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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공식 명칭도 못 정했는데… 제주에선 4·3 이름 남발

    4·3 공식 명칭도 못 정했는데… 제주에선 4·3 이름 남발

    제주 곳곳에 ‘4·3’이 담긴 명칭을 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강철남 4·3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연말 제주 4·3을 상징하는 ‘43번’ 버스의 노선번호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했다. 강 위원장은 “43번 버스는 4·3평화공원을 경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노선번호로 알려졌지만, 2017년 8월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되면서 사라졌다”고 밝혔다. 도는 노선번호를 3자리 숫자 표기로 변경함에 따라 43번 버스는 343번으로 바뀌었다. ‘관광지 순환버스’를 제주4·3 유적지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중산간마을에서 운영하는 관광지 순환버스가 연 20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4·3 관련 시설과 유적지를 경유하도록 노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7일에는 제주국제공항의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찬식 제주가치 공동대표(전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가 유족 및 시민과의 합의를 전제로 ‘제주 4·3평화국제공항’으로 개명할 것을 주장했다. 과거 ‘정뜨르’라 불리던 현 제주공항 일대는 4·3 당시 대규모 양민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그러나 일부 도민들은 4·3의 이름을 너무 남발하다 보면 오히려 가치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주 토박이 고성철(56)씨는 “제주 구석구석에 4·3의 아픔이 서려 있지만, 아직도 4·3의 공식 명칭조차 정해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 제주에선 4·3의 이름을 써야 산다?

    제주에선 4·3의 이름을 써야 산다?

    최근 제주 곳곳에 ‘4.3’의 이름을 담은 명칭을 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강철남 4.3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연말 제주4.3을 상징하는 ‘43번’ 버스의 노선번호 부활 필요성을 제기했다. 강 위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43번 버스는 4.3평화공원을 경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노선번호로 알려졌지만, 2017년 8월16일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되면서 아무런 공론화 과정 없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도는 노선번호를 3자리 숫자표기로 변경함에 따라 43번 버스는 343번으로 바꾸었다. ‘관광지순환버스’를 제주4·3 유적지에 대한 접근성 확충 방안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주 동·서부 중산간마을에 운영하는 ‘관광지순환버스’가 연 20억 적자노선이라는 용역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4·3 시설·유적지를 경유하도록 노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 제주국제공항의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깜짝 제안도 나왔다.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찬식 제주가치 공동대표(전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가 유족 및 도민사회의 논의와 합의를 전제한 ‘제주4.3평화국제공항’으로 명칭을 개명할 것을 제안했다. 과거 ‘정뜨르’라 불리던 현 제주공항은 4.3당시 대규모 양민학살의 흔적이 있는 곳. 2018년 4·3 유해가 발굴된 상징적인 곳이어서 단순히 정책 제안으로만 보고 넘기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부 도민들은 4.3의 이름을 너무 남발하다 보면 그 가치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 토박이 고성철(56)씨는 “사실 제주는 시골 구석구석까지 4.3의 아픔이 서려 있다”며 “정작 제주 4.3사건은 아직도 그 이름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 19년만에 정부 차원 4·3사건 추가 진상조사 나선다

    19년만에 정부 차원 4·3사건 추가 진상조사 나선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에 따라 19년 만에 추가 진상조사가 이뤄지며 보상금은 하반기부터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4·3중앙위원회 추가진상조사분과위원회(위원장 주진오)는 지난 6일 4·3평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4·3추가 진상조사에 대한 기본계획안을 의결했다고 10일 밝혔다. 4·3사건 추가진상조사는 앞으로 3년간 시행되는데 ▲지역별 피해실태 ▲행방불명 피해실태 ▲4·3시기 미국·미군정의 역할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활동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조사 등 6대 주요 주제가 선정됐다. 특히 유족들은 연좌제 피해를 당할까봐 제주4·3 당시 부모, 배우자 등 가족의 희생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앞으로 내실있고 공정한 조사를 당부하며, 이미 고령인 4·3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증언 조사, 정부·기관 소장 자료 발굴, 미국 현지 조사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4.3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등 희생자들의 보상금은 1인당 9000만원이며, 보상청구권은 현행 민법상 상속순위에 따라 부여하기로 했다. 유족으로 결정된 사실상의 배우자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제사봉행과 무덤 관리를 하면서 이미 유족으로 인정된 4촌 이내 방계혈족이 사망한 경우, 그 자녀(직계비속)에 대한 청구권도 인정된다.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 주진오 위원장은 “앞으로도 더욱 충실한 추가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위원회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을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확정된 추가진상조사 계획은 이달 말로 예정되어 있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김부겸 국무총리)’에 회부돼 최종 의결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관련 기관 기록 수집·사료 조사·증언 채록 등을 위해 재단 조사연구실을 중심으로 추가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전문 인력을 추가 확충할 예정이다.
  • 文 “4·3 특별법 개정, 70년 만에 정의 실현”

