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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파업] 화물열차 운행률 25%… 물류난 심화

    [철도파업] 화물열차 운행률 25%… 물류난 심화

    코레일이 철도노조 파업 7일째를 맞아 화물열차를 증편하는 등 물류 수송을 확대하고 나섰지만 혼란은 계속됐다. 2일 코레일에 따르면 KTX와 수도권전철·통근열차는 평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운행했다. 그러나 대체인력이 투입된 수도권 전철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 전동차 운행 간격이 늦춰졌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열차는 운행률이 각각 59.5%, 62.7%로 지난달 29일 이후 차질이 계속됐다. 코레일 관계자는 “대체 기관사들이 갑자기 투입된 노선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면서 “승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이날 화물열차 운행을 1일보다 76편으로 늘려 충북 제천지역에 적체됐던 시멘트 수송에 나섰다. 화물열차 운행이 평시(300편) 대비 25.3%로 떨어지면서 컨테이너와 시멘트·철강·유류 등 산업 및 서민생활에 직결된 화물 수송에 주력하고 있다. 수출입 컨테이너는 당일 수요를 전량 해소하고 시멘트는 도착지 보관창고 재고량 등을 고려해 수송량을 조절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물류차질이 빚어졌다. ●노조 4000여명 총파업 결의대회 정부가 ‘11·26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가운데 철도노조 서울지역본부는 이날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집회에는 노조원과 공공운수연맹 조합원, 노동·사회단체 회원 등 4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참석자들은 “정부와 사측은 법률이 규정한 정당한 단체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면서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하고 교섭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 중인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은 영상을 통해 단결을 촉구했다. 앞서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는 2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가칭 서울연대(준)가 기자회견을 열고 “철도노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노조원 1156명 업무 복귀 파업이 길어지면서 이탈자도 나오고 있다. 코레일은 파업 7일째인 2일 오후 2시 현재 파업에 참가했다가 복귀한 노조원은 1156명이라고 밝혔다. 특히 업무복귀지시 3호가 내려진 1일 이후 515명이 복귀했다고 덧붙였다. 코레일 부산경남본부에서만 노조원 180여명이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파업으로 운송업체들은 철도로 운송하지 못하는 물량을 화물트럭이나 컨테이너 트레일러 같은 육상 수단으로 대체했다. 하루 1500~2000t의 철재류를 인천·평택·포항 등지로 내보내는 포스코 광양제철소도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대체 운송 수단을 찾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러나 육상 운송비용이 철도보다 t당 1000~2000원 더 들어 운반비 부담이 커지게 됐다. ●운송업체 “육로 운송비 부담” 코레일 관계자는 “철도를 이용한 물류수송량이 7.8% 정도고 파업 전 미리 수송하는 등 대책을 추진했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파업복귀자와 경력자 등을 투입해 화물열차 운행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포스코 印尼일관제철소 2011년 첫삽

    포스코 印尼일관제철소 2011년 첫삽

    ‘글로벌 포스코’가 닻을 올린다. 포스코의 첫 번째 해외 일관제철소가 2011년 인도네시아에서 첫 삽을 뜬다. 포스코의 일관제철소 예정지 3곳(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가운데 가장 먼저 일정이 확정됐다. 이로써 포스코는 연간 3000만t 이상의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동남아시아에 전략 거점을 구축하게 됐다. 글로벌 ‘빅3’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일관제철소는 원료 투입부터 쇳물 제조, 제품 생산 등 모든 공정을 갖춘 제철소다. 포스코는 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시에서 인도네시아 국영철강사인 ‘크라카타우스틸’과 일관제철소 합작 건설에 관한 합의각서(MOA)를 교환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서안 칠레곤시에 단계별로 연산 6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합작 건설한다. 포항제철소(1600만t) 생산 규모의 3분의1 수준이다. 사업비는 ‘그린필드’ 투자 방식이 아닌 만큼 4조원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1단계 공사(조강 연산 300만t)는 2011년 하반기에 착공해 2013년 말 준공할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는 투자기업이 인프라와 생산설비 등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드는 ‘그린필드’ 방식이 아닌 현지 합작사가 보유한 항만·부지·용수·전력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브라운 필드’ 투자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크라카타우스틸 내 유휴 부지에 제철소를 건설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합작사의 건설·조업 경험을 활용해 조기에 정상 조업할 수 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양사의 40여년간 조업 경험은 합작사업 성공을 확신하기에 충분하다.”면서 “향후 인도네시아에서 인프라와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글로벌 ‘빅3’ 도약을 위해 국내외 생산 규모를 5000만t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인도와 베트남에도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조강생산량 1000만t 이상을 확보할 방침이다. 올해는 멕시코 자동차강판 공장(40만t)과 베트남 냉연공장(120만t), 미국 ‘API(에너지 수송용)’ 강관공장을 준공했다. 일본과 태국, 인도 등에 7개의 가공센터를 신설하는 등 생산설비의 현지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토요 포커스]압수·유치물품 어떻게 하나

