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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베토벤으로 맺어진 피아노의 대가들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베토벤으로 맺어진 피아노의 대가들

    자타 공인의 국가대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멋진 도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가 7일간 8회의 연주를 통해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10년 만의 재시도였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악성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은 필생의 기록들을 연주자의 역량을 총동원해 풀어 낸 일흔 살 노대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작곡가가 토해 낸 온갖 종류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표들을 한 땀 한 땀 짚어 가는 연주를 들으면서 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 작업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피아니스트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흔히 ‘신약성서’에 비유되며, 피아노를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작품 대부분을 공부한다. 그런 면에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1882~1951)의 공로는 크게 기억돼야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슈나벨은 베토벤의 소나타들이 크게 인기가 없던 20세기 초부터 많은 연구와 실험이 동반된 탁월한 해석의 베토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고, 1927년 작곡가 서거 100주년을 비롯해 그 후 여러 차례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무대를 가졌다. 아울러 1935년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베토벤의 소나타 32곡의 녹음도 발표했는데 이는 전곡 녹음의 첫 기록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자세한 주석과 설명이 들어 있는 베토벤 소나타 편집 악보를 만들어 자신의 연구 결과를 후대에 알리기도 한 슈나벨은 지금까지도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베토벤의 소나타가 ‘신약성서’라면 ‘구약성서’는 바흐의 평균율 모음곡집이다. 전 48곡으로 구성돼 있는 이 작품은 작곡 당시였던 바로크 후기에 막 시작된 조율 방법인 ‘평균율’의 실질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연습곡집이다. 대위법의 대가였던 바흐가 만든 다성음악(둘 이상의 선율이 동시에 나타나는 음악)의 표준이 되는 이 곡집을 최초로 녹음한 사람은 슈나벨의 동료였던 스위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1886~1960)였다. 1936년 발표된 평균율 모음곡집 앨범은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바흐의 작품을 연구한 피셔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소중한 증거다. 그의 해석은 다양한 음색 변화와 적절한 템포 설정을 통해 작품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생동감 있는 연주로 대변된다. 피셔는 베토벤의 연주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슈나벨의 스타일이 꼼꼼한 고증과 자신의 주관이 섞인 고집스러운 것이었다면 피셔의 그것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로맨틱한 풍모가 두드러졌다고 하겠다. 피셔의 제자로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고스란히 계승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1931~)이다. 1948년 데뷔한 브렌델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있었던 피셔와의 마스터클래스가 자신의 음악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지만 브렌델은 꾸준한 음반 제작으로 천천히 명성을 얻은 연주자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앨범은 무려 세 차례나 완성해 20세기 후반 가장 권위 있는 베토벤 해석의 기준이 됐다. 브렌델의 스타일은 철저히 악보와 그것을 만든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연주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즉흥적인 악상을 내보이거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 건실한 자세를 유지한다. 40대에 들어서 자신의 입지를 알린 대기만성형의 연주자 브렌델은 베토벤 외에도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에 깊은 애정을 보이며 작곡가의 알려지지 않았던 레퍼토리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혜안을 지녔던 피아노의 대가들이 유독 베토벤에 집중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서른두 곡의 걸작들에 평생에 거쳐 쌓아 온 예술 혼이 차곡차곡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베토벤과 함께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여행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행보임이 분명하다.
  • 송도국제도시, 투자 즉시 수익 창출 가능한 수익형 부동산 전성시대

    송도국제도시, 투자 즉시 수익 창출 가능한 수익형 부동산 전성시대

    정부의 강도 높은 정책이 지속되는 요즘 부동산 시장은 바야흐로 수익형 부동산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유는 정책이 대부분 아파트 분양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수익형 부동산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래가치가 기대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돼 높은 경쟁률에 완판까지 기록해 눈길을 끈다. 특히 수익형 부동산의 높은 인기가 돋보이는 입지는 송도국제도시이다. 송도의 수익형부동산은 투자자들의 발길이 바삐 움직이게 만든다. 규제 무풍지대라 불리는 입지로 관심이 집중되는 송도국제도시는 개발호재가 많고 탄탄한 배후수요를 갖춘 곳으로 상승률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지난 6월 분양한 ‘송도 아트포레 푸르지오 시티’는 평균 청약경쟁률 8대 1의 성적을 기록하며 조기 분양 마감됐다. 더욱이 바다조망이 가능한 전용 74㎡의 테라스형은 군 최고 6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최근 분양한 ‘힐스테이트 송도 더테라스’ 역시 오피스텔 현장 청약 접수 결과 총 2,784실 모집에 9만8,904건이 몰리며 평균 35.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동산관계자는 “송도 내에서 수익형 부동산은 물량이 부족해 희소성이 높아 투자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인근에 수요자들이 넘쳐나지만 수용 가능한 단지가 부족한 상황이라 더욱 임목이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송도 내에서 빠른 물량 소진을 기록하고 있는 ‘송도 아트윈몰 & 오피스텔’은 선 시공 후 분양이 진행되는 단지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단지는 기존 선 분양 방식과는 달리 이미 완공된 상태에서 분양을 진행하기 때문에 투자 시 바로 임대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시설을 직접 확인한 후 투자할 수 있어 투자의 안정성까지 높였다. 특히 단지는 풍부한 배후수요는 물론 다양한 입지적 장점을 선점해 만족도를 더한다. 인근에는 포스코엔지니어링, 포스코건설, 포스코 R&D, 인천경제자유구역청, GCF, 부영 등 다양한 기업은 물론 국제기구까지 입주한 상태다. 이미 입주해 있는 송도 아트윈 푸르지오 아파트 999가구와 송도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시티 1,140실을 비롯해 홀리데이 인 호텔 등 풍부한 배후수요를 확보한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우수한 교통망이 투자 메리트로 작용된다. 단지는 인천지하철 1호선 센트럴파크역이 지상으로 나가지 않고 지하 1층에서 바로 연결되는 초역세권이다. 또 인천대교, 제 1,2,3경인고속도로 진출입이 수월하다. 인천공항까지 30분대, 강남까지 1시간대로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며 향후 GTX 교통망 확충, 산업단지 조성 등 개발이 완료되면 미래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문화와 자연, 쇼핑을 동시에 누리는 인프라가 형성돼 있다. 아트센터 콤플렉스의 마지막 오피스텔 분양으로 명성이 자자한 단지는 인근에 위치한 아트센터에서 여유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약 41만m² 규모의 국내 최초 해수공원인 송도 센트럴파크 역시 가깝게 자리해 다양한 수상레저도 이용할 수 있다. 더불어 송도 커낼워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홈플러스, 코스트코 등 쇼핑몰이 가깝고 약 8만4,357㎡ 부지에 들어서는 롯데몰이 인근에 조성 중이다. 한편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위치한 ‘송도 아트윈 푸르지오’ 주상복합단지 내에 조성되며, 이달 25일부터 ‘송도 아트윈몰’의 사전 예약접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단지는 총 1,236세대 규모(아파트 999가구, 오피스텔 237실)이며, 이미 완공해 아파트 입주를 마친 상황이다. 단지 내에는 202실의 홀리데이 인 호텔이 조성돼 이미 운영 중에 있다. 금번 분양이 진행되는 오피스텔은 지상 3층 ~ 7층, 총 108실이고, 아트윈몰은 지상 1층 ~ 2층, 총 58실 규모다. 분양홍보관은 단지 내 상가에 자리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귀성 전쟁(상)/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귀성 전쟁(상)/손성진 논설주간