    文 “4·3 특별법 개정, 70년 만에 정의 실현”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 공포안’과 관련해 “한국전쟁 전후 일어난 민간인 희생 사건 중 최초의 입법적 조치라는 면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임기 마지막 해의 첫 번째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이같이 밝히고 “사건 발생 70년 만에 이제라도 정의가 실현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산재사망사고 감축 방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 사고가 역대 최저로 감소했지만, 정부 출범 때 산재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에는 턱없이 미흡하다. 산업현장에서 여전히 후진적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부끄럽고, 사고가 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별한 노력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임기가 4개월 남았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지금이 가장 긴장해야 할 때”라며 “코로나 위기가 엄중하고 대격변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로, 마지막까지 비상한 각오로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정부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방역 노력과 소상공인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불확실성에 따른 범정부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 4.3희생자 보상금 1인당 9000만원 지급은 이렇게 시작됐다

    4.3희생자 보상금 1인당 9000만원 지급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해 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이하 4.3특별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4.3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시작된다. 제주도는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5년간 사망·행방불명 희생자 1인당 9000만원의 보상금을 균등 지급한다고 3일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보상금 지급 인원은 1만 1000여명으로 총 보상액은 9600억원이다. 올해 4·3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정부예산은 1810억 원이다. 1인당 9000만원 지급 산정 기준과 관련, 장윤식 4.3재단 총무팀장은 “과거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희생자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자녀 800만 원과 형제자매 400만 원을 지급하는 일명 8·4·8·4안과 비교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단순히 희생자한테 지급한 액수만 따진다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며 “유족회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일단 합의를 하고 향후 보완 입법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9000만원을, 후유장애인과 수형인인 경우 장애등급·구금일수 등을 고려해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인 경우 현 민법을 적용해 상속인의 보상청구가 가능하고, 무호적자인 경우는 그 유족으로 결정된 사람이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유족 보상청구권 대상에서는 희생자의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4촌의 직계비속(5촌)도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특히 현행 배.보상의 의미로 명시된 ‘위자료 등 특별한 지원’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보상금’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개정안의 제2조 정의에서는 “보상금이란 제주4.3사건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를 전보하기 위하여 지급되는 일시금을 말한다”고 명시됐다. 이와 관련 문성윤 4.3유족회 고문변호사는 지난달 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청회에서 ‘위자료 등’을 통칭해 사용한 ‘보상금’ 용어와 관련해 ‘배상금’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며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것은 배상 책임으로, 보상 용어로 전체 금액을 포함한 명칭으로 가는 것은 아쉽다. 배상 명칭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도는 올해 상반기 인사 시 도·행정시에 보상금 지급 등을 위한 전담팀을 각각 신설하고 읍면동에는 기간제 근로자 등을 배치해 보상금 신청 및 안내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4·3유족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보상지급 안내 영상을 제작해 읍면동, 4·3유족회 등 단체 등에 배포하고 각종 회의·행사때 유튜브 등 SNS, 버스정보시스템, 전광판 등에 다양한 홍보수단을 통해 안내에 철저를 기할 계획이다. 윤진남 특별자치행정국장은 “4·3희생자는 1만 5000여명, 국내에서 유례없는 다수에 대한 보상건이고 7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상이 이뤄지는 만큼 신청·접수 및 심의·결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도정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현충원서 만난 윤석열·이준석, 새해 인사 나눈 후 ‘냉랭한 기류’

