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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책 어때요]

    ● 치장의 역사 /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낭만주의 시대 여인들은 창백해 보이기 위해 벨라돈나 풀로 만든 마약과 동공을 확장시켜 주는 아트로핀을 복용했으며,눈 주위에 기미를 만들려고 밤새 책을 읽었다.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았던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임종할 때 얼굴에 분을 발라 달라고 했고,프랑스 혁명 당시 모나코 공주는 단두대에 오르기 전에도 화장을 했다고 한다.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한 사회를 읽는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명화를 통해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미의 역사를 읽는다.책은 ‘마법의 발톱 또는 순결한 손’ 등 8장으로 구성됐다.1만 2900원. ●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 주명철 지음 ‘오스트리아 계집’‘오스트리아 암캐’‘적자(赤字)부인’이라 불린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숱한 음란문학의 대상이 됐고 양성애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한 앙투아네트는 낭비로 나라를 망치는 데 한몫했다.뿐만 아니라 루이 16세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남성의 영역을 여성화했다는 혐의도 받았다.앙투아네트는 정말 소문처럼 음란하고 사치스러웠을까.앙투아네트를 사칭한 1785년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사건을 통해 18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를 살핀다.이 목걸이 사건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만 8000원. ● 혁명의 역사 / 페터 벤데 엮음 17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혁명은 급격한 변화를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예컨대 토머스 홉스가 1640∼1660년 영국혁명을 ‘혁명’으로 파악한 까닭은 그것이 왕정 부활과 함께 순환운동으로 끝났기 때문이다.책은 먼저 혁명의 의미를 밝힌다.칼 마르크스는 “모든 혁명은 기존 사회를 해체한다.그런 의미에서 혁명은 사회적이다.모든 혁명은 기존 폭력을 무력화한다.그런 의미에서 혁명은 정치적이다.”라고 선언했다.미국혁명(1763∼1787년),1979년 이슬람혁명,동독의 89혁명 등 17개 혁명을 분석했다.2만 5000원. ● 발명/옮김베른트 슈 지음 중세에는 사람들이 새의 날개를 흉내낸 옷을 만들어 입거나 널찍한 외투를 걸치고 탑에서 떨어져 죽는 사례가 많았다.비행에 대한 환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케플러와 프랜시스 베이컨을 거쳐 라이프니츠와 루소에 이르는 비행프로젝트 입안자들의 리스트만 봐도 잘 알 수 있다.이 책은 50가지의 발명을 통해 인류 문명의 변천사와 과학의 역사를 살핀다.마분지 한 장으로 우연히 엑스선을 발견하게 된 뢴트겐,학문에 대한 성취욕과 원자폭탄의 해악 사이에서 갈등한 아인슈타인 등의 일화도 소개한다.‘해냄 클라시커50 시리즈’중 한 권.1만 8000원. ● 중동의 화해 /브루스 페일러 지음 중동지역에서 탄생한 세 개의 일신교 즉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는 지배세력이 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서로 아브라함을 소유하려고 애썼다.그런 연유로 세 종교는 아브라함의 정체성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해석했다.아브라함이 번제물로 바치려던 아들은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에겐 이삭인 반면,모슬렘에겐 이스마엘이다.또 그리스도인은 이 사건을 예수의 희생에 대한 전조라고 믿었지만,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실제로 죽였고 이삭이 부활했다고 믿었다.책은 세 종교의 공동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 중동분쟁의 근원을 살피고 화해를 모색한다.1만 5000원.˝
  • 양천 간선로 체증구간 뚫리게 서부터미널앞 남부순환로 지하화

    이르면 오는 2007년까지 상습 교통정체 구간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 앞 남부순환도로가 지하화되고,등촌로 목동5거리 홍익병원 앞에 지하차로가 신설된다.또 내년부터 경기 부천 등지와 서울시내를 연결하는 신월7동 지양길의 출·퇴근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홀수차로제가 도입된다. 서울 양천구(구청장 추재엽)는 쾌적한 교통환경 조성을 위해 이같은 내용의 ‘교통개선 중장기계획’을 10일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구는 관내 간선도로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우선 제물포로 신월IC∼목동교 구간에 올해부터 2007년까지 202억여원을 들여 제물포로·신정5동길 교차로를 신설한다. 오는 2006년부터는 152억원을 투입해 서부트럭터미널 앞 남부순환도로를 지하화하는 공사에 착수한다. 또 등촌로 목동5거리 홍익병원 앞에 지하차로를 건설하고,목동교 진입램프를 만들어 목동5거리 일대의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 신월7동 지양길을 현행 왕복 2차선에서 왕복 3차선으로 늘려 통행량에 따라 중앙차로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홀수차로제’를 도입한 뒤 우회도로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철규 구 교통행정과장은 “현재 목동에서 경인고속도로로 진·출입하거나 안양에서 여의도 방면으로 출·퇴근하는 차량은 목동5거리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간선도로 정체에 따른 우회차량들이 신월·신정·목동 등의 주거지역에 몰려 생활공간을 파괴하고 있다.”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개선사업이 완료되는 2007년쯤에는 이같은 문제를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길섶에서] 제삿날/오풍연 논설위원

    제삿날이 다가오면 온 가족이 바빠진다.할아버지는 큰며느리를 데리고 5일장을 두어 차례 다녀온다.읍내 시장으로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조기,명태포,한과 등 쉬 상하지 않는 제수 용품부터 하나 둘씩 마련한다.손이 타지 않도록 다락방이나 선반에 올려놓는다.할머니와 어머니는 제기를 꺼내 정성껏 닦아 둔다.누룩을 빚어 술을 담그고,식혜도 뜬다. 마침내 제삿날이다.집안의 어른부터 차례로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한다.집안은 두부·산적·전 부치는 냄새 등으로 진동한다.친척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술상과 밥상을 내간다.오랜만에 만난 4촌,6촌 형제들은 서로 뒤엉켜 뛰어논다.제사는 자정쯤 지낸다.아이들은 자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한다.그러나 대부분 곯아떨어져 일어나지 못한다.새벽 두세 시쯤 돼야 뒷정리가 끝난다.할머니는 손자·손녀들에게 줄 오징어,사탕,과자 등을 챙겨 놓는다.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요즘은 어떤가.보통 저녁에 제사를 지낸다.식구도 단출하다.인터넷을 통한 맞춤 제물이 등장할 정도다.미풍양속은 점점 사라져 간다.그래도 식구들을 볼 수 있는 제삿날이 기다려진다. 오풍연 논설위원˝
  • 28~29일은 A매치 데이

