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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인사교류협약’ 파문 확산

    ‘5급이상 공무원 인사의 노조 동의’를 골자로 하는 경남도와 공무원 노조 협약(본보 7월6일자 7면 보도)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서고,노조가 강력반발하는 등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7일 협약안에 서명한 경남도에 강력한 주의를 주도록 허성관(許成寬) 행정자치부장관에게 지시했다.이총리는 이날 오전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면서 “교부세를 감액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배석했던 총리실 관계자들이 전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이병하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장은 지난 3일 ‘5급 이상 공무원의 도와 시·군간 교류때 인사 당사자와 기관장,직원대표의 동의를 거친다.’는 인사교류 협약서에 합의했다. 행자부는 경남도와 노조간 협약서를 자문변호사에 의뢰,법률적 검토를 거친 결과,법외단체인 공무원노조와의 협약안 서명은 원인무효라는 입장을 정리했다.행자부는 당초 시정권고 및 주의촉구를 하고,이행계획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이날 이총리 지시에 따라 재정적인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중이다.현행 법률에는 합법화 되지 않은 공무원 노조의 지자체 인사 관여에 대해 제재할 방법이 없다. 행자부 관계자는 “인사권은 단체장의 고유권한으로 신중한 인사를 위해 협의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동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경남도가 협약대상이 아닌 법외단체인 노조와 협약안에 서명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공노 경남본부측은 “중앙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중앙권력의 폭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면서 “총리의 지시에 따라 행자부가 불이익을 주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남도는 이날 행자부에 보낸 인사교류 협약서 서명과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일부 자치단체장의 인사전횡을 막기위해 5급 승진시 승진인원의 절반을 시험과 심사로 선발토록 관련법이 개정됐음을 상기시킨 후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의견수렴 차원에서 협약서에 서명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창원 이정규 서울 조현석기자 jeong@seoul.co.kr˝
  • [서울광장]‘盧心’이 무서워?/이목희 논설위원

    90년대 중반 김영삼 정권 시절이었다.한때 대권주자로 잘 나가던 박찬종 전 의원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4가지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박 전 의원의 ‘4심론(四心論)’은 ‘김심’(金心·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지지)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어 ‘당심’(黨心·전당대회 대의원의 지지)과 ‘민심’(民心·국민의 지지)이 순차적으로 따라와야 한다.이 과정에서 ‘언심’(言心·언론의 호의적 보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논리정연하게 대권의 길을 정리했던 그는 ‘김심’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당연히 ‘당심’도 못 얻었고,대권경쟁에서 멀어져 갔다. 5공화국 이래 대통령단임제가 지속되면서 박 전 의원의 ‘4심론’은 여당내 대권경쟁에서 항상 작동해온 원리다.여기에 하나 추가할 것이 있다.‘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다. 이제까지 한국 선거판의 최대 득표 요인은 ‘손님 실수’다.내가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상대가 실수를 하거나,전임자를 깎아내려 얻는 반사이익이 결정적이다.‘운칠기삼(運七技三)’은 도박판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뒤 대다수 여당 대권후보들의 행적을 돌아보자.정권 초기에는 납작 엎드려 집권자의 환심을 사는 데 주력했다.그러다가 대선후보가 되기 직전,혹은 대선 기간에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양태를 보였다. 노태우 후보는 1987년 ‘6·29선언’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했다.물밑에선 짰을지라도,겉모양은 그렇게 만들었다.92년 대선에 앞서 김영삼 후보는 노태우 대통령을 치받았고,이회창 후보는 97년 대선 막판 김영삼 대통령을 공격했다.2002년 대선 당시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여당을 떠나는 모양새를 취했다. 역사는 반복된다.여권내 대권주자들에게 ‘노심(盧心)’은 아직 무섭다.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4분의3이 남아 있다.차별화를 시도하기엔 너무 이르다.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꼼짝없이’ 내각에 들어간 것도 노 대통령이 그린 정국구도를 거역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김근태 복지부 장관은 특히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말도 그런 고심의 와중에 나왔다. 앞으로 여권의 권력지도는 노 대통령과 이들 몇몇 대권주자들의 밀고 당기기로 그려질 가능성이 높다.대권주자들로서는 어느 때 튀어야 ‘당심’과 ‘민심’을 얻는 데 유리한 지를 재느라 머리가 아플 것이다. 정치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이러한 대권경쟁 구도를 바꿔볼 때도 됐다.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야권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가 벌이는 자치단체 정책 경쟁도 괜찮아 보인다.대권욕심에 지방행정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왕 내각에 들어갔다면,대권주자라는 생각은 접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것도 방법이다.‘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고건 전 총리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권주자군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근본적으로 이제 ‘노심’을 업거나,혹은 차별화를 통해 차기를 노린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모두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이러한 때,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반사이익이나 기대한다면 아예 꿈을 접는 게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경박한 역사의 반복을 끊는 인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날이 곧 올 것으로 믿는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김선일 國調’ 위원장 자리싸움