    바야흐로 추석 기차표 예매 시즌이다. 명절 귀성 전쟁은 예매로부터 시작된다. 요즘은 거의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있어서 일부만 역 창구에서 표를 미리 판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역이나 광장으로 직접 나가 표를 사야 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이카’ 시대 전이고 비행기는 생각도 못하던 때라 고향을 오가는 교통수단은 기차와 고속버스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표를 구하려는 수만 명의 인파가 예매 장소로 몰려가 밤을 새우고 진을 쳤다. 역 근처 여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역으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의 경우 기차표 예매는 서울역광장과 서부역광장, 고속버스표 예매는 여의도의 옛 5·16광장에서 했다. 1979년 추석에는 서울역에 3만명, 여의도에 7만명이 몰린 것으로 돼 있다. 표 구하는 데 목숨을 걸다시피 한 사람들이 떼로 몰리니 가장 큰 문제는 질서 유지였다. 실외에서 기다리다 보니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큰 혼란이 벌어졌다. 수천, 수만 명이 질서를 지키며 차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실로 어려웠다. 자리다툼이 자주 일어나서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도 일쑤였다. 큰 압사 사건이 난 서울 용산역에서는 귀성객 수송 예행연습을 하기도 했다.질서 유지에 나선 경찰관이나 철도 공안원들은 때로는 곤봉을 휘두르며 사고를 막으려 했다. 길이가 5m나 되는 긴 장대도 등장했다. 서 있을 때는 질서를 지키기가 더 어려우므로 일단 사람들을 앉혀 놓고 봐야 했다. 공안원들은 조금이라도 소란이 일 듯하면 장대를 휘저으며 강제로 사람들을 앉혔다. 장대는 1960년대 말부터 혼잡한 역사 내의 질서를 잡기 위해 사용됐는데 귀성객들은 죄인 취급당하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해했다. 서울의 인구 급증으로 귀성객은 해마다 늘어나고 수송능력은 제자리걸음을 했으니 표를 구하지 못해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 수십만명이나 됐다고 한다. 표를 구하기 어려울 때일수록 암표가 활개를 친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해도 고향 땅 가는 게 소원인 사람들에게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암표라도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암표상들은 줄을 서서 표를 구하기도 했지만 매표원들과 짜고 다발로 표를 넘겨받기도 했다. 암표상들은 대개 두세 배나 되는 값에 팔아 폭리를 취했지만 경범죄에 해당하는 구류 처분만 받아 근절이 어려웠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 중반에서야 기차표 예매를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초기에는 직원의 실수로 전산망이 다운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지만 앉아서 표를 예매할 수 있게 된 것은 가히 혁명이었다. 사진은 1983년 9월 10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석 귀성 기차표를 구하려고 서울 여의도광장 예매소 앞에 몰려든 인파.
  • [K리그] 윤용호 데뷔골 신고, 대표팀 상대로 두 골 넣었던 주인공

    [K리그] 윤용호 데뷔골 신고, 대표팀 상대로 두 골 넣었던 주인공

    축구대표팀과 비공개 연습경기에서 두 골을 몰아넣었던 윤용호(21·수원)가 K리그 데뷔골을 신고했다. 윤용호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남과의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에 중앙 미드필더로 깜짝 선발 출전해 전반 1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산토스가 중원에서 넘겨준 패스를 받아 자세를 돌리며 세 수비수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가볍게 찬 슈팅이 수비수 몸에 맞고 굴절돼 골키퍼 이호승이 손 쓸 틈조차 주지 않고 골대 상단 구석에 꽂혔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유스팀 출신인 윤용호는 그동안 주시했던 선수”라며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비롯해 R리그에서도 꾸준히 활약해 선발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윤용호는 지난 5월 14일 전남과 원정 경기 후반 28분 교체 투입됐지만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그 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윤용호는 지난달 26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경기를 앞둔 축구대표팀과 비공개 연습경기에서 2골을 몰아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서 감독은 “윤용호가 국내 최고의 수비진을 상대로 두 골을 넣어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며 웃었는데 제자가 기대에 부응해 데뷔골을 뽑아내자 힘껏 안아주며 격려했다. 수원은 전반 13분 산토스가 김민우의 도움을 득달같이 달려들어 오른발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터뜨렸고, 윤용호의 추가 골에 이어 전반 27분 박기동이 김민우의 칩슛이 크로스바에 맞고 튀어나온 것을 넘어지며 몸으로 밀어넣어 3-0으로 달아났다. 역대 다섯 번째 ‘60(골)-60(도움)’ 가입이 기대됐던 염기훈은 후반 12분 박기동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직후와 후반 34분 문전에서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지만 골문을 열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 막판 산토스의 크로스를 문전 왼쪽을 파고들며 몸을 날려 머리에 맞혔으나 공은 골 라인 밖으로 나갔다. 골 하나만 더해도 60-60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다음으로 미뤘다. 4위 수원은 후반 4분 고태원이 퇴장 당해 수적 열세에 빠진 상대를 두들겼으나 3-0으로 경기를 마쳐 승점 49를 쌓아 전날 FC서울과 0-0으로 비긴 2위 제주, 상주를 4-2로 물리친 3위 울산(이상 승점 51)과의 간극을 2로 좁혔다. 5위 제주(승점 43)에는 6 차이로 달아났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같은듯 다른 개화산 자락 따라… 겸재의 벼슬길 엿보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같은듯 다른 개화산 자락 따라… 겸재의 벼슬길 엿보다