    지난 9월21일 인천세관은 짝퉁과 농산물, 도검류 등 60여t(정품가 150억원 상당)을 공개 폐기했다. 짝퉁 시계와 핸드백·의류 등이 부서지고 찢기고 불태워지는 장면을 보며 “나한테 주면 안 되나.” 하는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관에 유치·몰수한 물품의 운명이 모두 비참한 것은 아니다. 짝퉁의 오명을 벗고 진정한 명품으로 태어나는가 하면 짓궂은 운명을 아름다운 희생으로 마감하는 사례도 있다. 괜한 욕심에 배(구입가)보다 배꼽(구입가+세금)이 커져 주인이 찾지 않는 물건은 정부가 주선해 새로운 주인을 맞기도 한다. 유치·몰수품 처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짝퉁 상품과 성분 미상, 검사 불합격된 식품류 등은 폐기가 원칙이다. 세관에 유치됐다가 국가로 귀속된 물품은 세관에서, 몰수(압수)품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서 각각 위탁 판매해 국고로 환수한다. 세관이나 보훈복지공단에서 공매하는 물품은 화장품과 양주·시계·보석류 등 다양하다. 구입가와 세금이 더해져 시중가격보다 비쌀 수 있지만 유찰되면 가격이 낮아져 실속 구매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짝퉁 등 폐기대상 물품 처리도 고역이다. 보관 창고를 빌리고 폐기·소각하는 데 따른 비용 부담은 물론 자원낭비, 환경오염 등 3중고를 겪는다. 역발상이 나왔다. 처벌에 앞서 속죄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압류한 의류와 신발 등은 상표권자의 동의가 있으면 상표를 제거한 후 지휘를 받아 복지단체 등에 전달하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 6월 인천 시민의 숲에서 시민 등 2000여명이 참가, 폐기처분될 운동화에 세계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디자인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전달했다. 이날 시민들이 제작한 명품 수제 운동화(짝퉁) 1만 2000개는 캄보디아 청소년들에게 전해져 사랑의 메신저로 활동 중이다. 옥수수와 녹두, 흑콩 등과 같은 농산물은 철새 먹이 또는 축산농가 사료용으로 제공된다. 인천세관은 10월 국제 곡물값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축산농가 지원을 위해 폐기예정인 냉동옥수수 97t(5100만원 상당)을 강화군 축산농가에 사료용으로 기증했다. 지난 3일 부산세관은 식품검사에서 불합격돼 보세창고에 장기 방치된 수입 소금 68t을 겨울철 도로 제설용으로 전북 도로관리사업소에 전달했다. 이밖에 원단은 공매, 도검류는 제철소 등에서 재생금속으로 만들어 매각하고 있다. 관세청은 26일 한국환경자원공사와 자원화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단순 소각·매립 등 자체 폐기처리하던 압·몰수품 처리를 전환해 잔존물의 성분 재활용과 열에너지 회수 등에 나설 계획이다. 허용석 관세청장은 “연간 폐기물량을 1000t으로 산정할 경우 자원화 수익 1억 5300만원외에, 폐기비용 7000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면서 “특히 온실가스 620t 감축 효과와 탄소배출권(1100만원), 원유 대체효과(5800만원) 등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천하는 사례가 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부고]

    ●송재하(전 벽산 대표)씨 별세 유진(오스카어드바이저리 대표)원선(캐나다 거주)욱진(지엠대우 홍보부문 차장)씨 부친상 김영재(전 야후코리아 상무이사)씨 장인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30분 (02)3410-6901 ●남진모(쎄메스 마케팅그룹장)승모(SBS 정치부 기자)씨 부친상 주신혁(사우스웨스트 리서치 인스티튜트 시니어 리서치 엔지니어 지사장)김장현(국민은행 송파기업금융지점 차장)씨 장인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6 ●이상호(경향신문 경기북부 주재기자)이상흔(현대자동차 재경팀 부장)씨 장인상 24일 아주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11시 (031)219-4113 ●김보영(서울9호선운영주식회사 대리)씨 부친상 이원순(연합뉴스 콘텐츠총괄부 기자)씨 장인상 24일 인천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32)580-6003 ●허명(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씨 별세 23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2)2650-2743 ●박천규(자영업)란희(청원군보건소 보건주사보)씨 부친상 민광기(충북도청 총무과 단체후생팀장)정준호(자영업)씨 장인상 23일 청주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43)279-0150 ●김상현(부산불교방송 보도팀장)상열(한울회계법인 회계사)상철(부산지법 동부지원 총무과 실무관)씨 조모상 23일 대구 미래장례식장, 발인 25일 오전 9시30분 (053)951-4188 ●조성용(프로야구 히어로즈 직원)씨 모친상 23일 강동성심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2)2224-2193 ●허순오(전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사장·예비역 육군 준장)씨 별세 길남(자영업)광남(미국 거주)용남(캐나다 〃)씨 부친상 승욱(스키 국가대표 감독)씨 조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6 ●이익환(사업)춘환(아트기획 대표)원환(한국공항정보기술 이사)관환(한국금속 대표)양환(유이정보통신 〃)씨 부친상 김순희(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간호과장)씨 시부상 원명수(뉴골드산업 대표)씨 장인상 24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6일 오전 (02)2227-7580 ●조성원(LS산전)선화(KB투자증권 증권업무팀장)씨 부친상 24일 충남 서천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10시 (041)952-4490 ●이영식(전 경주시문화원장)영생(영진토건 대표)영환(한림이엔씨 이사)영훈(문화고 교사)영달(유성TLC 대표)씨 모친상 이채수(매일신문 기자)씨 조모상 24일 동국대 경주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54)776-9411 ●강백룡(광주광역시 건축행정담당)성일(자영업)수룡(담양소방서)정룡(회사원)창성(동우공영)씨 모친상 이상득(목포대 교수)유정수(포스코 광양제철소)씨 장모상 24일 광주 무등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10시 (062)515-4488 ●래리 클레인(외환은행장)씨 부친상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02)729-0163~65 ●최영호(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사업팀 부장)성호(성림건축 본부장)정호 경호(아틱스엔지니어링 상무)창호(삼성물산 차장)씨 모친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2)3410-3153 ●김명근(미국 남플로리다대 교수)영준(미국 밀뱅크로펌 변호사)미례(재미 의사)씨 부친상 이선택(재미 의사)씨 장인상 24일 서울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2072-2011
  • [씨줄날줄] 북한 나무심기/노주석 논설위원

