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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가족버스 서명운동 전국으로 확산…세월호 진상 규명 및 안전한 나라 건설 촉구

    세월호 가족버스 서명운동 전국으로 확산…세월호 진상 규명 및 안전한 나라 건설 촉구

    ‘세월호 가족버스’ ‘세월호 서명운동’ 세월호 가족버스 서명운동 물결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일과 6일 주말 이틀간 전주와 울산, 광주,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세월호 가족버스’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6일 전북 전주에서 불교·개신교·천주교 등 지역 종교계와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또한 가족대책위는 7일 저녁까지 전북대 정문 등 시내 곳곳에서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특히 가족대책위 10여명은 이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관계자 등과 함께 울산시 남구 삼산동 롯데백화점 사거리와 중구 성남동 소방서 앞에서 울산시민을 상대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을 했다. 또한 가족 대책위는 6일 오전 제주시 신제주성당과 화북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한 신도 등에게 서명을 받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 속에 성당을 찾은 도민들은 서명용지를 앞에 두고 안내하는 단원고 학부모들에게 위로와 인사를 나누며 서명을 했다. 가족 대책위는 7일 울산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한편 가족대책위는 지난 2일 진도 팽목항(서부권)과 경남 창원(동부권)에서 출발한 버스로 전국을 돌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으며 오는 12일까지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종교플러스] 장기기증 ‘9999 캠페인’

    장기기증 ‘9999 캠페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장 박진탁 목사)는 오는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에 9999명의 장기기증 서약을 받기 위한 ‘9999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캠페인은 ‘장기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구하자’는 뜻을 모아 추진 중인 행사. 821명이 서약한 제주성안교회를 시작으로 서울 장위동 예수비전교회와 온사랑교회, 면목교회, 충의교회, 전주반석침례교회 신자들이 생명나눔 행사에 동참했다. 전국 40여 교회 및 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02)363-2114. 기독학부모 축제 29일 개최 영락교회와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는 ‘제2회 기독학부모 축제’를 29∼30일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에서 연다. ‘희망’을 주제로 한 이번 기독교학부모 축제에는 김양재(우리들교회)·김진홍(전 두레교회) 목사가 강사로 저녁집회를 인도한다. 자녀 키우기와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신대 박상진 교수의 토크콘서트와 문화공연도 열린다. 축제는 무료로 진행되며, 미리 접수하면 저녁식사 쿠폰과 강의 자료집, 희망 기도문 책자를 받을 수 있다. (02)2280-0131. ‘불교계 항일운동’ 학술토론회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 스님)는 29일 오후 2시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항일운동’을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개최한다.1920∼30년대 불교 인사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등 3가지 소주제로 나눠 발제와 지정토론으로 진행한다.
  • [씨줄날줄] 전투병과 女 장군/박대출 논설위원