    조선시대 한강은 아름다운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한 하천이었다. 중랑천과 탄천이 합류하며 강폭이 크게 넓어진 금호동과 압구정동 앞은 동호(東湖)라 했다. 여의도에 막혀 흐름이 나뉘었다 다시 합쳐져 호수처럼 광활한 마포 일대는 서호(西湖)다. 단순히 ‘중국 따라하기’에 급급한 과장이 아니었다. 홍제천에 이어 창릉천이 합류한 행주산성 앞의 한강은 행호(幸湖)라 불렀다. 겸재 정선(1676~1759)의 ‘행호관어’(杏湖觀漁)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과 그 아래 한강에서 고기잡이하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오늘은 서울 강서구에 남은 겸재의 흔적을 찾아간다. 겸재라면 별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우리 고유 화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대가(大家)다.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는 드물게 화업(畵業)으로 입신해 만년 종2품 가선대부지중추부사에 제수되기도 했다. 그는 지방관으로도 종6품 경상도 하양과 청하 현감을 거쳐 65세이던 1740년(영조 16)부터 5년 동안 종5품 경기도 양천현령을 지냈다.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였다.양천현아(縣衙)는 강서구 가양동의 한강변 궁산(宮山) 남쪽에 있었다. 궁산은 67m 높이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트여 있어 일대 풍광을 감상하기에는 최적이다. 겸재는 양천현감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강 주변의 풍광을 담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과 연천 임진강변을 묘사한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그리고 임지(任地)의 명승을 그린 ‘양천팔경’(陽川八景)을 남겼다. 이 시절의 겸재 산수는 예술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공적 변화가 가해지기 전의 한강 풍경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러니 양천 나들이는 그림 속 한강의 풍경과 오늘날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줄 것이다.겸재를 찾아가는 여행은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정선미술관은 궁산의 남서쪽 초입에 2009년 문을 열었다. 소장품이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전시실을 차근차근 둘러보면 겸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주택가 한편으로 공장지대가 맞붙은 궁산 일대는 제법 복잡해 탐방객이 자동차를 세울 곳이 그리 마땅치 않다. 정선미술관에 주차하면 입장료 1000원은 더더욱 아깝지 않다.정선미술관의 건물 뒤편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궁산근린공원이 나타난다. 궁산에는 삼국시대 양천고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소악루(小岳樓)는 완만한 공원길을 천천히 걸어서 10분만 올라가면 보인다. 겸재 당시와는 다른 건물이라지만 한강과 안산, 남산의 모습이 장쾌하다. ‘경교명승첩’의 ‘목멱조돈’(木覓朝暾)은 소악루 주변에서 바라본 풍경일 것이다. ‘목멱조돈’이란 목멱, 즉 남산으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궁산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양천향교가 있다. 양천향교는 1980년대 이후 복원 작업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서울시에 남은 유일한 향교로 지역사회 교육 및 복지사업이 활발하다고 한다. 향교 앞 연립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곳이 양천현아 터다. 골목길 가운데 ‘양천현아지’(陽川縣衙址)라 새긴 비석이 보인다. 겸재가 ‘경교명승첩’에 ‘양천현아’와 ‘종해청조’(宗海廳潮)를 남겨 놓은 것은 다행스럽다. 종해헌은 양천현의 동헌이었다. ‘종해청조’는 ‘종해헌에서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종해헌 건물은 1977년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한강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곳은 궁산에서 한강 상류 쪽으로 1.5㎞쯤 떨어진 허준근린공원에 있는 공암이다. 겸재는 이곳의 풍광을 ‘공암층탑’(孔巖層塔)에 남겨 놓았는데, 한강변의 대표적 승경(勝景)은 이제 올림픽대로에 갇혀 초라하기만 하다. 양천 출신의 의성(醫聖) 구암 허준(1539~1615)을 기리는 공원 주변에는 허준박물관도 있다. 이제 다시 방향을 돌려 궁산과 마곡지구 개발 현장을 지나면 개화산이 보인다. 겸재는 과거의 첫 단계인 사마시(司馬試)도 거치지 않았고 증조부 이래 관직에 나가지 못해 음서(蔭敍)도 막혀 있었다. 그럼에도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장동 김문(壯洞 金門)을 비롯한 노론계 인사들의 적극적인 후원 때문이다. 장동 김문이란 육창(六昌)이라 불리며 문단을 주도했던 김창협·김창집·김창흡·김창업·김창연·김창립 육형제를 비롯해 노론이 모여 살던 장동, 곧 서울 효자동 일대의 안동 김씨들을 말한다. 겸재가 늘그막에 서울에서 가까운 양천에 자리잡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겸재는 특히 삼연 김창흡의 제자였다. 그런데 삼연 문하에는 사천 이병연(1671~1751)도 있었다. 겸재는 양천으로 부임하기에 앞서 사천과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자’(詩畵換相看)고 약속한다. 이후 사천이 진경시 한 편을 써서 보내면 겸재는 진경산수 한 폭을 그려 보냈다. 겸재는 이듬해 여름까지 광주 분원의 풍경을 그린 우천(牛川)부터 광진(廣津), 송파진(松坡津), 압구정(狎鷗亭), 동작진(銅雀津)을 거쳐 개화사(開花寺)까지 33곳의 한강 일대 풍경을 그렸으니 바로 ‘경교명승첩’이다. 1742년(영조 18)에는 양화진(楊花津), 선유봉(仙遊峰), 이수정(二水亭), 소요정(逍遙亭), 소악루(小岳樓), 귀래정(歸來亭), 낙건정(健亭), 개화사(開花寺)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이른바 ‘양천팔경첩’이다.양천팔경을 이루는 소재의 대부분이 특정인의 별서(別墅)라는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예술과 벼슬길에서 모두 성공적이었던 겸재의 정치적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경교명승첩’에도 같은 화제(畵題)가 있는 개화사는 어떤 연유에서 그렸는지 궁금하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개화산 기슭의 개화사는 이제 약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행호가 내려다보이는 절 마당에는 겸재의 그림에도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화사는 영조의 탕평책을 뒷받침했던 장밀헌 송인명(1689~1746)이 소싯적 공부를 했고, 훗날 중수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던 여산 송씨 집안의 원찰이었다고 한다. 겸재가 양천현령에 제수되던 시기 송인명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좌의정이었다. 송인명은 소론이었지만 노론과 크게 척을 지지 않은 완소(緩少) 계열이었다. 게다가 김창흡의 처조카다. 개화사에서 얽힌 겸재와 송인명의 인연은 ‘행호관어’로 이어진다. 이 그림에는 세 채의 명망가 별서가 보인다. 오른쪽부터 차례로 김광욱의 귀래정, 송인명의 장밀헌, 김동필의 낙건정이다. 귀래정과 낙건정은 양천팔경에도 등장하니 귀에 익을 것이다. 겸재 당시 귀래정은 김광욱의 증손자인 동포 김시민이 주인이었다. 겸재와 동포는 김창흡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사이다. 또 한 사람의 동문인 사천은 동포와 먼 친척뻘이다. 여기에 김동필은 사천의 이종사촌이면서 동포와도 8촌지간이다. 송인명 또한 사천, 동포, 김동필과 8촌 형제였다고 한다. 그러니 개화사는 겸재에게 작지 않은 의미가 있는 절이었다. 결국 ‘양천팔경첩’은 지역의 경승을 그렸다기보다 겸재와 인연이 있는 장소를 모은 화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중학생 제자 상습 추행한 50대 男교사 “이성으로 만났다”

    중학생 제자 상습 추행한 50대 男교사 “이성으로 만났다”

    여중생 제자를 상습적으로 추행한 전직 중학교 교사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교사는 재판에서 “이성으로 만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전주지법 형사2부(부장 이석재)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전직 교사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A씨는 2013년 무렵 학교와 자신의 차, 집안 등지에서 제자인 B양을 7차례에 걸쳐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A씨는 B양과 이성으로 만나는 관계라고 주장했다. A씨는 B양과 ‘포옹하고 입맞춤 한 사실이 있지만 합의해 스킨십했다’고 말했다. 반면 B양은 ‘선생님께서 사적으로 많이 챙겨줘 남자라기보다는 교사로서 좋아했고, 스킨십을 거부하면 선생님이 카카오톡으로 짜증 표시를 하고 한숨 쉬는 등 싫은 내색을 했다’고 진술해 양측 주장이 상반됐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가 실제 경험하지 않았다면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는 점 등을 근거로 A씨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B양을 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범이지만 교사로서 보호해야 할 피해자를 상습 추행해 피해자가 큰 수치심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을 부인하는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 사건이 불거진 뒤 지난해 파면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연극이 끝난 뒤’ 詩 들으며 떠나다