    포스코가 지난 3월 우루과이에 계열사를 세웠다. 9억원을 투자한 이 회사의 사업내용은 나무심기. 1차로 지난 9월 1000㏊의 목초지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었다. 추가로 2013년까지 2만㏊에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여의도 면적의 70배에 이르는 거대한 조림지가 생기는 셈이다. 철강기업인 포스코가 먼 중남미까지 가서 나무를 심은 까닭은 무엇일까. 탄소배출권 확보 때문이다. 포스코는 이곳에서 매년 20만 6000t의 탄소배출권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기업들은 올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는 포스코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철강 1t을 만들려면 이산화탄소가 2t가량 나온다.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쇳물을 만드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코는 탄소배출권 조림사업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셈이다. 북한 어린이구호단체인 ‘퍼스트 스텝’을 운영하면서 북한의 기후변화 대응을 연구하는 캐나다인 수전 리치대표에 따르면 북한 산림면적의 4분의1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사라졌다고 한다. 산림이 파괴되면서 자연재해가 부쩍 잦았다. 지난 10년간 45만 8000명의 북한주민이 사망했는데 전 세계 자연재해 사망자의 38%를 차지한다. 석유부족으로 난방과 취사를 위해 나무를 베어낸 결과이다. 식량난으로 숲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면서 홍수 등 자연재해 피해가 늘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북한당국도 산림복구 7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포스코가 남미까지 가서 나무를 심는데 가깝고 나무도 없는 북한이 낫지 않겠느냐?”라면서 북한 조림사업에 관심을 표했다. 북한에 나무심기는 멀게는 통일비용을 줄이고, 당장은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장기 과제이고 불확실성이 문제다. 기업입장에서 탄소배출권 확보는 ‘발등의 불’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에 걸린 ‘자원은 유한하고 창의는 무한하다.’는 그린경영 슬로건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경기회복 불확실” 기업투자 줄줄이 연기

    “경기회복 불확실” 기업투자 줄줄이 연기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 시계(示界)’에 먹구름이 끼면서 계획했던 투자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및 글로벌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심화돼 수익을 뽑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수출주도 기업들은 환율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더욱 몸을 사리고 있으며, 일부는 ‘비상 경영 카드’도 다시 꺼내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당초 올해 시작하려던 2조 50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 완료 시점을 9개월에서 최대 1년 이상 늦췄다. 우선 1조 9276억원을 투입해 2011년 말 준공을 목표로 올해 착공한 광양제철소 5소결 및 5코크스 생산설비 완공 시점을 2012년 9월로 미뤘다. 또 2988억원을 투자해 2011년 3월 완공하려던 광양제철소 도금강판 공장도 2012년 3월로, 같은 시점에 끝마치려던 2689억원 규모의 산세용융아연도금설비도 1년 늦췄다. 포스코는 “글로벌 수요 회복이 예상과 달리 지연될 것으로 예상돼 완공 시점을 늦췄다.”고 설명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최근 “4·4분기 경기는 모르겠다.”면서 “두 번째 경기 회복은 2011년도 하반기에 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내년에도 비용 절감 등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불황에도 양호한 실적을 내고 있는 삼성전자도 투자 보따리를 줄였다. 지난해 시설투자에 9조 4900억원(본사기준)을 썼지만, 올해는 4조원대에 그칠 전망이다. 3분기까지 누적으로 2조 8600억원을 투자했다.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의 공급과잉으로 가격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투자를 줄인 것이다. SK에너지도 지난 8월 세계적인 경기 악화로 인천공장 고도화설비인 ‘중질유 분해시설(HCC)’ 투자를 늦추기로 결정했다. 모두 1조 5000억원을 투자해 2011년 6월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5년 뒤인 2016년으로 연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벙커C유의 가격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국제 시황도 좋지 않아 투자를 연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먹거리로 각광받는 태양광 분야도 마찬가지다. LG화학과 효성은 태양 전지 소재 관련사업 진출을 검토하다 시장 위축으로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투자 부진이 장기화되면 회사의 성장 잠재력과 경제 전반의 활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외환위기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유인책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수 이영표 김경두기자 tomcat@seoul.co.kr
  • 동부제철 당진 전기로공장 준공