    국회의 ‘고(故)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여야간의 ‘밥그릇싸움’이라는 구태로 인해 한동안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승인하고 한달간 국정조사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여야가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을 서로 맡겠다고 맞서는 바람에 계획서의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여야간 이견이 워낙 첨예한 상황이어서 1일 본회의에서도 계획서가 상정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새 정치’를 표방하고 출범한 17대 국회는 전날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데 이어 이날도 구태를 재연함으로써 여론의 거센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여야는 이날 본회의에 앞서 김선일씨 사건 진상조사특위를 열어 절충을 시도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총리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을 열린우리당측에서 맡은 만큼 국조특위 위원장은 야당이 맡는 게 순리”라며 이경재 의원을 위원장에 내정했으나,열린우리당은 “안보 관련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책임 있는 여당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나라당은 또 국정조사 대상에 한·미동맹 관계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활동 전반,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기관을 포함시키려는 것은 김씨 사건을 정치공세의 소재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제동을 걸었다. 한나라당측은 “당초 한나라당이 위원장을 맡겠다고 하자 열린우리당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다가 본회의 직전에 입장을 바꾼 것은 의도적으로 국정조사를 무산시키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다.이에 이종걸 부대표는 “협상기술상 미숙한 측면이 있었다.”고 자인하면서도 물러설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김상연 박지연 김준석기자 carlos@seoul.co.kr˝
  • “우리당 지도부, 개혁 둔감해진 초식공룡”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개혁에 둔감해진 몸집만 거대한 초식 공룡이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당의 ‘공식 입’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29일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이례적으로 지도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30일 “우리당 의원 30여명 정도가 부결에 가담한 것은 박 의원의 선거법 위반 문제와 부결이 가져올 국민적 파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결과”라면서 “과반 집권 여당이 중대한 사안을 ‘권고적 찬성’이라며 사실상 자유투표에 맡긴 것은 지도부가 국민의 개혁 요구에 둔감해진 탓”이라고 성토했다. 김 대변인은 “16대 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수 차례의 체포동의안 부결 등을 통해 보여준 ‘패거리 의식’때문이었다.”면서 “17대가 다른 점을 보여줄 첫 사례를 지도부가 망쳐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총선 전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1위이던 것은 몽골기병의 정신으로 대중의 개혁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었다.”면서 “지도부가 그같은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당 대변인으로서 이같은 발언이 부적절할 수 있지만,지금 누군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국민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17대 국회에서도 ‘방탄국회’의 구태가 재연됐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열린우리당 초·재선 의원들도 ‘지도부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최재천 의원은 “17대 국회에서는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개선하겠다고 해놓고 시범케이스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민의를 배신한 것”이라고 자성론을 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살인 방조” 확정 논란

    환자가 퇴원하면 숨을 거둘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퇴원을 허용한 의사는 가족의 요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살인방조죄로 형사 처벌의 대상이라는 대법원의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보호자나 환자가 원하면 환자의 퇴원을 허락,사실상 죽음을 방치해온 의료계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9일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를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양모씨와 3년차 수련의 김모씨에게 각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양씨의 지시로 환자를 집으로 옮긴 뒤 인공호흡기를 뗀 1년차 수련의 강모씨에게는 의료행위 보조자로서 전문의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피해자의 퇴원을 허용,피해자의 생사를 보호자의 보호의무 이행에 맡긴 것에 불과하므로 피해자의 사망을 계획적으로 조종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살인죄 성립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퇴원시키면 보호자가 보호의무를 저버려 피해자를 사망케 할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은 있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집으로 후송하고 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는 등 살인행위를 도운 점이 인정되므로 살인방조범으로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양씨 등은 1997년 서울 B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김모씨를 “치료비가 없다.”는 아내 이모씨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키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결국 숨을 거두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아내 이씨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식불명 환자 보호자의 입장을 존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살인방조죄로 보는 것은 의료현실을 전혀 모르는 처사”라면서 “보호자 및 법적 대리인 등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과 의학적 충고에 반하는 퇴원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춘천 414만평 주민 반발