    ‘연극이 끝난 뒤’ 詩 들으며 떠나다

    고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고인의 영결식이 열린 7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은 분노 섞인 울음과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영결식에는 연세대 13학번 제자의 트럼펫 연주곡 ‘대니 보이’가 울려 퍼졌다. 마 전 교수의 제자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추도사에서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도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자유로움, 해박함에는 고개를 숙였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선생님은 늘 가면을 벗을 솔직함을 강조했고, 그렇게 살아 오셨다”고 눈물지었다. 마 전 교수의 제자이자 마 전 교수가 필화를 겪게 한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 영화 제작을 추진했던 임장미 감독은 “(마 전 교수의 죽음은)사회적 타살”이라면서 “답답한 대한민국의 위선과 가식을 벗어던진 순수한 영혼이었던 사람을 감옥에 가둔 이 사회를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영결식에도 문학계 인사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당시 책을 낸 출판사 청하의 편집위원으로 고인 구명운동을 벌였던 하재봉 시인과 소설가 하일지, 김별아 정도가 눈에 띄었다. 다른 참석자들은 대부분 가족과 지인들, 그가 가르쳤던 1980년대 제자들이었다. 마 전 교수의 고교 동창이자 최근까지 가깝게 지냈던 심강일(67)씨는 마 전 교수의 생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의 시 ‘연극이 끝난 뒤’를 추도시로 낭송하며 친구를 떠나보냈다.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나요/ 잊혀질 것을 두려워하나요/ 아 어차피 인생은 연극인 것을/ 우리의 그 마지막 대사를/ 다시 한 번 외어 보아요/ 그래, 정말 보람이 있었수?”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서동철 칼럼] 신립과 이억기, 그리고 이순신

    [서동철 칼럼] 신립과 이억기, 그리고 이순신

    충북 충주의 남한강변에는 고려시대 마애불이 있다. 그런데 마애불이 육지 쪽이 아닌 탄금호 물길을 바라보고 있어 탐방객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마애불 주변에 고려시대 이후 경상도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수운(水運)으로 개경이나 한양으로 나르던 조창(漕倉)이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조금은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조운선 뱃사람들은 먼 길에 나서기에 앞서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마애불을 향해 손을 모았을 것이다.이 마애불에는 설화도 깃들어 있다. 주인공은 뜻밖에 신립 장군이다. 신립이라면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에서 이른바 ‘배수(背水)의 진(陣)’으로 싸우다 조선군을 사실상 전멸시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탄금대에서 패한 신립이 남한강을 헤엄쳐 건너와 바위에 자기 얼굴을 손으로 그려 놓고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했으니 마애불은 곧 그의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마애불의 군데군데 붉은빛은 신립의 피라는 믿음이 덧붙여진다. 남한강 수운은 20세기 들어 경부선과 충북선이 잇따라 부설되어 서울에서 충주까지 철도로 이어지기 직전까지도 기능을 발휘했다. 설화는 조운선 뱃사람과 그 가족이 중심이었을 마을 주민들이 신립 장군을 부처의 모습으로 현현(顯現)한 수신(水神)으로 격상시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에게 신립은 ‘실패의 아이콘’으로 인상지워졌지만 정작 처참한 패배의 현장인 충주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다르다. 신립은 북변에 침입한 여진족 이탕개를 물리친 데 이어 두만강 건너까지 추격해 본거지를 소탕한 장수다. 이탕개가 1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시 경원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육진(六鎭)을 방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역사에 남을 맹장(猛將)의 한 사람으로 기록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한 번의 패배로 고집불통의 지략 없는 졸장부가 되고 말았으니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탄금대 전투를 다룬 역사학자의 글을 읽으며 신립이 결코 폄하되어도 좋을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됐다. 1만명 남짓한 신립 군은 육진 출신의 정예 기마병 일부에 오합지졸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은 1만 8700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일 장군이 이끈 사실상의 농민군은 이미 상주 전투에서 끔찍한 패배를 당한 상황이었다. 결국 북변에서 기마전술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는 신립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전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기마병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탄금대 앞 개활지에서 왜군과 맞붙게 됐다는 것이다. 탄금대 전투는 처음부터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그럼에도 패배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신립과 조선군이 두 배 가까운 왜군과 맞붙어 결코 비겁하지 않게 싸우고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사실은 잊히곤 한다. 탄금대의 패배로 피난 갈 시간을 벌지 못한 선조 임금과 조정의 인식을 21세기에도 답습할 이유는 없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가 오늘날 국난(國難)에서도 긍정적으로만 작용할지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없지 않다. 이순신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과 열두 척의 배로 왜군 선단과 맞서 승리를 거둔 명량대첩도 신화의 반열에 올려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존재로 명장(名將)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엊그제는 전남 해남의 전라우수영에 다녀왔다. 옛터에는 ‘통제사 충무 이공 명량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왜란 내내 전라우도 수군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억기 장군의 자취는 없다. 그는 1597년 7월 15일 칠천량에서 전사했고, 이순신은 9월 16일 우수영에서 지척인 명량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이순신 같은 존재가 있는지 묻고 싶다. 아니라면 신립이나 이억기처럼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작은 영웅들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 [단독] 쓸쓸한… 문학계 발길 없었다

    [단독] 쓸쓸한… 문학계 발길 없었다

    조문객 대부분 친지·제자 “자살로 마지막 저항” 울분 “왕따 당해 억울하게 죽어” 배우 김수미씨 음주 소동6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마련된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는 저녁 시간 한때를 제외하곤 썰렁했다. 복도에 세워진 조화는 풍성했지만 영정을 곁에서 지키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다. 조문객은 친지와 지인, 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 전 교수가 ‘문학계의 이단아’로 불려서인지 문학계 관계자의 발걸음은 드물었다. 빈소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다. 그는 마 전 교수의 고교 동창 심강일(67)씨로 이틀째 빈소를 지키는 중이었다. 심씨는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우리 사회를 향한 마지막 저항”이라며 “천재적인 사람이었지만 성정(性情)이 예민한 탓에 온갖 사회적 비판과 복직 이후 학교에서 받았던 핍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마 전 교수와 서울 대광고 동창이라고 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친구로 지냈다. 마 전 교수가 심씨의 초상화를 직접 그려 줄 만큼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심씨는 대학에 진학해 교육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마 전 교수와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 1998년 마 전 교수가 사면·복권된 이후부터 다시 가깝게 지냈다. 심씨는 최근 3~4년 동안 또 다른 고교 동창인 이종홍(67)씨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마 전 교수의 자택을 찾았다. 마 전 교수의 곁엔 누나 조모(74)씨와 가사도우미, 그리고 심씨와 이씨뿐이었던 것이다. 조씨는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 전 교수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했다”면서 “주변 지인들이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마 전 교수가) 나와 자신 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슬퍼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쯤 원로배우 김수미(68)씨가 마 전 교수의 빈소에 술에 취한 채 찾아와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는 “글을 이상하게 썼다고 감옥에 보내고, 교수들이 왕따시켜서 억울하게 이렇게 만든 것 아니냐”면서 “나도 죽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그는 병원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도 “마광수가 내 친구인데 너무 슬프다. 나도 죽어 버리겠다”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의 가방에서 커터칼을 발견하고 회수했다. 경찰의 설득 끝에 안정을 찾은 김씨는 빈소 한쪽에서 엎드려 있다가 2시간 만에 빈소를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마 전 교수의 빈소에서 소란을 벌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아들과 딸에게 인계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7일 오전 10시 30분 영결식을 치르고 시신은 화장할 예정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스승의 춤사위… 제자의 굿거리… 환상의 컬래버

