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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본 파랑도(서울신문 50돌 특집)

    ◎한국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는 말한다/“「태풍의 길목」 기상관측의 최적지”/기상예보 정확성 높여 태풍피해 최소화/대륙붕 개발·어업전진 기지로도 활용 『파랑도는 해양기상 연구와 구난활동·어업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구환경 변화 감시에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과학기지를 건설해 한국 해양연구의 일류화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해양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재직하다 85년 귀국 직후부터 파랑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해양공학자 이동영박사(46·한국해양연구소 해양환경공학실장).87년부터 4차례나 격랑속의 파랑도 현장을 답사하면서 기지건설 기초 조사등을 벌여온 이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바람직한 파랑도 이용 방안등을 들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귀국후 폭풍에 의한 재해방지 관련연구를 하게 됐는데 현장 관측자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태풍이 지나가는 동지나 해상에 고정 관측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됐습니다.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해양 한복판에 고정구조물이 있으면 해양과 대기의 경계면에서의 와동에 의한 운동량이나 열,수증기,각종 가스등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기때문에 해양및 기상예측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거든요.그러던 차에 87년 「전설의 섬 이어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돼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구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필요한 설계조건 도출을 위한 기초조사와 각종 관측연구를 했습니다.정부간 해양위원회(IOC)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목표로 세계 해양관측 시스템(GOOS) 구축을 제안해 와 90년부터 「국가 종합해양 관측망 구축」을 국책연구과제로 수행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고정연속 관측소의 필요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지요.97년까지 구조물 완공을 목표로 94년부터 파고 조위계 설치 암석채집 정밀수심 측량등을 했지요.과거 태풍 자료와 7년간의 파랑자료,위성자료등을 모으고 시뮬레이션해 설계 조건을 구했어요.섬주변에 등부표를 설치해 제한된 관측도 시도해 봤습니다. ­과거에도 파랑도 개발계획이 있었지요. ▲파랑도의 최초 이용계획은 1938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작성됐습니다.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부설계획을 세웠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 지점인 파랑도에 인공섬을 건설키로 했어요.2차대전으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그후 개발계획은 87년 어업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두 물양장등 대형시설을 갖춘 축구장만한 크기의 인공섬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수조원이 소요되는 무모한 계획으로 판단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도 인공섬,혹은 연구기지는 어떻게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파랑도는 태풍에 의한 큰 파도로 구조물의 설계 시공이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들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기본 설계,실시에 들어가야 합니다.우선 해양 기상 부이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자료에 의한 기초연구를 수행해 나가고 고정 구조물은 최소한의 규모로 설치해 시범 운영하면서 충분한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정보화 사회와 우주개발시대에 걸맞게 통신과 지구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위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활용도가 넓은 만큼 국내에서는 여러 관련부처를 망라한 기획위원회가 발족돼 부처간 업무분담과 사업추진및 활용 운영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파랑도 과학기지는 어떻게 활용됩니까. ▲정확한 해양예보와 기상예보,조류등 해양학적 연구측면은 물론 환경 감시,해상교통 안내,구난기지로서의 활용과 나아가서는 대륙붕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됩니다.사실 우리나라는 육상에는 매 14㎞마다 하나씩 조밀한 자동 기상관측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상에는 기상관측소를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는 서쪽 지역의 기상 관측자료가 중요한데 여기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할 경우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국가 산업,경제에 파급효과가 클것입니다.파랑도에는 이미87년부터 해운항만청에서 등부표를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는데 등대를 설치하면 매년 10만척이 넘게 이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항해지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공헌할수도 있습니다.