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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자치단체 ‘자치·균형’ 박람회 연다,17~19일 제주서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는 17∼19일 서귀포시 해비치 호텔&리조트에서 제1회 자치분권 박람회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박람회는 ‘자치분권! 우리의 삶,무엇이 달라지나’를 주제로 열리며 전국 40여개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와 자치분권 활동가,일반 시민 및 학계 인사 등이 참여한다. 17일 개막식에서 ‘자치분권과 균형 발전’을 주제로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이 특별기조 강연을 한다.참석자들은 또 자치분권이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과 실천조항을 담은 ‘제주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어 자치분권 다짐 퍼포먼스,미래자치분권연구소 자치분권 토크,제주4·3 강연회가 열린다.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참여하는 ‘이그나이트’(ignite) 발표회도 박람회 첫날 열릴 예정이다. 이그나이트는 ‘불을 붙인다’라는 뜻으로,여러 발제자가 돌아가며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둘째 날인 18일에는 자치분권 우수사례 발표회,자치분권 영화 상영,지방정부 강연회 등이 마련되고 마지막 날인 19일에는 소회 나눔 프로그램에 이어 폐막 행사가 열린다.행사 기간 ‘정책 홍보 전시 부스’ 등의 부대 행사가 행사장 주변에서 열린다. 주최 측인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는 스웨덴의 정치 토론 축제인 ‘알메달렌 주간’(Almedalen Week)에서 착안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서울시와 제주도,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서울시 구청장협의회,서울 서북 3구(서대문·은평·마포)가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4·3 수형인 53억 형사보상금 받는다

    사건 71년 만에 제주지법 지급 결정 4·3사건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을 통해 명예를 되찾은 제주4·3 생존 수형인들이 71년 만에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게 됐다. 4·3 수형인은 사건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억울하게 수감된 이를 말한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는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임창의(99·여)씨 등 제주4·3 생존 수형인 17명과 별세한 현창용씨에게 총 53억 4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결정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구금 일수에 따라 1인당 최저 약 8000만원, 최고 약 14억 7000만원을 받는다. 임씨 등 18명은 1948∼1949년 내란죄 등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서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지난 1월 17일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임씨 등은 지난 2월 22일 제주지방법원에 형사보상청구서를 제출했다. 형사보상청구는 형사보상법에 따라 형사피고인으로 구금됐던 자가 불기소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을 때 국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재판부는 임씨 등 4·3 수형인의 형사 보상금을 법에서 정한 최고액인 구금일 1일당 33만 4000원으로 정했다. 형사보상금은 최저임금법상 일급 최저금액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최대 5배까지 줄 수 있다. 애초 지난 2월 22일 이들 18명이 청구한 형사보상금 규모는 총 53억 5748만 4000원으로 이번에 법원이 결정한 금액과 비슷하다. 재판부는 “4·3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형사보상법의 취지 등을 고려해 대부분 청구한 금액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2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 4·3’ 첫 행사 눈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의 아픔을 되새기고 인권적 의미를 조명하는 행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20일(현지시간) 오후 유엔본부에서는 ‘제주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라는 제목의 인권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200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유엔주재 한국대표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관했다. 자료 영상과 기조 발제, 패널 토론, 유족 증언 순으로 3시간가량 진행됐다. 올해로 71년째인 제주4·3을 다루는 토론회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당시 미군정 공동 책임론이 잇따라 거론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기조 발제를 맡았다. 강 주교는 “제주4·3은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 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면서 “이번 심포지엄의 목적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 희생의 역사를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퓰리처상 수상자인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 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인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 등이 패널토론에 참여했다. 커밍스 교수는 “잔혹한 대학살이 어떻게 제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미국은 답변해야 한다”며 당시 미군정의 책임론을 비중 있게 거론했다. 헨리 전 부국장은 “당시 서울에 특파원을 뒀던 AP통신과 뉴욕타임스는 4월 3일부터 몇 달간 총 30~40차례 보도했지만 철저하게 냉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서 “특히 미군과 전혀 무관하다는 식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백태웅 교수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미군 작전 당사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포괄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광범위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4·3 당시 조천읍 북촌 학살사건 유족인 고완순씨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렸던 붉은 피가 너무나 선명하다.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옥 같던 그 날이 마치 어제처럼 떠오른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세 살배기 남동생 등 일가족 6명을 잃은 고씨는 “제주4·3은 미군정 기간 제주 주민들에게 가해진 인권유린·학살 사건”이라며 “평화와 인권이라는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미국이 진실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제주 4·3 실무위, 희생자 9명 추가 의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는 최근 열린 제167차 회의에서 희생자 9명, 유족 1208명 등 총 1217명을 의결했다고 3일 밝혔다. 실무위는 이번에 의결한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해 제주4·3중앙위원회에 최종 심의 결정을 요청했다. 9명의 희생자는 사망 6명, 행방불명 2명, 수형자 1명이다. 그동안 실무위의 10차 심사까지 의결된 추가 신고자는 희생자 264명, 유족 1만 1823명 등 총 1만 2087명에 이른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3중앙위가 지금까지 의결한 희생자는 1만 4363명, 유족은 6만 4378명이다. 한편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가 주최하고 제주도,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관하는 제주 4·3 인권 심포지엄이 오는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강우일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 기조발표를 하고 한미 현대사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 퓰리처상 수상자인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 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인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 등이 토론에 나선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도 유족이 재심 청구한다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도 유족이 재심 청구한다

