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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사망 3주기이후 표정(김정일의 북한:1)

    ◎한국언론 최초 언·학 합동취재… 본사 동북아기획팀­경남대 극동문제연 2차 현지로 가다/먹거리 찾아 유랑하는 기아공화국/학생들 등교 뒷전 장마당·국경세관 배회/어른들 생존위해 도둑·강도질 서슴없어 중국 국경지역에서 본 북한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먹거리를 찾아 유랑하는 ‘기아공화국’이었다.어린이들은 학교에 가기보다 무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하러 장마당이나 국경해관(세관)을 배회하고,어른들은 풀뿌리를 캐거나 물고기 등을 잡아 팔러 다니고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공장의 기계설비를 몰래 뜯어내 팔거나 도둑·강도질도 마다하지 않는다.중국 친척집을 방문한 북한주민 정모씨(22)는 “조카 돌잔치상을 차리기 위해 400리길을 걸어 친척집을 찾아왔다”며 “먹을 것 외에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먹을것 외 아무생각 없다” 생존을 위한 장사,도둑·강도질도 거동할 수 있는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노인이나 몸져 누운 주민들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삶의 목표도 없이 표류하는 주민들에게는 먹을 것만 생긴다면 ‘범죄’도 서슴지 않는 ‘도덕 불감증’마저 팽배하고 있다. 지난 8일 상오 8시.중국 노과향 맞은편 함경북도 무산시 인민체육장에서는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 없이 김일성 사망 3주기를 맞아 추도대회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7월의 뙤약볕 아래 확성기는 인근지역에서 강제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3만여명의 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에 대한 추모 열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그러나 확성기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 추도식장에 나와 있는 많은 주민들은 속으로 어떻게 하면 배불리 먹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다고 노과향에서 만난 조선족 이모씨(43)은 말한다. ○추모식장엔 확성기 소리만 “중국과 교류가 빈번한 접경지대의 주민들에게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식량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이미 확산돼 있다”며 “그날그날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김일성에 대한 감정은 사치일 뿐,온통 배불리 먹을 생각만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이달초 탈북한 최모씨(24·여)도 “지난달 20일부터 김일성 추도기간으로 정한 북한당국이 장마장을 잠정 폐쇄하자,장사를 하는 20여명의 주민들이 단속을 하는 보위부 건물 앞에 몰려가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며 항의했다”고 말한다. 중국과의 밀무역을 통해 양식을 구할수 있는 중국과 인접한 북한의 모습에서도 식량난은 한계에 도달했음을 쉽게 읽을수 있다.공장과 논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은 거의 볼수 없고 식량을 구할 가능성이 높은 장마당,국경해관에만 수십∼수백명씩 모여 북적대고 있는 것이다.중국 단동에서 만난 조선족 곽모씨(53)는 “북한의 식량배급체제가 무너진 것은 2∼3년 전의 일”이라며 “북한주민들은 굶는 것을 당연할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한다.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중국인 하모씨(36)도 “평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중 옆에 있던 안내원이 ‘지금은 배불리 먹을수 있어 다행이지만,집안식구들이 굶는 것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했다”며 “관광단을 안내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신임을 받는 인물인데도,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식량난의 정도를 쉽게 가늠해볼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황장엽씨 망명후 경비삼엄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주민들은 기력이 없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자연히 올해부터는 어렵사리 개간한 밭을 묵히는 곳이 늘어나고 있었다.먹지 못해 밭을 가꿀 일손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옥수수·감자 등 종자가 부족한게 바로 그 이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으로 국경경비가 훨씬 삼엄해졌지만 탈북자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식량난의 심화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대목이다.북한의 고철과 밀가루를 바꾸는 사업을 하는 조선족 김모씨(44)는 “황씨 망명으로 북·중 접경지대에 50m 간격으로 초소가 늘어났다”며 “그러나 먹지 못한 북한 국경경비대원들은 탈북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주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경제가 6년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원자재와 전력의 공급부족이 심화돼 공장·기업소들도 대부분 가동이 중지돼 있었다.가동률이 20∼30%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북한의 전 산업이 마비상태에 빠진 것이다. ◎참여교수 시각/김일성사망 3주기 북한 표정­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식량난의 추모행렬 무슨생각 할까 지난 8일 상오 8시,평양 금수강산 기념궁전앞 광장에서 김일성 3주기를 맞아 중앙 추모대회가 열렸던 바로 그 시각.필자는 중국의 북한 접경도시 장백진 뒷산 전망대에 올라 강건너 북한 혜산에서 열린 김일성 3주기 추모행사의 편린을 보았다. 필자는 김일성 3주기를 맞은 북한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 위해 3주기 하루 전날 장백에 도착했다.장백은 북한 혜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혜산은 인구 16만여명의 비교적 큰 도시로 한때 면모가 만만찮은 공업및 가공도시여서 김일성 3주기를 맞아 공식 추모집회가 열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기대대로 추모집회는 열렸으며,대규모 인파도 구경할수 있었다. 북한의 실상,특히 사람사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북한 접경지대를 조사하고 다닌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많은 북한사람들을 볼수 있었다는 점이 특이했다.혜산시 중앙에 위치한 보천보기념공원에서 상오 8시부터 추모집회가 열렸는데,수백명의 북한주민들이 집회에 참석했다.추모식이 진행되는지 군복차림의 사람들,정장을 한 남자들,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줄지어 서있었다.탑에 가려져 추모식장 전면을 볼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식이 끝날무렵 줄지어 전면에 걸어 나가는 것은 김일성 영정 앞에 추념을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인상적인 일은 김일성이 과거 걸어 다니면서 배웠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배움의 길(혜산에서 보천보로 가는 압록강변의 길)”을 따라 행진하는 긴 인파였다.학생들과 일반인,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인 긴 행렬은 장관이었다.뙤약볕 아래 식량난으로 지친 북한주민들이 수령이었던 김일성을 추모하면서 김일성이 파르티잔 시절 걸어다녔던 고난의 길을 되걸으며 그들이 당면한 고난과 향후 더욱 커질 고난을 헤아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들이 걷는 그 길이 정녕 배움의 길은 아닐 터이고 “잊고 싶은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 D­16/사라지는 영 잔재(홍콩 주권반환:5)

    ◎대영상징 왕관 떼고 자형화 각인/올초 우표서 엘 여왕 삭제… 동상도 철거 계획/「로열」칭호 폐지… “혼란야기” 지명변경 미지수 「대영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던 왕관 로고등 영국통치 유산이 홍콩에서 사라지고 있다.홍콩반환과 함께 영국통치 잔재들이 역사의 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영국잔재가 없어지며 박태기나무꽃(자형화)이 홍콩특별행정구(홍콩특구)의 새로운 상징물이 되는 등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시장에는 홍콩특구 상징물이 새겨진 T­셔츠 등 반환기념 상품들이 넘쳐 흐르고 있다. 홍콩정부는 죄수 300여명 등을 동원,영국유산 제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홍콩정부는 또 새로운 관용 서식,카드,봉투등 반환후에 사용될 물건들을 서둘러 만들고 있다. 영국잔재 제거작업은 올초 부터 시작했다.우체국은 지난 1월부터 여왕 그림이 없는 우표를 판매하고 있다.홍콩정부는 젊은 모습의 엘리자베스여왕 흉상이 인쇄돼 있는 옛날 우표를 반환후 1달동안 새 우표로 바꾸어준다고 밝히고 있다.엘리자베스여왕 동상도 제거된다. 홍콩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체통의 왕관 마크도 없어지고 있다.홍콩정부는 이미 500여개의 우체통에서 왕관 로고를 떼어냈고 다른 200개의 우체통에 있는 왕관 로고위에는 페인트칠을 했다.왕관대신 우체통에 붙일 새로운 로고가 곧 등장한다.300여대의 우편배달 자동차에 쓰여있는 「Royal Mail」이라는 단어도 없어진다.로열(Royal)이라는 칭호가 없어지는 것이다. 홍콩정부는 200만개의 새 배지,휘장 등을 만들어 경찰,세관원등 제복을 입는 공무원들에게 나누어준다.홍콩반환후에 사용될 새 뱃지나 휘장등에는 영국 왕관 대신 홍콩특구 상징물인 박태기나무꽃이 새겨진다.2천여개의 중국국기와 3천여개의 박태기나무꽃이 새겨진 홍콩특구 깃발도 만들어지고 있다. 홍콩정부가 추진하는 공식적인 정부 상징물의 교체는 쉬운 일이다.그러나 영국총독 등 영국인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많은 거리나 장소,지하철역 이름까지 바꾸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이름이 바뀔경우 많은 혼란과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콩특구의 초대 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동건화는 『거리와 장소의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다』과 밝힌바 있다.많은 홍콩사람들은 거리나 장소의 이름을 그대로 보존하기를 바라고 있다.홍콩 중문대학의 칸 윙카이 교수는 『홍콩에는 많은 식민통치 상징물들이 있지만 그들은 지역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홍콩사람들은 가능하면 많은 변화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그는 『변화를 위한 변화는 홍콩인들에게 불편만 줄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잡지인 「피플스 포럼」은 지난 4월호에서 「영국인들의 이름을 딴 홍콩의 거리와 장소의 이름도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이 잡지는 「거리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한시대의 마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앞으로 어느정도까지 홍콩에 남아있는 영국통치의 유산을 제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북경 당국과 홍콩인들사이에는 유산제거를 둘러싼 많은 논란과 절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한 절충의 대표적인 예가 총독관저 사용방법이다.중국정부는 당초 총독관저를 박물관으로 사용하려 했다.그러나 많은 홍콩인들은 행정장관의 관저로 사용되기를 바랐다.그러나 동건화 행정장관은 풍수가 좋지 않다며 관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총독관저는 결국 영빈관으로 사용하게 됐다. 영국유산 제거라는 외형적 변화 뿐만아니라 홍콩인들의 사고와 의식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서구화돼 있고 영국의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해 있다.그렇지만 홍콩인들의 마음속에는 중국인이라는 의식이 있어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들은 결국 중국화될 것이다.
  • 「청춘연가」 새달 출시/일 KSS사 원작 우리정서맞게 개작