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전설의 섬」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세계화 추진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7년 완공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수대교 사고 이후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재삼 제기됐고 예산상의 문제점도 있어 그렇습니다.우리나라는 각종 연안문제가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측시스템 개선이 시급한데 해운항만청,수로국,기상청등 관련부처에서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밖에 파랑도 건설에 장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규모에 따라 인접국가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고 또 환경감시를 행할 경우 인접국들을 자극할까 하는 점입니다.따라서 초기에는 규모를 최소화해 국제 분쟁을 피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획득된 자료들을 국제사회에 제공해 지구환경 문제에 한국의 역할 수행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추진하는것도 방법입니다.건설이후 유지 운영도 과제가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이박사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국가의지,기상연구자들의 적극적 자세가 파랑도 사업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파랑도 전설/폭풍만나 표류하던 한 선원이 도착… 과부들만 모여사는 환상의 외딴섬에 파랑도가 곧 「이어도」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으나 제주도의 대표적 부녀노동요인 「이어도 허라…」의 가사내용을 음미해 보면 파랑도와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랑도가 한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81해리,중국 동도에서 북동쪽으로 1백35해리에 위치한 제주도와 중국사이의 수중 암초라는 사실과 노래가사중의 「강남가는 남해항로의 절반지점에 이어도가 있다」는 내용이 부합됨을 들어 「이어도전설」을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파랑도가 설사 이어도가 아닐지라도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여인들에있어 이어도는 상상의 섬이요,사후에 돌아갈 피안의 섬이다.그것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이어도에 있으며 자신들도 결국 그곳으로 떠날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남편을 잃은,과부들만 모여사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환상의 섬이라고도 일컫는다. 향토사가인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60)은 이에 관계되는 전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 지금의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마을에 고동지라는 젊은남자가 살고 있었다.어느 해인가 중국으로 국마진상을 가게돼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수십척의 배에 말을 가득 싣고 조천포구인 「수진개」를 떠났다. 배가 수평선쯤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폭풍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고 몇날을 떠다니다 마침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됐다.동료들을 모두 잃은채 고동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태풍을 만나 수중고혼 되는 바람에 남자어른이 없는 이른바 과부섬이었다.고동지가 도착하자 과부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집 저집에서 다퉈가며 고동지를 묵도록해 고동지는 밤낮없이 이 과부 저 과부를 전전해가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뿐,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고동지는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보게됐다.마치 고향집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들렸다.불현듯 고향에서 밭을 갈고 멧돌을 돌리고 있을 아내와 부모형제가 그리워졌다.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이후 달밝은 밤이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면 늘 바닷가를 찾았다. 초승달이긴 해도 달빛이 유난히 밝던 어느날 밤.고동지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노래를 읊조렸다.자신의 신세를 달래는 구슬픈 노래가락이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엇말 허민 나 눈물난다.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난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여기서 「강남」은 중국이며 「해남」은 바로 남해항로인즉,강남가는 길목 절반쯤에 있는 「이어도」에 내가 있으니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이어도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됐다.고동지의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며 우는 과부들도 많았다.이윽고 「이어도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후 고동지는 뜻밖에 중국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됐다.이어도에서 고동지를 섬기며 사랑했던 한 여인도 함께 따라왔다. 고향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큰 잔치를 벌였다.고동지의 아내는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이어도여인을 받아들여 한 가족이 되게했다.
  • 제주사태 다룬 대하소설 「한라산」 집필/현길언씨(인터뷰)

