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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살리려 노모 죽였다” 40대 남자 황당 주장

    “대통령 살리려 노모 죽였다” 40대 남자 황당 주장

    ”애국을 위한 것이라며 잔인하게 노모를 죽인 남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남자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 노모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황당한 사건은 최근 베네수엘라의 타치라 주에서 발생했다. 현지 일간지 엘우니베르살에 의하면 범인 호세 알베르토 알바레스(40)는 암 투병 중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살린다면서 노모를 흉악하게 죽였다. 그는 80세 된 노모를 때려 죽인 후 시신을 토막냈다. 현지 언론은 “남자가 머리를 때려 노모를 살해한 뒤 두 손과 팔을 자른 뒤 시신에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남자는 사이비 종교에 푹 빠져 지냈다. 노모를 죽인 것도 사이비종교의 번제의식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모를 죽인 남자는 “신에게 노모를 제물로 바쳤다.”고 이웃들에게 말하고 다니다 쇠고랑을 찼다. 제보를 받은 경찰이 남자를 긴급 체포했다. 남자는 “신의 계시를 받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완전히 암에서 치료를 받도록 노모를 제물로 바친 것”이라며 범행을 부인하지 않았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2013 대입 정시 가이드] 중앙대학교

    중앙대학교는 22~27일 2013학년도 정시 모집 원서 접수를 실시한다. 모집 인원은 ‘가’군 553명, ‘나’군 661명, ‘다’군 70명 등이다. ‘가’군은 우선 선발과 일반 선발을 정원의 50%씩 나누어 선발하는데, 우선 선발은 수능 100%, 일반 선발은 수능 70%와 학생부 30%를 각각 반영한다. ‘나’군과 ‘다’군은 모두 수능 100%로 선발한다. 지난해와 달리 간호학과를 세개의 군에서 분할 모집해 ‘가’군에서 25명, ‘나’군에서 35명, ‘다’군에서 5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나’군에서 뽑는 동일계열 특별전형 모집 인원은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40명을 선발하던 것을 올해는 18명(정치국제학과 4명, 경영학부 글로벌금융 4명, 국제물류학과 10명)을 증원해 모두 58명을 뽑는다. 수능 영역별 반영 비율은 지난해와 같이 인문 계열은 언어 30%, 수리 가형·나형 30%, 외국어 30%, 사탐·과탐 10%이고, 자연 계열이 언어 20%, 수리 가형 30%, 외국어 30%, 과탐 20% 등이다. 인문 계열은 제2외국어와 한문을 사탐의 한 과목으로 인정하고, 제2외국어에서 아랍어는 제외된다. 또 인문 계열의 교차 지원이 가능하지만 수리 가형 또는 과탐에 대한 가산점이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 “불결한 곳에 가둬 기르고 이득 얻으려 온갖 못된 짓” 돼지 푸념, 인간에 깨달음

    책의 표지가 심상치 않다. 사람들 앞에 선 돼지 두 마리, 이들은 무엇 때문에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차고 있을까. ‘사람들은 왜 돼지머리를 제물로 즐겨 쓰는가?’(이돈환 지음, 말과창조사 펴냄)는 우리가 흔히 ‘쓸모없는 부분이 없다’고 말하는 돼지 얘기다. 유쾌한 우화인가 했는데, 꽤 심오하다. 저자는 자신을 주인공 삼아 돼지들의 푸념과 경고, 깨달음을 꺼내든다. “이마 위의 굵은 주름 서너 줄”에 “웃으며 죽음을 맞았을 법한 온화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제사상 위 돼지머리에게 이끌려 주인공이 ‘돈계’(豚界)로 빠져들었다. 지도자 격인 현자돈, 거구인 장군돈, 검은 털이 반지르르한 토종돈 등은 인간이 돼지에게 얼마나 잔혹한 짓을 벌였는지 낱낱이 까발린다. 대소변을 가릴 줄 아는 돼지를 좁디좁은 우리에 가두어 불결하게 사육하고, 식별을 한다면서 귀를 자르고 냄새를 제거한다면서 수컷을 거세시키는가 하면, 배란기 암퇘지에게 정자를 주입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한다고 토로한다. 인간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온갖 못할 짓을 하면서 구제역에 걸리자 돼지들을 잔인하게 생매장시켰다는 것. 결국, 표지의 의미는, 돼지는 자신의 죄로 죄인이 된 게 아니라, 인간이 돼지에게 죄인의 굴레를 덮어씌웠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인간과 가축과의 공존을 되돌아보게 한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사설] ‘한상대 검찰’ 수뇌부 사퇴 후 수술대 올라야

    한상대 검찰총장이 오늘 검찰개혁안 발표와 함께 사퇴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자리에 연연하며 버티다 부하들로부터 용퇴 압력을 받은 검찰총수의 허망한 퇴진을 보게 될 모양이다. 11월 한 달 동안 4명의 검사가 대한민국 검찰을 난파선으로 만들었다. 온갖 방법으로 돈을 거둬들인 ‘돈 검사’, 검사실에서 여성피의자와 성행위를 한 ‘성 검사’, 개혁을 하는 시늉만 하면 된다는 ‘꼼수 검사’에 이어 공개 감찰을 거부한 ‘정치 검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썩을 대로 썩은 검찰의 치부를 국민에게 ‘버라이어티 쇼’로 보여준 꼴이다. 검찰의 이전투구는 그 결정판이다.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은 대검 감찰본부가 구속된 김광준 검사에게 언론대응방안을 문자로 알려준 최재경 중앙수사부장을 어제 품위손상 혐의로 감찰하려고 하자 최 부장이 항명한 것이다. 총장이 부하를 제물 삼아 자리를 유지하면서 중수부 해체의 명분을 얻으려 했거나, 중수부장이 몸담은 조직의 해체를 막고자 직속상관에게 저항했다는 관측이 사실이라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낯 뜨거운 권력게임일 뿐이다. 이 와중에 보인 대검차장과 대검 부장들의 행보도 수상쩍다. 이들은 총장 모르게 밤 늦게까지 회의를 열어 “더는 총장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린 뒤 용퇴 건의 사실을 직속 공보라인인 대검 대변인을 배제하고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통해 언론에 공개토록 했다. 현직 총장의 지휘체제를 참모들이 정면거부한 것은 물론 이번 검란(檢亂)이 검찰조직의 핵심인 중수부를 비호할 목적으로 내부에서 기획됐다는 인상마저 준다. 기소독점 등 세계에서 유례 없는 형사사법절차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권력의 단맛에 빠져 있는 검찰생리를 감안할 때 뿌리째 흔들린 검찰조직이 한 총장의 사퇴로 수습되기는 힘들 것이다. 자정과 자체 개혁에 건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검찰의 총체적 난맥상은 외부에 의한 검찰 개혁이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이미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바 있지만, 중수부 폐지와 함께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유한 공직자비리수사처의 신설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한 총장이 사퇴 전 검찰개혁안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어느 국민이 여기에 기대를 걸겠는가. 우리는 한 총장이 신속히 책임지는 자세가 온당하다고 본다.
  • [프로축구] 누가 가랴, 2부