    ‘FIFA(국제축구연맹) A매치 데이’를 맞아 28일 저녁과 29일 새벽 지구촌 곳곳에서 A매치 35경기가 일제히 열린다.이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경기는 2002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서 한국의 4강 신화에 나란히 제물이 됐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격돌.올해 유럽선수권대회(유로2004) 우승을 노리고 있는 양팀은 오는 29일 새벽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FIFA 랭킹 11위인 ‘아주리군단’ 이탈리아의 공격진을 이끄는 크리스티안 비에리-프란체스코 토티 듀오와 3위인 스페인의 라울-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콤비의 매치업이 볼 만하다.특히 조바니 트라파토니 이탈리아 감독이 세리에A 200골의 위업을 달성한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를 5년 만에 대표팀에 불러들여 고별 무대를 갖도록 해 바조의 마지막 활약이 기대된다. 28일 오후 7시 인천에서 열리는 한국-파라과이전과 29일 새벽 프라하에서 열리는 일본-체코전은 한·일 양국이 각각 남미,유럽의 강호를 맞아 재정비한 전열을 시험하는 빅 카드로 꼽힌다. 또 FC 바르셀로나 1.5진에 6골차 참패를 당해 체면을 구긴 중국은 알제리와 원정경기를 치르고,‘삼바군단’ 브라질은 유럽 원정에 나서 동유럽의 복병 헝가리를 상대로 전열을 가다듬는다. 남미예선 중간순위 선두를 굳게 지키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카사블랑카로 날아가 2010년 월드컵유치 희망국 모로코와 A매치를 벌이고,댈러스에서 미국과 맞붙는 북중미 라이벌 멕시코는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당했던 패배를 설욕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6월 초 한국과 더블 매치를 치르는 한·일월드컵 3위 터키는 벨기에를 상대로 유로2004 본선 진출에 실패한 분풀이를 할 기세이고,세대교체에 돌입한 폴란드는 만만찮은 강호 아일랜드를 맞아 전력을 가늠한다. 홍지민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그런데 왜장 기다 마코베의 죽음이 있은 뒤 진주성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스스로 진주를 떠나자 진주사람들은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논개의 혼이 왜적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남강 기슭 맨바닥에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진주 사람들이 보기로는 진주는 물론 조선 모두를 돌아보아도 민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국가와 유생 관리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씻어내고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논개만 한 이가 없었다.민중들이 비록 무지하고 빈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인정과 의리,사람과 하늘 사이에 있어야 할 생명존중과 함께 사는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치자면 양반관료들보다 훨씬 나았다.양반관료들은 자기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글 배우는 것을 막고,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끝없는 의무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과 제도를 휘둘러 왔었다.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진 뒤로 보여 준 양반관료들의 비겁함과 무능은 극치를 이루었고,그런 자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날까지 살아 온 것을 후회했다.공자 맹자며 유학이며 성리학,향교 서당이며,정승 판서 따위가 그토록 치사하고 졸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양반관료들은 우마차에다 금은보배와 첩실까지 챙겨 싣고는 깊은 산중으로 도망쳤다.오도 가도 못하고 남은 민중들은 고스란히 왜적들에게 유린당했다.그때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죽이고,놀란 왜적들이 황망히 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진주는 금방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 공적은 단연코 논개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그래서 남강 기슭에다 제상을 차려 놓고 울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마음이었다.솔직하고 진솔한 예절이었다.이런 광경을 서울에서 내려 온 암행어사가 보았다.진주성 전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자 양반관료들에 대한 묵시적 항거이기도 한 이 사건은 곧 정부에 전해졌지만 정부에서는 묵살해버렸다.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도망치기 바빴던 양반들 버젓이 공신에… 그 후 진주성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다른 곳에 있던 양반관료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온 양반들이 공신으로 오른 반면,전라도에서 의병으로 와 죽은 이들의 이름은 아예 들먹이지도 않은 것이다.몇 몇 대표급 전라도 의병장들은 전쟁공훈자로 이름이 올랐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외되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남자들뿐이었다. 화려한 직함과 함께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봄 가을로 나라에서 장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어떤 때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문이 내려지기도 했다.진주사람들이 보기로는 당연히 논개의 이름도 공훈자 반열에 올라야 하고,사당을 짓고 제수도 내려주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유생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논개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 없었다.험한 말로 개나 소도 훈장을 받는데 어찌하여 논개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민중들의 서운함 안에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천시당하고 억압받았으며 수탈과 능멸로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불만도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가 죽은 날만 되면 진주사람들이 남강가에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그 잘난 남자들은 위패 위에 올라서 사당의 향내를 맡으며 국가가 내린 제물을 받았다.논개는 민중 개개인들이 장만한,소박하지만 진실이 어린 조촐한 제물들을 받았다.제상이 없을 때도 있었다.강가 모래 위에다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제물을 진설했다.유교 예절에 따른 제상 배열이 아니라 민중들이 마음대로 차린 제상이었다.향로 대신 모래를 모아서 향을 피웠다.제사에는 수백 명의 제관들이 참여했다.그들 어느 누구도 논개의 형제나 친인척이 되는 이는 없었다.논개를 안다거나 만나본 사람도 없었다.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제 부모 형제의 제사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엄숙했다.누가 참석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논개의 죽음에 감동한 민중들 스스로가 제관이 된 것이다. ●진주 민중 146년간 탄원… 영조때 사액내려 제사가 끝난 뒤엔 논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졌다.대표자가 뽑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대표자 중에는 정식(1683∼1746) 같은 선비도 있었다.그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에서는 먼저 진주목사와 경상우병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렇게 시작된 탄원서는 그 뒤로 대를 이으면서 계속되었다. 진주목사나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 탄원서로 골머리를 앓았다.참으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탄원서 중에는 가끔 비변사나 왕에게까지 전달된 적도 있었다.그러나 묵살로 일관했다.진주사람들도 오기가 있었다.끝까지 가보자며 탄원서를 쉬임없이 올렸고,그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추가시켰다.그러기를 146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결국 조선 정부에서도 더는 논개의 공적을 묵살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1740년(영조16) 정부에서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사액(賜額)을 내려 논개의 공적을 공식화했다.죽은 지 146년 만에 사당이 지어지고,위패가 모셔져 눈비 맞으며 강가에서 민중들이 모시던 제사가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진주목사 정현석은 논개의 삶이 지닌 역사적 큰 뜻을 기려서 ‘의암별제(義岩別祭)’라는 매우 소중한 제례의식을 창안하여 논개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진주사람들의 끈질기고 뜨거운 논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사를 만들었다. 의암별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단순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조선의 넋과 멋을 모두 담고 있는 악(樂),가(歌),무(舞)를 근간으로 3일 밤낮 계속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제전으로서 민족예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또한 논개의 죽음이 지닌 자유정신과 혁명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사가 끝난 뒤 사흘 밤낮으로 뒤풀이가 벌어지는데,사방에서 몰려든 인파가 남강가에서 축제를 벌였다.이리하여 의암별제는 진주 특유의 풍류가 되었고 문화잔치였으며 전국 최초의 예술행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성계옥 선생 82년 만에 ‘의암별제’ 재현 이렇듯 품격과 재미를 균형있게 구비한 의암별제를 통하여 논개 정신의 불멸성을 민중 속에 심어오던 이 예술행사는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로부터 조선민족주의 선전 행사로 지목되어 탄압받다가 끝내 금지되었다.의암별제를 주도했던 진주기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촉석루에 숨어들어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발각당한 기생들은 고문을 받아 의암별제 명맥이 끊어졌다.그 뒤 나이 든 기생들은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촉석루 대신 의암에 올라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서 절규하기도 했다. 의암별제는 단절된 지 82년 만인 1992년에 성계옥 선생에 의하여 재현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된,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식의 제사의식을 겸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렇듯 논개는 진주사람이나 전북 장수인들만의 논개가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의 마음이다.논개의 근대성은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의 원류이자 성차별의 시대상을 온 몸으로 극복해 낸 한국여성의 전설이다.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눈 앞의 이익을 좇는 삶은 이웃의 삶까지 더럽힌다는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다시 되새기게 한다.‘여성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안겨 준 논개. 올 봄 진주에는 논개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사랑하는 사람들이여,논개를 만나거든 물어보시라.누가 논개를 죽었다고 하는지.˝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그런데 왜장 기다 마코베의 죽음이 있은 뒤 진주성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스스로 진주를 떠나자 진주사람들은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논개의 혼이 왜적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남강 기슭 맨바닥에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진주 사람들이 보기로는 진주는 물론 조선 모두를 돌아보아도 민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국가와 유생 관리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씻어내고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논개만 한 이가 없었다.민중들이 비록 무지하고 빈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인정과 의리,사람과 하늘 사이에 있어야 할 생명존중과 함께 사는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치자면 양반관료들보다 훨씬 나았다.양반관료들은 자기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글 배우는 것을 막고,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끝없는 의무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과 제도를 휘둘러 왔었다.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진 뒤로 보여 준 양반관료들의 비겁함과 무능은 극치를 이루었고,그런 자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날까지 살아 온 것을 후회했다.공자 맹자며 유학이며 성리학,향교 서당이며,정승 판서 따위가 그토록 치사하고 졸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양반관료들은 우마차에다 금은보배와 첩실까지 챙겨 싣고는 깊은 산중으로 도망쳤다.오도 가도 못하고 남은 민중들은 고스란히 왜적들에게 유린당했다.그때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죽이고,놀란 왜적들이 황망히 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진주는 금방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 공적은 단연코 논개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그래서 남강 기슭에다 제상을 차려 놓고 울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마음이었다.솔직하고 진솔한 예절이었다.이런 광경을 서울에서 내려 온 암행어사가 보았다.진주성 전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자 양반관료들에 대한 묵시적 항거이기도 한 이 사건은 곧 정부에 전해졌지만 정부에서는 묵살해버렸다.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도망치기 바빴던 양반들 버젓이 공신에… 그 후 진주성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다른 곳에 있던 양반관료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온 양반들이 공신으로 오른 반면,전라도에서 의병으로 와 죽은 이들의 이름은 아예 들먹이지도 않은 것이다.몇 몇 대표급 전라도 의병장들은 전쟁공훈자로 이름이 올랐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외되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남자들뿐이었다. 화려한 직함과 함께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봄 가을로 나라에서 장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어떤 때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문이 내려지기도 했다.진주사람들이 보기로는 당연히 논개의 이름도 공훈자 반열에 올라야 하고,사당을 짓고 제수도 내려주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유생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논개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 없었다.험한 말로 개나 소도 훈장을 받는데 어찌하여 논개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민중들의 서운함 안에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천시당하고 억압받았으며 수탈과 능멸로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불만도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가 죽은 날만 되면 진주사람들이 남강가에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그 잘난 남자들은 위패 위에 올라서 사당의 향내를 맡으며 국가가 내린 제물을 받았다.논개는 민중 개개인들이 장만한,소박하지만 진실이 어린 조촐한 제물들을 받았다.제상이 없을 때도 있었다.강가 모래 위에다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제물을 진설했다.유교 예절에 따른 제상 배열이 아니라 민중들이 마음대로 차린 제상이었다.향로 대신 모래를 모아서 향을 피웠다.제사에는 수백 명의 제관들이 참여했다.그들 어느 누구도 논개의 형제나 친인척이 되는 이는 없었다.논개를 안다거나 만나본 사람도 없었다.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제 부모 형제의 제사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엄숙했다.누가 참석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논개의 죽음에 감동한 민중들 스스로가 제관이 된 것이다. ●진주 민중 146년간 탄원… 영조때 사액내려 제사가 끝난 뒤엔 논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졌다.대표자가 뽑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대표자 중에는 정식(1683∼1746) 같은 선비도 있었다.그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에서는 먼저 진주목사와 경상우병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렇게 시작된 탄원서는 그 뒤로 대를 이으면서 계속되었다. 진주목사나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 탄원서로 골머리를 앓았다.참으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탄원서 중에는 가끔 비변사나 왕에게까지 전달된 적도 있었다.그러나 묵살로 일관했다.진주사람들도 오기가 있었다.끝까지 가보자며 탄원서를 쉬임없이 올렸고,그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추가시켰다.그러기를 146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결국 조선 정부에서도 더는 논개의 공적을 묵살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1740년(영조16) 정부에서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사액(賜額)을 내려 논개의 공적을 공식화했다.죽은 지 146년 만에 사당이 지어지고,위패가 모셔져 눈비 맞으며 강가에서 민중들이 모시던 제사가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진주목사 정현석은 논개의 삶이 지닌 역사적 큰 뜻을 기려서 ‘의암별제(義岩別祭)’라는 매우 소중한 제례의식을 창안하여 논개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진주사람들의 끈질기고 뜨거운 논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사를 만들었다. 의암별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단순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조선의 넋과 멋을 모두 담고 있는 악(樂),가(歌),무(舞)를 근간으로 3일 밤낮 계속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제전으로서 민족예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또한 논개의 죽음이 지닌 자유정신과 혁명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사가 끝난 뒤 사흘 밤낮으로 뒤풀이가 벌어지는데,사방에서 몰려든 인파가 남강가에서 축제를 벌였다.이리하여 의암별제는 진주 특유의 풍류가 되었고 문화잔치였으며 전국 최초의 예술행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성계옥 선생 82년 만에 ‘의암별제’ 재현 이렇듯 품격과 재미를 균형있게 구비한 의암별제를 통하여 논개 정신의 불멸성을 민중 속에 심어오던 이 예술행사는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로부터 조선민족주의 선전 행사로 지목되어 탄압받다가 끝내 금지되었다.의암별제를 주도했던 진주기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촉석루에 숨어들어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발각당한 기생들은 고문을 받아 의암별제 명맥이 끊어졌다.그 뒤 나이 든 기생들은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촉석루 대신 의암에 올라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서 절규하기도 했다. 의암별제는 단절된 지 82년 만인 1992년에 성계옥 선생에 의하여 재현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된,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식의 제사의식을 겸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렇듯 논개는 진주사람이나 전북 장수인들만의 논개가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의 마음이다.논개의 근대성은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의 원류이자 성차별의 시대상을 온 몸으로 극복해 낸 한국여성의 전설이다.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눈 앞의 이익을 좇는 삶은 이웃의 삶까지 더럽힌다는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다시 되새기게 한다.‘여성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안겨 준 논개. 올 봄 진주에는 논개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사랑하는 사람들이여,논개를 만나거든 물어보시라.누가 논개를 죽었다고 하는지.
  • 국민연금 기금운용 기획단 단장 이필상 교수