    현충원서 만난 윤석열·이준석, 새해 인사 나눈 후 ‘냉랭한 기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가 1일 재회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21일 중앙선대위 모든 직책에서 사퇴한 후 처음으로 만난 자리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참배식에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김기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함께 나란히 참석했다. 따로 도착한 두 사람은 만나자 웃으며 악수했다. 윤 후보가 이 대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덕담을 건넸고 이 대표는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답했다.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더는 포착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참배가 끝난 후  ‘윤 후보와 같이 참배했는데, 앞으로 선대위 체계에 관해 풀어내나’라는 질문에 “당대표로서 당연히 참배해야 하고 책무를 했다”면서 “오늘도 추가 일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후보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한 것 외 나눈 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또 ‘윤 후보와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딱히 지금으로선 없다”고 짧게 답했다. 선대위 내홍 후 윤 후보와 연락을 한 적 있느냐고 묻자 “없다. 어떤 분이 말을 전해오신 건 있었지만 크게 언론에 공유할 만한 얘기들은 아니었다”고 전했고, ‘선대위 복귀 의사’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현충원 방명록에 ‘내일을 준비하는 국민의힘은 항상 순국선열의 희생을 빼놓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이 대표는 이날 4·3 평화공원 위령탑 참배(제주),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참배(여수), 여순사건 위령탑 참배·여순항쟁역사관 방문(순천)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한편, 이 대표는 현충원 참배 현장을 찾은 일부 유튜버들이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을 제기한 것을 거론하며 사퇴를 요구하자 “고소했으니 결과를 보시라”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이 대표 측은 가세연 출연진인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기자를 정보통신망법 위반(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 베스트셀러 작가들 잇단 귀환…이야기로 ‘우울한 사회’ 달랬다

    베스트셀러 작가들 잇단 귀환…이야기로 ‘우울한 사회’ 달랬다

    올 한 해 문학계는 ‘이야기의 힘’을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잇따라 귀환하면서 코로나19로 우울한 독자들을 소설의 풍성함으로 달랬다. 가족, 여성, 현대사, 스릴러 등 다양한 서사를 펼쳐 낸 여성 작가들의 강세가 여전한 가운데 문단의 변화와 성찰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 우선 ‘부커상’ 수상으로 유명한 한강 작가는 5년 만에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제주 4·3의 비극을 재조명한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저력을 입증했다.표절 파문으로 2015년부터 활동을 중단해 온 신경숙 작가도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통해 6년 만에 문단으로 복귀했다. 이 책은 미국 아스트라 출판사와 번역 출간 계약을 맺는 등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신 작가는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의도적으로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여전히 선을 그었다.‘7년의 밤’의 정유정 작가는 신작 ‘완전한 행복’으로 ‘스릴러 소설의 여왕’이란 명성을 입증했고,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소설집 ‘우리가 쓴 것’을 통해 페미니즘 서사를 이어 갔다.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SF작가 김초엽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최은영 작가도 첫 장편소설 ‘밝은 밤’으로 대산문학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작가들의 활약에 힘입어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올해(1~11월 기준) 한국 소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5%나 증가했다.여성 문인들의 주요 문학상 수상도 도드라졌다.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은 김혜순 시인은 지난 2일 스웨덴 ‘시카다상’ 수상자로 선정돼 노벨문학상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윤고은 작가는 ‘밤의 여행자들’(2013)로 아시아권 최초로 영국 추리작가협회(CWA) ‘대거상’을 받았다. 국내의 김승옥문학상 대상(문진영), 김유정문학상(권여선) 등에서도 여풍이 이어졌다.남성으로는 만화가인 마영신 작가가 ‘엄마들’(2015)로 만화계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 국제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 수상작 김금숙 작가의 ‘풀’에 이어 2년 연속 한국 만화계의 쾌거로 풀이된다. 유성호(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과거보다 페미니즘이나 여성 서사가 더 많은 관심을 모으게 되고 여성적 가치가 전면화되면서 여성 문인의 주류화 현상이 공고해지고 있다”면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경우 우리 문학이 다시 역사적 서사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유 교수는 “감염병 사태의 지속에 따른 생태학, 기후변화 등에 대한 담론적 관심이 증폭되는 만큼 2~3년 내엔 이를 반영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단의 변화와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난 1월에는 김민정 작가의 단편소설 ‘뿌리’를 거의 그대로 베낀 원고가 5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에 448개에 달하는 전국 문학상의 난립상과 허술한 검증 체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8월에는 원로 예술가·문인을 지원하는 대한민국예술원의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신입 회원 선출 방식과 방만한 운영이 논란이 돼 이기호 작가를 비롯한 문인 744명이 예술원의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 제주 밤사이 여진 없어...지진 직후 5시간 동안 ‘13회 여진’

    제주 밤사이 여진 없어...지진 직후 5시간 동안 ‘13회 여진’