    [프로축구] 누가 가랴, 2부

    ‘제발 강등만은 피해야 하는데….’ 프로축구 K리그가 주말 40라운드를 포함해 다섯 경기씩 남긴 상황에서 2부리그 강등 위기에 놓인 팀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현재 13위 전남(승점 41), 14위 강원(승점 39), 15위 광주(승점37) 등 세 팀 중 한 팀이 강제 강등이 결정된 상주와 함께 강등의 운명을 맞는다. 가장 속 타는 쪽은 광주. 39라운드에서 강원과 1-1로 비기는 바람에 역전 기회를 놓쳤다. 자동으로 승점을 얹을 수 있는 상주전도 이미 반영된 데다 17일 성남 원정에 이어 21일 인천, 25일 대전, 28일 대구와의 경기 등 숨가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반면 가장 흐름이 좋은 쪽은 강원. 광주를 제물로 꼴찌를 벗어난 강원은 최근 3경기 연속 무패(2승1무)로 잘나가고 있다. 17일 대구 원정에 이어 21일 전남과의 홈경기를 넘기면 24일 상주전 몰수승으로 승점 3을 얹을 수 있다. 강원에 승점 2가 앞선 전남은 인천과의 39라운드를 0-0으로 비기는 바람에 승점 1을 추가하는 데 그쳤지만 40라운드가 상주전이라 자동으로 승점 3을 쌓으면서 전남과 광주의 악전고투를 즐기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느긋할 수만은 없다. 21일 강원과 4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승점을 따내지 못하면 현재 순위도 위태롭게 된다. 글자 그대로 안갯속 형국인 셈. 18일 울산문수구장에선 리그 3위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 티켓을 확보할 팀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올해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 울산은 승점 59로 3위 수원(승점68)과의 승점차가 9로 벌어져 절대 불리한 입장. 그러나 수원을 거꾸러뜨리면 6으로 좁혀져 막판까지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반면 수원이 이기면 사실상 ACL 출전권을 ‘찜’하게 된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16세 학생, 노인 분장 하고 금품 수억 강탈

    16세 학생, 노인 분장 하고 금품 수억 강탈

    16세 학생이 노인 분장을 하고 보석점을 털다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특히 이 소년은 얼굴 분장은 물론 의치를 하고 헤어스타일까지 노인에 맞게 바꾼 채 강도짓을 벌여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친구들까지 고용(?)해 강도짓에 나선 겁없는 10대는 영국 캠던 출신의 마일스 알루라(16). 알루라는 지난 7월 초 켄트에 위치한 한 보석점을 급습해 5만 파운드(약 87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당시 알루라는 2명의 15세 친구들과 함께 가짜 권총을 들고 상점 직원을 위협한 후 금품을 강탈했으며 분장을 철저히 한 덕에 경찰은 수사에 혼선을 빚었다. 알루라의 대담한 행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에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런던에 있는 한 보석점에 들러 10만 파운드(약 1억 7000만원)상당의 금품을 강탈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의 범행은 결국 꼬리를 밟혔다. 범행 당시 현장에 학생답게(?) 지문이 묻은 학교 과제물을 흘리고 간 것. 단서를 잡은 경찰은 곧 10대 강도단을 검거하는데 성공했으며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재판에서 알루라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경찰은 “나머지 2명도 범행을 시인했으며 각각 3년형과 1년형이 선고됐다.” 면서 “경찰 뿐 아니라 피해자도 강도가 16세라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랐다.”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스타 의사

    연예인만 스타가 아니다. 의사도 얼마든지 스타가 될 수 있다. 세상이 쉴틈없이 누군가를 스타로 가공해 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타가 된 몇몇 의사들은 허명에 현혹돼 이 방송, 저 프로그램에 다리를 걸치는가 하면 수상쩍은 건강식품 광고에까지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그렇게 유명해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전지전능한 존재’로 새겨졌다. 연예계 스타들이 그렇듯 스타덤이라는 게 저주의 다른 말이기도 할 텐데, 그들은 그런 영락을 겁내지 않는다. [사고] 척추질환과 퇴행성 관절염 무료 치료해 드립니다 필자가 아는 대학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의료계에 소문난 대쪽이다. 자신이 이미 스타이면서도 그런 이름값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최근에 펴낸 책에서 훌륭한 의사를 ‘독수리의 눈과 사자의 마음, 여자의 손을 가진 존재’로 규정했다. 의사라면 마땅히 날카로운 판단력과 주저하지 않는 담력, 그리고 섬세함을 겸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인파출명저파장’(人?出名猪?壯)이라는 경구를 소개했다. 살이 찌면 먼저 잡아먹히므로 돼지는 마땅히 살찌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유명해지면 다치므로 사람은 마땅히 공명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재능과 인격을 갖춰 세상이 우러르는 스타 의사도 있다. 문제는 특별한 재능을 갖지도 못했으면서 자기도취에 빠져 항상 자신이 대중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얼치기 스타 의사들이다. 그런 얼치기 의사들에 대해 그가 일갈하고 나섰다. 환자를 위한 고언인 셈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스타 의식에 사로잡힌 의사가 아주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치료해 줄 의사로는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들의 희생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아직도 물정 모르는 많은 환자들이 한번쯤 스타 의사의 진료를 받아보고 싶어 하지만 이런 욕구 자체가 자신을 유명세의 제물로 바치는 격일 수도 있음을 알라는 따끔한 충고인 셈이다. 그러나 어쩌랴. 안타깝게도 세상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병자’들은 누가 좋은 의사이고, 나쁜 의사인지를 가늠할 근거를 갖지 못한 것을. jeshim@seoul.co.kr
  • [지방시대] ‘도심 철로 이전’ 국가가 나서야/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지방시대] ‘도심 철로 이전’ 국가가 나서야/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어릴 적 부르던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오두막집은 이제는 없어졌을까? 안타깝게도 기찻길 옆 마을들의 궁핍함은 지금도 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도시 쇠락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그런데 이들 마을의 곤궁함은 안타까운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동아시아에 열강의 팽창정책이 몰아치던 1899년에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이 한국 최초의 철도로 개통되고, 1905년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이 노선이나 부지 선정 등 모든 것이 일본의 식민지적 필요에 의해 급박하게 개통되었다. 그러다 보니 철도는 수송의 의미만 강조되었지 철도 노선의 도시 발전 연계나 철도 주변 주민들의 삶은 고려되지 못했다. 부산의 경우만 해도 현재 철도 노선, 철로 지하화, 정차역, 조차장 부지, 기지창 이전, 폐선 부지 활용, 기찻길 옆 틈새 마을 환경 취약 문제 등 철도와 관련한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경부선의 기·종점인 부산역만 해도 조차 시설과 일반열차의 부전역 이전 문제, 부산진역 컨테이너 야드의 부산신항 이전 문제, 부산역과 부산진역 간 열차 선로 2.5㎞의 데크화 문제 등은 이 지역 주변의 발전을 위한 숙원 과제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심지 서면 주위에 있는 100만㎡에 이르는 철도차량기지창 이전문제, 해운대구 일원의 9.8㎢에 이르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활용문제, 부전역과 사상역의 복합환승센터 개발문제 등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씩 드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문제의 발생원인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필요해 철도를 부설하면서 도시의 계획적 구조나 발전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물자 수탈과 전쟁통로 확보라는 식민정책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후 100여년 동안 도시기능의 확장이나 변화 등 내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철로가 가지는 경직형 인프라의 속성으로 부설 당시 노선 및 부지 선정 등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우리 손으로 철로를 놓았다면 이렇게 도심을 무자비하게 횡단하면서 노선을 설정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부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20여㎞ 구간에 형성된 철로변 마을들의 열악한 환경 문제이다. 물리적으로 대로와 단절된 마을이 허다하다 보니 발전 기회를 상실,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일상화된 소음, 취약한 안전, 공공인프라 시설의 부족 등은 이들 마을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이다. 부산시가 시내 전역의 마을별로 결핍지수를 조사한 결과 철로변 마을들이 대부분 높게 나오는 것은 바로 이들 지역의 열악한 환경이 지표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늦었지만 철로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관심을 (가칭) ‘철로주변 종합발전특별법’ 같은 제도적 틀을 통해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철로 및 주변지역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도시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들이고, 지자체가 이 문제를 떠안기에는 너무나 커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 사안은 4대강 사업 이상의, 어쩌면 수백만 국민의 삶의 문제와 직결된 문제로, 대선 국면의 정치권 관심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프라요, 복지이자, 식민지 청산이다.
  • [저자와 차 한 잔] ‘불국사에서 만난 예수’ 펴낸 최상한 경상대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불국사에서 만난 예수’ 펴낸 최상한 경상대 교수

