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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 닮은 불상, 갤러리 품은 법당… 이토록 힙한 불교[마음의 쉼자리]

    아이돌 닮은 불상, 갤러리 품은 법당… 이토록 힙한 불교[마음의 쉼자리]

    ‘탈권위’ 나선 우리나라 최고 사찰법당 출입문엔 동화 속 ‘어린 왕자’내부엔 금빛 대신 무광택 흰색 불상한쪽 벽면에 그림 전시까지 열려 요즘 불교계 화두 중 하나가 ‘엄숙주의를 내려놓는 것’ 아닐까 싶다. 얕고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교계 일부의 우려가 분명히 있지만 주류적 지향점은 여전히 ‘힙하고 핫한’ 불교인 듯하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이라는 인천 강화 전등사에도 이런 탈권위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무설전(無說殿)이 그곳이다. 법당 내부에 신진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있다. ‘예술 품은 법당’인 셈이다. 불교에 무지한 이에게 무설전이 가진 뜻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심오하다. 전등사 스님 등에게서 귀동냥한 내용을 요약하면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은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는 의미다. 묵직한 이름과 달리 무설전은 안팎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법당 출입문 위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앉아 있다. ‘악착 보살’ 같은 조형물은 봤어도 국내 법당에서 외국 동화의 주인공은 처음 본다. 젊은이들에게 절집 문턱을 낮추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법당 내부도 마찬가지다.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지장·보현·문수·관세음보살상이 모두 흰색이다. 여느 절집처럼 개금(改金·금칠을 입히는 것)한 불상이 아니다. 광택이 없는 흰 폴리우레탄 도료를 칠해 꼭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거부감을 덜어 주기 위해 문수보살에 남자 아이돌 이미지를, 보현보살에는 걸그룹 이미지를 담아냈다. 무설전 중앙의 석가모니불 좌상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모티브로 한다. 주불 뒤는 돔 형태로 파였다. 물론 광배를 형상화했을 터다. 돔 주변을 장식한 그림 역시 전통 탱화가 아닌 프레스코(회벽에 수용성 물감으로 그린 그림) 벽화다. 법당 프레스코화는 무설전이 국내 처음이다. 탱화에서는 보통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한다. 물론 무설전은 다르다.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등을 부처 가까이에 그려 넣었고 바이올린을 켜는 선녀상도 등장한다. 천장에는 닫집이나 단청 대신 보랏빛 전등을 달았다. 연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모두 999개다. 천장 전체의 큰 사각형은 마지막 1000개째 연등을 상징한다. 법당 한쪽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서운갤러리에서는 이유지 작가의 개인전 ‘KARMADISE’(카르마다이스)가 열리고 있다. 카르마다이스는 ‘Karma’(카르마·업)와 ‘Paradise’(파라다이스·낙원)를 조합한 단어다. 좋은 카르마를 통해 이상적인 삶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담았다. 전시는 30일 종료한다. 무설전이 깃든 전등사는 기록상 창건일이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까지 거슬러 오른다. 대웅전과 철종 등 국가유산 보물이 적지 않다. 철종은 중국 북송 시대 때 제작된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병기로 쓰기 위해 부평 병기창에 가져다 놓은 것을 광복 후 전등사로 옮겼다고 한다. 다른 나라 유물이 우리 국가유산에 선정된 것은 드문 경우다. 대웅전 처마 네 곳에는 나부상(裸婦像)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을 조각한 것인데, 여기에 담긴 전설이 재밌다. 조선 광해군 연간에 전등사 조성을 맡은 도편수가 주막집 주모와 사랑에 빠졌단다. 한데 도편수의 몸과 마음에다 돈까지 살뜰하게 챙긴 주모가 이를 홀라당 들고 튀었다. 이후 도편수가 평생 지붕을 인 채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살라고 처마에 주모의 형상을 새겼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이 전등사 주지로 있던 1957년에 지은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라는 시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네 곳의 나부상은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주의 깊게 살펴보시길. 여성이라기보다 야차나 원숭이를 조각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아들 숙제 내지 마세요” 사유리, “뻔뻔해 보여” 5개월만에 입 열었다

    “아들 숙제 내지 마세요” 사유리, “뻔뻔해 보여” 5개월만에 입 열었다

    방송인 사유리가 아들 젠이 다니는 학원에 “아들이 숙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숙제를 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던 것에 대해 “말실수였다”며 사과했다. 사유리는 지난 2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사유리의 데스노트’에 공개한 영상을 통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제작진에게 사과했다. 이어 “영상을 보니 ‘나 안 해요’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게 뻔뻔해 보이더라”며 “내가 봐도 보기 안 좋았다”고 돌이켰다. 사유리는 ‘숙제 거부’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선생님께는 ‘부탁드립니다’라고 했고, 선생님도 괜찮다고 하셨다”면서도 “유치원도 규칙이 있는데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내 잘못을 통해 다시 한번 많이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젠이 2년 뒤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규칙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면서 “나도 어렸을 때는 숙제를 아예 안 했는데, 나처럼 되면 안 된다. 젠이 나보다 더 좋은 인격을 가지고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유리는 일본에 계신 부모님도 ‘숙제 거부’ 논란을 알고 있으며, 사유리에게 “숙제는 해야 한다. 너처럼 되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고 전했다. 앞서 사유리는 지난 3월 방송된 ‘A급 장영란’에 출연해 아들 젠이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라 불리는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교육관을 밝혔다. 사유리는 학원 측에 “우리 아들은 숙제를 절대 안 한다. 나도 이 나이에 숙제하는 걸 반대한다. 나는 숙제 안 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절대로 우리 아들한테 숙제 보내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는 숙제가 젠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지만, 고액의 원비를 내고 영어 교육을 받는 ‘영유’를 보내면서 숙제를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특정 원아가 숙제를 거부할 경우 이는 숙제를 열심히 해오던 다른 원생들에게도 방해가 될 수 있으며, 학원의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아들 숙제 시키지 마” 사유리, 5개월 만에 “반성하게 됐다”

    “아들 숙제 시키지 마” 사유리, 5개월 만에 “반성하게 됐다”

    지난 3월 아들의 유치원 숙제를 거부했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던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가 “말실수였다”며 사과했다. 사유리는 지난 26일 개인 유튜브 채널에 ‘사유리가 아이 숙제 안 시키는 이유 해명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이같이 밝혔다. 유튜브 영상 제작진과 만난 사유리는 해당 발언 영상에 관해 “나도 그 영상 봤는데 좀 뻔뻔해 보였다. 내가 봐도 보기 안 좋았다”고 인정했다. 숙제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당시 상황에 관해서는 “(아들의) 선생님께는 (공손하게) ‘부탁드립니다’라고 했고 선생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셨다”면서도 “유치원에도 규칙이 있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들 젠이 2년 후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5살이니 규칙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3월 사유리는 방송인 장영란의 유튜브 영상에 출연해 아들의 유치원 등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당시 “(아들에게) 숙제가 있었는데, 선생님께 ‘우리 아들은 숙제를 절대 안 한다. 나도 이 나이에 숙제하는 건 반대다. 나는 숙제 안 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 아들에게 숙제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영상 속 해당 발언 내용을 접한 누리꾼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민폐”라는 지적을 쏟아냈다. 이날 영상에서 사유리는 팬들의 지적에 대한 감회를 묻는 말에 “맞는 말이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니까 이번 기회에 반성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나도 어렸을 땐 숙제를 아예 안 했다. 규칙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고도 했다. 사유리는 “(아들이) 나처럼 되면 안 되니까 나보다 더 좋은 인생과 인격을 많이 배우면 좋겠다”며 “내가 못 했던 것, 내가 약한 부분을 더 성장시키고 싶다”고 고백했다. 관련 기사를 본 사유리의 부모님이 “숙제는 해야지, 아니면 너처럼 된다”라고 지적했다고 밝히기도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오해가 될 만한 태도를 보인 점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다”라고 한 뒤 본인이 직접 만든 ‘숙제송’도 함께 공개했다. 미혼인 사유리는 2020년 서양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 젠을 낳았다. 사회적으로는 익숙지 않은 ‘솔로맘’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 “바티칸에 사자보이즈 있다” 입소문…김대건 신부 화제된 이유

