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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 여신들/루치아노 데 크레센초 지음(화제의 책)

    ◎그리스신화 소재로 쓴 환상소설 트로이아 전쟁과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환상적 분위기의 소설.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는 그리스 연합군의 사령관인 미케네의 아가멤논과 그리스군의 가장 용맹한 장수 아킬레우스의 언쟁으로부터 시작된다.이어 신들의 개입과 영웅들의 전투를 거쳐 트로이아의 장수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난다.이 작품에서도 대체적인 전쟁의 진행상황은 그대로다. 그러나 데 크레센초는 호메로스가 찬미한 신들과 영웅들을 오늘의 유머감각에 맞게 새롭게 해석,사뭇 경쾌하게 그린다.전략가인 오디세우스가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묘사되는가 하면,보잘것없는 말썽꾼 테르시테스는 영웅의 시대를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요 양심의 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심지어저 세기의 여인 헬레네는 더이상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창녀’로 묘사된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다.아르고나우테스들의 원정,멧돼지 칼레도니오스 사냥,아마조네스 여인족 이야기,트로이아 전쟁의 원인이 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과불화의 여인 에리스의 분노,헬레네를 납치한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의 탄생과 성장,크레타 섬을 지키는 청동인간 탈로스,제물로 바쳐진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그러나 신화의 주인공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 제우스를 방탕아로 묘사한 것이 그 두드러진 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을 기원전 12세기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헬레네와 아가멤논,오디세우스 나아가 호메로스까지 오늘의 나폴리로 인도한다.이것이야말로 고대의 신화와 철학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비방이다.데 크레센초는 말한다.“신화는 인류가 가장 먼저 개발한 공연예술”이라고.김홍래 옮김 리브로 1만원
  •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57)

    ◎서양문명의 상징 파르테논신전 우뚝/BC5세기 페리클레스가 아테나연신 위해 건립/인근엔 제우스신전·디오니수스 원형극장 함께 아테네는 로마와 함께 서양에서 대표적인 고대도시 유적일 것이다.도시의 중심에 높다랗게 솟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그 아래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문명 뿐 아니라 서양문명을 오랫동안 상징하여 온 대표적인 문화재기도 하다. 아테네는 파르네산과 히메투산,펜텔산 아래에 말굽형으로 펼쳐져 있다. 회백색조의 건물들이 짙은 올리브 숲에 박힌 아테네 언덕은 눈이 부셨다. 그 중에 빛나는 기념구역이 아크로폴리스다.이속에서는 가장 그리스적인 완벽하고 아름다운 건축과 조각품을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기원전 6세기경에 건설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거주지역과 구분한 신성한 지역으로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이 들어선 바위언덕 일대가 아크로폴리스다. 폴리스(Polis)라는 말은 도시이고 아크라(Akra)라는 말은 상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덩그랗게 높은 도시라는 말이 된다. 언덕의 윗쪽은 기다란 삼각형의 모양을 했다. 그 크기는 너비 270m,길이 156m로 되어 있다. 서쪽은 프로필라이아라고 부르는 건물군의 입구이다.그리고 언덕의 동남편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페르시아전쟁때 폐허로 아크로폴리스는 원래 그리스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성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케네의 왕이 이 높은 곳에 왕궁을 지었다. 아주 옛날부터 이아크로폴리스는 풍요와 번영,그리고 승리의 여신 아테나가 그 수호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크로폴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 전쟁이 일어난지 50년 후에 페리클레스가 여신 아테나를 위하여 건축가인 페이디아스의 도움으로 새로운 신전을 짓게 되었다. 그것이 파르테논 신전인 것이다. 신전은 기원전 447년에서 기원후 432년 사이에 지었다. 그리고 나서 서편에 있는 건물군 프로필라이아는 432년에서 437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그이후에 연속하여 아테나 나이키(Athena Nike)가 들어서고 최종적으로 여인상 조각의 기둥이 인상적인 에레흐테온이 들어섰다. 파르테논 신전은 현재 우아한 도리와 지붕 일부,기둥들만이 서 있다. 동서편의 긴쪽으로는 17개의 도리아식 기둥과 남과 북의 짧은 쪽으로는 8개의 기둥이 건물의 외곽에 배치되었다. 이 건물은 아테나여신의 거주처였기 때문에 여신의 위엄과 영광을 재현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건물의 외모에 완벽한 균형미를 나타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건물이 놓여있는 지면이 불균형한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 신전의 일부 벽에는 고부조로 된 장식들이 남아 있는데 트로이 전쟁 따위의 전쟁에 관련한 것과 범아테네 행진같은 것이 표현되었다. 지붕아래 도리에 해당하는 벽에는 아테나여신의 탄생과 아테나를 차지하려는 포세이돈을 조각해 놓았다. 아크폴리스의 주위에는 언덕 꼭대기의 신전건물 말고도 북쪽에 디오니수스라는 원형극장이 자리잡았다. 이 원형극장에서는 페리클레스같은 세력가의 후원으로 소포클레스와 에이쉬루스,유리피데스 등의 비극이 상연되었다고 한다. 비극은 극작가 자신들이 직접 연출한 것이 대부분이였다. 기원전 4세기에 지은 디오니수스극장은 그 이후에 약간의 변형과 증축을 거쳤다. 기원전 5세기까지는 목조구조였으나 기원전 4세기에 들어 돌로 다시 개조했다. 이 극장 말고도 헤롯 아티쿠스극장이 있다. 현대음악가인 야니의 음악회를 포함하여 많은 공연들이 지금도 이루어지는 이 극장의 석조건축은 그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리스 최대의 석조건물 제우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평지에 지은 제우스 신전은 그 규모가 엄청나 길이가 110m가 넘고 폭도 44m에 달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석조건물이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515년에 착공한 이 신적공사는 한때 중단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74년 시리아의 막강한 권력자 엔티오크스 4세가 자금을 대어 로마의 건축가 코스티우스로 하여금 다시 짓게 했다. 엔티오쿠스 4세가 죽자 공사는 다시 중단되었다. 신전은 기원후 131년경 하드리안황제 시절에 가서야 원래의 설계대로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 제우스 신전에는 104개의 코린트양식의 기둥 가운데 겨우 15개의 기둥이 서 있고 하나는 누워 있다. 하드리안 아치라고 불리는문은 아마도 이신전의 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을 것이다. 그 아치는 오늘날 구 아테네와 신 아테네를 구분하는 경계 구실을 한다. 제우스 신전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판아테니안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지은 스타디움이 근대 올림픽의 기념비적 건조물인 것이다. ◎여행 가이드/편의시설 완비… 렌터카로 단독관광 해볼만 아테네로 가는 항공편은 다양하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이나 츄리히 또는 프랑크푸르트 등의 대도시는 물론 이스탄불에서도 연결된다.국제적인 관광도시여서 호텔 등 편의시설은 잘 구비되었다. 현지의 고 투어스(92­33­166)나 키 투어즈(322­5951)같은 그리스관광회사들도 패키지 버스관광상품을 제공한다. 한국인계 관광회사로 킴스 투어(968­0942),아시아나 트래블(72­22­700)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아테네 시내는 가이드북을 가지고 렌트카로 단독관광을 해도 어렵지 않다.
  • 크노소스/알렉상드르 파르누 지음(화제의 책)

