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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감성에 휘둘리는 국민참여재판 새 틀 짜야

    전주지법이 그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받은 안도현 시인에 대해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죄는 인정하되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법리와 배심원 평결 사이에서 어정쩡한 제3의 길을 택한 셈이니 법원 판결이 언제부터 타협과 절충의 대상이 됐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안 시인은 지난 대선 문재인 민주당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트위터에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올려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만큼 애당초 이번 재판은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문 후보가 전북 지역에서 86.25%의 몰표를 얻은 걸 감안하면 이 지역 배심원들의 공정성도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하다. 배심원 평결이 정치적 편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제고하는 게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라면 정치적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게 옳은지 따져볼 일이다. 국민참여재판은 당초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사건과 부패범죄 등에 한해 시행됐다. 그러다 지난해 7월부터 대상 범위가 형사합의부 사건 전체로 확대되면서 부쩍 파열음이 늘고 있다. 정치적 사건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이 여론과 감성에 휘둘릴 가능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법의 중추인 법관마저 정치색 짙은 판결을 일삼는 형국이고 보면 정치 사건일수록 외려 평균적 국민의 상식적 잣대가 필요한지 모른다. 일각에서는 특정 지역의 민심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법원에 재판지 변경 신청을 하거나 재판부가 참여재판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요컨대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도입 5년 만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핵심이라 할 정치적 사건을 무조건 배제해 제도 자체를 형해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배심원 선정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평결 방식을 바꾸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한 긴요한 플랫폼으로 뿌리를 내려야 마땅하다.
  • “한국 법령시스템 전수 희망” 아시아에 법제도 한류 가속

    한국의 발전경험을 법률로 제도화한 한국 법률제도의 동남아 전파가 속도를 내고 있다. 베트남, 몽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새마을 관련법과 한국의 법령정보시스템의 전수가 구체화되고 있다.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뒷받침해 온 한국의 법률제도와 관련 경험을 배워 가겠다는 이들 국가의 높은 관심 속에서 이에 호응한 법제처 등 우리 정부의 전파 노력이 어우러져 급물살을 타고 있다. 7일 법제처에 따르면 정부는 몽골에 한국의 법령 정보와 입법 관련 법제정보, 입법 경험 및 노하우 제공을 본격화하기로 하는 등 몽골 정부가 진행 중인 사법개혁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또 몽골 법제 관계자의 한국 연수 등 전문 인력의 교육·교류 프로그램도 넓히고 법제 관련 기관 간 공동 사업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시스템’ 구축 노하우와 운영 기술을 전수하는 등 인도네시아의 관련 시스템 수준을 높이는 데 법제처가 힘을 빌려 주기로 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앞서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인도네시아 법무인권부를 방문해 데니 인드라야나 차관과 회담을 갖고 법령정보 교류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태국과도 올해 내에 태국 내각사무처와 우리 법제처 간에 법제교류·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로 하는 등 법령정보 교환 등 실질적 교류·협력 기반을 넓혀 나가기로 했다. 베트남과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올 하반기로 예정된 베트남 법무부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의 법제 경험과 법령정보시스템 전수를 체계화하고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법제 한류’의 분위기를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베트남 측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법률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 활용할 수 있는 한국의 법령정보시스템과 행정절차 개선 및 행정규제 개혁 업무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정부는 베트남과 해당 분야의 각종 교류·협력 제도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법제처 관계자는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 국가 공무원들 사이에 한국법과 제도를 연구하는 분야별 모임이 활성화되는 등 법률제도 분야의 한류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제처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뒷받침한 법제의 발전경험을 아시아 국가들과 나누고 법제 한류의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오는 13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의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아시아법제교류 전문가 회의를 연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외교관 해외근무 방식 22년만에 변경

    여성 외교관이 급증한 데다 본부 인력의 부족 현상이 만성적인 문제로 제기되면서 현재와 같은 ‘냉탕’(험지)과 ‘온탕’(선호지) 재외공관을 초임 외교관들이 연속 근무하는 방식이 22년 만에 바뀐다. 27일 외교부에 따르면 외교관들의 해외 근무가 험지와 선호지가 연속되도록 제도화한 ‘외무공무원의 인사 등에 관한 예규’ 개정안이 1991년 마련된 후 처음 개정된다. 이에 따라 외교관 근무 패턴은 ‘선호지 근무 → 험지 근무 → 본부 근무’에서 ‘해외 근무 → 본부 근무’로 단순화 된다. 현재는 미국·유럽 등 선호 지역의 공관에서 근무할 경우 본부로 복귀하기 전 아프리카·중동 등 험지 공관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속 근무로 초임 외교관의 경우 해외 체류 기간이 최장 5년 이상으로 길어졌다. 어학 연수(2~3년) 기간까지 겹칠 경우 7~8년을 해외에 머문다. 외교부 본부에 해외공관 근무 경험이 있는 실무 인력의 만성적인 부족 현상이 증폭되면서 컨트롤타워 기능도 약화됐다는 판단이다. 여성 외교관 비율도 크게 늘면서 결혼 및 육아 문제에 따른 해외 근무 제도 개선 요구가 과거보다 커진 것도 제도 개선의 이유가 됐다. 결혼이나 출산·육아를 이유로 장기간의 해외 근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현재 외교부의 여성 비율은 32.68%(703명), 외교부 본부의 여성 비율은 47.83%(530명)에 달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외교관들의 해외 근무 방식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꿈의 5급’ 면접만 남았다… 선배들이 알려주는 합격 필살기

