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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 5·18도 지방공휴일 추진

    제주도가 4·3 희생자 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전국 광역·기초지자체가 조례로 지방공휴일을 지정할 수 있게 하는 정부 법률안이 추진된다. 조만간 5·18(광주)과 2·28(대구), 4·19(서울) 등도 지방공휴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가 해당 지역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날을 공휴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정에 나선다고 16일 밝혔다. 제정안에 따르면 지자체는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조례로 지방공휴일을 지정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기념일은 모두 48일로 ‘납세자의 날’과 ‘서해수호의 날’, ‘식목일’, ‘보건의 날’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지역 관련 기념일은 5·18 광주항쟁, 제주 4·3, 마산(현 창원) 3·15 의거, 대구 2·28 운동 등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그리운 너에게…그날, 바다…잊지 않겠습니다

    그리운 너에게…그날, 바다…잊지 않겠습니다

    매년 4월이면 이 계절을 건너오지 못한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 울린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되짚어보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작품들로 ‘그날의 바다’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영화계는 지난 12일 잇따라 개봉한 ‘세월호 영화’들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며 주목받고 있다. ‘지슬’로 제주 4·3사건을 다뤘던 오멸 감독이 이번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를 영화 ‘눈꺼풀’로 빚어냈다. “영화로서 참사에 대한 몫을 찾고자 했다”는 오 감독은 세월호 참사 직후 스태프들과 무인도로 들어가 영화를 완성했다. 가상의 섬 미륵도는 죽은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 섬에 사는 노인은 망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줄 떡을 대접한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섬을 찾아들었으나 쥐 한 마리가 노인의 숭고한 제의를 망치고 만다. 세월호 참사 구조 과정에서의 ‘무능’과 ‘무책임’이 이후 진상 규명, 희생자 애도 등 사후 처리에서도 되풀이됐음을 보여주는 상징들이 먹먹한 분노와 슬픔을 되새기게 한다. ‘그날, 바다’는 구조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세월호 참사 논란을 침몰 원인으로 집중하게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어준이 이끄는 프로젝트 부가 제작하고 김지영 감독이 연출한 ‘그날, 바다’는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영화는 세월호의 출발부터 침몰까지의 항적 자료, 생존자와 목격자의 증언,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항로와 속도, 이상 징후 및 이상 징후가 나타난 시간대 등을 복원했다. 제작진은 침몰 전 이미 선박이 좌우로 지그재그식 운항을 계속했다며 앵커 침몰설을 제기한다. 경영진 교체가 이뤄진 공영방송 KBS와 MBC에서는 세월호 4주년를 추모하는 특집 방송을 준비했다. 연극과 합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KBS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주제로 14일부터 17일까지를 특별 추모기간으로 정했다. KBS 1TV에서는 16일 오후 3시부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 추도식’을 생중계하고, 특집 9시 뉴스를 통해 세월호 특별취재팀 뉴스를 다섯 차례 연속 보도한다. 16일 오후 10시에는 양희은, 전인권, 안치환, 이상은 등이 참여한 추모음악회 ‘기억 그리고 다시, 봄’을 전하고, 19일 방영되는 KBS스페셜 ‘세월호 4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이 연극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모습을 담았다. MBC에서는 ‘MBC스페셜’ 2부작을 통해 참사 4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과 잠수사들의 생활을 담았다. 16일 밤 11시 10분 방영되는 1부 ‘너를 보내고-416 합창단의 노래’에서는 유가족과 시민들로 이뤄진 416합창단의 노래와 일상을, 23일 방영되는 2부 ‘세월호 잠수사들의 기록 로그북’에서는 희생자들을 수습했던 잠수사들이 후유증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담았다. 연극동인 ‘혜화동 1번지’ 6기 연출가들도 올해 ‘세월호 2018’ 연극제를 통해 10편의 신작을 선보인다. 오는 19일부터 6월 24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열린다. 개막작은 윤혜진이 연출한 ‘벡사시옹+제10층’으로 프랑스 작곡가 에리크 사티의 작품 ‘벡사시옹’(짜증)을 모티브로, 참사 이후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세월호 유가족 110명이 쓴 편지글 110편을 묶은 책 ‘그리운 너에게’(후마니타스)는 희생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풀어냈다. 편지글의 육필은 인터넷 사이트(http://www.416letter.com)에서도 볼 수 있다. 미수습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책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북콤마)도 이달 말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가족의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목포신항을 떠나야 했던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일반인 승객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의 가족들이 한 인터뷰가 담겼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영화 ‘눈꺼풀’
  • 현기영 “제주 4·3보다 무서운 것은…”

    현기영 “제주 4·3보다 무서운 것은…”