    ◎미노아 문명 중심 크노소스 역사 소개 고대 크레타섬의 도시이자 가장 오래된 에게문명인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 크노소스의 역사를 개관.제우스가 태어난 섬이자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가 싸워 물리친 황소의 섬인 크레타섬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지성과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법률과 예술의 고향이었다.또한 해적과 위선자들의 고향이기도 했다.이러한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제우스와 에우로파 사이에 태어난 전설적인 인물 미노스 왕이다.미노스는 변덕스럽고 잔인한 성격으로 바다를 지배했다.그는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라비린토스에 갇혀있는 우두인신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총각 7명과 처녀 7명을 바치게 했다.그는 또한 현명한 왕이었으며 제우스의 법을 지키는 입법자였다. 지금은 그리스령이 된 이 크레타섬은 오랫동안 미지의 땅이었다.그러나 1900년 영국의 아서 에번스 경이 크노소스에서 미노스왕의 전설적인 크노소스 궁전과 그 주변의 건축물들을 발굴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에번스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이 미케네인들에게 순식간에 정복당한 토착문명,즉 에테오크레타 문명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그러나 그리스 본토 문명과의 유사점이 없는 숱한 유물들을 보면서 그는 마침내 그것이 미케네 문명과는 무관한 문명,특히 미케네 문명보다 앞선 시대의 문명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에번스는 미케네 문명을 단순한 식민문명으로 격하시킨 반면 지중해 고유의 문명인 미노아 문명에는 각별한 가치를 부여했다.그는 1935년까지 계속 실시한 발굴작업 외에 ‘미노스 궁전’(전6권)라는 방대한 총서를 내 미노아 문명의 고고학적 기초를 다졌다.이혜란 옮김 시공사 6천원.
  • 성·사랑에 관한 민담과 설화/프랑스작가 앙리 구고의‘사랑의 책’

    성과 사랑에 관한 세계의 민담과 설화를 한데 모은 프랑스 작가 앙리 구고의 ‘사랑의 책’(유근영 옮김,문학세계사)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설화는 구비문학의 한 갈래인 산문 서사양식으로,글로 씌여진 소설이나 역사와는 달리 말로 구연되는 점이 특징.60년대 샹송 작사가로도 명성을 날린 구고는 세계 각 지역에서 구전되어오는 민담과 설화를 직접 채록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로마시대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사랑에 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 사랑은 그 자체가 곧 법이다”라고 말했다.이 책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도구’로서의 성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동경을 보여주는 57편의 이야기가 담겼다.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대 그리스의 ‘에우로파’설화 한토막.〈왕의 딸인 에우로파가 바닷가 구릉에서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제우스는 태양의 눈을 통해 그녀를 보았다.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강렬한 욕망이 불끈 솟아 올랐지만 그는 신이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제우스는 하늘로부터 바닷가로 내려와 하얀 황소로 둔갑했다.그가 에우로파의 연약한 손 안으로 목을 길게 늘이자 그녀는 그만 질겁을 했다〉설화속의 사랑은 이처럼 신비하게,절대적으로,광폭하게,때론 아주 단순하게 이루어진다.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에우로파는 마침내 제우스의 세 아들을 갖게 되었다. 이 책에는 한국의 민담도 2편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아름다운 여인으로 화한 석가여래의 도움으로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우치는 승려 이야기인 ‘원효’와 죽은 아내와 밤마다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인 ‘송씨의 이상한 밤’이 그것이다.
  • 호주/‘전원의 나라’서 ‘도박의 나라’로 탈바꿈

    ◎관광객 몰려들자 호주머니 겨냥 초화화도박장 속속 개장/지방정부서도 조세수입 노려 유치 경쟁/시드니·골드코스트·호바트 등 11곳 성업 ‘전원풍의 나라’ 호주가 ‘도박의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다.지난 80년대초부터 미국·일본·프랑스·홍콩 등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호주의 시드니·골드코스트·호바트·퀸즐랜드 등을 중심으로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한 초호화판의 대형 도박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원래 경마·경견대회와 복권 등 ‘최소한’의 도박만 허용되고 있는 호주에 이처럼 도박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은 호주 남부의 섬 태스메니이주가 정부의 특별 승인을 얻어 처음으로 개설한 2곳의 도박장에서 조세수입이 꽤 짭짤하게 나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최근들어 각 지방정부들은 주민 및 사회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도박장을 유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호주에 개설된 도박장은 모두 11개소.이중 호바트의 크라운 도박장과 시드니의 시포트 도박장,골드코스트의 제우스 도박장 등이 가장 유명하다.규모면에서는 크라운 도박장과 시포트 도박장이 가장 크고 화려하며,제우스 도박장은 해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월 정식 개설된 호바트의 크라운 도박장은 모두 13억6천만달러를 들여 규모나 시설 면에서 세계 최대의 도박장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8천평 규모로 건설된 도박장의 건물은 39층으로 객실 500개,14개의 복합영상관,17개소의 주점,35개의 식당을 갖추고 있는 데다 5천400대가 한꺼번에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공간까지도 완비돼 있다. 특히 크라운 도박장의 개업식 축하행사는 지난 56년 멜버른 하계올림픽 이후 최대 성황을 이뤘을 정도다.4천만달러를 투입한 이 행사에는 세계 각국에서 8천명의 귀빈(VIP)들이 초대됐으며,연인원 10만명이 경축 불꽃놀이 등을 관람했다.개업식 직후 10일동안 한몫을 잡으려는 50만명의 세계 ‘도박꾼’들이 몰려들어 개업 축하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러나 초호화판의 호주 도박산업은 지금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호주인들이 도박장관리경험이 부족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형편이다.여기에다 일반 술집에서 슬롯머신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술집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도박장이 개설된 지방의 정부들은 와중에도 ‘짭짤한’세금을 챙길 것을 기대하고 있어 개설허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 미인 특별전형(외언내언)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미의 여신이 된것은 일종의 미인대회를 통해서다.신들의 나라에서 열린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애리스가 혼인잔치에 던진 황금사과 한알이 미인대회를 열게 한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게」라는 글씨가 씌어진 이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여신들이 다투자 제우스는 이데산의 양치기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뽑히기 위해 여신들은 심판관 파리스에게 갖가지 제의를 한다.헤라는 권력과 부를,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아프로디테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했다. 결국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의를 받아들인다.따라서 파리스는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네를 얻지만 이로인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고 파리스는 자기나라를 파멸로 이끈다. 그리스 신화의 이 구절은 미인대회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신들을 호령하는 제우스의 부인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헤라도,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도 고배를 마신 최초의 미인대회 성격은 오늘도 그대로 이어지고있다.불공정 심사 등 오늘의 미인대회를 둘러싼 잡음도 사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이런 속성때문에 여성운동가들은 미인대회를 『여성의 상품화를 조장하는 돈벌이』라고 비난하며 그 폐지를 주장한다.이화여대의 전통 깊은 메이퀸(오월의 여왕)행사가 지난 78년부터 중단된것도 미인대회와 같은 성격을 지닌 이 행사에 대한 학생들의 거부감 때문이었다. 미인대회 입상자를 98학년도 입시에서 특별전형으로 뽑겠다는 계획을 세운 전문대학들이 있다.학교 졸업후 취업과정에서 외모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교육부가 『그 같은 기준은 교육적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제동을 걸었다지만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이다.대학마저도 외모가 예뻐야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딸들은 모두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을 하게 되고 결혼 상대자의 선택기준까지 바뀌게 되지 않을까.
  • 미 대통령 스타일은

    ◎트루먼=보스/케네드=스타/존슨=제우스/닉슨=지식인/카터=호민관/부시=젠틀맨/클린턴=빅맨 【뉴욕 연합】 2차대전후 반세기동안 미국을 이끌어온 10명의 역대대통령중 해리 S 트루먼은 「보스」기질이 강한 대통령이었으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대기업의 왕회장같은 인물이었다고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 러셀 베이커는 최근 이 신문의 한 컬럼에서 평가했다.다음은 그의 대통령 인물평.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장군 출신답게 대기업의 「회장」같은 인물로 정부를 제너럴 모터(GM)사처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를 원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늘 카메라에 사랑을 받은 「스타」였으며 그의 뒤를 이은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제우스」와 같았다.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은 「에그헤드」(지식인)로 부를만 하며 헨리 키신저보다 결코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제리 포드 대통령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퍼블릭 어벤저(호민관)」였으며 카터로부터 실망한 미국민들은 할리우드에서 존 웨인처럼 거친 대통령을 찾아냈는데 그가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다.그는 자상한 가부장격의 대통령이었다. 조지 부시는 신사(젠틀맨)대통령이었으며 그의 후임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은 유치원이래 올 스트레이트 A를 받는 등 공부를 잘한 캠퍼스의 거물(빅 맨)같다.
  • 육중하고 풍만한 인물·동문상/보테로 “별난 작품” 국내 전시