    제주 서귀포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4.9 지진과 관련한 여진이 밤사이에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행정안전부와 기상청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19분 제주 서귀포시 서남서쪽 41㎞ 해역에서 규모 4.9 지진이 발생한 이후 총 13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8시 기준 마지막으로 발생한 여진은 14일 오후 10시36분 제주 서귀포시 서남서쪽 42km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1.3의 여진이다. 이를 포함해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여진은 규모 1.3~1.7 수준이다. 2017년 포항지진(규모 5.4) 때 규모 2.2~4.3 여진이 100회 발생했던 것과 대비된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30분까지 접수된 유감 신고(지진을 느꼈다는 신고)는 모두 173건이었다. 제주가 114건, 전남이 37건이었으며 기타 지역에서 접수된 신고는 22건이었다. 인명피해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으며, 4건의 재산피해가 제주시에서만 접수됐다. 접수된 사례는 ▲ 주택의 창문과 벽면 균열 ▲ 아파트 베란다 타일 균열 ▲ 연립주택 현관 바닥 타일 변형 ▲ 주택 벽면 일부 균열이다. 붕괴 위험이나 안전상 이상은 없었다.
  • ‘대장동 방지법’ 등 107건 올해 마지막 본회의 통과

    국회는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른바 ‘대장동 방지법’으로 추진한 도시개발법과 주택법 개정안 등 107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도시개발법은 민관 합작 도시개발사업의 민간 참여자에 대한 이윤율 상한을 두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 상한선은 시행령으로 정하고, 약정된 이윤율을 초과하는 개발이익은 주민 생활편의 증진 등 재원으로 사용된다. 주택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50%를 초과해 출자한 법인이 개발·조성한 토지는 공공택지로 분류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제주 4·3 희생자 보상 방안을 담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총인원 1만 101명에게 내년부터 5년에 걸쳐 1인당 총 9000만원씩을 지급해 전체 보상액 규모는 9090억원가량이다. 설·추석 연휴 기간 농수산물과 농수산가공품 선물가액 범위를 현행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의결됐다.
  • K리그1 첫 5연패 신화… 챔피언은 전북, 이젠 ‘상식’

    K리그1 첫 5연패 신화… 챔피언은 전북, 이젠 ‘상식’

    전북 현대가 5년 연속 왕좌의 자리를 지켜내며 최강의 면모를 뽐냈다. 전북은 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시즌 K리그1 최종 38라운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2-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통산 9번째 우승으로 전북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챔피언에 등극했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하던 울산 현대는 아쉽게도 우승컵 탈환에 실패하며 3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우승팀 향방은 안갯속이었다. 선두 전북은 이날 경기 전까지 2위 울산에 승점이 2점 앞서 있었다. 전북이 패하고, 울산이 승리를 거둔다면 우승팀이 바뀔 수 있었다. 전북은 이날 구스타보를 최전방으로 내세운 4-3-2-1전형으로 우승 사냥에 나섰다. 제주도 득점왕 주민규를 필두로 3-4-3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경기는 전북이 주도했다. 전북은 수 차례 제주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전반 25분 구스타보의 수비 뒤쪽을 파고드는 패스를 받은 한교원이 골키퍼를 제치며 득점 기회를 맞이했지만 결정력 부족으로 득점에 실패했다. 또 후반 2분 한교원이 다시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맞이했지만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승부는 후반에서야 결정됐다. 수 차례 선방 쇼를 펼치던 이창근이 후반 9분 전북 최철순의 헤더를 잡아내지 못하면서 튕겨 나온 공을 한교원이 침착하게 골대 안으로 넣었다. 공격이 풀리지 않던 제주는 라인을 끌어올리며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다. 남기일 감독은 후반 18분 장신 공격수 오스카 자와다와 이정문을 투입하고 높이에 승부를 걸었다. 후반 26분 자와다의 터닝슛이 아깝게 빗겨나가면서 전북은 한숨을 돌렸다. 후반 28분 쿠니모토 다카히로가 수비 뒷공간을 가로지르는 킬패스로 송민규에게 기회를 만들었다. 송민규가 먼 쪽 포스트로 침착하게 골을 결정지으면서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제주도 주민규와 제르소가 계속 전북의 골문을 노렸지만, 24년 만에 수비수 최우수선수(MVP)를 노리는 홍정호가 버틴 전북 수비진에 막히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승장 김상식 감독은 ‘화공’(화려한 공격)과 ‘형님 리더십’으로 데뷔 시즌부터 우승을 일궈냈다. 김 감독은 “욕도 많이 먹어 흰머리가 많이 났다”며 “결국 많은 팬분들 앞에서 리그 5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서 기쁘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울산도 대구 FC를 2-0으로 누르고 마지막까지 우승컵을 포기하지 않았다. 울산은 전반에만 2골을 몰아넣으며 일찌감치 승리를 굳혔다. 하지만 전북이 승리를 거두며 자력으로 우승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최종 라운드가 끝나면서 각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광주 FC는 최하위인 12위를 확정해 내년 시즌엔 K리그2에서 출발하게 됐다. 강등 위기에 놓인 11위 강원 FC는 오는 8일과 12일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대전 하나시티즌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 [포토] 제주 4·3 참배하는 이낙연