    제주4·3 생존수형인에 이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 청구에 나선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3일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인수형자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한다고 2일 밝혔다. 행불인수형인은 1948년 4·3사건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 갔지만 이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1949년 7월까지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4·3사건 수형인은 2530명이며 이중 상당수가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됐다. 이번 소송은 행불인수형자의 희생자의 93살 아내를 비롯해 자녀 8명, 손자 1명 등 모두 10명의 유족 대표가 먼저 진행한다. 재심의 특성상 청구인은 직접 재판에 참석해 피해사실을 증언해야 하지만 행불인수형자의 경우 재심 대상자들이 생존하지 않아 유족들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김필문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은 “늦었지만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심에 나서게 됐고 10명이 우선 재심을 청구하고 이후 진행 상황을 보며 소송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생존수형인 18명이 제기한 재심에서 1948년과 1949년에 행해진 제주도 계엄지구 군법회의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아이eye] 제주4·3과 아동 인권/이하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기자단

    [아이eye] 제주4·3과 아동 인권/이하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기자단

    1948년 4월부터 약 7년간 제주도에서 정부 탄압과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과 이를 진압하기 위한 정부 토벌대의 충돌 과정에서 무고한 어린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희생됐다. 당시 숨진 3만여명 중에는 어린이와 여성 8000여명이 포함됐다. 제주4·3은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북촌리는 집단학살이라는 가장 큰 비극이 일어난 곳이다. 군인들은 총을 겨눈 채 마을 사람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고 온 마을을 불태웠다. 가옥 400여채가 불탔다. 이유조차 모른 채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했다. 총에 맞아 숨진 엄마의 젖가슴에 젖먹이가 매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60대 노부부는 3살 된 손녀, 1살 된 손자를 데리고 숲속에 숨었다. 울음을 터뜨린 아이들을 향해 진압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류탄을 던졌다고 한다. 더 마음이 아팠던 일은 3살 아이의 두 다리를 잡고 바위에 내려쳐 죽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남녀 아동이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불자는 다 제거하여 반역적 사상이 만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경고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비극과 슬픔을 제주 도민들은 수십년간 입 밖으로 말하지 못했다. 지난해는 제주4·3 70주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희생자 추념식에서 국가 권력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 모습을 보며 늦었지만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에게 사과가 꼭 전달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다시는 제주4·3같이 억울하게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린아이들의 생명이 지켜지고, 어떤 전쟁 속에서도 보호되고, 혹시나 다친 아이가 있다면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어 다시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제주4·3기념관에 가면 커다란 백비 하나가 있다. 아직 4·3은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새기지 못한 백비가 누워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제주4·3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서 이름 갖지 못한 역사에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동백처럼 꽃피우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이, 그 죽음을 기억할수 있도록 새겨졌으면 좋겠다. *서울신문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어린이, 청소년의 시선으로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는 ‘아이eye’ 칼럼을 매달 1회 지면에, 매달 1회 이상 온라인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 軍 “제주 4·3 특별법 정신 존중”… 警 “무고한 희생자에 사죄”