    ◎경주 선재미술관… 내년 1월말까지/다빈치·고야 등 대가걸작 “차용” 독특한 재해석/다양한 소재… 대형 청동조각 등 100여점 출품 풍만한 형태의 그림과 조각 등 개성있는 작업을 통해 통해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64)의 대표작들을 모아 보여주는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난 18일부터 경주 선재미술관(0561­745­7075)에서 열리고 있다.내년 1월31일까지. 8점의 기념비적 대형 청동조각을 비롯,50여점의 회화,30여점의 데생,12점의 작은 조각품 등 100점을 소개해 명실공히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특히 회화는 가로,세로 2m이상의 대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76년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두각을 나타낸 보테로는 92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거대한 조각품 전시를 연뒤 세계 유명 미술관과 화랑에서 초대전을 가져 성가를 높여왔다.특히 9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예술가」전시를 통해 선보인 육중한 남녀인물상과 동물상이 열광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보테로는 주로 과거의 대가들의 걸작에서 차용한 소재와 방법을 자기만의 독특한 조형세계로 다양하게 드러내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누드 정물 인물 동물등 다양한 소재를 택하는데 대부분 공기를 넣어 부풀려놓은 듯한 형태를 띠고있는 것이 특징이다.육중하고 팽창된 형태의 인물상은 가스통,라세즈의 풍만한 나체와 레제의 로봇형태를 연상시킬 뿐아니라 유머감각과 남미적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유럽과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 접한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재해석한 것,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서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상을 독특하게 표현한 작품,그리고 피렌체 산마르코 미술학교에서 프레스코기법과 프란체스타 벽화를 배우면서 지오토,피에로델라 프란체스카,우첼로 등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을 토대로 시도한 조형작품들이 모두 그것이다.이가운데 56년 멕시코여행에서 만났던 벽화들은 그의 입체성과 과감하게 확대과장된 양감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번 출품작은 살이 찐듯한 인물·동물상을 비롯해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등 그의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망라해 보여주는데 과일과 채소는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할 정도로 풍만하고 화려하다.특히 바람기많은 신화의 인물 제우스를 황소로 둔갑시켜 납치자로 표현한 조각작품 「에우로파의 강탈」은 단순한 형태에 날카로운 패러디를 담은 걸작으로 꼽힌다.라틴계 사람들에게서 주로 남성의 저돌성을 상징하는 황소가 사육동물이나 장난감같은 동물로 처리돼고 납치당한 유로파는 오히려 권위있는 여왕이나 여신으로 묘사돼 현대의 사회상을 신화적 이미지를 통해 풍자한 대표작이다.〈김성호 기자〉
  • 「노출→성충동 유발」 인정하면서도(박갑천 칼럼)

    교통사고가 났다 하자.거기에는 해를 입은 쪽과 입힌 쪽이 있게 마련이다.또 일반적으로 잘못은 가해자쪽에 있다.가해·피해라는 표현부터 그렇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는 없는 것일까.있다.반드시 교통사고만이 아니라 살인·사기등 가해자·피해자가 있는 범죄일때 그러하다.가령 여성이 강간당했다 하자.본인은 의식하지 않았다해도 가해자에게 그럴만한 틈을 보였을 수도 있다.그래서 형사학에는 피해자학이란게 끼여든다. 현실을 떠나 그리스신화를 한번 들여다보자.어느날 스파르타왕의 아내 레다는 바람둥이 제우스한테 능욕당한다.제우스는 아름다운 레다를 어떻게 안아볼 것인가 궁리해온다.그런터에 레다왕비에게 틈이 생긴다.왕비의 취미는 낮목욕.여름날 깊은 숲속에서 농익은 몸맨두리 드러내놓고 몸을 씻는다.이때다.제우스는 침을 꿀꺽.그는 백조로 되어 다가간다.왕비도 아름다운 백조를 손짓한다.입을 맞추고 몸을 맞춘다.아차 실수. 레다는 그결과로서 절세의 미인 헬레네를 낳는다.이를 제재로 해서는 미켈란젤로,다빈치,코레지오등의 명화가 있다.그건 그렇고,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보는 눈은 있을수 있는것.나무꾼과 선녀얘기가 왜 생겼겠는가.왕비는 최고신이고 뭐고 「다 그렇고 그런」 남성에게 스스로 기회를 주어버린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그점에서는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의 가슴에 안기는 스파르타왕비 헬레네도 마찬가지.아르테미스 신전에 간 파리스에게 미태를 지어 보였던 것이니 말이다.후회해봤자 지나간 일.그 어머니 레다가 제우스한테 당한 것과 같이 그는 원인을 제공했던 셈이다.저 유명한 트로이아전쟁은 이로해서 일어난다. 『과다노출은 성폭력을 유발한다』.한 조사에서 서울지역 17개대학 여대생들의 79%가 인정한 사실이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유행에 좇기 위해서는 노출을 서슴지 않겠다고 응답한다(39.4%).『여름살은 풋살』이라면서 대범한체한 옛사람들도 풋살아닌 속살을 느꼈던것.하물며 오늘날이겠는가.그걸 알면서도 『유행에 좇겠다』고 한다.이는 『원인을 주겠다』는 뜻이다.하기야 라신의 희곡「안드로마크」(안드로마케의 프랑스말)에서「가장 정숙한 여성」 안드로마케에게도 『과부의 바람기가 번뜩인다』고 지적한 평론가가 있었던게 아닌가.그것이 여자의 마음이기도 하다는 것인지. 노출의 계절이다.배꼽 내놓고 다니는 세상이라고는 해도 민망해지는 뻘때추니 차림새들을 적잖이 보게 된다.지나침은 항상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고 했것다.〈칼럼니스트〉
  • 아테너서 애틀랜타까지/올림픽 100돌 성화 타오른다