    한국 개신교의 공식적인 시작은 1885년 서양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를 통해 입국한 부활절 날로 돼 있다. 한국 천주교 또한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1784년부터 시작된다는 게 통설이다. 하느님과 예수를 믿는 기독교가 생긴 지 1800년이 지난 뒤에야 한반도에 전래된 셈이다. 과연 그 통설은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선 그 같은 주장을 뒤집는 유물들이 적지 않게 발굴된 바 있다. 그 ‘전환의 흔적’들은 조선과 고려, 발해,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불국사에서 만난 예수’(돌베개 펴냄)를 낸 경상대 행정학과 최상한(49) 교수는 바로 그 같은 ‘전환의 흔적’에 착안해 기독교의 전래 역사를 다시 쓰자고 주장한다.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가 전체 인구 29.2%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조사를 보면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29.2%나 됩니다. 1700년 역사를 가진다는 불교 신자는 22.8%에 불과합니다. 이 땅에 전래된 지 불과 200여년 남짓한 기독교가 그렇게 빨리 교세를 늘렸다는 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지요.” 지금까지 알려진 개신교, 천주교 복음의 전래 시점보다 훨씬 이전에 한반도에 이미 그리스도가 들어와 신앙의 형태로 유지됐다는 게 최 교수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동안 발굴되고 공개된 유물들은 그의 주장이 빈말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시대 실학파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중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교유한 것을 비롯해 고려시대 그리스도교 신자인 원나라 관리들이 고려국 행정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담긴 문헌과 신라기에 세워진 불국사 출토 ‘돌 십자가’며 ‘성모 마리아상’이 그것이다. 최 교수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국회의원 보좌관과 지방자치단체 직원으로 일하다 뒤늦게 미국에서 목회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강단에 선 인물이다. 목회신학을 공부하던 중 이 땅의 기독교 복음 전래와 관련해 당연히 가질 만한 의문에 속시원한 해답을 내지 못하는 실정과 풍토가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왕에 밝혀진 우리 문화 속 기독교 흔적들을 꼼꼼히 들여다볼 때 그 의문이 풀릴 것 같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실크로드 통해 中으로 들어간 경교 한반도 유입 그러면 그 많은 기독교 흔적들이 왜 통설을 뒤집는 근거로 작용할 수 없는 것일까. 최 교수는 결정적인 이유를 서양 기독교의 관점에 매몰된 우리 기독교계의 인식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폭넓은 인식의 전환을 위해 중국에서 경교(景敎)로 통하는 동방 그리스도교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주장한다. 경교는 431년 비잔틴 교회 총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가 이단 판정을 받고 쫓겨나자 예수의 인간적 면모에 더 관심을 두었던 그의 입장을 따르는 이들이 시리아를 비롯해 동방 지역으로 퍼져 나가 굳힌 동방 기독교의 실체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간 경교가 한반도에 유입됐고 국내에서 발굴된 유물과 흔적들의 형태가 경교의 양식을 띠고 있음을 볼 때 동방 그리스도교가 한반도 저변에 널리 퍼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기독교 보편적 신앙으로 전환하는 노력해야” 그의 말마따나 예수의 사랑과 구원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이고 열린 복음이었다고 할 때 서방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에 몰린 한국 기독교는 언제까지나 그 역사가 일천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는 동방 그리스도교와 서방 기독교의 편 가르기에 편승해 동방의 기독교를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하는 편협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라도 한국 기독교가 닫힌 마음을 열어 보편적인 신앙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기독교 전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역사 문화계의 통사적 연구도 시급하고요.” 그 반쪽의 역사를 되살릴 때 예수의 사랑과 구원도 온전히 빛을 낼 수 있다고 최 교수는 거듭 강조한다. “고대 한반도에 그렇게 저변까지 파고들었던 그리스도교가 이 땅의 유교, 불교 문화와 무리 없이 융합할 수 있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 융합과 소통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금의 다종교 사회 한국을 만든 게 아닐까요.”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프로야구] ‘넘겼다’ KS 3번째 만루포…‘넘었다’ KS 우승 9부 능선