    [포토] 제주 4·3 참배하는 이낙연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뉴스1
  • [사설] 윤석열, 리더십 발휘 못 하면 한 번에 훅 간다

    [사설] 윤석열, 리더십 발휘 못 하면 한 번에 훅 간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벌써 사흘이 넘도록 공식 일정을 취소한 채 부산, 제주 등지를 떠돌고 있다. 사실상 당무를 전면 보이콧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제는 이 대표의 부재로 당의 선거대책위원회조차 열리지 못했다. 대선을 석 달 앞둔 제1야당의 모습이라 믿기지 않는다. 이 대표는 어제 제주 4·3평화공원 참배 후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의 익명 인터뷰가 갈등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인사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모르신다면 계속 가고, 아신다면 인사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갈등 원인이 ‘패싱 논란’ 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의 발언 때문으로 밝혀진 만큼 이제 윤 후보가 직접 나서 당내 갈등을 해소하고 지지자들의 걱정을 덜어 주는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한다. 이 대표 또한 “평소 자기 중심적 사고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당대표이자 선대위 홍보본부장으로서 대선을 진두지휘해도 모자랄 판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마치 투정 부리는 아이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세간의 소리를 알았으면 한다. 과거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파동을 연상시킨다”는 지적 또한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갈등의 이면에는 높은 지지율로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섣부른 기대가 있다는 분석도 곱씹길 바란다. 후보 선출 직후의 컨벤션효과는 사라졌고, 윤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 중인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선거에 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절실해진 것 아닌가. 대선후보와 당대표의 갈등도 문제지만 슬기롭게 풀어내는 후보의 리더십과 위기 관리 능력도 도마에 올랐다. 당 중진과 의원들은 “당대표 없이는 대선 망한다”고 하지만 중재 노력을 하지 않는다. 윤 후보라도 하루빨리 정치력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리더십과 위기 관리 능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지지자들의 믿음은 한순간에 훅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단죄와 진상 규명 없는 역사는 치유할 수 없을까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사죄 없이 사망하면서 국가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다시 조명받게 됐다. 역사의 법정엔 공소시효가 없다지만, 1948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한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고통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한(恨)으로 남길 수밖에 없을까.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이성아 작가의 장편 소설 ‘밤이여 오라’는 이처럼 국가 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려는 인물들의 분투를 그렸다. 2015년 독일어 번역가 변이숙은 자신이 번역한 작품의 저자 마르코의 초대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던 도중 잊고 싶은 20여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독일에서 짧은 유학생활을 했던 이숙은 대학 선배 현기표와 동거하게 됐고, 연락이 끊긴 기표를 찾으러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에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갔다. 이숙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북한 공작원으로 분류된 기표의 애인으로 낙인찍힌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이숙뿐 아니라 마르코의 입을 통해 1990년대 내전과 인종청소를 겪은 발칸반도와 한국의 상황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특히 제주 4·3 피해자의 후손이기도 한 이숙의 시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 시기까지도 이어진 간첩단 조작 사건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과 없이 펼쳐보인다. “용서니 화해니 하는 것들이 정치적인 제스처일 뿐이라는 걸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해? (중략) 죄의식은 늘 피해자들의 몫이야. 가해자들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감수성이 없으니까”(188쪽)라는 마르코의 말은 확실한 단죄와 진상 규명 없이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분노와 탄식만 내보이지 않는다. 치유와 화해의 시각으로, 참극의 슬픔을 이해하는 연대가 필요할 때 우리는 그 폭력을 온전히 멈추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등한시한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인정해야 좀더 큰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목놓아 호소한다. 한 여인의 우수와 고독을 전하는 감수성 깊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 3선 이하 슬림형 vs 중진 중심 실무형