    ◎1896년 첫 대회… 13개국 311명 참가/31년 LA­상업주의 적중 “대성공”… 선수촌 처음 등장/72년 뮌헨­아랍테러단 「이」 숙소 기습… 선수 9명 사망/88년 서울­개도국서 첫 개최… 159국 참가 “화합구현” 아테네에서 애틀랜타까지 1백년.오는 7월19일 미국 남부도시 애틀랜타에서 개막되는 제26회 올림픽을 계기로 근대올림픽이 1백주년을 맞는다.「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남작의 올림픽부활운동이 열매를 맺으면서 1896년 고대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13개국 3백11명의 선수들이 제1회 대회를 연지 한 세기가 흐른 것이다.그동안 올림픽은 질적·양적으로 수많은 변천을 거쳤다.그 과정을 간추려보고 올림픽의 의의 및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펴본다. ▷약사◁ 기원 3천여년전 그리스 제우스신전 근처 계곡에 있는 올림피아에서는 4년마다 한차례씩 헤라클레스 축제를 기념하는 경기가 열렸다.달리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그리고 레슬링이었다.이 행사는 아테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의 끊임없는 전쟁속에서도 10세기 이상지속되었다. 기록된 최초의 올림픽경기는 기원전 776년으로 서기 394년에 이르기까지 1천2백년 이상 이어졌다.그러나 그리스를 정복하고 있던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정신에 어긋나는 이교도 의식이라며 올림픽을 폐지시켜 이후 근대올림픽이 부활되기까지 15세기 동안 자취를 감춘다. 1880년대 들어 쿠베르탱남작이 부활운동을 펼치면서 드디어 1896년 첫 대회를 열기에 이르렀다.모두 10개 종목에 44개 금메달이 걸린 이 대회에서는 미국이 1위를 차지했고 그리스와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16·40·44년대회 취소 이후 미국 세인트루이스,런던,스웨덴 스톡홀름 대회를 거친 올림픽은 1916년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개최국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취소되고 만다.이때부터 올림픽의 정치오염이 본격화된다. 제7회 대회는 1920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렸는데 1차대전동안 벨기에 사람들이 겪었던 슬픔을 달래주는 대회였다.반면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다. 다시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거친 올림픽은 32년 유럽대륙을 떠나 미국 LA로 옮겨간다.이 대회는 미국의 상업주의가 적중해 대성공을 거뒀다.처음으로 선수촌이 등장했고 거의 매일 6만명 이상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4년 뒤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올림픽은 나치의 들러리 역할로 전락했다.독일 베를린대회 주변에는 나치의 숨막히는 분위기가 감돌았고 결국은 40년 대회와 44년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되고 만다. 52년 헬싱키대회에는 볼셰비키혁명 이래 수십년동안 올림픽을 인정치 않던 소련이 마침내 대선수단을 이끌고 등장,동·서냉전시대에서의 미국·소련 초강대국 대결을 시작한다. 이후 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까지 11차례의 올림픽에서 미국은 4차례,소련은 7차례 1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은 56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돼 다시 한번 대륙간 이동을 했고 64년 일본 도쿄로 넘어갔다.도쿄대회는 패전국 일본의 부흥을 꾀하는 기폭제가 됐다. 68년 멕시코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아프리카국가들의 보이콧위협,학생시위,시상식에서의 흑인시위 등 정치오염이 심각했다.시위폭동으로 2백60여명이 사망했다. ○올림픽정신 상처입어 72년 뮌헨대회에서는 9월5일 아침,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이 영원한 상처를 입었다.아랍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숙소를 기습,선수 9명과 테러리스트 2명,경찰 1명이 사망했고 올림픽은 34시간 중단됐으며 메인스타디움에서는 추모식이 열렸다.이때부터 올림픽의 슬픈 역사가 거듭된다. 76년 몬트리올대회는 뉴질랜드럭비팀의 남아공 여행을 꼬투리잡은 아프리카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얼룩졌고 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64개 서방국가들의 불참으로 반쪽대회로 전락했다. 84년 LA대회 역시 소련등 동구권의 보복불참으로 반쪽대회였다.한국은 이 대회에서 종합10위를 차지한 뒤 88년 서울대회 4위,92년 바르셀로나대회 7위 등으로 기염을 토해 올림픽강국으로 떠오른다. 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을 온세상에 자랑하면서 상처투성이의 올림픽을 되살려 놓았다.동·서 양진영 1백59개국이 참가해 「화합올림픽」을 구현했고 그동안 선진국이 독점했던 올림픽개최를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대성공으로 마무리했다.단일민족 북한의 불참이 「옥의 티」였다. 서울대회는 초강대국 소련과 스포츠강국 동독의 올림픽 고별무대였다.이후 지구상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나 독일통일이 이뤄지고 소련이 붕괴됐으며 동구권 전체가 몰락했다. ○소련·동독의 고별무대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옛 소련 국가들은 EUN이라는 어정쩡한 단일팀으로 참가했다.동독은 참가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EUN은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소련붕괴의 긴 여운을 남겼다. 애틀랜타 올림픽은 경쟁상대를 잃은,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안마당이 될 것이다. 근대 올림픽이 19세기에서 21세기로 3세기를 옮겨가는 길목인 2000년 대회를 놓고는 중국 북경과 호주 시드니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 시드니로 돌아갔다.12억의 중국인들은 그들이 「천하의 중심」,즉 「중화민족」임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 땅을 쳤으며 2백5년전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호주땅을 밟은 곳이기도 한 시드니는 흥분의 도가니를 이뤘다. ◎의의·과제/세계평화·국제친선 구현 “이바지”/인간능력 한계 넓히는데도 도움/정치오염·상업주의 극복이 과제 올림픽헌장은 첫 머리에 올림픽의 본질과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즉 ▲육체적·도덕적 자질의 향상 ▲세계평화의 추구 ▲국제친선 등이 골자이다.올림픽은 1백년의 역사를 누리면서 이같은 올림픽정신을 구현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인종과 언어와 풍습·국적·민족·문화를 뛰어넘는 인류의 대제전으로 발전했다.인간 능력의 한계를 넓히는데에도 공헌을 해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올림픽정신이 퇴색하고 있다.정치오염과 상업주의가 스포츠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금메달은 「돈방석」과 직결되고 있으며 대회 행사 자체도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치러진다. TV독점중계는 올림픽을 TV의 「시녀」로 전락시켰으며 공식후원업체의 횡포 역시 심각하다. 아마추어리즘도 프로페셔널리즘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테니스 축구 농구를 시발로 프로선수들의 출전은 현대올림픽이 종착을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아니라 옛 소련·동독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과 중국,그리고 일부 권위주의국가에서 보여준 국가관리체육정책은 자본주의의 프로페셔널리즘 못지 않게 올림픽을 오염시켰다. 약물복용의 폐해 또한 심각하다.근육강화제 흥분제 진정제 호르몬제 등의 복용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과 각국 스포츠지도자들의 「스포츠귀족화」 역시 올림픽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일반대중의 평등을 추구하는 올림픽에서 이들은 이미 스포츠 특권층으로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향유해 올림픽의 이질감을 부추기고 있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민족주의·국가주의 역시 장애요인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에는 다시 한번 「올림픽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해외 인테리어/중세 복고풍 유행/NYT지,새 경향 소개

    ◎빅토리아풍의 벽걸이·화려한 조명·카펫 장식/“인간정신 결여된 모더니즘 탈피”미·영에 확산 『빅토리아풍의 벽걸이,대영제국의 인도식민지를 연상케 하는 카펫,화려하게 늘어져 있는 조명』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뉴욕의 한가운데 있는 중산층 집안의 요즈음 장식경향이다.뉴욕타임스 최근호는 지금까지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선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중세의 고전적인 장식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처럼 거의 모든 디자인을 컴퓨터가 해내고 있는 시대에 어떻게 보면 유치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을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는 이유는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회귀본능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지난해 「바로크,바로크」라는 책을 낸 바 있는 실내장식전문가 스티븐 캘러웨이씨는 『지난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모더니즘이 20세기 실내장식의 대세를 이뤄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모더니즘에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결여돼있다』고 말했다. 지나간 시대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은 패션계나 순수미술쪽에서는 그전에도 있어왔지만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실내장식쪽에서 이처럼 「새로운」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벽지나 카펫말고도 첨단과학기술시대에 유행하는 복고풍 장식품들도 이채롭다.거실에는 붉은색과 노란색을 조화시켜 고대중국풍의 분위기를 내거나 계단벽면에는 석고로 만든 로마신화의 최고신 제우스의 근엄한 흉상으로 여러가지 장식물을 「주재」시킨다.침실은 1830년대의 프랑스왕실풍의 마호가니가구로 장식하고 길게 흰 커튼을 내린다.역사와 미의식이 실용성을 넘어서 인간성을 일깨운다는 시도다. 이같은 경향은 미국을 지나 전통의 나라 영국에도 스며들고 있다.최근 이같은 복고풍으로 집장식을 마친 런던의 앨리스 하우드씨는 『고전적인 장식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러다이트(기계파괴주의자)는 아니다』라며 『전통적인 장식을 하더라도 여전히 전기를 쓰고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다만 분위기있는 저녁식사를 위해서는 전구나 형광등를 켜놓는 것보다는 촛불로 식탁을 장식하는 것이 훨씬 낭만적이라는 입장이다.전문가들은 이러한 복고풍회귀 경향은 진보를 최고의 가치로 알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역사의 가장 위대한 부분을 돌려주는 작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걸작 건축감상:13)