    ◎“소년기에 겪은 「4·3사태」 아직도 생생” 『제가 국민학교 2학년인 아홉살 때 제주 4·3사태가 터졌습니다.그후 수없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제 소년기의 체험은 선명하게 되살아났고,급기야 4·3사태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항상 곁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도 4·3사태를 다룬 대하소설 「한라산」을 집필하고 있는 중견작가 현길언(55·한양대 국문과 교수)씨.4·3사태를 앞뒤로 한 현대사의 격동기를 담은 「한라산」은 모두 5부 9권으로 제주 4·3사태 50주년이 되는 98년 완간될 대작인데 그 1부(1권),2부(2권)가 최근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됐다. 현씨의 고향은 남제주군 남원읍 수망리.당시 1백10여 가구 중 절반 가량이 초토화됐을 정도로 4·3피해의 한복판에 있었다.그런 만큼 작가 자신도 『그 악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토로한다.하지만 이 작품은 그같은 개인체험을 날것인 채로 전달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 진정한 미덕이 있다. 「한라산」은 4·3사태가 발생하기 전 일제말기 상황에서부터 출발한다.1부 「배반의 땅」에서는 2차대전이 끝나기 전 일본이 제주도를 본토사수의 교두보로 설정하고 7만명의 대병력을 섬에 배치하던 시기를,2부 「성조기시대」에서는 미군정 실시 후 47년 소위 「제주 3·1사건」 때까지를 시대배경으로 제주사람들의 일그러진 삶의 흔적을 더듬는다.4·3사태의 전사적인 성격을 띤 이 부분에서 현씨는 사태의 발생원인을 추적하는데 힘을 쏟는다. 『제주섬은 이미 2차대전 끝무렵부터 미군의 일본본토 공략기지로 설정됐고 일본 또한 본토사수를 위한 전략요충지로 여겼기 때문에 양국간 대규모 무력충돌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컨대 4·3의 비극은 미·일 등 외세의 대립에서부터 원초적으로 그 씨가 뿌려졌다는 게 작가의 기본시각이다. 그는 이어 제주도가 갖는 주변부적 성격도 4·3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다.중심부 정세에 어두운 변두리 지역 이상주의자나 모험주의자들의 명분론은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이념의 추종자처럼 만들어버렸으며,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중심부세력의 오판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 현씨는 『나머지 3·4·5부의 집필을 통해 아직도 아물지 않는 4·3의 상흔을 달래고 「한라산」을 4·3문학의 완결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제주도 소설」 잇따라 발표/제주 출신작가 오성찬 현길언 한림화

    ◎「어두운 시대…」「껍질과 속살」「꽃한송이…」 출간/「4·3사건」「6·25」 등을 토속정서로 묘사 제주도를 작품의 주요무대로,제주도의 토속정서를 소설언어로 그려낸 이른바 「제주도소설」이 오성찬,현길언,한림화등 제주출신작가들의 잇따른 발표로 문단의 이목을 끌고 있다.최근 발간된 오성찬의 「어두운시대의 초상화」(푸른숲),현길언의 「껍질과 속살」(나남),한림화의 「꽃한송이 숨겨놓고」(한길사)등 3편의 소설집이 그것. 이들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막다른 변방으로 자리한 제주도에서 과거에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일상사를 토속정서와 독특한 설화에 담아 제주도특유의 사투리로 표현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현재 한양대국문과 교수로 있는 현길언을 제외한 두사람은 아예 제주도에 정착해 있다. 오성찬의 「어두운…」은 6·25직후 서귀포에 피난와서 살았던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을 소재로 한 표제작을 포함,7개의 작품을 싣고 있다.자신의 15번째 소설집인 이 작품집은 작가가 10년정도 문예지등에 발표해온 중·단편가운데 무게가 느껴지고 애착이 가는 작품만 한데 모았다.표제작은 이중섭과 동시대를 거쳐온 한 무명화가가 제주도박물관 학예관으로 취임,개관준비를 위해 이중섭이 제주도에서 그렸던 그림과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라는 범속한 인물과 「천재」로 불리는 이중섭의 삶을 대칭적으로 살피고있다.현대인들이 쫓고 있는 허상의 의미를 분석한 이 중편속에는 이중섭의 제주도시절을 반추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곳곳에 녹아있다.또 단편 「연북정」과 「잡초이야기」는 조선시대 제주도의 역사적 사실에 착안한 작품이다. 오성찬은 지난 69년 군대문제를 다룬 「별을 따려는 사람들」로 등단,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이나 오랫동안 구전되어온 전설등을 직접 취재하여 문학적인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작가로 제주신문기자등을 거쳐 현재는 제주역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제주토박이. 현길언도 나이 40살이 되던 지난 80년에 등단할때까지 그곳에서 태어나 중년기까지 보냈다.그의 작품 「껍질과 속살」중 단편인 「김녕사굴 본풀이」는 제주도의 전설을 소재로 삼고 있다.제주판관이 유가적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김녕사굴을 없앴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행한 운명을 맞는다는 줄거리로 제주사람들의 현실과 논리를 뛰어넘는 집단의 꿈과 진실,그리고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또 「우리들의 조부님」에서 보듯 제주도 4·3사건때 억울하게 아들을 잃은 노인이 죽음을 얼마 앞두고 아들의 모습으로 빙의해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등 자신의 체험을 소설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그는 문학이란 「체험의 진실」을 어렵사리 주워 모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인 4·3사건이나 6·25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한림화의 「꽃한송이…」는 제주섬을 위한 작가의 10년에 걸친 진혼곡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제주여성들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삶을 소설을 통해 표현해 보고자 하는 작업이었다.「여정들」「자청비」「비바리」등 작품속에는 우리가 「해녀」라고 부르는 잠수세계와 지금 우리 여성계가 이루어내려는 여성사회의 모델이 제시돼 있다. 작품전편에는 제주지역의 말이 집요하리만치 고집스럽게 쓰이고 있다.작가는 『우리의 땅에 이런 언어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우리의 동족이 있음을 배우라』고 말한다.