    스승의 춤사위… 제자의 굿거리… 환상의 컬래버

    스승과 제자의 특별한 무용 공연이 오는 9~1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내 대표 중견 안무가인 전미숙(59)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이끄는 전미숙무용단이 선보이는 ‘바우’(BOW)다.일상적 몸짓인 인사라는 제스처 속 인간이 품고 있는 다양한 내면의 표정을 상상하고 인간관계의 양면성을 다룬 작품이다. 2014년 말레이시아 타리댄스페스티벌에서 초연했다. 지난해에는 세계적 무용 마켓인 독일의 탄츠메세 공식 쇼케이스에 선정되는 등 해외에서 작품성을 먼저 인정받은 후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인다. 이 작품은 특유의 역동적인 안무와 함께 작품에 사용할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팔방미인’ 김재덕(33) 모던테이블 대표와 같이 빚어내 특히 눈길을 끈다. ●일상적인 인사에 담겨진 양면성 조명 전 교수는 4년 전 ‘바우’를 구상할 때 조안무였던 현대무용가 김보라(35)를 통해 김재덕을 섭외하게 됐다.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국내외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는 김보라는 김재덕과 부부 사이다. “당시 개인적으로 작품에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다고 누구한테 선뜻 도와 달라는 말을 하기도 힘들었죠. 저랑 코드가 완벽하게 맞아야 하니까요. 그런 사람이 몇 안 되는데 그중 확신이 서는 사람이 보라였어요. 오래 봐 온 제자이기도 하고 그 안무력과 감각을 신뢰하거든요. 그때 보라의 소개로 재덕이 음악을 듣고는 너무 좋았어요. 재덕이 공연을 많이 봐 왔지만 그때 들었던 음악은 제 작품의 장면들을 살려 줄 만한 임팩트가 있었거든요.”(전미숙) ●굿거리장단에 첼로·비올라 조합 ‘바우’에 사용된 음악은 김재덕이 자기 작품인 ‘시나위’를 위해 만들었던 곡이다. 굿거리장단에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타악기 등 다양한 소리를 얹고 불경을 읊조리는 듯한 김재덕의 목소리가 실렸다. 전위적인 느낌의 곡이다. 평소 작품을 만들 때 음악 제작을 의뢰하는 일이 드문 전 교수로서는 의외의 선택이었다. 대학 은사의 뜻밖의 협업 제안에 김재덕 역시 처음엔 놀랐다고 했다. ●전미숙 “그야말로 유기적인 화합” “보통 공연을 할 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곡을 사용하는 편이에요. 작곡을 의뢰하며 작품 의도를 자세히 설명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구현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본인이 춤을 추는 사람이라서 재덕이의 음악에는 관객에게 선사하는 감흥과 감동이 담겨 있어요. 작품을 볼 때 상상과 해석의 폭을 넓히는 힘도 있고요.”(전미숙) “처음에 선생님의 전화를 받자마자 ‘저 안 될 것 같은데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라고 여쭸어요. 부담스러웠거든요. 제 음악은 날것의 느낌이 강한 편이라 선생님 작품에 맞을까 걱정이 컸죠. 자칫 멋이 없을 수도 있거든요. 제 음악을 작품 속에서 멋으로 승화시켜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김재덕) 두 사람은 ‘바우’ 작업을 하는 동안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서로의 공연을 많이 보고 작품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각자 예술적 가치가 뚜렷한 두 예술가가 만나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제자 김재덕 “음악 잘 스며들어 보람” “요즘 컬래버레이션을 많이들 하는데 사실은 각자 방식이 있어서 협업이 생각보다는 힘들어요. 하지만 재덕이와는 잘 통했어요. 안무가 자기의 삶인 데다 무용단도 운영하고 있으니 평소 음악, 무용에 대한 고민을 저보다 얼마나 많이 하겠어요.”(전미숙) “안무가로 음악을 만들며 이런저런 고민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선생님의 격려가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재덕아 네가 할 수 있는 거고 잘하는 거니까 자신을 믿고 그냥 해보라’고요. 그 말씀 덕분에 제가 날개를 편 만큼 제 음악이 ‘바우’를 빛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김재덕)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단독] 배우 김수미, 마광수 빈소에서 자해 소동, 경찰 출동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출연해 유명세를 탄 원로배우 김수미(68)씨가 고(故)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빈소에서 음주 자해 소동을 벌였다. 6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마련된 마 전 교수의 빈소에 술에 취한 채 조문을 하러 찾아왔다. 김씨는 “글을 이상하게 썼다고 감옥에 보내고, 교수들이 왕따 시켜서 억울하게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냐”면서 “나도 죽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김씨는 병원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도 “마광수가 내 친구인데 너무 슬프다. 나도 죽어버리겠다”라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빈소에서 커터칼을 꺼내 “너무 슬프다.나도 죽을 것”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의 가방에서 커터칼을 발견하고 회수 조치했다. 경찰의 설득 끝에 안정을 찾은 김씨는 빈소 한 쪽에서 엎드려 있다가 2시간 만에 빈소를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마 전 교수의 빈소에서 소란을 벌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아들과 딸에게 연락 후 인계했다. 혹시나 해서 조치한 것을 뿐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마 전 교수와 생전에 막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소동은 김씨가 마 전 교수의 갑작스런 부음 소식에 상심이 크고, 감정이 격해져 발생한 해프닝으로 전해졌다. 김씨 측은 “정확한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또 김씨가 출연 중인 MBC 주말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 측은 “김씨의 소동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의 분량이 많지 않아 촬영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마 전 교수의 빈소 곳곳에선 진한 쓸쓸함이 묻어났다. 복도에 세워진 조화는 풍성했지만 영정을 곁에서 지키는 사람은 몇명에 불과했다. 조문객들은 친지와 지인, 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 전 교수가 ‘문학계의 이단아’여서인지 문학계 관계자의 발걸음은 드물었다. 유족은 7일 오전 10시 30분 고인의 영결식을 치르고 시신은 화장할 예정이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단독] 원로배우 김수미, 마광수 교수 빈소에서 자해 소동