    동부제철 당진 전기로공장 준공

    동부제철이 숙원 사업인 전기로 제철공장을 준공하고 글로벌 제철회사로의 도전을 선포했다. 동부제철은 11일 충남 당진 아산만공장에서 전기로 제철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김준기 회장을 비롯해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 정준양 한국철강협회 회장, 지역자치단체장과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로써 동부제철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이어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쇳물을 직접 생산해 열연강판을 제조하는 일관제철사로 도약하게 됐다. 연간 15억달러 이상의 수입 대체 효과도 기대된다. 40년 만에 일관 제철소 건설의 꿈을 이룬 김 회장은 “앞으로 생산규모를 1000만t 이상으로 키워 글로벌 철강회사로 발전해 나가겠다.”면서 “당진 공장에 100만t 규모의 새 전기로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산만공장 부지 160만㎡ 위에 8640억원을 투자해 완공한 전기로 제철공장은 연간 300만t의 열연강판을 생산하게 된다. 미국 뉴커(Nucor) 버클리공장의 연간 생산량(250만t)을 뛰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기로 제철 공장이다. 이번 전기로 제철공장은 분진과 소음, 에너지 소비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밀폐형의 콘스틸(Consteel) 방식을 채택, 이산화탄소(CO2) 발생량을 고로 대비 4분의1, 에너지 소비량을 31분의1 수준으로 낮췄다. 특히 고로(용광로)를 이용한 생산 방식은 철광석과 유연탄 매장량이 한정된 반면, 전기로에 들어가는 고철은 국내 자급률이 높아(75%) 원료 수급이 안정적인 것도 장점이다. 김 회장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는 이미 전기로 제철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면서 “세계 철강시장의 트렌드가 고로가 아닌 전기로 제철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회장은 동부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사재 3500억원을 출연키로 한 것과 관련, “동부메탈 지분을 동부하이텍이 100% 가지고 있다.”면서 “의심의 여지 없이 사재출연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모펀드(PEF)로 가면 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 자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원래 우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경쟁력 약화” 철강업 발등의 불

    “경쟁력 약화” 철강업 발등의 불

    “줄이긴 줄여야 하겠지만 기업의 경쟁력을 해쳐서는 안 된다.” 정부가 예상보다 강도가 높은 온실가스 감축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자 기업들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업(業)의 특성상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철강업계의 고민이 특히 깊어지고 있다. ●포스코 “산업특성 고려해줘야” 포스코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정부가 추진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물리적으로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제철소내 고로(용광로)가 돌아가고 생산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중장기적으로 제철소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모아 바다 밑 등에 저장하는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철강제품의 원가 부담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된다.”면서 “산업별 특성과 경쟁력을 고려한 감축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에 영향을 받는 현대·기아차그룹도 울산공장 등 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2013년까지 5000억원을 연구개발(R&D)비로 투자한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부 목표치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다. 특히 세계 최초로 제철원료를 먼지 없이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에 내년까지 2300억원의 자금을 조기 투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친환경차개발에 2조 2000억원을 투자하고 고효율, 고연비 엔진·변속기 및 경량화 소재개발에 1조 4000억원 등 모두 4조 1000억원을 투입한다. 현대중공업은 간접적으로 온실가스감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사업 외에 태양광과 풍력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올해 이 분야에 모두 28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전체 투자 금액인 1조 4300억원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자 “자체 감축 로드맵 진행중”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에너지 효율을 40% 절감하는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8400만t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TV, 냉장고, 에어컨 등 전 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대기전력도 1W 수준에서 0.5W 이하로 낮출 방침이다. 녹색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5년간 5조 4000억원을 투자한다는 청사진도 이미 제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업계의 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 자발적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만 210만t을 감축한 LG전자는 대부분 가전과 디스플레이 사업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생산과 제품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2012년까지 연간 1200만t을 줄이기로 했다. 2020년까지는 3000만t을 감축하는 게 목표인데, 이는 미국 네바다주가 1년간 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배출하는 온실가스 규모에 해당된다. LG전자 관계자는 “기업들이 정부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세제혜택 및 기술개발활동의 지원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수 이영표기자 sskim@seoul.co.kr
  • [현장&이슈] 5년새 800개 기업 입주 충남 당진 자족도시 부상

