념촬영. 이어 노대통령내외와 나티신총독내외는 접견 라인에 서서 시종무관의 호명에 따라 만찬장에 입장하는 양측 참석인사들과 악수. 나티신총독은 먼저 만찬사를 통해 『한국이 지닌 활력은 곧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지닌 활력의 축소판』이라며 한·캐나다간의 긴밀한 협력필요성을 강조한뒤 『각하의 이번 방문이 너무 짧은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건배를 제의. 답사를 위해 일어선 노대통령은 배포된 만찬답사를 하기에 앞서 영어로 『내 친구가 캐나다의 경우 9개월이 겨울이고 나머지 3개월은 봄 가을이라고 하던데 실제 와보니 사실과 크게 다른 말』이라고 조크하는등 두차례에 걸쳐 좌중의 웃음과 박수를 유도.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말로 답사를 읽어내려 갔는데 『우정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한국속담이 있고 『좋은 우정은 제2의 친척이라는 속담도 있다』며 『우리 두나라 국민간의 우정은 리도강에 흐르는 물처럼 아름답고 영원할것』이라는 인사말을 끝으로 건배를 제의. ◎…노대통령과 멀로니 캐나다총리는 정상회담이 끝난직후인 4일 상오(한국시간 5일 0시45분)부터 의사당내 리딩룸에서 40여분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회담결과를 설명. 정상회담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15분정도 늦게 시작된 공동기자회견에는 캐나다측을 포함,외신기자 40여명과 우리측 수행기자 50여명,사진기자 등 1백50여명이 참석. 이날 기자회견은 멀로니총리에 이어 노대통령이 회담결과를 설명한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양측에서 각각 2명씩 모두 4명이 질문. 멀로니총리는 『오늘의 회담에서는 한 캐나다 양국의 협력증진에 관한 문제를 비롯,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 관한 문제,무기문제와 우루과이협상에서 협력할 문제등을 논의했다』며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내용들을 대략적으로 설명. 노대통령은 『6·25 전쟁때 캐나다가 2만7천여명의 젊은이들을 파견,자유를 지켜 오늘날 한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면서 『내가 멀로니총리를 반갑게 만나 아시아태평양의 번영을 위한 문제들을 논의하게 된 것 자체가 감회가 깊은 일』이라고 피력. ◎…노대통령과 멀로니총리는 4일 환담중 전날 공항의전행사 때 의장병1명이 더위로 쓰러진 일과 북한의 김일성동상크기에 관해 농담을 나누며 폭소. 멀로니총리는 『나는 누군가 쓰러져 놀라면서도 제발 야당의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유감스럽게도 여군이었다』고 노대통령에게 농담. 이때 노대통령은 미국백악관 의전행사 때는 의장병이 4명이나 더위와 피로때문에 쓰러졌다고 소개하면서 『그러고보니 캐나다군인이 역시 미군보다 강하다는 것 아니냐』고 응수. 이어 멀로니총리는 평량의 김일성동상이 무려 75피트(22·5m)나 된다고 해서 동료의원들에게 『나는 그보다 작은 것이라도 동상하나 세워달라』고 했더니 『75㎝짜리 동상을 세우기도 어려울 것이다.말썽날 일 말라』는 반응이더라고 해 좌중엔 다시 웃음. ◎…노태우대통령은 4일 하오4시(한국시간 5일 상오5시) 캐나다 외무성 회의실에서 열린 한가경제인 간담회에 멀로니총리와 함께 참석,경제인들을 격려. 노대통령은 이날 두나라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아태경제협력각료회의(APEC)를 중심으로 지역국가간 호혜적 경제관계가 심화돼야 한다고 역설. 이에앞서 멀로니총리도 인사말에서 『캐나다시장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교역에 장애는 없다』면서 한국기업의 캐나다투자를 호소하고는 『두나라가 국가와 민족의 벽을 허물고 세계시장에 함께 진출하자』고 제안. 노대통령은 인사말 끝머리에 한소간 인적교류를 언급하는 가운데 『옛날에는 대한항공을 타면 불안하다 했지만 이제는 소련과도 수교했으니 걱정할 것없다』고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냈는데 곧이어 자리를 뜨면서 간담회에 참석한 박성용금호그룹회장을 발견하고는 『한국에는 아시아나항공도 있다』고 부연,박수를 받기도. ◎…노대통령은 4일 하오5시(한국시간 5일 상오6시) 숙소인 총독관저에서 캐나다 야당인 자유당의 크레티엥당수를 접견하고 환담. 노대통령은 『한국과 캐나다는 6·25때 혈맹관계를 맺었다』면서 『앞으로 21세기 아태지역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동반자로서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양국관계의 발전을 희망. 노대통령은 한국의 국내문제에도 언급,『민주화의 진전에 대해 비판도 많이 있지만 인내로서 꾸준히 국민의 자율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 크레티엥당수는 『야당 당수로서 각하를 뵙게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각하가 민선 대통령으로 민주화에 성공하고 있는데 대해 축하드리며 앞으로 계속 민주화에 큰 업적을 남기시기 바란다』고 인사.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나티신총독 부인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뒤 멀로니총리 부인과 함께 국립미술관을 방문. 김여사는 톰슨관장의 안내로 미술관의 1·2층 전시실을 둘러본후 톰슨관장에게 「한국미술 5천년」과 「한국복식도감」의 영문책자를 전달.톰슨관장은 이에 「캐나다 미술걸작선집」을 선물.