    정부가 강원도 춘천지역의 수백만평을 매장문화재 지역으로 표시해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매장문화재 인정지역은 과거 그린벨트보다 강한 규제로 인해 주민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지역개발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7일 강원도와 춘천시에 따르면 춘천지역의 문화유적 분포지역은 신북읍 천전 율문리 361만 6000㎡를 비롯해 서면 서상 신매리 311만㎡,중도 235만 7000㎡,우두동 134만 6000㎡,동면 지내리 127만 2000㎡,삼천·온의·칠전·송암동 93만 4600㎡ 등 14개 읍면동에 모두 1367만 3000㎡(414만여평)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발굴조사 비용을 개인이나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을 비롯해 발굴후 보존지역으로 정해지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주택 신축 및 증·개축을 제한하고 공공개발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된다. 지역주민들은 매장문화재 지역은 제2의 그린벨트로 또다시 이중삼중 규제가 불가피하다며 지역실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면을 비롯해 신북읍,동면,우두동 등 4개 지역 주민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규제는 납득할 수 없다며 이미 문화재청 등 관계요로에 반대입장을 전달하고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특히 주민들은 강력한 규제를 전제로 하는 정부정책에 대해 시 차원의 대처가 미흡했다며 주민의견을 관철시키는 노력이 아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춘천시 관계자는 “매장문화재 분포지역을 대폭 축소하고 발굴조사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는 등 주민의견을 문화재청에 촉구했다.”면서 “지역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빈소에 나비 날아들자 유가족 눈물

    고 김선일씨의 시신 송환을 하루 앞둔 25일에도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주말인 26일에는 서울 광화문에 1만여명이 모이는 것을 비롯해 부산,광주,천안 등 전국 16개 시·도에서 추모 촛불집회가 열린다. ●빈소엔 삭지 않는 울분과 눈물 빈소가 마련된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시립의료원 1층 장례식장에는 이날 오전 6시30분쯤 연노랑 나비 한마리가 10분 남짓 날아다니다 조화에 장식된 리본에 앉자 아버지 김종규(70)씨는 “선일이 아니냐.”며 눈물을 떨궜다.유족의 이웃 박정신(58)씨도 “선일이의 혼이로구나.네가 이제 나비가 돼 조국으로 돌아왔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조문하러 온 부산 장림초등학교 학생들은 ‘추모의 편지’ 160여통을 전했다.학생 대표 김유아(13)양은 “아저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이라크인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세계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슬픔을 함께 하고 있으니 기분 상하지 마시고 평안히 잠드시길 기도한다.”는 편지를 울먹이며 낭독했다.고인의 동문인 한국외대 총동창회 양인모 회장은 빈소를 조문한 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가칭 ‘김선일 장학기금’을 만들고 추모비나 흉상 등 김씨를 추모하는 상징물을 학교에 건립하는 등 추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수시로 가족회의를 열고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한 관계자는 “가족장으로 치를 생각이며,3일장을 할지 5일장을 할지 등 구체적인 문제는 시신 도착 후 결정할 방침”이라면서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서울에서 민간 주도로 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건의했으나 유가족이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에 촛불 물결 서울 광화문을 비롯,부산과 대구,광주,춘천 등 전국 21개 지역에서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사흘째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전국 36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라크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공동대표 홍근수)은 이날 오후 광화문 KT 앞에서 ‘피랍은폐규명 촉구대회’를 가졌다.국민행동은 허버드 주한미국 대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피랍 사실을 외교부에 문의했다는 AP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미군 당국에 문의하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미군 당국은 사실문의를 받았는지,어떤 조사활동을 펼쳤는지,한국 정부와 상의했는지 등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25일 시작되는 ‘2004 우리농업 지키는 여름 공동농촌활동’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열고 “농활기간에도 일부는 상경해 추모집회에 참석하는 등 파병철회 운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성향의 목회자로 구성된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살리기 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비상구국기도회’를 열고 “정부에 한·미동맹 강화와 경제회생 노력을 촉구한다.”면서 “이라크 테러에 대한 단호한 응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산 김정한·서울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설] 닫힌 지갑부터 열게 하자