    “바티칸에 사자보이즈 있다” 입소문…김대건 신부 화제된 이유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 인기와 함께 뜻밖의 곳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이다. 26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케데헌 인기에 난감해진 바티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2023년 9월 세워진 조선의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성상 사진 위에 “바티칸 사자 보이즈(Vatican Saja boys)”라는 영문이 적혀 있는 글이었다. 이는 전날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먼저 올라온 게시물로, 갓을 쓴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케데헌’에 등장하는 저승사자 모티브 남자 아이돌 그룹 ‘사자 보이즈’와 비슷한 의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시물에는 사자 보이즈의 노래 ‘Your Idol’ 가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해외 네티즌들은 “교황조차 그들의 영향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가톨릭 신자라서 한국의 수호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동상을 보고 미소가 나왔다. 밈으로 만들어진 건 참 좋네요” “정확히는 사제보이즈”라고 반응했다. ‘케데헌’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 등극 이런 화제성의 배경에는 ‘케데헌’의 폭발적인 인기가 있다. 27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 누적 시청 수는 2억3600만으로 집계돼 영화 부문 역대 1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1위를 지켜온 ‘레드 노티스’(2억3090만)를 제치고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된 것이다. 쇼 부문을 포함해도 ‘오징어 게임 1’ ‘웬즈데이 1’에 이어 역대 3위를 기록했다.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은 약 3주간 더 집계 기간이 남아있어 추후 순위 상승 가능성도 있다. 공개 10주 차에도 영어·비영어 통틀어 영화 부문 주간 1위를 지키며 32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K팝과 무속 신앙이라는 한국적 요소를 담은 ‘케데헌’의 세계적 성공이 뜻하지 않게 한국 가톨릭의 상징적 인물에게까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첫 성상, 특별한 의미 담아 화제의 중심이 된 김대건 신부 성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건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845년 마카오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조선의 박해를 받다가 1846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이후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김대건 신부를 순교자로 시성했다. 한진섭 조각가가 제작한 김대건 신부 성상은 높이 3.7m, 폭 1.83m 전신상으로, 갓과 도포 등 한국 전통의상을 입고 두 팔을 벌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성인 등 유럽 수도회 설립자들의 성상 옆에 자리했으며, 대성전 외벽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 역시 처음이다. 성상 축복식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지 정확히 177년이 되는 2023년 9월 16일에 열려 의미를 더했다. 한국인 성직자 최초로 교황청 장관에 오른 유흥식 추기경이 2021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면서 실현됐다.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은 당시 축복식에서 “김대건 신부를 시작으로 이제는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상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실 것”이라며 “오늘의 축복식은 동서양 교회가 함께 걸어가길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 되어 뜨거운 응원을 보냈던 당시, 거리 응원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였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패션 소품처럼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태극기 활용에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통해 애국심을 표출하고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국기는 국가의 존엄한 상징인데, 이를 몸에 두르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거나 상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태극기의 시작과 변천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가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로, 김홍집의 주도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83년 고종이 태극과 건곤감리 4괘를 그린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태극기의 공식적인 제작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마침내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고시’가 제정되면서 현재 태극기 규격이 확정되었다.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부속 건물 칠성각 복원 공사 중 벽 속에서 독립신문류들과 함께 태극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독립신문의 발행 시기로 미루어 볼 때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탄 흔적과 여러 곳에 남은 구멍으로 보아 실제 3·1 운동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백초월 스님’을 주목한다. 그는 만해 한용운,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3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진관사는 그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형태여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되었다. 태극기, 어린 날의 기억과 어른이 된 지금어린 시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태극기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그리기 쉬운 국기를 가진 일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음양오행과 태극, 건곤감리 4괘 등 태극기가 가진 준엄한 의미를 체득하기 어려웠고, 일부는 태극기를 예쁘게 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태극기는 여전히 그리기 어렵고, 건곤감리 순서가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사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한ZOOM]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한ZOOM]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 되어 뜨거운 응원을 보냈던 당시, 거리 응원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였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패션 소품처럼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태극기 활용에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통해 애국심을 표출하고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국기는 국가의 존엄한 상징인데, 이를 몸에 두르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거나 상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태극기의 시작과 변천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가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로, 김홍집의 주도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83년 고종이 태극과 건곤감리 4괘를 그린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태극기의 공식적인 제작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마침내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고시’가 제정되면서 현재 태극기 규격이 확정되었다.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부속 건물 칠성각 복원 공사 중 벽 속에서 독립신문류들과 함께 태극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독립신문의 발행 시기로 미루어 볼 때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탄 흔적과 여러 곳에 남은 구멍으로 보아 실제 3·1 운동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백초월 스님’을 주목한다. 그는 만해 한용운,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3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진관사는 그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형태여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되었다. 태극기, 어린 날의 기억과 어른이 된 지금어린 시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태극기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그리기 쉬운 국기를 가진 일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음양오행과 태극, 건곤감리 4괘 등 태극기가 가진 준엄한 의미를 체득하기 어려웠고, 일부는 태극기를 예쁘게 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태극기는 여전히 그리기 어렵고, 건곤감리 순서가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사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 미 공군 E-7A 도입 취소, 해외 시장에 어떤 영향 미칠까?

    미 공군 E-7A 도입 취소, 해외 시장에 어떤 영향 미칠까?

    최근 미국 정부가 동맹에 대해 관세 폭탄을 던지자 인도를 포함해 미국제 무기 도입을 재검토하는 국가가 생겨나고 있다. 인도는 P-8i 해상초계기 추가 6대 도입을 협상하고 있었지만 이를 중단했고, 5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도 일찌감치 미국의 F-35 제안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채택을 취소하면서 덩달아 해외시장까지 잃게 생긴 무기도 생겨났다. 바로 노후한 E-3A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대체기로 떠오르던 보잉의 E-7A 웨지테일 조기경보 및 통제기(AEW&C)다. 올 6월 미 국방부는 우주 기반 감시체계로 넘어가기 전 E-7A 대신 E-2D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E-7A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그동안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E-7A를 현대 전장에서 생존할 수 없는 능력의 예시로 언급하는 등 도입에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2024년 미 공군과 보잉은 E-7A 프로토타입 2대에 대해 26억 달러(약 3조 61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첫 기체는 2028 회계연도에 인도될 예정이었다. 미 공군은 노후화된 E-3A 26대 모두를 대체하기 위해 26대의 E-7A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미 공군의 취소로 당장 유사한 도입 루트를 타려던 국가들이 고민에 빠졌다. E-3A는 미국 외에도, 영국, 프랑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운용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고 프랑스가 올 6월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2대를 도입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대체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E-7A를 취소하면서 최근 14대의 E-3A를 교체하려는 나토가 비용 등 문제로 이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나토가 고려할 수 있는 기체는 프랑스가 도입을 결정한 글로벌아이가 거의 유일하다. 글로벌아이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첫 발주국이었고 스웨덴도 도입을 결정했다. 3대를 도입할 계획인 영국은 미국의 취소에도 불구하고 유지하기로 했다. 나토의 E-7A 도입 재검토는 제작사인 보잉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운용 중인 호주와 튀르키예, 한국 외 신규 구매국으로 영국만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보잉의 높은 가격이 다른 나라들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조기경보통제기 추가 도입 사업에서도 보잉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 공군 E-7A 도입 취소, 해외 시장에 어떤 영향 미칠까? [최현호의 무기인사이드]

    미 공군 E-7A 도입 취소, 해외 시장에 어떤 영향 미칠까? [최현호의 무기인사이드]

    최근 미국 정부가 동맹에 대해 관세 폭탄을 던지자 인도를 포함해 미국제 무기 도입을 재검토하는 국가가 생겨나고 있다. 인도는 P-8i 해상초계기 추가 6대 도입을 협상하고 있었지만 이를 중단했고, 5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도 일찌감치 미국의 F-35 제안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채택을 취소하면서 덩달아 해외시장까지 잃게 생긴 무기도 생겨났다. 바로 노후한 E-3A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대체기로 떠오르던 보잉의 E-7A 웨지테일 조기경보 및 통제기(AEW&C)다. 올 6월 미 국방부는 우주 기반 감시체계로 넘어가기 전 E-7A 대신 E-2D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E-7A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그동안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E-7A를 현대 전장에서 생존할 수 없는 능력의 예시로 언급하는 등 도입에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2024년 미 공군과 보잉은 E-7A 프로토타입 2대에 대해 26억 달러(약 3조 61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첫 기체는 2028 회계연도에 인도될 예정이었다. 미 공군은 노후화된 E-3A 26대 모두를 대체하기 위해 26대의 E-7A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미 공군의 취소로 당장 유사한 도입 루트를 타려던 국가들이 고민에 빠졌다. E-3A는 미국 외에도, 영국, 프랑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운용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고 프랑스가 올 6월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2대를 도입하기로 했고, 나머지는 대체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E-7A를 취소하면서 최근 14대의 E-3A를 교체하려는 나토가 비용 등 문제로 이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나토가 고려할 수 있는 기체는 프랑스가 도입을 결정한 글로벌아이가 거의 유일하다. 글로벌아이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첫 발주국이었고 스웨덴도 도입을 결정했다. 3대를 도입할 계획인 영국은 미국의 취소에도 불구하고 유지하기로 했다. 나토의 E-7A 도입 재검토는 제작사인 보잉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운용 중인 호주와 튀르키예, 한국 외 신규 구매국으로 영국만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보잉의 높은 가격이 다른 나라들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조기경보통제기 추가 도입 사업에서도 보잉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임정 경무국장 김구 선생 등 ‘경찰 영웅 5인’ AI로 되살렸다