    [현장&이슈] 5년새 800개 기업 입주 충남 당진 자족도시 부상

    ‘전통적 농어촌에서 국내 굴지의 철강산업 도시로.’ 충남 당진군이 눈부시게 자족도시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당진군의 발전과정은 세종시가 수정됐을 경우 당진군만큼 자족도시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1일 찾은 당진군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내년 1월 완공 예정인 일관제철소 건설작업이, 18년간 지지부진하다 올해 첫 분양이 이뤄진 석문국가산업단지에서는 매립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당진에는 1000여개의 기업이 있다. 2005년부터 기업이 쇄도해 지금까지 모두 800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했다. 당진에는 현대제철·동부제철·휴스틸·환영철강·현대하이스코 등 철강 대기업과 함께 중외제약과 대한전선 등이 있다. 산업단지가 황해경제자유구역까지 합하면 14개 단지 5600만여㎡에 이른다. 김인재 군 지역경제계장은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기업 입주가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2시간 넘게 걸리던 서울이 1시간대로 줄면서 물류환경이 크게 좋아졌다. 항만을 끼고 있고, 중국과 가까운 점도 작용했다. 철강산업이 발달하면서 대기업은 전용 부두를 갖췄다. 현재는 15선석, 2020년 총 1억t을 처리 가능한 49선석으로 늘어난다. 기업이 입주하자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한보부도와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2004년 11만 8700명까지 줄어든 인구가 지금은 14만 1000명이 넘는다. 1999년 8332가구에 불과하던 아파트는 현재 2만 4621가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인구가 급증하자 교육청은 당진군 학교 통폐합 추진을 전면 중단했다. 상권도 커졌다. 10년 전 950개이던 음식점이 올해 2700개로 급증했다. 대형마트 등이 들어왔고, 입지 문의도 여전히 숨가쁘다. 1개뿐이던 영화관은 3곳으로 늘었다. 군내 첫 종합병원도 송악면 기지시리에 300병상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이 병원은 내년 1월 문을 연다. 주민 박장배(62)씨는 “아프면 천안이나 서산으로 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서 “요즘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특목고 유치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 지난 5월 말 당진~대전고속도로가 개통돼 또다시 당진 발전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군은 올해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개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충남발전연구원 김용웅(도시계획학 박사) 원장은 “세종시는 당진보다 수도권과 멀고 항만이 없는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뒤진다. 기업이 쏟아져 들어온 당진도 인구가 15만명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세종시는 정책결정, 업무, 상업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인구 50만명으로 클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당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현대제철 ‘녹색제철소’ 잰걸음

    현대제철 ‘녹색제철소’ 잰걸음

    현대제철이 ‘녹색제철소’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 짓는 당진 일관제철소에 ‘밀폐형 원료처리 공정’을 구축한 데 이어 ‘온실가스 사전 차단 시스템’도 도입한다. 현대제철은 29일 충남 당진 공장에서 이종인 전략기획실장(전무)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개 협력업체들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 시스템 구축사업 협약식’을 가졌다. 이 사업은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이 온실가스 저감기술 능력을 키우도록 대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진행하는 국책사업으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특별 지시로 추진됐다. 최근 정 회장은 건설 중인 당진제철소 방문 횟수를 늘리면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맞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시스템을 적용하라.”고 독려했다. 현대제철은 이번 협약식을 계기로 향후 2년간 기업 활동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파악·기록·유지관리·보고하는 통합 온실가스 관리시스템인 ‘온실가스 인벤토리(inventory)’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사전에 제철소 내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의 발생을 크게 줄인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20개 협력업체들에 향후 2년간 현대제철의 저탄소 경영 노하우를 전수,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낮추는 발판을 마련해 줄 방침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대담: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 만에 이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 만에 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 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도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경호를 하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었다. 그 중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텐데.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들어봐야 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호실장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 뻔했는데, 그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 김 주석이 사망했다.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됐다. →그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씨가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씨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 줘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 될 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 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기에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 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많이 다녔나.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없었다. 그런 걸 그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전남) 광양으로 바뀌었다.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니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다. 외모는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다. 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1974년 영부인이 서거한 뒤 굉장히 외로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때 건설됐다. 안면도에는 제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하다. 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박상범 전 靑 경호실장 인터뷰 전문 보러가기
  • “박정희 前대통령 말년 개헌 뒤 하야하려 했다”

    “박정희 前대통령 말년 개헌 뒤 하야하려 했다”

    박상범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 전 경호실장은 지난 23일 ‘10·26’ 30주년을 앞두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전 실장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현장에 있던 경호원 중 유일한 생존자이다. 당시 박 전 실장은 경호계장이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 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한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박 전 대통령은 1~2년 뒤에 하야하려는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전 실장은 “한때 경호실은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리는 조직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경호실은 그렇게 권위적이지도 않다.”면서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전 실장은 “포항제철(현 포스코) 제2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다.”면서 “당시 박 전 대통령을 모시고 (아산)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불어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온다며 전문가들이 건의를 하자 박 전 대통령이 현지에서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포스코, 베트남에 ‘동남아 교두보’

    포스코, 베트남에 ‘동남아 교두보’