    [프로야구] ‘넘겼다’ KS 3번째 만루포…‘넘었다’ KS 우승 9부 능선

    최형우(삼성)가 통렬한 ‘만루포’로 팀을 2연승으로 이끌었다. 삼성은 25일 대구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2차전에서 3회 배영섭의 2타점 2루타와 최형우의 쐐기 만루포를 앞세워 SK를 8-3으로 완파했다. 안방에서 기분 좋게 2연승한 삼성은 남은 5경기에서 2승만 보태면 한국시리즈 2연패이자 통산 5번째 우승을 일군다. 먼저 2승을 올린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은 무려 93.3%(15번 중 14번 우승)다. SK는 선발 마리오가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3차전은 하루를 쉰 뒤 27일 오후 2시 인천 문학구장에서 치러진다. 올 시즌 다승왕(17승)에 오른 삼성 선발 장원삼은 6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솎아내며 단 2안타 1볼넷 1실점으로 막아 한국시리즈 첫 승의 기쁨을 누렸다. 반면 SK 마리오는 2와 3분의2이닝 동안 만루포 등 4안타 2볼넷 6실점하며 기대를 저버렸다. 2차전 최우수선수(MVP)로는 최형우가 뽑혔다. 승부처는 0-0이던 3회 일찍 찾아왔다. 마리오에 눌려 잠잠하던 삼성 타선이 폭죽처럼 폭발했다. 조동찬·진갑용의 연속 안타와 보내기번트로 맞은 1사 2·3루에서 배영섭이 가운데 담장을 원바운드로 때리는 2루타로 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어 마리오는 정형식을 삼진으로 낚았지만 이승엽과 박석민을 연속 볼넷으로 걸려 보낸 것이 화근이 됐다. 지난해 홈런왕 최형우는 124㎞짜리 바깥쪽 높은 4구째 체인지업을 통타, 우중간 담장을 훌쩍 넘는 만루포(비거리 120m)를 뿜어냈다. 삼성은 단숨에 6득점하는 무서운 펀치력으로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삼성은 7회 배영섭의 1타점 2루타 등으로 2점을 추가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루포가 나온 것은 통산 3번째다. 1982년 삼성-OB의 6차전에서 김유동(OB)이, 2001년 삼성-두산의 4차전에서 김동주(두산)가 각각 작성한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 삼성은 두차례 모두 만루포의 제물이 됐지만 이번에는 SK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첫판을 내준 SK 이만수 감독은 이날 좌완 선발 장원삼을 겨냥한 타선 변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부진한 이호준을 빼고 4번 지명타자로 이재원을 전격 기용했다. 또 김강민을 5번으로 올리고 박정권을 6번으로 내렸다. 1루수에 모창민을 기용하며 7번에 세웠고 9번타자로 박진만 대신 유격수 김성현을 투입했다. 이들은 모두 장원삼이나 좌투수에 강했다. 이 감독의 승부수가 1회부터 적중하는 듯했다. SK는 최정의 2루타와 이재원·김강민의 연속 볼넷으로 2사 만루 찬스를 맞았지만 ‘가을 사나이’ 박정권이 아쉽게 중견수 뜬공으로 돌아섰다. 이후 SK는 살아난 장원삼 공략에 실패했고 결국 3회 대량 실점하면서 이 감독의 승부수는 무위에 그쳤다. SK는 6회 정근우의 1점포, 8회 상대 포수 실책 등으로 2점을 더 뽑은 데 만족해야 했다. 대구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다문화 가정 자녀들 ‘교육 사다리’ 끊긴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 ‘교육 사다리’ 끊긴다

    다문화가족 자녀의 취학률이 평균 66.8%로 전체 취학률 96%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취학률은 78.2%이지만 중학교는 56.3%, 고등학교는 35.3%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55.6%, 인천 57.4%, 대전 57.8%, 대구 61.4%, 서울 62.5% 등의 취학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인재근 의원의 조사에 따른 것이다. 인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여성가족부에 다문화가족 자녀 취학률 통계가 없어 행정안전부 외국인주민현황 등을 토대로 직접 취학률을 분석했다고 25일 밝혔다. 인 의원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자녀는 2008년 5만 8547명에서 올해 16만 8583명으로 최근 5년 동안 188%나 늘어났다. 이들의 취학률은 2009년 55.3%, 2010년 63.7%, 지난해 61.1%대로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경기도의회 예산정책담당관실에서 지난 5월 다문화가정 학부모와 학생 등을 상대로 한 심층 인터뷰를 살펴보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유는 생활고와 개인적 특성에 따른 교육지원 부족, 교육정책에 대한 정보 제공 부족 등이었다. 학부모들은 한국어 능력의 부족으로 학교에서 보내온 통신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자녀는 과제물 제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자녀들은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고 털어놨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낮은 취학률 때문에 ‘교육의 사다리’가 끊기는 것은 물론 부부 간 나이 차이나 이혼 등으로 홀로 된 결혼이주 여성이 증가해 편모 가정에서 성장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 의원은 “홀로 된 결혼이주 여성은 자녀 양육에 부담을 느껴 아이를 출신국의 친정으로 보내고 돈을 벌기도 한다.”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어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CGF 송도 유치] “아시아에 국제기구 사무국 필요”… 막판 뒤집기 통했다

    [CGF 송도 유치] “아시아에 국제기구 사무국 필요”… 막판 뒤집기 통했다

    “아시아에서 명실상부한 국제기구 사무국이 위치한 나라는?” 이 질문의 정답은 ‘없다’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국’이 답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싱가포르), 아시아개발은행(ADB·필리핀 마닐라) 등 아시아에 국한된 기구의 사무국은 있지만 전 세계를 망라하는 국제기구 사무국은 이번에 우리가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이 유일하다. 21일 청와대와 재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CF 사무국 유치는 지난해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GCF 설계위원회 회의가 계기가 됐다. 당시 대표로 참석했던 최광해 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현 장기전략국장)은 환경 관련 국제기구를 사무국으로 둔 아시아 국가는 단 한 개국도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 ‘우리가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최 국장은 “프랑스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에서 근무할 때 ‘우리나라에도 국제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면서 “‘실패해봤자 창피당하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귀국 후 장·차관에게 보고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 국장의 아이디어는 재정부 안에서 곧바로 호응을 얻었다. 이에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 때 유치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GCF가 한국 품에 안기리라고 생각하는 국가는 드물었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과 북미에 집중된 국제기구의 지역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적극 펼쳤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한국의 가교 역할도 집요하게 부각했다. 운도 뒤따랐다. GCF 이사국 선정 절차 지연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2차 이사회 일정이 9월에서 한 달간 미뤄졌고, 결국 사무국 선정 투표가 이번에 이뤄졌다. 일정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투표는 강력한 라이벌인 독일에서 이뤄질 뻔했다. 3차 이사회 개최지가 독일 본이기 때문이다. 이사회 직전에 한·아프리카 장관급 회의가 서울에서 열려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막판 유치전을 펼칠 수 있었던 점도 도움이 됐다. 마지막까지 최종 경합자는 독일이었다. 독일은 기여금은 물론 사전 준비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최종구 차관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며 흐뭇해했다. 막판에 이명박 대통령의 국제 인맥이 2~3개 유럽 국가의 표심을 우리나라로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 국가의 한 정상은 유치 후보국 가운데 유럽 국가를 찍겠다고 상대국에 의사를 밝혔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전화하며 설득하자 “대한민국이 우리의 롤모델”이라면서 한국 지지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유럽 국가의 정상이 최종 결심을 못 했다는 보고가 해당국 주한대사를 통해 들어오자 이 대통령은 투표 전날인 18일 정상 간 채널을 급히 가동해 지지 확약을 받아 냈다. 18일 저녁 리셉션에서는 이 대통령이 “어린 시절 헌옷을 얻어 입고 구제물품을 기다리다가 내 앞에서 동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많은 아프리가 대표들이 한국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프로야구 PO] 만수의 ‘승부수’ 通했다