    소설가 현기영이 11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강연했다.현기영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을 예로 들며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류가 아우슈비츠를 잊는 것”이라면서 “4·3에 대입해 말하고 싶다. 4·3의 학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국민이 4·3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기영은 “역사는 성공과 영광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도 함께 기록해야 진정한 역사”라며 4·3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난 현기영은 1979년 문학계 금기였던 ‘제주 4·3’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순이삼촌 외에도 제주 항쟁의 역사를 조명한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타는 섬’ 등 제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썼다. 한편 이날 차이나는 클라스에는 독일인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이 나와 한국 근현대사에 뛰어난 식견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날 방송에서 현기영이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관광명소인 성산일출봉, 함덕해수욕장, 표선해수욕장 등이 옛 양민 학살터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자 출연진들은 숙연해지기도 했다. 현기영은 제주 4·3을 상징하는 붉은 동백꽃 뱃지를 출연자들에게 나눠 주며 강연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4·3 희생자 추가 신고 4000여명 접수

    제주 4·3 희생자 추가 신고 4000여명 접수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희생자 신고접수가 5년 만에 재개되자 유족들의 신고가 줄을 잇고 있다.제주도는 4·3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1월부터 3개월 동안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추가 신고를 접수한 결과 희생자 72명과 유족 4066명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다고 9일 밝혔다.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신고는 사망자 37명, 행방불명자 19명, 후유장애인 5명, 수형인 11명 등으로 분류된다. 신고접수는 오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도는 신고 접수 건에 대한 면담조사와 사실조사를 한 뒤 6월부터 4·3 실무위원회 심사와 4·3 중앙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안에 희생자와 유족 인정 여부가 결정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4·3 희생자와 유족 신고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5차례 진행됐고 1만 4233명이 희생자로, 5만 9427명이 유족으로 인정됐다. 4·3 행방불명인 유해발굴사업도 다음달부터 10년 만에 재개된다. 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2018년도 국비 15억 6000만원(유전자 감식비 12억 1300만원, 유해발굴비 3억 4700만원)이 반영됐다. 유해발굴은 4·3 당시 최대 암매장 지역인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쪽 뫼동산 인근과 남북활주로 북단 서쪽, 화물청사 동쪽 구역 등에서 실시된다. 앞서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북단 2개 지점에서 유해발굴을 벌여 4·3 당시 암매장된 38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자, 이제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군.” 바짝 마른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빈 무대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이 앉아 구두를 벗으려 애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고도가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대화한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싱거운 대화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하고,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고 내일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알린다. 고고와 디디는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때운다. 1막에서는 고고가 가자고 하고, 2막에서는 디디가 가자고 한다. 쓸데없는 장난과 엉뚱한 대화를 듣는 관객이 왜 내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할 때 막은 내린다.●파리로 온 작가·화가·철학자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난 사뮈엘 베케트(1906~1989)는 부유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37년 파리 몽파르나스 언덕에 정착한 베케트는 이듬해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1938년 1월 6일,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베케트는 소위 ‘묻지마 폭력’을 당한다. 모르는 청년이 느닷없이 그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법정에서 범인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베케트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인생을 숙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1년 파리에서 그는 조국도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 친구들을 돕는다. 더블린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잣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결심했는지 모르지만, 1942년 동지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케트는 시골 농장으로 피신하여 ‘와트’라는 소설을 썼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는 집중해서 작품을 썼다. 우주의 인연이란 기이한 바, 베케트가 태어나기 5년 전 한 인물이 옆 나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에서 탄생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아버지 덕에 자코메티는 거대한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자코메티는 10세 때부터 소묘와 그림을 그렸으며, 14세 때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처음 흉상을 만들었다. 18세 때 자코메티는 제네바 미술 공예학교에 들어갔다. 자코메티는 눈앞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이를 위해 제왕절개를 거부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어제까지 함께 베네치아 여행을 즐겼던 병든 할아버지 이야기도 황당하다. 아침에 깬 자코메티는 죽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때 자코메티는 깨닫는다. 죽음이란 늘 곁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폭격으로 잘린 팔 등 그는 죽음을 목격하고 강제로 성찰해야 했다. 그의 예술은 죽음이라는 한계에서 탄생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도 파리에 있었다. 그 무렵에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파리에 있었다. 