    ◎엔타시스양식의 과학적 설계기법 탁월/착시현상까지 보정… 인간 공학적 건축 완성/내부엔 금·상아로 만든 아테나여신상 세워/기원전 5세기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기둥만 46개 작열하는 태양과 코발트빛 바다.그리스인은 그들의 신(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문명의 역사를 열어보면 무형의 신의 모습을 헤아리며 인간 자신을 신 앞에 봉헌할 때 집회의 장소로서의 종교건축이 무수히 만들어졌다.그러나 인간이 만든 신,그리스인의 영웅이자 그들이 가꾸어 온 우주라는 꿈의 본질을 추구하는 의식에서는 신을 위한 무대가 준비되고 그들 고유의 장소가 마련되었다.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은 인간의 땅에서 축배를 들었다. ○자신들이 신을 만들어 그리스의 신전 건축은 곧 신의 「집」이고 신의 「터」였다.교회에서는 예배를 보는 교인의 무리가 한 지붕 밑에서 신과 교감하지만,그리스인은 신전을 배경으로 노천에 모였다.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굳게 믿었다.그리스인의 신은 그들 자신이 만들었다는 필자의 단언은 그들의 분노를 샀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올림포스산의 주신 제우스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을 때,우리 외지인의 눈에는,제우스의 너무나 재미있는 불멸의 투쟁사가,그리고 디오니소스의 광란이 거대한 한편의 드라마로 펼쳐보인다. 희랍공화국.발칸반도 최남단의 국가로서 알바니아·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와 면하여 있다.무려 1천4백여개의 섬이 한반도의 절반 남짓한 국토의 5분의1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도의 삼면은 이오니아해와 지중해,그리고 에게해가 감싸고 있다.2천9백17m의 올림포스산을 최고봉으로 하여 반도의 척추라 할 수 있는 핀도스 산맥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뻗쳐있다.국토 곳곳의 활화산은 아직도 그 열기를 머금고 있어서 1953년에는 수백명이 사망하는 지진의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기원전 2500년 무렵 크레타 섬에는 청동기문화가 꽃을 피웠다.그들의 청동기시대에는 문자가 존재하였고,금속문화가 단지 계급의 형성과 문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문명의 창조적인 확대를 가져오는 전기가 되었다.이러한 사실들은 20세기에 이르러 건축가에 의해 고대문자의 해독이 가능해짐으로써 알려지게 된 것이다.그들의 문화는 그 문화의 실증적 유물을 수없이 남기고 있지만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문학을 통해서 그리스인이 마음껏 펼쳐보여준 꿈의 정서이다. 그들의 신화가 갖는 독특함의 하나는 신화가 곧 일상의 진리이며 역사적 사실이기도 해서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트로이 전쟁처럼 서사시로 묘사된 유명한 사건이 실재하였는가 하면 여신을 범하려하거나,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신의 특권을 갈취하여 신을 속이는 인간의 죄상이 나타난다.초조함과 안타까움의 끝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찾는 모험이야기나,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현세로 데려오기 위해서 죽음의 땅을 여행한 오르페우스,그리고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투쟁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신과 인간의 공동작품 헬레네의 자손이라고 믿었던 그리스인들은 건축자원이 가장 탁월한 땅에서 살았다.온화한 기후와 풍요한 나무,가공이 손쉬운 석재,그리고 반도라는 지리상의 특성에서 비롯된 산과 바다,군사와 무역이라는 변화있는 환경에서 피어난 그들의 건축은 서양건축의 고전이 되었다.앞서 말한 문화적 깊이와 금속세공의 감각,이집트와의 교류등 다양한 체험과 기량은 목조에서 석조로 이어지는 비례감각과 양식의 발달을 주도하였다.이들은 정열과 재능을 쏟아넣어 우아하고 장중함이 넘치는 걸작인 신전건축을 남겼다.바사이의 아폴로신전,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파이스툼의 헤라신전,그리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그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진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나 여신의 전당으로 아크로폴리스 구릉에 서 있는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작품이다.수많은 신전 가운데서도 특히 「파르테논」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그 뛰어난 예술성과 정통성 때문일 것이다.「익티누스」와 「칼리크라테스」의 설계로 건조된 하얀 대리석의 신전 내부에는 금과 상아로 된 아테나 여신상이 있다.오랜 세월로 조각품과 장식면이 크게 훼손되었지만 기본구조는 원상태 그대로 남아있다.건물의 높이는 31m에 달하며 폭은 70m에 이르고 있는데 직사각형의 주변에동서로 8개,남북으로 17개의 기둥이 열주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파르테논은 그 웅장함과 함께 세심한 벽면 장식에 있어서도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신과 거인,그리스인과 아마존인들간의 싸움을 그린 부조가 치밀한 조소적 외관을 이룬다. ○인간공학적으로 완결 그러나 파르테논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미적요소들,그리고 건축적 웅장함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그것은 우리가 단지 재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파르테논에 집약된 설계기법이다. 이른바 엔타시스 양식이라 불리는 기둥의 「배흘림」을 비롯하여 인간의 눈에서 발생하는 착시를 보정하기 위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기둥을 세웠을 때,균일한 폭의 기둥이 수직으로 반복 배치되어 중앙부가 가늘어보이는 현상에 대응해서 기둥 중앙부를 배부르게 하고,기둥의 상부는 가늘게 뽑아 올림으로써 보는 사람의 위압감을 해소하였다.또한 기둥뒤가 건물외벽으로 막혀있는 곳과 벽이 없이 트여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기둥간격에 대한착각을 고려하였다.기둥사이로 하늘이 보이면 기둥은 가늘고 상대적으로 간격은 멀어보이게 마련이다.그들은 물리적 치수에 집착하지 않고 착시를 보정하여 균등한 간격을 느낄수 있도록 간격을 조절하였다.또한 이러한 고려는 처마면에서도 나타난다.수치적인 수평선은 실제로는 중앙부가 처진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따라서 그들은 거대한 돌을 맞추어 나가면서 중앙부를 미세하게 들어 올렸다.수치로는 중앙부가 배부른 모습이지만 보는 이에게는 수평으로 보이는 것이다.또한 신전앞에 모여드는 군중의 시선 방향을 고려하여 처마길이를 조절함으로써 가까운 곳의 길이가 확대되어 보이는 현상까지를 보정하였다. 이러한 착시(opticalillusion)는 가히 환상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그들은 신전건축을,신을 위해 지으면서,사실은 기적과 같은 인간중심의 배려를 하였고 그것을 인간공학적으로 완결시켰다.현대건축에서도 이러한 착시보정까지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커니즘과 공해에 찌든 우리로부터 어쩌면 고대의 작열하는 태양과 푸른바다는 영원히떠나버렸는지 모른다.하지만 땅과 건물이 오직 경제적 실체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속에서 인간과 신과 함께 즐기는 신전건축에 바친 고대인의 지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은 다시 정리하지 않아도 낭만적 여담보다는 웅변으로 전해져 온다.
  • 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아랍서 지중해까지:7)