    민간 경제연구소장들과 경제학자들은 그제 박승 한국은행 총재 주재로 열린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정부의 기대섞인 전망과는 달리 하반기 우리 경제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한은 조사에서는 중산층과 고소득층마저 3년 6개월만에 소비 심리가 가장 위축된 것으로 드러났다.또 금융연구원은 우리 경제가 조만간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내수가 함께 부진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일본형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투자 위축,생산설비 해외 이전,경영 보수화 바람,고임금과 노동시장 경직성 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게 사실이다.문제가 이처럼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보니 처방도 쉽지 않다.과도한 유동성 때문에 금리를 내릴 수도 없고,천문학적인 재원을 요하는 국책사업을 쏟아낸 상황에서 감세 정책을 동원할 수도 없다.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가진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길밖에 없다.살아있는 생명체인 경제가 계속 움직이게 하려면 우선 심장과 동맥에 혈액(돈)이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래야만 모세혈관(없는 사람)에도 더운 피가 공급될 수 있다. 지난 1970년대 일본도 반기업 정서와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팽배했던 적이 있다.하지만 일본은 1980년대 이후 도덕성 회복운동과 경제 교육,복지·문화사업 확산 등으로 이를 극복했다.우리도 기업과 가진 자들의 도덕성 회복운동과 소비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대국민 홍보 노력이 병행된다면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되살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 유족 “AP문의 묵살 책임자 처벌”

    ‘다음 세상에는 추악한 전쟁과 테러가 없는 평화의 땅에서 태어나기를 빕니다.’ 고 김선일(33)씨 빈소가 차려진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의료원 영안실과 분향소가 마련된 부산 동구 사회복지관,경성대학 등에는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김씨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잇따랐다.선일씨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이날 부산지역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처참하게 피살된 선일씨의 영정 앞에 엎드려 명복을 빌며 실의에 빠진 유족들을 위로했다.이날 오후 5시 현재 정·관·학계 인사,시민단체 대표,시민 등 600여명이 고인의 빈소를 다녀갔다. 동부산대학에서 한국어 어학코스를 밟고 있는 일본인 아사리 유키(28·여) 등 일행 3명은 빈소를 찾아 “지난 4월 일본인들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억류됐을 때보다 더 슬펐고 경악했다.”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빈소를 찾아 영혼을 위로했다.”고 말했다. ●한편 선일씨 부모 등 유족들은 “시신이 빠른 시일내 유족에게 인도돼야 한다.”면서도 “시신이 훼손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크게 상심했다. 누나인 옥경(38)씨는 “AP통신이 이달초 동생이 나오는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신원 및 사실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는데도 이를 묵살한 게 사실인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고향서… 모교서… 조문행렬 줄이어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피살된 고 김선일씨에 대한 추모 물결이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가운데 23일 밤 늦게까지 부산 동구 거제동 부산의료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정·관계 인사는 물론,일반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유족들 “정부가 한 일이 뭐가 있나” 거칠게 항의 아들의 피살소식 충격으로 한때 병원으로 후송됐던 선일씨의 아버지 김종규(69),어머니 신영자(59)씨 등 유족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허성관 행자부장관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각각 오후 2시 30분,오후 7시 빈소를 찾아 선일씨 부모를 위로했다. 반 장관은 “미국정부는 물론 현지 성직자,부족장 등 동원가능한 모든 루트를 가동하는 등 석방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가 허망하게 나와 무슨 말로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나 유족들은 “정부가 도대체 한 일이 뭐가 있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김근태 상임고문 등 지도부 10여명,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과 권철현 부산시당 위원장등이 조문했다. 이에앞서 노무현 대통령 명의의 조화가 오후 2시40분쯤 도착,선일씨 빈소 안에 놓였으나 선일씨의 여동생 정숙씨는 정부의 태도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쓴 종이를 뜯어 내기도 했다. 지인과 일반시민들의 조문도 잇따랐다.시민들과 선일씨가 다녔던 부산신학교 출신 목사와 동창,용인고교 동창들이 찾아와 선일씨의 넋을 달랬다. 선일씨의 모교인 경성대 박경문 총장과 신학과 교수,재학생들도 이날 오후 단체로 조문했으며 이 대학 총학생회는 동문들의 조문을 위해 교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방명록에 “무능한 국가 원망 마시고…” 빈소에 비치된 방명록에는 김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석해 하거나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질타하는 글이 가득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은 “정말로 슬픕니다.”라는 간결한 조문을 남겼고,자신의 이름을 ‘다검’이라고 쓴 한 시민은 “이 불쌍한 나라에 태어나서 이런일을 당했구려.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 적었다.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한 조문객은 “우리나라 정치는 무엇을 했는가?”라며 정치권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한 시민은 “무능한 국가를 원망마시고 하늘에서 편히 잠드세요.”라며 명복을 빌었고,경성대학교 신학대 한 관계자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소서.”라고 썼다. ●美·정부에 시신 조속송환 촉구 부산시는 빈소 마련에 앞서 이날 오전 허남식 부산시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장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미국과 우리 정부에 조속한 시신 송환을 촉구하고,모든 장례절차를 적극 지원키로 했다. 선일씨 본가가 있는 동구지역 관할 구청인 부산 동구청도 관내 주민들로 장례특별위원회를 구성,장례를 지원하는 한편 주민들의 조문을 위해 동구사회복지관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美·日 군사일체화 제동?