세 사람은 양차 대전을 모두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비극으로 아수라장이었던 파리라는 공간을 작가 베케트, 화가 자코메티, 철학자 사르트르는 같은 시기에 체험했다. 세 거장은 죽음의 심연을 극복하는 실존주의 문학(베케트)-미술(자코메티)-철학(사르트르)의 연대를 보여줬다. 이후 1953년 1월 파리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의 만남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텅 빈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가 있다. 처음 이 연극을 보았을 때 홀쭉이와 빵빵이 같은 개그맨이 나와서 만담하는 줄 알았다. 노숙자 복장을 한 괴이쩍은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고도가 온다는 확신도 없이,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리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희망이다. 반세기를 기다렸건만, 고도는 오지 않고 다만 심부름꾼을 보낸다. 디디는 고도의 심부름꾼에게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 위해 구두끈을 풀었다 다시 감기를 반복한다. 두 인물이 대체 몇 번이나 구두끈을 풀고 다시 묶는지 세어보다가 포기할 정도다. 어찌보면 이 한심한 방법이 아우슈비츠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생명들이 견뎌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니 전쟁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영어 ‘신’(God)이 무의식에 있어서 절대자를 생각하고 썼을 수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희망이란, 숨은 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이 연극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자코메티가 있다. 1961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려 할 때 베케트는 자코메티에게 무대 디자인을 맡겼다. 두 거장은 밤새도록 나무 하나를 구부려도 보고, 꺾어도 보고, 부수고, 다시 세웠다. 목매달아 죽고 싶어도 매달리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무를 구상했다. 나뭇잎이 한두 개 달린 앙상한 나무를 석고로 만들어 마치 뼈다귀 같은 느낌을 줬다. 자코메티와 베케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났다. 석고로 만든 이 나무 하나로 자코메티는 열매 맺을 수 없는 죽은 나무의 비극을 미니멀리즘 무대 양식으로 표현했다.베케트가 무대 디자인을 자코메티에게 부탁한 까닭은 자코메티가 1년 전인 1960년에 발표한 ‘걸어가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진으로, 모작으로 하도 많이 봐 와서 별 감동이 없었다. 과연 저 삐쩍 마른 철사 같은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서 저 삐쩍 마른 이상한 작품이 몇 점 있어 한참을 봤지만, 부끄럽게도 모자란 서생은 철사인간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었다. 뭔 뜻인지 몰랐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서 이 작품 하나만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묵상하는 방에서 나는 사십여분을 응시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운명을 쏘아보는 듯 눈알이 크고 둥글었다. 원효의 눈부처를 보듯, 저 둥근 눈에 내 눈을 겹쳐 놓으니 가슴이 떨렸다. 대지를 버티는 두툼한 발, 해골 같은 머리를 촬영하면서 저 철사 같은 인간을 내 삶에 전이시켜 보았다. 183㎝ 키의 철사인간을 자코메티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리고 불필요한 것은 다 덜어냈다. ‘덜어냈다’는 표현이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을 곁에 둔 인간이 덕지덕지 무엇을 품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자코메티 이전의 화가들은 ‘본 것’을 만들려 했지만, 자코메티는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 동양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자코메티는 쓸데없는 것을 다 덜어낸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선배 화가 피카소를 향해 엄청난 말도 했다. “난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천재더라.” 자코메티의 말은 무서운 자세를 보여준다. 예술은 명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상에서 탄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피카소는 기술로만 그리는 천재(기술자)일 뿐, 사상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라는 비판이다. 나는 피카소와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생각은 사뮈엘 베케트의 정신과 만난다. “우리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건 말이야, 인간이 더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인간을 만든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인간을 말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나가야 한다.”●걸어가는 고도가 만든 실존주의 철학 희망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음이 앞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주인공은 베케트 자신이었다. 동지들이 죽어가는 전쟁 속에서 레지스탕스로 숨어 지내면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고독을 벗하며 쓰고 또 쓰면서 사망 전까지 그는 매년 작품을 발표했다. 자코메티, 베케트, 사르트르는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절망하지 않고, 걷는 인간, 기다리는 인간, 실존주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파리는 창조의 공간인 동시에 죽음을 체험하게 한 공간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의 모습은 요즘도 파리에 많은 집시, 난민, 노숙자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나치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베케트와 자코메티가 한때 저런 처지가 아니었을까.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는 무의미요, 전쟁의 아수라와 유사하지 않은가. 세 사람은 뜬구름 잡는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유도하는 염세주의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세 거장의 자세는 운명을 견디는 잔혹한 낙관주의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서는 식민지의 어둠 앞에서 쫄지 말고 “눈 감고 가라”고 했던 시인 윤동주, 독재 시대에 아마득한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제주도에서는 4·3의 비극에 숨죽이며 지금까지 많은 눈물을 삼켰던 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 철사인간이 바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여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베케트는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살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글쓰기와 연출에만 전념했던 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자코메티와 함께 잔혹한 낙관주의를 가르쳐 준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에 조용히 고도가 있는 곳을 찾아 까마득한 여행을 떠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생각나눔] 제주 4·3 이어… 4·19, 5·18도 지방공휴일 될까