    ‘꿈의 5급’ 면접만 남았다… 선배들이 알려주는 합격 필살기

    지난 17일 국가직 5급 행정직 공무원 제2차 필기시험 합격자 명단이 공개됐다. 일반행정(전국) 143명, 재경 87명을 비롯해 총 321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5급 행정직 공무원 선발 예정 인원은 262명이다. 1.2대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자가 되려면 이제 면접시험을 통과하는 일만 남았다. 면접시험은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다음 달 8~9일 이틀에 걸쳐 실시된다. 면접 준비에 매진할 수험생들을 위해 지난해 임용된 이종원(왼쪽·31·일반행정직·안전행정부), 김미진(오른쪽·26·여·재경직·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부터 면접 경험을 들어봤다. 이 사무관은 4번의 도전 끝에 5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이 사무관은 “공부하는 동안 합격에 대한 확신보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때가 훨씬 많았다”면서 “시험에서 계속 떨어질 때마다 공무원이 되기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고 묵묵하게 전진하다 보니 어느덧 기나긴 수험생활이 끝났다”고 말했다. 5급 공무원 면접시험은 ‘토의 면접’과 ‘역량 면접’(개인 발표와 개별 면접으로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토의 면접은 면접자 6~7명이 한 조가 돼서 90분 동안 제시된 토의 주제를 놓고 각자의 의견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사무관이 시험을 봤던 당시 출제된 주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선거 운동과 정치 활동’이었다. 그는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SNS를 이용한 정치 참여에 긍정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이미 SNS가 거대한 사회적 흐름의 하나가 됐다고 전제한 뒤 SNS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통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이 정치적 무관심에 있다고 분석했고, 가치갈등 해결보다는 이익 분배로 전락해버린 정치 현실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SNS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공적 영역으로 들어오고, 이것이 성숙한 형태로 제도화된다면 정치를 향한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의견을 매듭지었습니다.” 토의 면접은 단순히 면접자들이 찬반 논리를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다. 면접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상대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일은 필수다. 이 사무관은 “SNS를 통한 정치 참여를 무분별하게 허용할 경우 오히려 정치에 대한 반감만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한 주장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뒤에 재반론을 폈다”고 전했다. 토의 면접 후 진행된 개별 면접에서 이 사무관은 “살아가면서 매우 힘들었던 경험을 묻는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뻔한 대답을 하기에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가식적이거나 거창한 대답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고시 공부 기간이 길어지면서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공무원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라며 괴로워했던 일을 진솔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면접위원들이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김 사무관은 집단에서 갈등을 겪었던 경험을 묻는 개별 면접 질문이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예상 질문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월하게 대답을 했지만, 면접위원이 다른 경험은 없느냐고 추가로 물었을 때 잠시 말문이 막혔다”면서 “면접을 준비할 때 집단 안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사례, 갈등을 겪은 뒤 이를 해결한 사례 등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많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김 사무관은 개인 발표 시간에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외국인 밀집지역의 슬럼화에 대한 주거환경개선 대책’이라는 주제가 주어졌는데, 문제가 요구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발표했던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잘못 읽고 문제가 요구하는 시각과 정반대 시각에서 답을 했어요. 면접위원 한 분이 이를 지적했을 때 너무 당황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어요. 하지만 생각을 다시 정리할 시간을 청한 후 다시 답변을 했어요. 처음 가진 생각이 잘못됐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그 논리를 계속 관철하려 하기보다는 잘못을 빠르게 시인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개별 면접은 사전조사서를 중심으로 인성 및 업무 역량을 평가하는 자리다. 면접위원은 면접자가 작성한 사전조사서를 보고 심층 질문을 한다. 때문에 사전조사서는 잘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김 사무관은 “지금까지 해왔던 봉사 활동이나 동아리, 친목회 등 사회 활동에서 느꼈던 경험을 공직 가치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연습을 많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남은 기간 동안 신문을 매일 읽으면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예상 문제를 만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의정 포커스] 이동영 관악구의원

    [의정 포커스] 이동영 관악구의원

    “사회적경제는 아래로부터의 경제민주화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영글게 하는 통로죠.” 요즘 곳곳에서 사회적경제가 화두다. 공생·공유·협동 등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경제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존 경제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23일 만난 서울 관악구의회 이동영 의원은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하지만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제각각 진행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따로따로 놀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유기적으로 묶고 협력 체계를 마련해 새로운 경제 생태계 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회적경제가 단기적 성과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위해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전국 지방의회 의원들이 힘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오는 30일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전국사회적경제지방의원협회 창립대회를 가리킨다. 현재 487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의원은 서울 지역 공동대표를 맡았다. 참여 숫자가 전체의 13%에 불과하지만 여야와 다수냐 소수냐를 떠나 정당을 초월한 모임이라는 게 큰 강점이다. 협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 29명이 의기투합한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 국회의원 20명이 뭉친 국회 사회적경제포럼과 함께 사람 중심의 경제 생태계 조성에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눈앞의 과제는 사회적경제 기본 조례를 마련하는 것이다. 분산돼 있는 사회적기업 지원 조례나 협동조합 조례 등을 포괄하는 상위 조례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 의원은 지방의회별로 조례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임기 내에 여의치 않다면 내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 사회적경제센터와 함께 표준 조례안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를 포괄하는 상위법인 사회적가치법이 제정된다면 시너지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5, 6대 재선인 이 의원은 가장 보람을 느낀 의정 활동으로 주민참여예산 제도화를 위한 조례 발의와 도시형 보건지소 유치를 꼽았다. 보건지소는 난곡 지역에 이미 세웠고, 봉천 지역 유치를 확정한 상태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아직 미운 오리 새끼 대접을 받는 지방자치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애쓰겠다고 강조했다. 또 세출은 늘고 세입은 줄어들며 지방재정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며 개선책을 내놓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려면 주민의 힘이 절실하다”며 “평소에는 깐깐하게 관심을 가져 주고, 선거 때는 냉철하게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로비스트의 명암/최광숙 논설위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에서도 요즘 잘나가는 코너 중의 하나가 ‘로비스트’다. 몸뻬 바지의 뽀글이 파마를 한 개그우먼 박지선과 김민경이 바로 아줌마 로비스트들이다. 이들은 영국의 명문 축구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사러 가서는 “3조 6000억원 달라”는 구단을 “그냥 3억에 줘”라며 가격을 후려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전개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실제 로비스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정서가 있는 게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각종 특혜 의혹과 스캔들의 중심에 섰던 린다 김이 거기에 한몫했다. 현직 국방장관과 전직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샌타바버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 한 그 추억을 음미하며… 안아보고 싶다”는 진한 러브 레터를 받았던 미모의 로비스트를 누군들 곱게 볼까.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권력형 비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관여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 정권 실세들이 감옥행을 한 것도 모두 음지에서 로비스트로 활동을 하다가 철퇴를 맞은 것 아닌가. 정몽준 의원 등이 지난 17대 국회에서 부패 근절을 위해 로비스트를 양성화하자는 관련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 미국처럼 국회와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로비스트의 등록을 의무화해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거래를 없애자는 취지였다. ‘로비의 제도화’의 저자 조승민 연세대 객원교수는 “로비스트의 양성화로 정부의 정책 결정에 어떤 이익집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이 공개됨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를 확보하게 되고, 정치자금 등도 투명하게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비스트의 양성화가 마치 불법 로비활동을 용인하는 것처럼 오해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로비스트연맹’이 앞으로 로비스트라는 단어 대신 대(對)정부 전문가로 불러달라고 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로비스트가 단순히 의회를 돌아다니며 입법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홍보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국정감사가 열리는 요즘 기업에서 대국회·정부 업무를 위해 정·관계 인물의 영입에 적극 나서면서 국회 보좌관들의 몸값이 상한가라고 한다. 대국회·대정부 로비스트로서 이들이 무슨 일을 할 지는 짐작이 간다. 이들의 활동을 바라만 봐야는지, 아니면 로비스트를 합법화해 이들의 활동을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국민들의 감시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더 나은지 꼽씹어 보게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중국 지도자들 ‘그룹 스터디’ 열기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중국 지도자들 ‘그룹 스터디’ 열기