    |도쿄 이춘규특파원|주한미군의 기능은 약화시키고,주일미군의 기능은 강화하는 게 핵심인 전세계적 미군 재편 계획이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의 연쇄 반발로 삐걱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일미군 강화의 핵심은 현재 미 워싱턴주의 미 육군 제1군 사령부를 도쿄 인근의 가나가와현으로 이동 배치하고,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중 2600명을 가나가와현 자마기지로 옮기며,항공자위대 총사령부를 요코다기지로 이전하는 것 등이다. 미군은 당초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포병부대 일부를 홋카이도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비공식적으로 일본에 타진했으나,홋카이도 지사가 강력히 반발하자 주일미군 사령부가 있는 가나가와현 자마기지쪽으로 선회했다. 그러면서 해병대 600여명은 아예 미본토로 귀환시키겠다는 방침을 비공식적으로 밝혔다. 아울러 최근 미국측은 자마기지의 기능을 강화시키겠다는 방침을 계속 시사하고 있지만,이번에는 마쓰자와 가나가와현 지사가 자마기지 강화 방침에 반발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47개 도(都)·도(道)·부·현 중 미군기지가 있는 24개 도·도·부·현의 섭외를 책임진 ‘도·도·부현 지사연락협의회’ 회장인 마쓰자와 지사는 미국을 방문,국방부 및 국무부 고위관리들과 잇달아 회담한 뒤 21일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고위관리가 미육군 1군단 사령부와 오키나와 해병대 일부를 자마기지로 이전,기지 기능을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이에 마쓰자와 지사는 “인구밀집지역인 가나가와현에서 더 이상의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기지 기능 강화에 반대하는 뜻을 전했다. 그는 또 미 해군 요코스카기지를 모항으로 하는 키티호크 항공모함이 4년 뒤 원자력항공모함으로 대체되는 것에 대해서도 안전성을 문제삼는 일본 내 여론을 들어 반대 의사를 전했다.이에 미 국방부 관계자는 “원자력항모 취항은 결정되지 않았지만,안전성은 자신한다.”면서 배치를 타진했다고 전했다. 마쓰자와 지사는 또 국무부 카이저 부차관보와 회담에서는 주일미군의 형사재판 절차 개정과 환경 문제를 포함,기지 내에서 일본의 국내법 적용 등 미·일지위협정의 개정을 요청했지만,미측은 개정에는 응하지 않고 법운용을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일본 일부 언론들도 일본 내에서의 미군 재배치 작업이 양국 고위관리가 비공식 언급을 통해 여론 동향을 타진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양국 정부가 공개적이고,투명한 방법으로 미군 재배치를 추진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출산율 급락 충격의 日열도

    일본 열도가 ‘출산율 저하’ 충격에 빠져 있다.1947년 한 해 출생자가 268만명이었으나 지난해는 절반도 안되는 112만명까지 줄었다.일본 여성들의 지난해 평균출산율(여성 1명의 평생 평균출산아 수)도 1.29로 최저였다.이에 따라 가정이 위기를 맞고,일본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신생아는 줄고,고령자는 늘어 국민연금이 위험해지고,적정 경제성장률 유지도 어려워지는 것이다.출산보국(出産輔國)이란 말까지 나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실제 일본정부는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장래인구 추계를 토대로 2002년 1.32의 출산율이 2007년 1.30을 최저로,그 후엔 50년간 1.39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토대로 올해 국민연금법을 개정했다.그렇지만 지난해 출산율이 하한선 아래인 1.29로 떨어졌다는 통계가 나오자 연금법 재개정론이 비등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17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가 200만명 대에서 지난해 110만명 대로 추락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국민연금을 낼 사람은 줄어들고,받을 사람은 늘어나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취지의 걱정을 했다. 일본 사회는 3년 뒤로 예상됐던 인구 감소 현상이 더욱 앞당겨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대 여성 31%만 “결혼 꼭 필요” 출산율 급속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출산을 가장 많이 해야 할 20대 여성 인구 자체의 감소와 결혼기피,만혼화,출산기피 등이 꼽힌다. 일본 내각부가 6월에 발표한 일본국민의 사회의식 조사에서 젊은층의 결혼기피 의식이 현저했다.일본국민 전체적으로는 83.3%가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으나 20대 남성은 66.9%에 그쳤다.특히 20대 여성은 63.5%였다.그 중에서 적극적으로 결혼의 필요성을 인정한 응답률은 31.0%에 머물렀다.출산율 저하는 10년 이상 장기불황의 영향도 큰 것 같다.일본에선 장기불황으로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을 ‘패러사이트(parasite·기생) 싱글’이라 불러,최근 유행어가 됐다. ‘고령사회를 좋게 할 여성회’ 사무국 이고리는 “주변에 결혼을 하지 않은 30∼40대 남녀가 굉장히 많다.”면서 “결혼을 하면 생활유지가 어려워지고,속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말했다.아울러 “패러사이트 싱글들이 20∼30명씩 어울린 각종 동호회가 대유행”이라고 덧붙였다. 결혼기피는 수치로도 나타났다.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해 인구동태통계에 따르면 만혼화와 결혼기피가 제동이 걸리지 않아 평균초혼연령이 무려 29.4세로 사상 최고로 높아졌다.혼인건수도 74만 220쌍으로 전년보다 5.7%나 줄어들었다. ●“아기를 낳아 주세요.” 출산율 제고를 위한 일본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현재 1억 2779만의 인구가 2050년에는 540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에 따른 것이다.일본정부는 특단의 소자화(少子化) 대책의 결정판으로,‘차세대 육성지원 대책 추진법안’을 만들었다. 