    임정 경무국장 김구 선생 등 ‘경찰 영웅 5인’ AI로 되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경무국장을 지낸 김구 선생 등 ‘경찰 영웅’ 5인이 인공지능(AI) 기술로 되살아났다. 21일 경찰청과 유튜브 채널 ‘그려DREAM’은 창경 80주년을 맞이해 김구 선생과 문형순 경감, 차일혁 경무관, 안병하 치안감, 이준규 경무관 등을 AI로 복원하고 이들의 공적을 소개(출생순)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AI 기술로 이들의 옛 사진을 복원하고 이를 토대로 실제 살아 있는 모습처럼 재탄생시킨 것이다. 영상 속에서 임시정부 청사를 배경으로 연한 미소를 띠고 있는 김구 선생은 1919년 8월 12일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임명돼 치안을 유지하는 업무를 맡았다. 경무국은 상하이 일대에서 독립운동가를 사칭한 이들을 색출하거나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일제 밀정을 찾아 처단했다. 문형순 경감은 1949년 제주4·3사건 당시 처형 지시 이행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278명의 생명을 구해 ‘제주판 쉰들러’로 불린다. 6·25전쟁 때 빨치산 토벌대장이던 차일혁 경무관은 정읍 칠보발전소를 포위한 2000여명의 빨치산을 격퇴한 ‘전쟁 영웅’이자 빨치산 은신처로 활용된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해 천년 고찰의 명맥을 지켜 낸 인물이다. 안병하 치안감과 이준규 경무관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며 시민을 지켰다. 이후 신군부의 고문에 시달린 두 사람은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 “시진핑 조카?”…‘중국 롤스로이스녀’ 사건에 호주 떠들썩

    “시진핑 조카?”…‘중국 롤스로이스녀’ 사건에 호주 떠들썩

    호주판 롤스로이스 사건에 현지 중국인 공동체의 관심이 뜨겁다. 가해자가 중국 최고 권력층의 숨겨진 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그의 정체를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호주 9뉴스에 따르면 중국계 여성 양란란(23)은 지난달 26일 새벽 시드니에서 최고급 흰색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차선을 넘어 마주 오던 메르세데스-벤츠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이 사고로 벤츠 차량을 운전하던 호주 라디오 진행자 카일 샌딜랜즈의 운전기사가 목과 허리, 골반과 허벅지 등 전신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특히 피해자는 절단을 고려할 만큼 다리 부상이 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를 낸 양씨는 현장에서 도주했다가 돌아와 자수했다. 경찰의 현장 측정 결과 ‘음주 양성’ 사실이 드러나 구금된 양씨는 그러나 정확한 추가 음주측정을 거부했고, 같은날 오후 ▲밤 8시~오전6시 외출 금지 ▲운전 금지 ▲여권 압수 조건으로 보석 석방됐다. 이후 현지 중국인 사회에서는 양씨가 중국 거물급 자제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고 당시 20대 초반의 양씨가 10억원 상당의 맞춤 제작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며 샤넬, 미우미우 등 수천만 원 상당의 명품을 착용한 점, 시드니 동부 고급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며 또 다른 롤스로이스 컨버터블 차량을 소유한 점 등이 발단이 됐다. 스카이뉴스 호주판에 따르면 중국인 사회에서는 양씨가 7000만 호주달러(약 630억원)를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났으며, 재산은 3000억 호주달러(약 271조원)라는 풍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양씨가 대동한 경호원이 중국 최고권력층 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의 무장경찰 출신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가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임위원회 위원의 숨겨진 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중앙정치국 상임위는 중국 공산당 최고권력기구다. 중앙위위원 가운데 정치국원 25명을 뽑고, 이들중 다시 7명을 뽑아 정치국 상임위원회가 결성되는데 이들 손에서 사실상 모든 결정이 이뤄진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8대 혁명원로 중 한 명인 양상쿤 전 국가주석의 증손녀라거나 양제츠 전 외교부장의 손녀라는 구체적인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조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양씨의 아버지가 호주 철광업체와 관련이 있다는 설도 나돈다. 중국에서는 양란란 관련 검색어가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는데, 다만 관련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관심을 증명하듯 양씨 재판이 열린 지난 15일 시드니 다우닝 센터 지방법원 앞에는 양씨를 보기 위해 100여명의 중국계 호주인들이 몰려들었다. 법원 앞에 나온 한 중국인은 “중국의 많은 최고 가문 자녀들이 호주로 이주하고 있다”며 “양씨가 어느 집안 여식인지 궁금해한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양씨는 영상으로 재판에 출석했고, 그의 변호인은 경찰의 추가 기소 가능성을 언급하며 아직 혐의를 시인하는지 부인하는지 정식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9월 26일 열린다. 스카이뉴스 호주판은 양씨에 관한 중국인 사회의 관심이 중국 공산당의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심각한 불평등, 불의에 관한 문제제기는 검열과 단속으로 억누르면서, 정작 공산당 엘리트들은 익명성과 윤택한 삶을 보장하는 호주, 캐나다 등을 피난처로 삼는 실태에 대한 중국인의 분노가 양씨를 통해 터져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 ‘이모네’ ‘줩듁쿳’… 들춰낼수록 은밀하게 보냈소[편지에 담긴 좌절과 희망을 다시 읽다]

    ‘이모네’ ‘줩듁쿳’… 들춰낼수록 은밀하게 보냈소[편지에 담긴 좌절과 희망을 다시 읽다]