    ◎재수생주인공 연애이벤트가 줄거리 「청춘연가」는 통큰멀티미디어(02­318­0187)에서 만든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일본 KSS사의 원작 「여학교 제복이야기」를 우리 정서에 맞게 고친 작품이다.6월초에 출시된다. 재수생인 주인공이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1년동안 벌이는 연애 이벤트가 기둥줄거리.게임에는 40명이 넘는 여학생이 등장한다.연애 뿐만 아니라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게임을 마칠수 있는 포인트다. 엔딩 장면에서는 대학합격 여부,연애성공 여부 등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이벤트가 등장하며 다른 연애시뮬레이션이나 육성시뮬레이션 게임과 달리 주인공이 사귀는 여학생에게 암호로 된 삐삐를 친다든지,여학생을 사진에 담는 이벤트 등이 특이하다. 게임에서는 두번 이상 여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데이트를 할 수 있다. 연락처는 삐삐번호로 나타나며 보통 4∼5명의 여학생과 데이트를 할 수 있다. 게임을 제대로 하려면 아르바이트는 같은 직종에 적어도 2주이상 근무해야 한다.아르바이트는 데이트 자금을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돈이 너무 많아지면 도난의 우려가 있으므로 적정한 선에서 해야 한다. 게임은 주인공의 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시 자기 방에 돌아온다. 데이트할때 주의할 것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많이 얻어야 한다는 것.대화중에 나오는 여학생의 취미나 기호를 반드시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한 선물을 해야 호감을 얻을수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분의 스케줄을 짜는데 「재수생」신분이므로 상오에는 학원 시간이 들어간다.나중에 별도의 스케줄로 변경할 수 있다.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스케줄을 정할 때는 변경 부분만 기록하면 된다. 스케줄에는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아르바이트 시간 등을 상황에 맞게 넣는다. 학원 이벤트는 게이머의 성적에 큰 영향을 준다.메시지 표시후,현재의 성적 그래프가 표시되는데 1년후의 그래프가 상위 성적까지 올라가 있지 않으면 대학에 붙기는 어렵다. 게임을 하면서 아이템의 확보도 중요하다.체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릴 수도 있는데 이때 감기약을 챙겨 체력수치를 회복해야 한다.체력이 부족하면 게임진행에 영향을 받으므로 가능한 수면을 많이 넣어 체력수치를 회복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점이다. 도스·윈도용.4만4천원.
  • “카빌라,후투족 말살 기도”/국경없는 의사회

    ◎자이르내 난민 19만명 실종 추정/수도 킨샤사서 불 기업인 2명 피살 【킨샤사·파리·제네바 AP AFP 연합】 자이르를 장악한 로랑 카빌라의 군대가 모부투 대통령 축출 직전 자이르 동부지역에서 르완다의 후투족 난민들을 대량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국경없는 의사회」는 카빌라의 반군이 후투족 난민에 대해 「인종말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비난했다고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이 20일 보도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최근 정권을 잡은 카빌라와 그가 이끄는 반군이 자이르에 남아 있는 르완다의 후투족 난민을 공격하거나 이들에 대한 인도주의 단체들의 지원을 봉쇄함으로써 후투족에 대한 「인종말살」을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럽연합(EU)의 에마 보니노 인권위원장도 카빌라가 자이르 동부 지역을 「인간 도살장」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자이르에 34만명의 난민들이 아직 남아 있으며 19만명은 실종된 것으로 추정했다. 자이르 수도 킨샤사에서는 20일 저녁 프랑스 기업인 2명이 제복을 입은 남자들에 의해 살해돼 카빌라의 정권 장악 이후 첫 외국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이날 사건과 관련,『이중 범죄』라고 비난하면서 진상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 “육사 여생도 되십시오”/여고 방문 신입생모집설명회 가져

    『학교에 여자 화장실도 새로 만들어 여러분을 맞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육군사관학교 4학년 최필영 생도(23)의 설명에 여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여고(교장 김현재) 강당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여자생도를 뽑는 육군사관학교의 신입생 모집 설명회가 열렸다. 3학년생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육사에서는 공보관 황인효 대령과 학년 대표 한 명씩이 참석했다. 특히 육사 영어과 교수로 여의도여고 1회 졸업생인 오미숙 대위(29)도 참석해 12년 후배들에게 여군의 위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행사는 오대위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오대위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영문학 석사과정을 마친뒤 평소 열망해 온 여군이 되기로 결심,여군 사관후보생 과정을 거쳐 임관했다. 오대위는 『생도 1인당 1억1천여만원이 드는 행운을 남자만이 독차지할 수는 없다』면서 『여성의 위상은 무엇이든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데서 높아질 수 있다』고 지원을 권유했다. 황대령은 『전자전에 대비한 군은 여성 인력이 절실하다』면서 『생도과정을 마치면 본인의 희망과 능력에 따라 남녀간 병과의 구분없이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3학년 최예정(18)은 『멋진 제복과 절도있는 모습이 무척 멋지다』면서 육사에 지원할 뜻을 내비쳤다.
  • “금융범죄 내게 맡겨라”/서울 중랑서 조사계반장 박준성 경위

    ◎대졸후 50대1 경쟁뚫고 경찰간부 후보에/“매력적 전문직… 젊은 시절 도전해 볼만” 『경찰은 용기있고 정직한 젊은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전문직입니다.제 꿈은 날로 늘고있는 금융범죄 전문수사관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반장 박준성 경위(27)의 당찬 포부다. 박경위는 지난 95년 2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5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경찰간부 후보생 시험에 합격,경찰에 입문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좀더 활동적이고 제복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해」 투신하게 됐다고 밝혔다.그는 경찰종합학교에서 1년간의 엄격한 교육과 훈련 과정을 거쳐 지난해 4월 경위로 임관했다. 교육기간동안 각종 법률지식과 경찰 수사실무,사격,무도술 등을 알차게 익혔다.다부진 체격에 유도·태권도·축구·수영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박경위는 『재학시절 선·후배가 함께 뒹구는 유도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흘리는 땀이 고스란히 끈끈한 정으로 남게 마련이란 설명이다.경찰행정학과 졸업생 40명 가운데 경위 간부시험에는 18명이 합격했다.여학생 2명을 포함,10명은 경사로 특채됐다.중랑서에만도 10여명의 과 선배들이 간부로 재직하고 있다. 박경위는 첫 경찰생활을 구로경찰서 구로파출소장으로 시작했다.당시는 총각 시절이라 파출소에서 아예 숙식을 해결했고 범죄 현장에는 자다가도 뛰쳐나갔다. 시간이 흐르자 전·의경들이 친형처럼 따랐고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은 강직하고 쾌활한 그를 친동생처럼 아끼며 이끌어 주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중랑서에서 수사업무를 맡은 그는 금융범죄 전문가로 통한다.수사연구소에서 3개월간의 조사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처음에는 어려운 경제용어와 날로 치밀해지는 금융 사기수법에 얼떨떨했다』고 초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때부터 경제서적을 탐독했고 신문 경제면은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 박경위는 오는 4월 경위로 임관할 대학 후배들에게 『재학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두면 실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 파키스탄 탁티바이(세계 문화유산 순례:23)