    “국민연금은 국민 모두의 재산입니다.따라서 기금운용은 국가경제도 살찌우고 국민재산도 증식시키는 철저한 윈-윈 전략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필상(57·고려대 경영학)교수가 최근 정부에서 처음으로 설립한 ‘국민연금 중장기 기금운용 마스터플랜 기획단’ 단장에 위촉돼 관심을 모은다. 기획단은 현재의 국민연금 운용방식을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취지에서 설립됐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또 국민연금 기금이 지난 2월 말 현재 117조원에 이르러 연금 운용체계에 대해 ‘제로 베이스’에서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은 어디까지나 국민 각자의 노후를 감당해야 하는 소중한 재산”이라면서 “때문에 국민재산의 증식을 위해 적절한 기금운용의 플랜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다시피해왔다.”고 진단했다. 기획단에는 이 교수를 비롯한 각계 14명의 전문 연구자 그룹과 20명의 자문위원이 참여할 예정이다.아울러 기획단은 자산배분연구팀과 투자정책팀 등 크게 2개분야로 나누어 ▲주식과 채권투자 방식 ▲해외투자 ▲위험관리 ▲주주권 행사 등 14개의 연구과제를 집중 연구하게 된다. 오는 11월까지 연구를 마치고 공청회 등을 거쳐 올 연말 플랜을 최종 마무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적용시기는 빠르면 내년부터 가능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교수는 현행 기금운용의 문제점에 대해 “지난 1980년대 후반 도입된 국민연금은 국민재산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치논리에 의해 통제를 받았고 또 정부내에서도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 운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운용실태만 보더라도 총 112조원 가운데 공적자금예탁 15조 2000억원,복지부분 대여사업 4000억원,금융투자 96조원 등에 쓰이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화성 출신인 이 교수는 68년 제물포고와 서울대공대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선물학회장,한국재무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함께 하는 시민행동’상임대표,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NGO학회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총선 D-5] 인천 남동을

