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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북한ㆍ쿠바와 관계 청산해야”/솔제니친,프라우다지에 기고

    ◎새러시아 건설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시/“공산당은 착복한 재산 국가에 반환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데르 솔제니친(71)은 18일 자본주의의 착취와 같은 서방 문화의 쓰레기를 배제한 상태에서 인민 민주주의와 러시아 정신을 부활시키고 슬라브족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소련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솔제니친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게재된 「어떻게 러시아를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4페이지에 걸친 기고문에서 물질주의 보다는 유심론에 대한 오랫동안의 선호,통합된 슬라브 국가에 대한 열망,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민주사회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을 피력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구조는 아직 붕괴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 잔재 아래 남을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ㆍ백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 3개 공화국만으로 구성된 단일국가,즉 러시아 연방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거대한 왕국(소련)을 유지하는 것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제니친이 조국 소련에 대한 희망을 밝힌 이 기고문은 지난달 그가 복권된데 이어 소련 사회에서 그의 공식적인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이어 소련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을 4가지 꼽았다. 첫째 사람들에게 일하는 맛을 줘야 하고 둘째 러시아의 부를 축내고 있는 모든 정권,특히 쿠바 및 북한과 관계를 끊는 일이다. 셋째 공산당이 착복해온 엄청난 부와 재산을 국가에 반환하는 일,넷째 현 소련정부 부처의 5분의 4를 폐지하고 공산당이 경제와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 현실 외면한 자동차세 인상/이재일 사회부차장(오늘의 눈)

    자동차세 인상등을 골자로 하는 내무부의 「지방세제 개선안」이 발표되자 국민들 사이에 적지않은 반발이 일고 있다. 물론 상당수의 국민들은 도심의 교통난해소 및 과소비풍조 억제를 위해 「잘한 일」이라고 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고 4백40%까지 인상하려는 것은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내무부가 내놓은 안을 보면 한마디로 세수증대만을 생각했지 국민살림은 아예 외면했다는 인상이 짙다. 우선은 중형차 이상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직접 지게되는 부담이 크게 늘어날 뿐만 아니라 자동차세ㆍ사업소세ㆍ등록세 등의 인상은 결국 물가인상에까지 영향을 미쳐 국민들의 가계는 더 큰 주름살이 생기게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국민생활에 크나큰 영향을 주게될 세제개선안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추진해 가려는 태도 또한 행정을 관의 편의대로만 이끌어가는 구태를 벗지 못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당국은 기회있을 때마다 「한자리숫자 물가인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같은 내용에 접하고는 『정부 다르고 내무부 다른가』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장 큰 조세저항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세의 경우 최근들어 중산층에 급격히 보급되고 있는 중형 승용차에 대해 연간 45만원(1천8백㏄ 이하),60만원(2천㏄ 이하)으로 올린 것은 아직도 자가용 승용차를 사치품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이미 3백만대를 넘어선 마당에 2천㏄급 이하의 승용차를 사치품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의 발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난 한햇동안 거둔 자동차세는 3천2백65억원이며 이번에 마련된 안이 시행된다면 1천억원 정도의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에너지절약이니 과소비억제니 하는 듣기좋은 구실을 앞세워 세수나 왕창 늘리자는 속셈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입으로는 물가안정을 외치면서도 세금을 한꺼번에 몇십%씩 올리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정부당국의 태도가 놀랍기만 할 뿐이다. 정말 과소비를 억제하고 절약풍조를 조성하기 위한 세제개선이라면더 가진 쪽에서는 더 받되 절약을 부축하는 조치도 병행하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돼야 할 것이다.