    중국 핵심 지도부가 처음으로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지도자 집단 주거지역) 밖에서 ‘그룹 스터디’(단체 학습)를 진행했다. 학습 내용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현장 시찰을 하기 위해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공산당 중앙 정치국 위원 25명이 지난달 말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 국가자주창신(創新·창조혁신) 시범구를 방문해 1시간 30분 동안 단체 학습을 실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그룹 스터디가 현장에서 진행된 것은 공산당의 전통으로 정례화된 지 11년 만에 처음이다. 정치국원들은 지난달 30일 오전 8시 30분쯤 대형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중난하이를 떠나 30분 뒤인 9시쯤 중관춘 시범구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궈훙(郭洪) 중관춘 관리위원회 주임으로부터 ‘중국판 실리콘 밸리’인 중관춘의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와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융합해 놓은 형태의 중관춘은 중국의 최첨단 산업 중심지. 중국 정보기술(IT)산업을 선도하는 롄샹(聯想·Lenovo)·바이두(百度)·소후(搜狐) 등 국내 기업과 IBM·마이크로소프트(MS)·휴렛패커드(HP) 다국적 IT기업, 네슬레·중국 제철 등 바이오 및 신소재산업 등 1만 9500여개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정치국 위원들은 뒤이어 중관춘의 3D(3차원) 프린터와 전자집적회로 장비, 차세대 IT기술, 에너지 절감 및 환경 보호, 바이오 및 건강, 우주항공산업 전시구를 각각 둘러봤다. 이들은 중국 자체의 빅 데이터, 나노재료, 생체 칩, 양자(量子)통신 분야 기술의 개발 상황과 응용 수준에 대해 직접 묻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중국 IT업계의 대표 3인방이 학습을 위한 강사로 나섰다. 세계 최대의 PC제조업체 롄샹의 창립자 류촨즈(柳傳志) 회장,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회장,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小米) 레이쥔(雷軍) 회장은 중국 핵심 지도자들을 상대로 첨단 IT 기술 및 산업 혁신방안에 대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변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기회는 조금만 늦어도 놓칠 수 있는 만큼 잘 잡아야만 기회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기다려서도, 관망해서도, 나태해져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당 중앙 정치국의 그룹 스터디는 국가 주요 현안에 대해 해당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의를 듣고 난상토론을 벌이며 ‘열공’하는 행사다. 당의 결속과 일체감을 강화하고 국가 주요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당 총서기 체제가 출범한 2002년 12월 공식 제도화됐다. 상하이시 기관지인 해방일보(解放日報)와 홍콩 친중국계 대공보(大公報)에 따르면 후 전 주석은 당 총서기에 오른 지 40여일 만인 2002년 12월 26일 중난하이 화이런탕(懷仁堂)에서 첫 학습을 진행했다. 단체 학습은 후 전 주석이 집권한 10년 동안 77차례 실시됐다. 시 당총서기가 취임한 이후 열린 9차례를 포함하면 이번이 86번째 행사이다. 학습 주제는 경제 및 정치 분야가 주류를 이룬다. 후 전 주석 때의 77차 학습 중에서 경제 분야가 23회로 가장 많고, 정치 분야는 21회이다. 다음으로 사회(12회)·법률(7회)·국제 분야(5회) 등의 순이다. 시 당총서기 출범 이후에는 개혁·개방, 반부패, 환경 보호, 법치, 해양강국, 미래 첨단산업 등을 공부했다. 학습 시간은 통상적으로 2시간 안팎이며 강사는 두 명이다. 강사가 40분쯤 강의하고 학생(정치국원)들이 30여분 질문과 토론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룹 스터디에는 해당분야 최고 각계 전문가 150여명이 강사로 참여했다. 대공보는 “강사 가운데 절반이 해외 유학파”라고 보도했다. 이중 중국 정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소속 학자가 20여명으로 가장 많다. 국무원발전연구센터와 런민(人民)대 교수가 10여명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수업을 듣는 학생이 중국의 핵심 지도자들인 만큼 강사들은 강의 준비를 위해 진땀을 흘린다. 이들이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지만 강의 준비에 3~6개월 걸린다. 2006년 제36차 강사로 위촉된 쉬융(徐勇) 화중(華中)사범대 중국농촌연구원장은 “중국 최고의 권위의 중난하이 강사로 선정되면 강의에 필요한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장난이 아니다”면서 “강의 초고를 쓴 뒤 몇 번에서 몇십 번에 걸쳐 토론을 거쳐 최종 원고를 만든다”고 털어놨다. 단체 학습과 관련된 에피스드도 많다. 시 주석은 학습시간에 질문이나 토론 순서를 정하는 ‘사회자’를 자청하고 나선다. 시 주석 시대에 열린 아홉 번 중 여덟 번이나 사회를 맡아 학습을 주도했다. 후 전 주석은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2003년 10월 중난하이 강사로 선정된 친야칭(秦亞靑) 중국외교학원 상무부원장은 ”당시 주제는 ‘세계 정세와 중국의 대외 환경’이었다”며 그러나 후 전 주석이 토론 시간에 금융안전 문제에 관해 질문하는 바람에 적잖게 당황했다고 전했다. 2004년 12월 제17차 그룹 스터디에 참가한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때마침 중국을 방문한 존 프레스코트 영국 부총리와 회담을 위해 수업 도중 몰래 빠져 나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대공보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는 직접 강의를 받아썼고,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출석할 만큼 열의가 높았다”고 전했다. 단체 학습은 민간 의견이 최고 지도부에 직접 전달되는 핵심 경로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khkim@seoul.co.kr
  • [현장 행정] 은평구 ‘2013 참여예산 주민총회’ 가보니