    ◎가파른 바위산 벼랑끝 성채같은 가람이… 간다라(Gandhara)는 아주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아키메네스왕조때(BC559∼330년) 페르시아의 속주로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다.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현에 해당하는 지역이 옛 간다라 땅이다.역사속에 명멸한 정복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그칠날 없이 이어진 지역이기도 했다.그래도 간다라에서는 불교와 불교미술이 오랫동안 꽃피었다. ○대평원 한복판 우뚝/망망대해 등대인듯 그 간다라에는 불교유적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대표적 유적의 하나가 탁티바이(Takht-i-Bahi)다.가람유적인 탁티바이는 페샤와르현 마르단에 있다.페샤와르시에서 탁티바이까지는 꽤 멀었다.난마처럼 얽힌 카불강과 스와트강줄기를 몇차례 건너서 간다라 첫 수도 차르사다를 지나쳤다.논스톱으로 두시간을 좀 넘게 달렸을까,대평원 한복판에 우뚝한 산자락 하나가 불쑥 시야로 들어왔다. 탁티바이산이다.산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같았다.오랜 세월을 두고 탁발로 유랑한 당시 구도승들에게 산은 실제 등대 노릇을 했을것이다.풀 한포기도 눈에 띄지않는 바위너설의 악산인데,가람은 매달린듯 벼랑에 붙어있다.아래서 저만큼 올려다 본 가람 탁티바이는 성채 그것이었다.그많은 정복자들의 난리를 피해서 부러 가파른 바위산을 택했으리라.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가람 입구에 다다랐을때 기다리던 경비원이 거수경례로 맞아주었다.긴 치마자락처럼 정강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고유의상 카미즈 차림의 경비원은 허리에 넓은 가죽벨트를 맸다.벨트에 권총을 매달지 않았을 뿐,어떤 제복같은 느낌이 와닿았다.유적 경비원을 따라 여러개의 수투파(불탑)가 있는 뜰을 지나서,경내에 단 한그루 밖에 없는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우선 한숨을 돌렸다. 탁티바이 가람유적은 기원전(BC)100년쯤부터 터를 잡아나갔다.그리고 나서 기원후(AD)6세기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가람을 조성하는 동안도 파괴와 건설이 거듭되었다.탁티바이산은 산자체가 돌산이다.그래서 가람의 모든 건조물은 산에 널린 운모편암을 자재로 축조했다.가람은 층서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블럭을 가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간다라 불교유적지 성한불상 하나없어 유적의 단면은 대체로 요꼴을 이루었다.그런 단면을 기반으로 불교의 기본 건축물인 수투파와 불당,승원을 지었다.수투파는 네모꼴 기단위에 탑 몸체를 쌓아올리는 형식이었는데,애석하게도 기단만 남아있다.승원의 경우에는 가운데 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승방을 가지런히 배치했다.이같은 승원축조양식은 간다라지방에서 처음 나타나 인도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가람 입구를 들어서면 수투파 기단들이 늘어선 좁은 뜰이 나왔다.요꼴 단면에서 보이는 오목한 부분이 바로 뜰이다.그 뜰이 시작되는 오른쪽(북쪽)으로 불상을 봉안했던 닫집(감실)들이 바싹 다가왔다.모두 12개나 되는 닫집을 지나쳤지만,불상 한 두어 구가 겨우 눈에 띄었다.그나마 머리가 아니면 팔이 떨어져 나간 불상 뿐이다.가람 어디에서도 몸이 성한 불상을 만나지 못했다. 간다라 불교유적은 일찍 파괴되었다.당나라 승려 현장의 구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전반의 건태국,즉 간다라 이야기가 나온다.현장은 이책에다 「승가람은 1천여군데에 있으나,모두 부서진채 방치되었다」고 적었다.동서 1천리,남북 800리의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적었다는 현장의 기록에서 탁티바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식민제국 박트리아의 왕 맨안더(재위 BC155∼130년)의 후광을 업고,또 쿠산왕조의 카니쉬칸(재위 AD78∼128년)을 후원자로 전성기를 맞았던 탁티바이.겨우 600여년을 가람답게 지켰다.지금 탁티바이는 적막했다.탁티바이는 「바위속의 샘」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유적 경비원에게 청해서 얻어마신 양재기 물맛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복자 말발굽에 파괴­건설 600년 이 가람의 대탑 메인 수투파는 입구에서 곧바로 만난 뜰 왼쪽(남쪽)에 있었다.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다 여러 칸의 닫집을 ㄷ자꼴로 앉혔다.닫집의 지붕은 독특했다.네모꼴 지붕을 돌로 올리면서 모서리를 차츰 죄어가는 방식으로 둥글게 쌓았다.그리고 지붕 한가운데에 원심의 구조물을 도드라지게 덧쌓았다.역시 이들 닫집안에서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 승려들이 머물렀던 승원은 이 가람 북쪽 블럭에 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을 내려와 입구 뜰을 건너서 계단을 올랐다.마당 중간을 비워두고 ㅁ자형으로 빙 둘러지은 승방들이 촘촘히 박혀있다.경전을 외는 소리가 두런두런 했을 승방은 지붕조차 없다.지난 먼 옛날 불교를 그토록 보호했던 왕조 모두가 역사속에 묻혔으니,누가 중창을 하랴.지금 유네스코(UNESCO)가 나서 더 허물어지지 않게 보살피고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불교가 존재않는 불교의 유적지 구도승들의 고행현장은 정오가 가까운 한낮에 찾았다.가람 입구에서 시작한 뜰을 거쳐 서쪽 마당끝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을때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왔다.돌을 맞조려 쌓은 천정이 아치꼴을 이룬 터널은 꽤 길었다.터널 오른쪽으로 작은 방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인공의 토굴이었던 것이다. 토굴의 환경은 감방보다 열악했다.승려들이 고행과 명상으로 은둔했을 토굴에는 박쥐떼만 득시글거렸다.세월이 무상했다.생겨나고 없어지는 생멸에 집착하지 않은 탓일까,파키스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는 오래다.제대로 된 불상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탁티바이를 돌아서야 했던 까닭도 불교가 존재하지 않는 불교유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숙박은 페샤와르서/국내선 하루 2∼4편 운항 탁티바이는 페샤와르에서 80㎞ 거리다.페샤와르에서 택시를 타면 90∼100달러가 든다.페샤와르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은 페샤와르에서 하는 것이 좋다.숙박시설은 딘스호텔,펄콘티넨털호텔 등이 있다. 교통편은 라왈핀디나 라호르에서 오는 파키스탄 국내항공이 하루 2∼4편 정도 운항한다.그리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4시간이 걸린다.페샤와르는 실크로드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라서 아랍풍의 문물관광도 즐길수 있다.인더스 가이드(92­42­872975)같은 여행사 안내도 고려할만한 일이다.
  • 두얼굴의 경찰/이지운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낮에는 경찰,밤에는 강도」로 시민을 경악케 한 김진록씨(29).10일 하오 1시55분 서울 방배경찰서 유치장 철문이 열리자 180㎝의 훤칠한 용모를 한 「두 얼굴의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제복이 멋있어 지난 92년 경찰에 투신했다고 한다.태권도 4단의 무술 실력도 갖췄다.처음에는 정의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복무 몇 개월간 봉급을 받아보곤 생각이 달라졌다.처가까지 도와주어야 하는 처지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94년 7월 방배1파출소로 발령난 뒤 김씨는 유혹에 빠졌다.『뒤는 책임질테니 돈만 대라』며 유흥가 불량배들과 결탁하기에 이르렀다. 집안과 경찰 동료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유흥업소 직원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를 했다.그의 집에선 「현금 인수증」 등 거래내역을 담은 두툼한 서류철이 발견됐다.거래 액수만도 수천만원대로 추정됐다. 『지난해 3월 그만두려고 결심했을때 옷을 벗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기도 했다. 김씨는 그러나 자신의 범행에 대해서는 부인으로 일관했다.스스로도 현직 경찰관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경찰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보통 5년이 걸린다고 한다.「시민의 지팡이」로서 박봉과 과중한 업무를 참고 견디려면 이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경찰관의 봉급은 상대적으로 적다.처우개선은 이뤄져야 한다.젊은 세대의 경찰관들에게 사명감만 먹고 살라고 설득하는 것도 무리다. 그러나 김씨에 대해서는 관용의 여지가 없다.대개의 범죄꾼이 그렇듯 「한탕주의」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처음부터 공직자로서는 함량미달이었다. 「주경야도」「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비난에도 유구무언인 전체 경찰의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 서울신물 박정현 특파원 파리 OECD 본부를 가다