이 법은 출산 후 1년간 부모가 회사를 휴직하고 아기를 돌볼 수 있게 하는 육아휴직제도 시행이 핵심이다.출산과 육아에서 개인의 의무와 부담을 더욱 줄였다.대신 직장과 사회 전체가 골고루 나누고 지원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한다는 데 목표를 두었다.근무시간 단축과 야근 금지도 추진한다. 실제로도 지난 10여년간 지속된 일본정부의 출산율 제고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출산율 제고 예산으로 2조 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출산수당이 일시불 300여만원이고,사산,유산수당도 준다.불임부부에게 연간 약 100만원의 치료비를 보조한다.그렇지만 육아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은 여전히 비용문제를 들면서 시큰둥하다.여성이 육아를 거의 전적으로 책임지고,집이 좁고,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문화·사회적인 한계도 정부대책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taein@seoul.co.kr˝
  • 연기자로 거듭난 개그맨 한상규 ‘느끼세~요’

    한상규(30)는 ‘튀는’ 개그맨이다.추구하는 웃음의 형식과 내용은 물론 지나온 삶 자체도 튄다. 지난 95년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요란하게 데뷔했다.하지만 10년 뒤인 올초 KBS 2TV ‘폭소 클럽’을 통해서야 지긋지긋한 무명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느끼세∼요’란 유행어와 함께 스탠딩 개그의 진수를 선보이며 김제동의 뒤를 이을 재담가로도 평가받는다.그러나 아직도 오랜 목마름이 가시지 않아서일까.이제 개그맨이 아닌 연기자로 튀려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MBC 일요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사이’에서 극중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한주임’역으로 고정출연하고 있다.홍보팀장인 김정난과 주임 조미령 사이를 긴장과 웃음으로 몰아붙이며 독특한 감초 연기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것.올 가을 프로그램이 개편되면 다른 시트콤에도 출연,코믹 연기자로서 입지를 굳힐 계획이다. “새로운 영역에서도 제 특유의 웃음을 선보이고 싶었어요.장르가 다르다고 웃음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지난해 주위 몰래 영화 ‘낭만자객’ 오디션을 봤을 정도로 정통 개그는 물론 연기에도 평소 관심이 많다. 대학(서울예대 연극과)에서 연기를 전공했다.이제야 자신의 본 모습을 찾은 걸까.“이전까지 제가 하고 싶은 개그나 배역을 거의 해보지 못했어요.항상 점잖은 캐릭터였죠.‘폭소클럽’에 출연하기 전까지 한동안 대학로무대(개그콘서트)에서 라이브 공연에만 몰두한 것도 저만의 웃음 색깔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어요.”시트콤의 극중 역할도 실제 ‘튀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닮아 연기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많다며 특유의 웃음을 짓는다. 그는 자신을 ‘호두’에 비유했다.“처음엔 딱딱하지만 깨고 나면 그안에 맛있는 열매가 들어있죠.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웃음과 재미가 우러나는 개그와 연기를 펼쳐보일 겁니다.” ‘장인정신’이 연기 철학이다.전문적인 개그·연기 수련을 거친 사람이 제대로 된 개그·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어려웠던 시절이 뼈에 사무쳤기 때문일까.“재능이 있는 후배들이 많은데 그들의 끼를 살려줄 기회가 거의 없어요.능력이 되면 후배들이 마음 놓고 개그와 연기를 할 수 있는 ‘열린 무대’를 꼭 만들 겁니다.” 그는 시트콤 연기로 ‘내공’을 쌓은 뒤 교양·오락프로그램 MC로도 활동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지칠줄 모르는 ‘튀는’행보가 어디까지 다다를지 지켜보자.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다음 네티즌이 꼽은 서울신문] “아파트 평당 200만원 부풀렸다”

    |이효용 기자| 지난 1년동안 서울시가 동시분양한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 단계의 건축비가 감리자 모집 단계의 신고액보다 평당 196만원,가구당 6500만원씩 부풀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건설업체가 건축비 과다책정과 허위신고로 폭리를 취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 동시분양아파트 건축비의 허위신고 실태를 공개했다.경실련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시가 동시분양한 아파트 159개 사업 중 확인 가능한 113개 사업 2만 1500여 가구를 조사한 결과,대다수 사업주체가 건축비를 허위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으로 ■ 100자 의견 ●공무원들과 건설업계는 가족처럼 똘똘 뭉쳐 보기 좋다 은둔자님 생각 그동안 애꿎은 서민 많이 죽어 나자빠져 있겠지만 그게 뭐 대순가. ●이기 우째 시장원리인고 조폭원리지 김현주님 생각 분양가 담합하고 지 마음대로 부풀리는 기 우째서 시장원리인고 조폭원리지. ●시장경제 원리 좋아하네 딩당님 생각 그저 알아서 하라고 놓아두면 담합에 불공정거래가 판치니 국가에서 제동을 걸어주는 거야.그 이유는 약자인 소비자를 위해서이지. ●삼성전자가 그렇게 순익을 내고 있을 때는 왜 웃기네님 생각 아무도 원가공개하라고 하지 않았나? 만만한 게 건설업인가? ●역시 우리나라는 랜디로즈911님 생각 저렇게 분양원가 뻥튀기를 해대니 원가공개 못하지.비자금 만들어서 차떼기로 퍼다주고. ●간만에 hjmoon003님 생각 10년 동안 열심히 아끼고 아파트다운 곳으로 이사했는데 분양가 공개 운운해서 아파트 값 내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 가족업무 이관 부처 대립