    [생각나눔] 제주 4·3 이어… 4·19, 5·18도 지방공휴일 될까

    文정부 지방분권 기조와도 부합 與 ‘지방공휴일 법률제정안’ 발의일각 ‘지방공무원만 노는 날’ 우려제주도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4·3 희생자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이와 유사한 5·18(광주)과 2·28(대구), 4·19(서울) 등도 지방공휴일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방공휴일이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기조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방공휴일의 법률적 한계 때문에 ‘지방공무원만 노는 날’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日오키나와현도 지방공휴일 지정 인사처 고위 관계자는 4일 “이번 4·3 논란을 계기로 지방공휴일 제도 도입에 필요한 법률적 보완 조치와 지방공휴일이 지자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공식 입장과 별개로 지방공휴일이 법률 제정 등을 통해 제도화될 수 있다고 보고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자체가 지방공휴일을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지방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앞서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12월 ‘제주 4·3 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해마다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기 위해서다. 인사혁신처는 “법적 근거가 없고 국가 사무에 혼란을 준다”며 거부했다.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올해 1월 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의회는 지난달 재의를 거쳐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다시 지정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민의 뜻을 존중해 수용하겠다”며 해당 조례를 공포했다. ●“공동체 의식 높여” vs “매출 타격” 일본에서는 오키나와현이 6월 2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한 전례가 있다. 1945년 6월 23일은 제2차 세계대전 지상전인 오키나와전(戰)이 끝난 날이다. 오키나와는 법적 근거 없이 1974년에 지방공휴일로 등록했다. 중앙정부도 1991년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이날을 정식 공휴일로 인정했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이나 독일도 주마다 고유의 지방공휴일을 시행한다. 강 의원은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자체 조례를 통해 지방공휴일 지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방공휴일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휴일이나 법정공휴일이 아닌 만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4·3 지방공휴일 때 혜택을 받는 곳은 제주특별자치도와 하부기관(도 직속기관과 사업소, 제주시, 서귀포시, 읍면동사무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도다. 교사 등 교육공무원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우려 때문에 쉴 수 없고 국가직 공무원도 공휴일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방공휴일이 ‘주민은 다 일하고 지방공무원들만 노는 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17개 광역지자체 협의체인 전국시도지사협의회의 권영수 사무총장은 “지방공휴일에 대해 지자체들 입장이 엇갈려 합의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상당수 지역 상공인들은 매출 감소 등을 우려해 지방공휴일 지정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4·3 사건 70년, 이념에 의한 야만 이젠 끝내자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피해자와 유족, 제주 도민에게 사과?다. 현지에서 진행된 추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사과한 것은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사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4·3 사건을 ‘이념의 이름으로 행해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추가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 배·보상 등을 통해 유족과 생존자가 입은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낡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4·3 사건이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 가운데 하나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영에 따라 보수는 폭동으로, 진보는 항쟁으로 부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김영삼 정권에서도 공론화 자체가 금기시됐고,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사건으로 부르는 게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2000년 ‘4·3 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면서 ‘4·3위원회’가 만들어져 진상 조사와 피해 보상에 나서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이 조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진상 보고서는 4·3 사건을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를 거쳐 54년 9월 21일까지 제주 전역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7년여 동안 제주 도민의 10%에 달하는 3만여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통계가 그때의 처참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념과 전란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것이 일반 백성이다. 신념에 의해 죽어 간 사람이야 그렇다지만, 자기가 왜 잡혀가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피해자가 된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4·3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안타깝게도 2000년 4·3위원회 조사를 통해 가려졌던 진실들이 많이 빛을 봤지만,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유해 발굴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시 처벌 기록이나 재판 기록도 일부만 복원됐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의 기억과 역사적 기록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밝힐 것은 밝히는 게 맞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특별법의 개정이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이념적 잣대로 4·3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 모두 진상 규명과 배·보상을 약속한 만큼 정치권은 특별법 개정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당연히 초점은 이념이 아닌 양민의 죽음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당시 군인과 경찰뿐만 아니라 남로당에 의해 행해진 양민의 죽음도 조사해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동백꽃이 고결하고 어여쁘니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동백꽃이 고결하고 어여쁘니