    軍 “제주 4·3 특별법 정신 존중”… 警 “무고한 희생자에 사죄”

    국방부 “당시 지휘라인 서훈 취소 검토” 민갑룡 청장, 경찰 총수 첫 추념식 참석 ‘민간인 학살’ 경찰 관여 사실상 인정국방부와 경찰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검은색 양복과 검정 넥타이를 맨 국방부 관계자는 3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 출입기자실을 방문해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낭독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나 서주석 국방부 차관 명의가 아닌 ‘국방부’ 차원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의 제주 4·3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제주 4·3사건을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 ‘제주 4·3사건 특별법’ 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차관은 이날 광화문에 마련된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유가족에게 “저희가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최선을 다해서 적극 동참하고, 희생되신 분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유가족분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데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서 차관은 ‘4·3 사건 당시 양민 살상의 지휘라인에 책임을 묻는 후속조치 혹은 서훈(취소) 조치를 검토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법적인 검토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여기까지 오시는 데 71년 걸렸다. 뒤로 가는 일이 없도록 진심으로 바라겠다”고 했고, 서 차관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민갑룡 경찰청장도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정에 머리 숙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경찰 총수가 민간 주도 4·3 추념식을 찾아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애도를 사과로 받아들여도 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는 분명히 사죄를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우리 경찰의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말해 경찰이 군과 함께 당시 무고한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文대통령 “4·3 완전한 해결이 국민통합의 길”