    ◎동·서양 분기점… 이질문화 한품속에/이스탄불시를 양분… 기독·이슬람교 격전의 역사 간직 보스포루스. 탁한 암록색 물빛의 길이 30㎞,폭 0.6∼3㎞의 좁은 해협,그것은 바다라기보다 강에 가깝다.어원을 보더라도 Bous(ox:황소) Poros(ford:여울),황소여울이다. 제우스와 여사제 이오(IO)는 연인사이다.아내 헤라의 집요한 추적을 비켜나보려고 제우스는 이오를 황소로 변하게 한다.헤라는 그 사실까지도 눈치채고 등에를 이용하여 황소로 변한 이오를 괴롭힌다.황소는 괴로움에 못이겨 근처의 여울 속으로 뛰어드는데…이오가 몸을 던진 물이 바로 보스포루스다. 이 해협은 터키 최대의 도시인 이스탄불을 동양과 서양으로 갈라놓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분할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한 도시가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동양과 서양이라는 대칭적 이질문화를 하나의 품속에 끌어안고 있는 이스탄불은 어떤 도시일까?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떠오르는 궁금증이 그것이었다.「내가 지금 아시아에 있는가,유럽에 있는가?」 지도를 입수함으로써 그 궁금증은 싱겁게 풀리는가 했는데…사실은 그게아니었다. ○부를 나르는 물길 보스포루스 서안 돌출부에 그리스의 메가리아인들이 비잔티움 도시를 세운 것은 BC660년이었다.그들은 집터를 정하기 전에 점술가에게 물어보았다.「눈먼 사람들이 사는 땅의 반대편에」라는 대답을 듣고,그들은 보스포루스 서안 일대를 탐사하던중,경관이 빼어난데도 불구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터를 발견했다.그때 해협 건너편 땅엔 마케도니아인들이 이미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므로,메가리아인들은 이렇게 풍광이 수려한 땅을 몰라본 저들이 바로 「눈먼 사람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따라서 자신들이 발견한 곳이 바로 점술가가 점지한 땅이라고 확신하며,그들은 도시를 세웠다. 그것이 바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나누어지게 된 시초였다. 그후 비잔티움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에게 점령되었다가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를 패퇴시켜(BC334)아나톨리아를 장악함으로써 다시 그리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대왕의 사후,맹주들에 의해 통치되던 비잔티움은 BC278년 갈라티아인들의 공격에 무릎을 꿇었고,그뒤 마케도니아인들을 쳐부순 로마제국의 출현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황제 셉티무스는 비잔틴문화를 재건한다는 기치를 내세우고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확장하고,소피아성당 주변과 도로를 정비했다.뒤이어 왕위를 계승한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새 수도의 이름을 콘스탄티노플ㅈ라 했다.황제는 트로이의 영화를 재현한다는 포부를 세우고 성벽을 서쪽으로 2.8㎞나 확장하고,자신이 그리스도교인임에도 이교도들의 사원을 보수하는 한편 소피아 성당을 대대적으로 넓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격돌한 것은 14세기 중엽이었다.발칸에까지 진출하여 위세를 떨치던 오스만튀르크제국은 메흐메트 2세가 즉위한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이곳에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라는 뜻의 이스탄불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그후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의 수도가 되어 이슬람문화권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19세기에 들어서 오스만제국이 쇠퇴함에 따라 이스탄불은 또다시 발칸을 둘러싼 열강들의 분쟁지가 되었다.1차 세계대전때 독일편이었던 터키는 패전후 1918년까지 연합군의 통제를 받던중,케말 아타튀르크의 혁명으로 새 공화국이 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중앙아시아의 회교국가로서 자주권을 선언한 뒤에도 터키는 유럽공동체의 항구적인 회원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한국전쟁중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했고,1952년에는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에 NATO의 회원국으로 영입되었다.냉전이 종식되자 터키는 걸프전때 연합전선을 펼쳤던 NATO로부터 차갑게 되면당했다. 보스포루스는 과거에도,오늘날에도 이스탄불과 터키에게 막대한 부를 실어다주는 푸른 물길이면서,동시에 그들의 역사앞에 항시 하나의 질문으로 존재해왔다. 「우리는 아시아에 속하는가,유럽에 속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보스포루스를 통과하는 여행자인 나에게까지도 역사와 무관한,정신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자 확인으로,이스탄불을 떠날 때까지 마음속에서 맴돌았다.엘레신 호텔. 4월20일 이스탄불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흘 남짓 뜨거운 사막에서 지내는 동안 증발되었던 마음의 물기가 일시에 되살아났다.여로의 쓸쓸함,애달픔.몸이 으스스 떨리면서도 비릿한 비냄새,축축한 바람이 싫지 않았다. 차가 마르마라 해안에 있는 예쉴쿄이 국제공항을 벗어나 유럽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동안,나는 마음속으로 주머니를 불룩하게 만든 터키의 리라화를 가늠해보고 있었다.1달러에 2만9천리라,1백50달러에 4백35만리라.방금 떠나온 요르단 디나르화에 비해 끗수가 네자리나 더 많아진 것이다. ­이걸로 혹시 보스포루스 해협이 굽어보이는 언덕 어디쯤 오스만 시대에 지은 작은 집 한채 정도 살수 있지 않을까. ○구로동 골목 연상 그러나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가는 노변풍경은 나를 황당한 공상에서 깨어나게 했다.겉만 말끔했지 상자곽처럼 보이는 저층의 아파트들,그 사이사이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석탄더미,고철더미,그리고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찬 우중충한 가건물들.그것은 비잔티움이나 오스만이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우아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어딘지…. 『여기는 서울의 구로동하고 흡사하군요』. 익살이었지만 S씨의 그 말은 활기찬 고도 이스탄불의 속얼굴,오늘의 터키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함축하고 있었다. 회교국들 중에서 최초의 여자 수상이 된 탄슈 칠레르는 취임과 동시에 터키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우리는 더이상 걷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이제부터 뛰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끄는 정부는 국내외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도전에 시달리고 있었다.인플레,일자리를 찾아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등 대도시로 밀려드는 유민들,구소련의 붕괴이후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회교국들의 무력증강,10년이 넘도록 계속되어온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과 게릴라전 등등. 아마도 우리는 3박4일의 짧은 일정에 쫓기는 여행자들로서는 이스탄불의 「구로동」을 이런 식으로 스쳐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터키인들이 게체콘두(밤에 지어졌다는 뜻.오스만법에는 밤에 짓기 시작해서 동틀때 완성된 집은 아무도 부술수 없다고도 함)라고 하는 그 집들은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불과 45분거리밖에 안되지만 관광객들이 흔히 지나다니는 길목으로부터 그 얼마나 먼 동네인가. 어느새 창변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안개 자욱한 보스포루스 바다,갈매기떼의 환영을 받으며 항구로 입항하는 크고 작은 선박들,그 너머로 붉은 지붕에 흰 벽의 그리스풍 건물들,백양나무숲,돔과 미나레트들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이 펼쳐졌다.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사해의 짜디짠 물맛이 이제는 꿈이 된 반면,꿈이었던 이스탄불이 현실이 된 것이다. 호텔 엘레신은 신시가 베이올루의 중심지인 탁심 뒷거리에 있었다.이웃에 있는 마르마라나 셰라톤 호텔에 비하면 작고 보잘것없는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숙박계를 쓰고 604호의 키를 받아든 순간이었다.이스탄불이라는 미지를 해독할 수 있는 최초의 사인.저울의 추처럼 생긴 키를 받아듦으로써 나는 마음을 스쳐간 환영의 무게를 손에 느꼈다.머나먼 장안에서 비단을 싣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타슈켄트,카라쿰,자그로스산맥을 넘어서 바그다드,그리고 마침내 이스탄불에 당도한 옛대상.동양과 서양,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격돌의 현장.이곳의 이니셜은 저울과 추 일법했다. ○이니셜 “저울과 추” 짐을 방으로 옮겨주려고 로비에 나타난 포터.옛 술탄의 왕자같이 수려한 용모.아마도 그는 전생에서 너무나 놀고 지냈기 때문에 차생에서 남의 무거운 짐을 옮겨주는 일을 하게 되지나 않았는지? 원도어식의 자그마한 승강기가 음악을 싣고 내려왔다.허밍으로 멜로디를 쫓고 있는 사이에 승강기가 멈추었다.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자,우리는 복도끝의 전면 거울속에 그림자처럼 담겨 있었다.갑자기 시간이 겹으로 느껴졌다.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미지의 문.열려라,참깨! 짙은 청색 시트로 덮여있는 가지런한 트윈 침대,하얀 반투명 커튼,머리맡에 놓인 하얀 갓전등…창가로 가서 커튼을 열어본다.오래된 건물의 옥상에서 하얀 비둘기 한마리가 빗속을 가로질러 어디론지 날아간다.맞은편 건물의 지붕밑 방에는 오래전에 사람의 인적이 끊긴듯 책상과 의자 하나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놓여있다.아니다.다시 보니 머리 까만 계집아이가 혼자서 마룻바닥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공깃돌 놀이를 하고있다.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꿈을 꾸는 것일까.분명히 몸은 여기 있는데,의식은 전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너 화장실에 좀 들어가봐.비눗곽이 참 예쁘다』 등 뒤에서 날아온 K의 목소리에,맞은편 건물의 빈 방에서 계집아이가 얼굴을 돌리고 이쪽을 바라본다.
  • 색밝힌 뒤끝은 어둡나니(박갑천 칼럼)

