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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우상화 작업 대규모 투자”

    북한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 작업과 위락시설 조성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29일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국감에서 “김일성·김정일 동상과 영생탑을 전 지역에 건립하고 초상화도 교체하고 있다.”면서 “스위스 등 유럽의 테마파크를 모방해 능라유원지에 물놀이장 등 놀이기구를 건설하고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의 궁전을 본떠 김씨 일가의 시신 보관소를 대규모 정원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상화 작업과 위락시설 건설에 약 3억 3000만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원 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개입의지도 노골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8월 중순에서 하순쯤 전방부대를 집중 방문해 선별적 타격을 위해 최후 명령을 기다릴 것 등 도발적 언행을 했다.”고 전했다. 최근 행방이 묘연한 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에 대해서는 임신설, 북한 고위 관료들의 리설주로 인한 풍기 문란 우려 등 복합적 요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편,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창립 60돌을 맞아 이 학교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의 동상 제막식에 김 제1위원장이 참석, 연설했다고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14일 만경대혁명학원 등의 창립 경축대회에 참석한 이후 보름 만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개관 첫날부터 북적… 서울시민 책속에 빠지다

    개관 첫날부터 북적… 서울시민 책속에 빠지다

    옛 서울시청 청사를 리모델링한 서울도서관이 26일 문을 열고 시민들을 맞았다. 오전 10시 처음 문을 연 서울도서관에는 개관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민 400여명으로 크게 붐볐다. 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은 2층 북카페 도서관 도우미센터에서 회원증을 발급받은 뒤 도서관 내부를 돌아봤다. 4년에 걸쳐 옛 시청사를 리모델링해 만든 서울도서관은 면적이 1만 8711㎡로 20만여권의 장서를 갖춘 서울의 대표 도서관이다. 지상 1∼4층, 지하 3∼4층에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일반자료실, 장애인자료실, 서울자료실, 세계자료실, 디지털자료실, 기획전시실, 정기간행물실 등 총 7개의 실과 지하 보존서고를 갖추고 있다. 열람석 규모는 390석이다. 도서관은 1926년 청사 건립 당시 외벽과 홀, 중앙계단을 그대로 복원해 서울의 역사적 상징성도 살렸다. 3층에는 구 시청사 시절의 시장실, 접견실, 기획상황실 등을 중앙홀에 복원해 서울 도서관이 과거 서울시 행정을 수행하던 청사였음을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이모(41·여)씨는 “도서관 1층에서 2층 계단에 있는 5m 높이의 벽면 서가 등 내부가 책 읽기 좋게 꾸며졌다.”면서 “아이들이 볼 만한 책도 많고, DVD와 오디오북 등이 있어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러 오겠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도서 대출을 하려면 회원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회원증은 서울 시민, 서울 소재 직장인, 서울 소재 대학생 등만 발급받을 수 있으며 무료다. 일반 자료 대출은 1인당 3권까지 14일 동안 가능하다. 1회에 한해 7일간 연장할 수 있다. 원하는 도서가 대출된 경우에는 예약하면 된다. 오후 6시 서울광장에서는 도서관 현판 제막식이 열렸다. 박원순 시장은 인사말에서 “도서관 및 독서 진흥법에 발맞춰 책 읽는 곳에서 한 발짝 나아가 기록물과 자료 등을 생산·제공하는 정책 도서관으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제막식 후 2층 북카페에서 도서관 친구라는 뜻을 담은 ‘79번’ 회원증을 발급받은 뒤 전체를 돌아봤다. 광화문광장이 환히 보이는 3층 정기간행물실 발코니에서는 “시민들에게 매우 좋은 공간이니 더 늘리는 길을 찾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도서관은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일부 자료실은 오후 6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에 쉰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버려진 돌로 만든 소망탑… 성북천, 예술로 흐르다