    고교 선후배가 금배지를 놓고 네 번째 격돌하고 있다.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번갈아 당선시켰던 유권자가 ‘인물론’과 ‘탄핵 심판론’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도 관심사다. 모두 네 명이 출마한 가운데 한나라당 이원복 후보와 열린우리당 이호웅 후보가 선두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두 후보는 인천 제물포고 동문인데다 지난 14대 총선부터 경쟁을 벌여온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원복 후보가 15대 때 먼저 금배지를 달았고,이호웅 후보는 16대 국회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1승 1패를 기록한 셈이다.이들의 결승전에 한민족사랑나누기운동본부 회장인 민주당 권태오 후보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앞세운 민주노동당 배진교 후보도 출사표를 냈다. 이원복 후보는 ‘깨끗한 사람이 개혁을 말할 수 있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선택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호웅 후보의 약점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다.반면 이호웅 후보측은 16대 국회에서 각종 지역 사업을 해결한 경력도 강조하고 있다.또 “민주주의를 유린한 쿠데타 세력을 심판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지역구의 극심한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공영주차장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서울의 베드타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인천을 동북아 핵심도시로 승격시키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박빙 승부가 예상된다.이원복 후보는 “탄핵안 가결 직후에는 이호웅 후보보다 지지율이 33% 포인트까지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기가 막힌 적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저쪽에서 초조해할 정도로 현장에서 느끼는 ‘감’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이호웅 후보측은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표심(票心)을 밝히지 않았던 한나라당 성향의 표가 결집하는 양상”이라면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이호웅 후보가 본 이원복 후보 -장점 이원복 후보와 4번째 격돌하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이라면 지역구 주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애쓴다는 점을 들고 싶다.이 후보는 지역의 일을 열심히 챙기는 편이었다.사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의 여러 덕목 중에서 무엇보다 지역에 관심을 많이 갖기를 바라는 것 같다.그런 점에서 이 후보의 친숙한 대민 행동을 평가하고 싶다. -단점 이 후보는 15대 국회의원을 지냈을 때 의정 활동이 소홀했다.국회의원이 입법과 예산심의,국가 중대사 결정 등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지역 발전도 의원이 내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다.당시 이 후보는 수많은 공약을 내걸었지만,이루지 못했다.유권자들도 그런 점을 알기 때문에 16대 때는 저를 택했다고 생각한다. ●이원복 후보가 본 이호웅 후보 -장점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편이다.지역을 대표할 경륜도 갖췄다.16대 현역의원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다.다른 무엇보다도 이 후보의 민주화 운동경력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5·18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수배된 적이 있을 만큼 민주화 관련 현장에는 꼭 참여했다.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고 싶다. -단점 현재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지난 대선 때 기업체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정치인으로서 도덕성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현역 국회의원이지만 지역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 불만도 많다.오죽하면 지역에서 이 후보 얼굴 보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말이 나오겠는가.또 지난 4년 동안 의정 활동도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 [하프타임]현대, 신세계 제물로 PO불씨