    [현장 행정] 은평구 ‘2013 참여예산 주민총회’ 가보니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분이야말로 진짜 주민들이 무슨 정책을 바라는지 잘 알지 않겠어요?” 지난 9일 오전 10시 휠체어를 타고 ‘2013 참여예산 주민총회’가 열린 은평구청을 찾은 김선윤(46·진광동)씨는 이같이 말하며 웃었다. 장애인단체를 이끄는 김씨는 “공휴일이지만 구민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여덟 살 난 딸에게 주민참여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주민참여 예산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는 평가를 받는 은평구가 이날 주민총회를 열어 32개 주민제안 사업의 우선순위를 가렸다. 주민 참여위원과 사전에 모집된 현장투표인단 1976명 가운데 1416명이 동별 부스를 방문해 사업 제안 주민의 설명을 듣고 10가지 사업에 투표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실시한 인터넷 및 모바일 투표엔 2만 2120명이 참가했다. 16개동 주민들은 손수 제안한 사업을 홍보하느라 바빴다. 풍물패도 흥을 돋우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투표를 마친 주민들도 서로 얘기하느라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저소득 어르신들을 위한 황혼 여행과 방범 취약지역 폐쇄회로(CC)TV 설치 사업을 제안한 신사2동 부스에서 만난 신정희(56·주부)씨는 “마을 발전을 위해 더운 날씨에도 한복을 곱게 차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끼리 결정한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발굴한 정을 제도화해 만들어갈 수 있어서 주민의식이 상당히 고취된다”고 덧붙였다. 투표 참여를 위해 들른 주부 김정숙(62·신사1동)씨는 “지난해에도 직접 투표를 했는데 동네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동네에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정책을 위해 나설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거주하는 동네를 떠나 전체 구민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 제안에 한 표를 행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투표에선 갈현1동의 제설용 소형차량 구입 사업이 1위, 신사2동의 방범 취약지역 CCTV 설치가 2위를 차지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대학강의 평가, 시간강사의 고충만이 전부는 아니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옴부즈맨 칼럼] 대학강의 평가, 시간강사의 고충만이 전부는 아니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대학 교육 서비스의 공급자인 교수의 강의에 대해 이루어지는 평가 및 의사 전달은 수요자인 학생의 당연한 권리다. 대학 강의 평가 제도는 근본적으로 수업의 질 향상과 함께 교수의 학습 시스템이 정체 상태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이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교수들에게 강의 내용의 재검토를 요구함으로써 수업의 질 개선을 가져온다’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불편함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입됐다. 그런 의미에서 10월 3일자 서울신문에 보도된 ‘강의평가의 덫…수업 질보다 학생 눈치보는 강사들’이라는 부제의 기획 기사는 대학 강의 평가의 긍정적 취지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고 교수 측이 부담해야 하는 부작용에 ‘무리하게’ 무게를 두지 않았나 싶다. 이 기사는 시간 강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발표나 과제물을 내주려 해도 취업 준비해야 한다고 학생들이 싫어한다”거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학생 3명을 혼냈더니 전체 학생 중 3명만 최하위 점을 주더라” 등 직접적인 인용문으로 시간강사들의 고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현재의 대학 강의 평가 제도가 기말고사 기간 이후 성적 열람을 위한 필수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신중한 평가가 드물어 그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 강의 평가의 효율성 문제는 ‘강의 평가가 인기 평가로 변질되어 시간강사들이 울먹이고 있다’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보다는 평가 방식의 개선 방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 ‘수업의 질 향상’, 즉 교수 측이 아닌 학생 측의 편의를 기점으로 대학 강의 평가가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기사 마지막 부분에 간단히 제시된 검토 방안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덧붙여졌거나 이외의 개선 방안이 추가되었다면 훨씬 설득력 있는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귀찮아서 생각 없이 번호를 통일하여 제출하는 객관식 문항 대신 무기명 에세이 형식의 평가 방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지적은 앞서 나열된 시간강사들의 고충들에 비해 매우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제공한다는 느낌을 준다. 현재 호응을 얻고 있는 기타 개선 방안으로는 강의 평가 시기를 현행 학기말 1회에서 중간 평가와 기말 평가로 나누어 학기말 정리에 평가할 겨를이 없는 학생들에게 차분하게 평가에 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 결과가 나왔을 경우 해당 교수나 강사가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등이 있다. 서울신문의 관련 기사는 ‘천편일률 설문조사 개선해야’를 작은 제목으로 뽑음으로써 개선 방안 논의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수업 질보다 학생 눈치 보는 강사들’이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학 교육 서비스 수요자인 학생들의 입장보다는 평가 대상인 교수들의 입장에 치우쳐 비판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교수 강의 평가 제도는 국내 대학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슈가 될 소지가 높은 만큼,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해결 방안에 초점을 둔 기사가 작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열린세상]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현실화/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열린세상]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현실화/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박근혜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에서 화해와 협력의 역내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역내 국가 간 경제적 상호 의존의 증가와 협력 확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아시안 패러독스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신뢰 위기에 직면한 동북아의 딜레마를 풀어나가기 위해 협력과 대화의 습관 및 관행을 축적하여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 바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다. 평화협력 구상은 다자안보협력의 경험이 일천한 동북아 지역의 현실을 감안하여 환경, 기후변화, 핵안보 등의 연성안보(soft security) 이슈를 중심으로 한 협력의 습관과 신뢰를 배양하여 점진적으로 경성안보(hard security) 이슈로의 전이와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기존의 구상과 다른 점은 첫째, 힘의 논리가 아닌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질서·규범·습관·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파워나 이익을 중시한 협력보다는 협력에 대한 신뢰의 기반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둘째,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북한의 건설적인 변화를 일차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동북아 구상이 직접적인 북한문제 해결에 집중한 것에 견줘, 동북아 역내의 다자 간 협력을 통해 원거리에서 북한의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셋째, 지금까지의 단선적인 정부 간 협력의 틀을 넘어 다양한 분야와 차원에서 여러 행위자(non-state actors)가 협의와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동북아시대의 복합적인 협력 네트워크와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실천 의지와 능력이다. 우선 대선 공약이라도 대통령이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흐지부지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정상과 만날 때마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소개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를 보면, 박 대통령의 추진 의지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근에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설명한 것만 보더라도 그 열의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얼마만큼 외교적인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느냐가 남은 과제이다. 그렇다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 제도화(정상회담 정례화 등)를 너무 강조할 경우 관련국들의 경계심을 유발해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된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제도화(예를 들면 정상회담)를 적극 추진하였다. 당시 구상은 의욕적이긴 했지만 주요국들의 호응 미흡과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핵안전(방사능 오염 방지), 청정 하늘(blue sky), 인구문제(노령화 대책)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프로젝트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쉬운 것, 기능주의적 이슈부터 출발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역내 주요국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정치·전략적 결단과 책임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한국이 주창한 구상이지만 한국만의 구상이라는 인상에서 탈피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의 공통된 이슈는 어느 특정한 국가나 일부 국가만의 노력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구성원들이 책임을 공유한다는 책임 공유(responsibility sharing)의 정신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과거 여러 사례들을 보면 각국이 문제의식은 공유하였지만 책임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패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하토야마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일본의 국가전략으로 인식되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는 비전, 선언 중심의 톱다운 방식인 최고위급 대화와 실무 차원의 투트랙 접근을 통해 각국이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제주도서 특산품 사면 부가세 10% 돌려준다

    제주도 관광을 하면서 내국인이 특산품과 기념품을 사거나 렌터카를 빌려 쓸 경우 내년부터 부가가치세 10%를 돌려받게 될 전망이다. 2일 기획재정부와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예산지원을 통해 제주도 관광을 하는 내국인에 대해 렌터카임대 등 3가지 항목에 붙은 부가세 를 환급하기로 하고, ‘제주관광진흥 지원 사업비’ 명목으로 1차연도 분 100억원을 2014년 예산에 반영해 국회에 넘겼다. 이에 따라 관련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한 해에 100억원씩 3년 동안 300억원의 예산지원을 통한 부가세 환급이 이뤄진다. 환급액수는 1인당 10만원 정도로 해당 지출액 100만원까지가 환급 대상이 될 전망이다. 국회도 제주 관광객에 대한 부가세 환급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고 있어 어떤 형식으로든 내년부터 제주도를 여행하는 내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부가세 환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면세점이 아니더라도 지정판매처에서 산 물품들에 대해서는 사후 부가세 환급을 해주는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내국인에 대한 법 개정을 통한 환급제도는 기획재정부가 반대해 왔다. 기재부는 ‘1국 2조세체계’에 따른 조세 교란과 다른 지역들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이를 반대해 왔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비지급 과세 원칙 등에 어긋나 조세제한특례법으로 환급해 주기 어렵고 비과세감면을 줄이고 있어 법률 개정을 통한 환급제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대신 해마다 100억원씩 3년에 걸쳐 3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인 제주도가 주체가 돼 조례 등을 통해 환급하는 한시적 환급 방안을 내놓아 정부안으로 채택됐다.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을 통해 부가세를 환급할 수 있게 하면 제주특별법에서 정한 3년 동안의 환급기간이 끝난 뒤 조특법의 재·개정을 통해 시기를 연장할 수도 있다. 또 현재의 특산품과 기념품, 렌터카 등 3개 항목에 한정돼 있는 품목을 더 늘릴 수 있어 사실상 내국인 환급제도가 확대되고 항구화될 수 있는 효과도 거두게 된다. 이 때문에 제주도 주민들은 정부 예산지원을 통한 지원이 아닌 조세제한특례법을 고쳐 부가세 환급을 제도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내국인에 대한 부가세 환급이 제주특별자치도에 주는 핵심적인 특례인데다 제주만의 차별화된 관광 유인정책”이란 점을 주장하고 있다. 내국인 면세지역이라는 상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관광객을 늘리는 동인을 일으키기 위해선 상시적인 환급체계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 관광객에 대한 부가세 환급에 대한 근거는 2011년 5월 개정된 제주특별법에 따른 것으로 이에 따르면 ‘관광객 부가가치세 환급 특례제도’를 시행하도록 했다. 제주도 일부에서는 “조세제한특례법의 개정을 전제하지 않은 예산 지원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라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세금은 의원 주머닛돈 아니다… 엄정하게 배정”