  • 소비도 사회적 규범이다/권태준 서울대 환경대학원교수(세평)

    인류역사상 보통사람들의 소비행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한 삼사십년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소비 시대」니 「풍요로운 사회」니 하는 말들이 오늘날의 이른바 선진국들의 대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이 지난 삼사십년 사이였다. 이런 나라들 가운데 2차대전의 전승국들은 한 십년 정도 앞섰고 독일 일본같은 패전국은 십여년 정도 뒤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대중적 소비의 경험은 이제 겨우 한 세대 남짓하거나 미처 반세기도 안됨을 뜻한다. ○대중적 소비경험 적어 그전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의 인류역사에서는 보통사람들은 노동과 생산의 미덕만을 배워 왔고,소비의 재미는 특별한 계급,즉 귀족 계급의 독점이었다. 그래서 이런 계급을 일은 하지 아니하고 쓰기만 하는 『유한계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시대에 백성들의 소비생활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주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으니 그 이상은 백성들의 소관사가 아니었다. 멋이니 맛이니,절제니 풍류니 하는것은 유한 계층의 「멋쟁이」들의 관심사였다.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소비의 절제는 절제의 미가 아니고 앞날에 예상되는 굶주림에 대비하도록 하는 생존의 연장책으로서였다. 이래서 우리를 포함한 인류의 소비문화는 문자 그대로 양극화되어 있었다. 한편에는 「먹고 살아가는」 소비생활이 있었을 뿐이었고 다른 한편에는 「쓰고 치장하는」 과시 소비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 우리가 찬란한 문화유적이라고 아끼는 것들이 대부분 그런 유한계급의 한가로운 소비유산이다. 이제 신분계급제가 없어진 마당에선 소비의 수단인 돈의 양만이 소비행태를 좌우하는 잣대가 되었다. 이런 처지에 우리 모두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소비생활에 관해서 배우는 바가 없다. 소비는 될수있는 대로 안하는 것이 미덕이고,생존을 위해서 또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에 그칠 일이라고만 배운다. 이렇게밖에 배우지 못한 터에 조금이라도 남는 돈이 생기면­즉 돈의 억제력이 조금이라고 약해지면­어찌 할 바를모른다. 너나 할 것 없이 문자 그대로 견물생심이고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의 억제력 이외에 다른 어떤 정신적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소비행태를 통틀어 「충동적 구매」 행태라고들 한다. 그런가 하면 또 사회에는 구석구석,하루종일 우리 감각을 자극하는 충동이 만연해 있다. 텔레비전ㆍ신문ㆍ잡지들의 자극적인 광고들,그리고도 모자란듯 그 많은 간판들,하루 한순간도 소비의 충동을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지 않은가. 「과소비」를 탓하는 논설과 그 바로 밑에 화려하게 그려놓은 「최신 패션」광고는 독자와 시청자들을 한층 더 혼란시키고 있을 뿐이다. 「적정소비」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없는 곳에 「과소비」에 대한 경고적 수사가 설득력이 있기 어렵다. 계층간의 「위화감」조성,근로의식의 약화,재생산을 위한 저축의 필요 등의 수사는 모두 소비의 문제에 정면으로 답하고 있지 않다. 고작 소비의 양,또는 시기의 유보를 권하고 있을 뿐이다. 정녕 인간다운 생활에는 보람찬 노동 뿐만 아니고 소비의 재미도 한몫을 해야 할 것이라면 소비의양과 시기보다 그 질이 먼저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야말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자본주의 경제의 「인간화」과정에 있어 으뜸되는 과제이다. ○소비문화 부재가 문제 나라경제의 내일의 「선진화」를 위해 오늘의 소비를 좀 참으라는 논리도 선진적 소비의 질에 대한 기대로서 설득력이 뒷받침된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소비문화의 사회학습은 이른바 지도층의 물량적 소비 절제만으로 이끌어질 일이 아니고 그들 생활의 모든 면에서의 문화적 성숙과 도량에 따른다. 이런 문화적 성숙과 도량 없이 누가 과연 남아 도는 돈쓰기 충동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며 누군들 「이웃사촌 땅사는데 배 아프지 않을」사람 있겠는가.