    ◎연구팀만 200여개 “세계경제 산실”/26개 분야별 소위서 국제경기흐름 조율/모든회의 비공개… 서류마다 「비」자 일색/지하커피숍엔 각국외교관 등 「정보사냥꾼」 북적 파리시내 서쪽 앙드레 파스칼거리 2번지.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색창연한 본부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샤토 뮈에트(뮈에트성)이라고 불리는 구관과 비교적 신식인 별관건물이 맞이한다. 구관 건물부터 찾아들었다.방문객 접수창구에서 신분증을 내고 임시방문증을 받는다.OECD 대표부 직원이 아니면 회의에 참석하는 정부대표단도 매번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그만큼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한 OECD의 문턱은 높게 느껴진다. 건물입구에는 OECD라는 간판도 금방 눈에 띄지 않는다.주변에 주차된 외교관 번호판의 승용차들이 OECD 건물임을 말해준다.신분증을 받아 구관을 들어서면 넓은 뜰이 나오고 건물 입구를 쳐다보니 가로 1.5m,세로 1m 크기의 태극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본부입구 태극기 펄럭 지난달 12일 이시영 주프랑스한국대사가 프랑스 외무성에가입서를 기탁하자마자 게양된 태극기다.한국이 OECD 회원국임을 대외에 알리는 가장 큰 상징이다.나머지 28개 회원국의 국기가 태극기와 함께 나부낀다.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실감케 했다. 샤토 뮈에트는 왕과 귀족들이 가까운 불로뉴숲에서 사냥을 하다 쉬던 「휴식처」.우여곡절을 겪은뒤 1차대전 직후 유태인 출신의 작가 로드 차일드가 인수한다.현관과 회의실 등에 진열된 그림 등 소장품들은 그가 진열한 거의 그대로이다. 차일드는 2차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 성을 프랑스 정부에 헌납했다고 한다.전쟁이 끝나고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프랑스 정부는 지난 49년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설립되면서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OEEC에 이 성을 넘겨줬다. OEEC의 손에 들어간뒤 61년 명의가 OECD로 개편되었으며 그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건물 1층에 있는 회의실은 4개.A∼D까지의 회의실이 있고 이 가운데 C회의실이 바로 매년 5월 각료들이 모여 각료이사회가 열리는 유명한 곳이다. 입구 왼쪽의 계단을따라 올라가자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의 집무실과 사무국 직원들의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구관을 나와 다시 앙드레 파스칼 거리를 건너 신관에 들어섰다.신관의 지하1층에 위치한 회의실은 9개.나머지는 모두 사무국의 사무실이다. ○사무국 직원 1천900명 구관의 회의실을 합해 모두 11개 회의실이 있지만 매일 열리는 7∼8개의 회의때문에 항상 북적댄다.지하의 커피숍은 회의 막간을 이용해 외교관이나 정부대표단이 정보를 교환하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다른 선진국 경제정책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각국 외교관과 정부관리들의 눈초리는 커피숍에서도 느껴진다. OECD는 부자들의 모임이라고들 한다.하지만 실제로 OECD를 방문해보면 OECD가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회의실이 부족해 파리시내 프랑스정부 소유의 건물로 자리를 옮겨 「더부살이」 회의를 여는 경우도 많다. OECD는 본부를 이전한다는 방침아래 대상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영등포구 정도의 크기에다 건물 증개축이 엄격한 파리시내에서 넓은 부지에 번듯한 사무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지난해 여름 한국이 가입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OECD 사무국 직원들은 한국이 하루라도 빨리 회원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한국이 가입하면 예산이 늘어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OECD예산은 약 2억6천만달러.이 가운데 1천900여명의 사무국직원들 인건비가 85%를 차지하고 있어 예산은 턱없이 모자란다.때문에 지난해 존스턴체제 출범이후 사무국 기구 축소와 기능정비 검토에 들어갔다.여느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인력감축바람이 서서히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 비좁아 이전 모색 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유럽국가들이 22개국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이는 OECD자체가 2차대전후 잿더미의 유럽의 재건을 위한 기구라는 뿌리에서 비롯된다.미국은 마셜플랜이라는 대규모 유럽원조를 했고 유럽 16개국이 원조자금의 배분 등을 논의했던 기구가 OEEC이다. OEEC는 유럽의 경제복구가 어느정도 달성되자 지난 61년 미국과 캐나다 등을 포함한 OECD로 확대 개편됐다.이제는 선진7개국(G7)정상회담의 사무국 역할과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막후조정을 할 정도로 국제경제질서를 주무르는 최고의 국제경제기구로 떠올랐다.이런 기구에 가입해 회의에 참석한 우리 정부 관리들은 OECD가입이 백번 잘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본부가 파리에 소재하고 있어서인지,회원국이 유럽지역에 편중돼 있는 탓인지 유럽 텃세가 심하기로도 유명하다.한국의 가입협상때 아시아국가들은 지원사격을 많이 해준데 비해 유럽국가들은 꼬치꼬치 트집을 잡기도 했다.때문에 백인 기독교사회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회원국이 되려는 한국을 골탕먹이려 한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최고기구 각료이사회 OECD의 회의 특징은 회원국간 비밀을 중시하고 웬만한 서류에는 「컨피덴셜(비밀)」이라고 찍혀 있다.지난 연말 투자보장협정(MAI)회의에 참석중 OECD건물에서 만난 한국의 한 외교관은 『한국이 정식 회원국이 아닐때 한 위원회의 회의에서 하루에 3번씩이나 쫓겨나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며 『회원국의 가장 큰 장점은 쫓겨나는 설움이 없이비밀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점』이라고 전했다.그만큼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라는 얘기다.회의의 또다른 특징은 「동료간 압력(Peer Pressure)」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회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의 말을 빌려 종합해보면 이렇다.A국의 경제정책이 잘못돼 B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치자.B국의 대표는 어느날 회의에서 『A국의 정책은 국제경제규범에 어긋난다』고 간접적으로 지적하면서 수정을 요구한다.그러고 나면 회원국들은 A국과 함께 토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정책 조화를 도출해 나가는 점잖은 진행방식이다.이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최신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 OECD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는 이런 각료이사회와 함께 상주대표들이 참석하는 일반이사회가 있다.사무총장을 의장으로 하는 일반이사회가 열리는 매달 두번째및 네번째 목요일은 OECD가 붐비는 날이다.그리고 특별사안이 있으면 한차례 이사회가 더 열려 한달에 2∼3번씩 열리는 셈이 된다.이 자리에서 신규 회원국 가입문제와 위원회별 심사및 검토결과에 대한 최종 승인이 내려진다. 이사회 산하에는 26개의 분야별 위원회가 있고 200여개의 작업반이 구성돼 있다.이들 작업반에서는 문제점으로 지적된 경제정책에 대한 해결방안 등에 대한 연구가 모색된다.이외에 국제에너지기구(IEA),원자력기구(NEA),교육연구혁신기구(CERI) 및 개발센터(DC) 등의 반독립적 부속기관들이 설치돼 있다.
  • 일 군국주의 부활하는가(사설)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일본 도쿄는 사뭇 추모와 경배의 분위기였다고 한다.6명의 현직각료와 1백83명의 현역의원이 대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뿐 아니라 야스쿠니신문(신문) 입구에는 불타는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특공대의 모습등 섬찍한 전쟁기념화전이 열리고 있었다.또 군국일본군의 제복에 대형 일장기를 앞세운 2차대전 참전병사의 추모행사도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그 규모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86년이래 중단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지난달 29일 재개된 데다 전후 한때 금기시돼오던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가 이제 공식화돼가고 있다. 『일본사람이 일본의 가미사마(신)를 참배하는 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일본인이 있으나 2차대전의 A급전범이 추모의 대상이 된다면 그 전범으로부터 참략을 받고 수없이 죽어간 피해국민은 어떻게 되는가.『태평양전쟁이 백인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면 백인 아닌일본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아시아인은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도쿄의 「8·15」분위기가 일본의 모든 것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일본국민의 74%는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정책이 건전한 시민의 상식에서가 아니라 소수 강경론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에 있다.도조(동조)의 군국주의 하에서도 이를 비판하던 세력이 일본내에 없었던 게 아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대국의식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고 이것이 일본의 경제력과 결부돼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세계는 일본의 보수화 내지 군국화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 서울신문사 초청 모범용사 행사를 마치고/좌담