    [단독] 원로배우 김수미, 마광수 교수 빈소에서 자해 소동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출연해 유명세를 탄 원로배우 김수미(68)씨가 고(故)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빈소에서 음주 자해 소동을 벌였다. 6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마련된 마 전 교수의 빈소에 술에 취한 채 조문을 하러 찾아왔다. 김씨는 “글을 이상하게 썼다고 감옥에 보내고, 교수들이 왕따 시켜서 억울하게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냐”면서 “나도 죽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김씨는 병원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도 “마광수가 내 친구인데 너무 슬프다. 나도 죽어버리겠다”라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빈소에서 커터칼을 꺼내 “너무 슬프다.나도 죽을 것”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의 가방에서 커터칼을 발견하고 회수 조치했다. 경찰의 설득 끝에 안정을 찾은 김씨는 빈소 한 쪽에서 엎드려 있다가 2시간 만에 빈소를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마 전 교수의 빈소에서 소란을 벌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아들과 딸에게 연락 후 인계했다. 혹시나 해서 조치한 것을 뿐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마 전 교수와 생전에 막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소동은 김씨가 마 전 교수의 갑작스런 부음 소식에 상심이 크고, 감정이 격해져 발생한 해프닝으로 전해졌다. 김씨 측은 “정확한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또 김씨가 출연 중인 MBC 주말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 측은 “김씨의 소동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의 분량이 많지 않아 촬영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마 전 교수의 빈소 곳곳에선 진한 쓸쓸함이 묻어났다. 복도에 세워진 조화는 풍성했지만 영정을 곁에서 지키는 사람은 몇명에 불과했다. 조문객들은 친지와 지인, 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 전 교수가 ‘문학계의 이단아’여서인지 문학계 관계자의 발걸음은 드물었다. 유족은 7일 오전 10시 30분 고인의 영결식을 치르고 시신은 화장할 예정이다.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포획돼 팔려가는 멸종위기종 고래상어

    포획돼 팔려가는 멸종위기종 고래상어

    멸종위기종인 고래상어가 트럭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6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스트에 따르면, 논란이 된 사진과 영상은 전날 중국 푸젠성 샤푸현의 한 도로에서 촬영된 것이다. 여기에는 트럭 짐칸에 실린 채 호텔로 향하는 고래상어 사체의 모습이 담겼다. 어부들은 이 고래상어를 지역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 팔아넘기려 했지만, 호텔 측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텔 측이 고래상어를 구매하지 않은 이유는 멸종위기종이기 때문이 아닌 단지 악취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결국 어부들은 고래상어를 톱으로 잘라내 해체해 유통하려 했고 이 모습 역시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멸종위기종인 고래상어를 사냥한 어부들에 대해 경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 고래상어는 국제자연보전연맹이 만든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분류된 동물로, 중국에서는 국가 2급 보호 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고래상어로부터 추출한 기름은 립스틱·얼굴크림 등 화장품에, 지느러미는 고급요리인 ‘샥스핀’ 재료로, 껍질은 가죽 핸드백의 재료로 사용돼 중국 내 대규모 포획과 도축을 점점 더 부추기는 상황이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유명 소설가 마광수 前연세대 교수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유명 소설가 마광수 前연세대 교수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자살 가능성 커…가족이 신고 “유산·시신 처리해 달라” 유언장 “하늘이 원망스럽다. 위선으로 뭉친 지식인과 작가 사이에서 고통받는 것이 너무나 억울해지는 요즘이다. 그냥 한숨만 나온다.”성에 대한 가감 없는 표현이 담긴 소설 ‘즐거운 사라’로 유명한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는 지난해 8월 정년 퇴임을 앞둔 소감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등단 이후 40년간 여러 소설과 산문집, 시집을 냈지만 ‘즐거운 사라’가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이 작품으로 치명적인 필화에 휘말린 탓이다. 최고의 윤동주 연구자, 천재교수로 추앙받다가 산문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년) 이후 외설 문학가라는 오명에 휩싸이며 구속, 해직, 복직 등을 겪었던 마 전 교수가 5일 자택에서 목을 매 지난한 생을 마감했다. 66세.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마 전 교수는 이날 오후 1시 51분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가사도우미와 함께 지내왔으며, 도우미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자신의 유산을 가족에게 남기고 시신 처리를 맡긴다는 내용이 적힌 A4용지 1장짜리 유언장을 발견했다. 경찰은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빈소는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마 전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으며 자녀는 없다. 누나가 상주를 맡았다. 아호가 ‘광마’(狂馬)인 마 전 교수는 우리 사회 금기에 도전했다가 시대와의 불화를 혹독하게 겪은 비운의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 또 비평가로 기억된다.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던 1977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시 6편을 게재하며 등단했다. 1983년에는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으로는 처음으로 윤동주 시를 연구해 학위를 받았다.이듬해 모교 강단에 서기 시작한 그는 성(性)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우리 안의 이중성과 위선을 꼬집는 데 천착했다. 28세에 대학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로도 불렸다. 1989년 5월부터 12월까지 문학사상에 장편 ‘권태’를 연재하며 소설가로 데뷔했고 같은 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했다. 대표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가 나온 것도 그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성적 담론을 대중적 리얼리티의 세계로 이끈 공로가 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 문학평론가는 “마 전 교수는 당시 유교적인 엄숙주의에 빠져 있었던 한국 문화에 가벼운 충격을 준 작품을 선보였다”면서 “소설이나 시를 일종의 본능의 해방과 자유의 구가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때, 그가 작품에서 성의 문제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제재를 받은 것은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마 전 교수는 ‘즐거운 사라’가 사회 미풍양속을 해치는 외설이라는 이유로 1992년 10월 강의 중 제자들 앞에서 긴급 체포됐다. 구속 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며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1998년 사면·복권돼 강단으로 돌아왔지만 ‘변태 교수’, ‘음란 작가’라는 꼬리표는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해직 이력 때문에 명예교수가 될 자격조차 얻질 못했다. 그때 심경은 퇴임 소감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학교에서 잘리고, 한참 후 복직했더니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으로 우울증을 얻어 휴직했다”면서 “그 뒤 줄곧 국문과 왕따 교수로 지냈고, 문단에서도 왕따가 됐다”고 썼다. 또 “책도 안 읽어 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라면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지독한 우울증은 나를 점점 좀먹어 들어가고 있고 오늘도 심한 신경성 복통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몹시 아프다”고 토로했다. 실제 마 전 교수는 우울증 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광마집’, ‘사랑의 슬픔’ 등의 시집을 냈던 그는 올해 초에는 등단 40년을 맞아 ‘마광수 시선’을 내놓았는데 유작이 됐다. ‘권태’, ‘불안’, ‘첫사랑’ 등 소설과 다수의 비평집, 논문들을 남겼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곡절 많은 삶’ 마광수…필화 사건 상처로 극심한 우울증

    ‘곡절 많은 삶’ 마광수…필화 사건 상처로 극심한 우울증

    5일 별세 소식이 전해진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는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성윤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며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고인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나왔다. 성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가 담긴 소설로 널리 알려졌지만 문학 인생의 출발은 시였다.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등단했다. 28세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로도 불렸다. 고인은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펴내고 이듬해 10월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되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즐거운 사라’는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성 문제를 음지의 영역에서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위선적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게 고인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즐거운 사라’가 변태적 성행위와 스승·제자의 성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음란물’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예술과 외설의 구분,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논쟁이 번졌다. 고인이 구속되자 문학계뿐 아니라 미술·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구명운동을 벌였다. 대다수 문화예술인은 고인의 구속수감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시대착오적 탄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3년간 재판 끝에 1995년 6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침해하고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까지 허용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 한계를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며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판정했다. 고인은 대법원 확정판결로 해직된 이후 복직과 휴직을 반복하다가 지난해 8월 정년퇴임했다. 해직 경력 탓에 명예교수 직함도 얻지 못했고 필화 사건의 상처와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에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광마집’(1980)부터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2012)까지 시집 여섯 권에서 작품들을 골라 올해 초에 낸 ‘마광수 시선’(페이퍼로드)이 마지막 책이었다. 그는 당시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울하다”, “서운하다”라는 짧은 말을 반복했다. 최용범 페이퍼로드 대표는 “책을 내며 강연회를 계획했지만 우울증세가 너무 심해 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학살당했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필화 사건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자기검열 탓에 과거처럼 적극적이지 못했다. 소설 ‘광마일기’(1990)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등 필화 이전의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그보다 10년 전 쓴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부분)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6차 핵실험] 宋국방 “北 전쟁지도부 참수작전 여단부대 12월 1일 창설”