    여야지도부 추념식 참석… 한국당 ‘침묵’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 71주년인 3일 “4·3의 완전한 해결이 이념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고 배·보상 문제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제주도민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 4·3은 여전히 봄 햇살 아래 서 있기 부끄럽게 한다”며 “오늘 추념식에는 이낙연 총리께서 참석하셨다. 제주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부의 마음을 잘 전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진혼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제주도민의 강인함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보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4·3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살해되셨다”며 “젖먹이, 임신부, 팔순의 노인까지 광기의 폭력을 피하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여야 5당 지도부도 제주 추념식에 참석했다. 대부분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연내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4·3특별법은 4·3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을 위한 중요한 법”이라며 “20대 국회에서 4·3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기자들에게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대답한 후 추가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4·3 안에서 소외된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4·3 안에서 소외된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군사정권 눈 피해 출범된 지 벌써 30주년 유해발굴 등 묻혀진 진실 밝히는 데 힘써 후유장애 인정조차 못 받은 분들도 많아 트라우마센터도 없어… 특별법 통과 시급“제주 4·3 때 입은 총상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은 분들이 아직 연구소를 찾아 오십니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는데 후유장애 인정을 못 받은 분들도 많고요. 이제는 그늘에 가려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려 합니다.” 올해 개소 30주년을 맞는 제주4·3연구소 허영선(62) 소장은 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30년간 연구소가 4·3 진상규명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4·3 안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에게도 주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를 말하지 못하고 희생자 명단에 이름조차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잊혀진 이름을 찾아 주는 것이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71주년을 맞은 제주 4·3은 1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다. 그러나 수십년간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도 금기시됐다. 연구소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출범했다. ‘4·3’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무실을 얻기도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1988년 이후 서울 등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린 뒤 제주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빨리 증언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4·3에 대한 기록도, 연구도 거의 없던 때였다. 군사정권의 눈을 피해 추진된 연구소는 1989년 5월 10일 구술집 ‘이제사 말햄수다(이제서야 말합니다)’를 발표하며 출범했다. 이후 연구소는 제주 4·3의 묻혀진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꾸준했다. 증언 채록, 국내 외 사료발굴, 유물조사, 유적지 기행 등이 이어졌고 다랑쉬굴 유해 발굴, 제주국제공항 집단 매장지 유해발굴 등 굵직한 성과도 냈다. 2002년부터 주최하는 ‘본풀이 증언대회’가 그중 하나다. 지난달 29일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열린 18회 행사에서도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과 어릴 적 희생된 아버지가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당사자도 나와 묻어뒀던 상처를 꺼냈다. 허 소장은 “4·3의 역사는 진행형”이라고 강조한다. 71년이 지났지만 생존자들이 여전히 남아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규명되지 않은 피해도 많아서다. 허 소장은 “역사는 고백과 증언으로 밝혀지는 것”이라며 “명예회복이 필요한 수형인들, 희생자임에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 강제결혼이나 성폭력 피해를 숨겨야 했던 여성들 등 소리 내지 못한 고통을 꺼내려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소장은 상처를 보듬기에 아직 국가의 응답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가 제주 4·3을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 포함시켜 해결 의지를 보이고 국방부가 처음 유감을 표명하는 등 진척이 있었지만, 피해자 보상 등의 내용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허 소장은 “아직 트라우마 센터도 제대로 없는 게 현실”이라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미해결 과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시인이기도 한 허 소장은 최근 4·3이 남긴 상흔과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을 펴냈다. 그는 “4·3은 결국 인간과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주제”라며 “4·3의 비극을 늘 기억하고 인권, 평화, 인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손녀 사연에 눈물바다 된 추념식(영상)

    손녀 사연에 눈물바다 된 추념식(영상)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8살 나이에 4·3을 경험한 김연옥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됐다.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국가추념식으로 거행됐다. 이날 추념식에서는 김연옥 할머니의 외손녀 정향신(23)씨가 3세대에 걸친 굴곡진 가족사를 낭송하며 추념식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정향신씨는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며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참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정씨는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쁘다. 그러니 이제 자식들에게 못 해준 게 많다고 미안하다고 말 안 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는 울지 않고 매일매일 웃겠다고 약속 하나만 해달라”라며 할머니를 위로했다. 김 할머니는 손녀가 사연을 낭독하는 동안 내내 흐느끼다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이를 지켜보던 참석자들도 눈물을 훔치며 위로와 격려를 담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유아인, 제주 4·3 추념식 참석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

    유아인, 제주 4·3 추념식 참석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

    배우 유아인이 3일 제주도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다짐을 낭독했다. 유아인은 KBS 2TV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함께 출연 중인 도올 김용옥으로부터 추념식 참석을 제안받고 전국 대표 6명의 자격으로 젊은 세대의 결의와 다짐을 낭독했다. 유아인은 “부끄럽게도 4.3을 잘 몰랐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몰랐고, 또 왜 우리가 몰라야 했는지도 잘 몰랐다. 그걸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라고 운을 뗐다. 유아인은 “4.3을 접하고 조금씩 알게 되면서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환하고 현재로 만들어야 하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며 “처음에는 많이 놀랐고 분노했고 슬펐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자행한 일들은 어떻게 멀쩡히 살아갈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제주라는 섬이, 그 상상조차 되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 품어왔는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조심스럽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더 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는 된 것 같다. 4.3을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는 이들 중 청년세대가 적지 않다. 그래서 희망은 있는 것 같다”라며 “70주년을 넘어 71주년이, 앞으로 남은 날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4.3의 정신을 기억하는 내일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식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4천,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잠정 보고됐다. 좁은 섬에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 진상규명을 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고 있다. 이날 추념식은 제주4·3생존 희생자와 유족 등 주요 인사 1204명을 포함해 1만여명이 자리했다. 국방부는 이날 71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국방부 71년 만 “제주 4·3 사건, 깊은 유감과 애도”