    3선 이하 슬림형 vs 중진 중심 실무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기존 16개 본부를 6개 본부로 ‘압축한 선대위’로 재편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검증된 실무형 중진 선대위’와 본격 맞대결에 나섰다. 같은 6본부장 체제에서 ‘3선 이하’와 ‘검증된 중진’이라는 차이점이 각 당의 선대위 운영 방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이 후보는 이날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본부장단 임명 발표식에서 “선대위가 매우 무거워 기민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오롯이 국민만 보고 국민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전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기존 총괄본부장 산하의 16개 본부를 ▲총무(김영진·54·재선) ▲전략기획(강훈식·49·재선) ▲직능(김병욱·56·재선) ▲정책(윤후덕·64·3선) ▲조직(이원욱·58·3선) ▲홍보(김영희·61·전 MBC PD) 등 6개 본부로 축소·통합했다. 지난달 2일 매머드급 ‘용광로 선대위’가 출범한 후 한 달 만에 ‘3선 이하’와 측근을 전진배치하고 ‘기민성’을 강조한 조직으로 재편한 것이다. 반면 선대위 인선 잡음이 극심했던 윤 후보는 지난달 25일 실무를 책임질 본부장급 인선을 일단 마무리했다. 기존 실세형 총괄본부장을 없애고 수평적 구조의 6본부장 체제를 마련했다. 새 인물이나 외부 영입 없이 당내 검증된 중진들을 전진배치한 게 특징이다. 정책총괄본부장에는 윤 후보와 최후의 4인으로 경쟁한 원희룡(57) 전 제주지사, 조직총괄은 주호영(61·5선) 전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 종합지원에는 윤 후보의 최측근이자 사무총장인 권성동(61·4선) 의원, 총괄특보단장에 권영세(62·4선) 의원을 인선했다. 당대표이자 상임선대원장인 이준석 대표가 직접 홍보미디어총괄을 맡았다. 직능총괄본부장은 김성태 전 의원이 딸 KT 채용비리 논란으로 하루 만에 사퇴해 공석이다.
  • 케케묵은 칩거 대신… 이준석은 노마드 잠행

    케케묵은 칩거 대신… 이준석은 노마드 잠행

    지난달 30일부터 사실상 당무 거부에 들어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가 과거 정치인들의 경우와 사뭇 달라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정치인들이 자택 등 한 곳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붙박이 칩거 정치’를 했다면, 이 대표는 지역을 유랑하듯 순회하며 비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노마드식 칩거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칩거 정치의 대표 격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1992년 여당인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재임 시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 측과 충돌할 때마다 당무를 거부한 채 경남 마산에서 칩거해 노 전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낸 바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2016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 공천’해 당내 비판에 직면하자 당무를 거부하고 자택에 칩거했고, 문재인 당시 대표가 직접 자택을 찾아가 설득했었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지난달 30일 공식 일정을 돌연 취소하고 연락을 끊었을 때만 해도 서울 상계동 자택에 칩거하거나 서울 내 모처에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대표는 그날 오후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당 원로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져 여의도를 놀라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가 부산에 머물며 칩거 정치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튿날 이 대표는 자신과 불편한 관계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 들른 뒤 여의도의 예측을 비웃듯 전남으로 넘어갔다. 그는 순천과 여수를 찾아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인 천하람 변호사를 만나고 여순사건 유족들과 간담회를 했다. 그러고는 2일 배편으로 제주도로 이동하는 ‘광폭 잠행’을 선보였다. 그는 제주에서 제주4·3유족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대표의 휴대전화는 지난달 30일 이후 꺼져 있다. 그는 동행하고 있는 김용태 청년최고위원,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 박유하 수행팀장, 박종원 보좌역 등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일정을 잡고 외부와 소통하고 있으며 숙소는 지역의 호텔이나 모텔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특이한 유랑식 칩거 정치를 놓고 30대 중반인 이 대표의 신세대 마인드가 반영된 행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어차피 당무 거부 제스처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측에 압박하는 효과만 거두면 되는 만큼 굳이 답답하게 한곳에 머물 필요는 없다는 실용적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 이준석 “윤핵관發 발언, 상황 악화시켜” 윤석열 “리프레시 했으면”

    이준석 “윤핵관發 발언, 상황 악화시켜” 윤석열 “리프레시 했으면”