    포스코가 글로벌 생산 기지 구축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멕시코 자동차용 강판 공장에 이어 베트남에 동남아 최대 규모의 냉연강판 공장을 세웠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에도 제철소를 건립한다. 북미와 신흥시장 공략의 교두보 마련과 함께 포항과 광양을 거점으로 한 ‘동남아 철강 벨트’를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포스코는 19일 베트남 경제중심 도시인 호찌민 인근 붕타우성 푸미 공단에 동남아에서 가장 큰 연간생산 120만t 규모의 냉연 강판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 냉연공장은 2007년 8월 착공해 준공까지 26개월이 걸렸다. 5억 2800만달러를 투자했고, 전용항만을 포함해 전체 부지면적이 158㏊에 이른다. ●年 120만t 생산 규모 포스코는 이 공장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에 쓰이는 냉연제품 70만t과 고급 건자재용 소재 50만t을 생산해 베트남 내수용은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철강 가공센터를 통해 동남아 전역에 수출할 예정이다. 포항과 광양을 중심으로 동남아 전역을 연결하는 철강 생산·판매 벨트가 마련되는 셈이다. 베트남 냉연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소재는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공급한다. 포스코는 “베트남 공장이 동남아 지역의 고급 냉연수요를 충족시켜 현지 시장지배력과 위상을 강화할 것”이라면서 “수십년간 일본 철강사들이 군림해 온 세계 최대 철강 수입시장인 동남아시아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특히 포스코가 2단계로 2012년 이후 연간 생산 300만t 규모의 열연공장과 40만t 규모의 아연도금공장(CGL) 등을 건설하면 베트남 지역 고급 철강재 시장을 사실상 주도할 전망이다. 베트남은 철강 수요산업 성장으로 2015년 고급 냉연강판 수요가 150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지난해 공급실적은 73만t에 불과해 수입의존도가 높다. 포스코는 1992년 포스코 최초의 해외 생산법인인 포스비나(POSVINA)를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베트남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벌여왔다. 지난 9월에는 베트남 유일의 스테인리스 냉연공장인 ASC를 인수, POSCO-VST를 출범시켜 동남아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한 발판을 강화했다.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 가속도 앞서 포스코는 지난 8월 멕시코에 해외 첫 자동차용 고급 강판 생산공장인 연간생산 40만t 규모의 연속용융 아연도금강판(GCL)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올해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일본, 중국, 인도, 태국에 자동차강판 전용 철강 가공센터도 가동했다. 향후 인도 서부지역 마하라슈트라주에 연간생산 45만t 규모의 CGL 공장을 건설하고,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스틸의 부지를 활용한 제철소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 최대 스테인리스 생산업체인 태국의 타이녹스사 인수도 진행하고 있다. 이동희 포스코 사장은 “포스코의 수출 비율이 최근 35∼38%까지 올라 해외 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희망 UP 현장을 가다] (21) 유한킴벌리 김천공장

    [희망 UP 현장을 가다] (21) 유한킴벌리 김천공장

    유한킴벌리 김천공장에서는 요즘 노랑머리 외국인이 낯설지 않다. 지난 5월 들여놓은 ‘빨아 쓰는 키친타월’ 설비에 관련된 기술 이전을 위해 킴벌리클라크 미국 본사에서 파견된 기술진들이다. 이 설비는 미국과 콜롬비아에 이어 국내에 설치됐다. 전 세계에 단 3대뿐인 기계가 김천공장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동남아시아 지역 수출길도 열리고 있다. 설비 가동이 본격화되면 예상되는 연매출 1000억원 가운데 3분의2를 해외에서 책임질 것으로 기대된다. 부피가 커서 수출용으로는 부적합했던 화장지 업계에서 새로운 유형의 수출용 제품이 탄생한 셈이다. 부직포 위에 펄프를 붙여 만드는 공법을 쓰는 ‘빨아 쓰는 키친타월’은 행주문화를 바꿀 제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키친타월은 일회용이라는 개념을 넘어 물에 적셔서 사용해도 찢어지지 않게 했다. 행주처럼 여러번 빨아서 재사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 세균이 번식하게 되는 행주보다 위생적이라는 인식 때문에 선진국에서 먼저 보편화된 제품이다. 일본 주부들 역시 남미에서 제품을 수입해 사용하면서 제품에 친숙하다. 물류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유한킴벌리가 일본 수출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이다. 김천공장장 임영화 전무는 18일 “빨아 쓰는 키친타월처럼 신제품 제조 설비가 늘어야 수출길도 열리고 수요도 창출돼 성장의 동력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천공장에서는 화장실용 화장지 ‘뽀삐’와 부직포로 만든 흡착포·방제복 등을 생산한다. 미국 본사가 김천공장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 전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이 공장에서 도입한 근로자 교육 시스템을 지적했다. 4개조 2교대로 나흘 동안 12시간씩 일하고, 나흘 동안 쉬거나 교육받는 체제가 구축된 뒤 직원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공장의 전체적인 효율성이 개선된 점을 본사가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클라크 본사가 전 세계 공장에 설치된 기계의 제품 생산량을 비교했을 때 김천공장을 비롯해 한국에 설치된 기계의 생산량이 상위 10% 안에 모두 들었다고 했다. 제조 과정에서 나온 화장지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제철소에서 사용하는 등 공정 전 과정에서 쓰레기가 없게 하는 환경친화적 제조 과정이 정착되는 데에도 교육의 힘이 발휘됐다. 한편 직원 식당에서 자발적으로 결식아동을 위해 모은 성금이 매년 1500만~2000만원에 이르는 등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김천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대기업 총수들 베트남… 베트남으로