    버려진 돌로 만든 소망탑… 성북천, 예술로 흐르다

    가장 성공적인 자연생태하천 복원 사례로 손꼽히는 성북천이 이번에는 거대한 생태예술 갤러리로 단장하고 신고식을 치렀다. 성북구는 17일 성북천 분수마루에서 ‘2012 마을미술프로젝트 제막식’을 거행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프로젝트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공공미술 공모 사업이다. 고사목, 가지치기한 가로수, 빈병, 폐고무관 등 재활용품을 소재로 한 하늘물고기, 소망탑, 송사리의 여정, 숲 속의 왕국 등 11개 작품이 성북천 곳곳에 설치됐다. 특히 ‘소망탑’(왼쪽)과 ‘송사리의 여정’(오른쪽)은 우촌초교(돈암2동)와 정수초교(정릉2동) 학생들이 직접 작업에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소망탑은 하천 준설과정에서 버려진 돌에 소망글과 이미지를 그려 넣어 작가와 주민이 함께 완성시켰고 ‘송사리의 여정’은 환경보호 실천과 자연환경에 대한 주제로 작가와 주민이 함께 완성한 작품이다. 김영배 구청장은 “성공적인 자연생태하천 복원 사례로 손꼽히는 성북천이 서울을 대표하는 생태문화쉼터로 자리매김하도록 꾸준히 공공미술 사업을 펼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독도 의미 되새기는 울릉군 ‘독도이사부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독도 의미 되새기는 울릉군 ‘독도이사부길’

    일본 국민의 대다수가 모르던 ‘우리 땅’ 독도는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이 전격 방문하며 우리 국민은 물론 한·일 국민 모두가 알게 됐다. 도로명주소 사업을 통해 강원 삼척시와 경북 울릉군 등 몇몇 지자체들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하는 새로운 길 이름을 정했다. 삼척 정라항에는 이사부길이 있다. 수로부인길 주변에 이사부사자공원이 조성된 데 이어 인근에 이사부 장군 축제가 개최되는 정라항 인근의 길 이름을 ‘이사부길’로 이름지은 것이다. 이사부길은 지번으로 삼척 정하동 41에서 41-186을 잇는 도로이다. 주변에 어물시장과 수산물 공동활복장, 바다횟집들이 들어서 있어 삼척에서 회를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꼽힌다. 기존 도로명은 정라항길이었지만, 이사부역사문화축전이 개최되는 장소라는 점을 홍보하고, 우리 영토로서 독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사부길로 이름을 바꿨다. 이사부사자공원 곳곳에 설치된 각종 사자상도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 때 나무사자 깎기 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경북 울릉군 ‘독도이사부길’은 실제 독도에 있는 도로명주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새 도로명 이름을 공모해 2008년 8월 이름이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울릉군 도로명주소위원회는 독도의 동도에 ‘독도이사부길’을, 서도에는 ‘독도안용복길’을 각각 새롭게 명명했다. 어부 안용복은 숙종 때 을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 막부가 인정하도록 한 역사적 인물이다. 새 도로명 주소에 따라 독도 등대는 독도 이사부길 63번으로, 독도경비대 막사는 독도이사부길 55번으로 각각 새로운 주소를 갖게 됐다. 지난해 6월 독도 새주소 제막식에는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여하는 등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금융위 태평로시대

    금융위 태평로시대

    4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층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청사 이전 현판식에서 김석동(왼쪽 네번째) 위원장을 비롯한 금융위 관계자들이 현판 제막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은보 사무처장, 심인숙 비상임위원, 이상제 상임위원, 김 위원장, 추경호 부위원장, 홍영만 상임위원, 유재훈 증선위 상임위원, 박재식 금융정보분석원장. 손형준기자 boltogoo@seoul.co.kr
  • 송파에 ‘한류 원조’가 있다?

    지금의 송파구 일대를 도읍으로 삼았던 한성백제(BC 18~AD 475년)는 고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일대의 찬란한 문화를 전파했던 ‘한류의 원조’였다. 지금 이 일대에는 한성백제 유적으로 알려진 풍납토성, 몽촌토성, 백제고분군 등이 남아 당시의 숨결을 전해주고 있다. 한성백제로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송파구는 오는 22~23일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한성백제와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역사문화축제 ‘제12회 한성백제문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3월 잠실관광특구 지정 이후 처음 개최되는 올해 한성백제문화제는 한류 열풍의 연장선에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글로벌 축제’로 꾸며졌다. 본 행사는 22일 오전 10시 풍납토성 경당공원에서 열리는 혼불 채화식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이어 칠지도 제막식, 한성백제 청소년 음악 동아리 축제 등이 이어진다. 첫날 저녁 평화의 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개막 축하공연에는 가수 2AM과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둘째 날에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역사문화거리 행렬이 벌어진다. 올림픽공원 옆 위례성대로 1.5㎞ 구간에서 진행되는 행렬에는 전문 연기자들과 주민, 학생, 기업체 직원, 외국인들이 총출동한다. 대취타를 앞세우고 백제의 건국, 정립, 함성, 중흥, 어울림 등 6개 테마로 꾸민 행렬이 거리를 메울 예정이다. 저녁 무대에는 가수 플라워, 윤수일밴드, 컬투 등이 오른다. 축제 기간 동안 평화의 광장에는 대형 칠지도 등이 전시되며 백제 군영 체험, 전통놀이 체험, 유물 발굴 체험, 토성 쌓기 등 다양한 이벤트 코너도 준비된다. 축제 전날인 21일에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관련 국제학술세미나도 열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日불교계, 과거 만행 사죄하는 ‘참사비’ 건립