    日, 독립운동 서신 막으려고 감시수감자 편지엔 ‘통과’ 붉은색 도장문맹 日경찰 고려… 영문·한문 편지 임시정부 ‘한글 무전 암호표’ 완성 일제강점기는 검열과 감시의 시대였다. 일제는 독립운동 관련 정보를 전달하거나 저항 의지를 북돋는 서신 왕래를 막기 위해 검열하고 또 감시했다. ‘광야’, ‘청포도’를 쓴 시인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육사는 1932년 6월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에 살던 8촌 동생 이상흔에게 보낸 엽서에 이렇게 토로했다. “뜻한 바를 뜻한 대로 표현치 못하는 나의 고뇌여. 짐작이나 하여 주겠지?” 그는 두 달 전 대구를 떠나 홀연히 만주국으로 향한 터였다. 펑톈(현재 선양)에서 의열단의 핵심 윤세주를 만난 이육사가 뜻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넉 달 뒤 그는 난징으로 갔고, 의열단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일제의 우편 검열을 염려한 이육사로선 뜻한 바를 제대로 밝힐 수가 없는 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1929년 ‘교원 공산당 사건’은 일제 경찰이 경성사범학교 학생들의 물건을 검사하다가 발견한 편지가 발단이 됐다. 경남에서 교사로 일하던 일본인 조코 요네타로가 옛 제자 조판출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민족차별 교육을 철폐하고 교직원노동조합을 만들자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총독부를 비판하고 독립운동을 옹호했던 나카니시 이노스케는 검열을 거친 편지를 받았던 일을 회고한 적이 있다. 편지 봉투에 ‘閱’(통과), ‘許可’(허가) 같은 붉은인이 굵직하게 찍혀 있었다. “그가 (구속되고 나서) 70여일 후 발신 및 접견 금지에서 풀려나 그리운 바깥세상을 향해 보낸 첫 발신이 나를 향했던 것 같다. 나는 뭔가 수수께끼를 감추고 있는 듯한 그 서신의 봉투를 뜯었다.” 일본 내 노동운동에도 적극 관여했던 나카니시의 지인이 구속되고 예심을 마칠 때까지 면회는 물론 편지를 주고받는 것까지 모두 금지당했고, 예심 이후 편지 왕래는 가능해졌지만 검열을 받아야 했던 당시 실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나카니시의 증언처럼 감옥에 갇힌 이들이 남긴 편지에는 붉은색 도장이 선명하다. 가령 독립운동가 이중업이 1920년 출옥을 앞두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엔 검열을 통과했다는 붉은색 ‘檢’(검) 직인이 찍힌 게 선명하다. 마찬가지로 광복회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총사령을 지낸 박상진이 1918년 ‘친일 부호 처단 사건’으로 투옥된 뒤 공주 감옥에서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 봉투에도 내용을 검열했음을 밝히는 ‘허가’ 직인이 보인다. 감시가 있으면 이를 피하기 위한 대책도 있기 마련이다. 군자금을 담배로 표현하거나, 중국 상하이를 이모네로 지칭하거나, 나비나 꽃 그림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등 다양한 암호와 은어를 사용한 편지가 독립운동가 사이에 등장했다. 이봉창은 일왕 암살을 위해 일본 도쿄에 잠입한 뒤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편지를 보냈는데, 의거 실행을 “물품이 팔린다”고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시대가 1944년 ‘중국 충칭 우편사서함 95’로 보낸 편지 첫머리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경애하는 김구 선생님께 검열을 피하고 빠른 전달을 위해 영문으로 보냅니다.” 1920년 부산경찰서장 사살 지시를 받은 의열단원 박재혁은 중국인 고서적상으로 위장한 뒤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나가사키에서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을 타는 것이었지만 나가사키에서 쓰시마섬을 거쳐 부산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계획을 바꿨다. 그는 상하이로 편지를 보냈다. 한문으로 된 평범한 안부 편지였다. 그런데 끝부분에 이런 글귀가 눈에 띈다. “熱落仙他地末古 大馬渡路徐看多” 이 글귀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죽었다 깨나도 풀 수가 없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연락선타지말고 대마도로서간다”가 된다. 말 그대로 ‘연락선 타지 말고, 대마도(쓰시마섬)로 간다’는 걸 의열단 동지들에게 알린 셈이다. 21세기 시각으로 보면 ‘이게 무슨 암호 편지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일본인 경찰들이 대체로 학력 수준이 낮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그들로선 운율까지 맞춘 한문 편지를 보고 중국인이 쓴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역이용한 셈이다. 이 편지를 남기고 부산에 도착한 박재혁은 책을 팔러 간 것처럼 꾸며 부산경찰서장을 만난 뒤 폭탄을 터뜨려 거사에 성공한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체포된 박재혁은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앞서 그는 편지에 “초가을 서늘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상쾌하니 아마도 많은 수익이 있을 듯합니다”라며 언급한 ‘수익’ 역시 임무 성공을 뜻하는 암호였다. 박재혁이 “그대 얼굴을 다시 보기를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던 말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선 암호를 사용해 편지를 주고받곤 했는데, 자음과 모음의 표시를 바꾸는 게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가령 ‘ㅍ’을 ‘ㅈ’으로, ‘ㅗ’는 ‘ㅝ’로 대체하는 건데, 폭발탄이 편지에선 ‘줩듁쿳’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어가 돼 버린다. 암호 체계는 시간이 갈수록 체계화됐는데 가장 완성된 형태는 일본군에 징병됐다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한 김우전이 완성한 한글 무전 암호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광복군이 한미 합동 작전을 위해 만든 암호였다. 이 암호는 제작에 도움을 준 미 공군 대위 클래런스 윔스(Weems)의 ‘W’와 김우전의 ‘K’를 붙여 ‘W-K 한글 무전 암호표’로 명명됐다. 이 암호표를 적용해 ‘대한독립만세’를 쓰면 ‘134024300012133400111 4390016153000121741’이 된다.
  • 이봐, 셜록… 이 뜨거운 여름을 부탁해

    이봐, 셜록… 이 뜨거운 여름을 부탁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으로 섭씨 37도는 이제 우스울 정도다. “여기가 동남아”라며 굳이 해외여행 갈 필요가 있겠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마솥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되며 지치게 만든다. 더위를 피해 유명 휴양지를 찾으면, 넘치는 인파로 오히려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른다. 이럴 때는 시원한 생수 한잔을 옆에 놓고 등골 오싹하게 하는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소설이나 영화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하는 데 특효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 되면 서점가에서는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인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미스터리 소설은 사건 해결보다는 사건 자체의 불가사의함, 비밀스러운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추리 소설은 논리적 추론과 증거 분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밝히는 과정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근에는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공포물이 혼합된 혼종도 많지만,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탐정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매력은 여전히 거부할 수 없다. ●안락의자에 앉아 논리력으로 추리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의 현대적 추리 소설은 1841년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모르그가 살인사건’으로 시작됐다. 소설의 주인공은 ‘C. 오귀스트 뒤팽’. 이름 앞에 슈발리에(기사)의 약자 ‘C’를 붙이는 프랑스 몰락 귀족 출신으로, 낮보다는 밤을 좋아하고 상대가 생각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맞히는 등의 모습은 셜록 홈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립 탐정의 모델이 됐다. 수수께끼, 암호, 상형문자에도 상당한 조예를 보여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의 캐릭터에도 영향을 줬다. 영화나 드라마에 가장 많이 등장한 불후의 명탐정이자 탐정의 대명사는 영국의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스’다. 1887년 ‘주홍색 연구’로 처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홈스는 1927년 ‘셜록 홈스의 사건집’까지 장편 4개, 단편 56편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2010년 처음 방영된 BBC 드라마 ‘셜록’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현대판 홈스로 등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미국 CBS 드라마 ‘엘리멘트리’에도 약물 중독자인 홈스가 등장하고,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의 모티브가 되는 등 수많은 작가와 작품에서 재창조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추리 방법과 직업에 근거해 안락의자형 탐정, 하드보일드 탐정, 과학자 탐정, 성직자 탐정 등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안락의자형 탐정은 범죄 현장을 직접 살펴보거나 증인과 면담하는 등의 수사는 거의 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된 기사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말을 통해서만 사건을 풀어나간다. 홈스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스,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소설 ‘스칼릿 핌퍼넬’의 헝가리 출신 영국 작가 오르치 남작 부인이 만들어 낸 이름 없는 ‘구석의 노인’, 영국 출신으로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거사 크리스티의 분신으로 불리는 할머니 탐정 제인 마플, 미국 작가 렉스 스타우트가 빚어낸 뚱보 탐정 네로 울프 등이 대표적인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이들은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뿐이지 옆에서 수족처럼 쓸 수 있는 조수들이 있다. 홈스 옆 왓슨처럼 울프 옆에는 조수인 아치 굿윈, 구석의 노인에게는 여기자 폴리 버튼, 마플 옆에는 수많은 동네 주민이 있다. 물론 안락의자형 탐정 중에서도 홈스나 크리스티가 만든 달걀형 머리를 가진 탐정 에르퀼 푸아로처럼 경우에 따라 범죄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수사하기도 한다. ●하드보일드 행동파답게 주먹 불끈! 하드보일드 행동파 탐정은 범죄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하고, 때로는 무력 사용을 꺼리지 않는다. 최근 스릴러, 미스터리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유형이다. 하드보일드 탐정의 원조는 실제 탐정 생활을 했던 미국 작가 더실 해밋이 창조한 ‘샘 스페이드’로, 대표작인 ‘몰타의 매’는 1941년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후대 하드보일드 작가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미국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만든 필립 말로, 해밋과 챈들러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계 캐나다 작가 로스 맥도널드의 탐정 루 아처는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이다. TV 시리즈로 여러 번 제작되기도 한 미국 작가 미키 스필레인의 탐정 마이크 해머는 하드보일드의 끝판을 보여 준다. 철저한 권선징악적 내용으로 읽는 내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만, 지나친 폭력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작품이다 보니 비평가는 물론 독자 중에서도 혹평하는 이들이 많다. ●성직자 탐정들은 치유에 관심을 소설 속에서는 직업이 탐정인 경우가 많지만, 취미나 우연한 계기로 탐정으로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성직자 탐정이다. 20세기 초 대표적인 영국의 비평가이자 작가인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 창조한 ‘브라운 신부’와 이탈리아의 지성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바스커빌의 윌리엄, 에코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영국 작가 엘리스 피터스의 베네딕토회 수도사 캐드펠이 대표적이다. 세 명의 성직자 탐정은 모두 영국 출신이며, 가톨릭 성직자라는 점이 독특하다. 이들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단죄만큼이나 피해자들의 치유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 ‘정청래 1호’ 방송법 국회 통과

