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컨벤션센터 우후죽순 애물단지 우려
자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전시컨벤션센터를 건립,공급과잉으로 월드컵경기장처럼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컨벤션센터 간의 전시 및 행사유치 과열경쟁에 따른 부작용은 물론,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인근 국가 도시들과의 시장 쟁탈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따라서 수급조절과 특화전략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깊어지고 있다.기존 시설들의 수지현황과 전망,현재 추진 중인 컨벤션센터 난립 실태,전문가 의견과 대책 등을 알아본다.
●지자체마다 난립… 공급과잉 불보듯
자치단체들이 고부가가치 창출을 내걸고 너도나도 전시컨벤션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나,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이 사업이 지자체들간의 조정을 거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동시다발로 추진되면서 중복투자,자원낭비의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01년 국내에서 개최된 회의와 전시회를 포함한 국제행사는 모두 556건.5년 전인 1996년 395건에 비해 41% 증가하는데 그쳐 이같은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신규 컨벤션센터 건립을 자제해야 할 뿐 아니라,기존 컨벤션 시설을 보유한 지자체들이 협의를 거쳐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서울 코엑스 한곳만 흑자
서울 코엑스(COEX)와 aT센터,부산 벡스코(BEXCO),대구 엑스코(EXCO) 가운데 흑자를 낸 시설은 서울 코엑스 1곳에 불과하다.코엑스는 지난해 총 135건의 전시회를 열어 2001년과 비슷했으나 가동률이 90%로 크게 향상되면서 47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재작년에 비해 67%의 신장률을 기록하고 13억원의 순익을 거뒀다.
그러나 2001년 4월 문을 연 대구 엑스코는 지난해에 41차례의 전시회를 포함,총 620건의 행사를 유치하면서 52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으나 1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엑스코는 올해 가동률을 지난해(35%)보다 2배 가량 끌어올려 1억 7000만원의 흑자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흑자달성 여부는 미지수다.
총 사업비 1600억원이 투입돼 2001년 5월 개관한 부산 벡스코는 지난해 40%의 가동률을 보이면서 11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그러나 적자(1억 7000만원)를 면치 못했다.농수산물유통공사가 지난해 11월 건립한 aT센터는 개관 후 2개월간 10차례의 전시회를 개최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올해 매출 목표가 51억원에 불과해 적자운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지난달 22일 문을 연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의 건립에는 총 1806억원이 투입됐다.그러나 별도의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한 시설이 100% 가동되더라도 연간 최소 12억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제주도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컨벤션시설 내부에 내국인 면세점을 두는 방안과 인근에 대규모 호텔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창원·인천·대전·고양·수원·광주도 건립 추진
경상남도와 창원시는 창원시 두대동에 730억원을 들여 컨벤션센터를 건립키로 하고 이미 지난해 12월 착공한 상태다.전체 부지 가운데 일부에는 민자유치를 통해 특급호텔과 쇼핑몰,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을 건립할 계획이나 수년째 원점을 맴돌고 있다.
오는 7월 국제무역자유도시로 지정될 인천 송도신도시에는 2006년쯤 국제컨벤션센터가 들어선다.127억달러(약 16조원)의 투자 계약을 체결한 미국 게일사가 1억달러(약 1200억원)를 들여 연건평 8350평(1차분) 규모로 지어 인천시에 기부채납키로 돼 있다.이르면 올해 10월 착공된다.
대전시는 487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6년까지 연면적 6700평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건립키로 하고,올해 설계비로 3억 5000만원을 확보해둔 상태다.
경기도는 고양시,무역진흥공사와 함께 고양시 대화동 일대 23만여평의 부지에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아시아 최대인 5만 4000평 규모의 전시장을 건립할 계획이다.수원에도 1000억원을 들여 국제 수준의 중규모 전시컨벤션센터 건립을 구상 중이다.