    조선시대에 여정(女丁)이 있었다. 제주 방언으론 예청으로 발음됐다.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에 기록이 나온다. 1601년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돼 적은 기행문이다. “성을 지키기 위해 민간에서 건강하고 씩씩한 부녀자를 뽑아 화살받이터에 세웠다.”는 글이 담겨 있다. 왜구에 맞서려고 여성도 동참한 것이다. 사실상 전투에 참여한 여군(女軍)이었다. 지금의 제주성지(城址)는 예청이 활동하던 성터다.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여성이 전쟁에 참여한 역사 기록이 적지 않다. 잔다르크는 중세 때 프랑스를 구한 여전사다. 아마존이라는 여성 군대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신화 얘기다. 이전까지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여성도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비전투 활동에 주력했다.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왜군에 맞선 행주산성의 여성들처럼. 남북 전쟁에 간호요원으로 참전한 미국 여성들처럼.  우리 여군의 공식 역사는 1950년으로 계산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다. 그해 9월 1일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출범했다. 여군 전투복조차 없었다. 남자 군복을 줄여 입었다. 여성의 애국심은 열악한 환경을 뛰어넘었다. 491명을 뽑는데 3000명 넘게 지원했다. 여군은 이날을 창설 기념일로 삼는다. 올해가 60주년이다. 비공식 여군은 한해 앞선다. 1949년 7월 배출된 32명의 여자배속장교들이다.  1955년 여군훈련소가 설립됐다. 여군 양산체제 구축이었다. 금녀(禁女)의 벽은 두꺼웠다. 하나하나 허물어졌다. 1990년 여군 병과가 해체됐다. 보병·병참·항공·군수 등 다양한 병과에서 남자 군인들과 견주는 시대가 열렸다. 1996년 공사, 97년 해사, 98년 육사 순으로 입교도 허용됐다. 첫 별은 양승숙 장군으로 2001년 배출됐다. 지금까지 여군 장성은 5명. 간호병과에서만 나왔다. 2년에 한번꼴로.  어제 군 인사가 단행됐다. 육·해·공 3군 참모총장이 영남 출신이다. 편파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적 시비와 무관한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돋보인다. 전투 병과 출신의 첫 여군 장성. 송명순 장군이 주인공이다. 여군 26기로 보병 출신. 그의 등장으로 현역 여군 장성은 두명으로 늘었다.  정치적 계산이 깔렸을까. 너무 심한 비약이다. 질적으로 다른 사안들이다. 군도 이미 여풍(女風)시대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소장·중장·대장도 머지않았다. 2년 전 여성 4성장군을 배출한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제주 아트센터 19일 개관

    제주시는 오라2동 2만 6691㎡ 부지에 전체면적 9391㎡, 지하 2층, 지상 3층의 제주아트센터(Jeju Art Center)를 신축, 오는 19일 개관한다고 3일 밝혔다. 총 사업비 314억원(국비 20억원·지방비 294억원)이 투입된 제주아트센터에는 1184석 규모의 공연장과 분장실, 조명조정실, 관리사무실은 물론 제주도립 제주예술단의 연습실과 사무실 등이 갖춰졌다. 시는 개관식이 끝나는 오후 7시30분부터 도민들을 위한 축하음악회를 연다. 축하음악회에서는 도립예술단과 제주도청 숨비소리합창단, 신제주성당성가대, 산투스합창단, 펠릭스합창단, 제주주부교실판소리여성합창단 등 400여명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이 ‘경축음악회’, ‘투우사의 노래’, ‘축배의 노래’ 등을 부른다. 특히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인 국악인 오정해가 ‘꽃분네야’, ‘배 띄워라’, ‘진도 아리랑’을 선보인다. 김태백 제주아트센터 총괄담당은 “도민들을 위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 공연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아시지요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아시지요

    ‘제주 서귀포에 화가 변시지(邊時志)가 산다.’ 이 단순한 명제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제주를 알지 못한다. 서귀포에는 이중섭미술관도 있고 이중섭거리도 있다. 그 정도만 안다면 당신은 제주를 보지 못했다. 혹시 이런 뉴스를 들은 적은 있는가? 제주의 화가 변시지의 작품 <이대로 가는 길(100호)>, <난무(100호)>가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1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2007년 6월부터 향후 10년간 상설전시에 들어갔다는.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생존하는 작가로 자신의 작품을 건 화가는 변시지가 동양인으로는 처음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도 그의 사후에 전시됐다. 이는 변시지의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1926년 제주 서귀포에서 출생했으니 그의 나이는 한국식으로 83세. 