  • 국위선양 일조로 가슴뿌듯/황태봉(소리)

    일요일 아침 마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가 여수에 온다는 전화를 받고 딸아이 방을 정리하다 「이어도」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내용은 환상의 섬 이어도에 대한 제주사람들의 남다른 감회와 애환을 젊은 해군장교의 느낌을 빌려 표현한 글이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소설속의 이어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몇년전 이어도를 다녀온 나는 남다른 감상에 젖었다. 지난 87년 8월11일 풍랑이 거친 제주항을 떠나 남서쪽으로 1백20마일을 항해하여 해도상에 작은 점 하나로 표시된 소코트라암(이어도)에 등대(등부표)를 설치하기 위해 현지 항해를 한바 있었다. 올해로 전국해상에 등부표를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표지공작선에 승선한지 어언 22년,선장의 직무를 맡은지 7년여,1년중 6개월은 바다에서 등대를 정비하는 선상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공해상의 장거리 항해는 처음이라 긴장도 되었고 미지의 섬을 찾아 등대를 설치하는 설렘도 있었다. 86년말 정책적인 차원에서 이어도 개발계획이 검토되면서 우선적으로 선박 항해안전시설을 설치하는방안이 수립됐다. 이듬해 5월부터 약 5개월간에 걸쳐 항로표지기지창 모든 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제작을 완료한후 시험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이어도」라는 표기를 한 등대를 무사히 띄운 후에야 선박의 안전은 물론 국위선양에도 일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기만 했다. 그후로 1년에 한번이상 유지보수를 위해 이어도를 찾았고 지난해 7월 규모가 큰 등대를 만들어 교체하고 왔다. 공직에 몸담은지 27년,외길로 한눈 팔지 않고 오늘에 이르는 동안 서해안의 인천항부터 남해안과 동해안의 속초항까지 3백여기의 등부표를 정비하고 설치하면서 남모르는 고통과 일반인들의 무관심속에서도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해서 오직 이길만을 걸어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도 군산과 인천의 등부표가 풍랑으로 유실되었으니 긴급히 출항하여 복구하라는 지시 가 왔다. 세밑의 한풍을 맞으면서 약 2주간의 등부표 복구작업을 위하여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출항해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소비자물가/서울·부산 9.7%로 공동1위

    ◎통계청 발표 「91년 지역통계 연보」/백만명당 윤화사망 충남 5백91명 최고/실업률 대구­지방세부담 인천 가장 높아/전세값상승 경기­인구대비 도서관장서 제주 으뜸 서울 사람들이 전국에서 제일 잘 살고 생활수준도 높다.당연히 아이들 발육상태 역시 가장 좋다.반면 공기가 나쁘고 사람이 붐비며 집값도 비싸 살기 좋은 도시라 하기는 어렵다.인천은 지방세부담이 가장 많아 세금을 많이 내고 있고,수원은 대기오염이 전국 제일이다.충남은 교통사고율과 어음부도율이 전국 최고이고,대구는 실업률이 가장 높다.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91년 지역통계 연보」에 따르면 서울은 승용차 보유대수나 1인당 저축액,생명보험 가입액,영화관람횟수,재정자립도,국민연금 가입자수,1일 급수량 등 주요 생활지표들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했으나 반대로 인구밀도가 높고 대기오염이 심하며 전세가격도 많이 올랐다. ○승용차수 서울 최다 인구 1백만명당 자동차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충남이 5백91명으로 가장 많고 충북이 5백56명,경북 5백31명순이다.더 혼잡하고 자동차가 많아 사고율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서울은 사망자수가 오히려 1백20명으로 전국 최저였다.자동차가 많고 혼잡한 대도시에서는 속력을 낼 수가 없고 접촉사고가 많은 대신 사망자수는 적은 탓으로 여겨진다. 