    “세금은 의원 주머닛돈 아니다… 엄정하게 배정”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탈쪽지예산’ 선언과 관련, “의원의 개별 행동이 아니라 국회 차원, 원내대표의 예산운영 차원에서 예산에 접근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지역별 예산 수요 등을 원내대표실에서 접수해 예결위 간사 등과 협의하고 여야 협의과정에서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전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쪽지예산도 지역사업의 수요라는 점을 강조하는 의원들도 있는데. -쪽지예산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산은 배분이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의 일방적 예산안을 국회에서 심의하는데, 정부는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모른다. 지역구 사정을 소상히 아는 국회의원이 국민불편을 없애기 위한 예산도 있다. 정부가 거칠게 책상에서 편성한 예산을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예결위 등 일부 의원에게 편중, 집중되면서 형평성과 정의성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쪽지예산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의 균형은 물론 새누리당과의 균형도 맞추겠다. 세금은 국회의원의 주머닛돈이 아니다. 투명하고 엄정하고 형평성 있게 배정돼야 한다. 뒷거래식의 은밀한 쪽지예산 관행은 앞으로 없애겠다. 제도화를 통해 살려야 하는 부분은 살리지만 폐해와 문제점은 없애겠다는 것이다. →예산안 심사가 법정기한(12월 2일)을 맞출 수 있을까. -예산안 심사는 내용이 중요하다. 민생과 직결된 예산안 심사를 졸속으로 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졸속심사를 하면 국민 고통이 오히려 더 늘어난다. 예산안은 심도 있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잘못된 예산을 정의롭게 바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만 심의도 하기 전에 법정시한을 어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지만 시간에 쫓겨 그냥 통과시키는 ‘통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안 처리와 국회의 국가정보원 특위 설치를 연계하나. -야당의 국정원 관련 법은 처리하지 않으면서 정부와 여당이 필요한 법안만 처리하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선진 국회의 모습도 아니다. 이런 국회 운영은 용납하지 않겠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평가는. -정부의 예산안은 ‘3포 예산’이다. 공약·민생·미래 모두를 포기했다. 민생복지는 반쪽이고 지방재정도, 나라살림도 빚더미 예산이다. 거기에 중앙정부의 부담을 지방정부로 떠넘긴 무책임의 극치다. →민주당이 중점적으로 검토할 부분은 무엇인가.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을 민생·민주·지방·재정·복지 살리기 등 다섯 가지 방향에서 ‘국민 살리기’ 예산으로 재편성하겠다. 먼저 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보장, 무상보육의 국가책임, 반값등록금 등 박근혜 정부가 핵심공약을 뒤집은 이유를 분석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재정 문제는 증세 문제와도 이어지는데 증세에 대한 생각은. -증세 논의도 필요하지만 최근의 모습은 복지를 무기로 국민을 협박하는 것 같다. 공약 포기란 비판에 증세라는 방패를 가지고 협박하고 있다. 부자감세 철회와 법인세 인상만 해도 18조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부자들의 명품지갑과 재벌금고는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하고 노인과 서민, 청·장년의 지갑만 쥐어짜고 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미래경영 향해 공기업이 뛴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미래경영 향해 공기업이 뛴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은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제공으로 국민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세계 최초의 ‘모바일 기반 검사시스템’을 도입해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검사 신청은 물론 진행상황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승강기 관리자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승강기를 검사하게 될 해당 검사원의 얼굴과 이름, 연락처까지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또 번거롭게 승강기안전관리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고객번호만 있으면 모바일 또는 PC로 언제든 검사성적서를 열람하거나 출력할 수 있다. ‘안전해피콜’도 대표적인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다. 고객의 검사일정이 확정되면 안전해피콜 상담원이 날짜와 검사원 도착시간을 안내하고 검사완료 후에는 검사원의 약속시간 준수 여부와 태도, 복장상태까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만약 검사원이 약속을 어겼거나 불친절한 태도, 복장불량으로 고객을 불편하게 했다면 우선 ‘주의’ 처분을 하고 재발할 경우 특별교육 실시, 세 번 이상 누적되면 삼진아웃제를 적용해 직위해제하게 된다. 승강기안전관리원이 검사한 승강기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하거나 검사기준 위반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각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중징계하도록 제도화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의 정치학, 교과서의 정치학/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역사의 정치학, 교과서의 정치학/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싸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공방전이 치열하다. 보수의 시각을 반영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역사교육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전으로 비화할 기세다.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 남북 분단과 민주화 등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하는 격변기를 명쾌하게 가르친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돼 왔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보수진영에선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국민국가 건설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치러야 했던 세대들에게 이런 가치야말로 교과서가 담아야 할 핵심 아이템일 게다. 반면 진보진영에선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왜곡과 부작용을 바로잡고, 한국사회의 생존·번영이라는 일방적 논리를 넘어 균형과 조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비판적·미래지향적 과제를 더 중시한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건 아니다. 소모적이고 무한반복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회적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수·진보 진영 모두 상대의 주장과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려는 무모한 노력보다는 상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대립적 가치가 서로 보완될 수 있는 방식으로 통합 반영된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대립적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깨닫도록 해주는 역사교육의 ‘장’(場)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육 강화 정책이 제도화되고 교과서 파동까지 재발하면서 역사교육 개편의 진정성을 둘러싸고 진보진영의 비판과 의심을 불러일으켜왔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주 ‘정확한 사실’과 ‘균형 잡힌 역사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념 논쟁이 교과서에 반영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런데 ‘사실’과 ‘균형’에 대한 강조가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레토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보수·진보 진영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원칙’을 반복하는 차원을 넘어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현실적 제안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노력은 친일파의 행적이나 박정희 정부의 성격에 대한 해석을 뛰어넘어 근·현대사의 핵심 테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무거운 과제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합치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좌편향’ 및 ‘우편향’ 역사교과서가 서로 ‘사실’과 ‘균형’을 대변한다고 우기는 혼란스러운 모습보다 훨씬 낫다.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힘든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한국사회는 고난의 시대를 넘어 지금에 도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확보해왔다. 진보진영의 주장대로 이제 한국사회는 근대화의 미션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민족·통일·번영의 가치가 역사교육의 전면에 등장해 왔다면, 미래의 교과서엔 어떤 가치들이 우선시돼야 할까? 단순한 절충론이나 양시론(兩是論)에 그칠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일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대내적 이데올로기 대립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와 같은 대외적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새로운 역사 프로젝트 역시 동아시아 민족주의 역사관 사이의 처절한 충돌을 예견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국내 차원의 보수 대 진보의 대립보다 밖에서 이뤄지는 역사전쟁이 더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국내 이데올로기 대립을 가능한 한 빨리 수습해야 할 이유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였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는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
  • 특허청, 6급이하 주무관 심사관으로 투입