그는 여전히 현역인 제주의 화가다. 변시지는 6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대회에 나가 오사카시장상을 받아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는 1948년, 23세 때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광풍회’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회원자격을 얻었다. 광풍회는 일본이 서양화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단체로 광풍회 공모전은 일본에서 일전(日展) 같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 화가들도 여러 차례의 입상을 통해 40이 넘어서 회원자격을 얻는 공모전인데 23세 조선 청년이 광풍처럼 나타나 최고상을 수상하고 회원자격을 얻은 일은 100년이 가까운 광풍회 역사에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신화로 남아 있다. 변시지는 1957년, 32세 때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 받고 일본에서 영구 귀국했다. 그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은 ‘조센징’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초등학교 때 씨름대회에 나가 다쳐 불구가 된 오른쪽 다리와 조국에서 펼칠 화가의 꿈이었다. 그러나 전후의 혼란스럽고 요란한 한국의 화단은 그를 실망시켰다. 줄서기를 강요하는 화단에 맞서 그는 부정으로 얼룩진 국전개혁운동을 2번이나 주도했다. 그 결과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절망과 자학뿐이었다. 비원(秘苑)을 주제로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비원 시대를 열어갔던 그는 1975년, 지천명의 나이로 제주로 돌아왔다. 서귀포를 떠난 지 44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제주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고독한 33년. 아내와 가족을 서울에 두고 스스로 유배자가 되어 고향 제주의 황토 빛을 찾았다. 동시대 화가들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진출을 할 때 그는 고향을 찾아 자신의 색깔을 찾았다. 스미소니언박물관 측은 그의 그림을 전시하며 “제주성(性)을 그린 그의 표현을 보면 그는 지역적인 특성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한 예로 이것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향 제주에서 찾은 색깔로 당당히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색깔과 소재가 있다. 누런 해와 누런 바다, 그 사이로 번쩍이는 흰 파도, 문이 닫힌 제주 초가, 소나무, 돛배, 돌담, 조랑말, 화가 자신을 표현한 고독한 사내, 까마귀 그리고 바람이 있다. 서귀포의 한기팔 시인은 변시지 그림의 소재를 “고향 제주의 이미지를 가진 기호”로 말한다. 시인은 “그 기호가 가장 지역적이며 개인적인 출발점에서 가장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변시지는 제주에서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들은 서귀포문화예술회관 내에 자리 잡은 기당미술관 안에 별도의 특별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유명세를 타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은 입소문을 타고 고급 매니아들을 가졌고 그 덕에 오래전부터 위작이 떠돌고 있을 정도다. 필자가 몇 년 전 서귀포에서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때 나는 감동에 찬 목소리로 동행에게 외쳤다. 한라산과, 제주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그림을 만났다! 고. 최근 서귀포에서 만난 변시지 화백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혼자서 생활하며 100호 대작을 그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집중력을 쏟아내지 못하지만 한 달에 몇 번 집중력의 시간이 찾아오면 ‘폭풍의 바다’를 오일캔버스에 재현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제주 바다는 오늘의 제주 바다가 아니다. 그의 바다는 신화의 바다며 영원의 바다다. 그 바다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화가에게 물었다. 왜 그 바다엔 바람이 부는가? 