    현대가 25일 광주구동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라토야 토마스(23점 18리바운드)와 선수진(17점)이 40점을 합작한데 힘입어 신세계를 79-68로 꺾었다.7승9패가 된 현대는 4위 우리은행(8승9패)과의 승차를 반게임차로 좁히며 플레이오프 진출의 불씨를 살렸다.반면 신세계(1승16패)는 허윤자가 19득점하며 분전했지만 연패(13연패) 사슬을 끊지 못했다.
  • 이 고기는 먹지 마라/프레데릭 J 시문스 지음

    기원 전 450년대 무렵에 활약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1년에 한번씩 달과 오시리스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만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먹었다.돼지는 지극히 불결한 동물로 간주됐으며,지위가 높은 사람이 어쩌다 돼지와 몸이 스치기라도 하면 나일강으로 곧장 달려가 옷을 입은 채 물에 뛰어들어 몸을 씻었다고 한다.돼지 치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조차 더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성서의 ‘레위기’ 또한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간주하고 그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고기는 먹지 마라?­육식 터부의 문화사’(프레데릭 J 시문스 지음,김병화 옮김,돌베개 펴냄)는 돼지고기ㆍ쇠고기ㆍ닭고기와 달걀ㆍ말고기ㆍ낙타고기ㆍ개고기ㆍ생선 등 대표적인 육류 식품들이 어떻게 수용돼 왔는가를 역사·문화적인 관점에서 살핀다.저자(텍사스­오스틴대 지리학 교수)는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현지 조사를 통해 ‘육식 터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힌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특히 암소를 신성시한다.일찍이 황소는 남성 신의 상징이었고 암소는 지모여신의 상징이었다.간디는 ‘암소를 섬기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나는 암소를 숭배하는 문제에 관해선 그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암소를 보호하는 것은 힌두교가 세계에 준 선물이며 인간의 진화에서 가장 훌륭한 현상이다.…암소를 보호하는 힌두교가 있는 한 힌두교는 살아남을 것이다.” 힌두교도들은 모두 쇠고기를 먹지 않을까.조사에 따르면 인도의 하층 카스트,특히 하리잔(불가촉천민) 계급에선 힌두교도 일반의 관습과는 달리 쇠고기를 먹는다.아프리카의 마사이족 또한 소를 숭배하지만 우유와 소의 피,쇠고기를 주식으로 한다. 책은 식용으로서의 개에 대해서도 적잖은 지면을 할애한다.서구인들은 개의 도살과 식용에 대해 크게 반발한다.그러나 개고기를 먹는 관습은 과거 미국의 인디언들 사이에선 아주 흔한 것이었다.20세기 초까지 만해도 스위스와 독일에선 개고기가 식용으로 활용됐다. 중국의 광둥인들은 “찐빵은 개를 무서워하고 개는 광둥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고기를 잘 먹는 사람들로 유명하다.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사하라 사막 이남에선 대체로 개고기를 먹지만 에티오피아 종족들은 불결한 것으로 여겨 혐오한다. 음식문화의 금기는 이처럼 다양하다.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런 금기를 해명할 수 있는 단일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요컨대 각 지역과 문화,시대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음식 습성은 경제,환경,종교,관습,신분제도,전통 등 실로 다양한 맥락에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할 문제다.2만 8000원. 김종면기자˝
  • [초등학교 ‘햄버거 회장’] 美國선 어떻게 하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에서 한국의 초등학교에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학급회장’은 없다.회장이 선생을 대신해 출석이나 과제물을 점검하는 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학급 운영은 철저히 교사의 몫이다. 물론 학교 전체를 대표하는 학생회와 학급의 연락책은 있다.학생회장은 선거로 뽑지만 학부모가 더 열을 내는 혼탁양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대신 학교 행사에는 학부모들이 적극 참여한다.다만 자발적 참여일 뿐 불법적인 찬조금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6학년으로 제한한 학생회 학기가 시작되는 9월이면 미국의 초등학교에도 선거 열풍이 분다.학생회장과 부회장을 학생들이 직접 뽑는다.각 주나 카운티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학생회는 주로 6학년(일부 주는 5학년)만으로 구성된다.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의 경우 교사 2명이 선거를 주관한다.교내에 벽보를 붙일 수 있고 후보들이 강당에 모여 한 차례 정견발표를 한다.지난해 레이철 칼슨 초등학교의 부회장으로 출마했던 앤드루 키(12)는 “개별적으로 만나 지지를 호소하지만 선물을 돌리거나 햄버거를 사주지는 않는다.”며 “돈도 없지만 생일파티가 아니면 그같은 식사제공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회는 회장·부회장 이외에 총무와 회계를 둔다.임기는 모두 1년이다.3학년 이상의 학급마다 연락책 2명을 둬 학급내 문제 등을 학생회에 보고토록 한다. 우리의 ‘회장’ 개념과는 다른 실무 연락책으로 학생들이 뽑거나 학생회가 지명한다.학생회는 매달 회의를 열어 ‘학부모·교사협의회(PTA)’에 학교행사나 비품구입 등과 관련한 건의사항을 전달한다. ●학부모의 십시일반으로 치러지는 학교행사 밸런타인 데이(2월14일)를 며칠 앞둔 2월 초.레이철 칼슨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은 PTA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밸런타인 축제를 위해 초콜릿이나 캔디,축하카드 등을 기부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다.기껏해야 학부모당 5달러 안팎이 든다. 가능하다고 연락하면 다시 PTA에 참여하는 학부모로부터 확인전화가 온다.특정 물품이 부족해 때때로 같은 비용이 드는 다른 품목을 요구하기도 한다.PTA는 학교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지만 ‘파티형 행사’는 학부모들의 자발적 도움으로 치른다. 특히 PTA는 학급마다 ‘룸 마더(room mother)’를 정해 학부모들의 참여를 독려한다.레이철 칼슨 초등학교의 로렌스 쳅 교장은 “모든 학부모에게 행사 참여의 길이 열려 있다.”며 “자녀가 회장단에 뽑혔다고 찬조금을 더 내거나 학부모 대표로 활동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한마디로 학생회와 PTA에서 학부모의 움직임은 별개라는 설명이다. 학부모들의 특별 찬조금이 없는 대신 PTA 주관으로 학교 운영비를 모금하는 이벤트는 많다. 가정통신을 통해 특정기업의 상품을 팔고 일정 비율의 금액을 교육비로 받거나 잡화점에서 특정물품을 사면 일부분이 자동적으로 교육당국에 들어간다.수업 프로그램과 교사·학생들의 주소록이 담긴 학교 안내록에 광고를 유치,20달러로 학부모들에게 팔기도 한다. ●치맛바람과 무관한 교육풍토 학부모들이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고 자녀들의 학업 평가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가정 형편이 좋고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가 적극 나서는 게 사실이지만 돈봉투를 건넸다가는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연말이면 미국에서도 교사들에게 선물을 준다.그러나 PTA가 학부모 모두에게 공지,10달러씩을 내도록 권유한다.돈을 안내도 그만이고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도 없다.물론 개별적으로 교사에게 선물을 주는 학부모도 있으나 극히 일부다.이때도 현금이 아닌 30달러 안팎의 선물이 보통이다. 교사들의 봉급이 높은 것도 부정이 적은 한 요인이다.주마다 다르지만 교사들의 평균 연봉은 4만∼4만 5000달러,교장 등 행정직은 6만∼7만달러에 이른다.초등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품성·과외활동·성적으로 세분화해 월등·우수·보통 등으로 이뤄지지만 순위를 매기지는 않는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졸업한 뒤에도 ‘룸 마더’로 봉사하는 등 자녀들의 성적과 무관한 활동을 한다.1∼2학년 학급에는 보조교사를 둬 상대적으로 처지는 학생들을 돌보게 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mip@˝
  • [Anycall 프로농구] KCC ‘기세등등’