    [프로야구 PO] 만수의 ‘승부수’ 通했다

    프로야구 SK 이만수 감독의 과감한 승부수가 통했다. 부진한 에이스 김광현을 16일 문학에서 열린 플레이오프(PO) 1차전 선발로 내세운 것이 먹혀들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겠다는 듯 김광현은 이를 악물고 던졌고 6이닝 1실점으로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1차전답게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펼쳐졌다. 좌완 김광현은 최고 153㎞의 속구를 전광판에 찍으며 롯데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김광현은 1회 2사 뒤 손아섭에게 우익수 뒤로 빠지는 안타를 내줬지만 후속 홍성흔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실점을 면했다. 2회에는 3타자 연속 삼진을 낚으며 시즌 최고 구위를 뽐냈다. 먼저 실점한 것은 롯데 선발 쉐인 유먼이었다. 2회 말 선두타자 이호준을 상대로 던진 2구째 141㎞짜리 직구가 좌월 솔로포로 연결되면서 PO 첫 피홈런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후속타자 박정권과 김강민을 각각 우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잡아 위기에서 탈출했고 모창민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했지만 용덕한의 도루 저지로 추가 실점을 피했다. 3회 이후 투수들의 삼진쇼가 이어지며 두 팀은 추가 득점을 하지 못했다. 김광현은 5회 초까지 삼진 10개를 솎아내며 호투했다.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 탈삼진(11개·1989년 10월 17일 인천 태평양전에서의 해태 선동열)에 단 한 개 모자란 역대 2위 기록이었다. 승부처는 SK가 1-0으로 앞선 6회였다. 김광현은 1사 후 정훈에게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다음 손아섭에게 왼쪽 펜스에 직접 맞는 1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동점을 내줬다. 홍성흔에게도 좌전 안타를 얻어맞으며 1사 1·3루의 역전 위기를 이어 갔다. 그러나 박종윤 대타 박준서의 안타성 직선타구를 유격수 박진만이 제비처럼 날아 병살로 처리, 크게 한숨을 돌렸다. 유먼 역시 공수가 교대된 6회 말 선두타자 박재상에게 우전 안타를 내줬고 최정을 외야 뜬공으로 잡은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바뀐 투수 김사율은 2사 3루에서 ‘가을 사나이’ 박정권에게 뼈아픈 1타점 결승타를 허용했다. SK가 2-1로 다시 앞섰고 그대로 승리가 굳어졌다. 김광현은 6이닝 동안 5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1실점하며 2008년 한국시리즈 이후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김광현은 “올 시즌 들어 가장 좋았다. 내 등판을 놓고 ‘이만수 감독의 도발’이라고 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자극이 돼 뭔가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SK는 이날 14탈삼진으로 PO 통산 팀 최다 탈삼진 기록(정규이닝 기준 종전 13개·1989년 태평양전 해태)을 새로 썼다. 2차전은 17일 오후 6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인천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현재 한국학계에서는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가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개혁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제국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근대화 사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반대로 광무개혁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서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근대화하려 한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제국의 다양한 평가에 앞서 한국학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대한제국의 개혁을 추진한 정치세력이다. 개혁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대한제국의 다양한 해석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이재순(李載純,1851~1904)과 이범진(李範晋, 1852~1911)으로 구성된 궁내부는 고종 권력의 핵심세력이었다. ●이범진, 제정러시아 대한제국 개입 유도 1896년 2월 9일 러시아 순양함 아드미랄 코르닐로프의 내부는 긴박했다. 당시 아드미랄 코르닐로프는 제물포에 포함 보브르와 함께 정박했다. 함장 몰라스는 해군대위 흐멜레프에게 러시아 수병을 이끌고 신속히 서울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2월 10일 새벽 중위 미하일로프는 서대문에 도착해서 대위 흐멜레프를 비롯한 해병부대를 맞이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안내했다. 장교를 포함한 러시아 해병의 전체 인원은 135명이었다. 포함 보브르에서 대포 1문도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송되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迎秋門)→금천교(禁川橋)→내수사전로(內需司前路)→새문고개→러시아공사관으로 신속히 피신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왕이 안방을 내주고 셋방살이를 자처했다는 아관파천이었다. 2월 11일 저녁 러시아공사관과 영사관 사이의 광장에는 청색의 천막이 설치되었다. 1개 중대의 러시아 병력이 러시아공사관의 안팎에서 경계를 시작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 내부 2개의 방을 침실과 접견실로 사용했다. 공사관 정문 앞에 있는 정원에는 대포가 설치되었고, 공사관 내부의 개조된 3개의 방에 33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영사관 내부의 개조된 2개의 방에는 62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그동안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에도 불구하고 제정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현상유지’ 외교 정책을 고수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러시아의 ‘현상유지’ 외교 정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북극곰 제정러시아를 움직인 인물은 이범진이었다. 이범진은 2월 2일 러시아공사관으로 “생명의 위협을 피하여 왕세자와 같이 대궐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에서 피신하려고 한다.”는 고종의 비밀 편지를 전달했다.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 스페예르는 이범진에게 고종 피신의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만 이범진은 “만약 스페예르가 고종의 피신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고종이 대궐에서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며 “고종이 아관파천을 결심했다.”고 답변했다. 아관파천 직전 고종은 자신의 신변안전 때문에 파천의 실행을 주저했다. 그러자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의 지원을 확인하는 한편 ‘궁중(宮中)의 여화(餘禍)가 있을지 모른다.’는 일본의 ‘고종폐위설’까지 유포하여 고종의 결단을 유도했다. 1898년 9월 11일 경운궁이 발칵 뒤집혔다. 이날 저녁 식사 전에 고종과 순종은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의 절반을 마신 순종은 토하면서 혼절하였고, 고종은 구토했다. 남겨진 커피를 마신 내관들도 혼절하였다. ●이재순, 고종 커피에 아편 넣어 정적 제거 사건의 파장이 심각했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날 고종의 수라상에 관련된 인물은 14명이었다. 심문과정에서 김종화(種和)라는 인물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종화의 심문과정에서 전선사(典膳司) 주사(主事)를 지낸 공창덕(孔昌德)의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공창덕에 따르면 그는 김종화에게 1000원의 사례금을 보장하면서 김종화가 고종과 순종의 커피에 ‘아편 1량’을 몰래 집어넣었다. 무엇보다도 공창덕의 심문과정에서 배후인물이 김홍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창덕에 따르면 김홍륙은 공창덕에게 협판을 보장하면서 고종의 독살을 지시하였고, 김홍륙은 자신의 처인 김소사를 통해서 공창덕에게 ‘아편 1량’을 제공하였다. 사건에 참가한 인물 중 김종화는 이재순의 추천에 의해 각감청(閣監廳)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현당(寶賢堂)의 창고지기인 김종화는 홍릉 제사 때에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해서 면직되었다. 그런데 면직된 김종화는 사건 당일 대궐에 몰래 잠입하여 고종의 독살을 실행했다. 공창덕은 고종의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고용한 요리사였다. 아관파천 이후 공창덕은 김홍륙의 추천에 의해서 전선사 주사로 임명되어 왕의 주방에서 외국요리를 관장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의문을 살펴보면 첫째, 커피를 마신 사람 중 죽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독살의 의도가 있었다면 커피를 마신 사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야 한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암살의 계획보다는 정치적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둘째, 김종화라는 인물이 이 사건에 개입한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고종을 암살하려는 인물이 쉽게 체포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면직된 인물이 대궐에 잠입할 수 있는가? 1898년 4월 부임한 러시아공사 마튜닌은 독차사건이 러시아통역관 출신 김홍륙을 파멸시키려는 음모로 파악했다. 당시 러시아의 후원 아래 김홍륙은 궁궐에 자유자재로 출입하면서 정치와 인사 문제까지 깊숙이 개입하였다. 마튜닌은 러시아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로 궁내부대신 이재순을 지목하였다. 이재순은 김홍륙이 러시아공사의 후원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재순은 자신이 김종화를 추천해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에 개입했다. 이재순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고종의 승인을 얻었고 경무청에 조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이후 1898년 10월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반역 음모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소속한 이재순과 이범진 계열을 적극 후원했다. 이범진은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를 구해준 인연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아 민비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관파천 이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범진은 을미사변 관련자를 처벌하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이재순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이범진의 지나친 권력 집중에 반발하였다. 결국 이범진은 1896년 6월 주미공사, 1899년 3월 주러공사에 임명되었다. 대한제국은 1900년까지 도쿄, 워싱턴에만 자국 공사를 주재시켰다. 당시는 의화단 사건 이후 대한제국과 만주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였다. 주러공사 이범진은 고종의 여전한 신임 아래 대한제국 외교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친정시문과에 합격한 청안군(淸安君) 이재순은 종친 내부에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을미사변 이후 시종원경 이재순은 시위대 장교와 병사를 결집하여 고종 구출을 위한 춘생문사건을 주도했다. 그는 김홍륙의 암살시도 및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였다. 궁내부대신을 여러 차례 역임한 이재순은 고종의 군주권 강화를 위해서 각종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대한제국 정치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이재순의 인맥은 충청도 출신자, 반면에 이범진의 인맥은 함경도 출신자가 주축이었다. 궁내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한 이범진과 이재순 계열은 군주권의 강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각각 러시아·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지지기반이 달랐지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서는 상호 연대할 수 있었다. ●고종, 충성심 자극 위해 경쟁 유발… 갈등만 낳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고종은 이들을 단일한 세력으로 통합시키지 않으면서 상호간 경쟁을 유발하여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했다. 이러한 상호 경쟁은 대한제국의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권력 독점을 향한 지나친 대립만 초래했다. 처녀지를 개간하려면 겉으로 미끄러지는 쟁기를 쓸 것이 아니라, 땅속을 깊이 파고드는 플라우(쟁기)를 써야 한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이념과 전쟁의 상흔들 예술로 다독여 주다