    ◎“산업발전 수호 군 역할에 자부심”/기업 관리실태 시찰,군 경영에도 도움/전국 모범용사 애환 나눠… 소중한 만남/33년째 변함없는 행사에 감사… 더 많은 동료 참여했으면 서울신문사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초청한 국군 모범용사들은 1일 국민의 군대로서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모범용사 62명과 배우자들은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5박6일동안 서울·대전 엑스포공원·광양제철소·경주 등 산업 현장과 관광지를 돌아보았다.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도 방문했다.이들 가운데 신기수 소령(35·3군 사령부),손정길 원사(53·육군 제17사단),이석철 원사(45·공군 제16전투비행대),정윤수 원사(52·제3함대사령부),문형태 원사(52·해병 제2사단),장명자 상사(31·육본 여군대대) 등 6명의 좌담회를 마련,행사 참가 소감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참석자 신기수 소령/손정길 원사/이석철 원사/정윤수 원사/문형태 원사/장명자 상사 ▲신기수 소령=33년째 변함 없이 행사를 마련해 준 서울신문사에 이번 행사에 참가한 모범용사와 전 장병을 대신해서 감사를 드립니다.국토방위의 일선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 전군의 모범 용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애환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가장 화려했던 외출 ▲손정길 원사=34년간의 군 생활 중 이처럼 화려한 외출은 처음입니다.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근로자들을 보고 부대로 돌아가면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이석철 원사=그렇습니다.군 생활에서 이렇게 보람되고 유익했던 시간은 없었습니다.특히 숱한 고통과 어려움을 묵묵히 지켜온 아내에게 군인의 아내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맙습니다.다른 군의 모범용사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 유익했습니다. ▲정윤수 원사=과거 우리나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주변 강대국에 비해 크게 뒤쳐졌습니다.6·25와 같은 민족의 비극도 사실은 우리의 허약함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행사기간 중 독립기념관 전시관과 과학공원,산업체 등을 방문하면서 그 규모와 발전에 대해 크게 놀랐습니다.반도체,컴퓨터 등을 만드는 현장을 보고 노동 집약적인 산업에서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변화를 실감했습니다.군사력의 발전과 경제력의 우위를 지켜나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고 강대국의 모습을 자손만대에 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자손만대에 전해야 ▲문형태 원사=30여년의 군생활을 돌이켜 보면 초기만 하더라도 열악한 병영생활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정신자세는 살아 있었습니다.최근 입대 사병들의 상대적으로 나약한 정신자세와 참을성을 보면 군조직이 요구하는 일사불란함과 자기희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원로 하사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그러나 산업 현장과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을 통해 자기발전을 위한 노력과 의지를 대하다보니 믿음직스러웠고 조국의 미래가 밝다고 느꼈습니다.다만 안보의식을 더욱 강화하여 국가수호는 군과 민이 합심으로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손원사=예전에 비해단체생활의 예절과 정신이 떨어지고 있는 신세대 병사들에게 인생의 선배이자 하사관으로서 군의 사명과 근검 절약정신에 대해 잘 일러주겠습니다.철저한 기업경영과 산업현장의 합리적 관리는 군 경영에도 훌륭한 모범이 될 것 같습니다.이번과 같은 좋은 경험을 더 많은 동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정적 모습에 감명 ▲신소령=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의욕적이고 열정적으로 지역을 위해 뛰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청와대 방문은 더 없는 영광이었으며 많은 것을 깨우치는 자리였습니다. ▲이원사=군의 기술발전도 놀랍게 이뤄지고 있습니다.얼마전 북한의 이철수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을 당시,공군의 신속한 대응에 대해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을 때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장명자 상사=모범용사 초청 행사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인 줄 았았습니다.그러나 서울신문사의 치밀한 준비와 지방자치단체의 헌신적인 환대에 자뭇 놀랐고 긍지를 갖게 됐습니다.우리 군에 아직도 많은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남아 있다는데놀랐습니다.이번 행사에도 많은 참전용사들이 참가했는데,모든 면에서 어려웠던 시절에도 조국을 위한 충절과 용기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이 시간에도 전방에서 맡겨진 책무를 다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고 있는 하사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사회변화·발전 실감 ▲신소령=사실 이번에 초청된 모범용사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은 사회의 변화와 발전상에 대해 막연하게만 그려왔습니다.푸른 제복과 엄정한 군기가 전부이니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다보니 사회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이번 행사를 통해 군이 이 사회와 분리된 곳이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해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새삼 느꼈습니다.소중한 경험들을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행사가 계속 됐으면 합니다.애써주신 서울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정리=김경운·강충식 기자〉
  • 모범택시(외언내언)

    모범택시가 흔들린다.운수업계에서 항공사 말고는 「기적적」으로 친절·청결하고 이름대로 모범적이란 평가를 받던 모범택시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거기다 정부가 모범택시를 대폭 늘려나갈 방침이라니 그나마 하나뿐인 모범교통수단을 잃게 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 검정 중·대형차에 「금테」를 두른 모범택시가 서울거리에 처음 등장한 것은 92년말.단정한 제복차림 기사의 깍듯한 친절에 시민은 『며칠이나 갈까』하고 코방귀를 뀌었다.더욱이 서울올림픽때 지붕위 파란등으로 눈길을 끌며 친절택시로 박수를 받은 중형의 88택시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불친절과 합승을 일삼는 별볼일없는 존재로 돌변한 전례를 잊지 않은데다 일반택시의 3배나 되는 요금에 누가 타랴 하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서울에만 4천대가량인 모범택시는 『이것 봐라』 할 정도로 달랐다.기름밥 먹는 우리 운수업계수준과는 영 다른 이 신사운전자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가 싶을 정도로 이들은 친절하고 교통법규를 잘 지켰으며 그야말로 모범적이었다.승차거부나 합승은커녕 늦은 밤 취객의 무례도 점잖고 여유 있게 소화해내는 선진국 택시 부럽잖은 시민의 고급교통수단이었다.택시 여성승객 납치범죄가 잇따를 때도 모범택시는 이웃처럼 믿음이 가는 존재였다. 그러나 열악한 교통환경,승객의 거친 매너,업계의 고질적 후진국병등 사회의 전반적 수준을 3년이상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일반택시요금 인상으로 요금차이가 2배정도로 줄어든 뒤 승객도 늘고 제법 영업이 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3년여만에 지쳐버렸는지 친절은 퇴색하고 고질병인 난폭운전도 나타나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끊임없는 사고와 고장,난폭운전,불친절등 거친 단어투성이인 대중교통세계에 시범적 존재 하나 키울 능력이 우리에게 없단 말인가.경쟁유발의 증차보다 무선호출시설·세제지원등으로 소수정예,출범초기와 같은 모범택시를 육성하여 교통선진의 상징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황병선 논설위원〉
  • 공산권에 기독교 선교 40년/극동방송 40돌… 다양한 축하행사

    ◎중·러·일·영 등 5개 국어로 방송/세미나·신앙수기 공모·합창제 개최 라디오로 공산권에 기독교 선교방송을 하고 있는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목사)이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56년 12월23일 인천시 동구 학익동에서 「한국복음주의 방송국」으로 첫방송을 시작한 극동방송은 61년 「국제복음방송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67년부터 오늘의 「극동방송」국으로 다시 변경,서울 마포구 상수동으로 사옥을 옮겨 공산권 선교방송을 하고 있다. 극동방송은 그동안 종교가 엄격히 통제된 공산권에 선교사와 목사의 파송은 물론 성경과 찬송가도 보낼 수 없었던 60년대와 70년대 중국어·러시아어·일어·영어·한국어등 5개국어로 설교와 찬양등을 방송함으로써 다민족 복음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극동방송은 공산권 선교로 중국에 7천만 기독교 신자들을 결신시키고 중국의 개방화와 한·중 수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중국에서는 1년에 2만통에 가까운 청취자들의 편지가 오고있으며 많은 북한 탈북자들이 극동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밝힐만큼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극동방송은 국내 복음화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지난 89년 12월 대전극동방송국을 개국한 이후 오는 3월16일에는 영남지방의 선교를 위해 창원극동방송국을 개국,국내에 2개 지방 방송국을 운영함으로써 본격적인 전파 설교시대를 연다. 극동방송은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KBS 창원홀에서 전야제를 갖는데 이어 목회자 초청 교회성장 세미나(4월22일),복음성사 경연대회(7월20일),방송가족 신앙수기공모(9월),성가 대합창제와 교회음악 세미나(10월)등 축하 행사를 한다.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목사는 『극동방송의 40년 역사는 한국 교회의 성장사와 선교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회고하고 『극동방송이 순수복음방송으로 자존심을 지켜온 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헌금과 기도때문이었다』고 말했다.
  • 김영수장관이 밝힌 올 문체부 역점 시책