    국방부 71년 만 “제주 4·3 사건, 깊은 유감과 애도”

    무고한 시민들이 비참하게 희생됐던 제주 4·3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사건이 발생한 지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국방부는 3일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4·3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오늘 국방부의 제주4·3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제주 4·3 사건을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 ‘제주4.3사건 특별법’ 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서주석 차관은 이날 중 광화문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명할 예정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방미 중이다. 정부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식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 4000명,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잠정 보고됐다. 좁은 섬에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 진상규명을 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고 있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검은색 양복과 검정 넥타이를 맨 채 출입기자실을 방문해 국방부 입장문을 낭독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 “누명 벗었지만 진상규명 안 돼… 특별법에 도민 목소리 반영을”

    “누명 벗었지만 진상규명 안 돼… 특별법에 도민 목소리 반영을”

    “아직도 제주4·3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 개정안에 도민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지난 1월, 제주4·3 수형인 피해자 18명이 71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법원의 재심 무죄 판결 직후 재심 당사자인 할아버지, 할머니들 못지않게 벅찬 소감을 밝힌 이가 있었다. 2013년부터 2530명의 이름이 적힌 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실태 조사에 나섰던 양동윤(69)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였다. “오늘 대한민국 법원이 우리 할망, 할아방들한테 무죄 판결을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죄 없댄 말해야 합니다!” 일흔한 번째 4·3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양 대표는 “언제나 4월이면 바쁘다. 특히 올해는 연초 있었던 재심 판결 때문에 언론 취재와 행사 지원으로 하루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2월부터 법원에서 형사보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양 대표는 “무고한 수형 생활을 보상받는 게 형사보상이다. 이분들이 수형 이후 71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받았던 고통은 아직 남아 있다”면서 “아들이 좋은 국가기관에 합격하고도 아버지의 수형 전력으로 인해서 불합격 처리가 됐고, 수형 당시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흉측하게 뒤틀려 있는 분도 계시다. 변호인들께서 피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고, 형사보상 절차가 끝나면 국가배상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국회에서는 발의 16개월 만에 제주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행정안전위원회의 첫 심의가 이뤄졌지만 의견 대립 끝에 의결이 무산됐다. 양 대표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현재 논의되는 개정안이 도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는 큰 틀에서 4·3을 정리해 놓은 수준입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진상이 세세하게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 많죠. 예를 들어 주민 300여명이 학살된 북촌마을 사건의 경우 보고서에 학살 자체는 기술돼 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밝혀진 게 없어요.” 양 대표는 “추가 진상조사가 빨리 이뤄져야 앞으로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에서도 판단 근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은 과제가 또 있느냐는 질문에 양 대표는 “지난 재심에 수형 생존자 모두가 참여한 게 아니다”라면서 “제주도에서도 아직 재심에 참여하지 못한 3~4명이 살아 있고 서울, 부산 등 육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도쿄에도 수형 생존자가 계신다. 그분들 재심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재심 판결 이후 3주 만에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현창용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며 양 대표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는 “나이라는 건 절박한 거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내일이 추념식인데 재심 당사자 17명 중 8명이 건강 때문에 못 나오신다. 법원이 물론 잘 판단해주실 것으로 믿지만, 속도를 조금 더 내달라고 호소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사망자 1만 4256명… 23%가 아동·청소년, ‘사건’ ‘항쟁’ ‘혁명’ 논쟁에 공식 명칭 없어