    ‘정청래 1호’ 방송법 국회 통과

    윤석열 정부에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이 행사돼 폐기됐던 방송3법 중 하나인 방송법 개정안이 5일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제의 ‘1호 법안’으로, 방송법 개정은 38년 만이다. 이달 중 법안이 시행되면 KBS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방송사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져 연내 사장 교체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방송법은 이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강제 종료 직후 곧바로 표결에 부쳐져 재석 180명 중 찬성 178명, 반대 2명으로 가결됐다. 전날 오후 4시 1분 시작된 필리버스터를 민주당이 표결을 통해 강제 종료하자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퇴장했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는 시작한 지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3(180명) 이상의 찬성으로 강제 종료할 수 있다. YTN 앵커 출신인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7시 8분 단상에 올라 오후 4시 13분까지 약 9시간 5분에 걸쳐 토론을 진행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KBS 이사는 현재 11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난다. 이사 추천 주체도 기존에 여야 정치권에서 앞으로는 국회(6명), 시청자위원회(2명), 임직원(3명), 방송·미디어 학회(2명), 변호사 단체(2명) 등으로 다양해진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갖고 있던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이 각 단체로 넘어가면서 방통위에 쏠린 힘을 뺀 것이 특징이다. 그간 관례적으로 여야 7대4 비율로 KBS 이사를 추천하면서 논란이 된 ‘정치적 후견주의’도 사라지는 셈이다. 개정안 부칙에 따라 KBS 이사회는 3개월 내에 이사진을 새롭게 꾸려야 한다. 이 법은 공포 즉시 시행되기 때문에 이달 안에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연내 이사진 교체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KBS 사장 교체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3사(KBS·MBC·EBS)와 보도전문채널 2사(YTN·연합뉴스TV)에 사장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공영방송은 사장후보국민추천위를 100명 이상으로 구성하고, 보도 전문 채널은 사측이 교섭대표 노동조합과 합의해 추천위를 설치하면 된다. 공영방송의 경우 국민이 직접 사장을 뽑는 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추위가 3명 이하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재적 이사 5분의3 이상의 찬성으로 뽑는 특별다수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 채널은 노사 동수(각 5명)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취재 및 제작·편성에 회사 구성원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또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는 보도 분야 직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보도 공정성 강화를 위해 임명동의제를 명문화한 것이다. 이날 방송법 개정안에 이어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올라오자 국민의힘은 다시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이에 방송문화진흥회법과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나머지 방송3법은 7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이날 처리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방송3법 가운데 남은 법안들과 함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2차 상법 개정안도 처리할 방침이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8월 임시국회에서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나머지 쟁점 법안 4건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는 8월 하순부터 다시 이른바 ‘살라미 전략’을 활용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고 쟁점 법안을 하나씩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재계 등이 반대하는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에 대해 충분한 숙의가 이뤄진 만큼 추가 논의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경제5단체와 함께 ‘더 센’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두 법안을 ‘반(反)기업 악법’으로 규정한 국민의힘과 경제5단체는 민주당이 예고한 8월 하순 강행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남은 2주에 사활을 걸 예정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5단체와의 긴급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은 헤지 펀드를 비롯한 투기성 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며 “비밀 유출과 경영상 혼선을 초래할 위험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명 ‘불법파업 조장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은 불법파업 상시화로 산업현장 마비 우려가 있다”고 했다.
  • 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취소 3년만

    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취소 3년만

    윤석열 정부의 거부로 서훈이 취소됐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가 3년만에 대한민국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일 오전 광주 동구 한 요양병원을 찾아 양 할머니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달했다. 국가인권위는 세계인권선언의 날(12월10일)을 기념해 인권보호 및 향상을 위해 헌신한 유공자에게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여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지난 1944년 5월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다. ‘돈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교사 말에 속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됐다. 양 할머니는 지난 199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첫 소송을 시작한 이래 30년 동안 일제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을 펼쳐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22년 상훈법 및 대한민국 인권상 포상규정에 따라 공개 검증과 공적 심사를 거쳐 대한민국 인권상 대상자로 추천됐다. 그러나 당시 관계부처 간 이견과 외교부의 제동으로 서훈이 취소됐다. 이후 새롭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달 ‘2022 대한민국 인권상 수여안’에 대한 이견이 철회되면서 국무회의에서 수여안이 최종 의결됐다. 인권위는 훈장을 수령한 즉시 양 할머니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랜 기간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고생 많으셨다”며 “2022년부터 추진이 보류됐던 모란장을 이재명 정부가 나서면서 수여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양 할머니는 “이재명 대통령 덕분에 모란장을 받게 됐다”며 “고맙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전했다. 양 할머니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별도 수여 행사는 열리지 않았으나,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시청 공직자들과 시민 등 30여명이 함께 했다.
  • 순수·상업 미술의 장벽 파괴… 대중문화 시대 ‘예술 기업가’ 탄생[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순수·상업 미술의 장벽 파괴… 대중문화 시대 ‘예술 기업가’ 탄생[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훌륭한 사업이 최고의 예술”출세를 꿈꾼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대중 욕망하는 달러를 미술 중심에미술계 위선 폭로, 작품 팔아 대성공“난 기계가 되고 싶다, 당신은?”‘작품은 1점뿐’이라는 원본성 파괴대중이 향유하도록 대량생산 실현‘창작=산업 제조’로 본 혁명적 발상“누구나 15분간 유명해질 것”‘먼로’로 명성의 생산·소비·소멸 구현대중문화 도래 예견하고 흐름 선도예술가를 ‘대중이 꾸며낸 허상’ 정의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상업적 예술가라는 꼬리표는 가장 피해야 하는 단어였다. 예술가는 돈을 멀리하고 순수하게 창작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낭만적 신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은 오래된 금기를 깨뜨렸다. 그에게 미술로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창작 행위였다. 그는 미술을 대중이 쉽게 소비하고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키고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사이의 견고한 벽을 허물었다. 그런데도 워홀은 현대미술의 개념을 바꾼 위대한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돈과 명성을 좇았던 그가 어떻게 미술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의 일기와 편지, 인터뷰, 기록물을 통해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이 최고급 브랜드이자 동시대의 문화 현상으로 확장돼 간 놀라운 여정을 따라가 보자. 첫 번째 명언 “사업을 잘하는 것은 가장 매혹적인 종류의 예술이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이 도발적인 문장은 현대미술의 역사를 바꾼 혁명적 선언이었다. 언뜻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예술이 최고라는 의미로 다가오지만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워홀은 비즈니스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비즈니스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여겼다. 이런 반예술적 사고의 배경에는 그의 성장 환경과 시대적 변화, 개인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워홀은 슬로바키아 출신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펜실베이니아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출세를 꿈꿨고 자본주의 미국 사회에서 성공의 열쇠는 비즈니스라고 믿게 되었다. 워홀은 카네기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에서 보그, 하퍼스 바자, 글래머 같은 유명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와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20대 초반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항상 상업미술가였다. 상업미술가로 시작했고 사업 미술가로 끝내고 싶다”는 그의 고백에서 드러나듯 미술과 광고,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가 생각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그는 미국이 성공과 부에 집착하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집약된 대표작이 작품 1 ‘달러 사인’이다. 워홀이 작품 주제로 달러 지폐를 선택한 것은 도발이 아니었다. 예술은 돈을 초월한 고귀하고 순수한 활동이라는 전통적 미술관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자 했다. 그는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과정에서 이미 자본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달러 그림 시리즈 뒤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숨어 있다. 1960년대 초 워홀은 상업예술가로 성공을 거뒀지만 미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선보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아이디어를 구했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여성 지인이 그에게 결정적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게 뭔데요?” 이 질문은 워홀에게 큰 충격이자 계시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가장 솔직하고 개인적인 욕망과 마주쳤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상업미술가로 성공한 워홀에게 돈은 생존 수단, 성공의 발판이자 동시에 가장 매혹적인 대상이었다. 이 대화를 계기로 그는 대중이 욕망하는 달러를 미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자본주의의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상징을 표현한 이 작품은 미술계가 돈에 대해 가졌던 위선을 폭로하고 미술과 상업의 관계를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워홀이 달러 그림 연작을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는 돈을 특별히 좋아한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라는 자신의 예술철학을 현실에서 이뤄 냈다. 워홀의 달러 그림은 오늘날 미술품이 투자 자산으로 여겨지고 상업 문화가 미술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현상을 낳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명언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이 말은 미술의 본질을 예술가의 감정이나 천재성에서 시스템과 반복, 공정으로 이동시키는 혁명적 선언이다. “기계는 문제가 적다”는 그의 말처럼 미술에서 작가의 흔적인 감정과 개성을 배제하고 기계적인 과정과 시스템에 의해 작품을 생산하겠다는 의미였다. 워홀에게는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세상에 단 한 점뿐인’ 원본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의 유일함과 원본성을 파괴해 극소수 재력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량 생산된 소비재처럼 대중이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미술 창작을 산업 제조와 동일시한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의 철학은 작업실 ‘팩토리’(Factory)에서 물리적으로 실현됐다. 1960년대 뉴욕에 문을 연 이곳은 이름 그대로 전통적 화실과 달리 공장처럼 운영됐다. 미술 공장에서 작품은 고독한 예술가의 창조 행위가 아닌, 여러 조수들이 협력하며 시스템과 과정에 의해 기계적 방식으로 대량 생산됐다. 워홀이 기계처럼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선택한 기술이 실크스크리닝이었다. 공업용 인쇄 기법인 실크스크린은 한 개의 판만 있으면 동일한 이미지를 수백 번이고 똑같이 찍어 낼 수 있었다. 붓질의 흔적이나 작가의 손맛이 남지 않는 기계적인 과정은 워홀이 추구했던 대량 생산된 소비재와 같은 미술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다. 작품 2 ‘코카콜라’는 워홀이 신문 광고에서 발견한 코카콜라병 이미지에 실크스크린 인쇄 기법을 활용해 팩토리에서 제작됐다. 그는 콜라병의 이미지에서 예술가의 개성이나 붓질의 흔적을 지우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획일적인 형태로 표현해 미술도 반복적으로 복제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워홀에게 코카콜라병은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대중적 상품으로 미국 사회 평등과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의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이 나라의 위대한 점은 가장 부자와 가장 가난한 자가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을 구매하는 전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길거리 부랑자가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코카콜라를 살 수는 없다. 모든 코카콜라는 똑같고, 모든 코카콜라는 좋다.” 이 작품은 2010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536만 달러(약 385억원)에 낙찰됐다. 현대미술에서 민주성, 상품성, 평등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워홀의 혁명이 사회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미술 시장에서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세 번째 명언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워홀의 저서에서 가져온 이 말에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수십 년 앞서 꿰뚫어 본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다. 과거에 명성은 왕족, 영웅, 배우, 가수, 운동선수처럼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워홀은 TV와 잡지 같은 대중매체가 증가하면서 평범한 사람도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면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예언의 핵심은 명성의 일시성에 있다. 워홀은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명성은 순간적인 화제성에 의존하기에 생명력이 짧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한 15분은 한 인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강렬하게 타오르다 금세 식어 버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중은 사람의 본질이나 업적보다는 미디어가 포장하고 유통하는 이미지를 폭발적으로 소비하고, 관심이 식으면 새로운 이미지로 쉽게 옮겨 간다. 즉 명성은 빠르게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 오늘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와 같은 소셜미디어(SNS) 환경은 워홀의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하고, 며칠 뒤에는 잊혀지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한순간 대중의 관심을 끌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콘텐츠로 유명해질 수 있지만, 그 명성은 워홀이 말한 15분짜리 스포트라이트처럼 짧고 강렬하게 끝나 버린다. 유명인이든, 비극적 사건이든 미디어를 통해 과도하게 반복·노출되면 본질적 의미는 사라지고 무감각한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작품 3 ‘매릴린 먼로’ 연작은 명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며, 소멸하는가에 관한 워홀의 예언이 작품으로 구현된 사례이다. 워홀이 매릴린을 선택한 의도는 그녀의 사적인 삶이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섹시한 스타라는 매릴린의 이미지, 즉 상품에 주목했다. 그의 눈에 20세기 대중문화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인 매릴린은 코카콜라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둘 다 대중이 욕망하고 소비하는, 아름답게 포장된 대량 생산의 상징일 뿐이었다.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매릴린의 얼굴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제작했다. 미디어가 그녀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복제하고 대중에게 유포하는 방식을 미술로 가져온 것이다. 차가운 반복 과정에서 한 인간의 개성과 고유성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화려하지만 공허한 이미지뿐이다. 워홀은 매릴린의 얼굴을 통해 유명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대중에게 소비된 뒤 사라지는지를 보여 줬다. 워홀은 “내 그림과 내 영화, 나의 표면을 보라.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항상 내 묘비가 이름도 없이 텅 비어 있기를 바랐다. 무언가를 새긴다면 허상이라고 적었으면 좋겠다”고 유언처럼 말했다. 그는 작품의 표면 아래서 숨은 진실이나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는 전통적 예술관을 거부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중이 보는 이미지, 즉 표면 자체였으며 그것이 현대사회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을 실체 없는 이미지, 대중이 만들어 낸 허상으로 정의했다. 워홀은 실상이 아닌 허상을 쫓고 이미지와 표면이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도래를 누구보다 먼저 예견하고 흐름을 선도했다. 이것이 바로 워홀이 단지 돈과 명성을 좇은 예술가를 넘어 현대미술의 기능과 예술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 혁명가로 미술사에 기록된 이유이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고릴라 같아도 내 소중한 아기”…1000만원 리얼돌 육아 [포착]