    [北 6차 핵실험] 宋국방 “北 전쟁지도부 참수작전 여단부대 12월 1일 창설”

    항모·핵잠 정례적 배치 美에 요구 北탄두 500㎏ 이하 경량화 추정 화성14형 정상각 발사땐 괌 도달 北 대응 전술핵 재배치 검토해야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4일 제6차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 전쟁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과 관련해 “개념을 정립 중이며 올 12월 1일 부대를 창설해 전력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연합 전력으로 북한 전쟁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송 장관은 이어 ‘내년 말 정도에 참수작전 능력을 구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참수작전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포착되는 등 한반도 유사시 평양으로 은밀히 침투해 김정은 등 북한 전쟁지도부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은 1000여명 규모의 특수임무여단 형태로 부대를 창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송 장관은 또 북한이 500㎏ 이하로 핵탄두 소형화와 경량화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관련, 대미 핵투발 수단을 확보했다는 과시 차원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탄도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국방부는 송 장관의 발언이 탄두가 실물이라면 크기로만 볼 때 ICBM에 탑재가 가능할 것이라는 취지이며 실제로 북한이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가정보원도 이날 열린 국회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북한이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3~4번 갱도에서 언제든지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9월 9일 전후로 ICBM급 탄도미사일을 북태평양에 정상각도로 추가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정원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하거나 ‘화성14형’ 등 ICBM을 정상각도로 추가발사하고 이것이 괌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전했다. 국정원은 “이번 핵실험은 2번 갱도에서 이뤄졌으며 확신할 수는 없지만 2번 갱도의 함몰을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또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 뒤 폐쇄했고 2번 갱도에서 2~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며 “3번 갱도는 완공돼 있고 4번은 건설 중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핵실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국민의당 이태규 간사가 전했다. 송 장관은 “미국에 항모·핵잠수함 등 정례적 확장억제자산 배치를 요구했다”면서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의원들과 일부 언론에서 전술핵 배치 요구가 강하니 정기적, 정례적인 억제자산 전개를 한반도에 하는 게 좋겠다는 요구를 미국에 했다”고 강조했다. 송 장관은 전술핵 무기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정부 정책과 다르지만 북핵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면서 “이것을 검토함으로써 확장억제 요구를 미국에 강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곧이어 갱도 붕괴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4.1 규모의 추가 지진을 인지했지만 발표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관계기관의 분석 차이로 인한 혼란을 막자는 취지에서 지진과 관련한 발표창구를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송영무 국방장관 “미국에 항모·핵잠수함 등 정례적 확장억제자산 배치 요구”

    송영무 국방장관 “미국에 항모·핵잠수함 등 정례적 확장억제자산 배치 요구”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핵 도발 위협 고조에 따른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논란에 대해 “의원들과 언론 일부에서 전술핵 배치 요구가 강하니 정기적, 정례적인 억제 자산 전개를 한반도에 하는 게 좋겠다는 요구를 미국에 했다”고 말했다.송 장관은 4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현안 업무보고에서 최근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거론돼 논란이 된 것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진영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와 같이 답했다. 송 장관은 “부산항, 진해항, 제주항에는 ‘포트 비지트’(항구 접안)할 때 요금도 안 물고, 서비스를 잘할 테니 항모전단, 핵잠수함, 폭격기가 들르는 것이 좋겠다 하는 의미에서, 정례적 전략 자산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그런(일부 의원과 언론 보도) 얘기를 인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한국 특파원들하고 그런 얘기를 하니까 ‘전술핵 얘기도 나왔다,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했다’는 것처럼 확대 해석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 탑재를 한다면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국내에서도 강력히 제기될 것’이라는 지적엔 “강한 요구를 예상하지만, 한미 간 비핵화 문제와 국제 관계, 대북 문제에서 깊이 검토해 나갈 사안”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송 장관은 이어 “정책을 바꾸려면 국회에도 설명을 자세히 해야 하고, 단계를 거쳐 공론화도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지웅·조미령, “내 스타일” 두 사람 무슨 사이?

    허지웅·조미령, “내 스타일” 두 사람 무슨 사이?

    방송인 허지웅과 배우 조미령이 묘한 러브라인으로 보는 이들을 설레게 했다.조미령은 4일 첫 방송을 앞둔 MBN 신규 관찰 예능 ‘비혼이 행복한 소녀, 비행소녀(이하 비행소녀)’에 출연, 도도한 외모와 달리 소탈한 반전 일상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또 조미령은 한식 및 양식 자격증을 모두 섭렵한 ‘장금이’ 못지않은 수준급 요리 실력으로 직접 만든 매실청으로 만든 매실차와 피클을 선물해 현장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여기에 요리 사이사이엔 설거지와 뒷정리를 멀티로 해내며 준비된 살림꾼의 모습을 자랑했고, 이에 주위 출연진들은 ‘정말 깨끗하다’ ‘집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세트장 같은 모습이다’ ‘장금이 포스가 나온다. 천상여자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원래 설거지를 하나하나 바로바로 하는 편이냐”는 주위의 물음에 조미령은 “원래 쌓여있거나 어질러져 있는 걸 못 견뎌 한다. 물건이 제자리에 안 있는 걸 못 보는 편”이라고 답해 평소 남다른 깔끔함을 자랑하는 MC 허지웅의 격한 동조를 이끌어냈다. 또한 허지웅은 조미령을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가에 절로 번지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고, “이 누님 내 스타일이다. 선생님으로 모시게 된다”면서 미령의 깔끔함에 달달한 러브 모드를 발동시켜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여진 역시 “난 남자였으면 100% 프로포즈 했다”면서 “조미령 씨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 너무 괜찮은 여자다”라며 적극적으로 프러포즈 공세를 펼쳐 조미령을 당황케 만들었다는 후문. 이에 조미령은 “내 여자친구들이 항상 그런다. 너 같은 와이프,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답하며 씁쓸함을 드러내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 ‘비행소녀’는 비혼(非婚)을 주제로, 연예계 대표 비혼녀 3인 3색의 리얼라이프를 담아낸 관찰 리얼리티. 비혼녀(주체적 의사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의 행복한 싱글 라이프를 그려내며 상당수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비혼시대’ 신풍속도 속에서 진정한 비혼 라이프에 대해 짚어볼 전망이다. 더불어 업그레이드된 비혼 라이프를 제안하며 공감과 위로,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방송인 허지웅과 박소현이 MC를 맡았고, 배우 조미령과 함께 최여진, 아유미가 출연을 확정 짓고 촬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방송은 오늘(4일) 밤 11시.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공시 정보] 국가직 7급 공시 과목별 난이도