    특허청이 6급 이하 주무관을 심사관으로 투입하는 예비 심사관제를 도입해 결과가 주목된다. 심사 기간 단축과 심사 품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5급 심사관 증원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자구책이다. 내부적으로 주무관의 심사관 투입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특허청은 보완을 거쳐 제도화한다는 계획이다. 22일 특허청에 따르면 현행 특허법 시행령에 심사관은 5급 이상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특허 및 상표, 디자인 출원이 증가하자 문제가 불거졌다. 특허청은 심사관을 늘려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정부 방침과 엇갈리면서 인력 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심사 처리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심사 처리 기간이 특허와 실용신안은 15개월, 상표와 디자인은 평균 8.8개월에 달한다. 특허청은 2017년까지 특허는 10개월, 상표와 디자인은 각각 3개월과 5개월로 단축하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심사관이 증원되지 않으면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특허청은 내부 규정으로 예비 심사관제를 도입했다. 예비 심사관은 심사 부서에 근무하는 6~7급 주무관 중 심사관 교육을 이수한 직원을 심사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현재 6급 이하 26명이 특허 예비 심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비 심사관은 일반 심사관의 30~70% 수준에서 심사 물량을 다룬다. 심사 결과는 지도심사관과 파트장의 검토를 거친 후 지도심사관 명의로 나간다. 주무관들의 역량이 높아졌고, 사전에 심사 훈련을 거침으로써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특허에 이어 상표와 디자인에도 예비 심사관을 투입할 계획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예비 심사관은 본인 신청이 아닌 순환보직을 고려해 심사국 주무관만을 대상으로 한다”면서 “운영 결과를 분석한 뒤 ‘심사관보’ 제도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간부는 “5급 심사관 증원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며 “심사의 효율성뿐 아니라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한 예비 심사관의 심사 품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국민이 죽어야 국가가 산다

    국민이 죽어야 국가가 산다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한승동 옮김/돌베개/204쪽/1만 1000원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 지역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45분 뒤 후쿠시마 제1원전에 균열이 생긴다. 지진 발생 5시간 만인 오후 7시 30분, 1호기의 연료봉도 손상되기 시작한다. 급기야 이튿날 오전 6시 연료봉이 녹아내리며 방사능이 유출되는 끔찍한 사고가 빚어진다. 후쿠시마 원전이 내뿜은 세슘137의 양은 1만 5000테라베크렐. 히로시마 원폭의 168배에 이른다. 1986년의 체르노빌처럼 유령도시로 변한 후쿠시마는 전후 일본의 ‘국책’이었던 원전 추진 정책이 얼마나 참혹한 희생의 불씨를 잉태하고 있었는지를 폭로한다. 지바현 후나바시로 피난을 떠난 초등학생 형제는 자신들을 보고 “방사선 옮는다”며 고함치고 도망가는 아이들 탓에 후쿠시마로 되돌아와야 했다. 일본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후쿠시마현 주민=해바라기’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해바라기가 방사성 물질을 빨아들이는 데 빗대 방사능에 노출된 후쿠시마 사람들을 어디에 내다버릴지 논의한 글들이다. 누리꾼들은 “후쿠시마 사람들이 20일간 방사성 물질의 95% 이상을 흡수한다”며 “다 자란 후쿠시마 사람들은 소각한 뒤 재로 만들고 처리제를 혼합해 가열하면 방사능이 더 나오지 않는다”고 적었다. “후쿠시마는 일본의 쓰레기통”이라거나 “내 자식이 후쿠시마 여자와 결혼하려면 반대하겠다”는 글도 잇따랐다. 피폭을 무릅쓰고 후쿠시마 원전에 투입된 노동자의 76%도 후쿠시마 사람들이었다. 건강검진을 담당했던 의사는 “10명 중 8명가량이 피난소에서 출퇴근하는 지역 사람들”이라고 증언했다. 일본 언론이 ‘결사대’라고 부르며 극찬했지만 사실은 5174명에 이르는 지역 농민이나 젊은이,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하청회사를 통해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오키나와도 마찬가지다. 1971년 미 군정하에 있다가 일본에 반환된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 시설의 74%가 배치돼 있다. 2009년 오키나와의 후텐마 공군기지를 지역 밖으로 이전하려던 민주당 정권의 움직임은 일본 보수 여론에 밀려 좌절됐다. 후쿠시마와 오키나와. 얼핏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철학자이자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를 통해 이곳에서 전후 일본 사회에 잠재된 ‘희생의 시스템’이란 개념을 짚어낸다. 일본사회가 누려온 전후의 번영은 이 지역들의 희생을 토대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수도권 사람들이 소비하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없는 원자력발전소(후쿠시마)를 짊어지거나 미·일 안보체제(오키나와)의 산물을 떠안은 현실을 짝지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지역은 ‘도호쿠 토인’ ‘일본의 버린 돌’로 불릴 만큼 극심한 차별을 받던 곳들이다. 저자는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이들의 이익이 다른 이들의 생활, 즉 생명·건강·일상·재산·존엄·희망 등을 희생시켜야 성립된다. 지속된 이 희생은 통상 은폐돼 있지만 공동체에 의해 ‘소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고 지적한다. 또 일본이 벌인 2차 세계대전에 무고한 국민이 동원돼 전사했을 때도 이를 숭고한 죽음으로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야스쿠니 신사이며 결국은 동일한 희생의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봤다. 공교롭게도 우리에겐 밀양(송전탑)과 서귀포(해군기지)가 있다. 시스템으로서의 희생 혹은 희생의 제도화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불가피한 현상일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시스템은 언제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민·관 협치는 인식의 전환과 참여가 관건이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민·관 협치는 인식의 전환과 참여가 관건이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광우병 사태로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에 불거진 촛불시위는 미국산 수입 소고기에 대한 불안보다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후에도 굵직굵직한 정책결정 과정에 일반 국민과 시민사회의 의견 개진 기회가 줄어들어 ‘불통정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업과 전문화를 요체로 하는 관료제는 조직특성상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지만, 현대의 정부는 정책과정에 이해 당사자는 물론 일반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참여와 과정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래서 행정의 패러다임이 통치(government)에서 협치(governance)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을 핵심가치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였다. 정부 3.0의 10대 중점 추진과제 중에서 민·관 협치 강화를 세 번째로 선정할 정도로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관 협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됐다. 지방자치와 주민참여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시민협의제도가 특히 잘 발달했다. 국가적 이슈나 지역 현안에 대해 시민들이 통합정부 사이트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면 중앙부처나 지자체에서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서면협의 방식(CPWC)은 2000년부터 영국 내각부의 시행규칙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공공참여(PI)도 전통적인 방식인 공청회나 주민투표는 물론 심층 집단면접, 시민위원회, 시민 패널, 직접적인 권한 위임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도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이해당사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자 계획확정 절차나 이익형량 원칙과 같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자체의 도시계획 수립과정에는 2단계에 걸친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강제 규정으로 도입하는 등 주민참여 제도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여 있다. 미국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규제행정 분야에 이해 당사자들이 정부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 정책을 결정하는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법’을 1996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도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자 2002년 ‘풀뿌리 민주주의 관련법’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광범위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토론을 통해 정부사업의 시행 여부를 논의하는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의 활동이 독보적이다. 박근혜 정부도 정책의 수립·집행·평가 등 전 과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소통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나 주요 국정과제에서 국민신문고(epeople.go.kr)의 온라인 정책토론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온라인 정책토론은 각 부처에서 토론과제 선정 및 토론 절차를 주관하는 방식과 국민권익위원회 또는 국무총리실에서 주관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거나 찬반 대립이 첨예한 이슈는 소관부처에서 정책토론을 주관하면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부처마다 고객집단이 명확하기 때문에 일반국민의 의견보다는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가 과다 대표될 수 있고, 정보 소외계층의 의견수렴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관심 이슈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CNDP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의 설립이 제안되고 있다. 어떠한 형태의 토론방식이 진행되든 민·관 협치의 관행이 정착되려면 정책결정자들의 인식 전환과 일반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국민 의견수렴을 통한 정책결정과 참여 및 과정의 가치가 현대 행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행정기관과 이해당사자 그리고 일반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대결지향적 논쟁과 이분법적 사고체계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존 롤스가 제시한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 기초한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가치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규범과 토론문화가 전제되어야 민·관 협치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 “영국식 규제비용총량제 도입돼야”