충남북 모두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은 지형적 영향등으로 인한 도로구조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승용차 보유대수는 서울이 인구 1천명당 94.9대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대구(74.7대),대전(71.6대),인천(71.5대),경기(65.2대) 등의 순이며 전남이 24·1대로 가장 적었다. ○이농인구 더욱 늘어 인구밀도는 단연 서울이 높아 ㎦당 1만7천5백32명이다.다음으로는 부산 7천1백75명,인천 5천7백31명 순이다.부산과 인천등은 같은 대도시이지만 서울 인구밀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도간 인구이동률에서는 인천·광주·대전·경기가 대폭적인 전입초과 상태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서울과 부산은 오히려 전출초과를 나타내 눈길을 끈다.강원·충남북·전남북·경북은 여전히 전출이 전입보다 많다.농촌인구의 대도시 유입현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런 대도시의 인구유입에 따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나 전세금 인상폭은 대도시가 역시 다른 지역을 크게 앞서고 있다.인구밀도와 물가상승률이 높은만큼 대도시의 생존환경이 그만큼 어려울 것은 뻔한 일이다. 소비자 물가의 경우 지난해 전국 평균은 9.3%였다.그러나 서울·부산·대구가 모두 평균을 웃도는 높은 물가인상을 보였다.반면 인천과 청주가 가장 낮은 0.3%의 물가인상률을 기록,눈길을 끌었다. ○생보계약 제주 2위 전세가격 상승률은 경기가 가장 높아 전국 평균 3.8%보다 4.9%포인트 높은 8.7%를 나타냈다.꽉 차버린 서울로 들어가지 못한 지방으로부터의 유입인구가 경기도에 주로 주저 앉았기 때문이다.서울은 6.1%,인천도 5%로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1인당 저축액은 저축성예금을 기준으로 지난해말 현재 서울이 2백88만8천원으로 가장 많고 대구 1백41만5천원,부산 1백38만3천원의 순이다.서울의 저축액이 2위인 대구의 2배가 넘고 가장 적은 전남의 40만6천원보다는 7배이상 많아 서울의 돈 집중을 실감케 한다.인천·광주·대전의 저축액은 1백만원 안팎으로 비슷한 수준이며 관광지역인 제주도 이들 지역과 비슷하다. ○충남 급수규모 최저 부의 또다른 측정지표인 1인당 생명보험 계약액에서도 서울이 1천5백40만원으로 가장 많다.제주(1천4백40만원)가 도지역중 예외적으로 전국 2위를 차지하고 있어 제주사람들이 쏠쏠한 살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인당 급수량과 전력사용량을 통해서도 문화수준을 잴수 있다.급수량은 서울이 하루 4백52ℓ로 전국 최고이며,부산이 4백15ℓ로 2위,인천이 3백77ℓ로 3위를 각각 차지했다.이에비해 급수량이 제일 낮은 충남은 2백68ℓ인데 이는 문화수준의 차이도 있지만 상수도 보급률이 낮은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전력사용량에서는 인천이 5백54㎾h로 가장 많다.서울과 경기는 각각 5백4,4백99㎾h로 수도권이 가장 적게 사용하는 전남의 3백44㎾h보다 약 50% 이상을 더 쓴다. 어음부도율은 충남이 가장 높은 0.37%이고,제주가 그 다음으로 높은 0.3%이다.부도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로 0.04%.대구와 부산의 경우 섬유·신발등 주종산업의 부진으로 대도시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부도율(대구0.26%,부산 0.24%)을 보였다.물론 이같은 수치는 지난해의 것이어서 올해의 지역별 경기감각과는 다를수 있다. 교사 1인당 학생수는 대도시의 경우 40명 내외로 비교적 고른 수준이다.도지역은 경기·경남을 제외하고는 25명 내외의 수준인데 도서지방이 많은 전남은 22.7명으로 가장 적었다. 학생들의 평균체중(17세 남학생)에서는 대도시 지역인 서울이 64.2㎏으로 가장 무겁고 부산 63.3㎏,인천 62.7㎏,대구 62·4㎏의 순이며 제주·전남·경남이 각각 59㎏ 수준으로 낮은 그룹에 속하고 있다. ○대기오염 수원 최악 대기오염은 수원이 0.046ppm으로 허용기준치(0.05ppm)에 바짝 근접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심했고 다음이 서울(0.043ppm),대구·인천(0.041ppm),부산·울산(0.038ppm)등의 순이다.