화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주는 바람으로 역사가 이뤄졌다. 바람 때문에 바다로 나간 남자가 죽고 여자만 남았다. 바람 때문에 씨앗은 다 날아가고 돌멩이만 남았다.” 모두(冒頭)의 명제를 바꾼다. ‘제주 서귀포에 세계적인 화가 변시지(邊時志)가 산다.’ 이제 당신도 그 명제에 동의할 것이다. 정일근·《경향신문》과 《문화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 시절 많은 특종상을 수상했으며 방송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주요 일간지 등에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한국의 고래를 보호하는 일과 동티모르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 [부고]

    ●김기환(자연환경신문 부장)신환(자영업)씨 모친상 배우창(서울시교육청 교육지원국장)씨 빙모상 2일 천안삼거리 장례식장, 발인 4일 오전 9시 (041)523-6099●홍형만(열린우리당 강원도당 조직국장)씨 별세 지민씨 부친상 1일 춘천장례식장, 발인 3일 오전 7시 (033)261-6895●정연우(부산여상 교사)연학(외환은행 대기업영업본부 차장)혜옥(굿인포메이션 대표)씨 부친상 강인형(일간스포츠 기획취재팀 차장)씨 빙부상 1일 부산의료원, 발인 4일 오전 9시 (051)607-2979●김재하(한국일보 제주주재기자)씨 모친상 강순숙(외도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부성찬(하남정보산업고 교장)씨 빙모상 2일 신제주성당, 발인 5일 오전 9시 017-693-1735●김하진(고려개발)영진(사업)용진(〃)택진(〃)상진(프라임렌탈 대표)씨 부친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93●조병헌(도시재개발조합 총무이사)병삼(사업)병춘(〃)병용(〃)씨 부친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6시 (02)3010-2238●손민수(이지스효성 부사장)씨 부친상 변기준(담연E&C 대표)임정수(사업)씨 빙부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92
  • [오늘의 경기]

    ■ 야구 대학봄철리그(낮 12시 동대문구장등) ■ 역도 올림픽대표선발전(오전 9시 올림픽역도장) ■ 사격 올림픽4차선발전 겸 봉황기대회(오전 9시 창원) ■ 유도 봄철대학대회 첫날(오전 10시 제주성산생활체)
  • 명예·의원퇴직 교원 572명 포상

    정부는 지난 8월말 명예퇴직 및 의원퇴직한 교원 572명에게 훈·포장 및 표창장을 31일까지 수여한다. 김대성 경성대 총장 등 2명은 청조근정훈장,김정일 서울명일초등학교 교장 등 19명은 황조근정훈장,최광자 부산 중현초등학교 교장 등 21명은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다. 녹조근정훈장은 최판석 대구 효명초등학교 교감 등 22명,옥조근정훈장은 김판걸 광주 송원여중 교감 등 48명,근정포장은 김훈 인천부광중 교사 등 78명,대통령표창은 권영호경기 팔달공고 교감 등 39명이 탄다.국무총리표창은 73명,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 270명이 받는다.국무총리 및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을 포함,전체 포상자 명단은 대한매일 뉴스넷(www.kdaily.com)을 통해 볼수 있다. 박홍기기자 hkpark@. ◇청조근정훈장 △金大成 경성대 총장△金相根 영남대 〃◇황조근정훈장 △李裕根 진주산업대 교수△鞠重根 서울오봉초등교장△金精一 서울명일〃△金貞子 서울개일〃△金東燮서울동일여자전산디자인고교장△權寧允 중앙대사범대부속초등교사△朴雄부산안락초등교장△金剛信 인천중앙여상교장△李基東 울산고교장△高文玉 울산교육청 학무국장△余泰炯 울산삼일여고교장△李俊永 경기덕장초등교장△金振達 충북충주고교장△林昌浩 경남이동초등교장△趙鏞道 경남유목〃△辛光司 경남양산여고교장△金仲吉 제주창천초등교장△千柄植 아주대교수△徐載文 공주교대〃◇홍조근정훈장 △金俊植 서울인왕초등교사△裵在濬 서울강동초등교감△崔光子 부산중현초등교장△朴玉子 부산광일초등교사△申相澈 대구서부교육장△李裕弘 대구대산초등교장△羅根炯 인천교육청 교육국장△金永珠 인천계산초등교장△金泳原 대전남선중교사△林翼洙 경기상촌초등교장△李聖哉 경기수원북중교사△李紀天 경기시곡중교장△金昌鉉 충북청주여고교장△金光輝 전남현경초등교감△文菊子 경남도산〃△趙鳳來 경남금산초등교장△徐正同 경남창원중앙중교장△金公淑 제주세화고교장△金相順 경북대교수△朴萬臟 고려대〃△李明燮 성균관대〃◇녹조근정훈장 △辛春男 서울옥수초등병설유치원교장△文庚年 서울선희학교장△尹成二 서울선린인터넷고교감△邊大海 서울세화여중교사△崔判錫 대구효명초등〃△申順喆 인천송도초등교감△林文基 울산메아리교장△成昇模 경기송정초등교장△尹榮洙 충북산외〃△申英鎬 충남관창〃△尹志遠 충남인터넷고교사△金元姬 전북동신초등교감△柳福永 전북전주상고교사△沈滄澤 전남나주중〃△洪一基 경북신광초등〃△曺順鉉 경북구미교육장△宋昌憲 경북문화중교장△李潤華경남수정초등교감△李大承 경남대곡중교장△姜秉湖 제주서귀포산업과학고교감△朴淳一 관동대교수△成光秀 목포대〃◇옥조근정훈장 △李眞永 서울동양공고교사△張榮奎 서울청원정보산업고〃△河奉玉 서울장훈고교장△金壽蓮 