    이념과 전쟁의 상흔들 예술로 다독여 주다

    천안함 사태 이후 서해안은 위험한 곳이 됐다. 그 위험을 예술이 풀어 줄 수 있을까. 11월 25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리는 ‘평화의 바다, 물위의 경계’전이 내건 화두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 중구 제물량로, 그러니까 인천 차이나타운 옆에 자리 잡은 옛 항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형 창고를 개조한 전시장이다. 이곳에서 지난 5~6월 미술 작가들을 모아 답사 행사를 벌였다. 인천 자유공원, 인천항을 시작으로 강화도, 교동도를 다녀왔고 쾌속선으로만도 4~5시간 정도 걸리는 연평도와 백령도도 답사지에 포함시켰다. 60여명의 작가들은 구한말 외국 군함들이 개항을 요구했던 곳,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거점이었던 곳,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자유공원,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포격 사태 때 초등학생들이 대피했던 곳 등 상처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바다는 그냥 바다였을 뿐이지만, 그곳에는 이념과 전쟁과 상처의 자국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홍지윤 작가는 빨래라는 퍼포먼스(‘어진 바다-화려한 경계’)를 통해 이념과 전쟁과 상처의 자국들을 떨어내는 작품을 선보였다. 백령도 사곶 해안에서 이뤄진 퍼포먼스가 고스란히 담겼다. ‘귀신 잡는 해병’을 패러디한 이수영 작가의 퍼포먼스, 위아래가 거꾸로 뒤집힌 듯한 바다 위를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태극기와 인공기가 하나가 되는 설치작품을 내놓은 탈북 작가 선무 등이 눈길을 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음 번에는 한국을 넘어선 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한 미술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류, 불법복제 극성 ‘깡통 장사’

    한류, 불법복제 극성 ‘깡통 장사’