    日불교계, 과거 만행 사죄하는 ‘참사비’ 건립

    일본 불교계가 과거 일본의 만행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비석을 한국 사찰에 세우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려 불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 불교 최대 종단인 조동종이 오는 16일 오전 10시 전북 군산 동국사에서 갖는 ‘조동종, 지난 과오·첨병 노릇 참회합니다’라는 제목의 참사비 제막식. 이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한국 침략 만행에 동조해 함께 움직였던 일본 불교 종단이 과거사를 반성해 실천으로 옮긴 첫 사례여서 주목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고은 시인이 출가한 사찰로 알려진 동국사는 1909년 일본 조동종 승려에 의해 개창된 뒤 4년 뒤인 1913년 철저하게 일본 불교 전통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사찰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500여개의 일본식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초기의 일본 절집 모습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 이관됐다가 지금은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 말사로 등록돼 일본인 관광객과 건축학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국사는 지금 한국 불교에선 ‘소외된 사찰’로 인식되지만 일제시대엔 아주 번창한 대형 사찰이었다. 지금도 군산시 지적부에 이름이 남아 있는 일본인 유지들이 사찰 창건에 대거 관여한 것과 범종에 새긴 명문은 당시 동국사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천황의 은덕이 영원히 미치게 하니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복락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이 굳세게 될 것이다.’ 동국사 스님들은 이 같은 과거 사격(寺格)에도 불구하고 동국사 뿌리 찾기에 나서 조동종 관계자들과 유족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동국사 사지를 만들고 있다. 조동종과 동국사에 얽힌 사연이 알려지면서 일본에는 동지회(‘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회장 이치노헤 쇼고 조동종 승려)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번 참사비 건립도 동지회가 주관해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조동종 참회문, 일어·한국어 병기 국내산 고급 황등석으로 제작한 참사비 크기는 가로 3m, 세로 2.3m다. 20년 전 조동종이 발표했던 장문의 참회문 일부를 발췌해 일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문을 병기했다. 벌써부터 비석에 새겨질 참사문의 내용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외 포교라는 미명하에 일제의 야욕에 영합해 벌인 수많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권 침해, 문화 멸시, 일본 문화 강요, 존엄성 훼손 행위는 불교적 교의에도 어긋난다.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해 왔던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이며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조동종은 그 첨병이었다.…우리는 맹세한다. 두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 참사문은 특히 명성황후 시해 폭거와 창씨개명으로 국가와 민족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조동종 승려가 민중 회유와 첩보 활동에 나섰던 사실을 고백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동국사 창건 기념일인 9월 16일에 맞춘 참회비 제막식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참회 법회 형식으로 봉행될 예정이다. 일본 조동종 종무청장(한국 조계종의 총무원장)의 참회사가 조동종 재정부장 스님의 대독으로 발표되며 한국에선 조계종 사회부장과 인권위원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제막식에 앞서 15일에는 군산시청이 일본 측 인사들을 초청해 환영 만찬도 연다. 동국사 종걸 스님은 “아픈 역사도 엄연한 역사인 만큼 애써 지울 게 아니라 다시 새겨 기억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동국사 역사 찾기 운동을 벌여 왔다.”면서 “일본의 불교계와 뜻있는 시민들이 정부보다 앞장서 과거사 반성의 실천 사례를 남기게 돼 흐뭇하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불법시설물 된 ‘MB 독도 표지석’

    불법시설물 된 ‘MB 독도 표지석’