부산사동초등교사△蔡武則 부산이사벨중〃△朴源三 대구능인중〃△朴相達대구현풍중교감△李蓮植 인천동춘초등병설유치원〃△金判杰 광주송원여중교사△南基泰 광주서일초등교감△李喆洙 울산온양초등교장△高漢錫 경기장현초등교감△金孝子 경기비전〃△金壎 경기죽백〃△李鐘洛 경기성일고등교장△權純一 강원미동초등교감△申鉉秀 강원봉오〃△鄭斗勳 충북삼산초등교사△池益圭 충북진천여중교감△白南一 충남남포초등〃△羅燾秀 충남조치원여중〃△姜俊熙 충남아산고교사△金榮守 경북대보초등교사△尹旭 경북생활과학고교장△禹基和 경북대가야고〃△文吉英 경북상주여상〃△全泰沂 경남예곡초등교사△朴容吉 경남사포초등교감△姜益淳 경남무안〃△李美子 경남웅상〃△安秉道 경남중리초등교장△沈昌輔 경남진주교육청장학사△成敏光 경남진영여중교장△卓寬一 경남통영동중〃△李斗願 경남진교중교감△宋忠雄 제주성읍초등교장△崔榮熙 이화여대교수△金怡勳 강원대〃△朴庄平 강원대〃△尹龍雄 동의대〃△金善宗 성균관대〃△趙義濟 동명대〃△姜富男 동명대〃△朴聖喆 경북전문부교수△金英玉 대전보건대교수△尹斗根 울산과학대〃△金淵浩 영진전문〃△權相赫 광주교대〃◇근정포장 △姜港女 서울원묵초등교사△金敬愛 서울면북〃△姜聖俊 서울도림〃△孫英姬 서울문덕〃△李宇宰 서울수유중교장△金昌浩 서울경영정보고교감△曺成鉉 서울선희학교장△趙大衍 서울용산고교사△安宅遠 서울우신고〃△朴英大 서울홍익대사대부속고〃△韓京子 서울동일여중교장△崔大先 서울휘문고교사△莊炫俊 서울한양공고교감△鄭東株 서울상문고교사△金春子 부산반석초등〃△朴文秀 부산신도중〃△徐丙吉 부산해운대고〃△曺直相 부산다대고〃△朴惠順 부산절영초등〃△李鍾貫 대구팔달초등〃△金勳 인천부광중〃△李在淑 인천중앙초등교감△具珏會 인천대월〃△李南烈 광주동림초등교사△文官植 광주동〃△金蓮心 광주동림〃△鄭仁燮 광주효덕〃△朴吉男 대전관저〃△朴玉錫 울산여상교감△曺圭彬 울산서여상〃△吳瑩杓 울산남창고교사△兪聖德 경기성남제1초등교감△黃鴻均 경기부천신흥초등교사△金元梅 경기내유초등교감△金五鎭 경기화랑〃△鄭相培 경기호원고교장△李澈武 강원서원주초등교사△周天鍾 충북경덕〃△吳文淑 충북용담〃△韓台東 충북대성중교사△金俊植 충북충주예성여고교사△鄭用泰 충북용암중〃△李光熙 충북충주중교감△吳炳一 충남용남고교사△朴泰和 충남온양고〃△周永俊 충남천안여상〃△池錫泰 충남의당초등교감△金長根 충남홍주중교장△梁焌鎬 전북수지초등교사△金大成 전북전주덕일중교감△金大千 전남독천초등교사△李載年 전남금성고교장△朴世榮 전남일로초등교사△韓國仁 전남영광군남중〃△金仁鎬 전남문태고교감△金東壽 전남벌교초등교사△金成周 전남순천중앙〃△申一秀 전남구례여중교사△鄭世永 경북영양여중교장△金柄均 경북영해고교감△權鎬守 경북부구중〃△李泰慈 경북상주여상〃△李英姬 경남 함안초등교사△盧洹碩 경남유림초등교감△南振祐 경남자여초등교사△陳東仙 경남명동〃△李甲永 경남배영초등교감△李椿吉 경남덕오초등교사△趙太中 제주어도초등교감△車英淑제주서귀포여고〃△李汶樹 전남대교수△裵基源 관동대 부교수△李惠星 이화여대교수△裵基完 단국대〃△韓貞璉 단국대〃△車貴俊 동명대〃△金鐵柱 동명대〃△任純模 조선이공대〃◇대통령표창 △李成宰 서울대길초등교사△李世喆 서울용곡중〃△金敬 서울고척고〃△金惠永 서울면목중〃△朴淑子서울경희여고〃△鄭基昌 서울경문고〃△朴炳淑 서울영파여고〃△金宗烈 서울대성고〃△文貴子 부산우암초등〃△金盛龍 부산성지중〃△金榮宰 부산수영여중〃△徐丙寬대구동도여중교감△安秉星 인천갈월초등〃△趙珍植 광주금호고교사△李明玉 경기신안초등〃△權寧豪 경기팔달공고교감△劉東成 경기동화고〃△洪天基 충북운천초등교사△韓淵洙 충북흥덕〃△李龍雨 충남임성중〃△池源椿 충남논산공고교감△李錫吉 전북금성여중교사△朴香子 전남보성남초등교사△朴文樹 전남여수고교감△金景子 전남현경북초등교사△金王鎭 경북복주〃△韓和淑 경북금락〃△余大鎬 경북영덕〃△裵鍾龍경북청송중동분교장△白種武 경북용흥중교감△文鍾海 경북선화여고교장△李斗植 경북평해여자정보고교감△姜錫來 경남우암초등교사△鄭和順 경남촉석초등교감△許閏子 경남양덕초등교사△鄭炳連 전남대교수△朴秀吉 호남대〃△鄭大仁동명대〃△姜晋奎 경북전문〃
  • [문화도시 문화거리](11)탐라의 역사 재조명 제주시

    언제부터인가,저녁나절 제주시 탑동해안가에 서면 예술의 향기가 진득하게 묻어 나온다.육지가 그리워 목을 길게 뺀듯 지어진 해안가의원추형 야외공연장에서 기악·합창·무용·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매일이다시피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합창소리의 여운이 가시는 듯 멀어져 가면 관악의 장쾌한 화음이 울려퍼지고 때로는 굿판이 벌어져 3,000석의 노천 객석에 좌정한 관람객과 방파제주변 산책객들의 신명을 돋운다. 매년 8월이 되면 도내외 유명 예술단체가 40여일 내내 한여름밤의축제를 여는 곳도 해변공연장이다. 이 곳 일대는 횟집만이 즐비한 먹자거리였으나 95년 해변공연장이문을 열면서 연간 300일 이상의 각종 공연이 이뤄지는 문화·예술의산실이자 청소년의 거리로 바뀌었다. 제주의 문화사업을 선도하는 제주문화원이 자리하고 양중해 시인의시비 ‘떠나가는 배’가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삼성혈과 신산공원 사이에 있는 제주도문예회관 역시 도내외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는 문화·휴식 공간이다. 88년에 문을 연 이 곳 902석짜리대극장과 200석 규모의 소극장,157평짜리 전시실에서는 연중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가 펼쳐져 어느덧 문화욕구에 대한 도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문화샘터’가 됐다. 