  • 다방서 서성대는 교수들/성종수 사회부기자(현장)

    ◎「어용」으로 몰려 학생에 내쫓긴 신세… 세종대의 김모교수(47)가 교수연구실을 잃어버린 지는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지난달 25일 그날은 학교가 71일 동안의 임시휴업으로 잠들어 있다가 수업을 재개하는 날이었다. 김교수는 오랜만에 연구실로 나와 먼지쌓인 전공서적을 뒤져가며 그동안 밀렸던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가나,강의계획표도 짜보았다. 그러나 하루도 못돼 그런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일부 학생들이 『어용교수에게는 수업을 받을수 없다』면서 연구실 출입문에 빗장을 대고 못을 박아 페쇄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자신에게 붙여진 「어용」이라는 딱지가 『턱도 없는 것』이라고 맞서고 싶었지만 학생들의 위세에 밀려 연구실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내팽개쳐버린 책몇권을 주워들고…. 제자들에게 밀려나온 김교수는 하는 수 없이 학교 이웃에 「임시연구실」을 정하기로 했다. 그나마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학교 가까이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임시연구실」은 학교앞 다방이었다. 다방으로 출근한 처음 하루 이틀은 『이게 교수로서 무슨 꼴인가』라는 낭패감마저 들어 주위의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이따금 가정학습을 하다 궁금한 점을 질문하러 온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차차 즐거움이 되어 요즘은 다방에서의 「집무」가 제법 익숙해졌다. 게다가 연구실을 폐쇄당한 다른 교수 몇몇도 다방 한켠에 자리를 마련해 놓고 책을 보며 간혹 학생들을 만나곤 하는 것을 보면서 낭패감 따위도 어렵잖게 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교부가 최종 「유급시한」이라고 경고한 이달 10일이 다가오면서 김교수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교수들이 너무 나약하게만 느껴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거슬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교문밖으로 밀어낸 제자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그들을 나무라고 타일러야 할 마당에 다방을 전전해야 하는 형편이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이 「교수권」을 빼앗기고 학교앞을 서성이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인 「학습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총장직선제니 학원민주화니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욱 급한 것은 수업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교수님들이 나서야 합니다』라는 또 다른 학생들의 충고를 들었을 때 그 부끄러움은 더욱 크다고 했다.
  • 통일감격에 부푼 베를린 현장을 가다(이제 독일은 「하나」:4)

    ◎“일터 잃을라”… 동독인들 막연한 불안감/40년 분단에 말ㆍ관습등 곳곳 이질요소/72년부터 교류 텄으나 「완전합일」 미흡/교과서 개편ㆍ법규 조기정비로 공동의식 높여야 마리아본 뵈르너부인(48ㆍ동베를린 거주)은 요즘 매일밤을 걱정으로 설친다고 했다. 동베를린의 한 국영식당 현관에서 옷보관 일을 담당하고 있는 뵈르너부인은 통일이 일자리를 앗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에 싸여있다. 「동독」의 시절에서는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이 부인과 같이 혼자 몸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여자들은 평생근무가 보장됐었다. 『서독에 그런 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일이 없습니다.그래서 서독제도에 흡수되는 통일은 나와같은 사람들에게는 직업박탈의 가능성만높여주는 계기로 받아들여 질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뵈르너부인의 걱정은 동서독 사회제도 격차 때문에 동독국민들이 겪는 불안의 작은 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일 이후 동베를린 시가지 상점들의 진열상 앞에는 그안의 물건들을 눈여겨 보려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다. 매장안이한가한데도 이들은 들어가 볼 생각은 않은채 유리창 너머의 물건만 살피고 있었다. 이 역시 제도차이에서 오는 희극적인 풍경들이다. 줄서서 기다리고 주는대로 받아야 하는 사회주의 스타일의 물자구득 방법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있어 물건을 만져보고 따져보며 요모조모 확인한뒤 사들이는 시장경제하에서의 상품구입 스타일은 아직 생소하기이를데 없는 것이다. 진열장을 통해 살 물건을 결정한 뒤에야 들어가 지체없이 사가지고 나가는 그들이 시장경제에 적응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것으로 생각되었다. 동 서독 전문가들은 경제ㆍ사회통합후 동독사회안에 혼란이 필연적으로 따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실업자가 늘며 상충되는 제도 때문에 빚어지는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으로 판단되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동독 고속도로 경찰의 고민이 서독의 신문에 우스갯거리만화로 등장되기도 했다. 「베를린 회랑」으로 불리는 서독∼서베를린간 고속도로는 모두 6개. 서독의 고속도로는 속도가 무제한이며 저속이 오히려 단속대상이다. 그러나 동독은 시속 1백㎞가 고작. 서독구역에서 무서운 속도로 내닫던 서독차들이 동독에 들어서면 엉금엉금 기어갈 수밖에 없었던 게 지금까지의 형편이었으나 국경이 없어진 상황에서 경찰은 단속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독의 경찰 모습으로 양쪽 사회의 제도적 격차가 빚는 아이러니를 이 만화는 잘 표현하고 있었다. 