    KCC가 KTF를 제물로 선두 TG삼보와의 승차를 2로 줄여 정규리그 우승 가능성을 다시 붙잡았다. KCC는 1일 전주체육관에서 열린 03∼04프로농구 홈경기에서 20점을 몰아 넣으며 정규리그 통산 5000득점을 돌파한 추승균과 트리플 더블급 플레이를 펼친 특급용병 찰스 민렌드(37점 12리바운드 5어시스트)의 활약에 힘입어 KTF를 111-92로 크게 이겼다. KCC는 36승15패를 기록,TG(38승13패)의 턱밑까지 쫓아갔다.매직넘버 2를 남긴 TG가 남은 3경기 가운데 2패 이상을 당하고,상대 전적에서 4승2패로 앞선 KCC가 남은 3경기를 모두 이기면 KCC가 1위에 오르게 된다. 또 TG가 3연패를 당하면 KCC가 2승1패만 해도 순위가 뒤집어지게 된다. 전날 적지에서 TG를 여유있게 제압한 KCC 선수들은 줄곧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다. 부상에서 회복한 ‘컴퓨터가드’ 이상민(10어시스트)의 송곳 패스가 빛을 발한 가운데 R.F.바셋(26점)과 민렌드 두 포스트맨의 골밑 플레이와 추승균의 외곽슛까지 위력을 발휘하며 경기 내내 KTF를 농락했다. KCC는 추승균이 성공률 100%의 ‘소리없이 강한’ 고감도 3점포 등을 선보인 데 힘입어 1쿼터부터 29-24로 앞서 나갔다.2쿼터 들어서자마자 바셋의 3연속 골밑슛이 폭발하고,이상민의 어시스트에 이은 민렌드의 골밑슛과 3점슛이 가세하면서 58-38로 점수차를 크게 벌렸다. KTF는 3쿼터 들어 퍼넬 페리(45점 9리바운드)가 3점슛 3개를 포함,모두 20점을 쏟아부으며 추격했지만 초반 큰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인사]