    올해 제주 4·3이 70주년을 맞는다. 그날의 공포와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생존자들도 사실상 마지막 생애 주기를 맞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래서 70주년을 맞아 제주 4·3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념사업위원회에서는 증언 본풀이 마당, 캘리그래퍼 특별전, 네트워크 프로젝트, 4·3 평화기행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동백꽃을 달아주세요’라는 행사를 통해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 간 4·3 영혼들을 기억하기 위해 동백꽃을 디자인해 만든 4·3 배지를 다는 의미 있는 릴레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필자도 애월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이 디자인한 4·3 동백꽃 배지를 4ㆍ3 희생자 및 유족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가슴 한편에 소중하게 달고 있다. 제주도 동백꽃은 맵찬 제주 특유의 겨울바람을 견뎌내선지 어느 섬의 것보다도 붉다. 그런데 옛 어른들은 이 동백꽃이 봄에 한 번에 다 피면 풍년이 들고, 두 번에 나누어 피면 평년작이고, 세 번 이상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70년 전 제주 섬에서는 무고한 양민 3만여명이 죽어갔던 것으로 보아 어쩌면 동백꽃이 세 번 이상 계속 피면서 피로 젖은 세월을 예고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성당에 갈 때마다 천주교 제주교구 주보에 실린 강우일 주교님의 ‘4·3을 생각하다’라는 연재물을 읽는다. 주교님은 1944년과 1946년의 제주도 인구가 일본에서 귀향한 도민들 때문에 21만명에서 27만명으로 급등했지만 1944년에 26만석이던 보리 수확이 대흉년으로 1946년에 8만석밖에 안 되었던 것도 4·3을 야기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로 미루어 당시 제주 섬에는 동백꽃이 세 번 이상 피었음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을 동백꽃이 갑자기 떨어지는 일과 닮았다고 하여 춘사(椿事)라고 한다. 그래서 동백꽃은 불길함과 급사(急死)를 상징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유배인들이 가장 싫어했던 꽃이 동백꽃이기도 했고, 어떤 유배인은 유배지 주변의 동백나무를 모두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고 보면 제주 4·3이야말로 춘사였음이 틀림없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규모 학살로 3만여명이 죽어갔으니 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기에 제주 4·3의 상징으로 동백꽃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동백꽃은 불길함과 급사의 상징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에서는 동백나무를 대나무와 함께 항아리에 꽂아 놓는데 동백나무 모양이 단정하고 열매가 많이 열려 가문과 자식의 번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임신이 어려운 여성의 볼기를 동백나무 가지로 치면 아기를 낳는다는 속신도 있었고, 귀한 사람을 맞이할 때는 동백꽃으로 꽃꽂이를 한다고도 했다. 한편 꽃이 시들지 않고 통째로 떨어지기 때문에 동백꽃은 절조와 의지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제주 4·3의 상징을 동백꽃으로 삼은 이유가 비단 불행했던 춘사(椿事)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제주 도민의 절조와 의지를 말하고 싶고 나아가 자손만대 제주도의 번창을 천명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4·3 동백꽃은 제주 4·3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일찍이 성삼문은 동백꽃을 두고 ‘고결하기는 매화와 나란히 하고(高潔梅兄行) 어여쁘기는 더러 그보다 낫구나(嬋娟或過哉)’라고 했는데 70주년을 맞는 제주 4·3의 의미와 정신 또한 상징인 동백꽃처럼 그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한자리에 모인 여야 5당 대표들

    한자리에 모인 여야 5당 대표들

    추미애(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듣고 있다. 이날 홍 대표와 박 공동대표만 추념사에서 박수를 치지 않았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403인의 함성 퍼포먼스

    403인의 함성 퍼포먼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4·3 범국민위원회가 준비한 ‘403인의 함성’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이날 광화문 곳곳에 흩어져 있던 403명의 연기자들은 오후 4시 3분 종소리가 울리자 광장 중심으로 모여 “내 이름은 ○○○”라고 외치는 공연을 펼쳤다. 403명은 아직 공식 명칭을 갖지 못한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 유족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눈물