    ◎유럽에 우리문학 번역센터 설치/세계유산등록 운동 지속… 만화사업 육성/일제지정 문화재 5백1건 재평가 작업/부산·인천·대전에 「국민체력센터」 연내 신설 문화체육부가 6일 발표한 「96년도 주요 업무계획」에 따르면 올해 문화체육정책은 문화복지시대의 개막을 앞당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김영수장관은 『한국을 세계문화의 중심권으로 부상시키면서 아름답고 즐겁고 활기찬 사회조성을 위해 국민의 문화적 기본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문화체육부가 펴나갈 역점사업은 ▲문화복지사회건설 ▲우리문화예술의 세계화 추진 ▲문화·관광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 ▲21세기를 향한 체육선진국 창조 ▲청소년의 올바른 육성 ▲치욕스러운 역사청산 및 새로운 민족사 정립에 모아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청소년 각 분야의 올해 문화체육부 주요 업무계획은 다음과 같다. ▷문화◁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설 용산 가족공원 일대를 문화관광의 중심축으로 조성한다.관계당국의 협조를 받아 이지역을 상징적 문화시설지구로 지정할 계획이다. 우리 문화재의 세계화도 지속 추진해 간다.우리 문화재의 세계유산등록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문화복지시설의 확충 측면에선 농어촌지역의 폐교시설을 문화공간화하는 한편 체육관·회의장·강당등에 무대·음향시설을 갖춰 공연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공원·녹지등 근린생활공간도 열린 문화예술의 장으로 활용토록 한다.지방문화원을 문화활동구심체로 육성하기 위해 아직 문화원이 없는 50개 지역에 문화원의 설립을 권장,「1시군 1문화원」을 유도한다. 올해 문학의 해를 맞아 「문학의 해」사업도 내실 있게 추진해 나간다.한국문학 번역금고를 오는 3월 설립하고 1백억원의 기금확보를 위해 기업체등 민간기부금의 유치운동을 전개한다.또 스웨덴·프랑스·영국등의 대학에 한국문학번역센터를 설치하고 국제도서전 등을 통해 한국문학을 널리 소개한다. 새로운 민족사정립작업의 하나로 일제하에서 지정된 문화재 5백1건의 재평가작업을 벌이고 경복궁등 조선왕조의 기본 궁제복원정비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이밖에 오는 9월중 북경,LA등지에서 한국현대회화전·한국영화제·국악공연등으로 이뤄진 「96 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아틀랜타 올림픽에 맞춰 국립예술단공연과 백남준특별전을 해외에서 연다.또 세계피리축제,한·미 문학예술인 워크숍등의 국제행사를 국내에 유치한다.국내 만화산업의 육성을 위해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을 세계애니메이션필름협회(ASIFA) 공인을 받아 공모전과 견본시의 성격을 지닌 세계적 축제로 발전시켜 나간다. 또 각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해인사등 8개 사찰에 40억원을 들여 유물전시관을 건립토록하며 오는 2월에 한국문화의 인터넷시범 서비스를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관리국·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한다. ▷체육◁ 애틀랜타올림픽에 모두 24개 종목(1백58개 세부종목) 3백여명의 선수가 출전,금메달 12개로 세계 10위권 진입을 겨냥한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와 관련,한국과 일본이 백중세를 보여 앞으로 정부와 민간의 총동원체제를 구축하고 대륙별 축구연맹사무국 방문과 언론매체광고,국제행사의 홍보전시관설치 등 지속적이고 다양한 홍보활동을 편다. ▷관광◁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키로 하고 「관광진흥 10개년 계획」(1996∼2005년)을 수립했다. 2005년 관광객 8백만명 유치,관광수입 2백억달러를 목표로 잡았다.우선 올해 외래관광객 4백20만명을 유치해 63억달러의 관광수입을 달성,90년 이래 적자상태의 관광수지를 흑자로 전환한다. 한국관광 이미지의 세계화를 위해 심볼·로고·슬로건을 만들고 해외홍보활동을 강화한다.경쟁력 있는 지방 민속축제를 국제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각 시·군 1개 특산물을 상품화한다.관광자원을 체계적으로 관광벨트화하고 관광숙박시설지원특별법과 국제회의 유치를 위한 지원법을 제정,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한다. ▷청소년◁ 바른 청소년육성과 생활체육증진으로 밝고 건강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둔다. 도덕성회복을 위해 청소년 및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바른생활 실천운동을 전개하고 성균관과 전국 2백33개 향교를 통해 충효교실을운영한다. 서울과 5개 광역시에 「청소년자원봉사센터」를 설치,청소년 자원봉사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범람하는 불건전 영상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공연윤리위원회에 청소년물 전담 심의제도를 도입한다. 「국민체력센터」를 올해 부산·인천·대전 등 3개 광역시로 확대,설치하고 스포츠교실을 3천9백개소로 7백개소 더 늘린다.생활체육프로그램을 분류해 CD롬으로 제작,보급하고 국민체력상담전화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운영,생활체육정보 서비스를 활성화한다.
  • 태양사원 신도 16명 사체로/불 검찰 발견

    ◎일부 총상 흔적… 타살 여부 주목 【생피에르드셰렌(프랑스)AFP 연합】 프랑스 국가검찰은 23일 그간 실종상태에 있었던 태양사원 신도 16명의 사체가 프랑스 동부의 산악지역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검찰당국은 숨진 신도 16명의 사체 일부에서 총상 흔적이 발견돼 타살여부가 주목된다고 말했다.총상을 입은 사체 가운데는 3명의 어린이도 포함돼 있다. 이와함께 엥포 라디오 방송은 베르코르 고원의 작은 마을 부근에서 발견된 사체들이 다리를 한 곳으로 모은 채 별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프랑스 경찰은 22일 밤에 이어 23일 경찰관 5백명과 헬기 및 수색견을 동원,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펼친 끝에 이들이 집단으로 자살한 곳을 발견했다. 프랑스와 스위스 당국은 프랑스인 8명,스위스인 8명등 태양사원 신도 16명이 집단으로 사라진 뒤 이들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여왔다. 지난해에도 태양사원 신도 53명이 캐나다와 스위스에서 집단으로 자살함으로써 전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태양사원 종말론 신봉 사교집단/재림예수 자처40대교주가 87년 창설/캐나다·스위스 등 무대로 은밀한 활동 지난해 캐나다와 스위스에서 광신도 53명이 집단자살했던 사교집단 「태양의 사원」신도들이 또다시 자살극을 재연,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사망자들이 믿고 있던 「태양사원」은 지난 87년 벨기에 출신 캐나다국적의 뤽 주레(당시 46세)가 창설한 사교집단이다. 심령치료사였던 주레는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자처하면서 「불에 의한 심판론」등 강력한 종말론을 주장,캐나다와 스위스를 무대로 강연등을 했었다. 특히 이들은 제단과 제복에 장미와 십자가 문양을 사용해 17세기 유럽 일대에서 은밀히 활동한 「장미십자회(연금마법술을 행하는 종교적 비밀결사 조직)」와 관련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교단은 조만간 말세와 아마겟돈(말세 때의 선과 악의 대결)이 닥칠 것에 대비,신도들에게 저마다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거나 결혼도 미루도록 하는등 전형적인 사교집단의 모습을 보였다. 주레는 캐나다에서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된 이후 지난해 7월 스위스로 건너가얼마뒤 집단자살극을 벌인 것이다. 이번에 벌어진 자살극은 남아있던 신도들이 심리적 갈등이나 내부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엽기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치밀한 일 APEC 준비/이도운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19일 끝난 오사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일본사회의 양면적 실체를 느끼게 해준 행사였다. 일본은 세번째 맞는 이번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APEC내에서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목표 아래 이미 지난해부터 세밀한 준비를 해왔다.이번 행사에 투입된 예산이 무려 1억달러.일본은 우리 돈으로 8백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행사 구석구석에 쏟아부었다. 우선 18개국 정상과 대표들에 대한 경호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옴 진리교 가스테러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정상들과 대표들의 행사장·숙소 주변에는 3중·4중의 철저한 검문과 검색이 이뤄졌다.회의진행도 빈틈이 없었다.주최측은 정상회의에 앞서 11일부터 시작된 실무대표 및 각료회의의 일정을 분 단위까지 계산했다.대표들이 아침 7시부터 밤11시까지 회의에만 몰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프레스센터의 서비스도 놀라운 것이었다.카메라와 컴퓨터 무료 대여 및 수리,휴대용 전화기 무료 사용,오사카 주변의 순회관광등 파격적 물량공세와 함께 「물 반,고기 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구석구석 배치된 눈치 빠른 행사요원들은 미처 궁금한 점을 묻기도 전에 다가와 해답을 주곤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완벽하게 준비된 행사를 보면서도 쉽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엄밀하게 말하면,이번 행사는 감색제복을 입은 사람들만의 축제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번 행사 기간 동안 오사카 시내 전역은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다.거의 모든 교차로마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40명의 경찰이 배치돼 행사차량이 지나가기 5분전부터 교통흐름을 차단했다.참을성 있는 일본의 택시기사들도 목청을 높여 경찰에게 과잉통제를 항의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또 특정업소들의 영업까지 일률적으로 중지시켜 너무한 처사라는 지적도 받았다.이런 점 때문에 행사기간 동안 일본은 과연 선진민주사회인가라는 「미안한」의문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이번 행사에서 보여준 일본의 치밀한 준비성은 참으로 배울만 했다.그러나 정부가 시민의 불편을 담보로 잔치를 치르는 방식까지도 배울 필요는없을 것 같다.
  • 교육위원 선출비리 도의장 등 실형 구형