    독도 수호 의지가 담긴 이명박 대통령 명의의 ‘독도 표지석’이 설치된 지 수일 만에 강제 철거된다. 21일 경북도에 따르면 독도 표지석이 놓여 있는 바닥석이 불법 시설물<서울신문 2012년 8월 18일자 14면·21일자 12면>이라는 문화재청의 지적에 따라 바닥석과 함께 대통령의 표지석도 걷어 내기로 했다. 대통령의 친필이 담긴 독도 표지석은 지난 19일 독도경비대가 주둔한 독도의 동도 망양대에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병석 국회부의장, 김찬 문화재청장, 최수일 울릉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됐다. 대통령 이름으로 된 표지석이 독도에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도 관계자는 “독도 표지석 밑에 불법으로 설치된 바닥석을 걷어 내야 하기 때문에 표지석의 일시 철거는 불가피한 것으로 안다.”면서 “불법 시설물을 완전히 철거한 뒤 대통령 명의의 독도 표지석을 다시 설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북도는 이와 함께 불법 시설물로 판정받은 경북도기와 울릉군기의 게양대, 태극 문양, 건곤감리 및 스테인리스 조형물, 성화 채화대 등 독도에 설치된 각종 불법 시설물도 모두 철거키로 하고 독도관리사무소와의 협의에 착수했다. 도는 독도 불법 시설물의 철거와 운반 비용 확보 방안 등을 마련한 뒤 빠르면 이번 주 중에 철거에 나설 계획이다. 도는 호랑이 조각상 등 일부 창작물은 울릉도로 옮겨 독도박물관이나 다음 달 준공 예정인 안용복기념관 등에 영구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는 앞서 지난해 10월 143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독도 국기 게양대 앞에 김관용 지사 명의의 독도 표지석(가로 50㎝, 높이 80㎝)을 불법으로 설치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도는 이들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로부터 현상 변경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中 반일시위 보도 통제… 갈등 수습 본격화

    중국이 일본과 영토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문제로 최근 잇달아 발생한 반일 시위에 대한 보도를 통제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댜오위다오 문제로 고조된 민족 감정을 자제시켜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막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중국 공산당의 언론 통제 기구인 당 중앙 선전부는 최근 중국 19개 도시에서 발생한 반일시위 관련 보도 수위를 조절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각 언론사에 하달했다고 21일 홍콩 명보가 전했다. 지침은 댜오위다오 반일시위 관련 보도에서 언론들이 일률적으로 신화통신의 일부 기사만 게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반일시위에서 시위대가 일제 차량에 돌을 던지고 일장기를 불태우는 내용이 담긴 자극적인 사진은 보도 금지시켰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화통신의 기사는 ‘10여개 도시에서 시위가 있었다’, ‘외교부, 일본 우익분자의 댜오위다오 방문에 항의했다’, ‘한국, 독도 수호 표지석 제막식 개최’ 등 3개 정도다. 이에 따라 시위가 가장 과격하게 진행됐던 광저우, 선전 등 지역은 물론 전국 대부분 신문에선 최근 최대 이슈였던 반일시위 관련 사진 기사가 실리지 못했고, 그나마 허용된 신화통신의 기사도 국제면으로 밀렸다. 과격한 시위 사진을 게재한 중경신보, 중경만보 등 신문들의 경우 관련기사를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없도록 삭제했다. 한편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이날 자체 포털 사이트에서 ‘외교 난국,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조화로운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어하고, 일본은 주중 대사를 교체하기로 했다’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내보내 중국 정부가 일본과의 갈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불거진 장준하 타살 의혹 대선 국면 ‘핫 이슈’ 부상

