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열 22위… 대남공작 총책
◎「남한 조선로동당」 이선실의 실체와 암약상/80년 조총련모국방문단 위장 잠입/서울에 집 3채 구입… 아지트로 활용/교회 침투해 문익환목사 등과 교분
이선실.71세의 그녀는 북한내 권력서열 22위로 지금까지 남파된 공작원중 최고 거물이다.
이화여전 출신의 이는 남한내 북한공작지도부의 총책으로 북한의 장관급 공작원을 포함,직파간첩 10명을 거느리고 20년가까이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이는 「신순녀」「이선화」「이옥녀」 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71년이후 북한측 공개석상에도 잘 나타나지 않아 「베일속의 여인」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수사당국이 신원파악을 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조사결과 이는 고령임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었으며 66년부터 90년10월 입북시까지 모두 3차례나 남한에 침투,20년 가까이 암약해왔다.
특히 이는 80년부터는 북송된 재일교포 신순녀(74)의 이름으로 위장잠입,합법적 신분을 얻은 뒤부터는 민중당창당에 적극 나섰으며 구속된 사북탄광사태 주동자 황인오(36·중부지역당총책)등 인물들을 적극 포섭,해방이후 최대 간첩망을 구축했다.
이는 8·15광복전 이화여전을 졸업했으며 6·25후 대남 간첩 양성소인 로동당 중앙당 금강학원을 수료하고 당경공업위원회 과장,황해도 여맹간부,평양시여맹부위원장 등을 지낸 관록을 갖고 있다.
63년 이는 김일성에게 직접 『조국통일사업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해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돼 공작원양성소인 「695정치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았다.
이후 66년 1차 남하해 5년동안 암약하다 71년 월북했고 다시 73년 2차로 남파돼 2년뒤인 75년 복귀했으며 76년부터는 북송재일교포 신씨를 가장,일본에 잠시 기거하다 모국방문단에 끼어 국내에 들어온뒤 80년에 영주귀국형식으로 국내에 잠입했다.
신씨를 가장한 이는 전북 전주시에 사는 신씨의 언니 신양근씨 집에 머물다 신씨의 장남 백덕산씨(66)가 전주 평화동사무소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점을 이용,백씨형제들에게 집을 사주는등 환심을 사 신순녀란 이름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가짜인생」을 살기시작 했다.
위장합법잠입에 성공한 이는 바로 주거지를 서울로 옮겨 동작구 대방동344 단독주택을 구입,본적까지 옮긴채 6년5개월동안 활동했다.
신길동 영동교회에 신도로 잠입,여기서 알게된 김옥기(53·보험사원·구속)를 수양딸로 삼아 함께 살면서 권중현(50)등을 포섭,간첩망을 꾸며나갔다.
이는 83년이후 영등포구 신길동 집외에 안양시 비산동 부흥아파트와 동작구 대방동391 단독주택등을 사들여 비밀아지트로 활용했다.
이는 87년 서울 미아리 한빛교회에 침투,자신을 「독립운동가」 「제주4·3사태 희생자유족」 「통혁당사건 관련자가족」등으로 자처하면서 문익환목사등과 친분을 유지하다 신당창당에 가담했다.
89년 마포 서교동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모임」(대표 이우재)에 헌금을 내며 정당결성자들과 친분을 맺은 이는 90년 YWCA에서 열린 민중당창당발기인으로 참가,당기를 이대표에 건네주기도 했다.
이는 구속된 김락중공동대표에게 2백만달러,창당헌금 2천만원,5백만원짜리 복사기등을 기증해 일약 「창당유공자」로 떠오르면서 장기표씨 등과 밀착했고 「민가협」에도 침투했다.
한편이에 간접 포섭된 황인오는 90년 10월 이와 함께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부근 해안에서 무장안내원들과 반잠수정을 이용,입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잠수정은 83년 부산 다대포앞바다에서 격침된 것과 같은 종류로 몸체길이 8.75m,너비 2.5m,무게 5t에 승선인원 5∼6명 규모로 물위에서는 시속45∼50노트,잠수시에는 6노트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