    ■ 건국대 △건국대병원장 安圭重△디자인조형대학장 裵成桓△성관관장 李致鎬△일우헌관장 文興安 ■ SK C&C △전무 유용종 정재현◇상무 이영래 ■ 세방그룹 △대표이사 부사장 權行碩△부사장 曺泰好 金成煥△상무 鄭憲斗△상무보 金相求 李二煥 金學鎔 梁太豪△상무보대우 孫 泳△대표이사 부사장 玄松哲△상무 鄭炯殷△상무보 金玉炫△상무 崔靈圭△상무보 李鳳燮△사외이사 金先一△감사 이호석 ■ 하나로통신 ◇전무 △마케팅실장 尹京林△법인영업본부장 趙永鎬 ◇상무 △경영지원실장 宋亨峻△네트워크운용실장 朴健俊△마케팅실초고속2팀장 朴勝吉 ◇상무보 △경북지사장 崔明憲△기술총괄팀장 朴贊雄 ■ KTF △정보시스템부문 영업정보실 빌링개발팀장 金沅柱△정보시스템부문 영업정보실 CRM개발팀장 吳勳龍△마케팅부문 마케팅연구실 마케팅정책연구팀장 韓聖哲△홍보실 언론홍보팀장 吳榮湖 ■ 국민은행 △신탁·기금 관리그룹 부행장 姜正寧 ■ 한국무역협회 ◇본부장 전보△국제사업본부장 고광석△물류서비스본부장 이우원△무역진흥본부장 오기현◇1급부장 승진△박제환△김병술 ◇2급부장 승진△이진호△정재화 ◇팀장 보임△기획 김범수△e-트레이드 정윤세△총무 윤경상△감사실장 박제환△남북교역 박윤환△전략물자관리센터준비 이병태△통상지원 김무한△미주 이재현△산업연구 이재출△지역연구 박부규△국제물류지원단준비 이순중△정보전략 손태규△IT연수 김치중△부산지부장 주수도△대구경북지부장 김춘식△대전충남지부장 배명렬△강원지부장 김학서△경남지부장 장호근
  • [인사]

    ■ 건국대 △건국대병원장 安圭重△디자인조형대학장 裵成桓△성관관장 李致鎬△일우헌관장 文興安 ■ SK C&C △전무 유용종 정재현◇상무 이영래 ■ 세방그룹 △대표이사 부사장 權行碩△부사장 曺泰好 金成煥△상무 鄭憲斗△상무보 金相求 李二煥 金學鎔 梁太豪△상무보대우 孫 泳△대표이사 부사장 玄松哲△상무 鄭炯殷△상무보 金玉炫△상무 崔靈圭△상무보 李鳳燮△사외이사 金先一△감사 이호석 ■ 하나로통신 ◇전무 △마케팅실장 尹京林△법인영업본부장 趙永鎬 ◇상무 △경영지원실장 宋亨峻△네트워크운용실장 朴健俊△마케팅실초고속2팀장 朴勝吉 ◇상무보 △경북지사장 崔明憲△기술총괄팀장 朴贊雄 ■ KTF △정보시스템부문 영업정보실 빌링개발팀장 金沅柱△정보시스템부문 영업정보실 CRM개발팀장 吳勳龍△마케팅부문 마케팅연구실 마케팅정책연구팀장 韓聖哲△홍보실 언론홍보팀장 吳榮湖 ■ 국민은행 △신탁·기금 관리그룹 부행장 姜正寧 ■ 한국무역협회 ◇본부장 전보△국제사업본부장 고광석△물류서비스본부장 이우원△무역진흥본부장 오기현◇1급부장 승진△박제환△김병술 ◇2급부장 승진△이진호△정재화 ◇팀장 보임△기획 김범수△e-트레이드 정윤세△총무 윤경상△감사실장 박제환△남북교역 박윤환△전략물자관리센터준비 이병태△통상지원 김무한△미주 이재현△산업연구 이재출△지역연구 박부규△국제물류지원단준비 이순중△정보전략 손태규△IT연수 김치중△부산지부장 주수도△대구경북지부장 김춘식△대전충남지부장 배명렬△강원지부장 김학서△경남지부장 장호근
  • [Anycall 프로농구] KCC “아직 안끝났어”

    ‘리그 우승의 제물이 될 수 없다.’ KCC가 03∼04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하려던 TG삼보를 적진에서 잡고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결정지었다. KCC는 29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에서 31점 6리바운드를 올린 찰스 민렌드의 맹활약에 힘입어 1위 TG삼보를 91-78로 제쳤다.KCC는 이날 승리로 35승 15패를 기록,4강전 직행을 결정지었다.또 TG삼보를 상대로 4승2패의 성적을 올리며 우위를 지켜나갔다.홈에서 우승 샴페인을 터뜨리려던 TG삼보는 이날 패배로 리그 우승 확정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이날 양팀은 1·2위팀이자 라이벌답게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홈에서 리그 우승의 샴페인을 터뜨리려는 TG삼보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하고 상대 우위를 지키려는 KCC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총력전을 펼쳤다. KCC가 달아나면 TG삼보가 끈질기게 쫓아가는 양상이 계속됐다.경기의 주도권은 KCC가 잡았다.민렌드와 추승균의 골밑 레이업슛과 3점슛으로 1쿼터를 24-19로 앞서 나간 KCC는 2쿼터에도 추승균이 3점슛 2개를 포함해 8점을 작렬,앤트완 홀(26점 6리바운드)이 덩크슛 등 7점을 쏘아올린 TG삼보에 47-42로 간발의 우세를 이어나갔다.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은 3쿼터 중반 이후.종료 5분여를 남기고 민렌드가 3연속 골밑 슛을 터뜨렸다.한동안 부상 때문에 결장한 ‘컴퓨터 가드’ 이상민도 골밑 레이업슛과 3점슛을 작렬시켜 72-62로 달아났다. 기세가 오른 KCC는 4쿼터 종료를 7분여 남기고 추승균과 조성원이 3점슛을 연달아 쏘아 올리면서 점수차를 13점으로 벌렸고,TG삼보는 식스맨 신종섭이 미들슛과 레이업슛을 연달아 성공시켰지만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추격의 힘을 잃었다. 원주 이두걸기자 douzirl@˝
  • [儒林 속 한자이야기](8)