    불거진 장준하 타살 의혹 대선 국면 ‘핫 이슈’ 부상

    유신독재 시절 박정희 정권에 맞서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사망 뒤 법의학자가 참여해 본격적으로 실시한 첫 검시 결과 두개골에서 지름 5~6㎝의 구멍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 측은 타살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며 정부에 전면적인 재조사를 요구했다. 16일 장준하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에 함몰된 형태의 지름 5~6㎝의 구멍과 주변에 12~18㎝ 길이의 금이 뻗어나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 1일 실시된 검시에 참여한 서울대 법의학연구소 이윤성 교수는 소견서를 통해 “두개골의 동그란 함몰 골절이 사망 원인”이라며 “오른쪽 골반뼈에도 골절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 외에 팔, 다리, 갈비뼈, 척추 등 다른 부위에서는 골절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두개골과 오른쪽 골반뼈의 골절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라면서도 “이 손상이 가격에 의한 것인지 또는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에 대해 기념사업회 측은 “추락에 의한 골절이라면 반드시 다른 부위에도 추가 골절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선생의 사인은 추락사가 아니며 외부 가격에 의한 사망임을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검시는 경기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된 선생의 유골을 파주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 추모공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이 교수의 참여 아래 실시됐다. 기념사업회 측은 “국가가 책임지고 즉시 전면적인 재조사와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한다.”며 “국가가 이를 회피한다면 ‘범국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선생의 장남 장호권(63)씨도 “이제 누가 했는지를 밝히는 일만 남았다.”며 “앞으로 그와 관련된 일들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일제의 학도병 징집으로 중국 전선으로 끌려갔다가 탈출,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광복 후 선생은 1953년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박정희 정권 시절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장 선생은 1975년 8월 경기 포천의 약사봉에 올랐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정부는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줄곧 끊이지 않았다. 73㎏의 몸무게에도 머리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 장비도 없이 길이 아닌 절벽을 타고 하산한 점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2004년 과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타살 의혹을 조사했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17일 37주기 추모공원 제막식 한편 유족과 기념사업회, 파주시 등은 17일 오전 11시 장준하 선생의 37주기 기일을 기념해 통일동산에서 장준하 추모공원 제막식을 갖는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대한민국·독도’ MB 친필 표지석 세운다

    ‘대한민국·독도’ MB 친필 표지석 세운다