깊은 골로 패인 분단 40여년의 사회적 격차는 그밖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서독의 언어학자들은 양쪽 국민들사이에 상대쪽의 어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증명하고 있다. 동독에서 허락되고 있는 낙태가 서독의 법률로는 금지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이념교육이나 역사교육에서도 서로 부딪치는 부문이 허다하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교과서며 금지되어온 종교교육에 대한 새로운 기준도 마련되어야 한다. 통일의 부정적 측면에 시각을 맞추고있는 사람들은 이번 경제ㆍ사회통합조치가 완전통일을 촉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양독국민들사이 또는 각기의 제도와 생활방식간의 이질성만부각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강요된 평등,몸에 젖어온 동독사람들에게 경쟁이니 시장경제니 하는 단어는 고통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독작업의 가속화 계기를 제공한 지난 3월의 동독총선에서 동독국민들이 헬무트 콜 서독총리의 약속과 서독 마르크화를 향해 표를 던진것도 『어떻게 해주겠지』하는 의존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동독의 피폐된 경제를 서독이 책임져 달라는 요구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때 그들의 거부감과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동서독은 그동안 분단으로 인한 이질적인 요소들을 줄이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통일에의 길목에 이같은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점이 같은 분단국인 한국에 많은 교훈을 주고있다. 동서독이 서로 적대시하는 자세를 버리고 공존체제를 확립한 것은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72년에 조인된 동서독기본조약을 바탕으로한 이질요소 해소작업은 인적교류ㆍ물자교류를 포함하여 다방면에 걸쳐 추진되어 왔다. 특히 동독지역의 85%가 서독TV를 볼수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동독정부는 방해전파를 띄우거나 시청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아 통일 그날의 충격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같은 노력들이 통일에의 초석이 되었음은 되풀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합쳐지는 단계에 이르자 적잖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독주민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이번의 통일작업이 너무 급속히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대해 서독의 디 차이트지는 『늦다 빠르다는 후세 역사에 판단을 맡기고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찬스를 잡았을때 통일을 완성해 버려야한다는 태도는 옳은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민족통일이라는 대과업 추진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은 오히려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으로인해 통일완성뒤의 사회를 더욱 굳게 결속시킬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면의 과제는 동독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적응해 나가느냐하는 것으로 집약되지만 법률이나 제도적 또는 관습의 차이를 함께 줄여나가는 노력의 과정이 통일에의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 “「시장경제」 서두른 나라가 잘산다”(차동세의 경제기행 동구:하)

    ◎헝가리,비교적 부유… 체코는 훨씬 궁핍/개방ㆍ개혁 이끌 「경영두뇌」없어 애태워 1인당 국민소득통계로 보면 폴란드가 소련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여야 하는 데도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폴란드의 모습은 소련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농장의 집들도 제법 깨끗했고 길거리에 차들도 더 많았다. 만나본 사람들도 소련보다는 활기차 보였으며 어느 정도 개혁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다. 시장경제에 대한 예비지식도 꽤 축적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독 체코 헝가리 등 방문 5개국중 헝가리가 가장 잘 살고 그다음이 동독 체코 폴란드이고 소련이 가장 못사는 것 같았다. 국민의 실제 생활수준은 국민소득에 관한 통계와는 거의 정반대였다. 시장경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가 생활수준도 가장 앞서있고 시장경제도입이 늦은 나라는 가장 뒤져 있는 셈이다. 경제발전에 있어 시장의 힘이라는 것이 그토록 강한 것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방문국중에서 폴란드의 농가가 유독 잘 살아 보였고 주택도 농장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되어 물었더니 폴란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농토만은 80%가 사유지라는 것이었다. 공산주의하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어떻든 현재 폴란드에서는 식량이 오히려 남아도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동구권국가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동독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제 공산주의자였더냐는 듯 하였으며 그들의 머리속에는 이데올로기 대신에 독일민족의 위대함과 경제적 풍요에 대한 기대가 가득차 있는 듯하였다. 