    유림〈27〉 에 似而非(사이비)라는 말이 나오는데,‘비슷하지만 바로 그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이 말은 만장(萬章)이 그의 스승 맹자(孟子)에게 공자(孔子)가 향원(鄕愿:덕이 있는 사람처럼 칭송 받으나 실제의 행실은 그렇지 못한 자)을 德(덕)의 도적이라고 말한 이유를 묻는데 대해 맹자가 설명하면서 인용한 공자 말씀,즉 ‘나는 같은 것 같지만 같지 아니한 것(似而非)을 미워한다.(예를 들면)새싹과 비슷한 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 새싹과 구분하는데 혼란을 주기 때문이며,재주와 지혜를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의(義)를 혼란스럽게 함이 두려워서이며,말은 많으나 실속이 없음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信)을 혼란스럽게 함이 두려워서이며,정(鄭)나라의 음악을 미워함은 그것이 아악(雅樂)과 비슷하므로 옳은 음악을 혼란하게 하기 때문이며,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가 진정한 덕(德)과 혼란하게 할 수 있음을 두려워해서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而자는 주로 두 문장을 연결하는‘그리고,그러나’의 뜻 또는 문장의 끝에서 而已(이이:∼일 뿐이다)라는 의미로 활용된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만년(晩年)에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十有五而志于學),30세에 뜻을 세웠으며(三十而立),40세가 되어서는 무엇에도 의혹됨이 없었으며(四十而不惑),50세가 되어서는 하늘이 나에게 무엇을 명하는지 알았으며(五十而知天命),60세가 되어서는 무슨 말을 들어도 모두 소화시킬 수 있었으며(六十而耳順),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무엇이든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라고 말했는데,모두 而자로 연결되어 있다.오늘날 15세를 志學(지학),30세를 而立(이립),40세를 不惑(불혹),50세를 知天命(지천명),60세를 耳順(이순),70세를 從心(종심)이라고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非자는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시시비비(是是非非) 등과 같이 ‘옳지 않다’라는 뜻으로 활용된다.또한 ‘아니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꿈은 아니었는데,마치 꿈과 같았다’라는 말인 비몽사몽(非夢似夢)이 있다.꿈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로 장자(장주)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나오는 蝴蝶夢(蝴나비 호,蝶나비 접,夢꿈 몽)을 들 수 있다.‘언젠가 나(장자)는 꿈을 꾸었는데,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훨훨 날갯짓하며 날다 보니 너무도 즐거워 내가 나비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그러다 꿈에서 깨었는데 나비가 아니라 장자인 내가 아니었는가?그러나 도대체 훨훨 날던 나비의 꿈에 지금 이 현실세계의 내가 있었던 것인지,아니면 내 꿈에 나비가 날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네….’ 언뜻 보기에 호접몽(나비 꿈)은 非夢似夢 상황의 사람이 말한 것 같으나,사실은 장자가 꿈과 나비를 통해 사물과 자기와의 구별을 하지 않은 것,또는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境地)를 비유한 것으로 장자의 주요 사상을 재미있게 표현한 부분이다.장자는 옳은 것(是)도 그른 것(非)도 없으며,착함(善)도 악함(惡)도 없는 등 세상 모든 것에 차별이 없다는 초월(超越)사상을 지니고 있다.시비(是非)를 분명히 가리려 하고,작은 것에 연연해 하며,여유로움이 적거나,마음이 피곤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방대한 스케일의 장자 사상을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하프타임]삼성, 신세계 제물로 공동선두

    삼성생명이 25일 광주구동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이미선(14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의 미들슛으로 신세계를 64-62로 따돌렸다.3연승을 달린 삼성은 6승2패로 금호생명 국민은행과 공동선두를 이뤘다.꼴찌 신세계는 5연패에 빠지면서 1승8패로 5위 현대(3승6패)와의 격차도 더 벌어졌다.62-62로 맞선 상황에서 종료 5.1초전 마지막 공격에 나선 삼성은 박정은의 패스를 받은 이미선이 2.1초를 남기고 점프슛을 성공, 승리를 거머쥐었다.˝
  • 18일 월드컵 亞지역 2차예선 첫 경기

    ‘이번 제물은 레바논’ 새해 첫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인 오만전에서 대승을 거둔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번엔 레바논을 상대로 다시 한번 화끈한 ‘골폭풍’을 선보인다.오만전이 평가전인 반면 레바논전(18일·수원월드컵경기장)은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첫 경기로 양팀 모두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으로서는 오만전 여세를 몰아 레바논을 완파하고 독일로 가는 첫 단추를 상큼하게 꿴다는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낙승을 예상한다.레바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8위로 한국(22위)에 한참 뒤져 있다.역대 상대전적에서도 4전 전승으로 한국이 앞서고,특히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최근 맞대결은 지난 1993년 94미국월드컵 지역예선으로 2-0,완승을 거뒀다.여기에다 레바논의 전력 누수도 한국으로서는 좋은 징조다.이라크 출신 아드난 하마드 신임 감독이 레바논축구협회와의 불화로 취임 3일 만에 이라크로 되돌아갔다.이에 따라 이번 한국전에서는 마무두 하무드 코치가 임시감독으로 선수들을 이끌고 왔다.일부 주전급 선수들도 부상과 징계 등으로 합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내부 분위기는 좋지 않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코엘류호’는 ‘돌다리도 두드려 본 뒤 건너라.’는 속담을 거울삼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오만전 대승 직후에도 선수들은 전혀 들뜬 기색없이 “레바논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코엘류 감독도 “상대를 쉽게 보면 안 되며 조심해서 오만전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바논전에 나서는 한국팀의 전력은 오만전보다 공수 모두 한층 강화됐다.‘꾀돌이’ 이영표(27·에인트호벤)가 16일 합류했고,부상중인 이천수(23·레알 소시에다드)와 골키퍼 이운재(31·수원)도 출전이 가능해졌다.이천수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측면 미더필더로 투입된다.이영표는 송종국(25·페예노르트)과 함께 측면 수비로 기용될 가능성이 있다. 코엘류 감독의 1차목표는 물론 승리지만 내심 대승을 노린다.2차예선 나머지 상대인 몰디브나 베트남의 기를 초반에 꺾어 놓겠다는 작전이다.몰디브와는 다음달 31일 원정경기를 갖고 베트남과는 6월9일 대결한다.또 중동에 대한 ‘면역력’을 완벽하게 기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박준석기자 p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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