    ‘우리 땅’ 독도에 결연한 독도 수호 의지를 담은 ‘독도 수호 표지석’(그림)이 세워진다. 경북도는 제67회 광복절인 오는 15일 독도 동도에서 독도 수호 표지석 제막식을 갖는다고 12일 밝혔다. 표지석은 높이 1m 30㎝(좌대 포함), 가로 35㎝, 세로 20㎝ 크기로 앞면과 뒷면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필 한글 ‘독도’, ‘대한민국’이 각각 새겨져 있다. 오른쪽 윗부분에는 작은 글자로 ‘대한민국’을 새겼다. 또 표지석의 왼쪽 면에는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휘호와 함께 ‘이천십이년 여름’이라고 새겨 제작 시기를 명시했다. 표지석은 충남 보령군에서 나온 오석(烏石)으로 만들어 검은색을 띠고 있다. 표지석은 지난해 7월 동도 망향대에 설치된 국기게양대(190㎡) 바로 옆에 세워진다. 독도에 우리 땅 영토임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친필과 휘호가 새겨진 표지석이 설치되기는 처음이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안종삼 전 구례서장 동상 제막

    안종삼 전 구례서장 동상 제막

    6·25전쟁 때 민간인 480명의 목숨을 살린 고 안종삼 전 구례경찰서장을 기리는 동상 제막식이 24일 전남 구례경찰서 마당에서 열렸다. 안종삼 전 서장은 6·25전쟁으로 북한 인민군이 물밀듯 남하하던 1950년 7월 24일 사살 명령이 떨어진 보도연맹 소속 좌익 480명에 대해 이념의 갈등보다는 생명을 중시하며 고민 끝에 풀어줘 이들의 목숨을 모두 구했다. 안 전 서장은 이후 공산당의 잔당을 소탕하고 치안을 회복하는 데 힘쓴 공로로 총경 승진과 지리산지구 경찰전투사령부 정보참모에 임명됐다. 경찰직을 떠난 안 전 서장은 1956년 제2대 전남도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77년 유명을 달리했다. 안재경 전남지방경찰청장은 기념사에서 “안종삼 서장은 목숨을 건 결단으로 480명이라는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냈다.”며 “선배님의 소중한 정신을 귀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국민 생활 안전이란 책무를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동상은 안 전 서장이 주민을 방면할 당시 연설했던 구례경찰서 내에 좌대 2.4m, 동상 3.5m의 청동 재질로 당시 전투복 차림의 전신상으로 제작됐다. 구례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故 진창현씨 기념비 日에 제막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故 진창현씨 기념비 日에 제막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다 세상을 떠난 고(故) 진창현(1929∼2012)씨의 기념비가 일본 나가노현에 세워졌다. 나가노현 기소군 기소마치는 지난 21일 오후 신스이공원에서 고인의 부인 이남이씨와 신각수 주일 한국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과 추도식을 열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진씨는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1957년부터 기소마치에 터를 잡고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소마치는 일본 내 현악기 생산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진씨는 1961년에 도쿄로 활동 거점을 옮겼지만 기소마치는 그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기려 생전에 명예 주민증을 줬다. 비석에는 진씨의 얼굴을 새겼고 비석 옆에는 사망할 때까지 국적을 바꾸지 않은 고인의 뜻을 기려 무궁화를 심었다. 기념비 제막식과 추도식에는 신 대사를 비롯해 다나카 가쓰미 기소정장(면장)과 데즈카 기이치 지방의회 의장, 재일동포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 하정웅씨 등이 참석했다. 진씨는 1984년 미국 바이올린제작자협회로부터 세계에서 5명뿐인 ‘마스터 메이커’ 칭호를 받았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세계 최상품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13일 도쿄도 조후시 자택에서 대장암으로 숨졌다. 그는 병상 옆에 태극기를 두는 등 최후의 순간까지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세종대왕 동상 이전 제막식