    ‘베트남, 베트남으로!’ 다음 주엔 주요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의 베트남 방문이 ‘러시’를 이룬다. 오는 20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수행하는 자리지만, CEO들은 자사의 베트남 사업장도 함께 둘러본다. 그룹 총수 중에는 SK 최태원 회장, GS 허창수 회장, 두산그룹 박용현 회장, 금호아시아나 그룹 박찬법 회장 등이 이 대통령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이윤우 부회장이 오는 20일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법인을 둘러본다. 1995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 삼성전자는 최근 휴대전화와 TV를 앞세워 베트남에서 ‘디지털한류’를 선도하고 있다. 호찌민시에 생산공장을 둔 삼성TV는 시장점유율이 40%에 육박하며, 20%대의 점유율에 그치고 있는 2위 소니를 크게 앞서고 있다. 하노이 인근 박린성에 있는 삼성 휴대전화 공장은 올초부터 시범생산에 들어가 지난 7월부터는 월 생산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삼성휴대전화는 지난 8월 기준 14.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 노키아(62.9%)에 크게 뒤지고 있지만, 최근엔 격차를 빠른 속도로 줄여나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베트남 사업현황 등에 대한 보고를 현지 법인으로부터 받게 된다. SK는 SK에너지가 베트남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이동통신 합작법인인 ‘에스폰’도 진출해 있다. 최태원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현지 지사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다. 현대차는 부인상을 당한 지 얼마되지 않은 정몽구 회장 대신 글로벌 판매 담당인 양승석 사장이 베트남 시장을 둘러본다. 현대차는 지난해 베트남 시장에서 1만 539대의 차를 팔며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해마다 두 자릿수가 넘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포스코는 16일 이례적으로 호찌민시에서 이사회를 가졌다. 정준양 회장 등 이사회 멤버들이 베트남 투자 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추가적인 투자 여건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은 포스코가 구상 중인 ‘아시아 철강 생산벨트’ 구축 작업의 주요 축이다. 포스코는 베트남에서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19일에는 베트남에 연간 생산 12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준공, 동남아시아 고급재 시장을 겨냥한 안정적 생산 라인을 갖출 계획이다.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베트남 진출을 꾀해 왔고, 향후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는 국내 기업 중 베트남 진출이 가장 활발하다. 금호건설, 대우건설,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금호렌터카 등 7개 계열사가 베트남에 나가 있다. 박 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사장단이 동행하고 베트남 진출기업의 성공사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구체적인 사업성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자주 얼굴을 알리면서 베트남 내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CEO의 베트남 방문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이영표 윤설영기자 sskim@seoul.co.kr
  • ‘철강’ 포스코 첨단소재기업 대변신

    ‘철강’ 포스코 첨단소재기업 대변신

    ‘철강왕국의 변신은 무죄?’ 포스코가 ‘굴뚝 기업’에서 탈피, 에너지개발 및 종합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M&A)에도 매진한다. 변화와 혁신을 통한 사업 다각화로 글로벌 철강 산업 불황을 뚫겠다는 복안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단순 철강 생산에서 티타늄·마그네슘·니켈 등 고부가가치 복합철강 소재 개발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항공기 및 우주선용 첨단 소재 시장 선점과 모바일, 자동차 부품 시장 확대를 꾀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를 위해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자원강국들을 잇달아 찾아 협력 방안을 모색 중이다. 현재 정 회장은 카자흐스탄을 거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며 새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정 회장은 카자흐스탄 UKTMP사와 현지 티타늄 슬래브(두꺼운 직육면체 형태의 중간소재) 생산 회사 설립을 위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여기서 생산된 슬래브는 국내로 들여와 내년부터 포항제철소의 열연 및 스테인리스 공장에서 판재로 가공한다. 국내 기업이 티타늄 원료를 확보해 직접 제조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기차·하이브리드차의 동력원으로 각광받는 ‘리튬이온전지’ 원료인 리튬 생산에도 팔을 걷었다. 최근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손잡고 바닷물에 녹아 있는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3∼4년 안에 연간 수십만t을 추출할 계획이다. 자동차용 고순도 페로망간을 생산하는 제련공장도 지을 예정이다. 지난해 7월부터 순천에 연산 3000t 규모의 마그네슘 판재공장을 준공하고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 케이스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뉴칼레도니아의 광산 회사와 공동으로 니켈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최근 포스코가 폭넓은 해외 자원개발 네트워크를 보유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적극 검토하는 것도 글로벌 종합소재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포스코의 변신은 친환경·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도드라진다. 자회사인 포스코 파워를 통해 이르면 다음 달부터 디젤엔진 대신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선박 기술 개발에 돌입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2016년까지 선박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2배 가까이 감축해야 하는 국제 규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말까지 포항 연료전지 생산공장에 지금껏 수입에 의존해 온 ‘스택(Stack:전기 발생 핵심설비)’ 제조 공장을 착공한다. 2011년까지 ‘용융탄산염 연료전지(MCFC)의 국산화가 가능할 것으로 포스코는 예측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2012년까지 4320억원을 투자해 인산형 및 용융탄산염 연료전지를 대체할 제3세대 연료전지를 조기 상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또 174억원을 출자해 포스코이앤이(E&E)를 설립했다. 이 업체는 생활폐기물과 하수슬러지를 연료화하는 회사다. 각종 생활폐기물을 연료로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때 발생하는 열을 회수해 이용하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이다. 하수슬러지를 건조해 화력발전소의 석탄 보조연료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펼친다. 부산, 포항시와 생활폐기물연료화 및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국 광역도시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포스코, 티타늄 사업 진출