    여의도를 떠나 전국 각지를 돌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일 “제가 뭘 요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보시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모욕적인 인식”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제주 4·3 평화공원 참배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대선 후보의) 핵심 관계자 발로 언급되는 여러 가지 저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들이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격앙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후보측 핵심 관계자)의 익명 인터뷰를 사태의 핵심 중 하나로 짚은 것이다. 그러면서 “윤 후보가 윤핵관에게 어떤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하나하나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자신의 ‘잠행’이 돌발 행동이라는 일부 시각과 관련 “제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지금 저는 계획된 대로 행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대위 운영에 대해서는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으로서) 제 영역 외에는 다른 큰 관심사가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오는 6일 선대위 발족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발족은 (지난) 월요일에 했다”고 답했다. 다음 주 행사에는 불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저도 휴대전화를 꺼놓고 저와 같이 다닌 분들의 전언을 통해 여러 발언을 듣고 실소를 금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특히 “이것이 당무 거부냐 얘기하시는데, 우리 후보가 선출된 이후에 저는 당무를 한 적이 없다”며 “후보의 의중에 따라 사무총장 등이 교체된 이후 제 기억에 딱 한 건 이외에 보고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윤 후보 측이 내세운 권성동 사무총장이 김석기·성일종 부총장을 교체해달라고 요청한 것 이외에는 자신과 당무 관련 협의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당무 공백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현재 당무 공백은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윤 후보를 향해,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인사를 후보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모르신다면 계속 가고, 아신다면 인사 조처가 있어야 할 걸로 본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한편 윤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간담회 후 ‘이 후보 복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무리하게 (복귀를) 압박하듯이 할 생각은 사실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어느 정도 리프레시(재충전)를 했으면”이라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경선 때 우리가 함께 (경쟁)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빠른 시일 내에 원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지만, 본인들이 마음의 정리를 할 때까지 격려하고 순리대로 풀어가기 위해 많이 기다렸다”며 “그런 것과 같은 차원”이라고 현 상황을 풀이했다. 그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정권교체를 위해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런 차원에서 이 모든 문제를 대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 이준석 호남에서 제주로…“4·3 유족회 간담회 통보”

    이준석 호남에서 제주로…“4·3 유족회 간담회 통보”

    공식 일정을 전면 취소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일 제주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국민의힘 제주도당 등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인 1일 여수에서 출발해 배편으로 이날 오전 제주에 도착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4·3 희생자 유족회 관계자들과 만나 지역 행보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4·3 유족회 관계자는 “이 대표 측에서 유족회 방문 사실을 알려왔지만 시간 등 정확한 일정은 아직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부산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 1일 전남 순천을 연달아 찾았다. 이날 제주를 찾으면서 사흘째 비공개 지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제주 4·3 희생자 2530명, 재심 받을 듯

    제주 4·3 희생자 2530명, 재심 받을 듯

    해방공간의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인 1948년 제주4·3사건의 희생자들이 재심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22일 대검찰청에 4·3사건 수형인 명부상 2530명에 대한 유죄판결의 직권 재심 청구를 지시했다. 법무부는 이날 “대검찰청에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의 권고 취지를 존중해 관련 법률에 따라 신속히 직권재심을 청구하는 등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날 법무부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에 따라 ‘수형인명부상 2530명에 대한 유죄판결의 직권재심 청구’를 법무부 장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이 권고를 즉각 수용해 대검에 재심 청구를 지시한 것이다. 대검은 법무부 지시에 따라 빠른 시일 내 재심 청구에 나설 전망이다. 이미 대검은 법무부와 협업해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을 광주고검 산하에 설치하는 등 직권 재심을 준비해 왔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는) 4·3사건으로 제주도민들이 오랜 기간 겪어온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20년 11월 국회 논의 중이던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검사가 직권재심청구를 할 수 있도록 수정법률안을 제출했고, 국회는 이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해 법안을 가결시켰다.
  • [포토] 방화로 훼손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