    유족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눈물

    ‘잠들지 않는 남도’ 처음 합창 제주 전역에 첫 추모 사이렌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오늘은 너무 기쁜 날이다.”문재인 대통령이 3일 4·3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등 4·3의 완전 해결을 약속하자 유족들과 제주 도민들은 ‘4·3 해결의 희망을 봤다’며 반겼다. 이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추념사 한마디 한마디에 유족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유족들은 “이젠 억울하게 쓰러져 간 희생자들도 편히 영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생후 8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은 고복자(72) 할머니는 “이날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참 고마운 일인데 살다 보니 추념식에서 4·3을 해결해 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들을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훔쳤다. 시아버지 등 일가족 4명을 잃은 윤순자(67·제주시)씨도 “반갑고 좋은 일”이라며 “부디 저세상에 계신 시아버님도 이날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기뻐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문 대통령이 4·3 유족들이 그토록 바라던 소망을 들어줬다”며 “앞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 등이 착실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날 국가 추념식에서는 유족들과 제주도립·시립합창단이 처음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했다. 4·3을 노래한 이 곡은 국가 추념식에서 불린 적이 없다. 2015년 67주년 추념식 때는 식전 행사에 이 곡을 합창하기로 했다가 행사를 며칠 앞두고 정부가 이를 취소해 유족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제주에 이주한 가수 이효리는 추념식 중간중간에 ‘바람의 집’(이종형), ‘생은 아물지 않는다’(이산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김수열) 등의 추모시를 낭독, 4·3의 아픔을 담담하게 전했다. 가수 이은미는 ‘찔레꽃’을 부르며 유족들을 아픔을 위로했다. 400여명이 희생당한 4·3 최대의 참극인 북촌리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을 통해 4·3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렸던 소설가 현기영은 추모글을 낭독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 전역에서는 묵념 사이렌이 울려 퍼져 추념식장을 찾지 못한 도민들도 4·3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4·3 희생자 추모를 위해 추모 사이렌을 울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규정 “평화는 진실 위에서만 설 수 있어” 명예회복·유해발굴·배상 등 약속 보수·진보에 낡은 이념 탈피 촉구 “이젠 정의·공정으로 평가받아야”“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제70주년 추념사는 ‘제주도의 봄’이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 의지’를 공식 천명하고 살아남고자 70년간 상처와 아픔을 묻고 살아온 제주 도민들에게 진정한 봄을 약속했다. 추념사를 관통한 핵심 메시지는 ‘진실’이다. 문 대통령은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4·3 사건을 단지 불행한 과거사로만 치부하지도 않았다.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4·3 사건의 명예회복 없인 미래도 없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3 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해 진실 규명과 피해 보상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제주 도민들에게 4·3 사건을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정부 사과의 진정성은 후퇴했다. 문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4·3 사건을 바로 세우고,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3 흔들기’를 더는 용납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4·3 사건의 성격을 ‘국가 권력에 의한 양민학살’로 규정했다. 추념사에 나타난 제주 4·3은 이렇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과 유혈 진압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인 3만여명의 양민들이 희생당했다. 좌우 양쪽에 의해 무차별한 학살이 이뤄져 가해자가 어느 쪽인지도 명확지 않다.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4·3은 아직 이름이 없다. 정부는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회복, 유해발굴 사업,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 치유, 배상과 보상,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도 약속했다. 보수 진영 일부는 4·3 사건을 ‘친북·좌파 세력의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70년 전 제주 도민의 삶과 죽음 갈랐던, 지금도 대한민국을 가르는 낡은 이념을 벗어 던지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 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었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고(故)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故)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이념이 있던 곳에 자리할 새로운 시대적 가치로 ‘정의’와 ‘공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목에 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탈(脫)이념으로 적대적 그늘을 걷어 내고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로 발돋움하려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 직후 제주도 한 호텔에서 유족·희생자들과 오찬하면서 “앞으로는 누구도 4·3을 부정하거나 폄훼하거나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4·3의 진실이 똑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규명을 강조했다. 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똑바로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희망을 유족들과 희생자들이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책임 있게 해 나가겠다, 만약 우리 정부가 다 해내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가 이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홍성수 제주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가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더욱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정치권, 4·3 진상규명·특별법 처리 촉구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이한 3일 여야는 올바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4·3특별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높이 평가하면서 제주4·3특별법 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추미애 대표는 “민주당이 앞장서서 여기(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백혜련 대변인도 “70만 제주 도민의 숭고한 희생과 염원이 담긴 특별법 개정에 야당의 적극적이고 진심 어린 협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시에 제주 4·3사건을 ‘무장폭동’으로 규정했다. 홍준표 대표는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월 3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날을 제주 양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CNN과 인터뷰할 때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은 제주 4·3사건을 “우리 역사 최대의 홀로코스트”라고 규정했다. 최경환 평화당 대변인은 “4·3 항쟁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4·3사건특별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의동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제주 4·3 항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과거 냉전 시기 좌우 진영의 극한 대립에 있다”면서 “국민 통합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제주 4·3 항쟁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논평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12년 만에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완전한 해결’을 언급했다”며 “이를 위해 ‘4·3사건특별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완전한 해결, 4·3의 진실 보듬다

    완전한 해결, 4·3의 진실 보듬다

    “국가폭력 따른 고통 깊이 사과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진실 규명” 盧 전대통령 이어 현직 두 번째문재인 대통령은 3일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과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4·3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해 양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완전한 해결’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유가족들과의 오찬에서도 “제주도민께서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70주년을 맞는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2006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일 추념사에서 이렇게 언급한 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4·3은 2000년 김대중 정부가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공식화됐고 노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 차원의 사과를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 대통령은 추념식에서 재차 사과하고 행방불명인 표석 및 위패봉안실을 방문해 4·3 영령들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유족과 생존·희생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 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면서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며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4·3에 이념을 덧칠한 보수 진영의 역사관을 비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뉴스를부탁해]“DJ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했다?”