    세종대왕 동상 이전 제막식

    세종대왕기념관이 있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공원에서 17일 열린 ‘세종대왕 동상 이전 제막식’에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등 내빈이 참석해 축하하고 있다. 덕수궁에 있다가 덕수궁 원형 복원 사업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진 세종대왕 동상은 1968년 서울신문사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조성한 것이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갑오년(1894년) 음력 1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시) 봉기로 발발해 같은 해 12월 전봉준 등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막을 내린 미완의 혁명. 그 정신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1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곡조에는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초들에게 두고두고 양각으로 아로새겨진 이 기억은 그러나 권세가들에게도 특별했긴 매한가지다. 무수한 세도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머리를 조아렸던 혁명이다. 그 정신을 오롯이 기리고 있는 전북 정읍·고창·부안의 동학로를 찾았다.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끝자락에 있는 황토현 전적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강암으로 된 비석 위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 즉, ‘폭정을 없애고 나라를 보존하여 인민을 안정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음력 4월 7일 이곳에서 정규 정부군인 전라 감영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최대 승리한 것을 이렇게 기념했다. ●과거 권력자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1963년 10월 3일 제막식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했다. 여기서 박 의장은 “동학혁명은 부패·당파싸움·사대주의에 물든 탐관오리들에게 항거한 최초의 대규모 서민혁명으로 그 정신은 길이 계승돼야 한다.”면서 “5·16혁명도 이념면에서는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윤식(69) 고창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은 “5·16군사쿠데타를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꼼수였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목적으로 전두환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황토현 기념관·전봉준 장군의 동상 등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읍농고에서 열린 13회 동학문화제에 참석한 이후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기념사업회장을 구속하고, 정읍군수·경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박대길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은 “군부정권이 행한 ‘정화사업’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적비 뒷산인 두승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배들평야, 서쪽으로는 부안군 백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동학로 끝에서 황토현로, 말목장터로를 따라오면 배들평야 끝으로 만석보터가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과 동진강이 만나는 곳에 새로 만석보를 만들어 군민들에게 물세를 물렸고, 이에 전봉준 등이 주동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자 사발통문을 쓰고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었다.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잘사는 사회” “정읍이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면, 고창은 동학농민군의 조직·사상이 잉태된 곳”이라고 고창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갑오년 음력 3월 20일 고창지역에 있던 손화중과 손을 잡고 무장현에서 봉기를 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충청도는 물론 경상·강원·황해도 등 전국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손화중은 당시 최시형과 함께 양대 동학접주 중 하나였다. 이런 점에 주목한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길은 전봉준로, 녹두로와 함께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등으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그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진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만 꾸미고 오직 제 혼자 온전할 방법에만 힘쓰면서 녹봉과 벼슬자리만 도둑질하니 어찌 다스려지리오’ 동학농민군로가 끝나는 지점인 전남 영광과 접한 무장현 봉기 장소에 있는 기념비에는 당시 만들어진 이 포고문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정부관료들에게 훈계해도 될 법한 글귀다. 농민이기도 한 진 소장은 “무장포고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서푼어치라도 매년 오르지만, 쌀값만은 십수년째 16만원 내외로 같은 값이다. 정부는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면서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국민평균소득 정도는 벌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118년전 동학농민군이 이루고자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회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민란 아닌 혁명인 이유는 ‘인권중시사상’ 과거 고부군에 속했고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 백산(白山). 이곳에서 열린 백산대회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 중 하나다. 해발고도 47m에 불과한 낮은 산인 백산은 사방이 평야지대에 홀로 솟아 시야 확보가 쉽고, 호남 서부지역 교통의 요지였다. 정읍 배들평야 쪽에서 이곳 백산까지가 동학로라 이름 붙여졌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갑오년 음력 3월 25~26일 1만명 가까운 농민군이 모였다. 전봉준 장군을 총대장으로 조직이 재편됐고 호남·호서 일대에 격문이 나붙었다. 백산에서 농민군 군율인 4대 명의·12조 기율도 제정된다. 왜 동학농민혁명이 ‘민란’이 아닌 ‘혁명’이었는지, 이 군율에 나타난다. 4대 명의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내용이, 12조 기율에는 ▲항복한 사람은 따뜻하게 대한다 ▲곤궁한 사람은 구제한다 ▲굶주린 사람은 먹여준다 ▲도주하는 사람은 쫓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진휼한다 ▲병든 사람은 약을 준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때 집결한 농민군은 한 달 뒤 조선왕조의 본향이자 전라도 수도인 전주성 점령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런 백산에서의 기억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부안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직접 계승한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정재철 백산고 국사교사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부안에 저항정신·애향심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힘으로 2003~2005년 2년 2개월여 전 군민의 방폐장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 지역 중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가장 활발한 곳도 역시 부안이다. 상서면 호암수도원에는 천도교 교구가 설치돼 있고, 주기적으로 집회가 열린다. 민관이 함께 통치하는 집강소를 세우는 등 새 시대를 열어가던 동학농민혁명군은 갑오년 음력 11월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하면서 급격히 쇠퇴한다. 한 달 뒤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전라도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고, 이듬해 을미년 음력 3월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말에 민초들은 이런 노래를 남겼다. ‘가보(甲午·1894년)세. 가보세. 을미(乙未·1895년)적 을미적 병신(丙申·1896년)되면 못 가보리’ 혁명이 성공했다면 달랐을까. ‘동학로’라 이름붙여진 서로 다른 길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농촌길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이 지역 쌀 생산은 전국 최고지만, 농민들의 소득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0회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 약수로를 소개합니다.
  • 성동 ‘왕좌봉 터 조성’ 열매