동독 사회과학원 간부급인사에게 독일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은 분단국의 국민으로서 대단히 기쁘다는 말과 함께 남ㆍ북한도 가까운 장래에 통일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가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았다. 그의 얘기인 즉,독일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비유하면 사랑하는 남녀가 부모에 의해 강제로 떨어져 살아온 격이지만 남ㆍ북한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부모들이 겨우 떼어말려 놓은 것과 같지 않느냐고 했다. 또 하나 동독은 오래전부터 서독과 교류를 실행해왔고 서로 내왕이 있었으며 김일성이 같은 독재자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ㆍ북한 통일에 대해 너무 성급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약이 올랐지만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무안을 당한 꼴이 된 채 겨우 늘어 놓은 변명은 베를린장벽도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러니 우리의 휴전선도 어느날 갑자기 무너져 내릴지 모르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하였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서독분계초소를 지나 서베를린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모처럼만에 김치를 실컷 먹고 나니 속이 얼얼하였지만 살것만 같았다. 그러나 서베를린의 번화한 모습과 바로 경제하나 넘어 동베를린의 침울하고 정체된 모습이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어 그것이 인간의 장난인가 아니면 신의 조화인가 실로 감회가 착잡하였다. 체코에서는 19세기에 지어진 왕궁의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과학원산하 경제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서구세계 같았으면국보급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으로 써야할 왕궁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마루며 무너진 벽,망가진 화장실을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사무실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획경제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천장의 화려한 벽화가 부서진 난간이나 허물어진 벽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경제가 무너지면 문화도 긍지도 자존심도 다 무너지는 것인가. 체코경제연구소의 한 경제학자는 동구권국가들의 공통된 애로사항은 시장경제를 이끌어 갈 기업인이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제건설을 위해 가장 다급한 것은 시장원리에 따라 상품을 만들어 국내에도 공급하고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일인데 막상 그일을 수행해 낼 경험있는 기업인이 없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와는 퍽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부르주아계급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회주의 국가에서 파탄에 이른 경제를 되살려 내 줄 기업인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 마지막 체류국인 헝가리에서는 서구 여느나라와 별차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상점마다 각종 소비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시내 번화가에는 세계유명브랜드 상품을 파는 패션상점도 즐비해 있어 사람사는 곳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모습도 한결 활기차고 무엇인가 하려는 의욕에 넘치고 있었다. 이번에 돌아본 동구권국가들은 모두 지금 시장경제의 도입이라는 엄청난 개혁의 물결속에 휩싸여 있었고 서방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개혁에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혁명적인 변화를 보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시장경제니 개혁이니 하며 떠들지만 일단 급한 불만 끄고나면 다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로의 회귀가능성을 묻는 유도성질문을 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럴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그들은 처음부터 공산주의가 아니었는데도 소련의 힘에 눌려 할수 없이 공산체제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소련은 줄곧동구권국가들을 침략하고 괴롭혀 왔기 때문에 비록 소련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은 이번기회에 완전히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얘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의 계획경제가 참담하고 쓰라린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제도와 인간본성의 괴리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으로는 경제문제의 해결에 관한 한 정부관료와 정치인들의 치밀한 머리로 짜낸 그럴듯한 경제조치들이 엉성하고 결점투성이 같아 보이는 시장기능 보다 훨씬 못 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데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인간은 이윤추구와 개인의 욕망충족을 위해 일할 때는 보람을 느끼고 기운도 나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한낱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다.