    사망자 1만 4256명… 23%가 아동·청소년, ‘사건’ ‘항쟁’ ‘혁명’ 논쟁에 공식 명칭 없어

    ‘고립된 섬’ 제주에서 1948년 4월 3일부터 6년여간 발생한 학살 사건인 ‘제주4·3’은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 비극이다. 하지만 ‘전 국민 제주4·3사건 인식조사’(2017) 결과를 보면 광주민주화항쟁(162명 사망), 노근리 양민학살(135명 사망)과 비교해 사망자가 100배(1만 4256명) 많은 데도 국민적 인식도는 가장 낮았다. 2일 4·3 71주년을 맞아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이 사건에 대해 정리했다. Q. ‘제주4·3’은 왜 이름이 없을까 A. ‘제주4·3’에는 아직 공식 명칭이 없다. ‘제주4·3 사건’으로 흔히 불리지만 시민사회와 학계에선 이를 ‘사건’으로 볼지, ‘항쟁’으로 볼지, 또는 ‘혁명’으로 볼지 의견이 분분하다. 항쟁 또는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쪽에서는 당시 시위대가 미 군정과 서북청년회의 횡포, 남한만의 단독선거로 인한 분단에 반대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미군의 발포 사건 이후 남로당 제주도당의 활동으로 이 사태가 커졌다는 지점에선 이념 논쟁이 불거진다. 가해자처럼 보이는 경찰·군인의 가족도 여럿 죽거나 다쳤기에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4·3특별법을 통해 모든 조사가 마무리된 뒤 최종적으로 이름을 붙이자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Q. 피해자들이 왜 외국에도 있을까 A.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강제노역, 유학, 항일 운동, 막일 등을 하던 6만여명의 제주도민은 해방 이후 제주로 귀환했다. 그러나 4·3은 갓 돌아온 이들을 다시 고향 밖으로 뛰쳐나가게 했다.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을 피해 수많은 도민들이 산이나 굴 등으로 피신했다.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왔던 주민들은 학살극을 피해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끝까지 한국에 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사망한 사람도 많다. Q. 미국에 책임을 묻는 이유는 A. 4·3의 발단이 된 경찰 발포 사건은 미 군정기인 1947년 3·1절 행사에서 일어났다. 당시 미군 문건에는 미 군정이 4·3 초기부터 강경 진압을 고수했다는 여러 증거가 남아 있다. 1948년에는 브라운 대령이 군경 토벌대 최고지휘관으로 파견돼 제주를 싹쓸이식으로 진압하는 ‘평정 작전’을 주도했다. 이듬해엔 주한미군사고문단 단장인 로버츠 준장에게 지휘권이 넘어가 군경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격려했다는 기록도 있다. Q. 피해가 얼마나 컸나 A. 지난해 말 기준 정부가 인정한 민간인 피해자는 1만 4363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1만 4256명이다. ‘제주4·3사건위원회 신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중 20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23%였다. 60세 이상 고령 피해자는 6%였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희생자까지 합하면 피해 규모는 3만~9만명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잃어버린 마을’ 찾은 여순사건 유족들

    ‘잃어버린 마을’ 찾은 여순사건 유족들

    제주4·3 71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원들이 제주시 화북1동 곤을동 마을터를 둘러보고 있다. 곤을동 마을은 1949년 1월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가옥이 전소되고 많은 주민이 희생된 곳이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이후 마을을 떠나 현재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제주 연합뉴스
  • 71년 만에… 국방부·경찰 ‘제주4·3’ 유감 표명한다