    [포토] 방화로 훼손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

    18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이 방화와 쓰레기 투척 등으로 훼손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진은 방화와 쓰레기 투척 흔적이 남아있는 위령제단의 모습. 2021.11.18 연합뉴스
  •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죄 없는 민간인이 국가 권력의 폭력 속에 억울하게 잡혀가 스러졌다는 것이 여순사건이 빚은 비극의 본질입니다. 이제라도 나라가 진심 어린 사과로 유족의 한을 풀어 주고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합니다.” 비극의 고통은 깊고 길었다. 1948년 벌어진 여수·순천 10·19사건은 김규찬(72)씨가 평생 짊어져 온 아픔이자 벗어나고픈 굴레의 시작이었다. 철도승무원이었던 아버지 김영기(당시 23세)씨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을 열차에 태웠다는 이유로 내란죄에 몰려 정부 진압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 후 불과 한 달 만에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종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결국 마포형무소(지금의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 그로부터 73년이 흐른 지난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송백현)는 유족 김씨 측의 청구로 열린 재심 재판에서 김영기씨의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심청구인과 유족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이 고됐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며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는 이 사건을 통해 불법적인 폭력을 방관하거나 자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평생의 설움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판결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난 집안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으킨 반란을 정부군이 진압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이 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김씨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영기씨는 여순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 순천역 열차 차장으로 근무하며 아내, 그리고 네 살배기 딸과 함께 덕암리 철도관사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젊은 가장이었다. 아내는 아들 김씨를 임신한 상태였다. 김영기씨가 탄 열차는 전북 익산에서 출발해 순천역에서 정차하던 중 지역 일대를 장악한 14연대의 요구에 객실을 내줬다. 일반 시민도 탄 정기 운행 열차였지만 총부리를 들이미는 군인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관사로 쳐들어온 진압군에게 ‘반란군과 공모해 부역했다´는 내란죄 혐의로 체포됐다.김씨는 “어릴 적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인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열차 운행만 했을 뿐인데 영장이나 다른 법적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끌려갔다며 밤마다 우시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가 돌이 지난 저를 업고 마포형무소로 아버지를 찾아 면회를 갔는데 아버지 다리가 고문으로 죄다 뒤틀려 찢어진 살 사이로 하얀 무릎뼈와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더라”며 눈물을 지었다. ‘곧 나갈 테니 집안 장롱에 남겨둔 돈을 얼마간 생계비로 하며 기다리라’던 아버지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가장이 사라진 김씨 가족은 철도관사에서 쫓겨났다. 어머니는 매일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신문을 받으며 곤욕을 치르다 순천을 떠나 대구에서 멸치 행상을 하며 생활했다. 5살 된 누이는 괴질로 세상을 떴다. 가난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힘들었던 김씨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행상을 도와야 했다. ●철도공사 다니며 아버지에 관한 기록 모아 다행히 친척의 도움으로 고교를 겨우 졸업한 김씨는 전교 1등도 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반란자의 자식´이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다.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해 1차 적성검사와 2차 신체검사, 3차 필기검사까지 통과했지만 신원조회에서 걸렸다. 좌절한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철도학교 홍보 전단이었다. 국비로 교재와 옷, 장학금까지 준다는 말에 끌려 그대로 철도학교에 입학했다. 철도공무원이 되려면 연좌제 해결이 먼저였다. 행방불명된 지 20년이 된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에서 스스로를 파낸 뒤에야 여순사건의 그림자를 일부나마 벗을 수 있었다. 1971년 철도청을 거쳐 1982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계획요원으로 옮긴 그는 2008년 도시철도공사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38년을 철도공사에 몸담으면서 틈틈이 아버지의 흔적을 좇았다. 아버지가 탔던 서울~여수 전라선 노선을 탈 때면 아버지를 알던 동료 철도공무원을 찾아 증언을 듣고 기록을 모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까지는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재판에 나섰다가 행여나 자식에게까지도 불이익이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기는 진상 규명은커녕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그는 “운명처럼 아버지를 따라 열차 승무원의 길을 걷게 됐지만 한번 불이익을 겪기 시작하니 언제라도 또 그런 일을 겪을까 노심초사하며 살게 됐다”고 회고했다. ●아버지 옛 동료가 당시 상황 증언 ‘운명이려니´ 하고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재심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01년 여순사건유족연합회가 출범하고 2009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438명이 군경에게 집단 사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유족연합회에 있으면서 우연히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옛 동료는 당시 그가 어떻게 경찰에 끌려갔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군법회의에서 아버지가 무죄를 항변했음에도 확인 절차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도 증언해 줬다. 아버지의 동료인 철도 기관사 장환봉(당시 29세)씨 유족이 재심을 진행 중인 것도 알게 됐다. 김씨는 “장씨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며 검찰 자료를 통해 진압군에 끌려간 철도원이 66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철도업에 있으면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아버지를 비롯한 철도원들의 무죄를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1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가 장씨의 재심에서 내린 무죄 선고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 길로 국가기록원을 두 달간 뒤져 아버지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순천역 사무소 직원 명부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고 본적과 철도관사 주소 등을 대조해 퍼즐 조각을 맞췄다. ●유족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 많아 그렇게 지난해 5월 12일 법원에 청구한 재심은 8개월 만인 지난 1월 29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올 5월 첫 공판을 거쳐 마침내 법원은 6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첫 공판에서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나 자료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김씨는 “판결을 듣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아버지의 불명예를 내가 70여년이 지나 노인이 다 돼서야 죽기 전에 씻고 갈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결 5일 뒤인 지난 6월 29일에는 진상 규명과 희생자 지원을 위한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유족 대부분이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않아요. 너무 늦기 전에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합니다. 유족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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