    “고릴라 같아도 내 소중한 아기”…1000만원 리얼돌 육아 [포착]

    23세 미국 여성 켈리 메이플은 사랑하는 딸 나오미를 카시트에 앉히고 쇼핑몰로 향했다. 고급 유모차에 태운 나오미는 머리핀을 하고 원피스를 입은 채 누워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평범한 모녀의 일상으로 여겼지만, 나오미는 실물 크기의 ‘리얼 베이비돌’이었다. 리얼 베이비돌 전문 유튜버 메이플의 구독자 수는 200만명. 전 세계적으로 극실사 실리콘 아기 인형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철저한 수작업으로 탄생하는 인형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지난 6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리얼베이비돌 박람회 현장을 보도하며 이 현상을 분석했다. 박람회장에서는 아기 냄새가 나는 향수를 사고, 인형의 머리를 손으로 잘 받치고 안아줘야 한다고 충고하는 등 가상육아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리얼 베이비돌은 철저한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장인들은 실리콘 인형의 복숭앗빛 피부 아래 연푸른색 혈관이 보이도록 색칠하고, 솜털 느낌을 내기 위해 염소나 알파카 털을 한 땀 한 땀 심는다. 가격은 개당 8000달러(약 1100만원)에 달한다. 사람들은 1년간 돈을 모아 리얼 베이비돌을 구매해 진짜 아기처럼 입히고 먹이고 재운다. 인형 수십 개를 사들여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리얼 베이비돌 애호가들은 이 인형이 정신 건강 치료에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사고로 잃거나 유산을 경험한 여성뿐 아니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알츠하이머, 치매, 자폐증을 앓는 여성에게도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산 경험을 고백한 미국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리얼 베이비돌을 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얼 베이비돌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고 말하며, 이를 수집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브라질에서는 최근 리얼 베이비돌의 공공장소 반입 금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논란 더하는 ‘판타지 베이비돌’ 토끼 귀를 가진 아기, 인어 아기 등 ‘판타지 베이비돌’의 등장은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런 인형들은 기존의 베이비돌 커뮤니티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리얼 베이비돌을 제작하는 영국인 존스톤은 “이 인형들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고 인정하며, 영국의 ‘국민 잼’으로 불리며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마마이트에 비유해 “싫어하든 좋아하든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 “英 기지에 도착한 전술핵”…이번엔 진짜인가 (영상)

    “英 기지에 도착한 전술핵”…이번엔 진짜인가 (영상)