이외에도 지역 특색을 살린 용연포구에서의 ‘선상음악회’,전통민속을 재현하는 ‘탐라국 입춘 굿놀이’ 그리고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는 국제관악제 등은 제주에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듯한인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지난해부터 음력 7월 보름밤을 전후해 영주 12경의 하나인 용연포구암벽계곡을 따라 자연의 울림을 즐기며 열리고 있는 ‘용연 선상음악회’는 옛 선인들이 즐긴 풍류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사다. 탐라국시대부터 전래된 전통 민속행사로 제주목사가 주관이 돼 제주목 성안의 관민이 하나로 어우러져 새봄을 맞이했던 풍농굿인 ‘탐라국 입춘굿놀이’는 1만8,000신들을 불러 한해의 액막이를 하는 대동굿으로 올해 처음 탑동 해변공연장에서 선보여져 큰 박수를 받았다. 올해로 5회째가 되는 제주국제관악제는 아·태지역에서는 유일하게제주에서만 열리는국제 관악인축제로,지난 8월에도 총 9개국 1,500여명의 세계 유명 관악인들이 참가해 축제기간 내내 제주섬을 향기짙은 관악의 열기로 휩싸이게 했다. 한반도의 최남단 절해 고도이자 유배의 역사로 점철됐던 제주도.70년대 까지만 해도 문화예술의 불모지요 변방이라 홀대받았던 제주는이제 어제의 제주가 아니다. 연간 400만명이 넘는 내외 관광객이 출입하면서 제주만이 간직한 전설과 민요,고유한 민간신앙,독특한 민속예술 등이 탐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제주를 빛내고 있는 지역출신 문화·예술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영화인 임원식·양윤모·김종원,사진작가인 문순화·김익종·김용수·고영일,연극인 고인배,연예인 고두심·고지아·혜은이,음악인 신지화·김수정,무용인 양성옥·김미애,미술인 고영훈·김영철·김영호그리고 중앙문단의 거목 현기영·김시태·박철희·강범선 모두 제주출신이다. 보물 제322호와 제1187호인 관덕정과 불탑사 5층석탑,사적 제134호,제380호,제416호로 유명한 삼성혈,제주목관아지,삼양동 선사유적지,그리고 제주도무형문화재 제2호인 제주향교,제주도기념물 제1호와 3호인 오현단과 제주성지,지방기념물 제22호와 30호,35호인 해신사,화북 비석거리,삼사석 등 각종 문화재가 즐비한 제주시에서는 최근 문화유적 복원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확보하자는 바람이 훈풍처럼 불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와 삼양동 선사유적지 복원사업이 꼽힌다. 관덕정과 인접한 제주목관아지는 탐라국시대에는 성주청(星主廳),고려후기 원(元) 지배하에서는 탐라총관부,조선시대에는 대촌현(大村縣)이 자리했던 제주의 정치·문화·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최근 관아 외대문이었던 포정문이 완공된데 이어 오는 2002년까지관아내에 들어섰던 동헌·홍화각·연희각·애매헌·귤림당·청심당등이 복원돼 제주 유일의 문화 사적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96년 토지구획정리사업 추진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삼양동 선사유적지는 기원전 1세기 무렵 제주인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국내 최대의 선사마을 유적지다. 그동안의 발굴 과정에서초기 철기·원삼국시대의 적갈색 토기와 돌도끼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됐고 원형의 크고 작은 수혈움집과 대형창고,소형 저장시설,토기제작지,조리장소,야외 노지시설,배수시설,쓰레기장,고인돌 등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곳 역시 도심속 역사공원으로조성된다. 지역 문화·예술의 척도는 이들 사업에 쏟는 자치단체 예산이나 문화 기반시설 수와도 관련지을 수 있다. 제주시의 문화·예술사업 투자예산은 전체예산의 5.4%로 전국 평균투자율 1.4%에 비해 대단히 높은 편이다.박물관수나 문화재 분포비율도 전국 상위권 수준이다. 기반시설로는 해변공연장과 문예회관 외에 우당도서관, 탐라도서관등 2개 대형 도서관과 민속자연사박물관,제주대박물관,민속박물관,교육박물관 등 4개 박물관이 있으며 연건평 2,700여평,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국립제주박물관이 내년 개관을 목표로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이렇게 가꿉시다] “독특한 전설·토속신앙 개발을”. 제주시를 방문하는 사람마다 그 소감을 물으면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고 그래서 ‘환상의 섬’,‘신비의 섬’이라고 말한다.어떤이는 ‘한국의 보배’라고 까지 극찬할 정도다. 