    그리스 신화에서 처음으로 남녀관계를 갖는 지상의 「남자」는 프로메테우스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이다.상대는 대신제우스가 보낸 미태의 판도라.그는 지상에 온 최초의 여자였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자기뜻을 거역하면서 인간세계에 불(화)을 갖다준데 대한 보복으로 온갖 악이 들어있는 상자를 판도라한테 들려 인간세계로 보낸다.이를 두고 여성이 생겨나면서부터 이세상에는 악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특히 미녀인 경우 더 가시가 돋친다면서.이 또한 『여자 셋이 모이면 간(관)사해진다』는 식의 서양판 남성중심사상이 만들어낸 신화이며 해석이라 하겠다. 제우스는 보통 바람둥이가 아니다.권좌를 악용하여 남의 아내도 예사로 가로채는 버릇이고 보면 판도라도 곱게 내려보냈을 것 같지 않다.아무것도 모르는 에피메테우스에게 남녀 사이의 기쁨을 알려주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하여간 제우스는 판도라의 핏속과 판도라의 상자 속에 정상하지 못한 불륜의 남녀관계까지를 함께 넣어 보낸것 같다.그래서 「판(모든)도라(선물)」 아니겠는가.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겁탈하건 암피트뤼온의 정숙한 아내 알크메네를 사통하건 제우스는 바람을 피워도 뒤탈이 없다.최고신이기에 남편쪽에서 「영광」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를 받고 열어버린 인간세계의 일이 제우스 같을순 없다.「햄릿」의 비극이 왜 생기겠는가. 그래서 「이춘풍전」의 이춘풍은 평양기생 추월이한테 빠져 망신을 하고 「배비장전」의 배비장은 제주기생 애랑이한테 잡혀 이(치)까지 빼는 곤욕을 치른다.지족선사의 10년면벽 공든탑도 황진이의 요염 앞에 무너져 내리고 청환을 역임한 금극화는 태종의 국상에 기생과 통정하여 폐족(폐주)의 형벌을 받는게 아니던가.(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 지구촌이 불륜(범죄)문제로 시끄럽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전파를 탄다.클레스틸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여비서와 놀아났다는 것이고 영국보수당 또한 장관하며 의원들의 엽색행각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일본 교토대학 교수의 성추문도 지구촌의 입방아거리.그러는 한편에서는 남편의 성기 자른 보비트부인을 모방한 범죄가 세계적 유행기류를 탄다.섬뜩해지는 세상이다. 옆길로든 정사는 쌓아올린 업적에 먹칠을 한다.일신을 파멸로 몰고가기도 한다.신은 에이즈(AIDS)로 경고하고도 있건만 사람들은 듣는둥 마는둥이다.역시 판도라의 상자가 문제인가.
  • 민족철학 홍익인간(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8)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우리겨레 가치관의 원형은 단군신화/“군림보다 동참” 신인공영의 합리사회 건설/내세아닌 현세의 낙원화를 실천적 목표로 우리는 지금 민족통일을 이룩하여 이상적인 민족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며 21세기에는 세계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두 가지의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그런데 이러한 과제를 완수하는 길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그러한 작업은 우리 겨레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을 찾아내어 그것을 기초로 한 민족철학을 정립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모두가 공감할 철학을 민족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는 먼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여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주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을 찾아내어 그것을 기초로 한 민족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동일한 역사와 문화배경을 가지고 성장하여 온 같은 겨레라는 사실을 깊이있게 인식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그러한 생각을 남북을 가르고 있는 이념보다도 더 강하게 갖도록 해야 한다.이러한 작업은 통일의 준비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통일후에 남북한 주민 사이에 일어날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도 민족철학의 정립은 필요하다.역사는 상호간의 자극에 의해서 발전한다.그런데 자극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동일한 것 끼리는 자극이 없다.따라서 발전이 있을 수 없다.그러므로 우리 겨레가 역사의 주역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과는 다른 것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우리의 민족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겨레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도 민족철학의 정립은 필요하다.지금까지 우리는 기능위주의 교육에만 전념해 왔다.교육목표나 철학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지극히 구체성이 없는 구호에 불과하였다.기능위주의 교육이 우리사회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민족철학이 없는 교육은 우리 겨레가 나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계속 시행착오를 범하면서 방황하도록 만들었다. 민족철학의 정립은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겨레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을 찾아내어 그것을 기초로 해야 한다.우리 사회는 우리의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 체질에 맞게 가꾸어져 왔다.그속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은 유전인자를 통해서 아득한 옛 조상부터 우리에게까지 대대로 이어져 왔다.그것이 잠재의식 속에서 우리의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따라서 우리 잠재의식의 정서에 맞지 않은 가치관을 토대로 한 철학은 그것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우리에게는 불편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우리 겨레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은 그 기초를 고대에서 찾아야 한다.시대가 내려올수록 외래의 요소가 많이 혼합되어 어느 것이 우리 정신의 원류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우리 겨레 가치관의 원형을 담고 있는 것은 단군신화일 것이다.신화는 고대인들이 그들의 체험과 의식을 압축해서 신의 이야기로 남겨 놓은 것이다.그러므로 단군신화에는 우리 조상의 체험과 사상이 압축되어 있다. ○사람이 사회·역사 주체 단군신화에 의하면 하느님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하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와 「재세이화」하였다.즉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에 참여하면서 그곳을 합리적인 사회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겨레가 일찍이 사람이 사회와 역사의 주체임을 천명한 것이다.그리고 모든 사람이 더불어 이익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음도 밝힌 것이다.신이 사람 위에 군림한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에 동참하였다.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도 참여하여 신인공영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우리 겨레의 목표는 내세에 있지 않았고 현세를 낙원으로 꾸미는데 있었던 것이다. 우리겨레는 항상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였다.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제우스가 땅의 어머니신인 가이아를 살해하고 지상을 장악하였다.서양의 갈등이다.그러나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지상에 내려와 곰을 진화시켜 여자가 되게 한 후 그녀와 결혼하여 단군 왕검을 낳았다.하늘과 지상의 화합 및 조화인 것이다. ○부패·타락 치유책 필요 우리겨레는 사물은 셋을 주요소로 하여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발전하는 것도 세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였다.단군신화가 환인·환웅·단군의 세 단계로 되어 있는 것이라든가 그 구성의 주요소가 환웅·곰녀·단군 셋으로 되어있는 것,환웅의 징표인 천부인도 세 개,그가 지상에서 거느리고 일을 했던 풍백·운사·우사도 세 명,곰이 여자로 진화한 기간도 3·7일이라 하여 셋을 단위로 표현한 점 등은 이것을 알게 하여 준다.서양 종교의 삼위일체사상이나 헤결이나 마르크스 변증법의 3단계 발전법칙과 같은 것을 우리겨레는 오래 전에 터득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은 고조선시대 이래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며 일을 억지로 만들어 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며 행동으로 실천하되 말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며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는 등의 도덕규범도 지켜왔다.이러한 덕목은 유가나 도가,불가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러한 외래 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겨레가 지켜온 것들이었다.우리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도 우리사회의 큰 병폐이다. 우리의 민족철학은 잠재의식속에서 우리의 정서를 형성하고 있는 이러한 사상을 기초로 그것을 미래 지향적으로 해석하여 정립해야 한다. 우리겨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굳이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그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백남준이나 정경화·정명화 같은 세계적 예술가가 배출된 것이라든가 복잡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88올림픽을 세계인의 찬사속에서 치러낸 것,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을 제패하는 등 우수한 성적을 올린 것 등은 그것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다른 면을 보면 우리겨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만연되어 있는 부정과 비리 등 도덕성을 상실한 극단적인 타락행위 등을 치유하지 않고는 우리사회가 건실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긍정적 민족사 교육을” 정신질환은 자존심의 상처와 열등의식에서 온다.우리겨레는 조선시대 이래 일제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5백 수십 년 동안 자존심의 상처를받으며 열등의식속에서 살아왔다.조선시대에는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들며,일제시대에는 강제통치를 받으며 심한 자존심의 상처를 받고 열등의식속에서 살아왔다.광복 후에는 상황은 다소 나아졌지만 중국과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었다.그것은 유전인자를 통해 전달되고 현실속에서 다시 체험되면서 더욱 증폭되어 정신질환이 되었다.이것이 한국병의 원인이다.그러나 우리겨레는 그것을 치유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길은 민족철학이 정립된 긍정적인 국사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이를 통하여 자존심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열등의식을 씻어내야 한다.그리고 민족철학이 모든 교육의 바탕을 이루고 있도록 하여 배달겨레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우리의 잠재력은 크게 일어날 것이고 우리 앞에는 신명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약력 윤내현 단국대교수·사학 ▲1939년 전남 해남 출생 ▲단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동아학과 수학·동대학 객원교수 ▲단국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교수 ▲현재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 관장 ▲저서 「한국고대사신론」·「중국의 원시시대」·「중국사」등 13권의 저서와 40여편의 논문이 있음.
  • 배우자외도,고금의 고민이라(박갑천칼럼)