    │레이컨히스 기지서 핵무기 운송한 듯…“F-35A용 B61 가능성” 美, 17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 배치 정황미국이 17년 만에 영국 영토에 핵무기를 재배치한 정황이 사실상 확정 수준으로 드러났다. 미 공군 수송기의 활동과 기지 내 건설 정황, 핵폭탄 형상의 부대 기념품까지 공개되며 실제 배치가 임박했거나 완료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핵폭탄’ 형상 새긴 부대 주화 공개 미국 군사 전문 매체 워존(TWZ)은 21일(현지시간) “미 공군 제48전투비행단 산하 493전투세대정비대(FGS)가 제작한 금속 기념품에 전술핵폭탄 B61이 명확히 묘사돼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핵폭발 이미지와 함께 “심판자와 마주할 준비를 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 부대는 지난해 6월 창설됐으며, 영국 서퍽에 있는 레이컨히스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의 F-35A 전투기 정비를 지원하고 있다. 레이컨히스는 2021년 미 본토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미 공군 F-35A가 배치된 기지로, 이 전투기는 B61-12 전술핵을 탑재하고 투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종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F-35A 12대를 새로 도입할 계획을 밝혔으나 아직 이 전투기는 영국군에 실전 배치되지는 않았다. 커틀랜드발 C-17 수송기, 영국 착륙 최근 커틀랜드 공군기지를 출발한 미군 C-17A 수송기가 레이컨히스 기지에 착륙하는 장면이 포착되며 핵무기 운송 정황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이 수송기는 핵무기 수송 임무에 특화된 제62항공단 소속이며, 출발지는 미 공군 핵무기센터가 위치한 커틀랜드 기지였다. 항공 추적 계정인 인텔프로그(@TheIntelFrog)는 이 비행이 과거 전술핵 이동 패턴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17일 레이컨히스 기지 착륙 장면을 포함한 핵폭탄 추정 물자 하역 과정을 담은 영상은 영국 시민단체 뉴크워치 UK가 촬영해 공개한 것으로 핵무기 운송 정황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로 꼽힌다. 또한 이 기지 내에서 C-17 수송기가 활주로에 접근해 멈춰 선 뒤 하역 준비를 하는 모습, 수송기 위치를 조망할 수 있는 항공지도 등이 함께 공개되면서 배치 정황에 대한 신빙성을 높였다. F-35A 탑재 전제로 핵폭탄 이동 관측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22일 “미국이 17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를 다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는 군사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수송기가 실어 나른 것은 B61 핵폭탄이며, 이는 영국이 도입 예정인 F-35A에 장착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맞춰 F-35A 전투기 12대 도입 계획을 밝혔으며, 최근 영국 국방부 문건에서는 “이들 전투기는 나토 핵 임무에 투입될 수 있다”고 명시됐다. 냉전 이후 첫 공군 핵 임무 복귀영국은 현재까지는 트라이던트2 탄도미사일을 장착한 핵잠수함 전력에만 의존해 왔으며, 1998년 이후 공중 핵 임무는 폐지된 상태였다. 이번 조치는 영국 공군의 핵 역할이 26년 만에 부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가디언도 이날 보도에서 “이번 핵 재배치는 러시아와의 긴장 고조 상황과 무관치 않다”며 워존 및 더타임스 보도를 인용해 핵전력 재배치 흐름을 조명했다. 미 국방부와 영국 국방부는 관련 사실에 대한 공식 언급을 거부하고 있다. WS3 핵 벙커 개보수…인프라 조용히 완비현재 레이컨히스 기지에는 B61 계열 핵폭탄을 보관할 수 있는 WS3 지하 벙커가 포함된 격납고 개보수가 2022년부터 꾸준히 진행돼왔다. F-35A 전용 주기장 확충과 보안 강화도 병행됐으며, 미 국방부는 회계연도 예산 및 조달 문건에서 이 기지를 ‘핵 임무 준비 기지’로 분류한 바 있다. 스마트 전술핵 B61-12, 나토 전역 분산 배치 B61-12는 미국이 개발한 고정밀 유도 전술핵으로, 레이더·GPS 유도 시스템과 회전 안정화 기능을 갖춘 ‘스마트 수소폭탄’이다. 무게는 약 320㎏에 불과하지만 최대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4배 수준인 50킬로톤에 달하며, 벙커 관통 성능도 갖춰 ‘핵 벙커버스터’로 불린다. 현재 이 폭탄은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 나토 기지에 분산 배치돼 있다. 정치적 선언 없이 ‘사실상 핵 공유’영국의 사례는 정치적 선언 없이도 핵무기 재배치를 위한 기반을 조용히 조성한 뒤, 정황 증거만으로 사실상 핵 배치를 실현한 전례로 주목받는다. 핵 저장고 개보수, 핵 수송기 운영, 임무 수행 기체 배치 등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구현한 만큼, 향후 다른 동맹국에도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 시사점…“사실상의 핵 공유 구현 가능”한국은 현재 F-35A 전투기 40대를 도입해 운용 중이며, 이 중 한 대는 2022년 조류 충돌로 인해 동체 착륙 사고를 겪었으나 수리 후 지상 훈련용 항공기로 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전력은 모두 실전 배치 상태이며, 이 기체들은 기술적으로 B61-12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영국처럼 기지 기반 시설, 수송 체계, 핵 운용 기체를 모두 갖춘 구조를 마련하면 한국도 확장억제 혹은 사실상의 핵 공유를 구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정치적 선언 없이도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된다. 다만 영국은 핵보유국이자 나토 핵 공유 체계에 속한 국가인 반면, 한국은 비핵보유국으로 미국과의 협력 구조가 다르다는 점에서 똑같은 방식의 적용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영상) “英에 핵무기 배치 확정적”…美 수송기 착륙 찍혔다 [포착]

    (영상) “英에 핵무기 배치 확정적”…美 수송기 착륙 찍혔다 [포착]