    [뉴스를부탁해]“DJ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 한 바 있습니다”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 또 논란입니다. 홍 대표는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를 기렸습니다. 그리고 두어시간 뒤인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홍 대표는 “제주4·3추념식이 열리는 4월 3일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이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폭동과 상관 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CNN과 인터뷰 할 때 제주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 한 바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팩트체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예전 신문과 CNN 웹사이트, 구글 등 포털사이트를 뒤져 봤습니다. 하지만 제주4·3 관련 언급을 인용보도한 기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CNN 웹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물어봤더니 “당시 인터뷰 원문을 구하려고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구글을 검색하니 ‘김대중사이버기념관’이라는 웹사이트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이 1998년 11월CNN과 기자회견한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는 김 전 대통령의 팬들이 만든 것이라 ‘공식’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극우단체들이 해당 사이트의 인터뷰 일부를 발췌해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기에 내용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CNN의 질문은 이랬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제주 4·3사태에 대한 진상을 서로 언제 공개할 방침인가?”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제주 문제가 국회에 청원돼 있다.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문제의 대목은 다음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면서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옵니다.홍 대표와 극우 성향의 시민단체 등은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는 말에 꽂힌 것 같습니다. 앞뒤 맥락을 자르고 그 부분만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답변의 무게는 되려 뒤에 실려 있다고 봐야 합리적입니다. 시작이 공산주의자 폭동이라 할지라도 무고한 많은 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라는 게 답변의 취지지요.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이 정부의 할 일이라고 분명히 짚었습니다. 극우의 생각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보수 성향의 ‘제주 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회’는 지난 1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회에 제출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관련해 준비위는 “4·3의 성격부터 논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준비위는 “4·3특별법 개정안은 4·3의 정의를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제주도민의 저항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일으킨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김 전 대통령의 CNN 인터뷰를 제시합니다.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도 김 전 대통령의 CNN 인터뷰를 “거짓의 DNA가 있는 좌파들이 공산당 폭동 부분을 떼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왜곡했다”고 주장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이 이렇게 인용되는 것에 대해 김 전 대통령 측은 강력히 반발합니다.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 겸 기획실장은 지난 1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밝힌 제주 4·3사건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제주 4·3사건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제주 지역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이다. 나는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수십년 동안 ‘폭도’, ‘빨갱이’들로 매도되어 살아온 것에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3사건은 현대사의 치부이자 살아있는 우리들의 수치다.” 박 대변인은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일부 단체에서 김 전 대통령의 진의와는 별도로 일부 내용을 악의적으로 발췌해 왜곡하고 있다.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자 억울한 희생자와 유족에 또 다른 아픔을 주는 행위”라면서 “홍 대표의 페이스북 발언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제주 4·3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4·3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돼 있어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4·3은 1948년 4월 3일 딱 하루 벌어지고 끝난 일이 아닙니다. 제주4·3특별법은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합니다.1947년 3월 1일 경찰이 시위군중에 발포해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학계는 이 사건을 4·3사건의 도화선으로 봅니다. 이후 남로당 제주도당은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3.10 총파업을 주도합니다.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남한에 주둔하던 미군정은 제주도 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고 군을 투입해 파업 주동자를 검거하는 등 장기간 남로당 진압에 나섭니다. 이에 남로당이 이끄는 350명의 무장대는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제주의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를 공격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 중지, 통일정부 수립 등이었습니다. 미군정은 강도 높은 진압작전으로 맞섰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 군 병력을 제주도에 증파합니다. 그러나 여수 14연대가 반기를 들면서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제주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면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엄포를 내립니다. 중산간지대 마을들이 이른바 빨치산, 게릴라부대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보고 대량학살에 나선 것입니다. 무자비하고 무차별한 학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계속 이어졌습니다. 보도연맹 가입자, 입산자 가족들이 대거 예비검속돼 죽임을 당했습니다.무려 7년 7개월 동안 계속된 4·3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끝났습니다. 다시 홍 대표의 페이스북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홍 대표는 “4월 3일은 양민의 무고한 죽임을 당한 날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4·3 추모정신의 본질을 흐리고 이념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무리한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홍 대표는 “4·3특별법 개정할 때 이를 시정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날을 추모일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홍 대표에 묻고 싶습니다. 그럼 3만명이 넘는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날은 언제입니까? 4·3이라는 숫자만 떼내면 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협조하시겠습니까?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뉴스를 부탁해]궁금한 뉴스를 서울신문에 부탁하세요. 화제가 되는 이슈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속 시원히 풀어드립니다.
  • 여순사건, 4·3사건 처럼 풀어지나

    여순사건 발발 70주기인 올해 여순사건 지원 조례가 여수시의회에서 통과됐다. 제주도 4·3사건 처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등을 위한 위령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지 주목된다. 3일 여수시에 따르면 여순사건 위령사업 지원 조례는 지난달 29일 제184회 여수시의회 임시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정식명칭은 ‘한국전쟁 전후 지역민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다. 시는 1억 46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지역민의 명예회복과 상생·화합을 위한 7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기념사업은 모든 유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가칭 여순사건 명예회복사업 시민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매년 개최되는 추모행사도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군·경 희생자 유족이 용서와 상생의 분위기 속에서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이날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 마련된 ‘제주4·3과 여순항쟁 희생자 70주기 합동분향소’에 김유화 여수시장 예비후보가 찾아 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전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여수지부가 설치해 시민들을 맞고 있다. 김 후보는 “여순사건도 ‘4·3사건’처럼 풀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며 “그동안 국회에서 수차례 무산됐던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돼 희생자와 가족들의 아픔이 조속히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중현 민예총 여수지부 사무처장은 “지역의 수많은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여전히 여순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가수 이효리가 시로 전달한 제주4·3의 ‘아픔’

    가수 이효리가 시로 전달한 제주4·3의 ‘아픔’