    한류 바람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불법 복제물이 쏟아지면서 ‘실속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가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 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 26일 한국저작권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해외 저작권 침해 모니터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유통된 국내 음악 콘텐츠 269건 중 합법적인 콘텐츠는 1.1%인 3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98.9%(266건)는 불법 복제물이었다. 특히 태국에서는 최근 2년간 현지에서 유통된 국산 드라마 3만 180건(2010년 6381개, 지난해 2만 3799개) 전체가 불법 복제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류 상품을 직접 사는 사람이 적은 탓에 해외에서 제값을 받고 팔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국산 영화의 편당 수출 단가는 2009년 5만 5499달러(총 251건 1412만 달러), 2010년 4만 7704달러(276건 1358만 달러), 지난해 4만 479달러(366건 1582만 달러) 등으로 하락하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기고] 동북아 영토분쟁 대비해야/장성호 배재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기고] 동북아 영토분쟁 대비해야/장성호 배재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동북아시아가 영유권 분쟁으로 연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국이 미사일과 항공모함을 동원한 무력시위를 하고, 일본 해상 자위대 호위함이 인근해역 순찰을 강화하는 등 영토패권을 둘러싼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특히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이래 맞이한 중·일 국교정상화 기념식을 중국 측에서 무기한 연기했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해묵은 갈등 또한 동북아에 상존하는 영토분쟁이다. 독도문제는 영토문제라는 표면적인 이유와 이 사태가 함의하는 역사적인 의미가 특수하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본의 독도병(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발표한 2012년 일본 방위백서에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존재하고 있다.”고 기술돼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주장은 올해 3월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 검정 결과와 4월 외교 청서에 이어 일관된 태도다. 일본 정부의 확실한 저의는 향후 독도문제를 국제분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들어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방위백서, 신문광고 등 정부 공식보고서와 언론에 독도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주장을 연이어 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마디로 독도문제는 일본 국내정치의 제물이다. 최근 소비세 인상과 원자력 발전 강행 등으로 국민적 지지도가 낮아진 노다 요시히코 정부의 조급한 의도와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내부적인 난제를 외부적인 위기로 해결해 나갔던 통치 전형의 조합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통치행위다. 그러나 이후 한·일 간의 관계가 경색됐다. 우려할 일은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한 정부의 대응 과정과 함께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중요한 시기에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내의 일부 언론매체와 단체들의 비상식적인 태도이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우리 고유영토에 대한 통치권자의 순시로서 대내외적인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아시아를 비롯해 주변국들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전범국으로서 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본은 같은 전범국인 독일과는 다르게 반성은커녕 변명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후안무치한 국가이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봐도 그렇다. 계속된 일본 고위층의 망언과 역사인식은 이미 상식 이하의 수준이다. 따라서 한·일관계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국가차원의 책임 있는 사과와 태도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비정한 현장이다. 지금 동북아시아에서는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와 중국의 중화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결부된 영토분쟁의 악령이 꿈틀대고 있는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는 단단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국론 결집의 단합된 힘으로 대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강온전략의 세련된 외교력을 통해 외교전에서 승리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박영효vs유길준(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박영효vs유길준(상)

    박영효(1861~1939·왼쪽)와 유길준(1856~1914·오른쪽). 두 사람은 19세기 말 조선을 대표하는 개화파였다. 두 사람은 모두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이루어진 갑오개혁을 주도한 핵심적 인물이었으며 이미 갑오개혁 이전에 구체적이며 명확한 개혁안을 담은 ‘상소문’과 ‘서유견문’을 각각 집필했다. 당시 조선 내의 권력 지형에서 개화관료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갑오개혁 기간 내내 협력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대립했다. 왜 그들은 협력이 아닌 대립을 선택한 것이었을까? 1883년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남아 유학생활을 하던 유길준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후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유길준이 포도대장이던 한규설의 집과 민영익의 별장에서 유폐생활을 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민영익이 유길준을 청과 조선의 보수 세력으로부터 보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유길준은 당시 왕실의 비밀창구로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한규설의 숨은 자문역이었다. 그는 이 기간에 주로 집필에 전념하여 1889년에 ‘서유견문’을 탈고, 한규설을 통해 고종에게 제출하기도 하였고 몇몇 외교문서를 대신 작성해 주기도 했다. 이후 유길준은 1894년 6월 당시 민씨 척족을 대표하던 민영준에 의해 ‘일본당’을 대표하여 외아문의 주사로 발탁됐다. 민영준은 일본당을 등용하여 일본 측과의 관계를 개선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유길준은 일본 공사관 측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한편, 공식적으로는 외아문의 주사로서 일본의 개혁 요구와 속방론 철폐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는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공사관 측에서는 그가 일부러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 했다고 파악했다. ●군국기무처를 주도한 유길준 1894년 7월 23일 일본은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을 불법 점령, 정부를 전복시켰으며 군국기무처를 수립했다. 이때부터 유길준은 갑오개혁의 핵심 브레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파격적으로 군국기무처 의원으로 발탁된 그는 총리대신 김홍집을 직속으로 보좌하면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본 측에서는 당시 유길준이 군국기무처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간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찡그린 얼굴, 냉소적인 말, 기염 높은 논의, 대담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내정의 신법’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군국기무처가 진행한 개혁안은 190개에 달했다. 대외적으로는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취했다. 일본의 군사교관을 초빙하는 한편 일본의 화폐 유통권을 허가하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동학 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를 초기에는 일정 정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농민군이 2차 봉기의 움직임을 보이자 10월 중순부터는 무력탄압에 들어가게 됐다. 그 밖에도 궁내부를 설치하여 왕실과 정부를 분리시켜 왕권을 약화시켰으며 의정부에 권한을 집중시켰다. 사실 이 모두를 유길준이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 군국기무처 내에 유길준만큼 근대국가를 직접 체험했거나 체계적인 저술을 남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를 개혁의 중심인물이 되게 했을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유길준은 이때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과 함께 대원군 세력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유길준은 10월 일본에 파견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일본인 고문관과 군사교관의 파견 및 차관 제공을 요청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무쓰 무네미쓰 외상을 만나 ‘세 가지 수치(三恥論)’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스스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강요에 의해 개혁이 진행됨으로써 조선 국민, 세계 만국 그리고 후대에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을 보전하고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박영효의 귀환 갑신정변 실패 후 박영효는 10년간 일본 망명생활을 하다가 1894년 8월 23일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일본은 박영효를 귀국시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대원군 세력과 개화관료 세력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길 의도를 갖고 있었다. 박영효는 개화세력의 대표인물이면서 부마라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 왕실과도 일정한 소통이 가능했고, 망명 중 대원군과도 수차례 접촉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박영효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 후 고종을 알현하여 자신에게 개혁의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원로 대신들이 반대 상소를 올리고 미국과 러시아 공사관이 일본 공사관 측에 항의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단 제물포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보호국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메이지 유신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노우에 가오루를 공사로 파견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노우에는 10월 27일 부임하자마자 대원군 세력을 정계에서 축출하고 조선 왕실의 고문관 또는 ‘외신’(外臣)으로까지 불리며 왕실과 손을 잡았다. 이와 함께 박영효의 기용을 요청했고 결국 12월 17일 김홍집-박영효 연립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이때 박영효는 내무대신에 임명됐다. 박영효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의 조선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박영효는 이 시기 개혁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추구한 것은 동학 농민군에 대한 확고한 진압과 일본을 모델로 한 개혁의 추진이었다. 박영효는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의 처형에 결정적으로 관여했다. 그리고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확고하게 하려고 종속관계의 상징물을 파괴하고 태극기를 사용하며 공문서에 한글을 사용하게 했고 독립기념일을 제정했다. 그는 이때 내무대신 직권으로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자를 역적으로 처벌하는 건’을 ‘내무대신령’ 1호를 통해 발표했다. 또한, 그는 지방제도 개편에 심혈을 기울여,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와 331개의 군으로 개편했다. 아울러 경무청관제를 발표하여 무장경찰을 육성하고 상비군을 육성하려 했다. 그런데 박영효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본 측의 기대와는 달리 김홍집을 ‘줏대 없는 소인배’라며 내각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총리대신이 될 생각으로 권력투쟁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효는 자신의 세력을 지방관은 물론, 군부와 경찰의 요직에 임명했다. 더욱이 일본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본의 보호국화 정책에 맞서 일정하게 조선의 국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결국, 박영효는 김홍집을 5월 17일에 총리대신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총리대신의 자리는 박정양에게 돌아갔다. 다만, 박영효는 내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들은 왜 대립하였을까? 박영효와 유길준. 어찌 보면 함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해 보일 법한 이들은 실제로는 처음부터 첨예하게 대립했다. 윤치호의 당시 일기에 보면, 유길준은 철저하게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과 함께 세력을 형성하여 박영효와 전면적인 대립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그 사상적 이유는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길준은 ‘개화의 등급’에서 김옥균, 박영효 등을 ‘허명의 개화’를 주장하는 자들로 비판하면서 ‘실상개화’를 제시한다. 그는 허명개화를 “사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서도 남이 잘된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혹은 두려워서 덮어놓고 시행하자고 주장하여 비용은 많이 들이면서 실용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아무런 분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다 좋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외국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 있는데 이들을 개화당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개화하는 데 있어서 폐해는 지나친 것이 모자란 자보다 더욱 심하다고 말하면서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개화의 병신”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둘 사이의 정치적 차이도 존재했다. 유길준은 민영익과 동문수학한 사이였고 그를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데려가 미국에 유학까지 시켜 준 사람 또한 민영익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민영익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유길준 자신이 갑신정변 후 미국에서 보낸 편지 안에서도 그는 “그들이 군왕에게 충성하고 국가에 진실할 때에는 내 친구들이었으나 그들은 역적이고 나라에 큰 해를 끼쳤기 때문에 이제는 나의 큰 원수”라고 써서 보냄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유길준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1894년 박영효가 다시 등장했을 때 그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길준이 박영효 세력을 ‘개화의 병신’으로 비판한 부분은 1889년에는 없던 내용으로 6년 뒤인 1895년 출간 당시에 새로 써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유길준은 박영효가 개혁을 주도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개혁관료들의 결집이 절실하던 시절에 치열하게 대립함으로써 결국 모두 몰락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인천시는 “정부서 홀대” 인천대는 “市에서 홀대”