    마구 쏟아지는 규제로 인한 기업의 경영 부담은 줄이되 국민들이 실제 규제를 체감하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국식의 ‘규제비용총량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규제는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려운 만큼 애초에 규제를 신설, 강화할 때 비용을 계산해 그 수준만큼 기존의 낡은 규제를 폐지하도록 제도화하자는 얘기다.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혁우 배재대 교수에게 의뢰해 발간한 ‘영국의 규제비용총량제가 한국의 규제 개혁 체계에 주는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6월 영국의 각 정부 부처는 157개 규제를 신설하려 했다. 하지만 규제 하나를 만들면 하나를 없애는 규제비용총량제의 ‘원인 원아웃’(one-in one-out) 방식을 적용한 결과 이 중 70%가 중도 폐기되고 46개만 남았으며 이로 인해 기업 부담도 약 5조 5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정부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 1월부터는 규제 하나를 만들면 기존 규제 둘을 없애는 ‘원인 투아웃’(one-in two-out)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존 규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거나 적극적인 개선 여론이 일지 않는 한 당국이 규제 개혁에 나설 계기가 없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 때문에 규제 수는 매년 늘어나 기업 활동은 어려워지는데도 규제에 따른 효과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이에 보고서는 영국식 규제비용총량제를 우리나라도 도입해 상시 규제 개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규제비용을 화폐 단위로 계량화하고 규제를 신설, 강화할 때 기존 규제의 개혁을 연계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현행 규제개혁위원회를 확대, 개편하고 전문적으로 비용을 계산할 ‘규제영향분석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日·中, 동북아 갈등 인식 상반… 실용적 자세로 지역발전 이끌어야”

    “日·中, 동북아 갈등 인식 상반… 실용적 자세로 지역발전 이끌어야”