    [공시 정보] 국가직 7급 공시 과목별 난이도

    국가직공무원 7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이 지난달 26일 치러졌다. 행정학과 한국사는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은 반면, 국어와 경제학 등 일부 과목은 전년보다 쉬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올해부터 국가직 7급 영어 시험은 영어검정능력시험으로 대체됐다. 이번 7급 시험에 처음 도전한 김모(28)씨는 “평소에도 경제학에 자신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수월하게 넘어갔던 것 같다”며 “다만 행정학이 매우 까다로운 문제들이 많이 출제돼 시험 내내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 강사들 역시 행정학만 까다롭게 출제됐고, 나머지 과목은 비교적 평이하게 출제됐다고 평가했다. 서울신문은 3일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공단기의 도움을 받아 국가직 7급 필기시험에 대한 총평과 향후 수험대책에 대해 알아봤다.[국어] # 한자는 독음만 공부해선 안 돼 국가직 7급 시험에서 영어 과목이 빠진 첫해라 국어 과목에서 난도가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수험생이 많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올해 7급 국어 문제는 무난했다. 어문 규정과 문법(맞춤법·띄어쓰기)이 기출문제 수준이었다. 어려운 문제라면, 한자 표기가 올바른 것을 고르는 문제가 2개 있었다. 7급 국어를 준비하고 있다면, 일상생활에서 쓰는 기본 한자는 독음만 공부하지 말고, 한글을 보고도 한자를 골라 낼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 독해(어휘 2문항 포함)는 7급에서 변수인데 올해는 평이하게 출제됐다. 그러나 7급 준비생이라면 매일 A4 1장 분량의 글을 읽는 것은 필수 공부법이다. 15분 내에 20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의 압박이 심한 시험이므로 독해 연습을 꼭 해둬야 한다. 이재현 공단기 국어 강사는 “문학은 고전가사 번역 1문제와 시조 주제를 묻는 평이한 출제였다. 이 문제 수준이라면 80~85점 정도 수험생이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사] # 특정 단원에 치우침 없이 골고루 올해 국가직 7급 한국사 시험은 작년과 비교할 때 비교적 쉬웠다는 평가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7급 시험에 맞게 적당한 난도로 출제됐다. 모든 범위에 걸쳐 특정한 단원에 치우침 없이 출제됐고, 정치사와 문화사 비중이 높게 출제된 것도 예년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부여 국왕의 장례 때 옥갑(玉匣)을 썼다는 문제, 17세기 숙종 때 활동한 장길산과 관련된 문제, 조선 후기 정제두에 대한 문제는 사료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와 관련된 내용 지식을 정리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또한 조선 후기 중국 중심의 역사 인식을 탈피하고자 했던 정통론에 대한 문제 역시 당시 조선성리학에서 도출한 중국중심주의적 사학이 유학의 명분질서를 토대로 전개됐음을 전제로 접근해야만 풀 수 있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신영식 공단기 한국사 강사는 “이번 7급 한국사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서는 흐름은 기본이고 이보다 세부적인 지엽적 내용에 대한 정리와 암기도 반드시 이뤄져야 했다”며 “출제 가능한 다양한 내용과 사료까지도 충분히 숙지해야만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법] # 최신판례 줄고 시사 문제 출제 올해 국가직 7급 헌법 문제는 전체적으로 지난해와 난도가 비슷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서울시 시험보다는 다소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험생에 따라 차이는 있겠다. 출제경향을 보면 우선 최신 판례의 비중이 줄었다. 보통 최신 판례가 5지문 정도 출제되는데, 올해는 2지문만 출제됐다. 그럼에도 최신 판례의 중요성은 여전히 강조할 수밖에 없다. 시사적인 문제가 출제된 것도 특징이다. 물론 올해 시험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 규정이 예상대로 출제됐다. 옳은 지문을 찾는 문제의 비중이 높아졌다. 틀린 지문을 찾는 것보다는 옳은 지문을 찾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시간도 많이 걸려 까다롭게 느낄 수 있다. 박스형 문제의 비중도 높아졌다. 박스형 문제는 시간이 많이 들고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틀리기 쉽다. 윤우혁 공단기 헌법 강사는 “헌법이 과거처럼 쉽게 100점을 받는 과목은 아니다”라며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양을 늘리는 공부보다는 정확한 지식과 헌법 전체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행정학] #기출문제 완벽하게 이해해야 올해 국가직 7급 행정학 문제는 이해형 문제 12문제, 암기형 문제가 8문제로 법령 문제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난도 ‘상’에 해당하는 문제가 2문제(6번, 9번), ‘중상’에 해당하는 문제가 3문제(3번, 7번, 17번)이고 나머지 문제는 ‘중’이나 ‘중하’ 수준에 해당한다. 행정학 점수가 90점 이상이라면 매우 우수, 80~85점은 우수, 70~75점은 보통, 65점 이하는 미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영역별 출제빈도를 보면 총론보다는 정책, 조직, 인사, 재무행정론 등 각론 출제 비중이 높다. 그러나 민감하게 반응해선 안 된다. 출제자가 누구냐에 따라 영역별 출제빈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문제들은 기존 기출문제에서 출제됐던 문제들이다. 따라서 기출문제 관련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억하는 게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 위계점 공단기 행정학 강사는 ”새롭게 출제되거나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출제될 경우에 대비해 기출문제 수준을 넘어서 기본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고득점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경제학] # 계산문제 8문항 출제 올해 경제학 7급 시험은 계산문제가 8문제(40%) 출제돼 비중이 높았다. 또 다소 생소한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에 비해 체감 난도는 크게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영역별 문제 수로 보면 미시경제학이 7문제, 거시경제학이 9문제, 국제경제학이 4문제 출제됐다. 특히 과거에는 국제경제학 분야에서 2~3문제 정도 출제됐지만, 최근 수년간 4문제가 출제됨으로써 국제경제학의 출제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험생들은 이번 문제를 보며 기출문제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격증시험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학 문제가 거의 비슷하게 출제되고 있다. 경제학을 오히려 전략과목으로 삼기 좋은 점이다. 신경수 공단기 경제학 강사는 ”최근 기출경향을 숙지한다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른 자격증 경제학 문제도 반드시 다뤄 봐야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북극곰을 찾아라” 깨진 빙하를 위태롭게 건너는 북극곰

    “북극곰을 찾아라” 깨진 빙하를 위태롭게 건너는 북극곰

    멸종위기에 놓은 북극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조각난 얼음바다 위에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북극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됐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인 플로리안 리덕스(28)는 최근 캐나다에서 자신의 드론을 이용해 포착한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얼음바다 위에 선 북극곰의 ‘작은 모습’은 얼핏 보면 점에 불과하지만, 북극곰이 처한 위험은 절대 작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쪼개지고 그 크기가 점차 작아지면서 북극곰이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은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데, 바다 위를 뒤덮은 얼음조각이 작아질수록 북극곰이 헤엄쳐야 하는 시간은 늘어만 간다. 장시간의 수영은 굶주린 북극곰을 더욱 지치게 하고, 결국 이러한 상황이 북극곰을 멸종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사진을 찍은 리덕스는 “북극곰을 찍기 위해 매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간신히 드론을 이용해 북극곰 한 마리를 포착했는데, 북극곰이 얼음과 얼음 사이를 건너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다. 한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북극곰을 위협과 멸종위기에 처한 적색목록에서 ‘취약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북극곰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있는 점이 꼽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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