광주시는 2005년까지 995억원을 들여 상무 신도심인 서구 치평동에 컨벤션센터를 짓기로 하고 올해 11월 착공할 계획이다.전남 목포시의 신안비치호텔도 객실 60개,14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국제회의장 건립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울시도 상암동의 17만여평에 조성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1조 6000억원을 들여 지상 100층 규모의 디지털미디어센터를 건립할 계획인데,이 시설에 컨벤션시설과 전시관이 포함된다.
●역할분담·신규건립 자제등 대책 시급
전시컨벤션 기획사인 ㈜리컨벤션의 공현미 과장은 “제주의 경우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관광 및 리조트 중심의 전문 전시컨벤션센터로 자리잡아 타 지역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부산과 경남,서울과 일산 등 동일권역에서 전시장이 복수로 들어설 경우 ‘제살깎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따라서 그는 “권역별로 지자체들이 상호협의해 역할분담을 하거나,신규시설 건립을 자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벡스코의 유동현 홍보팀장은 “부산·울산·경남권의 산업규모로 볼 때 국제규모의 전시회가 연간 50∼60회 가능한데,현재 연간 30여회 수준인 벡스코의 가동률이 높아지면 이웃 컨벤션센터는 거의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동북아 전시컨벤션 행사를 놓고도 홍콩 싱가포르 도쿄 등 이 부문의 기존 선진도시와의 경쟁은 물론,중국 상하이·베이징·칭다오 등 신진 도시들과도 치열한 각축이 예상된다고강조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2001년 열린 국제행사 556건 가운데 서울에서만 60%(332건)가 개최되는 등 이미 지역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 상태”라며 “컨벤션시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 출혈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적어도 지역별 특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 정리 김영주기자 chejukyj@
■‘세계적 성공작' 코엑스
1986년 당시 ‘무모한 투자’라는 비난 속에 88서울올림픽에 대비해 설립된 코엑스(COEX)는 한국을 대표하는 컨벤션센터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코엑스를 벤치마킹하려고 외국 관계자들의 방문 횟수만도 연간 400여차례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세계무역센터협회(WTCA)로부터 ‘실버’ 등급을 받았다.국내에서 ‘골드’ 등급을 얻은 시설은 없고 실버도 세계에서 5곳 뿐이다.
흑자경영이라고 해서 컨벤션센터 운영만으로 돈을 버는 개념은 아니다.
이광헌(41) 홍보팀장은 “국제회의 유치로 인한 국가·도시 이미지 제고를 감안하면 잠재가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국제적으로 통상 가동률이 60% 정도면 정상운영이라고 본다.
연간 400억원의 산업자원부 지원금 가운데 일부가 도움이 됐으나,성공적인 컨벤션센터로 발돋움한 데에는 공격적 마케팅과 국제회의 개최에 대한 정보수집을 통한 잠재수요 파악 등 노력이 크게 뒷받침됐다.
이 팀장은 “회의뿐 아니라 관련 전시회를 동시에 개최하는 게 국제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컨벤션 관련 회의체에 가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여기에는 그 도시의 국제적 이미지가 얼마나 강한 지가 지렛대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 개개인의 ‘몸으로 때우기’식의 노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서 “숙박시설 등 관련 산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국제회의 유치에 재투자하는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컨벤션산업 선진국인 독일 등 외국의 경우처럼 관련 산업의 수익 일부분을 국제회의 유치에 쓰도록 하는 등 정부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미국 라스베이가스가 관련산업에서 얻는 수익 중 연간 1000억원을 국제회의 유치에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컨벤션산업이 다른 부문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국제 관광업계에서는 외국인 참가자 1명의 부가가치가 TV 6대 수출,승용차로는 0.2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고 소개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2001년 134차례의 컨벤션·전시회를 개최해 세계에서 18위,서울은 107차례 개최로 8위에 올랐다.2000년엔 국가 24위,서울 20위였다.
송한수기자 onek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