    얼마전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거짓말 연구가인 사회학자 페터 슈티그니츠 교수의 한 주장이 외신으로 전해진바 있다.독일의 잡지에 기고한 내용인데 그 가운데 남성의 경우 결백과 사랑의 맹세는 85%가 거짓말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슈티그니츠 교수의 이 설은 「사내란 믿을게 못된다」는 우리네 속설과도 궤를 함께 한다는 인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스토예프스키가 여행중에 그의 부인에게 했다는 편지도 한번쯤 생각해 봄직 하다.『…당신에게 천번의 키스를 보내오.천번의 키스는 틀림없이 할수 있겠지만 당신의 편지 속에 쓰인 천만번의 키스란 말은 분명 거짓이라 생각하오…』라고 썼던 그 편지.「85%」설에 의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도 그 여행중에 다른 여성과 「천번의 키스」를 나누는 가운데 그 아내에게는 가짓부리 편지를 썼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85%」설이 무색해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조선조 초기 정난공신(정란공신)1등으로 연산군(연산군)에 봉해지는 양효공 김효성(양효공 김효성)이 그런 사람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많았고또 그런만큼 부인의 시새움도 대단했던 듯하다.어느날 밖에서 돌아오던 그는 부인의 자리 옆에 놓인 검정물 들인 모시 한필이 눈에 띄었다.어디다 쓸 것이냐고 묻자 부인이 대답한다. 『대감이 여러 첩한테 빠져 본처를 원수같이 대하기 때문에 나는 결연히 여승이 될 마음으로 이것을 물들여 놓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바람둥이 남편」의 대답은 이러했다.­『(웃으면서)… 내가 호색하여 여기(여기)·여의(여의)로부터 양가(양가)의 여자·천한 여자·코머리(현수)·바느질하는 종 할것 없이 얼굴이 뱐뱐하기만 하면 사통(사통)하여 왔으나 여승에 이르러선 아직 가까이해본 적이 없소.그대가 여승이 된다면 이건 내가 바라던 바이오』.바람둥이란 본디 넉살이 좋다던가.「청파극담」(청파극담)에 나오는 얘기이다. 하기야 사내들 바람기는 신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그리스 신화에서의 최고신인 제우스만 해도 그렇다.그는 스파르타왕의 아내 레다의 미모에 반한다.레다는 여름날 오후 깊은 숲속우물에서 목욕하는 것이 취미였다.제우스는 그 우물에 떠있는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와 교접한다.헬레네는 이 결과로서 태어난 절세의 미녀였다.제우스의 「권리남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남편 암피트뤼온과 행복하게 사는 정숙한 아내 알크메네까지 탐한다.그래서 싸움터에 나간 남편으로 변신하여 침실로 침범한다.그리스 신화 최강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이 관계에서 탄생한다. 「사랑의 전화」가 지난 한햇동안 전화상담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가 알려졌다.그에 의할 때 부부문제가 가장 많았고 부부문제 가운데서도 「배우자의 외도」로 고민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32.2%).고금에 변함없는 바람기.다만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아내의 바람기로 고민하는 남편의 경우도 있는 것이리라.
  • 고대 그리스 조각품/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외출”

    ◎헤리클레스 등 명품 망라… 관람객 밀물 고대 그리스문화의 정수인 조각품들이 미국 도심의 한복판에서 옛명성을 다시 떨치고 있다.워싱턴의 「내쇼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그리스의 기적」이란 조각품 전시회가 그것이다.이 전시회는 특히「민주주의의 여명으로부터 잉태한 그리스조각」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단순히 그리스문화의 생성과 발전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상황과 문화예술과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과시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오는 4월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아테네의 열풍」을 이어가게 된다. 관람객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크게보아 두가지의 소득을 얻을수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변천사를 훑어보는 것이고 또하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양태를 살피는 일이다. 우선 눈에띄는것은 그리스의수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크리티오스의 소년」.기원전 4백80년쯤의 양식으로 얼굴과 몸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그러나 아쉬운 점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광채를 발하던 소년의 눈이 지금은 뻥 뚫려있다는 것이다.눈에 끼운 장식물이 없어진 때문이다. 기원전 작품보다 월등히 정교해진 조각으로는「헤라클레스」와「아테네」등이 선보이고 있다.대부분 5세기의 작품들이다. 이 두작품은 각각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과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워싱턴의 전시장으로 건너온 것이다. 평민들이 금사과를 헤라클레스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새긴「헤라클레스」와 무기를 들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신을 새긴 「아테네」는 정교하면서도 무게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 고대 그리스조각에 대해 문외한들에게도 이번 전시회는 좋은 학습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조각예술이 활기차게 피어날 무렵,때마침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치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귀족인 클레이스테네스는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시민들과 동맹을 구축하고 일련의 민주개혁 조치를 단행했다.이에따라 선거제도가 생겼고 노예와 여자들을 뺀 주민들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졌다. 고대의 조각을 보면서 한쪽으로는 민주주의의 태동을 회고할수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까지 미국인및 조각예술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이 전시회는 그리스정부에서 거의 모든 재원을 지원했다.게다가 훼손될지도 모르는 귀중한 조각품을 먼곳까지 실어왔다. 현지에서 전시해도 될것을 미국에까지 옮겨올 정도로 대단한 정성을 들인 것은 그리스의 저력을 뽐내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가 고대 그리스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애써 감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아테네예술이 순수한 목적보다는 상징물을 통해 귀신이나 마귀를 쫓기위한 주술및 제식에서 비롯됐기때문에 내용이 폭력적이고 미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안목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민주정치가 꽃핀 뒤쪽에 전혀 다른 부정적 요소가 깔려있었음을 알고 전시회를 찾아야 할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 「YS넥타이」 적발

    【안산=조덕현기자】 경기도 안산경찰서는 10일 민주당측으로부터 안산시 부곡동 545 넥타이제조업체인 제우스공장(대표 소문호·25)에서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넥타이를 만들고있다는 신고를 받고 제우스공장에 대한 수색을 벌여 넥타이 1천3백78개를 압수하고 제조경위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민자당측은 『김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넥타이는 선거가 끝난 뒤 당원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주기 위해 주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올림피아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서남쪽으로 3백50㎞쯤 떨어져있는 조그마한 마을.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고대 그리스때는 제우스신·헤라신·페론스신들이 거주했던 「신의 집」이자 BC776년에 시작돼 AD393년에 끝난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때문에 올림픽이 세계 어느곳에서 열리든 성화는 반드시 이곳 헤라신전에서 채화된다.◆성화채화는 단순한 올림픽행사가 아니라 신성한 종교의식이다.채화의식을 집전하는 여사제가 16명의 보조여사제를 거느리고 나타나면 「빛나는 올림피아의 어머니여,평화의 어머니여…」로 시작되는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핀다로스의 시가 낭송된다.이것이 끝나면 여사제는 기도를 올린뒤 태양열로 성화봉에 불을 붙인다.이 성화봉을 올리브나무가지와 함께 첫주자에게 건네준다.◆이순간부터 올림픽은 사실상 막을 올린다.성화는 인종·사상·종교의 벽을 허물고 인류의 평화와 이상을 실현하자는데 그뜻이 있다.그래서 올림픽은 성화채화로 시작되고 성화가 꺼지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올림픽성화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대회.그러나 이때의 성화는 개최국에서 채화됐고 크기도 횃불정도였다.성화가 올림피아에서 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제11회 베를린대회부터.평화의 상징인 성화가 나치 히틀러의 베를린대회부터 시작된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성화가 5일 채화된다.이 성화는 오는13일 스페인에 도착,43일동안 스페인국토를 누빈뒤 올림픽개막일인 7월25일 바르셀로나 메인스타디움성화대에 점화된다.그런데 이번 올림픽이 유고의 내란으로 상처를 입을 것같아 걱정이다.이나라가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 부터 올림픽참가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유고의 내란이 잘 수습돼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활활 타오르는 성화의 불길처럼 힘차게 또 멋있게 치러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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