    여성부가 업무영역 확대를 놓고 보건복지부·문화관광부와 불편한 관계다. 여성부는 15일 대통령 산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 복지부의 가족분야와 문광부의 청소년 업무,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를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여성부는 “여성과 아동,청소년 등 가족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가족해체 현상이나 청소년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이들 업무가 여성부로 통합·이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렇게 되면 여성부는 단순 여성 관련 업무를 넘어 사실상 ‘여성·가족부’로서 업무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여성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복지부 등은 제동을 걸고 나섰다.복지부의 업무 중 보육업무는 지난 12일부로 이미 여성부로 넘어갔다.이에 따라 복지부의 보육TF팀장(김호순),사무관 1명,주사 1명이 여성부로 자리를 옮겼다.복지부는 보육(5세 미만)을 가져간 것도 못마땅한데,아동(18세 미만)까지 가져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동업무는 기초생활보장 등 복지와 관계가 많은데 이것만 따로 가져가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여성부는 업무의 효율성보다는 ‘땅따먹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부는 지난 11일에도 정부혁신위에서 ▲가족·아동·노인복지·청소년 업무를 가져오는 방안과 ▲청소년 업무만 먼저 가져오는 방안을 보고했다.복지부 등 다른 부처는 사전협의 없이 이런 보고를 한 데 대해 언짢아하면서 반대논리를 16일 혁신위에 보고할 방침이다.아동과 노인,인구,가정 업무를 여성부에 넘겨줄 경우 가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보건·복지행정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특히 2007년부터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대표적 사회안전망인 ‘공적노인요양제’ 실시를 앞두고 노인업무를 넘겨주면 제도 도입 초기부터 혼선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문광부 관계자는 “청소년정책에 취약한 부처가 조직강화용으로 업무이관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주의”라며 “청소년 기능과 전혀 관계없는 여성부가 이 업무의 이관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日경제계도 개헌 본격가세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내년 창당 50주년을 겨냥해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 경제단체들도 개헌 논의에 본격 가세할 채비다. 일본 경단련(經團連),경제동우회,일본상공회의소 등 경제 3단체는 2차대전 때 ‘군·산 일체화’에 대한 반성이라며 전후에는 헌법문제나 안전보장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피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돌변,개헌논의에 앞다퉈 가세하고 있어 앞으로 경제단체들의 헌법논의가 어느 선까지 이뤄질지 벌써부터 관심이다. 지난 5월말 총회에서 ‘국가의 기본문제 검토위원회’를 설치한 일본 경단련은 14일 회장·부회장 회의에서 헌법개정과 안전보장 등에 대한 논의를 7월부터 시작하기로 정식 결정했다.가을까지 경단련의 안을 만들어 헌법개정안에 반영토록 제안할 방침이다. 일본상공회의소도 최근 ‘헌법문제에 관한 간담회’를 설치,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 등 헌법의 핵심조항은 물론 공공·복지관계 등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을까지 자체 제언을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7월6일 첫 헌법 관련 회의를 연다. 경제동우회는 3단체 중 가장 먼저 지난해 4월 ‘헌법문제조사회’를 설치,‘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대강을 확립하는 게 필수’라는 등의 헌법개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일본 경제단체들은 전후 일본군국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아시아지역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정치는 정치,경제는 경제’라는 입장을 보였다.그러면서 헌법과 안전보장,외교 등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극력 피하며 ‘민간경제외교’ 활동을 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라크 정세나 국민연금문제 등 경제를 둘러싼 정세가 변하고 있다면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이란 입장으로 급선회,“헌법개정 등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taei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黨·靑 다시 한목소리 내나

    “한 곳에서 결정하면 다른 곳에서 따라가는 게 바람직한가.일사분란하게 우왕좌왕하지 않고 아무 군소리 않고 따라 가는게 좋으냐?” 최근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백지화 파동의 주역이라 할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원장의 볼멘 소리다.그는 13일 집권여당과 청와대 또는 정부와의 정책혼선에 대해 “당청은 건전한 새로운 시도를 모색 중인 것으로 봐달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당청은 최근 ‘수시 협의’를 통해 ‘공통분모’를 열심히 찾고 있다.그동안 노출된 균열양상에서 벗어나려고 봉합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주요 정책을 둘러싼 엇박자를 계속 냈다간 상처만 입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의 발로로 풀이된다. ●“집값 안정이 최우선” 당청 또는 당정이 파열음을 낸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문제는 당정 협의를 거쳐 결론을 내리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홍 위원장은 이날 ‘분양원가 공개문제가 사실상 원가연동제로 결론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어떻게 하면 집값을 안정시키고 주택을 많이 공급하느냐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서 “국회 상임위에서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참여연대 등과도 토론해야 한다.”