  •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사설)

    과거가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가 앞으로의 현재라면 우리에게 있어 과거 현재 미래는 언제나 소중한 것이다. 특히 미래가 소중하다면 과거는 그만큼 의미가 더 크고 더욱 교훈적일 것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따라서 과거도 깨끗해야 하지만 현재도 맑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일본과 한국이 지금 그런 계제에 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은 그런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한일국교정상화이후 국가원수로는 두번째이지만 그 이후 일왕 아키히토(명인)의 방한도 예정돼 있는 만큼 이번 대통령의 방일은 한일간 관계를 새롭게 전개,정립시킨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고 할 것이다. 새로운 한일협력 시대의 정립을 두고 요즈음 두나라가 겪고 있는 혼선과 갈등은 그런 점에서 보면 「비온 뒤」와 「땅 굳기」에 비유해도 그르지 않다고 본다. 일본쪽으로 보면 지금 한국문제및 재일동포 법적지위와 관련하여 이른바 4대악이란게 있다. 지문날인ㆍ강제퇴거ㆍ재입국허가ㆍ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가 그것이다. 여기에 요즘엔 동포3세에 대한 영주권부여문제가 걸려 있다. 물론 일본으로서는 이런 문제들이 악의 요소가 아니다. 일본측으로는 자국거주 외국인에 대한 통상적인 정책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 또 그들 과거와 관련하여 재일한국인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사와 범죄적 과거의 소산인가를 조금만 인식한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재일동포3세문제만 하더라도 한일간 실무협상에서는 물론 그들 국회에서까지 논의가 됐지만 그들 당국자들은 이상한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앞뒤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점진적인 영주권부여니 또는 특수호적제니 등록증 상시휴대 완화니 해서 겉으로는 그럴 듯한 안들을 얘기하지만 근본문제의 개선보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간 불편한 관계의 깊이를 구태여 지적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조하건대 오늘날 한일문제의 출발은 일본이 일제가 저지른 식민수탈과 전쟁의 역사적 죄과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고 있는데서 시작됐다. 그들은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희생물이다. 또 3세는 그들의 후손이다. 그런 일본은 한일관계사에 관한 한 지금까지 그들의 과거에 대한 것으로는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유감표명」이란 표현으로만 호도해왔다. 사과는 커녕 뒷전에서나마 시인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무책승차라는 말이 있다. 안보에 관한 한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을 빌려 쓰고 미국의 안보호에 동승하고 있다. 부와 힘을 구사하는 풍요로운 그 사회에 「대동아전쟁긍정론」이 대두된지는 벌써 오래 됐다. 재일동포문제ㆍ무역 역조시정ㆍ첨단기술 이전 등 현안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를 인식하고 과거를 청산하는 겸허함을 지녀야 한다.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군인ㆍ군속과 그 유족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물론 생존해 있는 수만명의 원폭피해자들에 대해 최소한 일본인 보상수준과 같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왕의 방한문제는 별도로 언급코자 한다. 그러나 역시 과거청산없는 한일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어렵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 방송은 정상화돼야(사설)

    KBS사태가 실로 난감하다. 9시뉴스가 진행되던 도중에 황망하게 중단된 지난 12일 저녁의 KBS1TV는 시청자에게 폭력에 준하는 무례를 범했다. 이후 명색만의 방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KBS는 특정정권의 정권옹호 매체로 전락될 수 없듯이 구성원들의 집단이익에만 충실하면 되는 사기업도 아니다. 「정부의 것」이 아니듯 「노조의 것」도 아닌 것이다. 온 국민이 주인인 전파를 매체로,준조세성격을 지닌 시청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다. 그런 방송이 보도도중,아무런 사전양해도 없이 뉴스방송이 중단되는 사태를 부른 것은 KBS에 종사하는 모든 사원들이 다함께 책임을 져야 할 중대한 과오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사태가 더 심각해져서 사실상의 「파업」사태로 돌입하고 있고 타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민을 노엽게 한다. 