  • 2차대전후 최대 축하집회/걸프 승전 퍼레이드 이모저모

    ◎1,200만불 투입… 80만 시민 참가/장병 9,000명·장갑차 행렬 4㎞ 【워싱턴 UPI 연합】 걸프전 참전미군 귀국환영대회가 8일 워싱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요인과 시민 등 모두 80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려 제2차대전 종전 이후 최대규모의 승전축하집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걸프전의 영웅 슈워츠코프 장군과 예하부대 장병 8천8백명이 일부는 도보행진으로,일부는 장갑차에 탄 채 백악관과 미모리얼교를 지나 컨스티튜션가에 이르는 4㎞의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군중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며 이들의 귀향을 축하했다. 시민들은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성조기를 흔드는가 하면 「축 귀향」 「잘했다」 혹은 「댕큐」라고 쓴 포스터를 높이 쳐들어 열렬한 환영을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슈워츠코프 사령관과 악수하기 위해 사열대 계단을 내려오면서 감격적인 어조로 『오늘은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사열에 앞서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걸프전 전사자 3백76명에 대한 추도식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사람들은 우리들 개개인보다 더 커다란 원칙,즉 국가라는 심장의 근육과 힘을 동시에 형성해주는 원칙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하오 10시의 불꽃놀이를 포함,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계속된 이날 환영행사에는 모두 1천2백만달러의 경비가 소요됐으며 백악관 뒤편에서 열린 군인가족 야유회에서만도 핫도그 2만5천개,통닭 4만쪽,캔디 5만개가 소비되면서 3t의 쓰레기가 나왔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앨런 이터씨는 『베트남전이나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해서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면서 『오늘의 행사는 승리의 축하며 모두를 위한 퍼레이드』라고 말했다.
  • 미,소에 곧 최혜국대우/미 정부소식통/양국 무역협정안도 의회 제출

    ◎부시,G7에 고르비 참석 동의 【워싱턴 AP 연합 특약】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소련에 대해 최혜국(MFN)대우를 부여할 방침이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소간의 정상적인 통상관계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미 정부소식통이 5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백악관이 수주일내에 미국의 소련에 대한 최혜국대우 승인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와 함께 지난해 워싱턴정상회담에서 조인된 미소무역협정안을 의회에 공식제출,승인을 요청할 것이라고 이 소식통이 말했다. 미국은 소련이 이민자유화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아 미소무역협정의 의회 제출을 보류해왔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서방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 참석에 동의했다고 미 관리들이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5일 존메이저 영국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는 7월15일부터 17일까지 런던에서 열리는 G­7정상회담에 고르바초프를 초청하는 데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고 이들 관리들이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런던정상회담 직전이나직후에 초청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허드 영국 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가 G­7회담에 참석하더라도 대규모 대소 원조에 대한 즉각적인 합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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