    포스코가 카자흐스탄에서 고급 금속인 티타늄 소재 개발에 나선다. 포스코는 30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카자흐스탄의 금속업체인 UKTMP사와 티타늄 슬래브(두꺼운 철판형태의 철강가공품) 생산회사를 합작 설립하는 내용의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합의각서에 따르면 포스코와 UKTMP는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카자흐스탄 동부 우스트 카메노고르스크에 티타늄 슬래브공장을 건설, 운영하게 된다. 공장에서 생산된 티타늄 슬래브는 한국으로 들여와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열연 및 스테인리스 판재로 가공된다. 그동안 티타늄 판재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티타늄은 부식에 강하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아 항공기 엔진이나 프레임, 화학 플랜트, 원자력 발전 등에 쓰인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속자생존’ 포스코 신경영 실험

    ‘속자생존’ 포스코 신경영 실험

    포스코 마케팅 부문 직원 김모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사무실이 아닌 거래처로 출근해 일을 처리한다. 적어도 1주일에 2회 이상 현지 판매망을 점검하고 고객과의 스킨십도 쌓는다. 때문에 김씨의 사무실엔 책상이 40% 이상 필요없게 됐다. 중요한 보고나 급한 결재가 필요한 상황에서 외부에 있거나 임원이 사무실을 비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머니속 스마트폰을 꺼내 상사에게 관련 내용을 전송하고 실시간으로 지시를 받으면 된다. 미래 기업이 아닌 현재 포스코의 모습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스마트(Smart) 경영’을 통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최근 “회사의 주역으로 온라인 공간을 중요한 무대로 삼는 ‘N세대(Net Generation)’ 직원과 소통하고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속자생존(速者生存) 시대’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다양한 실천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우선 포스코 마케팅 부문을 ‘이동 사무실(Mobile Office)’체제로 탈바꿈시킨다. 현장에서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다음달부터 회사 전체 임원 및 그룹 리더 200~300명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한다. 직급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결재를 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마케팅 부문 열연·냉연·자동차강판마케팅실에서는 책상 40% 이상을 없앴다. 내수판매담당 직원 130명이 75개 책상을 이용한다. 발로 현장을 뛰라는 취지다. 또 고객의 목소리를 최대한 수렴하도록 1주일에 두 번 이상 출장을 권장하기로 했다. 포스코의 한 직원은 “사무실이 단순히 출퇴근 공간이 아니라 직원들이 일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사이버 개념으로 바뀌면서 업무 효율이 배가되고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해외 법인이 늘면서 현지와 시차 없이 직원 간 정보 공유 및 협업이 가능한 시스템도 마련한다. 포항과 광양 제철소에는 ‘유비쿼터스 안전관리(u세이프티) 시스템’을 전면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도시와 산] ‘빨간 마후라’ 주인공 만나볼까

    [도시와 산] ‘빨간 마후라’ 주인공 만나볼까

    대구 비슬산 휴양림에서 유가사 쪽으로 내려오면 유치곤(1927∼1965) 장군 호국기념관이 나온다. 2005년 6월15일 4000여㎡의 부지에 문을 열었다. 기념관의 외부에는 유 장군의 동상과 공군에서 기증한 전투기 2대가 전시돼 있다. 내부에는 공군사 및 전투장비, 한국전쟁과 안보관련 자료 등이 비치되어 있다. 유 장군은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으로 한국전쟁 당시 한국 공군 역사상 유일하게 203회 출격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다. 유 장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소위로 임관해 같은 해 10월 F-51전투기 조종사로 첫 출격했다. 특히 하늘의 한산대첩으로 기록되는 평양 승호리 철교 대폭격작전은 유명하다. 평양 동쪽 16㎞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철교를 끊어야 인민군의 주보급로를 자를 수 있었다. 유엔군이 이 철교를 파괴하기 위해 무려 500여회나 출격했지만 허사였다. 유엔군은 목숨을 걸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정 고도만 유지하고 전투를 했기 때문에 폭격 정확도가 높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 장군은 10차례 출격만에 1500피트(450m) 초 저공비행으로 이 철교를 세토막내 연합군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밖에 강원 고성지역의 351고지 탈환작전, 송림제철소 폭파작전 등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같은 공로로 을지무공훈장(3회), 충무무공훈장(3회), 미국비행훈장(4회) 등을 수상했다.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죽고 싶다’는 일기를 남기기도 한 유 장군은 1965년 대구비행장에서 과로로 인한 뇌일혈로 순직, 대령에서 준장으로 추서됐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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