그러나 제주만의 전설과 민요,민속신앙 등을 갖고 있음에도 문화예술 도시로의 매력을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주는 최소한 우리나라 속에서 탐라국이라는 또 다른 한 나라가 명멸해간 땅이다.그래서 대륙과의 단절속에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보배로운 노동요와 놀이,나름대로의 민속과신앙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이라는 굴레와 척박한자연환경은 그러한 ‘보배’를 드러내 놓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탐라인의 숨결에서 제주 특유의 문화예술의 정체성을 찾아내려는 여러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17세기 무렵 창건됐다 소멸된 제주목관아지 복원사업과 선사시대 제주인의 혈거지였던 삼양동 선사유적지 복원사업 등이 그것이고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축제 개발과 참여가 다른 하나다. 제주문화의 정체성 찾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징후는 목관아지 복원에 필요한 기와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납함으로써,그리고 탐라인의 지배층 무덤이었던 고인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민간차원에서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민간단체가 주축이 돼 아·태지역에서 유일하게 제주시에서 열리고있는 국제관악제나 용연 선상음악회 역시 시민들 스스로 축제 예술을가꾸는 지혜의 터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시민의식은 앞으로열릴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에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싶다. 관이 문화예술 행사에 관여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다소 서투르더라도 시민들 스스로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때 축제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고 평화의 섬,생태의 도시,동북아의 관광 거점지인 제주도의제1관문 제주시를 생명력 있는 이상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발전시킬수 있을 것이다. 고경실 제주시 문화관광국장
  • 제주시 이도1동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0)

    ◎왕방울 눈·굳게 다문 입에 정감이…/훤칠한 키·비껴쓴 벙거지에 멋도 잔뜩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육지로 말하면 돌장승이다.옛날 기록에는 돌하루방을 일러 옹중석이라했다.돌하루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사투리다.어린 아이들이 돌하루방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버렸다.어딘가에 정감이 어린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돌하루방에서는 온화스럽고 푸근한 체취가 우러난다. 제주도에 돌하루방이 처름 등장한 시기를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다만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보고 어렴풋 짐작할 뿐이다.영조30년(1754년) 김몽규가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는 당시 제주 방어사로 전해인 영조29년에 관덕정(보물 322호)을 중창한 인물이기도 하다.그러나 전에도 있었는 데 다시 세운 것인지,또 처음 새로 세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든 「탐라기년」을 18세기 중엽 제주에 돌하루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제주도내에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돌하루방은 현재 45기에 이른다.모두 제주도 민속자료2호로 지정 받았다.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을 행정구역으로 한 조선시대 제주 삼현소재지에 집중 분포되었다.그래서 제주시내에 21기,대정면 인성·안성·보성리와 표선면 성읍리에 각각 12기씩이 남아있는 것이다. 옛 제주성 성문밖이 본래 제자리였던 제주시 돌하루방은 시내 여러 군데로 뿔뿔히 흩어졌다.제주시의 돌하루방은 대정면이나 표선면 성읍리 것들에 비해 우선 키가 크다.평균치가 1백80㎝를 넘는 훤칠한 키를 했다.그리고 대정면 돌하루방과는 달리 기단을 밟고 서 있다.