광주(0.017ppm)의 대기상태가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양호했다. 또 1인당 하루 쓰레기배출량은 서울과 인천이 2.9㎏으로 가장 많고 충남·전남이 1.1㎏으로 가장 적었다.전북과 충북도 1.3㎏ 및 1.4㎏으로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지역에 속한다. 한편 서울 사람들은 연간 1인당 2.41회 꼴로 영화를 관람한 반면 충남 주민들이 본 영화는 겨우 0.15회로 지역편차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부산과 대구가 1.75회 및 1.66회의 순으로 각각 서울을 이어 2·3위를 차지했다. 인구 1천명을 기준으로 한 공공도서관의 장서는 제주가 가장 많아 2백95권,다음이 대구의 2백50권,광주 1백91권의 순이었다.경기가 83권으로 가장 적다.어느 지역이든 인구 수만큼의 장서도 못 갖춘 셈이다.
  • 신석기∼삼국시대 유물 대량 출토/자연사박물관팀

    ◎북제주 궤네기굴서 60여점 발굴/골각기 등 생활용품이 대부분/본토서 임자도 거쳐 유입추정/천년주민활동 동시조명 자료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 「궤네기굴」에서 한반도문화를 맥락으로 제주도화한 패촉·골각기·점토띠구연토기편등 신석기시대에서 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처음으로 대량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관장 김윤기)팀이 지난달 28일부터 18일까지 발굴한 이 동굴유적 출토유물은 전복껍질을 갈아 만든 삼각편패족 20점을 비롯,곽지식적갈색토기편 10편,점토대구순토기편 8점,멧돼지 이빨로 만든 골각기 10점,석기류 3점,숫돌 9점,녹각 5점등 60여점에 이르고 있다. 발견유물중 석기류는 신석기시대,점토띠구연토기편은 BC 3세기,곽지식토기편은 BC 1세기이후 패촉,골각기등은 원삼국·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로 판명됐다.특히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1천여년 동안의 유물이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출토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동굴유적 「궤네기굴」은 길이 45m,폭 6∼7.5m 규모의 미니동굴로,동굴 바로위에는 동김녕리가 마을 보호수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높이 15m,둘레 5m에 수령 3백50년 된 팽나무가 자라고있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궤네기」동굴 바닥면적 50여평중 12평에서 이같은 유물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발굴면적을 넓힐 경우 생활유물은 물론 제사유물 등 상당수의 유물이 더 나올 것으로 보고있다.사슴의 짐승뼈가 많이 출토되어 이 동굴유적은 제사유적 기능을 함께 지녔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다. 「궤네기굴」 유적발굴작업을 지도한 서울대 최몽룡교수는 『이번 제주에서 처음 발견된 패촉등의 유물은 당시 제주사람들의 창작품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해로를 통해 제주에 유입된 철촉이나 석촉 등을 응용내지 번안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유입경로는 당시 본토의 낙랑에서 충남 안면도∼전남 임자도 등을 거쳐 제주도까지 왔을 것으로 추정했다.이 유적발굴작업에 참여한 조유전 문화재관리국 유적조사실장은 『출토유물들중 수렵과 관계된것들이 많은 점으로 보아 이것들은 제사유적이 아니라 생활유적으로 보는게 타당하다』면서 『학술가치가 큰 「궤네기굴」 일대를 문화사적지로 지정해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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