    제주에 이주한 가수 이효리는 3일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 중간중간 작곡가 김형석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바람의 집’(이종형), ‘생은 아물지 않는다’(이산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김수열) 등의 추모 시를 낭독했다.앞서 이효리가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섭외됐다는 소식은 지난 2월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 시즌8’에서 알려졌다. 이에 일부 팬의 반대에도 이효리는 “제주에서 뭔가 할 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게 됐다”며 행사에 참석했다. 시인 이종형의 ‘바람의 집’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4월의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섬, 4월의 바람은/ 당신의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당신의/ 바람의 집이었던 것” 시인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김수열의 시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어지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여기 심고 싶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 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광리 무등이왓 초입에 서서/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되어버린 상처마저 혀로 핥고/ 바람이 가라앉으면 바람을 부추기고/ 바람이 거칠면 바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워 뭇새들 부르고/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어른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그런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푸르고 푸른/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이효리는 시를 낭독하면서 제주의 아픔을 진하게 전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두 번 다시 우리 같은 비극 없어야”···제주 4·3 피해자의 눈물

    “두 번 다시 우리 같은 비극 없어야”···제주 4·3 피해자의 눈물

    “군인도 민간인 죽이고, 경찰도 민간인 죽이고, 거기에 누구하고 누구하고 할 것 없이 그냥 다 잡아 죽여버리고···. 하다못해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있는데 다 죽이고, 불 붙여 버리고···.”‘제주 4·3 사건’(이하 제주 4·3)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언입니다. 올해로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특별전, 역사기행, 학술대회, 문화제 등 이 사건을 추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됐습니다. 또 2009년 이후로 중단됐던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됐습니다. 제주 4·3은 비단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있었던 일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1947년 3월 1일 미국 군사정부(미군정) 경찰이 제주도민들을 향해 발포한 사건을 시작으로, 좌익 진영의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일으킨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간 무력 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최대 약 3만명의 도민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제주 4·3은 분단을 우려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무장대의 봉기가 있기 전에,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통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주 독립과 통일된 나라를 요구한 제주도민들의 열망이 스며 있습니다.김용선(73)씨의 아버지는 제주 4·3 이후 행방불명됐습니다. 지금의 제주 조천읍 조천리에 살던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1948년 2월 21일 사망하자 부산에 살던 김씨 가족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뱃길이 막혀 부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김씨 가족은 같은 해 4월 3일 이후 큰 시련을 겪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김씨의 증언을 통해 제주 4·3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주 4·3이 생존 피해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돌아보고 오랜 기간 우리 사회가 ‘덮어두었던’ 제주 4·3을 어떤 역사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기획·제작 오세진 기자·이승아 PD촬영 곽재순·이승아 PD
  • 제주 4·3 특별법 발의한 추미애…남다른 감회

    제주 4·3 특별법 발의한 추미애…남다른 감회

    “제주도의 4월은 철 냄새가 스며 있습니다. 제주도의 유채꽃은 피가 내린 곳에서 자랍니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자신의 트위터에 제주 4·3 사건과의 특별한 인연을 밝혔다. 국회의원 배지를 5번 단 추 대표는 20년의 의정활동 가운데 가장 보람찼던 일로 초선이었던 15대 때 ‘제주 4·3 특별법’을 발의한 것을 꼽았다. 추 대표는 당시 일을 자세히 적은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그는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었을 때 함께 제주도를 방문해 “인생을 바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이 DJ에게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제주 4·3 사건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말했지만 추 대표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고 한다.추 대표는 “제주 4·3은 일제 식민지 후 한반도의 이념대립 하에 제주도에서 가장 처참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이라면서 “경찰과 군인, 서북청년단 등 극우세력 등에 의해 30만명의 제주도민 가운데 2만~3만명이 무차별 학살됐다”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자신이 이런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군사정권이 계속되면서 제주 4·3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를 못하게 했고,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의 소재로 삼는 것도 단죄되었다”면서 “역대정권이 어두운 현대사를 철저히 왜곡하고 감추어 온 성과로 제주 4·3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보다 사건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더 많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유족들이 ‘빨갱이’로 낙인 찍혀 공직에 나갈 수도 없고 해외 출입 또한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추 대표는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심했다.당시 추 대표는 대전과 부산에 있는 정부기록보관소를 일일이 뒤져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제주 4·3 관련 재판 피고인 명단, 재판 기록 일부를 찾아냈다. 제주 4·3 관련 정부기록이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후 추 대표는 1999년 12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해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추 대표는 “제주 4·3이 끝나고 26년 후 광주 5·18이라는 닮은 꼴 비극이 되풀이됐다. 광주를 제주처럼 고립된 섬으로 만들고 양민학살작전을 벌인 후 역사 속에 묻어버렸다”면서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나쁜 역사는 반복된다.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찾아 완결짓는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서울포토] 4·3 희생자 추념식 오찬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4·3 희생자 추념식 오찬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라마다 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오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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