    │레이컨히스 기지서 핵무기 운송한 듯…“F-35A용 B61 가능성” 美, 17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 배치 정황미국이 17년 만에 영국 영토에 핵무기를 재배치한 정황이 사실상 확정 수준으로 드러났다. 미 공군 수송기의 활동과 기지 내 건설 정황, 핵폭탄 형상의 부대 기념품까지 공개되며 실제 배치가 임박했거나 완료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핵폭탄’ 형상 새긴 부대 주화 공개 미국 군사 전문 매체 워존(TWZ)은 21일(현지시간) “미 공군 제48전투비행단 산하 493전투세대정비대(FGS)가 제작한 금속 기념품에 전술핵폭탄 B61이 명확히 묘사돼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핵폭발 이미지와 함께 “심판자와 마주할 준비를 하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 부대는 지난해 6월 창설됐으며, 영국 서퍽에 있는 레이컨히스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의 F-35A 전투기 정비를 지원하고 있다. 레이컨히스는 2021년 미 본토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미 공군 F-35A가 배치된 기지로, 이 전투기는 B61-12 전술핵을 탑재하고 투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종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F-35A 12대를 새로 도입할 계획을 밝혔으나 아직 이 전투기는 영국군에 실전 배치되지는 않았다. 커틀랜드발 C-17 수송기, 영국 착륙 최근 커틀랜드 공군기지를 출발한 미군 C-17A 수송기가 레이컨히스 기지에 착륙하는 장면이 포착되며 핵무기 운송 정황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이 수송기는 핵무기 수송 임무에 특화된 제62항공단 소속이며, 출발지는 미 공군 핵무기센터가 위치한 커틀랜드 기지였다. 항공 추적 계정인 인텔프로그(@TheIntelFrog)는 이 비행이 과거 전술핵 이동 패턴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17일 레이컨히스 기지 착륙 장면을 포함한 핵폭탄 추정 물자 하역 과정을 담은 영상은 영국 시민단체 뉴크워치 UK가 촬영해 공개한 것으로 핵무기 운송 정황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로 꼽힌다. 또한 이 기지 내에서 C-17 수송기가 활주로에 접근해 멈춰 선 뒤 하역 준비를 하는 모습, 수송기 위치를 조망할 수 있는 항공지도 등이 함께 공개되면서 배치 정황에 대한 신빙성을 높였다. F-35A 탑재 전제로 핵폭탄 이동 관측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22일 “미국이 17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를 다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는 군사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수송기가 실어 나른 것은 B61 핵폭탄이며, 이는 영국이 도입 예정인 F-35A에 장착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맞춰 F-35A 전투기 12대 도입 계획을 밝혔으며, 최근 영국 국방부 문건에서는 “이들 전투기는 나토 핵 임무에 투입될 수 있다”고 명시됐다. 냉전 이후 첫 공군 핵 임무 복귀영국은 현재까지는 트라이던트2 탄도미사일을 장착한 핵잠수함 전력에만 의존해 왔으며, 1998년 이후 공중 핵 임무는 폐지된 상태였다. 이번 조치는 영국 공군의 핵 역할이 26년 만에 부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가디언도 이날 보도에서 “이번 핵 재배치는 러시아와의 긴장 고조 상황과 무관치 않다”며 워존 및 더타임스 보도를 인용해 핵전력 재배치 흐름을 조명했다. 미 국방부와 영국 국방부는 관련 사실에 대한 공식 언급을 거부하고 있다. WS3 핵 벙커 개보수…인프라 조용히 완비현재 레이컨히스 기지에는 B61 계열 핵폭탄을 보관할 수 있는 WS3 지하 벙커가 포함된 격납고 개보수가 2022년부터 꾸준히 진행돼왔다. F-35A 전용 주기장 확충과 보안 강화도 병행됐으며, 미 국방부는 회계연도 예산 및 조달 문건에서 이 기지를 ‘핵 임무 준비 기지’로 분류한 바 있다. 스마트 전술핵 B61-12, 나토 전역 분산 배치 B61-12는 미국이 개발한 고정밀 유도 전술핵으로, 레이더·GPS 유도 시스템과 회전 안정화 기능을 갖춘 ‘스마트 수소폭탄’이다. 무게는 약 320㎏에 불과하지만 최대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4배 수준인 50킬로톤에 달하며, 벙커 관통 성능도 갖춰 ‘핵 벙커버스터’로 불린다. 현재 이 폭탄은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 나토 기지에 분산 배치돼 있다. 정치적 선언 없이 ‘사실상 핵 공유’영국의 사례는 정치적 선언 없이도 핵무기 재배치를 위한 기반을 조용히 조성한 뒤, 정황 증거만으로 사실상 핵 배치를 실현한 전례로 주목받는다. 핵 저장고 개보수, 핵 수송기 운영, 임무 수행 기체 배치 등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구현한 만큼, 향후 다른 동맹국에도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 시사점…“사실상의 핵 공유 구현 가능”한국은 현재 F-35A 전투기 40대를 도입해 운용 중이며, 이 중 한 대는 2022년 조류 충돌로 인해 동체 착륙 사고를 겪었으나 수리 후 지상 훈련용 항공기로 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전력은 모두 실전 배치 상태이며, 이 기체들은 기술적으로 B61-12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영국처럼 기지 기반 시설, 수송 체계, 핵 운용 기체를 모두 갖춘 구조를 마련하면 한국도 확장억제 혹은 사실상의 핵 공유를 구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정치적 선언 없이도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된다. 다만 영국은 핵보유국이자 나토 핵 공유 체계에 속한 국가인 반면, 한국은 비핵보유국으로 미국과의 협력 구조가 다르다는 점에서 똑같은 방식의 적용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으른들의 미술사]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으른들의 미술사]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걸작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각각 한 점씩 소장한 이 작품 가운데 루브르 소장작은 1827년 살롱전에 출품된 첫 대형 유화다. 길이 5m에 달하는 이 그림은 당시 파리 관객들을 강렬한 색채와 잔혹한 묘사로 충격에 빠뜨렸다. 비판과 논란이 거세지자 들라크루아는 1844년, 원작의 5분의 1 크기로 두 번째 버전을 제작했다. 이는 구도와 인물 배치에서 루브르 소장작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원작의 강렬한 감정을 응축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룬 이 그림은 당대 파리 미술계를 뒤흔든 문제작이었다. 화폭 가득 피로 물든 비극과 욕망, 그리고 파괴의 미학이 뒤엉켜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폭군의 몰락과 서구의 시선사방의 적군에게 포위되자 사르다나팔루스는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죽음 이후 남겨질 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염려해 자기 부하들에게 애첩과 하인들, 심지어 말까지 모두 학살하라고 명한다. 이러한 죽음과 살해 방식은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를 미개하고 잔혹하며 난폭한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러한 자살과 가족 살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는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선, 즉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한 결과였다. 무표정한 광기, 비극의 찬란함들라크루아는 이 비극적 순간에서 유혈과 죽음마저 찬란한 색채와 격정으로 묘사했다. 화면은 붉은색과 금빛으로 지배적이며 누드의 여인들은 절규하며 목숨을 잃고, 하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들어 왕의 애첩을 찌르는 잔혹한 장면이 펼쳐진다. 막 데려온 여인의 몸은 활처럼 휘어져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심지어 동물들마저 본능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감지하고 뒷걸음질 친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사르다나팔루스 자신은 침대에 무표정하게 기댄 채 모든 광경을 내려다본다. 그의 어둡고 나른한 시선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감각적인 향락을 놓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들라크루아는 그의 사치와 향락을 강조하기 위해 발가락 마디마다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으로 재현했다. 낭만주의의 등장과 들라크루아의 선구자적 역할들라크루아는 1820년대 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로 미술계에 등장했다. 당시 고전주의가 지배적이던 미술계에서 그는 색채와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며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었다. 이 시기 프랑스 정치는 혁명과 왕정복고 사이에서 자유와 억압, 희망과 환멸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어떠한 가치도 명확한 의미를 갖기 어려웠던 사회에서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고통과 파괴 속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아카데미의 규범적인 역사화 대신 낭만주의적 주관성과 감성으로 고대의 비극을 재구성했다. 고전적 조화를 중시하던 이들은 들라크루아의 과도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 평단은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그림’, ‘광기 어린 색채와 난폭한 구도’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점차 힘을 얻으면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고통과 비극을 화려한 색과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한 들라크루아 회화의 정점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광기의 미학, 시대를 넘어선 승리죽음과 쾌락, 파괴와 욕망이라는 극단적 주제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 앞에서 관람객은 죽음마저도 ‘연출된 향락’임을 깨닫게 된다. 들라크루아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통해 죽음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낭만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파국 속에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이 회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승리한 예술로 남았다. 사르다나팔루스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라졌지만, 들라크루아는 이 강렬한 회화로 낭만주의 미술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파괴의 서사,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걸작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각각 한 점씩 소장한 이 작품 가운데 루브르 소장작은 1827년 살롱전에 출품된 첫 대형 유화다. 길이 5m에 달하는 이 그림은 당시 파리 관객들을 강렬한 색채와 잔혹한 묘사로 충격에 빠뜨렸다. 비판과 논란이 거세지자 들라크루아는 1844년, 원작의 5분의 1 크기로 두 번째 버전을 제작했다. 이는 구도와 인물 배치에서 루브르 소장작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원작의 강렬한 감정을 응축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룬 이 그림은 당대 파리 미술계를 뒤흔든 문제작이었다. 화폭 가득 피로 물든 비극과 욕망, 그리고 파괴의 미학이 뒤엉켜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폭군의 몰락과 서구의 시선사방의 적군에게 포위되자 사르다나팔루스는 항복 대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는 죽음 이후 남겨질 가족과 하인들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염려해 자기 부하들에게 애첩과 하인들, 심지어 말까지 모두 학살하라고 명한다. 이러한 죽음과 살해 방식은 서구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를 미개하고 잔혹하며 난폭한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이러한 자살과 가족 살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는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선, 즉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한 결과였다. 무표정한 광기, 비극의 찬란함들라크루아는 이 비극적 순간에서 유혈과 죽음마저 찬란한 색채와 격정으로 묘사했다. 화면은 붉은색과 금빛으로 지배적이며 누드의 여인들은 절규하며 목숨을 잃고, 하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들어 왕의 애첩을 찌르는 잔혹한 장면이 펼쳐진다. 막 데려온 여인의 몸은 활처럼 휘어져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심지어 동물들마저 본능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감지하고 뒷걸음질 친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사르다나팔루스 자신은 침대에 무표정하게 기댄 채 모든 광경을 내려다본다. 그의 어둡고 나른한 시선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감각적인 향락을 놓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들라크루아는 그의 사치와 향락을 강조하기 위해 발가락 마디마다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으로 재현했다. 낭만주의의 등장과 들라크루아의 선구자적 역할들라크루아는 1820년대 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로 미술계에 등장했다. 당시 고전주의가 지배적이던 미술계에서 그는 색채와 감정의 격렬함을 강조하며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었다. 이 시기 프랑스 정치는 혁명과 왕정복고 사이에서 자유와 억압, 희망과 환멸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어떠한 가치도 명확한 의미를 갖기 어려웠던 사회에서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고통과 파괴 속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아카데미의 규범적인 역사화 대신 낭만주의적 주관성과 감성으로 고대의 비극을 재구성했다. 고전적 조화를 중시하던 이들은 들라크루아의 과도한 감정의 파노라마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 평단은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그림’, ‘광기 어린 색채와 난폭한 구도’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점차 힘을 얻으면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고통과 비극을 화려한 색과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한 들라크루아 회화의 정점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광기의 미학, 시대를 넘어선 승리죽음과 쾌락, 파괴와 욕망이라는 극단적 주제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 앞에서 관람객은 죽음마저도 ‘연출된 향락’임을 깨닫게 된다. 들라크루아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통해 죽음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낭만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파국 속에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이 회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승리한 예술로 남았다. 사르다나팔루스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라졌지만, 들라크루아는 이 강렬한 회화로 낭만주의 미술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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