고 밝혔다.국민 여론과 정치권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뜻이다.그러면서 그는 “참여연대측에서도 원가공개는 개혁,공개안하는 것은 비개혁이라는 지적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가연동제로 결론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재검토 논란도 당청이 한자리에 모여 해결하기로 했다.노무현 대통령은 오는 16일 신기남 당 의장,천정배 원내대표 등 우리당 지도부와 국민통합실천위원회 이미경 위원장과 위원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조율에 나선다. 이 문제는 재검토를 요구하는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에서만 67명이나 돼 추가 파병이 여당에서부터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정부측 우려가 제기됐었다. 그러나 서명에 참여한 유승희 의원은 대표자격으로 “이번 서명은 파병 철회를 위한 서명이 아니라 재검토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보자는 수위에서 서명받은 것”이라고 해명한 뒤,“당내에 ‘파병검토위’를 구성,심도있게 논의하자.”고 지적했다.오는 17일 정책의총에서 이에 대한 당론을 모을 예정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예정대로” 열린우리당측은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오는 15일 당 정책의총에서 이같은 입장을 내놓기로 했다.당정은 서로의 관계가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견고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했다는 소식에 “행정수도를 이전하면서 국민투표를 한 나라가 과연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한나라당이 과반수 1당일 때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홍 정책위원장은 “외국에서도 국민투표로 수도 이전을 결정한 나라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주말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만찬 때 이와 관련해 국민투표는 없다고 밝힌 것을 뒷받침하는 ‘지원사격’인 셈이다. 당정 관계는 당분간 혼선보다는 화합쪽으로 비중을 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삐거덕거릴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당·정 모두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고 있는데다가 108명이나 되는 초선들이 어떤 돌발상황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日소비자 ‘본때’ 보였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소비자들도 화났다.올 초부터 일련의 거짓말을 하며 차체결함을 숨겨온 미쓰비시자동차를 외면하고 있다.광역단체의 80%가 미쓰비시차와 계약을 보류하거나 취소했다.따라서 미쓰비시자동차의 5월 국내판매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6.3%나 줄었다. 판매대리점들은 속속 문을 닫고,일본내 주력공장인 오카자키공장은 금요일 휴무를 결정,주 4일만 근무하게 됐다.일부 국내공장의 폐쇄도 눈앞에 두고있다.사원들은 “회사가 해체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걱정이 태산 같다. 미쓰비시자동차 문제는 정권에도 부담이 될 분위기다.일본 정부는 11일 “회사 스스로의 노력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으나,관할 국토교통성은 책임론에 휘말렸다. ●최고경영자도 체포,사태 확산 일본 야마구치현 등 경찰은 10일 가와소에 가츠히코 미쓰비시자동차 전 사장 등 경영진 6명이 자사 차량의 클러치계통의 결함을 은폐,한 운전자를 사망사고에 이르게 한 혐의로 체포했다.적용된 혐의는 과실치사다. 이들은 지난 2000년 리콜(무상회수,수리) 은폐사건이 발각된 뒤에도 클러치계통의 결함을 조직적으로 은폐,리콜을 신청하지 않았다.이로 인해 한 남성 운전자(당시 39세)가 2002년 10월 야마구치현에서 이 회사의 차량을 몰다가 제동불능에 빠져 사망사고를 당했다.이 남성의 가족들은 전날 “수개월전부터 차가 이상하다고 했는데,리콜을 조금만 빨리 했어도 죽지않았을 것”이라며 미쓰비시측이 살인자나 마찬가지라고 규탄했다. ●계속되는 은폐,거짓말에 소비자들 외면 경찰은 미쓰비시차측이 1977년부터 소비자 불만을 2중으로 관리,일부를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부끄러운 일로 회사의 명예와 신용이 위협받을 수 있다.”면서 ‘간이 수리’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결함을 10년안팎 은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쓰비시는 2002년 7월 리콜을 은폐한 사건이 처음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뒤에도 은폐를 계속해왔다.올 3월에는 계열사인 미쓰비시후소트럭·버스가 차량주변 부품인 하부의 결함을 12년간 은폐한 사실이 발각됐다.이로 인해 전 회장 등 5명이 기소되기도 했다.하지만 이후에도 은폐와 거짓말은 이어졌다.대형차의 클러치부품을 포함한 4건의 리콜은폐가 발각됐다.지난 8일엔 하부,클러치,그리고 연료탱크이탈 등 93건의 결함을 은폐,리콜을 게을리한 게 드러났다. 특히 모회사격인 미쓰비시자동차도 지난 2일 거의 전 승용차 차종인 19개의 차종에서 16만대의 결함은폐를 자백하면서 소비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들은 불매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통해 미쓰비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판매점들은 무상수리,100만원 할인판매 등 자구노력을 펴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냉혹한 심판에 점차 지쳐가고 있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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