    인천시가 정부에 대해 ‘홀대론’을 공식 제기한 가운데 시립 인천대는 오히려 인천시의 홀대를 주장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18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국립종합대학이 없는 유일한 도시인 데다 국립 문화·체육 시설도 다른 도시보다 크게 부족하다. 홀대론의 핵심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정부 지원이다. 인천아시안게임에는 현재 22%의 국비가 지원됐으나 이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36%)과 지난해 대구육상세계선수권대회(35%),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75%)보다 낮은 수준이다. 인천시민이 정부에 내는 내국세는 3조 4416억원이지만 시가 지방교부세로 돌려받은 금액은 1329억원(3.8%)에 그친다. 재정 규모가 유사한 대구(11%)와 2배가량 많은 부산(32%)에 비하면 교부 비율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혐오·기피시설은 집중됐다는 것이 인천시의 주장이다. 서울, 경기의 쓰레기를 받는 수도권매립지가 있어 인근 주민들이 악취, 분진에 시달리며 인천 지역 5개 발전소 전력 생산의 63%를 서울 등으로 송전한다. 이러한 홀대론은 재정난을 겪는 인천시가 정부와의 협상에서 호소력을 발휘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해 11월 인천대가 인천전문대와 통합해 송도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강의실이 부족해지자 인천도시공사가 제물포캠퍼스 부지 개발 수익금 961억원으로 이를 증축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공사는 사업성 악화 등을 이유로 증축을 미루고 있다. 인천대는 이전 과정에서 대학 부지가 부족해 시에 송도국제도시 11공구 50만㎡를 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학 부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됐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서울시 ‘교차로 꼬리물기’ 꼬리 잡는다… 20일부터 4대 근절대책 시행

    서울시 ‘교차로 꼬리물기’ 꼬리 잡는다… 20일부터 4대 근절대책 시행

    교차로 교통정체의 주범인 ‘꼬리물기’에 대해 서울시가 뿌리 뽑기에 나선다. 꼬리물기란 교차로에 정체가 발생하면 녹색신호라도 진입해서는 안 되는데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입해 신호가 바뀐 뒤 다른 방향의 차량 흐름을 방해하는 행위다. 시는 20일부터 서울지방경찰청과 함께 ‘교차로 꼬리물기 4대 근절대책’을 시행한다고 18일 밝혔다. 도로 정지선 준수율이 80.9%로 전국 평균(81.8%)에도 못 미치는 데다 도심 주요 간선도로의 꼬리물기로 인한 극심한 정체가 주변 간선도로 전체 정체로 이어져 대책을 마련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교차로 꼬리물기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시간, 유류, 환경오염 비용 등을 감안하면 연간 751억원에 이른다. 우선 차량 몰림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신호운영방법인 ‘앞막힘 제어기법’을 도입한다. 교차로 전방 30~60m 지점에 정체여부 검지기를 설치, 시속 5㎞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적색신호를 부여해 차량 유입을 막는다. 충무로역~퇴계4가(퇴계로)와 홍익상가~영등포 전화국(제물포로)에서 시범 운영한다. 둘째, 신호등 위치를 기존 ‘교차로 건너편’ 후방신호등에서 ‘교차로 진입 전’ 전방신호등으로 조정한다. 기존엔 운전자들이 황색신호가 들어오는 순간에도 무리하게 꼬리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교차로를 지나면 신호를 볼 수 없어 정지선을 준수해야 한다. 다음 달 1일부터 세종로 사거리~흥인지문(동대문)까지 2.8㎞ 구간 8개 교차로에 전방신호등을 시범 운영한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셋째, 현재 현장단속을 통해서만 벌금 3만~5만원을 물리지만 앞으론 불법주정차나 속도위반처럼 폐쇄회로(CC) TV를 통해 적발될 경우에도 벌금을 내야 한다. 시와 서울경찰청은 CCTV를 통한 단속을 도로교통법에 추가하는 개정안을 건의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근본적 문제인 시민의식 제고를 위한 홍보활동도 강화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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