    21세기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될 것이란 평가 속에서 영토 분쟁, 군비 경쟁 등으로 갈등과 충돌 우려가 커가는 동아시아. 한·중·일은 어떻게 갈등과 반목을 넘어 안정과 번영을 가꿔 나갈 수 있을까. 지난 23일 이호철 한국국제정치학회장과 사카이 게이코 일본국제정치학회장의 대담을 통해 중국의 부상과 군비 경쟁, 영토 분쟁 등으로 출렁이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중·일의 역할을 들어봤다. 사카이 회장은 ‘21세기 국제질서 변화와 동아시아: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란 주제로 부산 벡스코에서 23, 24일 열린 한국국제정치학회 주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동아시아가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역내 교류와 상호의존도를 키워 가고 있다. 반면 불신과 갈등도 높아지고 있다. 그 원인과 배경은. -사카이 게이코 회장(이하 사카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 등 국제질서의 변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인식과 견해의 차이가 크다. 미국이 동아시아 패권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중국의 부상이 동아시아에 불안정과 위협이 될지 또는 안정의 요인으로 작용할지에 대한 판단도 다르다. 일본으로서는 미국과 동맹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도 문제다. 이런 요소들이 정책 결정의 변수가 되고, 균형을 찾아가는 모색의 과정 속에서 불안정성이 생긴다. -이호철 회장(이하 이호철) 중국의 부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력, 군사력 등 어떤 측면에서나 그렇다. 그러면 미국은 정말 쇠퇴하고 있나. 미·중 간 국력 차가 좁혀지고 있지만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중이 갈등과 협력 사이에서 뭘 선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반도나 동아시아 입장에서 미·중은 협력 관계로 가야 한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에서 미·중 협력관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보였다. 중국에서 ‘신형대국 관계’로 부르는 ‘변화된 중국의 이해와 역할을 반영한 중·미 관계의 협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일정기간 나갈 가능성도 높다. →일·중 관계는 어떤가. 중국에선 동북아의 불안정을 일본 탓으로 돌린다. 일본의 재무장 및 평화헌법의 개정 시도, 정치인과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동북아 안정과 주변국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고 본다. -사카이 일본에서는 정반대로 이야기한다. 일본 내에서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다. 인식 차이가 크다. 오히려 “중국이 위협적”이라고 본다. 세력 전이 관점에서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고 중국 위협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중국이 (갈등과 문제의) 원인 제공자라는 생각이 일본에선 강하다. 중·일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매스미디어다. 두 나라 군대의 교류, 외무성의 네트워크, 각 전문 집단의 협력은 경쟁관계 속에서 상당히 진행 중이다. 협조적 경쟁관계다. 그런데 언론에서 부정적인 면을 확대 부각시켜 그런 인식을 확산시킨다. 그것을 정치가들이 이용하고 선거에 활용하면서 확대 재생산시킨다. 언론과 정치가 각 분야에서의 교류협력 성과를 무색하게 만들며 중·일 관계를 악화시킨다. -이호철 한·일 관계에도 중·일 관계에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중국 경제는 15억명의 인구가 생산하는 총량이다. 1인당 소득 규모로 따지면 미국과 일본의 5분의1 수준이다. 인구에 의해 경제력이 과장되는 측면이 크다. 군사력이나 첨단기술 수준도 미국을 따라가긴 아직 멀다. ‘랴오닝호’란 항공모함 하나를 진수한 수준이다. 구소련의 선체를 사다가 중국 기술을 탑재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봐야 할 근거는 약하다. -사카이 이 회장의 지적에 대부분 (일본의) 전문가들도 동감한다. 일·중 관계는 협조적 경쟁관계다. 서로 협력해야 동북아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 →사카이 회장은 일본의 대표적인 중동문제 전문가다. 중동의 경험에 기반한 동북아 갈등과 분쟁의 해소 방안을 찾는다면. -사카이 중동도 영토분쟁이 많다.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도 문화·인적 교류를 비롯해 수면 밑에서 이뤄지는 (정치가와 정책결정자 간) 소통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중동에서 동아시아를 서양 근대화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은 아시아적이고 한국과 일본은 서구화, 미국화됐다. 근대화 방식에서 갈등 요소를 지닐 수 있다. 미·중이 대립할 때 한·일은 이를 어떻게 보고 대응할까. 동북아 국가들에 아시아적 가치는 협력으로 나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호철 큰 틀에서 같은 생각이다. 한·중·일이 공유하는 가치가 커지고, 함께 주도하는 국제질서도 활발해질 것이다. 2000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아세안과 한·중·일 4자가 공동기금을 만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도 아시아적 가치가 구현된 지역협력의 한 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주도의 해결방식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CMI 다자화는 역내 합의와 아시아적 가치가 반영된 경제 위기에 대한 중요한 대응장치다. IMF 운영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사카이 아시아적 가치의 언급은 보완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했다. 아시아적 비전을 만들어 서구 근대화를 보완하는 아이디어다. 한국의 드라마, 일본의 만화 등이 중동에서도 큰 인기다. 아시아적 문화 가치가 중동에도 스며들고 있다. 문화적 접근이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이끌 수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차 대전 패전일인 지난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시아에 대한 가해와 반성’을 이례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사카이 일본 총리들은 외교보다 국내 정치에 힘을 쏟는다. 아베의 발언과 일련의 행동도 국내 정치용 성격이 강하다. 아베의 생각은 지난 2008년 펴낸 그의 책 ‘아름다운 국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도 자민당의 외교구상 안에 있다. 총리의 말 한마디가 집권당의 입장을 바꾸지는 못한다. 총리가 무엇을 말해도 선린외교를 위한 집권 자민당 내의 기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호철 정당의 역할과 기능이 제도화되어 있는 일본정치의 다행스러운 측면이다. 21세기 동아시아 중심의 국제질서에서의 핵심은 한·중·일 3국 협력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유럽통합과정에서 영·불·독이 보여준 협력의 리더십과 마찬가지이다. 한·중·일은 아세안(ASEAN)+3 정상회담과 더불어 3국 정상회담을 제도화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3국 정상회담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축의 핵심 기제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미국, 러시아, 아세안, 유럽이 보조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협력이 동북아 평화협력의 핵심 기제로 발전하기 위해선 20세기 세 나라 간 불행했던 역사에 대한 결자해지의 용기 있는 리더십이 전제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에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일본 정치인들에게 촉구한 바 있다. -사카이 어려운 문제다. (과거사와 관련) 국가에 따라 인식 차가 크고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에 대해 일본 지식사회에서도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 특성상 민주당과 다른 강한 지지층을 갖고 있고, 아베노믹스의 활력에 대한 평가도 있다. 이런 점에서 위기감과 동시에 안정감도 있다. -이호철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문제 등 중·일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두 나라의 ‘수면 아래 파이프라인’이 작동하고 있는가? 두 나라가 빨리 실용적인 관계로 돌아와야 한·중·일이 주도하는 질서를 빨리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사카이 그렇다. 그러기 위해선 영토 문제 등 갈등 사안과 다른 현안 및 협력사업을 분리해 진전시키는 ‘정경분리 자세’가 필요하다. 각각의 이슈에 따라 접촉을 확대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 -이호철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동남아, 중동,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한국과 중국 방문은 언제쯤 가능한가. -사카이 외교 루트 활성화는 바람직하고 고무적이다. 민주당 때에는 외교 루트가 막혔었다. 중동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등도 돌았는데 더 많은 나라를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중 두 나라에 대한 방문은 복합적인 문제가 쌓여 어려움이 있다. 수면 밑 ‘파이프라인의 가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중국 등 일부 국가의 반일 감정도 일본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국 내 요인도 있고 주변국과의 관계 등 복합적 산물이다. -이호철 한반도 통일과 통일 한국의 등장은 21세기 동아시아 중심 국제질서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핵심적인 불안정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고, 영구 평화의 기틀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의 협력과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한·중·일이 협력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 -사카이 일본도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의 위협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중동 석유에 똑같이 의존하고 있는 한·중·일은 공동의 고민을 갖고 있다. 에너지 안보에 대한 공동 관리 모색도 필요하다. -이호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3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동감한다. 한·중·일 협력은 21세기 국제질서에서 필수불가결하다. 에너지, 비정부기구 간 협력과 함께 공동 학위 과정 등 교육 영역에서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 학자로서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에서도 여성 총리가 나올까. -사카이 일본 여성으로서 부럽다. 여성 총리가 나온다는 것은 현재 일본 풍토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여성 국회의원도 매우 적다. 사회 및 정리 부산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한국국제정치학회는 국제정치학 및 관련 학자, 국제관계 사무 종사자, 전문 연구가 150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 사회과학 분야의 대표적 학회다. 1956년 창설됐다. 일본국제정치학회도 1956년 창립됐으며 회원은 2000여명. 일본 국제정치학계 학자들로 구성됐다.
  •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금강산관광 재개·이산상봉·3通 해결 위한 군사회담도 ‘청신호’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금강산관광 재개·이산상봉·3通 해결 위한 군사회담도 ‘청신호’

    남북이 14일 개성공단 재가동 및 재발 방지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위기는 넘기게 됐다. 이번 합의를 토대로 첩첩이 쌓인 남북 간 현안을 차분하게 풀어 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남북 모두 판을 깨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컸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으로선 국제적 고립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위해서는 개성공단 재가동 카드가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으로 선전한 만큼 개성공단의 상징성이 크고 근로자 5만 3000명의 고용 효과도 막중하다는 점이 합의에 이르는 동력이 됐다. 폐쇄 위기까지 몰렸던 개성공단은 시설 정비 작업을 거쳐 이르면 9월 중에는 재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남북이 합의서에 향후 개성공단 가동과 관련,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중단 사태의 재발 방지를 어느 정도는 제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개성공단 재가동이 가시화되고 남북이 머리를 맞대야 할 후속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3통’(통행·통신·통관) 해결을 위한 남북 간 군사 회담에도 청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합의서에 가동 중단의 재발 방지 주체를 남과 북으로 다 명기했지만 주요 조치인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 재산 보호 등의 이행 주체가 북한 당국이라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는 북한의 의무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이 당국자는 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진전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이산가족 상봉 성사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당장 다음 달 추석을 앞두고 남북이 최우선 현안으로 상정해 속도감 있게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도 지난 10일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을 제안했고, 남북 해빙 모드의 상징적인 조치로 체감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우리 측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은 개성공단 정상화 및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될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의 경우 신변 안전 보장 문제 및 5·24 대북 조치 해제가 얽혀 있어 유동적이다. 북측이 이미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제안해 놓은 만큼 향후 남북 간 논의의 깊이에 따라 그 방향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개성공단부터 정상화하고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후에야 금강산 관광 재개도 논의될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며 “북한의 향후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에 제시할 대북 메시지도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남북이 실질적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며 “박 대통령의 남북 경색 해소 의지와 비전이 어느 정도 수위로 제시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남북 간 장밋빛 전망은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그동안 남북 간 적지 않은 합의서가 채택됐지만 실행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며 “북한이 오는 19일부터 시작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에 대해 경고한 만큼 파열음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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