제주도 돌하루방 하면 얼핏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지역 단위로 특성을 지닌터라 지역별로 비교하면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제주시 이도1동을 지키고 있는 돌하루방은 아주 멋이 든 돌할아버지다.제주시 이도1동은 제주목의 제주성 옛 터전인지라 이 돌하루방이야 말로 적자격의 돌하루방이라 할 수 있다.제주도 섬 전체의 돌하루방이 그렇듯 벙거지를 썼으나 멋을 부려 비스듬이 머리에 걸쳤다.닷새장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손자 주전부리를 사들고 오는 흐뭇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퉁방울눈은 이를데 없이컸다.눈이 하도 커서 눈을 만드느라 오목새김한 가장자리 선각이 자루병처럼 생긴 코와 아주 닿아버렸다.병자루 같이 생긴 코허리는 물론 코방울에까지 눈 가장자리가 맞물렸으니 크기는 큰 눈이다.역시 선각으로 표시한 큰 입을 굳게 다물었다.위엄을 갖춘 얼굴은 분명한데 무섭기 보다는 온화한 쪽에 비중을 더 실었다.그러니까 아주 인간화한 섬의 돌장승이 돌하루방일 것이다. 돌하루방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과 본래의 자리 성문 앞길이 방어상 유리한 S자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육지의 장승들처럼 돌하루방 또한 수호신 기능이 부여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황규호 기자〉
  • 제주 주성전문대학장 유성종씨(향토에 산다)

    ◎무심천서 몸을 키우고 우암산은 마음 살찌워/“곧게 살라”는 고향의 가르침 끝까지 지키며 제주 흙냄새 만끽 『고향은 따스함이요 삶의 뜻이며 또한 생활의 바탕이요 울(울타리)이지요』 이 시대 교육자의 사표로 추앙받고 있는 유성종(63·주성전문대학장)선생이 고향인 청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향토관은 60평생에서 우러나온 고해성사이다. 집 한칸 땅 한뙈기 없는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조실부모해 불우했던 선생은 외로웠던 유년시절 주성국교(당시 영정국교)를 감싸고 흐르는 무심천에서 몸을 키웠다고 했다. 고학생활과 함께 보낸 중·고교 학창시절 청주상고(당시 청주상업중학교)가 자리잡은 우암산은 곧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고 마음을 살찌워 주었다고 했다. 어머니요 스승이었던 고향땅이었기에 평생을 청주언저리에서 맴돌았다.충주대 법대를 거쳐 국어교사로 줄곧 교육현장을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는 열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81년 충주고교 교장 때에는 『교복이 학생들의 개성을 말살한다』며 정부의 조치보다 1년이나앞서 교복을 폐지했다.교육감재직 때 영세 중·고교의 통·폐합,국민학교 예·체능교과 전담제,외국어고·체육고·예술고 등 특수고교 설립 등 숱한 교육개혁시책을 추진했다. 물 좋고,산세가 수려하고 사람들의 두텁고 순박한 마음가짐이 어우러진 곳 청주 고향을 떠났던 「타향살이」는 단 두번. 젊은 시절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2년동안 고향을 떠난데 이은 두번째 「타향살이」는 역설적으로 『곧고 바르게 살라』는 고향산천의 가름침 때문이었다. 지난 91년11월 두번째 충북도 교육감을 지내고 있을 때였다.교육감의 선거제도가 완비되자 임기를 70여일 남겨두고도 『손해를 볼지언정 곧은 것이 인간다움』이라며 교육감직을 스스로 사퇴했다. 『후세를 위해 벽돌 한 장 놓고 떠나라는 자리에 임명된 교육감이 기득권을 누리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를 욕되게 한다고 생각했지요』 선생은 곧바로 초·중·고교 교육의 방향을 좌우하는 교육부 장학편수실장에 발탁돼 고향을 떠나게 됐다.차관급인 교육감 보다 한직급이나 낮은 장학편수실장직을맡아 두번째 기행을 기록했지만 서울로 향하는 차안에서 『명예롭게 떠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그후 차관급인 국립교육평가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부임 1년전의 대학입시부정과 관련,파문이 발생하자 곧바로 원장자리를 또 스스로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곧게 살라」는 고향의 가름침을 마지막까지 실천에 옮기며 서울 나들이가 「진정한 귀향을 위한 짧은 여정」이라는 다짐을 지켰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은 고향산천이 바뀌지 않고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는 선생은 매일 아침이면 고향냄새가 물씬 나는 우암산을 오르며 지난달 22일부터 맡은 주성전문대 운영을 구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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