    【수원=조덕현 기자】 수원지검 공안부 이종대 검사는 15일 교육위원 선출과 관련,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유재언 경기도 의회 의장 등 5명에게 징역 2년∼1년6월,추징금 3백만∼2백만원씩을 구형했다.돈을 준 문제복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구형량은 유의장이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3백만원,문제복 피고인 징역 2년,신은영 의원 징역 2년에 추징금 3백만원,한기호 의원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2백만원,이성섭 의원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2백만원,이종월(여)의원 징역 1년6월에 몰수 1백만원·추징금 1백만원 등이다.
  • 김일성 1인체제 구축(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4)

    ◎전후 복구­외교정책 싸고 소련파­연안파 대립/56년 「8월 종파사건」 계기 본격 숙청… 59년 완료 북한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 내 경쟁 파벌들을 차례대로 숙청,50년대 말쯤에는 일인 집권체제를 구축했다.주체이론으로 무장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는 북한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공산독재 국가로 만들었다.이는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계승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는 원래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파를 비롯,국내파(남로당계)·소련파·연안파 등 주요 파벌이 넷 있었다.이 가운데 박헌영·이승엽 등으로 구성된 국내파는 한국전쟁 말기 이미 숙청돼 휴전 직후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따라서 전후 김일성이 권력강화를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는 소련파와 연안파가 남았다. 노동당내 권력투쟁은 1955년에 접어들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여기에는 김일성의 권력욕이 물론 주요 동기였지만 전후 경제복구와 외교정책을 둘러싼 파벌간 노선 갈등도 적잖게 작용했다.김일성은 한국전이 끝나자 먼저 경제건설에 주력했다.김일성은 휴전협정 조인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라디오방송에서 『전쟁은 조선인민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다음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중공업 우선의 「3개년 경제 계획」과 농업 집단화 등 경제개발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또 소련·중국·몽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 형제국」들을 순방하며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연안파와 소련파는 중공업 우선,농업집단화를 앞세운 경제복구가 북한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소련은 또 농업집단화가 중국의 인민공사제도를 흉내낸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 무렵 스탈린 사망­흐루시초프 등장에 따라 기존의 국제관계에 변화가 일어난 점도 파벌 대립을 재촉했다.중국에 등을 대고 있는 연안파는 연안파대로,소련과 밀접한 소련파는 소련파대로 변화를 자기 파벌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려고 애썼다. 당연히 김일성과 반대파 사이에는 어느쪽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따르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김일성은 이즈음 방어논리로 주체이론을 새로 내놓는다.1955년 4월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구체적 상황에 연결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계적 수용과 적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혔다.이에 대해 정치학자인 단국대 김학준 이사장은 『주체이론의 싹을 1940년대 말에 찾을 수도 있지만 늦어도 이 때 김일성 연설에서는 충분히 발견된다』고 그의 저서에서 기술했다. ○스탈린 사후 위기몰려 김일성은 이같은 이론을 무기로 먼저 연안파인 박일우(초대 내무상이자 당시 체신상)와 방호산(한국전 때 군단장)을 숙청했다.그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인 소련파 김열의 죄상을 대대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같은 파 지도자인 박창옥(부수상겸 국가계획 위원장)에게도 칼날을 겨누었다.김열은 비록 황해도당위원장 재직시 비리가 문제됐지만 결국은 개인비리를 숙청무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19 56년 김일성은 중대한 도전을 받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2월 14∼25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격하운동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더불어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제창하고 나섰다.이는 일인독재를 추구하면서 그 바탕을 「반미」에 두고 있는 김일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흐름이었다. 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가 열렸다.이 자리에 소련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이자 서기국 서기인 브레즈네프가 참석,흐루시초프가 제시한 새 노선을 북한이 충실하게 따를 것을 촉구했다.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이지도,그렇다고 소련의 비위를 거슬리지도 않은 어중간한 연설을 했다. 그해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는 힘을 합쳐 김일성에게 도전했다.연안파 최창익(부수상겸 재무상)이 중공업우선 정책은 주민에게 고통만을 준다며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연데 이어 상업상 윤공흠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난했다.박창옥 등 소련파들도 나서 김일성 1인독재를 비판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김두봉 57년 직위박탈 그러나 북한 노동당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부르는 이 사태는 김일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김일성이 노동당 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대부분을 이미 친위세력으로 바꾼 상황에서 윤공흠 등 연안파는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체포됐다.사건은 곧 국제문제로 비화한다.윤공흠 등이 감시소홀을 틈타 중국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중국과 소련은 즉각 개입해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했다.김일성은 죄지은 연안파·소련파 지도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일단 굽히고 들어가 원래 직책에 복귀시켰다.그러나 김일성은 이들을 끝내 숙청하고 말았다. 「8월 종파사건」은 아직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일부 연구자들은 연안파가 김일성제거 계획을 조직적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무혈쿠데타를 노렸다는 것이다.윤공흠 등이 김일성을 전원회의에서 비판한 뒤 그 죄과를 들어 기소하기로 했지만 김일성측에게 이 정보가 새나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힘을 잃은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일은 절차만 남았을 뿐이었다.연안파의 우두머리 김두봉은 북한의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19 57년 9월 박탈당했다. 이들의 운명은 그뒤 어떻게 됐을까.김두봉은 쫓겨날 때 68세였다.1년가량 사상개조 교육을 받았지만 「개전의 정이 없어」다시 산골 협동농장으로 추방된 그는 1960년 또는 61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인은 병사와 피살설이 있다. 김일성은 이어 공산당원 한집이 네집을 감시하는 이른바 「5호담당제」를 1958년 7월부터 실시했다.곧이어 12월부터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또 김일성의 빨치산운동을 항일독립운동에서 유일한 정통으로 내세운 역사조작에 손댄 것은 1959년의 일이다.이로써 30년 넘게 계속돼온 김일성독재체제가 완결된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발굴­노동당 중앙위회의 결정서/소련파 거물 김열 부패로 몰아 숙청/김일성의 정적 제거하는과정 보여줘/북 노동당 간부… 6·25때 대민착취 극심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후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정적을 숙청한 과정을 보여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 결정서」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입수했다.1955년 12월에 열린 이 회의 결정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문서는 12월 2∼3일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위원장 임해의 보고와 이에 따른 토론에서 내린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가 「절대비밀」로 분류,그달 25일 고위직 인사들에게 한정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내용은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낸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 김열의 부패한 생활상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김열은 김일성에 맞선 소련파의 유력한 인물이다.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내면서 직위를 이용,방탕과 사치가 극에 이를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그는 강제·억압·기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 30여명의 정조를 유린한 것으로 기록됐다.그 가운데는 여중생까지 포함됐다. 이와 함께 갖은 명목으로 크고작은 잔치를 벌였던 김열은 당의 시설물들을 향락에 이용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이를 위해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고 이 문서는 덧붙였다.그는 후방에서 거둬 전선으로 보내는 성금 2백53만여원을 비롯 1천여만원을 불법 조성해 모두 탕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김열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를 비판하는 당 간부들에게 구실을 붙여 강등시키거나 쫓아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만을 중용했다고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비판했다. 김열에 대한 노동당의 단죄에 정적 숙청의 의미가 없지 않더라도 자료에서 드러난 노동당 간부의 부패상은 북한 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여줬다.한국전 당시 남한에서도 후방의 퇴폐 분위기가 문제된 것처럼 북한의 권력층도 전쟁을 틈타 백성에게 갖은 횡포를 부렸음이 밝혀진 것이다.북한이 남한보다 더욱 획일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역시 훨씬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요르단 서안 7개도시 이군 철수 합의

    【제닌·가자시티 로이터 AFP 연합】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의 암살에도 불구하고 제닌을 비롯한 요르단강 서안 7개 도시에서의 이스라엘군 철군 및 통제권 이양을 예정대로 실시키 위한 구체적 합의를 거의 완결지었다고 팔레스타인 보안군 고위장성이 11일 밝혔다. 한편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가 개최를 계획 중인 하마스와의 화해협상에 직접 참여할 예정이라고 팔레스타인 관리들이 이날 발표했다. 요르단강 서안내 팔레스타인 보안군 총사령관 이스마일 자베르는 이날 고위 장성들과 함께 이스라엘이 13일 이양할 예정인 7개 도시를 순방한 후 『거의 모든 합의가 이뤄졌다』며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경찰이 13,14일 이틀에 걸쳐 제복과 무장을 갖추고 이들 도시에 공식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후복구와 외원(새로쓰는 한국 현대사:43)