    71년 만에… 국방부·경찰 ‘제주4·3’ 유감 표명한다

    경찰청장, 광화문광장 추모 행사 참석 국가추념식 제주4·3평화공원서 개최국방부가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제주4·3’에 대해 71년 만에 유감을 표명한다. 경찰청장도 추모 행사를 찾아 직접 유감의 뜻을 밝힐 예정이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은 2일 국방부의 제주4·3 유감 표명과 관련해 “어떤 형식으로든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며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한미 국방장관회담으로 미국에 있어 서주석 차관이 장관을 대신해 유감을 표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차관은 3일 또는 4일 제주4·3 행사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을 방문해 유감을 표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국방부는 제주4·3은 군경이 투입돼 무장봉기를 진압한 사건이라며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국방부의 유감 표명이 이뤄진다면 사건 발생 71년 만에 입장을 뒤집게 되는 것이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3일 광화문광장 행사에 참석해 당시 사망자들에 대해 애도를 표하며 유감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4·3은 경찰의 발포사건을 계기로 파업과 소요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극이다. 한편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선 ‘다시 기리는 4·3 정신, 함께 그리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국가추념식이 열린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족, 이낙연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자유한국당 황교안·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주요 인사 1204명을 비롯해 1만여명이 참석해 참배한다. 서울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 4·3 주정공장터 위령공원 조성

    제주도는 4·3 당시 민간인수용소로 이용됐던 제주시 옛 주정공장터를 위령공원으로 조성한다고 1일 밝혔다.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 인근에 있는 옛 주정공장 터(5272㎡)는 4·3이 한창이던 1949년 봄 피난 입산했다 귀순공작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대거 수용됐다.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수용환경으로 수용자들은 큰 고초를 겪었다. 이곳에 수용된 청·장년층 대부분은 재판 후 타 지방 형무소로 이송됐고 이듬해 6·25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 등으로 다수는 집단 학살됐다. 2001년부터 해마다 4·3유족들이 주정공장 터에서 당시 행방불명된 원혼을 위해 진혼제를 지낸다. 4·3 당시 마을 자체가 사라진 화북 곤을동 마을 정비사업도 본격화된다. 곤을동 마을은 1949년 1월 5일과 6일,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가옥 67채를 불태웠다. ‘수악주둔소’가 2018년 4·3유적지 최초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올해 ‘제주4·3수악주둔소 정밀조사 및 기록화사업’과 ‘안내표지판 정비사업’이 추진된다. 도는 4·3유적지를 평화와 인권의 학습장으로 조성하고 후세에 기억되도록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4·3특별법’ 불발… 연내 처리 불투명

    ‘제주4·3특별법’ 불발… 연내 처리 불투명

    국회는 제주4·3 희생자 추념일 제71주년을 이틀 앞둔 1일까지도 제주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법적 보상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제주4·3특별법’ 개정에 합의하지 못했다. 법안 발의 15개월 만에 진행된 제주4·3특별법 개정 논의가 또다시 지연되면서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바른미래당 간사인 권은희 의원은 “개정안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심의하기로 했다”며 “진상규명위원회의 권한과 구성 방식, 기간 등에 대한 정부의 검토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은 2017년 12월 제주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명문화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군사재판 무효화로 인한 법적 안정성 침해와 대상자 1400명을 기준으로 1조 8000억원으로 추계되는 보상비용 등을 이유로 우려를 표했다. 반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특별법 개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도 국회의원 전원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 “특별법은 좌우 이념을 떠나 화해와 상생을 위한 것”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제주 4·3 유족 사연 듣는 유엔 특별보고관

    제주 4·3 유족 사연 듣는 유엔 특별보고관

    20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파비앙 살비올리(가운데)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이 4·3 유족의 아픈 사연을 듣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4·3희생자유족회와 4·3기념사업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린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심포지엄 참석차 제주를 찾았다. 제주 연합뉴스
  • 19일 제주4·3기념사업위 국제심포지엄

    제주4·3 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4·3 희생자유족회는 오는 19일 제주 KAL호텔에서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국제 심포지엄을 연다고 14일 밝혔다. 심포지엄에는 파비앙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이 참석해 과거사 해결에 대한 국제 기준 및 전환기적 정의 조치에 대한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한다. 안병욱(한국학중앙연구원장)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의 민주화와 과거사 정리에 대해 발표한다. 일본군 성노예제, 일제 식민시기 강제동원, 제주4·3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가 다뤄진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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