    성동 ‘왕좌봉 터 조성’ 열매

    성동구가 지역 정체성 찾기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왕좌봉(王坐峰) 터 조성 사업’이 열매를 맺었다. 5일 구에 따르면 마장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동명초등학교에서 폭 95㎝, 높이 50㎝ 크기의 왕좌봉 안내표지판 제막식을 했다. 주민 3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에서 1981년에 발간한 ‘동명연혁고 성동구 편’에 따르면 왕좌봉은 동명초등학교 내에 있었던 야산 봉우리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이곳에 앉아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서울의 지형을 살펴봤다고 한다. 또 태조가 이 봉우리에 올라 말 기르는 것을 관찰했다고도 전해진다. 김돈형 주민자치위원장은 “왕좌봉 안내표지판 설치로 마장동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주민들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득 구청장은 “지역 정체성 찾기 사업은 주민들이 직접 잊혀진 지역의 역사를 찾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사업이 주민들의 관심 속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노수희 “김정일 서거는 민족 최대 슬픔”

    노수희 “김정일 서거는 민족 최대 슬픔”

    지난 3월 2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100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을 거쳐 무단 방북한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이 5일 오후 판문점으로 귀환한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노씨가 밀입북해 우리 정부를 비방하고 북한을 찬양한 행위는 법 위반 사항”이라면서 “방북 경위와 북한 내에서의 행적 등을 조사한 후 관련 법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노수희 부의장의 평양 방문은 어느 모로 보나 정당하고 정의로운 애국적 장거”라며 “반통일 폭압 책동에 더욱 매달리고 있는 보수 당국의 처사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노 부의장이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고 밝혔다. 통신은 김 위원장과 노씨가 “동포애의 정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담화를 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노 부의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서거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상실이며 최대의 슬픔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씨는 지난 3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중앙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한반도 분열 사상 처음으로 남북 수뇌 상봉을 실현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마련해 주신 민족의 어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해서는 “북녘 겨레는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인민 사랑과 후대 사랑의 정치를 펴 나가시는 최고사령관님을 어버이로 믿고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녘은 정치적 안정과 막강한 경제적 잠재력에 의거해 강성국가를 반드시 건설하리라는 것을 느꼈다.”고 방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노씨는 김정일 사망 중앙추모대회(3월 25일)에 참석하고 만경대 김일성 생가(3월 26일)와 금수산기념궁전(2월 27일) 방문, 김일성 부자 동상 제막식(4월 13일), 김일성 100회 생일 중앙보고대회(4월 13일) 참석 등 60여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며 북한 김씨 일가를 찬양하고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행보를 이어 갔다. 그는 방북 다음 날인 3월 25일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적힌 화환을 바쳤다. 3월 26일에는 만경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국상 중에도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을 대신해 조국 인민의 사과를 만경대에 정중히 사죄드립니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노씨의 친북 발언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과 인민군 창건 80주년 등 주요 행사가 몰린 4월부터 노골화됐다. 지난 4월 4일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 최진수와 만난 자리에서는 “남과 북, 해외의 3자 연대를 강화해 자주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박태준 추모비 제막

    박태준 추모비 제막

    26일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태준 명예회장 추모비 제막식에서 추모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정준양(왼쪽 여섯 번째) 포스코 회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모비의 글은 이어령(두 번째)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존경의 뜻을 담아 작성했다. 왼쪽부터 강창희 국회의장 내정자, 이 명예교수, 고인의 아들인 박성빈씨, 부인 장옥자 여사, 황경로(전 포스코 회장) 추모사업추진위 공동위원장, 정 회장, 이배용(국가브랜드위원장) 추진위원 대표, 이기수(양형위원장) 추진위원 대표. 포스코 제공
  • 대법 “명백한 위험 있어야 국보법 위반”

    비전향 장기수 묘역에 추모 글을 쓴 통일단체 대표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그 정도 사안으로는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죄로 의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비전향 장기수 묘역을 조성하면서 표지석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고 적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모(65)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한 행위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원심 재판부는 “비전향 장기수를 돕는 일이 피고인들의 잘못된 신념일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인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장기간 수형생활을 감내하면서 신념을 지킨 망인들의 생전 뜻을 존중해 표지석에 칭호를 새긴 것은 망인들을 추모하려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권씨 등은 2005년 비전향 장기수인 고 금재성씨 등 6명의 묘역을 단장하자는 경기 파주시 한 사찰의 제안을 받고 묘역을 조성하면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고 적힌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고인을 추모하는 행위로 자연스럽게 용인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인들의 이념이나 주장, 선전 내용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표지석의 내용이 묘역을 찾는 일반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수원연화장 ‘노무현 추모비’ 건립 갈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경기 수원연화장의 노 전 대통령 추모비 건립을 놓고 추모비 건립 추진위원회와 보수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다. 추진위는 “서거 당시 수원연화장에서 국장을 치른 노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보수단체들은 “고향인 경남 봉하를 놔두고 왜 수원에 건립하느냐.”며 반대하고 있다. 22일 노무현대통령 작은 비석 수원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구성된 추진위원회는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수원연화장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하고 시민 모금 등을 통해 최근까지 2500여만원을 모았다. 이어 추진위는 지난 16일 수원시에 기부채납형식으로 추모비를 건립하겠다는 협조요청을 보내 허가도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추모비는 수원연화장 추모공원내 가로 6m, 세로 3m 크기로 세워질 예정이다. 하지만 보수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 경기도지부는 추모비 건립공사를 적극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엽제 전우회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은 수원과 아무런 연고도 없다. 사생결단 의지로 추모비 건립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19일 시작하려던 추모비 공사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저지로 무산돼 23일 3주기에 맞춰 제막식을 진행하려던 추진위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추진위는 22일 보수단체들의 반대 속에 공사를 재개했으며 이달 중 공사를 끝내고 제막식 행사를 가질 계획이지만 보수단체들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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