    ◎휴전 4년만에 산업생산 전전수준 웃돌아/소비재지원 80%… 제분·제당·방직공업 발전 한국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그래서 전쟁이후의 경제재건은 폐허위에서 시작되었다.그 재건기를 휴전이 성립된 1953∼61년까지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이를 또 전반기(1953년8월∼56년말)와 후반기(1956∼61년)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전재복구는 국내 자원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외국원조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19 53년 7월 다스카 사절단에 의한 3개년 원조계획 발표로 가시화되었다.그해 4월 전쟁이 막바지일 때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보고한 내용을 토대로 입안한 이 계획은 8억3천만 달러를 군사,재건,구호분야로 나누어 원조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나서 12월에는 「경제재건과 재정안정 계획에 관한 합동경제위원회 협약」을 한·미간에 체결했다. ○「자유경제」 헌법 반영 이 협약은 전후 한국의 기본적인 경제재건 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한국정부의 건전재정 확립,통화및 신용의 안정,단일 외환율,자유기업 원칙,자유가격제등을 합의한 것이었다.재건투자가 재정안정에 기여토록 한다는 원칙을 물론 함축하고 있다.그러나 이 협약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자유경제 원칙이다.이는 헌법개정을 통해 그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자유경제 원칙을 반영한 헌법의 경제조항 개정안은 53년 10월 국회를 거쳐 11월27일 공포되었다.이에따라 제헌헌법(1948년)이 국영이나 공영기업으로 규정한 주요산업의 민영화 길이 어느정도 열렸다.그리고 사유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바꾸고 그 경영을 통제관리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수정자본주의에서 탈피했다.지난날 관리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한 경제질서가 자유경제체제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으로 하여금 이질적 경제체제를 더욱 부추겼다.그것은 전쟁이 깊은 골을 파놓은 이데올로기적 대립 못지않은 것이었다.북한은 전후 경제를 전쟁전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데 주력하면서 사회주의 공업화의 틀을 본격적으로 갖추었다.특히 후반에는 농업의 집단화와 상공업 부문의 국유화를 완료했다.한국이 전후 경제재건 과정에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자유경제체제로 전환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전후 복구 과정에 나타난 남북한의 공통점은 외국원조에 의존한 사실이다.미국은 전쟁이 일어난 19 50년부터 57년까지 국제연합한국부흥단(UNKRA)을 통해 9천2백90만 달러를 한국에 제공했다.미 국회는 국제협력관리기구(ICA)를 설치하고 1954년부터 4년을 운영하는 동안 10억8천4백18만2천 달러를 내놓았다.미 육군 민사처(CAC)도 전쟁기간을 포함한 5년동안 4억2천7백만 달러를 썼고 미국 무상원조기관들은 5천2백51만9천 달러를 지출했다. 그러나 외국원조는 공식추정한 전쟁피해액 3백억 달러에는 훨씬 못미치는 것이었다.받는 쪽에서는 늘 부족했지만 주는 쪽 미국의 납세자들은 외국원조에서 비롯된 조세부담에 저항했다.미국의 한국에 대한 원조가 문제가 된 배경에는 막대한 원조를 이미 유럽에 제공하고 나서 곧바로 겹쳤다는 부담감이 깔려 있었다.그리고 한국전쟁에 환멸을 느낀 미국민들의 정서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원조가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여러가지로엇갈리고 있다.미국은 다스카 사절단의 원조계획에 의해 원조를 제공하면서 자금사용 원칙을 놓고 한국정부와 의견차이를 보였다.두 나라는 전재 복구와 경제안정책을 함께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그러나 한국은 전쟁복구를 위한 시설투자를 우선 순위로 내세웠다.반면 미국은 악성 인플레이션을 극복하지 않은 상태의 산업자금은 투기 이외의 별다른 효율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미 「일 배려」 정책 추진 미국은 투자재 30%,소비재 70%를 고집하고 이를 관철시켰다.이에따라 원조물자의 내용,원조 제공방식등은 미국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미국은 한국원조 계획을 통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어 낸다는 전략을 썼다.다시 말하면 1달러를 써서 2달러의 효과를 얻으려는 미국의 전략은 일본으로부터 한국원조 물자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한국원조 자금을 되도록 일본에서 물자를 구매하는 형식으로 썼기 때문에 일본의 전후 부흥은 빨랐다.그래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잡도록 배려한 미국의 정책에곧잘 불평을 터뜨렸다.또 악성 인플레를 막기로한 협약도 사실상 실효를 못 거두었다.1955년 회계연도에 매월 2천4백만 달러어치의 물자를 보내기로 한 원조계획은 이를 입증했다.실제 원조물자가 도착하면 값이 올라 액수의 절반도 못되는 물자를 인수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의 예산구조도 엉망이었다.1955년도에 5백99억환의 예산을 책정하고 이를 세금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실제 거두어들인 세금은 2백29억환에 불과했다.또 7백93억환 규모의 특별전시계정예산을 모두 지출했으나 세수는 겨우 2백61억환선에서 끝나버렸다.두 항목의 정부예산 부족은 모두 화폐를 더 찍어 보충했다. ○총원조금 31억여원 전쟁 후유증을 치유하기 까지는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1957년 회계년도 예산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드디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거기에는 물가와 통화공급 수준이 1945년 이래 최초로 안정되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이와 더불어 산업생산도 1950년 전쟁이전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정부 발표는 가뭄의 단비같은 소식이었다.어둡고 긴 역경의 늪을전쟁 발발 8년만에 빠져나온 것이다. 한국의 산업은 농업생산을 제외한 광·공업 생산에서 괄목할 만큼 일어섰다.전재 복구기간 동안 광·공업과 사회간접자본 부분은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전력의 경우 마산(5만㎾),삼척(2만5천개),당인리(〃)등 10만㎾ 규모의 화력발전소가 완전 가동되었다.총 발전량은 전쟁 전 수준의 2배에 달했다.석탄 생산도 채탄시설의 개선으로 64%나 늘어났다.동력의 호전으로 공업생산은 전쟁 전의 수준을 넘어섰다. 한국의 전후 경제재건은 물론 외국원조가 한 몫을 했다.그 원조금은 통틀어 31억3천9백만원이었다.이가운데 19.4%가 계획사업 원조에 쓰이고 나머지 80.6%는 주로 구호사업을 위한 소비재 분야로 지출되었다.이 점은 바로 1950년대 한국공업화의 대표적 산업으로 꼽히는 제분·제당·면방직 공업등의 이른바 삼백산업을 발전시켰다.원조에 기반을 둔 이들 소비재산업 중심의 공업화는 독점자본이기도 한 특정 대기업그룹의 탄생을 예고했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오늘날 경제적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이는 전후 자유경제체제가 이룩해낸 금자탑이다.반면 북한은 남한에 앞섰던 경제우위를 추월당한채 지금 후진국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 공문서보존국 소장 문서/한·미,전후복구 지원방식 마찰/이 대통령 “일 물자조달” 경제종속” 반발/워싱턴,한때 외교압력·원조중단 검토 한국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이후 경제복구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은 크게 대립했다는 사실이 당시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찾아낸 국무성 문서에서 확인되었다. 이 문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 7월 미국을 방문하고 나서 국무성관리가 8월16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있다.비망록 형식을 빌어 국무장관에게 제출한 문서의 표제는 「이승만의 방미가 한국정책에 끼칠 영향」.이승만의 정치노선과 맞물려 한·미간의 경제문제가 원만히 타결되지 않을 전망을 보이자 한국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정치세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있다. 미 아이젠하워 정부는 무력통일 반대를 명확히 하고 휴전협정 준수 약속을 얻어내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끌어들였다.여러차례 거듭된 회담에서도 결론을 못내렸다.그리고 이승만은 일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지역 경제통합 의도가 들어있는 미국의 정책에도 반발했다.특히 이승만은 한국의 전재 복구를 위한 원조물자를 일본으로부터 조달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곧 경제종속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폈다. 그러니까 이 문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전후 경제복구에 따른 한·미간의 쟁점이 하나 더 불거졌음을 보여준다.다시 말하면 아이젠하워 정부의 새로운 전략개념인 경제를 핵으로한 「뉴룩」에 전면 도전한 것이다.이에따라 미국은 외교적 압력은 물론 원조중단을 거론하고 있다.그 수단의 하나로 미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한도에서 자신들과 협력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한국에서 은밀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이 문서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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