이번 사태가 새 사장의 취임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더욱 악화되었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에게는 부당감을 준다. KBS의 사장선출은 엄연히 법이 정하는 일이다. 법절차상 하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잡아야 한다.KBS가 공영방송인 한 모든 절차는 법에 저촉되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법을 뛰어넘어 간섭할 수 없듯이 노조도 법 위에서 주장할 수는 없다. 전임사장을 선출할 때도 법의 기준에 따랐듯이 신임사장도 그렇게 임명된 것으로 안다. 그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노조원이 그들의 의견을 모아서 천명할 수는 있을 지언정 물리적 힘으로,절차에 따른 사장의 공식 취임을 방해했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그 거대한 규모의 방송사가 신임 사장의 공식직무 수행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사태수습 능력을 그토록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우리를 실망시킨다. KBS의 구성원은 수천명에 이른다. 첨단 정보와 과학기재를 다루는,빼어난 인력들의 집단인 것이다. 경영과 관리능력에서도 엘리트중의 엘리트로 구성된 앞서가는 조직체다. 그런 조직이,대화를 통한 타협과 설득의 묘수 한번 발휘하지 못한채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몰고갔다는 사실이 유감스럽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절감하는 것은,KBS에 종사하는 일부가족들이 지닌 가히 편집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피해의식의 견고함이 그것이다. 국가행정이 하는 모든 것을 「음해」로 단정하는 경직된 사고가 너무도 뿌리깊음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지나간 시대가 저질렀던 방송정책의 실패는 이제는 과거의 일이다. 그 과거가 KBS구성원에게 남긴 상흔 못지않게 정책담당자들에게도 「악몽」이고 「교훈」이다. 어떤 권력도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도」「해서도」안된다는 것을 다함께 알고 있다. 질 좋은 방송과 언론자유를 위한 노력은 노사투쟁으로 벌이지 않아도,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충분히 관철할 수 있게 되었고,시청자와 국민 또한 얼마든지 성원하고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관제니 어용이니 하는 상투적 투쟁언어를 구호삼아 법적 절차를 묵살하고 극한투쟁만 벌인다면 국민적 공감은 받기 어렵다. 유능하고 성숙한 직능인들답게 하루빨리 수습하여 중병 앓는 KBS를 스스로 수습하기를 간절히 당부한다.
  • 외언내언

    「수용소군도」하면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인간적인 참혹함이 문학적 가치로 전환되어 그래도 우리가 읽어낼 수는 있을 만큼 순화돼 있는 것이 「수용소군도」이다. 솔제니친이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이야기를 처음으로 썼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해 당시 소련문단의 중진 시모노프의 언급에도 이런 논평이 있다. 「이 소설의 주제는 피가 흐르는 상처와 결부돼 있다. 그러나 공포와 전율의 문학을 쓴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대작가가 이 상처를 승화시킬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오늘에도 우리 곁에 있지만 그러나 누구도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12시간의 중노동,열번씩도 반복되고 1시간씩도 계속되는 쇠철봉의 점호,그리고 단지 6시간의 잠. 솔제니친만이 아니라 특정이유없이 23년간이나 수용소군도에 잡혀있었던 미국인 알렉산더 돌전도 「그저 벌거벗은 살덩어리들」이라고만 수용소를 묘사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설명하지 않았었다. ◆이 참혹함이 우리의 땅에서 뉴스화되고 있다. 북한의정치범집단수용소. 그동안 8곳에서 12곳으로 늘고 정치범 수도 15만2천명이나 되어 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너무나 흡사하다. 중노동 내용도 같고 일하는 시간도 같다. 식기와 삽과 곡괭이만주고 기수용자로부터 감자나 옥수수 씨앗을 받아 식량문제마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심한 조건인 것도 같다. 그리고 솔제니친도 없으니까 우리는 정면으로 어떤 수식도 없이 이 사실을 읽어야 한다. ◆생명의 자유조차 없는 동시대 동족의 인권을 본다는 일은 힘이 들다. 동구의 자유화바람속에 더 악화될 가능성만 갖고 있는 한국판 「수용소군도」에서는 솔제니친이 「수용소군도1」에서 쓴 「조국으로의 탈주」까지도 불가능할 것이다. 지울 수 없는 참혹함을 참으며 통일의 노력에 더 힘을 기울이는 수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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